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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2003)

[스크린 속 나의 연인] <사랑의 스잔나>의 ‘진추하’

누구나 한번쯤은 영화를 보면서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을 사랑하게 된 경험이 있지 않을까? 그 사랑은 자신의 연애관은 물론 세계관에까지 작든 크든 영향을 끼쳤을 터. 영화에 대한 얘기를 좀더 풍성하게 한다는 취지에서 영화인뿐 아니라 사회 각계 인사들의 ‘스크린 속 내 연인’을 만나보는 난을 매주 화요일에 마련한다. 편집자 내 사춘기 시절 ‘둘도 없는 내 여인아’ 사춘기 시절 내게 가장 큰 충격을 안겨준 영화배우는 진추하(천추샤·위 사진)다. 중학교 2학년 봄에 서울로 전학을 와서 연합고사를 보기까지 근 2년간 변두리라고는 해도 서울 한구석에서 나름대로 땟물을 벗었다고 턱을 한껏 쳐들고 고향으로 돌아갔던 1976년 12월, 나는 운명적으로 그와 마주쳤다. 관객이라고는 두 개 있는 구공탄 난로 옆에 앉아 있는 네댓 명이 전부인 명성극장에서였고 영화의 제목은 〈사랑의 스잔나〉, 당시 이따금 선보이던 한-중 합작, 엄밀하게는 한국과 홍콩의 합작영화였다. 영화의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데 대략 여주인공인 진추하가, 예쁘고 모범생이고 온 세상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추하 양이 저 몹쓸 백혈병에 걸려 죽는다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어디선가 좀 본 듯한 내용에 어디선가 읽은 듯한 대사며 장면의 연속이었다. 이것저것 짜깁기해서 대충 만든 영화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주었던 것이다. 그때까지 내가 태어나서 본 영화라고는 순수 국산영화고 외화고 합작이고 간에 통틀어 스무 편이 될까 말까 했는데도 그랬다. 텔레비전의 ‘주말의 명화’며 ‘명화극장’은 빼더라도. 극장 밖에는 주인공의 사돈의 팔촌도 닮지 않은 배우가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서울의 극장과 너무도 수준차가 나는 간판이 달려 있어서 어설프다는 점에서 안팎이 일치됨을 보여주고 있었다. 게다가 진추하는 내가 일찍이 초등학교 때 어떤 여성지의 별책부록으로 나온 영화배우들의 화보에서 본 것 같은 특별한 점이 없었다. 이를테면 소피아 로렌의 야성미, 잉그리드 버그만의 청순함, 캐서린 헵번의 우미함,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천변만화, 오드리 헵번의 고고함 그 무엇에 비견할 만한 특징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숨이 넘어갔을 때는 아예 울었다. 스스로가 촌스럽고 우습다고 생각하면서도 울었다. 극장 화장실에 가서 살인적인 암모니아 냄새 속에서 오줌을 누면서도 울었다. 왜 울었는가. 그가 뭔가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어떤 집단에 속해 있으면 안도하고 획일화된 틀 속에 안주하고 앞으로 남들과 똑같은 방향으로 가는 것이 정해져 있는 존재에게도 내밀한 나름의 무언가가, 조개 속살처럼 약하고 건드리면 아프고 눈물이 나오는 부분이 있음을 진추하는 알려주었다. 그 방법이 통속적이든 수준이 높든 아무 상관없었다. 숨 넘어가면 숨 넘어갈 듯 울고 노래하면 노래에 푹 빠져 당시 고등학생들의 자취방에 압도적으로 많이 걸렸던 배우는 올리비아 핫세(아르헨티나 출신으로 60년대 후반 17살의 나이에 〈로미오와 줄리엣〉에 출연함으로써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 영어로는 Olivia Hussey인데 그 당시 남학생들은 백이면 백 올리비아 핫세라고 불렀지 미국식으로 ‘올리비아 허시’라고 하지는 않았다. 그런 인간이 있었다면 백이면 백 맞아죽었을 것이다)였다. 핫세의 인기가 지속된 데는 그 당시 중고생들이 제 또래라고 생각할 만큼 앳되고 동양적인 외모 덕이 컸겠지만 〈로미오와 줄리엣〉 주제곡 ‘어 타임 포 어스’의 사운드 트랙에도 힘입은 바가 적지 않았다. 그런데 진추하는 청신하고 동양적인 미모는 기본이고 저 심금을 울리는 ‘원 서머 나잇’과 ‘그래주에이션 티어스’를 직접 작사, 작곡하고 노래까지 불러젖혔으니 핫세 양이 한국에서, 아니 동양권 어디에서 〈사랑의 스잔나〉를 보았더라면 청출어람의 후배가 나왔음을 뼈아프게 실감하지 않았을까. 그로부터 진추하와 올리비아 핫세는 고등학생 자취방 벽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여나갔다. 멀리는 80년대 중반까지. 영화 〈사랑의 스잔나〉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반면에 노래 ‘원 서머 나잇’이나 ‘그래주에이션 티어스’는 여전히 남아 있다. 내 또래인 유하 감독의 〈말죽거리 잔혹사〉에 진추하의 노래가 나온다는 말을 듣고 무척 반가웠다. 그 영화를 보면서 찔찔 울고 또 울었다는(화장실 가서도 울었다는) 사나이들을 나는 알고 있다. 진추하는 소풍날 교련복 입고 탄띠, 수통, 각반을 차고 줄지어 행군(行軍)을 해야 했던 어이없는 시절 내 사춘기의 들창이며 코드였다.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누벨바그 대가’ 자크 리베트 회고전

프랑스의 영화평론지 〈카이에 뒤 시네마〉에서 평론을 하다가 카메라를 든 누벨바그 감독 중 한 명인 자크 리베트(77) 회고전이 4일부터 13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다. 리베트는 평론가 시절 누구보다도 필명을 날렸던 인물로, 장 뤼크 고다르를 제외하고는 활동이 잦아든 동세대의 감독들과 달리 최근까지도 왕성한 창작을 하고 있는 감독이다. 그러나 연출 편수에서는 비교적 과작인 탓에 동료 고다르는 “그가 10편의 영화를 만들었다면 그는 아마 나보다 훨씬 더 유명해졌을 것”이라는 존경어린 말을 남기기도 했다. 데뷔작 〈파리는 우리의 것〉(1960)에서 지난해 국내 개봉한 〈알게 될 거야〉(2001)까지 장편 10편과 비평가 시절 만들었던 단편 〈양치기 전법〉(1957), 텔레비전 시리즈 중 하나로 스승인 장 르누아르를 인터뷰한 〈우리의 후견인 장 르누아르〉 등을 상영한다. 두 번째 영화 〈수녀〉는 종교적 스캔들을 일으키며 개봉이 금지되는 수난을 겪었지만 리베트의 실험은 누벨바그의 충격이 사그라지기 시작한 60년대 후반부터 도리어 황금기를 맞는다. 4시간짜리 〈미치광이 같은 사랑〉을 비롯해 무려 12시간이 넘는 〈아웃 원: 유령들〉 등 통상적인 상영시간을 뛰어넘는 영화들에서 혁신적인 서사구조를 도입했으며, 한국 개봉 당시 누더기 편집 상영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누드 모델〉은 예술적 창작 행위에 대한 뛰어난 성찰로 극찬받았다. 이 밖에 〈잔다르크〉 〈셀린느와 줄리 배 타러 가다〉 〈대결〉 등을 상영한다.

[비평 릴레이] <하울의 움직이는 성> 정성일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상한 것은 도대체 왜 전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라크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미야자키 하야오의 아홉 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관한 이야기다. 그래서 이 영화의 원작 동화를 읽어보았다. 영국의 동화작가 다이애나 윈 존스가 1986년에 발표한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의하면 이 모든 사건은 사라진 왕자를 둘러싼 전쟁이었다. 그런데 이 동화를 읽고 나면 그 다음에는 도대체 왜 미야자키 하야오가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는지 알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제외한다면 동화의 줄거리와 영화는 거의 아무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두 권으로 된 이 동화의 전편만이 영화로 만들어졌다.) 사물에게 말을 걸면 생명을 불어넣는 재주를 가진 18살 소피는 그저 소녀일 뿐이다. 멋진 청년 왕실 마법사 설리만은 아줌마 마법사가 되어버렸고, ‘몸짱’인 황야의 마녀는 ‘몸꽝’이 되었다. 게다가 소피의 두 여동생 레티와 마사도 사라졌다. 미야자키는 이 동화에서 로맨스 부분을 필사적으로 삭제해 버렸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희생만이 마법을 풀수 있다? 환상에만 내맡기는 게 아닌가 물론 미야자키의 공중부양의 신기는 여전히 마음을 두근거리게 만들고(특히 소피와 하울의 첫 번째 상공비행!), 쿵쾅거리면서 그 가느다란 네 발로 아슬아슬하게 돌아다니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귀엽기 짝이 없다. 그렇지만 여기는 지금 19세기 말 지도상으로 알 수 없는 지명의 전쟁터. 다이애나 윈 존스의 동화에서 남은 것은 전쟁뿐이다. 비행선들은 도시를 불바다로 만들고, 사람들은 피난길에 여념이 없다. 일체의 저항도 없는 무자비한 폭격. 그 잔인한 공격은 예외 없이 시종일관 밤에만 이루어진다. 만일 장면의 스펙터클 효과를 노린다면 그렇게 밤으로만 이루어진 불바다를 다룰 필연적인 무슨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 그 전쟁 장면을 보고 있으면 누구라도 이 이미지들이 어디서 많이 본 것임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그건 텔레비전을 통해 위성 중계방송 된 이라크 바그다드 시내의 불바다다. 문만 열면 이리저리 이동하면서 그 모든 추적으로부터 자유로운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어쩔 수 없이 오사마 빈 라덴의 은신처를 생각나게 만든다. 이 국적불명의 전쟁은 사실상 지금 벌어지고 있는 세계의 전쟁에 대한 알레고리다. 그러나 비유는 거기까지다. 그 다음은 물론 미야자키의 (유치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물겹도록) ‘착한’ 왕국이다. 미야자키는 세계의 전쟁을 자기의 왕국으로 끌어들인 다음 이 전쟁을 멈추기 위해서 할머니와 소녀의 일인이역 소피를 보낸다. 이 90살의 소녀는 자기 자신의 저주를 푸는 일에 관심이 없다. 소피는 자기를 희생하면서 하울을 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건다. 마법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진심이다. 오직 그것만이 그 모든 마법을 무효화한다. 그 진심이 심장을 되돌려주는 것으로 표현된 것은 더도 덜도 아닌 숭고함의 행위다. 진심의 표현이라는 행위, 거기에 담긴 반성할 것이라고 가정된 세계라는 주체. 그 순간 심금을 울리는 주제곡 ‘세계의 약속’이 흐른다. “시간이 시작될 때부터의 세계의 약속, 결코 끝나지 않는 세계의 약속” 하지만 여기 그러나, 라는 단서가 필요하다. 그러나 희생이 기적을 만드는 것은 환상에 세계를 맡기는 것이 아닌가?

60년대 일본영화의 반란을 돌아본다, 쇼치쿠 누벨바그전

신년 벽두 1960년대 일본 영화사를 장식한 화제작들이 대거 한국을 찾아온다. ‘젊음, 정치, 폭력, 섹스-반역의 연대기’라는 슬로건으로 시네마테크 부산이 기획하고 주최하는 쇼치쿠 누벨바그전이 1월7일부터 21일까지 보름간 부산에서 관객을 맞이한다. 이번 영화제는 오시마 나기사의 같은 쇼치쿠 누벨바그의 시발점에서 이후 독립프로덕션에서 만들어진 문제작인 시노다 마사히로의 , 요시다 요시시게의 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으로 짜여졌다. 이번 영화제가 소개하는 세 감독의 작품은 총 17편. 특히 시노다와 요시다는 각각 7, 6편의 대표작이 연대기적으로 적절히 배분되어 두 사람의 폭넓은 작가세계를 처음으로 국내에 선보이는 기회가 될 전망이다. 세명의 감독으로 대변되는 쇼치쿠 누벨바그는 사실 쇼치쿠에서 영화를 시작했지만 후일 일본예술영화관조합(Art Theater Guild: ATG)과 독립프로덕션의 결합을 통해 영화를 만든 젊은 영화작가들을 일컫는 말이다. 미조구치, 오즈, 구로사와의 영광이 서서히 쇠락의 조짐을 보이던 1960년대 일본 영화계는 경제성장과 텔레비전의 출현이라는 외부 충격만큼 내부적으로도 급박한 변화를 겪는다. 평론가 사토 다다오는 “50년대 중반부터 흥행한 도에이의 참바라영화, 닛카쓰의 태양족 영화와 이시하라 유지로의 액션물에 반해 쇼치쿠는 특별한 대응책 없이 밀리던 점”을 쇼치쿠 누벨바그의 탄생 원인으로 지적했다. 당시 쇼치쿠 대표였던 기도 도시로의 발탁으로 ‘쇼치쿠의 구세주’로 떠오른 오시마를 기점으로 20대 후반의 조감독들이 대거 감독 대열에 입성한다. 당시 쇼치쿠에서 감독의 평균 데뷔 연령이 40대였던 점을 감안하면 이들이 가져온 반향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메이저 스튜디오와 반항아들의 결합은 오래가지 못했다. 2∼3편의 영화를 만든 뒤 제작사와의 마찰로 인해 그들은 오후네(大船) 촬영소를 1960년대 중반 차례로 떠나간다. 오시마는 창조사, 시노다는 표현사, 요시다는 현대사라는 독립프로덕션을 설립하고 소극장을 기반으로 실험적인 작품들을 마음껏 만들어내는 길을 택한다. ‘일본 뉴웨이브의 지형도, 쇼치쿠 누벨바그 특별전’ 젊음, 정치, 폭력, 섹스 - 반역의 연대기 주최·장소: 시네마테크 부산 후원: 일본국제교류기금, 가와기타기념문화재단, 쇼치쿠영화사 일정: 1월7일(금)∼21일(목) 15일간 문의: 051-742-5377, 051-742-5477, cinema.piff.org, www.piff.org 관람료: 6천원 ☞ 상영일정표 보러가기 상영작 안내 1960년 l 96분 l 컬러 l 오시마 나기사 1960년 l 107분 l 컬러 l 오시마 나기사 1970년 l 167분 l 흑백 l 요시다 요시시게 1969년 l 103분 l 흑백 l 시노다 마사히로

이거 노력파를 두번 죽이는 거네, <인크레더블>

내 남편이 가장 싫어하는 단어는 ‘노력파’다. 본인의 학창 시절 별명이었던 탓이다. ‘노력파는 좋은 의미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분도 계시리라. 그런 분은 한번도 제대로 노력해보지 않은 사람임에 틀림없다. 문자 그대로의 뜻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의미의 ‘노력파’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의 ‘내 나이키’ 편을 보시라. 밤낮없이 예습복습을 하고 밥상머리에서도 책을 안 놓는, 그러면서 “형은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는데 어떻게 34등을 하냐, 반에서”라는 이야기를 동생에게 듣는, 그리하여 부모로부터 야단칠 권리도 빼앗고(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어쩌란 말이냐) 다만 깊은 시름에 빠지게 만드는 임원희의 캐릭터가 노력파의 실체다. 기실 노력파는 미디어에서 호도하는 것과 달리 전혀 칭찬과는 거리가 먼, ‘해도 안 되는 불쌍한 인간’의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우연히 케이블 텔레비전에서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되기까지 나는 임원희 캐릭터를 완전히 까먹고 있었는데(난 노력파가 아니다. 믿어달라) 나의 남편, 그의 대사뿐 아니라 행동의 디테일까지 세세히 기억하고 재현하며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하더란 말이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 자신이 노력파라는 걸 남들에게는 말하지 말라고 아주 심각한 어조로 부탁했다. 나는 노력파는 부끄러운 게 아니라 다만 불편할 뿐이라고 말했지만 그건 위안도 안 되는 공허한 말일 뿐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런 이 세상의 모든 노력파를 두번 죽이는 영화가 개봉했다. 이다. 인크레더보이. 어린 시절 이미 화력으로 방방 뛸 수 있는 스프링 신발을 만든 그는 재능있는 소년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는 재능있으나 영웅의 피는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민간인이었던 것. 민간인이 영웅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죽어라고 노력할 수밖에는 없었던 것. 자신의 우상이었던 미스터 인크레더블에게 면박당한 뒤 복수심을 성취동기삼아 그는 엄청난 괴력의 무기를 창조해내는 훌륭한 과학자가 된다. 그러나 영화는 인크레더보이의 근면성, 성실성을 형편없는 콤플렉스의 산물로 변질시킨다. 가장 좋은 건 인크레더보이의 말대로 누구나 노력해서 슈퍼히어로가 되어 그 이상의 슈퍼히어로가 없는 세상을 만드는 거다. 평등사회란 그런 거다. 그러나 은 노력파가 타고난 천재나 영웅의 영역을 건드리는 걸 역겨워한다. 한마디로 왕후장상의 씨는 따로 있으니 노력파는 까불지 말라는 거다. 영화를 보고 나서 또 한번의 충격. 내 친구들 너무 재미있다고 다만 해맑은 웃음으로 즐거워하는 거다. 왜 나만 기분이 나빴던 거지? 나도 노력파인 건가? 아니다. 이 모든 걸 없던 이야기로 해달라. 나도 그냥 재미있게 봤다. 헤헤. 나, 노력파가 아니다. 정말이다(강한 부정… 끄응).

<미트 페어런츠2> 미국 박스오피스 3주 연속 1위

개봉한지 3주가 지나도록 의 흥행열기가 식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2004년 마지막주와 2005년 첫주 박스오피스에 이어 1월 둘째주까지 3주 연속 1위를 독점중이다. 엽기적인 사돈들의 상견례 해프닝을 그린 속편코미디 가 이렇게까지 잘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1월7일부터 9일까지 3527개관에서 2850만달러를 벌어들여 지난주보다 겨우 32% 하락했다. 현재까지 매표수입이 2억430만달러로, 이미 전편의 최종수입 1억6620만달러를 훌쩍 넘어섰다. 벤 스틸러, 로버트 드 니로, 더스틴 호프먼,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등 초호화 배우와 친근한 가족 이야기라는 점이 관객을 끌어모으는데 주효했던 것으로 보인다. 의 강력한 적수로 예상됐던 신규 개봉작 (White Noise)는 2261개관에서 2400만달러 수입을 거둬 2위로 데뷔했다. 마이클 키튼 주연의 호러미스터리물로, 비평가들의 반응은 썩 좋지 않은 편이지만 고정적인 호러팬들을 극장으로 불러들이는데 성공했다. 죽은 아내가 텔레비전을 통해 자신과 소통하려 한다고 믿는 남자의 이야기다. 전설적인 할리우드 영화제작자 하워드 휴즈의 전기영화 는 지난주와 같은 3위에 머물렀고, 짐 캐리의 판타지영화 은 두 계단 하락해 4위에 자리했다. 10위권엔 들지 않았지만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와 테리 조지의 가 100여개관에서 소규모 개봉했다.

[스크린 속 나의 연인] <브레드리스> 건달 리처드 기어

내가 최초로 좋아한 배우는 냉혹한 투우사이자 방황하는 영혼, 타이론 파워다.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그의 피가 모래밭에 스며드는 〈혈과 사〉의 마지막 장면에서 너무나 큰 상실을 알게 되었다. 다시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그때 이후 나는 얼마나 많은 배우를 좋아했던가. 〈태양은 가득히〉의 알랭 들롱, 〈더 웨이 위 워〉의 로버트 레드퍼드, 〈아비정전〉의 장궈룽(장국영)…. 그리고 한때는 게리 올드먼의 광기와 순수가 뒤섞인 눈빛을 좋아했고 미국의 막막한 시골을 여행할 때마다 〈길버트 그레이프〉에서의 삶에 포위되어 지친 청년 조니 뎁의 불안한 표정을 떠올렸다. 또한 내가 정우성을 좋아한다는 것은 나 스스로 소문을 내고 다니기 때문에 주변의 모든 사람이 알고 있다. 내 노트북의 사진파일에는 정우성으로 가득 차 있고, 얼마 전 탈고한 내 장편소설 속 한 인물이 ‘난 남자배우 얼굴이 불안을 담고 있어야 화면에 몰두할 수 있거든’ 하고 말하는 것은 물론 정우성을 두고 한 말이다. 한편 내가 세월을 두고 좋아한 배우는 역시 〈대부 2〉의 알 파치노다. 그러나 이 모든 매혹에도 불구하고 내게 가장 강력하고 또 짧은 사랑의 기억으로 남아 있는 연인은 〈브레드리스〉의 정말로 대책 없는 건달, 리처드 기어(사진 왼쪽)다. 수많은 총구앞으로 뛰쳐 나간다, 경쾌한 음악 네멋대로 춤을 춘다 그때 나는 결혼 이후 닥쳐온 가난과 일상에 찌들어 있었다.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기고 파트타임 직장에 다니던 시절이었는데 가정사도 고단했거니와 적성에 맞지 않는 회사 일도 힘들었다. 몹시 위축돼 있었으며 무엇보다 고독했다. 나라는 존재에 대해 고민하거나 심지어 연민을 느낄 여유조차 없는 그 시절 어느 햇살 좋은 날, 지금은 영화평론가의 아내가 된 친구와 함께 참으로 오랜만에 시내의 극장에 갔다. 과자 봉지와 음료수를 들고 재잘거리며 극장 문으로 들어서는 순간 잠시나마 자유의 실감 때문에 눈물이 핑 돌았다. 〈브레드리스〉의 리처드 기어는 경찰에게 쫓기는 싸구려 시골 건달 제시다. 그의 꿈은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멕시코로 떠나는 것이다. 그러나 여대생 모니카는 방학 때 시골에서 잠시 어울렸던 제시가 찾아오자 어처구니없을 뿐이다. 어디에서 구했을까 싶은 굵은 체크무늬 바지에 요란한 재킷을 입은 천박한 취향, 리모컨이 신기해서 가랑이 사이로 권총을 뽑듯 리드미컬하게 이리저리 눌러보는 장난스럽고 낙천적인 모습. 지구를 구원하는 만화 속의 영웅만이 우상인 제시는 삶에 아무 준비도 대책도 없다. 그러나 지도교수의 애인이 되어서라도 출세하고자 했던 모니카의 마음 한편에는 도시의 속물성에 환멸이 있었다. 제시는 섹스가 끝나고 욕실로 가려는 모니카를 붙잡으며 뜨겁게 말한다. “내 체취를 갖고 다녀.” 제시의 맹목적인 순정을 거부하기에는 삶이란 게 너무 숨통을 죄는 위선적인 존재가 아닌가. 경찰에 포위된 제시는 수많은 총구 앞으로 뛰쳐나간다. 다음 순간 경쾌한 음악과 함께 시작되는 그의 춤만큼 절망을 숨막히게 표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 그 절망은 이 영화의 원본인 장 뤼크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보다 훨씬 원색적이면서 강렬했다. 그때 나는 얼마나 많은 순간, 발레리 카프리키스처럼 그가 골라준 핑크색 끈 원피스를 입고 경찰에 쫓기며 세상에 나밖에 모르는 남자와 함께 차 안에서 밤을 새우고 싶었던가. 누군가 나를 지친 일상에서 빼내 다른 곳으로 데려가주었으면, 어떤 것이든 좋으니 다른 인생을 시작하게 해주었으면, 며칠만이라도 내 멋대로 함부로 살아보았으면…. 하지만 텔레비전 드라마에 나오는 돈 많고 친절하고 잘생긴 남자는 평생 한번도 기대해본 적이 없다. 세상에 기적이 하필 나한테 일어날 리가 있겠는가. 그것은 오직 키치와 순수의 건달 제시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며 마지막의 비극은 예정된 수순이다. 〈미스터 굿바를 찾아서〉와 〈아메리칸 지골로〉를 끝으로 리차드 기어에 대한 내 사랑은 사라졌다. 그러나 이제 내가 원하는 사람으로 살기는 글렀다는, 막바지에 이른 젊음의 한 시절. 일탈에 대한 불온하고 충동적인 꿈. 그것들과 함께 〈브레드리스〉의 순정 건달 제시가 내 곁에 머물렀던 그런 시절이 내게 있었다.

일본인이 본 <겨울연가> [1]

일본인이 잃은 순수, 이 드라마에 있었다 2004년의 문화계를 대표하는 키워드는 한류였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피부로 실감할 수 있는 한류는 한국의 문화상품 일반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었다. 2004년의 한류는 정확히 말해 일본에서 일어난 붐이라고 좁게 지칭해야 옳다. 욘사마 열풍 또한 없이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일본 위성방송에서 시작해 공중파인 에서 재방송을 거듭하고 있지만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는 . 일본인들은 과연 이 드라마에서 무엇을 보고 감동하는 것일까? 일본의 문화평론가 시미즈 마사시가 쓴 비평은 이 궁금증을 해결할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시미즈 마사시는 현재 일본대학 예술학부 문예과와 대학원 예술학 연구과 교수로 등 문학·영화·만화를 넘나드는 다양한 저서를 내놓은 인물이다. 이번에 한국에서 한달 동안 유학을 하기에 앞서 특별히 어떤 준비를 하진 않았지만 한국에 간다면 꼭 를 봐두어야 한다는 친구가 있었다. 가 일본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나는 본래 유행에는 둔감하기 때문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래도 몇번이나 권유를 받는 바람에 그렇게까지 권한다면 첫 번째 이야기만이라도 볼까 하는 가벼운 기분으로 DVD판 1부를 학교에서 가지고 집에 왔다. 밤중에 가족 모두가 잠든 다음에 혼자서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1부에 수록된 세 번째 이야기까지 계속해서 봐버렸다. 다음날 나머지 6부를 한꺼번에 보았다. 이틀간 20편을 보고 나서 분명히 이 드라마는 도중에 그만둘 수 없도록 구성돼 있음을 알았다. 달콤하고 슬픈 테마송을 시작으로 서정적인 영상과 아름다운 남녀의 조화, 드라마가 끝나면 다음 회의 예고, 다음 편을 보면 테마송 뒤에 반드시 전편의 줄거리가 소개된다. 그러니까 어디에서부터 보더라도 괜찮은 것이다. 이번에 나는 1편을 통해 이 드라마의 특수성을 논해보고자 한다. ‘버스’를 쫓는 여자아이-체제에 대해 반항하지 않는 젊은이들 히로인인 여자아이 정유진은 고등학교 2학년. 항상 통학 버스를 뒤쫓는 지각 상습범. 히로인의 첫인상은 ‘달리고 있는 여자아이’이다. 고등학교 2학년이라면 열여섯이나 열일곱이다. 유진 역의 최지우는 당시 25살. 고등학교 2학년으로 보기에는 약간 나이 들어 보인다는 인상은 감추기 어렵다. 이 정유진이 사귀고 있는 이가 소꿉친구 김상혁이다. 상혁은 반장인 우등생으로 전형적인 모범생 청년이다. 정유진은 언제나 버스를 놓칠 것 같다. 하지만 결국 시간에 맞춰 도착한다. 유진은 지각 상습범이지만 학교를 퇴학당하거나 하진 않는다. 유진은 학교가 싫지만은 않으며 특별히 누군가에게 불만을 품고서 반항적인 태도를 하거나 하지도 않는다. 유진은 일반적으로 어디에나 있는 듯한 여고생으로 보인다. 너무나 보통스러워서 드라마 주인공답지 않은 타입으로도 보인다. 왜 이런 보통의 평범한 여자아이가 주인공이 되었을까. 첫 번째 이유는 유진을 연기하는 여우 최지우의 매력이 상당히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일본에서 ‘며느리 삼고 싶은’ 여배우 넘버원인 히가시와 어딘가 닮은 최지우의 얼굴은 일본인이 좋아하는 요소를 충분히 갖추고 있다. 유진은 ‘버스’라는 체제(질서, 모럴, 혹은 유교적 정신)에 반역하는 존재는 아니다. 유진은 언제나 열심히 ‘버스’를 놓치지 않도록 달리고 있다. 그녀의 달리는 모습에 반항의 흔적이나 항의, 빈정거림은 없다. 유진은 ‘버스’를 놓치지 않고 뒤쫓는다. 그러나 일단 ‘버스’를 타면 이번에는 안심하고 잠들어버린다. 여기에도 ‘버스’가 상징하는 체제에 대한 반역의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유진은 체제 안에 있을 때야말로 안심하고 있는 듯하다. 유진은 지각에 대해 주의를 주는 교사에 대해서도 전혀 반항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유진뿐만이 아니라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젊은이들은 체제에 대해서 반항적인 자세를 보이지 않는다. 이같은 커다란 특징이 한결같이 나타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유진은 질리지도 않고 ‘버스’를 뒤쫓으면서 지각을 반복하는 걸까. 여기에는 의외로 많은 관객이 간과하지 못하고 있는 유진의 성격에 대한 ‘비밀’이 잠재해 있는지도 모른다. 유진은 열심히 달리지 않으면 ‘버스’(체제)를 놓치고 겉돌거나 주변인이 되어버리는 성격을 가진 것은 아닐까? 상혁은 유진의 소꿉친구이긴 하나 우등생이며 ‘체제’의 상징이다. 유진은 상혁과 함께 있으면 안심하기는 하지만 운명적인 사람은 아니다. 유진은 상혁을 보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이 한번도 없다. 유진은 열심히 달려서 상혁을 뒤쫓지 않으면 자연적으로 멀어져버린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느 날 버스 안에서 잠들어버린 유진 곁에 한 청년이 앉아 있다. 이 청년이 강준상이다. 과학고등학교에서 온 전학생. 수학과 음악 천재이며 말수가 적은 쿨한 청년이다. 확실히 만화책에 등장하는 백마 탄 왕자처럼 핸섬하다. 전학생이란 이유만으로도 어쩐지 매력적인 존재로 보이지만 배용준이 연기하는 스타일이 멋진 강준상은 왠지 모르게 그림자가 진 수재이기 때문에 클래스 여자아이들을 사로잡을 정도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유진은 준상과 만나기 위해 매일 ‘버스’에 늦은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할 정도이다. 만약 유진이 지각을 하지 않는 모범스런 학생이었다면 준상과 버스 안에서 마주칠 일은 없었을 것이다. 수학과 음악 천재인 준상도 ‘버스’를 놓칠 정도로 지각을 하는 청년이며 그 점에서 그 또한 필사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체제’로부터 떨어져나갈 듯한 경향을 지닌 청년이었다.

[한국영화걸작선] 김기영표 ‘광기의 미학’, <파계>

EBS 1월16일(일) 밤 11시50분 제3회 테헤란영화제 출품 1996년 가을, 의 한국영화작가 시리즈를 연출할 당시, 김기영 감독과의 인터뷰에서 그가 추천한 영화가 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당시는 텔레시네된 영상자료가 없어 소개할 수 없었던 안타까움으로 내게 기억돼 있는 작품이다. 절과 수도승들의 생활을 보여주는 초반부만 보고 있으면 영화 는 광기어린 그로테스크함의 영화미학으로 알려진 김기영 작품의 주제나 소재와는 다소 다른 축을 가지고 가는 듯하다. 그러나 영화가 진행되면서 점차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다양한 김기영의 트레이드 마크들을 확인하는 일종의 반가움이 매력을 더해준다. 절간에서 벌어지는 올깨끼(10살 전후에 절에 들어온 승려)와 늦깨끼(어느 정도 장성하여 절에 들어온 승려)의 권력다툼이나 승려들간의 반목과 질시, 비구니를 여자로 생각하는 비구승들의 말투나 행동 등은 역시 김기영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영화임을 확인하게 한다. 상당히 많은 분량의 난해한 대사와 일정한 플롯없이 에피소드 중심으로 전개되는 방식 역시 김기영을 느낄 수 있다. 등장인물들의 독특하고 그로테스크한 캐릭터 역시 김기영표다. 법통에만 집착하는 큰스님, 동굴에서 수행하며 곡차도 즐기는 무불당 스님, 진짜 스님을 가려내기 위해 비구승들을 유혹하는 비구니, 수행 중이면서도 속세의 욕망을 벗어나지 못하는 침애와 묘운, 배고픈 젊은 승려들을 먹이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데에만 관심이 있고 수행에는 관심이 없는 듯한 도심 등등이 그러하다. 그리고 욕망과 집착, 질시와 광기의 육체들 역시 어김없이 등장한다. 쥐가 등장하는 장면에까지 가면 역시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처음부터 끝까지 죽비 때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으면서 김기영의 광기의 미학을 증폭시키는 중요한 음향 효과 역할을 한다. 당시 14살 소녀 임예진의 데뷔작이기도 하며, 명장 정일성이 촬영한 는 ‘지상에 행복이 넘쳐 흐를 때를 기다리면서’ 만든 김기영 감독 자신의 애장품이었다.

영상자료원 “고전영화를 디브디로”

텔레비전이나 영화제를 통해서도 좀처럼 만나기 힘들었던 한국 고전영화 두편이 디브이디로 출시됐다. 한국영상자료원은 보유한 한국영화 필름 가운데 저작권 제약을 받지 않는 1956년도 이전 영화들을 디브이디로 일반에게 공개하는 ‘한국영상자료원 고전영화 컬렉션’시리즈를 내놓으면서 김기영 감독의 와 최인규 감독의 로 첫발을 내디뎠다. 55년작인 는 김기영 감독의 두번째 장편 연출작으로 하층민 간의 사랑이 양반의 ‘농간’으로 끝없는 파국에 이르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북한에서 전해 내려오는 전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전국의 많은 극장들이 전쟁통에 닫았던 문을 다시 열게 할 정도로 좋은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한국전쟁 직후 필름이 없어 미군이 버린 기한 지난 썩은 필름을 쓰레기장에서 주워서 이용할만큼 열악한 환경에서 완성한 영화로 비오는 화면과 간간이 유실된 장면 탓에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지만 이후 본격화된 김기영 감독의 작품세계의 맹아를 볼 수 있는 기회다. 50년대 인기 여배우였던 김삼화가 여주인공을, 김승호가 조연과 제작을 맡았다. 46년 개봉한 는 해방 직후 한국영화계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참가해 만든 본격적인 극영화이자 항일과 광복을 소재로 한 영화라는 점에서 영화사적 의의를 가진 작품이다. 지하에서 벌이는 독립운동의 숨막히는 긴장과 그 속에서 꽃피는 로맨스를 소재로 한 이 영화는 해방의 흥분이 잦아들지 않았던 개봉 당시(10월21일) 국제극장이 미어터질 정도로 많은 관객을 모았다. 여주인공 황려희는 당시 연예계에서 찾아보기 힘들던 경기여고 출신 ‘스타’로 화제를 낳았다. 영상자료원으로 앞으로도 50년대 이전 영화들을 해마다 두편씩 디브이디로 출시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