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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2003)

[What's Up] 몬트리올은 영화제 전쟁중

지난 2월9일 모리츠 데 하델른을 수장으로 한 몬트리올국제영화제(Festival International du Films de Montreal, 이하 FIFM)가 출범하면서, 몬트리올 지역이 시끄러워졌다. 몬트리올에는 이미 또 다른 국제영화제인 몬트리올세계영화제(Montreal World Fil Festival, 이하 MWFF)와 34년 역사의 누보시네마영화제(Festival du Nouveau Cinema)가 이어져왔던 터라, 3개의 영화제가 경쟁하는 양상이 되어버린 것. 문제는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려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퀘벡주 정부와 관계가 악화된 MWFF는 정부지원금이 끊기면서 쇠락하고 있고, 누보시네마의 위원장인 다니엘 랑글루아도 FIFM에 합류하기로 결정하면서, FIFM이 주정부의 물심양면 적극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세를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새로 부상한 FIFM은 기존의 MWFF에 불만을 품고 있던 퀘벡주 정부와 후원사인 텔레필름 캐나다가 ‘대안’격으로 창설한 영화제. 베를린영화제와 베니스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을 거친 모리츠 데 하델른을 영입한 것 또한 그들의 아이디어였다. 하루아침에 막강한 라이벌을 만나 불필요한 소모전을 치러야 하는 MWFF가 가만히 있을 리 없다. MWFF를 운영하는 세르지 로직은 FIFM의 리더인 하델른을 맹공하고 나섰다. 하델른이 이란의 테헤란영화제의 창설에 관여했다는 것이다. 이들의 악연에는 역사가 있다. 2003년 하델른이 베니스영화제에 몸담고 있을 당시, 매년 9월에 열리던 MWFF가 8월 말로 일정을 당겨 잡아, 베니스 및 토론토영화제와 오버랩되었고, 이 때문에 하델른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바 있다. 이후 MWFF는 세계영화제작자연맹에서 공인 자격을 박탈당하는 수난을 겪었고, 이를 하델른이 배후 조종했다는 의혹을 품어왔다. 8월25일부터 9월5일까지 열리는 MWFF, 10월12일부터 23일까지 열리는 FIFM, 한 지역에서 두개의 국제영화제가 잡음과 사고없이 치러지긴 불가능해 보인다.

제 55회 베를린영화제 중간결산 [4] - 신재인 감독의 베를린 탐방기

“나는 지난밤에 너의 영화를 보았다. 그것은 힘이 셌고 재미가 있었고 나는 흥분했다. 나는 너의 영화를 베를린영화제에 초청하고 싶다. 그것은 2월10일에 발생할 것이다.” 독일인 프로그래머가 부산영화제 마지막 날 내게 보내온 메일은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처럼 좀 으스스했다(자동번역프로그램을 통해 한글로 번역해서 보낸 것. 내 시나리오도 자동번역기에 넣어 좀 공포스럽게 할 수 없을까?). <신성일의 행방불명>이 베를린영화제에 가게 됐다고 자랑하자 최모 선배는 물었다. “베를린인디영화제?” 강모 후배는 물었다. “베를린단편영화제요?” “베를린영화제, 부산영화제보다 후지대.” 김모는 말했다. 이들이 이러는 걸 보면 대단한 영화제인 게 분명해. 느낌이 좋은 게 왠지 가서 상을 받을 거 같다. 그럼 시상식 단상에 올라가 트로피를 받고 소감을 밝히는 거야. “이 순간을 고대했습니다. (중략) 수상거부를 하면 재밌겠다고 심심할 때 가끔 생각했거든요. 제게 상을 주시니 영화에 대한 안목이 있으신 게 분명하여 이런 말씀드리기 송구스러우나 위원 제분께서 제게 상을 주실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밝히지 않을 수가 없네요. (트로피를 돌려주며) 곰돌이가 예쁘긴 하네요.” “포럼? 비경쟁 부문이고 아무 영화나 다 가더라야.” 오모 선배는 말했다. 실망하고 있는데 베를린쪽에서는 자기들 영화제에 오려면 로테르담영화제 초청을 거절해야 한다고 요구해왔다. “네.” 초청된 건 좋지만 여행하는 건 싫었다. 내 집이 너무 좋은걸. 영화라면 볼 만하다. 그런데 영화를 베를린까지 가서 봐야 하나? 거기에서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영화는 어차피 나랑 인연이 없는 걸로 생각하면 안 될까? 말하자면 나는 깡시골에서 자기 마을이 이 세상이라고 믿으며 고집스럽게 만족스러워하는 촌늙은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다는 사소한 차이로 인해 그 고집이 좀 가식적이긴 하나)인데 우리 아버지는 자신보다 더 늙은 딸에게 유로화를 건네며 유럽 문화를 꼭 보고 오라고 하셨다. “걔네들은 소매치기 문화도 잘 보존해놨다고.” 2월10일 부산영화제 가방이 훨씬 예쁘다 아버지가 주신 막대한 유로화를 파리에서 6일간 불란서 스테이크를 먹는 데 탕진하고 매우 가난해져서 베를린에 도착. 이미 파리인들의 야만성(물 강매하기, 대소변 보는 값 매기기, 담배 아무 데서나 피우기, 신호등을 가로등쯤으로 여기기, 그리고 훔쳐온 물건 전시하기)에 익숙해진 터라 베를린에서는 더 놀랄 것도 없겠지 싶어 안심이 된다. 베를린은 대전 정도의 도시로 보인다. 2차대전 전의 베를린 사진을 보니 파리에 비해 이 도시가 얼마나 심하게 폭격당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베를린은 고풍스런 모습을 많이 잃었지만 모던하고 지나치게 꾸미지 않은 외양을 얻었다. 사무실에 가서 아이디카드를 받으며 기대하던 베를린영화제 가방을 받았다. 두둥. 근데 생긴 게 휴대용 린나이가스레인지 커버와 같고 박음질은 부실하며 크기는 더 크다. 이걸 어디에 쓰란 말이냐? 레인지 커버를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부산영화제 가방이 생각났다(이 이후 경험한 바, 대부분의 면에서 베를린영화제가 부산영화제보다 후졌다는 것을 미리 말해둡니다. 김모야, 정말 그렇더라). 키아누 리브스가 왔나보다. 극장 앞에서 비명소리가 들린다. 2월11일 브라질산 웰메이드 영화에 기죽다 영화? 별거 아냐. 그냥 만드는 게 재밌어서 만든다, 고 생각했었다. 건방진 것. 영화가 별거 아닌 게 결코 아님을 내게 깨우쳐준 것은 파리의 미술관들이었다. 평소 미술에 꽤나 흥미를 갖고 있던 터에 6일간의 파리미술품 알현 일정은 사실 베를린영화제에 가는 것보다 더 나를 흥분시켰었다. 가서 보니 작품들은 기대보다 더 훌륭했다. 그런데 매일매일이 왠지 허망했다. 모나리자 앞에서 눈물을 한 방울 떨어뜨렸지만 그게 가수 마돈나를 직접 보고 눈물을 떨어뜨리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이냐. 허망. 에펠탑에 가면 뛰어내릴 수 있는지를 물었다. 미술 작품 관람, 도시의 건축물 구경- 이 모든 sightseeing은 소설이나 영화, 텔레비젼 쇼가 주는 체험과는 다른 것 같다. 어폐가 있지만 픽션은 sightliving. 가짜로라도 뭔가 살게 해준다(그림도 열심히 들여다보면 살게 될지 모르지만. 그런 공포영화도 있었지). 그리고 무인도에 갇혀 평생 살아야 한다면 모나리자보다 삼류 소설을 들고 가지 않겠나. 영화를 보기 시작한다. 주여, 제발 제게 기막힌 영화를 보여주소서. 단, 제가 영화감독 그만둔 다음에요(몇년 전 나는 부산영화제에서 기가 막힌 영화들을 한 다스로 보고 고시공부에 매진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처연히 밤길을 헤맸었다. 그래서 지난해 부산영화제 때는 영화를 일절 보지 않고 부산의 호텔구경만 했었지). 처음 본 작품. 작품에 대한 정보없이 아무 거나 보자고 들어갔는데 운수가 나쁘다. 완벽한 영화였다. 브라질에서 할리우드 자본과 손잡고 만든 포르투갈어 영화인데 할리우드의 최상급 영화에 해당하는 웰메이드 엔터테인먼트(이런 말이 있는지 불안함)를 제공한다. 브라질풍의 프랭크 카프라 코미디인데 훨씬 나은 카프라다. 부조리, 이유없음에 대한 감수성(왜 너는 부자인데 쟤는 가난하냐?)을 오락적으로 푼 것이 신선하다. 감독은 분명 할리우드로 스카우트될 것이고, 각본가는 얼른 우리나라에서 스카우트하라! 어쨌든 아쉽게도 지루한 부분이 너무 없어 걸작은 못 되겠다(오락영화의 걸작들도 보면 다 지루한 부분이 있더라). 2월12일 어험, 한국 대표가 된 기분이네 폭탄 두개를 연이어 만나다. 터키의 가난한 그리스인이 나오는 영화가 먼저. 영화에서 죄다 팔아도 이건 팔지 않았으면 하는 게 (별로 없지만) 가끔은 있지 않나? 예컨대 가난과 터키의 풍광. 마지막 십분을 남겨두고 대피. 그 다음 터진 것은 여성감독이 만든 게이들의 SM영화. 포스터도 야하고 홍보도 열심이고 과연 관객으로 인산인해다(이중 많은 수가 중간에 대피함). 에이즈에 걸린! 마조히스트! 게이!(이 세 구절이 이 영화의 모든 것임)의 일상을 죽 보여주다가 사람들이 졸지 않도록 사도마조히즘 포르노로 가끔씩 배려함(성기고문, 항문에 장난치기- 상당히 세다). 포르노는 성공인데 일상 부분은 파탄이다. 그러나 “아주우” 약간 부러웠던 것도 사실. 이 여인, 촬영 기간의 반은 사내들 벗겨놓고 찍었을 것이다. 포르노 때문에 나는 끝끝내 대피 못함. 이 영화, 게이를 혐오하게 하는 데 효과 만빵이니 멜 깁슨은 어서 수입하라! 저녁, <신성일…>의 첫 상영이 있었다. 내 영화는 포스터도 붙어 있지 않고(만들었는데 어딨는지 모르겠다) 모든 영화를 소개하는 공식 브로슈어에 난 몇줄을 빼면 아무런 사전정보도 주지 않는, 코레아의 비디오영화다. 누가 오겠나 싶었지만 미스 월드 한국 대표가 된 심정으로 독일인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30분간 독일어 공부를 하다가 극장에 갔다. 생각보다 관객이 제법 들었다. 매진은 아니었지만 극장이 상당히 커서 아마 <신성일…>이 가장 많은 관객을 만나는 날이었을 듯(한국 동포들이 독일 친구들을 다 데려온 거 같다. 장하다). 그런데 그중 일부는- 내가 다른 영화에서 그랬듯- 상영 중에 대피하다(내가 출구에서 한명 한명 얼굴을 확인함. 다행히 그 수는 많지 않았다). 관객과의 대화시간. 무대에 올라 독일어를 몇 마디 하니 관객이 좀 놀란다. 참, 인사말 갖고 감탄하긴. 그뒤 영화에 대한 관객의 반응이 생각보다 좋은 듯하여 좀 놀랐다. 그리고 관객과의 대화를 통해 독일 내지 유럽 관객이 한국과 한국영화에 대해 무지하거나 오해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됨. 이들도 안다. 요즘 독일 뉴스를 타고 있는 북한의 핵위협(연예인들 가십 나오는 독일 신문에도 2면에 커다랗게 김정일 사진 나옴), 이럴 때 따라나오는 북한 군인들의 독특한 행군 모습, 그리고 윤이상, 송두율에 대한 남코레아의 처사. 한 독일 관객은 벌떡 일어나더니 한국영화가 대부분 정치적이라고 말하며 내 영화에서 한국 정권에 대한 모종의 반작용을 찾아보려고 한다(아니, 이미 찾았다). Q&A가 끝나자 한국인 동포처녀와 총각이 내게 사인을 부탁한다(그들은 한국말을 전혀 못한다). 그러면서 내 영화를 보고 자부심을 느꼈다고 말한다. 그때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여관으로 돌아오는 길에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동안 그들이 자부심 느낄 일이 얼마나 없었으면 내 영화로 그런 걸 느꼈을까? 얘들아, 한국엔 <신성일…>보다 좋은 영화 많아. 그리고 한국, 괜찮은 나라야(그런데 한국, 그동안 뭐 했어요?) 베를린 리포트: (베를린에 와보니) 영화는 예술이고 사업이기 전에 외교인 것 같습니다. 2월13일 역시 정치적인 영화제야 내 영화가 웰메이드가 아니란 것에 대해 괴로워하다 내가 나를 위로했다. “저예산으로 웰메이드를 만들려면 등장인물도 적고 로케이션도 평범해야 해. 스토리라인도 단순하면 더 좋고. 그럼 콘티도 단순해지고 감독이 중요한 데 집중할 수 있고. 니 얘기는 저예산으로 웰메이드할 수 있는 게 아니었어.” (맞아, 맞아, 나도 웰메이드할 수 있어. 주먹을 불끈 쥔다.) “좋아, 앞으로 다섯명만 등장하는 영화를 만들겠어.” 내가 말하자 “근데 니 스토리 중에 <신성일…>이 그나마 사람 적게 나오는 스토리 아냐? 다 100명 넘게 나오는 얘기라서 신성일이 제일 찍기 쉽다고 그거 찍은 거 아냐?” 제3의 내 목소리, “방금 그 말도 변명이란 거 알지?” “그래, 알았어. 나 바보야. 웰메이드 못 해, 됐어?” 성질을 부린다. 티격태격하며 방구석에서 뒹굴었다. 베를린영화제에서 가장 인기가 있었던 (관객이 가장 많이 몰린) 영화는 내가 관찰한 바로는 놀랍게도 한 다큐였다. <학살>이란 제목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을 학살한 유대인 몇명의 인터뷰를 담은 영화. 베를린영화제는 섹스와 더불어 유독 정치에 관심이 많은 것 같고 독일인 관객도 그런 것 같다. 게다가 이 영화는 독일인들에게 학살당했던 유대인들이 이번에는 자기들이 학살자가 된 현재를 다루고 있어 관심을 증폭시킨 듯하다. 큰 극장인데도 통로, 입구까지도 사람으로 꽉 차서 나는 입장을 거절당함. 한 무더기의 관객이 들여보내 달라고 항의하며 30여분 동안 문 밖에 서 있었다. 나도 달리 할 일도 없고 하여 같이 서 있었는데 그러다보니 절실히 보고 싶어졌지만, 그러나 다음번 상영도 나는 볼 수가 없다. 2월14일 고3처럼 영화공부하다 파리에서 미술품에 싸여 있을 때는 영화를 보고 싶어 죽겠더니 베를린에서 영화가 범람하자 영화보기가 점점 멘탈 무산소운동, 그러니까 고역이 되어간다. 그럴수록 나는 하루에 몇편을 보는가, 하루에 영화보지 않는 시간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가 따위에 골몰하고, 더 주목할 건 이젠 폭탄을 만나도 대피하지 않는다는 것. 너무 세심하여 지리멸렬해 보여도, 너무 길어서 잠이 쏟아져도 수험생처럼 잠을 쫓으며 견딘다. 그러다 한밤에 여관으로 돌아오는 길, 딱 고3 수험생의 만족감과 허탈함이 교차한다(게다가 오는 길에 자주 비나 눈이 내리며 적당한 무드를 조성). 그러니 내가 어떤 영화를 그 내용도 모르고 단지 255분짜리 다큐라는 이유만으로 보려 하는 작금의 현상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내 정신의 근육질을 위해. 이건 정말로 헬스다. 2월15일 아시안 걸, 알고보면 무섭단다 아시아 여성들이 항상 강간당하는 것은 아니며 남자들에게 늘 맞고 사는 것도 아니고 아시안 걸들도 꽤 당당하게 살고 있단 걸 이곳 사람들도 알긴 알겠지? 베를린만 그런지 모르지만 초청된 아시아영화들 속의 남과 여를 보다보면 음, 좀 그렇다. 아시아 남자들은 여자랑 소곤소곤 하다가도 여자가 좋아지면 왜 갑자기 덮치나? 그리고 화간인데도 여자들은 왜 그리 아파하고 왜 그게 또 좋나? 이건 서양인이 원하는 바일 것 같다, 아마도. 자기들 영화에서 어쩔 수 없이 세워야 하는 정치적 올바름에 신물이 날 때 아시아의 강간과 폭력이, 노골적이라 위선없는 욕망의 순수한 표현으로 느껴질지 모른다. 나아가 유럽영화제에 초청되는 아시아영화들에 어떤 특성이 있고(이 특성이 없어도 초청될 수 있지만 이걸 갖추면 상당히 유리함) 따라서 초청작들이 실제 아시아영화의 다양성에 비하면 너무 편협한 것이라 해도 그건 당연한 것일 거다. 이건 유럽영화제이고 유럽은 유럽에 없는 걸 가져가겠지(유럽에 있지만 우리가 더 잘 만드는 것을 가져가게 할 정도가 되면 부산영화제가 베를린을 대체하지 않을까?). 당연하지 않은 것은 유럽영화제에서 국제표준의 별점을 보는 것일 거다. 정말 베를린영화제는 베를린에서 열리는 영화제일 뿐이다. 칸은 칸에서. 근데 내 영화에 있고 서양영화에 없는 것은 뭘까? 초코파이가 떠오른다. 초청된 아시아영화들의 이해하기 어려운 특성 하나. 최신 프린트에 웬 먼지와 스크래치가 그리도 많단 말이냐? 저예산필름은 말할 것도 없고 자본을 꽤 들여 아주 잘 만든 홍콩영화 <교자>(만두)조차 티끌이 상당히 보인다. 믹싱도 완전하지 않다(폴리, 효과음 등이 자신의 태생을 속이지 못함). 더 가난한 나라 영화들도 이러지 않는데, 안타깝다(<신성일…>은 다행히 아직 비디오 상태라 티끌은 없다). 2월16일 잘 있거라, 베를린~ 집에 간다. 취스, 베를린. 해외여행하고 싶어하는 시어머니께 전화. “어머니, 나와봤더니 별거 아니네요. 다 후지고요….” 서울이, 인구 1천만이 그립다.

스펙트럼, 기대작들 3월 출시

최근 통산 1,000 타이틀 출시로 화제를 모은 DVD 전문 제작사 스펙트럼이 3월 출시작들을 공개했다. 최신 영화들에서 고전 명작, 그리고 다큐멘터리까지 다양한 라인업을 선보인 가운데 주머니 사정이 어려운 소비자들도 관심을 가질만한 타이틀이 눈에 띄고 있다. 3월 3일에는 지난해 독립영화계의 기대작으로 꼽혔던 이 출시된다. 해외 영화제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던 이 작품은 신용불량자로 낙인찍힌 청춘들의 고통을 사실적인 영상으로 담아내 호평을 받았다. 여타 상업영화들 같은 오락성은 없지만 씨네21 정한석 기자와의 대담 등 작품을 이해하는데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꼼꼼하게 수록된 부록들이 돋보인다. 3월 25일에는 골수팬들을 거느리고 있는 작품 가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 곁을 찾아온다. ‘얼티밋 에디션’이라는 이름으로 재출시될 이번 타이틀은 HD 텔레시네를 통해 기존 출시판보다 월등히 향상된 화질과 음질을 보여줄 전망. 김태용, 민규동 감독이 참여한 음성해설과 3시간이 넘는 삭제장면, 각종 제작 다큐멘터리 등 그간 보지 못했던 부록들이 수록된다. OST까지 포함한 6장의 디스크로 출시됨으로써 팬들의 오랜 기다림을 충족시키고도 남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 외, 3월 18일에는 뤽 베송 감독의 작품으로 특히 국내에서 사랑받는 작품 이 보다 향상된 퀄리티와 부록 그리고 저렴한 가격으로 선보일 예정이며, 비록 때늦은 감은 있지만 북미에서 높은 흥행 수입을 기록한 크리스마스 영화 가 3월 18일 출시될 전망이다.

두번째 감독상받은 클린트 이스트우드

올해 아카데미의 스타는 단연 클린트 이스트우드이다. 1930년생인 그는 70대 중반에 만든 25번째 감독 작품 <밀리언 달러 베이비>로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남우조연상 등 알짜배기 상 네개를 가져갔다. 지난해 그는 <미스틱 리버>로 평단의 열띤 찬사를 받으며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후보에 올랐다가 <반지의 제왕>에 안타깝게 밀려나더니 불과 1년만에 이런 영예를 안았다. 대단한 노익장이다. 배우로서 오스카 트로피를 안지는 못했지만 감독이자, 자신이 직접 차린 말파소 프로덕션의 제작자로서 93년 <용서받지 못한 자>에 이어 두번째로 아카데미 감독상, 작품상을 한꺼번에 받았다. 미국 공황기에 떠돌이 노동자 생활을 하던 부모 밑에서 자라 군복무 기간 중 로스앤젤레스 시립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그는 텔레비전 시리즈 <로하이드>에 출연해 얼굴을 알리기 시작해 64년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황야의 무법자>로 일약 스타덤에 올라섰다. 챙이 긴 모자와 망토, 시가를 씹듯이 무는 그의 모습은 서부극의 아이콘이 됐고, 이어 71년 돈 시겔 감독의 <더티 하리>를 통해 형사 액션 영화의 아이콘까지 떠맡았다. 같은 해에 그는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로 감독 데뷔를 한 뒤 <서든 임팩트>, <페일 라이더> 등 꾸준히 연출을 해왔지만,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범인을 잡아 잔혹하게 응징하는 <더티 하리>의 해리 캘러한 형사의 캐릭터로 인해 미국에서는 ‘파시스트적’이라는 이미지에 묻혀 감독으로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어쩌면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먼저 알아보기 시작한 건 프랑스였다. 프랑스 평단은 80년대 후반 파리에서 그의 작품전을 열면서 그를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기 시작했다. 그 스스로도 88년 <버드>, 90년 <추악한 사냥꾼>을 통해 작품의 깊이를 더하더니, 서부극의 관습을 뒤집는 서부극 <용서받지 못한 자>를 통해 마침내 아카데미의 공증을 받았다. <퍼펙트 월드>,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미드나잇 가든> 등으로 이어져온 그의 작품연보에서 알 수 있듯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갈등과 기승전결 구조가 분명하고 장르 영화의 틀을 갖춘 영화를 연출해왔다. 그래서 고전적이고 고지식하고, 한편에선 보수적으로 보이지만(그는 공화당 지지자이기도 하다) 그는 영화 속 인물의 내적 고민, 그들의 관계망을 깊고 정확하게 포착한다. 아울러 대다수 할리우드 영화가 가진 온정주의와 해피엔드 지향성에 연연해 하지 않음으로써, 관객의 감정이입이 수월하면서도 냉정하고 적확한 리얼리즘 드라마를 구축했다. 이번 수상작 <밀리언 달러 베이비>(한국 개봉 3월10일)는 이런 그의 작품 경향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노년의 권투 코치에게 31살 난 여자가 권투선수가 되겠다고 찾아온다. 코치는 딸이 있지만, 딸로부터 외면받는 처지다. 여자는 시골 출신의 극빈층으로, 권투가 유일한 삶의 희망이라고 말한다. 코치는 거절하다가 결국 여자의 트레이너가 되고 승승장구하던 절정에서 여자가 사고를 당해 반신불수가 된다. 놀랍게도 이 영화의 진짜 절정은 그 뒤부터 시작한다. 아버지와 딸의 유사가족의 감정이 이입된 멜로드라마의 틀을 빌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쉽게 보기 힘든 순백의 상실감을 담아낸다. 한국 나이로 76살이지만, 그의 영화 세계는 한창 진행 중이다.

제 55회 베를린영화제 총결산 [3]

히틀러 다룬 <몰락>부터 히로히토 일본 천황 다룬 <태양>까지 제55회를 맞는 베를린영화제의 경쟁부문은 그 어떤 해보다도 화제작이 적었다. 베를린에서 화려하게 첫선을 보이리라던 <에비에이터>는 이미 개봉되어버렸고, 또 다른 할리우드영화 <하이츠>(Heights)는 경쟁부문에서 취소되기도 했다. 함께 영화제에 참석했던 남편과 나는 베를린에서 본 최고의 작품은 아파트에서 16인치 텔레비전으로 본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그녀에게>라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볼 정도였다. 권력자를 인간으로 조명한 최초의 영화들 그러나 어떤 영화제든 적어도 한번은 참으로 기이한 영화가 숨어 있다 튀어나오는 마법상자 같은 면이 있게 마련이다. 올해에도 그랬다. 공교롭게도 나는 한달 동안 자그마치 네편이나 권력과 죽음이라는 주제를 바탕으로 하는 아주 유사한 영화들을 한국과 베를린에서 연이어 보게 되었다. 그것들은 환영처럼 최면처럼 역사의 순간들을 콜라주해서 이어붙여 거대한 뫼비우스 띠를 만들어내는 것 같았다. 이들 영화에서 박정희의 마지막 날은 유흥으로 시작해 암살로 끝을 맺었고, 히틀러의 마지막 날은 휘몰아치는 폭탄 세례로 시작해 자살로 끝을 맺었으며, 미테랑의 마지막 날은 적막으로 시작해 적막으로 끝이 났다. 일본 천황은 1945년 8월15일에야 태양의 신에서 인간이 된 것으로 보였다. 그들 영화들은 각각 <그때 그 사람들>, 독일영화 <몰락>, 프랑스영화 <미테랑 대통령의 말년>, 러시아영화 <태양>. 이건 할리우드가 위인들의 전기영화에 몰두하듯, 전세계적으로 불어닥친 유행처럼 아니면 우연히 내게 닥친 행운 같은 것은 아닌가. 게다가 <미테랑 대통령의 말년>은 프랑스가 최초로 다루고 있는 현대의 대통령이며, <태양>에서도 일본 천황 역시 스크린에서 감히 클로즈업 상태로 얼굴을 드러낸 최초의 영화라는 것이다. 이들 영화들은 ‘최초’와 ‘인간’이라는 데 방점을 찍는 대외 전략까지도 쌍둥이처럼 닮아 있었다. 히틀러의 마지막 날 <몰락> 먼저 지하벙커 속에서 독일의 패전을 눈앞에 둔 히틀러의 최후를 다룬 <몰락>은 히틀러를 인간적으로 그렸다 해서 개봉 때부터 화제가 되었던 작품. 베를린영화제에서는 요즈음 개봉된 독일영화만을 묶어서 상영하는 저먼시네마 부문에서 상영되었다. 히틀러를 포함하는 괴벨스와 제3제국의 붕괴를 다룬 이 영화에서, 히틀러는 아이들의 볼을 꼬집고 부하들의 항복에는 분노하는 ‘인간’으로 등장한다. 애초 생각한 것보다 몰락은 히틀러를 옹호한다기보다 히틀러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데 더 주력하고 있다고 보는 편이 공평할 것 같다. 정부였던 에바 브라운은 ‘15년간 알았으나 도저히 알 수 없는 남자. 자기 앞에서는 개와 채식 이야기를 좋아하는 남자’라고 히틀러를 평가한다. <엑스페리먼트>로 감독 데뷔를 한 올리버 히르쉬비겔 감독은 히틀러의 자살을 축으로 제3제국 고위관리들에게 돌림병처럼 번진 자살과 파멸의 도돌이표를 두 시간 가까이 쉴새없는 폭탄음과 함께 광시곡풍으로 연주한다. <몰락>에서 거대한 전쟁의 신은 끊임없이 죽음의 낫을 휘두르는 망나니의 광적인 춤사위를 춘다. 지옥도에 가까운 베를린 시민의 상황과 절망적으로 마지막 파티를 여는 에바 브라운의 춤이 교차편집되고, 특히 괴벨스와 그의 부인이 자신의 6명의 아이들을 수면제로 잠들게 한 뒤, 하나하나 죽이는 장면은 신의 맷돌은 천천히 구르지만 그 어느 낱알도 놓치지 않음을 여실히 절감하게 했다. 노대통령의 여명 <미테랑 대통령의 말년> 그러나 죽음의 광시곡이 있다면 삶의 여유도 있는 법. 히틀러가 최후의 그 순간을 맞을 즈음 청년 미테랑은 자신의 경력에서 가장 중요한 바탕이 될 일을 하고 있었다. 바로 레지스탕스 운동을 벌여서 드골을 만났던 것. 유럽 전역에서 사회주의가 몰락할 때 프랑스 최초로 사회주의를 실험했던 이 청년은 14년간이나 샹젤리제궁의 주인이었던 최장수 대통령이 된다. 작고한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의 말년을 다룬 로베르 게디기앙 감독의 <미테랑 대통령의 말년>(원제 <샹 드 마르스의 산책>)은 80% 이상의 미테랑의 수다로 채워져 있다. 그는 자신의 자서전을 대필할 기자에게 ‘몇살이냐?’고 묻고는 ‘30살’이라고 하자 ‘그 나이에 나는 장관이었다’고 웃는다. ‘모델은 보기만 하고 만질 수가 없으니 배우나 흑발의 아가씨를 그것도 서른살 이하의 여자는 자기가 특별한 줄 아니까 서른살 이상의 여자를 사귀라’고 충고하는 이 대통령은 권력자의 진실을 파헤치려는 기자와 교묘한 기싸움을 죽을 때까지 벌인다. 한 권력자의 말년의 초상화이자 동시에 문학과 정치와 역사와 여자에 대한 미테랑의 개인적인 논평서처럼 보이는 이 영화에서 모든 권력을 쥐었으나 죽음을 앞둔 대통령과 어떤 권력도 없지만 창창한 삶을 눈앞에 둔 청년 기자는 모든 면에서 대비된다. 당연히 영화는 베를린에서 최초로 소개되었지만 반응은 프랑스가 훨씬 뜨거웠다. 프랑스 현지 언론들은 영화가 혼외정사 및 숨겨놓은 딸의 존재 등 미테랑의 가장 예민한 사생활의 진창을 교묘히 피해갔다며 힐책했고 게디기앙 감독은 나는 “미테랑에 대해 사람들이 어떤 결론을 내리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들이 사회와 정치에 대해 심사숙고하기만을 바랐을 뿐이다”라고 응대했다. 이 독일, 프랑스 정치영화의 대결에는 콧수염뿐 아니라 손을 떨며 극도로 흥분한 히틀러의 모습까지도 똑같이 재현해낸 독일의 대표 배우 브루노 간츠와 부드러운 웃음을 흘리며 끊임없이 수다를 떠는 미테랑 역의 미셸 부케 두 사람 중 누가 더 톱 도그(Top dog: 최고 권력자)를 잘 재현했는지에 대한 비교도 빠지지 않는다. 인간이 되고 싶은 천황 <태양> 이에 비하면 러시아 감독 알렉산더 소쿠로프는 일본 천황을 아주 곤죽으로 만들어놓는다(그런데 이 칸의 아들은 어찌하여 베를린까지 와서 자신의 신작을 공개했을까?). 천황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미제 초콜릿과 공습으로 얻어진 초콜릿을 비교하는 어린아이 같은 면이 있는가 하면, 맥아더 앞에서는 수만명의 목숨을 살릴 수 있는 결정을 내리는 진중한 신사로 변모한다. 솔직히 소쿠로프의 <태양>은 차이밍량의 <떠다니는 구름>과 함께 경쟁작 중 유일하게 내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히틀러와 에바 브라운의 관계, 권력과 사랑의 문제에 접근했던 <몰로흐> 그리고 레닌의 말년을 통해 권력과 도덕의 문제를 다루었던 <타우루스>에 이어 소쿠로프는 권력과 인간의 문제를 실험한다. 소쿠로프식 영화미학을 다시 한번 극한으로 밀어올린다. 이 영화는 일체 인공조명이 배제된 채 촬영되었다(이러한 방식은 미카엘 하네케가 <늑대의 시간>에서 실험했던 것인데 그는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다). 태양 자신인 일본 천황이 온 방안을 환하게 비추어야 할 터인데 말이다. 영화의 제목 ‘태양’은 이 영화가 일본 천황에 대한 영화일 뿐 아니라 소쿠로프가 실험하는 ‘빛’의 예술임을 이중적으로 암시한다. 전쟁의 마지막 날, 무엇보다도 신에서 인간으로 간절히 하강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일황 자신이다. <태양>의 시사가 끝나자 옆자리에 앉았던 일본인 기자는 “이 영화는 천황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일본에 대한 이야기”라며 흥분했다. 정치적 올바름에 집착하는 베를린 개인적으로 나는 이 모든 권력자들의 최후를 보며, 감독들이 이토록 권력자들의 최후에 매료되는 까닭은 권력이 섹스처럼 본질적으로 어떤 희열과 죽음 같은 허무를 함께 경험하는 몇 안 되는 체험이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제 독일에서 히틀러와 소피 숄의 최후는 나란히 한 영화제를 장식한다(소피 숄은 지하 단체인 백장미단을 만들어 오빠인 한스 숄과 함께 반나치 운동을 하다 사형당한 독일의 유관순 같은 인물이다). 롤랜드 에머리히를 단장으로 한 심사단은 내가 보기에는 철저히 바른 생활 영화인 소피 숄에게 은곰상과 여우주연상을 안겼다. 독일, 이 창백한 어머니는 ‘정치적으로 올바른’에 집착한 나머지 다른 모든 영화적 실험들은 잊은 것일까? 그게 내가 아는 올해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의 진실이다. 아쉽게도 여전히 역사의 부채에 허리가 부서지는 독일, 베를린영화제에서 유대인 수용소에서 노는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같은 작품은 당분간 구경하기 힘들 것 같다. 영포럼 부문 결산 세계는 넓고 영화는 많다 35회를 맞는 베를린영화제의 영포럼 부문은 베를린이 전세계에서 발견한 젊은 영화인의 피를 수혈하는 통로로서, 재기발랄하고 창의적인 영화, 실험적인 영화를 표방하고 나선 분야이다.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구분을 하지 않고, 신인감독의 작품이 위주인 포럼에서 올해는 33개국에서 날아온 39편의 작품이 상영되었다. 일단 포럼의 수장인 크리스토퍼 테레헤히터는 첫날 가진 스크린 데일리에서 이미 <여자, 정혜>를 영포럼의 강력한 추천작으로 뽑았을 만큼 한국영화에 대한 배려가 극진한 편이었다. <여자, 정혜> 외에도 특히 주목을 받은 화제작으로는 미카 카우리스마키가 감독한 브라질의 도시 뮤직인 코로에 대한 다큐, 일종의 브라질판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인 <브라질레이리노>, 인도의 가장 중요한 3대 감독 중 하나인 야쉬 코프라의 신나는 발리우드 뮤지컬 <비어 자라>, 자신의 가족을 배우로 해 단 23개 신만으로 영화를 만든 중국의 류지아인 감독의 <옥사이드>, 그리고 거장임에도 불구하고 신인감독 못지않게 몸의 움직임에 대한 실험적인 다큐를 만든 클레어 드니의 <마틸데를 향하여> 등이 있었다. 이 밖에도 베를린의 세 배우를 중심으로 그들의 현재 삶과 연기가 맺고 있는 불가분의 관계를 세명의 감독이 각각 연출한 <베를린 스토리>가 좋은 반응을 얻었고, 정체 불명의 동양 남자의 아이를 가진 한 젊은 미혼모를 둘러싼 가족들의 소동담을 그린 <쿵후에게 미안해>는 좀처럼 만나볼 수 없는 크로아티아영화였다. 개인적으로 영포럼 분야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받은 작품은 공교롭게도 두편 다 중국영화였는데, 그 하나는 중국에서 각종 영화제의 촬영상을 휩쓸고 있는 <커커실리>와 몽골의 대초원을 배경으로 어느 날 처음 본 물건인 탁구공을 둘러싼 한 소년의 성장영화 <몽고리안 핑퐁>이었다. 티베트의 고원을 배경으로 가도가도 끝없는 야생의 땅 커커실리에서 일명 산악 순찰대라 불리는 민간환경보호단체와 밀렵꾼 사이의 피비린내나는 전쟁을 그린 <커커실리>는 그 장대한 촬영과 압도적인 자연으로 인해 <아타나주아> 이후 가장 장쾌한 영화 경험을 맛보게 했다. <몽고리안 핑퐁>의 경우 닝하오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서구화되는 몽골 대초원의 삶을 유머러스하게 다루고 있는 수작이다.

[What’s Up] 돌연 촬영 연기 발표한 <유칼립투스>, 진짜 원인은?

독립영화 또는 저예산영화에 대스타가 참여하는 것은 좋은 일이기만 한 걸까. 최근 촬영이 무기 연기된 <유칼립투스>의 사례는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유칼립투스>는 침체된 호주영화의 재도약을 위해 러셀 크로와 니콜 키드먼이 매우 적은 개런티로 출연키로 했다는 점 때문에 화제가 됐던 프로젝트. 1800만달러라는 저예산으로 제작되는 이 영화에서 크로는 20만달러 조금 넘는 금액을 받는 대신 이그재큐티브 프로듀서라는 지위를 갖고 영화 전반에 관여해왔다. 하지만 이 영화의 제작사인 폭스 서치라이트는 크랭크인을 불과 사흘 앞둔 2월11일 돌연 무기 연기를 발표했다. 이로 인해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에 수백만달러를 들여 제작한 세트는 무용지물이 됐고, 80여명의 스탭들은 졸지에 실업자로 전락했다. 서치라이트가 내세운 공식 이유는 “시나리오가 아직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았다”는 것. 서치라이트는 이번 결정이 자사뿐 아니라 시나리오를 직접 쓴 감독 조슬린 무어하우스와 두명의 스타, 프로듀서 모두의 ‘집단적 결정’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촬영을 코앞에 두고 시나리오 문제가 불거지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인 탓에 궁색한 변명으로 여겨지고 있다. 호주 언론들은 크로와 무어하우스가 줄곧 영화를 놓고 대립해왔다는 점을 들어 크로의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다. 한 신문은 크로가 감독에게 시나리오에서 자신의 비중을 늘려달라고 요구한 것이 이번 사태의 빌미가 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출연할 예정이던 휴고 위빙 또한 영국 <데일리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이 시나리오가 완벽하다고 본다. 서치라이트는 크로가 시나리오의 특정 부분을 고칠 것을 주장했다는 진실을 밝혀야 한다”다고 말했다. 스스로 물러난 무어하우스 대신 크로가 직접 이 영화를 연출할 것이라는 주장이 호주 언론을 타고 있는 가운데, 크로는 브루스 베레스퍼드나 프레드 스케피시를 감독으로 원한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앞으로 독립영화에 출연하겠다는 스타에겐 감독에 대한 충성 서약을 요구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뉴저먼 시네마 기수 파스빈더 회고전

독일 뉴저먼시네마의 기수인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1945~82)의 탄생 60주년을 맞아 그의 영화 24편을 가져다 트는 대규모 회고전이 8일부터 31일까지 서울 안국동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다. 파스빈더 회고전은 그동안 전주국제영화제의 특별전을 비롯해, 국내에서도 몇차례 열렸지만 규모가 이처럼 크지는 못했다. 시네마테크 문화학교서울이 주한 독일문화원과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와 공동으로 주최하는 이번 행사는 파스빈더가 69년 데뷔한 뒤 82년 37살로 요절할 때까지 13년 동안 모든 열정을 태워 구축한 그의 영화세계를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는 드문 기회다. 파스빈더는 전후 독일 사회에 잔존해 있는 파시즘과, 산업화와 함께 새롭게 야기된 소외에 주목하면서 다양한 형식 안에 자기 시각을 녹여 영화화했다. 이번 행사는 데뷔작 <사랑은 죽음보다 차갑다>와 <카첼마허> 등의 초기작, <왜 R씨는 미쳐 날뛰는가?> 같은 실험성 높은 영화, 멜로영화의 형식을 빌어 좀더 대중적인 어법으로 접근한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와 <마리아 브라운의 결혼> <베로니카 포스의 갈망>까지 그의 대표작을 망라하고 있다. 이 가운데 <성스러운 창녀에 주목하다> <미국인 병사> <악마의 양조법> <퀴스터 부인의 천국여행> 등 8편은 국내 스크린으로 처음 소개된다. 아울러 1920년대 후반 공황상태에 있던 독일 사회를 파헤친 파스빈더의 13부작 텔레비전 시리즈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 전편이 행사 막바지인 30~31일 이틀동안 상영된다. 에필로그까지 포함해 상영시간이 총 15시간에 달하는 이 작품은 이번 회고전 티켓 소지자에 한해 무료 선착순으로 상영한다. (02)743-6003, 720-9782. www.cinematheque.seoul.kr

미학을 넘어 테크놀로지까지 영화사 총망라, <옥스포드 세계 영화사>

예쁜 옷가지나 향기로운 요리에 홀릴 때처럼, 참을 수 없는 소유욕을 발동시키는 책들이 있다. 번역 소식이 들려온 지 약 4년 만에 한국어판이 출간된 <옥스포드 세계 영화사>도 그렇다. 영화 탄생 100주년에 즈음한 1996년 영국 옥스퍼드대학 출판부에서 펴낸 이 책은 방대하고 미덥다. 영화사에 대한 균형 있는- 논쟁을 거쳐 어느 정도 공인된- 지식과 신중한 견해들을 연대와 지역 순서로 정리한 서랍을 연상하면 비슷하다. “이 책만 독파하면 영화사는 완전 정복”이라는 무모한 야심으로 장만할 법한 책이지만, <옥스포드 세계 영화사>의 실제 쓰임새는 1만개에 달하는 필요한 항목을 그때그때 뒤적이는 참고서일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지식 검색용 사전식 구성 대신 ‘스토리텔링’을 고집한다. 영화사의 기술적 발명, 산업과 제도, 장르와 작가가 어떻게 등장하고 진화하고 때로 도태되었는지, 여러 장의 흐름을 연결해 읽을 수 있는 하나의 이야기로 들려준다. 80명의 필진 가운데에는 더글러스 고머리, 데이비드 보드웰, 리처드 몰트비, 비비언 소브첵, 토마스 엘새서, 지넷 뱅상도 등등 영화학도의 필독서 목록에서 눈에 익은 이름들이 즐비하다. 예를 들어 <하드 코어>의 저자 린다 윌리엄스가 쓴 ‘섹스와 선정성’에 관한 장, <할리우드 장르>의 저자 토마스 샤츠가 쓴 ‘할리우드: 스튜디오 체제의 대승리’ 같은 장은, 해당 분야에 정통한 귄위자가 쉽게 요약한 강의록을 읽는 흐뭇함을 선사한다. 장 뤽 고다르부터 할리우드 제작 규약을 만든 윌 헤이스까지 영화사의 중요인물 140명을 가려 별도로 정리한 박스들은, 미니 전기 및 인명사전으로 유용하다. 1천 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이 가장 솔깃한 대목은, 영화 테크놀로지가 어떻게 할리우드와 세계 영화사의 고비를 이루는 물적 토대를 제공했는지 솜씨 좋게 설명할 때다. 1930년부터 1960년까지를 포괄한 2장의 ‘테크놀러지와 혁신’, 3장 초반의 ‘텔레비전의 보급에 대응한 영화의 새로운 기술’ 항목이 그렇다. ‘월드 시네마의 역사’라는 제목에 걸맞게 이 책은 중국, 일본은 물론 터키, 인도네시아의 내셔널 시네마까지 소개해 관심있는 서구 독자들 사이에 환대받았으나 한국영화 항목은 누락됐다. 번역은 고루 정돈돼 있지만, 오독의 여지를 남기는 직역과 오자도 간혹 눈에 띈다. 통상 작은따옴표를 쓰는 자리에 꺾쇠를 쓴 표기법도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오래 읽힐 요량으로 단단히 제본되고 간결하게 디자인한 책의 외양은 매력적이다. 단단한 재질의 책날개 여분도 묵직한 책장의 부피를 감당하는 책갈피로 제격이다.

[스크린 속 나의 연인] <몽빠르나스의 등불> 제라르 필립

내 인생이 여기까지 오게 된 이유 중에 중요한 한 남자가 있다. <적과 흑>의 주인공, 프랑스 배우 ‘제라르 필립’이다. 중학교에 입학하자, 손가락이 가늘고 섬세했던 여자 미술 선생이 소질이 보인다며 내게 미대에 갈 것을 부추겼다. 덕분에 흥분해서, 거의 매일 미술실에 홀로 남아 늦도록 그림을 그리고, 풍광이 아름다워서 외롭지만 그럭저럭 견딜 만하다고 느끼게 했던 중학교 교정을 터벅터벅 걸어나오던 그 시절. 순수 미술을 하는 ‘화가’는 나의 꿈이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어느 봄날 토요일 밤, ‘주말의 명화’에서 제라르 필립을 만났다. 모두 잠든 안방에 숨어들어가, 17인치짜리 금성사 로고가 선명한 텔레비전을 어둠속에서 마주하고 영화 <몽빠르나스의 등불>을 보았다. 후기인상파의 한 사람이었던 모딜리아니의 삶을 다룬 전기영화였다. 고흐 이상으로 절대적 빈곤과 드라마틱한 삶을 요절로 마친, 그리고 사춘기 소녀를 단박에 사로잡을 미모의 화가 모딜리아니가 제라르 필립에 의해 내 앞에 나타났다. 내방 돌아와 꺽꺽대며 울었다, 물 한잔으로 와인흉내 내보며… 얇은 입술에 작은 얼굴, 검은 고수머리의 그는 내가 어렵게 구한 화집 따위에 엄지손톱만한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모딜리아니의 생, 그 너머를 보여주고 있었다. 혼자 무릎을 싸안고, 그 영화를 집어삼켜버린 나는 동생의 코 고는 소리가 낮게 깔리고 있는 내 방으로 돌아와 괜히 꺽꺽대며 울다가, 목젖을 움직이지도 않고 와인 한 잔을 아주아주 조용히 삼켰던 그를 떠올리며, 물 한잔으로 그를 흉내내어 보다가 잠이 들었다. 그 주말의 밤 이후, 내 꿈은 그림 그리는 사람에서 ‘영화 만드는 이’로 바뀌었다. 사춘기 소녀가 본, 빼어나게 잘 만든 한 편의 전기 영화는 영화라는 매체가 그 어떤 것보다 매력적이라고 속삭여 주었던 것이다. 미술실을 드나드는 대신, 영화에 목매여 헤매던 내게 제라르 필립은 고맙게도 이후, 영화 속 애인들을 소개해 주는 구실까지 했다. 소녀의 ‘꿈’도 바꿔버린 그가 난생처음으로 ‘이성적 매력’의 세계까지 일깨워준 셈이었다. 학창 시절 내내 현실의 ‘이성 애인’은 사귀어 보지도 못한 내게 ‘몬티’라는 애칭으로 더 유명했던 <사랑아, 나는 통곡한다>의 몽고메리 클리프트처럼, 유사 제라르 필립 같은 배우, 이를테면 선병질적인 느낌의 얼굴에 우울한 표정, 다소 마른 몸으로 소녀적 취향에 어필하는 사람이 현실의 대체제였다. 사춘기가 지나고 열심히 주워섬긴 남자들은 취향이 바뀌어 ‘근육질(!)’이었다. <미스터 굿바를 찾아서>, <아메리칸 지골로>의 리처드 기어가 그 대표격. <브레드레스>에서 쫙 달라붙는 체크 무늬 바지에 튀어나온 엉덩이, 댄스하듯 흐느적거리는 불량한 걸음걸이의 리처드 기어는 가장 섹시한 이성이었다. <이유없는 반항>으로 호주에서 할리우드로 넘어가 로 스타가 된 러셀 크로가 그 뒤를 이었다. 대체로 좀 작은 눈에 촘촘한 속눈썹, 각진 턱의 얼굴에 두춤하고 넓은 어깨, 부피가 있어 보이는 몸집의 리처드 기어류의 배우들이 날 흥분시켰다. 최근엔 <오만과 편견>의 미스터 다시,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콜린 퍼스가 좋아졌다. 무뚝뚝하게 꽉 다문 입술에 다소 유연하지 못한 매너의 콜린 퍼스 덕분에 <셰익스피어 인 러브>도 다시 챙겨 보았다. 대체로 빼어난 연기력과 지적인 영혼의 소유자이거나 영화사에 오롯이 기록될 걸작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보다는, 내 취향으로 ‘섹시한 매력’이 풍기는 남자들을 좋아했던 것 같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도, 영화 일을 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새로이 스크린 속의 남자들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이 어리석지만 이 지루하기 짝이 없는 현실에서 그나마 위로가 되는 듯싶다. 한 소녀의 인생을 바꾸는데 톡톡히 한몫을 한 남자 ‘제라르 필립’으로부터 스크린 속 남성 편력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외신기자클럽] 절제된 형식으로 완성한 9시간 다큐 (+불어원문)

눈이 내린다. 기차가 버려진 거대한 금속 도시를 가로지른다. 이따금씩 연기 기둥이 회색빛으로 낮게 깔린 하늘을 스쳐지나간다. 왕빙 감독의 첫 작품인, 아홉 시간이 넘는 중국영화의 낯선 물체인 <철서구>는 그렇게 시작하며 다큐멘터리 역사의 중요한 획을 긋는다. 1년6개월간, 이 젊은 감독은 중국 북부 선양의 한 공업도시의 마지막을 찍었다. 그는 한때 100만명에 이르는 노동자들이 고용됐던 어마어마한 작업장인, 마오쩌둥 시대가 만들어낸 이 괴물의 마지막 순간과 노동자들이 거주했던 티엑시의 사라짐을 그린다. SF영화의 실제 풍경을 가진 티엑시는 철길로 둘러싸여 있는데, 그것들은 엄청난 이동촬영에 이용되고 작품의 구조를 이루기도 한다. 즉, <철서구>는 <녹>, <철로> 그리고 <폐허>라는 제목의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어떤 순서로든지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영화는 닫힌 이야기 구조의 원을 이루고 있다. <철서구>는 진정한 정치영화는 아니다. 어떤 내레이션도 없고, 왕빙 감독은 노동자들의 운명에 관한, 굴착기에 의해 부서진 판잣집(가건물)들의 비참함에 관한 어떤 논평도 하지 않는다. 감독의 몸에 기댄 디지털카메라는 단순한 눈, 렌즈가 되어 잔해 속으로 나아가고 그 현장의 증인들을 만나고 그들과 공감을 나누지만, 결코 판단하거나 동정은 하지 않는다. 우리도 그들 속에 빠져들어 운명을 함께한다. 왕빙 감독은 이렇게 숙명적인 분위기를 창조한다. 즉, 한 인생 전체가 마치 소용돌이에 휘말린 것처럼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지워져버리고, 주민들은 한명씩 한명씩 사라진다. 따라서 영화 속엔 뒤엎어진 석고가루 봉투의, 메말라 부스러진 대들보의 먼지로 가득 차 있고, 그것은 연기로 사라져버린 한 세계의 주체이다. 무엇보다도 <철서구>는 그 내용이 전복적이다. 이 작품은 미디어에선 거의 부재하는 또 하나의 중국을 보여준다. 티엑시에는 일하는 사람이라곤 없고, 젊은이들은 희망없이 살며, 모두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만 사로잡혀 있거나 단지 작은 속임수만으로 살아남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 인물의 다음과 같은 말처럼. “난 과도기에 있어요… 5년 전부터.” 일상적으로 우리가 듣는 중국의 역동성과 성장률과는 거리가 멀다. 그리고 시선을 붙들어 매는 것은 바로 형식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왕빙 감독은 한 구역의 삶 1년6개월을 이야기하기 위해 아홉 시간이나 필요로 했을까? 아주 단순한 경험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 즉 만약 당신이 기차에서 창 밖을 볼 때, 기차가 빠르면 빠를수록 또렷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런데 감독은 이 원형 구조를 통해 시간을 늦추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실제론 단 한번만 찍은 중국의 새해를 부분마다 한번씩 보아 세번을 보게 된다. 그것은 단순한 잔꾀가 아니라 매우 뛰어난 영화작가의 발명인 절제된 형식이다. 그의 영화는 몇몇의 현대영화들과는 반대되는데, 속도와 간결함에 광적으로 사로잡혀 결국은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고 끝내는 것이 본질로 향하는 것이라고 믿는 텔레비전과는 무엇보다도 반대된다. 왕빙 감독은 사건을 압축하고 줄이는 대신에, 확장하고 속도를 줄여 느리게 하는 것을 선택했다. 그리고 불현듯, 그는 보이게 만든다. 그는 이 독특한 역설을 이해한 것이다. 다시 말해, 1년 만에 한 거주지와 주민이 사라지는 것 같은 급격한 사건을 세세히 이야기하기 위해선 아홉 시간은 족히 필요했다는. 이 영화는 올 여름 프랑스의 한 예술영화 전용관에서 상영돼 큰 성공을 거두었다. DVD로 막 출시되었고, 이 독특한 작품을 소장해 각 부분을 가능한 한 모든 방향으로 보고 또 보려는 사람들이 많다. 낡은 세상의 무너짐을 보여줌으로써 왕빙 감독은 하나의 강력하고 혁신적인 영화 작품을 창조해냈다. A l’ouest des rails Il neige. Le train longe une énorme ville de métal désertée. De temps en temps, des colonnes de fumée effleurent le ciel gris et bas. Ainsi commence « À l’ouest des rails », premier film de Wang Bing, ovni cinématographique chinois de plus de neuf heures, date importante dans l’histoire du documentaire. Pendant un an et demi, le jeune réalisateur a filmé l’agonie d’une cité industrielle de la ville de Shenyang au nord de la Chine. Il décrit les derniers instants de ce monstre maoïste, paquebot gigantesque qui employa jusqu’à un million d’ouvriers, et la disparition du quartier de Tiexi où ils logeaient. Véritable paysage de science fiction, Tiexi est ceinturé par une ligne de chemin de fer qui servira de travelling géant au cinéaste et de structure à l’œuvre : « A l’ouest des rails » se divise en trois parties, intitulées « Rouille », « Rails » et « Vestiges », qui peuvent se voir dans n’importe quel ordre. Le film forme donc un cercle, un récit fermé sur lui-même. « A l’ouest des rails » n’est pas vraiment un film politique. Il n’y a pas de voix off, Wang Bing ne livre aucun commentaire sur le sort des ouvriers, sur la misère des baraques détruites par les pelleteuses. La caméra DV appuyée contre le ventre du cinéaste devient un pur œil, objectif qui avance dans les décombres, rencontre des témoins, sympathise avec eux, mais jamais ne juge ou ne plaint. Nous sommes plongés parmi eux, liés à leur destin. Wang Bing crée ainsi un climat de fatalité : toute une vie s’efface sans laisser de traces, un à un les habitants disparaissent, comme emportés dans un tourbillon. Il y a donc beaucoup de poussière dans le film (des sacs de plâtres renversés, des poutres qui s’effritent…), motif d’un monde qui part en fumée. « A l’ouest des rails » bouleverse tout d’abord par son contenu. Il donne à voir une Chine quasiment absente des médias. Personne ne travaille à Tiexi, les jeunes sont sans espoir, tous semblent occupés à ne rien faire ou à survivre de petites combines. Comme dit l’un des personnages : « je suis dans une période de transition… depuis cinq ans. » On est bien loin des taux de croissance et du dynamisme chinois dont on entend parler quotidiennement. Puis, c’est la forme qui interpelle le regard. En effet, pourquoi Wang Bing avait-il besoin de neuf heures pour relater un an et demi de la vie d’un quartier ? Il nous faut partir d’une expérience très simple : si vous regardez à la fenêtre d’un train, vous constaterez que plus on va vite, moins on voit clair. Or, Wang Bing, par cette structure en cercle, ralentit le temps. Nous assistons ainsi à trois nouvel ans chinois (un par partie) alors qu’il n’en a filmé qu’un seul. Il ne s’agit pas d’une astuce mais d’une invention de très grand cinéaste, une forme de sagesse aussi. Son film s’oppose à un certain cinéma moderne mais surtout à la télévision qui, obsédé par la vitesse et la concision, finit par ne plus rien montrer en croyant aller à l’essentiel. Au lieu de compresser les événements, de tout réduire, Wang Bing a choisi de dilater, freiner, ralentir. Et soudain, il rend visible. Il a compris ce paradoxe extraordinaire : il fallait bien neuf heures pour raconter en détail un événement aussi fulgurant que la disparition d’une cité et de sa population en un an. Ce film a connu un grand succès dans le circuit « arts et essais » cet été en France. Il vient de sortir en dvd et nombreux sont ceux qui ont envie de posséder cet objet étrange, le voir et le revoir par partie, dans tous les sens possibles. En montrant l’effondrement d’un monde ancien, Wang Bing a su créer une œuvre cinématographique puissante et novatri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