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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밝힐 새벽의 7인 [4] - 류승범

류승범은 말을 잘한다. 게다가 볼 때마다 말이 는다. 수다스러워졌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예전엔 고심 끝에 터져나오던 ‘주옥같은’ 대답들이 요즘엔 마치 준비된 듯 척척 튀어나온다는 거다. 이는 흔히 “천부적이다”라고 평하는 류승범의 연기와 비슷한 거다. 밤새 머리 싸매고 공부해놓고 ‘놀았다’라고 이야기하는 얄미운 모범생처럼, 이 양아치인 척하는 배우에게는 사실 치열한 고민과 깨달음을 반복하는 노력가의 피가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하여 이 놀라운 ‘언변의 발전’은 그의 머릿속을 부유하던 오만 가지 생각들이 ‘연기론’이나 ‘인생관’ 같은 챕터에 제대로 착착 잘 정리돼 있다는 반가운 증거 같은 것이다. 이제 수다의 형들과 놀이하듯 찍어낸 <묻지마 패밀리>가 개봉을 앞두고 있고 5월 초엔 “귀여운 은경이”와 함께 <품행제로>의 촬영에 들어간다. 7년 전의 나 -17살 때군요. 고1 때는 학교 자퇴한 시기였어요. 작곡가가 되고 싶었죠. 음악이 너무 좋아서 음악공부하고 싶어서 친한 녀석하고 만날 음반 구하러 다녔어요. 지금의 나 - 앞으로 찍게 될 영화 <품행제로>가 잘되는 것. 그리고 가족 모두, 저 역시 건강했으면 좋겠구요, 늘 지금처럼만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저, 지금 너무 행복하거든요. 7년 뒤 나 - 서른살이군요. 얼마 전 사진이 너무 찍고 싶어 사진작가 조선희 누나에게 추천해 달래서 카메라를 하나 샀거든요. 멋진 사진을 많이 찍어서 사진전시회를 열고 싶어요. 그리고 서른살에 가질 수 있는 가장 멋진 꿈을 꾸며 살고 있다면 좋겠죠. 좋아하는 7가지 - 영화, 사진, 시원한 바람, 돈, 향기, 가족, 사랑. 싫어하는 7가지 - 동물, 공해, 소음, 나쁜 사람, 악취, 맞고 패는 것, 죽음.

전주영화제 애니메이션 비엔날레 프로그래머 전승일

애니메이터로서, 프로그래머로서 전승일의 바람은 ‘다양한 영상을 보편적 감성으로 공유하는 것’이다. 그의 이런 바람은 2년 만에 닻을 올린 전주 애니메이션 비엔날레의 꿈이기도 하다. 벨기에 거장의 회고전과 러시아·체코 애니메이션 특별전, 일본 단편영화 상영이 계획된 이번 축제는 온통 낯섬과 다양함으로 채워진 신기한 뷔페 같다. 초심자에게는 낯선 땅을 개척하는 스릴과 긴장을, 마니아에게는 이미 이름으로 친숙해진 거장들의 작품을 양껏 감상할 수 있는 만찬의 자리를 제공한 주인공은, 그 자신도 애니메이션 감독이자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이자,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Mimesis TV’의 운영자 전승일이다. 온라인 사이트에 게재되어 있는 그의 칼럼에는 그가 원래 애니메이션과는 거리가 먼 서울대 미대생이었으며, 프레드릭, 유리 노르스타인 등과 같은 아트 애니메이터의 작품으로 인해 그림을 1초 이하의 단위와 그것의 연속성 속에서 사고할 수 있게 되었고, 어렵게 8mm 비디오 카메라를 장만해 손잡이가 세번이나 부러져 나갈 정도로 영상 작업에 몰두, 결국 4학년 졸업작품으로 손수 만든 애니메이션을 제출하기까지의 과정이 담겨있다. 그의 행적 때문인지 서울대 서양화과의 졸업 전시회에서 애니메이션 작품은 더이상 특이한 졸업작품 대접을 못 받고 있다. 움직이지 않는 그림에서는 더이상 힘을 느낄 수 없었던 미대 졸업생은 연극영화과 대학원으로, 영상으로 선회한다. 결국 미술과 영상이라는 기막힌 조합의 결과로 한 사람의 애니메이터가 탄생했으니, 그는 지금 단상에 서서 제자들에게 “애니메이션은 소리와 시간을 만난 미술이요, 실사영화의 또 다른 구조로서의 영화”라고 이른다. 전승일이 전주영화제 애니메이션 비엔날레의 프로그래머직을 위촉받은 것은 지난해 12월쯤. 프랑스 안시영화제쯤 되는 ‘수준 높은’ 영화제의 프로그래머들이 프로그래밍에 1∼2년을 쏟고, 한편의 애니메이션이 제작되는 시간이 3년 정도라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놀라운 수준의 게으름이 아니었다. 애초에 염두에 두고 있던 캐나다 애니메이션들은 이미 1년치 스케줄이 짜여진 터라 엄두를 내지 못했고, 부랴부랴 손을 내밀어 체코와 일본의 단편 작품들을 건졌다. 그는 이번 영화제에서 관객이 애니메이션의 다양한 시대를 경험하고, 다양한 생각을 느끼며, 다양한 제작기법을 즐기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에 라울 세르베 벨기에 감독의 작품은 초기작 몇개를 제외하고 65년작부터 지난해 발표된 일련의 작품과 체코의 인형극, 한·일 인디 애니메이션, 실험 애니메이션과 또한 디지털, 특수합성, 원시적인 만화 기법까지 총동원된 별난 맛의 작품들이 관객의 눈길을 기다리는 중이다. 영화제 기간 중에 열리는 ‘한국 인디 애니메이션 워크숍’과 ‘유럽 아트 애니메이션 강연’ 역시 빼먹지말라고 당부. 글 심지현 simssisi@dreamx.net·사진 오계옥 klara@hani.co.kr 프로필 1965년생 서울대 서양화과 졸업 동국대 연극영화학과 대학원 졸업 94년 단편 <내일인간>부터 지금까지 꾸준한 단편 작업 2000년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MIMESIS TV 설립 현재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프리프로덕션중 2002 전주국제영화제 애니메이션 비엔날레 프로그래머 동국대 교수 자세한 사항은 www.mimesistv.co.kr로 문의

새로운 영진위 구성을 앞두고

대통령 후보 경선에다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준비에 부산한 정치권 못지않게 코앞에 닥친 ‘영화계 정치 행사’가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오는 5월27일이면 바람잘 날 없었던 1기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위원들의 임기가 끝나고 새로 구성된 위원회가 일을 시작하게 된다. 문화관광부(문화부)에서 지난 4월17일 유관단체에 위원 후보자를 추천해달라는 공문을 보낸 것으로 보아 사실상 위촉할 위원 물색을 시작한 셈이다. 이미 일부에서는 자천타천으로 하마평이 흘러나오고, 특정인의 이름이 직접 거명되기도 한다. 현직 문화부 산하단체(기관)장이 위원장 후보라느니, 한 노장 감독이 위원장을 목표로 “뛰고 있다”(어디서 뛰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는 소문도 있다. 하지만 들리는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적어도 현재까지는 문화부가 내정한 사람은 없고, 나돌고 있는 이름들은 감투 욕심있는 사람의 ‘자가발전’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미루어 짐작된다. 위원 위촉권을 쥐고 있는 문화부(장관은)는 이번에는 정말 제대로 영진위를 짜야 한다. 임기 3년 동안 위원장 세 사람에 부위원장이 세 사람이었던 혼선은 물론, 위원 위촉을 둘러싼 갈등으로 임기의 반 이상을 까먹도록 한 시행착오를 거듭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런 1기 영진위의 파행은 구태에 빠져 있던 기구를 시대상황에 맞게 개편하는 과정의 통과의례라고 양해받을 수 있을지 몰라도, 비슷한 일이 되풀이된다면 그 과오는 씻기 어려울 것이다. 1기 영진위 위원 위촉을 둘러싼 지루한 공방을 두고, 영화계 내부의 반목과 알력이 근본적인 원인인 것처럼 비판이 쏟아지기도 했지만, 1차적인 책임은 당연히 문화부에 있다.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정지영, 문성근, 김지미, 조희문씨를 한자리에 앉혀놓고 일을 하라는 발상 자체가 너무나 안일한 현실 인식이었거나, 행정 편의주의였거나, ‘공무원주의’(일부 영화에서 ‘무사안일’, ‘복지부동’ 등과 같은 의미로 쓰이는 말)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영화와 영화산업에 대한 안목이 본질적으로 다르고, 영진위와 위원들의 기능과 역할, 행정과 정책 등에 대한 이해도가 총체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억지로 안배하고서 될 일이라고 판단한 것 자체가 갈등의 불씨를 던져놓은 것이었다. 만약 다시 그런 일이 생긴다면 이에 따르는 모든 책임은 이제 고스란히 문화부가 져야 한다. 문화부에 권고한다. 위원 후보를 물색하기 전에 영화진흥공사를 왜 영진위로 개편했는지에 대한 취지를 진지하게 되새겨보기 바란다. 그 취지에 동의한다면 어떤 사람이 위원이 되어야 하는지 분명한 가닥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아울러, 영진위 설립 취지에 동의한다면, 출범 당시 영진위에 부여했다가 뺏앗아갔던 예산 편성, 집행 등과 관련한 자율권을 되돌려주도록 영화진흥법 개정을 발의해야 함은 물론이다). 1기 영진위가 파행을 겪으면서도 분명하게 확인한 것이 있다. 위원 자리가 대단한 권력을 쥐어주는 것도 아니고, 챙겨 먹을 떡고물도 없고, 현업에 종사하면서 겸직하는 경우는 오히려 제약과 역차별만 따르는 번거로운 자리가 아니었던가. 영진위는 특정 집단의 이익과 이해관계를 관철하고 대변하는 기구가 아니다. 또 위원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패러다임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원로들을 예우하기 위한 의전용 감투가 아니다. 문화부는 그동안 준비하고 구상했던 사업을 무리없이 추진할 수 있는 효율성 높은 실무형 위원회를 구성해주기 바란다. 제발, “이회창 대세론이 난무하던 때 기고만장해서 개혁 성향의 소장 영화인들에게 ‘두고보자’는 폭언도 서슴지 않던 관료들이, ‘노풍’이 예사롭지 않으니까 태도가 돌변했다더라”는 이야기가 그냥 떠도는 소문이길 바란다.

“의상들 두고두고 쓰고 싶어, 생각 있음 연락해”

그럼 내 마지막 영화였던 <애니깽> 얘기를 해볼까.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을 만큼 고생스런 피날레였지. <애니깽> 역시 <하얀 전쟁>과 마찬가지로 해외에서 올 로케로 촬영된 작품이었어. 멕시코였는데 아무튼 베트남보다 10배쯤 고생했을 거야. 날씨도 변덕스럽고, 현지인들의 협조도 잘 안 되고. 2개월로 예정됐던 일정이 6개월로 무려 3배 이상 길어졌으니 나중엔 배우들이며 스탭들이며 “나는 간다” 소리만 해댔지. 일제 시절 멕시코로 강제 이송되어 노역을 하던 한국인들의 모습을 담기 위해 한복을 200벌 정도 미리 준비해서 가지고 갔는데, 막상 엑스트라로 출연할 현지인들에게 옷이 잘 맞지 않는 거야. 멕시코 여자들이 키가 작으면서도 몸매가 다부져서 차라리 남자 옷을 잘라서 입히는 편이 나을 정도였지. 게다가 소품을 담당하던 현지 출신 스탭이 돈을 조금이라도 더 받아내기 위해 얼마나 잔머리를 쓰는지 감독 속이 꽤나 썩었지. 한번은 탄창에 넣을 가짜 총알을 준비해달라고 하니까 이걸 무작정 비싼 재료를 쓴다고 볼펜으로 만들어온 거야. 그런데 감독이 총알 분위기가 안 난다고 퇴짜를 놓으니 이번에는 백묵을 가져다 끼워놓지 뭐야. 슛이 들어갔는데 백묵으로 만든 총알들이 그냥 맥없이 뚝뚝 부러져서 우르르 흘러내리지 않겠어. 내 참, 보다보다 못 참고 내가 나서서 손가락 마디만한 굵기의 나뭇가지들을 꺾어와 주욱 꽂아주니 부러지지도 않고 색깔도 튀지 않아 무사히 신을 넘겼지. 그런 식이었어. 현지인의 횡포와 날씨의 변덕, 스탭과 배우들의 불만이 고조되면서 후반으로 갈수록 분위기는 점점 더 엉망이 되었지. 그래도 감독이 대단한 존재야. 다들 떠나겠다는 스탭들을 끝까지 눌러앉히고 영화를 다 찍었으니. 나중에 편집도 안 된 러시필름으로 대종상 후보에 올랐다는 소식이 들려왔어. 고생을 했으니 보상을 받는 것은 당연했지만, 얼마 안 가 수상 과정이 문제가 됐지. 개봉도 하지 않고 불명예만 잔뜩 안고 비디오로 출시된 그 영화를 볼 때마다 나 혼자 되뇌곤 하지. 영화는 사람이 만드는 거라 사람이 힘들면 영화의 결말도 힘들어지는 거라고. 영광과는 거리가 먼 힘든 일이었지만 후회 역시도 없는 나의 의상 얘기는 여기까지야. 얼마 전 영상자료원에서 열린 정진우 감독 회고전에 갔더니 한 학생이 반갑게 인사를 하더라구. 그래서 날 아냐 했더니 여기에 실린 글을 읽었다나. 자기도 영화의상에 관심이 있어 지금 신인 감독 밑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그래서 다른 말은 해줄 게 없고 딱 두 마디만 당부했어. 대본은 반드시 10번 이상 읽을 것, 매일 일지를 쓸 것(일기가 아니라). 대본은 아예 달달 외울 정도가 돼서 감독이 지시하는 것만 들어도 이게 무슨 장면인지 알아야 하고, 일지를 씀으로써 각 장면에 쓰이는 옷 이름과 종류를 정확히 구분할 수 있어야 해. 물론 밥을 굶어도 영화판에 3년은 붙어 있을 각오도 있어야 하겠지만. 이 두 가지만 기억하고 실천해야 의상을 만지는 기본이 완성되는 거지. 이 글을 읽는 의상학도들도 지금 내가 하는 말을 마음에 새겨둬야 해. 어느새 마지막 글이라니 그동안 해줘야 할 말 대신 내 푸념이나 늘어놓은 것이 아닌가 걱정도 되고, 내 삶을 이렇게나마 정리한 것이 젊은 사람들에게 과연 도움이 될까도 싶어. 이제 내게 남은 일이란 몸이 말을 듣는 동안까지 계속 의상을 만지는 것과 맘 맞는 의상쟁이들과 함께 애꿎게 버려지고 외면당하는 영화의상을 한데 모으는 거야. 지금 살고 있는 집의 창고를 내어서라도 그런 의상들을 건질 수 있다면 내 할 일은 다 한 거지. 그저 한번 쓰고 버리는 일회성 물건이 아니라 두고두고 다른 영화에 활용하는, 시대와 극의 분위기에 따라 헌 의상을 적절히 고쳐 쓰는 그런 영화풍토를 만드는 게 나의 바람이야. 그런 생각에 동조하는 사람이라면 언제든 연락해. 그리고 지금까지 읽어줘서 고마워. 구술 이해윤/ 1925년생·<단종애사> <마의 태자> <성춘향> <서편제> <금홍아 금홍아> <하얀 전쟁> <친구> 의상 제작 정리 심지현 simssisi@dreamx.net

가작 <포이즌> 시놉시스 & 시나리오

당선작 <포이즌> 시놉시스 돌아가신 큰아버지의 약국을 맡게 된 상우는 출근 첫날, 재래시장 화장실에서 어떤 남자와 섹스를 하는 미순을 보게 된다. 음습하고 지저분한 타일 벽에 기대어 격렬한 섹스를 하는 미순과 우연히 눈이 마주치게 된 것이다. 냉소적이면서도 섬뜩한 눈빛 아래 묘한 미소를 머금은 그녀의 첫인상은 그렇게 상우의 뇌리에 강하게 남는다. 시장통의 생선가게 주인인 미순은 알게 모르게 매춘을 하고 있었으니, 모두 그녀의 아랫도리를 구경하는 게 소원일 지경이었다. 그런 미순이지만, 유독 정육점 철구한테만큼은 차가웠다. 참다 못한 철구는 미순을 겁탈하려고 하고, 미순 곁을 서성이던 마영달이 그를 저지하는 소동이 벌어진다. 그 사건을 계기로 상우는 미순과 뜻밖의 병원 동행을 하게 되고, 그곳에서 식물인간이 된 미순의 남편 규식의 존재를 알게 된다. 규식은 노름판에 마누라를 내돌리는 인간 말종이지만, 미순은 그런 남편이 깨어나길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밤, 상우와 미순은 격정적인 섹스를 나누고, 같은 시간 규식이 깨어난다. 규식이 돌아온 이후로, 상우와 미순의 관계는 흔들린다. 미순에게 중독된 상우에게, 마영달은 절대 그녀를 믿지 말라고 경고하고, 곧장 괴한에게 살해당한다. 상우는 일년 전 전당포 살인사건이 마영달 그리고 미순 부부와 관계가 있음을 알게 된다. 당선작 <포이즌> 시나리오 S#1. 정신과 병동 차가운 느낌의 텅 빈 복도, 구두 소리가 공허하게 울려퍼진다. 구두 소리는 길이 나누어지는 곳에서 멈춘다. 역시나 아무도 없는 복도. 반대편 복도, 병실에서 남자 간호사가 헌 시트를 갖고 나온다. 다시 구두 소리 들리고 화면은 구두 소리와 함께 움직인다. 천천히 수레를 움직이는 무표정한 남자 간호사. 그 옆을 지나가는 구두 소리. 다른 병실 앞에서 멈추는 남자 간호사, 지나온 방향으로 고개 돌린다. 검은 원피스를 입은 여자의 뒷모습, 구두 소리의 주인이다. 어느 병실 앞에서 멈추는 여자, 손잡이를 잡으려는 찰나 스르르 문이 열린다. 그리고, 먼저 와 있던 의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여자를 보고 조금 놀라는 낯빛의 의사는 키가 작고 뚱뚱하다. 여자가 들어서자, 의사는 절뚝이는 걸음으로 다시 병실 안으로 돌아선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병실, 침대에는 남자가 등 돌린 채 누워 있다. 창문을 가득 메운 창살은 그나마 들어오는 햇살마저 갈라놓고 있다. 의사 말을 하기 싫은 건, 세상과 교감하기를 거부하는 겁니다. 그건 일종의 보호 본능이라고 할 수 있죠. 여자, 핸드백에서 담배를 꺼낸다. 여자의 얼굴은 여전히 화면 밖이다. 의사(E) 저… 여기선 금연입니다. 여자, 담배를 도로 핸드백에 집어넣는다. 그 손놀림이 다소 불만스럽다. 계속되는 의사의 설명, 화면은 서서히 누워 있는 남자의 얼굴을 담아간다. 깜빡거림 없는 공허한 눈빛, 어딘지 슬퍼 보인다. 의사(E) 외부의 어떤 충격에 노출되었을 때, 처음엔 놀라움으로 고통의 깊이를 따지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놀라움은 두려움으로 바뀌죠. 그 두려움이 바로 자신을 보호하게 만드는 겁니다. 그렇다면 두려움의 근원은 뭐냐? 여자(E) (말 자르며) 들을 수는 있겠죠? 여자의 소리가 들리자, 남자의 눈빛이 불안하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의사(E) 그거야… 뭐…. 여자(E) 그럼, 됐어요! 남자, 절망적인 듯 결국 눈을 감아버린다.(F.O) 검은 화면 위에 물결처럼 일렁이며 떠오르는 타이틀 <포이즌>. S#2. 상우의 방 옆으로 누워 있는 남자의 얼굴이 화면 가득 잡힌다. 눈은 뜨고 있지만, 마치 죽은 듯 눈 한번 깜빡이지 않는다. 뻐꾸기 시계가 울린다. 그제서야, 깜빡거리는 남자의 눈. 덜컥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남자의 방이 드러난다. 행거에 걸려 있는 몇벌의 옷과 방 안 가득 너절하게 펼쳐 있는 잡지 따위들. 방 안으로 고개를 들이미는 사람은 남자의 어머니다. 상우모 아직, 자니? 급작스럽게 돌아가신 양반, 제대로 부조도 못했는데… 가게 나갈 때까진 봐줘야 할 거 아녀? 그래도 살아 생전에 널 얼매나 이뻐하셨니. 조카도 자식인데, 사람 도리는 혀야지. 남자, 아무 반응 없다. 상우모 상우야, 상우야? (답답하다) 그려, 니 맘대로 혀! 상우모 벌컥 문을 닫아버린다. 밖에서 들리는 상우모의 넋두리. 상우모(E) 여자가 걔 하나여! 죽자 사자 쫓아다니는 년들은 다 마다하더니, 꼴 좋다! 꼴 좋아! 망할 년, 내 자슥 가슴에 대못을 처박고 지는 얼매나 잘사는지 내가 두고 볼 테여… 아이구, 나쁜 년…. S#3. 몽타주 - 버스정류장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정류장에 멈추는 버스. 사람들이 우르르 내린다. 상우도 그 사람들 사이에 끼어 떠밀리듯 내린다. 몇 걸음 가다 빙판 위에서 휘청하더니 미끄러지는 상우. 넘어지는 바람에 바지가 찢어져 보기 흉하다. 지나가는 여학생들이 그런 상우를 보고 웃지만, 상우는 이내 가던 길을 계속 간다. - 시장통 골목 골목으로 접어들자, 상우의 걸음이 빨라진다. 허름한 상가 건물 입구, 화장실 푯말이 보인다. 급하게 뛰어가는 상우, 갑자기 화장실 앞에서 멈춘다. 일순간 그의 표정이 얼어붙는다. - 화장실 지저분한 타일 벽에 기대어 하얀 입김을 내뿜는 두 남녀의 격렬한 섹스. 남자의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어깨를 타고 넘는 전갈 문신만은 인상적이다. 남자의 선 굵은 손이 여자(미순)의 목을 조르듯이 얼굴을 덮어간다. 그럴수록 그 둘의 움직임은 점점 거칠고 빨라진다. 파편처럼 새어나오는 여자의 신음소리. 여자, 가늘게 뜬 눈으로 상우를 발견한다. 상우, 그녀의 시선을 피하려 고개를 외면하지만 역시 움직이지 못한다. 그러나 여자는 보란 듯이 상우의 시선을 쫓아간다. 마치, 남자와의 섹스는 별개인 듯 냉소적이고 섬뜩한 눈빛으로 상우를 보는 그녀...(후략)▶ 제4회 막동이 시나리오 공모 발표 Girls, Be Ambitious! ▶ 당선작 <마늘> 한귀숙 인터뷰 ▶ 당선작 <마늘> 시놉시스 & 시나리오 ▶ 가작 <포이즌> 정현주 인터뷰 ▶ 가작 <포이즌> 시놉시스 & 시나리오

배우 김호정이 쓴 <응시 혹은 2002년 히로시마> 제작기

나와 영화를 찍고 싶다는 스와 노부히로 감독의 제의는 한통의 편지에 실려왔다. 편지를 받을 당시 나는 스와 감독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주위의 도움으로 그에 대한 정보를 조금 얻었고, 그의 작품을 서둘러 보게 되었다. 그의 작품을 처음 보고 난 뒤 나는 약간 당황했다. 영화의 안과 밖의 경계가 모호했고 그런 모호함에 관해 영화들은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당혹감 역시 일반적인 작품에 익숙해져 있는 나의 편견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됐건 솔직함과 겸손함이 배어 있는 편지 한통에 나는 스와 노부히로 감독과 작업을 하고 싶다는 바람을 품게 되었다. 결정을 내리자마자 모든 일들은 순식간에 진행됐다. 나는 나의 연기를 한다… 나란… 작업을 함께하고 싶다는 답장을 띄우자마자 이틀 뒤에 스와 감독은 한국으로 나를 찾아왔다. 하루 동안 시간을 보내며 흥미로운 대화를 나누었지만, 정작 이번 영화의 진행 방법이나 작품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얘기하지 않았다. 다만 스와 감독은 함께 영화를 만들어가며 작업하는 과정과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기대한다는 일 자체가 즐거움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의 언급을 통해 이번 영화가 어떨 것인가에 대한 약간의 정보만 얻은 셈이었다. 그가 일본으로 돌아간 며칠 뒤 간단한 안부 편지와 대략의 시나리오를 건네받았다. 그 편지에는 “당신은 구체적인 판단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저를 신뢰해주셨기에 이번 작품에 대해서 당신의 의견을 낼 수 있는 자격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사실적이고 다큐멘터리적인 느낌의 시나리오였다. 촬영을 위해 남은 일주일 동안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준비할 수 없었다. ‘나는 그냥 나로서 여행을 떠난다’, 그것이 이 시나리오의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설렘과 두려움으로 가득한 채 나는 출국했다. 혹시 영화의 내용대로 내가 공항에 도착해 나오는 모습을 카메라가 고스란히 잡는 것이 아닐까? 긴장으로 상기되어 공항에 도착하자 다행히도 영화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스탭들이 마중나와 주었다. “나타나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로 첫인사를 했고 내 말이 무슨 의미였는지 알아차린 감독은 크게 웃어주었다. 스탭은 모두 열한명이었고 한두명을 제외한 스탭 모두가 스와 감독과 줄곧 영화를 같이해온 사람들이었다. 촬영 전날 영화의 전반적인 윤곽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스와 감독의 방식은 배우와 스탭들과 언제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누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내겐 촬영 못지않게 작업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나누었던 그 시간들이 기억에 남고 즐거웠다. <응시 혹은 2002년 히로시마>(The Letter from Hiroshima)의 스토리는 사실적인 요소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김호정(나란 배우)이 스와 노부히로의 영화 제의를 받고 히로시마에 오지만 감독은 나타나지 않는다. 감독의 제안대로 히로시마를 둘러보고 스와 감독과 우연히 재회한다.” 이러한 간단한 줄거리를 기본으로 우리는 사전의 대화를 통해 영화를 만들어나간다. 촬영 때에는 배우가 즉흥적으로 내용을 만들어간다. 그렇지만 그 즉흥성이란 아무런 사전준비 없이 상황 속에 내던져지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은 감독과 배우의 상호합의하에 이루어진다. 그건 내게 그리 생소한 작업은 아니었다. 나는 이미 <나비>라는 혹독한(?) 작업을 통해 즉흥적인 방식에 당황하지 않을 수 있게 됐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응시 혹은 2002년 히로시마>는 어떠한 사물이나 상황에 반응하는 배우의 모습을 카메라가 기습적으로 생생하게 잡아내는 것이 아니라 배우로 하여금 사전에 모든 것을 먼저 느끼게 하고 그 느낌을 있는 그대로 연기하라고 요구했다. 당연히 첫날 촬영은 첫 장면부터 순서대로 찍었다. 첫 촬영을 마치고 두 번째 장면을 찍기 위해 스와 감독에게 준비해온 의상들을 보여주며 선택해달라고 요청했다. 내게 돌아온 대답은 “아무 거나 입으세요”였다. “이번 영화에서 호정씨는 호정씨 자신을 연기하는 것이니 호정씨 마음대로 하세요. 제가 만약 의상을 결정한다면 그 의상에 맞추어 이미 캐릭터에 갇힐 수 있으니 본인이 선택하세요.” 나는 그때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나를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자리잡았다. 배우는 어떠한 인물을 표현해내기 위해 나름대로 관찰과 연구를 통해 인물을 만들어나간다. 그런데 막상 내 자신에 대해 연기해야 된다고 하니 애매하고 어려웠다. 그리고 순간 과연 나는 누구인가? 라는 의문에 사로잡혔다. 어쨌거나 내 자신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리라는 다짐으로 촬영에 임할 것이다. 그런 마음을 갖고 촬영장에 간 그 다음 순간 나는 큰 문제에 부딪히고 말았다. 첫날 촬영을 망치고 ‘히든 카드’를 쓰다 첫날 두 번째 촬영지 ‘평화 기념관’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감독은 내게 카메라로 이곳을 둘러보는 호정씨의 모습을 찍기 전에 먼저 시간을 가지고 돌아보기를 권유했다. 그리고 그곳을 둘러본 뒤 내 느낌을 알고 싶다고 말했다. 히로시마에 있는 평화 기념관은 3층으로 되어 있고 동관, 서관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그곳에는 피폭자의 유품 및 피폭의 참상을 보여주는 사진 자료 등이 전시돼 있었고 히로시마의 피폭 전후 모습이 모두 보관되어 있었다. 아무런 마음의 준비없이 박물관을 구경하러간 심정으로 한곳한곳을 거닐다 발을 멈추고 말았다. 충격이었다. 그처럼 참혹한 모습을 내 눈으로 보게 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마음이 흔들리고 하염없는 오열을 느꼈다. 둘러보는 것을 포기하고 건물 앞 공원 벤치에 스탭들의 모습을 뒤로 하고 앉아 있는 나를 추스리려 노력했다. 제정신을 차린 뒤 스탭들 앞으로 돌아가자 그들은 내게 무엇을 느꼈는지, 오늘 촬영을 할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나는 그들의 눈을 똑바로 볼 수 없었다. 그리고 그들의 질문에 짧게 대답했다. “이런 것들은 예상치 못했던 것이었어요. 그러나 장소 섭외를 했으니 찍어야겠지요. 제게 조금 시간을 주세요.” 그러자 뜻하지 않은 대답이 돌아왔다. “중요한 건 당신의 감정 상태지요. 장소 섭외는 문제가 되지 않으니 다른 날 찍지요. 오늘 촬영은 더이상 하지 맙시다.” 모든 스탭들은 별 반응없이 그날 촬영을 접었다. 나는 나의 기대와 예상과 다짐과는 어긋나게 첫날 촬영을 망쳐버렸다. 그날 저녁 감독, 조감독, 통역, 나 이렇게 넷이 만나서 나의 느낌과 내일 촬영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그때도 혼돈에 빠져 있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감독은 내일 촬영할 부분에서 내가 받게 될 편지 한통을 건네주었다. 내용은 피폭으로 자식을 잃은 부모가 십여년이 지난 뒤 죽은 자식에게 보낸 편지였다. 나는 한번 얼핏 본 뒤 내일 현장에서 읽겠다고 말했다. 그런 다음 한숨을 푹 쉬고 말했다. “왜 내게 이런 고통을 주시나요? 좋습니다. 나도 여기 대응할 히든 카드(?)를 내일 보여드리지요. 이 영화가 명작이 될지 졸작이 될지는 내일 촬영 뒤에 알게 될 것입니다”라는 우스개 소리를 하고는 내 방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나는 한숨도 잘 수 없었다. 나 때문에 촬영을 접었다는 자책보다 더욱 나를 괴롭힌 것은 나는 이곳에서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 그리고 시나리오에 간단히 적혀 있는 한 문장 한 문장을 이 영화에 어떻게 표현해내야 하는가, 라는 문제였다. 다음날 촬영장에서 나는 밤새 고심하며 준비한 ‘스와 감독께’라고 적혀 있는 편지 한통을 내놓았다. 촬영의 진행 방식은 그랬다. 모든 주어지는 상황을 내 느낌대로 표현해 나갔고 그 반응들 위주로 감독은 매일 밤을 새워가며 시나리오를 조금씩 고쳐 나갔다. 어느덧 내겐 실제의 나로서 연기하고 스탭들과 토론하는 것이 크나큰 기쁨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처음 감독이 내게 말한 “영화를 만들어 가는 과정과 예측할 수 없는 결과에 대한 기대가 즐거운”이라는 말이 무슨 의미였는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디지털로 작업을 하니 부수적인 준비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준비시간이 줄어드는 대신 촬영시간을 배우가 자유롭게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활용할 수 있었다. 어떤 장면에서 나와 스와 감독은 40여분이 넘게 연기하곤 했다. 그것은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나는 디지털이 갖는 무례함(?), 다시 말해 카메라가 끝없이 배우를 쫓아다니며 나의 치부까지 포착하는 작업 방식에서 받은 상처를, 디지털영화가 지닌 또 다른 언어로 치유할 수 있었다. 연기자를 뛰지 않게 하는 미덕이란 일주일이라는 촬영기간이 촉박할 것이라는 나의 예상과 달리 모든 것이 수월히 진행된 덕분에, 그리고 많은 준비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기에 나는 기대 밖의 자유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물론 <응시 혹은 2002년 히로시마>는 큰 프로젝트는 아니다. 그러나 이들의 합리적인 작업 방식은 나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먼저 시간을 쓰는 요령. 정말 한치의 착오도 없었다. 식사시간, 촬영시간, 토론시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지켰다. 예를 들어 한회의 촬영이 끝나고 다음 촬영까지 1시간이 남는다면, 다음 촬영지로 이동하며 약간의 시간이 내게 남는다. 이들은 나를 차 안에 방치해두지 않는다. 어느 배우의 해외 작업 경험은 내게도 와 닿는다. “우리 영화를 찍다 보면 회의가 들 때가 있다. 혹시 내가 거지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인근 구멍가게 화장실 빌려쓰고 길거리에서 벽에 기대어 도시락 먹고….” 그는 할리우드 프로덕션이 배우의 정상 조건을 확보하는 데 돈을 아끼지 않는다고 했다. <히로시마에서 온 편지>의 팀에는 배우를 위한 배려 공간이 없다. 그러나 그들은 내게 차에서 옷을 갈아입게 하지 않았다. 길거리에서 잠시 기다리는 시간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는지 촬영이 끝나고 다음 촬영지로 가기 전 나를 어김없이 호텔로 데려가 호텔에서 옷을 갈아 입히고 단 10분이라도 현장을 떠나 쉬게 했다. 내가 아는 배우들은 종종 이런 말을 하곤 한다. 연기를 하는 것보다 기다리는 시간이 더 힘들다고. 연기자란 기다림의 직업이라고. 그리고 그 기다림을 잘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하지만 나는 이제 되묻게 된다. 그것이 정말 미덕이란 말인가? 내가 사는 동네(가회동)에서는 일주일에 서너번 정도 촬영이 이루어진다. 우리집 창가를 통해 촬영 현장을 지켜보는 것은 신기한 일도 아니게 되어버렸다. 우리집 앞에 배우들이 와서 촬영을 위해 몇 시간씩 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스탭들이 촬영 준비를 마치고 소리지른다. 빨리 누구누구 오라고 해! 하루종일 기다리며 연기를 위해 긴장하고 있는 배우로 하여금 단 몇 미터를 천천히 걸어나오게 해주지 않고 뛰게 만든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연기를 위해 집중한 것, 저렇게 뛰어가다 다 까먹지.” 때때로 나 역시 촬영장에서 주변의 어수선함과 소란 때문에 홀로 구석에 가서 그 소란함에 무디어지려고, 연기에만 집중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던가. 그것이 오히려 연기보다 힘들 때가 많았다. 하지만 나는 스와 감독의 현장에서 시스템에서 줄 수 있는 배려를 충분히 받았다. 그것은 그리 많은 경비가 드는 것이 아니었으며 그들의 세심하고 꼼꼼한 일 처리와 존중심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스와 감독의 스탭들은 모두 말을 아끼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마치 스와 감독의 그림자처럼 느껴졌다. 촬영 현장에서는 스와 감독과 통역자의 소곤거리는 말 소리밖에 내 귀에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러한 고요와 민첩성 때문에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눌리지 않고 때로는 카메라의 존재조차 잊어버리고 연기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나는 리허설을 하지 않았다. 가끔 내가 준비한 동선을 그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들은 나의 자세하지 않은 동선을 보며 삽시간에 모든 세팅을 만들어주었다. 그것이 좀 무리한 요구라 느껴져도 당황하는 일없이 최대한 내가 연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상황에 대처해나갔다. 한편 나의 연기에 대한 감독의 주문은 아주 정확했다. 사람들 사이에 섞여 길거리를 걸어오는 장면이 있으면, “사람들의 걸음에 맞추어 걸으면 빨라서 카메라로 잡을 수 없고 너무 천천히 걸으면 어색하게 보이니 빠르지 않게 천천히 사람들과 적당히 톤을 맞추어 걸어오세요”라고 지시했다. 국적 다른 사람들이 아닌 그저 한팀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그들과 미소로 이야기하게 되었다. 스탭 중 가장 연세가 많은 한분은 내게 “서로의 교류에 있어 언어는 큰 장애가 되지 않는다. 그러니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그냥 한국말로 말해라. 나는 일본말로 대답할 터이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실제로 내가 식사하셨어요, 라고 한국말로 여쭈어보면 네 식사했어요, 당신도? 라고 일본말로 대답했다. 우리는 각자의 언어로 의사소통을 하고는 빙그레 웃곤 했다. 스와 감독 역시 어느 날 촬영을 끝내고 이런 말을 했다. “오늘 호정씨가 한국말로 연기하는 것을 보다가 문득 호정씨가 한국 사람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어요.” 우리는 서서히 국적 다른 배우와 스탭이 아닌 그저 한팀이었다. 촬영 후반에 접어들면서 시간이 흐르는 것이 아쉽게 느껴지곤 했다. 드디어 모든 촬영을 마치고 그들과 헤어져야 하는 시간이 왔다. 그들은 처음과 마찬가지로 공항에서 나를 배웅해 주었다. 그들의 사인과 말 한마디씩이 담긴 롤링 페이퍼를 선물로 받았다. 내 주변을 둘러싼 그들을 보며 나는 말했다. “여러분과 작업할 수 있어서 정말로 기뻤습니다. 헤어지는 것은 너무나 슬픕니다. 우리는 언제나 다시 만나기를 기원하지만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라 생각됩니다. 여러분 모두가 어느 곳에서 어떤 작업을 하든지 관심있게 지켜보겠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느낀 소중한 기억들을 언제나 간직하겠습니다.” 그들은 내 모습이 보일 때까지 끝까지 출국장 구석 벽에서 머리를 내밀고 손을 흔들어주었다. 나는 한편의 영화를 찍기 위해 히로시마에 다녀왔지만 그들과의 작업과 히로시마는 마치 두고두고 기억될 특별한 하나의 ‘여행’으로 내 가슴 속에 남을 것이다. ▶ 배우 김호정이 쓴 <응시 혹은 2002년 히로시마> 제작기 ▶ 스와 노부히로 감독과 <응시 혹은 2002년 히로시마>

2002 충무로 파워 50 - [4] 21위~30위

21 박병무 로커스홀딩스 대표 36위 시네마서비스, 싸이더스 등을 ‘밖에서’ 묶는 지주회사 로커스홀딩스의 수장이었던 박병무 대표는 5월31일부터 이들을 ‘안으로’ 품는 플레너스 엔터테인먼트 주식회사의 대표이사 자리에 오른다. 파워 1위를 포함, 파워 50에 든 7명이 그의 ‘패밀리’일 정도니 플레너스의 파워는 막강해 보인다. 올해 매출 1500억원을 내다보는 이 대형 항공모함의 함장인 그는, 그러나 ‘조직은 통합하고 운영은 독립적인’ 노선을 계속 견지할 계획. CEO로서의 역할과 각 부문을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키플레이어’들에 대한 지원에 충실하겠다는 얘기다. 지나온 1년 강우석, 차승재 등 한국영화계를 대표하는 분들과 큰일을 해낼 수 있어 즐거웠다. 나야 그저 그들을 묶어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고, 투자금 부담을 갖지 않고 그들이 열심히 할 수 있도록 한 역할밖에 없는 것 같다. 앞으로 1년 지난해까지는 종합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 콘텐츠를 모으는 과정이었다고 본다. 올해는 엔터테인먼트가 하나의 산업, 기업이 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실질적으로 보여주는 한해가 될 것 같다. 극장까지 포함해서 우리가 부족했던 엔터테인먼트의 여러 요소들을 보충하면서 영상, 음반, 게임 3개 부문이 기반을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다. 22 이정향 영화감독 NEW 재기 넘치는 대사와 독특한 구조로 무장한 로맨틱코미디 <미술관 옆 동물원>으로 충무로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킨 이후 3년의 긴 휴식과 모색 끝에 튜브픽처스와 손잡고 내놓은 두 번째 영화 <집으로…>로 ‘소포모어 징크스’라는 표현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담백한 스토리와 비전문 배우 캐스팅으로 말미암아 애당초 상업적인 모험으로 간주됐던 영화 <집으로…>는 개봉 3주째인 4월26일 현재 전국 관객 200만명 돌파를 눈앞에 두는 성공을 구가하고 있다. 두편의 장편영화를 통해 이정향 감독은 “주어진 상영시간 동안 관객과 당당히 줄다리기를 벌이되 관객이 게임에 흥미를 잃지 않도록 하는 것”이 영화 만들기의 요체라고 다짐하는 감독답게, 성실한 주제의식뿐 아니라 관객의 감정선을 컨트롤하는 직관과 뛰어난 타이밍 감각을 함께 갖춘 연출자의 면모를 확고히 했다. 영화아카데미 4기 출신으로 입봉 전에는 <오늘 여자> 연출부, <비처럼 음악처럼> <천재선언> 조감독을 거쳤다. 지나온 1년 <집으로…>를 만들었다. 앞으로 1년 <집으로…>를 잊을 것이다. 23 설경구 배우 NEW <박하사탕>의 김영호를 맡은 이후 설경구는 한석규를 대신해 시나리오가 가장 많이 몰리는 남자배우가 됐지만, <단적비연수>와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로 이어진 경력에서 올해 또 하나의 분기점이 생겼다. <공공의 적>의 형사 강철중은 분명 설경구의 또 다른 도약이다. 단순무식하지만 비굴하거나 약삭빠른 면이 전혀 없는 강철중의 모습에는 시대가 요구하는 안티히어로의 상이 들어 있었다. 설경구는 마치 그런 영웅상을 의도치 않았던 듯 연기함으로써 모든 사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영웅이 된다. 그처럼 자연스럽게 관객을 끌고 가는 힘이야말로 설경구 아니면 발견할 수 없는 특징이다. 지나온 1년 <공공의 적>은 설경구 최대 흥행작이 됐다. <공공의 적> 출연하면서 89kg까지 찌운 살을 <오아시스> 준비하면서 65kg으로 줄였다. 앞으로 1년 <오아시스>의 주인공 종두는 아마 관객을 많이 울릴 것 같다. 24 이태원 태흥영화 대표 30위 이태원 대표는 상업영화에 대한 호감을 노골적으로 표하면서도,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 <취화선> 등 예술영화를 제작하는 ‘이율배반’을 통해 아직도 충무로식 미덕이 남아 있음을 알려주는 인물. 그동안 임 감독과 함께 각종 영화제를 찾아 한국영화를 세계에 알려온 그는 <취화선>으로 다시 칸을 찾게 됐다. 지난 1월 스크린쿼터 문제가 다시 불거졌을 때 <취화선> 팀을 이끌고 기자회견장을 찾았을 정도로 한국영화계의 든든한 큰형 노릇을 하고 있다. 지나온 1년 오직 <취화선>이 잘되기를 고대하며 열심히 한 것밖에 없다. 앞으로 1년 솔직히 이젠 돈 좀 벌면 좋겠다. 그래서 돈이 되는 영화를 할 계획이다. 우선 송능한 감독의 신작 을 찍는다. 4월 말이면 시나리오가 나와 7월쯤에 크랭크할 것 같다. 그것 말고도 이것저것 두리번거리며 찾고 있다. 작업하고 있는 것도 있는데 올해는 2∼3편 정도를 생각중이다. 25 유인택 기획시대 대표·한국영화제작가협회 회장 20위 “이제 벤처 기업가로 불러달라”고 말하는 그다. 두 차례의 유상증자를 실시하고, 사외이사제도를 도입하고, 전문경영인을 불러들이면서 영화사 규모를 키웠다. “산업 지형이 달라진 만큼 체질 개선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는 게 그의 설명. 스스로도 마음을 다잡고자 금연을 선포하고, 내친 김에 영어와 일어회화까지 꾸준히 하고 있다. 안정적인 자금을 확보했고, 올해 개봉하는 작품만 무려 4편. 개인 이름 내걸 때와 달리 65%의 지분을 갖고 있는 주주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어 부담이 만만치 않다고. 제협 회장으로서 남은 임기 동안 아시아 제작자들과의 교류를 더욱 증대시켜나갈 계획을 갖고 있다. 지나온 1년 새로운 시스템을 갖추고 <일단 뛰어!>를 만들었다. 달라진 뒤 첫작품이니만큼 개봉을 앞둔 지금 무척 초조하다. 앞으로 1년 <해적, 디스코왕 되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방아쇠> <목포는 항구다> 등을 선보인다. 이송희일 같은 재능있는 독립영화 감독 외에도 AV 출신의 봉만대 감독 등이 준비하는 프로젝트도 제작할 예정. 26 이준익 씨네월드 대표 NEW 지난해 <달마야 놀자>가 흥행하면서 새롭게 50위 안에 진입했지만 영화계 경력은 프로듀서 1세대에 속한다. 서울극장 기획실을 거쳐 씨네월드를 만들었고 <키드캅>으로 데뷔했다. <키드캅>이 실패하면서 한동안 수입에 전념하다 <간철 리철진> <아나키스트> <공포택시> 등을 차례로 만들었다. <공포택시>가 흥행에 실패해서 고전했지만 <달마야 놀자>로 만회, 다시 주목할 만한 제작자로 떠올랐다. 지나온 1년 2001년 외화로는 <메멘토>와 <러시아워2>가 선전했고 한국영화로는 <달마야 놀자>가 흥행에 성공했다. 배급대행한 <어둠 속의 댄서>도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려 지난해 매출액만 230억원에 달한다. 올해는 배급대행한 <디 아더스>가 흥행하고 수입·배급한 <블레이드2>도 선전했지만, <존 큐>는 손해를 봤다. 앞으로 1년 직접 연출, 제작할 <황산벌> 외에 공동제작하는 영화 <남남북녀>가 있다. 외화는 해리슨 포드 주연의 가 기대작이다. 27 장동건 영화배우 NEW 장동건은 올해 파워50에서 단연 돋보이는 신성이다. 지난해 상반기 화제작 <친구>와 하반기 화제작 에 출연했던 전적 때문만은 아니다. <친구>를 계기로 청춘스타의 이미지에서 온전히 벗어난 뒤에 한결 두터워진 자신감과 여유, 그리고 누구도 생각지 않았던 조합, 김기덕 감독과의 작업에 ‘자발적으로’ 뛰어든 용기와 도전의식. 이런 것들이 충무로의 현직 영화인들이 배우 장동건의 내일에 ‘한표’를 던지고 싶어지는 이유인 것이다. 지나온 1년 의 촬영과 개봉으로 1년이 다 갔다. 제작하신 분이 손해를 안 봤다니 다행이다. 개인적인 수확은 감독님 그리고 상대배우와의 교감, 외국어 대사 연기, 강도 높은 액션 연기 등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자신감을 얻었다는 것. 앞으로 1년 김기덕 감독님 작품을 좋아하긴 했지만, ‘내 것은 아니다’라고 생각해왔는데, 지금이 아니면 못할 것 같아 용기를 냈다. 역할 선택 폭을 넓히는 데 주력할 예정. 28 김기덕 감독 NEW 50위 안에서 가장 의외의 인물로 꼽힐 만하지만 다른 시각에서 보면 뒤늦은 인정일 것이다. 어떤 영화보다 찬반논쟁이 치열했던 <나쁜 남자>가 흥행에 성공함으로써 주류영화계도 예의주시하지 않을 수 없는 감독이 됐다. <섬>과 <수취인불명>이 연달아 베니스영화제 경쟁 부문에 나가고 <나쁜 남자>도 베를린영화제 본선에 진출, 해외에선 가장 지명도 높은 한국 감독 중 하나로 꼽힌다. 불쾌감을 주면서도 너무 강렬해서 잊을 수 없는 캐릭터, 시선을 사로잡는 회화적 이미지, 반복되지만 번번이 끌려들어가는 이야기 등이 김기덕 영화의 힘. 최근 장동건이 <해안선>에 출연하기로 결정한 것은 김기덕 감독의 치열한 영화 만들기가 주류영화계마저 감화시킨 증거로 보인다. 지나온 1년 <나쁜 남자> 논쟁에 시달렸지만 결과적으로 김기덕의 힘을 보여준 한해가 됐다. 앞으로 1년 지금 시나리오를 다듬고 있는 <해안선>은 6월10일경 크랭크인할 예정. <해안선>을 찍자마자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을 촬영할 계획이다. 29 김상진 감독·감독의 집 대표 NEW <주유소 습격사건>과 <신라의 달밤>, 연타석 장타로 ‘흥행감독’의 이미지를 굳힌 게 순위 진입을 도왔다. 한때 김미희 대표와 좋은영화의 공동대표를 맡다, 지난해 하반기에 제작사 감독의 집을 따로 차렸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건 없다. “경영에는 영 젬병”인 탓에 여전히 “메가폰 잡을 궁리”만 하고 있다는 게 그의 말. 차기작은 탈옥을 소재로 한 코미디영화 <광복절 특사>. 6월부터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간다. 환갑을 맞기 전까지는 관객이 배꼽 잡고 웃을 수 있는 대중영화에 복무하겠다며, 칸이나 베를린 등의 해외영화제를 겨냥한 ‘심오한’ 영화는 그 이후에나 도전해보겠다고. 지나온 1년 좀더 완성도를 갖춘 작품을 내놓기 위해 박정우 작가와 함께 <광복절 특사> 시나리오에 매달렸다. 앞으로 1년 제목 때문에 8월15일 전에 개봉하려고 했으나, 지금 상황으로선 일정이 너무 빡빡해서 추석 정도에 개봉할 예정이다. 만화적인 코드가 더 들어간 영화가 될 듯. 그외에 최창호 감독의 로맨틱코미디 <홍수한, 김추자를 만나다>를 준비중. 30 박무승 KM컬처 대표 41위 <달마야 놀자>에 투자해서 20억원 정도를 거둬들였다. ‘짭짤한’ 한해였던 셈. 그러나 쿠앤필름의 <이중간첩> <빙우>, 씨네2000의 <중독> <지상최대의 작전>, LJ필름의 <두 사람이다> 등 투자작뿐 아니라, <품행제로> <이웃집 살인마> 등을 자체 제작하는 등 라인업을 대폭 늘린 것이 순위 상승요인으로 보인다. 쇼박스와도 제휴, 이들 작품들을 소화할 수 있는 배급라인을 확보하기도 했다. 한해 투자·제작하는 영화의 규모를 6∼8편씩 꾸준히 유지할 생각이다. 지나온 1년 <달마야 놀자>에 투자했고, 씨네2000, 쿠앤필름 등이 제작하는 2편의 영화에 투자하기로 제휴관계를 맺었다. 앞으로 1년 가장 중요한 한해가 될 것 같다. 일단 자체 제작하는 <품행제로>가 곧 크랭크인한다. 이 밖에도 협력관계를 유지할 제작사를 좀더 넓히는 등 공격적으로 영화사업에 투자할 예정.

2002 충무로 파워 50 - [3] 11위~20위

11 김승범 튜브엔터테인먼트 대표 6 지난해 배급계 1위를 노리다 좌초하고 만 김승범 대표는 최근 한시름 놓았다. 튜브엔터테인먼트의 향방을 놓고 지루하게 벌여왔던 논의를 일단락지었기 때문. 우여곡절 끝에 배급을 포기했음에도 그가 여전히 높은 순위에 오른 것은 자회사 튜브픽처스가 만든 <집으로…>의 성공과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튜브> <내츄럴 시티> 등 투자작에 대한 기대감이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블록버스터의 열매를 거둬들이게 될 올해는 그에게 튜브의 위상과 조직, 시스템을 재정비해야 하는 한해이기도 하다. 지나온 1년 자금난이 있었고, 사업 파트너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고, 직원들과 헤어지기도 했다. 한마디로 지옥 같은 한해였다. 앞으로 1년 그동안의 고생이 헛되지 않게 관리를 타이트하게 할 생각이다. 큰 영화에 연연하지 않고 <집으로…> 같은 좋은 영화를 만들겠다. 자숙하는 1년이 될 것 같다. 12 김정상 시네마서비스 사장 46위 강우석 감독과 더불어 시네마서비스를 움직이는 두축. 2000년에 20세기 폭스 한국지사장을 그만두고 시네마서비스로 옮겨와 안정적인 경영구조를 만드는 데 힘썼다. 주식스와핑부터 시작해 로커스홀딩스와 합병작업을 추진했다. “한편한편 흥행에 일희일비하는 구조를 탈피, 유관사업을 결합시켜 안정적인 경영이 이뤄지도록 하는 데 힘썼다”는 것이 지난 1년에 대한 자체 평가. 제작투자가 강우석 감독의 몫이라면 시네마서비스의 그외 모든 업무는 김정상 사장의 결재로 이뤄진다. 지나온 1년 로커스홀딩스와 합병, 안정적인 경영의 토대를 만들었다. 앞으로 1년 멀티플렉스 사업 신규 진출, 아트서비스에서 준비중인 스튜디오는 내년 완공 예정. 13 문성근 스크린쿼터문화연대 이사장·배우 8위 영화정책 분야에 있어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파워맨. “특유의 열정으로 영화계 개혁운동을 넘어 유권자 운동까지 펼치고 있다”는 한 추천인의 촌평처럼, 지난해에는 ‘지역감정 타파’를 외치며 민주당 노무현 후보 지지를 선언한 뒤 국민경선에 주도적으로 참여해왔다. 끊임없이 샘솟는 아이디어, 왕성한 실천력, 무엇보다 ‘역사’를 고민하며 해마다 행동반경을 넓혀가는 그의 행보에 대한 영화인들의 신뢰는 여전하다. 바쁜 일정 때문에 뒤늦게 알았지만, 그는 최근 문화관광부의 영화진흥위원회 예산 변경 승인은 정부가 자율성을 침해한 것이라며, “영화인들의 뜻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나온 1년 <질투는 나의 힘>을 찍었다. <오! 수정> 이후 2년 만에 본업인 배우로 잠깐 돌아온 셈이다. 이후 세 작품 정도 출연 계획이 있었지만, 노무현 후보의 국민경선을 돕게 되면서 양해를 구하고 결국 빠지게 됐다. 앞으로 1년 일단은 일산 집에서 칩거할 계획이다. 작품도 하고, 영화계 심부름도 하고, 민주화 투쟁의 차원에서 떠맡은 일도 있고, 이 세 가지를 버무려놨더니 좀 복잡하다. 14 임권택 영화감독 17위 임권택 감독은 한국영화를 해외에 소개하는 데 있어 선구자였을 뿐 아니라, <취화선>으로 2회 연속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하는 등 아직도 세계영화계의 최전선을 누비고 다닌다. 현역 최고령 감독으로서 수십년 동안 갈고 닦은 장인의 솜씨를 발휘해 영화의 본질을 탐구하고 영화의 한계를 돌파하려는 그는 한국영화계의 귀감이라 할 수 있다. “만날 사극만 할 순 없으니 다른 배경의 영화도 만들고 싶다”는 임 감독은 영화에 대한 새로운 꿈을 거듭 만들어가는 진정한 ‘영화청년’이다. 지난온 1년 <취화선> 때문에 말도 못하게 힘들었다. 고마운 것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지원과 성원이 있었던 적도 없었다는 점이다. 만약 칸 경쟁 부문에 들어가지 못했다면 그런 분들에게 면목없는 일이 될 뻔했다. 앞으로 1년 올 한해는 <취화선> 뒤치다꺼리하느라 다 보낼 것 같다. 벌써 세계적인 배급사들이 관심을 갖는 모양인데, 영화가 해외에 팔려나가면 우리 의지와 관계없이 그쪽에서 영화제에 내보낸다. 그러면 감독은 도리없이 쫓아다녀야 하므로 그 치다꺼리를 해야 할 것이다. 15 박동호 CGV 대표 NEW 국내 최초의 멀티플렉스 CGV강변11을 시작으로 전국적인 극장체인을 만들고 있다. 제일제당 기획실, 육가공본부, 멀티미디어사업부를 거쳐 2000년 8월부터 CGV 대표로 일하고 있다. 지난해 전국의 CGV 체인이 동원한 관객 수만 약 1370만명, 매출액으로 약 920억원이다. 메가박스, 롯데시네마가 뒤쫓고 있지만 일찌감치 요지를 점령한 CGV의 속도에는 아직 못 미치고 있다. 머지않아 안양, 불광동, 용산, 청량리, 창동, 일산 등에도 CGV체인이 생길 예정이며 올해 CGV 전국체인이 동원할 예상관객 수만 1700만명에 달한다. 지나온 1년 지난해 명동 5개관, 부산 남포 2개관, 대전 9개관 등을 오픈했고 올 1월 구로에 10개관을 열었다. CGV강변11은 10억원을 들여 리노베이션을 실시했다. 앞으로 1년 8월 말 목동에 7개관, 12월 말에 수원에 8개관을 오픈할 계획. 16 곽정환 서울극장 회장 10위 “나, 정말 은퇴했다.” 그는 지난해 서울시극장협회 회장 직함까지 내놓았으니, 이제 아무것도 쥔 것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1주일에도 몇번씩 부산과 대구를 오가며 극장 라인을 점검하는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없다. 순위가 다소 하락했지만, 올해도 배급·극장 업계 추천인들은 그의 영향력을 다섯 손가락 안에 꼽았다. 그의 최대 무기는 남들보다 한 박자 빨리 판을 읽고 대처하는 비즈니스 감각. 고령에도 불구하고 전혀 녹슬지 않았다는 게 그를 주위에서 지켜본 이들의 전언이다. 스스로 “극장은 사양산업이고, 40년 한길 걷다보니 그냥 하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종로통 서울극장에 대한 그의 자부심을 모르는 이는 많지 않다. 지나온 1년 부산 대영시네마 6관을 9개관으로 늘리는 공사를 시작했다. 사세확장이 아니라 일종의 관객을 위한 서비스임을 강조. 앞으로 1년 5월부터 현재 7개인 서울극장 바로 옆 부지에 3개 스크린 규모의 극장을 증축한다. 좌석 수는 그리 많지 않고 관당 200석 규모가 될 듯. 17 이춘연 씨네2000 대표·(사)영화인회의 이사장 15위 지난해 대종상 사태가 빚은 불미스러운 사태로 인해 백의종군했지만, 이후 젊고 부지런한 영화인들을 끌어들여 조직을 짜임새있게 재정비하고, 영화계 대소사에 팔을 겉어붙이고 앞장서 나선 것이 득표의 근거다. <인터뷰> 이후 한동안 제작하는 영화가 없다가, 올해에만 <서프라이즈><중독> 등 그동안 꼭꼭 쟁여둔 아이디어를 연이어 영화화하는 저력을 보이고 있는 것도 한몫한 듯 보인다. 씨네2000이 올해에만 크랭크인하는 작품은 이를 포함해 모두 5편. <여고괴담 세번째 이야기> <운명계산시계> <지상최대의 작전> 등 규모가 크진 않지만, 다양한 개성들이 담길 장르영화들 역시 하반기에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간다. 지나온 1년 하루도 쉰 적이 없다. 준비하느라고. 영화인회의는 반성과 전진을 한 한해였다고 자평하고 싶다. 또한 서울영상위원회를 만든 게 가장 기쁜 일이다. 앞으로 1년 당장의 소망이 있다면 임권택 감독님의 <취화선>이 칸영화제에서 수상했으면 한다. 늦었지만, 후배들한테는 좋은 선물이 될 것 같다. <여고괴담> 시리즈는 10편까지 했으면 한다. 돈벌이가 아니라 신인 감독, 신인 배우들의 등용문이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18 이은 영화진흥위원회 위원·디엔딩닷컴 이사 7위 순위가 11계단이나 떨어졌다. 그러나 이는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지적이 주를 이룬다. 영진위 위원 임기가 곧 끝나는 만큼, 제작자로서 전면에 나설 경우 쉽게 회복되리라는 것을 예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특히 단일 제작사로서 최초로 코스닥 등록이 이뤄질 경우, “자본과 소프트웨어를 아우르게 된다”는 점에서 그의 잠재 파워는 위력적이다. “코스닥 등록은 명필름이라는 회사의 투명한 운영을 위한 것이다. 안정적인 자본이 마련된다고 해서 제작편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퀄리티를 높이기 위한 인프라 확보에 쓸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 지나온 1년 영진위 위원 일이 끝나는데, 솔직히 후련하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영진위가 어느 정도 방향을 잡는 데 일조했다는데 보람을 느낀다. 앞으로 1년 눈에 띄거나 주목받는 일은 안 하고 싶다. 대신 명필름 운영이나 내부 시스템 구축에 좀더 집중할 생각이다. 직접 프로듀싱하는 작품은 임상수 감독의 <마지막 연애의 상상>과 정지영 감독의 <아리랑>이다. 19 송강호 배우 14위 <복수는 나의 것>이 전국 50만명을 넘지 못하는 성적을 기록했지만 영화인들은 여전히 그를 최고의 흥행배우로 꼽는다. 특히 프로듀서들이 그에게 거는 신뢰는 대단한데 이는 결코 흥행성적 때문만은 아니다. 영화를 대하는 태도, 진지함, 성실함이 그를 ‘최고’로 인정하게 만드는 힘이다. 게다가 그는 흥행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복수는 나의 것>은 어느 정도 각오를 하고 출연한 영화였다. 매번 흥행작을 선택하는 것보다 자신의 연기폭을 넓힐 좋은 작품에 출연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아는 배우이다. 그런 면에서 <복수는 나의 것>에서 그가 보여준 연기는 송강호의 새로운 경지였다. <쉬리>에서 아쉬웠던 부분을 말끔히 털어내며 <초록물고기>의 ‘판수’를 다시 떠올리게 했다. 분명 그와 작업하는 것은 프로듀서에게나 감독에게나 대단한 행운일 것이다. 지나온 1년 <복수는 나의 것>에 바친 한해. 앞으로 1년 촬영중. 이 영화가 흥행작이 되리라는 예상은 <챔피언>이 흥행작이 되리라는 예상 못지않게 업계의 정설이 돼 있다. 이 끝나면 곧바로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에 출연할 예정이다. 20 김우택 (주)미디어플렉스 상무 18위 ‘관객 수 600명만, 매출액 450억원.’ 서울 지역 단일 극장으로는 최다 관객을 동원(점유율 17%)한 멀티플렉스 메가박스의 실세. 이를 기반으로 투자배급사 쇼박스를 차렸으며, 일단 본 궤도에 오를 경우, 파괴력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튜브엔터테인먼트와의 합병 무산에서 보여지듯, 신규 사업 진출시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셈을 많이 따져보지만, 일단 판단이 서면 공세적으로 밀어붙이는 저돌적인 스타일이라는 평. 한국영화에 비중을 두고, 한해에 15∼20편의 영화를 배급할 계획이다. 시네마서비스, CJ엔터테인먼트 등과 함께 메이저 투자배급사로서 ‘3강’을 이룬다는 것이 그가 털어놓는 쇼박스의 미래다. 지나온 1년 수원, 부산, 대구 등에 메가박스 안착. 반응이 좋아 행복한 한해였다. 앞으로 1년 쇼박스를 성공적으로 키우는 것이 관건이다. 한국영화 투자·배급에 비중을 두고 있는 만큼 KM컬쳐, 씨네2000, 씨네라인2 이외에도 파트너를 물색중. 해외쪽 역시 안정적인 작품 수급을 위한 파트너와 계약 성사 임박. 제우메가투자조합에 이어 새로운 창투사를 끌어들여 100억원 규모의 펀드 조성 예정.

<스파이더 맨>, 혹은 음울한 만화영웅들의 신세기 영화세상 점령기

배트맨이 무장봉기를 일으킨다? 영국에서 <캡틴 브리튼>으로 출발한 앨런 무어는 <마블맨>(미국명 <미라클 맨>)에서 슈퍼 히어로를 재해석하기 시작한다. 니체의 초인사상을 만화에서 논하고, 자신의 힘에 도취되어 파시스트적인 폭력을 가하는 슈퍼 히어로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었다. 미국으로 건너간 앨런 무어는 <스웜프 싱>에서 늪의 괴물을 신화적, 환경문제의 관점에서 재해석한다. 앨런 무어의 대표작 <워치맨>은 핵전쟁의 예감이 감돌던 8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동료의 죽음의 수수께끼를 찾아나선 왕년의 슈퍼 히어로들이 부닥치는 거대한 음모를 그린다. ‘20세기의 소설 베스트 200’에도 꼽힌 <워치맨>은 장르는 슈퍼 히어로물이지만 50년대풍의 SF스타일과 냉전에 대한 정치비평, 시각적으로는 상징주의와 대위법을 적절하게 구사하여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처럼 볼 때마다 새롭게 읽’히는 위대한 작품이다. 앨런 무어는 만화의 스토리를 쓰지만, 시각화의 모든 것을 세세하게 지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얼마 전 개봉했던 영화 <프롬 헬>의 원작을 그린 에디 캠벨은 “흑백이라도 그의 원작에서는 모든 색과 움직임이 정확하게 드러나 있다”고 말한다. 앨런 무어의 <프롬 헬>은 극단적인 폭력 묘사와 함께 역사, 신화, 철학, 건축, 계급, 미디어 등 인간의 모든 것이 농축되어 있는 걸작이다(아마도 그런 이유로 <프롬 헬>은 메이저 출판사가 아니라 자비출판 형태로 출간했다). <다크 나이트 리턴즈>와 <워치맨>의 성공으로 DC 코믹스는 좀더 실험적인 닐 게이먼의 <샌드맨>도 포함된 성인 취향의 ‘버티고’ 시리즈를 출범시킨다. 88년 배트맨의 탄생비화를 그린 프랭크 밀러의 <배트맨: 이어 원>, 조커의 탄생비화를 그린 앨런 무어의 <킬링 조크>가 대성공을 거둔다. 또한 언더그라우드 만화계에서는 아트 스피겔만의 <쥐>가 퓰리처상을 수상하여, 마침내 코믹스가 예술로 인정받게 된다. 88년은 애니메이션 <아키라>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비롯하여 많은 일본 만화가 미국 시장에 보급된 해이기도 하다. 주목할 사실은 88년은 팀 버튼의 <배트맨>이 나온 해이기도 하다는 점. 부모의 살인범에 대한 증오심에 사로잡힌 채, ‘범죄자 사냥’의 정당성을 찾으려 방황하는 배트맨. 자신의 범죄를, 현실을 초월한 예술로 완성시키려는 포스트 모더니즘적인 범죄자 조커. 극단적인 빛과 그림자가 지배하는 고담시의 음울한 풍경 등 팀 버튼의 <배트맨>이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프랭크 밀러와 앨런 무어의 ‘그래픽 노블’이 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던 권선징악의 배트맨과 달랐던 팀 버튼의 <배트맨>은 시대의 변화와 86년의 만화 혁명이 가져온 부산물이었던 것이다. 만화 원작이 없지만, 너무나도 만화다웠던 샘 레이미의 <다크맨>(1989)에서 복수심과 광기에 자주 이성을 잃어버리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방황하는 다크맨의 캐릭터 역시 만화계의 거센 흐름에 영향을 받은 작품이었다. 미국의 코믹스는 90년대에도 끊임없는 혁신을 거듭한다. 90년대 DC 코믹스는 타임워너 그룹과 손잡고 자신의 캐릭터를 스크린과 TV에서 활약하게 만들었고, 여전히 만화업계 최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92년에는 토드 맥퍼레인, 짐 리 등이 작가가 창조한 히어로의 권리를 만화사가 갖는 것에 반발하여, 작가가 저작권을 소유하는 새로운 회사 이미지 코믹스를 설립한다. <스폰> <와일드 캐츠> <사이버 포스> 등 화려한 그림과 격렬한 액션장면으로 태풍의 눈이 되지만 오랫동안 세력을 유지하지는 못했다. 90년대의 코믹스는 더욱 깊어지고, 더욱 넓어지고 있다. 15년 만에 발표된 <다크 나이트 리턴즈>의 속편인 프랭크 밀러의 <배트맨/다크 나이트 스트라이크 어게인(DK2)>은 최대의 화제작이다. 언제나 정치적인 문제를 전면에 깔았던 프랭크 밀러는 신작에서도 여전히 선동적이다. ‘미국은 이 힘으로 모든 적을 쓸어버릴 것이다’, ‘우리는 평화와 풍요에 사로잡힌 노예다’라며 TV로 대중을 선동하는 대통령의 실체는 버추얼 리얼리티. 모든 것을 조종하는 인물은 악당 렉스 루서다. 배트맨은 민중을 선동하여 루서가 좌지우지하는 정부에 대항하는 무장봉기를 일으킨다. 편집자인 밥 시렉은 “배트맨은 사실 테러리스트다. 초고층 빌딩의 위에 있는 루서의 기지를 향하여 배트카를 돌진하고, 동굴에 살고 있다. 그건 우연의 일치다. 이미 테러 전에 묘사된 상황이고. 위대한 코믹은 현실을 예언할 수 있다. 는 리얼한 누아르였던 <다크 나이트 리턴즈>에 비하여 판타지적인 요소가 더 강해진 작품”이라고 평한다. 애국주의는 가라, 진정한 9.11의 교훈을 찾아서 현실을 예언한 것은 만이 아니다. DC 코믹스에서 일하는 언더그라운드 출신의 작가 더그 모엔치는 CIA의 음모를 그린 <배트맨 더 아우트로>의 작가다. 자신은 “반권위주의를 외치던 히피 세대”라고 주장하며, 9·11 이후의 애국주의 일색에 반발하여 DC 코믹스의 모든 작가들이 참여하여 9·11 테러를 그린 특별판 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그의 이란 만화에서는 DC 코믹스의 히어로들이 어느 날 갑자기 초인적인 능력을 잃어버린다. 슈퍼 히어로들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포자기로 고주망태가 되거나 홈리스로 떨어진다. 그러다 화재현장을 지나던 슈퍼맨은 결사적으로 구출작업을 하던 소방사를 본다. 그리고 ‘초능력이 없이도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이다’라고 자각하게 된다. 더그 모엔치는 ‘이것이 진정한 9·11의 교훈’이라고 본다. DC 코믹스의 사장 폴 레비츠의 생각도 마찬가지다. “슈퍼맨을 창조한 것은 유대계 이민이었다. 고향을 상실한 슈퍼맨은 그를 받아준 미국의 자유로운 정신에 감동되어, 그것을 지키기 위하여 싸운다. 테러에의 분노가 외국이나 국내의 다른 소수민족에 대한 적의로 나아가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작지만 코믹스도 그런 노력을 할 것이다.” 황당무계한 슈퍼 히어로에게 ‘리얼리티’를 부여하는 ‘리얼 월드' 시리즈에는 자신의 초능력을 이용하여 S마크를 머천다이징 상품으로 팔아 백만장자가 되는 슈퍼맨이나, 가슴에 새겨진 S자 문신 때문에 감옥으로 가고 그곳의 보스가 되는 50년대의 슈퍼맨 이야기도 있다. 슈퍼 히어로에게 현실성을 부여하는 것 이외에도, 미국의 코믹스는 다양하게 성장하고 있다. <매트릭스>에서 미술을 담당한 제프 다로는 주로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작가다. 프랭크 밀러의 스토리로, 미국에서 발표한 <하드보일드>는 <블레이드 러너>에서 영향을 받은 음산하고 기계적인 미래의 풍경과, 프랭크 밀러 특유의 폭력적인 이야기를 접목한다. 프랭크 밀러와 함께 일본 만화의 오마주로 발표한 <빅 가이 앤 러스티 더 보이 로봇>은 거대 로봇 빅 가이와 아톰을 연상시키는 러스티가 도쿄를 습격한 대괴수를 퇴치하는 내용이다. ‘캐릭터와 메카는 아르데코풍, 로봇과 우주선은 뫼비우스풍’으로 전세계의 다양한 것들을 한데 뒤섞어 독특한 개성의 작품을 만들어냈다. <빅 가이 앤 러스티 더 보이 로봇>은 2000년 폭스에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다. 최고 인기 작가 중 하나인 알렉스 로스는 94년 판타스틱 포나 스파이더맨 같은 마블 코믹스의 히어로들이 현실에 존재한다는 이야기의 <마블즈>로 인기를 얻었다. 로스는 리얼리즘을 추구하기 위하여 직접 모델에게 슈퍼 히어로 의상을 입혀 촬영한 사진을 바탕으로 작업하고 다시 그것을 촬영한다. DC로 옮긴 뒤 발표한 <킹덤 컴>으로 톱 아티스트의 반열에 오른 로스는 <스파이더맨>을 비롯한 많은 영화에 컨셉 아트를 제공한 것으로 유명하다. 현재는 짐 루거 원작의 3부작 <어스 X> <유니버스 X> <파라다이스 X>를 제작하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 코믹스를 보는 연령층은 꽤 높은 편이고, 비평의 눈이 엄격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그래서 마블 코믹스는 최근 50년대에 만들어진 자주윤리규제위원회를 탈퇴했다. “그것은 대부분의 독자가 초등학생이던 시대의 유물이다. 그림을 그리는 손에 제약을 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미국 코믹스의 시장은 일본보다도 작다. 그러니 가장 중요한 것은 창조적인 발상이다”라는 이유다. 현실에 기반을 둔 기발한 판타지 요즘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가 많아진 것은 이러한 이유다. 코믹스의 ‘리얼리티’가 높아졌다는 것. 만화의 소비층이 아이들만이 아니라 성인까지 포함된다는 것. 만화가 더이상 황당무계한 공상이 아니라, 현실에 기반을 둔 기발한 판타지라는 것이 사회적으로 공유된 것이다. 게다가 그림으로 그려진 만화는, 영화의 시각적인 완성도를 높이는 데 큰 공헌을 한다. <프롬 헬>의 각색자인 라파엘 이글레시아스는 “소설보다 만화 원작이 기획을 통과하기 쉽다. 문장과 달리 시각적으로 일목요연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스토리 작가이기도 했던 워쇼스키 형제는 제프 다로가 그린 스토리보드로 제작자를 설득하여 <매트릭스>를 만들 수 있었다. 또한 만화 원작영화가 많아진 가장 큰 이유 하나는, 86년의 만화 혁명을 직접 체험하면서 감화감동한 세대가 지금 영화계에서 활약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스스톰> <식스 센스>나 <레퀴엠> 같은 영화를 만들었던 감독들이 모두 만화의 자식이었고, 자기가 심취했던 만화를 영상으로 재현하려는 욕망에 사로잡힌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들이 보았던 만화는 가장 실험적이고, 가장 격렬하고 선동적인 내용을 담았던 작품들이었다. 그런 만화를 보면서 자라난 그들이, 충격적이고 스타일리시한 영화를 만드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80년대 이후 블록버스터의 늪에 빠져 70년대의 혈기방탕함을 잃어버린 할리우드영화와 달리, 미국의 만화는 쉬지 않고 싸워왔다. 지금 만화가 영화의 세계로 침투하는 이유는 그것이다. 만화의 자식들인, ‘슈퍼 히어로’가 할리우드를 정복할 날이 멀지 않은 것이다. 김봉석/ 영화평론가 lotusid@hanmail.net ▶ <스파이더 맨>, 혹은 음울한 만화영웅들의 신세기 영화세상 점령기 (1) ▶ <스파이더 맨>, 혹은 음울한 만화영웅들의 신세기 영화세상 점령기 (2) ▶ 1986년까지, 미국 슈퍼 히어로 만화 소사 ▶ <스파이더맨> 감독 샘 레이미 인터뷰

<스파이더 맨>, 혹은 음울한 만화영웅들의 신세기 영화세상 점령기

21세기의 할리우드는 거대한 만화 가게를 방불케 할 것이다. 88년의 <배트맨>부터 <블레이드> <엑스맨>과 같은 영화들로 인해,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는 감독의 독특한 시각적 스타일을 과시할 수 있는 장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2002년 여름, <스파이더 맨>은 원작만화 40년만의 첫 스크린 나들이에 나선다. 만화책 컬렉션을 팔아 영화제작 비용을 마련했다는 만화광 출신 감독들의 뒷이야기, 그리고 만화 혁명으로 촉발된 수퍼 히어로의 변화와 만화광들이 주도하는 만화의 영화화의 의미를 영화평론가 김봉석이 짚어보았다. 그리고 <스파이더 맨> 감독 샘 레이미의 인터뷰는 무엇이 슈퍼 히어로들을 잠에서 깨웠는지를 좀더 분명하게 알려줄 것이다. 격렬하고 선동적인, 성인을 위한 ‘그래픽 노블’이 낳은 만화광들이 할리우드로 갔을때, 그 21세기 극장의 풍경을 미리 만난다. 여기, 쌍생아처럼 닮은 듯하지만 어쩌면 다른 만화와 영화, 그리고 ‘만화 같은 영화’세상이 펼쳐진다. 편집자 “영웅이 없는 시대는 불행하지만, 영웅을 필요로 하는 시대는 더욱 불행하다.”(베르톨트 브레히트) <스파이더맨>의 뒤를 이어 <헐크> <데어 데블> <판타스틱 포> <배트맨: 이어 원> <엑스맨2> <블랙 팬더> 등의 슈퍼 히어로가 연이어 등장하는 21세기는 불행한 시대일까? 78년 <슈퍼맨>, 88년 <배트맨>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슈퍼 히어로의 스크린 입성은 수월하지 않았다. 만화 주인공과 블록버스터의 만남은 이상하게도 삐걱거렸다. 성공한 <마스크>와 <맨 인 블랙>의 원작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었고, <스폰>과 <블레이드>는 블록버스터가 아니라 약간 마이너 취향으로 만들어졌다. <배트맨>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할리우드는, 극장까지 가서 만화의 주인공을 만날 관객이 다수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90년대 초반까지는. <매트릭스>, 만화적 상상력의 승리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 세기가 바뀐 것만이 아니라, 미국 만화의 위상이 바뀌었다. 21세기 액션영화의 유행을 선도한 작품은 워쇼스키 형제의 <매트릭스>다. <매트릭스>에서 가장 인상적인, 공중에 날아오른 여자가 중력의 법칙을 외면하는 것처럼 붕 떠 있는 장면. 초고속촬영으로 잡아낸 이 장면은, 만화에서는 익숙한 광경이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매트릭스>의 미술디자인을 담당하고 스토리보드를 그린 제프 다로가 자신의 만화에서, 총에 맞은 사람의 모습이나 자동차의 충돌을 묘사하면서 애용하던 장면이다. 워쇼스키 형제는 만화 출판사인 마블 코믹스에서 스토리를 썼고, <어쌔신>의 시나리오를 거쳐 <바운드>로 데뷔했다. <매트릭스>는 만화적 상상력만이 아니라, 만화의 혈맹인 애니메이션의 테크닉까지 체화한 첨단의 액션영화였다. 현재 할리우드는영화의 자식에 이어, 만화의 자식들이 점차 힘을 얻고 있다. 가장 유명한 만화의 자식은 케빈 스미스. 그가 감독한 <섀넌 도허티의 몰랫츠>에 등장하는 만화에 미친 주인공은, <스파이더맨>의 창조자 스탠 리에게 조언을 받아 사랑고백에 성공한다. 만화광인 케빈 스미스는 자신의 만화책 컬렉션을 팔아 <클락커즈>를 만들 비용을 댔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클락커즈>에 이은 연이은 성공으로 다시 컬렉션을 돌려받았다). 돈을 번 케빈 스미스는 자신의 고향 뉴저지에 코믹북 전문상점을 열었고, 어니 프레스라는 만화 출판사도 설립했다. 게다가 자신이 직접 연기하던 영화 속 등장인물 ‘사일런트 밥’의 만화도 출간했다. 95년에는 그토록 염원하던 <슈퍼맨>의 시나리오를 쓰게 되었지만, 팀 버튼이 거절하는 바람에 지금까지도 사이가 나쁘다는 후문이다. 케빈 스미스는 그뒤 마블 코믹스에 발탁되어 <데어 데블>의 스토리를 쓴 것에 이어, DC 코믹스에서는 <그린 애로우>를 쓰고 있다. <언브레이커블>의 M. 나이트 샤말란도 만화 마니아다. <언브레이커블>에는 20세기 초에 나온 만화의 원화나 초판들이 선보일 뿐 아니라, 내용 자체가 슈퍼 히어로 탄생 비화의 결정판이라고 할 정도로 전형적인 구성을 가지고 있다. 만화광들은 <언브레이커블>의 뒷이야기를 원하지만, 샤말란은 시리즈를 만들 생각이 없다. 팀 버튼이 감독하려던 <슈퍼맨>의 속편에 출연하기로 했던 니콜라스 케이지는 <슈퍼맨> <고스트 라이더> 등의 열렬한 팬이다. <블레이드2>를 만든 기예르모 델 토로도 만화광으로 알려져 있고, <헬보이>와 오토모 가쓰히로의 <동몽>을 영화로 만드는 것이 평생의 꿈이라고 한다. 웨슬리 스나입스는 블레이드에 이어 마블의 또 하나의 흑인 캐릭터 블랙 팬더를 연기할 예정인데, <블랙 팬더>의 감독으로 내정된 존 싱글턴도 만화광이다. <헐크>의 리안과 <배트맨: 이어 원>의 대런 애로노프스키도 마찬가지. 팀 버튼의 <배트맨>이 만들어진 뒤, 만화 원작영화는 감독의 독특한 시각적 스타일을 과시할 수 있는 장으로 여겨지고 있다. 음침하고 폭력적인, 그래서 사실적인 영웅들 할리우드에 존재하는 수많은 만화광의 존재는 우연이 아니다. 미국 만화는 80년대 중반, 전세계를 휩쓸었던 68년의 영화혁명에 비견될 수 있는 거대한 혁명을 겪었다. 그리고 꾸준히 만화를 지켜보던 독자의 영혼을 사로잡았다. 그것은 프랭크 밀러의 <배트맨/다크 나이트 리턴즈>와 앨런 무어의 <워치맨>으로 시작했다. 두 작품이 등장하기 전 미국 만화계는 파멸 일보직전이었다. 50년대 괴기극화 전문이던 EC 코믹스의 잔혹묘사 때문에 벌어진 만화 반대운동을 타개하기 위해서, 만화 업계는 자체 검열로 폭력과 섹스를 규제했다. 슈퍼 히어로는 아이들을 위한 건전한 권선징악의 영웅일 뿐이었다. 70년대 이후 아이들이 만화에서 멀어지고, 독자층의 연령이 높아지면서 마니아 독자의 비율이 증가했다. 독자가 줄어들자 출판사는 머천다이징과 특별판 판매에만 열을 올렸다. 그러면서도 작품의 질에서 여전히 구태(舊態)를 벗어나지 못하던 코믹스는, <다크 나이트 리턴즈>와 <워치맨>으로 히어로의 유년기를 마감한다. 슈퍼 히어로는 음침하고, 폭력적이고, 심각하고, 현실적인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다. 프랭크 밀러와 앨런 무어는 일면적인 영웅의 모습에 과격한 묘사와 정치, 철학을 집어넣어 ‘성인의 문학’으로 재생시킨 것이다. 또한 정치적으로는 대단히 급진적으로 당시 레이건 정권의 냉전구조를 비판하는 내용을 다루면서, 정의의 편이던 슈퍼 히어로가 반정부분자가 되어 정부에 탄압받는 내용까지도 등장한다. 스토리만이 아니라 표현 테크닉도 복잡해지고 더욱 실험적이 된다. 모든 면에서 아이들의 이해수준을 뛰어넘는, 명실상부한 성인의 ‘그래픽 노블’이 된 것이다. 80년대 만화계의 프랭크 밀러는, 90년대 영화계의 타란티노 이상으로 평가된다. 프랭크 밀러는 진부한 틀에 갇힌 장르를 어둡고 폭력적인, 리얼한 성인의 세계로 재구성했다. 80년대 초 <스파이더맨> <닥터 스트레인지> 등의 스토리를 쓰던 프랭크 밀러는, <데어 데블>로 평가를 받는다. 프랭크 밀러는 모든 악의 근원인 뉴욕의 슬럼가 헬스 키친을 극렬하게 묘사하며, 헤로인 중독의 고교생을 등장시키는 등 파격적인 상황을 만들어낸다. 정의를 위해 싸우던 단순한 슈퍼 히어로는 복잡한 내면을 가지게 되고, 선악의 구별이 모호해지는 순간까지 이른다. 데어 데블은 맞서 싸우는 악당들보다도 야비하고, 폭력적이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심지어 악당의 부인을 인질로 잡고 협박까지 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덕에 데어 데블은, 최고의 인기였던 울브린을 한때 능가하기도 한다. <데어 데블>의 성공으로 DC 코믹스에서 오리지널 작품의 기회를 얻은 프랭크 밀러는 <로닌>을 낸다. <아이를 동반한 검객> 같은 일본의 시대극과 사이버 펑크를 결합한 작품이다. 86년에 발표한 <배트맨: 다크 나이트 리턴즈>는 슈퍼 히어로의 정의를 다시 내린 문제작이다. 50살을 넘어 이미 은퇴한 배트맨. 희망을 잃어버린 레이건 정권하의 미국은 악화일로다. 사악한 범죄자들은 정신이상을 이유로 풀려나고, 결국 배트맨은 다시 거리의 기사로 돌아온다. 연령의 핸디캡을 메우기 위해 중화기, 파워 수츠, 13살의 소녀인 로빈의 도움을 받아서. 하지만 잔인하게 범죄자들을 사냥하던 배트맨은 ‘법치’국가의 적이 되고, 정부에 고용된 슈퍼맨과 대결한다. 배트맨은 과연 정의의 수호자인가, 아니면 단지 광기에 사로잡힌 것일까. 그것은 <배트맨>의 창조자인 밥 케인이 애초에 묘사했던 배트맨의 모습에 가까운 것으로 평가된다. 그뒤 프랭크 밀러는 니힐리스트적이고 폭력적인 작품을 양산한다. 제프 다로가 그린 <하드보일드>, 연인이 살해당한 남자가 직접 복수의 총을 들고 범죄자를 처형하는 <신 시티> 등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밀러는 만화의 검열에 철저하게 대항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 <스파이더 맨>, 혹은 음울한 만화영웅들의 신세기 영화세상 점령기 (1) ▶ <스파이더 맨>, 혹은 음울한 만화영웅들의 신세기 영화세상 점령기 (2) ▶ 1986년까지, 미국 슈퍼 히어로 만화 소사 ▶ <스파이더맨> 감독 샘 레이미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