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가 찾는 영화 정보를 손쉽게!

‘텔레@CASHFILTER365trc20전송대행코인현금화수수료trc20전송대행코인현금화수수료' 검색결과

기사/뉴스(2003)

독립영화제 초청작 <거친마루> 김진성 감독

사이버 공간에서 사람을 만나고 대화하고, 사랑에 빠지기까지 하는 디지털 세상의 한구석에서는 문자 그대로 무림고수가 되기 위해 땀을 흘리며 야생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왠지 지금 이 시대에 한참 뒤처져 있는 것 같은 이 무술인들은 어떻게 세상과 만나면서 무림지존의 꿈을 이뤄가고 있을까? 10일 개막한 서울독립영화제의 초청작 〈거칠마루〉는 현재형으로서의 무술인과 그들의 한판 ‘맞장’을 경쾌하게, 그러나 한줌의 과장 없이 그린 극영화다. “2000년도 쯤인가? 고수를 찾아 맞장뜨러 다니는 사람들을 다룬 ‘무림일기-고수를 찾아서’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인간극장을 보다가 영화로 만들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요? 어휴 저야 그 세계와는 거리가 멀죠.” 주변 사람들이 너무 공무원 같다는 통에 수염까지 길렀지만 여전히 ‘참한’ 눈빛을 가리지 못하는 김진성(40) 감독. 눈썰미 있는 독자라면 이 이름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그는 2002년 〈서프라이즈〉라는 로맨틱코미디로 충무로에 ‘입봉’한 감독이다. “〈서프라이즈〉 마치고 촬영 준비에 들어갔죠. 영화진흥공사(그는 이곳에 ‘공무원’으로 6년 동안 일했다)를 그만두면서 1년에 세편씩 꼭 찍어야지 맘먹었는데 충무로만 바라보면 2~3년에 한편 찍기도 힘들잖아요. 후배들이 십시일반해서 거둬준 3500만원 들고 그냥 달려들었죠.” “마이너영화 자유러워 좋아”2002년 ‘서프라이즈’로 입봉 인터넷상의 무술인 동호회에서 신화처럼 떠도는 아이디인 ‘거칠마루’와 한판 붙기 위해 8명의 고수들이 모이는 〈거칠마루〉는 대역도 와이어도 없는 100% 순도의 디지털 무협영화다. 주인공 격인 태식은 그가 봤던 ‘인간극장’의 실제 주인공이었고, 한명의 연극배우를 제외한 나머지 모두가 우슈, 합기도, 무에타이 등 국내외의 무술경기에서 ‘챔피언’ 한번 쯤은 ‘먹어본’ 무술인들이다. 앞으로도 할리우드의 조엘 슈마허나 거스 밴 샌트처럼 메이저와 마이너를 오가면서 영화를 찍을 생각이라는 김 감독의 창고에는 거의 완성된 시나리오 두편을 비롯해 트리트먼트만 30여편, 시놉시스까지 합하면 200여편이 수북이 쌓여 있다. “메이저건 마이너건 가장 힘든 건 돈문제인 것 같아요. 〈거칠마루〉도 막판에 쓰레기통에 넣을까 고민에 빠지기도 했죠. 그래도 충무로보다는 훨씬 자유로워서 좋아요.” 현재 청어람과 〈거칠마루〉의 개봉을 논의 중인 김 감독은 단관 개봉이나 300~400개관 개봉 사이의 영화가 전무하다시피 한 한국 극장가에 30~40개관으로 관객과 만날 수 있는 영화들이 늘어나는 데 〈거칠마루〉가 일조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2004년은 할리우드 여성 수난의 해

셰리 랜싱 은퇴 뒤 암울한 여성의 입지… 여성 고용 전망도 어두워 <할리우드 리포터>가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 리스트를 발표했다. 1위는 디즈니-ABC 텔레비전 그룹 대표인 앤 스위니가 차지했고, 2위는 소니픽처스 부사장 에이미 파스칼이 차지했다. 3위는 CBS 파라마운트 네트워크 텔레비전 대표 낸시 텔럼, 4위는 MTV 네트워크 대표 주디 맥그래스, 5위는 유니버설 픽처스 대표 스테이시 스나이더다. <할리우드 리포터> 편집장 로버트 J. 다울링은 “각 분야에서 최고의 지위에 오른 이들이 임시직과 데스크 안내원, 어시스턴트 등으로 출발했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면서 “이들은 성(性)이 아니라 지성과 자기 확신, 용기 때문에 성공을 얻었다”고 평가했다. <할리우드 리포터>는 리스트를 분석한 기획기사에서 “2004년은 여러모로 여성에게 힘들었던 한해”였다고 결론지었다. 가장 상징적인 사건은 13년 동안 단 한번도 리스트에서 빠져본 적이 없는 파라마운트 픽처스 대표 셰리 랜싱의 은퇴다. 다울링은 랜싱에 대해 “어떤 일을 하던, 재능있는 여성은 지도자가 될 수 있고, 영감을 줄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며 “그는 스타일과 우아한 태도로, 재능있는 산업지도자의 모습을 구체화했다”고 아쉬운 마음을 표했다. <할리우드 리포터>가 랜싱의 은퇴를 “한 시대의 종말”이라고 표현한 것은 점점 좁아지고 있는 여성의 입지와도 관련이 있다. 디즈니 CEO인 마이클 아이즈너의 후계자로 멕 휘트먼이 거론되고 있는 좋은 징조도 있지만, 현실은 대체로 암울하다. 라이프타임즈 엔터테인먼트 대표 캐롤 블랙과 E! 엔터테인먼트 CEO 민디 허먼, ABC 엔터테인먼트 대표 수잔 라인 등이 올해 타의가 섞인 은퇴를 선언해야 했다. 여성 고용의 전망도 밝지는 않다. 샌디에이고주립대학 교수 마사 로젠은 엔터테인먼트 업계를 조사한 연례보고서에서 작가와 감독, 프로듀서, 편집기사, 촬영감독 등 핵심적인 부문의 여성인력 고용비율이 지난 여섯 시즌 동안 정체상태였다고 지적했다. 이런 현상은 TV보다 영화업계에서 더 심각하다. 주요 배역 중에서 여성 캐릭터는 남성의 1/2에 불과하고, 50·60대에 이르면 그 비율은 1/4까지 떨어진다. 2003년 흥행순위 250위 안에 드는 영화 중 1/5이 주요 부문에 여성인력을 전혀 고용하지 않았다. 미국배우조합 의장 멜리사 길버트는 “가장 막강한 소비자 계층인 40대 여성이 연예산업에서 소외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는 말로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할리우드 리포터>는 이와 함께 최고의 수입을 올리는 여배우들의 리스트도 발표했다. 1위는 개런티 2천만달러를 받는 줄리아 로버츠. <할리우드 리포터>는 마이크 니콜스의 <클로저>에 출연하고 쌍둥이를 출산한 줄리아 로버츠가 최고의 한해를 누렸다고 평가했다. 2위의 카메론 디아즈는 로버츠처럼 2천만달러를 받지만, 올해 <슈렉2>의 목소리 출연 말고는 영화가 없다는 점에서 한 계단 밀려났다. 3위의 니콜 키드먼, 4위의 리즈 위더스푼, 5위의 드루 배리모어는 모두 개런티 1500만달러를 받는 여배우들. 할리 베리는 1400만달러를 받아 6위에 올랐고, 개런티 1200만달러를 받는 샌드라 불럭과 안젤리나 졸리, 르네 젤위거, 제니퍼 로페즈가 차례로 7위부터 10위까지를 기록했다.

SBS ‘문예피디’ 이종한의 <토지>

요즘 주말 밤 ‘9시 뉴스’가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는 풍문이 들려온다. 토·일요일 밤 8시45분 방송되는 에스비에스 드라마 <토지> 때문이란다. 지난 12일 6회까지 나온 <토지>가 벌써 시청률 20%를 넘어섰다. 원작 대하소설 <토지>의 뛰어난 작품성과 재미를 생각하면 대단한 수치가 아니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직 김현주나 유준상 등 주요 연기자들이 아닌 아역 배우들이 등장하고 있어 <토지>의 ‘폭발력’은 본격화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1979년과 87년에 이어 세번째로 드라마화될 정도로 원작이 ‘대단하다’는 것쯤이야 당연한 요인일 터다. 1897년 한가위부터 1945년 광복에 이르기까지 격하게 요동쳐온 한국근대사를 21권에 담은 이 대작은 빛나는 역사의식과 밑바탕을 면면히 흐르는 ‘생명 사상’이 작품성을 담보한다. 이에 더해 맛깔진 말발·글발에 재밌는 이야기까지 얹혀 완성됐다. 1년 넘는 준비기간·연기파 배우, 일부 미숙한 사투리는 ‘옥에 티’ 일단 틀은 갖춰진 것. 그러나 영상을 입히고, 이야기를 드라마에 맞게 재구성하는 것은 오롯이 연출자의 몫이다. 그런 점에서 연출자 이종한(52) 피디(위 사진)의 내공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피디는 이른바 대표적인 ‘문예 피디’다. 작품성 높은 문학작품들을 드라마로 구현해내는 데 뛰어난 솜씨를 보여왔다. 에스비에스 창사초기 방영웅 원작의 <분례기>(1992년), 이문구 원작의 <관촌수필>(1993년)과 2000년 방송되며 높은 인기를 끌었던 박영한 원작의 <왕룽의 대지>가 그 예다. 이 피디는 작가의 혼이 담긴 원작의 본질과 문학성을 텔레비전 영상으로 재구성해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이 피디는 “갈수록 함부로 시작할 게 아니었다는 걸 실감한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독자들은 소설을 읽으며 풍부한 상상을 하는데, 드라마는 상상 속의 장면을 영상으로 바꿔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드라마는 새로운 창작이 되어야 하지요.” 무엇보다 그는 원작에 대한 바른 이해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토지>는 세가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첫째가 ‘생명 사상’이고, 둘째가 ‘한’이며, 셋째가 ‘자연’이죠. 모든 생명을 가진 이들이 똑같이 소중하다는 것이 ‘생명 사상’이고 동학 사상인 겁니다. 유한한 인간은 한을 품을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토지>에는 자연도 담겨있습니다.” 소설 <토지>가 있는 그대로 영상의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이 피디가 직접 느끼고 재해석한 <토지>가 드라마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뜻이다. 연출자가 원작에 끌려가지 않고 원작의 본질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독립적인 재해석에 나서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원작의 무게에 짓눌려, ‘이야기’도 ‘영상’도 모두 놓치는 경우가 허다한 까닭이다. 이런 점에서 이 피디의 연출력이 초기부터 높은 인기를 끌고 있는 <토지>의 힘이라는 것이 많은 이들의 평가다. 지난 봄 촬영된 3·4회와 지난해 가을 찍은 6·7회 등 우리 나라 4계절의 영상미가 아름답게 구현된 것이나 빠른 속도감 속에서 박진감 넘치게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 등이 그의 연출력을 설명한다. 이와 함께 1년이 훌쩍 넘는 철저한 준비기간과 김갑수·김여진·김미숙·유해진·박지일 등 ‘얼굴’ 아닌 연기로 승부하는 배우들 등이 큰 구실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옥에 티’가 있다면, 시청자들이 지적하고 있는 일부 출연자들의 미숙한 ‘사투리’ 연기일 게다. 이제 6회를 마친 <토지>가 앞으로 어떤 성과를 이룰지, ‘9시 뉴스’들은 어느 수준의 비명을 지르게 될지 시청자들의 관심이 모이고 있다.

3사 토크쇼 하향평준화

밤마다 연예인들의 ‘말장난’이 텔레비전에 넘쳐나고 있다. 몇몇 방송에서 시작한 ‘연예인 신변잡기’ 위주 프로그램이 다른 방송으로 번져가는 한편, 같은 방송사에서도 ‘자가복제’ 프로가 생겨나고 있는 탓이다. 앞서 나름의 신선한 포맷으로 시작한 연예오락 프로도, 시청률 경쟁에만 빠져 낮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프로그램의 뒤를 쫓아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고 있다는 것이 큰 문제다. 이에 따라 비슷한 프로그램들이 지상파 3사에 무려 5개로 늘었다. 진행자나 출연자도 ‘그 밥에 그 나물’이고 내용도 ‘연예인 사생활’ 아니면 ‘영화·음반 홍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시청률 경쟁에 서로 베기면서 특색잃어, 출연진·진행자 겹치기…시시껄렁 집담 잔치 연예인 말장난으로 크게 성공한 프로그램은 에스비에스의 <야심만만>이다. 지난해 2월 첫 방송을 시작한 <야심만만>은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한 토크쇼로, 시청률만 놓고 보면 큰 성공을 거뒀다. 그러자 다른 방송사들도 경쟁적으로 비슷한 프로그램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지난달 방송을 시작한 한국방송의 <상상플러스>. “인터넷을 통해 시청자와 호흡할 수 있는 중간 다리 역할을 하는 프로그램”이라는 기획의도로, ‘리플 문화’를 이용한다고는 하지만 연예인들의 잡다한 일상사가 주요 이야깃거리로 등장한다. 에스비에스는 <야심만만>에 이어 <즐겨찾기>로 ‘자가복제’ 프로를 하나 더 추가했다. 지난 5월 첫 방송을 시작할 땐, 진행자와 출연자가 함께 노래를 만들어 부르는 포맷으로 참신하게 출발했지만, 10월께 ‘토크’를 강화하면서 <야심만만>과 다를 바가 없어졌다. 문화방송 <놀러와>도 다르지 않다. 지난 5월 첫회를 내보낼 때만 해도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할 듯 싶었으나 역시나 연예인들의 ‘시시껄렁한 잡담’이 주된 내용으로 돼버렸다. <야심만만>보다 오래된 한국방송 <해피투게더>도 처음 ‘쟁반 노래방’에서 학창시절 노래를 다시 배워보는 산뜻한 시도로 사랑을 받았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책가방 토크’로 무게 중심이 옮겨졌다. 결국, 월요일 밤 <야심만만>으로 시작해 화요일 밤 <상상플러스> <즐겨찾기>, 목요일 <해피투게더>, 토요일 <놀러와>로 이어지는 일일 토크쇼처럼 되어 버렸다. 한 방송 관계자는 “<야심만만>이 높은 시청률을 올리자, 다른 프로그램들도 ‘울며 겨자 먹기’로 쫓아가는 양상”이라며 “새로운 오락프로 형식에 대한 아이디어 고갈과 시청률 지상주의가 문제”라고 말했다. 연예인들의 겹치기 출연에 대한 비판과 영화·음반 홍보 일색이라는 지적도 줄을 잇는다. 지난 14일 <즐겨찾기>에 출연한 이성재와 김현주는 18일 <놀러와>에 이어 20일 <야심만만>에도 겹쳐 나온다. 또 20일 <야심만만>에 나올 예정인 댄스그룹 ‘지오디’는 이미 16일 <해피투게더>에 나온 바 있다. 윤계상·김민정도 영화 홍보차 지난달 <즐겨찾기>(16일) <해피투게더>(18일) <놀러와>(20일) <야심만만>(29일 등)에 잇따라 나왔다. 염정아·이지훈도 자신들이 출연한 영화 개봉을 앞두고 지난달 2일 <즐겨찾기>를 시작으로 <놀러와> <해피투게더> <야심만만> 등에 연이어 나왔다. 이쯤되면 토크쇼라기보다 ‘영화홍보쇼’라는 비난을 받아도 달리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이에 대해 한 담당 피디는 “연예인 섭외가 어려워, 영화 홍보라는 ‘인센티브’ 없인 프로그램 제작이 어려운 형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말 잘하는 연예인 몇 명으로 시청률 올리기 경쟁에 나서고, 특정 포맷을 무비판적으로 따라다니는 연예오락 프로 제작 행태는 근절돼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키워가는 요즘이다.

전화, 대화, 영화

첫눈이 사납게 내린 이튿날이었다. 출근길 택시에서 라디오를 듣고 있었다. 비정규직연대회의 노동자들이 타워크레인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는 뉴스였다. 소식을 전한 진행자는 천연스레 말을 이었다. “그럼, 크레인 위에 계신 분들을 연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흠칫 놀랐다. 어어 잠깐, 진짜로? 정말이었다. “위원장님 안녕하세요?” “예, 수고하십니다.” “물은 남아 있나요?” “예, 아직은.” 농성 노동자들은 바람 찬 공중으로부터 휴대폰으로 지상에 안부를 전하고 있었다. 지나고보니 내가 둔감하게 살아온 탓이지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전화의 발달에 영향을 받은 것이 어디 뉴스의 꼭지 구성뿐이겠나. 그러고보니 휴대폰이 나오고 전화의 기능이 다양해지면서 현대를 무대로 한 영화와 TV드라마도 알게 모르게 변모했다. 우선 우리는 혼자 걸어다니며 중얼거리고 군중 속에서 속내를 털어놓는 사람들의 모습에 익숙해졌다. 대화의 미장센은 참으로 다양해졌다. <생활의 발견>에서 예지원이 걸어온 눅눅한 구애 전화를 벌레 밟듯 응대하는 김상경과 그 앞에 펼쳐진 경치 좋은 강변의 대조라니. 핸드폰이 없었다면 맛보지 못했을 미묘한 그림이다. 러브스토리와 미스터리를 비틀기 위해 극중 인물 사이의 연락을 두절하는 일은 예전에 비해 훨씬 복잡한 작업이 됐다. 당신이 멜로드라마나 스릴러의 작가라면 주인공을 산중에 고립시키거나 연인들을 갈라놓기 전에 일단 휴대폰을 분실하거나 배터리가 방전될 만한 핑계를 고안해야 할 것이다. 조지 클루니와 미셸 파이퍼의 휴대폰을 바꿔치기하는 아이디어의 로맨스 <어느 멋진 날>은 끝없이 움직이는 남녀의 통화만으로 스토리를 끌어간다(사실 두 스타의 일정 맞출 일이 줄어든 연출부가 제일 기뻐했을 성싶다). 이쯤은 기본 응용이고 메시지, 자동응답, 다자간 통화 등 플롯의 재료는 많은 영화를 도왔다. <슬라이딩 도어즈>에서 기네스 팰트로는 네 자리 숫자를 누르면 직전 통화번호로 연결되는 영국 텔레콤(BT) 특유의 과잉 서비스 덕택에 애인의 배신을 발견한다. <고양이를 부탁해>에서 전화의 역할은 화면 구성과 플롯에 끼치는 영향 이상이다. 세상 속으로 흩어진 소녀들의 엇갈리는 다자간 통화는 화면분할과 결합해 그들의 관계를 일목요연하게 그린다. 스크린 위로 또박또박 흘러 대사 같기도 하고 미술 같기도 한 소녀들의 문자 메시지는 영화와 하나가 되어 반짝거린다. 기술은 발전할수록 스스로의 존재를 지우고 투명해진다. 전화가 추구하는 궁극의 형태는 텔레파시일 것이다. 텔레파시가 무슨무슨 텔레콤 상표 아래 상용화되는 시대의 영화는 어떤 모습일지. 인물의 배치와 이야기의 얼개를 놓고 미래의 시나리오 작가들은 더 심한 두통에 시달리게 될까? 아니면 더 큰 가능성을 만끽할까? 플롯의 고충은 정작 걱정거리가 아닐지도 모른다. 텔레파시로 나와 남 사이의 ‘정당한’ 거리가 사라져버린 세계에서도, 극장은 우리가 타인의 인생을- 호기심 많은 교환원처럼- 잠깐 엿듣는 밀실로서 여전히 호객에 성공할 수 있을까? 김혜리 vermeer@cine21.com

10가지 열쇠말로 돌아본 2004 방송계

안방극장은 올 한해도 한국인들의 가장 가까운 쉼터였다. 팍팍한 일상에 치인 시민들은 하루 평균 3시간씩 티브이에 눈과 귀를 맡겼다. 수많은 프로그램과 연예스타, 방송인들이 안방극장을 명멸했고, 가장 압도적인 장르인 드라마를 중심으로 숱한 뉴스가 양산됐다. 일본 열도의 열기를 흡수하며 태풍으로 번진 ‘한류 열풍’ 속에 방송 콘텐츠 생산과 유통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뒤안의 각축 또한 어느 때보다 거셌다.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소추’ 사태는 방송을 시민정치의 한가운데 서게 했다. 콘텐츠와 관련한 방송계의 주요 뉴스를 10개의 열쇠말로 정리해 본다. 드라마 ‘캔디+신데렐라’ 열풍 캔디렐라=올 한해 정규 프로그램 시청률 10강은 모두 드라마가 차지했다. 그 드라마를 이끈 핵심 모티프는 ‘신데렐라 콤플렉스’였다. ‘왕자’를 욕망하는 신데렐라들은 게다가 한결같이 ‘캔디’였다. 장기불황의 암울한 현실을 벗어나고픈, 그러면서도 ‘왕자’ 앞에서 심리적으로 당당하고 싶은 시청층의 욕구를 반영한 결과였다. 최고 시청률 56.3%를 기록한 <파리의 연인>은 그 정점을 찍으며, ‘캔디렐라’로 불리는 사회적 신드롬을 창출했다. 이런 물결을 거스르는 <장길산>과 <영웅시대> 등의 고답적 시대극은 부진에 시달렸다. <아일랜드> <단팥빵> <반올림> 등은 낮은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마니아층을 결집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한류, 일본열도마저 휩쓸다 욘사마=드라마의 힘은 나라 밖에서도 거칠 것이 없었다. 한류 드라마는 중국과 동남아를 돌아 마침내 일본 열도마저 휩쓸었다. <엔에이치케이>를 통해 <겨울연가>가 방영된 이래 한국 드라마의 낭만적 감수성은 일본 중·장년층의 심금을 울리며 한류 열기의 도약을 이끌었다. <겨울연가>의 드라마적 매력에서 시작된 일본 내 한류 바람은 나아가 ‘욘사마’ 배용준을 필두로 한 한류 스타 개인에 대한 숭배에 가까운 팬덤으로 달아오르고 있다. 이를 계기로 한류스타를 내세워 처음부터 해외 수출을 겨냥한 드라마의 사전전작이 시도되는 등 드라마 제작과 유통 환경에도 급격한 변화가 일고 있다. 연예기획사와 독립제작사가 공동제작에 나선 <슬픈 연가>는 제작완료 전에 48억원에 해외시장에 팔렸다. 방송사가 주도하던 드라마 제작에 스타파워를 앞세운 연예기획사와 외주제작사의 입김이 거세질 것임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진다. 병역비리 연예계를 울리고 병풍=차기 한류스타로 손꼽히는 송승헌의 병역 비리 사건이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일부 운동선수들의 신장 질환을 이용한 병역 면제 비리가 드러나면서, 송승헌을 비롯해 장혁, 한재석 등 남자 연예인들한테도 그 불똥이 튀었다. 드라마 <해신> 출연을 예정하고 있던 한재석은 방송사쪽의 발빠른 대응으로 큰 무리 없이 입대절차를 밟았으나, 송승헌의 경우 드라마 <슬픈 연가> 출연을 둘러싸고 긴 논란을 벌이기도 했다. 국회의원까지 가담해 드라마 촬영 뒤 군에 입대하도록 힘을 실어줬으나, 오히려 더 큰 역풍을 맞고 지난달 16일 현역 복무를 시작했다. 방송계 일각에서 공공연히 돌던 불법적인 병역 면제 수법 등이 완전히 퇴출되는 계기가 돼, 내년엔 원빈, 소지섭 등 많은 남자 배우들이 군 복무를 수행할 예정이다. 스타 복귀·변신 줄이어 고현정=드라마 붐 속, 왕년의 스타가 컴백하는 한편 음반 시장 불황에 따라 연기자로 변신하는 가수들도 대거 등장했다. 고현정은 내년 초 방송될 드라마 <봄날>을 통해 연예계 복귀를 선언했다. 지난 1995년 <모래시계>를 끝으로 재벌3세와 결혼하면서 연예계를 떠났다. 지난해 11월 이혼의 아픔을 겪은 지 1년 만에 티브이 드라마를 통한 연예계 복귀를 선언했고, 여러 언론들이 이를 대서특필했다. 가수들도 방송 드라마를 통한 연기자 변신에 힘쓴 한 해였다. 철저한 준비 끝에 성공적인 변신에 이른 이들이 있는 반면, 너도나도 연기자 변신 행렬에 끼어 쓴 맛을 본 이들도 있었다. 전자가 비, 유진 등이었다면, 후자는 박정아, 성유리였다. 가수들이 이처럼 연기에 열을 올린 것은 가요시장의 전반적 침체가 주요한 이유였다는 분석이다. 코미디, 경제불황 타고 ‘활짝’ 스탠드업=웃음이 많이 고픈 한 해였던가보다. 덕분에 코미디 프로가 크게 떴다. 다시 코미디의 시대가 온다는 말도 떠돈다. 수년간 차근차근 준비해온 <개그콘서트>에 이어, <폭소클럽>과 <웃찾사>가 어렵게 살림 사는 이들을 웃겼다. 특징은 우리 입맛에 맞게 변형된 스탠드업 코미디가 새로운 웃음을 선사했다는 것. 콩트보다 훨씬 간결하면서 강렬한 짧은 형식의 코미디가 시청자들에게 설득력있게 다가갔다. 긴 시간 웃음에 목말라온 시청자들은 작고 짧은 자극에도 폭소를 터뜨렸다. 블랑카, 화니와 지니, 안어벙, 리마리오, 윤택 등 새 코미디 스타들이 대거 등장했다. “사장님 나빠요” “그때 그때 달라요” “쌩뚱맞죠” “뭐야” “마데 전자” 등 촌철살인의 맛 깊은 유행어가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오락물 하향평준화를 막아라 !느낌표=연예인들의 잡담이 밤 시간대 텔레비전을 점령했다. 방송사를 가리지 않았다. 비슷비슷한 얼굴들이 나와 판에 박은 듯한 수다로 밤을 지새웠다. <야심만만> <해피투게더> <상상플러스> <놀러와> <아이엠> <즐겨찾기> 등 제목도 채널도 달랐지만, 쌍둥이처럼 차이점을 찾아볼 수 없었다. 시청률이 잘 나오니 서로 베끼고 닮아가며 하향 평준화의 길에 앞다퉈 줄섰다. 에스비에스가 주도하는 다툼이었다. 신동엽, 유재석, 강호동 등 나오는 이들도 겹치기로 바빴을 터다. 특정 연예인 의존도는 끝없이 커지고 있다. 시청률 경쟁 와중에 성우 장정진씨가 숨지는 참극도 빚어졌다. 막판에 가 7개월만에 다시 등장했다. ‘눈을 떠요’ 등 새로운 꼭지를 들고 나와 신선한 바람몰이를 이어가고 있다. <비타민> <스펀지> 등 인포테인먼트 프로그램도 적잖이 성공하면서 오락프로의 하향 평준화를 저지하고 있다. 중복중계 논란…채널선택권 위축 판박이=방송사의 연말 각종 시상식에 대한 폐지 요구가 잇따랐다. 이달초 연예기획사들 모임인 한국연예제작자협회(연제협)가 연말 가요시상식 폐지를 요구하며 불참을 선언했다.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등 시민단체들도 자사 이기주의에 따라 진행되는 각종 시상식의 폐지를 요구했다. 서로 다를 바 없는 시상식들이 각 방송사에 대한 기여도와 이해관계에 따라 나눠먹기식으로 진행된다는 지적이다. 이런 방송사간 담합성 경쟁에 대한 비판은 지난 8월 올림픽 중계방송에서도 불거졌다. 방송위원회의 분석 결과, 지상파 3사가 동시에 같은 경기를 중계한 시간은 하루 3시간 12분에 이르렀고, 2개 채널 이상 중복 중계시간도 하루 4시간30분을 넘었다. 그것도 일부 인기 종목에만 집중된 것이었다. 시청자의 채널 선택권은 크게 제약됐다. 시사프로, 정치공세에 휘말려 탄핵=시사물과 보도·미디어비평 프로그램 등은 거센 정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대통령 탄핵 소추’라는 초유의 사태를 공론장으로 끌어들인 방송계의 시도는 ‘편파방송’이라는 야당과 보수신문의 시비에 시달렸다. 한국방송의 14시간 탄핵 생방송과 문화방송 <신강균의 사실은> 등 탄핵 관련 프로그램들은 방송위원회의 심의대상에 올라, 첨예한 논란을 불렀다. 탄핵방송이 ‘불공정’했다는 언론학회 보고서가 작성자의 정치적 성향과 조사방법의 객관성을 둘러싼 신뢰성 논란으로 번져간 가운데, 방송위는 뒤늦게 탄핵방송 전반은 심의대상이 될 수 없다며 각하 결정을 내렸다. 하반기 정기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야당은 <미디어포커스>와 <시사투나잇> 등이 ‘불공정’하다며 정치공세를 폈다. 문화방송과 에스비에스는 자사 뉴스를 통해 국감에서 제기된 상대방의 의혹을 집중제기하는 ‘보도전쟁’을 펼쳐 ‘방송 사유화’ 논란을 일으켰다. 문화방송 ‘뉴스 보수화’ 논란도 연말 방송가를 달군 화두의 하나다. 다큐 ‘봇물’ …다큐폐인 등장 다큐 페스티벌=9월초 일주일 동안 다큐멘터리만을 종일 방영한 ‘제1회 이비에스 국제다큐페스티벌’은 “방송계를 일주일 동안 공황으로 몰아넣었다”. 99편의 세계 각 나라 작품들이 안방극장을 찾았고, ‘다큐폐인’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출품작인 <금지된 축구단>에 대한 중국대사관의 방영중지 요청과 대상 수상자인 중국 다큐멘터리스트의 시상식 불참 소동, 통일부의 다큐 내용 일부 삭제 요청 등 잡음이 없잖았음에도, 다큐의 의미와 재미를 새롭게 돌아보게 한 대담한 기획으로 평가된다. 뒤이어 한국방송이 3년 기획 끝에 내놓은 문명사 다큐 <도자기>와 문화방송의 창사 특집 <빙하> <중동> 등도 독자적 시각과 빼어난 영상 등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문화방송 <이제는 말할 수 있다>와 에스비에스 <환경의 역습> 등도 새로운 문제 제기와 높은 성취도로 호응을 끌어냈다. 한국방송 시사다큐 <한국사회를 말한다>는 지난 10월30일 출범 1년여만에 퇴장해 아쉬움을 남겼다. 케이블 자체제작영화 첫탄생 동상이몽=불황 여파로 방송산업도 전반적인 침체를 기록했으나, 케이블티브이 쪽만은 예외였다. 케이블과 위성방송에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채널사업자(피피)들은 광고수주에서도 증가세를 이어갔다. 이를 기반으로 대형 복수채널사업자(엠피피)들은 자체 제작의 첫 걸음을 뗐다. 온미디어의 영화채널 <오시엔>은 15억원의 제작비를 들여 국내 첫 티브이영화 <동상이몽> 6부작을 제작·방영했다. <동상이몽>은 닐슨미디어리서치 집계에서 98개 케이블 채널 프로그램 중 1위에 오르는 등 흥행에도 성공했다. 씨제이미디어 계열의 <엠넷>도 이달 말 가수 백지영이 출연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자체제작해 내년 초 방영할 계획이다. 그러나 인기 개그맨 신동엽이 <엠넷>의 <슈퍼바이브파티> 엠시를 맡기로 했다 1회만에 그만 두는 등 지상파에 맞선 자체제작의 한계 또한 뚜렷했다. 한겨레 손원제, 김진철 기자

[외신기자클럽] 한국영화, 세계로 가려면 안정된 시스템과 충분한 인력 필수

12월17일 영화진흥위원회의 ‘해외배급용 한국영화 제작의 국제적 표준화 포럼’에 참석하면서 지난 5년간 한국 영화업계가 거듭한 발전이 다시금 떠올랐다. 우린 ‘한국영화 붐’을 얘기하지만 사실상 두개의 붐이 있었다. 국내시장에서의 자국영화 인기폭증과 더불어 국제무대에서 일어난 더욱 진기한 변화가 그것이다. 영화제 상영과 해외 세일즈, 세계 영화계 참가의 전체적 수준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졌다. 이렇게 빠른 성장은 큰 이득을 제공하는 동시에 또한 엄청난 난제를 제시하기도 한다. 적절한 비유인지 모르겠지만 필자는 한국 영화업계를 그릴 때 굉장히 빠른 파도를 타면서 그 뒤를 모는 기세를 통제하고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애쓰는 서퍼가 떠오른다. 한국 영화업계는 국내 붐에는 준비가 잘된 것 같고, 아마 한국에서 흥미로운 영화가 만들어지는 한 그 붐은 계속될 것이다. 그런데 이 업계가 국제 붐의 파도를 탈 수 있는 능력은 훨씬 더 위태로워 보인다. 한국영화가 세계에 걸친 극장 스크린, 텔레비전, DVD 플레이어에 더욱 퍼져나갈 수 있는 가능성은 확실히 있지만, 그러려면 영화인들에게 영감과 창의성뿐만 아니라 새로운 기자재, 더 많은 인력, 그리고 널리 행해지는 제작방식에의 변화와 같은 실제적인 요소가 요구될 것이다. 영진위 포럼에서 발표자들의 얘기를 들으니 업계의 어떤 부분들은 이미 심한 무리를 겪고 있음이 명백했다. 한국영화들이 가공과정의 재료 흐름의 관리나 인력부족과 같은 평범하게 실제적인 요소들 때문에 해외에서의 잠재 가능성을 실현시키지 못한다면 안타까운 일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영화를 구매하는 많은 해외 회사들은 필요한 선재를 한국에서 받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유럽 DVD사들은 PAL 방식으로 영화 사본을 받아야 하는데, NTSC 방식을 쓰는 한국은 고품질 사본을 제공할 수 있는 기자재가 없다. 자막 대신 더빙을 사용하는 나라의 배급사들은 (대사없이) 음악과 효과음만 있는 사운드트랙 사본이 필요한데, 대부분의 한국 제작사들은 이런 걸 미리 만들 생각을 하지 못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건 어렵고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해외 영화사들이 첫 한국영화를 구매했을 때 이런 불편을 겪고 나면 다시 구매할 리가 없다. 한편 국제영화제들은 한국영화 상영에 굉장한 관심을 보이지만, 가용 자막 프린트가 부족하거나 (더 많은 경우) 한국에 있는 직원들이 모든 요청을 처리할 수 있는 시간이 없기 때문에 많은 경우 상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로 인해 한국영화의 전체적인 관객 수가 줄어든다. 종종 영화업계에서 일하는 모든 이가 극도의 피로상태가 되도록 과로에 시달리는 것 같다. 인력이 많으면 한국영화는 더 많은 관람자를 얻을 것이며 더 효과적으로 팔리고 마케팅할 수 있겠지만 영화사와 정부는 붐을 따라가는 데 난항을 겪고 있다. 지난 몇년간 한국은 국제적으로 퍼져나가는 것에 뒤지지 않기 위해 많은 자원을 동원해왔다. 한 가지 예로, 1998년 영진위 해외진흥부는 상근 직원이 3명밖에 없었지만 현재는 8명의 상근 직원과 4명의 상근 인턴이 있다. 그렇지만 한국이 이 정도 수준의 발전을 계속하려면 아직 더 많은 트레이닝과 인력과 기술이 필요하다. 기자재와 인력 투자의 필요성은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더 큰 도전이 될 것은 업계에 성행하는 태도와 업무 방식을 바꾸는 것이 될 수도 있다. 한국영화가 다양한 포맷으로 세계를 누비는 지금, 국내 회사들은 훨씬 더 복합적인 요구를 받게 됐다. 한국 제작사들은 영화가 완성될 때까지 기다릴 것이 아니라 초기 기획단계부터 해외에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마케팅하고 팔지에 대해 고려해야 할 것이다. 포럼에서 발언한 사람 중 많은 이는 한국의 정신없는 제작 페이스가 느려져야 한다고도 제안했다.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 기술 전문가들은 한국영화들이 거치는 후반작업의 속도에 종종 충격을 받곤 한다. 영화사들이 호흡을 가다듬고 속도보다 품질과 완성도에 초점을 맞춘다면 한국영화의 미래 잠재력에 이득이 될 것이다. 달시 파켓/ <스크린 인터내셔널> 기자

승리의 쾌감이 없는 정직한 블록버스터, <역도산>

<역도산>을 보는 두 가지 시선① - 위대한 패배를 음미하다 역도산은 “딱 한번 사는 인생, 착한 척할 시간이 어디 있냐”고 했지만 송해성과 설경구의 <역도산>은 기어이 착한 척하고야 만다. 벚꽃이 흐드러진 신사로 나들이갔던 아야와 역도산의 기념사진이 그 아이콘이다. 일정한 시간을 두고 반복해서 클로즈업으로 등장하는 이 사진에서 아야는 더할 나위 없이 환히 웃고 있지만 역도산은 뒤틀린 미소로 불온하게 서 있다. 그건 눈부신 햇살 때문이겠지만 아야는 그 빛을 자신의 몸과 조화시킨 반면 역도산은 일그러진 거부반응을 보인다. <역도산>은 그의 이런 체질이 어디에서 연유했는지, 그것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놀라울 만큼 차분한 연대기로 풀어간다. 이상한 건 그게 위대한 패배자의 연대기라는 것이다. 샤프 형제와의 경기에서 게임에선 졌으나 일본 대중을 상대로 한 경기에선 이겼듯 그는 위대한 패배자다. 그런데 그 위대함은 실은 비열함과 조작으로 똘똘 뭉친 승부수의 결과물이다. 왜 <역도산>은 패배와 비열함으로 뒤범벅된 이상한 블록버스터가 돼야 했을까? 왜 <록키> 같은 링의 아드레날린을 스스로 삭제하고 현실이란 땅에 바짝 엎드려 ‘남자로 산다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묻는, 착한 척하는 블록버스터가 됐을까? 아마도 이건 한국영화가 한국이란 테두리를 좁다고 여긴 순간 역도산을 불러내는 게 운명이었고, 역도산이 자신의 욕망을 불살라버리지 않는 한 민족과 국가라는 호명에 얽매이지 말아야 했던 운명과 관련될 것이다. 김신락이 역도산이 되기 직전까지, 그러니까 상투를 자르며 스모를 포기하기까지의 패배 과정은 식민국가 대 피식민지라는 기존 민족주의 드라마의 감정선을 그대로 따른다. 그렇지만 역도산은 이 전형성을 곧 배반한다. 프로레슬링의 일본 도입을 놓고 망설이는 흥행사들에게 역도산은 “미국인을 보는 일본인들의 눈에 두려움이 가득하다. 언제부터 일본이 이렇게 나약해졌느냐”고 일갈하며 그들의 민족 감정을 건드린다. 물론 이건 계산된 전술이었고 주효했다. 선천적으로 갖게 된 피와 귀화로 택한 후천적인 피에 대한 그의 태도는 “난 일본이고, 조선이고 그런 거 몰라. 난 세계인이다”라고 뇌까리는 생존 이데올로기로 집약된다. 조선의 민족주의든 일본의 민족주의든 모두 그의 작은 무기일 뿐이다. 나아가 국가 단위로 움직이는 자본주의의 구별도 하찮아진다. 가장 드라마틱하고 중요한 대칭선을 이루는 역도산 대 칸노 회장의 구도는 사나이 대 사나이, 비즈니스맨 대 비즈니스맨, 세계화(서양 물신주의) 대 일본(동양 물신주의)으로 끊임없이 변이해간다. 각자의 선택과 고집이 최후의 승자를 가리지만 매 국면으로 따지면 영원한 승자는 없다. 아니, 역도산 자신이 자본주의 발전사의 화신이 되어 장렬히 스러져간다. 이것이 <역도산>이 일본에 말거는 방식이다. 이건 조롱이 아니고 편견도 아니며 훈계는 더더욱 아니다. <역도산>에서 가장 자극적인 순간은 아마도 역도산이 샤크 형제를 때려눕힐 때일 것이다. 늙은 일본인이 눈물을 글썽이며 만세를 부르는 순간, 역 광장의 조그만 텔레비전 앞에 거대한 무리를 이룬 일본인들이 감동의 물결을 일으키는 순간이다. 일본의 무력감을 통쾌한 승리감으로 바꿔주며 자존심을 세워주었던 역도산이 자신들이 핍박하던 조선인이며 자신들을 속인 비열한 승부사였다는 사실은 자칫 위험해 보인다. 그래서 <역도산>은 위대한 실패자가 돼야 한다. 모질게 괴롭히는 스모 선배 다무라의 기를 무력으로 꺾어놓는 것도, 칸노 회장의 환심을 사기 위한 절묘한 작전도, 프로레슬링 첫 경기에서 상대방의 숙소로 뭉칫돈을 들고 찾아가는 것도 대단한 승부수였으나 결국은 쓸데없다. 그 남자는 모진 승부수로 얻어낸 모든 것과 결별한다. 자신을 알아준 보스 칸노 회장과도, 깊은 사랑과 헌신으로 버팀목이 되어준 여인 아야와도, 불고기로 환대하던 고향 친구와도. 그는 햇살에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체질이 돼야 한다. 이것이 출발부터 일본의 돈과 사람을 끌어들이고 일본의 관객을 겨냥한 한국 블록버스터의 얼굴이다. 위대한 패배를 함께 음미해보자는 손짓이다. 한국 블록버스터가 바다를 건너가 정서적 일체감을 추구하는 이 방식은 승리와 정복의 일체감으로 도취시키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보다는 나아 보인다. 사실 햇살에 찡그리는 게 더 자연스럽다는 점에서 <역도산>은 무척 정직한 블록버스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