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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2003)

미야자키라는 모순적 현상, <하울의 움직이는 성>

각색 과정은 종종 두 예술가의 개성이 충돌하는 전쟁터가 된다. 원작을 쓴 사람과 그 원작을 각색하는 사람들이 텔레파시로 연결되어 있지 않는 한 두 사람의 비전이 절대적으로 일치하는 경우는 없다. 하긴 그래서 각색이라는 작업이 흥미로운 것이다. 작가가 말하는 걸 그대로 충실하게 영상으로 옮겨적는 작품에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사실 진짜로 재미있는 각색물에는 모두 그런 충돌과 교합의 흔적이 있다. 를 보라. 아서 C. 클라크의 낙천적인 예언과 스탠리 큐브릭의 차가운 비관주의가 팽팽하게 맞서 있는 게 보인다. 브알로-나르스작의 우울한 프랑스식 분위기가 히치콕의 냉정한 앵글로 색슨적인 감각과 뒤섞이는 은 어떤가. 다이애나 윈 존스의 원작 - 구식 판타지를 재해석한 유쾌한 로맨스 미야자키 하야오의 신작 역시 그런 부글거리는 전쟁을 영화 속에 품고 있다. 이 영화의 원작은 영국 작가 다이애나 윈 존스의 동명 소설인데, 기본적으로 윈 존스의 소설은 마법사와 마녀들이 나오는 구식 판타지물의 컨셉에 대한 가벼운 풍자이다. 윈 존스는 절세미인 여자주인공과 용감무쌍한 남자주인공 대신 마법에 걸려 주름살이 가득한 아흔살짜리 할머니가 된 소녀와 까탈스럽기 그지없는 겁쟁이 마법사를 만들어, 극도로 전형적인 판타지 세계이기는 하지만 현대 웨일스로 가는 비밀 통로가 살짝 숨겨져 있는 인공 세계에 내보냈다. 윈 존스의 작품은 가볍고 발랄하고 유쾌하며 설득력 있는 로맨스다. 윈 존스의 장점은 미야자키의 장점과 일치하지 않는다. 장난스러운 장르 풍자물을 쓰는 윈 존스와는 달리 미야자키는 온화하지만 선이 굵은 모험담의 전문가이다. 미야자키의 유머 감각은 투박하고 직설적이며 공공연하다. 그리고 그의 심리묘사는 종종 설득력 있긴 해도 섬세하다고 말하긴 힘들다. 그의 작품은 내면보다는 외면을 지향한다. 이런 전혀 다른 개성들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을까? 못할 건 없다. 사실 나는 을 보기 전에 그 예를 한번 본 것 같다. 미야자키 하야오 밑에서 일했던 애니메이터 가타부치 수나오가 2001년 라는 애니메이션 장편을 낸 적 있는데, 이 작품의 기획은 거의 의 예고편처럼 보일 정도이다. 가타부치 수나오는 미야자키가 그랬던 것처럼(또는 그 뒤에 그럴 것처럼) 현대 영국 여성 소설가(다이애나 콜즈)가 쓴 장르 풍자물(이 경우엔 페미니스트 우화였다)을 미야자키처럼 스팀 펑크 SF의 분위기를 차용한 진지한 드라마로 각색했다. 는 개성이 조금 부족하고 종종 덜컹거리긴 했어도 진지하고 종종 감동적이기까지 한 드라마였다. 그의 제자라고 할 만한 사람이 이 정도까지 했다면 노장에게 그 이상을 기대하는 건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을 각색할 때 취한 태도도 가타부치 수나오의 그것과 거의 같은 것이었다. 일단 그는 원작의 가벼운 농담들을 상당 부분 지워버리고 심각하기 그지없는 반전물을 빈틈에 채워넣었다. 가 그랬던 것처럼 그는 풍자적인 장르 세계를 SF의 세계로 전환시키기도 했다. 단지 가 아틀란티스 문명의 폐허에서 벌어진다면 은 전형적인 스팀 펑크 SF의 배경, 그러니까 빅토리아 시대의 기계문명이 지나치게 발전한 19세기 유럽을 무대로 삼고 있다. 이런 변형은 이치에 맞을까? 다시 말해 다이애나 윈 존스의 소설을 꼭 사와서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었을까? 일단 윈 존스의 소설과 미야자키의 영화가 만나는 부분부터 따져보기로 하자. 가장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제목에도 나오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다. 원작에서 하울의 성은 그냥 마법으로 움직이는 집에 불과하다. 만약 윈 존스가 묘사한 그대로 영화에 옮긴다면 별다른 시각적 매력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스팀 펑크식 디테일을 첨가한다면? 과거와 미래가 불가능한 지점에서 만나는 근사한 미야자키식 비주얼이 탄생된다. 증기기관에서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쿵쿵 걸어가는 기계 집의 모습이 나오는 것이다. 불의 악마 캘시퍼의 존재도 이런 이미지를 통해 훨씬 그럴싸한 존재감을 얻게 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소피도 미야자키에게 어울린다. 언뜻 보면 소피의 설정은 무척 모험적인 것처럼 보인다. 미모와 친근감으로 젊은 관객에게 어필해야 할 여자주인공이 한순간에 아흔살로 늙어버린 할머니인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미야자키에게 이건 엄청난 이점이었음이 분명하다. 그가 그린 틴에이저들이나 젊은이들은 그렇게까지 개성적이거나 빛나는 인물들이 아니다. 미야자키의 캐릭터들은 나이가 아주 어리거나 반대로 아주 많을 때 더 빛이 난다. 의 파즈와 시타는 호감가는 젊은이들이지만 과연 그들이 조연으로 등장한 공적 할머니만한 개성을 갖추고 있던가? 아흔살로 늙어버린 십대 소녀인 소피는 이 문제점을 해결한다. 여전히 젊은 주인공이면서 나이 든 노인네의 염치없고 내숭 떨지 않는 거칠거칠한 개성과 매력을 발산하는 것이다. 윈 존스가 만들어낸 스토리 자체도 미야자키가 이전에 탐색했던 경로 위에 놓여 있다. 십대 소녀의 성장기는 그가 이전에도 여러 차례 다루었던 것이다. 그런 이야기에 초자연적이가나 불가능한 설정을 덧붙여 색채를 더하는 것도 그의 장기이다. 주인공이 조금 어리긴 했지만 그의 전작인 도 따지고보면 거의 같은 내용이었다. 간극의 발생 - 발랄한 원작을 지나치게 진지하게 해석한 하야오 이 정도면 원작의 존재 이유는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렇다면 윈 존스에게서 벗어나 미야자키 고유의 세계를 고집한 다른 부분들은 어떨까? 여기서부터 이야기가 조금 까다로워지기 시작한다. 윈 존스는 을 한권짜리 농담으로 구성했다. 이 소설에서 배경은 의도적으로 경박하게 구성한 클리셰이고 그것은 분명한 실체로 존재하는 현실 세계의 반영이다. 심지어 하울이나 설리먼과 같은 고유명사까지도 그렇다. 윈 존스는 소설 중간에 등장인물들을 현실 세계의 웨일스로 데려가면서 그 환상성의 뿌리가 어디에 놓여 있는지 밝힌다. 하지만 미야자키는 그렇게 복잡한 문학적 장난은 치지 않는다. 그는 언제나처럼 단순하고 진지하다. 그가 그리는 세계는 존재하지 않았던 가상의 유럽이지만 그는 그 세계의 기술과 마법을 그리면서 장난치는 짓 따위는 하지 않는다. 우리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마법과 불가능한 물리법칙에 의해 조종되는 세계지만, 미야자키는 그 세계를 우리 세계의 에펠탑만큼이나 진지한 현실로 이해하고 그려낸다. 여기서부터 위태로운 간극이 생겨난다. 윈 존스가 가볍게 놀려대듯 그린 캐릭터들이 이 세계에서는 엄청 진지해져버린 것이다. 미야자키는 윈 존스의 농담들 상당 부분을 남겨놓았지만(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머리색이 바뀐 것 때문에 하울이 징징거리는 장면일 것이다) 그래도 이 영화의 캐릭터들은 지나치게 진지하고 감상에 젖어있다. 여기서 가장 손해를 본 캐릭터는 타이틀롤인 하울이다. 윈 존스는 원작에서 이 캐릭터를 잔뜩 놀려대면서도 사랑받을만한 약점과 매력을 가진 인물로 그려냈었다. 하지만 미야자키의 영화에서 하울은 진지한 주제와 함께 일본식 똥폼까지 불려받는다. 그 결과 하울은 뻔하디 뻔한 똥폼 왕자가 되고 그의 매력은 날아가버린다. 윈 존스의 소설에서 하울은 느끼하게 굴어도 귀여운 캐릭터였다. 하지만 미야자키의 영화에 나오는 하울은 심하게 느끼할 뿐이다. 딱한 건 가장 느끼할 때가, 그가 의도적으로 느끼하게 굴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울은 그가 진지해지고 자신의 사상과 믿음을 위해 투쟁할 때 가장 느끼하다. 아마 그는 미야자키가 만든 남성 캐릭터들 중 가장 재미없는 인물일 것이다. 아니, 재미없는 건 의 하쿠가 더 심하다. 하지만 적어도 하쿠는 원래는 재미있었던 캐릭터를 망치거나 하지는 않았다. 간극은 여기서부터 계속 넓어진다. 이번 문제점은 소피다. 원작에서 소피의 행동은 이해 분명하고 명확한 심리 묘사에 기초하고 있다. 하지만 미야자키의 소피는 과연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위해 행동하는가? 우린 소피가 하울을 사랑한다는 사실은 안다. 하지만 후반부에 이 캐릭터가 하는 행동은 완전 미스터리이다. 왜 소피는 하울의 성을 붕괴시키는가? 왜 소피는 하울의 목숨을 위협하는 행동을 하는가? 물론 여러분은 이 영화를 반복해서 보며 해답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찾아낸 해답이 물처럼 자연스럽게 흐르는 어떤 것처럼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다가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그건 단순한 작업을 선호하는 예술가가 비교적 복잡한 대상을 자기만의 재해석 없이 과격하게 옮기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사고이다. 만약 소피의 행동이 단순화만 되었다면 별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야자키는 윈 존스의 소설에서 전혀 다르게 행동하는 소피를 가져와 자신의 이야기에 끼워맞추었다. 어떻게 영화 속에 집어넣긴 했어도 여전히 빈틈이 보이는 건 당연하다. 원작과 미야자키의 대립 또한 자기모순적인 미야자키 현상 이런 단점들은 용서받을 수 있는 걸까? 그건 여러분이 이 노장의 영화에서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 은 결코 완벽한 영화도 아니고 철저하게 일관성을 유지하는 영화도 아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미야자키의 영화들은 언제나 노골적인 자기모순과 함께 했었다. 마법과 스팀 펑크의 과학, 구식 내연기관과 대자연에 동시에 매력을 느끼는 그의 세계 자체가 모순되는 곳이다. 어떻게 보면 윈 존스와 미야자키의 대립은 그 자체가 미야자키적인 현상일 수도 있는 것이다.

[외신기자클럽] “미장센을 팝니다” (+영어원문)

영화 오락을 볼 때 즐거움 중 하나는 영화 속에 보이는 거의 모든 것이 이유가 있어서 나온다는 것이다. 스크린에 뭔가 이상하거나 안 맞는 것이 있는 것 같으면, 영화가 끝나기 전에 이유가 드러나게 된다. 현실 생활에서 많은 것이 근본적으로 임의적이지만 영화의 세계에선 모든 것이 의미를 가진다. 그래서 몇년 전 TV드라마 을 보고 있을 때 ‘초록음료’의 수수께끼를 접하게 됐다(‘초록음료’의 상표명은 맨 끝에 가서 나오거나 아예 안 나와서 기억할 수 없다). 드라마에 나온 가장은 사랑이나 사기, 살인 같은 일상적인 화제를 논하다가 갑자기 얼굴에 훨씬 더 심각한 표정을 띠면서 아들에게 크고 거품 많은 초록음료 한잔을 권하곤 했다. 초록음료는 한번만 나온 것이 아니라 여러 에피소드에 걸쳐서 다양한 가족 구성원이 마신 것이다. 나는 의아했다. 드라마 속 아버지가 음료 속에 비밀 화학약품을 넣으면서 무슨 정신통제라도 하는 걸까? 왜 자꾸 나오는 걸까? 안타깝게도 드라마 15시간째가 돼서야 그저 좀 서투른 PPL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PPL은 이상화된 영화세계에 현실세계가 침투하는 것을 나타낼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전체 작품을 돋워주는 방식이 되지 못한다는 뜻은 아니다. 친구 중 한명은 데이비드 린치가 의 인물간 계급 차이를 나타내기 위해 서로 다른 상표의 맥주를 사용했던 것을 지적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에서 윌 스미스가 안티-과학기술이란 것을 표시하기 위해 컨버스 운동화를 신고 나온다. 현실에서 컨버스사가 파산 조처를 취하고 있었고 제작비에 한푼도 더해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PPL 회사는 각 브랜드가 영화에 자연스럽게 맞아들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억지로 한 것 같아 보이면 모두가 손해본다”고 한다. 나만 그렇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최근 한국영화에서 손해보는 사람이 많지 않았는지? PPL은 아직 한국 영화업계에서 상대적으로 새로운 현상이니, 어쩌면 예술적인 관심과 상업적인 관심 사이에 균형을 찾기 전까지 과잉이 생기는 것도 당연하겠다. 그렇지만 어떤 때에는 공격적인 PPL에 따르는 위험이 이득을 초과하는 일도 있다. 를 얘기할 때 “2시간짜리 전지현 CF”라는 말을 안 들어본 사람이 있는가? 이렇게 영화에 대한 간결하고 널리 반복되는 혹평은 흥행에서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줄 수 있다. PPL을 삼가고 비방하는 사람들의 입에서 쉽게 나오는 이 비평을 빼앗았다면 얼마나 더 많은 영화표를 팔 수 있었을까 생각해본다. 세계적으로도 많은 광고주들이 영화가 광고 플랫폼으로서 얼마나 효력을 갖는지에 대해 재고하기 시작했다. PPL의 성공적인 케이스(예를 들어, 논의의 여지가 있지만, 속편에 나온 삼성전자)마다 아무런 효과없이 돈을 들이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장기로 봤을 땐 대부분의 PPL은, 배급이 훨씬 더 쉽게 통제되며 결과를 측정하기가 쉬운 텔레비전쪽으로 이동할 것 같아 보인다. 흥미롭게도 수년간 이탈리아에서는 정부지원을 받은 영화에 PPL을 금지할 정도였다(이탈리아에서는 대부분의 영화다). 베를루스코니 정부에서 이 방침은 없어졌지만 아직 담배나 알코올, 무기 등을 영화 속에 광고하는 것은 불법이다. 이런 일을 조절하는 데 정부 법률에 의지하지 않아도 되길 바라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만 ‘초록음료’같이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것 없이 한국영화를 보던 날을 그리워하지 않기란 힘들다. Mise-en-scene on sale One of the pleasures of watching filmed entertainment is the fact that just about everything that appears in a film has been put there on purpose. If something you see onscreen seems odd or out of place, then before the end of the movie, a reason will emerge. Much in real life is essentially random, but in the world of cinema, everything has meaning. So it was that I was watching the TV drama All-In a couple years back, when I was confronted with the mystery of the green drink. (They never did show the brand name of the Green Drink, except perhaps until the very end, so I can't remember what it was) The drama's patriarch would be discussing everyday subjects like love, fraud, or murder, when all of a sudden his face would assume a far more serious expression, and he would urge his son to have a tall, frothy glass of the Green Drink. The Green Drink appeared not once, but throughout multiple episodes, drunk by various members of the family. I was mystified. Was the father practicing some form of mind control by placing secret chemicals in the drink? Why did it keep reappearing? Alas, I was 15 hours into the drama until I realized that this was just a rather clumsy instance of product placement. PPL may represent an intrusion of the real world into the idealized realm of cinema, but that doesn't mean that it can't be done in a way that adds to the overall work. A friend of mine points out how David Lynch used different brands of beer to represent class distinctions between characters in Blue Velvet. In the Hollywood blockbuster I, Robot, Will Smith wears Converse sneakers to signify that his character is anti-technology, despite the fact that in real life, Converse was going through bankruptcy proceedings and never contributed a cent to the production. The president of a leading PPL company in the US says that each brand has to fit the film in a natural fashion. "If it looks forced, everybody loses," he says. Is it just me, or have there been a lot of losers in Korean cinema recently? PPL is still a relatively new phenomenon in the Korean film industry, so it's perhaps natural that there would be some overshoot before a balance is struck between artistic and commercial concerns. But sometimes the risks that come with aggressive PPL can outweigh the benefits. Who hasn't heard the term "a two-hour Jeon Ji-hyun commercial" to describe Windstruck? Such a concise, widely-repeated putdown of a film can have a measurable effect on box-office. I wonder how many more tickets the film would have sold if it had abstained from PPL and removed this easy criticism from the mouths of its detractors? Worldwide too, many advertisers are beginning to reconsider the effectiveness of film as a platform for advertising. For every successful instance of PPL (like, arguably, Samsung Electronics in The Matrix sequels), there are many more instances where companies spend money to no noticeable effect. Long-term it appears that most PPL will be moving to television, where distribution is much more easily controlled, and it is much easier to measure the results. Interestingly, for many years Italy went so far as to ban PPL in any film that received financial support from the state (which, in Italy, is most movies). Under Berlusconi this provision was removed, although it is still illegal to advertise tobacco, alcohol, or weapons in films. Surely one would prefer not to have to resort to government laws to regulate this sort of thing. But it's hard to not feel nostalgic for the day when we could watch Korean films without distractions like the Green Drink.

<그때 그 사람들>의 재구성 [1]

10·26사태를 다룬 <그때 그 사람들>은 여러모로 기록적이고 예외적인 영화다. 촬영을 마치기까지 제작사가 일체 영화에 관한 아무런 정보도 유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현대사의 정치적 뇌관을 본격적으로 건드린 매우 드문 상업영화라는 점에서, 그리고 중년배우들이 대거 주역으로 나섰다는 점에서 그렇다. 아마 개봉 이후에 이런 목록은 더 늘어날지도 모른다. 1월 말 시사회, 그리고 2월 설 개봉을 앞두고 성급하게 영화의 궁금증을 벗기려는 까닭은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선다. 한국에서 정치성 짙은 리얼리즘영화가 과연 어떤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그리고 이런 진지한 성찰적 접근이 어떤 정치적 파장으로 연결될까는 영화관객에게만 한정된 관심사가 아닐 것이다. 예민한 정치적 문제 때문에 영화의 맨 얼굴이라 할 수 있는 가편집본은 물론 시나리오도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이 영화에 대한 어떤 예단도 할 수 없다. 다만 얻을 수 있는 것은 감독과 현장 스탭, 배우들에게 들은 이야기들이 전부였다. 이것을 바탕으로 영화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보려 했다. 이 글은 영화의 화장도 하지 않은 맨 얼굴의 일부이며 그것조차도 얼마든지 개봉 시점에서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밝혀둔다.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명예훼손을 막기 위해 최대한 실명 사용도 자제했다. 편집자 풍자성 강한 정치드라마가 될 듯 한 일간지의 도발적인 예측성 기사를 기폭점으로 해서 <그때 그 사람들>에 관한 풍문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과거청산이 뜨거운 논쟁거리로 달아오르고 있는 시점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둘러싼 풍문은 거센 속도로 번져나갔다. 제작사인 강제규&명필름은 이 작품을 ‘본격적인 정치드라마가 아니라 블랙코미디’로 홍보하며 서둘러 진화에 나섰고 잇따라 예고편과 인터뷰 등을 내보냈다. 얼마 뒤 박 전 대통령의 외아들 박지만씨가 이 영화의 상영금지 가처분신청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내면서 언론의 관심도 더욱 커졌다. 영화에 관한 논란은 영화도 개봉하지 않은 시점에서 계속 불거져나오고 있다. 영화상영을 하기도 전에 이토록 논란을 불러일으킨 영화가 얼마나 있었던가. 영화의 내레이터로 참여한 윤여정이 임상수 감독에게 전화로 했다는 농담 아닌 농담은 이 영화의 모험적 성격을 잘 말해준다. “너야 원래 미친놈이니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쳐도 이런 영화를 하겠다고 받아주는 영화사가 어디 있겠느냐. 받아준 영화사에 감사해야 한다.” 설령 예민한 정치적 소재를 흥행으로 연결시키려는 전략이 보인다고 해도, 이런 예외적이고 과감한 시도는 주목할 값어치가 충분해 보인다. 임상수 감독의 네 번째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은 코미디 여부를 떠나 강한 풍자적 성격을 띤 정치드라마가 될 가능성이 크다. 우선 임상수 감독이 설정한 등장인물을 보자. 사건의 주모자로 나오는 박 부장은 외골수 마초 사무라이이며, 그 반대편에는 제왕적 존재인 각하가 등장한다. ‘야수의 마음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는 박 부장이나, 제왕적 존재인 각하나 모두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남성성에 기대어 한 사회를 좌지우지했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임 감독에 따르면 제왕의 일상은 보통 사람들에게 악몽이었지만, 그렇다고 쿠데타가 억누를 수 없는 민주주의의 신념에서 나온 것도 아니다. 그것은 박 부장의 입장에서 보면 사나이의 길이며, 그와 사사로이 의리에 얽힌 ‘오른팔’ 주 과장에게는 ‘인생을 쇼부봐버리는 일’이며, 주 과장의 운전사 상욱에게는 ‘단지 총을 쏠 줄 안다는 이유’로 연루된 불운한 일이다. “박 부장의 오른팔 주 과장과 왼팔 민 대령만 거사에 대해 알고 나머지 가담 인물은 그에 대해 몰랐다. 모두들 즉석에서 구해진 것이다. 그리고 이들도 역시 주모자들과 함께 사형에 처해졌다. 그 짧은 순간에 생과 사가 갈렸다는 게 아이러니 아닌가.” 임상수 감독은 이 영화가 각하나 박 부장 등 주연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건의 종료를 위해 황급하게 사형에 처해진 무명 인사들의 이야기라고 말한다. 굵은 줄거리는 사실의 밑둥 위에서 뽑고, 잔가지는 상상력으로 뽑았다는 감독의 말처럼 영화는 실제 사건의 재현보다 그 사건이 지닌 의미를 묻는 데 더 주력한다. 임 감독은 각하(송재호), 양 실장(권병길), 주 과장(한석규) 등을 비롯해 캐스팅에서도 목소리나 외모가 얼마나 닮았는가보다는 연기력을 중심으로 뽑았다고 말했다. 과연 이 영화는 어떻게 10·26을 재현했을까. 갑자기 영화 관련 인터뷰들이 쏟아지고, 엇비슷한 TV 연예프로그램 카메라가 백윤식의 얼굴을 줄기차게 보여주고 있지만 정작 영화의 예민한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보도 알 수 없다. 우리는 감독과 현장 스탭, 그리고 배우들과의 집중 인터뷰로 영화를 덮고 있는 미디어의 안개를 헤쳐가고자 했다. 이들에게 구술을 받아 픽션을 뒤섞어 구성한 다음의 몇 장면은 이 영화의 실체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 입구까지는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구술을 바탕으로 한 재구성이기에 일부 대사와 지문은 실제 시나리오나 영화와 다를 수 있다. 권력과 캐릭터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미술 #1. 실내. 남산 부장 집무실 (침대에 누워 등에 부항을 뜨고 있는 박 부장. 민 대령이 조심스레 다가간다.) 민 대령/ 부장님. 오늘 저녁 궁정동에서 연회하신답니다, 큰 걸로…. 박 부장/ 또? (골똘히 생각에 잠긴 박 부장. 시커먼 썩은 피가 등에서 나온다.) 권력의 2인자 자리를 놓고, ‘각하의 맹목적 심복’이자 ‘실질적 넘버 투’인 조 실장(정원중)과 겨루고 있는 박 부장의 집무실 장면이다. 짙은 고동색을 주조로 한 드넓은 실내, 직선 위주의 벽 디자인, 고풍스런 가구와 장식용 칼, 그리고 일직선으로 떨어지는 실내등 디자인, 그리고 서가 등이 검박한 무인의 기풍을 보여준다. 이 장면은 운현궁 양관에서 촬영됐다. 임상수 감독은 처음엔 남산중앙정보부의 살벌한 지하실(파주 세트장 촬영)에 이어 호화로운 부장의 집무실을 한컷에 담아 보여주려 했다고 한다. 밑에서는 고문이 자행되고 위에서는 한가로이 부항을 뜨는 장면의 대비를 보여주려고 했다는 것이다(이 계획은 CG 여건상 장면 구성이 바뀌었다). 부항을 뜨는 이는 실제로 부항을 뜨는 전문가이며, 화면에 나오는 피도 박 부장 역의 백윤식 피라고 한다. 임 감독은 백윤식의 등에서는 실제 간이 좋지 않은 박 부장의 검붉은 피 대신에 선명하고 붉은 건강한 피가 나왔다고 말했다. 등을 보이고 있는 민 대령 역의 김응수는 극단 목화를 거친 연극배우 출신으로 이마무라 쇼헤이 영화학교를 나왔으며 이 작품에 나오는 일본어 대사를 지도, 감수했다. 임 감독 작품 네편에 모두 선보였다. 부장 집무실의 직선형 디자인은 주 과장 집무실 등 다른 남성적 공간에서도 반복되어 나타난다고 이민복 미술감독()은 말한다. 복도 한켠에 옹색하게 마련한 주 과장의 집무실처럼 직위에 따라 방의 크기는 다르지만 곡선을 배제한 직선형 벽 문양과 어두운 색조는 통일되어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실내등 디자인도 경사진 일반 갓등이 아니라 보기 드물게 직선형이다. 이런 직선이 불러일으키는 이미지는 강인함과 남성성이다. 조 실장의 집무실도 이런 연장선상에 있다. 그의 집무실은 박 부장의 것에 비해 더 넓고 화려하다. 그러나 서재도 없이 반질반질한 대리석으로만 빛나는 그의 집무실은 박 부장의 것에 비하여 더 휑뎅그렁하다. 이민복 미술감독은 조 실장 집무실이 철저하게 개성이 거세되어 있으며 박 대통령 집무실의 축소판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책상과 방 디자인은 똑같고 다만 크기만 줄어들었을 뿐이다. 맹목적인 2인자의 이미지를 도출하기 위해서다. 1979년 사건 당시의 사진과 현장 기록, 텔레비전 화면 캡처 등을 바탕으로 만든 디자인은 역사적 고증보다는 이런 극적인 이미지를 뽑아내는 데 더 역점을 두었다고 한다. 당시 경제사정에 비추어보았을 때 매우 희귀했을 일본에서 직수입한 비데 같은 소품은 똑같이 재현하려고 했다. 외부로부터 철저하게 비밀리에 부쳐져 있고, 권력의 성역이라 할 만한 장소들이 영화의 중심을 이루는 까닭에 감독과 미술감독은 고증보다는 자유분방한 상상력의 재구성에 더 몰두했다. 그렇다고 영화 속에 웅장하고 호사스런 장소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모처럼 휴일을 아내와 함께 보내려다 거사에 연루된 장원태(김상호, 에서 휘발유 역)의 집은 단 하나의 예외적인 장소이다. 단칸방과 부엌 하나가 전부인 원태의 셋방은 연희동의 비밀 요정, 궁정동 안가, 각하를 비롯한 거물들의 집무실과 대비되어 쓴웃음을 자아낸다. 가장 문제적 장소 궁정동 만찬장, 어떻게 재현했나 #2. 실내. 별관 만찬장-밤 (심상효(충직하며 말없는 집사, 연극배우 조상건)가 세팅을 한 테이블 위에 송이버섯이며 바닷가재 따위를 정성스레 놓는다. 경호실 신 처장과 직원 재국이 들어와 화장실과 방 점검을 마치면 이윽고 들어오는 각하, 조 실장, 양 실장, 박 부장.) 각하/ 어이, 심군 또 왔네. 상효/ (고개를 깊숙이 숙여 인사한다.) 만찬장은 각하 시해사건이 벌어지는 문제의 장소다. 전체 103개 안팎의 장면들이 이 장면을 중심으로 짜여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비중이 높다. 이 장면을 시작으로 영화 중반부까지 만찬장 내부는 바깥장면들과 교차되며 긴장의 수위를 차곡차곡 쌓아올릴 것이다. 현대사의 치부를 건드리는 민감한 성감대가 여기에 있으며, 이 영화의 논쟁적 뇌관도 이 장면 안에 파묻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계단식으로 된 독특한 연회장 내부 디자인부터 실내 총격 장면, 목숨을 걸고 주고받는 대사들의 높은 전압 등이 주목거리다. “지극히 소수만 드나들 수 있는 비공개 장소이며, 국가의 1인자가 개인적으로 즐기는 곳이란 점에서 그리고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 벌어진 장소라는 점에서 흥미롭고 영화적으로는 얼마나 관객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을까가 걸려 있는 지점”(임상수)이다. 실제 궁정동 자료 사진과 영화 사진을 대비해보면 궁정동의 실제 주연 장소는 소박해 보이지만(그러나 천장 디자인은 엄청나게 화려하다), 영화 속에선 드라마틱하게 표현되어 있고 위용도 과장되어 있다. 바닥을 파서 다리를 내릴 수 있게 한 점도 마찬가지다. “계단 설정은 계급의 상승과 동시에 하강이 이루어지는 장소이기에 그렇다. 가부장적 사회의 폭력성을 어떻게 시각적으로 표현할까를 고민했다.”(이민복) 현장검증 사진 속의 만찬상과 비슷한 것은 SUN이나 거북선 같은 담배 말고는 거의 없다. 소탈한 음식이 실제로 차려졌지만 영화에선 시각적 효과를 위해서 붉은 바닷가재를 올려놓았다. 처음엔 붉은 색상과 살점을 파먹고 난 다음의 뼈 등을 통해 앞으로 벌어질 일을 예견하게 하기 위해 붉은 도미를 올려놓을 생각도 했다고 한다.

제한시간 2분, 예고편의 재구성

<역도산>의 예고편은 설경구의 한 표정을 길게 비춘다. 객석을 가득 메운 관중의 환호성 속에 링에 오른 역도산(설경구)은 여유있는 모습을 연출한다. 그러다가 잠깐 고개 숙여 옆을 볼 때 입술 한쪽 끝을 위로 올리며 야릇한 미소를 짓는다. 공공연히 관객을 향해 연출하는 표정들 사이로 짧게 잡히는, 그러나 그의 내면을 드러내는 얼굴. 거기엔 자신감에 더해 관객들에 대한 조롱과 자신에 대한 자조, 협잡꾼의 비열함 같은 느낌까지 많은 게 담겨 있다. 저런 표정은 어디서 나올까. 이 예고편은 영화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동시에 이 영화가 평면적인 인간승리의 드라마가 아닐 것임을 예감케 한다. 막상 영화에선 설경구의 이 표정이 말 그대로 스치듯 지나간다. 유심히 보지 않으면 눈에 안 잡힌다. 예고편을 만든 ‘죤앤룩필름’의 채은석 감독은 영화의 가편집본을 7~8번 돌려보면서 이 표정을 잡아챘고 그걸 길게 끌어 예고편의 한 가운데에 앉혔다. 호기심 자극과 내용 전달! 영화의 예고편은 호기심을 자극해야 한다는 점에서 일반 광고와 같지만 영화의 스토리를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자기 고유의 문법을 갖게 된다. 어떻게 하면 90분이 넘는 영화를 2분 안에 최대한 인상 깊게 전달할 수 있을까. 이건 단순한 축약을 넘어서는 재창조이기도 하다. 최근의 사례를 보면 수사 검사와 피의자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단 둘이 만나는, 영화엔 나오지 않는 장면을 새로 찍어 함축적이고 긴장 강도가 높은 대사를 주고 받게 한다(<공공의 적 2>). 또, 10·26 사태라는 소재의 무거움을 이면으로 돌린 채 텔레비전 드라마 <수사반장>의 주제곡과 흡사한 음악으로 리듬감을 살리면서 영화 속 장면을 재배치한다(<그때 그사람들>). 한국 영화의 예고편의 발전은 90년대 후반 한국 영화의 비약적 성장과 궤를 같이 한다. 본 영화와 별도로 예고편 제작 업체가 전담하기 시작했고 예고편의 형태도 티저 예고편, 텔레비전 스폿 광고, 컴퓨터 모니터용 온라인 예고편, 본 예고편 등으로 분화됐다. 마케팅이 전문화되면서 예고편은 영화만큼, 아니 영화보다 더 기발하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선보이고 있다. 어떨 때는 예고편이 영화보다도 더 민감하게 동시대 대중의 기호를 낚아채기도 한다. 이제 예고편은 음식을 조금 떼내 주는 ‘맛배기’가 아닌, 별개의 맛을 가진 애피타이저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아이디어 경연장’ 예고편 어제와 오늘 호기심 자극 작전 그때그때 달라요 10년 전만 해도 한국 영화의 예고편은 개봉될 영화에 대한 ‘고지’에 불과했다. 조감독이 영화 본 편에 사용되지 않는 엔지 컷을 ‘짜깁기’해 완성하는 것으로 별도의 시간적, 기술적 투자가 없었기 때문에 화질이나 사운드 모두 조악할 수밖에 없었다. 예고편이 ‘광고전단’ 수준의 촌티를 벗어나기 시작한 건 영화에 기획과 마케팅 개념이 자리잡기 시작한 90년대 후반부터다. 물론 최초의 기획영화로 꼽히는 92년작 <결혼이야기>는 김의석 감독이 직접 예고편용 필름을 따로 찍기도 했지만 이런 일은 예외에 속했다. 영화의 때깔과 짜임새에서 한국 대중 영화의 분수령으로 꼽히는 97년작 <접속>은 예고편도 제작사 울타리를 벗어나 외주로 제작했다. 그 뒤부터 예고편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회사와 전문인력이 생기기 시작했다. 97년 홍보사 R&I 커뮤니케이션으로부터 출발한 튜브픽처스 영상제작팀에 이어 모팩, 픽셀, 키메이커 등 예고편 전문 제작업체가 생겨났다. 여기에 프리랜서 감독, 광고를 겸업하면서 예고편을 만드는 회사까지 합쳐 현재 20곳 안팎의 업체가 예고편을 만들고 있다. 1분 안에 시선을 잡아라 예고편은 영화 개봉을 한달 앞두고 트는 본 예고편과, 개봉 서너달 전부터 내보내는 티저 예고편으로 나뉜다. 한국영화에서 본격적인 티저 예고편은 2000년작 <시월애>부터 만들기 시작해 2~3년 전부터는 제작이 대세가 됐다. 상영시간 2분 안팎의 본 예고편이 영화의 주요 장면과 스토리를 정보로 제공한다면, 1분 안팎의 티저 예고편의 목적은 호기심 유발이다. 튀는 아이디어는 그 핵심이다. 픽셀의 이규홍 감독은 “1분 안에 영화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는 게 관건이며 이를 위해서는 로맨틱 코미디 예고편을 미스테리 식으로 구성하는 등 색다른 아이디어를 모두 끌어모은다”고 말했다. 코미디는 미스터리 구성, 드라마는 게임처럼 뮤비처럼 만화에 등장하는 말풍선의 삽입, 깜찍한 그래픽 활용으로 2002년 튀는 예고편의 전기를 마련했던 <집으로…>, 영화는 다분히 정적인 드라마지만 예고편에는 발랄한 게임 형식을 도입했던 <질투는 나의 힘> 등은 영화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예고편으로 시선을 모았던 경우다. <집으로…> 예고편으로 그래픽 유행을 선도했던 이현식 감독은 “손자가 할머니를 설명할 때 ‘그녀’라는 말을 사용해 마치 로맨스처럼 흘러가다가 반전처럼 할머니의 실체를 보여주는 게 시선을 끄는 데 성공했다”고 자평했다. 요즘 뜨는 예고편 유행, 연출제작 예고편 최근 티저 예고편은 영화에 나오지 않는 장면을 별도로 연출해 찍어 만드는 연출 예고편이 인기를 끌고 있다. 세 젊은 주인공의 이미지를 극대화해 한편의 뮤직비디오처럼 만든 <늑대의 유혹>이나 세 남자가 한 여자를 코믹하게 훔쳐보는 < S 다이어리 >가 모두 티저 예고편을 별도로 찍었다. 네 명의 남녀 주인공이 어깨를 으쓱거리는 모습으로 영화의 발랄함을 쉽게 전달한 <싱글즈>의 예고편의 연출 예고편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연출 예고편 제작에는 채은석, 용이 감독 등 CF 감독의 활약이 두드러지기도 한다. 교도소 복도로 끌려가는 여주인공과 철창 밖에서 애절하게 울부짖던 남자 주인공의 모습으로 관객을 압도한 <인디언 썸머>(채은석 감독)의 예고편 제작을 진행했던 싸이더스의 권정인 팀장은 개봉 뒤 관객들로부터 “예고편에 나온 장면을 보러 갔는데 왜 나오지 않느냐”는 항의를 받기도 했다. 연출 예고편이 보편화되지 않았을 당시 종종 받기도 했던 오해다. 최근엔 장면 별도연출 많아 전문제작사 20여곳 ‘시간전쟁’ 한국형 예고편 만들기 티저 예고편과 달리 본 예고편은 영화가 어떤 내용을 담고, 어떤 감흥을 의도하는지를 보여줘야 한다. 따라서 영화의 장면을 재편집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그런데 영화 촬영이 끝나고 개봉하기까지의 기간이 6개월에서 1년에 이르는 미국 영화와 달리 한국 영화는 길어야 두세달이다. 그 안에 예고편 제작을 끝내야 하는데 영화의 가편집 테입을 받기까지의 시간을 빼면 작업기간이 길어야 한달 반이다. 예고편 제작비는 보통 편당 2000만~4000만원, CF 감독을 동원해 예고편을 위한 별도의 연출·촬영을 할 경우 8000만~1억원이다.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의 경우, 한국 영화 한편 제작비인 30억~40억원 가까이를 예고편 제작에 쏟는다. 또 한국 영화는 예고편 예산이 마케팅 비용에 포함되지만 할리우드는 제작비에 포함된다. 촉박한 시간, 제한된 예산 안에서 한국 영화 예고편은 화면과 사운드의 질보다 아이디어로 승부를 내는 경우가 많다. 여러가지 시도를 하면서 한국 영화 예고편은 한국 영화 못지 않게 빠르게 발전해가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 녹음을 담당하는 나준택 기사는 “한국 영화 예고편을 본 외국인들은, 그 예고편을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만들었다는 말을 듣고 놀란다”고 말했다. 예고편 전문제작 모팩 한동성 실장 “이미지와 아이디어 싸움… 줄거리전달형 가장 까다롭죠” 예고편을 전문으로 제작하는 회사 가운데, 제작 물량이 가장 많은 곳은 모팩이다. 1995년 컴퓨터그래픽 회사로 출발했다가 99년 <반칙왕>의 예고편을 만들면서 예고편 제작 전문 팀을 꾸려 컴퓨터그래픽과 함께 겸업하고 있다. 전체직원 20명에 예고편 전담 팀 5명이 한해에 제작하는 물량은 14~15편. <신라의 달밤> <황산벌>처럼 흥행에 성공한 상업영화에서부터 홍상수 감독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김기덕 감독의 <해안선> 등 작가주의 색채가 짙은 영화까지 다루는 영화의 폭이 넓다. 한동성(31) 편집실장은 홍대 시각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2000년 모팩에 입사해 첫 작품으로 임종재 감독의 <스물넷>의 예고편을 만들었다. 그뒤 <피도 눈물도 없이> <와니와 준하> <광복절 특사> <질투는 나의 힘> <지구를 지켜라> <효자동 이발사> <바람난 가족> 등 많은 영화의 예고편이 그의 손에서 나왔다. t;피도 눈물도 없이>는 영국 팝그룹 블러의 노래 '송2'를 예고편 사상 처음으로 1천만원의 라이선스 비용을 주고 사와서 썼고, 예고편 자체도 비디오 테이프를 뒤에서 리와인드시키는 형식을 썼다. <신라의 달밤>은 컴퓨터 그래픽을 당시로선 ‘이래도 되나’ 하는 우려가 나올 만큼 많이 썼다. 석가탑이 빙글빙글 돌고, 글자가 툭툭 튀어나오고. 다행히 흥행이 잘 돼서 예고편 평가도 좋아졌고 투자·제작사로부터 보너스도 받았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컷 수가 많지 않아 예고편을 만들기 쉽지 않았다. 한 실장은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의 예고편을 만들면서 불경 낭송 같은 진중한 소리를 바탕에 깔았다. 화면에서 남녀가 벌이는 엉뚱한 행동들이 그 소리와 어우러지면서 묘한 아이러니를 불러일으키도록 의도한 것이다. 한 실장은 예고편의 유형을 세가지로 분류했다. “첫째는 이미지와 느낌으로 스토리를 전달하는 뮤직비디오 스타일로 주로 멜로영화에 많이 쓰이게 된다. 둘째는 아이디어 중심형으로 영화의 컨셉을 어떤 아이디어 속에 담아 전하는 것이다. <광복절 특사> 예고편은 주말의 명화 형식을 빌어와 차승원과 설경구가 빠삐용처럼 감옥에 갇히는 장면을 보여준다. 셋째는 스토리텔링형으로 할리우드 영화 예고편들이 많이 쓰는 방식이다. 영화 본편의 장면들을 편집해 예고편을 만드는 방식인데 실제로 이게 제일 힘들다.” 남이 만든 예고편 가운데 그는 한국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와 외국 영화 <스파이더 맨>을 베스트로 꼽았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사운드 작업이 충실하고 음악도 별도로 만들었으며 내용도 잘 전하고 있다. <스파이더 맨>은 스토리텔링 위주로 어떤 얘기인지, 이번엔 어떤 악당이 나오는지까지 전달하고 나서는 바로 성악 코러스를 깔면서 화려한 액션을 연이어 보여준다. 그렇게 영화의 스케일을 과시하면서 그 정점에 타이틀을 내건다. 스토리텔링형 예고편의 전범인 것같다.” 소리를 둘러싼 수수께끼 예고편은 사운드(음악과 음향)가 특히 중요하다. 90분이 넘는 영화를 1~2분 안에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일은 청각에 호소하지 않고서는 쉽지가 않다. 많은 예고편 제작자들은 좋은 예고편의 조건으로 사운드를 두세 손가락 안에 꼽는다. 자기 영화를 관객에게 좀더 세게 광고하고 싶어하는 영화 제작자들은 당연히 예고편의 사운드가 크고 자극적이길 원한다. 그러나 소리의 크기가 일정량을 넘어서면 관객들이 괴로워한다. 이런 폐해를 줄이기 위해 미국처럼 한국도 예고편에 사운드를 입히는 업체들이 모여 자율적으로 음량의 상한 규제선을 정했다. 영화진흥위원회 녹음실, 라이브톤, 블루캡, 웨비브랩 등 20개 업체가 지난 2003년말 모여 정한 이 상한선(LEQ값)은 85spl(사운드 프레셔 레벨)이다. 이 상한선은 영화 본편에는 해당 사항이 없다. 듣기 힘들 만큼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영화라면 관객이 들지 않을 테니까 제작자들이 알아서 조절하게 되기 때문이다. 빵빵한 사운드 매력, 마구 키워도 될까. 한국영화 예고편 내레이션 드문 까닭은? 사운드와 관련해 생기는 한국 영화 예고편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음악 한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배경에 까는 방식의 예고편이 많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영화 예고편 제작비의 규모 안에서 공포, 액션, 공상과학 등의 장르 영화의 질감을 전하는 효과음을 별도로 만들어낼 사운드 디자인 비용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본 영화에 쓰이는 효과음을 예고편에 따서 쓰려고 해도, 본 영화의 사운드 믹싱이 이뤄지기 전에 예고편을 만들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여의치가 않다. 그러다보니 분위기에 맞는 음악 한 곡을 선곡해 죽 흐르게 하는 방식이 잦아지고 있다. 내레이션을 쓰지 않는 것도 한국 영화 예고편의 한 특징이다. 몇몇 코미디 영화의 예고편을 빼고는 한국 영화 예고편에서 대사와 별도로 성우가 내레이션을 하는 걸 보기 힘들다. 미국 영화 예고편에서의 내레이션은 익숙한데, 한국어로 하는 내레이션이 어색하다고 여기는 충무로의 풍토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할리우드 영화의 예고편 하면 바로 떠올리는 돈 라폰테인 같은 성우가 한국에는 없다. 영화의 제목을 낮은 저음으로 무게 잡아 한번 읽어주고, ‘커밍 순’ ‘디스 섬머’ 같은 말을 들려주는 돈 라폰테인을 흉내낸 한국 영화 예고편이 있기는 있었다. <낭만자객> 예고편의 끝부분에는 영어식 억양이 섞인 ‘낭만자객’이라는 네 글자의 내레이션이 나온다. 이 내레이션은, 텔레비전 광고에서 영어로 된 제품명이나 회사 상호를 한번씩 읽어주는 일을 도맡아 하는 미국인 스톤버가 맡았다. 오래전부터 한국에 살면서 의 디제이를 했던 그는 한국 영화 예고편의 해외 버전에서 제목을 읽는 내레이션을 몇차례 맡기도 했다.

<그때 그사람들>은 어떤 영화?

영화 <그때 그사람들>을 꿰뚫는 하나의 열쇠말은 ‘부조리’일 것이다. 개봉 전 논란이 됐던 박정희 전대통령에 대한 묘사뿐 아니라 최고 권력자에게 총을 겨누는 사람이 총이 고장나 허둥대는 모습, 무슨 일이 진행되는지도 모르면서 지시에 따르며 우왕좌왕하는 부하들, 혼란 속에서 엉클어지기는 마찬가지인 각료들 등 대부분의 장면에는 비장하고 절박한 분위기가 황당한 행동, 우스꽝스러운 대사들과 충돌한다. 특정 장면과 대사들이 ‘허구’임을 감안해도, 이야기의 뼈대인 ‘사실’을 통해 관객은 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한 순간이 얼마나 부조리하게 흘러갔는가를 목도한다. 결국 영화 밖으로 빠져나왔을 때 관객에게 남는 건 짧지 않았던 한 시대의 지독한 부조리함이다. <그때 그사람들>은 1979년 10월26일 오후부터 다음날 아침까지를 그린다. 너무나도 평범하고 조용하게 시작된 이날, 궁정동 안가의 연회 도중에 중앙정보부의 김 부장(백윤식)이 거사를 결심하고 거기에 부하 주 과장(한석규)과 민 대령(김응수)이 동참하면서 안가는 순식간에 긴장감에 휩싸인다. 그 거사에 중정의 경비원, 운전 기사까지 차출된다. 역사의 현장 한 가운데 있었음에도 영문을 모른 채 완벽하게 소외되어 있던, 그리고 소리없이 형장에서 사라져간 ‘그때 그사람들’이다. 이들의 혼란스러움은 연회장 방 안의 나른한 분위기와 대비되면서 이날 밤의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어수선한 분위기를 급박함으로, 다시 처참함으로 연결시키는 연출 감각과 기술적 완성도는 보기 드물게 뛰어나다. 카메라는 주요 가담자인 세 인물 뿐 아니라 ‘도구’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인물들이 각기 처한 두려움을 한치의 빈틈 없이 담아내며 총성이 울린 순간 여러 장소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는 급작스러운 움직임을 기민하면서도 유려하게 따라간다. 이 와중에 총이 고장난 김 부장이 마당으로 뛰어나오며 “총 어딨어, 총 가져와” 소리를 지르는 장면은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유발하며 영화를 단순한 장르적 즐거움에서 한 단계 끌어 올린다. <그때 그사람들>은 역사적 사건을 다룬 다른 영화들과 다른 독특한 어법을 선보인다. 누구를 편들지 않고, 이렇다할 재해석을 내리지 않으며, 김재규가 왜 그렇게 대책없이 일을 저질렀는지는 의문부호로 남겨놓는다. 쿨한 연출 속에 사람들이 죽이고 죽어가는 모습을 비추면서 아이러니를 증폭시킨다. 한바탕 총싸움이 오간 뒤, 연회장에 참석했던 두 여자가 그곳을 빠져나오면서 그제서야 운다. 그 눈물을 통해 비상식이 난무하던 그곳에서 관객은 처음으로 상식과 만난다. 우는 일 외에 상식이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던 어처구니 없는 일이 권부의 중심에서 벌어졌음을 새삼 상기시키면서, 풍자극의 외형을 쓰고 출발한 영화는 기어이 관객의 자괴감을 끌어낸다. 재해석과 가공을 통해 역사적 사건에서 납득되지 않는 부분에 인과관계를 채워넣지 않고, 거꾸로 납득되지 않는 그 부분에 주목하고서 아이러니를 극대화시킨다. 전형적인 역사물에 익숙한 이들에겐 낯설 수도 있지만, <그때 그사람들>은 소재의 무게에 짓눌려 현대사에 접근하지 못해온 한국 영화계에서 의미있는 성취를 이뤄낸다. 임상수 감독의 말말말 “어떤 주장도 없다 실체를 보여줄 뿐” 지난 24일 시사회를 통해 이 공개된 뒤 임상수 감독은 각종 매체와의 인터뷰 때문에 정신없이 바쁘다. 도 그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바쁜 틈을 비집고 들어가 25일 그를 만났다. -이 영화에 따르면 10·26은 참 어처구니가 없이 진행된 사건이다. 어처구니 없었던 역사를 드러내려는 게 의도인가, 아니면 역사를 그렇게 어처구니 없이 정리해놓고 살아왔다는 걸 드러내려는 것인가. =둘 다다. 박 대통령 사체가 놓인 병원에 총리와 장관들이 다 몰려갔을 때, 한 장관이 사체의 국부에 모자를 씌우는 장면을 두고 논란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그때 그 방은 국가를 움직이는 사람들이 다 모인, 국가 그 자체였다. 국가가 그렇게 허둥지둥댔다는 거다. 앞으로는 그러지 말자는 반성이나 자괴감, 혹은 결의 같은 걸 담은 거다. 당시 권력에 대한 비판이기보다 그 실체를 보여주자는 거다. 부시도 노무현도 풍자·조롱하는데 박정희는 신주단지 모시듯 해야 하나 -현대사의 사건을 다룰 땐 전형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을 것 같다. 5·18 같은 사건이 대표적이다. 10·26은 사건 성격이 좀 다르지만 그래도 그 상황을 직시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전형적 인물을 집어넣든가, 대안의 가능성을 비춘다든가 해야 한다는 부담 같은 게 있었을 법한데.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말하는 건가? 나는 그런 것에 관심없다. 촌스러운 미학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꼭 미학적으로 어떠하다기보다 나는 다만 소통하고 이해시키는 데 어떤 방식이 가장 효과적인가를 고민할 뿐이다. 나는 영화에서 어떤 주장도 하기보다 그 역사의 실체를 보여주려고 했다. 거기에 장르 영화의 틀을 끌어온 거다. 나는 거기까지다. 내가 생각하는 걸 자기검열 없이 일사천리로 한 영화라는 점에서 기분 좋은 영화다. -김재규와 그 부하들을 객관적으로 그리는 듯하다가 영화 말미의 내레이션은 그들을 비꼰다. =이 영화는 마초들의 사고방식으로 흘러가는 진짜 남성영화다. 군사문화를 배경으로 가지고 있는 남자들의 정신상황으로 일관하는 영화이기 때문에 앞뒤의 나레이션은 여자들에게 맡겼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간적인 건 궁정동 안가에 남아있었던 두 명의 여자들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박흥주(영화 속 민 대령)의 청렴했던 개인사를 알고서 그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지만 내레이션은 그를 ‘철딱서니 없다’고 표현한다. 총으로 뭔가를 바꿀 수 있다고 믿는 남자들의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를 말하고 싶었다. -끝부분에 박 대통령의 장례식 장면이 다큐멘터리로 삽입됐는데, 이걸 두고 박정희와 박근혜에 대한 배려다, 조롱이다 등등 상반된 말이 많이 나온다. =다큐멘타리 삽입은 나름대로 야심적 설정이었다. 이렇게 죽은 사람을 두고, 사람들이 이렇게 슬퍼했다는 거다. 이렇게 죽은 사람인데 이렇게 슬퍼한다 그런 느낌, 우리를, 이 영화를 대상화하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고 할까. 물론 어떻게 보여지느냐의 해석은 관객의 몫이다. 그리고 그 텔레비전 화면은 내가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장례식 때 김수환 추기경이 “여기 주님 앞에 인간 박정희가 놓여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박정희라고 부른 건 추기경 뿐이었다. 부시든, 노무현이든 자유롭게 풍자하고 조롱하고 사는데 박정희라고 신주단지 모시듯 해야 하는가. 그를 땅에 내려놓자, 그런 생각이었다. -시사회에서 영화를 본 국회의원의 반응 가운데 ‘등장인물들을 너무 희화화했다’는 게 있는데. 등장인물들 너무 희화화했다고? 관습 뛰어넘은 리얼리즘이겠지 =시나리오 감수를 한 역사학자 한홍구 교수한테도 그런 이야기를 들었는데,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에서 주인공이 말하는 자신의 칼싸움 장면은 대단히 멋있지만 옆에서 그 장면을 본 나뭇꾼의 말을 빌어 다시 그려질 때는 주인공이 두려움에 덜덜 떨며 개싸움을 한다. 그게 희화화라면 내 영화도 희화화일 수 있겠지만, 구로사와의 그런 묘사가 관습을 탈피해 새로운 리얼리즘을 탄생시켰다. <그때 그사람들>도 그 전통에 있고, 그래서 희화화가 아니라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의 전작들처럼 이 영화에도 냉소가 있다. 냉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냉소적이라기보다 센티멘털리즘에 빠지고 싶지 않은 거다. 나는 인간에 대한 연민을 가중 중요하게 여기지만 거짓에 속는 자기기만적인 연민은 싫다. 그런 건 오래 지속되지 않고 배신감만 안겨준다. 그걸 냉소라고 한다면 냉소가 하나의 방법론이고 힘일 수도 있다.

[백은하의 애버뉴C]8th street / 아담의 아름다운 키스

당신이 보수적인 사람이라면, 게다가 “커피 마실 돈이면 술을 먹겠다”고 공공연히 외치고 다니는 전형적인 한국형 남성이라면, 아마 열었던 문을 닫고 돌아설지도 모르겠다. 스스로 꽤나 개방적이며, 카페를 놀이터이자 삶터로 생각했던, 뉴욕에서 살고 있는 어떤 여자도 잠시 머뭇거려야 했으니까. 이곳은 첼시의 중심부에 자리잡은 카페 ‘빅 컵’이다. 카페에 앉아 있는 대부분이 남자들이고, 그들의 80%이상은 커플이다. 카페란 여자들의 전용공간이고, 게이들은 대부분 옷장 속에 숨어 있다고 오해했던 사람들에겐 참 생소한 풍경일 것이다. 전면이 유리로 활짝 오픈된 이 카페에 앉은 연인들은 1월의 눈더미도 단숨에 녹일듯한 뜨거운 눈빛을 나누거나 아이팟 이어폰을 다정히 나누어 끼고 새로 다운로드한 음악파일을 함께 듣고 있다. 맨하탄 서쪽 다운타운, 웨스트빌리지와 미드타운 중간에 자리잡은 첼시는 낡은 건물들을 개조한 독특한 갤러리 지구로 유명한 동시에 레인보우 깃발이 여기저기 걸려있는 게이들의 동네다. 뉴욕에서의 삶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우연히 이 카페 문을 열었던 나는 갑자기 등판기회를 박탈당한 야구선수가 된 기분이 들었다. 삼십 평생 지니고 있던 이성애자로서의 기득권, 헤게모니가 한방에 전복되는 순간이었다. 그 곳에 홀로 들어선 나는 외계인 같았다. 허, 참, 여자친구 손이라도 꼬옥 잡고 갔으면 좋았을 것을. 하지만 이제 이 카페에 혼자 가도 전혀 당황스럽지 않다. 그 사이 새로운 성 정체성을 찾았다는 말은 아니다. 뉴욕에서 게이 커플이나 레즈비언 커플은 비단 첼시나 특정 카페에서만 볼 수 있는 진귀한 풍경이 아니기 때문이다. 랜덤으로 방문한 흥미로운 블로그의 주인도 게이였고, 아르바이트 하는 가게의 단골 중에 레즈비언 커플도 꽤 많고, 소개 받은 새로운 남자 중에 상당수가 게이였다. 사실TV를 틀거나 영화를 보면 이 사실은 더욱 극명해진다. 벌써 7년째 장수중인 NBC시트콤 <윌&그레이스>는 남녀 주인공간의 로맨스 없이도 그 인기가 여전하고 (윌이 게이다), ‘메이크 오버’ 프로그램의 히트작이라고 할 수 있는 브라보TV의 <퀴어 아이>는 새 시즌을 맞이하여 게이 스타일리스트들이 답답한 스트레이트 여자를 감쪽같이 변신시켜 준다는 새로운 아이템, <퀴어 아이 포 스트레이트 걸>을 내놓았다. 21세기의 매스미디어에 그려지는 게이의 이미지는 90년대 <필라델피아>같은 영화에 나왔던 비극적이고 무거운 기운과는 다르다. 이들은 이태원의 어두운 바가 아니라 대낮의 거리에서 서로를 껴안고, 후미진 극장 구석이 아니라 오픈된 카페에서 새로운 연인을 물색한다. <엘렌 쇼>에서 바지정장을 입고 춤추며 등장하는 (레즈비언으로 유명한) 엘렌 드 제네러스의 자신만만한 몸짓을 보고 있다 보면 동성애자에 대한 사회적인 이해가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렀는지 알 수 있다. 물론 여전히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의 게이친구처럼 스트레이트 여성들이 꿈꾸는 친구로서의 게이. 즉 성적 긴장감이 없어 안전하고 이해력은 여자친구 이상이고 가끔 남자친구 대용으로 전시 할 수 있는, 이성애자들의 편리에 의한 모습만을 강조하는 부분도 없지는 않다. 또한 이런 개방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극우 보수주의자들의 곱지 않은 시선이 존재하고 우리 모두가 “약간은 인종차별주의자들”인 탓에 게이에 대한 농담도 늘어나고, 그들의 커뮤니티가 확장되는 것을 우려하는 기운들도 만만치 않다. 하긴, 텔레토비 마을처럼 모두 모여 “아이 좋아-“만을 연발하는 천국이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레이 찰스의 생애를 그린 <레이>의 한 장면을 보면 바로 지난 세기만 해도 버스 내부에 ‘컬러’가 다른 사람과 백인들을 구분하는 벨트가 쳐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게 백년도 안된 세월 동안 세상은 빠르게 서로간의 경계를 허물어가고 있다. 물론 내 몸 속에 흑인의 피가 흐르지 않는 이상 소울이나 힙합의 리듬을 정확히 이해 할 수 없듯 이성애자로 살면서 동성애자들의 완벽하게 이해하기란 불가능 한 일일 것이다. 다만 이들과 부딪혀 살아왔던 그 짧은 시간이 가져다 준 변화라면, 그동안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면 이제는 그들의 ‘즐거움’에도 관심이 간다는 것이다. 그나저나 글을 쓰다 보니 뉴욕은 점점 이성애 미혼 여성이 살아가기에 가혹해져만 가는 도시 같다. <섹스 앤 더 시티>의 “뉴욕 30대 남자 중에 우리가 사귈만한 남자들은 더 이상 없어. 줄리아니(전 뉴욕시장)가 홈리스들을 처리할 때 다 같이 쓸어버렸다니까” 같은 대사가 과장이 아닐 정도다. 이런 기회불균등의 작은 섬에서 나는 여전히 ‘스트레이트 싱글 아시안 걸’로 살아가고 있다. 마이너리티도 이런 마이너리티가 없다. 흔한 것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귀한 것을 찾아나가는 것이 진정한 모험이라고 스스로 위로해봐도 여전히 뉴욕은 잠 못 이루는 밤이 참 많은 외로운 도시다.

한국영화 속 ‘소녀들의 섹슈얼리티’의 진부한 도식

지난 한해, <어린 신부>를 시작으로 한국 영화계에는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조폭 아저씨들과 80년대 오빠들의 틈바구니를 헤치고 “나는 사랑을 아직 몰라”라며 깜찍하게 ‘사랑’을 노래하는 소녀들의 등장. 이 소녀들은 더이상 첫사랑에 눈물을 머금는 순진한 십대도, 그렇다고 제도와 세상물정을 꿰뚫는 속세의 여인도, <나쁜 영화>나 <눈물>에서처럼 사회의 극단을 체현하는 ‘주변부’ 아이들도 아니다. 그렇다면 소녀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백지의 표정을 지으며 그 무거운 제도와 사랑과 성을 단순한 종잇조각 혹은 게임으로 만들어버리고 있는 것일까? 철없음을 무기로 사실은 매우 영악하게 거대 담론을 이용하고 있는 것일까? 진지함으로 포장된 제도, 사랑, 성의 이면에는 아무런 본질이나 진리가 존재하지 않음을 자신들만의 언어로 조롱하고 있는 것일까? 아쉽지만 위의 의문은 단지 기대에 지나지 않는다. 이 기대를 실현하기에 소녀들은 여전히 진부함과 순종의 울타리를 맴돌고 있다. 금기를 ‘말한다’는 것이 곧 그것을 ‘사고한다’는 의미로 이어지지는 않는 것처럼, 소녀들은 그 어느 때보다 사랑과 성에 대해 조잘대지만, 그녀들의 ‘말’에는 아무런 울림이 없다. 소녀들의 섹슈얼리티에 관한 영화들이 이제는 꽤 다양해진 에피소드들과 함께 우후죽순처럼 쏟아짐에도 그 양에 비해 이러한 영화들은 근본적으로 동일한 구조를 토대로 재생산되고 있다. 그 구조는 소녀와 섹슈얼리티간의 파격적인 만남을 억지로 순화시켜 ‘정상’의 범주에 끼워넣는 데 일조한다. 소녀와 섹슈얼리티는 서로를 도발하는 대신 서로의 날카로운 톱니바퀴들을 무디게 갈아서 새로운 기획 상품으로 변신한다. 조폭영화, 복고영화의 뒤를 잇는 <어린 신부> 속편들. 이러한 경향을 롤리타 콤플렉스와 같은 남성 판타지로 규정하기에는 영화의 주요 관객층이 소녀들 자신이라는 이유를 굳이 제시하지 않더라도 지나치게 단순화된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러므로 이 글은 소녀의 섹슈얼리티를 소재로 재생산되는 최근 한국영화의 흐름을 살펴보며 이 영화들의 화려한 껍데기를 벗겨내보고자 한다. 그리고 그 껍데기 속에 감추어진 지극히 상투적인 구조에 주목한다. 소녀의 섹슈얼리티를 소재로 펼쳐지는 최근의 영화들에는 대개 안전장치가 존재한다. 이것은 팔팔 뛰는 섹슈얼리티의 에너지 혹은 퇴폐와 고통을 넘나드는 그것의 그림자를 적당한 강도로 억제시키기 위해 이 영화들이 선택하는 배경의 문제이다. 안전장치1: 학교 제도 안의 소녀들에게 안착하는 섹슈얼리티 첫째, 섹슈얼리티의 담론을 학교 울타리 안에서 구성해내며 제도 안에서의 성장통을 강조한다. <어린 신부> <돈텔파파> <여선생 vs 여제자> <몽정기2> <여고생 시집가기> <제니, 주노>부터 <늑대의 유혹> <그놈은 멋있었다>에 이르기까지 소녀들은 교복을 입고 사랑하고 욕망한다. 고등학생 신분으로 임신을 하고(<제니, 주노>), 결혼을 하고(<어린 신부>) 거침없이 성담론 위에 올라 마치 표면적으로는 제도의 틀에 균열을 일으키는 듯 보이지만 사실 그것은 정반대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아직 학교 안에 존재한다는 것은 아무리 성인의 범주를 침범하더라도 여전히 성인이 아니라는 사실, 그 어떤 욕망도 철없음으로 용인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것은 학교라는 제도가 성장기의 ‘아이들’에게 선사하는 너그러움이다. 그것은 학교 안 소녀들의 욕망은 어차피 사회에 아무런 위협도 가하지 못할 것이라는 믿음을 전제로 하고 있다. 안전장치2: 낭만적인 로맨스로 중화되는 섹슈얼리티 둘째, 위와 같이 학교 안 소녀들의 욕망에서 전복성을 제거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녀들의 섹슈얼리티를 로맨스로 중화시키는 것이다. 선생님에 대한 짝사랑이건(<몽정기2> <어린 신부> <여선생 vs 여제자>), 동갑내기를 향한 사랑이건 그 사랑에는 언제나 쓴물이 빠진 낭만적인 단물만이 남는다. 소녀들의 성적 욕망은 선생님의 탈을 쓴 자상한 젊은 오빠로 향하는 과정에서 싱싱함을 잃고 인생에 대한 깨달음으로 승화된다. 예컨대, <몽정기2>의 은비나 <어린 신부>의 보은, <여선생 vs 여제자>의 미남은 그녀들의 욕망이 애초 영화적으로 재단된 것이었다 해도 막무가내로 방방 뛰는 힘이 있었지만, 결국은 진정한 사랑을 찾았다거나 소중한 것은 멀리 있지 않다는 식으로 자신들의 욕망을 정리한다. 혹은 <그놈은 멋있었다>나 <늑대의 유혹>에서처럼 소녀들의 욕망은 모성에 대한 남자아이들의 욕망에 흡수되어 사랑의 이름으로 포섭된다. 그녀들의 섹슈얼리티는 밖으로 흩어지지 않고 차오르는 순간 내부로 봉합된다. 소녀들은 그렇게 성숙한다. 그녀들의 섹슈얼리티는 어찌 되었건 로맨스를 완성시키기 위한 수단이다. 그러나 그동안 소년의 섹슈얼리티는 어떻게 재현되었는가? 소년들의 성은 거친 말투와 다양한 방식(도색잡지, 비디오부터 자위를 위한 기상천외한 수단들)을 통해 노골적으로 제시되어왔다. 남학생들은 사랑이 아니라 섹스를 꿈꾼다. <몽정기>에서 로맨스의 환상에 시달리는 사람은 소년들이 아니라 그들의 여자 교생(김선아)이었다. 그녀는 소년들의 완벽한 ‘캔디’(영화에서 이 단어는 그들의 성적 환상을 충족시켜주는 대상을 일컫는 은어이다)로 존재하지만 그녀는 정작 키스 한번 못해보고 운명적 사랑만을 되풀이하는, 꿈만 먹고 사는 여자였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안전장치3: 가족이나 운명의 보호를 받는 섹슈얼리티 셋째, 소녀들의 섹슈얼리티는 학교뿐만 아니라 무방비하게 노출된 그녀들의 성을 정리정돈시켜주는 가족, 운명의 보호를 받는다. 그녀들은 자기 욕망의 자율적 주체가 아니다. 그녀들은 자신이 욕망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존재들이다. <어린 신부>에서 소녀의 결혼은 할아버지의 유언으로, <여고생 시집가기>에서는 평강공주 설화를 바탕으로 한 운명적 선택으로 정당화되고 있다(뿐만 아니라 드라마 <낭랑 18세>나 <쾌걸 춘향>에서도 그녀들의 이른 결혼은 언제나 자기 결정권 밖에 존재한다). 소녀들은 교복을 입은 채, 어느 순간 유부녀가 되어 있다. 소녀의 결혼은 조선시대로 돌아가 21세기로서는 결코 납득할 수 없는 이유에 의해 당시의 방식으로 아무런 무리없이 진행된다. 소녀들은 부모의 뜻을 거역할 수 없고, 하늘의 뜻을 피할 수 없고, 심지어 새 생명을 죽일 수 없어서(<제니, 주노>) 사랑의 끝, 결혼으로 골인한다. 이 21세기의 심청이는 도대체 누구 욕망의 산물일까. 이 영화들은 결혼이란 이같은 고지식한 무지함 속에서만 가능한 제도임을 소녀들의 섹슈얼리티를 전유하며 전달하고 있는 것일까. 이처럼 기존의 가치, 관습을 자신의 욕망과 동일시하는 소녀들이 자기 몸의 소리에 민감할 리 없다. 예컨대, <몽정기2>에 등장하는 세명의 소녀들에게 섹스는 남성의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수단이다. “너, 섹스 해봤어?”는 곧 “너, 어른이야?”의 의미로 직행한다. 그에 따라 그녀들이 그 무지한 성적 지식으로 집중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상대 남자의 성기를 발기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절박한 고민이다. 이것이 남성감독 자신의 욕망인지, 혹은 대부분의 남자들이 가진 환상인지의 여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이 소녀들의 섹슈얼리티란 고작 ‘그들’의 남근이 되기 위한 과정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운명의 남자를 위해 남근이 되려고 그토록 ‘사고’하면서도 자위의 문제에서는 “걱정 마, 그건 유행이야”라며 안심하는 소녀들. ‘나의 욕망’을 모르는 소녀들, 내가 나의 욕망을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소녀들 덕택에, 그리고 그녀들을 감싸주는 제도와 운명 덕택에 그녀들의 섹슈얼리티는 그야말로 하나의 유행이 되고 만다. 안전장치4: 결함을 내세워 변명하는 섹슈얼리티 넷째, 위와 같이 결혼으로도, 낭만적 로맨스로도 합리화될 수 없는 소녀들의 성은 비정상적 환경의 산물로 재현되며 결함의 논리와 결부되고 있다. <귀여워>와 <여선생 vs 여제자>의 어린 소녀들은 각 영화의 성인 여자보다도 성숙하고 당돌한 이미지로 나타난다. <귀여워>에서 예지원과 경쟁하는 소녀는 억척스럽고 천박한, 전형화된 주변부 여자의 이미지를 모방한다. 소녀는 성인 여자와 함께한 남자를 욕망하고 소주를 마시고 화장을 한다. 학교, 가족, 또래집단 모두로부터 분리되어 홀로 존재하는 듯한 소녀의 모습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밍키와 유사하다. 현실에 발을 딛지 않은 환상 속의 어린 마녀처럼 그녀의 이미지는 그로테스크하다. 그런데 아이의 얼굴로 성인의 섹슈얼리티를 능숙하게 흡수한 소녀는 어김없이 철거촌이라는 주변부가 만들어낸 결과물로 재현된다. 그녀는 부모 없이, 가족 없이, 든든한 울타리 없이 방치되어 되바라진 존재, 불행한 미래가 뻔하게 상상되는 존재로 그려진다. 어린 소녀가 성인의 섹슈얼리티를 모방한다는 사실은 그 자체가 하나의 성적 의미로 읽혀지지 않는다. 다만 어른을 따라하는 위험한 아이, 성장의 ‘정상적’인 도로를 일탈한 아이로 규정된다. 한편, <여선생 vs 여제자>에서는 염정아보다 전략적이고 성숙하게 남자를 유혹하는 소녀가 등장한다. 소녀는 도도한 방식으로 자신의 위치를 최대한 이용하며 상대방의 욕망을 읽어낸다. 그러나 등장인물들 중 가장 어른스럽게 보였던 소녀 역시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엄마와 단 둘이 어렵게 살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 소녀의 영리함은 더이상 성숙함의 표상이 아니다. 그녀는 사랑과 관심의 결핍에 시달리는 아이로 추락한다. 소녀가 그토록 집착했던 미술 선생님에 대한 사랑은 아버지가 없는 아이의 대체 욕망으로 규정되어 사그라진다. 이는 <몽정기2>에서도 나타나는 바, 아버지는 여주인공으로 하여금 교생 선생님에 대한 복합적인 심정과 그녀의 혼란한 섹슈얼리티에 질서정연한 논리를 부여해주는 존재이다. 그녀는 마치 왕자와 공주처럼 아버지와 춤을 추며 동화 속에서 방황을 끝낸다. 그러니까 소녀들은 아버지와 유사 아버지들에 둘러싸여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한순간 매듭짓는 법을 끊임없이 연습하는 것이다. 소녀들의 성은 아버지의 상실을 또 다른 아버지로 채우길 반복하면서 폭발하려는 순간 가라앉는다. 섹슈얼리티의 중심에는 ‘내’가 아니라 ‘그’가 존재하고 ‘그’ 또한 위험수위마다 경보음을 울리며 가족, 로맨스, 운명 등을 제시하는 기계 같은 존재이다. 소녀들은 마치 근친상간 금기의 경계 위에서 매순간 교묘하게 그 금기를 넘어서지 않으며 그와 동시에 서서히 자신의 욕망에 귀기울이는 법을 잃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소녀=성=사랑=결혼, 완결된 서사에 대한 집착 이제 소녀들의 섹슈얼리티를 다룬 이 영화들이 놓치고 있는 부분이 분명해진다. 그것은 소녀들의 몸이다. 그 몸에 대한 사유이다. 결혼, 사랑, 성적 욕망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어내면서도 그 에피소드들이 여전히 판타지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하고 마는 이유는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을 수놓는 결혼과 사랑에 대한 온갖 환상들과 그야말로 성교육 시간에만 배우는 ‘건강한 성’에 대한 이야기들이 모자이크처럼 짜맞춰져 있을 뿐, 거기에는 몸에 대한 세밀한 언어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는 위에서 언급한 영화들의 감독이 공교롭게도 모두 남성이라는 사실을 제시하기보다는(예컨대, ‘남자는 여자의 섹슈얼리티를 모른다. 여자의 욕망을 알 수 없다’ 등) 이 영화들에서 나타나는 완결된 서사에 대한 집착을 지적하고 싶다. 이러한 서사 구조상의 문제는 소녀들과 섹슈얼리티의 담론에서만큼은 그 내용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음을 밝히고자 한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소녀들의 성이 축 늘어진, 이미 시들어버린 꽃처럼 힘을 잃고 너무도 자연스럽게 로맨스 혹은 결혼에 안착한 까닭은 이 영화들이 보이는 여성의 성에 대한, 특히 소녀들의 성에 대한 무지 때문이다.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완성의 목적을 향해 달려가는가. 위의 영화들은 이에 대해 단 한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남녀를 불문하고 성이라는 것이 도대체 왜, 무엇을 위해 완결의 구조를 지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물론, 소녀=성=사랑=결혼이라는 도식 자체에도 아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있다. 최근 이러한 영화적 경향들에서 언제나 이슈가 되었던 것은 ‘소녀’가 성을 말하고 결혼을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소녀’의 결혼은 그다지 놀라워할 만한 부분이 아니다. 문제는 소녀에서 시작하여 결혼으로 이어지는 가부장제의 이 완벽한 도식, 다시 말해, 처녀에서 시작하여 엄마가 되는 여자들의 운명이 과거에 비해 좀더 노골적으로, 그러나 소녀의 섹슈얼리티를 ‘순진함’ 속에 가두고 전유하며 영악하게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위의 영화들은 소녀의 섹슈얼리티에 기승전결의 구도를 부여하여 성이 결국은 정신적 성숙을 통해 제도에 안착하는 완벽한 질서를 구상해냈다. 그들은 여성의 섹슈얼리티란 한번의 성장통으로 완성되는 무엇이 아니라 끊임없는 사유와 아픔의 과정임을 알지 못한다. 완전한 구조에 대한 그들의 욕망은 자연히 해피엔딩에 대한 강박을 낳으며 소녀들의 성에 억지로 코미디와 감상적인 눈물과 천진난만한 깨달음을 부여한다. 언제나 유사한 도식과 유사한 결말을 준비하는 이러한 서사에 동시대적 고민이 담길 리 없다. <몽정기2>에서처럼 소녀들은 어중간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여성의 성에 대한 온갖 뒤떨어진 클리셰들을 안고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몸에 대한 사유없이 진행되는 결혼, 임신, 사랑의 언어들 속에는 소녀들의 몸이 조각상처럼 존재할 뿐, 몸의 언어가 부재한다. 총체적 서사에 대한 강박은 통합된 몸, 통합적 질서에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분리되고 흩어지는 소녀들의 섹슈얼리티를 읽어내지 못한다. 공포와 슬픔으로 귀환하는 소녀들의 섹슈얼리티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에서 여고생들의 섹슈얼리티는 결코 ‘건강’하지 않았으나 아픈 설득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성애와 동성애를 가로지르며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서 위태로운 발걸음으로 옥상의 끝을 오가던 조숙한 소녀의 몸은 내밀하게 떨렸다. 판타지의 공주가 되는 대신, 공포 속에서 몸의 슬픈 울림을 듣는 소녀들의 모습. 남성 중심적 사회의 수많은 아버지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말라가는 소녀들의 섹슈얼리티는 그렇게 유령이 되어 끊임없이 돌아오고 있었다. 나는 이 우울한 영화 속에서 자신의 몸으로 스스로를 언어화하며 몸에 새겨진 상처를 사유하는, 몸으로 말하는 소녀들을 본다. 로맨스와 결혼과 가족 대신 자신의 섹슈얼리티로 스스로와 내밀한 소통을 나누는 소녀들을 발견한다.

<씨네21> 설 특별 프로그램 [3] - DVD ①

‘중요한 고전 및 현대영화의 지속적인 시리즈.’ 크라이테리언 컬렉션 DVD의 모든 광고와 타이틀 패키지에 표기된 캐치프레이즈다. 이것은 크라이테리언 컬렉션의 특징을 가장 잘 함축하고 있는 표현이다. 컬렉터들로부터 최고의 DVD로 인정받는 크라이테리언 컬렉션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알아보자. 또한 예술영화에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저예산 B급 호러영화에 이르는 다양한 라이브러리를 구축하고 있는 크라이테리언의 색깔있는 12편의 타이틀을 발매 순서대로 소개한다. DVD에 막 입문한 팬들이 커뮤니티 게시판 등지에 질문하는 내용들 가운데 가장 흔한 것이 바로 ‘크라이테리언이란 무엇인가’이다. 정말 크라이테리언 컬렉션은 무엇인가? 전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LD와 DVD 제작업체로서 최고라는 평판을 받고 있는 그 이름. 그리고 그 이름표가 붙은 DVD는 일반 타이틀의 배에 가까운 가격이 책정되고, 많은 마니아들에게 그 이름이 새겨진 DVD 컬렉션을 자신의 진열장에 차곡차곡 채우는 공통된 꿈을 갖게 하는 이름. 심지어 인터넷상에는 크라이테리언의 DVD만을 판매하는 전문 쇼핑몰이 등장하기까지 했으니 과연 대단한 이름값이라고 할 수 있다. 20년 전 보이저 발매 LD판에서 시작 크라이테리언 컬렉션은 방대한 영화 보유고로 유명한 제이너스 필름과 보이저 프레싱이 합작한 보이저 컴퍼니의 고유 레이블이다(현재는 홈비전엔터테인먼트와 합작). 이 컬렉션은 모든 영화팬들이 소장하고 감상할 만한 엄선된 작품을 최상의 사양으로 출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그 역사는 DVD가 나오기 한참 전부터 시작되었다. 크라이테리언 컬렉션의 이름을 달고 출시된 최초의 작품은 1984년 LD로 발매된 오슨 웰스의 <시민 케인>으로, 첫 출시작이 영화사상 가장 중요한 작품 가운데 한편이라는 사실은 이 시리즈의 방향이 무엇인가를 충분히 짐작게 한다. 크라이테리언의 명성은 초기 출시작부터 곧바로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오디오 코멘터리를 최초로 도입하였으며 프레임별 감상이 가능한 LD의 매체 특성을 활용하여 정지 화상 갤러리나 텍스트 자료를 추가함으로써 작품에 대한 좀더 심도 깊은 이해를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이러한 제작방식은 다른 출시사로부터 ‘미친 짓’이라는 야유를 받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마니아가 이끌고 있던 LD시장에서 압도적인 반응을 얻게 되었다. 우리가 흔히 ‘스페셜 에디션’ 또는 ‘컬렉터스 에디션’이라고 부르는 포맷을 크라이테리언은 이미 20여년 전에 개발해냈던 것이다. 이렇게 독창적이고 강력한 사양은 크라이테리언 컬렉션을 고급 LD의 대명사로 만들었다. 또한 크라이테리언 컬렉션은 까다로운 작품 선정을 통해 소장의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영화만을 엄선, 자신들의 작품 목록을 만들어나갈 뿐 아니라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많은 영화들의 원판 가운데 가장 양질의 필름만을 이용하여 여타의 타이틀과 확연하게 구별되는 음질과 화질을 제공하는 것으로도 그 명성이 높다. 최초로 제대로 된 특별판의 시초 예술영화만을 고집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흥행성만을 중점으로 두고 판단하지도 않는 크라이테리언의 작품 선정은, 컬렉션에 포함된 영화를 정말 한번 이상 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게끔 한다. 구로사와 아키라, 앨프리드 히치콕, 마이클 파웰,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 장 르누아르 등 고전이나 영화사적으로 중요하게 평가받는 작품들은 물론, <쎄븐>이나 <트레인스포팅>과 같은 동시대의 감각을 다룬 최근작이나 <로보캅> <더 록> <아마겟돈>으로 대표되는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 <북극의 나누크> <도쿄 올림픽> 등의 다큐멘터리, <블러드 포 드라큘라>와 같은 고어 계열이나 소프트 포르노급의 의외의 작품들도 당당히 입성에 성공하는 것이다. 이들 가운데에는 LD에서 DVD로 시장이 전환됨에 따라 다른 출시사에서 새로 나오거나 판권 만료로 볼 수 없게 된 타이틀도 있지만, 1997년 DVD 시장 진출 뒤 겪었던 약간의 시행착오를 제외하면 크라이테리언이라는 이름 자체는 아직도 DVD 팬과 수집가의 절대적인 지지와 신뢰를 얻고 있다. 크라이테리언은 최상의 화질과 음질을 위해 DVD 제작용 마스터를 직접 뽑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많은 영화들의 필름 가운데 가장 양질의 것만을 이용하여 고퀄리티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크라이테리언 컬렉션은 다양하고 깊이있는 스페셜 피처는 물론 ‘극장에서 보는 것과 똑같은’이라는 구호를 내세웠던 LD시장 때부터 화질과 사운드 면에서는 이미 정평을 받아왔다. 출시 예정일을 종종 연기하는 것은 팬들로서는 짜증스러울 따름이지만 상태가 좋은 원본 필름을 입수하기 위해 몇년이고 발로 뛰고 끈기있게 기다린다는 크라이테리언의 경우만큼은 오히려 완성된 결과물에 대한 기대감을 표하는 팬들이 더 많다. 원본에 대한 충실한 재현 무엇보다도 풍부하고 그 질에서 확연하게 뛰어난 스페셜 피처야말로 크라이테리언 컬렉션을 수집가들이 제일로 치게 만드는 이유일 것이다. 다른 출시사의 타이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영화 홍보용 영상이 아닌, 실제 영화를 완벽히 이해하고 제작 과정의 실질적인 뒷이야기를 알 수 있는 크라이테리언의 부록은 대부분 새롭게 제작된 오리지널이며, 이 컬렉션의 독보적인 특성이다. 특히 크라이테리언에서 화질과 음질을 유지한 상태로 풍부한 부록의 수록이 가능하도록 고안한 더블 피처 방식은 현재 DVD 시장에서 특별판 또는 감독판에 흔하게 사용되고 있는 방식으로 감상자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그들의 제작 스타일을 엿볼 수 있는 단면이다. 물론 지금에 와서는 너무나 흔하고 당연한 사양이 되어버렸지만 크라이테리언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텔레비전 사이즈에 맞추어 필름의 절반이 잘려나가고 잡티가 날리는 영화를 DVD로 보고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2∼3장의 디스크가 수록된 크라이테리언의 박스 세트 LD는 고가의 타이틀로서 나름의 악명도 있었지만, 이제는 10∼20달러 정도의 저렴한 가격으로도 그에 준하는 DVD를 대중적으로 즐길 수 있게 된 환경은 크라이테리언의 이러한 선구자적 제작 방식에 큰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DVD를 경제적인 이익의 창출을 위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가치가 뛰어난 영화들의 보존을 위해서라고 말하는 크라이테리언 컬렉션. 인기있는 영화라면 감독판, 무삭제판, 기념판 등 각종 수식어를 붙여가며 재발매를 반복하는 다른 제작사들과는 달리 단 한번의 발매로 컬렉션을 차곡차곡 채워나가는 크라이테리언의 모습이야말로 DVD 마니아들의 강한 신뢰를 얻게 된 이유일지도 모른다. 장인정신에 가까운 자부심과 함께, 영화와 관객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타이틀을 만든다는 크라이테리언의 정책이 DVD 한장에도 마음 깊이 감동하는 마니아들을 양산하게 된 것이 아닐까. 크라테리언 컬렉션을 구입하려면? 아마존과 디브이디플레닛 이용하세요! 신용카드 사용이 가능하다면 amazon.com과 dvdplanet.com을 고려해보자. dvdplanet.com(왼쪽)의 경우 과거 켄 크레인 시절부터 크라이테리언사와의 계약에 의해 레이저디스크 및 DVD를 최고의 할인율로 판매해왔다. 현재 이곳이 제시하는 할인율은 예약타이틀 및 재고타이틀 할 것 없이 동일하게 35%이다. amazon.com(오른쪽)의 경우 출시된 지 시일이 경과한 타이틀은 10% 정도의 할인만을 제공하지만 출시예정타이틀을 빨리 예약할 경우 최고 30%까지 할인된다. 운송료를 비교해보면 dvdplanet은 최초 타이틀이 8달러이고 한장 추가시마다 3달러를 요구하지만 amazon.com은 최초 6.48달러에 장당 2.5달러가 추가된다. amazon.com은 STL이라 불리는 Share the Love 시스템이 있어 서로 등록된 네티즌들끼리 동일 타이틀 구매시 추가 D/C를 받을 수 있다. 즉 이미 출시된 타이틀을 소량 구매할 때에는 dvdplanet.com이, 출시예정 작품을 다량 구매할 때에는 amazon.com이 유리하므로 비교해보는 것이 좋다. 배송사고 발생시 처리는 amazon.com이 좀더 깔끔한 편이다. 구매액이 운송료를 포함하여 15만원을 초과하면 세관통관시 관세를 지불해야 하므로 유의하기 바란다. 영어와 친하지 않다면 캐나다 소재의 한글 사이트인 mydvdbox.com와 국내에서 해외 DVD의 구매대행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papadvd.co.kr를 추천한다. 크라이테리언에 버금가는 DVD 제작사 우리도 만만치 않아요! 제작기술이 발전하면서 DVD 퀄리티는 상향 평준화되었지만 고전영화들에 대한 복원의지나 DVD 부록에 대한 기획 등을 고려하자면 크라이테리언에 필적할 만한 업체는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년 전부터 자사의 고전영화 복원에 노력을 기울여온 워너브러더스는 칭찬받을 만하다. <마이 페어 레이디>의 복원상태는 과연 크라이테리언이라도 가능하였을까 의심스러울 정도였으며 막스 브러더스 컬렉션이나 필름누아르 컬렉션 등의 예상치도 않았던 작품들을 출시하고 있다. 단 가끔 <베니스에서의 죽음>처럼 복원은 잘하고도 부록을 좀더 추가한 2장짜리 타이틀들을 유럽에만 출시한 것은 감점요인이다. 그외 고전영화나 아트영화를 괜찮은 퀄리티로 지속적으로 출시해주고 있는 영국의 bfi와 유레카 그리고 고전보다 모던클래식영화들을 주로 출시하는 아티피셜 아이가 있다. 특히 <부초>의 DVD 화질은 과도하게 짙은 색감의 크라이테리언보다 아티피셜판이 더 낫다. 프랑스에서는 프랑수아 트뤼포나 클로드 샤브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 등의 박스 세트를 출시하고 있는 mk2가 고전과 최근작을 꾸준하게 출시하고 있다. <장비고 컬렉션>이나 <판토마> <엘도라도> 등의 작품을 출시한 구몽영화사의 복원 노력도 인상적이다. 비디오와 동급의 퀄리티에서 <메트로폴리스>와 <니벨링겐> 등의 출시로 환골탈퇴한 키노 비디오도 이젠 주목할 만하다.

<유칼립투스> 제작중단돼 호주영화계 뒤숭숭

러셀 크로와 니콜 키드먼이 호주에서 촬영 중이던 영화<유칼립투스>(Eucalyptus)의 제작이 갑작스레 중단되어 호주영화계가 술렁이고 있다. 폭스 서치라이트가 제작하는 2500만달러 예산의 <유칼립투스>는 두 스타배우가 출연한다는 사실만으로 큰 기대를 모았던 작품이다. 이들은 호주가 배출한 배우로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하다. 제작사 폭스 서치라이트는 “(연출과 각본을 맡은 조슬린 무어하우스의) 시나리오가 수준 이하였기 때문”이라고 공식적인 제작 중단 이유를 2월11일경 밝혔다. 현지 언론들은 이번 사태가 호주영화산업에 ‘재앙’과도 같다고 보도했다. 스탭 80여명이 졸지에 실업자가 되었고 촬영지인 뉴 사우스 웨일즈 주의 작은 마을도 앞으로 3개월간 예약됐던 숙박료와 각종 편의시설 수입을 잃게 됐다. 그리고 일부 영화관계자들은 제작사가 밝힌 중단 이유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조연으로 출연한 휴고 위빙은 <데일리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모든 것을 시나리오 탓으로 돌리는 것은 불공정하다. 무어하우스가 쓴 시나리오는 매우 훌륭했다”고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 함께 출연한 배우 잭 톰슨도 위빙의 의견에 동의하면서 “지난 몇 주간 키드먼과 감독이 함께하는 리허설도 잘 진행됐고 어떤 수정요구도 없었다”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에 따르면 크로가 대본 수정을 요구했다고 한다. 애초 19살 소녀였던 여주인공을 키드먼에게 맞게 고쳐달라고 했다는 설도 있고, 키드먼의 역할은 잘 수정됐지만 크로가 자신의 비중을 늘려달라고 주장했다는 설 등 불분명한 이야기들이 나도는 상황이다. 그러나 두 배우의 홍보담당자는 함구중이다. 가 다시 제작될 수 있을지는 제작사의 결정에 달려 있다. 이 영화는 아름다운 여인(니콜 키드먼)과 결혼하기 위해 시험에 들게 되는 만담가(러셀 크로)의 이야기다. 여인의 아버지가 갖가지 종류의 유칼립투스 나무 이름을 대야만 결혼 승낙을 해주겠다는 조건을 내걸었기 때문이다.

‘한류 지속될수 있을까’ 현지 경험 대사들 전망

황용식 “당장 수익 없어도 다방면 지원을” 이영준 “남아시아 깔보는 풍조 사라져야” 문하영 “드라마 요소마다 코리아 홍보 필요” 한류 열풍 진짜일까? 최근 일본에서 보아의 <베스트 오브 소울> 음반 선주문량 80만장이 매진됐다. 또 ‘욘사마’는 일본뿐만 아니라 남아시아에서도 국빈대접을 받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홍보전략 부재와 한탕주의로 금새 시들해질 거라는 전망도 있다. 중앙아시아까지 뻗어간다는 한류, 외국 문화를 받아들이기에 급급했던 한국인들의 보상심리가 덧입혀져 과장된 건 아닐까? 과연 지속될 수는 있을까? 공관장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국내에 들어온 황용식 주타이베이 한국대표부 대표, 이영준 말레이시아 대사, 문하영 우즈베키스탄 대사가 지난 15일 외교부에서 만나 현지에서 보고 들은 한류를 바탕으로 이런 질문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구본우 외교통상부 문화외교국장이 사회를 맡아줬다. 나이 차별이라고 비난받을지 모르지만 솔직히 비, 보아, <겨울연가>에 공감하는 지긋한 외교관들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겉도는 딱딱한 이야기들만 나오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대사들은 의외로 구체적인 경험을 들려주며 이야기의 재미를 더해주었다. 구본우 문화외교국장(사회) | 여러 나라에서 오신 대사님들과 한류를 유지 발전시키기 위한 정부의 구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돼 뜻 깊습니다. 우선 현지에서 직접 보고 느끼신 한류의 현황에 대해 말씀해 주시죠. 특히 대만은 한류의 원조 가운데 한 나라라고 할 수 있는데요. 황용식 타이베이 한국대표부 대표 | 한국 문화상품이 경쟁력이 있다는 건 확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만에선 한국 드라마 시청률이 높아서 광고라든지 파생 상품 판매, 관광으로 연결되고 있어요. 지난해에 한국에 온 관광객의 27.4%가 대만, 일본, 중국인이었고, 한국 수출업자들의 66.6%는 한류가 수출에 기여한다고 답했습니다. 2003년 한국의 드라마 해외 수출 가운데 24%를 대만이 차지했죠. 대만엔 방송채널이 100개가 넘는데 지난해 6월과 10월에 방송된 <대장금>의 시청률은 6%로 최고였습니다. 외교관 모임에 가면 부인들이 아홉시 전에 집에 가서 대장금을 봐야 한다고들 했죠. 지난 선거 때는 한 여성 후보가 대장금에 나오는 한복을 입고 유세했습니다. 정치에서도 한류를 활용하고 한국 옷과 음식에 대한 인기도 높아졌죠. 또 1992년 단교한 뒤 한국 이미지가 대단히 나빴는데 한류 뒤 바뀌었어요. 이영준 말레이시아 대사 | 말레이시아의 상황은 대만이나 중국, 일본처럼 한류 열풍이라고 하기엔 좀 부족하지만 드라마나 영화는 텔레비전에서 방영하고 있습니다. <상도> <올인> <다모>를 내보냈고 요즘엔 대장금까지 방영하고 있죠. 주로 황금시간대에 배정돼 있고 화교, 이슬람 구분 없이 사랑받고 있어요. 특히 2002년에 소개된 <겨울연가>의 인기가 폭발적인 건 틀림없습니다. 제가 2003년에 말레이시아 장관을 예방하러 갔더니 비서부터 한국 대사라고 반기더군요. 자기가 겨울에 꼭 한국에 가겠다면서요. 그곳 과학기술부장관은 겨울연가의 영상기술까지 설명을 하더라고요. 페낭에서는 국왕과 당시 부수상이 참석한 행사 중에 사회자가 겨울연가 주제곡을 부르겠다고까지 했어요. 귀빈들이 다 절 쳐다보더라고요. 그때까지 겨울연가를 안 본 저는 창피해서 며칠동안 밤을 새워 봤습니다. 하지만 대만 등 다른 지역과는 달리 대중 음악은 거의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겨울연가 주제곡이 묶인 음반은 나와있지만 인기 가수가 초청되고 공연하는 이벤트는 미약하죠. 우리 음악이 잘 소개되지 않았습니다. 또 음반 불법복제가 워낙 많아 수익을 내기가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또 이슬람 사회라서 밤 문화가 없어요. 황용식 "단교뒤 실추된 이미지 개선 큰몫" 이영준 "화교·이슬람 구분없이 사랑받아" 문하영 "성실·근면 고려인 한류문화 기반" 문하영 우즈베키스탄 대사 | 이제까지 러시아와 인도의 영화나 드라마가 강세였던 우즈베키스탄에서 한류는 한마디로 폭발적입니다. 지난해 겨울연가를 방송했는데 시청률이 60%를 기록했어요. 사상 처음이랍니다. 지난 주말에 제가 각국 대사들이 출연하는 라디오 생방송에 나갔는데 사회자가 한국 대사가 나오자 청취자 질문이 보통 때보다 3배 더 많이 왔다고 하더라고요. 겨울연가 때문이랍니다. 또 일요일 저녁 8시 황금시간대 텔레비전 방송에도 나가게 됐는데 그것도 한류 때문이었어요. 우즈베키스탄의 한류는 우연한 현상이 아닙니다. 첫째로 한국의 이미지가 상당히 좋아요. 중앙아시아 젊은 사람들의 꿈이 아파트를 사서 대우차 타고 삼성, 엘지의 냉장고, 텔레비전을 들여 놓은 뒤 겨울연가를 보는 거라고 하더군요. 한국 기업의 가전제품 시장점유율이 80%에 이를 정돕니다. 두번째로 거기엔 20만명에 달하는 고려인 사회가 있는데 이 분들에 대한 이미지가 좋습니다. 성실하고 근면하다고요. 이 분들이 한류문화의 기반이 되고 있죠. 또 하나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은 굉장히 가족적이고 폭력을 싫어해요. 잔잔한 대가족 분위기를 좋아해서 우리 이미지와 맞죠. 우즈베키스탄에선 연평균 산업연수생 3천여명이 한국으로 오고 있는데 경쟁률이 100대 1이에요. 한국에서 3년 살아 2만~3만달러 벌면 아파트 사고, 결혼하고 가게까지 차리죠. ‘코리안 드림’이 있기 때문에 한국어도 많이 배웁니다. 우즈베키스탄의 제일 좋은 대학 3군데에 한국어 학과가 있고 커트라인도 높죠. 구 | 덧붙이자면 현재 한류, 특히 드라마는 중남미, 아프리카까지 확산되고 있어요. 중남미에선 2001년, 2002년 <별은 내 가슴에> <이브의 모든 것>이 큰 인기를 끌었죠. 이집트에선 <가을동화>가 그렇고요. 먼 아프리카 가나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아시아는 상업주의에 기반을 두고 한국 문화상품이 진출했다면 중남미나 아프리카에선 정부의 구실을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정부에서 판권을 사서 현지인에 맞게 더빙 입혀 무료로 배포한 게 확산되는 데 기여했다고 봅니다. 문 | 중앙아시아아는 남아시아와 달리 돈이 없어서 한국 문화상품을 수입하기 어려워요. 그러니 말씀하신대로 정부 구실이 중요합니다. 여기 사람들은 겨울연가의 준상이와 유진이가 친척 같다고 이야기해요. 이곳 외무성 교역국장은 겨울연가를 4번 봤다고 하더라고요. 그 정도로 마니아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좋아하는데 배용준씨나 최지우씨를 한국 정부에서 문화홍보대사로 위촉해 보낼 수는 없나요? 구 | 정부에서 그렇게 하고 싶어도 현실적인 제약이 많아요. 연기자들이 워낙 바쁘고 비싸니까요. 문 | 우즈베키스탄 대사가 “배용준씨가 너무 비싸면 최지우씨를 섭외하면 어떻겠냐”고 했더니 다른 대사들이 “최지우씨도 못지 않다”며 웃었다. 대사들은 예전엔 한국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아 겨울연가에 열광하는 현지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단다. 결국 필요해서 봤는데 재밌더라고 했다. 황 | 대만엔 자국 방송 쿼터제 같은 게 없을 정도로 상당히 개방적이죠. 한국 드라마뿐만 아니라 오래전부터 일본, 홍콩 드라마도 많이 들어왔습니다. 최근 한국 드라마가 인기인 건 한 마디로 잘 만들어졌기 때문이죠. 연기도 좋은데 소재도 굉장히 대만 사람들이 공감하는 겁니다. 예를 들면 대장금에 나오는 어의나 궁중 권력 암투는 대만 사람들도 자기 역사에서 다 아는 거죠. 한국 드라마에서 그런 게 나오니까 공감하면서도 신기해해요. 대만 사람들은 한국 드라마에 유교적 가치관이 더 잘 보존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잃어버린 자신을 찾아주는 구실을 한다고 할까요? 거기도 고부 갈등이 똑같이 있는데 한국 드라마에서 실감나게 표현하니까 끌리는 거죠. 누구든지 겪을 수 있는 건데 심리묘사가 섬세해서 한번 보면 그만 두질 못 한다고들 합니다. 또 한국 드라마엔 동양문화를 바탕으로 서구문화를 버무린 역동성이 있다고 합니다. 대만처럼 변화가 없는 사회에서는 한국 청년들이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걸 신기해 하죠. 일본 드라마에 식상했는데 한국 드라마가 새로운 기쁨을 줬다는 거죠. 구 | 말씀하신 대로 감정이 공유되는 부분이 있을 때 잘 받아들여지는 것 같습니다. 모든 한국 드라마가 현지에서 다 잘되는 건 아니죠. 황 | 현재 대만에서는 한국 드라마 1회분을 1만~2만달러 정도에 삽니다. 대장금은 촬영할 때 계약해서 1회에 1만달러로 고정됐죠. <올인>은 1회에 1만8000달러에 들여왔지만 실패했습니다. 대만에서 한류를 움직이는 중심은 역시 40~50대 주부들이에요. 섬세한 사랑, 가족 관계가 먹히지 도박이나 남성적인 소재는 잘 안 받아들여지는 것 같습니다. <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도 잘 안됐어요. 구 | 이집트 주재 한국대사관에서 겨울연가 방영 뒤 50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시청자의 90%가 여성이었고 주부가 많았어요. 이들은 가족 구성원 사이의 애정, 윗사람에 대한 존경이 이집트 가치관과 비슷하다는 의견을 냈고 그래서 다시 보고 싶다고 했죠. 이집트 국영방송사 쪽도 재방영을 적극적으로 희망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듯 공감대 형성이 중요한데 혹시 현지의 반일, 반미 정서 때문에 한국 드라마가 상대적으로 더 인기를 얻고 있는 건 아닌지요? 황 | 대만엔 반일감정이 거의 없습니다. 지금도 일본어로만 방송하는 채널이 있고 일본 자동차도 엄청나게 인기가 있죠. 역사적으로 볼 때 대륙보다 일본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는데 우리 정서와는 많이 다르고 문화도 일본과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문 | 중앙아시아에서 일본의 영향력은 미미합니다. 아리랑 티브이가 나오는데 일본 채널은 없어요. 할리우드류는 폭력적이고 선정적이라는 이미지가 강해서 이슬람 문화권에 속하는 중앙아시아에선 별로 인기가 없습니다. 또 우즈베키스탄 정부가 폭력, 선정성,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영상물은 엄격히 방영을 통제하고 있어요. 그래서 한국 드라마 중에서도 겨울연가 <여름향기> <호텔리어> 등 잔잔한 드라마를 좋아하죠. 올인은 별로 반응이 좋지 않았습니다. 올해엔 대장금과 <다모>를 방송하려고 하고 있죠. 일본 드라마는 불륜 등 너무 나갔다는 의견이 많아요. 이에 비해 한국 드라마는 순수하고 절제됐다고 평가하죠. 이 | 말레이시아엔 서구 문화에 대한 동경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슬람으로서 미국 문화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있어요. 한국 문화가 서양과 동양을 잘 섞고 있다고 보죠. 일본 드라마에는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요소가 많아 이국적이긴 해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들 해요. 한국의 적당한 서구화와 공동체 문화에 대한 동경이 있죠. 한국 드라마의 상황이 자신의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과 비슷해서 친숙하다고들 합니다. 대사들은 한국 드라마에 스민 가족정서, 유교적이면서 서국적인 문화가 현지 주민들의 공감을 사고 있다고 했다. 한류의 지속 여부에 대해서도 낙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이 말레이시아 대사는 방글라데시에서도 한국 드라마에 대한 평가가 좋다며 이슬람 문화권까지 영향력을 넓혀갈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덧붙였다. 구 | 그런데 한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상업주의에 치우쳐 홍콩 드라마처럼 한번 확 일어났다가 꺼지는 것 아니냐는 겁니다. 황 | 홍콩 영화나 드라마가 퇴조한 이유는 소재가 너무 단조롭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다섯 번 열번 보면 식상하죠. 우리 드라마도 삼각관계 등 엇비슷하다고 하지만 현재까지는 줄거리가 다 다르고 재미도 다 다르다는 게 현지 평가입니다. 또 우리가 유리한 건 중국보다도 표현의 자유가 더 많다는 거죠. 그리고 일본보다 더 과감한 투자를 하니까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문 | 드라마는 시나리오라는 문학적인 요소와 패션, 음악, 촬영기술까지 가미된 첨단 복합 산업이죠. 이런 요소들이 다 어느 수준에 이르러야 드라마가 잘되고 우리는 그 수준에 도달한 것 같습니다. 금방 수그러들지는 않을 거예요. 특히 중앙아시아엔 한국 기반이 있어 오래 갈 겁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드라마 중심으로 소개되고 있다는 거죠. 한국 문화에서 드라마가 다는 아니지 않습니까? 미술, 음악 등 다양한 장르에서 한류를 이어갈 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 생각할 필요가 있어요. 우리 미술가들이 현지인과 교류하고 같이 전시도 하도록 돕고, 조수미씨나 신영옥씨 등도 현지 오페라 가수들과 합동 공연하도록 주선해 볼 수 있죠. 전통 있는 예술단도 보내고요. 다양하게 접근해야만 오래갈 수 있어요. 문화의 폭과 깊이가 중요하죠. 또 중앙아시아, 러시아의 고려인 동포사회가 상당히 고립돼 있어요. 한류를 고리 삼아 그 분들의 외로움을 달래고 민족적 정서나 정체성을 북돋울 수도 있을 겁니다. 이영준 “경제적 풍요 대중 문화욕구 다양 다른분야 진출해도 성공할 것” 황용식 “작품마다 과감한 투자·소재다양 ‘반짝’ 홍콩영화와 달리 오래갈 것” 문하영 “‘한국차에 한국 TV로 겨울연가 보는것 중앙아시아 젊은이들 꿈” 이 | 말레이시아에도 홍콩, 중국, 대만 드라마가 많이 수입됐는데 한국 것만큼 인기를 끌지 못했죠. 최근 말레이시아 텔레비전3에서 드라마 선호에 대한 즉석투표를 했는데 한국이 35%, 인도네시아 31%, 말레이시아 20%, 기타가 14%로 나왔어요. 한국관광공사 쿠알라룸푸르 지사에서 벌인 설문조사에서는 말레이시아인 19.1%가 드라마나 영화로 한국을 접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물론 열기를 이어가려면 겨울연가 같은 경쟁력 있는 문화 콘텐츠를 개발하는 게 중요하겠죠. 하지만 여기에만 기대할 수는 없어요. 말레이시아는 20년 전부터 동방정책을 펴왔습니다. 일본과 한국에서 배우자며 매년 공무원, 학생들을 한국에 보냈어요. 이런 경험을 한 2천여명이 현재 말레이시아 정부 각 분야에서 일하고 있고 장관이나 고위직에 오른 사람들도 있습니다. 지난해엔 외교통산부 산하 국제협력단 지원을 받아 동창회도 열었죠. 거기서 관악산이 어떻게 바뀌었다는 둥 한국의 기억과 경험을 나누더군요. 이들이 지속적으로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가지도록 자료도 보내주고 지원해야 해요. 아쉽게도 한국 안에선 아직도 아시아 경시 풍조가 있습니다. 특히 문화 부문에서 그렇죠. 유럽에는 유명한 공연단도 많이 보내지만 말레이시아엔 잘 안 보내죠. 이런 풍조가 사라져야 합니다. 말레이시아 대중이야 사물놀이 등 한국 전통 음악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친한파의 관심을 끌 수는 있어요. 그 사람들을 계속 지원하면 한류의 뿌리를 튼실히 할 수 있죠. 황 | 국제 경쟁력이 있는 드라마를 만들려면 우선 훌륭한 연기자가 많이 나와야겠죠. 한국엔 전문대 합쳐 영화 관련 학과에서 매년 1000여명씩 배출하니 별 문제 없다고 봅니다. 둘째는 자금력이죠. 현재 한국이 일본보다 드라마제작에 더 많이 투자해요. 세번째는 매개체와의 공생입니다. 아무리 좋은 문화상품을 만들더라도 방영 안하면 보통 사람들이 접근을 못하죠. 매개체에도 이윤이 남아야 합니다. 물론 시장 논리에 따라 움직이겠지만요. 한 대만 방송국의 한국 드라마 방영시간을 보면, 2001년 467시간에서 2002년 903시간으로 늘었다가 2003년 811시간, 2004년 356시간으로 줄었어요. 그 이유는 한국 드라마의 중국어 더빙권을 한국 쪽에서 회수했기 때문이죠. 그 전엔 현지 방송국이 더빙권을 되팔아 수익을 많이 남겼습니다. 한국 드라마를 전문적으로 내보내는 대만 방송국에선 최근에 이익이 안 남는다고 볼멘소리를 많이 냈어요. 서너배씩 값을 올리면 어떻게 하냐고요. 하지만 아직까진 엄살인 걸로 드러났습니다. 대만 신문 보도를 보면 한국 드라마를 내보내고 광고만으로도 10초당 100만원에 가까운 수입을 얻는다고 해요. 또 디브이디, 책자 판매로 부가 수익을 올리고 있죠. 그러니 방송이 가능했던 거죠. 이 | 말레이시아 대사는 아시아 경시 풍조가 사라져야 한다고 여러차례 강조했고 문 우즈베키스탄 대사도 거들었다. 이어 대사들은 한국 문화를 일방적으로 수출하려 하기보다는 문화교류에 방점을 찍어야 현지인들에게 거부감 없이 한류가 계속 받아들여질 거라고 내다봤다. 구 | 말씀하신대로 한류가 한국에 대한 관심까지 불러 일으키는 건 사실입니다. 이런 분위기를 북돋우려면 정부가 구체적으로 어떤 구실을 해야 할까요? 황 | 여건 조성을 위한 대담한 지원책이 있어야 합니다. 한국문화원 설치가 그 가운데 하나예요. 드라마를 중심으로 한류가 퍼지면서 한국어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당장은 수익이 안 맞더라도 독일, 프랑스, 일본, 미국 처럼 문화원에 우수한 한국어 교사를 파견해 한글을 가르치고 투자해야죠. 언어 보급이 문화산업 진출의 인프라가 될 테니까요. 또 드라마 이외 각 방면의 문화상품에도 투자해 고급화하면 경쟁력을 가질 수 있어요. 예를 들면 뮤지컬 명성황후가 그렇죠. 한국 순수예술이나 문화 일반의 상품화를 시도해볼 수 있어요. 사물놀이, 판소리 등이 국제 사회에 소개된 적은 있지만 특정 인사를 대상으로 단기간 공연하는 수준에 그쳤습니다. 일반 대중을 상대로 장기적인 공연을 벌이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죠. 덧붙여 관광산업으로 연결하려면 시설, 안내원의 자질 향상이 병행되어야 해요. 한국 방문했던 대만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음식문화에 익숙하지 않아 중국처럼 코스로 나오는 줄 알았다가 잘 챙겨먹지 못했다거나 지나치게 영리 위주로만 안내해서 불쾌했다는 지적들이 많아요. 이 | 말레이시아엔 중국계 25%, 말레이계 60%, 인도계 10%가 어울려 삽니다. 그래서 세계화에 유리하죠. 이슬람 나라이지만 외국문화를 잘 받아들여요. 예전에 아세안 문화장관 회의가 말레이시아에서 열렸을 때 한·중·일 문화장관과 예술단도 초청한 적이 있어요. 그 때 정동극장 팀이 왔는데 아주 휘어잡았습니다. 지금도 카델 문화장관은 그 공연을 잊지 못하고 있죠. 난타가 왔을 때도 열광했고요. 말레이시아는 경제적으로 살만해서 대중들의 문화 욕구가 폭발적이에요. 한국을 찾는 관광객도 2001년 5만5848명, 2002년 8만2720명, 2003년 9만623명으로 껑충껑충 뛰고 있어요. 고급 문화 팀들이 와주면 얼마든지 받아들일 자세가 돼 있고 음악 등 다른 분야도 성공할 가능성이 큽니다. 문 | 삼성, 엘지 등 한국 기업들이 자사 홍보 전략의 하나로 한국 드라마를 본격적으로 활용하고 있어요. 이런 구실을 장려해야합니다. 중앙아시아에도 한국 문화원이 없는데 설치가 늦었어요. 문화원에 100석 정도 되는 영상실 만드는 거 돈도 많이 안 듭니다. 거기서 영화 상영하고 그러면 굉장한 홍보 효과가 있을 거예요. 또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깊이 있게 보여줄 수 있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방영할 필요가 있어요. 너무 상업적인 이미지만 심지 말고 유구한 역사와 문화가 있는 나라라는 걸 알려야죠. 황용식 "한국배우 죄다 성형미인 비아냥도" 문하영 "다문화민족 일방 주입 역효과우려" 이영준 "연예인 이미지 금세 식을 수도 있어" 구 | 그런데 특정 지역에선 한류가 큰 인기를 끌면서 부정적인 현상도 나타나고 있어요. 너무 많이 들어가니까 현지인들이 위협감을 느끼며 거부반응을 조금씩 보이고 있죠. 이런 부분을 완화해가야 할 텐데요. 그래서 정부도 한류가 활기를 띠고 있는 나라의 문화를 한국에 적극적으로 소개하도록 계획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시아 나라들의 우수 영상물을 수입해 방영하는 거죠. 다른 문화에 대해 상당히 개방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게 한류가 무리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하는 바탕일 겁니다. 황 | 네. 말씀하신 거부반응은 나타나고 있죠. 대만에선 한국 배우들은 다 성형수술해서 자연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라느니 이런 말들이 돌며 깎아내리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대만 연기자들의 반발도 있고요. 아무래도 자신의 예술 산업이 위축되니까 실속을 챙기자는 움직임이 일죠. 얼마 전엔 연예계 엑스파일을 대만 언론에서 공개해 한국 배우가 이런저런 추문이 있다고 보도하는 바람에 저희 쪽에서 항의도 했습니다. 대만 문화가 연예계에 대해선 믿거나 말거나 식으로 마음대로 이야기해서 이런 보도가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하겠지만 한류에 대해 보호주의적이고 방어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건 사실이죠. 과거 한국에서 일본, 중국 문화를 개방할 때 그쪽 문화가 범람해 우리 문화가 위축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었지만 결과는 아니었죠. 개방을 통해 우리 문화의 체질을 높일 때입니다. 문 | 말레이시아나 중앙아시아도 다 문화민족입니다. 우즈베키스탄도 5천년 역사를 가지고 있어서 자부심이 대단하죠. 일방적인 진출은 역효과가 우려됩니다. 한국 가수가 우즈베키스탄 가수와 함께 콘서트를 열고, 미술전시를 해도 함께하는 자세가 필요하죠. 또 그쪽 예술가들을 한국으로 초청해 교류할 수 있는 거고요. 이 | 네. 그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할 때 한국 예술단 등이 많이 방문하고 또 말레이시아 예술단도 많이 초청해야죠.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건 연예인의 이미지는 언제든지 떨어질 수 있는 거니까 한류가 바로 한국이라는 등식이 성립되도록 내버려두면 곤란하다는 겁니다. 말레이시아가 ‘진짜 아시아’, 홍콩이 ‘아시아의 세계도시’로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것처럼 우리도 한류와 별도로 나라 홍보 전략이 필요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