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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2003)

존경심에 대하여

최근 한 국제기구의 조사에 따르면 청소년의 어른에 대한 존경심이 가장 낮은 나라가 한국이란다. 아직도 버스에서 자리를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한살이라도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선배대접을 하고, 피 한 방울 안 섞여도 형, 언니, 누나, 아저씨, 아주머니, 할머니, 할아버지라고 제 가족과 다름없이 부르는 이 동방예의지국의 젊은이들이 더이상 어른을 존경하지 않는다. 어른이란 ‘단지 나이가 많은 사람’이며 나이가 많다는 것은 ‘늙었다. 한물갔다. 구식이다. 고리타분하다’ 정도로 생각한다. 어른을 우습게 아는 것은 옛날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옛날에 대해서 우리의 의식은 ‘못산다. 원시적이다. 촌스럽다. 낙후됐다. 더럽다. 싸구려. 무식하다’는 것이 보편 정서가 돼버렸다. 그런 까닭에 옛것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아주 무례하다. 텔레비전에서 10년 전, 20년 전 생활상을 보여주면 폭소를 터트리며 헤어 스타일을 비웃고, 패션을 비웃고, 말투를 비웃는다. 그리고 간혹 옛것이지만 훌륭한 것을 발견할 때는 “그 당시에 어떻게 이런 걸 만들었는지 대단하다”라고 경솔하게 말하곤 한다. ‘그 당시’가 어땠는지 살아본 적도 없는 풋내기들이 함부로 지껄인다.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것은 기계들의 속도와 몇 가지 커뮤니케이션 장치들과 화폐가치, 그리고 나빠진 환경이다. 종교가 신에게로 더 가까이 간 것도 아니고, 철학이 더 발전한 것도 없고, 새로운 예술사조가 등장한 것도 없다. 음악, 미술, 영화, 패션 등 창조적인 분야는 오히려 옛것을 반복적으로 모방하기에 급급할 뿐 새로운 것은 하나도 없다. 그래도 나이든 사람은 여전히 우습게 여기고, 옛날은 무조건 지금보다 원시적이었다는 의식을 조장하는 원흉들은 장사꾼들과 정치인들이다. 장사꾼들은 언제나 이렇게 말한다. “이제 새로운 시대! 아직도 그런 걸 쓰십니까. 최첨단 신기술, 신소재. 인생을 업그레이드하세요!” 하루종일 어디서나 떠들어대는 광고들은 언제나 옛것은 후지고 지금 것이 최고라고 까불어댄다. 권력자들도 우리가 옛날엔 얼마나 못살았는지 누누이 강조해야 국민들이 현실에 불만을 덜 가질 터이다. 이렇게 집요한 자본주의 광고의 세뇌공작 속에서 아이들은 철저히 소비자로 길들여진다. 소비자는 왕이므로 그 누구도 존경하지 않는다. 그러나 존경심이 사라져서 슬픈 존재들은 어른들이 아니라 아이들이다. 미래는 역사 속에서 힌트를 얻고, 선배에 대한 동경이 꿈과 용기를 갖게 하며, 어른에 대한 존경만이 그 자신이 어른이 될 수 있는 교양과 인격을 전수해줄 수 있다. 과거를 홀대하고 어른에 대한 존경심이 없는 젊은이들은 사고 싶은 것은 있지만 하고 싶은 일이 없다. 꿈이 없으니 미래가 두렵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과거를 존경해야만 극복될 수 있다. 존경은 성공과 기쁨과 행복을 물려받는 일이다. 김형태/ 무규칙이종예술가 www.thegim.com

한국판 <섹스&시티>? MBC <결혼하고 싶은 여자>

지난달 21일 시작한 문화방송 수목드라마 〈결혼하고 싶은 여자〉(극본 김인영, 연출 권석장)는 제목만 봐서는 그저그런 또하나의 드라마로 짐작하기 쉽다. 결혼을 두고 밀고당기는 뻔한 스토리를 너무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20, 30대 젊은 여성들의 트렌디가 있다 기존 드라마가 배역이나 줄거리에서 젊은층을 대상으로 한 것처럼 보이지만, 기실은 드라마 주 소비층인 40, 50대 아줌마들을 겨냥한 것이 대부분이다. 방송사로서는 텔레비전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중년 여성들의 입맛에 맛는 드라마를 만드는 게 시청률에서 안전하다. 지고지순한 사랑이니,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러브팬터지’가 판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정작 20, 30대 젊은 여성들에게 자기 이야기 같은 드라마는 찾아보기 힘들게 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결혼하고 싶은 여자〉는 모처럼 젊은 여성들의 트렌드와 라이프 스타일을 반영한, 이 시대의 진정한 트렌디 드라마라고 할 만하다. 지난해 같은 문화방송에서 방영됐던 〈옥탑방 고양이〉나 〈앞집여자〉와 같은 계보라고 할까. 남자 친구한테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차인 뒤 결혼할 남자를 찾는 방송사 여기자 신영(명세빈), 병든 아버지에 뺑덕어멈 같은 과부 고모와 고모딸까지 부양하며 힘들게 살아가는, 돈도 없고 남자도 없는 순애(이태란), 재벌가로 시집갔으나 남편에 맞서 맞바람을 피우다 파란눈의 아이를 낳은 죄로 시집과 친정에서 쫓겨난 연애박사 승리(변정수) 등 32살 동갑네기 세 친구의 내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살이가 경쾌하면서도 때론 가슴 찡하게 그려진다. 시청자 고미숙씨는 “31살 노처녀입니다. 오랜만에 나를 웃게 해준 것 같아 고마웠어요”라고 이 프로그램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유숙희씨는 “20대는 자신의 미래를 볼 수 있고, 30대는 현재를 보며 공감하고 40, 50대는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이런 드라마 때문”이라고 소감을 남겼다. 20, 30대 여성들의 절대적 지지는 시청자 분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드라마의 시청률은 20% 미만이지만 세대별 시청점유율을 살펴보면 20대 여성과 30대 여성의 시청 점유율이 각각 33%, 30%로 드라마 주력 소비층인 40대와 50대 여성의 시청점유율(각각 23%, 21%)보다 높다고 시청률 조사기관인 티엔에스는 밝혔다. 경쾌함과 쓸쓸함, 세태풍자가 있다 이 드라마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온 글 중 상당수는 “연기자들의 오버도 너무 재밌다” “다뤄지는 이야기들이 무거운데 유쾌함으로 풀어내는 것 같다” 등 드라마가 내세운 웃음의 코드에 적극 반응하는 내용들이다. 사실 그동안 다소곳하고 현모양처 같은 배역만을 맡아 내숭덩어리 이미지를 갖고 있는, 신영 역의 명세빈이 눈꺼풀을 연신 깜빡이며 결혼하고 싶은 남자에 대한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연기에 웃음이 터져나온다. 지난해 〈앞집여자〉에 이어 연애박사로 나오는 변정수의 화려한 몸짓도 경쾌하다. 신영과 준호(유준상)가 초등학교 5학년 때 헤어진 이후 20여년 만에 다시 만나는 장면도 다른 드라마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항문이 부어 병원을 찾아간 명세빈의 항문에 손을 집어넣은 사람이 다름아닌 유준상이라는 설정은 차라리 이 시대의 엽기코드와 맞닿아 있다. “너무 오버하는 것 아냐”라는 느낌도 들지만 바로 내숭을 떨지 않는 게 이 드라마의 미덕이자 매력이다. 노골적으로 조건에 집착하는 남녀관계를 드러냄으로써 뒤틀린 관계맺기를 풍자하기도 한다. 치과의사인 남자 친구로부터 “나이 많고 고집 세다”는 이유로 차인 신영은 준호의 마음을 얻기 위해 육탄공세를 서슴지 않으나 그는 띠동갑 연예인을 소개시켜달라는 둥 철저하게 속물근성을 보인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편마다 중간에 신영의 일기 같은 내레이션을 삽입해 자칫 시트콤처럼 흐르기 쉬운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거기에는 한국에서 나이 많은 여성이 홀로 살아가면서 겪는 인생의 팍팍함, 쓸쓸함 같은 것이 잘 드러난다. 승리의 자살을 말리며 세 친구가 목놓아 우는 장면 뒤에 흐르는 내레이션 같은 게 특히 그렇다. “서른 살 넘게 살다 보니 삶의 지혜도 얻게 됩니다. 인생엔 견뎌야 할 때가 있다는 것. 눈보라 친다고 해서 웅크리고 서 있으면 얼어죽는다는 것. 눈 비 바람 맞으면서도 걷고 또 걸어가야 한다는 것. 처절한 고통의 현장에서 눈물콧물 흘리는 이신영이었습니다.” 한국판 〈섹스&시티〉 같다는 얘기도 있다 뉴욕여성 4명의 일과 사랑, 섹스이야기를 절묘하게 그려내 높은 인기를 누리는 미국 시트콤 〈섹스&시티〉. 칼럼니스트 캐리가 헤어진 옛 남자친구를 다시 만나 어떻게든 꼬셔서 ‘섹스’를 하려고 안달하는 장면은 신영이 준호에게 공을 들이는 장면을 연상케 한다. 한 남자의 사랑을 원하는 순정파 샬럿은 진순애, 장승리는 자유분방한 애정행각을 벌이는 사만다의 설정과 비슷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프로그램 인터넷 게시판에도 “섹스&시티와 설정이 비슷한 것 같다”는 글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섹스&시티〉가 섹스를, 〈결혼하고 싶은 여자〉가 결혼을 주요 모티브로 한다는 점이 차이점이다. 하지만 두 나라 여성이 처한 현실 때문이겠지만 〈섹스&시티〉의 여성들이 〈결혼하고 싶은 여자〉의 여성들보다 훨씬 진취적이고 도전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결혼하고 싶은 여자〉의 경우 신영과 같은 전문직 여성이 앞뒤 안가리고 결혼에 목을 매는 설정은 바로 드라마의 현실성을 약화시키는 요소이기도 하다. 이 드라마가 기존 드라마의 가치체계를 뒤엎으려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역시 거기에서 크게 벗어나 보이지 않는 것도 이런 보수적 설정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민식과 유지태의 몸만드는 법, <올드보이>

사전을 보면 복수란 자기에게 쓰라린 변을 겪게 한 대상에게 그와 ‘같은’ 고통을 경험하게 갚는 것이라 되어 있다. 함무라비의 동태 복수법에 따라 <복수는 나의 것>의 동진은 류를 죽였고 4인조 테러집단도 동진을 즉결심판했다. 그럼 오대수는 무슨 짓을 했기에 죽지도 않고 사설감옥에서 15년을 썩어야만 했나? 거기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이 쓰치야 가론의 원작만화라면 동태 복수법의 적용을 받는 영화 <올드보이>의 진짜 복수는 출옥 이후에 이루어진다. <복수는 나의 것> DVD 코멘터리를 들으면 류가 누나의 몸을 닦아주는 장면에서 손을 좀더 깊숙이 넣으라는 주문을 했다고 감독이 밝힌다. 근친상간 코드가 은근히 삽입되었다는 얘기다. 그저 지나가는 요소였을 뿐인 이 코드가 <올드보이>에선 복수의 이유이자 방법으로 사용된다. 감금기간이 원작보다 5년이 늘어난 것도 따지고보면 복수를 완성시키기 위해 필요했던 것이다. <복수는 나의 것>에서의 복수는 살아남은 자의 것이었으나 <올드보이>의 복수는 그렇지 않다. 양파 껍질같이 끝을 알 수 없는 최면을 통해 결말을 갑자기 호러 분위기로 몰아간 원작을 감안한다면 더욱 그렇다. 이우진의 마지막 물음은 최면술사의 도움으로 오대수가 ‘거울 속으로’ 갔을 가능성을 닫아버린다. <올드보이>에선 복수가 죽은 자의 것이다. 그런데 대수에게 갚은 우진의 복수가 왜 선물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걸까? 일본에서 텔레시네 작업까지 거친 DVD의 화질은 장단점이 있다. 최근 출시된 <자토이치>와도 유사한데 화면의 안정성과 고른 색감은 기대 이상이나 해상력은 기대 이하로 떨어지는 단점을 지닌다. DTS 사운드는 화질보다 만족스러운데 O.S.T의 분리도가 좋다. 얼티미트 에디션이 9월에 발매되기에 이번에 출시된 일반판에는 특별한 부록이 담기지 않았으나 최민식과 유지태의 몸만들기 장면은 다시 보고 싶을 정도로 짜임새가 있다. CD가 포함되지 않은 대신 영상과 함께 음악을 들려주는 ‘뮤직채널’이 포함되었는데 다른 영화들의 제목으로 음악 제목을 만든 것이 흥미롭다. 칸영화제가 5월12일부터 시작된다. 경쟁부문 두편을 영화제보다 먼저 볼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이번주 개봉하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를 극장에서 보고 역시 이번주 출시되는 <올드보이> DVD를 집에서 보면 된다. 조성효 이번주의 선택은 <그들의 첫 번째 영화>라는 이름의 DVD다. 피에르 브롱베르제가 제작을 맡은 일련의 단편들에서 고다르, 멜빌, 피알라, 트뤼포, 레네 등의 이름만 봐도 가슴 설렌다. 지금 열심히 보는 중이어서 리뷰는 다음주에 실릴 예정이다. 다음으로 관심이 가는 DVD는 <영웅본색> 삼부작 박스 세트다. 80년대 후반 홍콩누아르란 말까지 나오게 했던 시리즈의 생명력이 지금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다. 정작 1편을 극장에서 보지 못한 사람이 많을 텐데, 깨끗한 화질의 DVD로 보는 느낌이 새롭다. 그리고 해외 타이틀을 한편 소개한다. 차이밍량의 <안녕, 용문객잔>과 이강생의 <불견>이 대만에서 세트로 출시됐다. 두 사람의 오랜 인연과 원제목 ‘不散, 不見’을 연결해보면 어울리는 기획이며, 홀로그램으로 만들어져 두 작품이 번갈아 표현되는 재킷도 좋다. 구로사와 아키라는 사무라이의 배신을 얘기하는데 에드워드 즈윅은 무사도를 이야기한다. 어쩐지 외부인이 만든 <라스트 사무라이> 이야기가 와닿질 않는다. 이번주의 리뷰작 중엔 ‘이번주의 선택’이 없다. <영웅본색> 삼부작 박스 세트와 삼인삼색의 <뉴욕스토리>, 그리고 누벨바그 감독들과 멜빌, 피알라, 르콩트의 초기 단편이 담긴 <그들의 첫 번째 영화>에 관심이 간다. <올드보이>는 얼티미트 에디션을 기다려보겠다. 한주간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을 접했다.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는 박찬욱의 <올드보이>는 다시 봐도 힘이 넘치는 영화다. 영화 본편만 원한다면 이번에 나올 일반판을 구매하면 되고, 부록에도 똑같은 비중을 둔다면 음성 해설을 비롯해 방대한 양이 수록될 얼티미트 에디션을 기다리면 되겠다. <휴먼 스테인>은 관록의 연기자들을 보는 쏠쏠한 재미가 있고, 오랜만에 다시 보는 권철희 감독의 <월하의 공동묘지>는 현재 DVD로 나온 유일한 한국 고전 공포영화라는 가치가 있다. 박노식, 도금봉, 허장강과 같은 훌륭한 배우들의 연기가 인상 깊다. 이번주 명예의 전당으로 모셨다. 그리고 나의 선택은 <피터 팬>이다. 원작을 충실하게 재현했고, 상상으로 그리던 네버랜드의 모습을 훌륭하게 영상화했다.

가장 일본적이며 가장 세계적인 오즈의 세계

5월에 부산과 서울에서 차례로 만나는 오즈 야스지로 특별전 자신보다 연배가 어린 구로사와 아키라가 베니스영화제에서 수상했다는 소식을 듣고 미조구치 겐지가 경쟁심을 불태웠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들과 함께 일본 영화계의 또 하나의 거목으로 인정받는 오즈 야스지로의 경우에는 해외로부터 인정받는다는 것에 대해 그리 조급해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언젠가는 자신이 이해받을 날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던 그는 50년대 후반쯤에 자신에 대한 서구에서의 긍정적인 평가가 조금씩 고개를 들자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래, ‘우리의 야만인 친구들’도 이해를 했다는 거지?”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여전히 본격적인 ‘오즈 붐’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보는 게 옳았다. 그에 대한 (서구에서의) 열광은 그의 죽음 이후로, 특히 70년대 초반 이후에서야 번져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오즈의 세계는 국제적으로는 그처럼 다소 뒤늦게 그 모습을 드러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세계를 접한 이들에게 미약한 파장을 미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사정이 그와 반대라는 건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오즈만의 독자적인 ‘우주’ 우리가 흔히 통상적인 눈높이라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낮은 위치에 자리한 카메라, 그 카메라의, 트릭을 전혀 쓰지 않으며 움직임을 거부한 정적인 시선, 굵직한 굴곡이 없는 길을 따라가는 스토리라인 등, 오즈의 영화들을 본 이들은 그것들에서만 특별히 찾아볼 수 있는 특징들을 캐냈고 오즈적 세계에 대한 상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들은 그 미묘한 세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지를 물었다. 어떤 이들은 오즈는 가장 일본적인 영화감독이고 전통주의자라고 부르면서 불교나 선의 개념들을 끌고와 오즈를 이해하려 했다. 또 어떤 이들은 일본 문화에 대한 특별히 깊은 이해가 없이도 오즈의 영화를 설명할 수 있다고도 논했다. 오즈의 영화는 무엇보다도 영화적 형식에 우리의 시선을 모으는 것이니 만큼 그것에 대한 논의로부터 풍부한 비평적 함의를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식의 논의가 타당한가 하는 복잡하고 곤란한 문제를 일단 논외로 친다면, 오즈의 영화가 실로 다양한 갈래의 목소리를 내게 할 수 있는 영화비평의 풍성한 저장고임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물론 오즈의 영화는 이해되어야 하고 연구되어야 할 중요한 비평 텍스트이지만 그 이전에 감상할 작품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실 일본 내에서 오즈는 로베르 브레송이 아니라 존 포드 같은 영화감독이었다. 그는 비록 아주 얕거나 천박한 방식은 취하지 않았을지라도 여하튼 당대의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고자 노력했던 상업영화감독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가 위대한 것은 시공간의 거리를 넘어서 존재하는 관객의 마음도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컨대, 프랑스의 일본영화 전문가인 막스 테시에는 오즈는 우선 이해되고 분석될 대상이 아니라 느끼고 경험해야 할 대상이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오즈의 그 오묘할 수도 있는 세계는 자기 같은 서구인들에게도 절대 불가해한 어떤 것으로 다가오지는 않게 되는 것이다. 이건 오즈의 영화들이 당대 일본 사회의 가족제도나 부모 자식 사이의 관계를 그렸으면서도 그 너머로 자연 앞에 무력한 인간의 근원적인 비애감을 투영해냈기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말해도 될 것 같다. 오즈는 여전히 우리를 감동시킬 줄 아는 세계를 제시했던 영화감독이다. 영화사의 거장들이 대개 그렇듯, 오즈는 영화에 접근하는 자신만의 방식, 그리고 세계를 바라보는 자신만의 시선을 재료로 온전히 자신에게만 속하는 하나의 우주를 만든 사람이었다. 현재까지도 그 우주는 때론 무신경함으로, 또 때론 존경심을 가지고서 자주 모방되어오곤 했다. 그렇다고 해서 모방작이 무턱대고 오즈의 세계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은, 오래전 오즈의 조감독을 지냈던 이마무라 쇼헤이의 이야기에서 입증된다. 그는 오즈 밑에서 일했던 야마모토 고조가 예전의 오즈의 스탭들을 데리고 완전히 오즈 스타일로 찍은 <내 아내의 봄>은 전혀 흥미가 없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이마무라는 이렇게 말한다. “오즈 영화들의 세계는 결국에는 오즈에게만 속했다.” 여전히 흥미로운 비평의 대상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영화적 감동의 대상이기도 한 그 독자적인 우주가 다시 한번 우리 곁에 찾아온다. 홍성남/ 영화평론가 gnosis88@yahoo.com <오즈 야스지로 특별전 Homage to Ozu Yasujiro> 주최: 시네마테크 부산, 하이퍼텍 나다 ▷부산 5월8일(토)∼23일(일) 장소: 시네마테크 부산(051-742-5377, 5477) ▷서울 5월28일(금)∼6월10일(목) 장소: 하이퍼텍 나다(02-3672-0181) ▷ 상영시간표 및 문의 http://www.cinematheque.seoul.kr http://www.cinemathequeseoul.org 셋방살이의 기록 長尾紳士錄 1947년l 흑백 l 72분 전쟁이 끝난 뒤 오즈가 처음으로 만든 영화인 <셋방살이의 기록>은 패전 이후 일본의 모습을 유사가족 이야기 안에 담아낸 작품이다. 홀로 살고 있는 중년 여성 타네는 이웃 남자로부터 아버지를 잃은 한 어린아이를 억지로 맡게 된다. 그녀는 항상 뿌루퉁한 표정을 짓고 고집 센 이 아이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둘 사이는 언젠가부터 부모 자식 사이처럼 되어버린다. 패전 뒤의 쓰라린 일본의 표정을 담고 있는 리얼리즘적인 작품이지만 오즈는 따뜻한 유머감각을 발휘해 영화를 마냥 싸늘한 것이 되지 않게 만들었다. 데이비드 보드웰이 “만일 오즈가 이 영화만을 만들었더라도 가장 위대한 영화감독 가운데 하나로 간주되었을 것이다”라고 이야기하며 극찬한 작품이다. 늦봄 晩春 1949년l 흑백 l 108분 홀로 된 아버지와 그 아버지를 떠나지 않으려는 딸의 이야기를 정제된 형식 안에 담은 <늦봄>은 후기 오즈 영화(다른 말로 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오즈(Our Ozu)”)의 출발점에 해당하는 영화다. 결혼적령기를 지난 여인인 노리코는 아버지를 모시고 살겠다는 마음에 결혼하기를 거부한다. 결국 그녀는 아버지가 재혼을 고려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야 결혼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영화비평가 크리스 후지와라는 <늦봄>을 두고 영화사상 가장 위대한 러브스토리 가운데 하나라고 말한 바 있다. 아버지와 딸 사이의 ‘러브스토리’를 다룬 이것은 ‘러브스토리’라는 이 말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 미묘한 보기와 읽기가 가능한 영화다. 하라 세쓰코가 처음으로 주연을 맡은 오즈의 영화라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동경이야기 東京物語 1953년l 흑백 l 135분 <동경이야기>는 서구에 강한 인상을 남겨준 최초의 오즈 영화로 이후로 오즈의 명실상부한 대표작이 된 작품이다. 초창기에 미국에서 소개되었을 때 붙은 제목(<그들의 첫 번째 동경 여행>)처럼 영화는 자식들을 보러 도쿄에 온 노부부의 이야기를 그린다. 하루하루 살기에 바쁜 자식들은 이들을 귀찮아하고 오히려 그들을 따뜻하게 맞아주는 것은 전쟁 중에 남편을 잃은 며느리이다. <동경이야기>에 대해 오즈 자신은 자식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일본 가족 제도의 붕괴를 그리려고 했다고 말한 바 있다. 물론 영화는 급격한 변화를 맞이한 사회의 단면을 다루고 있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서는 삶이라는 것 자체의 덧없음에 대한 감동적인 성찰을 보여주기도 한다. 피안화 彼岸花 1958년l 컬러 l 120분오즈의 첫 번째 컬러영화. 사실 이 영화를 만들 때까지만 해도 오즈는 아직 컬러영화를 만들고 싶은 생각이 없었지만 쇼치쿠사에서 다이에이 소속의 스타 야마모토 후지코를 기용하면서 오즈에게 컬러영화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코닥 필름보다 붉은빛의 아그파 필름을 좋아한 오즈의 취향이 드러난다. <피안화>의 이야기는 대략 <늦봄>의 네거티브쯤에 해당하는 것이다. 딸은 사귀는 남자와 결혼을 하고 싶어하지만 아버지는 결혼을 반대한다. 이 중심축 바깥에다가 미묘한 갈등을 빚는 부모-자식 관계의 작은 이야기를 두개 더 추가함으로써 영화는 좀더 풍요로워졌다. 세대 사이의 갈등을 아름다운 화면 위에다가 코믹하면서도 씁쓸한 향취로 그려낸 걸작. 안녕하세요 お早よう 1959년l 컬러 l 94분 오랫동안 주로 성인 혹은 노인의 시점에서 이야기되는 영화를 만들던 오즈는 자신의 무성 코미디 걸작 <태어나기는 했지만>(1932)을 리메이크한 <안녕하세요>에서 다시 어린아이의 시점으로 돌아왔다. 도쿄 교외에 사는 가정의 두 소년은 부모에게 텔레비전을 사달라고 졸랐다가 거절당하자 침묵의 반항을 행한다. 영화는 그 반항과 그것을 만드는 상황으로부터 주로 웃음을 끌어낸다. 반면 <태어나기는 했지만>에서 웃음을 만들어내는 것은 수치심쪽이었다. 이것만 봐도 <안녕하세요>는 <태어나기는 했지만>을 그대로 리메이크한 영화는 아니라는 것이 드러난다. 자크 타티식의 코미디 감각이 배어 있는 이 영화는 다른 한편으로는 색채의 다양한 이용에 대한 오즈의 특별한 관심을 볼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고하야가와가의 가을 小早川家の秋 1961년l 컬러 l 103분 <고하야가와가의 가을>은 쇼치쿠가 아닌 다른 영화사에서 제작한 몇 안 되는 오즈 영화들 가운데 하나다. 영화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어려움을 맞고 있는 한 양조장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늙은 홀아비이며 장성한 세딸을 두고 있는 양조장의 주인 만베이는 최근 들어 외출하는 일이 잦다. 그는 19년 만에 만난 옛 애인에게 다시금 푹 빠져 있는 것이다. 오즈의 필모그래피에서 마지막 두 번째 자리에 위치하는 <고하야가와가의 가을>은 만베이와 그를 둘러싼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늙어간다는 것, 기대하지 않았으면서 불가피하게 마련인 변화와 마주한다는 것 그리고 삶의 덧없음을 껴안는다는 것 등을 조목조목 성찰하는 영화다. 여기에 담긴 유머와 씁쓸함의 묘한 공존이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일 만하다. 꽁치의 맛 秋刀魚の味 1962년l 컬러 l 113분 오즈의 마지막 작품인 <꽁치의 맛> 역시 그의 몇몇 다른 후기작들처럼 늙는다는 것과 홀로 남는다는 것에 대한 차분한 성찰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그러면서도 여기엔 장난기 다분한 유머도 곁들여져 있다. 여기에서 오즈는 <늦봄>의 상황을 변주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내없이 혼자 살고 있는 회계사 히라야마는 딸에게 어울리는 신랑감을 찾아주려 한다. 결국 그는 딸을 시집보내고 홀로 남게 된다. <꽁치의 맛>이 오즈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중요한 한 가지 이유는 형식의 제의, 혹은 유희를 극단적인 지점까지 밀고 가는 오즈의 면모를 잘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순수하다고 표현할 스타일을 가지고 그는 삶의 우수를 빼어나게 표현해낸다.

3세대 영화광 시대가 왔다 [2]

‘권위’가 아닌 자유로운 소통을 추구한다 이처럼 이전 세대 영화광들이 닦아놓은 터전 위에서, ‘이C’ 같은 신세대 영화광들은 누릴 것이 많아졌다. 특히 개인의 취향과 기호가 중요해지면서, 이에 따라 영화를 보는 방식도 다양해지고 있다. DVD와 인터넷, 개봉관과 시네마테크, 영화제 등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면서, 영화광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에 가장 적합한 포맷을 찾아 이를 고집하고 있다. “영화는 필름으로 봐야 한다”는 믿음과 ‘고전영화’에 대한 갈망이 깊은 이들은 이즈음 한달에 한번꼴로 열리는 명감독 회고전을 문지방 닳도록 드나든다. “자주 보이는 얼굴들이 있는 걸 보면, 안정적인 관객층이 형성된 것 같다”는 것이 문화학교 서울 사무국장 김노경씨의 조심스러운 분석. 그러나 ‘네임 밸류’가 높은 감독의 회고전에도 ‘대표작’이랄 만한 특정 작품에 관객이 폭주하는 현상에 대해선 “몇몇 대표작만 보고 그 감독을 다 알았다고 믿고 싶어하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를 비치기도 한다. 반면, 동시대의 화제작을 남보다 ‘먼저’ 보고 싶어하는 이들은 자기만의 공간에서 DVD와 디빅에 탐닉한다. 90년대 중반, 국내 개봉이 불가능해 보였던 왕가위의 <해피 투게더>와 이와이 순지의 <러브레터>의 상영회가 매번 인산인해를 이뤘던 것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예술영화전용관의 관객이 “영화적으로 우월하다는 자부심이 대단한 것 같아서” 이질적으로 느껴진다는 ‘나 홀로 감상파’들은 자기만의 고유한 라이브러리를 만드는 데 공을 들인다. 고전영화, 드라마, 액션, 애니메이션 등 좋아하는 장르를 무한정 파고드는 경향들이 이들 ‘소장파’ 사이에 두드러진다. 젊은 세대가 DVD에 열광하는 또 다른 이유를, DVD 칼럼니스트 모은영씨는 “음질과 화질이 뛰어나다는 것은 물론, 챕터별 장면별 감상이 용이하다는 점에서 MTV의 짧은 클립에 익숙한 요즘 세대 감성에 잘 맞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취향과 기호의 차이가 중요해진 것은 물론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1995년 타르코프스키의 <희생>을 계기로 불어닥친 예술영화 붐이 사그라질 무렵, PC통신에는 다양한 동호회가 생겨났고, 고전영화는 물론 장르영화 애호가들도 활약하기 시작했다. “문화원 세대가 영화를 숭배했다면, 통신세대는 영화를 유희했다. 또한 비평의 사각지대에 있는 영화들을 발견하고 재조명해 스펙트럼을 넓혔다고나 할까. 작가주의에 대한 강박없이 잡탕으로 영화를 봤고, 모든 영화를 똑같이 여겼다.” 평론가로 등단하기 전, 유니텔에서 ‘씨네키드’라는 아이디로 활약했던 심영섭씨의 회고다. 그런데 이즈음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영화동호회도 해체 국면을 맞았다. 고전영화 동호회, 호러영화 동호회, 이와이 순지 동호회, 한국영화 동호회 등 ‘소문난’ 모임들이 더러 있지만, 이즈음의 추세는 “1인 미디어”라 일컬어지는 블로그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이다. 블로그의 특징은 블로그의 주인 혼자만이 글을 쓸 수 있고, 원하는 경우 트랙백을 걸어 비슷한 주제로 타인과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는, 이런 커뮤니케이션에서 사라져가는 문화는 영화광들 사이의 ‘진검승부’다. 백과사전식 영화 교양에 집착하던 1세대, ‘영퀴방’에서 잡학다식을 겨루던 2세대와 달리, 이들은 영화에 대한 지식이나 교양을 남과 겨룰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못 본 영화에 대한 콤플렉스 같은 것도 없다. 한 대학생 영화광의 말마따나, 그들의 눈에는 “작가주의라는 정통적 흐름에 집착”하는 전 세대 영화광들의 잣대가 “권위적”으로 비칠 뿐이다. 1세대 영화광들이 평단은 물론 영화제와 영화정책 분야에 포진해 있고, 비디오로 영화를 섭렵한 영화광 출신 감독들이 쏟아져나오고 있는 이즈음, 새로운 시대의 영화광들은 그들이 소모한 영화들을 어떤 생산 활동으로 치환해낼까. 하나의 ‘문화’로 묶어내기엔 너무나 개인적이고 다양한 3세대 영화광들의 모습을 관찰하는 일은 미래의 한국영화를 전망하는 또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영화주의자’ 당신을 사랑합니다 영화광 1세대 정성일이 미지의 신세대 영화광에게 부치는 편지 영화를 사랑하는 당신에게 이 글을 드립니다. 우리들은 영화를 사랑하면서, 서로 알지 못하면서도, 그 상상의 우정으로 서로를 (애타게) 그리워하면서 영화관의 옆자리에 앉아 같은 순간 마치 텔레파시가 통한다는 듯이 눈물을 흘리거나 큰소리로 함께 응원하면서 웃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언제나 마치 숨이 멎을 듯이, ‘죽여주는’ 장면을 만날 때, 바로 그 순간 누군가 아, 하는 탄성을 내지르면 정말 행복해집니다. 혹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새로운 이름 앞에서 열렬히 환호를 보내며 그가 미래의 거장임을 확신하는 그 열정 앞에서 언제나 마음속의 사랑을 봅니다. 그렇습니다. 그건 사랑없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 결심은 아무것도 바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때 우리는 진정 한자리에서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를 사랑하는 건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랑이 그런 것처럼 이 마음을 다한 행위는 그 어떤 이해관계를 노린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모든 일을 뒤로 미루고 채플린을 보기 위해, 드레이어를 보기 위해, 스트로하임을 보기 위해, 에이젠슈테인을 보기 위해, 존 포드를 보기 위해, 오즈를 보기 위해, 장 르누아르를 보기 위해, 히치콕을 보기 위해, 프리츠 랑을 보기 위해, 브뉘엘을 보기 위해, 에른스트 루비치를 보기 위해, 요리스 이벤스를 보기 위해, 자크 타티를 보기 위해, 라울 월시를 보기 위해, 막스 오퓔스를 보기 위해, 하워드 혹스를 보기 위해, 브레송을 보기 위해, 보리스 바르네트를 보기 위해, 로셀리니를 보기 위해, 고다르를 보기 위해, 케네스 앵거를 보기 위해, 타르코프스키를 보기 위해, 장 외스타슈를 보기 위해, 파스빈더를 보기 위해, 올리베이라를 보기 위해, 허우샤오시엔을 보기 위해(거기에는 당신이 좋아하는 이름을 얼마든지 더 열거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이 명단은 끝나서는 안 되는 목록입니다). 헐레벌떡 숨이 턱에 차도록 달려왔을 때 거기에는 오직 그 영화를 보고 싶다는 사랑의 감정 이외의 다른 무엇이 있었겠습니까? 혹은 낮에 흘린 노동의 소금에 옷이 절어 지친 몸을 이끌고 기어이 마지막 회에 도착해서 안도의 한숨을 조심스러이 내쉬면서 안락한 의자에 앉을 때 아, 참으로 행복하다고 느낀다면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친구인 것입니다. 거기에서 이데올로기를 말해야 한다면 저는 기꺼이 네 그렇습니다, 저는 영화주의자입니다, 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건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포기하고 싶지 않은 한마디입니다. 그러므로 영화를 보면서 그렇게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사람들은 친구이며, 동지이며, 연인인 것입니다. 혹은 거기서 함께 그 어떤 장면의 순간 환희를 느낄 때 그것이야말로 그 자리에서 함께 나누는 키스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오늘도 당신을 영화관에서 만나고 싶습니다. 그리고 같은 순간 당신과 함께 감탄의 탄성과 행복한 한숨을 내쉬고 싶습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천사년 사월 정성일 씀.

MP3로의 대전환 시대, 새로운 상황을 창출하라

MP3 시대의 문턱에서 뮤지션들에게 전하는 충고 시간과 장소의 제약을 넘어서 복제되고 전송되는 ‘음악파일의 시대’는 이미 도달했다. 사람들은 음반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파일을 소비하고, 음반업자들은 울상이 되어 불법 다운로드가 음악을 죽이고 있다고 격분한다. 과연 음악파일의 시대가 음악을 살해하고 있는가, 아니면 이 새로운 시대는 음악을 음반업자들의 탐욕으로부터 탈출시키고 있는가. 이 글은 대변혁을 맞이한 음반시장에서 뮤지션들이 취해야 할 행동에 대한 금쪽같은 충고다. Free your mind! Free your music! 편집자 1. 매체의 전환기 음반업 종사자들은 극단적인 불황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그에 따라 뮤지션들도 덩달아 우울해한다. 그러나 그 ‘우울’은 어쩌면, 뮤지션의 입장에서 보자면, 조장된 것인지도 모른다. 누가 조장하나? 음반업자들이다. 그들은 숨이 막힌다고 말한다. 아무도 CD를 사지 않는다. 사기는커녕 굽는다. 굽는다는 건 소비자들이 직접 CD를 만든다는 말이다. 사야 할 사람들이 CD를 만드니 일삼고 팔려고 CD를 생산하는 사람들이 준비한 CD가 잘 팔릴 리가 없다. 물론 아직도 사람들은 CD를 사긴 산다. 그러나 일종의 ‘장서용’이지 소리를 소비하는 일상의 차원에서의 구매는 아니다. 일상의 소리 소비는 파일형태로 넘어가 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음반시장은 불황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여기서 혼동하지 말아야 하는 대목이 있다. 음반시장은 불황이지만 음악 자체의 유통은 그 어느 때보다도 활발하다. 아마도 지금, 음반을 사야 하던 시대보다 음악을 듣는 대중의 음악 듣는 시야는 훨씬 넓어졌을 것이다. 음반시장이 불황인 것은 음악을 만들고 듣는 사람들이 없어져서가 아니다. 음반시장이 음악을 만들고 듣는 사람들의 ‘행위’를 포괄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음악을 만들고 듣는 행위의 패턴이 음반시장 바깥에서 자리매겨지고 있다. 조금 냉정하게 이야기하자면, 음반시장의 불황은 다른 무엇이 잘못돼서라기보다 음반시장 자체의 역사적 사명이 숨을 거두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은 음반 이외의 음악유통 행위에 ‘불법적’이라는 단서를 달기가 그리 어렵지 않지만 그것은 과도기의 현상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은 매체의 대전환이다. 음악에 관한 한 지금을 ‘MP3 시대의 문턱’이라 불러도 좋을 듯하다. 왜 문턱이냐면, 아직 그 소통의 공식적이고도 일반적인 질서나 규율 같은 것이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MP3 시대가 되면 확실히 ‘음반’이라는 개념은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질 것이고 대신 MP3 같은 ‘다운로더블 파일’(downloadable file) 형태의 유통이 음악 저작물의 주요 ‘미디어’로 등극할 것이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그 대전환의 과정이다. 음반 시장은 불황, 음악의 유통은 활발 200년 전의 음악계를 지배한 매체는 ‘악보’였다. 악보는 공연 이외에 작곡자를 연주자나 청중에게 연결해주는 유일한 매체였다. 악보는 특히 작곡가에게 유리한 매체이다. 연주자는 악보에 기재된 대로 연주해야 하고 듣는 사람은 악보대로 연주한 연주자의 음악을 들었다. 작곡가가 콩나물대가리 하나를 한칸 내려 그리면 노래는 그렇게 변했다. 작곡가는 엿장수다. 그래서 주로 작곡가와 악보판매업자들 사이 계약이 이루어졌다. 브람스가 유명한 작곡가가 된 뒤 아버지에게 책을 줄 때 돈을 살짝 넣어주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러던 것이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상황은 바뀐다. 음반이라는 새로운 매체가 등장한 것이다. 1877년 발명왕 에디슨이 ‘납관’(蠟管)식 구식 축음기인 ‘포노그라프’(Phonograph)를 발명했고 이 기계에 의해 최초로 음악이 녹음된다. 10년 뒤인 1887년 7월14일, EMI의 전신인 미국회사 북미 포노그라프(North American Phonograph)가 설립되었고 그해 9월26일, 설립자인 에밀 베를리너는 기존의 실린더형 축음기와는 전혀 방식이 다른 ‘그라모폰’(Gramophone)을 발명하여 특허를 얻어냈고 1890년에는 오늘날의 레코드 형식인 ‘그라모폰 음반’을 시판하게 되었다. 이러면서 향후 100년간 음악계를 지배하게 될 ‘음반의 시대’가 열린다. 음반의 시대는 단연 연주자나 가수들의 시대이다. 음반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소리의 보존 가능성이다. 추상적인 기호들이 그려져 있는 악보와는 달리 음반에는 소리 자체가 녹음되어 있다. 콘서트홀에서나 들을 수 있었던 카루소 같은 유명한 가수의 노래를 집에서도 듣게 된다. 그리하여 예전과는 달리 주로 연주자와 음반판매업자들 사이에 계약이 이루어진다. 작곡가들은 그만큼 불리해진 셈이다. 악보를 팔면 직접 받을 수 있었던 인세를 연주자나 가수들과 나눠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음반의 소비량이 늘어나면서 작곡가 역시 덕을 보게 된다. 이른바 ‘대중음악’의 시대인 것이다. 노래 하나 잘 만들어 떼부자가 되는 작곡가가 생기고, 노래 하나 잘 불러 떼돈 버는 가수들이 생긴다. 다 대중의 덕을 봐서 그렇다. 아날로그 음반의 시대는 CD의 발명과 함께 디지털 음반 시대로 넘어간다. 1970년 6월에 영국의 텔덱(Teldec)사와 독일의 텔레풍켄(Telefunken)사가 공동으로 압전식(壓電式) 비디오 디스크를 개발했고, 1972년 8월에는 미국의 RCA사가 정전식(靜電式)을, 같은 해 9월에는 네덜란드 필립스사가 광학식 비디오 디스크를 개발했다. 그것이 지금의 CD가 되었다. CD는 아날로그 전기 신호를 디지털 신호로 변환하여 보존한다. 아무리 틀어도 음반이 닳지 않는다. 생산도, 시스템만 갖추면 훨씬 쉽다. 크기도 작아 보관하기도 좋다. 그러나 디지털 음반의 시대는 다시 디지털 파일의 시대를 필연적으로 예고하고 있다. 본질적으로 CD에 저장된 데이터와 파일형태로 온라인을 떠도는 데이터는 같다. 압축이나 코덱이 다를지 몰라도 그것들은 그저 데이터들인 것이다. 그것들은 초고속으로 복제되고 복제되면서 데이터의 상실률도 거의 없다. 전송을 통해 시간이나 장소의 제약을 넘어 유통된다. 누가 누구와 계약하는 시대가 아니다. 주인없는 파일들이 전세계의 온라인을 배회한다. 물론 그것들은 주인이 있어야 하는 파일들이지만 복제에 복제를 거듭한 끝에 주인의 얼굴이 지워진다. 거기에 주인의 얼굴을 희미하게나마 새겨넣는 문제가 아티스트나 업자들에 의해 제기된다. 2. 이 선생의 LP 듣기와 K군의 파일 듣기 이 선생 듣고 싶은 소중한 LP를 선반에서 꺼낸다. 재킷 안에는 속포장지가 있다. 음반이 긁히지 않도록, 속포장지에서 조심스럽게 비닐 음반을 꺼내어 턴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LP 표면을 닦는 부드러운 천이나 솔로 일단 한번 닦는다. 그러고나서 조심스럽게 바늘을 LP 위에 놓고 틱, 틱, 하는 노이즈가 조금씩 이는 것을 들으며 약간은 흥분된 마음으로 음악이 시작되기를 기다린다. 드디어 음악이 시작된다. 명반이다. 불후의 명연주다. 이 선생의 방 안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육중한 스피커에서 시원하고 따뜻한 아날로그 신호들이 나와 이 선생의 귀에 가 닿는다. 이 선생은 감동한다. 가끔 재킷을 펼쳐본다. 재킷 역시 예술이다. 대문짝만한 재킷의 표면에 그려진 그림이 예술이고 안쪽의 디자인도 예술이다. 웅장한 재킷을 쳐다보며 음악에 관한 정보를 얻기도 하지만 이 선생이 얻는 것은 무엇보다도 만족이다. 20여분 남짓, 음악이 흐르다가 이내 ‘Side A’가 끝이 난다. 이 선생은 B면을 마저 들을 것인지 새로운 음반을 꺼낼 것인지 약간 고민에 빠진다. 고민하는 와중에도 역시 명반이라는 감탄은 사라지지 않는다. 연주, 녹음, 재킷의 수준, 그 모든 것의 완성도가 이 선생의 마음에 일종의 충만감을 준다. 음반을 다시 재킷에 넣기 전에, 먼지를 한번 더 닦는 것을 잊지 않는다. K군 하드디스크 안에 몇 기가의 MP3 파일들이 저장되어 있다. 그것들을 빨리빨리 듣지 않으면 자꾸 쓰레기처럼 쌓인다. 쓰레기처럼 쌓이면 어느 노래가 어디에 들어 있는지 절대 알 수 없다. 다운받아놓고 시간이 흐르면 누구의 무슨 노래인지 가물가물해진다. 그렇게 가물가물한 파일들이 수천개. 사실 그중 많은 수의 노래는 듣지도 않고 폴더째 통째로 휴지통에 드래그하여 내다버린다. 거의 모든 노래를 20초 이상 듣지 않는다. 내 하드에 들어 있는 노래들을 모두 다 들으려면 내 인생의 상당 부분을 할애해야 한다. 물론 노래의 처음을 많이 듣지만, 드래그하여 중간 부분도 한번, 끝부분도 한번 듣는다. 뚝, 뚝, 노래는 끊기고 노래의 전체 구조는 내 감각의 자장 밖에 있다. 컴퓨터 스피커는 좋지도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다. 예전의 스피커와 비교하면 그것들은 스피커도 아니다. 음악을 듣는 환경은 그런 의미에서는 오히려 열악해졌다. 그러나 스피커가 좋아서도 안 된다. MP3 파일의 음질 때문이다. 이 정도가 딱 적당하다. 이름도 없는 수많은 숫자뭉치 덩이. 노래들이 꼭 정충 같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무방향성의 그 수많은 정충들이 하드 안에서 바글거린다. 하드 안에 있는 것 같지만 실은 그것들은 지금도 끝없이 어디엔가로, 누군가에게로 가고 있다. 당나귀니 뭐니 하는 프로그램을 걸어놓고 있으면 도저히 하루에 다 들을 수 없는 양의 노래들이 뜬다. 물리적으로 그렇다. e-donkey는 오늘밤에도 무거운 짐을 실어 나르느라 잠을 자지 못한다. K군은 당나귀에게 일을 시켜놓고 방금 전 잠들었다. 동녘이 어스름, 밝아온다. ‘듣고 보관하기’에서 ‘듣고 버리기’로 파일은 너무 간접적이고 무가치하고 손쉽다. 아무리 좋은 음악이라도 MP3 파일은 귀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공연 현장을 찾는 일에는 예전보다 더 적극적이다. 생생함. 음반을 사지 않은 지 꽤 오래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음반시장은 불황을 호소한다. 그런데 음악을 듣는 사람들의 저변은 오히려 더 넓어졌다고 할 수 있다. 나 역시, MP3 아니면 찾아 듣기 힘든 노래들을 많이 찾아 들었다. 희귀한 노래들도 MP3 때문에 그리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판 구하려고 동두천까지 나다니던 때가 있었다. 물론 지금도 파일 찾으려고 밤새 인터넷을 헤매는 젊은이들은 많다. 그러나 예전만큼 수고스럽지는 않다. 나보다 당나귀가 더 수고한다. K군의 아버지 방에 있는 장서 옆에는 LP의 무덤이 있다. 엄마는 먼지 날린다며 그 무덤을 처분할 것을 원하지만 아버지는 반대다. 그 무덤에 들어가 자기도 죽을 모양이다. K군은 가끔 그 LP들도 듣는다. 복고풍이다. 그러나 새로 나온 음악은 무조건 파일부터 찾는다. 그러나 오래 쌓아놓지는 않는다. 그러기에는 양이 너무 많다. 하도 다운을 많이 받다보니 가끔 컴퓨터가 완전히 맛이 가서 윈도즈를 새로 깔아야 한다. 그래서 통째로 날아가버리는 수도 있다. 채우는 것도 일이지만 무엇보다도 비워놔야 한다. 빨리빨리 지워 없애야 한다. 파일 듣기는 텅 비움의 실천이기도 하다. 3. 돈의 방향 음악계는 매체의 대전환을 다른 어떤 장르보다도 선도하고 있다. 영화도 내려받아서 보는 사람들이 꽤 많지만 파일이 너무 크고 시간도 걸려 아직은 파일 형태의 유통이 그리 대단하지는 않다. 또 무엇보다도 ‘극장에 가는 일’ 자체가 하나의 세리머니이다. 연인들, 가족들, 나들이 겸 극장은 여전히 사람들의 ‘밖에 나가기’의 중요한 코스다. 그러나 음악은 매체의 전환을 끌고 나가기에 딱 적당하다. 파일 크기도 적당하고 무엇보다도 포터블이다. i-POD나 기타 MP3 플레이어로 들고 다니며 들을 수 있다. 아직은 이 바닥에 룰이 없다. 기존의 저작권법은 새로운 단계로의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파일은 ‘물건’이 아니다. 파일 이름이 있는 숫자의 덩어리일 뿐이다. 기존의 ‘카피라이트’는 권리를 소유하고 있는 주체와 그 권리가 새겨진 ‘객체’를 모두 상정하고 있다. 파일의 시대에는 그 ‘객체’의 실체가 없다. 1960년대에 프랑스의 롤랑 바르트 같은 사람은 저자의 죽음을 말했다. 그는 작품을 쓰는 저자의 행위가 이미 일종의 ‘읽기’라고 했다. 그래서 텍스트는 창조되지 않고 구성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제는 객관적인 ‘텍스트’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포괄적 구도의 거래에 관한 룰을 세워라 파일의 시대에는 현실적으로 다운로드하려는 행위, 즉 내려받을 것을 수락하는 클릭의 행위와 저작권자의 권리를 연결해야 하는데, 아직 마땅하게 정해진 것이 없다. 이 세상의 그 수많은 클릭에 어떻게 다 돈을 매긴단 말인가. 플랫폼을 만드는 일이 우선 진행 중이다. 데이터베이스의 데이터베이스, 노래들의 목록을 전체적으로 골격지우는 데이터베이스가 필요하다. 파일의 시대에는 온라인상에서의 분류가 제일 중요하다. 제대로 분류되는 순간 방향은 잡힌다. 엔드 유저가 클릭킹하는 행위와 창작자가 만드는 행위가 연결된다. 지난 2004년 1월, 전설적인 록 뮤지션인 피터 가브리엘과 브라이언 이노가 ‘온라인 뮤직 선언문’을 전세계에 배포했다. 이름하여 MUDDA(Magnificent Union of Digitally Downloading Artists). 그들은 이제 뮤지션들이 음반업자를 떠나 독자적인 망을 구축할 때가 왔다고 선언한다. 브라이언 이노는 “지금 이용가능한 가능성을 아티스트들이 재빨리 파악하여 손에 쥐지 않는 한 룰은 아티스트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벌써 사람들은 오해하고 있다. 그 오해는 분명 업자들이 조장한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클릭하여 내려받는 엔드 유저만이 아티스트에게 돈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아직 정리되지는 않았으나, 그 중간 단계에 있는 거점들도 창작자에게 돈을 물어야 할 책임이 있는 건 분명하다. 가령 초고속 인터넷망을 까는 ‘망업자’가 있다고 해보자. K군이 초고속 인터넷을 방 안에 기를 쓰고 깐 이유는, 무엇보다도 내려받기의 속도 때문이다. 그렇다면 K군의 음악 듣는 행위는 일정하게 초고속 인터넷망 업자의 이윤창출에 도움을 주었다. 그렇다면 K군이 음악가에게 주어야 할 돈의 일부는 망업자들이 나눠내야 한다. 포괄적인 구도의 거래에 관한 룰이 세워지고 있는 중이다. 엔드 유저나 엔드 유저들이 우글거리는 P2P 정거장만을 고소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음반업자들이 그 고소에 가장 적극적인데, 사태를 잘못 읽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동안 음반업자들이 얼마나 뮤지션들의 돈을 뜯어왔는가. 손톱만큼의 인세를 뮤지션에게 주어가며 자기들은 뮤지션이 버는 떼돈의 몇십 곱절을 쌓아왔다. 오히려 온라인 뮤직의 시대는 뮤지션들이 그런 업자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뮤지션들에게는 음반시장의 불황이 둘도 없는 기회이다. 이 대변화의 시기에, 모험심을 가지고 새로운 상황을 창출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즐거운 일이 어디에 있겠나. 글 성기완/ 음악칼럼니스트 · 사진 임민철

비벤디 유니버설과 NBC, 지난 12일 합병

비벤디 유니버설과 NBC가 지난 5월12일 장기간 끌어온 합병 절차를 마무리했다. 2003년 10월 합의된 조건에 따라 NBC의 모회사 제너럴 일렉트릭(이하 GE)은 비벤디 유니버설에 현금 34억달러를 지급하고 비벤디의 부채 17억달러도 떠맡았다. 합작 그룹 지분의 20%는 비벤디가 나머지는 GE가 소유한다. 이번 합병으로 비벤디는 유니버설 인수 이후 시달려온 부채 부담을 덜고, 메이저 방송사 중 유일하게 제작사를 거느린 미디어 그룹 멤버가 아니었던 NBC는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얻었다. 디즈니와 바이어콤의 합병과 유사한 이번 합작으로 탄생한 시장 5위 규모의 미디어 그룹 안에는, 유니버설 영화 및 TV 스튜디오, NBC, 텔레문도 네트워크와 CNBC, USA 네트워크, Sci Fi 채널, 브라보, 유니버설 테마파크의 일부 지분이 포함된다. 그룹의 CEO로 NBC 회장이자 GE의 부사장인 로버트 라이트가 임명된 가운데, 비벤디 출신의 유일한 간부인 유니버설 스튜디오 사장 론 메이어는 “두 기업의 문화 차이는 염려하지 않는다”며 유니버설의 기존 제작방식에 대해 변화를 요청받은 바 없다고 밝혔다. NBC 유니버설이 기대하는 합병 효과는, 콘텐츠의 공격적 활용과 상호 프로모션, 그리고 배급사와의 좀더 유리한 협상이다. <할리우드 리포터>는, 메릴 린치 애널리스트 제시카 레이프 코언이 NBC 유니버설의 합병 시너지를 4억∼5억달러로 평가했고 그중 2/3는 비용절감에서 비롯될 것으로 전망했다고 보도했다. 합병 뒤 감원 계획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나 최대 500명, 전체 인력(1만5천명)의 3%를 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자막의 한계를 넘은 ‘소리의 예술’, <벨빌의 자매들>

음향을 성공적으로 활용한 애니메이션 <벨빌의 자매들> 이른바 “외국영화”라는 것이 “자막의 한계”라는 저주를 벗어날 수 있을까? 마임으로는 불가능하겠지만 소리를 통해서는 가능하지 않을까? 이러한 “미키마우스적”, 혹은 “자크 타티적” 정신이 프랑스-벨기에-캐나다 공동제작 애니메이션 <벨빌의 자매들>(Belleville Rendez-vous)과 헝가리 특산 애니메이션 <허키>를 통해 되살아나고 있다. 눈부시도록 독특한 데뷔 장편이라고 할 수 있는 두 작품은 모두 풍성한 음향적 표현을 통해 대사를 배제한 채 성공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해준다. <니모를 찾아서>나 <루니 툰: 백 인 액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해의 가장 독창적이고 탁월한 장편애니메이션은 실벵 쇼메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그는 한때 만화작가였다) 영광스러운 복고풍의 애니메이션 <벨빌의 자매들>이 아닌가 한다. 할리우드산 애니메이션 중에서 이 정도로 훌륭한 작품은 최근작들 중에서 <아이언 자이언트> 정도가 아닐까 싶은데, 두 작품 모두 최근의 대세인 3D보다는 “만화스러운” 2차원적 이미지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영화는 30년대 프라이셔 형제의 만담 만화를 천재적으로 혼성 모방해 스크레치를 입혀 완성한 장면으로 시작한다. 늘였다 줄였다를 반복하는 과장되고 우스꽝스러운 이미지가 한바탕 지나가면 곧이어 올스타 버라이어티 쇼가 시작되는데, 장고 라인하르트나 조세핀 베이커, (탭댄스용 신발 한짝에 푹 파묻힌) 프레드 에스터같이 커리커처로 부활한 과거 명사들을 위한 공연이 리드미컬하게 이어진다. 하지만 정작 무대 위의 주인공은 감염될 듯한 즉흥 노래로 은근한 흥분과 희미하게 배설의 쾌감마저 제공하는 세 쌍둥이 가수들이다. 화면은 정적으로 분리되고, 드골 시대의 언제쯤인가에 (쇼메 감독은 1963년생이다) 이 쇼를 텔레비전으로 바라보던 늙은 노파 수자와 그녀의 우울해 보이고 날카로운 콧대의 손자 챔피온은 더한 결핍의 상태에 남겨진다. 할머니와 챔피언, 그리고 밉살스럽게 짖어대는 그들의 애완견 부르노는 기차가 지나가는 철교 때문에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어느 고립된 집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그들의 세계에서 그 세 쌍둥이 가수들은 스케치된 스토리북 스타일의 이미지로 바뀌어 있다. 로널드 실을 연상시키는 가늘고 긴 라인들과 호리호리한 외양의 이 캐릭터들은 솜으로 꽉 채워진 형상에 그 색조는 억제된 가을의 톤이다. 거의 대사가 없는 <벨빌의 자매들>은 말하자면 “이야기적 장치에 주안하고 있는 이야기적 장치(?)”이자 “동작에 대해서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는 움직이는 만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수자 할머니의 걸음걸이 하나하나는 거추장스러운 교정용 신발을 통해 강조되고 있고 환상적인 자전거타기 선수인 챔피언은 할머니에 의한 섭생법의 일환으로 자전거타기를 (그가 정체불명의 두 사내에게 납치되어 거대한 수송선으로 끌려가는 순간까지도) 멈추지 않는다. 배는 바다 위에 무뎌져가는 불꽃처럼 얹혀 있고 도저히 멈춰 세울 수 없는 수자 할머니와 부르노는 그들을 쫓아 패달을 밟으며 태풍과 고래를 피해 흡사 벨빌의 뉴욕(혹은 퀘벡)과 같은 도시에 다다른다. 둔감하기 그지없는 항구의 여신상은 그들이 뚱땡이들의 도시에 들어서고 있음을 예고하는데 (쇼메의 캐릭터들은 악당들이 모듈 모양으로 각 져 있는 것처럼 몇몇 전형적인 시각적 아이디어에 기반하고 있다) 흡사 부르클린 다리와 같은 곳에서 지내던 수자 할머니는 (늙었지만 여전히 노래하고 있는) 세쌍둥이 가수들에게 발견되게 되고, 이 노파들은 그녀를 그들의 지저분한 주택으로 데려가 개구리 스프를 대접한다. (아이들은 아마 이 장면 속의 디테일들을 몹시 즐길 것이다.) 그 사이 챔피언은 악당들이 가상의 자전거 도박을 벌이는 지하 세계의 한 나이트클럽에 억류되어 있었는데 경주의 배경은 옛날 영화의 원시적인 스크린 투사 방식으로 장치되어 있다. <벨빌의 자매들>는 탈출한 인물들이 도망치고 차고 받는 추격전 속의 추격전으로 끝을 맺는다. 모든 애니메이션은 불가피하게 편집광적이고, <벨빌의 자매들> 역시 이 점에서는 겨우 신선해 보일 정도이다. 영화는 불쾌하지만 익살스럽고, 그로테스크하지만 즐겁다. 반복을 거듭하며, 결코 귀엽지 않지만 비싸게 굴지도 않는다. 영화의 대단원에서 할머니들은 신문을 두드리고 냉장고와 진공청소기를 이용해 당신이 반드시 체험해두어야만 할 소음의 협주를 들려준다.

[외신기자클럽] 터키 영화 ‘발견’의 즐거움 (+영어원문)

영화제를 찾아가는 일을 여전히 보람있게 해주는 것은 발견의 즐거움이다. 최근에 본인에게 그런 발견의 즐거움이 또 있었다. 지리적, 문화적으로 아시아와 유럽에 걸쳐 있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매력적인 도시 중 하나인 이스탄불에서 말이다. 23년 전 이스탄불국제영화제가 시작했을 당시만 해도 군사정권 아래 터키는 꽤 규모있는 상업영화 산업을 갖고 있었다. 연간 제작편수는 70년대에 TV에 자리를 빼앗겨 200편 이하로 줄어들어 있었다. 그러나 일마즈 귀니나 제키 외크텐 같은 좌파감독들이 이끄는 ‘대안적인’, 더 예술적인 경향의 영화가 등장하기 시작하여 진지하게 지방과 노동자들의 생활을 비추었다. 서구 영화제는 이들 영화를 너무나 좋아했다. 거칠고 투박한 아름다움을 지닌 풍광 속에 ‘이국적인’ 농촌생활을 보여주면서도 서양 예술영화의 공식에 충실했고, (한층 더해서) 터키 정부의 탄압을 받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같은 시기 중국에서도 유사한 영화를 몇편 만들어내고 있었다). 말하자면 아시아 예술영화가 서양에 도착한 것이었고, 용감한 작가들은 자유를 사랑하는 서구 세계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같은 시기 터키 상업영화 산업은 비디오 출현에 심각한 타격을 받았고 그뒤로 회복되지 못했다. 현재 제작편수는 연간 8∼15편밖에 안 되고 그 가운데 소수의 작품이 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곤 한다. 올해는 이름있는 두명의 감독인 예심 우스타올루와 제키 데미르퀴뷔즈가 신작을 들고 나타났다. <구름을 기다리며>(Waiting for the Clouds)(사진)와 <대기실>(The Waiting Room)이었는데, 두 작품 모두 준수한 정도에 그쳤고 활기와 참신함이 떨어졌다. 대신 가장 놀라운 사건은 49살 무명감독의 처녀작이었다. 이 감독은 이스탄불에서 동남쪽으로 200km 떨어진 마을에서 태어나 여전히 그곳에 살고 있다. 아흐멧 울루자이(Ahmet Ulucay)의 <수박껍질로 만든 배>(Boats out of Watermelon Rinds)는 60년대 중반 시골 소도시의, 영화와 여자들에 미친 두 소년에 대한 반자전적인 영화이다. (불행히도) 비디오로 찍어 필름으로 옮겨진 이 영화는 모든 출연진의 연기가 고르고 편집이 매끄러워 크나큰 매력을 발산한다. 또 이 영화는 외국인들의 ‘이국취향’에 영합하지 않고 당시의 실제 농촌생활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점에서는 자의식 강한 80년대 예술영화보다는 60년대, 70년대 정통 터키 상업영화에 더 가깝다. 이 작품은 이스탄불영화제 국내 경쟁부문에서 최우수상을 탔다.3년 전, <비죈텔레>(Vizontele)라는 인물 중심 코미디가 70년대 중반 어느 마을에 텔레비전(‘비전텔레’)이 들어오면서 생기는 변화를 그리면서 350만명이라는 믿기 어려운 숫자의 관객을 끌어모았다. 이에 못지않게 재미있는 속편 <비죈텔레 투우바>(Vizontele Tuuba)는 지난해 200만명 이상 보았다. 그리고 최근에는 <학교>(School)가 개봉해서 젊은 터키 관객층을 대상으로 하는 터키 최초의 학원공포물이 되었다. 터키만의 방식대로 터키만의 관객을 재발견하면서, 터키 영화계는 뭔가 확연히 꿈틀거리고 있다. 그리고 그런 발전에 동참하고 놀라워하는 일은 정말 즐겁다. The pleasure of discovery is what makes going to film festivals still worthwhile. For me, it happened again recently - in Istanbul, one of the world's most ancient, stunning cities that geographically and culturally has always straddled Europe and Asia. When the Intl. Istanbul Film Festival was founded 23 years ago, Turkey still had a large commercial film industry and the country was run by a military-supervised government. Annual production, eaten away by TV during the '70s, was down to less than 200 features a year. But there were the beginnings of a "alternative," more artistic cinema, led by leftist directors like Yilmaz Guney and Zeki Okten, that focused on rural and working-class life in a serious way. Western festivals loved these movies: they showed "exotic" peasant life in ruggedly beautiful landscapes, obeyed western rules of art cinema, and (even better) were often banned by the Turkish government. (At the same time, China was also making a small number of similar films.) Asian art cinema had "arrived," and its brave filmmakers could be championed by the freedom-loving West. At the same time, Turkey's commercial film industry was being clobbered by the arrival of video, and never really recovered: production is now between 8-15 features a year, a small number of which show at international festivals. This year, two name directors, Yesim Ustaoglu and Zeki Demirkubuz, had new films - "Waiting for the Clouds" and "The Waiting Room." But both proved to be only respectable, lacking vigor and freshness. Instead, the big surprise was a first feature by an unknown, 49-year-old filmmaker who still lives in the village he was born in, 200 kilometres southeast of Istanbul. "Boats out of Watermelon Rinds," by Ahmet Ulucay, is a semi-autobiographical movie about two boys, obsessed with film and girls, in a country town during the mid-'60s. Shot (unfortunately) on video, but transferred to film, it's beautifully played by the whole cast, smoothly edited and has buckets of charm. It's also based in real rural life of the period without pandering to foreign tastes for "exoticism." In this respect it's closer to oldstyle Turkish commercial cinema of the '60s and '70s than the self-consciously arty movies of the '80s. The film deservedly won Best Film in the Istanbul festival's national competition. Three years ago, "Vizontele," a character comedy about the impact of TV ("vision-telly") on a village in the mid-'70s, drew an incredible 3.5 million admissions; the sequel, the equally enjoyable "Vizontele Tuuba," drew more than 2 million admissions last year. And recently released was "School," the country's first college-slasher movie, specifically tailored to young, local viewers. Something is definitely stirring in Turkish cinema as it rediscovers its own audience on its own terms. And it's a pleasure to share in, and be surprised by, such a development.

<하류인생> 혹은 임권택 [4]

정성일 | 영화를 찍는다는 문제만 갖고 얘길 하면, 이제 대부분의 한국 감독들에게 60년대는 사회적 공간이거나 상상적 공간이지, 경험한 공간은 아닙니다. 감독님이 1960년대를 다룰 수 있는 마지막 세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하류인생>을 보러오는 관객은 텔레비전이나 자료로만 알고 있을 텐데, 감독님께서 이 젊은 세대를 설득하기 위해 배려한 부분들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임권택 | 이런 생각을 해요. 그 시대를 총체적으로 정리하는 것은 책으로도 충분한 거예요. 60년대라는 시대를 찍을 때, 고증하는 것이 중요한 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고. 단지, 건달이든 누구든 실제의 삶을 영화 안에 드러내야 하기 때문에 리얼리티가 필요해진 거예요. 기왕이면 우리가 체험했던 실상, 그때의 생생한 모습을 충실히 함으로써 영화를 살아 있는 것으로 만들지 않겠는가 한 것이죠. 정성일 | 제가 <하류인생>에서 매우 신기하게 생각했던 점 중 하나는 <족보> 이후에, <태백산맥>을 예외로 치면, <하류인생>이 유일하게 플래시백을 쓰지 않은 영화라는 점입니다. 플래시백은 감독님의 스타일이자 인장 같은 것이었는데, 이 영화는 시작하면 한눈팔지 않고 일직선으로 곧장 나아갑니다. 감독님 영화의 어떤 변화를 예고하게 되는 것인지요? 임권택 | 진작에도 내 영화에 대해서 그런 지적들이 있었지만, 나는 지금까지 인위적이고 드라마틱한 운행에 대해 멀어지고자 노력을 해왔단 말이에요. 그런데 이번에야말로 그 시대의 삶의 편편을 꾸밈없이 찍어내는 과정에서 쌓여가는 그런 덕목을 갖춘 영화를 해보고 싶었단 말이죠. 어떻게 그 강렬한 드라마 같은 추진력을 낼 수 있겠는가 하는 것에 나는 주력했던 거요. 도리없이 덤덤할 수밖에 없는 일상에 어떻게 힘을 실어서 추진력을 줄 것인가, 그런 데에 가장 힘을 들인 작품인 거요. 정성일 | 그렇다면, <취화선> <서편제> 같은 구조, 그러한 과거와 현재의 복잡한 시제에 대해서 감독님께서 싫증을 느끼신 것은 아닌지요. 임권택 | 내가 플래시백을 이용할 때는 속도를 주기 위해서라고. 순서대로 가다보면 설명해야 할 것이 많아지고 영화도 길어지고, 영화 운행하는 속도가 느려지기 때문에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플래시백을 썼단 말이에요. 그런데 그것도 한두번이에요. <취화선> <서편제>가 다 그런 형식 아니에요. 물론 그걸 임권택표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또다시 그런 방식으로 해나간다면… 그게 무어 좋은 것이라고 만날 붙들고 늘어질 필요가 없잖아요. 아마도 기왕의 내 영화들과는 <하류인생>이 상당히 느낌이 다르게 보이지 않았을까 생각을 하고 있어요. 정성일 |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감독님 영화에 적응됐다고 생각하면 또 다시 낯설어지는군요. 임권택 | 아니, 난 또 그러기 위해서 죽을 지경이라고. (웃음) 정성일 | 이 영화의 시작을 1957년으로 잡으셨는데, 휴전이 지난 지 채 4년밖에 안 된 지점에서 시작하는 영화거든요. 그런데 이상하리만큼 한국전쟁에 대한 상처 같은 것을 완전히 배제한 뒤에 시작한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그리고 1972년에 영화를 끝내는데, 그러니까 역사의 연속성 속에서 시간들이 있기보다는, 감독님의 큰 시간 속에서 이 시간을 잘라내서 찍었다는 느낌도 있거든요. 임권택 | 명동이라는 거리가 전쟁 바로 그때에는 영화 속에 드러난 그런 거리가 아니었어요. 전쟁의 상흔이 처참하리만큼 드러나 있던 때란 말이에요. 내가 전쟁의 상흔, 그런 쪽에 관심을 가졌더라면 명동거리 세트가 지금처럼 지어져서는 안 되지. 폭격의 흔적이라도 드러나야 마땅하지. 그러나 그런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다루고는 있지만, 주제는 한 인간의 몰락을 추적해가는 영화란 말이에요. 전쟁이 남긴 그 흔적들까지 힘을 들여서 표현할 필요가 없는 영화예요, 이 영화는. 난 그렇게 판단을 했다고. 정성일 | 1957년을 시작 기점으로 잡으셨을 때 이 영화는 어떤 장점이 생기는 건가요? 임권택 | 1957년이 중요한 게 아니고, 유신을 어떤 나이에 맞느냐, 태웅이 어떤 사업을 할 때 맞느냐, 권력과 어떻게 유착되어 있는 시점일 것이냐가 중요한 것이었지. 거기서 필요한 것은 아직은 정신적인 맑음이 살아 있는 시점이요. 이 영화는 사람이 점점 탁해져가는 거니까. 정성일 | <하류인생>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감독님 영화 중에서 신이 가장 많은 영화가 되지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임권택 | 어, 나도 신 넘버를 보고 놀랐다니까. 정성일 | 예, 186신에까지 이르고, 대부분의 숏이 대단히 짧습니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정말 빠른 영화라는 걸 알 수 있는데, 예전 영화들에 비하면 구조들도 굉장히 심플하게 가져간 영화입니다. 가령, <취화선>이 몽타주와 미장센을 혼융한 방식의 영화라면, <하류인생>은 몽타주만으로 만든 영화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특히 상필이 미도극장 앞에서 〈007 위기일발>을 보고 나오다가 총맞는 장면에서 총쏘는 인서트 컷을 넣은 걸 보고, 이제 감독님이 이쪽으로 완전히 옮겨오셨구나 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몽타주 영화로 완전히 옮겨오게 된 확신 같은 것이 있으십니까? 임권택 | 어쨌거나 이게 폭력적인 영화 아니요, 삶 자체가 폭력적이라고, 암투고. 처음부터 폭력을 다뤄요, 이 영화는. 그런 일관성이 필요한 거예요. <취화선>의 인물들처럼 그림이 주는 감흥이나, 아름다움을 여유롭게 느껴갈 만한 삶들이 아니란 말이에요. <취화선>은 미술을 하고, 미적인 것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지만, 이 영화 인물들은 그림 감상하는 법이 없잖아요. 그런 사람들에 대한 얘기를 하니까 그럴 수밖에. 이건 속도가 필요한 영화인 거예요. 정성일 | 저는 이 영화를 기점으로 감독님이 몽타주 영화로 넘어오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거든요. 임권택 | 그거는 또 해봐야 할 텐데, 전 작품들의 유장함과는 내가 벌써 이별을 하고 있는 것 같애. 유장함이라도 전의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단 말이에요. 정성일 | 그럼, 작품이 요구한다면 미장센 중심의 영화로 다시 돌아올수도 있겠네요. 임권택 | 그럼요, 그럴 수도 있죠. 정성일 | 저는 신중현씨의 곡 <님은 먼 곳에>가 쓰이는 대목들이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첫 번째는 태웅이 혜옥에게 카페에서 반지를 건네주는 장면에서였습니다. 음악이 쓰이는 방법이 매우 특별하구나 생각했습니다. 단지 카페 안에서의 배경음악일 뿐만 아니라 바깥의 싸움에 뛰어들 때도 여전히 음악이 흐르고, 그걸 내려다보는 혜옥의 얼굴에까지 그 음악이 뒤쫓아가서 붙을 때, 이 노래는 태웅의 노래가 아니라 사실은 혜옥의 노래구나 생각했습니다. 가사를 생각해보면 태웅이라는 사람이 참 먼 곳에 있구나 하고 느끼도록 가사를 맞췄다는 느낌도 있거든요. 임권택 | 그러니까 그 노래는 사실과는 무관하게 두고 있어요. 물론 설정상으로는 태웅이가 미리 틀어달라고 카페에 부탁을 해놨겠죠. 하지만 바깥에 싸움하는 데까지 그렇게 들릴 수가 없잖아요. 그러나 그 노래를 앞세우면서 태웅과 혜옥의 사랑 감정을 조금 강제로 만들어가는 수단으로서 사용한 거요. 상식적으로 보면 둘이 부부가 될 수가 없잖아요. 사회적 여건 같은 걸 봐도 그렇고. 그 곡의 가사가 갖고 있는 점이 맞아떨어지고 있다고. 신분이나 여건상 아픔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사이라는 것이 가사로 드러나고 있는데, 나는 그걸 오히려 거꾸로 이용하고 있는 거요. 사랑의 감정을 북돋우는 데에. 정성일 | 하지만, 두 번째 <님은 먼 곳에>가 사용된 부분은 좀 낯선 것 같던데요. 임권택 | 아니 그건 낯선 게 아니고, 무리수를 둔 거예요. 사실 그렇게 쓰면 안 되는 거요. 영화라는 게 참 우습다고. 예고편에서 그 음악을 썼다고. 그리고 예고편이 떴고. 이건 완전히 작전상 쓴 거예요, 작전상. 그러는 수가 있어요, 영화를 하다보면. 정성일 | 세 번째 <님은 먼 곳에>가 쓰인 부분은 태웅이 정보부 부장 뒤치다꺼리를 해주려다 머리가 깨지고 난 뒤에 아이들과 남아 있을 때 흐르는데요, 여기서도 음악을 붙여 쓴 이유가 있으실 것 같은데요. 임권택 | 태웅이는 외도를 하고도 아내가 가출했다고 오히려 화내는 놈 아니요. 하지만, 그런 외도가 두 사람 사이를 망칠 만큼은 아닌 거 아니요. 그거를 어디서부터 다시 봐야 하냐 하면, 애낳는 장면 있죠. 그걸 필요 이상으로 길게 찍었다고. 부부로서 깊은 가정 안에서의 신뢰나 믿음을 거기서부터 출발시키고 있단 말이에요. 자기 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존재를 사랑하는 마음을 환기시키기 위해서는 그 음악밖에 더 있겠어요. 정성일 | 태웅과 혜옥이 같이 나오는 장면에서 의외로 태웅의 등을 잡아서 혜옥의 얼굴을 긴 시간 동안 보여주는 숏들이 있었습니다. 이 순간에는 태웅이 아니라 혜옥의 얼굴을 보라, 라는 의미인 것 같은데요. 그때 태웅의 얼굴보다 혜옥의 얼굴을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하신 것 같습니다. 임권택 | 당연히 중요한 게, 혜옥이는 태웅이에게 누나이자 어머니인 대단히 중요한 존재라고. 그런데 혜옥이 등장하는 장면이 영화 속에는 많지 않다고. 태웅은 1시간40여분 동안 계속 나오는데, 그런 데서까지 보여줄 필요는 없는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