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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2003)

두개의 정체성 두겹의 눈, 아시아의 한인감독들 [3]

두번째 조우_ 재일동포 3세 리상일 감독 소통과 자극의 문을 두드리다 어떤 이에게 ‘재일’이란 단어는 삶의 굴레였다. 오직 가족들의 생존을 위해 일본사회 밑바닥에서, 때론 불법의 일도 가리지 않아야 했던 재일동포 1세들. 그들은 ‘고난’의 상징이었고 차별의 대상이었다. 세월이 흘렀다. 보통 재일동포 2세, 대부분 3세인 영화감독들에게 ‘재일’은 굴레가 아니다. 아마도 영상에서 그 상징적인 모습은 최양일 감독의 블랙코미디 터치 가득한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1993)일 것이다. 재일동포는 여전히 차별받는 존재지만, 거기에 절망하거나 또는 정치적인 대항을 하는 의미는 엷어졌다. 흠, 그래, 나 재일동포다. 그래서? 자신을 재일동포라고 ‘커밍아웃’하는 단계를 넘어서, 재일동포 감독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보편적인 ‘마이너리티’가 보는 일본사회를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재일’이란 창을 통해, 나아가 ‘마이너리티’라는 창을 통해 일본사회에 간절히 말걸고 싶어한다. 최양일 이후의 포스트세대들은 더더욱 분화를 보이고 있고 보일 게 틀림없다. 재일동포 감독이라는 공통점을 제외한다면 이들은 정말 각개약진 중이다. <윤의 거리>(각본)에서 재일동포의 초상을 그렸던 <지구>(감독)의 김수길(43) 감독은 올 여름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낸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모은 <천의 바람이 되어-천국에의 편지>를 개봉할 예정이다. 텔레비전에서 SMAP의 연예프로를 오랜 기간 연출하고, <기묘한 이야기>의 텔레비전 시리즈, <학교괴담>의 비디오특별판 연출을 담당했던 리토시오(40)도 자신의 첫 장편 데뷔작을 찍고 있는 중이다. 원작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 할 만한 <아버지의 백드롭>으로 악역 프로레슬러인 아버지와 초등학교 아들의 이야기다. 그 최전선에 서 있는 리상일 감독과 구수연 감독을 만났다. 리상일(30) 감독의 이름은 우리에게 그리 낯설지 않다. 그의 중편 <청>과 첫 장편 데뷔작 <보더라인>은 모두 부산국제영화제에 초대됐다. 조선학교에 다니는 재일동포 고교생들을 그린 <청>은 2000년 일본 피아영화제에서 그랑프리 등 4개상을 석권했고 부산을 비롯해 로테르담, 뉴욕영화제 등에도 초대됐다. 영화평론가 사토 다다오는 지난해 일본에서 개봉한 <보더라인>을 ‘올해의 베스트 10’ 가운데 하나로 꼽기도 했다. 오는 7월10일 일본에선 그의 신작 〈69>이 개봉한다. 이를테면 독립영화 형태였던 이전 작품과 달리 이번 작품은 면면이 화려하기 그지없는 ‘메이저영화’다. 도에이가 배급하는 이 작품의 두 주연으로 요즘 일본에서 가장 인기있고 주목받는 젊은 스타 츠마부키 사토시(<워터보이즈>)와 안도 마사노부(<키즈리턴> <사토라레>)를 앞세웠고, 무엇보다 원작이 1987년 출간된 무라카미 류의 자전적인 동명의 베스트셀러라는 점에서 벌써부터 화제가 되고 있다. 니가타현에서 재일동포 3세로 태어난 그는 고등학교까지 10년을 요코하마의 조선학교에 다니던 시절, “어른스런 소년이었던 편”이었다. “당시 남자친구들에게 화제는 파친코 아니면 담배였다. 둘 다 관심이 없었으니 쉬는 시간에도 혼자 소설만 읽고 있었다.” 〈69>에서 남자 고등학생들의 시끌벅적한 모습엔 그 시절, 리 감독이 곁눈질하던 친구들의 모습이 묻어 있다. 대학 졸업을 앞뒀던 청년은 무조건 시네콰논의 이봉우 사장을 찾아갔다. “영화를 찍고 싶습니다.” 이 사장의 소개로 현장경험을 쌓던 그는 역시 이 사장의 권유대로 일본영화학교에 진학한다. 3년의 수업을 마치고 만든 졸업작품이 바로 <청>이었다. <당시> <청>의 제목은 일본어로도 ‘아오이’가 아니라 ‘청’이다. 일본에서 재일동포를 경멸하며 얘기할 때 “바보나 청이나 (똑같다)”라는 말이 있다. “일본어 속담 중에 ‘냄새 나는 곳에 뚜껑을 덮는다’라는 말이 있다. 악취가 나는데 뚜껑을 덮으면 덮을수록 냄새는 더 지독해지지 않는가. 조금이라도 뚜껑을 열어 악취가 바람에 날아가게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리 감독에겐 ‘청’이란 비분강개해야 할 차별의 상징어가 아니다. 그냥 그렇게 불리는 걸, 거꾸로 스스로 이름 붙이는 것이다. 대성은 조선학교의 야구부원이다. 누나가 결혼상대라며 일본인 남자를 데려오자 부모는 불같이 화를 내며, 어릴 때부터 친했던 여자동급생은 일본 학생과 교제한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이지메당한다. 리 감독은 모교로부터 촬영협조를 기대했지만 “학교를 나쁘게 그렸다”는 이유로 영화에 나오는 학교는 교실 따로, 운동장 따로, 여러 곳을 전전해야 했다. 출연진들은 대부분 일본인들이다. <청>은 일본전국고교야구선수권 대회에 출전하는 과정을 통해 ‘재일 조선인’으로서의 자기 존재를 찾는 청춘의 이야기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고3 학생이 청년으로, 성인으로 자기를 발견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평소엔 별로 재일동포라는 인식을 하지 못한다. 일단 생김새부터 별 차이가 없으니…. 아마 느낀다면, 지금처럼 이런 인터뷰를 하는 때가 아닐까.” 그는 재일동포들에게 ‘정체성’을 묻는 것 자체를 거부하는 편이다. “정체성이란 점점 사라져가는 단어 아닌가. 정체성은 인종이나 국적에 따라 구별되는 게 아니다. 자기가 무얼 하고 싶은지, 어디에 가고 싶은지에 따라 이야기하는 것 아닐까.” 경계에 서서 응시하다 <보더라인> <보더라인>에서 리 감독은 일본사회의 경계(보더라인)에 서 있는 사람들을 엇갈리며 그려낸다. 아버지를 살해한 고교생과 그가 만나는 택시 운전사, 딸을 집에 두고 가출한 중년의 야쿠자와 딸의 입원비를 위해 수금비를 들고 달아난 아버지, 이지메당하는 어린아이와 남편의 해고를 눈앞에 둔 주부, 아버지가 실종된 이후 자포자기해 원조교제를 하다가 퇴학당한 여자 중학생의 이야기가 서로 스쳐 지나간다. 〈69>까지 세 작품 모두 분위기가 다르지만, 리 감독 작품의 인물들은 “큰 틀의 밖에 서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는 자신과 같은 마이너리티 영화가 갖는 가장 큰 미덕을 “객관성”이라고 한마디로 얘기했다. “조선학교에 다니면서, 일본에 살면서도 일본과 전혀 다른 공간에서 컸기 때문에 일본이 어떤 나라인지 보기에 쉬운 포지션이다. 메인스트림에 속하기보다는 거기에서 떨어져나와 어딘가에서 응시하는 게 나의 영화다.” 〈69> 또한 그에겐 단지 60년대를 그리는 복고풍의 청춘영화가 아니라 2004년 일본사회에 대해 말을 거는 과정이다. 리 감독은 “지금 젊은이들에겐 정열, 자신의 가치관에 대한 신념 같은 게 존재하지 않는다. 적어도 그 시기는 다양한, 각자의 가치관이 있던 시대였다”며 “그걸 지금의 일본 젊은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전공투 등을 비롯한 학생운동이 정말 무데뽀처럼 보이지만 “그렇게 대항하는 에너지가 있었기에 저항받는 그 대상이 잘못됐다는 것을 결국 입증할 수 있었던” 시대라는 것이다. “그 시절에는 ‘절대적’이란 말이 있었다. 절대로 아버지가 옳고, 절대적으로 선생님이 옳고. 권위주의가 좋다는 것이 아니라 아래 세대에게 전할 룰이 있었다는 얘기다. 룰이라는 게 있어야 젊은 세대는 존경하기도 하고 거꾸로 그걸 부수거나 부정하기도 하며 새로운 것을 만들어간다. 그에 비해 지금은 이상하게 평등하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아마 그 최소단위일 텐데, 그들에게 ‘대립’도 없다. 그저 커뮤니케이션이 되지 않는 거다.” 이제까지 자신이 각본을 쓰고, 스탭과 배우들을 끌어모았던 전작들과 달리 〈69>은 프로듀서의 제의에서 시작됐다. 아직도 현장에서 10년 넘게 경험을 쌓아 40살이 다 되어 데뷔하는 감독이 수두룩하고 작품 하나 내놓는 데 몇년씩 걸리는 일본에서 그는 예외적 존재로 보인다. 〈69>이 개봉도 하기 전, 그는 여름 크랭크인을 예정으로 새로운 영화 시나리오 작업에 매달리고 있다. 이번엔 “20대처럼 여러 가능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길이 확실히 정해지지 않은 중도한파 같은 30살 전후, 내 또래의 인물의 이야기”라고 했다. 분위기는 〈69>의 밝은 분위기에서 <보더라인>쪽으로 다시 돌아갈 것 같다고. 개인적으로 그는 하드보일드나 필름누아르를 좋아한다. <쎄븐> 이래 가장 충격을 받은 영화로 <살인의 추억>을 꼽았다. 그에게 일본은 참으로 이상한 나라다.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갖는 게 아니라 텔레비전에 비치는 영상만을 보고 그에 따를 뿐이다. 지난번 이라크에서 일본인 납치사건에 대해 ‘자기책임론’ 등의 반응이 그 단적인 예라며 “상상력이 부족한 나라”라고 웃는다. 북한에 대해 비난을 퍼붓던 시기 총련계 여학생들을 이지메하는 것도 결국 마찬가지다. 하지만, 영화감독으로서 그에겐 “이 나라가 모자란 게 많은 게 희망”이며 영화로 그릴 가치가 있다. “편의점에 가면 모두 갖춰져 있는 듯 보이지만” 희망이란 건 자기가 찾지 않으면 안 되듯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것이기에. 태어나고 자란 일본사회에 대해 그는 ‘애증’을 감추지 않았다. 〈69>는 어떤 영화 일본 젊은이들에게 정열과 신념을 1969년 파리를 비롯한 전세계에 혁명의 기운이 넘실거리던 그해, 일본에선 도쿄대학 학생들의 야스다 강당 봉쇄가 경찰에 의해 강제해제되며 전공투가 중심이 되었던 전투적인 학생운동이 상징적인 막을 내렸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나가사키 사세보엔 68년 미국 해군의 원자력함 엔터프라이즈호가 입항해 격렬한 충돌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뿐인가. 그 시기 젊은이들에겐 ‘여자-패션-요리’가 주요화제였고, 야시꾸리한 프로그램 〈11PM>이 인기를 누리며 주간지 <헤이본 판치>는 바이블이었다. 〈69>에서 고교생들은 가치관이 혼재하던 그 시대를 좌충우돌 질주한다. 겐(쓰마부키 도시오)은 언제나 교실청소는 내팽겨친 채 친구들을 모아놓고 여자 얘기로 허풍을 떠는 고3 악동 학생. 어느 날 바지를 입고 매스게임을 연습하던 같은 고등학교 여학생들을 보고, 결심한다. “그렇다! 여자의 탄력있는 몸은 바닷가를 달리기 위해 있는 법. 저들을 해방시켜주자!” 록음악과 영화를 상영하는 축제를 계획하고 내친 김에 한눈에 반한 여학생 ‘레이디 제인’을 주연으로 영화를 찍으려던 겐. 촬영카메라를 빌리러 간 당시 학생운동 본부에서 장난처럼 시작된 일은, 급기야 학교 옥상을 바리케이드로 봉쇄하는 작전에까지 치닫는다. 야스다 강당 봉쇄사건의 기억이 지워지지 않았던 69년 여름, 학생들의 장난은 온 매스컴을 타게 된다. 원작의 내용을 충실히 옮긴 편이지만, 영상이 갖는 힘은 이 밝은 분위기의 청춘영화를 어느 순간 가슴 뭉클하게 만들어버린다. “상상력에 권력을!”이라고 쓰인 플래카드 사이로, 밤에 잠입한 학교 건물에 폭력적인 교사들을 고발하는 내용을 장난처럼 페인트로 휘갈길 때, 시대의 커다란 목소리에 파묻혀버릴 수도 있었던 개인들의 모습이 또렷이 떠오른다. 이처럼 개인과 시대의 엇갈림이야말로 영화가 바치는 1969년 당시에 대한 헌사다. 어찌보면 아무 생각없이 사는 것 같은 청춘들과 혼란스러운 가치관의 시대처럼 보이던 당시상황이 빚어내는 충돌은 시대와 개인을 모두 한눈에 들어오게 한다. 그래서 명랑한 분위기의 이 영화는 끊임없이 웃음이 터져나오는 상황으로 이어지지만, 그 유머엔 품격이 있다. 크림(Cream)의 노래 등 영화 전편에 흐르는 록음악과 오프닝 타이틀의 그래픽도 매력적이다.

[팝콘&콜라] “나도 게이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남자와 여자가 꿈꾸는 관계의 차이를 그린 소설 <체리브라썸>(이청해 지음)의 여자 주인공 동희는 오랫만에 만난 초등학교 동창 도현에게 게이 친구를 소개시켜달라고 말한다. 결혼을 앞둔 이성애자 여자가 동성애자 남자를 말하는 게이를 친구로 사귀고 싶다는 말에 도현은 아연해 한다. “쌔고 쌘” 여자친구를 마다하고 “칙칙하게 게이를 찾는” 이유에 대해 동희는 말한다. “동성의 친구도 중요하지만 이성의 친구가 반드시 필요해. 만약 부부(애인) 간의 불화를 의논한다고 쳐봐. 동성의 친구는 이해에 한계가 있어. 상대방의 입장을 잘 모른다구. 자기도 같은 성이니까.” 게이 친구. 동성 친구도 애인도 아닌 새로운 친구 유형에 대한 관심이 이성애자 여성들 사이에서 점차 늘어나고 있다. 동희 뿐 아니라 많은 젊은 여성들에게 영화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에서 주인공 여자의 막무가내 결혼작전을 지도편달하고 결국 혼자남은 여자를 다독여주는 게이 친구는 “나도 한명쯤 사귀었으면”하는 친구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매력적인 게이 친구가 등장한 지는 제법 됐다. 젊은 여성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케이블 텔레비전 드라마 <섹스 앤 시티>에서 순한 게이친구 스탠포드는 주인공 캐리가 연애에 실패하고 침울해 할 때마다 파티에 함께 데려가 기분전환을 도와주는 선의를 발휘한다. 최근 방영을 시작한 케이블 드라마 <윌 앤 그레이스>에서 한 지붕에 사는 동성애자 남성 윌과 이성애자 여성 그레이스는, 동거를 하면서도 성적인 불편함이나 긴장을 느낄 필요가 없는 남자친구 관계에 대한 여성들의 호기심과 선망에 모락모락 불을 지피고 있다. 괜찮은 게이 친구의 등장은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도 낯설지 않다. 몇달 전 종영한 드라마 <완전한 사랑>이 젊은 여성의 눈길을 잡은 사연은 죽어가는 아내에 대한 남편의 절절한 사모곡이 아니라 무모한 짝사랑을 하는 지나에게 따뜻하면서도 어른스러운 조언자 역할을 하는 게이 친구의 존재였다. 방영 당시 이 드라마의 게시판에는 “나도 저런 남자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찬사와 부러움의 글들이 자주 올라왔다. 물론 미디어에서 그려지는 게이 친구의 모습과 이들에 대한 여성들의 호감이 판타지라는 비판도 있다. 여자라고 모두 여성의식이 높거나 섬세함을 지니고 있지 않듯이 창조적인 직업에 경제적 여유를 가지고 있으며 여자보다 더 여자같은 감성과 깊은 사려를 품고 있는 게이도 극히 일부이거나 미디어에서 조작한 이미지라는 지적이다. 게이 커뮤니티에서는 동성애에 대한 이해없이 게이 판타지만으로 게이 남성들을 쫓아다니는 여성들을 부정적으로 일컫는 ‘페그 헤그(fag-hag)’라는 속어가 쓰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젊은 이성애자 여성들에게 늘어나고 있는 게이 친구를 단지 멋이나 유행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는 이유들이 있다. 게이 친구를 가진 여성들은 “성적 긴장없이 남성의 시선으로 나에게 조언을 해줄 수 있으면서도, 보통의 남자들과는 나누기 힘든 이야기들을 편하게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동성애 심리학>을 쓴 심리학자 윤가현 교수(전남대 심리학)는 “남성과 여성이라는 전통적 성역할이 허물어지고 있는 시대를 반영하는 새로운 친구 유형”이며 “이성애자 여성들이 남성보다 게이 친구에 더 많은 호감을 가지고 있는 현상은 변하는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남성들의 의식이나 관습에 대한 거부감의 한 징후로도 읽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설사 판타지라고 해도 맘좋은 게이 친구 한명쯤 곁에 있었으면 하는 여성들의 욕망이 허영심이나 겉멋만은 아닌 시대가 오고 있다.

공포와 에로티시즘 사이, 해머 호러의 진수, <해머 호러 컬렉션>

<해머 호러 컬렉션> Hammer Horror Collection 1957∼70년 감독 테렌스 피셔, 제임스 버나드 상영시간 540분(6 디스크) 화면포맷 1.85:1, 2.35:1 아나모픽 음성포맷 DD 2.0 영어 자막 워너홈비디오(미국) 출시사 예고편 외 1935년 영국에서 설립된 해머스튜디오는 영화 역사상 가장 흥미로운 영화제작사 중 하나이다. 1980년대 재정난으로 텔레비전 시리즈를 제작하는 처지로 강등되기 전까지 해머스튜디오의 작품들은 오직 공포, SF, 범죄, 모험 등의 B급 장르영화에 충실해왔으며, 그 장르만의 고집을 “해머 스타일”로 불릴 수 있는 독특한 영화적 스타일과 저예산의 제작 방식으로 풀어냄으로써 세월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많은 컬트적인 추종을 거느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피터 쿠싱과 크리스토퍼 리라는 걸출한 호러 배우와의 지속적인 공동작업으로 이루어낸 해머 특유의 고딕 공포영화의 아우라는 1930년대 유니버설 공포영화를 뛰어넘는 또 다른 호러 전통의 탄생이라 할 만큼 독특한 문화사적, 영화사적 위치를 점유하고 있기도 하다. 50∼60년대 서구사회 변혁의 메타포가 녹아 있는 해머의 드라큘라와 프랑켄슈타인은 고전적인 텍스트가 공포영화 장르의 관습과 사회변혁의 맥락에서 어떻게 발현되고 관계맺으며 재해석될 수 있는지에 대해 많은 해답을 우리에게 제시해주고 있다. 현재 권리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해머 작품 중에서 워너브러더스는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 중에서 비교적 양질의 해머 작품 10여편에 대한 권리를 확보하고 있는데, 이번에 출시된 해머 컬렉션은 이중에서도 완성도 높은 작품만을 엄선해 묶은 것이다. <프랑켄슈타인의 저주>(The Curse of Frankenstein), <미이라>(The Mummy), <드라큘라>(Horror of Dracula)(이중 <프랑켄슈타인의 저주>는 국내 출시되어 있다)는 기존에 출시된 개별 타이틀을 묶은 것으로 모두 1950년대 말의 중기 해머스튜디오를 대표하는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은 동명의 1930년대 유니버설 공포영화의 리메이크로 기존 공포영화의 스토리라인과 양식이 해머스튜디오 특유의 스타일로 형성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관 속에서 나온 드라큘라>(Dracula Has Risen from the Grave), <프랑켄슈타인은 파괴되어야 한다>(Frankenstein Must Be Destroyed) <드라큘라의 피>(Taste the Blood of Dracula) 등 세 작품은 이번에 새로 출시된 작품들로서, 1960년대 말 해머 공포영화 최전성기의 실력을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특히 <관 속에서 나온 드라큘라>와 <드라큘라의 피>는 우리나라 올드팬의 뇌리 속에도 선명하게 남아 있는 작품으로, 해머 특유의 공포감과 에로티시즘 사이의 가늘고 위험한 경계선에 대한 탐미적 고찰이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이번 해머 컬렉션은 최상의 화질로 트랜스퍼되었을 뿐 아니라 기존 낱장 버전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출시되어 해머 마니아뿐 아니라 누구라도 해머 전설과 명성과 실체를 확인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특히 해머 스튜디오의 전성기였던 1950년대와 60년대 두 시기로 구분하여 작품을 비교 감상해 보면 좋을 듯싶다. 이교동

30년 전 충무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2]

70년대 10년차 조감독 K씨의 하루 과거여행 대신여관에서 아침 잠을 깨다 K는 요즘 술을 먹다 말고 종종 정신을 잃는다. 간밤에도 동료 P군의 등에 업혀 이곳까지 왔던 것 같다. 보나마나 충무로(주1) 대신여관 202호일 것이다. 벌써 3일째 외박이다. 스카라극장 뒤편 대폿집에서 삿대질한 것까진 기억이 난다. 그뿐이다. 누구랑 언성 높이며 싸웠는지는 도통 모르겠다. “내가 뭘 어쨌다고 이러시는 겁니까?” P가 잠꼬대를 한다. 만사 무덤덤한 P인데, 꿈에서만큼은 그도 성깔을 돋우나 보다. ‘상대가 혹시 나인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K는 무거운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 방의 불을 켠다. P는 얼굴만 내놓은 채 때가 꼬질꼬질한 이불을 몸에 두르고 있다. 고치를 만들고 있는 누에 같기도 해서 K는 웃는다. 괘종시계가 곧 4시를 가리키기 직전이다. 거울을 보니 웃음이 가신다. 땀과 먼지로 번지르르, 누리끼끼한 머리. 까치집이 하나가 아니라 둘이다. 누가 보기라도 하듯 K는 머리 속을 헤집는다. 갑자기 두통이 밀려온다. 통금(주2)해제를 알리는 사이렌이 앵앵거린다. 전 국민의 기상소리이기도 한 사이렌에 K의 뇌수는 엇박 장단으로 요란하게 출렁인다. “오늘은 로케가 어디여?” 어둠 속에서 누군가 K에게 아는 척한다. 공동세면장에서 푸석한 얼굴에 물을 적시다 말고 K는 고개를 든다. 가만보니 입담 좋기로 소문난 S다. 얼마 전에 조감독이 됐는데 그뒤로는 동급이라고 반말이다. ‘확 세숫물을 이 놈 면상에 끼얹어버려.’ 빈정대는 놈을 혼내주고 싶지만 시비 걸어봤자 자신에게 좋을 일 아니라고 K는 마음을 다잡는다. 충무로밥 먹은 지 10년차 조감독에게 돌아올 것이라곤 ‘못난 놈’이라는 수근거림밖에는 없을 테니. “이제는 장가들어야제.” 편지에 여염집 처자의 흑백 사진을 매번 동봉하시는 어머니 얼굴이 불현듯 떠올라 K는 수건으로 얼굴을 빡빡 문지른다. 워커(주3)로 갈아신고 여관을 빠져나오니 벌써 새벽 4시30분. 쓰린 속을 멀건 국물로 채우려고 제일옥부터 찾는다. 몇년째 내리 충무로가 불황이어선지 한눈에도 빈자리가 더 많다. 앉아 있는 이들은 얼굴을 잘 모르는 뜨내기들 투성이. 언제나 파이프 물고 중절모 쓰고 백구두 신어 눈길을 끄는 단역배우(주4)만이 아는 얼굴이다. 이 모든 것이 TV(주5) 탓이다. ‘벗기기, 눈물짜기, 베끼기 아니면 할 줄 아는 게 무어냐’고 힐난하지 않나. 충무로는 저질영화의 온상이라는 달갑지 않은 최근의 세평이지만 K는 신경쓰지 않으려 한다. 다 한때 충무로에 몸담다가 TV로 옮겨간 철새들의 험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그는 믿고 있다. # 충무로통신 청맥다방에 집결 청맥다방(주6)만큼은 그래도 북적인다. 일찌감치 아침식사를 해치운 스탭들이 삼삼오오 패를 지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XX이가 통 안 보이네.” “이 사람아. 그것도 모르나. 지난번에 잽혀서 군대 갔잖아.” 군입대 기피(주7)하다 끝내 징집된 Y 소식이다. 충무로 참새들의 방아찧기는 쉴새없이 이어진다. 주먹 좋기로 장안에 소문난 액션스타 OOO이 촬영을 펑크낸 뒤 적반하장격으로 만취한 상태에서 새벽에 감독의 집에 찾아가 “이 바닥에 발을 못 붙이게 하겠다”며 폭언을 퍼붓고 소동을 벌였다는 이야기가 그 다음이다. 어제는 청와대 앞에서 도둑촬영(주8)을 하다 경찰의 제지에 공보실에서 대한뉴스 찍으러 나왔다고 거짓말을 해 위기를 모면했다는 이야기가 그 다음. 육감적인 몸매로 유명한 OOO가 이번 영화에서 완전히 벗었네, 안 벗었네 하는 논란까지 이를라치면 심지어 멱살잡이라도 할 듯 하다. 이곳 청맥다방 구석에선 손 하나 까딱 안 해도 어젯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할 수 있다. 집합시간이 다 된 듯해서 눈을 떴더니 차가운 커피가 놓여져 있다. 시키지 않아도 언제나 놓이는 커피. 숭늉 마시듯 텁텁한 목구멍으로 후루룩 넘기고 나오는데 레지가 초면이다. 얼굴이 곱상한게 배우지망생인 듯하다. 묻지 않아도 알겠다. 그녀 또한 보따리 짐을 싸들고 혈혈단신 상경(주9)해 물어물어 이곳까지 흘러들어왔을 거다. “차값은 달아둬” 주인 아지메가 ‘밀린 외상값은 언제 줄 거냐’고 닦달할 찰나, K는 날쌘 맹수처럼 다방을 빠져나온다. 뒤통수가 따갑다. 주1 l 충무로 일제시대 명동과 함께 일본인 상권 지역으로 번성했지만,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폭격으로 완전히 폐허가 됐다. 1950년대 말 변순제라는 제작자가 이곳에 서라벌영화사를 차린 것이 영화사로는 처음이라 한다. 명동에 머물렀던 유명 영화제작자들도 상가가 형성되어 지가가 오르자, 1960년대부터 이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사진 왼쪽에 있는 명동칼국수는 김지미의 단골집. 여배우로는 드물게 김지미는 충무로 나들이를 자주 했는데 이유는 이 칼국수를 먹기 위해서라고. 주2 ㅣ 통행금지1960, 70년대 충무로에는 60개에 달하는 여관이 있었다. 이들 여관의 성업이 가능했던 건 다름 아닌 통행금지 덕. 1년364일(성탄 전야는 예외였다) 자정부터 새벽 4시까지는 출타금지였다. 작가와 감독이 시나리오 각색을 위해 동신여관을, 스탭과 엑스트라 등은 숙소로 대신여관, 태창여관 등을 주로 이용했다 한다. 주3 ㅣ 워커 현장 스탭들의 차림은 주로 군용물자로 해결했다. 신발은 웬만해선 닳지 않는 워커. 위 아래는 1970년대까지도 변색시킨 군복을 입고 다녔다. 제대한 이들이 팔아넘긴 군복을 사들여 검은색으로 물들인 다음 다시 시장에 내다파는 이들이 청계천변에 따로 있을 정도였다. 주4 ㅣ 단역배우 단역배우로 김칠성씨는 서대문형무소 뒤 하꼬방에 살았다. 말끔한 멋쟁이 양복 차림의 그는 매일 해뜨기 전에 출근했다가 통금시간이 다 되어서야 퇴근하는 걸로 유명했는데, 누군가 이유를 물었더니 “사람들한테 꿈을 주는 직업인데 후줄근하게 사는 것을 보일 수 없어서 그랬다”고 답했다 한다. 주5 ㅣ TV1970년대에 영화는 텔레비전을 추격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1968년 텔레비전 수상기가 불과 12만대 정도에 머물렀던 것이 1973년에는 무려 130만대로 껑충 뛰었다. <영화잡지> 등도 1970년대 들어 전과 달리 브라운관이 배출한 스타들에 주목하고, 연속극 제작 현장 탐방기사를 적극적으로 실었다. 주6 ㅣ 다방스타다방은 액션배우들이, 청맥다방은 스탭들이, 수도다방은 지방흥행사들이, 벤허다방은 감독들이 주로 드나들었다. 이중 계산대 옆에 시나리오가 수북이 쌓여 있었던 청맥다방은 충무로 인력시장이라 불렸다. 이곳의 주인 아지메는 뛰어난 기억력의 소유자. 연락이 쉽지 않았던 그 시절 수백개의 전화번호를 외워 목구멍이 포도청인 영화인들의 길잡이 노릇을 해줬다. 사진은 1960년 충무로 스타다방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배우 전택이와 노경희. 부부인 이들은 <춘향전>(1955), <애원의 고백>(1957) 등에 함께 출연했다. 주7 ㅣ 병역기피 이순신의 시호를 따왔지만, 충무로는 대표적인 군 기피자 집합이기도 했다. 로케다 뭐다 해서 팔도 유랑을 하는 데다 거처 또한 명확지 않으니 징집 대상자라 해도 좀처럼 잡을 수가 없었을 것. 촬영하러 가다 검문소에서 제지당하면 제작부장이 나서 얼마간의 돈을 쥐어주며 눈 감아달라고 통사정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주8 ㅣ 도둑촬영 카메라 들고 튀어라! 영상위원회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도둑촬영은 빈번했다. 1960, 70년대 카메라를 드리워선 안 되는 첫번째 금기 대상이 청와대. 김수용 감독은 그 앞 은행나무 길을 몰래 찍었다가 윤정희의 팬이었던 박근혜씨가 영화를 보자고 했고, 그에 앞서 영화를 본 대통령 비서실에 의해 하룻밤 철창 신세를 진 적 있다. 주9 ㅣ 상경 1960년대 서울역에는 큼지막한 트렁크에 꿈을 담아 무작정 상경하는 소녀들을 꾸짖어 돌려보내려는 경찰까지 있었다.

‘하이 컨셉트’로 설명하는 ‘대박’영화의 비밀

"만약 어떤 사람이 스물다섯 개 혹은 그 이하의 단어로 설명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있다면 그 아이디어는 아주 괜찮은 영화로 만들어질 수 있다"(스티븐 스필버그). 일단, '좋은 영화'라는 얘기는 제쳐놓자. '돈 되는 영화'의 비결은 무엇일까? 한국 영화계는 올해 초 1천만명 이상의 '초대박'을 기록한 영화를 두 편이나 탄생시켰고, 영화계와 경제계는 나름대로 그 원인을 분석하기에 바쁘다. 한 편의 영화가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어떤 점을 갖춰야 할지 그 원인을 한 단어로 꼽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성공한 영화들의 공통 분모를 찾아보면 얼마간 해답이 보인다. 최근 출판된 '하이컨셉트-할리우드의 영화 마케팅'(아침이슬 刊)은 영화의 성공 비결을 '하이 컨셉트'라는 말로 설명하고 있다. 저자 저스틴 와이어트는 하이컨셉트를 "비용의 최소화와 수입 극대화를 통한 이윤 창출을 목표로 하는 할리우드에서 경제학과 미학 사이에서 발생하는 긴장의 결과"라고 정의한다. 쉽게 말하면 미국의 상업영화가 시장에서 경제성을 보장받기 위해 만들어낸 개념적 장치라는 것. 스티븐 스필버그의 얘기처럼 "직설적으로 쉽게 전달돼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러티브"라는 것은 하이 컨셉트의 내적 속성이다. 외적 속성은 "프로젝트 추진 과정에서는 투자를, 마케팅 과정에서는 대중을 끌어들이는 선전으로 활용"된다는 것. 저자는 블록버스터 영화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받는 <조스>의 광고를 예로 하이컨셉트 영화를 설명한다. 당시 영화의 마케팅 담당자들은 인쇄 광고를 통해 영화를 하나의 이미지로 포장하려 했다. 포스터는 상대적으로 큰 상어, 불길해 보이는 이, 태연하게 수영하고 있는 사람 등의 모습을 보여주며 위협적인 상어의 이미지를 극대화시켰다. 비슷한 이미지는 텔레비전 광고나 원작 소설의 표지에서도 사용됐다. 강한 캐릭터와 뚜렷이 대조되는 선과 악의 구조, 압도적이고 강렬한 이미지 등 하이 컨셉트의 특징이 잘 구현됐기 때문에 <조스>는 단일 이미지와 단일 마케팅 접근이 가능하게 됐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책은 이처럼 외적인 배급방식과 전략, 파생상품의 기획같은 영화 마케팅 전략이 어떻게 내적인 내러티브와 스타일에 영향을 미쳤는지 보여준다. 한편으로는 하이 컨셉트 영화가 할리우드의 고질병인 아이디어 고갈을 낳았으며, 영화가 상업과 예술사이에서 상업 쪽으로 좀 더 기울어지게 된 데에는 하이 컨셉트 영화가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평론가들의 비판에도 귀를 기울이고 있다. 제일기획에서 광고기획전문가로 일했고 영화 인터넷 마케팅 전문회사인 '헬로우 타임'을 설립해 운영중인 조윤장씨가 외대 통역대학원에 재학중인 홍경우씨와 함께 번역했다. 328쪽. 1만5천원.(서울=연합뉴스)

오락계의 희귀종

KBS1 <가족오락관>은 멸종동물을 보는 것 같은 신기함을 준다. 이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아직도’ 끝나지 않았음을 새삼 깨닫는다. 1984년 4월에 첫 방송을 시작해 20년 동안 장수하고 있는 <가족오락관>이 6월19일로 방송 1000회를 맞는다. 놀라운 것은 이 프로그램이 토요일 오후 6시 ‘황금시간대’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프로그램의 포맷이 20년 전의 원형질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근근이 연명하는 것도 아니다. 아직도 10% 안팎의 시청률을 자랑한다. 같은 시간대의 오락 프로그램에 전혀 밀리지 않는 수치다. 장수 중에서도 건강 장수인 셈이다. 무릇 모든 장수에는 ‘비결’이 있게 마련이다. <가족오락관>의 장수 비결은 사람의 그것과 비슷하다. 우선 장수의 기본원칙인 단순함을 잃지 않는다. O, X 게임, 스피드 퀴즈, 앙케트 맞히기…. 조금만 ‘참고’ 보면 단순한 즐거움에 빠질 수도 있다. 조금만 더 ‘참고’ 보면 그 단순함이 멈춰서 있지 않고 서서히 진화해왔음도 눈치챌 수 있다. 스피드 퀴즈는 단순한 문제 맞히기에서 문제 맞히면서 돈세기로 진화했다. 센 돈까지 정확히 기억해야 맞힌 점수를 주는 것이다. 젊은 층을 타깃으로 한 오락 프로그램들이 외국 프로그램 베끼기 시비에 휘말릴 때, 이 프로그램은 나름의 양식을 진화시켜온 것이다. 그 진화의 동력은 주요 시청층인 주부들의 날로 높아져가는 ‘눈높이’였을 게다. ‘오버’해서 말하면, 장수 프로그램답게 인생철학도 담고 있다. 여성 3명으로 구성된 룰루랄라 시스터즈가 나와 엉뚱한 노래에 이상한 가사를 붙여놓고, 그 가사 중의 일부가 어떤 노래인지에서 따왔는지를 맞히는 ‘룰루랄라 노래방’이란 게임이 있다. 이 게임에서 어떤 노래인지를 맞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노래를 맞힌 팀이 먼저 노래할 기회를 갖지만 음정, 박자, 가사 중 하나만 틀려도 땡! 기회는 상대팀으로 넘어간다. 그 노래를 상대팀이 ‘완창’하면 승리. 이처럼 ‘룰루랄라 노래방’에는 ‘인생역전’의 진리가 담겨 있다. 또 다른 코너인 ‘퀴즈 5인5답’에는 ‘인생무상’의 교훈이 녹아 있다. 예컨대 사회자가 동명이인 연예인을 대라는 문제를 낸다. 5명이 잇따라 정답을 맞혀야 승리할 수 있다. 4명이 정답을 맞히더라도 마지막 1명이 틀리면 꽝! 역시 기회는 상대팀에 돌아간다. 색다른 룰은 상대팀은 먼저 팀이 말한 정답을 그대로 반복해도 된다는 것. 이런 식으로 게임을 하다보면 결국 두팀이 서로 ‘공조’하는 효과가 생긴다. ‘커닝’만 잘하면, 정답을 더 적게 생각해내고도 이길 수 있다. 잘난 놈이 꼭 승리하지는 않는다는 인생 교훈, 이라면 오버일까? 이 프로그램에서 진짜 ‘오버’하는 사람들은 방청객이다. 아니 그들은 박수치는 방청객이 아니라 참여하는 응원단이다. 부녀회, 동창회 등에서 나온 중년 여성들은 도통 가만히 앉아 있지를 않는다. 박장대소를 하고, 정답도 슬쩍 알려준다. 게임에 참여해 노래도 부른다. 완전히 주객이 전도돼, 방청객이 출연진을 초청해서 동네잔치를 벌이는 분위기다. 동네잔치를 벌이려는 부녀회가 너무 많아서 방청을 하려면 6개월씩 기다려야 한다. 이제는 ‘브라운관’에서 보기 힘든 그때 그 얼굴들을 만나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 얼굴의 늘어난 주름살을 보면서 가끔 ‘센치멘털’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한물간 연예인만 나올 것이라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 최근에만 코요테, 베이비복스가 <가족오락관>에 떴다. 무엇보다 이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존재는 사회자 허참이다. 허참은 87년 교통사고로 입원해 단 한번 쉰 것을 빼고는 20년 동안 개근을 했다. 그동안 정소녀에서 장서희를 거쳐 이주희까지, 16명의 여성 사회자가 거쳐갔다. 터줏대감 이경규에 김용만, 박수홍 같은 ‘잘 나가는’ 연예인을 내세워 여전히 시청률 30%대를 유지하는 <일요일 일요일 밤에>와 20년 동안 같은 사회자를 고수한 <가족오락관>은 대조되는 길을 걸어온 것이다. 그 사이 <가족오락관>은 ‘주부오락관’이 됐다. 가족 모두가 보는 인기 프로그램에서 주부들이 주로 방청하고, 시청하는 마니아 프로그램으로 바뀐 것이다. 돌이켜보면, 20년 전에는 <가족오락관>의 이름이 어색하지 않았다. 그 시절에는 주말이면 엄마, 아빠, 아들, 딸이 모여 앉아 <가족오락관>을 보고는 했다. 하지만 20년이 흐르는 동안, 텔레비전 앞에 ‘바람난 가족’들은 떠나고 주부들만 남았다. 토요일 저녁, 남편은 일하느라 늦고, 자식들은 노느라 바쁘다. 그 변화는 한국사회 가족의 변화와 맞닿아 있다. <가족오락관>은 또한 한국사회의 ‘비동시성의 동시성’을 상징한다. <가족오락관>은 트렌디한 드라마, 화려한 쇼 못지않게 순박한 오락을 즐기는 사람들이 아직도 한국사회의 두터운 층을 형성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세월이 갈수록 세대 차이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하지만 <가족오락관>은 자주 잊혀지고, 때때로 무시당하는 그 감수성의 존재증명이다. 그래서 <가족오락관>은 <가요무대> <전국노래자랑>과 함께한 시대를 상징하는 지표처럼 보인다. 이 프로그램들은 가족드라마, 가족오락 프로그램이 사라진 (혹은 사라져가는) 시대에 살아남은 희귀종들이다. 비록 화려한 조명은 받지 못할지라도 굵고 짧게 살다가 숱한 인기 프로그램의 묘비명 틈새에서 <가족오락관>은 가늘고 길게 살아남았다. 그 질긴 생존은 한 시대가 완전히 저물지 않았음을 말하고 있다. <전원일기>의 종결이 한 계층 역사적 퇴장, 한 시대의 마감을 상징했던 것처럼. 신윤동욱/ <한겨레21> 기자 syuk@hani.co.kr

[비평 릴레이] <블러디 선데이> 정성일 영화평론가

“나는 오늘 뉴스를 믿을 수 없었어, 난 눈을 감을 수 없었고, 그저 지켜 볼 수밖에 없었어, 얼마나 오래, 얼마나 오래 우리는 이 노래를 불러야 하는 걸까, 얼마나 오래 오늘밤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을 거야, 아이들 발아래 깨어진 병들, 막다른 골목을 뒤덮은 시체들, 그러나 나는 전쟁의 부름에 망설이지 않을 거야. 내 등을 기대고, 벽에 내 등을 기대고, 일요일, 피의 일요일” 록 그룹 U2의 세 번째 앨범 <전쟁>의 첫 번째 트랙 ‘일요일, 피의 일요일’은 그렇게 시작한다. 그 피의 일요일은 1972년 1월 31일 북 아일랜드 데리시에서 벌어졌다. 영국 정부의 불법 억류에 반대하고 시민권을 주장하기 위하여 데리시는 평화 행진을 하겠다고 선언한다. 같은 시간에 영국정부는 모든 집회와 시위는 불법이며, 따라서 원천봉쇄 하겠다고 경고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풍경. 데리 시민권협의회 대표이자 영국의회 하원의원인 아이반 쿠퍼는 비폭력시위만이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고 되찾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시민들에게 참여를 하소연한다. 같은 시간에 영국 공수부대가 도착한다. 결국 피는 흘려야만 한다. 역사는 없고 사건만 있다, 북아일랜드 데리는 광주가 아닌데 폴 그린그래스가 연출한 <블러디 선데이>는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그날의 24시간을 따라간다. 처음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들고 찍었으며, 심하게 흔들리는 카메라는 그날 그 장소에 온 것 같은 숨막히는 현장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린그래스의 관심은 말 그대로 그날 그 장소에 가는 것이다. 영화는 시위를 주도한 아이반 쿠퍼와 군지도부 사무실, 그날 시위에 참여했다가 (죽은 다음 그의 손에 총이 들려지면서) 테러범으로 조작 당한 17살 소년 제리 도너히, 그리고 공수부대 통신병 로마스 일등병 사이를 오간다. 검은 화면의 페이드를 인서트하면서 서로 다른 네 개의 입장을 시종일관 번갈아 보여준다. 영화는 그날의 데리시를 재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그날 데리시에 ‘정말’ 있었던 사람들과 죽은 이들의 유족들이 모여서 다시 한번 비극을 재현한다. 그린그래스의 목표는 명확하다. 그는 그날 그 장소를 다시 한번 재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시종일관 텔레비전 방송 ‘라이브’ 중계를 하듯이 찍혀졌다. 아무도 연기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으며, 일체의 효과음을 배제하고 대부분 동시녹음으로 현장음을 살려서 생생하게 전달하는 사운드가 오히려 화면보다 더 무시무시하다. 이 모든 것은 물론 감동적이며, 때로 탄식하게 만들고 온 몸에 밀려오는 분노로 보는 내내 몸을 뒤척이게 만든다. 그건 양심을 가진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 이의를 제기할 때 비로소 윤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에 북아일랜드의 무장독립단체 ‘아일랜드공화군’(IRA)의 입장이 없는 것은 이상하다. 영국과 북아일랜드 사이의 복잡한 정세와, 아일랜드 내의 과격파와 온건파 사이에서 데리시의 평화행진 시위의 선택과 그 결과에 대해서 이 영화는 침묵한다. 오직 그날 그 사건의 재현만으로 이 영화는 자기 할 일을 다 한다. 눈물의 역사는 없고 피에 젖은 사건만이 있다. 그래서 데리시의 참살은 400년의 구체적인 역사 안에서 영국과 아일랜드 사이의 협상 아래 여전히 반복될 수밖에 없는 비겁한 무능과 속임수와 교활한 타협의 필연적인 산물로서의 영원한 전쟁이라는 구체적인 사실로부터 이 영화는 살짝 비켜선다. 그 대신 자유와 인권을 향한 시민들의 시위와 바보 같은 군대가 정부의 명령 아래 저지른 무고한 살인을 고발한다. 그때 가해자의 구체적인 역사는 숨고, 희생자의 슬픈 명단만이 넘겨진다. 하지만 시민과 군대의 전쟁이라는 이분법은 역사를 추상적 수준으로 타락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역사의 법정으로의 소환이 지닌 오류다. 북아일랜드 데리는 광주가 아니며, 칠레의 산티에고가 아니다. 그걸 같은 수준으로 말하면 안 된다. 칼날을 내리칠 때 우리가 역사를 추상화시켜버리고 대상을 괄호 치면 결국 아무 말도 못하게 된다. 혹은 그 누구도 죄인이 아니며, 그 모두가 희생자다. 알고 보면 모두가 불쌍하다고 나는 그게 엿 같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보노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U2의 노래 ‘일요일, 피의 일요일’은 이렇게 끝난다. “사실은 거짓이 되고 텔레비전이 리얼리티가 될 때, 우리가 무뎌지는 건 맞아, 그렇지만 오늘 수백만 명이 울었어, 내일 그들이 죽는 동안 우리는 쳐 먹고 마실 거야, 진짜 전쟁은 이제 막 시작된 거야, 예수님이 이겼던 그 승리를 선언하기 위하여, 일요일, 피의 일요일”

멜로박약 장진의 <아는 여자> 만들기 -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우린 한달가량의 준비 기간과 3개월 동안의 촬영을 했다. 멜로드라마를 찍으면서 가장 신기했던 것은 만들어져 나가는 과정을 편집하며 보고 있노라면 어느 남녀가 점점… 점점… 가까워지고… 서로에 대해 알게 되고… 그것이 사랑일까 추측하게 되고… 그러다가 손을 잡고 사랑하게 되는 순간을 엿보듯이 바라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배우들에게 질투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아는 여자>와 같이 즐거운 로맨스영화 일때는 더욱 그렇다. 화면 속의 그 둘이 너무 예쁘고 유쾌해서 그런 만남을 꿈꾸다가 그 남녀를 질투하게 된다. 정신병자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보다보면 그렇게 된다. 그것은 관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스크린에서 만들어놓은 로맨스에 자신들 모두가 주인공이 되고 싶은 어느 순간들에… 관객은 스크린 속 인물들을 사랑하기도 하지만 샘을 낼 수 도 있는 것이다. 지나고 나서 생각하니 멜로드라마, 특히 우리 영화와 같은 로맨틱코미디를 할 땐 최대한 배우를 행복하고 즐겁게 만들어줘야 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그 배우가 즐겁게 카메라 앞에 서 있을 때 그 행복한 심정에서 닮고 싶은 로맨스가 만들어질 수 있음을 이제야 알겠다. 힘들고 고생스러운 촬영과 후반작업을 끝마치고 배우들에겐 칭찬보다 감사보다 사과를 먼저 하고 싶다. 정재영은 나의 질책 때문에 기가 죽은 적도 있고 내 편협한 독선 때문에 맘상처도 입었을 것이다. 이나영 역시, 내 경솔한 말이나 행동 때문에 속상해서 울기도 했고 자신에게 중요한 것들에 대한 내 가벼운 판단 때문에 실망했을 때도 많을 것이다. 지금 이 시간… 두 배우에게 사과드립니다. “재영아, 너 머리 크게 나오는 거 뻔히 알면서도 널 카메라 앞으로 자꾸 오게 한 거 내 독선이고 고집이었어. 미안해… 하지만 나중에 명절 때나 텔레비전에서 보면 그렇게 크게 안 보일 거야… 아무튼 미안하다.” “그리고 나영씨, 나영씨 의견 한번도 귀담아 듣지 않고 식사 메뉴 정한 거 미안해요… 그렇다고 내가 좋아하는 거만 시킨 건 아니었어요… 해산물 못 먹는 거 몰랐어요… 그리고 김밥 종류 나열할 때 내가 조용히 하라고 소리친 거 미안해요. 하지만 속으로 놀랐어요. 그렇게 많은 김밥 종류를 달달 외우고 있을 줄은… 얘기하다보니 나영씨는 대부분 먹는 거네… 미안해요 맘에 담아두지 말아요.” “어땠어? 재미있어? 이상한 데는 없어?” 이나영은 내게 말했다. “내가 이 작품을 하게 된 것은… 또 하는 동안엔 감독님을 믿는 것밖엔 없었다.” (그렇다고 내게 이런 식으로 반말을 했다는 것은 아니다.) 정재영도 말했었다. “난 그냥 장진 선배님 코미디가 좋아서 한다”고….처음으로 완성된 영화를 보는 자리에서 난 그 둘의 표정을 상상했다. 영화를 보고 난 뒤 그 둘은 내게 무슨 말을 할까, 과연 이 영화에 대해 어떤 아쉬움과 후회가 생겨날까? 물론 보람도 어쩌면 느낄 수 있겠지… . 그들은 내가 그려놓은 이야기에 자신들의 숨을 불어넣었다. 난 그것을 다듬고 조합했고 그들은 그 영화를 본다. 그들은 멋진 로맨스를 만들었고 유쾌한 코미디의 주인공이었다. 손 한번 안 잡는 멜로드라마에 걸쭉한 사랑을 즈려 밟고 그들은 나와 함께 가을 겨울 그 사이를 지나왔다. 그리고 이젠 그 둘이 우리의 영화를 본다. 그 둘의 가족들 친구들도 우리의 영화를 본다. 이나영은 아, 장진 코미디가 이런 거구나라고 느낄 수도 있고 정재영은 전혀 다른 멜로를 만들겠다더니 이거였구나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 나만의 고유한(?) 긴장 속에 우리의 영화 첫 시사가 끝나고 난 그 둘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장진 - 어땠어? 재미있어? 이상한 데는 없어? 이나영 - 극장이 왜 이리 추워요? 정재영 - 그러게… 에어컨 무지 세게 나오네…. 장진 - 어 … 그래?… 근데 영화는 뭐 이상한 거 없었어? 이나영 - 마지막 장면요…. 장진 - 어… 그래 마지막 장면… 뭐? 이나영 - 나 바지가 너무 큰 거 같지 않아요? 정재영 - 난 내 머리가 너무 크게 나온 거 같아… 앞머리 좀 내릴걸… 하긴 짧아서 내릴 게 없구나…. 장진 ……… 이나영 정재영 장진 이 영화처럼 모두 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지상에서 가장 유명한 토크쇼가 온다

2004년 6월17일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그를 ‘2004 세계 100대 스타파워’ 순위에서 3위로 뽑았다. 앞서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지난해에 이어 그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타임 100)’에 올렸다. 두 해 연속 이 명단에 든 이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과 그뿐이었다. 1월30일 미국 전국지 〈유에스에이투데이〉와 〈시엔엔〉 여론조사에서 그는 힐러리 클린턴 의원에 이어 미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여성 2위에 올랐다. 지난해 7월21일 미국 대중음악 전문 케이블방송 〈브이에이치1〉이 발표한 ‘가장 위대한 대중문화 아이콘 200선’에선 1위를 차지했다. 방송사 쪽은 “이 순위는 정치인·학자·스포츠스타·영화인·가수 등 각계 캐릭터 가운데 뽑힌 스타 중의 스타를 뜻한다”고 밝혔다. 그의 재산은 무려 10억달러로 추산된다. 그는 사생아였다. 미시시피강 근처의 가난한 흑인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홉살 때는 사촌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사춘기 시절 삼촌에게 성희롱을 겪었다. 14살 땐 조산아를 낳았다. 아버지는 그의 구원 호소를 차갑게 외면했고, 이복동생은 그가 유명해진 뒤 그가 미혼모였음을 세상에 폭로했다. <오프라 윈프리 쇼>7월 2일부터 온스타일 채널서 “진솔한 내면 토로”‥“심리적 상투성”평가 갈려 1986년 그는 미국 시카고의 텔레비전 아침프로 〈에이엠 시카고〉의 진행자가 된다. 〈에이엠 시카고〉는 방송 한달 만에 같은 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했고, 1년도 안 돼 그의 이름을 따 제목을 바꿨다. 지금껏 18년 동안 미국 낮 시간대 토크쇼 시청률 1위는 줄곧 그의 독차지다. 미국 내 시청자만 2200여만명에 세계 104개국에서 1억명이 그의 쇼를 지켜본다. 그가 소개하는 책은 순식간에 수십만부가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된다. “전 흑인인데 그건 바꿀 수 없어요. 뚱뚱한 것도 아마 못 바꿀 거예요.” 〈에이엠 시카고〉 오디션에서 그가 했다는 말이다. 그의 말 그대로 그는 자신을 바꾸는 대신 자신의 내면을 있는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스타가 됐다. 95년 방송에서 중산층 마약 사용에 관한 책 이야기 도중 자신의 마약 사용 경험을 고백하기도 했다. 아픈 경험을 토대로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는 솔직함이 시청자를 사로잡는 그의 가장 큰 매력이다. 7월2일부터 그의 진솔한 토로를 국내에서도 만나 볼 수 있다. 여성 라이프스타일 채널 ‘온스타일’을 통해 매주 월·화·금 오전 11시 방송되는 〈오프라 윈프리 쇼〉다. 2003년 연말에 방송됐던 〈섹스 앤 시티〉와 〈프렌즈〉 종영 특집 토크쇼를 시작으로 한국 문화에 맞는 에피소드 78화가 먼저 전파를 탄다. 9월부터는 미국 현지에서 방송되는 에피소드를 거의 동시에 내보낼 계획이다. 그의 쇼를 두고는 “내면 깊숙이 감춰둔 속마음을 만인 앞에서 드러내 보이게 한다”(〈월스트리트 저널〉)는 찬사만 있지는 않다. 〈뉴욕타임스〉는 “백색 트레일러 쓰레기통”, “심리적 상투성을 제공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문화 차이를 넘어 그의 이야기가 한국 시청자의 마음까지 사로잡을 수 있을까 궁금하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파리] 프랑스, 공연예술계 비정규직의 손 들어줘

장-자크 아야공에 이어 2004년 3월31일부터 문화통신부 장관직을 수행하고 있는 르노 돈느듀 드 바브르는 지난 6월10일 각 영화사 사장을 포함한 텔레비전 및 시청각 부문의 고용주들에게 비정규직 공연예술계 종사자들(intermittents: 앵테르미탕)의 실업수당과 관련된 법제를 악용하는 행위를 중단할 것을 요구하는 공식적인 서신을 보냈다. 공식회견에서 드 바브르 장관은 이 서신이 파트릭 르 레이 TF1 사장, 마크 테시에 프랑스 텔레비전 사장, 독립영화 제작자 협회장들, 알렝 라발 영화 및 영상물 제작자 협회장, 피에르 졸리베 작가·감독·제작자 협의회(ARP)장, 알렝 테르지앙 영화제작자 협의회장, 장-프랑스와 르프티 프랑스 영화제작 및 수출조합장 등에게 전해질 것이며, 고용주쪽의 부정행위에 대한 단속과 통제를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서신에는 “과거에는 묵과되었던 법제적 남용행위들이 더이상 용납될 수 없으며, 이를 위해서는 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고용주쪽의 각성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한편, 서신의 발송에 앞서 열린 공식회의에서 드 바브르 장관은 지난해부터 적용된 새로운 실업수당 시스템으로 인해 수혜에서 제외된 앵테르미탕들 중 1만3천명에서 1만4700명에게 2004년 7월1일부터 새로 마련되는 특별수당을 선별적으로 지급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특별수당 역시 모든 비정규직 예술계 종사자들에게 지급되는 것은 아니어서 7월1일 이후에도 실업수당을 받지 못하는 앵테르미탕들은 계속 남아 있게 된다. 따라서 비정규 노조쪽의 반발은 쉽게 누그러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여진다. 이에 대해 드 바바르 장관은 지난해 아비뇽연극제 점거를 시작으로 올해 클레르몽 페랑 단편영화제, 칸영화제 등 연이은 문화예술 행사와 거리에서 지속적인 투쟁을 해온 비정규직 노조쪽에 “모든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는 없다”며 장기적인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번 문화통신부 장관의 과감한 조치가 최근 몇년간 프랑스에서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는 비정규직 공연예술계 종사자들의 처우문제를 둘러싼 갈등에 유효한 해답을 제시할 수 있을지는 좀더 지켜보아야겠다. 파리=차민철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