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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2003)

기타노 다케시 초기 연출작 3편 상영

냉혹하기 이를데 없는 폭력 장면 한 가운데 시적인 정적을 끼워놓는 독특한 폭력미학의 감독 기타노 다케시의 초기 연출작 3편이 8월6일부터 서울 종로 코아아트홀에서 매주 금요일 한편씩 차례로 개봉한다. 6일 개봉하는 <모두 하고 있습니까>(사진)(1995)는 기타노의 작품목록 가운데 유일한 코미디 영화로 ‘비트 다케시’라는 이름으로 일본 텔레비전에서 활동해온 코미디언 다케시의 유머감각을 엿볼 수 있는 영화다. 머릿 속은 온통 섹스뿐이지만 연애 한번 못해본 노총각이 섹스를 하기 위해서 벌이는 황당무계한 사건사고 퍼레이드로 결국 주인공이 투명인간, 파리로 변하는 등 제어없는 ‘막가파식’ 유머의 극단을 달린다. 13일 개봉하는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1990)는 다케시의 영화 가운데 유일하게 본인이 출연하지 않는 작품인 동시에 초기작 가운데 가장 서정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쓰레기 수거일을 하는 농아 청년 시게루는 어느날 버려진 서핑 보드를 발견하면서 서퍼의 꿈을 꾼다. 여자친구와 말없이 바닷가를 오가는 시게루의 일상을 고요하게 담아냈으며 훗날 <키즈 리턴>에서 보여줬던 빼어난 성장담의 감흥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20일 개봉하는 (1990)는 잔인함과 냉혹함, 천진함과 썰렁한 유머 등 다케시의 스타일이 처음으로 자리잡은 초기 대표작. 이 영화에서 확립된 ‘기타노 스타일’은 <소나티네>와 <하나비> 등으로 이어졌다. 주유소 직원인 마사키는 소심함 탓에 동네 야구단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는 평범한 청년이다. 일하던 주유소에 야쿠자가 와서 행패를 부리자 복수하겠다는 생각으로 그는 총을 구하기 위해 오키나와로 간다. 이 곳에서 만난 이상한 야쿠자 우에하라 때문에 마사키의 친구 카즈오는 엉뚱한 여행을 계속하게 된다.

<신부수업>에서 신학생으로 변신한 권상우

최근 권상우(28)는 잇따른 말실수 때문에 입길에 올랐다. 하지원과 〈신부수업〉 관객 수 맞히기 50만원 내기를 걸었고 돈은 계좌이체로 주기로 했다는 그는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인터뷰에서 “50만원 때문에 만날 것까지는 없잖아요”라고 말했다. 이게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비난을 샀다. 2일 낮 광화문 카페에서 그를 만나자마자 “너무 생각 없는 거 아니냐”는 ‘못된’ 질문부터 시작했다. “맥락을 거두절미한 채 꼬투리만 확대해석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죠. 물론 제가 세련되거나 정교하게 말을 만들지는 못했어요. 그렇지만 그렇게 욕을 먹을 만한 이야기인지는 수긍이 가지 않는군요.” 잇단 구설, 실수는 인정하지만‥ 권상우는 솔직하다. 그 솔직함이 때로 튀는 경우도 있지만 지루하게 교과서 같은 대답만 나열하는 배우들보다 그와의 인터뷰는 훨씬 유쾌하고 편하다. “제가 연기는 좀 안돼도 순발력은 있는 것 같아요”라거나 “영화상 제도가 문제도 많고 공정성 시비도 있지만 그래도 다음 영화로 남우주연상 한번 도전하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그는 분명 ‘솔직함’이라는 무기가 가진 힘을 아는 사람이다. 〈신부수업〉은 권상우의 ‘몸짱’ 매력이 많이 드러나지 않는 영화다. 그는 시종 발목까지 덮는 검은 수단을 입고 등장한다. 신부 서품을 받기 한달 전 영성 강화 훈련에 들어간 신학생이 주임신부의 말썽쟁이 조카 봉희(하지원)를 만나면서 이래저래 당하다가 결국 사랑에 빠진다는 이 이야기에서 그는 모범 신학생 규식을 연기한다. 전작들의 권상우를 떠올린다면 “이 빌어먹을 기집애”라거나 “너 죽을래”라는 대사가 튀어나와야 할 타이밍에 “자매님은 너무 일방적이셔” 등의 ‘예쁜’ 말로 관객들의 옆구리를 간질인다. 연기는 안돼도 순발력은 좀 되죠 “〈동갑내기 과외하기〉 마지막 촬영 때 시나리오를 받았어요. 일단 제가 신부 역을 한다는 게 너무 웃기고 궁금한 거예요. 〈일단 뛰어〉와 〈동갑내기 과외하기〉로 몸짱이나 ‘싸가지’의 이미지가 굳어진 걸 좀 풀고 싶기도 했고요. 그리고 음… 충무로 캐스팅 0순위 하지원씨 덕도 보고 싶었죠. 그래서 제가 이렇게 지원씨 업고 사진도 찍었잖아요.” 〈씨네21〉 표지를 가리키며 그는 예의 장난스러운 웃음을 띤다. 솔직함이 그와 대화를 시작할 때 느끼는 첫 느낌이라면 스스로를 바라보는 냉정함은 시간이 흐를수록 느끼게 되는 의외의 발견이다. “실력보다 운이 좋았다는 다른 사람들의 평가를 인정해요. 자주 지적되는 발음 문제 같은 것도요. 하이틴 스타로 남기에는 이제 나이가 들었고, 그렇다고 연기로 인정받았다고 볼 수도 없죠. 그렇지만 제가 가진 어떤 장점이나 자산을 포기하면서 연기자가 되기 위해 발버둥치고 싶지는 않아요. 새 영화마다 조금씩 성격을 바꾸면서 성장해가는 걸 보여주고 싶은 정도죠.” 솔직함이 내 무기‥쉬는 건 나중에 〈신부수업〉 개봉을 앞둔 그는 요새 잠이 안 온다고 했다. 그에게 이 영화의 흥행 여부는 돈을 벌거나 몸값을 올리는 이상의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이번에 터지면 〈동갑내기 과외하기〉, 〈말죽거리 잔혹사〉에 이은 3연타석 안타가 되는 거예요. 저한테는 반짝스타라는 비판에서 벗어나 관객으로부터 믿음을 얻는 배우로 인정받는 계기가 될 것 같아요.” 다음 영화 〈야수〉(가제)에서 권상우는 교복과 학교를 드디어 졸업하고 “깡패보다 더 깡패 같은 형사”로 출연하게 된다. 〈말죽거리 잔혹사〉의 유하 감독과도 한 작품 더 하기로 했단다. 9월부터는 개인적으로 가장 친한 배우인 송승헌과 함께 텔레비전 드라마를 찍는다. 쉴 틈이 없어 보인다. “휴식이요? 나중에 몰아서 쉬려고요. 평생 연기를 하겠다는 생각이 없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는 동안은 쉬지 않고 일하고 싶어요. 시에프요 열심히 할 맘은 있는데 요새 경기가 안 좋아서 그런지 안 들어오네….(웃음)”

[도쿄] 야마토, 30년만에 스크린을 항해하려나

야마토가 다시 한번 우주항해의 길에 오를 수 있을까? 20여년 만에 발표된 <우주전함 야마토>의 극장판 신작 계획이 저작권 문제 등을 놓고 처음부터 마찰을 빚어 야마토의 ‘부활’을 기다리던 팬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올해는 마쓰모토 레이지의 <우주전함 야마토>가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으로 등장한 지 30년이 되는 해. 이에 맞춰 얼마 전 야마토 시리즈를 탄생시켰던 프로듀서 니시자키 요시노부 중심으로 2006년 여름 <우주전함 야마토 부활 편>(가제)을 극장에 공개하는 계획이 발표됐다. 시대는 전작으로부터 약 20년 뒤인 2222년. 지구가 반년 뒤 이동 블랙홀에 빨려들어간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 인류가 2만7천광년 떨어진 별에 이주하기로 결정하지만, 지구인을 실은 함단이 이동 중 공격을 받으며 야마토가 반격한다는 스토리다. 죽은 모리 유키 대신 딸이 나오는 등 새로운 캐릭터도 대폭 등장시킬 예정이다. 걸림돌은 원작자인 마쓰모토와 마쓰모토를 70년대 중반 발굴하다시피 했던 니시자키 사이에 남아 있는 갈등이다. 저작권을 두고 오랜 세월 대립하며 급기야 법정까지 갔던 이들은, 지난해 니시자키가 영화를 제작하고 마쓰모토가 총설정·디자인·미술 등 저작권을 가져 공동 저작자가 되기로 하며 일단 화해했다. 하지만 이번 부활 편을 니시자키쪽이 마쓰모토쪽에 어떤 구체적인 이야기도 하지 않은 채 전격 발표하자, 마쓰모토는 “영화를 제작하는 건 자유”지만 “그림의 저작권이 나에게 있고 이동 블랙홀 설정도 내가 갖고 있던 구상”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미 각각 손잡은 제작사가 있어 타협도 쉽지 않고 구설수에 올라 제작비를 모으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에, 2006년 공개는 힘들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우주전함 야마토>는 안노 히데아키 등 일본 오타쿠 세대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작품이다. 이 작품을 배경만 우주로 바꾼 일본 군국주의의 부활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디테일한 전함의 묘사나 스토리 전개는 어른들을 매료시켰다. 78년 첫 극장판 공개 당시 비오는 신주쿠 거리를 메운 성인들의 행렬은 ‘사회적 사건’이 됐고, 83년까지 극장판 4편이 공개돼 모두 1천만명 이상의 관객을 모았다. 도쿄=김영희/ <한겨레> 기자

귀여운 여인과 왕자님

가지고 싶지만 선뜻 가지고 싶다고 표현할 수 없는 대상 앞에 서면 우리는 초라해진다. 위축된 자신을 추스르는 제일 효과적인 방법은 재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한번쯤은 그럴 게 아니라 선망의 눈길을 가려주는 가면을 쓰고 주위를 맴도는 것은 어떤가. 기회가 생길 때까지. <파리의 연인>이 원하는 대상의 주위를 맴도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는 공간성이다. 파리는 자유다. 파리는 불꽃이다. 파리는 온갖 잡스러운 계층과 물건이 뒤섞여 요동치는 불가마이다. 명품숍이 즐비한 샹젤리제 거리 한구석에 더러운 거지가 뒹구는 그 자체가 예술일 수도 있음을 천연덕스럽게 전시하는 오만한 과시장이다. 그런 곳에서 잿빛의 신데렐라는 숨을 쉰다. 상상할 수조차 없는 차단된 공간에서 은빛성의 왕자를 꿈꾸는 것이 아니다. 쇼윈도의 화려한 명품을 환상할 수 있는 광장이 아니면 안 된다. 그곳이 태영(김정은)이 살고 있는 곳이고, 캔디가 살았던 곳이고, 명랑소녀가 재잘거리던 곳이기도 하다. 자주색 이브닝 드레스를 입고서 무일푼의 소녀가 슬픈 듯, 기쁜 듯 개념없이 들락거린다. 우리 속의 파리는 언제든 울음 섞인 눈망울에 장난스러운 입가의 미소를 지닌 귀여운 여인을 탄생시킨다. 두 번째는 의외성이다. 철옹성 같던 벽이 우리에게 슬금슬금 내려온다. 정감의 일렁임 앞에서 수줍은 듯 서툴다. 기주(박신양)가 찜질방에서 서른개짜리 계란 한판을 들고 묻는다. “계란을 세개두 팔어?” 파리의 호화판 아파트에 있어야 할 것 같은 그를 찜질방으로 데려오고 바닥에 질펀하게 늘어져 자는 태영 옆으로 끌어다 앉힌다. 원하는 대상의 주위를 머뭇거리며 기회를 엿보는 이들에게 의외의 순간들은 삶의 기쁨이다. 불현듯 “자고 갈래?” 그 한마디면 온몸이 녹아내린다. 그래서 자꾸 그 앞에 서면 눈물이 난다. 엄마의 태반처럼 이유없이 자양분을 공급해주고 살게 해줄지도 몰라서. 가치가 정확히 등가로 교환되어야 하는 시장논리에 혹사당하는 개인들은 언제든 왕자가 던지는 생각없는 한마디에 울고 웃는다. 기주가 살고 있는 곳, 그곳은 원칙성과 의외성이 무시로 자유롭게 넘나드는 곳이다. 세 번째는 진정성이다. 진심으로 승부하는 것이다. 상처받은 영혼의 외로운 방황 앞에서 가진 것 없는 자들은 또 머뭇거리게 마련이다. 수혁(이동건)은 왕국의 서자이기 때문에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주변인이기 때문에 주목받는다. 중심 인물이 아니면서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온몸으로 진실성을 확보해야 한다. 그래서 그는 유일한 재산, 가슴속 “안에는 니가 (오롯이 버티고) 있다”고 호소한다. 그러나 이들 셋은 갈등하는 평행선이다. 파리의 부유하는 욕망과 원칙에 충실한 간혹의 예외는 진실성이 부담스럽다. 그래서 태영은 온몸으로 부서져오는 수혁의 진실을 자꾸 비켜선다. 예외적으로 눈길이 가는 귀여움을 휴대하기에는 입고 있는 왕자의 복장이 가리고 선다. 그래서 기주는 의외성을 일상으로 정착시키고 싶지 않다. 덕분에 우리는 어느 것이나 즐기고 있다. 귀여운 여인의 귀여운 짓과, 드넓은 넥타이의 왕자님의 절제된 듯한 어눌함과, 막 입은 듯한 점퍼 차림의 방랑자의 턱수염까지. 현실의 무시무시한 협박과 고통 속에서도 우리는 주말이면 어김없이 텔레비전 앞에서 즐겁다. 때로는 긴장없이 욕망을 일렁거리게도 할 수 있고 원칙에서 벗어나는 의외의 사건들의 묘미 속에 잠길 수도 있고 비현실적인 순정파들의 체하는 모양새에 거북해할 줄도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한마디로 재미있다. 그래서 어느새 시청률은 40%를 넘겼다. 그런데 재미있게 몰입된 한 꼭지에는 늘 석연치 않은 순간이 있다. 드라마 속 이미지를 패션을 통해 소비해보고 싶은 소비자의 일렁이는 욕망에 철저하게 복속당하는 노예근성이 확인되는 때이다. 파리연인의 로맨틱 코드를 잡으라는 지상명령이 떨어졌나. 모두들 열심히 찾는 중이다. 그들의 의상, 그들의 소품을. 줄줄이 이어진다. 파리로의 여행객이. 중국어가 판치는 제2 외국어 시장에서 외면받아 비명을 지르던 불어가 드디어 기염을 토한다. ‘보라! <파리의 연인>이 우리를 살렸노라.’ 독어 상품은 없는지. 왜 프랑크푸르트에는 연인이 살지 않는가. 드라마가 가진 흡인력에 빨려들어가면서 자신도 모르게 낯익은 진열대의 상품을 고른다. 왕국은 파리에 있지 않다. 재벌 2세의 의외성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가면을 어떻게 쓰는지 가르쳐주는 드라마의 세계, 그곳이야말로 트렌드를 만드는 곳이고 욕망이 폭주하는 곳이고 그곳이 바로 왕국이었다. 素霞(소하)/ 고전연구가

[파리] 더빙은 영화에 대한 모독인가?

프랑스에서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가면 영화 제목과 시간 밑에 약어로 표기된 몇 글자가 눈에 띈다. 눈 여겨 살펴보면 ‘VOST’ 또는 ‘VF’라고 적혀 있는 이 약자들은 영화가 원어로 불어 자막과 함께(VOST) 상영되는지 아니면 불어로 더빙이 되어(VF: 이 경우에는 원어가 불어로 된 경우와 외국어를 불어로 더빙한 경우를 공히 포함한다) 상영되는지를 표시해준다. 최근에는 대부분의 극장에서 원어를 불어 자막과 함께 상영하는 경우가 많지만, 시간대에 따라 불어로 더빙된 필름을 상영하는 극장들도 있다. 텔레비전의 경우, <아르테>와 같은 특정 채널의 특정 시간대를 제외하고 외국영화는 대부분 불어로 더빙되어 방영된다. 더빙은 불어로 ‘두블라주’(Le doublage)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중의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더빙이라는 뜻과 함께 연극이나 영화에 있어서 등장인물의 대역을 의미하기도 한다. 프랑스에서 외국영화를 불어로 더빙하기 시작한 것은 이미 1930년대 초부터이며, 1947년에는 외국영화의 경우 프라스어로 더빙을 할 것을 의무화하는 법률이 제정되기도 한다. 이는 불어와 프랑스 문화를 보호하려는 정책의 일환이기도 하지만 더빙이 프랑스 영화산업에 끼치는 경제적인 효과를 고려한 것이기도 하다. 이후 프랑스는 더빙에 있어서 세계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한다. 프랑스에서 더빙의 가장 성공적인 경우로 예를 드는 것은 루이 말의 연기 지도를 받고 미셸 뒤쇼소이가 말론 브랜도의 목소리 연기를 맡았던 영화 <대부>(사진)이다. 현재 프랑스에는 40여개에 달하는 더빙 전문 회사가 있으며, 약 600명에 달하는 더빙 전문 배우들이 있다. 무성영화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사운드가 영화에 등장한 이래로 영화는 이미지와 소리의 예술이 되었다. “한편의 영화가 전세계에 배급될 때, 자막과 함께 상영되면 그 영화는 본래의 힘의 15%를 잃는 반면, 잘 처리된 더빙과 함께 상영된다면 10%의 힘만을 잃는다”(앨프리드 히치콕). “더빙은 영화에 있어서 오욕이다”(장 르누아르). 이 두 인용구는 영화에 있어서 더빙에 대한 대립적인 견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실제로 더빙에 대한 인식은 세대에 따라(프랑스의 경우 연령층이 높아질수록 더빙을 선호한다), 또 매체나 영화의 성격에 따라(텔레비전이나 외국 시트콤 또는 애니메이션의 경우 더빙을 많이 하고 있다) 다르게 나타난다.

세계가 바라보는 한국영화 [5] - 일본 ②

<키네마준보> 6월 하순호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거듭 되는 만남의 유예 - 우다가와 유키히로/ 영화평론가 현재 한국영화의 융성은 90년대 말부터 시작된 것이지만, 한국영화가 새로워졌다는 선명한 느낌을 최초로 준 것은 허준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였다. 그 이전의 한국영화가 전반적으로 감정표현이 터무니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심한 경향이 있었던 데 비해 상당히 억제되고 자연스러운 게 신선했기 때문이다.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이재용 감독도 허 감독처럼 98년에 데뷔했고, 나이는 2살 아래인 65년생이다. 그도 억제하는 스타일이 특징이다. 하지만 영화 제작 스타일을 보면 허 감독과 대조적이라 해도 좋을 만큼 다르다. 허 감독이 등장인물의 감정, 기분을 되도록 자연스러운 감촉으로 전하기 위해 과장된 몸짓을 배제하는 데 비해 이 감독은 장면의 자연스러운 분위기보다도 작품 전체의 구도와 계획을 우선시한다. 그의 데뷔작 <정사>는 주연배우인 이정재와 이미숙이 심야의 공항에서 둘만 있게 되는 장면부터 시작하지만 여기서 둘은 아직 만나지 않는다. 거기에선 그저 함께 있게 된 관계없는 두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만남은 다음으로 유예되고 사랑이 시작되는 것은 또 그 다음이다. 일본에선 2001년 먼저 공개됐던 두 번째 작품 <순애보>에선, 만남이 늦춰지는 것이 더욱 철저해진다. 서울의 공무원 이정재와 도쿄 여고생 다치바나 미사토의 일상이 어떤 접점도 없이 반복되며 그려지고 실제 만남은 끝나기 직전에 이뤄져 거의 연애영화라고 말하기 힘든 기묘한 영화였다. 사랑의 만남을 되도록 뒤로 미루려고 하는 이재용의 구도는 면밀히 계산된 구성과 섬세한 손질로 달성된다. 고요한 표정 아래 마음의 열정을 품고서 주인공들은 만남을 기다린다. 세 번째 작품 <스캔들…>에선 이전 두 작품과 같은 구도는 눈에 띄지 않는다. 배용준과 전도연은 영화가 시작하면 곧 만나고 이미숙과는 이미 잘 아는 사이다. 구도와 계획의 주체는 작자로부터 등장인물로 옮겨졌다. 라클로의 원작 <위험한 관계>를 본떠 이조시대의 연애유희에 숙련된 여자와 남자가 순진하고 정조 높은 여자를 노리는 게임을 꾸민다. 계획은 있지만 감정은 억제되고, 작자의 의도는 눈에 띄지 않는 ‘쿨’한 스타일이 유지된다. 그리하여 여기서도 사실은 만남의 유예가 일어난다. 부도덕한 계획이 자신들도 예상하지 못했던 진실한 사랑과의 만남을, 나중에 일으키고 말기 때문이다. <키네마준보> 6월 하순호 <실미도> 액션의 극한에서 개인의 존엄을 묻는 역작 - 이토 다카시/ 아시아 오락문화 연구가 1968년 4월, 한국 정부는 사형수와 무기징역수 등으로 특수부대를 편성했다. 무인도에 모여 3년에 걸친 가혹한 훈련을 받은 그들의 임무는 단 하나. 북한에 잠입해 김일성 주석을 암살하는 것이었다. 설정만 보고 어떤 이는 로버트 알드리치의 <특공대작전>을, 어떤 이는 히지가타 데쓰토가 만든 자주영화의 쾌작 <특공임협자위대>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실미도>는 이런 통쾌한 액션의 계보로 연결될 수 없는 작품이다. 이런 전대미문의 설정이 사실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이다. 강우석 감독은 “재미있고 우스운 영화가 돼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지만, 사실 <실미도>는 그 말대로 장식적인 구도나 기교적인 편집으로 작가성을 과시하지 않는, 거칠고 세련되지 않은 영화로 완성됐다. 그렇다고 시종 무겁고 괴로운 공기가 짓누르는 ‘사회파식’ 고발영화라는 것은 아니다. 관객서비스랍시고 필요없는 여성 캐릭터를 삽입한다든지, 쉬어가는 회상신을 집어넣는 잘못된 계산은 배제하면서도, 부원들이 훈련받는 장면까지는 모험소설적인 기분까지 든다. ‘사실에 근거한 영화’라는 무게가 효과를 발휘하는 건 후반이다. 섬에서 가혹한 훈련이 계속되는 사이 한반도의 정치 상황은 대결로부터 대화로 옮겨가고 특수부대는 무용지물을 넘어 방해물이 된다. ‘범죄자로 죽을 것이냐, 영웅이 될 것이냐’며 몰아세우던 국가가 이번엔 ‘이제 너희들은 필요없다’며 그 존재를 말살하려는 것이다. 이런 부조리에 남성들의 혼이 타오른다. 그들의 마음에 남아 있던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이 일어선다. 적은 국가권력, 표적은 청와대. 목숨을 건 반란이 시작된다. 그 싸움은 복수를 위한 것도, 살아남기 위한 것도 아니다. 다만 자신들이 존재했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 그래서 그 싸움의 한가운데 부대원들은 자신의 피로 이름을 써 남긴다. 대원에 설경구, 지휘관 안성기라는 연기파를 모아놓은 연기진이 여기서 살아난다. 이 영화가 액션영화의 포장 아래서도 어떤 인간도 존엄하며 그것을 짓밟는 어떤 이도 용서받을 수 없다는 보편적인 주제를 달성하는 것은 그들의 연기력이 있기 때문이다. 일찍이 <투캅스>를 봤을 때 실망했고 평이 좋았던 <공공의 적>에도 별로 공감 못했지만, 이번만은 강우석에게 경의를 표한다. <실미도>는 존 프랑켄하이머를 비롯해 지금은 사라진 기골 있는 영화작가의 작업, 또는 조지 C. 스콧의 분노 넘치는 역작 <격노>를 계승하는 작품이다. 한국의 현대사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돼야 할 사실을 품고 있는 것일까. 영화예술 407호 2004년 봄호 <태극기 휘날리며> 화려한 가식미, 한국전쟁의 본질을 흐리다 - 모리모토 수이치/ 프리 저널리스트 강제규 감독의 전작 <쉬리>가 일본에서 공개된 지 4년이 지났다. 남북 분단의 현실과 러브스토리를 엮어가며 할리우드에 뒤지지 않는 액션 묘사와 스펙터클을 더해 오락영화로서 대단한 카타르시스를 안겨주었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방영돼 무심코 채널을 돌리다가 보았지만, 어느덧 영화에 푹 빠져 끝까지 보고 말았다. 한석규와 김윤진 등 배우진, 특히 인민군을 연기한 최민식은 매력적이라 테러리스트라지만 무심결에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쉬리>의 광채는 아직도 퇴색하지 않았다. 그 강제규 감독의 신작 <태극기 휘날리며>는 지난 4월3일 기준으로 1109만명을 동원해, 한국에서 최고의 관객 기록을 세웠다. 대략 국민의 4분의 1이 보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처음부터 세계 배급을 염두에 두고 전례가 없는 규모로 촬영했으며,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형제애를 그렸다고 한다. 초대작이라는 선전문구에 일말의 불안을 안고 보았더니…. 결혼을 앞둔 형 진태는 아버지가 죽은 뒤 구두닦이를 해 가계를 지탱하면서 동생 진석의 대학 진학에 꿈을 건다. 일만 하는 어머니, 약혼자의 동생들과 함께 가난하지만 행복한 생활을 해왔지만 전쟁이 터지자 형제는 강제 징용을 당하고 만다. 진태는 전투에서 공을 세워 동생을 제대시키려는 생각으로 귀신처럼 싸우며 화려한 전과를 올려간다. 부하의 죽음에도 개의치 않고 아무렇지도 않게 포로를 학대한다. 진석은 형의 그런 변모와 형의 희생으로 전쟁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반발하지만…. 미국과 중국의 개입으로 공격과 수비가 정신없을 정도로 바뀌는 역사적 사실에 바탕해 그려낸 전투장면은 과연 시간과 돈을 투자한 만큼 박력이 있었지만,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너무나 유사해 흥미가 줄어들고 말았다. 설정과 묘사에서 노골적이기 그지없는 미국영화를 모방하는 것이 한국영화의 활력이라고 너그럽게 봐주는 시기는 지났다고 생각했건만. 그 가운데 서울의 점령군이 남북 진영으로 교체될 때마다 인민재판으로 격렬한 보복전쟁을 벌인 것을 시사하는 장면이 있어 잔혹한 전투장면보다도 더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1천만 이산가족의 문제를 포함해 전쟁의 말할 수 없는 부분과 현대에 대한 영향에까지 파고든 묘사를 기대한 사람들이 한국에서도 적지 않았던 모양이지만, 극중에선 깨끗하게(?) 비켜갔다. 거기까지 갔더라면 파탄이 있더라도 괴작이 됐을지도 모르지만, 감독 자신이 복잡한 구성은 피해 어느 정도 도식화된 스토리로 말하는 것을 선택한 면이 있다. ‘격화소양’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게끔 영화는 어디까지나 형제 두 사람의 이야기에 수렴된다. 그 밖의 등장인물은 그들의 갈등을 높이기 위한 역할만 우선돼 각각의 캐릭터를 개성 있게 그려냈던 <쉬리>에 비해 떨어지는 느낌이다. 역시 대작인 만큼 미리 최대공약수로 정리되는 운명을 거스르진 못했나보다고 한탄을 했지만 2시간 반의 상영시간이 결코 고통스러웠던 것은 아니다. <쉬리>에서 보여줬던 세련된 연출과 적확한 묘사의 화려한 맛은 건재하다. 그렇기 때문에 다음엔 대작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좀더 마음대로 만든 작품을 보고 싶다.

세계가 바라보는 한국영화 [6] - 프랑스

<카이에 뒤 시네마> 590호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불가시성을 향해가는 홍상수- 실뱅 쿠물/ 영화평론가 창조자가 자유를 행하는 순간에 그 자유의 일부가 부족할 수 있다는 것이 의외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배우 유지태가 전해준 홍상수의 다음 말을 생각한다면 그 모순은 약해진다. “사람들은 제가 현실에 대한 영화를 만든다고 하죠. 착각입니다. 전 제가 생각해낸 구성에 따라 영화를 만듭니다.” 창조자 자신의 전권을 선언하자마자 그 뒤를 잇는 것은 바로 구성이다. 그것은 ‘현실’에 휩쓸려가는 금덩이가 걸러질 수도 안 걸러질 수도 있는 체가 되어준다. 이번에는 홍 감독이 무엇을 가져올 것인가? 자신을 위로해주는 청년의 스웨터 속으로 가소로운 듯 울고 있는 젊은 여자의 코. 베드신의 리듬에 따라 요동치는 분홍색 이불의 끝부분. 앞장면에서 자기는 절대, 절대, 절대로 부천에 안 가겠다고 장담하던 친구 곁에 앉아 부천을 향해 택시 타고 가는 청년의 보일 듯 말 듯한 미소. 별것 아니기도 하고, 많은 것이기도 하다. 최소한으로 보자면 일련의 가슴 뭉클한 묘사다. 최대한으로 보자면 전작에서 가져온 테마들, 나아가 전체 서사의 주요 부분들이다. 그러나 <생활의 발견>의 ‘밀착과 환기(통풍/공간두기)의 균형’(<카이에 뒤 시네마> 586호) 이후 이번에 이 이야기를 실어가는 것은 환기이다. 확실히, 환기를 통해 편집에서 의외로 가장 아름다운 발견들을 하게 된다. 또 다른 침실장면 뒤에 떠오르는 공항의 하늘, 몰이해가 섞인 부드러운 시선 다음에 내리는 눈, 청년이 여자의 신랄한 독설에 당하고 자기방어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클로즈업으로 보이는 꽃무더기. 환기는 이번에는 컷 안에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편이다. 대화장면에서 대화를 지배하고 이끌어가는 사람은 항상 화면의 왼쪽에 위치한다. 처음에 인물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더니 카메라는 곧 이동해서 왼쪽으로 더 기울어지며 약간 왜곡 효과를 주고, 다른 곳에 있고 싶어하는 이의 물리적인 존재감을 확대한다. 그 결과 심정적 장점으로는 그 인물의 불편함을 더해주고, 교육적 장점으로는 장면의 가독성을 유도한다.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에 알게 된다. 잊혀지지 않는 식당의 말싸움 장면에서 그 사건의 진정한 패자는 공격받는 이가 아니라는 것을. 후퇴라는 인상은 어디서 비롯되는가? 영화의 한 대사가 실마리가 될 수 있다. “둘이 같이 들이닥치는 건 웃기잖아.” 예비감독인 헌준이 문호에게 선화가 일하는 술집 안으로 따라오지 않게 하려 하면서 하는 말이다. (동시등장의 시각적 효과를 예상하는) 연출가의 말이기도 하지만 라이벌에 대해 우위를 차지하려는 기만이 가득한 옹색한 술수이기도 하다. 실마리는 홍 감독이 자신만의 수완을 경계하고 감독으로서 갖고 있는 재능을 비웃기 시작했다는 것에 있다. 형식에 대한 관심에서 떠난 그는 시간에 따라 점점 그 형태에 머물게 될 테고 언젠가 고전주의, 달리 말해 불가시성에 이르게 될 것이다. 어떤 점에서는 이는 이미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가 전하는 ‘메시지’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세 사람의 이야기는 엄정함, 의무감, 곧은 감정, 이런 것은 모두 옛날 일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이제 우리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그냥 가는 대로 두자. 마시고, 아무렇게나, 어떻게든, 서로 사랑하고, 그러다 보면 알게 될 테지. 앗, 눈이 오는군. 영화라는 층위에서는 촬영감독이 ‘과거/현재’, ‘꿈/현실’ 사이의 구분을 너무 구현하지 못하게 한 것은 실수이다. 그때부터는 두 시기와 세 계절이 은근히 섞여가서 여름에 갑자기 눈이 오기 시작하는 것에 대해 거의 무감각해지게 된다. 구성의 불가시성을 노리는 홍 감독은 그 구성이 가진 표현력을 뺏어버린다. 자신의 자유를 확인하는 바로 그 행위 가운데 자유를 제한하는 일에 가담하는 것이다. 구성 중인 작품이라는 층위에서는, 반면 이 위기로서의 영화는 매우 자극이 된다. 한때 중간 단계로 인식되던 그 일말의 ‘물렁함’(무기력함)조차 흥분과 다음에 올 것에 대한 즐거운 기다림의 원천이 된다. 비평의 기준이 구체에서 전체로 옮겨가고 있기 때문에 이 영화를 결국에는 그 자체로서 좋아할 수 있게 하는 두 가지를 주장해본다. 바로 소주와 신도시다. 소주는 말콤 로리에게 테킬라가 그랬듯이, 베를렌에게 압생트가 그랬듯이, 홍상수에게 술이자 세계관이다. 투명하게, 정신 속에 맑고 푸르게 흐르고 있다. 신도시를 이해하려면 거기서 자랐어야 할지 모른다. 부천은 다른 신도시처럼 낮에 하얗고 저녁에 붉은 같은 색과, 같은 불빛에, 같은 가능한/불가능한 이야기들이 펼쳐지는 곳이다. 도시도 아니고 시골도 아니라는 것, 그곳에서 펼쳐지는 것들과 거기서 진행되는 것들이 전에 알려진 그 어떤 것과도 닮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퍽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 중에 소주와 신도시의 공통점은 정상적인 시공간의 인식을 깨고, 명상이나 갑작스럽게 나타나는 아름다움이나 우리 속에 설레는 에너지 같은 것에 깃든 듯한 고유한 지속성을 안겨준다는 데 있다. 지속에 대한 이 작업이 형태의 불가시성을 향하는 홍상수와 함께할 것임이 틀림없다. <리베라시옹> 2004년 5월17일자 <올드보이> 맥이 없는 스릴러, 밀려드는 피로감 - 필립 아쥬리/ 영화평론가 쿠엔틴 타란티노가 <올드보이>를 칸영화제 수상작으로 선정한 이후 이를 둘러싸고 이견이 분분하다. 일본 만화를 각색한 별난 한국영화 <올드보이>는 모든 장르와 해괴한 짓들(불법감금, 만두 먹는 장면, 옥상 자살 소동 등)로 이루어졌으며, 이 영화를 보려면 다른 영화들보다 네배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영화가 모든 사람에게 팝콘과 콜라를 먹으며 즐기는 것이 될 수는 없다. 영화를 보는 눈이 어느 정도 갖추어진 관객에게 <올드보이>는 되지도 않는 이야기일 뿐이다. <올드보이>를 둘러싼 견해는 극단적으로 달라진다. <복수는 나의 것>이 호평을 얻은 뒤 생긴 박찬욱의 프랑스 팬클럽은 한계를 두려워하지 않는 감독의 의지를 열렬히 지지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이들(박찬욱 팬클럽을 제외한 지구의 모든 사람들)에게 <올드보이>는 별다른 관심거리조차 되지 않는다. 비디오 게임의 리듬으로 두 시간이 지나갈 뿐 이야기와 상황 전개에서 개연성이나 치밀함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어쨌든 <올드보이>는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하는 영화이다. <카이에 뒤 시네마> 591호 <살인의 추억> 역사를 비추는 어두운 거울 - 앙트완 티리용/ 영화평론가 제목에서 말해주듯 <살인의 추억>은 사건 당시의 자료들이 픽션을 통해서 어떻게 다시 세상에 나오는지를 보여준다. 영화 속에 나오는 사건의 장소들은 망각의 장소들이며, 이 장소들은 영화를 시작하게 하고 고고학적인 의미를 지닌 채 결론을 맺게 한다. 이러한 장소들에서 시작된 영화의 도입부에는 어떠한 용이함도 보이지 않는다. 봉준호는 이 장소들을 복잡한 이야기와 범죄수사물 영화의 액션, 그리고 역사를 가시적인 것으로 만들려는 끈질긴 작업에 유기적으로 연계하려는 과감함을 보여준다. <살인의 추억>에는 연쇄살인범을 다룬 할리우드 장르영화에서 볼 수 있는 두 가지가 빠져 있다. 첫째, 노력의 결실, 즉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수사의 결말이 없다. 둘째, 규칙적인 데쿠파주, 즉 수사의 노하우나 현란한 테크놀로지를 보여주지 않는다. 봉준호의 미장센은 한편으로는 힘과 폭력,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우스꽝스럽게 반복되는 실수의 코믹함을 끌어낼 줄을 안다. 범죄수사물 영화의 복잡한 장치는 요란하게 시작됐다가 썰렁하게 끝나는 고풍스런 코믹 연극 무대가 된다. <살인의 추억>에서는 같은 장르에 지나치게 많이 나오는 주검의 규칙적인 발견이나 형사와 범인의 만남 대신 좁혀지지 않는 시간의 간극이 게임을 만들어준다. 라디오 프로에서 흘러나오는 메시지는 매번 사건을 예고해주지만 형사들은 늘 한발 늦는다. <살인의 추억>은 서로 만나지 않는 극들로 이루어진 영화이다. 그리고 그것은 당시 한국의 정치 상황에 대한 올바른 시각을 방해하는 일련의 냉혹한 현실을 암시해준다. 간간이 들려오는 민방위 훈련 경보 소리, 텔레비전 뉴스 화면 등이 당시의 상황을 드러내주는 다큐멘터리적 요소들로 드러난다. 결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가면 속에 감추어진 역사는 따로 있지 않고 수사가 진행되는 방향을 따라 나란히 전개되며, 이것은 <살인의 추억>을 성공의 길로 이끈다. 전체주의 시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획일화 정책을 위해 망각을 유도하는 시기에 이러한 기억은 드문 것이다. 그리고 봉준호와 같은 시네아스트가 장르영화와 역사 한편에 숨겨진 기억 사이에 교차하는 긴장관계 위에 하나의 정치를 구성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결코 헛된 일이 아니다.

재미교포 만화감독 피터 정의 <이온 플럭스> 영화화

재미교포 애니메이션 감독 피터 정(Peter Chung)의 출세작 <이온 플럭스(Aeon Flux)>가 실사 영화로 제작된다. 피플지 최근호에 따르면 지난 95년 미국 MTV에 방영돼 인기를 끌었던 애니메이션 시리즈 <이온 플럭스>가 영화화된다. 2000년 <걸파이트>로 선댄스 영화제 대상을 받았고 칸영화제에서도 주목을 받았던 일본계 미국 여류감독 캐린 쿠사마(Karyn Kusama)가 감독하고 영화 <몬스터(Monster)>로 올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샤를리즈 테론(Charlize Theron)이 주연을 맡는다. 이달 중순 베를린에서 첫 촬영에 들어갈 예정. <이온 플럭스>는 MTV의 텔레비전 시리즈로 제작된, 총 7개 에피소드로 구성된성인 애니메이션. 원제는 극중 여주인공의 이름이다. '이온'은 '영원'이란 뜻이고,'플럭스'는 '흐름'이란 말. 깡마르고 각진 얼굴, 그러나 육감적이고 차가운 여전사로 시간과 공간이 불분명한 미래 도시에서 살아가는 특수요원 이온 플럭스. 이 작품은 정의의 편인지 악의 편인지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녀가 그 누구보다도 강력한 힘과 뛰어난 두뇌로 선과 악의 모호한 경계에서 전체주의 국가의 상징적 인물인 트레버 일당과 대결을 벌이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피터 정(오른쪽 사진)은 기발한 상상력으로 애니메이션의 본고장 미국에서도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 전세계적으로 마니아층을 거느리고 있는 애니메이션 작가. 선과 악의 대결구도가 뚜렷한 권선징악적 내용의 기존 애니메이션과는 달리 그의 작품은 선과 악의 경계 자체가 모호한 게 특징. <이온 플럭스>에서도 여주인공이 악당에게 패배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나 관객의 허를 찌른다. 피터 정은 외무공무원 집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여러 나라를 옮겨 다니며 살았다. 미국에 정착한 중학교 시절부터 애니메이션에 빠졌고 고교시절에는 직접 만화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1979년부터 칼아츠(캘리포니아 아트 스쿨)에서 애니메이션을 공부하고 1981년에 디즈니 스튜디오에서 일했으나 2년 후 퇴사한 뒤 안티디즈니적인 작품을 많이 만들며 명성을 쌓았다. 지난해에는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 페스티벌(SICAF) 심사위원으로 한국을 찾았고, 최근 개봉한 허영만의 동명만화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망치>의 스토리보드 작업에도 참여하는 등 한국 애니메이션 제작사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지난해 <애니 매트릭스>에 이어 얼마전 개봉한 데이비드 토히 감독의 영화 <리딕-헬리온 최후의 빛>의 애니메이션 버전인 <애니 리딕-다크 퓨어리(The Riddick Animated-Dark Fury)>로 한국팬들을 만났다. (서울=연합뉴스)

양키 고 홈, 위드 미

“양키 고 홈.” 영화 <헤드윅>의 주인공 ‘한셀’의 망토 오른쪽에 적힌 글귀다. 한셀은 ‘미국물’이 든 동독 꼬마였다. 어릴 때부터 미군 라디오 방송에 빠졌다. 데이비드 보위에 열광했고, 루 리드가 우상이었다. 그는 베를린의 철조망을 넘어 아메리칸드림을 꿈꾼다. 미군 흑인 병사가 그의 꿈을 현실로 바꿀 청혼을 한다. 한셀이 ‘여자’가 되는 조건으로. 한셀은 성전환 수술을 받고 헤드윅이 된다. 동독을 떠나기 전, 한셀이 드랙쇼를 하다 망토를 펼친다. 그 망토의 오른쪽에는 “양키 고 홈”, 왼쪽에는 “위드 미”가 박혀 있다. 태어난 땅에서 자기 자신으로 살지 못하는 이들의 슬픔을 이토록 간결하게 요약한 말을 본 적이 없다. 더구나 ‘진보’물까지 먹은 성소수자라면, 양키에 대한 감정은 양가적일 수밖에 없다. 양키도 싫지만, 한국이 더 싫은 자들의 비애. 나의 ‘접시’는 한셀의 라디오다. 요즘 미국병이 단단히 들었다. 날마다 미국 드라마만 보고, 미국 토크쇼만 즐긴다. ‘접시’를 달고 난 뒤에 생긴 병이다. 접시와 케이블을 타고 퍼지는 일종의 돌림병이다. 나야 케이블 텔레비전도 안 들어오는 후진 아파트에 살다가 겨우 한해 전 접시를 달고 미국물이 들었지만, 이미 수많은 언니 오빠들이 집에 앉아서 미국물을 먹었다고 한다. 겨우 <프렌즈>와 <섹스 & 시티>에 맛을 들일 무렵, 이미 두 시리즈는 굿바이를 준비하고 있었다. 뒤늦게나마 ‘어메리칸’ 프렌즈를 알게 되고, 뉴요커의 환상에 빠진 것만으로 감사할 따름이다. 딱 1년만, 뉴욕에서 살아보는 것은 새로운 꿈이 됐다. 늦은 귀가 탓이 크다. 도저히 밤 10시에 시작하는 SBS 드라마 스페셜도, MBC 특집기획 드라마도 볼 수가 없다. 어제 나가서 오늘 들어오니까. 집에 도착하면 공중파에는 시시껄렁한 프로그램들만 나온다. 채널은 당연히 위성방송으로 넘어간다. 자정 넘어 시작하는 OCN의 <섹스 & 시티>를 보면 ‘다행’이다. 대개 도착해서 리모컨을 누르면 온스타일의 <오프라 윈프리 쇼>가 나오고 있다. 새벽 1시를 넘긴 시간, 마침 어머니는 방에서 주무신다. 지상 최대의 토크쇼, <오프라 윈프리 쇼>는 생각보다 시시했다. 박장대소할 유머도, 뒤집어지는 구성도 없었다. 오프라의 진행도 유연하긴 했지만, 탁월하지는 않았다. 다만 섭외력이 탁월했다. 마돈나와 비욘세라니. 그들이 오프라를 만나는 일은 단순한 인터뷰가 아니었다. 일종의 ‘의례’였다. 여왕을 알현하고 귀족 작위라도 받는 분위기다. 그래서 오프라를 보면 ‘알고 있던’ 아메리칸드림을 ‘느끼게’ 된다. 그의 50번째 생일파티 방송을 보면서였다. 정말 오프라는 미합중국의 ‘공주’더라. 책 제목처럼 <신화가 된 여자>였다. 존 트래볼타가 사회를 보고, 티나 터너와 스티비 원더가 축가를 부르고, 래리 킹이 축하인사를 하러 5시간을 날아오고. 축하 영상을 보내온 스타들은 넘쳐났다. 톰 행크스, 짐 캐리, 니콜 키드먼…. ‘시간 관계상’ <섹스 & 시티>의 네 주인공은 한꺼번에 인사를 했다. 참, 생일 아침에는 넬슨 만델라가 축하전화를 걸었고, 낸시 레이건도 생일파티에 참석했다. 며칠 동안 성대한 파티가 계속됐다(생일파티 다음회의 제목은 ‘Behind the scenes of Oprah’s Birthday Weekend’였다. 생일 주간!). <오프라 윈프리 쇼>는 끊임없이 속삭인다. ‘너도 노력하면 그처럼 아메리칸드림을 이룰 수 있다’고. ‘뚱뚱한 10대 흑인 미혼모에서 매력적인 50대 연예재벌이 된 그녀를 보라’고. 게다가 ‘그는 남아공의 굶주리는 어린이를 돕는 천사’라고. 달콤한 꿈으로 돈 드는 복지를 대신하는 미국사회의 속삭임이다. 그래서 세계에서 돈을 가장 많이 버는 연예인 오프라 윈프리가 2003년에 벌어들였다는 1억4천만달러(1624억원)는 미국사회가 지출하는 일종의 복지비용처럼 보인다. 이처럼 아메리칸드림은 허상이다. 하지만 나는 나의 미국병이 부끄럽지 않다. 친미도 싫지만 반미도 마뜩찮기 때문이다. 오히려 일부 민족주의자의 반미 선동에는 동의할 수 없다. 그들의 노래 <퍼킹 USA>를 혐오한다. 여성주의자 정희진씨의 지적처럼, 미군이 한국 여성들을 강간했으니 한국 남성도 미국(정확히는 여성)을 ‘퍼크’하자는 민족주의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우리도 이만큼 컸으니 미국에 한번 ‘개겨’보자는 정서는 반미가 아니다. 단지 ‘양키포비아’일 뿐이다. 얼치기 애국주의가 판치는 한, ‘소수자’들에게 미국은 여전히 ‘오! 꿈의 나라’다. 나의 슬로건은 ‘양키 고 홈, 위드 미’. 오늘도 접시를 타고 아메리칸드림을 꿈꾼다. 신윤동욱/ <한겨레21> 기자 syu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