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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2003)

영화인들의 파병반대 선언 [4] - 정성일

여기 녹화 테이프가 하나 있다. 그 테이프의 녹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일부 편집된 내용으로 방영되었기 때문에 원본 테이프의 시간은 알 수 없다). 화면 비율은 DV로 찍힌 것으로 보아 두 가지 비율을 선택할 수 있었는데 그중 3 대 4의 비율을 택했다. 김선일씨 뒤에 서 있는 사람들의 수를 생각하면 1.66 대 1의 비율이 더 효과적으로 보이지만, 이 테이프는 처음부터 텔레비전 방영을 목표로 만든 비율인 것 같다. 그래서 텔레비전 방영시 레터박스 처리될 수 있는 것을 피하고 있다. 그러나 결국 이라크어가 각국어로 번역될 것을 염두에 두고 그 비율을 생각한다면 1.66 대 1이 더 효과적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이 테이프는 알자지라에 제공되었지만, 결국 이 테이프가 해외방송에 방영될 때 번역의 문제가 생기는 것은 피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등장인물은 뒤에 늘어서 있는 ‘유일신과 성전’(이라고 알려진 무장단체)의 테러리스트들과 그 앞에 앉아 있는 김선일씨가 전부이다. 배경은 장소를 알 수 없게 별다른 특징이 없는 벽을 기대고 서 있으며, 그 벽에 ‘유일신과 성전’을 나타나는 커다란 휘장이 걸려 있었다. 아마도 이것은 장소를 추정할 수 없게 만들면서, 동시에 자신들을 나타내는 효과적인 미장센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여기에 더해 좀 복잡한 문제가 있다. 알자르카위로 추정되는 복면 괴한과 그 주변의 테러리스트들이 들고 있는 총기의 종류와 발음 악센트, 인질을 앉혀놓은 의자의 색, 그리고 벽면 색과 미군 이라크 수용소 사진을 추정해서 첫 번째 미국인 인질 테이프 자체가 미국의 조작이라는 음모론이 있다. 그러나 그 문제와 이 테이프의 진위 여부를 판독하는 것은 내 능력을 훨씬 벗어나는 일이다). 카메라의 구도는 좀 특별하다. 생각하기에 인질로 잡힌 김선일씨를 잘 보여주기 위해 화면 비율 3 대 1의 지점에 놓을 것 같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래서 구도상으로 김선일씨 부분은 화면 프레임에서 상반신 바스트숏만 나오며, ‘유일신과 성전’ 인물들이 거의 니숏으로 잡힌다. 아마도 이 구도는 ‘유일신과 성전’을 나타내는 휘장을 중심에 놓고 마스터숏으로 잡은 것으로 보인다. 별다른 기교없이 찍혔으며, 우리가 볼 수 있는 테이프만으로는 녹화 카메라 기종을 알 수는 없을 것 같다. 조명을 하지 않았지만, 배경의 벽이 보여주는 반사광과 인물들의 그림자를 보건데 실내의 차단된 공간에서 키 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메인 전광등 아래서 찍힌 것으로 보인다. 전체를 원 테이크로 찍지는 않았지만 일체의 인위적인 편집을 하지 않았음을 보여주기 위해 거의 원본 테이프에 손을 대지 않았다. 몇번의 카피를 거친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화질이 거칠기는 하지만 사람의 얼굴을 확인하는 데는 별 문제가 없다. 카메라는 고정된 장소에서 고정된 앵글로 찍혔으며, 의도적으로 아무런 감정없이 찍혔다. 인물의 반응에 따라 카메라가 움직이지 않으며, 김선일씨의 모습이나 표정, 얼굴, 자세, 행동을 자세히 보여주기 위한 그 어떤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있다. 여기에는 말하자면 카메라의 개입이 없다. 그러나 개입하지 않은 카메라가 오히려 김선일씨의 대사에 집중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 테이프의 효과는 사실상 이미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운드에 있다. 김선일씨의 말은 알자르카위가 요구한 것인지, 그 자신이 한 말인지는 (내가) 알 수 없다. 다만 그 내용은 명확하며, 오해의 여지가 없다. 가장 중요한 말, 나는 살고 싶다. 그러나 그는 죽었다. 더 정확하게 그를 살리지 않았다. 김선일 테이프는 짓밟힌 휴머니즘의 유령 (영화평론가로서의) 나는 이것을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이 녹화 테이프에 대해서 사람들이 미처 생각하지 않는 점이 하나 있다. 이 테이프가 ‘이제부터 항상 현재로서 존재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만일 김선일씨가 살아났다면 이 테이프는 과거의 역사 뒤로 물러났을 것이다. 그러나 김선일씨가 죽는 순간 이 테이프는 역설적으로 불멸성을 획득했다. 왜냐하면 이제는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살려달라고 하소연했던 그를 살려낼 수 없기 때문이다. 삶을 하소연한 그 순간은 앞으로 영원히 (우리가 죽은 다음에도) 우리에게 하소연하게 될 것이다. 불가능의 역설. 그러므로 이 테이프에 담긴 내용은 항상 우리의 휴머니즘을 질문할 때 실제시간이 될 것이다. 이 말이 중요하다. 우리가 죽은 다음에도 우리는 녹화 테이프의 저 살려달라는 비명과 함께 기록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심판의 현장으로 데려갈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녹화 테이프와 함께 부끄럽게 영원히 살아남을 것이다. 이 테이프는 미안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이름으로 상징되는 지금의 정부)보다 오래 살아남을 것이다. 그리고 그 입으로 휴머니즘을 이야기할 때마다 돌아와서 제발 살려달라고 하소연할 것이다. 비유가 아니라 그 화면이, 그 이미지가, 그 얼굴이, 울부짖으면서, 비명에 차서, 우리에게, 아주 구체적으로, 무엇보다도 직접적으로 한 인간의 있는 힘을 다해서 하소연할 것이다. 그 앞에서 휴머니즘을 말하는 것은 위선이다. 지금의 정부가 퇴진한 십년 뒤에도, 찬성을 찍은 국회의원들이 다 죽은 백년 뒤에도, 그리고 다시 천년 뒤에 (혹시 대한민국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그저 역사 안의 국호만으로 남는다 할지라도) 2004년 대한민국에 살았던 인간들의 휴머니즘에 대해 질문할 때마다 ‘라이브’하게 돌아와서 우리의 휴머니즘에 대해서 증언할 것이다. 그리고 살려달라고 울부짖을 것이다. 그렇게 이 녹화 테이프는 살아남은 우리를 영원히 죽기 직전의 그 시간으로 데려갈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죽기 직전의 순간에 번번이 무기력해질 것이다. 같은 장면의 영원한 반복. 테크놀로지의 시대가 보여주는 플래시백의 끝없는 재생 효과가 가져온 지옥의 영겁회귀. 아무리 사과하고 끝없이 용서를 빌어도 녹화 테이프는 그보다 더 오래 살려달라고 호소할 것이다. 그 어떤 후회도, 그 어떤 반성도, 그 어떤 용서도 오늘날 녹화 테이프보다 더 진실되지 못하다. 그 어떤 미사여구도 재생된 장면 앞에서 잘못의 시인 이상의 의미를 얻지 못한다. 김선일씨는 지금도 우리 앞에서 하소연하고 있다. 그렇게 간절하게 살려달라고 외치고 있다. 그는 죽었지만, 그는 녹화 테이프 속에서 지금도 우리의 결정을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다. 그러므로 이 녹화 테이프는 우리 시대의 짓밟힌 휴머니즘에 대한 유령이다. 이 테이프는 하나로 끝나야 한다. 정말로, 정말 끔찍한 말이지만, 이 녹화 테이프가 우리 시대의 예고편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계속)

‘럭셔리 멜로’ <파리의 연인> 열풍 분석

<씨네21>의 정씨는 텔레비전 드라마를 즐겨보지 않는다. 오래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인가 하는 긴 제목의 단막극을 보고 대낮에 방바닥에 퍼질러 앉아 펑펑 운 적이 있지만, 그래서 이후 그 작가의 히트작들을 가끔 보면서 달동네 뒷골목의 사랑에 눈을 돌릴 줄 아는 사람이라는 공감을 하긴 했지만, 친구들의 부지런한 칭찬에도 불구하고 <거짓말>은 지루하기만 했다. 어느 날인가는 홀로 잠실야구장에 앉아 김밥을 우겨먹으며 야구를 구경하다, 치어리더 중에 낯익은 얼굴 한명이 끼어 있는 걸 보고는 ‘중학교 동창이었나’ 기억을 더듬던 중에,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순박하게 생긴 아저씨가 연출하는 <네 멋대로 해라>의 여주인공이라는 걸 알게 됐고, 그뒤로 혹시 텔레비전에 내 얼굴도 나오지는 않았을까 궁금해서 챙겨보기 시작한 적은 있지만, 그리고 재미있다고는 생각했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그 드라마를 보기 위해 시간 맞춰 집에 들어가지도 않았고, 못 봐서 서운하지도 않았고, 시간이 맞으면 그냥 보았다. 혹은 어머니가 갑자기 병이 든 것처럼 밥상 앞에만 앉으시면 장금이, 장금이 하며 잠꼬대처럼 읊기 시작하자 이게 또 어인 일일까 궁금하여 <대장금>을 몇번 보았지만, 그것이 <허준> 식의(의술을 칼싸움의 긴장으로 찍어내고, 요리를 대결의 식탁으로 표현하는) ‘무협 내러티브를 변형한 드라마’라고 단정짓게 되었고, <씨네21>의 몇몇 기자들과는 생각이 많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부러 침묵하게 되었다. 또, <다모>의 몇 장면을 본 적이 있지만 그 드라마에 홀려지지 않았고, 단지 그안에 탁월한 선택이 있었다면 은연중에 배우 ‘하지원’의 문화적 아이콘의 위치를 정확하게 간파했다는 것 정도라고 꼽고 있다. 정씨는 지금도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는 그 시간에 영화 한편 더 보거나, 그도 아니라면 술 한잔 더 하는 것이 인생에 이롭다고 생각한다. 거기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어차피 스스로 설득하고 납득할 시간의 여유도 없이 일어나버린 욕망의 지각변동을, 그리고 이미 뱉어버린 방심의 고백을 어떻게 다시 주워담을 것인가? 정씨는 <발리에서 생긴 일>(극본 김기호, 연출 최문석)의 첫회부터 마지막회까지 단 한회도 빼놓지 않고 기계적으로 보았고, 같은 방송사의 제작진이 기획 제작하여 요즘 인기를 얻고 있는 <파리의 연인>(극본 김은숙·강은정, 연출 신우철·손정현)이 <발리에서 생긴 일>의 뒤집힌 손바닥 같은 이데올로기와 환상을 전파한다고 간파했으면서도 그 유사한 기획력에 끌려 여전히 주말이 되면 텔레비전 앞을 서성인다. 이 모든 것이 <발리에서 생긴 일>을 보다가 생긴 일이다. 정씨는 왜 <발리에서 생긴 일>에 끌려 <파리의 연인>까지 훔쳐보는지 스스로에게 그 점을 해명하고 싶어진다. 평소에 잘 보지 않던 자신까지 홀릴 정도면 거기엔 뭔가 있을 거라고 자뻑 비슷한 자평을 한다. 사실 정씨는 자기 혼자 <파리의 연인>을 본다고 착각했었다. 그런데 웬걸. <파리의 연인>은 방영 8회 만에 43.7%의 시청률을 기록(닐슨 미디어리서치 집계)했고, 10회째에는 시청률 46.1%(전국기준 TNS집계)를 넘어섰고, 지난 5년간 방영된 드라마 중 시청률 40%에 가장 일찍 도달한 드라마라는 집계도 나오고 있다. 남자주인공 박신양이 타고 다니는 고급 승용차의 차종에 대한 문의가 쇄도하고, 그가 매고 나오는 넓은 넥타이는 갑자기 값이 치솟고 있다. 갑자기 정씨는 <발리에서 생긴 일> 종영 직후 여행 사이트에서 세부, 방콕, 파타야 등등등 다른 곳은 다 놔두고 발리만 온통 예약 매진됐던 걸 본 기억이 난다. “그람시가 뭐예요?” 마치 음식 이름 물어보듯, 극중에서 하지원이 묻자마자 먼지 속에 깔려 있던 안토니오 그람시의 <옥중수고>가 평소의 6배에 달하는 판매율을 보였다는 기사도 떠오른다. 모르긴 해도 요즘 파리행 티켓은 연인들의 보물찾기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정씨는 <발리에서 생긴 일>과 <파리의 연인>의 캐릭터 구성 및 스토리가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가난한 선녀, 그녀를 둘러싸고 애정의 줄다리기를 벌이는 두명의 남자, 그 두명의 남자 중 하나를 차지하려는 악녀가 이 두 드라마의 기본 스토리이다. <발리에서 생긴 일>은 이수정(하지원)-강인욱(소지섭)-정재민(조인성)-최영주(박예진)의 관계로 끌어갔고, <파리의 연인>은 강태영(김정은)-한기주(박신양)-윤수혁(이동건)-문윤아(오주은)로 끌어가고 있다. 하지만 <발리에서 생긴 일>과 <파리의 연인>에는 차이가 있다. <발리에서 생긴 일>이 마지막회에 이르러 예고했던 비극적 결말을 끝내 실천하면서 시청률 40%를 겨우 넘어섰던 것에 비해 <파리의 연인>은 이미 초반부터 그 수치를 뛰어넘었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좋게 표현하면, <파리의 연인>이 훨씬 대중적인 소구력이 있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포장된 판타지 세계로의 중독성이 훨씬 더 강하다는 말이다. 여기에 대해 정씨는 약간의 사견이 있지만, 이런 경우 제일 좋은 건 제작진을 먼저 만나보는 거다. 사견은 그 다음에 얘기해도 된다. 정씨는 두 드라마 모두를 기획한 SBS 특별기획팀의 김양 프로듀서를 만났다(괄호 안은 정씨 생각).

‘럭셔리 멜로’ <파리의 연인> 열풍 분석 - 인기 원인은?

돌아와서 정씨는 사견과 인터뷰를 바탕으로 <발리에서 생긴 일>의 인기가 <파리의 연인>으로 어떻게 확장된 것인지 그 맥락을 생각해본다. <파리의 연인>의 현재 인기몰이를 정리해보기로 한다. 이하는 정씨 생각. 첫 번째, ‘엑조티즘’(이국성)이다. 두 드라마를 제작한 SBS 특별기획팀뿐 아니라 타방송사에서도 이국에서의 사랑은 지금 인기가 높은 소재다. 일에 매여 오도가도 못하는 시청자들은 매주 저녁마다 주중에 지쳤던 몸을 이끌고 돌아와 앉아 브라운관 안에서 펼쳐지는 이국적인 풍경들 안으로 상상의 여행을 떠난다. 현실을 잊게 할 만한 아름다운 풍경의 어느 도시. 과연 홀리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생각해보니, 정씨가 처음 <발리에서 생긴 일>의 첫회를 보면서 자리를 잡고 앉은 이유도 난생처음 나가본 해외 여행지 방콕의 풍경이 언뜻 스쳐서인 것 같다. 엑조티즘으로 현실의 고통을 날려버리는 것. 정씨는 스스로에게 이 점이 옳지 않다고 반복한다. 하지만, 이것이 다른 이에게 독인지, 약인지 판단하는 건 지금 정씨가 할 몫은 아니다. 어쨌거나 이국의 풍경으로 드라마를 여는 것이 시선을 끌 수 있는 매혹의 요소로 작용한 것만은 분명하다. 두 번째, 여주인공의 캐릭터다. <씨네21>에 기고하는 어느 필자는 <발리에서 생긴 일>에서 하지원이 연기한 이수정을 두고 신데렐라라고 불렀지만, 정씨의 생각은 다르다. <발리에서 생긴 일>의 이수정은 신데렐라가 아니라, 그냥 ‘하녀’다. 그것도 아주 비천한 하녀다. 게다가 그 비천함을 즐기는 독한 하녀다. 정씨가 정말로 이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기 시작한 것은 이 시점이다. 이 비참한 하녀가 두 남자 모두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미루고 또 미루면서, 그러나 몸과 마음이 가는 대로 계급 사이를 오가면서, 쫓아도 쫓아도 다시 기어들어와 일을 하겠다고 뺨을 맞으면서, 결코 뒤집어지지 않을 계급 모순을 그 독한 행동으로 오락가락하면서 갈피를 못 잡게 흔들어버리는 그것이 정씨의 눈길을 끌었다. 젊은 청춘 남녀의 독한 사랑 이야기로만으로도 인기의 이유는 충분했다고 <발리에서 생긴 일>을 평할 수 있겠지만, 상대적으로 <파리의 연인>보다 시청률이 낮았다는 것은 그 하녀의 힘이 대중의 시선 어딘가에 무의식적으로 끼어들어 신분상승의 욕망에 껄끄러운 균열을 냈기 때문이라고 정씨는 생각한다. 때문에 진짜 신데렐라는 <발리에서 생긴 일>의 이수정이 아니고, <파리의 연인>의 강태영이다. 가령, 이수정이 “마음을 주지 않는 건 내 마지막 자존심이에요”라고 말하는 것에 반해 강태영은 “내 자존심 지키자고 어떻게 당신 망신 줘요”라고 말한다. 이수정은 독하지만, 강태영은 착하다. 하지원은 강하지만, 김정은은 부드럽다. 시청자들은 후자를 더 보고 싶어한다. 별 마찰이 없기 때문이다. 분명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건드리는 부분이 있는데, <파리의 연인>은 그 클리셰를 클리셰로 돌파한다. 가령, 지구상 최고의 낭만적 도시로 손꼽히는 파리에서, 단숨에 꿈의 프리티 우먼이 되는 드라마로 시작하고, 서울에 와서도 잊을 만하면 <문 리버>(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보석을 동경하던 오드리 헵번의 그 주제가)를 틀어준다. 시청자들은 그 판타지의 실체를 분석하는 것까지 하고 싶어하지는 않는 것이다. 시청률이 그걸 말해준다. 세 번째, 그 여주인공을 둘러싼 남자주인공들의 배치이다. <발리에서 생긴 일>에서 재벌 정재민은 그저 연민의 대상이었다. 그는 돈을 뿌리고, 떼를 쓰는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그것이 매력이었다. 강인욱은 지성적이고, 강인했다. 그 점이 그 인물을 덜 매력적으로 보이게 했다. 이 둘은 비교의 대상이었고, 서로가 져서는 안 되는 경쟁의 대상이었다. 지면 죽는 게임이었다. 그래서 드라마는 전멸을 택했다. 그 점이 오히려 인기 상승을 불러오긴 했지만, <파리의 연인>이 처음부터 명확한 대조점들을 두루두루 뒤섞으면서 얻은 수치에는 못 미친다. <파리의 연인>에서 연적인 두 남자주인공은 피붙이로 묶였고(석연치 않지만), 그 매력을 반반 나눠가졌다. 그것이 유도하는 바가 크다. 그러면서 <파리의 연인>은 프리티 우먼을 꿈꾸는 여성 시청자들만이 아니라 정씨 같은 평범한 남성들의 판타지를 끌어들인다. <발리에서 생긴 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남성 판타지가 <파리의 연인>에서는 마구마구 자극된다. 아! 멋지다고. 멋지고 싶다고. 그래서 <발리에서 생긴 일>의 하지원 어록은 비수가 되지만, <파리의 연인>의 박신양 어록은 솜사탕이 되는 법이다. 지금까지 말한 이러이러한 이유들로 <파리의 연인>은 <발리에서 생긴 일>과 유사하기도 하지만, 인기는 더 높을 수밖에 없다고 정씨는 결론내린다. 하지만, “럭셔리 멜로”… 이 말 참 슬프게 들린다고 되뇐다. 그러나 다시 또, 정씨는 이번 주말에도 영화를 보지 않거나, 술을 먹지 않는다면 텔레비전 앞을 서성거릴 것이다. 남들 다 보는 거 나 혼자 꺼리지 말고 하던 대로 쭉 볼 것인지, 아니면 금단할 것인지 고민할 것이다. 한편으론 그렇게 정씨를 고민에 빠뜨리게 하는 것만으로도 <파리의 연인>의 힘은 대단하다고, 또 자뻑 자평할 것이다. 드라마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정씨가 ‘<파리의 연인>이 인기있는 이유’에 대해 털어놓은 해석은 그저 이 정도다.

<인형사> VS <분신사바> 공포 대결

<페이스>와 <령> 등 올 여름 극장가에서 부진을 면치못한 한국 공포영화의 ‘재기’를 다짐하는 공포영화 두편이 잇달아 개봉한다. 서구영화에서 종종 등장했던 인형의 공포를 소재로 끌어온 <인형사>(7월30일 개봉)와 집단 따돌림 문제를 모티브로 하는 <분신사바>(8월5일 개봉)는 원귀가 등장하는 복수극이면서 두 편 모두 ‘슬픈’ 공포영화를 지향한다는 공통분모를 지녔다. 버림받은 인형의 분노와 슬픔 <인형사> 악마의 영혼이 깃든 인형이 사람을 공격하는 영화 <사탄의 인형>시리즈가 아니더라도 인형은 사람과 비슷한 생김새 때문에 공포영화가 애용해온 소도구다. <인형사>에서 공포를 일으키는 가장 큰 이유와 도구도 인형이다. 한때 피붙이처럼 사랑받았으나 다른 장난감에게 자리를 빼앗겨 버림받은 인형이 영혼을 얻어 전 주인에게 복수를 꿈꾼다는 이야기가 영화의 뼈대를 이루며 사람처럼 자유롭게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구체관절인형(관절이 공모양으로 된 인형)들이 공포의 디테일을 구성한다. 사람같은 인형들 등골이 오싹 연쇄살인 추리 형식은 어설퍼 외딴 숲속의 작은 인형박물관에 서로 초면인 네명의 남녀가 초대받는다. 일주일 동안 이곳에 머물며 구체관절인형의 모델이 될 이들은 옷장 안의 인형이 움직인다거나 집에서 가져온 인형이 발기발기 찢겨지는 이상한 경험을 한다. 조각을 전공하는 대학생인 해미(김유미)가 자신의 주변을 배회하는 검은 머리 소녀를 이상하게 여길 때쯤 초대받은 이들이 하나씩 잔인하게 살해당한다. <인형사>는 인형이 원귀가 되어 나타난다는 귀신영화에 연쇄살인의 미스테리를 풀어가는 추리극 형식을 가미해 ‘공포’와 ‘긴장’이라는 두가지 목표에 다가가려한다. 유난히 깊은 눈망울에 사람과 유사한 체형을 가진 구체관절인형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섬뜩함을 유발하는 전략은 비교적 성공적인 듯하다. 그러나 잇다른 죽음을 풀어가는 추리를 엮어가는 형식은 미숙하다. 특히 생면부지의 네명이 한 장소에 모이게 된 사연이 “지금으로부터 60년 전 오늘”이라는 말로 시작돼 줄줄이 말을 통해 밝혀지는 장면은 극적 긴장감을 뚝 떨어뜨린다. 인형을 연기한 ‘인형같은 외모’의 배우 임은경은 특별한 연기를 하지는 않지만 깊은 눈망울에서 버림받은 자의 슬픔이 느껴진다. 마을과 학교의 집단 따돌림에 대한 복수극 <분신사바> 여학생 시절 누구나 한번쯤은 친구들과 함께 시도해본 ‘분신사바’ 기도에 사연을 엮은 <분신사바>는 <가위>, <폰>으로 공포영화 전문감독 직함을 얻게 된 안병기 감독의 세번째 연출작이다. 왕따당하는 소녀가 친구들과 함께 ‘분신사바’기도를 해서 원귀를 불러들인다는 이야기의 출발점이 한때 스크린에서 유행했던 학교괴담을 연상시키지만 <분신사바>는 집단따돌림 문제를 학교에서 한 마을로 확장시켜 평온해 보이는 마을이 숨긴 잔인한 비밀을 한꺼풀씩 벗겨낸다. 서울에서 전학왔다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유진(이세은)은 같은 처지의 친구들과 함께 분신사바 기도를 한다. 다음날부터 그들이 노트에 이름을 적었던 아이들이 한명씩 비닐봉지를 머리에 뒤집어 쓰고 불을 붙이는 잔인한 방식의 자살을 한다. 한편 학교에 전근온 미술교사 은주(김규리)는 30년 전 죽었다는 인숙의 유령을 교실에서 본다. 학교 울타리 넘은 집단 따돌림, 공포 느끼기엔 익숙해진 공식 <분신사바>는 억울한 죽음을 당한 원귀가 사람의 몸에 들어가 복수를 감행한다는 귀신영화의 공식을 충실하게 따라간다. 천천히 발목을 감아오는 귀신의 손이나 옷장 안, 문틈에서 쓱 나타나는 귀신의 얼굴 등 관객을 놀래키는 방식도 이 공식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이곳저곳에서 기어나오는 귀신들 역시 <링>의 아찔했던 텔레비전 귀신 장면을 연상시키지만 이제는 공포를 일으키기에는 너무나 익숙해진 관습들이다. 최면을 이용한 심리살인극이 마지막에서 갑자기 사지절단하는 스플래터 영화로 바뀌는 건 영 어색해보인다. 올해 부천국제영화제에서 폐막작으로 선정됐다.

섬세한 심리묘사, 치밀한 구성, <늪>

중년 부부의 외도는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흔해 빠진 소재다. 오죽하면 아침 드라마에서조차 불륜을 심각하게 다루고 있을까? 이처럼 외도를 하는 경우 한쪽이 큰 상처를 받게 마련이다. 이는 혼자 분을 삭이며 상대방을 용서하거나 혹은 이를 갈며 처절한 복수를 하는 것으로 갈린다. MBC 베스트셀러 극장을 통해 방영된 <늪>은 후자에 속한다. 이 드라마는 남편의 외도로 철저하게 기만당한 아내의 복수의 과정을 그리지만, 기존 드라마와는 차별되는 특징을 지녔다. 첫째로, 복수의 강도가 매우 세다. 두 번째로 인물들의 복잡한 심리묘사가 뛰어나게 이루어졌다. 세 번째로 드라마 치고는 전체적인 이야기의 짜임새와 복수의 과정이 치밀하게 구성됐다는 점이다. 이 세 가지 장점은 TV드라마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는 이유가 된다. 또한 <늪>은 디지털 방송의 방향 모색에 중점을 둔 HD 촬영과 돌비디지털 5.1 채널로 제작하면서 많은 주목을 모았다. DVD 타이틀이 그만큼의 고화질을 보여주진 않지만, 일반적인 TV방송을 통해 만나는 드라마보다는 좋은 화질임에 틀림없다. 스페셜 피처로는 37분에 이르는 메이킹필름, NG장면, 프로덕션 노트, 예고편을 제공한다. 매우 평범한 구성이지만 7일간의 드라마 제작 과정을 담은 메이킹필름이 이색적이다. 1시간8분 정도의 드라마에 37분의 메이킹필름이란.

사우디 왕가, 무어 감독의 <화씨 9/11> 내용오류 지적

쿠웨이트는 <화씨 9/11> 상영 금지 조치 마이클 무어 감독이 자신의 영화 <화씨 9/11>에서 미국 정부가 9.11 공격 직후 사우디 아라비아의 고위층을 미국 밖으로 빼돌렸다고 주장한데 대해 사우디 왕가가 반격을 시작했다고 영국의 데일리 텔레그래프 인터넷판이 1일 보도했다. 신문은 영국 주재 사우디 대사인 투르키 알-파이살 왕자가 인터뷰에서 사우디 왕가가 무어 감독의 주장이 왜 틀렸는지 설명했다면서 사우디왕가가 <화씨 9/11>에 대해 공식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전했다. 압둘라 사우디 왕세자의 이복형제로 9.11 공격 당시 사우디 정보기관을 맡고 있었던 알-파이살 왕자는 인터뷰에서 사우디는 9.11 조사위원회의 보고서를 통해 9.11 공격에 연루됐다는 혐의를 완전히 벗어났다고 주장했다. 그는 "무어 감독이 영화를 만들기 전 9.11 보고서를 읽을 수 있었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이라면서 무어 감독은 사우디가 오사마 빈 라덴과 연관을 맺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 충분히 조사하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무어 감독은 <화씨 9/11>에서 9.11 공격 이후 미국 공항이 폐쇄되고 모든 비행기 운항이 중단된 상태에서 부시 행정부가 사우디 왕자들과 빈 라덴 일가가 미국 밖으로 나가는 것을 허용했다고 말하면서 사우디가 9.11 공격과 연관이 있음을 감추기 위해 미국 정부가 이들을 빼돌렸음을 암시했다. 투르키 왕자는 지난달 말 발간된 9.11 조사위원회 보고서에서 무어 감독의 이런 주장들이 완전히 반박됐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사우디인들이 2001년 9월13일 공항이 다시 문을 열기 전 국내외로 비행했다는 증거가 없으며' 백악관이 정치적으로 개입한 증거도 없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또 무어 감독이 영화를 만들기 전 이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무어 감독은 실제 일어난 일을 확인하기보다는 '억측을 택했다'고 비난했다. 투르키 왕자는 무어 감독이 사우디 방문 비자를 요청했고 사우디 정부가 그에게 비자를 발급해 줬지만 무어 감독은 사우디를 방문하지 않았다면서 "무어 감독은 중요한 사실을 확인할 중대한 기회를 놓쳤다"고 말했다. 투르키 왕자는 9.11 공격 이후 사우디 인사들이 미국을 떠난데 대해서는 "빈 라덴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테러 발생이후 미국에서 어려움을 겪을 것을 모두가 인정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사우디는 알-카에다를 지원하기는 커녕 빈 라덴의 조직으로부터 공격대상이 되고 있다면서 사우디가 2001년 여름 이후 최고단계의 경계태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투르키 왕자는 또 "사우디는 사우디에 있는 26명의 알카에다 강경파 중 절반 이상을 죽이거나 생포했다"면서 알-카에다와 싸우고 있는 사우디 정부의 노력을 강조했다.(서울=연합뉴스) 한편 쿠웨이트 정부는 1일 <화씨 9/11>이 우방 사우디아라비아 왕가를 비난했다는 이유를 들어 상영금지 결정을 내렸다. 쿠웨이트 공보부의 시네마.프로덕션 감독관 압둘-아지즈 보우 다스토우르는 "쿠웨이트와 사우디는 특별한 관계이며 쿠웨이트에는 우방을 비난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법률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화씨 9/11>은 사우디왕가와 부시가문이 공통이해를 갖고 있으며 이런 이해는 미국민의 이해와 상충된다고 비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영화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비판한 것은 이라크침공의 발판이 됐던 쿠웨이트를 비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하고 사우디도 미군 공격에 편의를 제공한 사실도 상기했다. <화씨 9/11>의 국내 독점 배급권을 가진 쿠웨이트 국영 쿠웨이트 국립영화사는 지난달 정부에 상영허가를 요청했다.(쿠웨이트시티AP=연합뉴스)

부부 스와핑, 놀랍도록 건전한

부부 스와핑. 주로 신문 사회면을 장식한다. 성적 쾌락을 위해 일부일처제의 사회적 합의를 깬 일탈행위인 까닭이다. 그런데 이 스와핑을 다룬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방송을 탄다면 그것도 사회고발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실제 아이까지 딸린 몇 쌍의 부부가 서로 배우자를 바꿔 2주 동안 동거하는 실제 상황을 중계하는 것이라면 고얀 일이라는, 나가도 너무 막 나간다는 불호령이 떨어지기 전에 한가지 정보를 더 알려야 할 것 같다. 2002년 영국 채널4에서 무려 23%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인기리에 방송됐고, 미국 에이비시 방송은 프로그램 포맷을 사 오는 9월29일부터 제작·방송할 예정이다. 하나 더 추가하면, 스와핑한 부부 사이 동침은 절대 없다. 케이블·위성방송 큐채널이 13일부터 방영하는 12부작 <와이프 스와프, 아내를 바꿔라>(사진, 큐채널제공)(일 오전 11시·밤 10시)는 자극적인 제목과는 달리 전혀 야하지 않은 프로그램이다. 여기서 스와핑은 육체의 교환보다 집안 분위기와 환경의 교체 쪽에 훨씬 더 가깝다. 스와핑 대상은 결혼한지 15~25년 된 아내이자 엄마다. 이들은 생판 몰랐던 가정에 들어가 완전히 새로운 가풍에 적응하며, 동시에 바꿔나가야 한다. 주어진 기간은 2주. 예컨대, 1부에서 결혼 18년차의 롭과 앤 베이글리 부부는 23년차 된 그레이엄과 다이앤 켈리 부부와 스와핑에 들어간다. 베이글리 부부에겐 15살 제시카와 12살 앨리스가 있고, 켈리 부부는 15살 티나와 18살 조가 있다. 2주의 스와핑 기간 가정을 바꾼 앤과 다이앤은 배우자를 바꿨다는 야릇한 기분이라곤 느껴볼 여유조차 없다. 남녀 동등하게 가사일을 꾸렸던 앤은 갑자기 바뀐 남성우월주의자 남편과 한바탕 기싸움을 해야 한다. 다이앤은 너무도 제멋대로인 아이들을 챙기느라 동분서주한다. 갑자기 아내와 엄마가 바뀐 나머지 가족들도 변화가 놀랍긴 마찬가지다. 20여년 익숙했던 생활행태는 모두 잊어야 한다. 그레이엄은 생전 해보지 않던 화장실 청소를 해야 하고, 티나와 조는 싫어했던 샐러드도 꼭 챙겨먹어야 한다. 결과는 숱한 갈등과 곡절 속에서도 서로를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물론 원래 남편과 아내, 아이와 엄마 관계는 서로의 소중함을 거듭 확인하며 더욱 돈독해진다는 매우 건전한 결론이다. 남편이나 아내가 괜히 싫증나기 시작한 권태기 부부들이 보기에 딱 좋다. 사회학의 ‘역할바꾸기’ 실험이나 심리학의 역할극과도 흡사하다. 이 프로그램이 44회 몬테카를로 텔레비전 페스티벌에서 ‘올해의 최고 리얼리티 포맷상’을 수상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에 앞서 5일부턴 비슷한 포맷의 <보스 스와프, 사장을 바꿔라>(목 오전 11시·밤 12시)도 전파를 탄다. 서로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두 중소기업 사장이 2주 동안 상대방의 회사를 경영하는 경영 도전기이다. 이들은 완전히 다른 경영환경에 직면해 자신의 경영관을 펼쳐나간다. 그 과정에서 겪는 사장과 직원 사이 미묘한 관계 전개가 시청자 눈길을 붙잡는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얼마나 진화되었는가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순수로부터 타락으로의 여정, <아임 낫 스케어드>

자전거를 타고 황금빛 들녘을 누비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풍경이 펼쳐진다고 해서 전부 스티븐 스필버그의 예전 영화들과 똑같이 진행되는 건 아니다. 아이들의 삶이 그토록 풍요로운 순진함과 행복으로만 충만한 것도 아니다. 아이들의 삶이라고 해서 언제나 용서받고 감싸지고 그들의 순수함이 보존되어야 하는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만은 없다. <지중해>와 <너바나>로 잘 알려진 가브리엘 살바토레의 신작 <아임 낫 스케어드>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아름다움의 견고함을 확신하고 있던 10살짜리 소년이 순수함을 상실하기까지, 그 직전의 풍경을 가슴 아프게 그려보인다. 순수로부터 타락으로의 여정, 성장한다는 것의 쓰라림 혹은 꿈과 환상이 현실로 드러났을 때의 충격과 경악. 1970년대 남부 이탈리아의 조그만 시골 마을, 귀여운 여동생과 아름다운 어머니, 터프한 트럭 운전사 아버지와 함께 사는 소년 미카엘은 어느 날 버려진 집의 지하 굴에 갇힌 이상한 존재를 발견한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비명 같고 신음 같은 소리만 내는 또래 소년이 쇠사슬에 묶여 있었던 것이다. 이상하게도 버려진 집 안에는 냄비와 물바구니가 나뒹굴고 있다. 마치 누군가가 이곳에 일부러 갖다놓은 듯…. 물과 먹을 것을 청하는 소년에게 부지런히 그것들을 날라다준 미카엘는 소년과 점점 친해진다. 그러나 그는 차츰 예전엔 알지 못했던 이상한 일을 깨닫는다. 미카엘의 집에는 버려진 집에 있던 냄비과 똑같은 것이 있었고, 아버지의 친구라는 무서운 세르지오 아저씨가 들이닥쳐서는 밤마다 텔레비전을 보며 격한 말싸움을 벌인다. 마침내 미카엘은 아버지와 세르지오, 마을 사람들이 열심히 보던 뉴스 프로그램을 통해 두달 동안 실종된 부잣집 소년 필리포 유괴사건을 보게 되고, 자신이 발견한 소년이 필리포임을 알게 된다. <아임 낫 스케어드>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모두가 잠든 밤중, 미카엘이 홀로 이불을 뒤집어쓰고 램프를 밝힌 채 중얼중얼거리며 필리포에 대한 음험하고 신비로운 상상을 발전시키는 장면, 그리고 미카엘의 여동생이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개를 바라보며 빵을 오물오물 씹어삼키는 장면일 것이다. 상상력과 글쓰기, 자신만이 알고 있는 비밀스런 세계를 창조한다는 행위에 대한 어쩔 수 없는 매혹. 이 영화는 빅토르 에리스의 <벌집의 정령>이나 에마뉘엘 카레르의 소설 <스키 캠프에서 생긴 일>의 먼 친척뻘이다. 그것은 아직 바깥 세상의 비천함과 황량함을 깨닫지 못한 채 가족과 친구의 사랑을 받으며 편안한 울타리 안에서 언제까지고 안전할 것이라 믿는 어린 시절만의 특권일 것이다. 그에게 유괴와 살인과 납치는 자신이 지어내는 모험 소설의 일부일 뿐 자신이 믿는 세계의 견고함은 그대로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견고함은 영원한 것이 아니다. 또한 갑작스럽게 극적인 사건의 발생으로 인해 파괴되는 것도 아니다. 위험과 추함은 애초에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피흘리며 거꾸로 매달린 닭, 탐욕스럽게 섹스하는 돼지들…. 지옥은 다른 어떤 곳이 아닌 바로 여기이다. 그것은 아이들이 자라나면서 성장하면서 깨달아야만 하는 어떤 것이다. 그것의 숨겨진 의미를 하나씩 발견해나가는 것이야말로 어른이 된다는 것에 딸려 있는 무시무시한 담보물인 것이다. 미카엘이 무서운 진실을 깨닫는 순간, 자신도 필리포의 불행에 공범일 수밖에 없다는 것, 범죄의 씨앗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배태될 수 있음을 깨달은 순간, 그리고 아버지의 총에 맞은 순간은 그런 발견의 행위가 가져다주는 무시무시한 충격 그 자체다. 그건 마치 미카엘의 친구가 들려주는 ‘아버지 때문에 죽은 소년’의 괴담이라든가 프로이트가 이야기하는 “아버지, 제가 불타고 있는 게 보이지 않으세요?”라고 차갑게 질문했던 죽은 아들의 그것과 겹쳐진다. 아버지 피노와 미카엘 사이의 보이지 않고 느끼지 못했던 긴장 관계는 아들을 향해 총을 쏘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절정에 달한다. 이제까지 팔씨름으로 서로의 남성성을 장난처럼 겨뤄보던 부자의 관계는 이제 더이상 예전같지 않을 것이다. 제아무리 피노가 미카엘을 진정으로 사랑했다 하더라도, 사랑하는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또 다른 아이를 납치하여 이용했다는 것에서 그 날카로운 상처의 기억은 미카엘과 피노 사이에서 평생에 걸친 강박증으로 남지 않을까. 영화의 대단원은 그 순간 외형적으로 보이는 스릴러의 틀거리보다는 윤리에 관한 작은 우화가 되어간다(이 부분은 다르덴 형제의 엄격한 윤리극 <약속>과 비교해 이야기하더라도 흥미로울 듯하다). 하지만 고통을 판타지로 승화시켰던 <지중해>에서도 드러났듯이, 아픈 현실을 외면하지는 않지만 그것으로부터 어떻게든 아름다움의 요소를 찾아내려 하는 도저한 낭만주의의 시선을 그대로 견지하고 있는 가브리엘 살바토레의 특성은 영화 속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리하여 영화의 지나친 로맨티시즘은 때때로 거슬리기도 한다. 영화 전반에 걸쳐 과잉이라 할 만큼, 마치 히사이시 조의 음악을 연상케 하는 현악기의 선율이 그런 특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특히 주인공 미카엘의 시점으로 줄곧 영화가 진행되는 터라 아직까지 어른들의 비열하고 차가운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그의 시선으로는 절대적인 괴물도 혹은 악인도 존재하지 않는다. 절박한 고통을 그려내기에 ‘좀더 대중적으로는’ 당연한 방식일 수 있으나 또한 현실 앞에서 주저하고 도피하고 마는 안전한 선택지였다는 비판도 피해갈 순 없을 듯하다. :: 미카엘과 필리포 역의 두 소년 그놈들은 이미 모든 걸 알고 있었다 <아임 낫 스케어드>의 가장 큰 주역은 단연 영화의 전체를 끌고 나가야 하는 두 소년, 미카엘과 필리포 역을 맡은 어린 배우이다. 자신 앞에 시시각각 던져지는 윤리적 선택의 상황 앞에서 갈등하던 미카엘, 이미 세상을 다 알아버린 것 같은 눈빛으로 “난 죽은 거야!”라고 외치는 필리포를 떠올려보라. 가브리엘 살바토레는 주인공을 찾기 위해 오디션을 개최, 600여명의 아이들 중 주세페 크리스티아노와 마티아 디 피에로를 선발했다. 그들은 실제 영화 속 주인공처럼 남부의 작은 시골 마을 출신이었다. “그들의 언어, 제스처, 시선을 볼 때 그들은 발견과 공포, 불복, 결속을 그린 이 대서사시의 주역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 아이들은 잊혀진 남부에서 태어나 영웅들이 난무하는 세상에 속한 우리의 관심 밖에서 살아왔다. 아이들은 촬영 중에 이렇게 말하곤 했다. ‘제가 카우보이였고 당신이 인디언이었던 것처럼 해봐요.’ 여기서 과거시제를 쓴 건 그들의 실수가 아니다. 그런 식으로 말함으로써 자신의 행위가 연기라는 걸 부인하며 모르는 어떤 것을 연기한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이다… 즉 난 이미 카우보이였던 것이며 난 그저 그것을 끄집어내는 것일 뿐이란 것이다… 아이들은 이미 모든 걸 알고 있었다. 고통과 이탈 같은 어려운 문제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영화평론가 정성일, 귀여니를 만나다 - 인터뷰 지상중계 [3]

하이틴 로맨스의 무난한 결말 - 영화 정성일 l <그놈은 멋있었다>에서 한예원, 지은성을 떠올린 배우가 있었나요? 귀여니 l 그게 없었어요. 이런 사람들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람에 비유하지 않았어요. 지은성은 정말 모르겠고, 다만 예원이는 정다빈씨랑 배두나씨를 생각했어요. <위풍당당 그녀>에서의 배두나요. 정다빈씨는 <논스톱>부터 <옥탑방 고양이>까지…. 정성일 l 결과론이긴 하지만, 장편소설의 성격상 영화보다는 텔레비전이 더 원작을 살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어요? 귀여니 l <도레미파솔라시도> 드라마 제안이 왔는데 거절했어요. 나머지 세 작품을 다 계약했는데, 하나는 꼭 어린애처럼 내가 쥐고 있고 싶다는 생각도 했구요. 정성일 l <그놈은 멋있었다>가 영화로 옮겨오면서 사라진 것 중에 가장 아쉬운 건 어느 대목입니까? 귀여니 l 예원의 오빠, 한승표가 학교에 대걸레를 들고 나타나서 악의 무리에 응징을 가하는 장면. 제일 한심했던 오빠가 막판의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단 하나의 히든카드로 나타난 장면이 쓰면서도 통쾌했거든요. 정성일 l (좀 어리둥절) 오빠라서 통쾌했던 건가요? 가족의 소중함은 귀여니에게는 아주 특별한 거네요. 귀여니 l 특히 두살 차이 남동생에 대한 애착이 제가 좀 있어요. 중학교 때는 동생과 안 친했거든요. 동생이 밖으로 싸돌아다녀 친해질 계기가 없었고 또 말썽을 부렸어요. 그런데 제천에 둘이 내려가 살면서 누나인 나는 힘들어서 어쩔 줄 모르고 며칠 밥도 굶는데 얘가 오빠처럼 날 감싸주는 거예요. 그때부터 남매애가 생긴 거 같아요. (으쓱!) 정성일 l 이상한 점 하나 더. 한예원(<그놈은 멋있었다>)과 정한경(<늑대의 유혹>)은 인문계 학생인데 남자들은 ‘반드시’ 상고를 다녀요. 이윤세씨가 딴나라 사람이 아니니 학벌 지상주의 한국사회에서 그 의미를 잘 알 텐데, 상고 다니는 남자가 멋있다고 여기는 이유는 어떤 까닭인가요? 귀여니 l 어쩔 수 없는 것이, 제천에는 상고에 사대천왕이 실제로 있었고 서울과 달리 공부만 하는 애들보다 놀 줄 아는 애들이 인기가 많았어요. <그놈은 멋있었다> 첫 부분은 진짜 있었던 일이거든요. 여고 사이트에 공고 애가 글을 올린 거예요. 그래서 제가 예원이처럼 리플을 달았어요. (@@) 프로필에 휴대폰 번호도 써놨어요. 전화가 와서 싸웠거든요. 소설과 다른 건 얘가 사과를 했어요. 그 사건 이틀 뒤에 <그놈은 멋있었다>를 쓰기 시작했어요. 정성일 l <그놈은 멋있었다>는 소설과 영화의 엔딩이 전혀 다른데요. 귀여니 l (잠시 생각!) 하이틴 로맨스의 무난한 결말이라고 생각해요. 감독님은 10대의 모습을 끝까지 담고 싶어서 마지막에 은성과 예원의 동거신이 나오는 건 느닷없다고 생각한 거 같아요. 하지만 그때는 결혼보다 동거가 행복하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좀 친해지면 결혼한 분들에게 만날 물어보거든요. 아직도 사랑하냐구요. 그러면 사랑이 아니라 정 때문에 산다고 말씀하시는데 그 말이 되게 가슴이 아팠어요. 그래서 10대 은성이와 예원이 결혼한 모습을 보여줘서 가망성 없는 끝이라고 보여주고 싶지 않았어요. 차라리 동거를 선택해서 너무 시들지도 않고 그렇다고 학생 모습에 가깝지도 않은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둘이 딱 붙어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정성일 l 지금 다시 써도 그 엔딩을 택할 것 같아요? 귀여니 l 지금은 그냥 10대에서 끝을 맺을 거 같아요. 정성일 l 더 이상한 건, 동거하는데 연적 김한성이 와서 자고 가는 엔딩을 선택한 거예요. 말하자면 세명을 공존시키는 방법을 찾았어요. 결혼했으면 못 찾아왔을 거예요. 구태여 김한성을 둘 사이에 끼워넣을 필요가 있었나요? 귀여니 l 아직 가능성의 여지를 남겨놓는 거예요. 아직 한성이 역할은 끝나지 않았다고. 정성일 l <그놈은 멋있었다>는 비극이군요. 귀여니 l 어떻게 보면 비극인데…. 정성일 l 한예원으로서는 행복한 거죠. *^^* 그의 죽음을 슬퍼하라 -영화 <늑대의 유혹> 정성일 l 영화 <늑대의 유혹>의 첫 시작은 신기하게도 <그놈은 멋있었다>와 마찬가지로 (마치 의논이라도 한 것처럼) 지하도 패싸움으로 시작합니다. 귀여니 l 싸움신이 많다보니까 일대일보다는 여럿이 싸우는 게 멋있어서 그러셨나봐요. *^^* 정성일 l 하지만 정태성이 그렇게 떼거리를 몰고 다니는 유형의 짱은 아니잖아요? 소설은 정태성을 피시방에서 ‘엎드려 자는 아이’로 소개하고 있는데, 영화가 완전히 오해한 것 같았습니다. 귀여니 l 어? 태성이 캐릭터가 많이 바뀌었네, 라는 느낌은 전체적으로 받았어요. 태성의 천진난만한 장난기보다는 가족사의 아픔이 더 크게 묘사됐더라구요. 정성일 l <늑대의 유혹> 캐스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귀여니 l 정한경을 한 이청아씨가 맘에 들었어요. (*^^*) 남자들은 멋있었구요. (흐뭇) 정성일 l 만약 강동원과 조한선이 바꿔 나왔다면? 귀여니 l 허걱! 정성일 l <그놈은 멋있었다>의 한예원과 지은성이 만나는 건 아주 극적이지만, <늑대의 유혹>에서 정한경과 정태성의 만남은 운명인데도 ‘꿀꿀하게’ 시작하는 건 아주 의외였습니다. 귀여니 l 소설 연재를 시작할 때는 정태성이 주인공이 아니라 반해원이랑 정한경이었어요. 정태성은 그냥 누나의 비극적인 남동생일 뿐이었기 때문에 그 등장을 강조할 필요를 못 느낀 거예요. 그런데 연재하다보니까 태성이 인기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더라구요(.0_0) 독자와 내가 취향이 엇갈린 거죠. (ㅠ.ㅠ) 그때부터 정태성의 비중이 커지기 시작했죠. 정성일 l 그 터닝 포인트가 어느 지점부터였나요? 귀여니 l 태성이가 점점 불쌍해져 갈 때요. 한경이 동생으로 밝혀지는 지점부터. 정성일 l <늑대의 유혹>을 읽고 있으면 아마 귀여니 자신이 서울을 매우 불편한 곳으로 여기는구나라는 느낌이 있어요. 귀여니 l 좀 촌스러운 이유인데, 사람 많고 시끄럽고 지하철 타면 낑기구요. (ㅠ.ㅠ) 토요일 대학로 나가면 마찬가지로 낑기구요. 그땐 서울 살기 전이라 서울 사람은 깍쟁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한경이를 통해 서울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한 셈이지요. 정성일 l <늑대의 유혹>도 영화에서는 엔딩이 반대입니다. 영화는 정태성의 죽음을 알려주지만 소설은 알려주지 않아요. 그건 한경이가 행복하길 바라서였나요? 귀여니 l 아뇨. 독자를 안타깝게 하려는 장치였어요! “저 바보 태성이 죽고 있는데 그것도 모르고 행복하게 살고 있냐?” 하도록. 안타깝게 조급하게 독자를 만드는 걸 글쓰는 입장에서 즐긴 거죠. 정성일 l 그걸 가르쳐준 영화에 대해서는? 귀여니 l 감독님 입장에서는 이미 관객도 다 알 거라고 생각하고 그러신 듯한데 아쉬움이 남기도 하죠. 귀여니에게 소설은 외로움(^^a)?! △ <그놈은 멋있었다> 정성일 l <늑대의 유혹>은 <그놈은 멋있었다>에 비하면 이모티콘이 좀 복잡해졌어요. 그러나 <그놈은 멋있었다>만큼 리드미컬하게 느껴지진 않아요. 의식적으로 쓴다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두 소설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나요? 귀여니 l <그놈은 멋있었다>를 쓸 때는 제가 만족하기 위해 글을 썼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쓸 수 있었어요. 하지만 <늑대의 유혹>에서는 내가 쓰면 많이 보고 자기들끼리 얘기할 거 라는 걸 알았어요. 정성일 l 귀여니의 삶에서 두 소설 사이의 가장 큰 변화는 무엇입니까? 귀여니 l <늑대의 유혹>은 제 삶과 거리가 멀어요. 주변 인물도 내 주변 인물이 아니고, 무엇보다 저를 대변하는 여주인공이 달라요. 난 정한경처럼 어리버리하다기보다 덜렁대거든요. <그놈은 멋있었다>에서 제가 알고 있는 재미있는 경험을 다 넣었고 귀여니가 이윤세라는 사실이 알려지니까 주변에서 “내 얘기가 나오다니” 할까봐 두려워졌어요. 정성일 l <늑대의 유혹>에 와서 훨씬 문장이 길어지고 서술적으로 바뀌었어요. 짧은 문장이 귀여니의 장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나요? 귀여니 l 그건 뒤에 알았어요. 당시에는 몰랐던 또 하나는 <그놈은 멋있었다> 같은 소설은 내가 마음먹으면 언제든 쓸 수 있어 개성있는 캐릭터도 또 만들 수 있고 독자도 끌어모을 수 있어, 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제일 큰 착각이었던 것 같아요. 그건 다시는 나와주지 않았어요. 정성일 l <그놈은 멋있었다>를 즐겁고 명랑하게 읽을 수 있다면 <늑대의 유혹>은 슬픔에 기대서 쓴 소설 같습니다. 왜 그렇게 완전히 톤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했나요? 귀여니 l 의도한 건 아니었어요. 웃긴 걸 쓰고 싶었는데 그게 잘 안 되어서 역으로 튼 거예요. 태성이를 죽일 생각은 있었지만 소설 전체를 그렇게 쓸쓸하게 차분하게 할 생각은 없었어요. 결국엔 여주인공 성격에 따라가는 거 같더라구요. 한경이를 이렇게 설정한 이상 예원이처럼 푼수, 오두방정 떨고 싶어도 너무 안 어울리는 거예요. 정성일 l 정한경을 남자들보다 한살 연상으로 설정한 것은 왜죠? 귀여니 l <그놈은 멋있었다>도 다 동갑이에요. 저보다 오빠인 사람이 싫었어요. 왠지 연하는 삼삼하고 귀여워 보이는데. (*^^*). 오빠라고 하면 너무 자상한 이미지 같았어요. 또 기존에 나온 인터넷 소설들이 오빠나 학교 선후배라는 방식을 취하고 있어서 다르게 가자는 생각도 있었구요. 정성일 l 한편으로는 남자에 대해서 여자가 정신적으로 혹은 연령적으로 누나 자리에 있는 게 편하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어요? 귀여니 l 그것도 있죠. 제가 누나 입장이기 때문에. 실제로도 그렇게 생각해요. 정성일 l 남자에게 보호받기보다는 남자를 돌봐야 한다는 쪽이 훨씬 큰 건 아닌가요? 귀여니 l 예. 저도 몰랐거든요? 남자다운 남자가 좋고 숨는 편이 좋으니까. 그런데 그 남자다운 남자가 아파서 끙끙 앓거나 힘들어하거나 하면 울컥해요. (ㅠ.ㅜ) 애기도 좋아하구. 정성일 l 그럼 귀여니가 어른으로서 소설을 쓰는 것은 주인공이 어머니가 되는 순간이겠네요? 귀여니 l 자식을 낳아봐야 알 거 같아요. (*^^*) 정성일 l 이윤세씨에게 고등학교란 어떤 시간이었어요? 귀여니 l 수지에 살던 1학년은 매우 즐거웠어요. 남자보다 친구가 내 곁을 잘 지켜주는구나, 라고 처음 느꼈구요.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재밌는 일도 많았고 선생님들과도 친했는데 제천으로 전학가면서 성격이 어둠침침해졌어요. (ㅠ.ㅠ) 대신 혼자 있다보니 생각도 깊어지고 그나마 어른스러워질 수 있었던 시간인 것 같아요. 만약 3학년까지 수지에서 즐겁게 보냈다면 지금 소설은 당연히 안 썼어요. 어쩌면 진짜 인생에서 제일 의미있었던 시간이었던 거 같아요. 정성일 l 귀여니에게 소설은 외로움이네요? 귀여니 l 외로울 때 쓰니까요. 정성일 l 최상의 소설가가 된다면 누가 되고 싶어요? 귀여니 l 말하면 웃으실 것 같아요… (진지하게) 셰익스피어요. 정성일 l 그건 앞으로는 희곡작가가 되고 싶다는 뜻인가요? 귀여니 l 그건 아니에요. 대학교 들어와서 셰익스피어를 읽었는데 모든 작품이 마음에 들었어요. 그중에서 하나 고른다면… <한여름밤의 꿈>. 정성일 l 무자비하게 묻겠습니다. 언제쯤 귀여니가 죽고 이윤세가 글을 쓰기 시작할까요? 귀여니 l 그걸, 약속을 확실히 못 드리겠어요. 그냥 지금으로서는 한참 부족하다는 것뿐이에요. 귀여니가 죽기에는! 몇년 지나고 “아? 귀여니가 누구였지?”라고 사람들이 생각할 때쯤 제 인터넷 소설과 그 이미지를 지워버렸을 때가 오면요. 정성일 l 다음 작품은 언제 시작할 것 같아요? 귀여니 l 쓰려면 내일도 쓸 수 있어요. 그러나 내일 쓰는 글은 만족을 줄 수 없을 거예요. 어떻게 쥐어짜서 노력해 즐겁게 해도 50회 분량도 못 가서 녹초가 될 거예요. 경험을 차츰차츰 충분히 빨아들일 만큼 충분히 빨아들인 다음에 써야 할 것 같아요.

서부극으로 사유했던 영화 거장, <존 포드 걸작선>

서울아트시네마, 8월6일부터 ‘존 포드 걸작선’ 상영 앙드레 바쟁의 말처럼 서부극이 “영화 그 자체의 기원과 거의 일치하는 유일한 장르”라면 그는 영화의 기원과 일치하는 몇 안 되는 감독 중 한 명이다. 숱한 장르를 섭렵한 대가 하워드 혹스조차 “데뷔 시절 매번 그를 베끼려고 노력했다”고 회상했다. 그건 마치 “작가라면 헤밍웨이와 포크너와 존 도스 페소스와 윌라 카서를 읽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러고는 끝내 “서부극만큼은 그보다 잘 만든 것 같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저명한 평론가 하스미 시게히코 역시 “장 르누와르와 오즈 야스지로가 그러하듯이 너무 많이 알려졌지만 동시에 너무 알려지지 않은 영화작가”라고 미지의 황무지로 그를 정의했다. ‘그’가 바로 미국 서부극의 수호신이자, 미국영화 역사의 거장으로 남아 있는 존 포드다. 존 포드는 잭 포드라는 이름으로 1917년 감독 데뷔하여 1923년까지 많은 연출작을 내놓았다. 1930년대 말부터 존 포드 영화의 진수를 인정받기 시작했고, 전성기인 40년대와 50년대를 거쳐, 73년 타계하기까지 150여편에 가까운 작품을 만들었다. 그는 서부극 장르의 고전적 양식틀을 마련했고, 그 장르를 반복하면서 스스로의 작품세계를 성찰하는 자기반영의 도덕과 이상향의 세계를 만들어갔다. 그리고 서부극의 대가로 정평이 나 있지만, 작품들 중에는 아일랜드계 미국인 후손으로서 그의 정체성이 밑바탕이 된 여러 편의 현대극도 있다. 그의 대표작 14편을 상영하는 ‘존 포드 걸작선’이 8월6∼15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다. 존 포드 회고전 일시 2004년 8월6일(금)~8월15일(일)장소 서울아트시네마주최 (사)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주한멕시코대사관후원 영화진흥위원회, 한국영상자료원, 부산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문의 02-3272-8707, 02-745-3316, www.cinemathequeseoul.org상영작(14편) 밀고자(1935, 91분)/ 역마차(1939, 97분)/ 기나긴 여정(1940, 105분)/ 분노의 포도(1940, 129분)/ 나의 계곡의 푸르렀다(1941, 118분)/ 황야의 결투(1946, 97분)/ 아파치 요새(1948, 127분)/ 웨건 마스터(1950, 86분)/ 리오그란데(1950, 105분)/ 조용한 사나이(1952, 129분)/ 태양은 밝게 빛난다(1953, 90분)/ 수색자(1956, 119분)/ 말 위의 두 사나이(1961, 109분)/ 리버티 발란스를 쏜 사나이(1962, 122분) * 8월11일(수) 오후 5시에는 ‘존 포드의 영화세계’를 주제로 한 특별강좌(강사: 홍성남/ 영화평론가) 고전적 웨스턴 또는 기병대 삼부작 중 두편 <황야의 결투> <웨건 마스터> <말 위의 두 사나이>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 <분노의 포도> <역마차>(1939), <황야의 결투>(1946), <아파치 요새>(1948), <리오 그란데>(1950)는 시기적으로나 형식적으로 존 포드의 서부극을 정초한 작품들이다. <역마차>(1939)는 존 포드 서부극의 전범이라는 의미에서뿐 아니라, 서부극 장르 자체의 교과서라 부를 만하다. 탈옥수, 마을에서 쫓겨난 매춘부, 교양있는 부인, 사기 도박사, 알코올중독 의사 등 각양각색의 계층적 인물들이 같은 마차를 타고 여정을 떠나면서 벌어지는 갈등이 주를 이룬다. 존 포드가 보여준 영화 속 인디언들과의 추격전 장면은 이후 많은 영화에서 모방되기도 했다. 앙드레 바쟁은 “사회적 신화와 역사적 회상, 심리적 진실과 서부극 연출의 전통적인 테마 사이의 완전한 균형상태를 유지하는 것에 성공”했다고 이 영화를 평가한다. 전설적인 인물 와이어트 어프(헨리 폰다)를 주인공으로 한 <황야의 결투>(1946) 역시 이후 많은 서부극에 영감을 제공하고, 또 리메이크됐다. 툼스톤이라는 마을에 들어온 와이어트 어프의 형제들이 악의 무리를 몰아낸다는 고전적 서부극의 내용을 지녔지만, 개인과 사회, 방랑과 정착, 그 사이에서 겪는 영웅의 도덕적 판단이라는 존 포드의 철학적 주제가 이미 여러 장면에 스며 있다는 점에서 자기성찰적인 후기 서부극 <수색자>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의 전조로 말해지기도 한다. 그리고 <아파치 요새>와 <리오 그란데>는 이번 상영작에는 포함돼 있지 않은 <황색 리본>(1949)과 함께 ‘기병대 삼부작’으로 알려져 있다. 황야의 영웅을 원칙론적 집단의 한 인물로 옮겨놓은 듯한 이 두 작품은 그 내부에 얽혀 있는 가족애와 동료애, 질서와 원리 등을 갈등의 주축으로 놓는 한편, 막사 바깥에 버티고 있는 인디언들과의 대립을 격렬한 활극 액션 장면으로 이끌어낸다. 자기성찰의 웨스턴 <웨건 마스터>(1950), <수색자>(1956), <말 위의 두 사나이>(1961),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1962)는 서부극 장르의 거장이 된 존 포드가 자신의 작품 계보에 자아성찰의 입김을 불어넣은 작품들이다. 시기적으로 볼 때 <리오 그란데>와 같은 해에 발표된 작품이지만, <웨건 마스터>는 시스템의 요구에 구애받지 않은 채 최소한의 예산으로 만든 영화이며, 존 포드 자신이 느끼는 서부의 이상향을 풍경과 그 인물들의 관계를 놓고 살핀다는 점에서 그 시기의 작품들보다 한 걸음 앞서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영화는 정착의 대지를 찾기 위해 긴 여행을 떠나는 모르몬교의 험난한 여행을 뒤쫓는다. 정교한 스토리텔링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점 때문에 무시하기 쉽지만, 존 포드가 구현하고 싶어했던 가장 원초적인 이상향으로서의 서부극으로 알려졌다. 그에 비해 <수색자>는 존 포드 영화의 거의 모든 요소를 한 작품 안에서 다루고 있는 정점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인한 서부의 아이콘이었던 존 웨인이 노쇠한 모습으로 출연하여 인디언에게 빼앗긴 조카를 찾기 위해 어려운 혈투를 벌인다는 내용이다. 그 안에는 미국 개척의 문명사에 던지는 도덕적 회의와 의문이 곳곳에서 상충한다. 상대적으로 <수색자>에 비해 덜 알려진 <말 위의 두 사나이> 역시 그런 성찰을 다룬다. 인디언들에게 잡혀간 백인 포로들을 데려오기 위해 나선 두 주인공은 이미 인디언에 가까워진 사람들을 목도하고, 또 그들이 쉽게 백인 사회에 다시 적응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까지 확인한다. 마치 그동안 존 포드 서부극의 주인공을 대변하는 듯한 ‘말 위의 두 사람’은 ‘보안관과 군인’이다. 그리고 평론가 로빈우드가 “존 포드의 마지막 성공작”이라 부른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가 있다. 이 영화는 말 그대로 존 포드의 성찰적 서부극의 최종판이다.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로 잘 알려진, 그러나 지금은 상원의원(제임스 스튜어트)으로 활동 중인 스토다도가 친구 톰 도니폰(존 웨인)의 장례식에 찾아온다. 그러고는 진짜 진실을 술회한다. 톰 도니폰이 오래 전 유명한 악당 리버티 밸런스와 벌였던 결투를 신문기자에게 이야기하면서 영화는 진행된다.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는 <수색자>에 버금갈 만한 양식적 견고함을 지녔으며, 신화와 사실의 간극에 놓인 미국 역사에 대해 영화적인 서술 방식으로 질문한다. 존 포드의 현대극: 사회파 영화 또는 희비극의 정조 <밀고자>(1935), <기나긴 여정>(1940), <분노의 포도>(1940),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1941), <조용한 사나이>(1952), <태양은 밝게 빛난다>(1953)는 존 포드의 대표적인 현대극이다. 이 중에서 존 포드는 <밀고자> <분노의 포도>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조용한 사나이>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았다. 존 포드의 현대극들에는 강한 사회비판적 지향성과 아일랜드 후손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바탕이 된 귀향과 여정의 드라마가 주로 교차한다. 우선 존 스타인벡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분노의 포도>(작가 이론이 그를 발견해내기 이전에 이미 1940년대에 그를 예술가의 경지로 인정받게 한 작품)는 청운의 꿈을 품고 캘리포니아로 이주했지만 결국 그곳이 낙원이 아니었음을 확인하고야 마는 조드 일가의 불운한 삶을 그려낸다. 그 다음해, 리처드 레웰린의 소설을 각색하여 만든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는 1890년대 웨일스 탄광 노동자들이 겪는 사회적 불운과 저항과 단합을 한 가족을 모델로 보여준다. 이주하려는 의지와 정착하려는 의지가 다르지만, 두 작품 모두 낙원에의 절망과 희망을 말한다는 점에서 사회비판적 의지가 강하다. 한편, 희비극적 정조가 두드러지는 작품들이 있다. <밀고자>는 격렬한 투쟁지 더블린을 떠나 애인과 함께 미국으로 도피하기 위해 동료를 밀고한 주인공 지포의 이야기다. 그렉 톨랜드(<시민케인>의 촬영기사)의 촬영과 더들리 니콜스의 강한 드라마는 아메리칸드림을 위해 동료를 팔아넘긴 순진한 한 남자를 비극적 정조의 분위기로 다룬다(참고로 각본가 더들리 니콜스는 그해 아카데미 각본상을 정치적인 이유로 거부했다). 또 뱃사나이들의 끈끈한 동료애와 전쟁의 포화 속에서 넘쳐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모티브로 한 <기나긴 여정>은 존 웨인의 앳된 모습과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엔딩이 압권이다. 유명한 권투선수였던 주인공 숀 턴이 고향인 아일랜드 이너스프리로 돌아와 겪는 해프닝을 코믹하게 그린 <조용한 사나이>와 늙은 판사가 새로운 미국정치의 질서에 도전한다는 내용의 <태양은 밝게 빛난다>(존 포드 자신의 1934년작 <프리스트 판사>의 리메이크)에서는 희극의 정조가 두드러진다. <조용한 사나이>에는 존 포드의 마음의 고향이라 할 만한 아일랜드에 대한 향수가 즐거운 감성으로 배어 있다. <태양은 밝게 빛난다>에는 다양한 인종들을 ‘동등한 공동체’로 인정하는 존 포드 작품의 경향이 드러난다. 늙은 판사가 흑인들과 함께 웃고 노래하는 재판장 장면은 피터 보그다노비치의 1997년 텔레비전 영화 〈The Price of Heaven>에 영감을 준 것으로도 유명하다. 정한석 mappi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