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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수 그리고 은둔의 (탈)정치

김두수라는 ‘가수’의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1986년부터 1991년 사이 세장의 음반을 발표했지만 히트곡이라고 할 만한 곡은 없다. 그렇지만 그의 음악을 들어본 사람은 묘한 분위기에 사로잡혀본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특히 그의 음악적 정서는 ‘한국적’이고, 그건 국악기를 사용한다거나 5음계의 선율을 고집한다는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다. ‘1980년대 언더그라운드 포크의 3인방’이라든가 ‘그의 음반이 중고음반점에서 10만원에서 20만원 사이에 거래된다’는 말을 인용하는 것은 진부한 사족일 것이다. 어쨌든 그는 한대수나 김민기 같은 ‘다수의 전설’은 아니더라도 ‘소수의 컬트’로 남아 있다. 몇달 전 그가 새 음반을 발표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를 만나보기 위해 여러 군데 수소문을 해보았지만 헛수고였다. 그러다가 어렵사리 그를 만날 수 있었고, 그러면서 그동안 그를 보기 힘들었던 이유도 함께 알 수 있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는 ‘서울’에 살고 있지 않았다. 혹시나 그를 ‘전원주택이나 라이브 카페를 소유한 인물’로 착각할지 몰라서 설명한다면, 그가 사는 곳은 수도권에서도 한참 멀리 떨어진 강원도의 산중이다. 그의 삶은 휴대폰과 PDA를 들고 자동차를 한두 시간 몰고 가서 인터넷이 들어오는 별장에서 잠시 쉬다 오는 낭만적(이자 얼치기) 전원생활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보도자료에 ‘돔(dome) 형태의 구조물’이라고 표현된 곳은 그의 거처이자 작업실은 ‘콘테이너 건물’이다. 산중으로 은둔하려는 계획은 제도권 음악시스템에서 지치고, 게다가 몹쓸 병에 걸려 3년간 병원 신세를 진 뒤 내렸다고 한다. 처음에는 경기도 양평의 강변에 자리를 잡았지만 그곳마저도 ‘전원(?)카페’와 ‘러브(?)호텔’로 어지럽혀지자 더 멀리, 더 깊숙이 은둔하게 되었다고 한다. 직접 만나본 그의 모습은 음악을 듣고 예상한 것과는 달랐다. 귀기 어린 듯한 목소리와 여린 기타의 울림을 듣고 괴팍하고 선병질적인 인물이라고 지레짐작했지만 그는 자상하고 친절했다. “10년 넘게 은둔하면서 어떻게 지내셨습니까”라는 질문에 “특별한 삶을 살지 않았다”고 차분히 대답했고, “자신에게 누구의 음악이 영향을 미쳤느냐”는 평론가의 상투적 질문에 대해서도 넓고 모호하게만 이야기했다. 제도권 음악시스템에 대한 환멸을 언급하기는 했지만 ‘분노’ 같은 감정을 쌓아두고 있지는 않았다. “한국에서 음악을 하면서 살아가기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어떤 일을 하게 되는 사람은 누가 뭐라고 해도 그 일을 하게 되어 있다”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답변했다. “젊은 친구들이 ‘한국적’ 정서에 공감할지 의문이다”라고 넌지시 우려를 표해도 “그건 요구한다고 될 일은 아니죠”라는 여유있는 반응이 나왔다. 그리고 자신의 음악이 “마음이 어지러울 때 들으면 좋은 음악”이 되기를 바란다는 소박한 바람만을 표해왔다. 그의 말을 듣고 있다보니 전원생활이나 은둔이 낭만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는커녕 오히려 평소에 가지고 있던 환상이 산산히 부서져내렸다. 그 대신 은둔 역시 일종의 싸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두수의 싸움은 이번 음반에 실린 “추상(追想)”이나 “Romantic Horizon” 같은 전위적인 곡을 들으면 어렵지 않게 감지할 수 있다. 이런 싸움이 도시에서의 아귀다툼 같은 것은 아니라곤 해도…. 우파 아니라 좌파에게도 김두수와 같은 삶은 ‘뒤처진’ 삶일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앞으로 머리를 들이밀지 않으면 앞서 나갈 수 없는 현대 남한사회에서 저런 생활양식은 비웃음을 당하지 않으면 다행인지도 모른다. 게다가 ‘은둔이 수동적 도피인가 적극적 창조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아직 만족스럽지 않다. 그렇지만 나는 그게 대안적 생활양식들 중 하나라는 점에 이의를 달기는 힘들 것 같다. 은둔하지 않는 자들의 탐욕스럽고 낭비로 가득한 삶이 은둔하는 자들보다 생산적이라는 보장은 없으니 말이다. 아마도 그는 이런 글을 보고도 ‘도대체 나보고 왜 그러지’ 하면서 어리둥절해 할지 모른다. 그건 그만큼 나를 포함한 한국인 대부분은 대도시의 광기의 삶에 적응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신경 곤두선 채 그닥 지킬 것도 없는 것을 지키기 위해 살아가는 삶…. 그래서 나도 언젠가 떠날 것 같다. 과연 실행에 옮길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때 할말은 미리 준비해 놓았다. 무리들이여, 안녕! 신현준/ 반문화주의자 http://homey.wo.to

“고생하고도 푸대접 받았지만, 상관하지 않았어”

90년대에 들어서 규모가 큰 대작들이 많이 기획됐어. 해외에서 올로케로 찍는 작품이 생기는가 하면 의상 제작비만 1억5천만원이 든 <사의 찬미> 같은 작품도 제작됐지. 91년도만 해도 <개벽>(임권택), <사의 찬미>(김호선), <은마는 오지 않는다>(장길수) 등 꽤 굵직한 작품들이 많았어. 이미 총각 때부터 영화로 알고 지낸 임 감독이야 작품만 들어가면 날 찾았으니까 <개벽>도 자연스럽게 내 손에 들어온 거고. 근데 그 영화 찍을 때 스탭들이며, 조합원(엑스트라)들이 어떻게나 말을 안 듣던지 하루하루가 말 그대로 천지가 개벽할 날들이었어. 처음 영화 들어갈 땐 동학당이 400명 나온다고 했거든. 거기다 군인까지 더 포함되면 한 5백벌 의상이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그래서 다 준비를 해놨는데, 막상 숏 들어가고 조합원을 세어보니 100명도 안 되는 거야. 원래 그날 찍을 장면에는 200명이 필요하댔는데, 반도 안 나왔으니 감독 심정이 어땠겠어. 나 역시 준비해간 옷을 반이나 그대로 가지고 와야 했으니 마음이 안 좋지. 그게 시작이었어. 촬영기간 내내 조합과의 마찰로 제때 원하는 인원이 수송된 적이 없었어. 게다가 온 인원들도 통제가 안 되고. 날씨는 춥고 주로 산에서 촬영이 이루어지는데, 아무 데서나 오줌 누고, 툭 하면 술 먹고 행패 부리고. 아마 만들어놓고 반도 못 입힌 영화는 그게 유일할 거야. 물론 아예 처음부터 엎어진 영화는 빼고. 게다가 스탭들도 추운 데서 고생하다 나중엔 협조를 잘 안 하더라고. 그렇게 어렵게 찍어놨더니 역시나 흥행에 대참패를 했지. 다행히 미리 의상비를 받을 수 있어서 큰 손해는 안 봤지만, 입히지 못한 의상 때문에 계속 미안한 맘이 들더라구. 같은 해 찍은 <사의 찬미>는 거대한 제작 스케일로 일단 화제를 모았는데, 나중에 듣고 보니 의상비만 1억5천이라는 거야. 조연들 옷을 지었던 내가 받은 돈이 3천만원이었으니까 장미희 옷을 맡은 이가 무려 1억2천을 받았다는 얘기지. 이걸 능력 차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배우의 힘이라고 해야 하나. 아주 기분이 씁쓸하더라고. 그래도 김호선 감독 사정을 뻔히 아는 내가 돈 때문에 투정을 부릴 순 없었지. 나중에 그해 <사의 찬미>를 비롯한 세개 작품이 의상상 후보로 올라가는 바람에 시상식엘 몇번 갔었는데, <사의 찬미> 시상식장에 장미희 옷을 지은 여자가 앉아 있는 거야. 처음엔 ‘설마 회원도 아닌 이가 상을 타겠어. 그냥 자리를 빛내는 거겠지’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식장에 그녀의 이름이 불려지니까 꼭 배신당한 기분이더라고. 물론 그녀의 솜씨로 여주인공이 맵시있게 표현된 건 인정하지만, 영화 전체의 의상을 만진 나로서는 서운할 수밖에. 그 일이 있고 나서 김 감독이 미안했던지 춘사영화제에서 의상상을 주도록 애를 썼나봐. 난 그래도 지금껏 한번이라도 “그때 왜 회원인 나는 푸대접하고, 비회원에게 상을 주느냐”는 소리 해본 적이 없어. 아쉬운 소리만큼 하기 싫은 게 있을까. 안 주면 그만인 거지. 그때 내가 속으로 그랬지. ‘그래, 상은 니가 타가라. 일은 내가 다 할게’라고. 한진영화사에서 찍은 <은마는 오지 않는다>가 몬트리올영화제와 백상영화제 등에서 상을 휩쓸면서 91년이 끝났지. 92년도에 가서 제일 먼저 받은 시나리오가 최영철 감독의 <백백교>야. 지금도 내 필모그래피에 등장하는 이 영화는 사실은 완성된 작품이 아니야. 찍다가 돈이 없어서 중간에 엎어진 영화거든. 그래서 내 작품이라고 부르기도 뭣해. 고 다음에 찍었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박종원), <장군의 아들3>(임권택), <하얀 전쟁>(정지영)이야말로 96년 <애니깽>(김호선)으로 작품활동을 마무리할 때까지 맡은 작품들 중 백미라고 할 수 있어. <장군의 아들>은 30년대 종로 거리가 배경이라 한복과 양복이 한데 어울려 등장했어. 양복의 경우, 내 전공이 아니니까 주로 사서 쓰거나 양복점에다 맡겼지. 극중에 등장하는 기생들의 경우 실제 복장보다 더 화려하게 각색이 됐어. 원래 기생들은 관에 속한 몸이라 일종의 유니폼이 정해져 있거든. 나라에서 허가를 받은 차림새란 게 고작 남색 치마에 흰 저고리가 다야. 우리가 알고 있기론 기생들 옷이 화려하고 다양할 것 같지만 그게 정석이라고. 그치만 감독들은 밋밋한 그림 대신 변화를 주고 싶어하지. 그러다보니 언제부턴가 영화나 텔레비전에 등장하는 기생들이 화려하게 옷을 갈아입었지. 그건 무당도 마찬가지야. 굿을 할 때나 오색도복을 입는 거지 평상시엔 기생과 같이 남치마에 흰저고리야. 임 감독의 경우, 앞서도 얘기했지만, 아주 별나거나 튀는 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야. 옛날에 실제 입었던 옷차림, 사실에 가까운 그림을 쓰는 감독이었어. 기생의 옷차림은 시각적 즐거움을 주기 위해 변형됐지만, 다른 배역의 옷들은 거의 실제 그대로의 옷차림이 재현됐지. 그리고 항상 자기의 바람에 부합하는 의상들을 두고 칭찬했지. 서로에 대한 믿음이 컸어. 정리 심지현 simssisi@dreamx.net 구술 이해윤/ 1925년생ㆍ<단종애사> <마의 태자> <성춘향> <사의 찬미> <금홍아 금홍아> <서편제> <친구> 의상 제작

마침내 망막에 남은, 주름진 할머니의 실루엣이여!

형,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우리 속담이 저주스럽습니다. 사이버펑크를 얘기하는 시대에 무슨 놈의 얼어죽을 색깔론입니까. 홧술깨나 마신 듯한 후배가 전화로 분통을 터뜨린다. 어느 문학잡지의 추천으로 시단에 나온 후배는 자기 본업이야말로 재야 영화평론가라고 떠들고 다닌다. 그 바닥 인간들 수준이 본래 그런 걸 어떡하냐는 내 말투가 못마땅했는지 녀석은 영화판을 겨냥한다. 한국영화와 조폭의 인연 한번 질깁디다. 욕을 못해 환장했습니까. 도대체 왜 그리 거칠고 시끄럽죠? 세상도 나도 물 속으로 가라앉았으면 좋겠어요. 침묵이 그립습니다. 침묵이 그리운 녀석에게 침묵의 힘을 보여주기로 했다. 비를 맞으며 매표소 앞에 늘어선 사람들을 보는 감독보다 행복한 이가 또 있을까. 부럽고 흐뭇한 풍경이었다. 닭백숙을 뜯을까, 자장면을 말아올릴까. <집으로…> 를 보고 나온 우리는 심각하게 고민하던 끝에 중국집에 들어갔다. 아무리 자장면이 맛있어도 옆에서 짬뽕 국물 들이키는 소리가 들리면 자장면 시킨 걸 후회하게 된다. <신장개업> 에서 가장 실감나는 대목은 바로 그 장면이었다. 영화의 리얼리티란 그렇게 사소한 데서 온다. 귀를 기울이게 하고, 마음을 녹이고 어때, 괜찮았어? 우선 상영시간이 짧은 게 맘에 들어요. 두 시간이 넘으면 화장실 생각부터 나니까요. <그린 마일>처럼 길어터진 영화는 광고문안에 ‘방광염 주의’를 넣어 마땅하죠. 가위질에 맛들인 수입업자들이 좋아할 소리는 그만 하고 소감이나 풀어봐. 제겐 한마디로 ‘횡재’입니다. 평론가는 곤혹스럽겠어요. 귀를 기울이게 하고 마음을 녹여주는데, 어느 구석을 뜯어보고 무얼 따지겠어요. 그윽하고도 짠한 영화야. ‘평생토록 생솔가지 태운 냉갈에 젖은 할머니’라는 네 싯구절이 생각나더라. 요강, 소쿠리, 뒷간, 은비녀, 30촉 백열등을 보며 제 나이를 떠올렸어요. 바쁘게 헤매고 많이 부대낀 세월이었죠. <집으로…>는 한국영화사에 ‘할머니의 영화’로 기록될 거야. 불구대천의 원수로 지내다 마침내 화해하게 되는 <장마>의 두 할머니와 수몰된 고향을 떠나 콘크리트벽에 갇힌 <장남>의 노부부가 나왔으나, 대사 하나 없이 이토록 강한 인상을 남긴 할머니는 없었지.몇몇 장면에선 할머니가 적막처럼 정지된 느낌을 받았어요. 할머니 얼굴에서 그 마음에 패인 주름살이 잡히기도 하구요. 그런데 할머니의 동그란 손짓은 수화입니까. 글세, 관객들에게 ‘내 잘못이야, 내 잘못’으로 들리지 않았을까. 그 손짓에 우는 사람이 많았을 걸. 어떤 대목이 좋았나요? 두 할머니가 초콜릿을 주고받는 장면이 아프더라. 노인들의 작별 인사에선 물기가 묻어나오지. 바느질 장면은요? 우리 할머니들이 그렇게 고독과 허기를 기우며 살아온 게 아닌가 싶어요. 오버하지마, 소통의 단계를 밟아가기 위한 설정이야. 키아로스타미도 탄복할 만한 할머니를 어떻게 찾아냈는지 신기할 뿐입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잖아. 동네 사람들의 연기도 끝내주지만, 손자 역을 맡은 아이는 너무 많이 훈련을 받은 것 같아요. 나도 그점이 걸리더라. 소녀와의 소꿉놀이가 튀는 것도 그런 까닭이겠고. ‘젊어서도 할미꽃 늙어서도 할미꽃’식의 동화 수준에 그칠 뻔한 소재를 이만큼 향기나게 만든 것은 감독의 외할머니에 대한 또렷한 기억 덕분일 거야. 사랑, 그리움, 부끄러움, 후회…. 말줄임표는 그래서 사용했는지도 몰라. 깡촌에서 미친 소까지 끌어들여 촬영하기가 쉽지 않았겠어요. 이정향 감독은 몸집도 작거니와 소녀티가 가시지 않은 얼굴인데,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죠? 아마 깡다구로 버텼을걸. <미술관 옆 동물원>에서도 악착 같은 기질이 보였어. 세상 노인들이 모두 건강했으면 좋겠어요. 제발 치매만은 비켜갔으면 해요. 그래, 우리도 곱고 씩씩하게 늙기로 하자. 말줄임표의 진실 횡재한 보답이라며 후배는 시 한편을 들려주었다. “나는 대처로 나왔다. / 이곳 저곳 떠도는 즐거움도 알았다. / 바다를 건너 먼 세상으로 날아갔다. /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들었다. / 허지만 멀리 다닐수록 많은 것을 보고 들을수록 / 이상하게도 내 시야는 차츰 좁아져 / 내 망막에는 마침내 / 재봉틀을 돌리는 젊은 어머니와 / 실을 감는 주름진 할머니의 / 실루엣만 남았다. / 내게는 다시 이것이 / 세상의 전부가 되었다.(신경림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 외할머니와 보낸 시간들은 조금씩 살아나건만 그 얼굴이 생각나질 않는다. 꿈속에서도 모습은 비치질 않았다. 외할머니, 우리 어머니를 만나셨죠? ‘사랑은 사랑을 낳는 힘’이라는 진리를 일깨워주신 당신이 아름답습니다. 그곳은 평안합니까. 여기는 아직도 야만의 바람이 그치질 않아요. ‘인간 폐광촌’입니다. 박평식/ 영화평론가 jeruel@empal.com▶ `액자` 속의 외할머니 ▶ 마침내 망막에 남은, 주름진 할머니의 실루엣이여! ▶ 상우는 반드시 큰 돈을 벌어야 한다

2001. 10 ~

2001년 10월 감독 ‘쌩 효 육’ 사무실에 입주했다. 한평도 안 되는 아주 비좁은 사무실을 감독방이라고. 내 표정을 보고 미국 프로듀서가 그래도 창 밖으로 보이는 게 파라마운트 스튜디오라고 너스레를 떨고 나간다. 그 파라마운트 스튜디오를 본다. 난 충남 금산군 제원면 용화리 605번지에서 태어났다. 요즘 드라마 <상도>의 촬영지가 돼서 갑자기 고향이 유명해졌단다. 그래 여기가 할리우드다. 충남 금산군 제원면 용화리 605번지 육상효 많이 컸다. 파라마운트 스튜디오가 바로 건너 보이지 않는가. 난 내 방에서 그 스튜디오를 건너다 본다. 이기성 조감독이 와서 멋지게 만들어진 사무실 팻말을 자랑한다. 아이언 팜, 감독 쌩 효 육. 널 상처주지 않으면 내가 상처받는다 스토리보드 영의 그림 그리는 속도가 오늘은 유난히 느리다. 말은 안 하지만 내 컷 아이디어를 맘에 안 들어하기 때문에 속도가 느려지는 거다. 봉황의 뜻을 뱁새가 어찌 아랴. 구조와 캐릭터. 이게 이 코미디의 두축이다. 캐릭터는 구조에 의해서 첫 장면부터 정교하게 짜여진다. 그렇게 짜인 캐릭터들이 드라마의 논리 속에서 움직이며 관객에게 웃음과 슬픔을 줄 것이다. 난 한 장면의 개그로 웃기는 코미디는 하지 않는다. 빌리 와일더가 그랬던 것처럼 코미디의 기본 요소는 웃음과 슬픔의 아이러니다. 코미디의 가장 큰 재산은 우리가 다 아는 우리 스스로의 약점이다. 코미디는 그걸 통해서 비로소 진실에 다다른다. 그렇게 될 때 코미디는 어떤 다른 장르의 영화보다도 진실을 드러내는 데 효과적이다. 리처드 커티스의 <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을 봐라. 그의 코미디가 따뜻한 건 그가 코미디를 통해서 인생에 대해 발언하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에서 패럴리 브러더스까지 아우르는 그의 코믹센스는 때로는 웅장하기까지 하다. 캐릭터 코미디에서 가장 중요한 건 주요 인물들의 등장이다. 지금 네가 그리는 건 지니의 등장이다. 지니는 아이언 팜의 시선 속에서 관객에게 드러난다. 그것은 캐릭터 지니의 최초 등장이자. 지니 역을 맡은 배우 김윤진의 이 영화 속 최초 등장이다. 여전사가 로맨틱코미디의 여주인공이 되는 순간인 것이다. 그러니 말한 대로 그려라. 내 생각이, 아니 내 꿈이 그렇다는 거다. 아니꼬워도 참아라. 그랬다가 네가 감독할 때 네 영화로 내가 틀렸다고 말하라. 미안하다. 널 상처주지 않으면 내가 상처받는다. 영화감독이란 직업은 그런 거다. 남에게 상처주지 않으면 자신이 상처받는. 이걸 늘리면 저걸 줄이고 고성도, 이천우 두명의 스탭이 한국에서 왔다. 고성도는 프로덕션 제반기능을 도울 거고, 이천우는 다큐멘터리를 찍는단다. 그들과 같이 들어와야 할 배우들이 이번에 들어오지 못했다. 미국쪽 비자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 애초에 변호사를 믿지 말었어야 했는데, 스토리보드에 신경쓰는 사이 변호사 자식이 일을 망쳤다. 자신의 책임이라고 조감독 이기성이 엉엉 운다. 현지 프로듀서 이윤정은 아침부터 변호사 사무실에 진치고 있단다. 멱살이라도 잡고 이민국으로 끌고 가서 오늘 중으로 받아내겠단다. 내가 보기엔 그렇게 될 거 같진 않다. 늘 정겨운 후배들인 고성도, 이천우가 오늘은 별로 안 반갑다. 배우가 없으면 영화는 찍지 못한다. 비자가 늦어지는 것만도 수백 가지의 문제를 만들어낸다. 촬영일정의 일주일 연기가 불가피하다. 미국 프로듀서들은 그렇게 될 경우 하루 5천달러가 들어가는 프리프로덕션 일정이 늘어나서 촬영 기간을 줄여야 된단다. 저 인간들은 무슨 문제가 있을 때마다 예산을 잡고 늘어진다. 이걸 늘리면 저걸 줄일 수밖에 없다고. 장비를 하나 늘리면 엑스트라 명 수를 줄일 수밖에 없고, 로케이션을 늘리면 스탭 숫자를 줄여야 되고. 차량 신을 늘리면 미술 규모를 줄여야 되고. 말은 늘 항변할 수 없이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다. 리허설 날짜도 이틀이 줄어든다. 빡빡한 촬영 스케줄은 배우들과의 사전조절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촬영의 연기는 영화의 마지막 촬영이 크리스마스를 넘기게 만든다. 미국의 본격적인 홀리데이 시즌이다. 스탭들의 보수도 다 두배로 뛸 것이다. 그러면 저 프로듀서들은 내게로 와서 또 뭘 줄이자고 할지. 배우들의 표정 찾기 차인표의 기본 표정을 찾았다. 입을 약간 작게 오므리고, 눈빛에 힘을 주자. 그 표정이 순수함, 집념, 내 방식의 용어로 부조리한 집념을 보여준다. 표정을 찾고 난 뒤에 한결 연기가 자연스러워진다. 김윤진은 물리적으로 목소리를 반피치 올리라는 나의 주문을 부자연스러워 한다. 정통 드라마적인 호흡으로 연기하면 김윤진의 새로운 이미지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마치 연설처럼 대사는 빠르게 다소 불안한 호흡을 가지고 진행돼야 진짜 지니가 된다. 목소리를 부자연스럽게 올리지 말고, 그 느낌만 가지고 평소의 목소리를 살리기로 한다. 그러니 금방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흐뭇하다. 배우에 대한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 박광정 선배는 연극연출도 많이 했고, 나보다도 연기에 대해 더 많이 안다. 그래도 나는 그 앞에서 내가 더 많이 아는 것처럼 하루 종일 헛폼을 쟀다. 전라도 사투리 톤을 좀 넣어보자는 건 박 선배의 제안이다. 그러니까 동석의 이미지가 만들어진다. 내 제안이 아니라 좀 아니꼽지만 그래도 그게 맞는 걸 어찌하랴. 스탭들을 엉터리 영어에 적응시키기 촬영기사 필과 하루 종일 숏리스트 가지고 회의하다. 내가 처음 로스앤젤레스에 왔을 때 느꼈던 느낌들을 얘기했다. 그때의 빛이나 공간에 대한, 이방인으로서의 느낌을 전해주고 싶었다. 지니의 집은 오렌지, 동석의 집은 회색, 지니의 바는 전체적으로 어두운 가운데, 옐로 톤의 조명이 밑에서… 등등. 영어로 한참 얘기하다보면 나중에는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촬영이 계속되는 한 이런 영어 대화의 피곤함은 지속되겠지. 방법은 하나. 중요스탭들을 내 엉터리 영어에 빨리 적응시키는 것이다. 단어 하나만 얘기해도 알아들을 만큼.그래도 기본 원칙들을 정리했다. 아주 베이식한, 그러니까 단순한 촬영을 해줄 것. 다시 말하면 불필요한 카메라의 움직임을 자제하고, 너무 패셔너블한 앵글도 자제할 것. 유기적(Organic) 화면 구성, 비주얼의 초점을 비주얼 자체보다 배우들의 연기와 그들이 만들어내는 드라마에 집중할 것. 리듬이 늘어지는 것은 후반작업에서 빠르고, 역시 유기적인 편집으로 보강될 것이다. 몇개의 시각적 개그들은 부자연스런 특수효과나 옵티컬을 전혀 배제하고, 가장 기본적인 필름과 카메라의 성격, 그리고 배우의 움직임으로 구성할 것임. 컬러의 컨셉에 대해 항상, 아무리 바빠도 잊지 말 것. 햇빛에 대해 자신이 느꼈던 느낌들을 항상 유지할 것. 그리고 무엇보다 이 영화가 코미디영화라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람. 아름다운 코미디를 만들자 첫번째 프로덕션 미팅. 30명쯤 되는 키스탭들이 회의실에 둘러앉았다. 시나리오를 장면별로 훑어가면서 거기에 연관되는 모든 요소들을 점검한다. 분장 엘리자베스가 아이언 팜과 동석의 얼굴상처 연결문제로 자꾸 아까부터 신경을 거스른다. “연결은 신경쓰지 마라. 이 몽타주에서 그들의 상처는 느낌이지 하등 연결과 관계될 것이 없다”고 수차례 얘기했는데도, “그래도 시나리오상의 날짜로 바로 다음날인데 어떻게 얼굴의 상처가 없어질 수가 있으면, 그 전날인데 어떻게 더 심해질 수가 있어요?” 제기랄, 그놈에 스크립 데이는 늘 나를 괴롭힌다. 시나리오상의 모든 장면에 이들은 날짜를 붙인다. 이 신은 같은 날이냐? 다음날이냐? 며칠 뒤면 실제로 며칠이냐 흘렀냐? 어떤 때는 생각없이 얘기하면 그것이 모든 스탭들에게 스크립 데이의 원칙이 돼서 분장, 의상, 소품, 심지어 촬영 라이팅 조건까지도 결정돼버린다. 그것들은 때에 따라 내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나올 수도 있다. 스크립 데이에 짜증내는 나에게 조감독이 말한다. “감독, 그러면 내일 다시 처음부터 스크립 데이를 조정하자.” 모든 스탭들이 나를 압박하기 위해 모인 것 같다. 4시간이 넘는 마라톤 회의 끝에 조감독이 나보고 프로덕션을 시작하는 소감을 한마디 해달란다. 미국에 온 지 3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다중을 상대로 하는 영어에는 자신이 없다. “에… 한국에서 많은 한국영화 관계자들이 우리의 프로덕션을… 에… 그러니까 지켜보고 있다. 그들에게 우리가 미국에서 모인 최고의… 에… 그러니까… 팀이라는 것을 보여주자… 그리고… 한국 스탭과 미국 스탭간의 문화적 차이로 인한 오해가 없도록… 서로 신경을 쓰고… 그리고 다 같이 합심해서… 아름다운 코미디를 만들자.” 갑자기 스탭들이 숙연해진다. 저 중의 반은 내가 말한 내용 때문에 비장해지는 거지만, 저 중의 반은 내가 한 말이 무슨 말인지 몰라서 어떤 표정을 해야 할지 몰라서 지금 숙연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거다. 회의 끝. “불가능하다” 프로덕션 하루 전이다. 아침 일찍 마티가 내 방문을 노크한다. 앉더니 하는 첫마디가 “이 스토리보드는 불가능하다”다. “왜?” “우리 스케줄에서 이 컷 수가 소화가 안 된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아는데?” “난 장편영화를 10편 했다. 이건 불가능하다. 컷 수를 줄이든지 촬영날짜를 늘리든지 양단간에 결정을 해야 한다.” “내 입장에선 그 양쪽 다 불가능하다. 난 컷 수도 줄이지 않을 거고, 촬영일자는 내가 늘리고 싶어도 현 예산에서 늘릴 수 없다. 찍든지 못 찍든지 이 영화의 책임은 나니까 넌 현재 스케줄대로 진행해라.” 갑자기 마티의 표정이 진지해진다. “쌩, 컷 수가 적고도 훌륭하게 찍은 영화들이 많다.” 어라, 이 친구는 지금 월권을 하고 있다. “마티, 미학을 논하는 건 네 일이 아니다. 컷 수가 많아서 스케줄을 소화할 수 없다고 말하는 데까지가 네 일이다. 넌 지금 내 영화의 미학을 바꾸라고 하는 거다.” 내 방문을 박차고 나온다. 밖에 나가서 담배를 피우면서 흥분을 가라앉히자. 일단은 내 방에 장승처럼 버티고 앉은 저 조감독을 피하고 보자. 그리고 계획대로 내일 촬영을 시작한다. 이걸 위해 지난 2년을 달려왔나? 첫 촬영 날이다. 지민이가 “아빠 촬영 잘 하세요”라고 어색하게 쓴 카드를 줬다. 주머니에 단단히 넣었다. 이윤정과 차를 타고 다운타운 뒷골목의 첫 촬영지로 향한다. 제2 조감독 스퀴럴이 내가 어디 있냐고 계속 휴대폰으로 묻는다. 걱정하지 마라. 난 이날을 위해서 지난 2년을 버텨왔다. 내가 촬영지를 못 찾아서 촬영을 못하는 일은 없을 거다. 도착하니 스탭들이 일사불란하게 각자의 준비를 하고 있다. 첫 컷은 버스정류장 매스터 컷이다. 버스가 프레임 인 해야 되는데, 교통신호 통제에 대한 허가가 없어, 자연적으로 파란불이 들어올 때까지 매테이크를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버스가 잘못됐다. 수송부장 빌이 내게 보여준 두개의 버스 샘플 중에서 저건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빌이 달려온다. 자신도 분명히 다른 걸 주문했는데, 저 버스가 왔단다. 프로듀서 아만드가 왔다. 조감독 마티도 달려와서 내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지금 버스를 다시 바꾸려면 오늘치 촬영분을 끝낼 수가 없단다. 침묵, 긴장. “미술 마들라를 불러와라.” 마들라에게 시간이 허용하는 한 이 버스를 최대한 다른 버스처럼 보이게 만들어주라고 말한다. 드디어 프로듀서, 조감독이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좋은 결정이다.” 좋은 결정 좋아하고 있네. 난 속이 바짝바짝 탄다. 이윤정이 속상한 얼굴이다. 스퀴럴이 엑스트라들을 데리고 내 앞으로 온다. 그들에게 한참 연기지시를 했는데, 말을 못 알아듣는 것 같다. 맙소사, 흥분했나보다. 나 지금 그들에게 한국말을 하고 있다. 버스정류장 신을 찍고, 바로 그 버스에 타서 버스 신들을 찍기 시작한다. 촬영 버스가 앞에서 가고, 의상, 분장 그립 등이 탄 버스가 뒤를 다른다. 밖의 풍경을 찾아서 코리아타운을 돌다가, 다시 좀더 미국적인 풍경을 찾아서 서쪽으로 간다. 낡은 버스가 내는 엔진 소음에 사운드 데이비드가 울상이다. 키그립 다니엘은 반사판을 들고 움직이는 버스 속에서 중심을 잡느라 애쓴다. “지금 우리는 계획보다 30분 늦게 진행되고 있다.” 고맙기도 하지, 마티가 한 시간 간격으로 시간진행상황을 나에게 알려준다. 해가 다른 날보다 일찍 들어갈 것 같다는 공포의 협박도 해댄다. 버스 신을 찍고, 계속 그 버스를 타고 다운타운 고가도로 밑 신을 찍으러 이동한다. 다른 스탭들은 저녁을 먹고, 주요 스탭만 고가도로 위, 폐허 신을 찍으러 이동한다. 햇빛이 30분 남았다. 촬영감독 필이 불안한 얼굴이다. 차에서 내리는 차인표의 달리 클로즈업을 먼저 찍고 부랴부랴 카메라를 언덕 위로 옮겨서 부감 와이드 숏을 찍는다. 빛이 너무 없다. 필이 셔터스피드를 반으로 내리자고 한다. 어차피 배우들의 움직임이 없으니 상관없고, 그러면 노출을 조금 늘릴 수 있으니. 그러면 엑스트라는 쓸 수가 없다. 엑스트라가 서 있을 수는 없으니까. 폐허에 망연자실한 아이언 팜의 뒤로 날씬한 백인 미녀가 아주 섹시한 조깅복을 입고 달리게 하고 싶었다. 그 엑스트라는 아까부터 핫팬츠 조깅복을 입고 떨고 있었다. 할 수 없다. 엑스트라 빼고, 셔터스피드를 내리자. 바로 언덕을 내려가 고가도로 밑 신 야간 촬영을 시작한다. 박 선배의 대사가 아주 긴 신이다. 수십번의 테이크 속에서도 박 선배는 거의 틀리지 않는다. 미국 스탭들이 알아듣지도 못하면서도 박 선배의 연기에 감탄한다. 드디어 첫날 촬영이 끝났다. 내 첫번째 장편영화의 첫날이고, 미국 촬영의 첫날이다. 장비를 챙기느라 정신없는 스탭들 사이에서 담배를 피우고 망연자실해 앉아 있다. 이상하게 슬프다. 이걸 위해서 난 지난 2년을 달려온 건가?▶ <아이언 팜>, 할리우드에서 한국영화 만들기 ▶ 2001. 10 ~ ▶ 2001. 11 ~ 2001. 12. 31

<아이언 팜>, 할리우드에서 한국영화 만들기

할리우드가 꿈의 공장이라는 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는 얘기다. 영화로 세상을 배우고 영화로 꿈을 꾸는 이들에게 할리우드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그러나 영화는 어디에서 누구와 찍든, 그 자체로 험하고 지난한 작업이다. 낯설고 물설은 땅에서 마음이 맞지 않는 이들과 손발을 맞추는 일이 고통스런 투쟁을 수반한다는 건, 두말할 나위도 없다. 충무로에서 <축제> <장밋빛 인생>의 시나리오를 썼던 육상효 감독은 미국 유학의 길에서 첫 영화 <아이언 팜>의 열쇠를 쥐었다. 그리고 글쟁이 특유의 예민한 촉수로 체험한 할리우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할리우드 키드가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만들었다. 그래서 행복했을까. 대신 그는 이런 얘길 들려준다. 환상을 접고, 현실을 만나자. 영화를 만드는 건 언제나 어디서나 외로운 싸움일지니. 편집자 주 1999년 10월 수업을 곱씹으며, 모욕을 되씹으며 지난밤을 꼬박 새우다. 그래도 스스로 대견하다. 25장짜리 트리트먼트를, 그것도 영어로 하룻밤 만에 쓰다니. 첫 학기 단편 시나리오가 끝나고 장편 아이디어를 트리트먼트로 내놓는 시간이다. 동일한 장소에서 일어나는 3신으로 하나의 이야기를 구축하라는 단편과제에 난 자동차 주행시험중의 차 속 이야기를 썼다. 3번씩 시험을 봐야 했던 비운의 사나이와 미녀 시험관의 짤막한 사랑. 좌회전, 우회전, 차선 바꿔요. 속도가 너무 빠른 거 아녜요? 이 대사는 사실 빌리 와일더의 <이중 배상>에서 베낀 것. 얼굴면적이 자기들보다 두배쯤 되는 늙수구레한 동양 학생을 신기해 했던 첫 학기의 급우들과 처음으로 소통한 시간. 아, 이 사람도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그들의 표정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고 느낀 건 언어와 낯선 문화에 대한 초조감에서 나온 지나친 생각이었을까. 각자의 시나리오를 읽고 토론하던 첫 수업 시간에 내 발언 차례가 됐을 때, ‘안 들리는데요’라고 말하고 난 네 시간 동안 한마디도 안 했다. 아니 아무도 나에게 질문하지 않았다. 그래, 삶은 모욕으로 성장한다. 이 모욕을 길이, 그리고 깊이 기억하자. 철사장이 고통에 대한 은유가 될 수 있을까? 사랑의 또 다른 내용이 고통이라면 그 고통을 은유할 수 있는 것은 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경험한 바에 다르면 사랑은 일종의 심리적 함정이고, 그 함정은 절대로 논리적인 방식으로 탈출되지는 않는다. 철사장과 연관된 내 기억은 내가 다니던 중학교 뒷마당에서 진짜 모래를 끓여놓고 연습하다가 손가락을 덴 적이 있다는 것이다. 담임교수 테드 브라운이 묻는다. “뭐가 제2장의 끝이냐?” 맙소사, 영문법에 신경쓰느라 구조에 대한 준비를 해놓지 않았다. 내가 우물거렸다. “아이언 팜의 좌절, 생일파티 신.” 그러나 교수는 쉽게 물러서지 않는다. “그것이 2장 전체의 사건을 종결한다 할 수 있을까?” “난 그렇게… 믿고 싶은데….” 실패다. 구조에 대한 생각없이 시나리오를 쓰면 그것은 암흑 속을 걸어가는 것과 똑같다는 것을 요지로 한 교수의 장광설이 이어졌다. 교수지만 나랑 나이는 거의 비슷하다. 내가 한국에서 직업적 시나리오 작가였다는 사실을 이 교수에게는 하지 말자. 한국영화계 전체에 대한 모욕이 될지 모르니까. 수업 끝나고 나온다. 수업을 곱씹으며, 모욕과 분함을 곱씹으며 나온다. 이 교정에서 마이크 니콜스는 <졸업>을 찍었다. <졸업>의 시나리오는 2장이 5개의 시퀀스로 되어 있는 특이한 구조라고? 시퀀스 좋아하고 있네. 그런 거 몰라도 난 한국에서 대종상까지 받았다. 언젠가는 니네들이 깜짝 놀랄, 니네들이 그렇게 추앙해 마지않는 <졸업>보다 더 훌륭한 시나리오를 쓰겠다. 2장의 시퀀스는 한 100개쯤 해두지. 그러면 너네는 교실에서 이 시나리오는 2장이 100개의 시퀀스로 되어 있는 아주 특이한 구조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누가 등을 친다. 스테파니. 코네티컷에서 온 자유분방한 아가씨다. “쌩, 니 트리트먼트를 아주 감명깊게 읽었다. 아주 우아한 코미디가 될 거 같다.” 이런 말을 듣는데도 난 서너번씩은 되물어야 그녀의 진의를 파악할 수 있다. 말로 쓰는 시나리오과를 기본 의사소통에도 문제가 있는 학생이 다니고 있다. 장님이 촬영기사가 될 수 있을까? 2000년 봄 그래, 로맨틱코미디로 가자 서울에서 홍지용 프로듀서가 왔다 갔다. 인간으로서 이렇게 술을 멀리하고 살 수 있을까에 대한 내 의문을 일거에 해소시키고 갔다. 인간이 술을 멀리하는 건 술을 마실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그와 밤낮으로 마셨다. 영화를 만들자. 이렇게 간단한 결론을 내는데, 삼일 밤낮이 걸린 셈이다. 영화의 제목은 아이언 팜. 덕분에 학교 숙제는 줄줄이 밀려 있다. 시나리오 구조론의 달인 데이비드 하워드 선생은 3장의 트위스트를 계속 추궁한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학과장 존 퓨리아 선생은 이 시나리오가 우화가 될 것인지 아니면 로맨틱코미디의 장르 공식을 선택할 것인지를 계속 추궁해댄다. 코언 형제의 영화로 대표되는 우화는 부조리한 상황들의 연속으로 그 부조리한 웃음들 사이에서 관객은 주제에 대한 다른 각성을 얻는다. 로맨틱코미디는 역시 <해리와 샐리가 만났을 때> <유브 갓 메일>의 노라 에프런이 가장 대표적이다. 노라 에프런 영화는 가볍지만 그녀만의 독특한 노하우가 숨어 있다. 일단 들으면 모든 사람들이 쉽게 공감하는, 그러나 발견하기는 쉽지 않은 생활에 대한 세밀한 인식들을 스토리 곳곳에 배치한다. 그것들은 그녀의 로맨틱코미디를 따뜻하게 만들어놓는다. 내 감각적 선택은 우화로 시작한 것 같다. 하지만 학과장은 선택을 물어보면서도 장르를 선택할 걸 은근히 강요한다. “장르에서 이미 수많은 감독과 관객이 소통하고 갔다. 장르가 곧 상상력의 결핍을 의미하지 않는다. 축구 경기는 같은 게임의 룰을 가지고도 매번 새로운 드라마를 만들어내지 않는가. 네가 이 시나리오를 영화로 만든다니까 하는 소리다.” 장르로 가면 첫번째로 바꿔야 할 것은 영화 속 지니의 선택이다. 장르란 뻔한 결론을 뻔하지 않게 느끼게 하는 투쟁이다. 그래, 그럼 이 영화는 로맨틱코미디다. 캐릭터가 거기에 다른 무늬를 줄 것이다. 2000년 5월 ‘반듯한 근육질’, 차인표가 필요하다 압구정동 튜브 카페로 차인표가 들어온다. 밤 열한시인데도 반듯하게 양복을 입었다. 사람을 만나기 때문에 조금 전 방송 녹화가 끝나고 다시 갈아입었단다. 너무 예의바른 사람은 어떤 때는 거북하다. 처음에 시나리오를 쓰면서는 16mm로 가는 저예산 장편영화를 생각했다. 스타를 캐스팅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는 미국에서도 틈틈이 친구들과의 전화 통화로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만약에 스타가 아이언 팜 역할을 맡는다면 그는 차인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의 근육질 몸과 반듯한 이미지가 이 영화에 필요하다. 그가 한다면, 그의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무너뜨린다면, 사람들의 머릿속에 담긴 그의 반듯한 이미지는 내 코미디의 또 하나의 재료가 될 것이다. 예전에 TV 주말극에서 그의 코믹 연기를 인상깊게 본 적이 있다. 그가 아니면 다시 이 기획은 16mm 장편으로 돌아간다. 차인표는 농담으로 자리를 시작한다. 어색한 분위기를 배려하는, 이런 행동도 대단히 예의바른 사람들의 행동이다. “방송사 카메라 감독님에게 육상효 감독님이 어떤 분인지 물어보고 왔거든요. 그분이 그러시더라고요. 아주 훌륭한 분이시라고요. 제가 지금 미국에서 공부하고 계시데요 그랬더니 그분이, 아, 역시 훌륭한 분이시구나. 육십이 넘은 나이에 미국으로 또 공부를 하러가시고. 근데 <살어리랏다> 찍고 언제 미국에 가셨지? 윤삼육 감독님과 헷갈리셨더라고요.” 2001년 1월 아들아, 아빠를 이해해다오 한국으로 돌아갔던 식구들이 다시 왔다. 아내는 떠날 때와 비슷한 개수의 가방을 들고, 6개월 만에 한국과 미국을 오가느라 얼떨떨한 지민이 손을 잡고 LA 공항에 나타났다. 난 반대했다. 나 외에 다른 가족이 영화에 관련된다는 건 그만큼 더 우리 가족의 삶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일 뿐이다. 지민이가 장차 영화를 한다면 난 목숨을 걸고 말릴 생각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두 난 안다. 지금까지 오면서 겪은 내 상처를. 지민이는 우리 어머니가 나에게 원했듯 의대나 법대를 가야 한다. 근데, 내가 미국에 있는 사이 아내 이윤정과 프로듀서 홍지용은 이윤정의 미국 현지 프로듀서 일에 합의했단다. 남편의 말을 화창한 봄날 우산장수 소리만큼도 안 여기는 아내야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감독의 말을 이렇듯 철저하게 무시하는 프로듀서는 또 뭔가. 그 소식을 듣고 곱절의 배신감에 뒤척이다가, 그래도 가족이 온다는데, 차를 몰고 공항에 나왔다. 가족을 보자 머리가 아득해진다. 낯설고, 물선 미국에서, 내가 지고 가야 될 것은 여전히 불안한 프로젝트와 가족이다. 지민아, 선뜻 반가워하지 못하는 아빠를 이해해 주기 바란다. 세상은 너가 아는 것보다도 훨신 더 배신과 음모로 가득 차 있단다. 2001년 4월 시나리오? 더이상 어떻게 다듬으라고 아파트 단지 중앙 공원의 분수는 약 1m 정도 하늘로 아주 힘없이 치솟다가 이내 커다란 와인잔같은 그릇으로 떨어져버린다. 벌써 여기에 앉아서 분수만을 쳐다보기를 며칠째. 캘리포니아의 하늘은 내내 파랗다. 눈을 작게 하고 하늘을 보고 있으면 프레임의 가장자리로 바람에 흔들린 야자수 꼭대기가 들어왔다 나갔다 한다. 프로젝트는 가을로 연기됐다. 덕분에 난 아무 이유없이 학교만 휴학한 꼴이 됐다. 프로듀서는 시간이 좀 생겼으니 시나리오를 좀 다듬잔다. 나보다 더 속이 타고 있다는거 다 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안 했으면 좋겠다. 시나리오는 이미 충분히 다듬었다. 더이상 뭘 어떻게. 이제는 찍는 일만 남았는데. 어제는 차인표가 전화했다. “감독님 힘드시죠.” 그의 굳건한 자세가 큰힘이 된다. 오후에는 책장사하는 친구 회사에 가서, 세 시간 동안 책박스를 날랐다. 분수대만 쳐다보고 있는 것보다는 낫다. 단순한 노동은 사람을 단순하게 집중시킨다. 그런데 나이는 못속이나 보다. 허리가 아프다. 2001년 8월 자동차 미국 횡단에 나서다 네브래스카는 끝없는 평원이다. 돌아갈 일 없는 길은 끝도 없이 앞으로 펼쳐져 있다. 인구는 20만명도 안 된단다. 면적은 남한보다 크단다. 여기 어디 빈땅에 말뚝이나 박고농사나 지을까? 자동차 미국 횡단은 아내의 아이디어다. 촬영을 앞두고 심기일전하잔다. 절대 영화에 대한 생각을 하지 말 것이 여행의 제1 원칙이다. 2001년 9월 프로듀서가 돈들고 튀면 어쩌지? 드디어 토니, 아만드 두명의 프로듀서에게 최초의 제작비를 주고 왔다. 영화의 시작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와인까지 한잔씩 마셨다. 약 5천만원 정도다. “너무 많이 주었나?” 아내가 묻는다. 나도 아까부터 계속 그 생각을 하고 불안해 하고 있었지만, 얘기하기 싫어 안 했던 말이다. 5천만원을 들고 그들이 어디로 사라지면 찻을 길이 없다. 전 재산을 털면 투자사에 그 돈을 갚을 수는 있을 거다. 하지만 프로듀서가 돈을 갖고 사라진 영화에 투자사는 더이상 투자하지 않을 거다. 그러면 그간의 노력은 물거품이다. 서울로 돌아가는 것도 창피하고 진짜 네브래스카 평원으로 가서 농사를 지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거기는 다른 사람은 안 살아서 지민이가 다닐 학교가 없다. 그러면 지민이를 위싱턴의 형 집으로 보내나, 아니면 평촌의 할머니 집으로 보내나? 아빠랑 그렇게 잔정을 주고받는 사이는 아니니까 괜찮지만 엄마는 보고 싶어할 거다. 아내가 소주병을 갖고 온다. 불안한 마음을 소주로 달래잔다. 그러기에 왜 미국에 와서 영화를 하냐? 아내와 같이 일을 하는 한 스트레스는 집 안과 밖 경계가 없다. 집이 곧 전쟁터다. 휴대폰으로 아만드한테 전화를 해본다. 사무실을 알아보고 방금 들어왔단다. 왜 전화했냐고 묻는다. “그냥, 같이 일을 하게 된 게 기뻐서, 굿 나잇.”▶ <아이언 팜>, 할리우드에서 한국영화 만들기 ▶ 2001. 10 ~ ▶ 2001. 11 ~ 2001. 12. 31

애니메이션 비엔날레

라울 세르베 회고전 벨기에 출신의 라울 세르베는 현대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아우르는 실험적인 이미지로 잘 알려진 세계적인 작가다. 1960년 <항구의 불빛>으로 데뷔한 이래 14편에 이르도록, 그의 애니메이션은 현대 문명에서 파생된 억압과 부조리에 대한 우화이자 셀과 종이, 연필과 잉크, 실사영상, 컴퓨터그래픽 등 갖가지 재료를 자유롭게 휘두른 상상화였다. 다섯살 때 이미 아버지의 소장 필름을 뒤적이며 애니메이션의 마술을 궁금해했다는 그가 본격적인 탐사에 나선 것은, 겐트의 왕립예술학교에서 회화와 영화를 수학한 뒤다. <항구의 불빛>, 거리 악사의 쓸쓸한 삶을 그린 <잘못된 음표> 등 초기작이 낭만주의적인 여운을 지녔다면, 65년작 <크로모포비아>부터는 풍자의 날이 예리해졌다. 모습도, 움직임도 천편일률적인 회색 군대에 모든 색깔과 다양성을 박탈당한 나라의 사람들이 자유를 회복해가는 싸움의 과정을 만화적으로 그린 <크로모포비아>는 획일적인 질서와 권력에 대한 우화. 낚이는 거라곤 생선뼈뿐인 황량한 미래풍 도시 앞바다에 나타난 반인반어의 사이렌이, 이내 감시자 같은 기계구조물에 의해 처단당하는 <사이렌> 역시 마찬가지다. 최고의 감독이라는 골드프레임이 자신의 그림자마저 이기기 위해 경쟁하는 <골드프레임>의 위험한 독선이나 강대국이 가스 신무기를 잘못 사용하는 바람에 국민 모두가 날개 달린 돌연변이로 변해 결국 죽고 마는 나라의 운명을 그린 칸영화제 수상작 <오퍼레이션 X-70>의 폭력적인 권위 역시 비판의 대상. “인간을 위협하는 편견과 권력 이데올로기에 대한 경고”는 세르베의 작품세계에 일관된 시선이다. 거리에서 폭행당하는 여인을 구해준 남자가, 알고보니 탐욕의 신 ‘하피’인 그 존재의 무지막지한 식욕에 하반신까지 먹히고 만다는 <하르피아>, 시계와 카메라 등 시간을 인식하는 모든 것을 금지함으로써 개인을 통제하는 가상의 전체주의 국가를 다룬 장편애니메이션 <탁산드리아>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특히 실사배우를 촬영한 영상과 셀애니메이션, 일부 컴퓨터그래픽을 동원한 이 두 작품은 표현주의영화의 기괴한 명암과 초현실주의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낯선 이미지로 ‘세르베그라피’란 별칭을 얻으며 각각 칸과 안시에서 단편부문 그랑프리를 수상하기도. 세르베의 유일한 장편인 <탁산드리아>와 9편의 단편을, 회고전에서 만날 수 있다. 페도르 키투르크 특별전 페도르 키투르크는 러시아 애니메이션의 성장기를 풍요롭게 일궈온 선구적인 작가다. 혁명의 해인 1917년에 태어난 그는 에이젠슈테인의 <전함 포템킨>과 같은 영화를 보며 자랐고, 사회주의자였던 아버지를 따라간 독일에서 예술학교를 졸업했다. 모스크바로 돌아온 직후 디즈니의 <아기 돼지 삼형제>를 보고 애니메이션에 매료됐다는 그는, 30년대 후반부터 러시아의 대표적인 스튜디오인 소유즈멀트필름에서 애니메이터로 활동했다. 단편애니메이션을 연출하기 시작한 것은 1962년부터. 이번 특별전에서는 데뷔작인 <바실리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비롯한 단편애니메이션 연출작 5편과 그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상영된다. 일찍부터 다른 문화를 경험하고, 혁명의 꿈과 현실의 거리를 모두 지켜본 세대인 탓인지 키투르크의 작품은 이념적인 틀에 그리 얽매이지 않는다. <바실리가…>는 밤새 파티와 부부싸움 등 이웃의 소음에 시달리다 못해 아침나절 아파트 앞에서 떠들던 두 여인을 냄비로 내려친 남자의 이야기.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현대인들의 이기심과 “늘 소란한” 러시아인들의 일상을 웃음으로 드러낸다. 콜라주 기법을 활용한 <프레임 속의 남자>는 관료화된 사회에 대한 뾰족한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수작이다. 사회적인 경력 혹은 권력을 상징하는 프레임이, 상관의 헛기침에 무조건 박수를 친다거나 자신의 안위를 위협할 만한 것을 내칠 때마다 더욱 두꺼워진다. 그게 결국 주인공의 모습까지 덮어버리는 묘사가 인상적이다. 담배에 찌든 시나리오 작가의 고군분투부터 에이젠슈테인을 닮은 감독과 스탭들이 날씨에, 아역배우의 컨디션에 일희일비하다가 시사회 날 얼싸안고 울어버리기까지, <필름! 필름! 필름!>은 영화만들기의 과정을 발랄한 유머와 생기 넘치는 만화체로 보여주는 작품. 그 밖에 외딴 섬에 고립된 남자와 그가 ‘발견’된 뒤 몰려드는 매스컴, 교회, 장사꾼 등을 통해 문명의 속성을 풍자한 칸 그랑프리 수상작 <섬> <사자와 소> 등이 상영된다. 세계 주요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의 자문 및 심사위원을 역임하면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해온 오토 앨더의 <다큐멘터리 페도르 키투르크>에서는, “손과 발의 움직임이 아니라 영혼의 움직임”을 만들어야 한다던 키투르크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다. 체코 애니메이션 특별전 체코는 오랜 인형극의 전통에 바탕한 인형과 오브제 애니메이션의 세계적인 명가로 잘 알려져 있다. 이리 트른카, 브레티슬라프 포야르 등 거장들의 작품을 포함한 28편을 모은 이번 특별전에서는 체코 애니메이션의 명성을 새삼 확인할 수 있을 듯. 우선 장편으로는 월트 디즈니에 비견되곤 하는 인형 애니메이션의 대가 이리 트른카의 <한여름밤의 꿈>과 <황제의 나이팅게일>, 그와 더불어 다양한 기법을 개척해온 카렐 제만의 <한스와 마리의 이야기> 등 3편이 상영된다. 유명한 셰익스피어 원작에 바탕을 둔 1959년작 <한여름밤의 꿈>은 체코 최초의 시네마스코프영화. 표정과 움직임이 크지 않은 인형의 특성을 고려한 연출은 정적이면서도, 손놀림과 같은 섬세한 표현과 정교한 세트, 음악 등으로 풍부한 정서를 전달한다. <한스와…>는 중세의 낭만적인 모험담을 섬세한 컷아웃의 질감으로 그려낸 작품. 세 요정의 수호를 받는 가난한 청년이 귀족들의 방해 등 갖은 역경을 딛고 사랑을 이룬다. 그 밖에 상대를 거덜내고야 마는 가난의 화신을 지혜롭게 피해가는 성실한 가족 이야기인 <레이디 파버티> 같은 인형애니메이션, 전통적인 만화체를 활용한 차세대 작가 파벨 쿠츠키의 작품 등 다채로운 체코의 단편애니메이션들이 상영된다. 일본 단편애니메이션 구리 요지와 오카모토 다다나리, 다무라 시게루는 눈에 익은 ‘아니메’와는 또 다른 일본 독립애니메이션의 세계를 보여주는 작가들이다. 신문 만화가로 먼저 이름을 떨친 뒤 회화와 조각, 애니메이션과 실사영상을 넘나들며 왕성한 창작활동을 펼쳐온 구리 요지는 일본 독립애니메이션의 1세대. 동물원 우리 안에 갇힌 채 갖가지 방식으로 때리는 여자와 맞는 남자를 그린 <인간동물원>, 끊임없이 도망치는 남성과 그를 쫓는 여성을 그린 <사랑> 등 단순하고 만화적인 그림체로 가부장제 사회의 모순된 성 이데올로기를 파헤친다. 인간의 육체를 해체하고 새가 새장을 먹어버리는 기괴한 이미지를 선의 움직임으로 이은 <방>의 초현실주의적인 세계 역시 그의 작품의 일부다. 2세대라 할 수 있는 오카모토 다다나리는 일본의 전통과 문화적 정서를 잘 살린 인형애니메이션으로 주목받은 작가. 늙은 무녀와 샤미센 반주에 맞춰 노래하며 병을 고치는 여우 오콘의 관계를 담은 <여우의 노래>가 대표적이다. 인형애니메이션은 아니지만, 숲에 간 사냥꾼들이 들고양이들의 함정인 기묘한 레스토랑에 들어섰다가 잡아먹힐 뻔한다는 <주문이 많은 요리점>의 회화적인 색채와 질감도 눈길을 붙들어맨다. 다무라 시게루의 <은하의 물고기>는 그림책 작가이자 만화가로 특히 그래픽디자인과 일러스트레이션을 많이 했던 작가의 장점이 살아 있는 작품. 은하수의 작은곰자리를 파괴하는 괴어와 싸우는 소년과 노인의 이야기이다. 단순하면서도 동화적인 그림체와 우주 같은 배경, CG애니메이션의 명료한 색감이 잘 어우러져 있다. 실험애니메이션, 어제와 오늘 실험애니메이션은 올해 애니메이션 비엔날레 중에서도 가장 야심찬 프로그램 중 하나다. 내러티브보다는 선과 면, 색채 자체의 조합과 움직임의 리듬, 문자 그대로 순수한 이미지의 추상화를 그려내는 실험애니메이션은, 끊임없이 양식화하는 예술에서 새로운 표현의 가능성을 찾아가는 시도로 읽힐 수 있다. 얼핏 봐서는 동그라미와 세모, 주파수 같은 곡선의 흐름 등 갖가지 문양의 나열 같지만, 낯설고 역동적인 시청각적 경험과 함께 인식의 관성을 해체하는 영상은 영화제가 아니면 만나기 어려운 실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3번>과 유리 위에 기름으로 그린 추상 이미지들의 분방한 흐름이 만난 <모션 페인팅 No.1> <헝가리 무곡 #5>의 오스카 피싱어는 음악의 사운드와 리듬을 조형 요소들의 춤과 결합시킨다. 렌 라이는 <색채의 비명> <색채의 비행> 등에서 카메라를 사용하지 않고 필름 위에 직접 그림을 그리거나 암실에서 필름을 펼쳐놓고 스텐실과 컬러 젤, 섬유조직 등으로 덮은 뒤 노출시키는 다이렉트 필름으로 색채와 질감의 새로운 결을 발견한다. 이런 1920∼30년대 거장들의 작품부터 최근까지 쉼없이 이어지는 이미지 전복의 시도를 22편에 걸쳐 소개한다. 전쟁과 애니메이션, 한국 인디 애니 스페셜 ‘전쟁과 영화’라는 올해 전주영화제의 주제를 이어받은 ‘전쟁과 애니메이션’에서는 지미 T. 무라카미의 장편애니메이션 <바람이 불 때>와 4편의 중·단편을 소개한다. <바람이 불 때>는 전원에서 평온한 노후를 보내던 부부의 일상이 핵전쟁에 의해 산산이 파괴되는 과정을 파스텔 톤의 그림체로 담담하게 그려낸 작품. <스노우맨>으로 낯익은 레이먼드 브릭스의 소설이 원작이다. 이와 함께 신사와 기모노를 입은 여인 등 시각효과와 실사영상을 적극 이용해 히로시마 원폭투하의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담은 <부유하는 세계의 이야기>, 1차대전 중 크리스마스에 전투 대신 축구경기를 벌이는 영·독 양국 젊은이들의 실화를 그린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기> 등이 상영된다. 한국 인디 애니 스페셜의 상영작은 모두 21편. 바쁜 엄마와 자신을 따돌리는 학교 친구들, 정신없이 돌아가는 도시의 일상에서 소외된 채 옥상에서 별을 바라보며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드는 조숙한 아이 요요의 내면을 서정적으로 드러낸 <요요지가>, 번번이 감옥 같은 초라한 방에서 깨어나지만 끊임없이 천사가 되어 하늘을 나는 꿈을 꾸는 남자의 집착을 좇는 3D애니메이션 <엔젤, 엔젤> 등 올해 자그레브와 안시의 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본선에 오른 작품들을 비롯해 한국 독립 단편애니메이션의 화제작을 모았다. 황혜림 blauex@hani.co.kr ▶ 2002 전주국제영화제 ▶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회고전 ▶ 크리스틴 버천 회고전 부문 ▶ 아시아 독립영화포럼 부문 ▶ 현재의 영화 부문 ▶ 애니메이션 비엔날레 ▶ 한국단편의 선택: 비평가 주간, 한국영화의 흐름 ▶ 중국과 일본의 전쟁영화·어린이 영화궁전 부문

[Review] 커먼웰스

■ Story 마드리드의 부동산 중개업소에서 일하는 훌리아(카르멘 마우라)는 낡은 아파트의 매매를 책임져야 한다. 근사한 홈바와 물침대가 갖춰진 그곳에 남자친구를 끌어들여 달콤한 일탈을 즐기려는데, 천장에서 오물과 바퀴벌레가 쏟아져내린다. 위층에 혼자 살던 노인이 오래 전에 죽어 있었던 것이다. 훌리아는 우연히 노인의 집에서 거액의 돈다발을 발견하게 되자, 이를 몰래 빼돌리려 한다. 하지만 이 돈은 아파트 주민들이 함께 나눠 가지려던 것. 훌리아와 주민들의 돈가방 쟁탈전은 유혹과 회유, 인질극과 구타, 살인방조와 살인으로, 점차 그 수위를 높여간다. ■ Review 오프닝 타이틀. 원색의 회오리 속에 겁에 질린 여자의 얼굴이 떠오른다. 여자는 찢어질 듯한 비명을 토해내더니, 칼을 높이 치켜들었다 내리친다.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나 뭔가를 열심히 뜯어먹고 있는데, 언제 죽었는지 알 수 없을 만큼 부패한 시체의 손가락이다. 이 영화의 갈 길이 스릴러거나 호러라고 예고하는 듯하다. 그러나 예측은 불허, 속단은 금물이다. <커먼웰스>는 엔딩크레디트가 올라가기 직전까지 스토리와 장르를 판가름하기 힘든 영화다. 주인 없는 돈가방을 둘러싼 아비규환의 인간군상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얼핏 <쉘로우 그레이브>와 <심플 플랜>을 연상시키지만, 그렇게 무거운 톤은 아니다. 은밀한 규칙이 지배하는 집단에 이물질로 거치적거리는 외부인의 존재도 <델리카트슨 사람들>에서 본 것이지만, 여기선 그런 희생양이나 구원의 이미지가 아니다. <커먼웰스>의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속물이다. 돈 때문에 속고 속이고 죽고 죽인다. 썩은 시체가 발견되고,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의 몸이 두동강나고, 돈을 빼돌리려던 여자는 죽도록 얻어맞는다. 그런데 <커먼웰스>는 돈가방의 행방에 몸이 닳고, 혈투극에 경악하게 하는 게 아니라, 다른 데를 보고 키득대게 만드는 이상한 영화다. “진정한 공포와 폭력은 현실과 다른 차원의 것이 아니라, 이른 아침 엘리베이터를 함께 탄 이웃이 당신의 얼굴을 무섭게 쳐다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감독 알렉스 드 라 이글레시아가 고백하는 대로 <커먼웰스>의 출발점은 이처럼 누구나의 평범한 일상, 더불어 사는 삶을 관통하는 불안과 공포다. 영화의 무대인 아파트에선 관리인이 주도하는 ‘공공의 이익’ 프로젝트에 참여해야 한다. 반대해도 안 되고, 배신해도 안 되고, 탈퇴해도 안 된다. 곧바로 죽음이다. ‘횡재의 운을 나누자’던 공동체 의식은 이렇게 해서 횡포가 되고 폭력이 된다. 주민들은 아파트 밖으로 뛰쳐나온 뒤에는, 한술 더 떠 이기심과 집착, 욕망의 야수성을 드러낸다. ‘공공의 이익’이란 실현 불가능한 이상이다. 이글레시아 감독은 사물과 인간에 대한 공포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는 탈출구가 유머라고 믿는다. 그래서 슬프고 무서운 사건을 우습게 포장하고, 인간의 약점을 과장하고 희화화한다. “우린 착한 사람들”이라고 강조하는 주민들의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이들에게 돈이 필요한 건 임시직의 고용 불안에서 벗어나거나, 가족과 함께 휴가를 가거나, 입냄새 제거 수술을 받으려는, 소박한 바람에서다. 그저 지리멸렬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다. 혼자서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이들의 관계는 전략적 제휴거나 위선이며, 실상은 원한과 치정으로 얽혀 있다. 가뜩이나 어설픈 그들의 손발이 척척 맞아줄 리 없다. 또 다른 웃음의 요소는 장르를 비틀고, 기존 영화를 우스꽝스럽게 패러디하는 비주류적 감성이다. <커먼웰스>는 히치콕 스타일의 스릴러 모양새를 갖추는 척하면서, 사지절단 호러와 앙상블 코미디와 할리우드식 액션을 천연덕스럽게 버무려넣고 있다. 특히 히치콕 영화에 대한 오마주가 곳곳에 널려 있는데, 오프닝 타이틀의 비주얼은 <현기증>을, 마천루에서 벌어지는 아찔한 추격전은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를, 이웃집을 망원경으로 주시하는 남자의 행각은 <이창>을 연상시킨다. 오리지널 영화팬들의 눈에는 다소 불경하게 비칠, 악취미적인 패러디도 있다. <스타워즈>의 다스베이더 복장을 한 남자가 “포스가 온다”고 외칠 때, 그는 샤워하는 여자를 엿보며 자위하는 중이다. 돈가방에 목숨 건 아줌마는 몸뻬 바람으로 공중 곡예하듯 옥상 사이를 날아다니며, <매트릭스>를 패러디한다. <커먼웰스>는 스릴과 쇼크, 공포와 유머가 어우러진, B급 코미디의 걸작이지만, 취향에 따라 열광할 수도 혐오할 수도 있는, 그런 영화다. 2000년 스페인 개봉 당시, 5주 연속 1위를 지키는 등 흥행에도 성공했다. 박은영 cinepark@hani.co.kr

[Review] 결혼은, 미친 짓이다

작고한 문학평론가 김현은 시인 유하를 일러 ‘키치중독자’이며 ‘키치반성자’라고 했다. 영화, 만화, 포르노, 무협지, 유행가 등 온갖 대중문화가 유하에겐 시의 육체요 영혼이었다. 감독 유하에게도 시인 유하와 같은 호칭을 붙일 수 있을까? 첫 영화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1993)에서 그는 시인 유하의 현실을 드러냈지만 영화의 언어로 표현할 순 없었다. <바람부는 날이면…>은 쏟아지는 키치적 이미지를 감당못해 쩔쩔매는 감독의 자화상이었다. 그러나 거의 10년 만에 내놓은 두번째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는 다르다. 충분히 노련해지기로 작정한 감독 유하는 시의 언어와 결별한다. 매끈한 멜로드라마와 날렵한 코미디는 망설임없이 몸을 섞지만, 감독은 어느 것에도 ‘중독’되지 않는다. 그 적당한 거리두기가 ‘결혼은, 미친 짓이다’라는 문장을 여러 번 되씹게 만든다. 감독은 이만교의 동명소설에서 “불온한 여주인공의 캐릭터에 끌렸다”고 말한다. 여주인공 연희는 ‘사랑’과 ‘결혼’ 가운데 어느 하나도 버리지 않는다. 사랑과 결혼의 대상이 같다면야 새삼스런 일이 아니지만, 연희의 연인 준영은 결혼제도에 투항할 생각이 추호도 없는 남자다. 그녀는 차선책으로 남편과 애인이 공존하는 이중생활을 계획한다. 그녀가 우연히 이런 상황에 이른 게 아니라 계획대로 두집 살림을 한다는 사실이 ‘연희’라는 이름을 잊지 못하게 한다. 적어도 한국영화에서 결혼을 이런 식으로 걷어찬 여자는 처음이다. 결혼한다고 남편만 바라보고 살 수 없을 거라는 남자의 말에 그녀는 답한다. “난, 자신있어! 절대로 들키지 않을 자신!” 그리하여 그녀가 주말부부를 가장하며 준영의 옥탑방을 찾을 때, 거기엔 ‘불륜’이라는 단어가 주는 끈적한 느낌이 없다. 이것은 감독의 말대로 ‘기묘한 사랑이야기’지만, 기묘하지 않게 연출함으로써 더욱더 매섭게 결혼에 대한 정상적인(정확히 말하면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를 공격한다. 영화가 택한 길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연희의 사진첩처럼 행복한 연인들의 미소를 오래 붙잡아두는 것이다. 세상의 다른 정상적인 연인들처럼 밀어를 속삭이고 쇼핑을 하고 여행을 하면서, 그들은 관객으로 하여금 이상한 커플이라는 의심을 거두게 만든다. 평범한 로맨틱코미디로 시작해 에로틱한 열정으로 치달았다 별이 쏟아지는 밤을 함께 나누는 낭만적 순간으로 이어지는, 어느 것 하나 기묘할 것 없는 사랑의 판타지를 그들도 함께한다. 영화는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멜로드라마의 고전적 레퍼토리와 형식을 빌려오면서 시한부 인생이나 이복남매 스토리에서 제자리걸음을 반복하는 관습을 깨고 나간다. 현실의 결혼제도에 시비를 걸면서 웨딩마치로 종결되는 로맨틱코미디의 규칙도 뒤집는다. 프랭크 카프라의 <어느 날 밤에 생긴 일>처럼 백만장자의 딸과 가난뱅이 신문기자가 결혼하는 완벽한 영화적 엔딩이 현실에선 불가능하다는 것이 은연중에 폭로된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가 펼쳐보이는 리얼리티의 스펙트럼은 넓지는 않지만 예리하고 파괴적이다. 사랑의 신화를 반복재생하는 장르인 멜로드라마에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는 것은 현실에서 건져올린 이런 비판정신일 것이다. 엄정화와 감우성은 궁합이 잘 맞는 커플이다. TV에서 오랫동안 섹시한 가수로 자리잡았던 그대로 엄정화는 연희의 도발적인 이미지에 어울린다. 하지만 그녀가 도발적이라고 억세고 강한 여자라고 여기면 곤란하다. 화면에 비치지 않는 시간 동안 우리는 그녀가 많이 울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하게 된다. 적당한 내숭과 타고난 애교로 속삭이는 그녀가 결혼과 사랑, 둘 중 어느 하나를 버리지 못하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감우성 역시 TV에서부터 지적이면서 냉소적인 이미지였다. 그는 결혼을 누구랑 할까 고민하는 연희에게 “나 포함해서 가난한 자식들은 다 빼”라고 말하는 현실주의적 태도를 취하지만 그녀가 원하는 작은 부탁들은 다 들어줄 수 있는 가슴이 넓은 남자다. 두 남녀의 모습에서 카메라를 돌리는 순간이 많지 않은 영화인데도 집중력을 잃지 않는 건 두 배우의 호흡이 제대로 맞아들어가는 리듬감 때문이다. 아마 <결혼은, 미친 짓이다>에서 시인 유하와 감독 유하의 공통점으로 남는 것은 ‘키치중독자’가 아니라 ‘키치반성자’의 모습일 것이다. 키치반성자로서 유하는 그렇다고 홍상수의 영화를 흉내낼 마음은 없어보인다. 그는 통속적인 멜로드라마에 노스탤지어를 느끼며 장르의 힘을 믿는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호소력도 바로 그런 노스탤지어와 맞닿아 있다. 연희의 사진첩을 보며 준영은 말한다. “사진 속에서만큼은 그녀도 나도 한없이 행복해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그 길을 가지 않았다.” 가지 않은 그 길, 결혼과 셋방살림으로 이어지는 그 길을 갔다면 정말 행복했을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미련이 남는다. 그 안타까움과 죄책감, 후회와 연민이 이 기묘한 사랑이야기에 머리보다 마음이 먼저 끌리는 이유이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원작과 영화 TV와 경쟁하던 소설, 영화가 되다 “리모컨을 장착한 새로운 작가의 출현.” 문학평론가 김화영씨는 이만교씨의 소설 <결혼은, 미친 짓이다>가 “주제와 문체와 대화와 행동과 정신을 아우르는 예외적인 속도를 구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TV 프로그램이나 만화가 웬만한 문학작품보다 뛰어난 상상력을 선보여서 놀라곤 한다. 나는 이들에게 때로 배우고 한편으로는 경쟁하고 싶다”는 작가의 말과 상통한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는 소설 자체가 TV 단막극처럼 가볍고 빠르다. 소설가 조성기씨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라 표현했지만 홍상수 영화처럼 보는 이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편은 아니다. 소설은 통속적인 상황에서 출발, 포르노처럼 빠져들다 한순간 미끌어져 예기치못한 종착역에 도달한다. TV, 영화, 만화 등 다른 대중문화 장르와 경쟁하겠다는 의도로 쓰여진 이 소설에 대중문화 중독자로 이름높은 유하가 관심을 보인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유하는 오늘의 작가상 심사위원으로 있을 때 소설을 보고 영화화를 마음먹었다. 실제 영화와 소설, 양쪽 이야기의 차이는 크지 않다. 소설에서 은희였던 여자의 이름을 연희로 바꾸고 준영의 가족 이야기가 대폭 줄어든 것이 눈에 띄는 정도다. 연희가 남자의 자취방을 얻는데 돈을 댄다는 영화 속 설정은 소설에 없는 부분이다. 영화는 여주인공의 불온한 캐릭터를 한층 강화하면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그리는데 주력한다. 유하는 이렇게 말한다. “이 영화를 통해 결혼이란 화두를 공론화시키고 싶었고,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본 결혼제도에 대해 담론을 이끌어내고 싶다. 영화 속 이야기는 옆집에서 일어나는 실제 상황이다. 즉 누구에게나 연희는 존재하는 것이다.”

옥길성 <맨발로 하늘을 걷다>

홍상수는 우리 영화계의 독보적인 존재다. 대중에게 그의 이름을 처음 알린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 최근작 <생활의 발견>에 이르기까지, 생활세계에 존재하는 뼈아픈 모순들을 캐내는 그의 시선은 누구보다도 날카롭고 철저해왔다. 물론 첫 작품의 심각함이 최근작에 오면 좀 느슨해지긴 하지만 작가적인 추구의 일관성이나 영화 붙이는 스타일의 독특함으로 봐서 그만한 성과를 낸 감독이 어디 또 있을까 싶다. 한국영화계는 그나 배용균 같은 이름을 어, 하는 사이에 어부지리로 얻곤 한다. 홍상수는 음악을 쓰는 일에 매우 인색한 감독으로 유명하다. 최근작 <생활의 발견>에는 엔딩 스크롤이 올라갈 때 딱 한곡, 음악이 들어간다. <오! 수정>에서도 여주인공이 풍금으로 치는 <빠삐용>의 테마를 빼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곡은 한곡이다. <강원도의 힘>에서도 영화의 앞뒤에 등장하는 딱 한곡만이 기억에 남는다. 비교적 음악이 많이 등장하는 <돼지가…>에서도 메인 테마와 더불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신경증적인 선율, 그리고 몇곡의 선곡된 팝송들이 다다. 이렇게 인색하게 음악을 쓰는 그의 영화에 <돼지가…>와 <오! 수정>의 두편에서 음악을 만들어주었던 옥길성 교수가 사재를 털어 음반을 낸 것이 눈에 띈다. 영어로는 , 한글로는 <맨발로 하늘을 걷다>로 명명된 이번 음반은 물론 O.S.T 모음집 성격의 음반은 아니다. 그는 음반 재킷에서 “20세기 클래식 창작 음악은 학술적인 상아탑 속에 스스로 갇혀서 지나친 자기도취로 심한 자폐증을 앓는 사이에 보편적 정서와 너무 멀어져”버렸다고 말한다. 그러니 그는 이번 앨범에 현대적인 클래식과 잃어버린 보편적 정서를 되잇는 가교 역할을 하는 음악들을 담고자 했을 것이다. 앨범에는 또 ‘뉴에이지 클래시컬 음악’이라는 문구도 보인다. 다른 반주들과 복잡한 편곡들을 배제한 채 하프와 피아노 독주곡들로 앨범 전체가 구성되어 있는데, 그 악기들이 내는 맑고 청명한 음색과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분위기는 분명 뉴에이지의 어떤 면과 닿아 있다. 그러나 보통의 뉴에이지와는 약간 성격이 다르다. 뉴에이지는 음악적인 개념 규정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사고방식인데, 이 앨범에서 특별히 뉴에이지적인 사고방식, 다시 말해 개별성의 추구나 자연친화적 제스처 같은 것들이 관념화되어 있는 걸 발견할 수는 없다. 개인적으로는 그래서 오히려 더 정이 간다. 그의 소품들은 기교를 부리기보다는 옥길성 특유의 소탈한 주제를 미니멀하게 반복시키면서 우리의 귀에 좀더 솔직하게 다가온다. <마지막 열차>에서 출발하여 <강따라 바람따라>로 끝나는 이 소품들의 여행 속에는 <오! 수정>의 테마곡도 들어 있다. 영화에서는 일부러 그런 듯 투박한 피아노 솜씨로 녹음되어 들렸던 그 테마가 이 음반에서는 청아한 하프로 연주된다. 하프로 들으니 그 테마가 참 단순하면서도 좋은 멜로디를 지니고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현재 경희대학교 음대 교수로 있는 옥길성은 그동안 홍상수의 두 작품과 함께 <마요네즈>에서도 음악을 담당한 바 있다. 음반에는 빠져 있지만 음열주의적 불협화음이 인상깊었던 <돼지가…>의 현악 사중주곡들은 한국 영화음악사에서 하나의 발견이었다. 그해에 몇개의 상을 타기도 했던 그 음악과 더불어, <돼지가…>는 시퀀스와 포즈, 빛과 심연을 붙여나가는 알랭 레네식 화법의 어떤 부분을 닮은 심각한 생활드라마가 될 수 있었다.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