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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렉터파일] 김상진 27기 추도식에 가다

지난 일요일 벽제 국립공원 묘지에서 치러진 김상진 열사 27주기 추모식에 다녀왔다. 창창한 햇빛이 무덤들을 더 유구한 젖무덤으로 봉긋봉긋 도들새김했지만 추모식 내내 강한 바람이 불었다. 소풍 나온 종이컵, 음료수팩, 빈 김밥 도시락곽이 혼미 속을 휩쓸려다녔다. 김상진은 1975년 4월11일 서울대 농대 캠퍼스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중 양심선언물을 읽고 할복 자살한 열사다. 당시 4학년. 당황한 당국은 시신을 강제 탈취, 지금의 장소에 서둘러 매장했다. 정말 27년 만이군…. 그의 할복 자살 뒤 곧바로 월남이 해방되고, 어둠의 긴급조치 9호가 발효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5월22일 열린 ‘김상진 열사’ 장례식에서 추도시를 읽었고 그렇게 ‘긴조시절’에 걸맞은 시인 데뷔를 한 셈이지만 그의 무덤에 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안한 건 물론이고, 그때의 슬픔과 열정이 그만큼의 나이를 먹은 모습을 새삼 확인하는 건 스스로 안쓰러운 일이다. 추모식을 준비한 김상진 기념사업회는 ‘열사’ 자가 빠진 것에서 짐작되듯 여느 ‘열사사업회’에 비해 점잖고 그 대신 사업이 구체적이다. 15년 넘게 회장직을 맡아온, 허약한 키의 안종건(방송통신대 교수, 김상진의 당시 대학동기)은 희끗한 머릿발을 조신하게 드러내며 ‘강단있는 너그러움’으로 소식지 <선구자>를 49호까지 내면서 독특한 농업운동지로, 다시 농업교양지로 심화-확대시키면서 현역 농대생까지 포괄해냈다. 운동권 명사들이 아니라 김상진의 ‘직접’ 선후배-친구들이 그와 함께 ‘김상진 추억’을 ‘농업의 미래를 위한 양식’으로 전화시켰을 것이다. 사업회 인터넷사이트에는 웹진 미래농업이 링크되어 있고 자체 정리한 농업 관련사이트 목록이 일목요연하다. 무덤에도 피 냄새는 없다. 김상진 기념사업회가 할복의 피를 일상적이고 지난한 노고의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는 동안 김상진 무덤은 세월을 머금으며 스스로 의로운 죽음의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형상화했다. 그것은, 추념식을 하지 않더라도, 삶과 가장 친근한 무덤이다. 인혁당 사형집행 날, 가장 심각한 황사가 끼었다, 김상진은 세상을 덥친 죽음의 공포를 우리들이 극복하게끔 할복을 했을 것이다…. 그날 김상진의 ‘후대’들이 서로 나눈 말 중 가장 인상에 남는 내용이다. 김정환/ 시인·소설가 maydapoe@korea.com

유하의 키워드 5

문희 어린 시절 그는 <미워도 다시 한번> <별아 내 가슴에>를 보며 문희에 대한 연모의 정을 키웠다. 그녀의 초롱한 눈빛에 유하는 황홀경에 빠졌고, 그녀가 눈물을 흘리면 그의 마음속에는 장대비가 내리고 있었다. “쑈하는 사람들이 저 스크린 뒤에 들어가 가짜로 연극하는 게 영화야”라는 금자라는 동네 누나의 말을 믿었던 그는 영화가 끝나고 나면 눈물 훔칠 새도 없이 후닥닥 스크린 뒤로 달려가 문희의 체취를 느끼려 하기도 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비비안 리, <십계>의 앤 백스터, 아니 ‘안 박스터’ 역시 그가 추앙한 여신들이었다. 이소룡 이소룡은 그에게 둘도 없는 절세의 영웅이었다. 극장 갈 돈이 넉넉지 않았던 어린 날, 그는 <사망유희> <당산대형> 같은 영화가 답십리극장 같은 재개봉관에 도착하기를 간절히 기다리곤 했다. 유하의 입을 빌려 이소룡의 세계를 한마디로 묘사하면 “모든 복잡을 뚫고 단숨에 핵심에 이르는” 것이다. 후대의 성룡이나 주윤발 같은 액션스타와 달리 그는 머뭇거림 없이 단박에 적을 제압해냈다. 그를 통해 그는 학교생활의 고단함을 떨쳐버릴 수 있었을 뿐 아니라, 그에 관한 정보를 구하려다 일본 <스크린> 같은 잡지를 접하게 됐고, 지독한 키치중독에 빠지게 된다. 김성수 감독과 그를 이어준 끈도 이소룡이었다. 무협지 영화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의 주인공 영훈에게는 실제 유하의 모습이 많이 투영돼 있다. 극중에서 영훈이 무협지 출판사 사장인 최주봉의 설득으로 무협지를 썼던 것처럼 그 역시 무협지를 썼다. 대학 졸업 뒤 어찌 알게 된 출판사 사장의 강권으로 무협지를 쓰게 된 그는 당시 장당 50원의 원고료를 받았다. 당시 필명만은 밝힐 수 없다는 그는 작품 속에 ‘작가적’ 필치를 담으려 했으나, ‘더 황당하고 더 야한’ 내용을 원하는 사장(그는 출판사 사장이나 영화제작자나 비슷한 구석이 있다고 말한다)의 뜻을 이기지 못해 ‘범작’을 양산했다. 이때의 기억은 훗날 <武林일기>를 통해 드러난다. 세운상가 70년대 강남은 아수라장이었다. 번듯한 신부유층의 자제들 틈에 잡초처럼 섞여 있었던 강남 ‘원주민’ 아이들은 삐딱한 길을 걸었다. 그때 유하는 이들의 책상 아래서 분홍빛 육신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여인들의 모습을 봤다. 이른바 ‘빨간 책’에 유혹당한 그는 세운상가 곳곳을 누비기 시작했다. 고등학교도 안 가고 이곳에 출근하다시피 한 ‘세운상가 키드’ 유하는 “태양 아래 새로운 환락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압구정동 그가 강남에 당도한 70년대 말, 압구정동의 풍경은 배밭과 판잣집이 어우러진 그것이었다. 그곳에 살던 학교 친구들이 하나둘 ‘철거’라는 메시지만을 남기고 전학갈 때만 해도 압구정동이 어떤 모양새를 갖게 될지 유하는 알지 못했다. 훗날 <시인 구보씨의 하루>를 찍으러 압구정동을 찾은 그는 10여년 전의 이미지와 심한 충돌을 일으킨다는 것을 느낀다. 여기서 시상(詩想)을 얻은 그는 양귀자의 <비 오는 날이면 가리봉동에 가야 한다>라는 단편소설 제목에서 착안,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를 쓰기 시작했다. 압구정동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이 시집은 엉뚱한 곳에서도 반향을 일으켰다. 압구정동 술집 주인들이 ‘압구정 문화의 전파자’라며 그에게 공짜 안주를 제공했던 것이다. ▶ <결혼은, 미친 짓이다 >로 돌아온 감독 유하, 시와 영화의 나날들 ▶ <결혼은, 미친 짓이다 >로 돌아온 감독 유하, 시와 영화의 나날들 (2) ▶ 유하와 친구들 ▶ 유하의 키워드 5

<결혼은, 미친 짓이다 >로 돌아온 감독 유하, 시와 영화의 나날들 (1)

유하 연표 1963 전북 고창에서 태어남 1981 세종대 영문학과 입학 1986 8mm 단편영화 <게으름의 찬양> 제작 1988 동국대 연극영화학과 대학원 입학, <문예중앙> 신인상으로 등단 1989 시집 <武林일기> 출간 1990 16mm 단편영화 <시인 구보씨의 하루> 제작 1991 시집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출간 1993 영화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개봉, 시집 <세상의 모든 저녁> 출간 1995 시집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 산문집 <이소룡 세대에 바친다> 출간 1999 시집 <나의 사랑은 나비처럼 가벼웠다>, 산문집 <재즈를 재미있게 듣는 법> 출간 2002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 개봉 시인이자 영화감독 유하. 그는 언제나 대중문화 한복판에 있었다. 할리우드 고전영화와 배우 문희는 유년 시절의 첫사랑이었고, 이소룡과 무협지는 그의 사춘기에 활력을 불어넣었으며, 세운상가의 ‘빨간 책’과 과천경마장의 마권은 그의 욕망선을 부풀렸다. 흔히 대중문화와는 가장 거리가 먼 예술로 여겨지는 시를 쓰던 그는 대중스타로 떠오르기도 했고, 대중문화의 꽃이라는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첫 연출작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의 실패 이후 대중문화로부터 거리를 두고 지냈던 그가 10년 만에 새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들고 다시 대중 곁으로 돌아왔다. 유하 안에서 불온하게 동거해온 시와 영화의 나날들을 돌아본다. 편집자 “유하의 정체는 오리무중이다. 그래서 나는 가설을 두개 세웠다. 첫번째 가설은 유하가 늑대인간이리라는 것이다.(…) 사람들과 함께일 때, 그는 지극히 건강한 한 사람의 엔터테이너이다.(…) 그런데 그가 혼자일 때가 문제다. 그는 아주 기괴한 일을 한다.(…) 그는 시를 쓴다.”(‘유하의 정체에 관한 몇 가지 가설’ 중, <나의 사랑은 나비처럼 가벼웠다>) 그와 절친한 소설가 김영하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유하의 첫인상은 늑대인간을 연상케 한다. 187cm의 거구와 짙은 눈썹과 구레나룻의 소유자인 그가 만약 험한 표정을 짓는다면 <엑스맨>의 울버린쯤은 오줌을 질질 뿌리며 골목 저편으로 사라지리라는 상상을 하게 된다. 유하가 늑대인간으로 변신해 최근 벌인 ‘기괴한 일’은 시작(詩作)이 아니다. 한 남자와 여자의 기이한 사랑이야기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그러니까 장편 상업영화를 연출한 것이다. 여섯권의 시집과 두권의 산문집을 통해 작가로 잘 알려진 그의 이러한 변신은, 하지만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유하는 이미 자신의 시를 바탕으로 만든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로 감독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바 있다. 이 영화는 1993년 1월 개봉했지만, 제작은 92년에 이뤄졌으니 그의 영화감독으로서의 복귀는 딱 10년 만이라 할 수 있다. 잠깐, 그렇다면 혹시 그는 10년 주기로 영화감독으로 변신하는 늑대인간은 아닐까. 그러나 이같은 가설은 방증자료에 의해 부정되고 만다. 유하가 김성수 감독, 안판석 PD 등과 함께 만든 단편영화 <게으름의 찬양>이 나온 해가 86년이며, <시인 구보씨의 하루>라는 단편영화가 만들어진 것은 90년이니 말이다. 이같은 의문을 갖고 파고들다보면, 유하에겐 언제든 영화감독으로 변신할 수 있는 유전자가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소룡, 모험의 세상으로 통하던 문 “내 마음속에 둥그렇게 휘돌던 키치의 소용돌이, 그 한가운데엔 언제나 이소룡이란 존재가 버티고 있었다. 그러니까, 김현 선생이 말한 내 키치중독의 시원은 다름 아닌 이소룡이었던 것이다.”(‘이소룡 세대에 바친다’ 중에서, <이소룡 세대에 바친다>) 63년에 태어난 유하는 고향인 전북 고창 인근의 하나대라는 마을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당시 동네엔 TV가 흔치 않았을 뿐 아니라, 수신상태도 시원치 않았던 탓에 읍내 고창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 그의 유일한 낙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첫사랑 문희의 촉촉한 눈매를, 왕우의 비장한 액션을, 장철과 호금전의 손길을 만났다. 극장의 어둠 속에서 꿀꺽 침을 삼키던 그의 꿈은 영화감독이 되는 것이었다. 70년 서울 답십리로 이사온 그는 TV라는 대중문화의 거대한 바다에 다다른다. 거기서 “어린 날의 수많은 우상들. 황금박쥐, 배트맨, 왕거미, 밀림의 왕자 타잔, 김일, 이회택, 아르무감, 어니언스…”를 만난 그는 대중문화라는 이름의 유혹에 홀딱 반하게 된다. 그의 영원한 우상 이소룡을 만난 것은 조금 뒤였다. <정무문>을 보다가 10번씩 벌떡 자리에 일어나 환호성을 질렀을 정도로 그는 이소룡에게 매료됐다. 단숨에 명쾌하게 적을 해치우는 모습이며, 비장한 표정, ‘꺄오-’ 하는 ‘괴조음’(怪鳥音), 쌍절곤 묘기 등에 열광하며 유하는 단방에 이소룡 마니아가 됐다. 유하와 동세대들에게 이소룡이라는 존재는 “학교의 일상을 벗어나 기상천외한 모험의 세상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은밀한 통로 같은 것”이었다. 이소룡에 관한 내용이라면 사소한 것도 화제가 됐던 당시, 그는 일본 잡지를 구하기 위해 세운상가와 명동의 중국대사관 앞을 누비고 다녔다. “그러다보니, 자연 내 관심은 온갖 키치적 풍경들에 쏠릴 수밖에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백수로 건들거릴 때였다. 난 거리의 한 점쟁이가 예언했던 귀인을 만났다. 그는 날 ‘0킬로그램의 요정’이라 불렀다.”(‘自序’ 중에서, <무림일기>) “대학 4년 동안 남은 것이라면, 당구를 500까지 친 것과 친구들을 사귄 것”이라는 그의 말처럼 그는 세종대 영문과에 81학번으로 입학해 동기생인 김성수 감독과 안판석 PD를 만났다. 영화, 문학, 스포츠, 그리고 이소룡까지 많은 부분을 공유했기 때문에 이들은 친구가 됐고 훗날까지도 인연을 맺게 된다. 그에게 영향을 끼친 또 하나의 인물은 고 진이정 시인이다. 경희대를 다녔고 유하보다 두 학번 위였지만, 그가 쓴 민중시를 좋아했던 진이정은 그의 시작활동을 독려하기도 했다. 영화와의 인연도 이들과 함께한 덕분에 만들어졌다. ‘0킬로그램의 요정’(당시 체중이 100kg가 넘어 바늘이 0을 가리켰던 유하에게 진이정 시인이 지어준 별명)인 유하가 군 면제 판정을 받고 시작에 몰두하는 동안 친구인 김 감독과 안 PD는 군대를 마쳤고, 마침내 다시 뭉친 이들은 진이정 시인의 주도 아래서 ‘반(反)영화’라는 동인을 결성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작품이 <게으름의 찬양>이었다. 대학 4학년 때 영어연극 연출을 했던 유하가 감독을 맡고, 진이정 시인이 시나리오를, 김성수 감독이 촬영을, 안판석 PD가 조명을 맡았다. 영화에 관심이 더욱 깊어진 유하는 “유현목 감독님을 만나뵈러” 동국대 연극영화과 대학원에 진학한다. 유하에겐 시 또한 영화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지방에서 외롭게 시를 집필하던 작은 할아버지를 보며 등단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익히 알았던 그는 의도적으로 시의 세계를 회피했었다. 하지만 영화에 본격 몰입하면서 그는 오히려 시와 가까워졌다. 대학 시절 민중시를 쓰면서 일종의 매너리즘에 빠져 있던 그는 영화를 통해 돌파구를 찾았다. ‘시는 엄숙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깰 수 있게 된 것이다. 과거엔 시의 소재가 되지 않을 것 같았던 어릴 때 추억이나 영화이야기도 시로 할 수 있겠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무림일기’ 시리즈나 ‘영화사회학’ 연작은 이렇게 탄생했다. 두번째 시집, 첫 영화, ‘압구정동’ “<보디가드>와 <나 홀로 집에2> 매표소 앞에 장사진을 이루고 서 있는 사람들의 편안하고 여유로운 표정.(…) 내가 서 있는 곳은, 그들이 늘어선 자리와는 대조를 이루는 한산한 매표소 앞이었고, 그 위엔 내가 만든 영화의 제목이 붙어 있었다.(…) 이미 영화를 완성해가는 과정에서 사실 나는 많은 좌절감을 느끼고 있었으며, 개봉이 임박할 무렵에도 흥행에 대한 큰 기대감을 갖고 있지 않았다.”(‘영화관에서 시간 죽이기?’ 중에서, <이소룡 세대에 바친다>) 첫 시집 <무림일기>로 키치세계의 포문을 열었던 유하는 91년 두번째 시집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로 대중스타에 근접한다. 70년대 말 강남으로 이주해, 배밭과 빈가들이 가득하던 압구정동이 차츰 욕망의 결절점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지켜봤던 그는 사실 소비사회를 비판하기 위해 이 시들을 썼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이것이 당시의 ‘오렌지 문화’와 엇물리며 대중문화의 포섭을 받게 된 것이었다. 각종 인터뷰에 불려나갔고 맥주 CF모델이나 라디오 DJ 제안까지 받았다. 압구정동 술집 주인들은 ‘압구정 문화의 전파자’라며 그에게 공짜 안주를 제공하기도 했다. 영화 판권을 팔라는 제의가 들어온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직접 연출을 하겠다는 ‘객기’를 부렸고, 결국 감독의 자리에 앉게 됐다. 애초 그가 생각했던 영화 <바람부는…>는 우디 앨런식 블랙코미디이자 패러디영화였다. ‘트라이’, ‘티코’ 광고나 <애니홀> <동방불패> 같은 영화를 패러디해 키치적 즐거움을 추구하려던 그의 계획은 상업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제작사에 의해 가로막혔다. 게다가 캐스팅까지 변경되면서 시나리오는 그의 생각과 상당히 다른 모양새를 갖게 됐다. 그럼에도 그는 “결국 내 책임이었다. 경험도 없었고 준비도 없었지만 내가 다 옳다고 생각했다. 충무로 연출부 생활을 하지 않았던 대가를 치른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 >로 돌아온 감독 유하, 시와 영화의 나날들 ▶ <결혼은, 미친 짓이다 >로 돌아온 감독 유하, 시와 영화의 나날들 (2) ▶ 유하와 친구들 ▶ 유하의 키워드 5

<결혼은, 미친 짓이다 >로 돌아온 감독 유하, 시와 영화의 나날들 (2)

그치지 않은 열병 “나는 잠시, 돌고 도는 말의 원형 트랙/ 그 견고한 욕망과 권태에 절망을 견딘다// 세상이여, 이 허무맹랑했던 꿈을 용서해다오/ 말의 이미지의 라스베가스,/ 나는 결국 지금 나를 스쳐가는 저 바람에 베팅할 것이다”(‘천일馬화- 경마장의 함정’ 중에서, <천일馬화>) 영화 실패 뒤 그를 스타로 모셔갔던 “블랙홀 같은 대중문화”는 그를 비췄던 관심의 조명탑을 철수하기 시작한다. 따지고보면 키치에 대해 반성적인 자세를 견지해야 했던 그가 키치에 너무 빠져들었던 탓이지만, “대중문화가 나를 요리했던 것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첫 영화의 씁쓸한 기억을 지우기도 전인 93년 11월 유하는 또 하나의 충격을 맞이한다. 대학 시절부터 그와 두 친구의 정신적 지주이자 ‘대장’이었던 진이정 시인이 급작스레 타계한 것. 커다란 정신적 방황이 시작됐다. 간간이 시를 쓰며 허한 나날을 보내던 그의 눈에 경마장의 트랙이 들어온 것도 그 무렵이다. 어딘가 중독돼야 하는 그의 성격 탓이었는지, 경마장에서 그는 “인생이 여기 있구나”라고 뇌까렸다. 95년부터 4년 동안 그는 경주가 열릴 때마다 경마장을 찾았다. 다른 ‘경마인’들처럼 수요일부터 들리는 말발굽 환청에 가슴이 떨렸고, 금요일이면 경마 예상지를 사들고 공부에 몰두했다. 어느 날 과천으로 향하던 발길을 끊었을 때, 그는 4년 통산 1천만원 손실이라는 ‘준수한’ 손익계산서를 들고 있었다. “오랜 세월 나는 무수히 영화관을 나오면서 알 수 없는 두근거림과 그리움, 비극적 희열감, 그리고 끝내 해소되지 않는 갈증 같은 것들로 열병을 앓아왔고, 결국 그 열병의 힘으로 한편의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영화관에서 시간 죽이기?’ 중에서, <이소룡 세대에 바친다>) 99년 서른일곱의 나이로 결혼을 하면서 그의 삶은 안정을 찾는다. 그리고 2000년 5월 그동안 기다렸던 기회가 찾아온다. 싸이더스의 차승재 대표가 무협영화 시나리오를 써보면 어떻겠냐고 제의한 것. 그때 그가 바로 고개를 끄덕인 것은 사실, 영화계에서의 명예회복보다는 가장으로서의 책임의식 때문이었다. 시나리오를 위해 고민하던 중, ‘오늘의 작가상’ 시부문 예심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그는 소설부문에 출품된 <결혼은, 미친 짓이다>라는 작품을 보게 된다. 영화화하면 괜찮겠다 싶어 차 대표에게 소개했더니, 다음날 바로 전화가 왔다. “무협영화 시나리오 쓰지 말고 이 작품 감독을 맡아라.” 갑작스런 제안에 유하는 당황했다. 재기작으로 삼을 만한 작품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결론은 “모럴리티의 층위를 건드려 하나의 의제를 형성할 수 있겠다”는 쪽이었다. 바로 시나리오 작업을 끝낸 뒤 캐스팅에 나섰다. 남자주인공 준영 역은 안판석 PD의 추천과 TV드라마를 통해 마음에 두고 있었던 감우성으로 진작 결정됐지만, 문제는 여자주인공이었다. 노출장면과 다소 과감한 대사 탓에 기존 톱스타들은 쉽사리 마음을 정하지 않았다. 그렇게 1년이 흘러갔고, 결국 유하는 엄정화를 떠올렸다. <바람부는…>을 통해 연기 데뷔시켰다는 인연도 있는 데다, 섹시한 매력도 갖고 있고, 연기도 썩 잘한다는 판단에 주위의 걱정스런 시선을 물리치며 그녀를 연희 역할에 앉혔다. “사내는 결혼식에 간다 친구의 들러리를 서기 위해,(결혼에 관한 한 그는 늘 들러리 의식을 갖고 있었다) 거기서 그는 우연히 신부 친구와 눈이 맞는다(앤디 맥도웰 같은 여자를 상상하면 좋겠다) 처음 본 그날, 사내와 여자는 돌발적으로 관계를 맺는다 다음날 아침, 그녀는 사내에게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묻는다 우리 결혼하지 않을래요?”(‘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 중에서,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 10년 만에 돌아온 촬영장 풍경은 자못 달랐다. <바람부는…> 때만 해도 그가 가장 나이 어린 스탭이었는데, 이젠 최연장자가 됐다. 큰 물이 바뀌었다는 생각과 함께 그를 놀라게 한 것은 모니터였다. 첫 작품 당시엔 뷰파인더 안에 어떤 그림이 잡히는지도 모르고 레디 고와 컷을 외쳤는데, 이젠 모니터를 보며 그림을 파악할 수 있게 됐다. “오랜만에 복귀해서 그런지 첫 2∼3회 촬영은 버벅”댔지만,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준비한 덕분에 무난하게 촬영을 마쳤다. <결혼은…>은 보기에 따라선 급진적인 애정관을 담고 있다. 결혼과 연애, 그 둘을 모두 선택하는 연희는 세 남녀 관계의 중심에 서 있다. 그녀는 준영에게 집이라는 물적 토대를 마련해주며 ‘축첩’을 한다. 유하에 따르면, 그가 애초부터 이런 사고방식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종손인 그는 결혼하기 전까지만 해도 가부장적인 사고에 젖어 있었다. 막상 결혼을 하고난 뒤 아내를 보니, “여자는 남자가 아니라 제도와 결혼하는 것이더라. 남자와 그 집안에 귀속되더라. 또 거기서 나오는 고통은 남자에게도 전이된다. 일부일처제를 근간으로 하는 결혼제도라는 게 사람을 철저하게 사람을 소외시킨다”는 생각에 이르게 됐다. <결혼은…>에 대해 그는 개인적으로 만족을 표한다. “내 실력대로 나왔다. 85% 만족한다.” 특히 첫 작품의 경우 시를 영화에 맞는 대사로 고치지 못해 어색함투성이었지만, 이번에는 애초 “손 벤다”고 녹음했던 부분을 “손 빈다”로 고쳐 후시녹음할 만큼 소설 속의 문어체를 구어체로 옮기는 데 노력을 기울인 탓에 한결 자연스러움이 느껴진다. 시와 영화의 융합 “난 모든 예술이 한 우물이라고 생각한다.(중략) 난 제대로 영화를 만들기 위해 시를 쓸 것이며, 제대로 시를 쓰기 위해 영화를 만들 것이다.”(‘보리쌀로 세운 시네마 천국’, <유하 산문집- 이소룡 세대에 바친다>) 이제 한 가지 궁금증이 남는다. 대립돼보이는 시와 영화라는 장르가 유하 안에선 어떻게 하나가 되는지 말이다. 그는 답한다. “시가 가장 영화적인 장르일 수도 있다.” 단어끼리의 충돌이 새로운 의미를 만드는 시의 세계와 이미지와 이미지의 충돌을 통해 의미망을 형성하는 영화의 그것은 일맥상통한다는 얘기다. 물론 “시가 가장 일상적인 것도 관념의 극대치까지 끌어올려야 하는 반면에 영화는 가장 높은 수준의 관념이라도 일상 수준으로 끌어내려야 한다”는 차이는 있지만, 궁극엔 두 예술이 하나로 묶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당분간 잡기를 버리고 영화에 집중하고 싶다”는 유하는 현재 다양한 계획을 갖고 있다. 고등학교 시절 불량서클에 몸담았던 경험담을 그리는 <절권도의 길> 프로젝트나 김영하 소설을 원작으로 삼는 영화, 호금전의 <철수무정> 같은 분위기의 복고풍 무협영화 등 그의 머릿속 영화창고의 문은 바야흐로 들썩거리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 때가 되면, 그는 떠날 것이다. 무협지와 압구정동과 세운상가와 경마장 같이 ‘남들이 가지말라는 곳’으로, 욕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모순의 결절점으로. 우우우- 절규하며 하얀 달을 따라 표표히 길을 떠나는 늑대인간의 자세로 말이다. 글 문석 ssoony@hani.co.kr·사진 이혜정 hyejung@hani.co.kr▶ <결혼은, 미친 짓이다 >로 돌아온 감독 유하, 시와 영화의 나날들 ▶ <결혼은, 미친 짓이다 >로 돌아온 감독 유하, 시와 영화의 나날들 (2) ▶ 유하와 친구들 ▶ 유하의 키워드 5

어둠 뒤, 멜랑콜리한 핏줄, 웨스 앤더슨의 <로얄 테넌바움>

<로얄 테넌바움>은 올해 최고의 영화는 아닐지 모르지만, 적어도 우리에게 주어진 감사한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는 할 수 있을 것이다(미국에서는 성탄시즌에 개봉되었다- 역자). 사랑스럽고 유머러스하며 시종일관 괴팍한 것이 도를 넘어 소중한 느낌을 줄 지경인 이 작품은 웨스 앤더슨의 세번째 장편영화다. 존재하지 않는 어떤 책을 원작으로 삼은 듯이 스스로를 소개하며 마법에 걸린 듯한 맨해튼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풀어놓는 이 영화는, 자기들만의 과거에 갇혀 그 안에서 폐쇄된 삶을 살아온 한 가족의 이야기다. 이 영화가 제시하는 특유의 판타지는 바로 이것이다. “그대 다시 고향에 갈 수 있으리, 그러나 그대가 원하는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앤더슨은 98년작 <빌 머레이의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의 자의식 강한 주인공 영웅 맥스에다가 3을 곱하고는 그 소년이 미래에 맞음직한 불행을 추정한다. <로얄 테넌바움>은 테넌바움 일가가 “20년간의 실패와 배신과 비극을 겪은 뒤” 맞게 된 임시적인 재결합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꾸민다. 오랫동안 헤어져 지낸 로얄 테넌바움(진 해크먼)과 그 아내 애슐린(안젤리카 휴스턴)의 세 아이들은 천부적 엘리트이며 귀족들이다. 경제에 밝아 부동산 투자 전문가로 성장하는 채스, 극작가 마고, 그리고 테니스 챔피언 리치 등 그들은 모두 신동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가족사의 비극을 겪으면서 그들은 마치 추방당한 왕족처럼 삶의 방향을 잃고, 그들이 잃어버린- 그러나 실은 존재한 적도 없는- 위엄을 갈구한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웃긴 배우 오언 윌슨과 함께 이 영화 각본을 집필한 앤더슨은 테넌바움 가족의 신화와 그 여파를 가장 경제적인 방식으로 축조한다. 그들의 재결합을 축으로 이야기들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부재한 아버지에 대해 여전히 화가 나 있는 채스(벤 스틸러)는 아내마저 잃으면서 더욱 분노에 차게 된다. 자신이 버려졌다는 자의식으로 날카로운 입양아 출신의 우울한 마고(기네스 팰트로)는 이제 더이상 글을 쓸 수 없으며 그렇다고 집을 떠날 결심은 전혀 생기지 않는다. 셋 중 막내인 괴짜 얼간이 리치(루크 윌슨)는 세계를 여행하던 중 마고가 또 한명의 절망에 빠진 인물 랠리 세인트 클레어(빌 머레이)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중요한 테니스 챔피언십 경기를 망치는 불운을 겪는다. 이것은 가족극인 만큼 테넌바움 가족은 일종의 재결합을 맞게 된다. 계기를 제공한 것은 엄마다. 공허한 듯하면서도 매력적이게 냉담한 애슐린이 부드러운 매너의 회계사 헨리 셰먼(대니 글로버)과 결혼하기로 함에 따라 자녀들이 태어난 순서대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채스가 제일 먼저, 엄마 없는 두 아이와 함께 집으로 오는데, 그들은 모두 빨간 추리닝 차림이다. 마고는 엄마의 변화에 분노를 느낀 채 집을 찾아오며, 곧이어 리치도 돌아온다. 테넌바움 가족세계를 이끄는 주요한 힘인 ‘형제간의 경쟁심’은 리치의 친구이자 유쾌할 정도로 잰 체하는 소설가 엘리 캐시(오언 윌슨)에 의해 더욱 불붙는다. 가족들의 재회를 완성하고 아내의 결혼계획을 저지하기 위해 로얄 역시 집으로 돌아온다. 한때 유망한 법조인이었던 이 부드러운 곱슬머리의 말썽꾸러기는 분홍색 셔츠에 엉뚱한 양복을 걸치고는 가족을 찾는다. 해크먼이 보여주는 역겨운 매력의 일부는 그가 관객의 동정을 얻기 위한 어떤 바람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에 기인할 것이다. 그의 부끄럼 없는 교묘한 속임수들은 온전히 테넌바움 가족을 향해 조준되어 있다. 로얄은 애슐린에게 그가 암으로 죽어가고 있으며 6주 시한부 인생이라고 거짓말하는데, 이게 효력을 발휘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런 말을 듣고서도 이상할 정도로 덤덤하다. 테넌바움 가족들을 하나하나 한데 모아 조율을 하는 이 야심찬 지휘에 있어서, 프레스턴 스터지스와 장 르누아르에 대한 앤더슨의 경외감은 그 존재가 분명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또한, 가정적이고 가족적인 일요일 아침의 신문만화 같은 결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마고가 거의 언제나 털코트 차림이듯 리치는 늘 땀흡수용 머리띠를 두르고 등장하며 헨리는 예외없이 나비넥타이를 착용하고 나타난다. 연필 한 자루를 늘 머리에 꽂고 다니는 애슐린은, 하나 이상의 감정에 치중할 수 있어보이는 고독한 인물이므로, 확실히 다른 이들과는 구별되는 어른(다운) 캐릭터라고 할 수 있겠다. 웨스 앤더슨의 전작인 <빌 머레이의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의 낭만적 감성이 <로얄 테넌바움>에는 결여되어 있다. 이에 대해 앤더슨은 때로는 좀 거슬려보일 듯한 변덕스럽고 기발한 기벽들을 모아 과도할 정도의 보상을 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이 똑똑하고 영리한 장치들의 막을 걷어내면 멜랑콜리한 핏줄이 보일 것이다. 테넌바움 가족들이 시간의 손을 다시 되돌리려 노력하는 가운데, 그리움과 동경에 찬 포크록에 실려서, 지나치게 밝은 빛깔들의 세계 갈피갈피로 말이다. 이 영화의 주요한 로맨스는 부모 자식간의 것이다. 받아들이고 용서하려는 부모와 자식간의 상호적인 열망을 보라. 마고를 아이스크림 집으로 데려가려는 로얄의 뒤늦은 노력만큼 이 영화에서 슬픈 대목은 없다. 그리고 이것은 로얄과 채스의 마지막 화해로 이어진다. <로얄 테넌바움>은 모든 택시가 낡고 박살난 채 불법영업을 하고 있으며 노스 다코타의 병원조차 겨울바람 차가운 휴스턴 강을 내려다보고 있는 그런 대안적인 우주를 창조해낸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이 영화에는 뉴욕의 늦가을 냄새가 짙게 배어난다. 날씨는 어두운 구름으로 뒤덮이고 춥지만, 인간관계들은, 아무리 신경증적 환자들의 노이로제같이 보일지라도, 밝은 빛을 뿜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들 가족의 성(姓)이 크리스마스 트리를 뜻한다는 것은 무의미한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빌리지 보이스>2001.12.18 짐 호버먼은 미국 영화평단에서 대안영화의 옹호자로 가장 명망이 높은 평론가로 <빌리지 보이스>에 기고하고 있습니다. <씨네21>과 <빌리지 보이스>는 기사교류 관계에 있습니다.)

아다치 미쓰루의 <미유키> <일곱빛깔 무지개>

한때 우리 만화시장이 해적판이라는 적조로 뒤덮여 있던 때가 있었다. 단순한 저작권의 문제가 아니라 무책임한 번역, 제멋대로 권 수 나누기, 여러 만화가의 작품 뒤섞기 등 눈뜨고 볼 수 없는 횡포들이 뒤엉켜 있었다. 그러나 그 검붉은 바다 속에서도 반짝이는 진주를 찾아내던 만화 독자들의 노력은 가상했다. 만화가의 이름도 나오지 않고 원제와는 아무 상관없는 엉터리 제목을 단 작품들을 어떻게 엮어내며 이름 모를 누군가의 팬이 되었고, 출판사에 그 만화가의 책을 펴내도록 무언의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을 거쳐 우리 독자들로부터 최초로 작가적 아이덴티티를 얻게 된 일본 만화가는 아마도 아다치 미쓰루일 것이다. 정말로 웬만한 그의 만화들은 한두번씩 해적판으로 얼굴을 내밀었고, 많게는 서너개의 다른 제목으로 나오기도 했다. 그 아다치의 옛 만화들이 정식으로 우리 앞에 다시 선을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의 만화 <미유키>, 그리고 10년 전의 만화 <일곱빛깔 무지개>다. 두 작품, 정식판으로 돌아오다 1980년에 시작된 <미유키>는 70년대에 소년소녀 만화계를 오고가며 그저 그런 경력을 쌓아가던 아다치가 본격적인 인기몰이와 더불어 분명한 자기 색깔을 가지게 되는 전환점의 작품이다. 아다치는 오랜 만화 생활 동안 거의 그림체나 연출의 방법이 바뀌지 않는 만화가로 유명한데, 그래도 옛날의 더 촌스런 그림체가 있었다는 것을 이 작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듬해에 나온 <터치>에서부터 현재와 거의 유사한 그림체가 고정되기 때문에, 아다치 초기의 그림 선을 볼 수 있는 마지막 작품이라고 할 수도 있다. 평범한 한 소년이 외국에서 돌아온 여동생 미유키와 단 둘이 살아가면서 동급생인 또 다른 미유키와 사랑을 시작한다. 우여곡절 끝에 둘의 연애는 무르익어가지만 소년은 여동생 미유키와의 야릇한 감정에 괴로워하고, 그녀와 아무런 혈연관계가 없다는 비밀이 그를 괴롭힌다. 매우 전형적인 아다치표 만화의 설정이고, 같은 시기에 동거 로맨스코미디의 열풍을 함께 불러일으킨 다카하시 류미코의 <메종일각>, 가와하라 유미코의 <전략, 밀크하우스> 등과도 유사한 점이 많다. 하지만 두 여성 만화가의 작품이 우당탕거리는 소동과 개그 묘사라는 소년만화의 전통에 다가갔다면, 아다치의 이 소년만화는 섬세한 사랑의 저울질이라는 소녀만화의 감성에 훨씬 가까워 보인다. 물론 빈번한 벗기기와 눈요기는 소년 독자들을 위한 팬 서비스라지만, 일기체와 독백체의 화법과 잘게 나뉘어진 칸을 통해 감정의 단락을 표현하는 연출법은 소녀만화적 취향을 다분히 반영하고 있다. 이후의 <쇼트 프로그램> <진베> 등으로 이어지는 로맨스만화는 물론, <터치>

등의 스포츠만화에서도 빠지지 않는 아다치의 절묘한 삼각연애 줄타기의 원형을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다시 10년이 지나 1990년에 시작된 <일곱빛깔 무지개(虹色とうがらし)>는 별로 다채롭지 않은 아다치만화 역사에서 다소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작품이다. 시대극을 그리려다가 고증의 문제 등이 걸리자 은근슬쩍 시공불명(時空不明)의 개그물로 바꾸어버린 듯한 느낌인데, 다양한 능력의 주인공들이 황당무계한 소동을 벌이는 팀 코미디라는 점에서 본다면 최근작인 <미소라>가 그 계보를 잇는다고도 보인다. 하지만 <미소라>가 이것저것 섞으려다가 제대로 수습 못한 ‘2001년의 실망작’이라면, <일곱빛깔 무지개>는 그 아기자기한 맛으로 인해 아다치표 개그만화의 진국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 20년 전부터 확고한 ‘아다치 세계’ 일본 중세를 배경으로 하는 게 분명하지만, ‘이건 미래의 이야기야’라고 극구 우기는 어느 곳의 어느 때. 어머니가 죽으면서 건네준 호두를 들고 친부를 찾아간 소년 시치미는, 카라쿠리 연립이라는 곳에 아버지의 배다른 형제 다섯과 누이 하나가 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신기한 것을 좋아하고 바람기가 농후한 이곳 막부의 쇼군이 서로 다른 여자들과 사랑해서 낳은 아이들인 것이다. 위로는 만담가인 장남 고마, 검의 달인인 차남 아사지로, 조폭 같은 승려인 삼남 케시노보, 아래로는 집안 살림을 도맡아하는 장녀 나타네, 발명가인 오남 친피, 아기 닌자인 육남 산쇼, 그 가운데 사남인 시치미가 들어가 더도 덜도 없는 무지개빛 아이들이 만들어졌다. 아다치는 이들 중 어느 하나도 뒤처짐 없이 자기 색깔을 낼 수 있게 훌륭한 성격들을 부여한 뒤에, 사실은 이 아이들 중 하나는 친형제지간이 아닐 것이라는 루머를 퍼뜨린다. 아다치만화의 독자라면 단번에 남매들 사이의 로맨스를 만들어보려는 눈에 보이는 수작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다. 그런데 무언가 빠진 게 없나? 승부와 로맨스는 아다치가 가진 양날의 검. 쇼군의 권좌를 노리는 일파와 서양인의 외모를 하고 나타난 외계인들이 확실한 악역이 되어 이들 일곱 형제들과 화끈한 칼부림을 하고, 그에 못지 않은 썰렁한 농담 대결을 벌인다. 10년 전의 작품을 보나, 20년 전의 작품을 보나 아다치는 정말로 변하지 않는 로맨스 만담가임에 분명하다.

최강 프로젝트 2 - 원작만화 40년만의 첫 스크린 나들이<스파이더 맨>

** 200자로 말해봐 차도, 여자친구도 없는, 평범한 고등학생이 난데없는 거미의 키스로를 받은 뒤 스파이더맨으로 거듭난다는 이야기. 날렵하게 건물 벽을 오르내리며, 거미줄을 밧줄 삼아 뉴욕의 마천루 정글을 가르는 초인 영웅 스파이더맨의 성장과 모험이 시작된다. ** 볼거리 공개된 세 차례의 예고편과 30여분짜리 편집본에서, 타임스퀘어 대로변에 늘어선 빌딩숲 사이로 쫙쫙 거미줄을 뻗어 상하좌우 바람처럼 몸을 날리며 관객의 시야로 돌진해오는 스파이더맨의 액션은 아찔한 쾌감을 선사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볼 수 없는 뉴욕의 전경”을 무시로 봤다는 촬영감독 존 버제스의 말이 실감나게, 맨해튼의 하늘과 지붕이 주를 이루는 스파이더맨의 세계는 일상에 근접한 판타지의 공간. 실제 타임스퀘어 촬영, 프로덕션 디자이너 닐 스파이색과 그의 아트팀이 고층빌딩 상부에 만든 지붕과 처마, 소니 스튜디오의 27스테이지에 따로 지은 빌딩 일부와 90도로 무너져내리는 발코니 등을 찍어 합성한 그린 고블린의 공중폭격을 비롯해 만화적인 상상력을 한껏 펼친 고공 스펙터클을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레이텍스의 유연성과 120여개의 실크 스크린으로 입체감을 살린 스파이더맨, 아카데미상을 3번 수상한 베테랑 제임스 애치슨의 의상도 볼거리. ** 만들어지기까지 올해로 어느덧 40주년. 마블 코믹스의 작가 스탠 리와 캐릭터 디자이너 스티브 디트코의 합작으로 스파이더맨이 처음 세상에 등장한 것은 1962년 8월이었다. 만화 연작 <어메이징 판타지> 15호에 소개된 이 거미 영웅의 선풍적인 인기는, 63년부터 아예 그를 주인공으로 한 새 시리즈로 거듭났다. 수십년간 수 차례 애니메이션 시리즈, 비디오 및 TV영화로 만들어졌으나 할리우드에서 영화화되기는 이번이 처음. 원래 제임스 카메론이 연출할 뻔했지만, 제작이 지연되자 꽤 자세한 트리트먼트를 남기고 손을 뗐다. 뒤이어 감독의자에 앉은 샘 레이미는 12살 생일에 받은 스파이더맨 그림을 아직 간직하고 있을 만큼 원작의 열성팬. 스파이더맨에는 히스 레저와 프레디 프린스 주니어, 악당인 고블린에는 니콜라스 케이지와 존 말코비치 등이 거론됐으나 각각 토비 맥과이어와 윌렘 데포가 최종 낙점됐다. ** 흥행예보 맑음: 역시 예고편에서 눈을 붙드는 고공액션. <맨인블랙> <엑스맨> <블레이드> 두편 등 전보다는 만화적인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호응이 나아졌다. 흐림: 그래도 한국 관객은 <배트맨> 시리즈와 <크로우> <스폰> 같은 만화 원작의 영화에 비교적 인색하다. 게다가, 샘 레이미의 영화는 국내에서 성공을 거둔 적이 없다. ** 참고 <엑스맨>(2000년 8월11일 개봉)은 서울에서 46만3371명, <배트맨 포에버>(1995년 7월1일 개봉)는 21만6771명, 나머지 <배트맨> 시리즈 및 만화 원작 영화들은 대부분 그에 못 미치는 관객을 동원했다. 이러쿵저러쿵 기태 예고편 봤어? 빌딩 사이로 스파이더맨이 저 뒤쪽에서 앞쪽으로 휙휙 날아오는데, 정말 시원하더라. 양순 그 정도면 “최고의 스핀을 기대하라”는 헤드카피가 무색하진 않지. 예고편에서 본 게 전부는 아니어야 할 텐데. 기태 그래도 샘 레이미가 시각적인 쾌감을 아는 감독인데. <이블 데드>에서 스피디한 시점숏 같은 것도, <다크맨>의 만화적인 이미지도 기발하잖아. <스파이더맨>에 잘 어울리는 감독 아냐? 양순 그거야 인디영화하면서 패기만만할 때 얘기구. 최근에 만든 <기프트>는 심심한 공포영화에, <케빈 코스트너의 사랑을 위하여>는 맥빠진 스포츠영화였어. <심플 플랜> 정도만 되도 좋은데. 욕망 때문에 망가지는 인물이랑 드라마가 힘이 있잖아. 기태 얼마 전에 공개된 편집본을 본 사람들이 생각보다 드라마도 강하다는 걸? 초반은 거의 성장영화래. 초능력을 얻은 토비 맥과이어가 짝사랑하는 커스틴 던스트한테 환심사려고 애쓰고, 서서히 책임에도 눈뜨는 거지. 양순 사실 원작에서도 스파이더맨의 활약 못지않게 눈이 가는 게 평범한 남자애의 일상이잖아. 별로 인기도 없고, 악당을 잡고 돌아와서 숙제를 해야 되는, 그냥 우리들 중 한 사람 같은 거. 샘 레이미도 그런 점을 좋아했고, 그걸 살리고 싶어했대. 기태 스탠 리랑 마블에서 만든 수퍼 히어로의 매력이 그런 거지. 엑스맨도, 헐크도 그렇듯 DC코믹스의 수퍼맨처럼 완전무결한 영웅이 아니라는 거. 최근의 편집본은 원작팬들도 좋아했대. 거미줄이 기계장치가 아니라 손에서 나온다던가 고블린의 의상 같은 변주도 괜찮은 업그레이드라구. 스파이더맨 의상은 촬영 도중 4벌이 없어져서 소니가 2만5천달러 상금을 내걸고 그랬다는데. 양순 각본도 <쥬라기 공원> 1, 2편이랑 <미션 임파서블>의 데이비드 코엡이 썼으니, 확실한 오락은 되겠지. 샘 레이미의 재기가 큰 자본 속에 길을 잃지 않았다면 더 좋고. 벌써 감독도 배우도 그대로 속편 계약했다는 걸 보면, 나쁘진 않은가봐. 황혜림 blauex@hani.co.kr ▶ 블록버스터 빅 4 예고편 ▶ 최강 프로젝트 1 - 조지 루카스, 두번째 야심<스타워즈 에피소드2-클론의 습격> ▶ 최강 프로젝트 2 - 원작만화 40년만의 첫 스크린 나들이<스파이더 맨> ▶ 최강 프로젝트 3 - 스티븐 스필버그의 <마이너리티 리포트> ▶ 최강 프로젝트 4 - 토미 리 존스, 윌 스미스의 재결합 <맨 인 블랙2>

<소림축구> 조연 4인이 털어놓는 우정과 웃음의 `<소림축구> 외전`

모두 아픈 기억을 갖고 있었다. 정신없이 두들겨맞다가 기절한 사람도 있고 한달 동안 달걀은 쳐다보지도 못한 사람도 있었다. 어린 시절의 우상이 너무 무서운 사람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소림축구>에 출연한 배우들은 하나같이 “이 영화에 정성을 다했다. 평범한 코미디영화가 아니다. 감독도 정말 재능있는 사람이다”라고, 무려 아홉 가지 성조를 가진 노래 같은 광둥어로 칭찬을 늘어놓았다. 그들이 들려준 고생과 우정과 웃음의 이야기는 그대로 <소림축구-외전>이라 이름 붙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렇게 똑같을 수가! 네명의 배우를 만나고 가장 놀라웠던 것은 오맹달을 제외한 나머지 배우들과 영화 속 인물이 매우 흡사하다는 사실이었다. 그중 두명은 외모와 행동거지 때문에 즉흥적으로 출연하게 됐으므로 그럴 만도 했다. 여섯번째 사제를 연기한 임자총은 원래 주성치 영화사에 소속된 시나리오 작가였다. 인터뷰를 한 다음날에도 사무실에서 열심히 화이트보드에 다음 작품 시놉시스를 쓰고 있던 그는 오직 뚱뚱하다는 이유만으로 기회를 잡았다. 자신이 배우이면서 동시에 감독인 주성치는 “인물을 생각지 못한 각도로 배치하는 데 재미를 느낀다”는 사람이기 때문에, 몸무게가 120kg에 육박하고 평소 움직임도 느릿하기 그지없는 이 총각이 무술을 한다면 너무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본인은 지나치게 고생스러웠다. 주성치는 연기 초보인 그를 위해 모든 장면을 직접 해보였지만 단 하나, 날계란을 받아먹는 장면만은 피해갔다. 임자총은 “먹보로 나온 것은 창피하지 않았고 친구들도 대담하다고 칭찬해줬지만, 한달 동안은 계란만 봐도 토할 것 같았다”고 호소했다. 물론 지금은 계란을 무척 잘 먹는다. 골키퍼 역의 진국곤과 20년 경력을 가진 대사형 황일비는 촬영이 끝난 뒤 대자와 대부로 맺어졌다. 황일비는 이미 <심사관> <파괴지왕> 등 여러 편의 영화에서 주성치와 호흡을 맞췄던 조연. 풀어진 셔츠 자락 사이로 목걸이를 걸고 나타난 그는 꼭 대사형처럼 체신머리라고는 없이 후배들의 인터뷰에 끼어들고 대낮의 식당에서 <소림축구> 연기를 재현하면서도, 나름대로 어른의 풍모를 보이곤 했다. 얼마 전 서극과 함께 대륙에서 영화를 찍고 돌아온 진국곤은 원래 엑스트라들에게 춤을 지도하는 안무가였는데, 이소룡을 닮은 외모 때문에 지나가던 주성치에게 발탁됐다. 묵직한 임자총이 날쌘 동작을 연기하는 의외의 재미를 준다면, 마른 몸매와 날렵한 인상의 춤꾼 진국곤은 숨쉬는 것도 귀찮아하는 부조화의 인물. 그는 이 영화로 최고의 우상이었던 주성치를 직접 만나 그의 남자다운 카리스마에 흠뻑 젖었지만 너무 무서운 스승이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가장 먼저 인터뷰 장소에 나타난 오맹달은 놀랍게도 이들 모두를 손짓 한번으로 압도할 수 있는 파워를 지닌 사람이었다. <심사관2>에서 배를 내놓은 짧은 웃옷을 입고 쉴새없이 먹어대던 저능아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생각해보니 그는 <천장지구>에서 유덕화의 연약하고 무능한 친구, 예전 홍콩영화 특유의 비애를 온몸으로 발사하는 가엾은 남자를 연기한 적도 있었다. 주성치와 마찬가지로 TVB 방송사 탤런트로 출발한 오맹달은 주성치 영화에 출연하며 망가진 모습으로 가장 인상 깊게 남게 된 것이 부담스럽지 않으냐는 질문을 “배우는 주어진 역은 뭐든지 하는 사람”이라는 무게있는 한마디로 정리해버렸다. 그는 주성치가 오랜 세월 함께 일해온 이유를 “연기를 너무 잘하니까”라고 간단하게 단언할 만큼,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연기를 펼치는 배우. 그럼에도 가장 자랑스러운 영화로 <식신>과 <소림축구>를 꼽는 그는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었다. 맥주병에 맞고 기절해도, 촬영은 계속된다 차례차례 도착한 이 네 사람은 서로 껴안고 큰소리로 안부를 묻고 웃어댔다. 인터뷰 도중에도 한 사람이 대답하고 있으면 다른 사람들은 휴대폰과 수첩을 꺼내들고 서로의 근황을 확인하곤 했다. 오맹달은 “홍콩은 매우 좁은 곳이다. 하지만 쉬지 않고 영화를 찍는 데다, 요즘은 모두 본토에서 작업을 하기 때문에 이렇게 여러 명이 한꺼번에 만난 적은 영화 끝나고 처음”이라며 양해를 구했다. 유달리 오래 촬영한 영화라고는 해도 스무살 넘게 차이나는 사람들이 이렇게 친밀한 것은 의외였다. 황일비도 “보통 촬영이 끝나면 뿔뿔이 흩어지지만 <소림축구>는 예외”라고 말했다. 이들을 묶어준 것은 대작을 찍다보면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고된 훈련과 영화에 대한 자부심이었다. <소림축구>는 홍콩에서는 동원하기 힘든 대규모의 제작비를 동원했기 때문에 모든 결정이 신중할 수밖에 없었고, 모든 사람이 자신을 던지듯 열심이어야 했다. 그중에서도 황일비의 고생담은 유별났다. 영화 도입부에서 다리를 다치기 때문에 한번도 공을 찰 일이 없었던 오맹달과 달리, 공을 모는 법이나 잡는 법을 익혔던 다른 후배들과도 달리, 황일비는 한 시간 넘게 물구나무를 서고 맥주병으로 머리를 얻어맞았다. 그의 특기는 ‘철두공’, 다시 말해 머리를 쇠처럼 단단하게 단련하는 무공이었기 때문이었다. 한번은 상대방이 실수로 맥주병 가운데가 아니라 가장 두꺼운 밑바닥으로 내려치는 바람에 기절한 적이 있었다. 잠시 뒤 눈을 떠보니 주성치가 NG장면을 다시 찍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만큼은 그도 간절하게 다시 기절하고 싶었다. 엉망진창 형제들이 모욕 끝에 예전의 기(氣)를 되찾는 장면. 그는 머리로만 버티고 거꾸로 선 장면을 연기하느라 와이어에 매달려 있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컷을 안 부르기에 그는 그 상태로 머리를 여기저기 돌리면서 주성치를 찾아 “안 끝났어? 언제 끝나?”하고 계속 물었다. 다시 한번 기절하고 싶은 순간이었다. 그러나 황일비는 이 영화가 성공한 까닭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는 자신과 주성치가 반짝이는 옷을 입고 무대에서 노래 부르는 장면을 최고로 친다. 무표정하고 진지한 그들의 노래와 춤은 웃기지만, 여기엔 버려진 사람들의 쓸쓸한 정서가 흐른다는 것이다. 그는 “성의를 다해, 내 모든 것을 이 영화에서 보여”줬고, 홍콩영화평론협회가 주관하는 금자형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누구보다 주성치와 가까운 오맹달 역시 이 영화가 희극과 비극이 어우러졌다는 점을 가장 큰 장점으로 여겼다. “<소림축구>는 컴퓨터 기술 덕을 많이 본 영화다. 하지만 쓸모없는 사람들이 열심히 노력해서 뭔가를 이루는 영화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오맹달은 또 “집안에서 유일한 남자로 자란 주성치는 어려운 사람들의 상황에 심취할 수 있다. 그는 남들이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낀다”고도 덧붙였다. 진국곤이 좀처럼 만나기 힘든 ‘형님’들에게 많은 것을 배워 좋아하거나, 임자총이 왜 이런 동작을 하는지도 몰랐다가 완성된 영화를 보고 신기해한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홍콩영화의 흥망을 지켜본 두 배우는 전통과도 현실과도 단절돼 부유하는 홍콩을 안타까워했다. 속편에서 다시 만나자 1년을 훌쩍 넘긴 제작기간 동안, 네 사람은 주성치의 진면목을 다시 깨달았다. 오맹달과 황일비는 모두 여러 번 주성치와 일한 경험이 있지만 그가 유독 이번만은 “10번이고 20번이고 마음에 드는 테이크가 나올 때까지 카메라를 멈추지 않았다”고 말했다. 황일비는 시나리오를 영화의 리듬에 맞도록 탄력있게 고쳐가는 주성치에게 감탄했다. “주성치는 감독도 하고 주연도 하고 편집까지 한다. 정말 총명한 사람이다. 그는 자기 특유의 스타일이 있어서, 원래 거친 성격을 갖도록 설정된 배역도 유머있고 유연하게 바꿔놓는다”고 말했다. 주성치는 시나리오뿐 아니라 젊은 두 배우의 인생마저 바꿔놓았다. 임자총은 <소림축구>가 성공한 뒤 벌써 두편의 영화를 찍어 개봉까지 마쳤고, 두 군데 방송사에서 MC로 활동중이다. 여자들은 거리에서 그를 보면 <소림축구>의 오동통한 여섯번째 사제를 떠올리며 베개 같은 그의 몸을 껴안으려 덤빈다고 한다. 진국곤 역시 아직 제목이 정해지지 않은 서극 영화에서 강시를 사냥하는 집단의 일원으로 출연했다. 그는 미국 영화사 컬럼비아 자본으로 찍은 이 영화가 자신의 연기 인생이 도약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그러나 이들 모두에겐 무엇보다 속편 제작 소문이 나돌고 있는 <소림축구> 시리즈가 있다. 황일비가 “천시(天時)와 지리(地利)와 인화(人和)가 모두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성공한 영화”라고 표현하는 <소림축구>. 이 영화는 그들에게 홍콩 최고의 인재 주성치와 일할 기회였고, 중견과 신인이 화합해 부자의 인연까지 맺은 영화였으며, 수많은 사람이 단 한편의 영화를 인생 최고의 걸작으로 꼽을 수 있다는 일치의 느낌을 준 영화였다. 홍콩=글 김현정 parady@hani.co.kr·사진 오계옥 klara@hani.co.kr▶ 울트라 폭소 히어로, 주성치 웃음공작실 탐방기 ▶ 주성치의 최대 영웅과 우리가 보지 못한 주성치 영화들 ▶ 주성치는 어떻게 아시아를 사로잡았나 ▶ 주성치 인터뷰 ▶ <소림축구> 조연 4인이 털어놓는 우정과 웃음의 `<소림축구> 외전` ▶ <소림축구>의 부대효과 ▶ 주성치의 친구·동료·스승, 배우 오맹달 인터뷰

[2002전주데일리]프로그래머 서동진 인터뷰

올해 행사의 특징을 꼽아본다면, 또 관객들이 가장 눈여겨 봤으면 하는 부분은. 지금까지 두차례 행사를 치른 만큼 이번에는 영화제의 틀을 다져야 할 시점이라는 부담감을 안고 준비를 시작했다. 주요 국제영화제를 통해 인정받은 영화들을 모은다든가,이미 인지도가 높아져서 이론이 없을 것으로 간주되는 작가에게 의존하든지 하는 편의적인 프로그램 방식은 피하려 했다.전주영화제에 걸맞는 과감한 선택이나 발견을 시도해보자는 생각이었다.그러나 결과적으로 프로그램을 공개하고 나서 보니 우리가 생각했던 프로그램 방식이 설득력을 갖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회의도 든다. 어쨌든 모아진 프로그램을 가지고 정리한 결과는 이렇다. 올해 영화 지형의 변화 경향을 찾아보면 남미와 프랑스 영화다. 이렇다할 붐을 일으키고 있지는 않지만 여러 영화제를 다니며 깊은 인상을 받았던 영화가 주로 남미영화였다.90년대 남미에 민주화의 바람이 분 뒤, 독재시절에 외국으로 나갔던 감독들이 다시 돌아오고 대학내의 영화 서클 활동 같은 게 활성화되면서 잠재력을 쌓아갔던 것 같다. 그게 이제 터져나오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싶다.아직 남미영화의 정체성이 이런 거다 라고 정의내리기는 힘들지만,미래의 영화를 이끌어갈 잠재력을 다분히 가지고 있다.지금 온 5편의 남미영화를 눈여겨 봐달라. 프랑스어권 영화들도 마찬가지다.최근 프랑스 영화 특징 하나가 소장 감독들이 만든 노동영화의 대두다.거장들이 이전부터 보여온 작가주의의 반복을 보여주고 있다면, 로랑 캉테,알랭 기로디,이번 영화제에 초청된 <조용한 마을>의 로베르 게디기엥 같은 소장 감독들이 노동자 계급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 있다.이는 사적인 세계로의 퇴행을 넘어서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영화들이 만들어진다는 전조가 아닌가. 이들의 영화는 전통적인 리얼리즘도 아니고,모더니즘도 아니면서 그들만의 새로움을 지니고 있다. 출품작 가운데 <안양의 고아> <물고기와 코끼리> <천진두> 등 주목받던 중국영화 세편의 상영이 취소됐다. <안양의 고아>와 <물고기와 코끼리>는 중국 심의기구인 전영국 쪽에서 심의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해외상영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통보해왔다. 만약 상영을 강행할 경우 다른 중국영화 출품작 7편의 상영을 어렵게 하겠다는 뜻도 전해왔다. 영화제 직전인 19일에는 갑자기 <천진두>에 대해서도 상영불가 방침을 통보해왔다. 이 영화는 심의도 받았고 중국에서 흥행에도 성공한 영화다. 그런데 작품 내용 가운데 일부다처제가 중국에 대한 나쁜 이미지를 낳을 수 있다는 이유로 문제를 삼았다. 우리쪽에서도 ‘중국 내에 표현의 자유가 신장되기를 소망한다’는 입장을 강하게 중국쪽에 전달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데 논의 중이다. 중국영화와 관련해 이번에 오는 <농부와 춤을>의 우웬광 등 디지털 다큐멘타리 영화감독 6명은 주목할 만하다. 이들은 지하전영 사람들이다. 지금 중국에서는 상업영화가 호조를 띠고 있다. 그래서 흥행을 쫓는 영화와, 전통적인 5, 6세대 감독의 영화, 그리고 이 둘로부터 벗어나려는 젊은 세대들의 영화라는 세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다. 우웬광 등이 마지막에 속한다. 문화혁명과 천안문 사태를 겪었고, 반골기질이 강하다. 상업영화를 접고 내키는 대로 영화를 만들기로 작정한 이들이다. 이번에 초청된 이들의 영화에는 중국 여학생들의 매춘 같은 사회문제가 다뤄진다. 다행히도 디지털영화에 대해서는 심의제도가 없다고 한다. 크리스틴 버천 회고전은 무척 신선하다. 마련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90년대 이후 미국 독립영화의 연대기가 상당히 회자됐음에도 실제 작품을 볼 기회가 없었다. 그런 기회를 제공하는 게 영화제의 몫이라고 판단했다. 거기에 더해 이번에는 작가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를 고민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한국 독립영화도 성숙한 시점이고, 장편이 나와야 할 때가 됐다. 독립영화에 대해 지나치게 관념적인 논의를 넘어서자는 차원에서, 그러기 위한 하나의 자료로 프로듀서인 크리스틴 버천을 중심에 놓게 됐다. 그러나 버천은 토드 헤인즈의 신작 준비 등 맡고 있는 게 워낙 많은 사람이다. 또 뉴욕과 서울이 좀 먼가. 처음에 여러차례 거절당했다. 온갖 감언이설을 동원하고, 마지막에는 생떼를 쓰다시피해서 이 행사를 마련했다. 아쉬운 건 지난해 미국 독립영화 가운데 베스트로 꼽히는 토드 필드의 <인 더 베드룸>과 로즈 트로체(<고 피쉬>의 감독)의 신작 <세이프티 오브 오브젝츠> 등 두편을 적극적으로 섭외했는데, 부산국제영화제를 원하는 바람에 가져오지 못했다는 것이다. ‘현재의 영화’ 부문에 영미권 작품이 없다. 미국영화는 배급사의 마케팅 논리에 너무 좌우되고, 부산국제영화제를 우선적으로 선호한다. 그쪽이 보기에 우리는 아직 신생영화제인 모양이다. 반면 유럽쪽은 자기들끼리의 네트웍이 있는 것 같다. 입소문이 한번 나면 금방 돈다. 유럽쪽 배급사는 전주영화제를 호의적으로 보는 것 같다. 영국 독립영화들은 눈여겨 봤다. 레인댄스영화제의 주요 작품을 일별해 봤는데 특별히 화제가 될 만한 게 보이지 않았다. 몇개 골랐더니 칸영화제 쪽에서 제의가 와 출품이 어렵다고 했다. 마이크 피기스의 <호텔>은 ‘디지털의 개입’ 부문으로 가져왔다. 극장 사정을 개선했다는데. 주요 행사장을 전북대 문화관에서 올해 새로 지어진 소리문화의 전당 모악당으로 바꿨다. 2200석의 대형 극장에 시설도 좋다. 큰 행사 치르기에 문제가 없다. 고사동 쪽은 몇몇 극장이 개보수를 하고 있지만 아직 크게 개선되지 못한 상태다. 상영작 중에 오래된 필름이 많은데 그쪽의 영사기 시설로 잘 소화가 될지 걱정이다. 또 이번에 온 파졸리니 특별전의 프린트가 너무 오래 된 것이어서 영사기에 걸고 돌리다가 필름이 끊기지 않을까 우려된다. 파졸리니 재단 쪽에서 온전한 프린트는 절대로 해외에 내보내지 않고, 이처럼 낡은 걸 보낸다. 지금 필름 중 특히 낡은 곳에 테이프를 붙이고 있다. 상영중에 사고가 생기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 임범

[2002전주데일리]소식들

그 유령들이 어둠 속 스크린에서 형체를 얻어 움직이기 시작하면, 1년만에 다시 밤을 만난 흡혈귀떼처럼 숨어있던 영화광들이 모여들어 전주 시내를 휩쓸고 다닐 것이다. 캄캄한 실내에서 벌어지는 ‘빛과 그림자의 항연’에 미친, 심지어 거기서 대안을 찾겠다는 기이한 축제 제3회 전주국제영화제가 막을 연다. 개막 의전행사는 단촐하다. 26일 오후 7시 덕진동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에서 ‘도깨비 스톰’의 소리 공연에 이어 김완주 명예조직위원장의 개막선언, 최민 조직위원장의 인사말과 게스트 소개로 1시간 안에 끝날 예정이다. 주요 게스트는 유현목, 신상옥, 이두용, 장길수, 박찬욱 감독과 배우 남궁원, 이보희, 김보연, 이영하, 배두나, 소유진씨 등. 원로 감독과 배우가 많은 건 한국영화회고전 ‘한국영화가 기억하는 전쟁’ 부문을 마련한 덕택이다. 사회는 배우 조재현, 김규리씨. 평론가 토니 레인즈, 미국 독립영화 프로듀서 크리스틴 버천 등 외국 손님들도 자리를 함께 한다. 그러는 사이에 기지개를 다 켰다는 듯 오후 8시 개막작 <케이티>의 상영을 시작으로 250여편의 영화가 일주일동안 관객과 만나게 된다. <케이티>의 상영에 앞서 주연배우 사토 고우이치와 김갑수씨, 제작사인 씨네콰논 이봉우 대표가 무대인사를 할 예정이다. 상영작 변경 아시아 독립영화포럼 부문 가운데 두 편이 상영 취소됐다. 유 사오 이앙 감독의 <천진두>와 왕 옌 감독의 <전쟁 중의 청춘>의 상영 취소 이유는 중국 당국의 심의 를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 이 중 <천진두>는 일부다처제의 묘사가 중국의 대외 이미지를 해친다는 이유로, <전쟁중의 청춘>은 중국전영국의 심의 관계자가 자리를 비우는 바람에 각각 심의를 통과하지 못했다. 그 바람에 <연안 생활기>가 애초 일정보다 이틀 앞당겨진 4월29일 씨네 21극장 2관에서 11시에 변경 상영된다. 같은 부문의 경쟁 후보작인 <안양의 고아>와 <물고기와 코끼리> 역시 심의를 통과하지 못해 각각 <오타와로 가는 길> <에밀과 탐정들>로 교체됐다. 또 체코 성인 단편 상영작 중 <물속의 사랑>과 <사냥꾼의 시계>는 체코 배급사측의 실수로 상영이 취소됐다. 개막작 <케이티>, 매진도 제일 먼저 개막작 <케이티>가 매진을 기록했다. 4월 20일 이미 인터넷 판매 분량이 다 팔린 <케이티>는 전주영화제에서 가장 먼저 매진된 영화. 이밖에 4월 28일 상영되는 <센과 치히로의 모험>과 아시아 독립영화포럼 수상작이 상영되는 폐막식 역시 매진된 상태다. 관금붕, 허리부상으로 방한 취소 개막작 <케이티>의 감독 사카모토 준지가 개막식 불참을 통보했다. 사카모토는 촬영 중인 신작 때문에 시간을 내기 어렵다고 영화제 조직위원회 측에 알려 왔다. <란위>의 관금붕과 <안녕, 테레스카>의 로버트 글린스키 역시 갑자기 영화제 참석을 취소했다. <완령옥> <레드 로즈 화이트 로즈> 등으로 알려진 홍콩 감독 관금붕은 출국 직전 허리 부상을 입었고, 폴란드의 중견 감독 글린스키는 교통사고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영화 <나비의 미소>의 허 젠 준은 비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참석 여부가 아직 불투명한 상태다. 대부분의 게스트는 일정대로 영화제에 참석할 예정이다. 전주영화제가 올해 특별전을 준비한 프로듀서 크리스틴 버천은 26일 전주에 도착한다. 이밖에 일본 핑크 영화 감독 제제 다카히사와 국내 개봉작 <타임리스 멜로디>의 오쿠하라 히로시, 중국 지식인 중 최초로 커밍 아웃한 쿠이 지엔, 일본 독립 애니메이션의 대부 쿠리 요지 등이 새로운 영화를 들고 전주를 찾는다. 디지털 삼인삼색에 참가한 스와 노부히로 역시 주요 게스트 중 한 명이다. 이회창, 이부영 ‘젊은 DJ’볼까? 한나당 대통령후보 경선후보인 이회창 전 총재와 이부영 전 부총재가 한 자리에서 김대중 대통령 납치사건을 다룬 영화 <케이티>를 관람할 지 모른다. 전주영화제쪽은 이 두 후보가 26일의 개막식에 참석하겠다는 의사를 전해왔다고 밝혔다. 한나라당은 이번주말에 대통령후보 전주지역 경선을 치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