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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ra Arms] 피에로 카푸칠리 / [The Gate of Dreams] 양방언 / [Spoonface] 벤 크리스토퍼스

피에로 카푸칠리 굿인터내셔널 발매 비장하면서도 무게있는 저음의 울림이 매력적인 바리톤 가수 피에로 카푸칠리의 전성기 공연 실황을 모은 음반. 이탈리아 출신인 카푸칠리는 두 옥타브 반을 넘나드는 풍부한 표현력과 베르디의 오페라를 잘 소화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1964∼171년까지 열린 공연 중 그의 곡을 모은 이 음반은, 납치된 딸 질다를 찾아나선 리골레토의 비통함이 담긴 <리골레토>, <일 트로바토레> 등 베르디의 곡을 1장에, 로시니와 도니체티, 벨리니 등의 곡을 다른 1장의 CD에 담았다. 양방언 오이뮤직 발매 이미 2집부터 4집까지 3장의 음반으로 소개된 재일동포 2세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양방언의 데뷔음반이 뒤늦게 나왔다. 키보드를 주선율로 2집에서는 몽골음악과 런던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연주를, 3, 4집에서는 한국, 중국, 일본을 비롯한 각국의 민속악기와 오케스트레이션의 조합을 폭넓게 실험해온 그의 시작인 1집은 비교적 담백하고 경쾌하다. 역시 키보드를 주선율로 중국중앙교향악단과 협연하면서 <바람의 약속> 등 대륙의 전설을 품은 듯 신비롭고 역동적인 음악을 들려준다. 벤 크리스토퍼스 록레코드 발매 어쿠스틱 기타와 키보드, 나른한 미성의 보컬 위주로 포크와 테크노, 록을 맴돌면서 딱히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음악을 들려주는 싱어송라이터 벤 크리스토퍼스의 두번째 음반. 99년 으로 데뷔한 그의 음색은 종종 제프 버클리와 아트 가펑클 등에 비교되지만, 등 차갑지 않은 테크노 혹은 조용하지 않은 포크의 변주곡 같은 음악은 빼어난 선율과 함께 독특한 정취를 지닌다.

“옷 짓느라 얻은 빚 때문에 이사 수십번 다녔어”

영화 <토지>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 위해 파나마영화제에 참석했던 김지미가 의상상을 대신 수상했다는 소식은 한편으론 기쁘고 한편으론 섭섭했어. 그땐 스탭 관련 시상은 감독이나 배우가 자리를 대신하는 경우가 많았어. 상을 탔다는 소식만 듣고 상은 구경도 못했다는 스탭들도 있었고. <토지>의 의상상도 결국 김지미가 받았다는 것만 알았지, 뒤에 아무 말이나 보상도 없더라고. 하긴 국내 영화제만 해도 스탭들의 자리를 만들어 준 게 최근의 일인데. 그것보다 더 힘빠지는 경우는 주연급 배우 의상만 몇벌 만든 이가 의상부 대표로 상을 받을 때야. <사의 찬미>(1991)와 <금홍아 금홍아>(1995)는 대종상 의상상을 수상한 작품이지만 나와는 아무 관련도 없어. 장미희와 이지은에겐 전속 디자이너가 있었는데, 그이들이 수상자가 됐거든. 온갖 엑스트라와 다른 주조연들 옷들은 내가 다 지었지만, 다 소용없더라구. 상을 타야 공이 인정되는 건 아니지만, ‘열심히 해봐야…’란 생각이 드는 건 사실이야. 그렇다고 꼭 힘빠지는 경우만 있었던 건 아냐. 1977년 변강문 감독과 <난중일기>를 찍으면서 의상일에 대한 참된 자부심도 느꼈으니까. 이순신 장군이 입었다는 갑옷을 지을 때의 가장 큰 어려움은 일단 참고할 견본이 없다는 거야. 어떻게든 이순신 동상을 참조해 그럭저럭 모양을 흉내내긴 했는데, 이번엔 입체감이 잘 살지 않는 거야. 그래서 급히 프레스 공장을 찾아가서 갑옷에 달 쇠미늘을 차례로 오린 뒤 한장한장 두드려 볼록한 모양이 나오게 가공했지. 그리고 양옆에 구멍을 뚫어 실로 엮으니 척 모양이 나오는 거야. 그땐 낚싯줄 같은 나일론줄이 없어서 그냥 무명실을 여러 줄 겹쳐 썼기 때문에 한컷 찍고나면 날카로운 비늘 가장자리에 실들이 뚝뚝 끊어져버려 다시 달아야 했어. 그러면 현장 한켠에 앉아 추운 바람을 피하느라 한벌은 입은 채로 다른 한벌은 바느질을 하곤 했지. 지금 영화 의상 연구하는 이들이 그때 갑옷의 섬세함과 정교함을 높이 평가해주면 뿌듯한 마음이 들어. 80년대 들어 나에게도 영화를 보는 눈이 생겼달까. 단순히 흥행이 될 만한 영화를 고르는 게 아니라 작품다운 작품을 찍고 싶다는 욕구가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어. 돈만 주면 아무 영화나 찍던 시기를 거치면서, 비로소 ‘남는’ 영화에 관심이 생긴 거지. 하지만 작품이 좋아도 흥행이 보장되기란 힘들었어. 같이 일한 영화사가 엎어지면 돈만 못 받는 게 아냐. 간혹 빚이라도 얻어 의상을 지었으면 빚쟁이한테 쫓기기도 했어. 그러면서 이사도 수십번 했고. 63년 인현동에서 혜화동으로,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의정부로 이사를 갔다가 1년 만에 다시 서울로 올라오기도 했어. 그때 따라다니던 두 아들녀석이 이사라면 치를 떨었지. 쓸 만한 가구부터 냉장고며 다 버리고 재봉틀 하나만 겨우 챙겼으니까. 73년 장충동 국립극장 개관 기념 작품으로 <이순신>을 준비하면서 돈이 좀 모여서 충무로에 살 집을 구했지. 그러고 쭉 살다가 70년대 말에 이르러서는 뚝섬에다 의상 창고를 얻었어. 창고를 얻을 당시 소품부와 특수효과부의 힘을 빌려 마련한 터라 창고 안에는 의상뿐만 아니라 각종 소품, 특수효과에 쓰일 재료까지 산더미였어. 그렇게 2, 3년이 흘렀을까. 그런데 그만 소품부의 관리 허술로 창고에 있던 폭탄에 불이 붙은 거야. 그게 82년의 일이었어. 이전에도 의상 창고에 화재가 두어번 났지만, 뚝섬에 창고를 얻은 직후인 82년만큼 큰 화재는 없었어. 얼마나 심하게 타들어가던지 불끄러 온 소방서 사람들이 “뭐가 이렇게 오래 타?” 하고 짜증을 낼 정도였어. 아마 3천여벌 정도가 불에 타서 없어졌을 거야. 지은 의상뿐 아니라 실물(관복, 도복을 비롯한)도 없어지고, 인민군, 일본군, 한국군 할 것 없이 각각 500명 정도가 완전군장 할 수 있는 군복들과 3천여명의 엑스트라가 아래위로 차려입을 수 있는 모든 옷들이 소실됐지. <춘향전>과 <성춘향> 때의 의상부터 <난중일기>의 갑옷까지 모두 한줌의 재가 돼버렸어. 의상을 모으면서 나름대로 계획도 있었거든. 연구가치가 있는 몇벌은 대학에 기증하고, 나머지는 회갑 때쯤 의상박물관을 하나 지어 전시를 할까 하는 생각 말야. 근데 큰 화재를 몇번 겪으면서 의욕이 사라지더라구. 이후에도 의상 모으는 일은 계속됐는데, 다시 모인 옷 중 1만여벌은 현재 양수리 종합촬영소에, 1만여벌은 경기도 백동에 있는 우리집 창고에 보관중이야. 아직도 뜻맞는 이만 있다면 창고를 늘려서라도 의상 모으는 일을 계속하고 싶어. 박물관 여는 일도 마찬가지구. 구술 이해윤/ 1925년생·<단종애사> <성춘향> <사의 찬미> <금홍아 금홍아> <서편제> <친구> 의상 제작 정리 심지현 simssisi@dreamx.net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 그외 영화들

아남 Anam 감독 뷰켓 알라쿠스 . 독일 . 2001년 . 86분 . 극영화 . 새로운 물결 독일에서 청소부로 살아가는 터키여성 아남은 아들이 마약에 빠져 있고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아남은 아들을 찾아내지만, 아들은 어머니를 거부한다. 전통을 고수하며 평범하게 살아가던 한 여성의 추락과 그 극복과정을 통해 여성의 힘과 자긍심을 일깨우고 있다. 나만의 스타가 되어줘 Be My Star 감독 발레스카 그리제바흐 . 오스트리아,독일 . 2001년 . 65분 . 극영화 . 새로운 물결 사춘기 소년 소녀의 성에 대한 혼란을 잘 포착해낸 영화. 열네살 소녀가 동네의 스타인 동갑내기 소년과 연애를 시작하는데, 이들은 밤마다 부모의 눈을 피해 부부놀이를 한다. 10대들의 눈에 비친 부부의 성과 사랑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축복 Blessed 감독 다카시 토시꼬 . 일본 . 2001년 . 78분 . 다큐멘터리 . 새로운 물결 감독의 애인인 스트립댄서 사쿠라의 시점으로 전개한 다큐멘터리. 감독이 어린 시절 살던 낡은 서민아파트에는 두 여인이 30년 넘게 함께 살고 있다. 둘 중 하나는 늘 남장을 했고, 남들과의 교류없이 둘만의 삶을 영위했다. 감독은 이제 70대가 된 그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된다. 부비 걸 Boobie Girl 감독 브룩 키즐링 . 미국 . 2001년 . 5분 . 애니메이션 . 새로운 물결 더 큰 가슴을 원하는 어린 소녀의 열망을 그린 애니메이션. 종이 위에 데생을 한 뒤 채색하는 기법으로, 작은 가슴을 가진 소녀의 엉뚱하지만 진지한 소망을 코믹하게 그려냈다. 이 작품은 깐느영화제와 선댄스영화제에도 초청된 바 있다. 박스 The Box 감독 에코 Y.윈디 . 중국 . 2001년 . 86분 . 다큐멘터리 . 새로운 물결 서로 깊이 사랑하는 레즈비언 커플의 이야기. 감독은 동성애자가 아니고, 동성애에 대해 무지하지만, 이들 커플의 사랑을 카메라에 담아가면서, 동성애의 아름다움을 인정하게 된다. 이 작업을 통한 감독의 정서적인 경험이 그대로 묻어나는 작품. 러브 인 텍사스 Committed 감독 리사 크루거 . 미국 . 2000년 . 98분 . 극영화 . 새로운 물결 어느 날 남편이 아내를 떠난다. 자아발견을 하겠다는 것이 그 명목. 남편의 이별 통고를 받아들일 수 없는 아내는 남편을 찾아 길을 떠나고, 그 여정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남편을 찾았으나, 상황은 더욱 꼬여만 간다. <프롬 헬> <부기 나이트> <오스틴 파워> 시리즈에 출연한 헤더 그레이엄이 여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어떤 요리 Dish 감독 멜로니 풀 . 영국 . 2001년 . 11분 . 극영화 . 새로운 물결 어떤 밤에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이 난데없는 욕망과 과거의 기억에 휘둘리는 경험을 그린 작품. “욕정과 세차, 그리고 케이크로 이뤄진 어두운 휴식 같은 영화”라는 소개다. 또 하나의 가족 Family Values 감독 에바 삭스 . 미국 . 2001년 . 24분 . 다큐멘터리 . 새로운 물결 레즈비언 부부와 그들이 꾸린 가족이 오늘날 미국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에 주목한다. 미국에서 교외의 집, 양친 부모, 차 두대, 아들, 직업, 패밀리 비즈니스 등은 전통적인 가족의 가치를 상징한다. 영화는 여기에 부합하지 않는, 비전형적인 가족의 다복한 삶을 따라잡는다. 욕망을 영화화하기:여성감독이 말하는 섹슈얼리티 Filming Desire:A Journey through Women’s Film 감독 마리 맨디 . 미국 . 2001년 . 60분 . 다큐멘터리 . 새로운 물결 여성감독들은 사랑과 욕망, 특히 섹슈얼리티를 어떻게 영화화하는가? 감독 마리 맨디의 이 질문에 전 세계의 대표적인 여성감독들이 제각기 한마디씩 보탠다. 아녜스 바르다, 카트린느 브레이야, 제인 캠피온, 샐리 포터 등이 여성적 관점의 구체화, 여성적 영화언어의 가능성, 새로운 이미지로 표현된 욕망들을 이야기한다. 여자의 일생 Gracias a la vida 감독 마렛 잰슨 . 네덜란드 . 2000년 . 4분20초 . 애니메이션 . 새로운 물결 여성의 삶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여성의 자아형성 과정을 중심으로 시적으로 그려낸 애니메이션 작품. 감독인 마렛 잰슨은 여성정치만화가집단의 창립멤버로 활동하는 등 애니메이션 이외에도 사회비판적이고 도발적인 만화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성스러운 담배 Holy Smokr 감독 모니코 르노 . 네덜란드 . 2001년 . 9분30초 . 애니메이션. 새로운 물결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가 바로 담배였음을 깨닫게 되는, 한 중년여성의 짧은 사색을 그린 애니메이션. <성혁명이여 영원하라> <내 몸에서 손을 떼지마> 등 전작의 제목들이 말해주듯 감독 모니코 르노는 전투적인 페미니스트다. 마음의 풍경 Intimisto 감독 리시아 에미멘티/프랑스/2001년/24분/극영화/새로운 물결 어제와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아침 나절을 급습한 깊은 고독과 쓸쓸함을 그린 작품. 한 여자가 자신을 옥죄는 일상, 옛 사랑의 고통스런 기억, 세상에 홀로뿐인 듯한 고독, 아무나에게 의지하고픈 마음으로 고통스럽고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포착해내고 있다. 아름다운 생존 감독 임순례 . 한국 . 2001년 . 40분30초 . 다큐멘터리 . 새로운 물결 한국영화사와 함께한 여성영화인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다큐멘터리. 최초의 여성감독인 박남옥 감독을 비롯해 그 이후에 등장한 여성감독 및 스탭들이 편견에 부딪히고 싸워온 역사, 그리고 현역감독과 프로듀서들의 회고와 제언을 통해 여성영화인의 오늘과 내일을 조망한다. 버스, 정류장 감독 이미연 . 한국 . 2002년 . 90분 . 극영화 . 새로운 물결 32살의 학원강사와 17살의 여고생이 서로의 상처와 외로움을 들여다보게 된다는 이야기. 세상과 격리된 삶을 사는 중년남자와 반항적이고 냉소적인 여고생이 버스정류장에서 만나고 헤어지고, 마주보게 된다. <조용한 가족> <반칙왕>의 프로듀서인 이미연씨의 연출 데뷔작. 리사 Lisa 감독 헤스터 쇼이르바티 . 네덜란드 . 2001년 . 4분 . 극영화 . 새로운 물결 같은 공간에 있는 두 여자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네덜란드 안팎에서 비디오작품과 설치미술을 선보인 바 있는 헤스터 쇼이르바티의 작품. 따뜻한 인정 The Milk of Human Kindness 감독 도미니크 카브레라 . 프랑스 . 2001년 . 93분 . 극영화 . 새로운 물결 세 아이와 남편의 뒤치닥거리, 집안일에 지친 아내가 가출을 한다. 아내의 피신처는 바로 위층 이웃이지만, 남편은 엉뚱한 곳을 찾아 헤맨다. 남편은 아내를 찾아나서는 작은 소동을 통해 자신이 미처 알지 못했던 아내의 참모습에 한 발짝 다가서게 된다. 두 자매의 이상한 여행 On Their Knees 감독 아나이스 크래놉스키 . 캐나다 . 2001년 . 80분 . 극영화 . 새로운 물결 두 자매는 서로 많이 다르지만, 죽은 할머니의 소원을 들어드려야 한다는 데서는 의견일치를 본다. 자매는 할머니의 시체를 아이스크림 트럭에 싣고 할머니의 가족을 찾아다닌다. 배우 출신인 감독은 이 영화에도 주연으로 등장했다. 가출 소녀들 Runaway 감독 킴 론지노토, 지바 미르 호세이니 . 영국 . 2001년 . 87분 . 다큐멘터리 . 새로운 물결 <드림 걸즈>와 <가이아 걸즈>로 여성영화제를 찾은 바 있는 킴 론지노토 감독의 신작. 테헤란 피난민 소녀들의 삶을 생생하게 따라잡은 다큐멘터리로, 이란의 여성들이 인습에 저항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 그 도전으로 세상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고양이를 부탁해 감독 정재은 . 한국 . 2001년 . 110분 . 극영화 . 새로운 물결 혼자 있길 좋아하고, 쉽게 맘을 열지 않는 고양이를 닮은 다섯 친구들의 우정과 사랑, 성장의 고통을 담아낸 영화. 개봉 당시 관람 기회를 놓쳤던 관객에게는 좋은 기회다. 탐폰 설명서 감독 성새론 . 한국 . 2001년 . 13분40초 . 극영화 . 새로운 물결 고정관념을 뒤엎는 새로운 발상, 여성의 성적 욕망에 대한 즐거운 상상이 돋보이는 작품. 감독에 따르면 탐폰의 용도는 의외로 다양해서, 마스터베이션 또는 레즈비언의 섹스 도구로도 사용될 수 있다는 것. 내일 Tomorrow 감독 자끄라인 반 부그트 . 네덜란드 . 2001년 . 10분 . 극영화 . 새로운물결 이별을 앞둔 노부부의 마지막 아침을 그린다. 치매가 심해진 남편을 감당할 수 없는 아내는 이제 남편을 요양소로 보내려 한다. 50년의 사랑과 동거 이후 그들은 이제 각자의 길을 간다. 천사의 손길 Touched by an Angel 감독 베아트리스 헐스케스 . 네덜란드 . 2001년 . 12분 . 애니메이션 . 새로운 물결 데생, 사진, 모형, 오브제, 회화 등 다양한 기법을 활용한 애니메이션. 한 여자가 머리카락이 빠져 흉해진 머리를 감추기 위해 모자를 쓴다. 그럴수록 (병을 앓았던) 괴로운 기억이 떠오를 뿐이다. 우화와 현실이 뒤섞인 듯 몽환적이면서도 섬뜩한 작품. 너는 내가 지난 세월 한 일을 모르고 있다 You Don't Know What I Got 감독 린다 두보이신 . 미국 . 2000년 . 85분 . 다큐멘터리 . 새로운 물결 다양한 연령대, 인종, 배경을 가진 여성들에 대한 흥미로운 탐구. 삶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한 다섯명의 여성들의 이야기로, 고백과 조언, 시와 공연 등이 한데 엮여 있다. 야행 감독 김수용 . 한국 . 1977년 . 76분 . 극영화 . 한국영화회고전 사랑하는 사람이 전사하는 바람에 미혼모가 된 주인공은 딸을 동생으로 속이고 산다. 직장동료와 비밀리에 동거하지만, 그에게서는 성적 만족을 얻지 못한다. 그녀는 밤거리를 헤매며 저열한 현실의 남성들과 자신의 성적 판타지 사이에서 방황한다. 외설시비 때문에 가위질을 당했던 작품. 사방지 감독 송경식 . 한국 . 1988년 . 94분 . 극영화 . 한국영화회고전 여성과 남성의 성기를 모두 갖고 태어난 양성구유자 사방지의 비극적인 생애를 그린 영화. 사방지는 양반가문의 과부 이씨와 사랑에 빠지지만, 발각돼 도망치고, 그 뒤로 뭇 여성들의 성적 노리개가 된다. 자신의 성기를 자른 사방지는 목매 자살한 이씨의 무덤을 찾아간다. 이혜영과 방희가 출연했다. 걸리쇼 Grrlyshow 감독 카라 헤롤드 . 미국 . 2000년 . 18분 . 극영화 . 딥 포커스 다양한 인터뷰와 출판 및 영상자료를 통해 대안적인 여성잡지와 문화를 고찰하는 작품. <걸리쇼>는 대중문화, 여성학, 팝문화를 아우른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춥고 배고픈 I'm Hungry, I'm Cold 감독 샹탈 에커먼 . 프랑스 . 1984년 . 12분 . 극영화 . 딥포커스 벨기에 소녀들이 가출해 파리로 온다. 사랑과 음식을 구하는 그들을 기다리는 건 과연 무엇일까. 40여편의 작품을 만든 샹탈 에커먼은 페미니즘 영화의 대모로 불리고 있는데, 국내에서는 <카우치 인 뉴욕>이 선보인 바 있다. 마가리타 해피 아워 Magarita Happy Hour 감독 일리아 챌켄 . 미국 . 2001년 . 98분 . 극영화 . 딥 포커스 뉴욕의 한 술집, 반값으로 술을 마실 수 있는 오후 시간(해피 아워)에 다섯명의 여성이 모여든다. 이들은 자신의 소소한 일상과 성적 욕망, 그리고 육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뉴욕의 언더그라운드 음악과 그 밖의 다양한 예술, 그리고 모성에 관한 영화. ▶ 전복의 매혹, 신나게 즐기자! ▶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 새로운 물결·한국영화회고전·딥 포커스 부문 ▶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 그외 영화들 ▶ 아시아 여성영화의 힘 - 아시아 특별전·단편경선 부문 ▶ 아시아 여성영화의 힘 - 그외 영화들 ▶ 액티비즘 영화·비디오 - 여성영상공동체·타흐미네 밀라니 특별전 ▶ 액티비즘 영화·비디오 - 그외 영화들

케빈 코스트너는 지금 어디에?

<버라이어티>의 피터 바트 편집장이 오스카 시상식 전주에 발행된 최근호에서, 배우 케빈 코스트너에게 충고의 편지를 보냈다. “당신처럼 지각있는 사람이 어떻게 오스카 시즌이 다가오는 것을 견디는지 모르겠다”는 말로 시작되는 이 편지는 1980년대 흥행과 비평 양쪽에서 화려한 수확을 올리고 1990년 오스카에서 <늑대와 춤을>로 7개 부문을 휩쓴 코스트너가 긴 슬럼프에 빠진 것에 대한 우려를 전했다.1990년 오스카 시상식 직후 “만약 <늑대와 춤을>이 내 캐리어 최고의 영화가 된다 해도 그 그늘에서 달아나지 않겠다”고 한 코스트너의 소감이 ‘불길한 예언’이었다고 회고한 바트는 코스트너의 1990년 이후 흥행성적 그래프를 곁들인 이 칼럼에서 <꿈의 구장> 등 1980년대 영화가 지성과 용기를 보여주는 선택이었던 반면 1990년대 후반 들어 만든 <워터월드>와 <포스트맨> 등은 이해할 수 없는 패착이라고 지적했다. 꼭 집어 코스트너와 비교된 스타는 톰 행크스. “<포레스트 검프>에서 <라이언 일병 구하기>로 다시 <캐스트 어웨이>까지 한 박자도 놓치지 않은” 행크스의 행보를 칭찬한 바트는 “행크스도 당신처럼 감독의 욕망에 유혹받았지만 <댓 씽 유 두>는 흉흉한 유사 서사극 <포스트맨>과 달리 가벼운 일탈이었다”고 아픈 곳을 찔렀다. 바트가 파악한 코스트너의 침체 원인은 스튜디오나 에이전트를 멀리하며 스스로의 일을 처리하는 ‘독단적’ 자세. 바트는 코스트너가 <트래픽>에 캐스팅됐다가 고집스런 조건을 내거는 바람에 마이클 더글러스로 교체된 일을 상기하며 독불장군 스타일의 일정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최근 되풀이되는 오류는 전략의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고 정리했다. 때마침 코스트너는 톰 크루즈와 일하고 있는 CAA의 릭 니키타로 에이전트를 교체해 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바트는 “오스카 연단의 연설은 두번째가 더 즐거울 것”이라는 말로 그의 편지를 맺었다.

<몽중인> 개봉 앞두고 무협영화 준비중인 감독 이경영

1998년 <키스할까요> 이후 영화계를 떠나 있었던 이경영이 햇수로 5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 무협영화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그가 96년 <귀천도>에 이어 선보이는 두번째 연출작 <몽중인>은 의외로 가족영화다. “평생 당신 아들이 배우이길 바랐던 노모가 ‘이 감독’이라고 부르셨던 순간, 아! 진짜 감독이 되었다는 걸 실감했다”는 감독 이경영에게 물었다. 첫 시사를 마쳤다. 개봉을 앞두고 평가에 대한 두려움 같은 건 없나. 사실 내 작품의 단점도 장점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평가가 두렵진 않다. 오히려 담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이런 건 조금이나마 바란다. 음, 좀더 열심히 하면 세번째 영화 할 수 있겠다, 그 정도? (웃음) 물론 이런 소재의 영화가 요즘 영화계의 흐름에 발맞출 수 있을까 하는 우려는 나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 모두에게 있었다. 하지만 요즘 관객의 취향에 맞지 않을지라도 누군가 해야 하는 이야기라는 생각을 한다. 어떻게 보면 감성적으로 많이 치우친 영화를 선택한 데는, 작지만 말하고 싶은 ‘소망’이 있었던 거고 그것을 말하기에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류에 편승해서 만든 영화는 아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소망’인가. 엔딩자막에도 있지만 우리 아이들이 최소한 엄마, 아빠보다는 오래 살아야 하지 않겠냐, 하는 거다. 아이들이 푸르른 나이에 세상과 이별하는 건 싫다는 거다. 그런 소망을 가지게 된, 그리고 영화화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실제 주변에 극중 딸, 유메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아이도 있고, 지금은 세상에 없지만 지난해 작품 들어가기 전에 만난 혈액암 걸린 아이가 있었다. 엄마, 아빠는 많이 지쳐 있었는데 오히려 아이는 생사로부터 초월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죽음을 받아들인 듯한 그 어린아이 같지 않은 깊은 눈매를 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이런 주제를 사회에 호소력 있게 전달하겠다는 욕심은 없었다. 그보다는 모든 사람들이 저 이야기는 맞다, 하는 생각을 공유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고 거기에 영화라는 수단을 빌린 것뿐이다. 물론 영화가 질적으로 뛰어난 데다가 메시지까지 잘 전달하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그 영화가 어떤 말을 하고자 했던가는 전달되길 바란다. 영화 본 기자 몇분이 울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내 이야기가 전달될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이랄까 안도 같은 걸 가졌다. 결국 <몽중인>은 죽어가는 어린 딸 유메(夢: 일본어로 꿈이라는 뜻)의 영화라는 생각이 들고 감독의 모습도 유메에게 가장 많이 투영된 듯하다. 그러다보니 아이가 지나치게 어른스럽고 스스로 짊어져야 하는 짐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더라. 죽음을 앞둔 아이들은 어른들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어른스럽다. 그런 아이 모습을 세상에 더 붙들어놓으려고 하는 어른들 모습이 오히려 더 아이 같다. 솔직히 11살이 중요한 건 아니었다. 죽음 직전에 세상을 넓은 시야로 바라보는 한 사람에 대한 접근이었다. 유메는 어른들의 이기심마저 다 받아주는 사랑의 원형 같은, 어머니 같은, 물 같은 존재다. 정말 필요한 존재인데 잘 못 느끼는 그런 존재. <귀천도>를 끝내고 상상력을 현실화하는 어려움과 기술적인 한계에 대한 어려움을 말했다. 당시 보완점이라고 생각했던 점들이 두번째 작품을 통해 많이 극복된 것 같나. 드라마트루기, 논리성 결여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안고 있다. 하지만 이번 작업하면서 내 나름대로 철이 들었다고 자부하는 것은 콘티뉴이티에 대한 개념이다. <귀천도> 찍을 때는 답답했었다. 이 컷에서 다음 컷 넘어가는 게 늘 힘들었다. 하지만 이번 작업하면서는 그런 답답함은 많이 줄었다. 콘티뉴이티에 대한 여유가 생겼달까. 주관에서 객관으로 빠져나와 바라보는 훈련들을 하다보니 좀더 멀리서 바라보는 시각을 배운 것 같다. 물론 그게 잘되면 휼륭한 감독이 되겠지. (웃음) 아들이 이제 5살이 되었나? 예전 인터뷰에서 아이를 위한 영화를 만들어 ‘파더스 컷’을 선물하고 싶다고 했는데 <몽중인>을 보면 정말 아이에게 바치는 영화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달에 한번씩 만나는 아들에 대한 미안함, 개인적으로 내가 살면서 미안함을 느끼는 사람들에 대한 반성문 같은 영화다. A4 한장이면 될 반성문에 너무 돈을 많이 들였지만…. (웃음) 차기작으로 무협영화를 준비중이라고 들었다. <검향만리추>라는 무협영화다. 시나리오는 거의 다 썼고 올해 제작에 들어갈 것 같다. 지금은 내 이야기를 카메라 뒤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에너지가 더 많다. 무협인데 얼마나 신나겠나. 나는 칼만 쥐어주면 신이 난다. 마흔두살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경영은 만년 소년 같은 사람이다. 이 말은 그에게 칭찬도 되고 비난도 된다. 본인 스스로 인정하는 ‘소녀취향’의 감성이 영화의 습도와 온도를 높이지만 결국 같은 이유로 영화에 대한 평가는 유보되기도 하니까. 16년의 베테랑 배우 이경영에게, 결혼과 득남 그리고 이혼이라는 극적인 사건들을 너무 한순간 끌어안아야 했던 인간 이경영에게 물었다. 나이드는 게 싫다고 말하는 걸 들었는데 <몽중인>을 보고 있으면 감독 스스로가 정말 성인이 되는 것을 원치 않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진짜 그렇다. 어른의 나이가 되었지만 나는 어른이 싫다. 어른들은 늘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고, 그 말에 대한 손익을 따지게 되고 다분히 사는 방편의 말들이 많다. 어렸을 땐 안 그랬던 것 같은데…. 내일 어떻게 돈을 벌까가 아니라, 내일은 또 아이들하고 어떻게 놀까 하는 걱정만 했던 시절. 순수하고 솔직하고 눈치보지 않아도 되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영화를 쉬는 사이 무리한다 싶을 만큼 드라마를 찍었다. 요즘같이 배우들의 이미지 메이킹에 신경쓰는 시대에 일일극 같은 경우엔 심하다 싶을 만큼 망가졌고, <은실이> <푸른안개>는 실제보다 아주 나이가 들어버리는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 사실 이혼하고 두려움이 많았다. 집에서 가까운 SBS 드라마만 나가면서 공간적으로 나를 고립시키려고 한 것도 있었다. 공인으로서 많은 하객들에게 잘살겠다는 약속을 배신한 것에 대한 미안함, 특히 영화쪽 사람들 만나는 게 두려웠다. 하객의 98%가 영화쪽 사람들이었으니까. TV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겐 덜 미안할 것 같았다. 물론 정말 망가지는 역할을 하더라도 조건을 내건 게 있다. 나 혼자만 출연하는 건 아니고 일자리 없는 내 후배들을 끼워넣어달라는 거였다. 그 정도라도 내가 해주는 게 그 시절 내 존재에 대해 스스로 자위하는 방법이었던 것 같다. 소모적인 촬영에 많이 지쳤을 것 같다. 지치기도 했지만 오히려 많은 공부가 되었다. 아무 생각없이 연기해야겠다는 생각. 계산하지 말고, 때때론 생각이 연기를 지배할 수 있으니까 그 생각조차 막아버리자. 아르바이트로 <연산일기>를 시작할 때 유인촌 선배가 했던 말이 그제야 받아들여졌다. 카메라 앞에 서기까지 최대한의 이성을 동원해서 캐릭터에 접근해라, 하지만 카메라 앞에 섰을 땐 네가 준비했던 이성적인 부분을 버려라, 몸이 움직이는 대로, 바로바로 느낀 그대로 연기를 해라, 고 했던 말. TV연기는 생각할 긴 시간이 없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나를 비워내는 데 좋은 훈련장이 되었다. 그런 것들이 풀려나온 게 <푸른안개>였던 것 같다. 표민수 PD와 둘이 앉아서 ‘드러나지 않지만 생각이 나오게 하는 연기, 호흡이 느껴지는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고 만족하는 만큼 힘든 작업이었다. 기도 많이 빼앗겼다. 그러다가 드라마 출연을 그만두고 영화로 발길을 다시 돌렸다. 그저 나에게 가장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일로의 복귀일 뿐이다. 내 마음속에 떠나지 않았던 것, 젊은 시절의 열정, 그 속에서 만났던 수많은 인연들, 그 사람들을 다시 만나고자하는 생각들이 생겼다. 그런데 그 방법이 너무 적극적이었다. (웃음) 내가 나를 캐스팅하고 내가 레디 고, 하는 상태로 만났으니…. 데뷔작인 <연산일기>가 87년이니 벌써 배우생활 16년째다. 아휴, 벌써 그렇게 됐나? 16년 동안 뭐해놨나…. 특별히 구애받지 않고 다작을 하는 편이고 뚜렷한 역할에 대한 욕심보다는 배우로서 사는 삶, 그 자체를 중요시 하는 느낌이 든다. 그렇다. 1, 2년 하고 말게 아니니까. 물론 언젠가 나도 빛나는 모습의 배우로 서 있고자 하는 욕심은 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내가 얻은 자리에 대해서 몸사리고 조급해 하면 더 많은 걸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너무 작품을 사려가면서 고른다. 물론 좋은 안목이기도 하고 좋은 선택이기도 하지만 최고를 달리고 있는 배우들이 가끔은 병살타도 쳤으면 좋겠고, 데드볼도 맞았으면 좋겠다. 자기 흠집을 갖고 있는 배우였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그 흠집 자체가 더 영화적인 모습으로 발전할 수 있게…. 지금 배우들은 흠집이 나는 걸 두려워하는 것 같다. 몇몇 친구들이 나오는 작품만이 좋은 작품처럼 돼버렸고, 개인적으로 배우들이 더 많은 감독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저 좋은 배우로서 남고자 하는 욕심은 없었나. 배우로서 이루어놓은 것도 많고 감독이 오히려 흠집이 될 수도 있고, 모험일 수도 있을 텐데.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살지 왜 또 그 어려운 길을 가냐, 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정말 좋은 배우가 되고 싶어서, 그렇게 되기 위해서 감독이라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라고 봐주면 편할 텐데 말이다. 아마 내가 카메라 뒤에서 전체를 보는 일을 안 했다면 배우로서 지금 같은 생각을 가질 수 없었을 것 같다. 하지만 감독이란 직업보다 더 큰 건 삶일 게다, 감독들도 영화 만드는 작업을 통해 하나하나 삶을 완성해나가듯이 나 역시 이런 연출작업이 배우로서의 삶을 완성해나가는 거다. 혹시 아나? 어느 날 철들어서 정말 좋은 작품, 문제작을 한편 만들어서 그래 너 언젠가 이럴 줄 알았다는 얘기 듣는 날도 있겠지. 확실한 건 이렇게 끝낼 순 없다는 거다. 카메라 뒤에서 전체를 책임지는 모습이 이 정도 상태에서 끝나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 개인적인 ‘철든 완성’을 위해서라도 다시 도전할 것이고 그 도전이 앞보다 더 발전된 모습으로 나아갈 거다. 지금 생활에 만족하나. 어느 날은 이 모든 것을 손놓고 싶을 때가 있다. 그냥 촌부로 돌아가고 싶은… . 표현해낸다는 것, 창작을 해야 한다는 게 어쩌면 내 능력 밖의 일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저 나는 운이 좋게도 내 표현을 너그럽게 봐주는 시간 속에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 사람들이 내 진짜 재능과 열정을 한번도 보지 않고 박수 쳐주는 게 거짓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 나는 그저 작은 술집주인이었으면 좋았을 거야. 일산에서 제일 독특한 술집 주인. 글 백은하 lucie@hani.co.kr·사진 정진환 jungjh@hani.co.kr

천사표 아가씨가 폭발할 때, <울랄라 씨스터즈> 김현수

위기에 빠진 라라클럽을 구하기 위해 네명의 여인이 벌이는 좌충우돌 코미디 <울랄라 씨스터즈> 4인방 가운데 막내인 경애는 고운 얼굴, 고운 마음의 ‘고전적’인 아가씨다. 나이트클럽의 왕언니 은자, 터프걸 둘째 미옥, 음치면서 가수지망생인 셋째 혜영은 ‘말발’로 열 사내 당해낼 여장부들이지만, 경애는 70년대풍의 얌전하고 고지식한 캐릭터. 몸이 편찮으신 엄마와 아빠를 부양하는 ‘천사표’지만, “무슨 술을 그렇게 많이 마셨니”라고 나무라는 웨이터에게 “소주, 참이슬”이라고 답하기도 하는 맹한 아가씨다. 김현수를 경애로 낙점한 건 ‘미숙 언니’였다. 대학을 졸업하기 위해 1년 정도 연기와 떨어져 지냈다가 복귀할 무렵 <울랄라 씨스터즈> 오디션을 봤다. “풍기는 이미지를 보고 골랐대요” 하면서 수선화 같은 미소를 한번 날려보낸다. 늘 한 박자 늦는 경애가 처음엔 싫었지만 나중엔 욕심이 났고, “더 멍청하게 해달라”고 감독에게 주문하기도 했다고. <울랄라 씨스터즈>는 춤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는 영화. 하지만 7가지 춤이야기를 꺼내자 고래를 절레절레 흔든다. “춤은 다 싫어요. 넷 중에 제일 못 추기도 하지만. 연습을 너무 해서 음악만 나오면 저절로 팔뻗고 다리 올라가고… 다시 추라면 너무 싫을 것 같아요.” 추운 겨울에 추운 세트장에서 얇은 의상을 걸치고 촬영을 했으니 달갑지 않은 감기을 돌아가며 맞이한 것은 당연한 일. 넷이서 번갈아가며 감기를 앓았고, 링거를 맞아가며 춤추었지만, 그 모든 일이 이젠 기꺼운 추억이 됐다. 늘 얌전하던 경애가 긴 대사를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장면을 ‘경애의 명장면’으로 추천한다. “그거 하고 박수받았어요. 대사가 1장짜리였고, 강도 높은 욕도 하는 신인데, 연습 많이 했어요.” 리허설 때 너무 잘한다, 잘한다 하는 바람에 들떠서 막상 촬영할 때 NG내고, “정신차려!” 한 소리듣고 OK가 났다. “저는 야단을 맞아야 잘해요. 잘한다, 잘한다, 하면 혼자 오버해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서울시립합창단에서 활동했고, 이화여대 성악과에 진학한 음악도였지만, 방송사에 왔다가 PD 눈에 띄어 곧바로 SBS시트콤 에 투입되는 바람에 얼떨결에 연기자가 됐다. 그리고 MBC의 <아니 벌써> <하나뿐인 당신> 등에서 발랄한 신세대로 낯을 익혔다. 4월26일 개봉예정으로 후반작업중인 <울랄라 씨스터즈> 나들이를 끝낸 김현수는 다시 TV드라마로 돌아간다. KBS 일요 아침드라마 <언제나 두근두근>에서 스튜어디스가 되려는 깜찍하고 당찬 대학생을 맡은 것. 앞으로는 “발랄보다 진지”한 역할, 그리고 “청소년이 볼 만한 영화”, <금발이 너무해>의 리즈 위더스푼 같은 “지금 나이 때밖에 못하는 역할”을 해보고 싶다는 소망도 있다.

네 이념대로 찍어라

10여년 전, 재야 출신 국회의원의 보좌관 노릇을 하던 선배는 “나중에 노무현이 대통령 선거에 나가면 발 벗고 뛸 거”라 말했다. 노무현은 처음부터 보기 좋았던 모양이다. 세월이 흘러 노무현은 대통령 선거에 나왔고, 이변이라 불릴 만큼 약진하고 있다. 노무현의 개혁 이미지는 대개 인정할 만한 사실이다. 그는 <조선일보>와 국가보안법에 공개 반대하고 지역주의에 당당히 맞선 유일한 정치인이다. 이른바 ‘비판적 지지’(어차피 당선 가능성이 없는 진보 후보를 찍어 죽은 표를 만드느니 좀더 나은 보수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어 진보의 미래를 도모한다는)의 두번째 대상으로 그가 거론되는 건 그런 점에서 당연해 보인다. ‘비판적 지지’의 첫번째 대상은 김대중이었다. 밝히자면, 나도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그렇게 했다. 비판적 지지론이 아닌 진보 독자후보론을 주장하던 진영에 더 가까웠지만, 그래서 다들 내가 그렇게 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나는 망설임 끝에 그렇게 했다. 진보진영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조직적으로 혹은 개인적으로 그렇게 했다. 드디어 김대중은 대통령이 되었고 그에게 표를 몰아준 진보주의자들은 그의 개혁성에, 그의 개혁성을 통해 도모될 진보의 미래에 기대했다. 기대가 의구심으로 의구심이 다시 지루한 실망으로 바뀌는 데는 단지 몇달이 필요했다. 나는 그 즈음 내가 어리석었음을 깨달았다. 김대중에 대한 실망의 원인은 김대중에게 있는 게 아니라 그에게 실망하는 진보주의자들에게 있었다. 어리석게도 진보주의자들은 보수주의자인 김대중이 진보적이기를 기대했다. 실망에 찬 그들은 말하기를 김대중이 변했다고 했다. 그러나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김대중은 예나 지금이나 보수주의자이며 그의 정치는 예나 지금이나 그의 이념에 충실하다. 김대중에 대한 진보주의자들의 기대는 그가 한국사회 보수영역의 마이너로서 한국사회 보수영역의 메이저인 파시스트들에게서 오랫동안 견제받는 모습을 통해 생긴 판타지였다. 김대중에 대한 실망을 노무현으로 보상하려는 심정이야 인간적으로 이해 안 가는 바 아니나, 정치적으로 가련하기만 하다. 노무현이 김대중보다 인격적으로 신뢰가 가는가. 나 역시 그래 보이지만, 개인의 인격이 정치를 좌우할 수 있다는 가설은 텔레비전 궁중사극에서나 가능할 것이다. 노무현의 판타지에 젖은 사람들은 오늘 김대중을 잠시 접고 옛 김대중을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그는 한때 오늘의 노무현과는 비교가 안 될 판타지를 가진, ‘선생’이라 불리는 정치인이었다. 노무현에게 남은 질문은 하나다. 노무현은 (개혁적) 보수주의자인가 진보주의자인가. 지역주의에 당당히 맞선 노무현은 신자유주의에도 당당히 맞서는가, 노무현은 하층계급의 싸움에 연대하는가. 김대중의 정치는 바보가 아닌 사람들로 하여금 이른바 나쁜 보수와 좋은 보수의 차이가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것(특히 오늘처럼 극단적 파시즘이 이면으로 물러난 상황에선 더욱더)을 충분히 깨닫게 할 만했다. 좋은 보수 후보에 표를 몰아주어 진보의 미래를 도모한다는 노회한 전략은 한국 정치에서 진보의 지분(득표율, 혹은 국회의원 수로 계량할 수 있는)이 하다못해 ‘김종필의 당’만큼이 되어, 캐스팅보트 노릇이라도 가능해진 다음에나 생각할 일이다. 진보주의자, 혹은 진보정당의 국회의원이 단 한명도 없는 세계 유일의 나라에서 진보주의자가 할 일은 오로지 ‘털끝만큼이라도 진보의 지분을 늘리는 것’이다. (중립적으로 말하자면) 모든 사람이 제 이념대로 순정하게 찍는 것, 그래서 한국 정치의 이념적 스펙트럼을 한국인들의 이념적 스펙트럼과 동기화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것만이 한국인들이 제 처지에 가장 적절한 정치를 맞을 유일한 방법이다. 네 이념대로 찍어라. 한국사회가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다면 가장 반동적인 보수 후보를 찍어라. 한국사회의 표면적 악취라도 우선 덜고 싶다면 가장 개혁적인 보수 후보를 찍어라. 그러나 한국사회의 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진지하게 바란다면 (당선 가능성을 절대 기준으로 한 이런저런 되지 못한 정치평론일랑 걷어치우고) 그저 가장 진보적인 후보를 찍어라. 진보에 외상은 없다. 네 이념대로 찍어라.김규항/ 출판인 gyuhang@mac.com

울렁대는 첫 영화의 추억,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

때는 1971년 아니면 72년쯤이었을 것이다. 당시 다섯살 남짓했던 소년은 부모와의 오랜만의 외출이 마냥 즐겁기만 했다. 부모는 아이를 데리고 극장에 들어갔고 아이는 뭔가 재미있는 영화겠거니 생각하며 텅 빈 극장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웬 걸, 그날 보게 된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라는 영화는 데이브라는 심야 라디오 DJ가 이블린이란 여자와 놀아나다 잘못 걸려들어 끈질긴 스토킹을 당한다는 매우 비교육적이며 무시무시한 내용이었다. 무서운 장면이 나올 듯싶을 때마다 꼬마는 어머니의 등 뒤로 고개를 파묻고 “무서운 장면 끝났어?”라고 물어보며 어서 영화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한숨을 돌리고 있는 데이브에게 또다시 칼을 들고 방 한구석에서 나타난 이블린의 광기 어린 눈빛, 그리고 언덕 위의 하얀집의 원경과 스토커의 최후로 이어지는 마지막 장면으로 영화는 끝났다. 너무나 오랜 시간 긴장을 했는지 극장을 나와 먹던 불고기도 별로 내키지 않았고, 속만 울렁거릴 뿐이었다. 이후 소년은 그 끔찍했던 영화관람 사건을 잊고 싶었지만, 밤에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또 추억의 명화랍시고 텔레비전에서 재탕 삼탕을 할 때마다 찝찝한 기억이 의식 표면으로 솟아오르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한 여학생을 좋아하게 되었지만 왠지 가슴이 두근거리고 울렁거려서 ‘보기만 하면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그 애도 나를 좋아한다는 소문에 기쁘기는커녕, 이상하게 피하게 되었고 결국 그녀의 눈물을 보고 말았다. 대학 1학년 때에는 미팅에서 만난 친구가 처음 만난 날 생맥주 3천㏄를 마시며 내게 친하게 지내자고 했을 때 나는 왠지 모를 두려운 긴장감이 들면서 그녀를 멀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십수년이 지나 소년은 데이브를 괴롭히던 이블린과 같은 ‘경계성 인격장애 환자’를 치료하는 정신과의사가 된 뒤 이런저런 잡다한 문화계의 ‘경계’에서 얼쩡거리고 있다. 그 소년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다. 아마 그 전에도 극장에 간 일은 있었겠지만 최소한 내 기억 속에서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는 ‘내 인생의 첫 영화’라 할 수 있다. 아이의 정서교육보다 자신들의 영화 욕구충족이 먼저였던(!) 부모 덕분에 미성년자의 신분으로 본 그 영화는 생각보다 광범위한 임팩트를 줬다. 당시 백지장 같던 어린 내 머릿속에 각인된 첫 영화의 잔상은 내 발달과정에 산탄총알이 박히듯 여기저기 많은 영향을 끼쳤음이 분명하다. 첫키스, 첫경험이 중요하듯이 첫 영화 경험은 내 인생에 어떤 작용을 했을까? 돌이켜보니 내가 정신과의사가 된 이유가 결국 그때의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을 치료자가 되는 것으로 극복해보겠다는 몸부림의 소산일 뿐이었다. 또 왜 어릴 때 이성관계에 서툴렀는지, 왜 공포영화를 보는 것을 싫어하는지 등의 난삽한 의문들이 이 영화를 기준으로 일렬종대로 늘어서며 한꺼번에 풀려버렸다. 아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기껏 영화일 뿐인데 이렇게 내 인생을 규정하고 있다니. 또 영화적 선호도로 보면 형편없는 그렇고 그런 이 영화가 왜 하필 ‘내 인생의 영화’라는 제목의 글을 쓰려는 이 시점에 내 의식선상에 떠오른 것인가. 지금도 뭔가 앙금이 남아 있는 걸까? 고백컨대 이 글을 쓰면서 위에 묘사한 영화 속의 장면이 실제로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비디오를 빌려보는 수고를 하지 않았다. 아니, 하고 싶지 않았다. 내 기억 속의 그 장면들이 내게 중요한 것이니까(웃기지 마, 역시 뭔가 남아 있는 게 분명해). 끝으로 내 딸의 첫 영화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였다. 그 행위가 내 딸을 환경론자로 만들려는 의도에서 한 일은 절대 아님을 밝힌다.

`지사적 글쓰기`라고?

이 칼럼이 재미없다는 원성이 높다. 말랑말랑한 이야기 좀 써라, ‘지사의 풍모는 충분히 유지되고 있으니’ 생업이야기로 돌아가라, 고군분투하는 프로듀서의 애환 같은, 뭐 그런 진한 감동도 있고 재미도 있는 이야기를 좀 써라…는 등 주문이 많다. 아무개 기자와 인터넷 메신저로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신경질이 나서 전화기를 들었다. “내가 무슨 개그작가냐, 재미없다고 타박하게…. 세상에 재미있는 게 널려 있고, 재미있는 글이 얼마나 많은데 나까지 그 대열에 끼어드냐고…. 격조나 안면 때문에 <씨네21> 내부에서 쓰기 어려운 이야기도 소화할 수 있으니 구색 맞추기로도 나쁘지 않은 것 아니냐…. 내 입장에서도 영화산업이 어쩌고, 정책이 어떻다느니, 촌지 받는 기자가 어쨌다느니…, 하는 둔탁한 주제로 틈새시장을 노리는 게 훨씬 경쟁력 있는 거다…. 게다가 괜히 어설프게 폼 잡는 척하다가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쓰는 신현준 선배 같은 사람과 비교라도 되는 날에는, 인문적 소양이나 뭘로 보나 망신 당하기 십상일 텐데, 끝까지 뭔가 옳은 소리 하는 척하면서 쪽 팔리지 않는 게 상책 아니냐…”라고… 전화기만 들고(걸지는 않고) 혼잣말로 위안 삼고 말았다. 그렇다고, 쉽게 물러서면 지사가 아니지…. 좀더 밀고 가보기로 한다. 내가 지사로 낙인 찍힌 데는 이유가 있다. 입에 거품 물고 설치거나 격문을 써서가 아니라 호·불호가 분명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어떤 사안에 대해 분명한 내 입장을 밝히는 편이다.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지지하는 것인지, 비판하는 것인지 분명한 견해를 드러낸다. 다만 소양이 얕아 진심과 본뜻을 맵시있는 글로 잘 옮기지 못하는 바람에 약간의 거부감을 산다는 것이 문제지만. 나는 지난해 한 영화제에서 주는 상을 당당하게 거부했던 평론가 박평식씨를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평소 영화에 대한 글을 쓸 때도 자기 입장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일관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강준만 교수의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렇게 자기 입장을 분명하게 밝히면 과격하다거나 신중하지 못하다는 화살을 피할 수 없고, 한국 땅에서는 마치 사회 부적응자인 양 폄하되기 십상이라는 데에 부아가 난다. 용서가 안 되는 것은 카르텔을 추종하는 글과 양비론이다. ‘중용’을 비껴난 카르텔은 담합이고, 이런 카르텔과 양비론의 본질은 비겁과 기회주의라고 생각한다. 카르텔의 폐해는 영화 관련 매체나 기사에서 대표적으로 드러난다. 어떤 영화에 대한 평가가 거의 천편일률적이라는 건 쉽게 납득이 안 되는 일이다. 나는 이른바 양비론을 경멸한다. 가까운 예로,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과정을 보자. 한쪽에서 지엽말단적인 인식공격이나 헐뜯기를 시도하면 언론에서는 ‘검증’이라고 받아쓰고, 이에 대해 해명을 하면 ‘비방전’, ‘이전투구’ 따위로 매도해버린다. 양쪽의 입장을 똑같이 전하는 것이 공정하다고 둘러대겠지만, 왜곡된 주장에 대해 언론이 사실을 규명해서 알려주지 않는 것이 오히려 불공정하고 편파적인 것이다. 언론의 검증이, 제기된 문제에 대해 사실 여부를 따져 밝히는 게 아니라 비방과 험담을 얼마나 끈기있게 참고 버티는지 ‘맷집’ 테스트를 하는 것으로 몰고가는 것만 봐도, 양비론의 추악한 본질은 입증되는 셈이다. 여하튼, 나는 앞으로도 ‘지사적 글 쓰기’를 그만둘 생각이 없다는 말이다. 이 칼럼이 재미없더라도 참고 읽어주든가, 아니면 필자를 바꾸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