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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1997)

[백은하의 애버뉴C]8th street / 아담의 아름다운 키스

당신이 보수적인 사람이라면, 게다가 “커피 마실 돈이면 술을 먹겠다”고 공공연히 외치고 다니는 전형적인 한국형 남성이라면, 아마 열었던 문을 닫고 돌아설지도 모르겠다. 스스로 꽤나 개방적이며, 카페를 놀이터이자 삶터로 생각했던, 뉴욕에서 살고 있는 어떤 여자도 잠시 머뭇거려야 했으니까. 이곳은 첼시의 중심부에 자리잡은 카페 ‘빅 컵’이다. 카페에 앉아 있는 대부분이 남자들이고, 그들의 80%이상은 커플이다. 카페란 여자들의 전용공간이고, 게이들은 대부분 옷장 속에 숨어 있다고 오해했던 사람들에겐 참 생소한 풍경일 것이다. 전면이 유리로 활짝 오픈된 이 카페에 앉은 연인들은 1월의 눈더미도 단숨에 녹일듯한 뜨거운 눈빛을 나누거나 아이팟 이어폰을 다정히 나누어 끼고 새로 다운로드한 음악파일을 함께 듣고 있다. 맨하탄 서쪽 다운타운, 웨스트빌리지와 미드타운 중간에 자리잡은 첼시는 낡은 건물들을 개조한 독특한 갤러리 지구로 유명한 동시에 레인보우 깃발이 여기저기 걸려있는 게이들의 동네다. 뉴욕에서의 삶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우연히 이 카페 문을 열었던 나는 갑자기 등판기회를 박탈당한 야구선수가 된 기분이 들었다. 삼십 평생 지니고 있던 이성애자로서의 기득권, 헤게모니가 한방에 전복되는 순간이었다. 그 곳에 홀로 들어선 나는 외계인 같았다. 허, 참, 여자친구 손이라도 꼬옥 잡고 갔으면 좋았을 것을. 하지만 이제 이 카페에 혼자 가도 전혀 당황스럽지 않다. 그 사이 새로운 성 정체성을 찾았다는 말은 아니다. 뉴욕에서 게이 커플이나 레즈비언 커플은 비단 첼시나 특정 카페에서만 볼 수 있는 진귀한 풍경이 아니기 때문이다. 랜덤으로 방문한 흥미로운 블로그의 주인도 게이였고, 아르바이트 하는 가게의 단골 중에 레즈비언 커플도 꽤 많고, 소개 받은 새로운 남자 중에 상당수가 게이였다. 사실TV를 틀거나 영화를 보면 이 사실은 더욱 극명해진다. 벌써 7년째 장수중인 NBC시트콤 <윌&그레이스>는 남녀 주인공간의 로맨스 없이도 그 인기가 여전하고 (윌이 게이다), ‘메이크 오버’ 프로그램의 히트작이라고 할 수 있는 브라보TV의 <퀴어 아이>는 새 시즌을 맞이하여 게이 스타일리스트들이 답답한 스트레이트 여자를 감쪽같이 변신시켜 준다는 새로운 아이템, <퀴어 아이 포 스트레이트 걸>을 내놓았다. 21세기의 매스미디어에 그려지는 게이의 이미지는 90년대 <필라델피아>같은 영화에 나왔던 비극적이고 무거운 기운과는 다르다. 이들은 이태원의 어두운 바가 아니라 대낮의 거리에서 서로를 껴안고, 후미진 극장 구석이 아니라 오픈된 카페에서 새로운 연인을 물색한다. <엘렌 쇼>에서 바지정장을 입고 춤추며 등장하는 (레즈비언으로 유명한) 엘렌 드 제네러스의 자신만만한 몸짓을 보고 있다 보면 동성애자에 대한 사회적인 이해가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렀는지 알 수 있다. 물론 여전히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의 게이친구처럼 스트레이트 여성들이 꿈꾸는 친구로서의 게이. 즉 성적 긴장감이 없어 안전하고 이해력은 여자친구 이상이고 가끔 남자친구 대용으로 전시 할 수 있는, 이성애자들의 편리에 의한 모습만을 강조하는 부분도 없지는 않다. 또한 이런 개방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극우 보수주의자들의 곱지 않은 시선이 존재하고 우리 모두가 “약간은 인종차별주의자들”인 탓에 게이에 대한 농담도 늘어나고, 그들의 커뮤니티가 확장되는 것을 우려하는 기운들도 만만치 않다. 하긴, 텔레토비 마을처럼 모두 모여 “아이 좋아-“만을 연발하는 천국이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레이 찰스의 생애를 그린 <레이>의 한 장면을 보면 바로 지난 세기만 해도 버스 내부에 ‘컬러’가 다른 사람과 백인들을 구분하는 벨트가 쳐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게 백년도 안된 세월 동안 세상은 빠르게 서로간의 경계를 허물어가고 있다. 물론 내 몸 속에 흑인의 피가 흐르지 않는 이상 소울이나 힙합의 리듬을 정확히 이해 할 수 없듯 이성애자로 살면서 동성애자들의 완벽하게 이해하기란 불가능 한 일일 것이다. 다만 이들과 부딪혀 살아왔던 그 짧은 시간이 가져다 준 변화라면, 그동안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면 이제는 그들의 ‘즐거움’에도 관심이 간다는 것이다. 그나저나 글을 쓰다 보니 뉴욕은 점점 이성애 미혼 여성이 살아가기에 가혹해져만 가는 도시 같다. <섹스 앤 더 시티>의 “뉴욕 30대 남자 중에 우리가 사귈만한 남자들은 더 이상 없어. 줄리아니(전 뉴욕시장)가 홈리스들을 처리할 때 다 같이 쓸어버렸다니까” 같은 대사가 과장이 아닐 정도다. 이런 기회불균등의 작은 섬에서 나는 여전히 ‘스트레이트 싱글 아시안 걸’로 살아가고 있다. 마이너리티도 이런 마이너리티가 없다. 흔한 것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귀한 것을 찾아나가는 것이 진정한 모험이라고 스스로 위로해봐도 여전히 뉴욕은 잠 못 이루는 밤이 참 많은 외로운 도시다.

한국영화 속 ‘소녀들의 섹슈얼리티’의 진부한 도식

지난 한해, <어린 신부>를 시작으로 한국 영화계에는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조폭 아저씨들과 80년대 오빠들의 틈바구니를 헤치고 “나는 사랑을 아직 몰라”라며 깜찍하게 ‘사랑’을 노래하는 소녀들의 등장. 이 소녀들은 더이상 첫사랑에 눈물을 머금는 순진한 십대도, 그렇다고 제도와 세상물정을 꿰뚫는 속세의 여인도, <나쁜 영화>나 <눈물>에서처럼 사회의 극단을 체현하는 ‘주변부’ 아이들도 아니다. 그렇다면 소녀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백지의 표정을 지으며 그 무거운 제도와 사랑과 성을 단순한 종잇조각 혹은 게임으로 만들어버리고 있는 것일까? 철없음을 무기로 사실은 매우 영악하게 거대 담론을 이용하고 있는 것일까? 진지함으로 포장된 제도, 사랑, 성의 이면에는 아무런 본질이나 진리가 존재하지 않음을 자신들만의 언어로 조롱하고 있는 것일까? 아쉽지만 위의 의문은 단지 기대에 지나지 않는다. 이 기대를 실현하기에 소녀들은 여전히 진부함과 순종의 울타리를 맴돌고 있다. 금기를 ‘말한다’는 것이 곧 그것을 ‘사고한다’는 의미로 이어지지는 않는 것처럼, 소녀들은 그 어느 때보다 사랑과 성에 대해 조잘대지만, 그녀들의 ‘말’에는 아무런 울림이 없다. 소녀들의 섹슈얼리티에 관한 영화들이 이제는 꽤 다양해진 에피소드들과 함께 우후죽순처럼 쏟아짐에도 그 양에 비해 이러한 영화들은 근본적으로 동일한 구조를 토대로 재생산되고 있다. 그 구조는 소녀와 섹슈얼리티간의 파격적인 만남을 억지로 순화시켜 ‘정상’의 범주에 끼워넣는 데 일조한다. 소녀와 섹슈얼리티는 서로를 도발하는 대신 서로의 날카로운 톱니바퀴들을 무디게 갈아서 새로운 기획 상품으로 변신한다. 조폭영화, 복고영화의 뒤를 잇는 <어린 신부> 속편들. 이러한 경향을 롤리타 콤플렉스와 같은 남성 판타지로 규정하기에는 영화의 주요 관객층이 소녀들 자신이라는 이유를 굳이 제시하지 않더라도 지나치게 단순화된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러므로 이 글은 소녀의 섹슈얼리티를 소재로 재생산되는 최근 한국영화의 흐름을 살펴보며 이 영화들의 화려한 껍데기를 벗겨내보고자 한다. 그리고 그 껍데기 속에 감추어진 지극히 상투적인 구조에 주목한다. 소녀의 섹슈얼리티를 소재로 펼쳐지는 최근의 영화들에는 대개 안전장치가 존재한다. 이것은 팔팔 뛰는 섹슈얼리티의 에너지 혹은 퇴폐와 고통을 넘나드는 그것의 그림자를 적당한 강도로 억제시키기 위해 이 영화들이 선택하는 배경의 문제이다. 안전장치1: 학교 제도 안의 소녀들에게 안착하는 섹슈얼리티 첫째, 섹슈얼리티의 담론을 학교 울타리 안에서 구성해내며 제도 안에서의 성장통을 강조한다. <어린 신부> <돈텔파파> <여선생 vs 여제자> <몽정기2> <여고생 시집가기> <제니, 주노>부터 <늑대의 유혹> <그놈은 멋있었다>에 이르기까지 소녀들은 교복을 입고 사랑하고 욕망한다. 고등학생 신분으로 임신을 하고(<제니, 주노>), 결혼을 하고(<어린 신부>) 거침없이 성담론 위에 올라 마치 표면적으로는 제도의 틀에 균열을 일으키는 듯 보이지만 사실 그것은 정반대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아직 학교 안에 존재한다는 것은 아무리 성인의 범주를 침범하더라도 여전히 성인이 아니라는 사실, 그 어떤 욕망도 철없음으로 용인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것은 학교라는 제도가 성장기의 ‘아이들’에게 선사하는 너그러움이다. 그것은 학교 안 소녀들의 욕망은 어차피 사회에 아무런 위협도 가하지 못할 것이라는 믿음을 전제로 하고 있다. 안전장치2: 낭만적인 로맨스로 중화되는 섹슈얼리티 둘째, 위와 같이 학교 안 소녀들의 욕망에서 전복성을 제거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녀들의 섹슈얼리티를 로맨스로 중화시키는 것이다. 선생님에 대한 짝사랑이건(<몽정기2> <어린 신부> <여선생 vs 여제자>), 동갑내기를 향한 사랑이건 그 사랑에는 언제나 쓴물이 빠진 낭만적인 단물만이 남는다. 소녀들의 성적 욕망은 선생님의 탈을 쓴 자상한 젊은 오빠로 향하는 과정에서 싱싱함을 잃고 인생에 대한 깨달음으로 승화된다. 예컨대, <몽정기2>의 은비나 <어린 신부>의 보은, <여선생 vs 여제자>의 미남은 그녀들의 욕망이 애초 영화적으로 재단된 것이었다 해도 막무가내로 방방 뛰는 힘이 있었지만, 결국은 진정한 사랑을 찾았다거나 소중한 것은 멀리 있지 않다는 식으로 자신들의 욕망을 정리한다. 혹은 <그놈은 멋있었다>나 <늑대의 유혹>에서처럼 소녀들의 욕망은 모성에 대한 남자아이들의 욕망에 흡수되어 사랑의 이름으로 포섭된다. 그녀들의 섹슈얼리티는 밖으로 흩어지지 않고 차오르는 순간 내부로 봉합된다. 소녀들은 그렇게 성숙한다. 그녀들의 섹슈얼리티는 어찌 되었건 로맨스를 완성시키기 위한 수단이다. 그러나 그동안 소년의 섹슈얼리티는 어떻게 재현되었는가? 소년들의 성은 거친 말투와 다양한 방식(도색잡지, 비디오부터 자위를 위한 기상천외한 수단들)을 통해 노골적으로 제시되어왔다. 남학생들은 사랑이 아니라 섹스를 꿈꾼다. <몽정기>에서 로맨스의 환상에 시달리는 사람은 소년들이 아니라 그들의 여자 교생(김선아)이었다. 그녀는 소년들의 완벽한 ‘캔디’(영화에서 이 단어는 그들의 성적 환상을 충족시켜주는 대상을 일컫는 은어이다)로 존재하지만 그녀는 정작 키스 한번 못해보고 운명적 사랑만을 되풀이하는, 꿈만 먹고 사는 여자였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안전장치3: 가족이나 운명의 보호를 받는 섹슈얼리티 셋째, 소녀들의 섹슈얼리티는 학교뿐만 아니라 무방비하게 노출된 그녀들의 성을 정리정돈시켜주는 가족, 운명의 보호를 받는다. 그녀들은 자기 욕망의 자율적 주체가 아니다. 그녀들은 자신이 욕망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존재들이다. <어린 신부>에서 소녀의 결혼은 할아버지의 유언으로, <여고생 시집가기>에서는 평강공주 설화를 바탕으로 한 운명적 선택으로 정당화되고 있다(뿐만 아니라 드라마 <낭랑 18세>나 <쾌걸 춘향>에서도 그녀들의 이른 결혼은 언제나 자기 결정권 밖에 존재한다). 소녀들은 교복을 입은 채, 어느 순간 유부녀가 되어 있다. 소녀의 결혼은 조선시대로 돌아가 21세기로서는 결코 납득할 수 없는 이유에 의해 당시의 방식으로 아무런 무리없이 진행된다. 소녀들은 부모의 뜻을 거역할 수 없고, 하늘의 뜻을 피할 수 없고, 심지어 새 생명을 죽일 수 없어서(<제니, 주노>) 사랑의 끝, 결혼으로 골인한다. 이 21세기의 심청이는 도대체 누구 욕망의 산물일까. 이 영화들은 결혼이란 이같은 고지식한 무지함 속에서만 가능한 제도임을 소녀들의 섹슈얼리티를 전유하며 전달하고 있는 것일까. 이처럼 기존의 가치, 관습을 자신의 욕망과 동일시하는 소녀들이 자기 몸의 소리에 민감할 리 없다. 예컨대, <몽정기2>에 등장하는 세명의 소녀들에게 섹스는 남성의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수단이다. “너, 섹스 해봤어?”는 곧 “너, 어른이야?”의 의미로 직행한다. 그에 따라 그녀들이 그 무지한 성적 지식으로 집중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상대 남자의 성기를 발기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절박한 고민이다. 이것이 남성감독 자신의 욕망인지, 혹은 대부분의 남자들이 가진 환상인지의 여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이 소녀들의 섹슈얼리티란 고작 ‘그들’의 남근이 되기 위한 과정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운명의 남자를 위해 남근이 되려고 그토록 ‘사고’하면서도 자위의 문제에서는 “걱정 마, 그건 유행이야”라며 안심하는 소녀들. ‘나의 욕망’을 모르는 소녀들, 내가 나의 욕망을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소녀들 덕택에, 그리고 그녀들을 감싸주는 제도와 운명 덕택에 그녀들의 섹슈얼리티는 그야말로 하나의 유행이 되고 만다. 안전장치4: 결함을 내세워 변명하는 섹슈얼리티 넷째, 위와 같이 결혼으로도, 낭만적 로맨스로도 합리화될 수 없는 소녀들의 성은 비정상적 환경의 산물로 재현되며 결함의 논리와 결부되고 있다. <귀여워>와 <여선생 vs 여제자>의 어린 소녀들은 각 영화의 성인 여자보다도 성숙하고 당돌한 이미지로 나타난다. <귀여워>에서 예지원과 경쟁하는 소녀는 억척스럽고 천박한, 전형화된 주변부 여자의 이미지를 모방한다. 소녀는 성인 여자와 함께한 남자를 욕망하고 소주를 마시고 화장을 한다. 학교, 가족, 또래집단 모두로부터 분리되어 홀로 존재하는 듯한 소녀의 모습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밍키와 유사하다. 현실에 발을 딛지 않은 환상 속의 어린 마녀처럼 그녀의 이미지는 그로테스크하다. 그런데 아이의 얼굴로 성인의 섹슈얼리티를 능숙하게 흡수한 소녀는 어김없이 철거촌이라는 주변부가 만들어낸 결과물로 재현된다. 그녀는 부모 없이, 가족 없이, 든든한 울타리 없이 방치되어 되바라진 존재, 불행한 미래가 뻔하게 상상되는 존재로 그려진다. 어린 소녀가 성인의 섹슈얼리티를 모방한다는 사실은 그 자체가 하나의 성적 의미로 읽혀지지 않는다. 다만 어른을 따라하는 위험한 아이, 성장의 ‘정상적’인 도로를 일탈한 아이로 규정된다. 한편, <여선생 vs 여제자>에서는 염정아보다 전략적이고 성숙하게 남자를 유혹하는 소녀가 등장한다. 소녀는 도도한 방식으로 자신의 위치를 최대한 이용하며 상대방의 욕망을 읽어낸다. 그러나 등장인물들 중 가장 어른스럽게 보였던 소녀 역시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엄마와 단 둘이 어렵게 살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 소녀의 영리함은 더이상 성숙함의 표상이 아니다. 그녀는 사랑과 관심의 결핍에 시달리는 아이로 추락한다. 소녀가 그토록 집착했던 미술 선생님에 대한 사랑은 아버지가 없는 아이의 대체 욕망으로 규정되어 사그라진다. 이는 <몽정기2>에서도 나타나는 바, 아버지는 여주인공으로 하여금 교생 선생님에 대한 복합적인 심정과 그녀의 혼란한 섹슈얼리티에 질서정연한 논리를 부여해주는 존재이다. 그녀는 마치 왕자와 공주처럼 아버지와 춤을 추며 동화 속에서 방황을 끝낸다. 그러니까 소녀들은 아버지와 유사 아버지들에 둘러싸여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한순간 매듭짓는 법을 끊임없이 연습하는 것이다. 소녀들의 성은 아버지의 상실을 또 다른 아버지로 채우길 반복하면서 폭발하려는 순간 가라앉는다. 섹슈얼리티의 중심에는 ‘내’가 아니라 ‘그’가 존재하고 ‘그’ 또한 위험수위마다 경보음을 울리며 가족, 로맨스, 운명 등을 제시하는 기계 같은 존재이다. 소녀들은 마치 근친상간 금기의 경계 위에서 매순간 교묘하게 그 금기를 넘어서지 않으며 그와 동시에 서서히 자신의 욕망에 귀기울이는 법을 잃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소녀=성=사랑=결혼, 완결된 서사에 대한 집착 이제 소녀들의 섹슈얼리티를 다룬 이 영화들이 놓치고 있는 부분이 분명해진다. 그것은 소녀들의 몸이다. 그 몸에 대한 사유이다. 결혼, 사랑, 성적 욕망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어내면서도 그 에피소드들이 여전히 판타지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하고 마는 이유는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을 수놓는 결혼과 사랑에 대한 온갖 환상들과 그야말로 성교육 시간에만 배우는 ‘건강한 성’에 대한 이야기들이 모자이크처럼 짜맞춰져 있을 뿐, 거기에는 몸에 대한 세밀한 언어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는 위에서 언급한 영화들의 감독이 공교롭게도 모두 남성이라는 사실을 제시하기보다는(예컨대, ‘남자는 여자의 섹슈얼리티를 모른다. 여자의 욕망을 알 수 없다’ 등) 이 영화들에서 나타나는 완결된 서사에 대한 집착을 지적하고 싶다. 이러한 서사 구조상의 문제는 소녀들과 섹슈얼리티의 담론에서만큼은 그 내용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음을 밝히고자 한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소녀들의 성이 축 늘어진, 이미 시들어버린 꽃처럼 힘을 잃고 너무도 자연스럽게 로맨스 혹은 결혼에 안착한 까닭은 이 영화들이 보이는 여성의 성에 대한, 특히 소녀들의 성에 대한 무지 때문이다.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완성의 목적을 향해 달려가는가. 위의 영화들은 이에 대해 단 한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남녀를 불문하고 성이라는 것이 도대체 왜, 무엇을 위해 완결의 구조를 지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물론, 소녀=성=사랑=결혼이라는 도식 자체에도 아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있다. 최근 이러한 영화적 경향들에서 언제나 이슈가 되었던 것은 ‘소녀’가 성을 말하고 결혼을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소녀’의 결혼은 그다지 놀라워할 만한 부분이 아니다. 문제는 소녀에서 시작하여 결혼으로 이어지는 가부장제의 이 완벽한 도식, 다시 말해, 처녀에서 시작하여 엄마가 되는 여자들의 운명이 과거에 비해 좀더 노골적으로, 그러나 소녀의 섹슈얼리티를 ‘순진함’ 속에 가두고 전유하며 영악하게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위의 영화들은 소녀의 섹슈얼리티에 기승전결의 구도를 부여하여 성이 결국은 정신적 성숙을 통해 제도에 안착하는 완벽한 질서를 구상해냈다. 그들은 여성의 섹슈얼리티란 한번의 성장통으로 완성되는 무엇이 아니라 끊임없는 사유와 아픔의 과정임을 알지 못한다. 완전한 구조에 대한 그들의 욕망은 자연히 해피엔딩에 대한 강박을 낳으며 소녀들의 성에 억지로 코미디와 감상적인 눈물과 천진난만한 깨달음을 부여한다. 언제나 유사한 도식과 유사한 결말을 준비하는 이러한 서사에 동시대적 고민이 담길 리 없다. <몽정기2>에서처럼 소녀들은 어중간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여성의 성에 대한 온갖 뒤떨어진 클리셰들을 안고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몸에 대한 사유없이 진행되는 결혼, 임신, 사랑의 언어들 속에는 소녀들의 몸이 조각상처럼 존재할 뿐, 몸의 언어가 부재한다. 총체적 서사에 대한 강박은 통합된 몸, 통합적 질서에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분리되고 흩어지는 소녀들의 섹슈얼리티를 읽어내지 못한다. 공포와 슬픔으로 귀환하는 소녀들의 섹슈얼리티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에서 여고생들의 섹슈얼리티는 결코 ‘건강’하지 않았으나 아픈 설득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성애와 동성애를 가로지르며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서 위태로운 발걸음으로 옥상의 끝을 오가던 조숙한 소녀의 몸은 내밀하게 떨렸다. 판타지의 공주가 되는 대신, 공포 속에서 몸의 슬픈 울림을 듣는 소녀들의 모습. 남성 중심적 사회의 수많은 아버지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말라가는 소녀들의 섹슈얼리티는 그렇게 유령이 되어 끊임없이 돌아오고 있었다. 나는 이 우울한 영화 속에서 자신의 몸으로 스스로를 언어화하며 몸에 새겨진 상처를 사유하는, 몸으로 말하는 소녀들을 본다. 로맨스와 결혼과 가족 대신 자신의 섹슈얼리티로 스스로와 내밀한 소통을 나누는 소녀들을 발견한다.

<씨네21> 설 특별 프로그램 [3] - DVD ①

‘중요한 고전 및 현대영화의 지속적인 시리즈.’ 크라이테리언 컬렉션 DVD의 모든 광고와 타이틀 패키지에 표기된 캐치프레이즈다. 이것은 크라이테리언 컬렉션의 특징을 가장 잘 함축하고 있는 표현이다. 컬렉터들로부터 최고의 DVD로 인정받는 크라이테리언 컬렉션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알아보자. 또한 예술영화에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저예산 B급 호러영화에 이르는 다양한 라이브러리를 구축하고 있는 크라이테리언의 색깔있는 12편의 타이틀을 발매 순서대로 소개한다. DVD에 막 입문한 팬들이 커뮤니티 게시판 등지에 질문하는 내용들 가운데 가장 흔한 것이 바로 ‘크라이테리언이란 무엇인가’이다. 정말 크라이테리언 컬렉션은 무엇인가? 전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LD와 DVD 제작업체로서 최고라는 평판을 받고 있는 그 이름. 그리고 그 이름표가 붙은 DVD는 일반 타이틀의 배에 가까운 가격이 책정되고, 많은 마니아들에게 그 이름이 새겨진 DVD 컬렉션을 자신의 진열장에 차곡차곡 채우는 공통된 꿈을 갖게 하는 이름. 심지어 인터넷상에는 크라이테리언의 DVD만을 판매하는 전문 쇼핑몰이 등장하기까지 했으니 과연 대단한 이름값이라고 할 수 있다. 20년 전 보이저 발매 LD판에서 시작 크라이테리언 컬렉션은 방대한 영화 보유고로 유명한 제이너스 필름과 보이저 프레싱이 합작한 보이저 컴퍼니의 고유 레이블이다(현재는 홈비전엔터테인먼트와 합작). 이 컬렉션은 모든 영화팬들이 소장하고 감상할 만한 엄선된 작품을 최상의 사양으로 출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그 역사는 DVD가 나오기 한참 전부터 시작되었다. 크라이테리언 컬렉션의 이름을 달고 출시된 최초의 작품은 1984년 LD로 발매된 오슨 웰스의 <시민 케인>으로, 첫 출시작이 영화사상 가장 중요한 작품 가운데 한편이라는 사실은 이 시리즈의 방향이 무엇인가를 충분히 짐작게 한다. 크라이테리언의 명성은 초기 출시작부터 곧바로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오디오 코멘터리를 최초로 도입하였으며 프레임별 감상이 가능한 LD의 매체 특성을 활용하여 정지 화상 갤러리나 텍스트 자료를 추가함으로써 작품에 대한 좀더 심도 깊은 이해를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이러한 제작방식은 다른 출시사로부터 ‘미친 짓’이라는 야유를 받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마니아가 이끌고 있던 LD시장에서 압도적인 반응을 얻게 되었다. 우리가 흔히 ‘스페셜 에디션’ 또는 ‘컬렉터스 에디션’이라고 부르는 포맷을 크라이테리언은 이미 20여년 전에 개발해냈던 것이다. 이렇게 독창적이고 강력한 사양은 크라이테리언 컬렉션을 고급 LD의 대명사로 만들었다. 또한 크라이테리언 컬렉션은 까다로운 작품 선정을 통해 소장의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영화만을 엄선, 자신들의 작품 목록을 만들어나갈 뿐 아니라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많은 영화들의 원판 가운데 가장 양질의 필름만을 이용하여 여타의 타이틀과 확연하게 구별되는 음질과 화질을 제공하는 것으로도 그 명성이 높다. 최초로 제대로 된 특별판의 시초 예술영화만을 고집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흥행성만을 중점으로 두고 판단하지도 않는 크라이테리언의 작품 선정은, 컬렉션에 포함된 영화를 정말 한번 이상 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게끔 한다. 구로사와 아키라, 앨프리드 히치콕, 마이클 파웰,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 장 르누아르 등 고전이나 영화사적으로 중요하게 평가받는 작품들은 물론, <쎄븐>이나 <트레인스포팅>과 같은 동시대의 감각을 다룬 최근작이나 <로보캅> <더 록> <아마겟돈>으로 대표되는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 <북극의 나누크> <도쿄 올림픽> 등의 다큐멘터리, <블러드 포 드라큘라>와 같은 고어 계열이나 소프트 포르노급의 의외의 작품들도 당당히 입성에 성공하는 것이다. 이들 가운데에는 LD에서 DVD로 시장이 전환됨에 따라 다른 출시사에서 새로 나오거나 판권 만료로 볼 수 없게 된 타이틀도 있지만, 1997년 DVD 시장 진출 뒤 겪었던 약간의 시행착오를 제외하면 크라이테리언이라는 이름 자체는 아직도 DVD 팬과 수집가의 절대적인 지지와 신뢰를 얻고 있다. 크라이테리언은 최상의 화질과 음질을 위해 DVD 제작용 마스터를 직접 뽑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많은 영화들의 필름 가운데 가장 양질의 것만을 이용하여 고퀄리티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크라이테리언 컬렉션은 다양하고 깊이있는 스페셜 피처는 물론 ‘극장에서 보는 것과 똑같은’이라는 구호를 내세웠던 LD시장 때부터 화질과 사운드 면에서는 이미 정평을 받아왔다. 출시 예정일을 종종 연기하는 것은 팬들로서는 짜증스러울 따름이지만 상태가 좋은 원본 필름을 입수하기 위해 몇년이고 발로 뛰고 끈기있게 기다린다는 크라이테리언의 경우만큼은 오히려 완성된 결과물에 대한 기대감을 표하는 팬들이 더 많다. 원본에 대한 충실한 재현 무엇보다도 풍부하고 그 질에서 확연하게 뛰어난 스페셜 피처야말로 크라이테리언 컬렉션을 수집가들이 제일로 치게 만드는 이유일 것이다. 다른 출시사의 타이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영화 홍보용 영상이 아닌, 실제 영화를 완벽히 이해하고 제작 과정의 실질적인 뒷이야기를 알 수 있는 크라이테리언의 부록은 대부분 새롭게 제작된 오리지널이며, 이 컬렉션의 독보적인 특성이다. 특히 크라이테리언에서 화질과 음질을 유지한 상태로 풍부한 부록의 수록이 가능하도록 고안한 더블 피처 방식은 현재 DVD 시장에서 특별판 또는 감독판에 흔하게 사용되고 있는 방식으로 감상자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그들의 제작 스타일을 엿볼 수 있는 단면이다. 물론 지금에 와서는 너무나 흔하고 당연한 사양이 되어버렸지만 크라이테리언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텔레비전 사이즈에 맞추어 필름의 절반이 잘려나가고 잡티가 날리는 영화를 DVD로 보고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2∼3장의 디스크가 수록된 크라이테리언의 박스 세트 LD는 고가의 타이틀로서 나름의 악명도 있었지만, 이제는 10∼20달러 정도의 저렴한 가격으로도 그에 준하는 DVD를 대중적으로 즐길 수 있게 된 환경은 크라이테리언의 이러한 선구자적 제작 방식에 큰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DVD를 경제적인 이익의 창출을 위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가치가 뛰어난 영화들의 보존을 위해서라고 말하는 크라이테리언 컬렉션. 인기있는 영화라면 감독판, 무삭제판, 기념판 등 각종 수식어를 붙여가며 재발매를 반복하는 다른 제작사들과는 달리 단 한번의 발매로 컬렉션을 차곡차곡 채워나가는 크라이테리언의 모습이야말로 DVD 마니아들의 강한 신뢰를 얻게 된 이유일지도 모른다. 장인정신에 가까운 자부심과 함께, 영화와 관객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타이틀을 만든다는 크라이테리언의 정책이 DVD 한장에도 마음 깊이 감동하는 마니아들을 양산하게 된 것이 아닐까. 크라테리언 컬렉션을 구입하려면? 아마존과 디브이디플레닛 이용하세요! 신용카드 사용이 가능하다면 amazon.com과 dvdplanet.com을 고려해보자. dvdplanet.com(왼쪽)의 경우 과거 켄 크레인 시절부터 크라이테리언사와의 계약에 의해 레이저디스크 및 DVD를 최고의 할인율로 판매해왔다. 현재 이곳이 제시하는 할인율은 예약타이틀 및 재고타이틀 할 것 없이 동일하게 35%이다. amazon.com(오른쪽)의 경우 출시된 지 시일이 경과한 타이틀은 10% 정도의 할인만을 제공하지만 출시예정타이틀을 빨리 예약할 경우 최고 30%까지 할인된다. 운송료를 비교해보면 dvdplanet은 최초 타이틀이 8달러이고 한장 추가시마다 3달러를 요구하지만 amazon.com은 최초 6.48달러에 장당 2.5달러가 추가된다. amazon.com은 STL이라 불리는 Share the Love 시스템이 있어 서로 등록된 네티즌들끼리 동일 타이틀 구매시 추가 D/C를 받을 수 있다. 즉 이미 출시된 타이틀을 소량 구매할 때에는 dvdplanet.com이, 출시예정 작품을 다량 구매할 때에는 amazon.com이 유리하므로 비교해보는 것이 좋다. 배송사고 발생시 처리는 amazon.com이 좀더 깔끔한 편이다. 구매액이 운송료를 포함하여 15만원을 초과하면 세관통관시 관세를 지불해야 하므로 유의하기 바란다. 영어와 친하지 않다면 캐나다 소재의 한글 사이트인 mydvdbox.com와 국내에서 해외 DVD의 구매대행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papadvd.co.kr를 추천한다. 크라이테리언에 버금가는 DVD 제작사 우리도 만만치 않아요! 제작기술이 발전하면서 DVD 퀄리티는 상향 평준화되었지만 고전영화들에 대한 복원의지나 DVD 부록에 대한 기획 등을 고려하자면 크라이테리언에 필적할 만한 업체는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년 전부터 자사의 고전영화 복원에 노력을 기울여온 워너브러더스는 칭찬받을 만하다. <마이 페어 레이디>의 복원상태는 과연 크라이테리언이라도 가능하였을까 의심스러울 정도였으며 막스 브러더스 컬렉션이나 필름누아르 컬렉션 등의 예상치도 않았던 작품들을 출시하고 있다. 단 가끔 <베니스에서의 죽음>처럼 복원은 잘하고도 부록을 좀더 추가한 2장짜리 타이틀들을 유럽에만 출시한 것은 감점요인이다. 그외 고전영화나 아트영화를 괜찮은 퀄리티로 지속적으로 출시해주고 있는 영국의 bfi와 유레카 그리고 고전보다 모던클래식영화들을 주로 출시하는 아티피셜 아이가 있다. 특히 <부초>의 DVD 화질은 과도하게 짙은 색감의 크라이테리언보다 아티피셜판이 더 낫다. 프랑스에서는 프랑수아 트뤼포나 클로드 샤브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 등의 박스 세트를 출시하고 있는 mk2가 고전과 최근작을 꾸준하게 출시하고 있다. <장비고 컬렉션>이나 <판토마> <엘도라도> 등의 작품을 출시한 구몽영화사의 복원 노력도 인상적이다. 비디오와 동급의 퀄리티에서 <메트로폴리스>와 <니벨링겐> 등의 출시로 환골탈퇴한 키노 비디오도 이젠 주목할 만하다.

<유칼립투스> 제작중단돼 호주영화계 뒤숭숭

러셀 크로와 니콜 키드먼이 호주에서 촬영 중이던 영화<유칼립투스>(Eucalyptus)의 제작이 갑작스레 중단되어 호주영화계가 술렁이고 있다. 폭스 서치라이트가 제작하는 2500만달러 예산의 <유칼립투스>는 두 스타배우가 출연한다는 사실만으로 큰 기대를 모았던 작품이다. 이들은 호주가 배출한 배우로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하다. 제작사 폭스 서치라이트는 “(연출과 각본을 맡은 조슬린 무어하우스의) 시나리오가 수준 이하였기 때문”이라고 공식적인 제작 중단 이유를 2월11일경 밝혔다. 현지 언론들은 이번 사태가 호주영화산업에 ‘재앙’과도 같다고 보도했다. 스탭 80여명이 졸지에 실업자가 되었고 촬영지인 뉴 사우스 웨일즈 주의 작은 마을도 앞으로 3개월간 예약됐던 숙박료와 각종 편의시설 수입을 잃게 됐다. 그리고 일부 영화관계자들은 제작사가 밝힌 중단 이유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조연으로 출연한 휴고 위빙은 <데일리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모든 것을 시나리오 탓으로 돌리는 것은 불공정하다. 무어하우스가 쓴 시나리오는 매우 훌륭했다”고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 함께 출연한 배우 잭 톰슨도 위빙의 의견에 동의하면서 “지난 몇 주간 키드먼과 감독이 함께하는 리허설도 잘 진행됐고 어떤 수정요구도 없었다”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에 따르면 크로가 대본 수정을 요구했다고 한다. 애초 19살 소녀였던 여주인공을 키드먼에게 맞게 고쳐달라고 했다는 설도 있고, 키드먼의 역할은 잘 수정됐지만 크로가 자신의 비중을 늘려달라고 주장했다는 설 등 불분명한 이야기들이 나도는 상황이다. 그러나 두 배우의 홍보담당자는 함구중이다. 가 다시 제작될 수 있을지는 제작사의 결정에 달려 있다. 이 영화는 아름다운 여인(니콜 키드먼)과 결혼하기 위해 시험에 들게 되는 만담가(러셀 크로)의 이야기다. 여인의 아버지가 갖가지 종류의 유칼립투스 나무 이름을 대야만 결혼 승낙을 해주겠다는 조건을 내걸었기 때문이다.

‘한류 지속될수 있을까’ 현지 경험 대사들 전망

황용식 “당장 수익 없어도 다방면 지원을” 이영준 “남아시아 깔보는 풍조 사라져야” 문하영 “드라마 요소마다 코리아 홍보 필요” 한류 열풍 진짜일까? 최근 일본에서 보아의 <베스트 오브 소울> 음반 선주문량 80만장이 매진됐다. 또 ‘욘사마’는 일본뿐만 아니라 남아시아에서도 국빈대접을 받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홍보전략 부재와 한탕주의로 금새 시들해질 거라는 전망도 있다. 중앙아시아까지 뻗어간다는 한류, 외국 문화를 받아들이기에 급급했던 한국인들의 보상심리가 덧입혀져 과장된 건 아닐까? 과연 지속될 수는 있을까? 공관장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국내에 들어온 황용식 주타이베이 한국대표부 대표, 이영준 말레이시아 대사, 문하영 우즈베키스탄 대사가 지난 15일 외교부에서 만나 현지에서 보고 들은 한류를 바탕으로 이런 질문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구본우 외교통상부 문화외교국장이 사회를 맡아줬다. 나이 차별이라고 비난받을지 모르지만 솔직히 비, 보아, <겨울연가>에 공감하는 지긋한 외교관들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겉도는 딱딱한 이야기들만 나오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대사들은 의외로 구체적인 경험을 들려주며 이야기의 재미를 더해주었다. 구본우 문화외교국장(사회) | 여러 나라에서 오신 대사님들과 한류를 유지 발전시키기 위한 정부의 구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돼 뜻 깊습니다. 우선 현지에서 직접 보고 느끼신 한류의 현황에 대해 말씀해 주시죠. 특히 대만은 한류의 원조 가운데 한 나라라고 할 수 있는데요. 황용식 타이베이 한국대표부 대표 | 한국 문화상품이 경쟁력이 있다는 건 확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만에선 한국 드라마 시청률이 높아서 광고라든지 파생 상품 판매, 관광으로 연결되고 있어요. 지난해에 한국에 온 관광객의 27.4%가 대만, 일본, 중국인이었고, 한국 수출업자들의 66.6%는 한류가 수출에 기여한다고 답했습니다. 2003년 한국의 드라마 해외 수출 가운데 24%를 대만이 차지했죠. 대만엔 방송채널이 100개가 넘는데 지난해 6월과 10월에 방송된 <대장금>의 시청률은 6%로 최고였습니다. 외교관 모임에 가면 부인들이 아홉시 전에 집에 가서 대장금을 봐야 한다고들 했죠. 지난 선거 때는 한 여성 후보가 대장금에 나오는 한복을 입고 유세했습니다. 정치에서도 한류를 활용하고 한국 옷과 음식에 대한 인기도 높아졌죠. 또 1992년 단교한 뒤 한국 이미지가 대단히 나빴는데 한류 뒤 바뀌었어요. 이영준 말레이시아 대사 | 말레이시아의 상황은 대만이나 중국, 일본처럼 한류 열풍이라고 하기엔 좀 부족하지만 드라마나 영화는 텔레비전에서 방영하고 있습니다. <상도> <올인> <다모>를 내보냈고 요즘엔 대장금까지 방영하고 있죠. 주로 황금시간대에 배정돼 있고 화교, 이슬람 구분 없이 사랑받고 있어요. 특히 2002년에 소개된 <겨울연가>의 인기가 폭발적인 건 틀림없습니다. 제가 2003년에 말레이시아 장관을 예방하러 갔더니 비서부터 한국 대사라고 반기더군요. 자기가 겨울에 꼭 한국에 가겠다면서요. 그곳 과학기술부장관은 겨울연가의 영상기술까지 설명을 하더라고요. 페낭에서는 국왕과 당시 부수상이 참석한 행사 중에 사회자가 겨울연가 주제곡을 부르겠다고까지 했어요. 귀빈들이 다 절 쳐다보더라고요. 그때까지 겨울연가를 안 본 저는 창피해서 며칠동안 밤을 새워 봤습니다. 하지만 대만 등 다른 지역과는 달리 대중 음악은 거의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겨울연가 주제곡이 묶인 음반은 나와있지만 인기 가수가 초청되고 공연하는 이벤트는 미약하죠. 우리 음악이 잘 소개되지 않았습니다. 또 음반 불법복제가 워낙 많아 수익을 내기가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또 이슬람 사회라서 밤 문화가 없어요. 황용식 "단교뒤 실추된 이미지 개선 큰몫" 이영준 "화교·이슬람 구분없이 사랑받아" 문하영 "성실·근면 고려인 한류문화 기반" 문하영 우즈베키스탄 대사 | 이제까지 러시아와 인도의 영화나 드라마가 강세였던 우즈베키스탄에서 한류는 한마디로 폭발적입니다. 지난해 겨울연가를 방송했는데 시청률이 60%를 기록했어요. 사상 처음이랍니다. 지난 주말에 제가 각국 대사들이 출연하는 라디오 생방송에 나갔는데 사회자가 한국 대사가 나오자 청취자 질문이 보통 때보다 3배 더 많이 왔다고 하더라고요. 겨울연가 때문이랍니다. 또 일요일 저녁 8시 황금시간대 텔레비전 방송에도 나가게 됐는데 그것도 한류 때문이었어요. 우즈베키스탄의 한류는 우연한 현상이 아닙니다. 첫째로 한국의 이미지가 상당히 좋아요. 중앙아시아 젊은 사람들의 꿈이 아파트를 사서 대우차 타고 삼성, 엘지의 냉장고, 텔레비전을 들여 놓은 뒤 겨울연가를 보는 거라고 하더군요. 한국 기업의 가전제품 시장점유율이 80%에 이를 정돕니다. 두번째로 거기엔 20만명에 달하는 고려인 사회가 있는데 이 분들에 대한 이미지가 좋습니다. 성실하고 근면하다고요. 이 분들이 한류문화의 기반이 되고 있죠. 또 하나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은 굉장히 가족적이고 폭력을 싫어해요. 잔잔한 대가족 분위기를 좋아해서 우리 이미지와 맞죠. 우즈베키스탄에선 연평균 산업연수생 3천여명이 한국으로 오고 있는데 경쟁률이 100대 1이에요. 한국에서 3년 살아 2만~3만달러 벌면 아파트 사고, 결혼하고 가게까지 차리죠. ‘코리안 드림’이 있기 때문에 한국어도 많이 배웁니다. 우즈베키스탄의 제일 좋은 대학 3군데에 한국어 학과가 있고 커트라인도 높죠. 구 | 덧붙이자면 현재 한류, 특히 드라마는 중남미, 아프리카까지 확산되고 있어요. 중남미에선 2001년, 2002년 <별은 내 가슴에> <이브의 모든 것>이 큰 인기를 끌었죠. 이집트에선 <가을동화>가 그렇고요. 먼 아프리카 가나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아시아는 상업주의에 기반을 두고 한국 문화상품이 진출했다면 중남미나 아프리카에선 정부의 구실을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정부에서 판권을 사서 현지인에 맞게 더빙 입혀 무료로 배포한 게 확산되는 데 기여했다고 봅니다. 문 | 중앙아시아아는 남아시아와 달리 돈이 없어서 한국 문화상품을 수입하기 어려워요. 그러니 말씀하신대로 정부 구실이 중요합니다. 여기 사람들은 겨울연가의 준상이와 유진이가 친척 같다고 이야기해요. 이곳 외무성 교역국장은 겨울연가를 4번 봤다고 하더라고요. 그 정도로 마니아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좋아하는데 배용준씨나 최지우씨를 한국 정부에서 문화홍보대사로 위촉해 보낼 수는 없나요? 구 | 정부에서 그렇게 하고 싶어도 현실적인 제약이 많아요. 연기자들이 워낙 바쁘고 비싸니까요. 문 | 우즈베키스탄 대사가 “배용준씨가 너무 비싸면 최지우씨를 섭외하면 어떻겠냐”고 했더니 다른 대사들이 “최지우씨도 못지 않다”며 웃었다. 대사들은 예전엔 한국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아 겨울연가에 열광하는 현지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단다. 결국 필요해서 봤는데 재밌더라고 했다. 황 | 대만엔 자국 방송 쿼터제 같은 게 없을 정도로 상당히 개방적이죠. 한국 드라마뿐만 아니라 오래전부터 일본, 홍콩 드라마도 많이 들어왔습니다. 최근 한국 드라마가 인기인 건 한 마디로 잘 만들어졌기 때문이죠. 연기도 좋은데 소재도 굉장히 대만 사람들이 공감하는 겁니다. 예를 들면 대장금에 나오는 어의나 궁중 권력 암투는 대만 사람들도 자기 역사에서 다 아는 거죠. 한국 드라마에서 그런 게 나오니까 공감하면서도 신기해해요. 대만 사람들은 한국 드라마에 유교적 가치관이 더 잘 보존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잃어버린 자신을 찾아주는 구실을 한다고 할까요? 거기도 고부 갈등이 똑같이 있는데 한국 드라마에서 실감나게 표현하니까 끌리는 거죠. 누구든지 겪을 수 있는 건데 심리묘사가 섬세해서 한번 보면 그만 두질 못 한다고들 합니다. 또 한국 드라마엔 동양문화를 바탕으로 서구문화를 버무린 역동성이 있다고 합니다. 대만처럼 변화가 없는 사회에서는 한국 청년들이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걸 신기해 하죠. 일본 드라마에 식상했는데 한국 드라마가 새로운 기쁨을 줬다는 거죠. 구 | 말씀하신 대로 감정이 공유되는 부분이 있을 때 잘 받아들여지는 것 같습니다. 모든 한국 드라마가 현지에서 다 잘되는 건 아니죠. 황 | 현재 대만에서는 한국 드라마 1회분을 1만~2만달러 정도에 삽니다. 대장금은 촬영할 때 계약해서 1회에 1만달러로 고정됐죠. <올인>은 1회에 1만8000달러에 들여왔지만 실패했습니다. 대만에서 한류를 움직이는 중심은 역시 40~50대 주부들이에요. 섬세한 사랑, 가족 관계가 먹히지 도박이나 남성적인 소재는 잘 안 받아들여지는 것 같습니다. <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도 잘 안됐어요. 구 | 이집트 주재 한국대사관에서 겨울연가 방영 뒤 50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시청자의 90%가 여성이었고 주부가 많았어요. 이들은 가족 구성원 사이의 애정, 윗사람에 대한 존경이 이집트 가치관과 비슷하다는 의견을 냈고 그래서 다시 보고 싶다고 했죠. 이집트 국영방송사 쪽도 재방영을 적극적으로 희망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듯 공감대 형성이 중요한데 혹시 현지의 반일, 반미 정서 때문에 한국 드라마가 상대적으로 더 인기를 얻고 있는 건 아닌지요? 황 | 대만엔 반일감정이 거의 없습니다. 지금도 일본어로만 방송하는 채널이 있고 일본 자동차도 엄청나게 인기가 있죠. 역사적으로 볼 때 대륙보다 일본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는데 우리 정서와는 많이 다르고 문화도 일본과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문 | 중앙아시아에서 일본의 영향력은 미미합니다. 아리랑 티브이가 나오는데 일본 채널은 없어요. 할리우드류는 폭력적이고 선정적이라는 이미지가 강해서 이슬람 문화권에 속하는 중앙아시아에선 별로 인기가 없습니다. 또 우즈베키스탄 정부가 폭력, 선정성,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영상물은 엄격히 방영을 통제하고 있어요. 그래서 한국 드라마 중에서도 겨울연가 <여름향기> <호텔리어> 등 잔잔한 드라마를 좋아하죠. 올인은 별로 반응이 좋지 않았습니다. 올해엔 대장금과 <다모>를 방송하려고 하고 있죠. 일본 드라마는 불륜 등 너무 나갔다는 의견이 많아요. 이에 비해 한국 드라마는 순수하고 절제됐다고 평가하죠. 이 | 말레이시아엔 서구 문화에 대한 동경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슬람으로서 미국 문화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있어요. 한국 문화가 서양과 동양을 잘 섞고 있다고 보죠. 일본 드라마에는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요소가 많아 이국적이긴 해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들 해요. 한국의 적당한 서구화와 공동체 문화에 대한 동경이 있죠. 한국 드라마의 상황이 자신의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과 비슷해서 친숙하다고들 합니다. 대사들은 한국 드라마에 스민 가족정서, 유교적이면서 서국적인 문화가 현지 주민들의 공감을 사고 있다고 했다. 한류의 지속 여부에 대해서도 낙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이 말레이시아 대사는 방글라데시에서도 한국 드라마에 대한 평가가 좋다며 이슬람 문화권까지 영향력을 넓혀갈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덧붙였다. 구 | 그런데 한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상업주의에 치우쳐 홍콩 드라마처럼 한번 확 일어났다가 꺼지는 것 아니냐는 겁니다. 황 | 홍콩 영화나 드라마가 퇴조한 이유는 소재가 너무 단조롭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다섯 번 열번 보면 식상하죠. 우리 드라마도 삼각관계 등 엇비슷하다고 하지만 현재까지는 줄거리가 다 다르고 재미도 다 다르다는 게 현지 평가입니다. 또 우리가 유리한 건 중국보다도 표현의 자유가 더 많다는 거죠. 그리고 일본보다 더 과감한 투자를 하니까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문 | 드라마는 시나리오라는 문학적인 요소와 패션, 음악, 촬영기술까지 가미된 첨단 복합 산업이죠. 이런 요소들이 다 어느 수준에 이르러야 드라마가 잘되고 우리는 그 수준에 도달한 것 같습니다. 금방 수그러들지는 않을 거예요. 특히 중앙아시아엔 한국 기반이 있어 오래 갈 겁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드라마 중심으로 소개되고 있다는 거죠. 한국 문화에서 드라마가 다는 아니지 않습니까? 미술, 음악 등 다양한 장르에서 한류를 이어갈 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 생각할 필요가 있어요. 우리 미술가들이 현지인과 교류하고 같이 전시도 하도록 돕고, 조수미씨나 신영옥씨 등도 현지 오페라 가수들과 합동 공연하도록 주선해 볼 수 있죠. 전통 있는 예술단도 보내고요. 다양하게 접근해야만 오래갈 수 있어요. 문화의 폭과 깊이가 중요하죠. 또 중앙아시아, 러시아의 고려인 동포사회가 상당히 고립돼 있어요. 한류를 고리 삼아 그 분들의 외로움을 달래고 민족적 정서나 정체성을 북돋울 수도 있을 겁니다. 이영준 “경제적 풍요 대중 문화욕구 다양 다른분야 진출해도 성공할 것” 황용식 “작품마다 과감한 투자·소재다양 ‘반짝’ 홍콩영화와 달리 오래갈 것” 문하영 “‘한국차에 한국 TV로 겨울연가 보는것 중앙아시아 젊은이들 꿈” 이 | 말레이시아에도 홍콩, 중국, 대만 드라마가 많이 수입됐는데 한국 것만큼 인기를 끌지 못했죠. 최근 말레이시아 텔레비전3에서 드라마 선호에 대한 즉석투표를 했는데 한국이 35%, 인도네시아 31%, 말레이시아 20%, 기타가 14%로 나왔어요. 한국관광공사 쿠알라룸푸르 지사에서 벌인 설문조사에서는 말레이시아인 19.1%가 드라마나 영화로 한국을 접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물론 열기를 이어가려면 겨울연가 같은 경쟁력 있는 문화 콘텐츠를 개발하는 게 중요하겠죠. 하지만 여기에만 기대할 수는 없어요. 말레이시아는 20년 전부터 동방정책을 펴왔습니다. 일본과 한국에서 배우자며 매년 공무원, 학생들을 한국에 보냈어요. 이런 경험을 한 2천여명이 현재 말레이시아 정부 각 분야에서 일하고 있고 장관이나 고위직에 오른 사람들도 있습니다. 지난해엔 외교통산부 산하 국제협력단 지원을 받아 동창회도 열었죠. 거기서 관악산이 어떻게 바뀌었다는 둥 한국의 기억과 경험을 나누더군요. 이들이 지속적으로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가지도록 자료도 보내주고 지원해야 해요. 아쉽게도 한국 안에선 아직도 아시아 경시 풍조가 있습니다. 특히 문화 부문에서 그렇죠. 유럽에는 유명한 공연단도 많이 보내지만 말레이시아엔 잘 안 보내죠. 이런 풍조가 사라져야 합니다. 말레이시아 대중이야 사물놀이 등 한국 전통 음악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친한파의 관심을 끌 수는 있어요. 그 사람들을 계속 지원하면 한류의 뿌리를 튼실히 할 수 있죠. 황 | 국제 경쟁력이 있는 드라마를 만들려면 우선 훌륭한 연기자가 많이 나와야겠죠. 한국엔 전문대 합쳐 영화 관련 학과에서 매년 1000여명씩 배출하니 별 문제 없다고 봅니다. 둘째는 자금력이죠. 현재 한국이 일본보다 드라마제작에 더 많이 투자해요. 세번째는 매개체와의 공생입니다. 아무리 좋은 문화상품을 만들더라도 방영 안하면 보통 사람들이 접근을 못하죠. 매개체에도 이윤이 남아야 합니다. 물론 시장 논리에 따라 움직이겠지만요. 한 대만 방송국의 한국 드라마 방영시간을 보면, 2001년 467시간에서 2002년 903시간으로 늘었다가 2003년 811시간, 2004년 356시간으로 줄었어요. 그 이유는 한국 드라마의 중국어 더빙권을 한국 쪽에서 회수했기 때문이죠. 그 전엔 현지 방송국이 더빙권을 되팔아 수익을 많이 남겼습니다. 한국 드라마를 전문적으로 내보내는 대만 방송국에선 최근에 이익이 안 남는다고 볼멘소리를 많이 냈어요. 서너배씩 값을 올리면 어떻게 하냐고요. 하지만 아직까진 엄살인 걸로 드러났습니다. 대만 신문 보도를 보면 한국 드라마를 내보내고 광고만으로도 10초당 100만원에 가까운 수입을 얻는다고 해요. 또 디브이디, 책자 판매로 부가 수익을 올리고 있죠. 그러니 방송이 가능했던 거죠. 이 | 말레이시아 대사는 아시아 경시 풍조가 사라져야 한다고 여러차례 강조했고 문 우즈베키스탄 대사도 거들었다. 이어 대사들은 한국 문화를 일방적으로 수출하려 하기보다는 문화교류에 방점을 찍어야 현지인들에게 거부감 없이 한류가 계속 받아들여질 거라고 내다봤다. 구 | 말씀하신대로 한류가 한국에 대한 관심까지 불러 일으키는 건 사실입니다. 이런 분위기를 북돋우려면 정부가 구체적으로 어떤 구실을 해야 할까요? 황 | 여건 조성을 위한 대담한 지원책이 있어야 합니다. 한국문화원 설치가 그 가운데 하나예요. 드라마를 중심으로 한류가 퍼지면서 한국어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당장은 수익이 안 맞더라도 독일, 프랑스, 일본, 미국 처럼 문화원에 우수한 한국어 교사를 파견해 한글을 가르치고 투자해야죠. 언어 보급이 문화산업 진출의 인프라가 될 테니까요. 또 드라마 이외 각 방면의 문화상품에도 투자해 고급화하면 경쟁력을 가질 수 있어요. 예를 들면 뮤지컬 명성황후가 그렇죠. 한국 순수예술이나 문화 일반의 상품화를 시도해볼 수 있어요. 사물놀이, 판소리 등이 국제 사회에 소개된 적은 있지만 특정 인사를 대상으로 단기간 공연하는 수준에 그쳤습니다. 일반 대중을 상대로 장기적인 공연을 벌이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죠. 덧붙여 관광산업으로 연결하려면 시설, 안내원의 자질 향상이 병행되어야 해요. 한국 방문했던 대만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음식문화에 익숙하지 않아 중국처럼 코스로 나오는 줄 알았다가 잘 챙겨먹지 못했다거나 지나치게 영리 위주로만 안내해서 불쾌했다는 지적들이 많아요. 이 | 말레이시아엔 중국계 25%, 말레이계 60%, 인도계 10%가 어울려 삽니다. 그래서 세계화에 유리하죠. 이슬람 나라이지만 외국문화를 잘 받아들여요. 예전에 아세안 문화장관 회의가 말레이시아에서 열렸을 때 한·중·일 문화장관과 예술단도 초청한 적이 있어요. 그 때 정동극장 팀이 왔는데 아주 휘어잡았습니다. 지금도 카델 문화장관은 그 공연을 잊지 못하고 있죠. 난타가 왔을 때도 열광했고요. 말레이시아는 경제적으로 살만해서 대중들의 문화 욕구가 폭발적이에요. 한국을 찾는 관광객도 2001년 5만5848명, 2002년 8만2720명, 2003년 9만623명으로 껑충껑충 뛰고 있어요. 고급 문화 팀들이 와주면 얼마든지 받아들일 자세가 돼 있고 음악 등 다른 분야도 성공할 가능성이 큽니다. 문 | 삼성, 엘지 등 한국 기업들이 자사 홍보 전략의 하나로 한국 드라마를 본격적으로 활용하고 있어요. 이런 구실을 장려해야합니다. 중앙아시아에도 한국 문화원이 없는데 설치가 늦었어요. 문화원에 100석 정도 되는 영상실 만드는 거 돈도 많이 안 듭니다. 거기서 영화 상영하고 그러면 굉장한 홍보 효과가 있을 거예요. 또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깊이 있게 보여줄 수 있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방영할 필요가 있어요. 너무 상업적인 이미지만 심지 말고 유구한 역사와 문화가 있는 나라라는 걸 알려야죠. 황용식 "한국배우 죄다 성형미인 비아냥도" 문하영 "다문화민족 일방 주입 역효과우려" 이영준 "연예인 이미지 금세 식을 수도 있어" 구 | 그런데 특정 지역에선 한류가 큰 인기를 끌면서 부정적인 현상도 나타나고 있어요. 너무 많이 들어가니까 현지인들이 위협감을 느끼며 거부반응을 조금씩 보이고 있죠. 이런 부분을 완화해가야 할 텐데요. 그래서 정부도 한류가 활기를 띠고 있는 나라의 문화를 한국에 적극적으로 소개하도록 계획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시아 나라들의 우수 영상물을 수입해 방영하는 거죠. 다른 문화에 대해 상당히 개방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게 한류가 무리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하는 바탕일 겁니다. 황 | 네. 말씀하신 거부반응은 나타나고 있죠. 대만에선 한국 배우들은 다 성형수술해서 자연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라느니 이런 말들이 돌며 깎아내리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대만 연기자들의 반발도 있고요. 아무래도 자신의 예술 산업이 위축되니까 실속을 챙기자는 움직임이 일죠. 얼마 전엔 연예계 엑스파일을 대만 언론에서 공개해 한국 배우가 이런저런 추문이 있다고 보도하는 바람에 저희 쪽에서 항의도 했습니다. 대만 문화가 연예계에 대해선 믿거나 말거나 식으로 마음대로 이야기해서 이런 보도가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하겠지만 한류에 대해 보호주의적이고 방어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건 사실이죠. 과거 한국에서 일본, 중국 문화를 개방할 때 그쪽 문화가 범람해 우리 문화가 위축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었지만 결과는 아니었죠. 개방을 통해 우리 문화의 체질을 높일 때입니다. 문 | 말레이시아나 중앙아시아도 다 문화민족입니다. 우즈베키스탄도 5천년 역사를 가지고 있어서 자부심이 대단하죠. 일방적인 진출은 역효과가 우려됩니다. 한국 가수가 우즈베키스탄 가수와 함께 콘서트를 열고, 미술전시를 해도 함께하는 자세가 필요하죠. 또 그쪽 예술가들을 한국으로 초청해 교류할 수 있는 거고요. 이 | 네. 그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할 때 한국 예술단 등이 많이 방문하고 또 말레이시아 예술단도 많이 초청해야죠.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건 연예인의 이미지는 언제든지 떨어질 수 있는 거니까 한류가 바로 한국이라는 등식이 성립되도록 내버려두면 곤란하다는 겁니다. 말레이시아가 ‘진짜 아시아’, 홍콩이 ‘아시아의 세계도시’로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것처럼 우리도 한류와 별도로 나라 홍보 전략이 필요해요.

[What's Up] 몬트리올은 영화제 전쟁중

지난 2월9일 모리츠 데 하델른을 수장으로 한 몬트리올국제영화제(Festival International du Films de Montreal, 이하 FIFM)가 출범하면서, 몬트리올 지역이 시끄러워졌다. 몬트리올에는 이미 또 다른 국제영화제인 몬트리올세계영화제(Montreal World Fil Festival, 이하 MWFF)와 34년 역사의 누보시네마영화제(Festival du Nouveau Cinema)가 이어져왔던 터라, 3개의 영화제가 경쟁하는 양상이 되어버린 것. 문제는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려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퀘벡주 정부와 관계가 악화된 MWFF는 정부지원금이 끊기면서 쇠락하고 있고, 누보시네마의 위원장인 다니엘 랑글루아도 FIFM에 합류하기로 결정하면서, FIFM이 주정부의 물심양면 적극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세를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새로 부상한 FIFM은 기존의 MWFF에 불만을 품고 있던 퀘벡주 정부와 후원사인 텔레필름 캐나다가 ‘대안’격으로 창설한 영화제. 베를린영화제와 베니스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을 거친 모리츠 데 하델른을 영입한 것 또한 그들의 아이디어였다. 하루아침에 막강한 라이벌을 만나 불필요한 소모전을 치러야 하는 MWFF가 가만히 있을 리 없다. MWFF를 운영하는 세르지 로직은 FIFM의 리더인 하델른을 맹공하고 나섰다. 하델른이 이란의 테헤란영화제의 창설에 관여했다는 것이다. 이들의 악연에는 역사가 있다. 2003년 하델른이 베니스영화제에 몸담고 있을 당시, 매년 9월에 열리던 MWFF가 8월 말로 일정을 당겨 잡아, 베니스 및 토론토영화제와 오버랩되었고, 이 때문에 하델른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바 있다. 이후 MWFF는 세계영화제작자연맹에서 공인 자격을 박탈당하는 수난을 겪었고, 이를 하델른이 배후 조종했다는 의혹을 품어왔다. 8월25일부터 9월5일까지 열리는 MWFF, 10월12일부터 23일까지 열리는 FIFM, 한 지역에서 두개의 국제영화제가 잡음과 사고없이 치러지긴 불가능해 보인다.

제 55회 베를린영화제 중간결산 [4] - 신재인 감독의 베를린 탐방기

“나는 지난밤에 너의 영화를 보았다. 그것은 힘이 셌고 재미가 있었고 나는 흥분했다. 나는 너의 영화를 베를린영화제에 초청하고 싶다. 그것은 2월10일에 발생할 것이다.” 독일인 프로그래머가 부산영화제 마지막 날 내게 보내온 메일은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처럼 좀 으스스했다(자동번역프로그램을 통해 한글로 번역해서 보낸 것. 내 시나리오도 자동번역기에 넣어 좀 공포스럽게 할 수 없을까?). <신성일의 행방불명>이 베를린영화제에 가게 됐다고 자랑하자 최모 선배는 물었다. “베를린인디영화제?” 강모 후배는 물었다. “베를린단편영화제요?” “베를린영화제, 부산영화제보다 후지대.” 김모는 말했다. 이들이 이러는 걸 보면 대단한 영화제인 게 분명해. 느낌이 좋은 게 왠지 가서 상을 받을 거 같다. 그럼 시상식 단상에 올라가 트로피를 받고 소감을 밝히는 거야. “이 순간을 고대했습니다. (중략) 수상거부를 하면 재밌겠다고 심심할 때 가끔 생각했거든요. 제게 상을 주시니 영화에 대한 안목이 있으신 게 분명하여 이런 말씀드리기 송구스러우나 위원 제분께서 제게 상을 주실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밝히지 않을 수가 없네요. (트로피를 돌려주며) 곰돌이가 예쁘긴 하네요.” “포럼? 비경쟁 부문이고 아무 영화나 다 가더라야.” 오모 선배는 말했다. 실망하고 있는데 베를린쪽에서는 자기들 영화제에 오려면 로테르담영화제 초청을 거절해야 한다고 요구해왔다. “네.” 초청된 건 좋지만 여행하는 건 싫었다. 내 집이 너무 좋은걸. 영화라면 볼 만하다. 그런데 영화를 베를린까지 가서 봐야 하나? 거기에서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영화는 어차피 나랑 인연이 없는 걸로 생각하면 안 될까? 말하자면 나는 깡시골에서 자기 마을이 이 세상이라고 믿으며 고집스럽게 만족스러워하는 촌늙은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다는 사소한 차이로 인해 그 고집이 좀 가식적이긴 하나)인데 우리 아버지는 자신보다 더 늙은 딸에게 유로화를 건네며 유럽 문화를 꼭 보고 오라고 하셨다. “걔네들은 소매치기 문화도 잘 보존해놨다고.” 2월10일 부산영화제 가방이 훨씬 예쁘다 아버지가 주신 막대한 유로화를 파리에서 6일간 불란서 스테이크를 먹는 데 탕진하고 매우 가난해져서 베를린에 도착. 이미 파리인들의 야만성(물 강매하기, 대소변 보는 값 매기기, 담배 아무 데서나 피우기, 신호등을 가로등쯤으로 여기기, 그리고 훔쳐온 물건 전시하기)에 익숙해진 터라 베를린에서는 더 놀랄 것도 없겠지 싶어 안심이 된다. 베를린은 대전 정도의 도시로 보인다. 2차대전 전의 베를린 사진을 보니 파리에 비해 이 도시가 얼마나 심하게 폭격당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베를린은 고풍스런 모습을 많이 잃었지만 모던하고 지나치게 꾸미지 않은 외양을 얻었다. 사무실에 가서 아이디카드를 받으며 기대하던 베를린영화제 가방을 받았다. 두둥. 근데 생긴 게 휴대용 린나이가스레인지 커버와 같고 박음질은 부실하며 크기는 더 크다. 이걸 어디에 쓰란 말이냐? 레인지 커버를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부산영화제 가방이 생각났다(이 이후 경험한 바, 대부분의 면에서 베를린영화제가 부산영화제보다 후졌다는 것을 미리 말해둡니다. 김모야, 정말 그렇더라). 키아누 리브스가 왔나보다. 극장 앞에서 비명소리가 들린다. 2월11일 브라질산 웰메이드 영화에 기죽다 영화? 별거 아냐. 그냥 만드는 게 재밌어서 만든다, 고 생각했었다. 건방진 것. 영화가 별거 아닌 게 결코 아님을 내게 깨우쳐준 것은 파리의 미술관들이었다. 평소 미술에 꽤나 흥미를 갖고 있던 터에 6일간의 파리미술품 알현 일정은 사실 베를린영화제에 가는 것보다 더 나를 흥분시켰었다. 가서 보니 작품들은 기대보다 더 훌륭했다. 그런데 매일매일이 왠지 허망했다. 모나리자 앞에서 눈물을 한 방울 떨어뜨렸지만 그게 가수 마돈나를 직접 보고 눈물을 떨어뜨리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이냐. 허망. 에펠탑에 가면 뛰어내릴 수 있는지를 물었다. 미술 작품 관람, 도시의 건축물 구경- 이 모든 sightseeing은 소설이나 영화, 텔레비젼 쇼가 주는 체험과는 다른 것 같다. 어폐가 있지만 픽션은 sightliving. 가짜로라도 뭔가 살게 해준다(그림도 열심히 들여다보면 살게 될지 모르지만. 그런 공포영화도 있었지). 그리고 무인도에 갇혀 평생 살아야 한다면 모나리자보다 삼류 소설을 들고 가지 않겠나. 영화를 보기 시작한다. 주여, 제발 제게 기막힌 영화를 보여주소서. 단, 제가 영화감독 그만둔 다음에요(몇년 전 나는 부산영화제에서 기가 막힌 영화들을 한 다스로 보고 고시공부에 매진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처연히 밤길을 헤맸었다. 그래서 지난해 부산영화제 때는 영화를 일절 보지 않고 부산의 호텔구경만 했었지). 처음 본 작품. 작품에 대한 정보없이 아무 거나 보자고 들어갔는데 운수가 나쁘다. 완벽한 영화였다. 브라질에서 할리우드 자본과 손잡고 만든 포르투갈어 영화인데 할리우드의 최상급 영화에 해당하는 웰메이드 엔터테인먼트(이런 말이 있는지 불안함)를 제공한다. 브라질풍의 프랭크 카프라 코미디인데 훨씬 나은 카프라다. 부조리, 이유없음에 대한 감수성(왜 너는 부자인데 쟤는 가난하냐?)을 오락적으로 푼 것이 신선하다. 감독은 분명 할리우드로 스카우트될 것이고, 각본가는 얼른 우리나라에서 스카우트하라! 어쨌든 아쉽게도 지루한 부분이 너무 없어 걸작은 못 되겠다(오락영화의 걸작들도 보면 다 지루한 부분이 있더라). 2월12일 어험, 한국 대표가 된 기분이네 폭탄 두개를 연이어 만나다. 터키의 가난한 그리스인이 나오는 영화가 먼저. 영화에서 죄다 팔아도 이건 팔지 않았으면 하는 게 (별로 없지만) 가끔은 있지 않나? 예컨대 가난과 터키의 풍광. 마지막 십분을 남겨두고 대피. 그 다음 터진 것은 여성감독이 만든 게이들의 SM영화. 포스터도 야하고 홍보도 열심이고 과연 관객으로 인산인해다(이중 많은 수가 중간에 대피함). 에이즈에 걸린! 마조히스트! 게이!(이 세 구절이 이 영화의 모든 것임)의 일상을 죽 보여주다가 사람들이 졸지 않도록 사도마조히즘 포르노로 가끔씩 배려함(성기고문, 항문에 장난치기- 상당히 세다). 포르노는 성공인데 일상 부분은 파탄이다. 그러나 “아주우” 약간 부러웠던 것도 사실. 이 여인, 촬영 기간의 반은 사내들 벗겨놓고 찍었을 것이다. 포르노 때문에 나는 끝끝내 대피 못함. 이 영화, 게이를 혐오하게 하는 데 효과 만빵이니 멜 깁슨은 어서 수입하라! 저녁, <신성일…>의 첫 상영이 있었다. 내 영화는 포스터도 붙어 있지 않고(만들었는데 어딨는지 모르겠다) 모든 영화를 소개하는 공식 브로슈어에 난 몇줄을 빼면 아무런 사전정보도 주지 않는, 코레아의 비디오영화다. 누가 오겠나 싶었지만 미스 월드 한국 대표가 된 심정으로 독일인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30분간 독일어 공부를 하다가 극장에 갔다. 생각보다 관객이 제법 들었다. 매진은 아니었지만 극장이 상당히 커서 아마 <신성일…>이 가장 많은 관객을 만나는 날이었을 듯(한국 동포들이 독일 친구들을 다 데려온 거 같다. 장하다). 그런데 그중 일부는- 내가 다른 영화에서 그랬듯- 상영 중에 대피하다(내가 출구에서 한명 한명 얼굴을 확인함. 다행히 그 수는 많지 않았다). 관객과의 대화시간. 무대에 올라 독일어를 몇 마디 하니 관객이 좀 놀란다. 참, 인사말 갖고 감탄하긴. 그뒤 영화에 대한 관객의 반응이 생각보다 좋은 듯하여 좀 놀랐다. 그리고 관객과의 대화를 통해 독일 내지 유럽 관객이 한국과 한국영화에 대해 무지하거나 오해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됨. 이들도 안다. 요즘 독일 뉴스를 타고 있는 북한의 핵위협(연예인들 가십 나오는 독일 신문에도 2면에 커다랗게 김정일 사진 나옴), 이럴 때 따라나오는 북한 군인들의 독특한 행군 모습, 그리고 윤이상, 송두율에 대한 남코레아의 처사. 한 독일 관객은 벌떡 일어나더니 한국영화가 대부분 정치적이라고 말하며 내 영화에서 한국 정권에 대한 모종의 반작용을 찾아보려고 한다(아니, 이미 찾았다). Q&A가 끝나자 한국인 동포처녀와 총각이 내게 사인을 부탁한다(그들은 한국말을 전혀 못한다). 그러면서 내 영화를 보고 자부심을 느꼈다고 말한다. 그때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여관으로 돌아오는 길에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동안 그들이 자부심 느낄 일이 얼마나 없었으면 내 영화로 그런 걸 느꼈을까? 얘들아, 한국엔 <신성일…>보다 좋은 영화 많아. 그리고 한국, 괜찮은 나라야(그런데 한국, 그동안 뭐 했어요?) 베를린 리포트: (베를린에 와보니) 영화는 예술이고 사업이기 전에 외교인 것 같습니다. 2월13일 역시 정치적인 영화제야 내 영화가 웰메이드가 아니란 것에 대해 괴로워하다 내가 나를 위로했다. “저예산으로 웰메이드를 만들려면 등장인물도 적고 로케이션도 평범해야 해. 스토리라인도 단순하면 더 좋고. 그럼 콘티도 단순해지고 감독이 중요한 데 집중할 수 있고. 니 얘기는 저예산으로 웰메이드할 수 있는 게 아니었어.” (맞아, 맞아, 나도 웰메이드할 수 있어. 주먹을 불끈 쥔다.) “좋아, 앞으로 다섯명만 등장하는 영화를 만들겠어.” 내가 말하자 “근데 니 스토리 중에 <신성일…>이 그나마 사람 적게 나오는 스토리 아냐? 다 100명 넘게 나오는 얘기라서 신성일이 제일 찍기 쉽다고 그거 찍은 거 아냐?” 제3의 내 목소리, “방금 그 말도 변명이란 거 알지?” “그래, 알았어. 나 바보야. 웰메이드 못 해, 됐어?” 성질을 부린다. 티격태격하며 방구석에서 뒹굴었다. 베를린영화제에서 가장 인기가 있었던 (관객이 가장 많이 몰린) 영화는 내가 관찰한 바로는 놀랍게도 한 다큐였다. <학살>이란 제목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을 학살한 유대인 몇명의 인터뷰를 담은 영화. 베를린영화제는 섹스와 더불어 유독 정치에 관심이 많은 것 같고 독일인 관객도 그런 것 같다. 게다가 이 영화는 독일인들에게 학살당했던 유대인들이 이번에는 자기들이 학살자가 된 현재를 다루고 있어 관심을 증폭시킨 듯하다. 큰 극장인데도 통로, 입구까지도 사람으로 꽉 차서 나는 입장을 거절당함. 한 무더기의 관객이 들여보내 달라고 항의하며 30여분 동안 문 밖에 서 있었다. 나도 달리 할 일도 없고 하여 같이 서 있었는데 그러다보니 절실히 보고 싶어졌지만, 그러나 다음번 상영도 나는 볼 수가 없다. 2월14일 고3처럼 영화공부하다 파리에서 미술품에 싸여 있을 때는 영화를 보고 싶어 죽겠더니 베를린에서 영화가 범람하자 영화보기가 점점 멘탈 무산소운동, 그러니까 고역이 되어간다. 그럴수록 나는 하루에 몇편을 보는가, 하루에 영화보지 않는 시간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가 따위에 골몰하고, 더 주목할 건 이젠 폭탄을 만나도 대피하지 않는다는 것. 너무 세심하여 지리멸렬해 보여도, 너무 길어서 잠이 쏟아져도 수험생처럼 잠을 쫓으며 견딘다. 그러다 한밤에 여관으로 돌아오는 길, 딱 고3 수험생의 만족감과 허탈함이 교차한다(게다가 오는 길에 자주 비나 눈이 내리며 적당한 무드를 조성). 그러니 내가 어떤 영화를 그 내용도 모르고 단지 255분짜리 다큐라는 이유만으로 보려 하는 작금의 현상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내 정신의 근육질을 위해. 이건 정말로 헬스다. 2월15일 아시안 걸, 알고보면 무섭단다 아시아 여성들이 항상 강간당하는 것은 아니며 남자들에게 늘 맞고 사는 것도 아니고 아시안 걸들도 꽤 당당하게 살고 있단 걸 이곳 사람들도 알긴 알겠지? 베를린만 그런지 모르지만 초청된 아시아영화들 속의 남과 여를 보다보면 음, 좀 그렇다. 아시아 남자들은 여자랑 소곤소곤 하다가도 여자가 좋아지면 왜 갑자기 덮치나? 그리고 화간인데도 여자들은 왜 그리 아파하고 왜 그게 또 좋나? 이건 서양인이 원하는 바일 것 같다, 아마도. 자기들 영화에서 어쩔 수 없이 세워야 하는 정치적 올바름에 신물이 날 때 아시아의 강간과 폭력이, 노골적이라 위선없는 욕망의 순수한 표현으로 느껴질지 모른다. 나아가 유럽영화제에 초청되는 아시아영화들에 어떤 특성이 있고(이 특성이 없어도 초청될 수 있지만 이걸 갖추면 상당히 유리함) 따라서 초청작들이 실제 아시아영화의 다양성에 비하면 너무 편협한 것이라 해도 그건 당연한 것일 거다. 이건 유럽영화제이고 유럽은 유럽에 없는 걸 가져가겠지(유럽에 있지만 우리가 더 잘 만드는 것을 가져가게 할 정도가 되면 부산영화제가 베를린을 대체하지 않을까?). 당연하지 않은 것은 유럽영화제에서 국제표준의 별점을 보는 것일 거다. 정말 베를린영화제는 베를린에서 열리는 영화제일 뿐이다. 칸은 칸에서. 근데 내 영화에 있고 서양영화에 없는 것은 뭘까? 초코파이가 떠오른다. 초청된 아시아영화들의 이해하기 어려운 특성 하나. 최신 프린트에 웬 먼지와 스크래치가 그리도 많단 말이냐? 저예산필름은 말할 것도 없고 자본을 꽤 들여 아주 잘 만든 홍콩영화 <교자>(만두)조차 티끌이 상당히 보인다. 믹싱도 완전하지 않다(폴리, 효과음 등이 자신의 태생을 속이지 못함). 더 가난한 나라 영화들도 이러지 않는데, 안타깝다(<신성일…>은 다행히 아직 비디오 상태라 티끌은 없다). 2월16일 잘 있거라, 베를린~ 집에 간다. 취스, 베를린. 해외여행하고 싶어하는 시어머니께 전화. “어머니, 나와봤더니 별거 아니네요. 다 후지고요….” 서울이, 인구 1천만이 그립다.

스펙트럼, 기대작들 3월 출시

최근 통산 1,000 타이틀 출시로 화제를 모은 DVD 전문 제작사 스펙트럼이 3월 출시작들을 공개했다. 최신 영화들에서 고전 명작, 그리고 다큐멘터리까지 다양한 라인업을 선보인 가운데 주머니 사정이 어려운 소비자들도 관심을 가질만한 타이틀이 눈에 띄고 있다. 3월 3일에는 지난해 독립영화계의 기대작으로 꼽혔던 이 출시된다. 해외 영화제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던 이 작품은 신용불량자로 낙인찍힌 청춘들의 고통을 사실적인 영상으로 담아내 호평을 받았다. 여타 상업영화들 같은 오락성은 없지만 씨네21 정한석 기자와의 대담 등 작품을 이해하는데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꼼꼼하게 수록된 부록들이 돋보인다. 3월 25일에는 골수팬들을 거느리고 있는 작품 가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 곁을 찾아온다. ‘얼티밋 에디션’이라는 이름으로 재출시될 이번 타이틀은 HD 텔레시네를 통해 기존 출시판보다 월등히 향상된 화질과 음질을 보여줄 전망. 김태용, 민규동 감독이 참여한 음성해설과 3시간이 넘는 삭제장면, 각종 제작 다큐멘터리 등 그간 보지 못했던 부록들이 수록된다. OST까지 포함한 6장의 디스크로 출시됨으로써 팬들의 오랜 기다림을 충족시키고도 남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 외, 3월 18일에는 뤽 베송 감독의 작품으로 특히 국내에서 사랑받는 작품 이 보다 향상된 퀄리티와 부록 그리고 저렴한 가격으로 선보일 예정이며, 비록 때늦은 감은 있지만 북미에서 높은 흥행 수입을 기록한 크리스마스 영화 가 3월 18일 출시될 전망이다.

두번째 감독상받은 클린트 이스트우드

올해 아카데미의 스타는 단연 클린트 이스트우드이다. 1930년생인 그는 70대 중반에 만든 25번째 감독 작품 <밀리언 달러 베이비>로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남우조연상 등 알짜배기 상 네개를 가져갔다. 지난해 그는 <미스틱 리버>로 평단의 열띤 찬사를 받으며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후보에 올랐다가 <반지의 제왕>에 안타깝게 밀려나더니 불과 1년만에 이런 영예를 안았다. 대단한 노익장이다. 배우로서 오스카 트로피를 안지는 못했지만 감독이자, 자신이 직접 차린 말파소 프로덕션의 제작자로서 93년 <용서받지 못한 자>에 이어 두번째로 아카데미 감독상, 작품상을 한꺼번에 받았다. 미국 공황기에 떠돌이 노동자 생활을 하던 부모 밑에서 자라 군복무 기간 중 로스앤젤레스 시립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그는 텔레비전 시리즈 <로하이드>에 출연해 얼굴을 알리기 시작해 64년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황야의 무법자>로 일약 스타덤에 올라섰다. 챙이 긴 모자와 망토, 시가를 씹듯이 무는 그의 모습은 서부극의 아이콘이 됐고, 이어 71년 돈 시겔 감독의 <더티 하리>를 통해 형사 액션 영화의 아이콘까지 떠맡았다. 같은 해에 그는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로 감독 데뷔를 한 뒤 <서든 임팩트>, <페일 라이더> 등 꾸준히 연출을 해왔지만,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범인을 잡아 잔혹하게 응징하는 <더티 하리>의 해리 캘러한 형사의 캐릭터로 인해 미국에서는 ‘파시스트적’이라는 이미지에 묻혀 감독으로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어쩌면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먼저 알아보기 시작한 건 프랑스였다. 프랑스 평단은 80년대 후반 파리에서 그의 작품전을 열면서 그를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기 시작했다. 그 스스로도 88년 <버드>, 90년 <추악한 사냥꾼>을 통해 작품의 깊이를 더하더니, 서부극의 관습을 뒤집는 서부극 <용서받지 못한 자>를 통해 마침내 아카데미의 공증을 받았다. <퍼펙트 월드>,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미드나잇 가든> 등으로 이어져온 그의 작품연보에서 알 수 있듯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갈등과 기승전결 구조가 분명하고 장르 영화의 틀을 갖춘 영화를 연출해왔다. 그래서 고전적이고 고지식하고, 한편에선 보수적으로 보이지만(그는 공화당 지지자이기도 하다) 그는 영화 속 인물의 내적 고민, 그들의 관계망을 깊고 정확하게 포착한다. 아울러 대다수 할리우드 영화가 가진 온정주의와 해피엔드 지향성에 연연해 하지 않음으로써, 관객의 감정이입이 수월하면서도 냉정하고 적확한 리얼리즘 드라마를 구축했다. 이번 수상작 <밀리언 달러 베이비>(한국 개봉 3월10일)는 이런 그의 작품 경향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노년의 권투 코치에게 31살 난 여자가 권투선수가 되겠다고 찾아온다. 코치는 딸이 있지만, 딸로부터 외면받는 처지다. 여자는 시골 출신의 극빈층으로, 권투가 유일한 삶의 희망이라고 말한다. 코치는 거절하다가 결국 여자의 트레이너가 되고 승승장구하던 절정에서 여자가 사고를 당해 반신불수가 된다. 놀랍게도 이 영화의 진짜 절정은 그 뒤부터 시작한다. 아버지와 딸의 유사가족의 감정이 이입된 멜로드라마의 틀을 빌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쉽게 보기 힘든 순백의 상실감을 담아낸다. 한국 나이로 76살이지만, 그의 영화 세계는 한창 진행 중이다.

제 55회 베를린영화제 총결산 [3]

히틀러 다룬 <몰락>부터 히로히토 일본 천황 다룬 <태양>까지 제55회를 맞는 베를린영화제의 경쟁부문은 그 어떤 해보다도 화제작이 적었다. 베를린에서 화려하게 첫선을 보이리라던 <에비에이터>는 이미 개봉되어버렸고, 또 다른 할리우드영화 <하이츠>(Heights)는 경쟁부문에서 취소되기도 했다. 함께 영화제에 참석했던 남편과 나는 베를린에서 본 최고의 작품은 아파트에서 16인치 텔레비전으로 본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그녀에게>라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볼 정도였다. 권력자를 인간으로 조명한 최초의 영화들 그러나 어떤 영화제든 적어도 한번은 참으로 기이한 영화가 숨어 있다 튀어나오는 마법상자 같은 면이 있게 마련이다. 올해에도 그랬다. 공교롭게도 나는 한달 동안 자그마치 네편이나 권력과 죽음이라는 주제를 바탕으로 하는 아주 유사한 영화들을 한국과 베를린에서 연이어 보게 되었다. 그것들은 환영처럼 최면처럼 역사의 순간들을 콜라주해서 이어붙여 거대한 뫼비우스 띠를 만들어내는 것 같았다. 이들 영화에서 박정희의 마지막 날은 유흥으로 시작해 암살로 끝을 맺었고, 히틀러의 마지막 날은 휘몰아치는 폭탄 세례로 시작해 자살로 끝을 맺었으며, 미테랑의 마지막 날은 적막으로 시작해 적막으로 끝이 났다. 일본 천황은 1945년 8월15일에야 태양의 신에서 인간이 된 것으로 보였다. 그들 영화들은 각각 <그때 그 사람들>, 독일영화 <몰락>, 프랑스영화 <미테랑 대통령의 말년>, 러시아영화 <태양>. 이건 할리우드가 위인들의 전기영화에 몰두하듯, 전세계적으로 불어닥친 유행처럼 아니면 우연히 내게 닥친 행운 같은 것은 아닌가. 게다가 <미테랑 대통령의 말년>은 프랑스가 최초로 다루고 있는 현대의 대통령이며, <태양>에서도 일본 천황 역시 스크린에서 감히 클로즈업 상태로 얼굴을 드러낸 최초의 영화라는 것이다. 이들 영화들은 ‘최초’와 ‘인간’이라는 데 방점을 찍는 대외 전략까지도 쌍둥이처럼 닮아 있었다. 히틀러의 마지막 날 <몰락> 먼저 지하벙커 속에서 독일의 패전을 눈앞에 둔 히틀러의 최후를 다룬 <몰락>은 히틀러를 인간적으로 그렸다 해서 개봉 때부터 화제가 되었던 작품. 베를린영화제에서는 요즈음 개봉된 독일영화만을 묶어서 상영하는 저먼시네마 부문에서 상영되었다. 히틀러를 포함하는 괴벨스와 제3제국의 붕괴를 다룬 이 영화에서, 히틀러는 아이들의 볼을 꼬집고 부하들의 항복에는 분노하는 ‘인간’으로 등장한다. 애초 생각한 것보다 몰락은 히틀러를 옹호한다기보다 히틀러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데 더 주력하고 있다고 보는 편이 공평할 것 같다. 정부였던 에바 브라운은 ‘15년간 알았으나 도저히 알 수 없는 남자. 자기 앞에서는 개와 채식 이야기를 좋아하는 남자’라고 히틀러를 평가한다. <엑스페리먼트>로 감독 데뷔를 한 올리버 히르쉬비겔 감독은 히틀러의 자살을 축으로 제3제국 고위관리들에게 돌림병처럼 번진 자살과 파멸의 도돌이표를 두 시간 가까이 쉴새없는 폭탄음과 함께 광시곡풍으로 연주한다. <몰락>에서 거대한 전쟁의 신은 끊임없이 죽음의 낫을 휘두르는 망나니의 광적인 춤사위를 춘다. 지옥도에 가까운 베를린 시민의 상황과 절망적으로 마지막 파티를 여는 에바 브라운의 춤이 교차편집되고, 특히 괴벨스와 그의 부인이 자신의 6명의 아이들을 수면제로 잠들게 한 뒤, 하나하나 죽이는 장면은 신의 맷돌은 천천히 구르지만 그 어느 낱알도 놓치지 않음을 여실히 절감하게 했다. 노대통령의 여명 <미테랑 대통령의 말년> 그러나 죽음의 광시곡이 있다면 삶의 여유도 있는 법. 히틀러가 최후의 그 순간을 맞을 즈음 청년 미테랑은 자신의 경력에서 가장 중요한 바탕이 될 일을 하고 있었다. 바로 레지스탕스 운동을 벌여서 드골을 만났던 것. 유럽 전역에서 사회주의가 몰락할 때 프랑스 최초로 사회주의를 실험했던 이 청년은 14년간이나 샹젤리제궁의 주인이었던 최장수 대통령이 된다. 작고한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의 말년을 다룬 로베르 게디기앙 감독의 <미테랑 대통령의 말년>(원제 <샹 드 마르스의 산책>)은 80% 이상의 미테랑의 수다로 채워져 있다. 그는 자신의 자서전을 대필할 기자에게 ‘몇살이냐?’고 묻고는 ‘30살’이라고 하자 ‘그 나이에 나는 장관이었다’고 웃는다. ‘모델은 보기만 하고 만질 수가 없으니 배우나 흑발의 아가씨를 그것도 서른살 이하의 여자는 자기가 특별한 줄 아니까 서른살 이상의 여자를 사귀라’고 충고하는 이 대통령은 권력자의 진실을 파헤치려는 기자와 교묘한 기싸움을 죽을 때까지 벌인다. 한 권력자의 말년의 초상화이자 동시에 문학과 정치와 역사와 여자에 대한 미테랑의 개인적인 논평서처럼 보이는 이 영화에서 모든 권력을 쥐었으나 죽음을 앞둔 대통령과 어떤 권력도 없지만 창창한 삶을 눈앞에 둔 청년 기자는 모든 면에서 대비된다. 당연히 영화는 베를린에서 최초로 소개되었지만 반응은 프랑스가 훨씬 뜨거웠다. 프랑스 현지 언론들은 영화가 혼외정사 및 숨겨놓은 딸의 존재 등 미테랑의 가장 예민한 사생활의 진창을 교묘히 피해갔다며 힐책했고 게디기앙 감독은 나는 “미테랑에 대해 사람들이 어떤 결론을 내리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들이 사회와 정치에 대해 심사숙고하기만을 바랐을 뿐이다”라고 응대했다. 이 독일, 프랑스 정치영화의 대결에는 콧수염뿐 아니라 손을 떨며 극도로 흥분한 히틀러의 모습까지도 똑같이 재현해낸 독일의 대표 배우 브루노 간츠와 부드러운 웃음을 흘리며 끊임없이 수다를 떠는 미테랑 역의 미셸 부케 두 사람 중 누가 더 톱 도그(Top dog: 최고 권력자)를 잘 재현했는지에 대한 비교도 빠지지 않는다. 인간이 되고 싶은 천황 <태양> 이에 비하면 러시아 감독 알렉산더 소쿠로프는 일본 천황을 아주 곤죽으로 만들어놓는다(그런데 이 칸의 아들은 어찌하여 베를린까지 와서 자신의 신작을 공개했을까?). 천황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미제 초콜릿과 공습으로 얻어진 초콜릿을 비교하는 어린아이 같은 면이 있는가 하면, 맥아더 앞에서는 수만명의 목숨을 살릴 수 있는 결정을 내리는 진중한 신사로 변모한다. 솔직히 소쿠로프의 <태양>은 차이밍량의 <떠다니는 구름>과 함께 경쟁작 중 유일하게 내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히틀러와 에바 브라운의 관계, 권력과 사랑의 문제에 접근했던 <몰로흐> 그리고 레닌의 말년을 통해 권력과 도덕의 문제를 다루었던 <타우루스>에 이어 소쿠로프는 권력과 인간의 문제를 실험한다. 소쿠로프식 영화미학을 다시 한번 극한으로 밀어올린다. 이 영화는 일체 인공조명이 배제된 채 촬영되었다(이러한 방식은 미카엘 하네케가 <늑대의 시간>에서 실험했던 것인데 그는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다). 태양 자신인 일본 천황이 온 방안을 환하게 비추어야 할 터인데 말이다. 영화의 제목 ‘태양’은 이 영화가 일본 천황에 대한 영화일 뿐 아니라 소쿠로프가 실험하는 ‘빛’의 예술임을 이중적으로 암시한다. 전쟁의 마지막 날, 무엇보다도 신에서 인간으로 간절히 하강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일황 자신이다. <태양>의 시사가 끝나자 옆자리에 앉았던 일본인 기자는 “이 영화는 천황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일본에 대한 이야기”라며 흥분했다. 정치적 올바름에 집착하는 베를린 개인적으로 나는 이 모든 권력자들의 최후를 보며, 감독들이 이토록 권력자들의 최후에 매료되는 까닭은 권력이 섹스처럼 본질적으로 어떤 희열과 죽음 같은 허무를 함께 경험하는 몇 안 되는 체험이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제 독일에서 히틀러와 소피 숄의 최후는 나란히 한 영화제를 장식한다(소피 숄은 지하 단체인 백장미단을 만들어 오빠인 한스 숄과 함께 반나치 운동을 하다 사형당한 독일의 유관순 같은 인물이다). 롤랜드 에머리히를 단장으로 한 심사단은 내가 보기에는 철저히 바른 생활 영화인 소피 숄에게 은곰상과 여우주연상을 안겼다. 독일, 이 창백한 어머니는 ‘정치적으로 올바른’에 집착한 나머지 다른 모든 영화적 실험들은 잊은 것일까? 그게 내가 아는 올해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의 진실이다. 아쉽게도 여전히 역사의 부채에 허리가 부서지는 독일, 베를린영화제에서 유대인 수용소에서 노는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같은 작품은 당분간 구경하기 힘들 것 같다. 영포럼 부문 결산 세계는 넓고 영화는 많다 35회를 맞는 베를린영화제의 영포럼 부문은 베를린이 전세계에서 발견한 젊은 영화인의 피를 수혈하는 통로로서, 재기발랄하고 창의적인 영화, 실험적인 영화를 표방하고 나선 분야이다.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구분을 하지 않고, 신인감독의 작품이 위주인 포럼에서 올해는 33개국에서 날아온 39편의 작품이 상영되었다. 일단 포럼의 수장인 크리스토퍼 테레헤히터는 첫날 가진 스크린 데일리에서 이미 <여자, 정혜>를 영포럼의 강력한 추천작으로 뽑았을 만큼 한국영화에 대한 배려가 극진한 편이었다. <여자, 정혜> 외에도 특히 주목을 받은 화제작으로는 미카 카우리스마키가 감독한 브라질의 도시 뮤직인 코로에 대한 다큐, 일종의 브라질판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인 <브라질레이리노>, 인도의 가장 중요한 3대 감독 중 하나인 야쉬 코프라의 신나는 발리우드 뮤지컬 <비어 자라>, 자신의 가족을 배우로 해 단 23개 신만으로 영화를 만든 중국의 류지아인 감독의 <옥사이드>, 그리고 거장임에도 불구하고 신인감독 못지않게 몸의 움직임에 대한 실험적인 다큐를 만든 클레어 드니의 <마틸데를 향하여> 등이 있었다. 이 밖에도 베를린의 세 배우를 중심으로 그들의 현재 삶과 연기가 맺고 있는 불가분의 관계를 세명의 감독이 각각 연출한 <베를린 스토리>가 좋은 반응을 얻었고, 정체 불명의 동양 남자의 아이를 가진 한 젊은 미혼모를 둘러싼 가족들의 소동담을 그린 <쿵후에게 미안해>는 좀처럼 만나볼 수 없는 크로아티아영화였다. 개인적으로 영포럼 분야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받은 작품은 공교롭게도 두편 다 중국영화였는데, 그 하나는 중국에서 각종 영화제의 촬영상을 휩쓸고 있는 <커커실리>와 몽골의 대초원을 배경으로 어느 날 처음 본 물건인 탁구공을 둘러싼 한 소년의 성장영화 <몽고리안 핑퐁>이었다. 티베트의 고원을 배경으로 가도가도 끝없는 야생의 땅 커커실리에서 일명 산악 순찰대라 불리는 민간환경보호단체와 밀렵꾼 사이의 피비린내나는 전쟁을 그린 <커커실리>는 그 장대한 촬영과 압도적인 자연으로 인해 <아타나주아> 이후 가장 장쾌한 영화 경험을 맛보게 했다. <몽고리안 핑퐁>의 경우 닝하오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서구화되는 몽골 대초원의 삶을 유머러스하게 다루고 있는 수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