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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2003)

정훈이, 영화가 만화를 만났을때…

만화가 정훈이(33)씨가 텔레비전 드라마나 영화 따위를 패러디해 10여년 간 영화 주간지 씨네21에 연재해 온 ‘정훈이 만화’가 책으로 추려져 나왔다. 정훈이의 내 멋대로 시네마(12000원)와 정훈이의 뒹굴뒹굴 안방극장(11000원) 두 권이다. 주인공 남기남. 티브이, 영화 속에 푹 빠져있는데 거동조차 부담돼 보이는 앙바틈한 풍채로 오지랖도 넓다. <옥탑방 고양이>는 물론 <반헬싱>, <트로이> 등 최근의 영화까지 넘나든다. <다모>의 남기남. 상처받았다. 포졸이라는 이유로 ‘다모’(김꽃달)의 사랑을 받기는커녕 면박까지 당한 탓이다. 좌포청 종사관이 부러울 법한데 무관 시험을 보기로 한 건 당연하다. 욕심만 있을 뿐 실력이 없는 건지 오십견이 온 건지 시간은 많이 흘렀고 어느새 활을 당기기조차 어렵다. 정씨의 <인어 아가씨>에도 드라마 주인공 아리영의 <인어 아가씨>만큼 애증이 담겨있다. 붕어아가씨는 붕어탕집 아들로 인해 자신이 사랑하는 붕어 대왕을 잃는다. 붕어탕집 며느리가 되어 복수할 날만을 꼽는데 붕어탕만 30년을 연구했다는 시어머니가 그를 몰라볼 리 없다. 책에는 붕어아가씨의 위기가 유쾌, 유장하게 그려져 있다. 정씨가 이렇게 익숙한 것을 비틀고, 정해져 있는 답을 뒤집는 패러디가 지금까지 400편을 넘는다. “첫 데뷔작은 티브이 보는 일에 소명의식을 느껴 ‘TV 중독증’에 걸린 실업자의 이야기였다. … 결국 내가 티브이 시청에 직업적 소명의식(?)을 느끼며 살게 된 셈”이라고 할 만큼 그의 전공분야는 미디어다. ‘시각’이 압도하는 현대사회에서 매체에 의해 주입된 이미지야말로 개성을 훼손하며 대중을 획일화하는 막강한 수단일 것이다. 정씨의 미디어 패러디가 지닌 의미를 음미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책은 계몽·사회풍자형이라기보다 그저 ‘썰렁한’ 패러디로서 억눌린 시선과 잠재한 상상을 드러내는 데 무게를 더한다. “허리 물론 없”고 “직업도 없”으면서 “은근히 예민”한 남기남과 그의 덩치를 고스란히 빼닮은 채 “츄리닝티, 앙큼한 눈빛”의 “잘난 체”까지 하는 ‘김꽃달’, “남기남 부려먹기”가 장기인 ‘씨네박’이 대표 인물인데, 푸근한 생김새부터 그 취지에 어울린다. 이끼북스 펴냄.

<주먹이 운다> 최민식·류승범 인터뷰

스무살 차이의 두 남자가 사각의 링에서 대결한다. 4월1일 개봉하는 <주먹이 운다>(류승완 감독)에서 인간 샌드백을 자처하는 거리의 복서로, 살인죄를 지은 소년교도소의 수감자로 삶의 구석자리에 밀려난 두 남자, 마흔두살의 강태식과 스물두살의 유상환은 세상을 향해, 가족을 향해 자신을 입증하기 위해 링에서 조우한다. 두 인물이 유일하게 만나는 마지막 장면의 신인왕전에서 연출없는 ‘생짜’의 난타전을 벌인 두 배우 최민식(43)과 류승범(25), 두 배우의 만남은 한국 남자배우계의 중견급 대표선수와 20대 대표선수라고 할 만한 인물들의 연기 대결이라는 점에서도 주목을 끈다. 17일 오전 인터뷰에 10분 늦은 류승범이 방에 들어오자마자 무릎꿇고 두손을 들면서 미안함을 표시하자 최민식은 삼촌같은 너털웃음을 지으면서 장난스럽게 핀잔을 줬다. 류승범 까마득한 선배, 심적인 부담 “너에게 충실해라” 한마디에 좁은 국도가 고속도로처럼… 이날을 기다려왔다 최민식:“영화를 하기 전 사석에서 한번 만난 게 전부인 사이였지만 승범이는 오래 전부터 함께 작업을 해보고 싶은 배우였다. 전작들에서 또래 배우들에게서 찾기 힘든 확신과 유연성을 봤다. 아니나 다를까, 같이 찍으면서 후배라는 생각보다 ‘오호, 그래?’라는 수평적인 긴장감을 주더라. 그런게 연기 뿐 아니라 영화 전반에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다. 역시 ‘이기적인’ 내가 남는 장사를 한 것같다(웃음).” 류승범:“까마득한 선배와 함께 작업하는데 심적 부담이 전혀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 준비하면서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 지 많이 걱정하고 헤맸는데 최선배한테 “근본적으로 너와 나는 다른 인간이고, 다른 배우다. 너는 너의 캐릭터에 솔직하면 그게 전부”라고 했던 말을 들으면서 좁은 국도같던 시야가 고속도로처럼 확장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때부터 잡생각을 털면서 내가 극중에서 만나는 인물들에 몰두할 수 있었다.” 이겨야 O·K나는 마지막 대결 장면, 이렇게 ‘싸웠다’ 류: 감독님이 촬영 전에 여러 번 전화해서 “정말 (연출없이) 그냥 가도 되는 거냐?” 말하며 불안해했다. 최선배가 전부터 “그냥 때리고 맞으면서 가면 되지” 라고 말해서 그렇게 하기로는 했지만 짧지도 않은 씬에서 정교한 액션연출없이 간다는 게 사실 불가능하지 않나.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말이 해결책이 됐다. 찍다가 잠깐 쉬는 중간에 모니터를 보니까 자꾸 내가 밀리더라. 이러면 안되는데 하면서 마지막 라운드는 오로지 이겨야 한다는 심정으로 죽기살기로 덤볐다. 말이 그렇지 옆에 있던 카메라가 뒤로 빠질 때는 죽었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진짜 무섭더라. 최민식 생존의 링에서 싸우다 퇴출 누울 자리 한평 없는 이 시대 아버지들을 위해… 최:“권투는 액션과 리액션이 너무나 선명한 경기다. 경기에서 처음 만날 때까지 두 인물이 끌어온 정서가 있는데 만약 합의된 액션으로 간다면 그 정서가 흐트러지거나 약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6라운드에서 파김치가 된 승범이가 나를 밀자 나도 모르게 “밀지마, 씨발”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모든 게 설정에는 없었던 애드립이었다. 그런 의외성이 인물의 정서를 전달하는 매우 중요했고 호흡이 잘 맞아서 오히려 쉽게 끝낼 수 있었던 장면이었다. 그런데 짜식, 힘이 진짜 세더라구. 부럽더군. 나도 옛날에는 저랬는데 싶으면서(웃음).” 류:사실 마지막 라운드에서 형한테 엄청 미안했다. 그래도 어떡하겠나. 안 그러면 오케이가 안나는데(웃음).” 이런 인물, 이런 영화 최:강태식은 이 시대의 아버지같은 인물이다. 생존이라는 사각의 링에서 머리가 깨지도록 싸워온. 그리고나서 40대에 사회로부터 퇴출돼 발뻗고 누울 자리 한 평 얻을 수 없는. 오죽하면 40대 돌연사가 세계 1등일까. <주먹이 운다>는 이런 아버지들에 보내는 연가같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사정 딱한 아버지들이 영화를 보면서 위로받고, 또 그들의 자식들이 영화를 보면서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해서 한번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다. 류:종종 <인간극장> 같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면 아, 나처럼 힘들게 사는 사람이 있구나, 나보다 더 힘들게 사는 사람도 있네 이런 생각을 짧게나마 하면서 내 처지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 영화라는 매체가 사람의 전부를 움직이거나 변화시킬 수는 없겠지만 <주먹이 운다>를 보면서 자신이 패배했다고 또는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짧은 위안이라도 얻어갔으면 한다.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노동자계급이여, 파랑새는 어디 있는가?

당신들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고 있다. 아니, 실망하고 좌절하고 있다. 당신들의 일각에서 벌어진 부패를 두고 노동귀족을 거론하는 것도 도를 넘어선 지적은 아닐 것이다. 운동이 비즈니스로 전락하고 노동자의 힘이 권력으로 타락할 때 남는 것은 절망과 냉소뿐이라는 것을 나는 절감하고 있다. 절망과 냉소의 깊이는 이 부패를 두고 정부와 언론의 음모, 그리고 침소봉대로 대응하는 모습에서 그 바닥조차 짐작할 수 없는 심정이었다. 또한 이런 타락과 배신의 풍토가 만연해 있지는 않을 것임을 확신할 수 없는 내 자신이 너무도 고통스럽다. 당신들의 지적처럼 “자본이 노동운동을 말살하기 위해 노조간부를 매수함으로써 민주노조를 말살하려던 건 예견된 상황이었고, 정권은 이를 활용하고 있다”고 인정하더라도 결론은 달라질 것이 없다. 자본이 노동운동을 말살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은 적이 언제 어느 때에 있었던가. 노조간부를 매수하려 노력하지 않았던 적이 언제 한번이라도 있었던가. 자본이 민주노조를 말살하려 하지 않았던 적이 언제 있었던가. 정치권력이 그것을 활용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던 때가 또 언제 있었던가. 그 모든 것들은 자본의 천성적이고 근본적인 욕망이 아니던가. 내가 절망스러운 것은 자본의 그런 욕망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빈번하게 승리를 거두어왔다는 사실이고, 너무도 당연하게 당신들도 그렇게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이 못내 괴로운 것이다. 진실을 말한다면 당신들은 자본에 화살을 돌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들 스스로의 타락한 심장을 향해 그 화살을 겨누어야 하는 것이다. 도대체 한때 그토록 충만하게 여겨졌던 노동자계급의 대의는 어디로 사라졌는가. 새로운 세상을 창조할 주역으로서 당신들의 대의는 지금 어느 쓰레기통에 처박혀 있는가. 실질 최저생계비를 저 멀리 웃도는 고임금 노동자들을 무한한 임금인상의 탐욕 속으로 밀어넣는 것이 민주노조운동이라면,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실업자들, 외국인노동자들을 그토록 홀대하는 것이 민주노조운동이라면 노동자계급의 대의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며, 무엇보다 당신들이 자본과 정치권력을 비난할 권리는 또 어디에서 찾을 수 있단 말인가. 당신들도 알고 있는 것처럼 한때 노동조합은 예외없이 어용노조였던 시기가 있었다. 그 시기에 노동조합이란 노무관리조직의 하나에 불과했고 조합장의 자리란 뒷돈을 착복할 수 있는 노예권력을 보장받는 자리일 뿐이었다. 돌이켜본다면 민주노조운동은 그 모든 배신과 부정, 부패의 쓰레기 속에서 장미처럼 피어난 운동이었다. 그리고 그 길고 길었던 어둠의 세월을 헤치고 달려, 오늘 여기 이 자리에까지 올 수 있었다. 바로 그 자리에서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깊고 깊은 어둠이 우리 앞에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 진정으로 고통스러운 것은 운동이 도처에서 불온한 탐욕에 무릎을 꿇고 도덕성을 상실해가고 있는 이 시대에 최후의 보루로 여겨졌던 노동운동마저 그 함정에 빠지고 있는 것을 목도해야 하는 것이고, 노동자만이 새로운 세상을 창조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과 희망이 파열음을 내며 너무도 잔인하게 균열하고 있다는 것이다. 탐욕이라는 자본의 유혹에 단호하게 맞서 싸울 수 없다면 당신들은 결코 우리의 꿈과 희망을 실현할 수 없을 것이다. 탐욕이라는 유혹에 무릎을 꿇는 순간 당신들은 계급의 영혼을 기꺼이 자본에 헌정하게 될 것이고 머지않아 자본주의의 탄생 이후 세계노동운동사가 그토록 집요하게 반복해 나열했던 종장을 향해 내달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비참한 것은 우리 모두가 당신들의 뒤를 쫓아 똑같은 길을 달리게 되리라는 것이다. 우리 모두. 도대체 텔레비전 인치를 늘리고 아파트 평수를 늘리고 좀더 좋은 물건을 소비하고, 좀더 좋은 음식을 먹고, 좀더 비싼 옷을 입는 것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고통받고 억압받는 동료들의 처지를 외면해도 좋을 만큼 행복해지는 것인지 나는 진정으로 회의하고 있지만 당신들이 그것을 원한다면, 그럼으로 자본의 배부른 노예가 되기를 원한다면 나 역시 그 길을 따라갈 것이다. 나는 여전히 당신들이 새로운 세상을 창조할 주역임을 믿고 있으니까.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젠가의 당신들이 그 꿈을 이룰 것이라고 여전히 믿고 있으니까.

TV 시리즈 DVD 특집 (2) - 선과 악의 뒤틀린 미로 <카니발>

모든 건 데이빗 린치에서부터 시작되었다. 1990년, 할리우드 초현실주의 거장인 데이빗 린치가 라는 제목의 시리즈를 내놓았을 때, 그는 미국 텔레비전 세계의 새 영역을 창조했다. 그 세계는 매력적이고 불가해한 사건들로 가득하지만 결코 분명한 해답은 주어지지 않은 곳이었고 시청자들은 결말과 진상보다 미로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체험 자체를 즐겨야만 했다. 이후 수많은 시리즈들이 그 뒤를 이었다. 아마 린치의 가장 성공적인 직계후손은 크리스 카터일 것이다. 그가 90년대에 내놓은 두 편의 시리즈 과 은 음모론과 종말론의 골격으로 쌓아올린 불가해의 미로였다. 라스 폰 트리어가 덴마크의 컴컴한 병원복도들로 창조한 시리즈의 세계도 린치의 영향에서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세계는 결코 운영하기 쉬운 곳이 아니었다. 결말이 분명한 영화와는 달리 이 세계의 시리즈들은 살아남기 위해 상어처럼 헤엄치며 결코 진상에 도달하지 말아야 했다. 린치는 의 결말을 거의 방치했다. 카터는 자신의 세계에 지나치게 매혹된 나머지 의 후반 시즌에 그 불가해함의 매력을 거의 완벽하게 날려버렸다. 그 최종 결과는 근사하게 시작된 수수께끼에 대한 졸렬하고 시시한 해답이었다. 시리즈는 해답을 제시하기도 전에 중단되었다. 과연 폰 트리어가 시리즈를 완성할 생각이나 있는지도 모르겠고. 주연 배우 한 명이 죽어버렸고 시간도 꽤 흘렀으니 3부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린치 역시 신작 시리즈 에서 상당한 애를 먹었다. 결국 그는 시리즈를 포기하고 파일럿 영화를 재편집해 추가장면들을 넣어 극장용 영화로 만들었다. 는 매혹적인 영화였지만 가능할 수도 있었던 시리즈의 잠재적 가능성을 생각해보면 그냥 아쉽기만 하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생각이 든다. 왜 린치는 갑갑한 공중파 방송들만 건드리고 HBO와 같은 케이블은 시도해보지 않았는지? (또는 왜 린치의 기획이 케이블에서는 먹히지 않았는지?) 오늘 이야기할 HBO 시리즈 이 이 정도의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곳이라면 역시 충분히 성장할 가능성이 있었을 텐데? 일단 의 설정을 간단히 정리해보기로 하자. 시리즈의 시대 배경은 대공황시대였던 1934년의 미국이다. 어머니를 잃고 살던 집도 은행에 빼앗긴 주인공 벤 호킨스는 우연히 만난 카니발 패거리들에 섞여 미국 전역을 누비게 된다. 늘 트레일러 안에 박혀 있고 리더인 샘슨을 통해 간접적으로 의사를 전달하는 매니지먼트라는 인물에 의해 통제되는 카니발은 속임수와 사기로 들끓는 곳이지만 그 거짓 경이 속에 진짜 마법이 숨겨져 있는 곳이기도 하다. 잠시 그 카니발의 멤버였던 헨리 스커더라는 인물이 자신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게 된 벤은 그의 뒤를 추적하다 자신이 무언가 거대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대리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시리즈에는 거의 연결되지 않는 또 다른 스토리 라인이 있다. 이 스토리의 주인공은 캘리포니아의 감리교 목사인 저스틴 크로우이다. 처음엔 그는 마을 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마을에 떠돌이 노동자들을 위한 교회를 세우려는 열성적인 목사이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일련의 신비스러운 경험을 겪은 그는 자기에게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거대한 힘이 숨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1시즌에서 벤과 크로우 목사는 단 한 번도 직접 만나지 않지만 시리즈는 이야기가 계속되는 동안 이들이 앞으로 있을 선과 악의 대결에서 만날 것이라는 암시를 계속 뿌린다. 은 일종의 예술적 잡탕찌개와 같다. 이 시리즈가 다루는 초현실적인 세계는 HP 러브크래프트와 스티븐 킹의 영향에 듬뿍 절어있다. 유랑 카니발 세계에 대한 미국적인 매혹은 레이 브래드베리의 단편들에서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30년대 대공황기의 미국을 그리는 시점은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를 연상시킨다. 그리고 텔레비전 시리즈라는 형식을 통해 미스터리의 미로를 쌓아올리는 수법은 부인할 수 없는 데이빗 린치의 방식이다. 유랑 카니발의 난쟁이 리더인 샘슨을 연기하는 마이클 J 앤더슨 역시 린치의 에서 물려받은 것이다. 요약정리 한다면 이 시리즈의 크리에이터인 다니엘 노프는 일단 남들에게서 물려받은 찌꺼기들을 주워 모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기만의 스토리와 스타일을 구축하는 것은 그 다음 일인 것이다. 의 1시즌은 그 때문에 상당히 덜컹거린다. 적어도 전반부는 그렇다. 환상을 구축하는 방식은 거장인 데이빗 린치를 서툴게 모방한 티가 역력하고 적당히 암시를 풀어 기대와 긴장감을 조성하는 방식도 그냥 뻣뻣하다. 이런 뻣뻣함이 극복되는 건 시리즈가 그 자체의 스토리를 얻기 시작하고 그에 기대어 스타일이 굳어지는 ‘바빌론’ 에피소드부터이다. 그러나 그 뒤에도 이 시리즈가 아주 새로운 영역을 구축했다고 하기는 어렵다. 의 예술적 성취는 아직까지 비교적 평이하게 얻을 수 있는 기성품 예술적 도구들을 재능 있는 인력들을 이용해 효율적으로 구축했다는 데 있는 듯하다. 을 특징짓는 것은 그 기독교적인 세계관이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처럼 노골적인 기독교 텔레비전 시리즈라는 건 아니다. 시리즈는 종종 지옥과 종말에 대한 기독교도들의 공포심을 자극하기도 하고 툭하면 성경을 인용하며 수상쩍을 정도로 그와 유사한 이야기들을 늘어놓긴 하지만 그만큼이나 자주 근본주의 기독교의 편협함과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 경우에도 기독교는 늘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 직접 언급되지 않는다고 해도 메시아에 대한 믿음, 동정녀 탄생, 죽은 자의 부활, 세례요한, 바빌론의 창녀들과 같은 성경의 요소들은 조금씩 변형되어 의 우주에 끊임없이 찾아온다. 어떻게 보면 은 오컬트 신봉자의 눈을 통해 본 기독교에 대한 이야기이다. 설정은 기독교 세계관에서 출발하지만 정작 기술되는 이야기는 마니교나 조로아스터교와 같은 이교도들의 세계관에 더 기울어 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선과 악의 대결이라는 구도 자체가 그렇다. 심지어 이 시리즈에서는 과연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지에 대한 확신도 분명히 가질 수 없다. 우리가 벤 호킨스에 동조하는 이유는 그가 주인공이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는 없다. 정의와 신에 대한 열정에 불타는 신심 깊은 목사 저스틴 크로우가 악마여야 한다는 논리는 또 뭔가? 다니엘 노프의 첫 번째 성취는 데이빗 린치식 미로를 선악 구도의 이야기에 도입했다는 데 있다. 카니발의 미로는 도덕적인 미로이다. 어느 누구도 분명히 자신이 옳은 편에 서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없다. 심지어 그들이 섬기는 대상 (여기서는 수수께끼의 매니지먼트가 그 역할을 한다)이 신인지 악마인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신의 확신을 넘어서는 힘을 가지고 있고 그걸 활용해야 하는 것이다. 의 가장 큰 공포는 자신의 존재와 행동에 대한 공포이다. 기독교 세계관과는 점점 멀어진다. 신심 깊은 신자들은 누군가가 자신의 의지를 거스르는 운명 때문에 지옥에 떨어지는 일은 없다고 믿을테니. 은 반대로 운명이 그렇다면 당사자가 아무리 저항한다고 해도 결국 자신의 역할을 맡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여기서 이야기는 은근히 미국 수퍼 히어로 코믹북과 비슷해진다. 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접어들면 시리즈는 성경보다는 이나 에 더 가까워진다. 벤과 크로우는 모두 인간을 넘어서는 엄청난 능력을 얻게 된 초인들이다. 대부분의 엄청난 힘들이 그런 것처럼 이들의 힘에는 늘 부작용과 반작용이 있다. 특히 벤의 경우 무언가를 얻으려면 그만한 다른 것을 희생해야 한다. 소녀의 다리를 고치려면 주변의 곡물들이 죽고 친구의 팔을 고치면 강의 물고기들이 죽어 떠오른다. 벤은 어떻게 자신에게 주어진 힘을 사용할 것인가? 이는 모든 미국 수퍼 히어로 코믹북의 중요한 주제이다. 설정이 주인공의 자유의지를 제한하긴 하지만 이 시리즈 역시 그 주제를 그대로 물려받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와 수퍼 히어로 코믹북. 이 두 가지 주제 덕택에 이라는 시리즈는 굉장히 미국적인 작품이 된다. 그냥 미국적인 작품인 것이 아니라 9/11 사태 이후의 현대 미국 사회에 대한 썩 그럴싸한 비판이 되어주는 것이다. 은 지옥과 종말의 공포에 휘말린 사람들의 광신적 믿음과 그에 대한 회의에 대한 이야기이며, 지나치게 큰 권력을 가진 존재가 자신의 행동에 어떻게 책임을 지느냐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두 가지의 주제는 모두 강한 현재성을 띤다. 카니발과 개신교 교회라는 비교적 상반되어 보이는 두 세계는 이런 회의와 고민에 적절한 힘을 실어준다. 한마디로 두 세계 사이에는 어떤 질적 수준의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 노프는 시치미를 뚝 떼고 종종 이 두 세계를 섞어놓는다. 우리의 선량한 목사 양반은 신으로부터 내려온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협박과 사기, 마법을 일삼는다. 가짜 기적을 일삼는 부흥회는 보다 솔직한 사기꾼들인 카니발 사람들에 의해 모방되는데, 놀랍게도 그곳은 진짜 기적이 행해질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선의는 드물고 악은 어디에나 존재하며 기괴함과 열광은 언제나 찬탄의 대상이 된다. 시리즈가 회를 거듭할수록 카니발의 종교적 색채는 점점 짙어지고 결국 진정한 종교적 희열과 고통과 열광의 무대가 된다. 그러는 동안 제도권 교회가 꼼꼼하게 쌓아올린 선과 악, 기독교와 이교의 벽은 붕괴된다. 그 붕괴과정 중 만들어지는 불쾌한 미로는 이라는 시리즈가 제공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다. 은 지금 아직 미완성인 작품이다. 국내에서는 1시즌이 방영되었고 미국에서는 2시즌이 거의 끝나가고 있다. 이 시리즈가 선과 악의 전쟁을 다루는 작품이라고 친다면, 1시즌은 선전포고까지 다루었다고 보면 된다. 당연한 일이지만 이야기는 막 분위기를 잡는 수준에서 끝난다. 이 과연 자신이 원하는 수준에 도달할 수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니엘 노프가 처음 이 시리즈를 기획했을 때 6시즌 정도의 길이를 생각했다고 하는데, 지금 사정을 보면 그 정도 길이까지 이어지지는 못할 것 같다. 과연 3시즌이 이어질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만약 정말로 2시즌으로 끝난다면 은 바람만 열심히 잡아놓고 끝난 시리즈로 남을지도 모른다. 시리즈가 원래 목표로 삼았던 6시즌까지 도달한다면? 그 결과 역시 미지수이다. 앞에서 말했듯, 이런 시리즈의 힘과 매력은 불가해의 세계를 탐험하는 중간의 여정에 있기 때문이다. 노프가 과연 이 모호한 세계에 걸맞는 결말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데이빗 린치, 크리스 카터, 라스 폰 트리어와 같은 대단한 인물들도 못해냈던 일이다. 노프가 항해을 무사히 마친다면 그건 선배들을 넘어서는 굉장한 성취가 될 것이다. 출연진 소개 벤 호킨즈를 연기한 닉 스탈은 멜 깁슨의 감독/주연작 < The Man Without a Face >에서 깁슨의 상대역 소년을 연기하며 주목을 받았다. 이후로 잠시 주춤하던 그의 경력은 과 와 같은 영화들에 출연하면서 조금씩 뜨기 시작했다. 국내에 가장 잘 알려진 영화는 에드워드 펄롱의 뒤를 이어 미래의 구세주 존 코너를 연기한 . 자기에게 주어진 운명의 역할에 끌려다니는 미래의 구세주라는 의 역할은 같은 해에 출연한 의 벤 호킨즈 역과 여러 면에서 유사하다. 장르 영화팬들이라면 저스틴 크로우 목사를 연기한 클랜시 브라운은 익숙한 인물이다. 에서 빅터 크루거를, 에서 프랑켄슈타인의 괴물로 나온 사람이 바로 그다. 그의 굵직한 목소리는 니켈로디온의 히트 애니메이션 시리즈 에서 언제나 들을 수 있다. 주인공 스폰지밥의 탐욕스러운 고용주인 집게 사장의 목소리 연기를 하는 사람이 바로 브라운이다. 눈먼 독심술사 러즈 교수를 연기한 패트릭 보쇼는 5개 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옥스퍼드 학자 출신이다. 에릭 로메르의 두 번째 모럴 이야기인 으로 영화계에 데뷔한 그는 빔 벤더스, 디안느 퀴리, 안제이 즈왑스키와 같은 유럽 감독들의 영화에 출연했다. 90년대 이후 그는 주로 미국에서 활동했는데, 장르 팬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역할은 시리즈의 악역 시드니이다. 식물인간 어머니 아폴로니아와 텔레파시로 연결되어 있는 카드 점쟁이인 소피를 연기한 클리아 듀발은 최근 가장 주목받는 인디 영화계의 젊은 연기자들 중 한 명이다. 국내에서는 로버트 로드리게스의 , 존 카펜터의 , 제임스 맨골드의 와 같은 장르 영화들이나 역시 맨골드의 와 같은 할리우드 영화들의 조연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 Thirteen Conversations About One Thing >이나 , < The Laramie Project >와 같은 인디 영화작품들의 출연작들도 만만치 않다. 최근에 듀발은 사라 미셸 겔러가 주연한 의 할리우드 리메이크 판에 출연했다. 카니발의 리더 샘슨을 연기한 마이클 J. 앤더슨은 전설적인 컬트 시리즈 시리즈를 통해 데이빗 린치의 비틀린 미의식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존재가 되었다. 현재 그는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왜소증 배우이기도 하다. 이후 그는 , 크리스틴 크룩 주연의 , 소프 오페라 시리즈인 에 출연했다. 뱀 놀리는 댄서인 루디를 연기한 아드리안느 바르보는 으로 브로드웨이에 데뷔했다. 72년에 시트콤 < Maude >로 텔레비전에 데뷔한 바르보는 79년에 결혼한 두 번째 남편인 존 카펜터의 영화인 와 조지 로메로의 와 같은 장르 호러물에 주로 출연했다. 크로우 목사의 누나 아이리스를 연기한 에이미 매디건은 배우 에드 해리스의 아내이다. 영화로는 남편과 공연한 , 그리고 , 와 같은 영화들이 있다.. 존 새비지는 , , 와 같은 힘있는 7,80년대의 미국 영화로 영화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장르 팬들에게 가장 기억될만한 작품은 그가 도널드 라이데커로 출연했던 제임스 카메론의 텔레비전 시리즈 이다.

TV 시리즈 DVD 특집 (5) - 우리가 놓친 TV 시리즈 DVD 4선

해마다 숱한 DVD 타이틀이 시장에 선을 보이지만, 모든 타이틀이 고르게 주목을 받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놓친 채로 지나간 타이틀 중에는 충분히 관심을 끌었어야 할 것들도 의외로 많은 법. 여기서는 두 가지 기준에 의거, 재발견의 가치가 있는 타이틀을 네 편 뽑아보았다. 첫 번째 기준은 팬들 사이에서 지명도가 있고, 작품 자체의 완성도도 높음에도 불구하고 DVD가 나왔을 때 기대 이하의 반응을 보였던 DVD, 또 하나의 기준은 다른 주력 타이틀에 밀려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했던 DVD다. 시즌 1 (파라마운트) 1990년 4월부터 2년간 ABC TV를 통해 방영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는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에 와서는 문자 그대로 TV 극의 ‘전설’이 되었다. 이른 바 ‘쿼키(Quirky) 쇼' - 훗날 로 명맥이 이어지는 - 의 원조라 할만한 이 시리즈는 이 시대 최고의 아방가르드 예술가 데이빗 린치의 상상력과 베테랑 TV 작가 마크 프로스트의 역량의 격렬한 화학반응이 빚은 특별한 산물이다. 범죄 미스터리극과 소프 오페라, 초자연적 스릴러, 부조리 코미디, 틴에이지 멜로드라마의 요소를 모두 갖추었으면서도 그 어느 장르에도 속하지 않는 이 기괴한 TV 극은 아쉽게도 두 시즌 만에 막을 내리고 말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이 시리즈를 더욱 신비로운 것으로 만들었다. 어떤 TV극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만의 컬트성과 신비성은 DVD의 소장가치를 측정 불능치로 높여 주었다. 특히 시리즈의 모든 에피소드가 재음미 할 때마다 새로이 해석되는 ‘열린 텍스트’ 라는 점과 몇 번을 보아도 지루하지 않을 정도의 중독성을 지녔다는 점에서 는 영구 소장용 기록 매체인 DVD의 소스로는 그야말로 ‘딱’이다. 그러나 이런 ‘작품적 측면’ 외에도 의 DVD가 ‘특별 대접’을 받아야 할 이유가 또 있다. 지난 2001년 출시된(한국은 2002년 출시) 시즌 1 DVD는 HBO의 ‘블록버스터급’ 미니시리즈 와 더불어 TV 드라마 DVD 사상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을 정도로 타이틀 자체의 완성도가 뛰어나기 때문이다. 시즌 1 DVD는 북미 최대의 인디펜던트 DVD 제작사인 아티잔(ARTISAN)이 거액을 투자해 기획/제작한 야심작으로 제작 기간만 해도 보통 TV 극의 몇 배에 달했다. 트랜스퍼의 결과도 탁월해 지금까지도 화질 면에서 대적할만한 공중파 드라마가 없을 정도다. (물론 HBO의 ‘괴물급’ 드라마들은 예외로 하고!) 게다가 TV 극으로는 이례적으로 깔끔하게 다듬어진 5.1채널 DTS 트랙을 수록한 바 있는데, 가 청각적 요소가 특히 강조되는 ‘소리’의 영화라는 점에서 이 부분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쉽게도 파라마운트에서 발매된 국내판(소스는 아티잔 판과 동일하다)에서는 DTS 트랙이 빠졌지만, 대신 여기에는 아티잔의 발매판이 판권 문제로 수록하지 못했던 ‘파일롯’ 에피소드가 수록되었다는 강점이 있다. (파일롯 에피소드의 화질과 음질이 다른 에피소드보다 떨어지는 것은 소스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빼어난 AV 퀄리티 외에도 이 타이틀에는 음성해설과 스크립트 노트 등의 아기자기한 서플먼트들이 포함되어 있어 이것을 감상하는 재미도 만만치 않다. 물론 데이빗 린치의 음성해설이 빠진 것은 못내 아쉽지만 말이다. (데이빗 린치는 스필버그와 더불어 DVD의 음성해설에 절대 참여하지 않는 감독으로 ‘악명’이 자자하니 이건 앞으로도 기대하지 마시길) 올해 9월에는 아티잔으로부터 판권을 넘겨받은 파라마운트가 드디어 시즌 2를 출시하니 기대하시라. (김정대) 시즌 1,2 (워너 브라더스) 어느 순간부터인가 HBO의 드라마들은 줄줄이 ‘명품’소리를 듣게 되었다. 빼어난 작품성과 오락성은 기본이요, 여기에 심의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는 케이블 TV용 드라마 고유의 장점을 120% 살린 ‘잔인하고 화끈한’ 장면들까지 갖추었으니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HBO의 간판 드라마인 는 이런 특성을 지닌 케이블 TV용 드라마의 롤 모델이라 할 수 있다. 현대 드라미디('Dramedy', 드라마와 코미디의 합성어)극의 결정판이라 할 만한 는 매 시즌 케이블 TV의 최고 시청률 기록을 경신하며 계속 고공비행을 하고 있다. 작년에 방송된 시즌 4의 첫 에피소드의 경우는 무려 1천 3백만 명의 시청자들을 TV 앞으로 운집시켰는데, 이것은 케이블 TV 드라마 사상 초유의 기록이었다. 이 드라마가 이토록 폭발적인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소재적 측면에서 이 드라마는 미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갱단과 마피아’에 대한 환상을 직접적으로 자극한다. 그러나 이 드라마가 성별과 나이를 초월해 사랑을 받는 진짜 이유는 바로 이 소재를 다루는 특별한 방식 때문이다. 토니 소프라노가 이끄는 마피아 패밀리는 겉으로는 식의 근사한 마피아 집단인 척 하지만 실은 그것을 닮으려고 끊임없이 발버둥치는 ‘약간 모자란’ 보통 사람들일 뿐이다. 이들의 고민거리는 평범한 시민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다. - 자식 문제, 돈 문제, 부부 관계, 부모와의 갈등 등 - 결국 이 드라마는 소프 오페라의 전통적 소재인 ‘가족애’를 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장르 양식을 통해 뒤틀어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묘미는 청춘 시트콤처럼 가볍지도, 심각한 휴먼드라마처럼 무겁지도 않은 극의 독특한 분위기이다. 코미디로 보기엔 너무 진지하고 드라마로 보기에는 살벌하게(?) 웃기다. 이는 만이 전달할 수 있는 특별한 감동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기록적인 시청률과는 별개로 이 드라마는 많은 평론가들로부터 ‘근래 나온 드라마 중 최고작’이라는 찬사를 받아 왔는데, 여기에는 최고 수준의 각본과 제임스 갠돌피니를 비롯한 출연진이 선보인 놀라운 연기력 및 에피소드 각 편의 빼어난 완성도(이 드라마는 에피소드 한 편 한 편이 완결된 영화의 형식을 띠고 있다)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HBO의 드라마들은 호화 스펙의 DVD로 발매되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도 예외는 아니다. TV 드라마답지 않게 1.85:1 와이드스크린 아나몰픽과 5.1채널(돌비디지털) 포맷을 완벽하게 지원하며 비하인드 씬과 영화 소개 피쳐렛 등 서플먼트도 좋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국내 출시판 시즌 1의 경우에는 5.1채널 사운드트랙이 빠졌으며 서플먼트 중 가장 중요한 데이빗 체이스 - 시리즈의 실질적 창조자 - 와의 인터뷰 서플먼트(77분 분량)도 누락된 채 출시된 바 있다. 대히트 드라마에 어울리지 않는 판매실적보다 더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김정대) (비트윈) 텔레비전만 틀면 불륜 천지다. 오죽하면 아침 드라마에서조차 불륜을 심각하게 다루고 있을까? 이처럼 외도를 하는 경우 한 쪽이 큰 상처를 받기 마련이다. 이는 혼자 분을 삭이며 상대방을 용서하거나, 혹은 이를 갈며 처절한 복수를 하는 것으로 갈린다. MBC 베스트셀러 극장을 통해 방영이 된 은 후자에 속한다. 이 드라마는 남편의 외도로 철저하게 기만을 당한 아내의 복수의 과정을 그리지만, 기존 드라마와는 차별되는 몇 가지 특징을 지녔다. 드라마로서는 복수의 강도가 상당히 센편이며, 등장 인물들의 복잡한 심리적 묘사가 뛰어나다. 또한 이야기의 짜임새와 복수를 행하는 과정이 치밀해 기존 드라마의 한계를 넘어선다. 은 디지털 방송의 방향 모색에 중점을 둔 HD 촬영과, 돌비 디지털 5.1 채널로 제작을 하면서 많은 주목을 모은 드라마이다. DVD 타이틀이 그 만큼의 고화질을 보여주진 않지만, 일반적인 TV 방송을 통해 만나는 드라마보다는 좋은 화질임은 틀림없다. 스페셜 피처로는 37분에 이르는 메이킹 필름, NG 장면, 프로덕션 노트, 예고편을 제공한다. 매우 평범한 구성이지만 7일간의 드라마 제작 과정을 담은 메이킹 필름이 볼만하다. 불륜 소재의 드라마를 좋아한다면 절대 놓치지 말 것! (김종철) (인피니티) 여기서의 는 찰턴 헤스턴이 나와 홍해를 가르는 종교영화가 아니라, 폴란드의 거장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이 만든 10부작 TV 시리즈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몇 년 전 EBS를 통해 전편이 방영된 바 있다. 기본적으로는 십계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지만, 종교적 색채 보다는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존재론적 의미를 묻는 철학적 성격이 강조되었다. 깊이 있는 내용과 연출을 통해 드라마의 새로운 세계를 맛볼 수 있는 작품이다. 10부 중 5, 6부가 각각 , 이라는 장편으로 나와 있기도 하다. 박스 세트로 발매된 DVD는 TV 시리즈 전편과 함께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이 직접 출연한 다큐멘터리

‘한겨레21’ 창간11돌 인터뷰 특강, EBS 방송

스타급 지식활동가가 미래를 말한다 28일밤 8시50분∼4월1일 스타급 강사들의 특별한 특강을 텔레비전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왔다. 교육방송 <기획특강>에서 방영되지만, 수험생들을 위한 딱딱한 강의가 아니다. 시사주간지 <한겨레21>이 창간 11돌을 기념해 마련한 ‘인터뷰 특강-21세기를 바꾸는 상상력’으로, 이름만 들어도 확실한 면모를 알 수 있는 다섯명의 강사가 미래지향적인 영감을 전한다. 강사 홀로 강의를 이끄는 형식을 벗고, 사회자와 함께 토크쇼 형식으로 대화하면서 관객과 교감하는 새로운 형식의 ‘인터뷰 특강’이라 의미와 재미를 함께 누릴 수 있다. 강사는 한비야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 소설가 이윤기씨,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 박노자 오슬로국립대 교수,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이다. ‘바람의 딸’로 시작해, 세계 곳곳의 분쟁 지역을 누비며 ‘희망’을 전하는 한비야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의 강의 ‘고통을 나누는 상상력-긴급구호의 빛과 그림자’는 28일 밤 8시50분 방영된다. 한 팀장은 이 강의에서 7년여 세계일주를 마치고 지난 2001년 10월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 일을 시작한 까닭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 사회에 신화 바람을 불러일으킨 소설가 이윤기씨는 ‘신화의 상상력-눈을 떠라, 숨어 있는 1인치를 찾아라’를 제목으로 강의하고, 29일 밤 8시50분 방송된다. 고교시절 서양 고전 음악에 푹 빠져있던 때와 1970년 중반 잡지사 기자 시절 등을 소개하고, 왜 신화에 관심을 두게 됐는지를 소개한다. 30일 밤 8시50분엔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의 특강 ‘자아실현의 상상력-교육과 인간, 그리고 대한민국’이 방송된다. 홍 위원은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것처럼 과연 진정으로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인지 따지는 물음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반공’과 ‘안보’에 배반당해온 민주공화국의 허실을 밝혀내고, 젊은이들에게 이 사회를 지배하는 물신에 저항할 수 있는 ‘인간성의 항체’ 기르기를 당부한다. 네번째 특강 ‘새로운 동아시아를 만드는 상상력-민중의 동아시아를 위하여’는 박노자 오슬로국립대 교수가 맡았고, 31일 밤 8시50분 방송된다. 박 교수는 ‘동아시아의 민중적 아이덴티티’가 만들어지지 못한 까닭을 몇 가지 요인으로 나누어 알기 쉽게 설명하고, 어려움을 극복하고 동아시아 민중이 하나가 되어 세계적 자본주의의 체제를 뒤엎을 힘이 있음을 낙관적으로 설파한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의 다섯번째 특강은 교육방송 위성방송을 통해 4월1일 새벽 5시에 방송된다. 제목은 ‘과거를 푸는 상상력-금기를 깨고 꿈을 꾸어라’이다. 한 교수는 냉전과 분단의 시대를 넘고, 빼앗긴 꿈을 되찾아 미래를 열 힘은 상상력뿐이라고 힘줘 말한다. 한편, 이 강의는 4월 이후 한겨레문화센터 홈페이지(www.hanter21.co.kr)로도 볼 수 있다. 홈페이지를 통해서는 여섯번째 강의인 오귀환 <한겨레21> 전 편집장의 ‘문명에서 배우는 상상력-과거에서 훔쳐온 발명특허 톱10’을 시청할 수 있다. 지도, 문자, 종교, 도시 또는 집단장기생존 시스템 등을 살펴보고, 문화산업의 미래와 십자가의 역사, 고대 중국의 4대 발명에 대한 단상 등을 통해 과거 문명사를 바탕으로 현재와 미래를 탐구해 본다. 이번 ‘인터뷰 특강-21세기를 바꾸는 상상력’은 지난해 <한겨레21> 창간 10돌 기념 ‘인터뷰 특강-21세기를 바꾸는 교양’에 이은 것으로, 지난 14일부터 서울 연세대 위당관에서 열렸으며 모두 800여명이 수강해 성황을 이뤘다.

<역도산 감독판> 박범수 프로듀서 인터뷰

박범수 프로듀서는 송해성 감독의 전작이자 한국 영화 타이틀의 모범으로 손꼽히는 DVD를 제작한 장본인이다. 으로 송해성 감독과 다시 만난 그에게서 DVD 제작 과정의 이모저모를 직접 들어보았다. DVD만의 특징을 간단히 말해 달라. 가장 큰 특징이라면 감독판으로 출시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송해성 감독의 제의에 의한 것으로, 사실 은 극장에서 공개된 것 외에도 여러 가지의 버전이 있다. 예를 들면 칸에서 개봉된 버전이 있고, 올 6월 일본 공개를 위해 별도로 편집중인 버전도 따로 있다. DVD의 감독판은 극장과는 별도로 국내판 DVD만을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버전이다. 감독판은 극장판과 어떤 점이 다르며, 몇 분 정도가 추가되는가? 기본적으로는 칸 공개 버전을 텔레시네(※)하여 여러 가지 내용을 추가한 것으로, 내용상으로는 좀 더 복잡해진 부분이 있다. 시간상으로는 2분가량 늘어났다. 추가된 장면의 양은 그렇게 많지 않은데, 칸 버전을 기본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극장판에 없는 장면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DVD에 극장판이나 칸 버전을 수록하지 않는 이유는, 극장판 자체가 감독이 원했던 수준에 다소 미치지 못한 상태로 마무리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만회하고자 하는 차원에서다. 레슬링 장면이라든가, 관객의 감정에 호소하고 싶었던 장면을 더욱 다듬은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감독판으로 나왔던 를 작업했던 경험 때문에 원래의 의도를 보여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감독들의 안타까움을 이해한다. 작업하면서 특별히 중점을 두었던 부분이 있었다면? 영화의 흥행 결과가 나쁘면 당연히 DVD 제작상의 어려움 또한 비례한다. 도 예외는 아니었다. 따라서 시장이 축소되고 흥행이 잘 안된 여파 때문에 원하는 만큼의 작업을 할 수 없었던 아쉬움이 있다. 부록은 어떤 식으로 구성되며, 기획 과정은 어땠는가? 부록은 통상적인 DVD와 크게 차별화되지 않았다. 다만 작품의 특성답게 제작 과정과 에 참여했던 스탭이 맡았던 디지털 색보정(DI) 과정이 들어갔다. 의 경우에는 부록에 우선적으로 힘을 싣기보다는, 감독에게 있어 아쉬움이 남았던 극장판을 보완하는 매체로서의 중요성에 더 관심을 두었다. 감독의 코멘터리에는 ‘이 영화가 왜 망했을까’에 대한 궁금증과 아쉬움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 했고, 영화를 통해 자신이 의도했던 대로의 진정성이 충분히 표현되었다고 평가했다. 주연 설경구의 연기에도 만족했기 때문에 감독 자신은 작품에 대해서 후회가 없다는 입장이다. 음성해설에는 송해성 감독, 설경구, 김선아 프로듀서, 이재진 음악감독이 참여했다. 실존인물을 다룬 영화다 보니 부록을 구성하는 데 있어 자료 확보도 중요했을 것 같다. 자료 수집은 용이한 편이었는가? 저작권 관계로 실제 역도산에 관련된 자료는 사용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애초에 영화 프로듀서가 역도산의 유족과 협의한 저작권의 범위가 사진 정도만 사용하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그 이상의 자료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일본 개봉 후 한국에서도 새로운 DVD가 출시될 가능성은 있는가? 한국에서 새로 나올 가능성은 10% 미만으로 보면 된다(웃음). 판매량이나 수익이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DVD를 의 처음이자 마지막 버전으로 보면 된다. DVD 관련 커뮤니티 등에서 화질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반응이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최근의 DVD 텔레시네는 HD로 작업을 해 왔다. 그러나 의 경우에는 그 보다 낮은 해상도의 SD 소스로 작업하였다. SD는 HD에 비해 아무래도 이론상으로는 떨어진다고 볼 수 있는데, 이렇게 작업을 하게 된 이유는 감독판의 추가 장면 때문이었다. 추가 장면을 넣기 위해 그 장면들이 수록된 테입에서 또 하나의 원본을 만드는 과정을 거쳐야하기 때문이다. 일종의 2차 작업이 되는 셈인데, 여기에 대해서는 송해성 감독의 감독판에 대한 강한 의지도 작용했다. 감독으로서는 극장 공개판보다도 감독판을 관객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가 확고했기 때문에, 이러한 한계를 감수하면서까지 추가 장면을 삽입하여 작품을 마무리 하고 싶어 했다. 색감이 전체적으로 붉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예전에 DVD가 과도한 붉은 색감 때문에 리콜된 적이 있지만, 은 그와는 다르다. 은 디지털 색보정(DI) 작업을 거쳤는데, 고독한 인물을 다룬 이야기와는 달리 화면의 색감은 따뜻하고 온화하게 간다는 것이 원래 의도였다. 또한 디지털 색보정을 하게 되면, 예를 들어 어색한 피부색을 실제에 가깝게 바꾼다면, 피부색만 조절되는 것이 아니라 필름의 전체 색감이나 질감까지 함께 바뀌게 된다. 의 경우 화면이 전체적으로 온화하고 앰버(호박색) 톤이 돈다는 것이 원래의 의도였다. 예를 들면 극장판에서는 피의 색깔이 거무스름하여 피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데, 이 부분에서 DI 작업을 거쳐, 피의 색감을 제대로 살린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여러 부분의 색감을 조절한 결과 전체적으로 붉은 톤의 화면이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작업 과정에서의 텔레시네나 인코딩 실수가 아니다. 처음부터 감독이 생각하고 있었던 색감을 DVD를 통해 되살리는 과정이었을 뿐이다. DVD의 독특한 색감은 디지털 색보정을 통해 만들어낸 결과다. 감독과 제작사 역시 DVD의 색감 쪽이 원래 의도한 쪽에 가까워 만족스럽다는 입장이다. 작품의 특성에 맞춘 색감이라고 보아주었으면 좋겠다. 외국의 경우에는 필름을 고해상도로 스캔한 뒤 작업하며, 사전에 이러한 작업을 고려하기 때문에 감독판 등 별도의 버전을 만든다 해도 얼마든지 그 데이터를 끌어다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그러한 여건이 되지 못하며, 흥행 결과에 따라 DVD 작업 여건도 오르락내리락하기 때문에 별도의 버전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모험에 가깝다. 감독의 빡빡한 스케줄도 한몫했다. 의 일본 개봉판 편집을 위해 한국과 일본을 계속 오가야 했기 때문에 일정 조정에 어려운 점이 많았다. 송해성 감독은 을 계기로 DVD라는 매체에 굉장히 애착을 갖고 있다. 따라서 화질에서 조금 손해를 보는 상황을 감수하고서라도 관객들에게 정말로 보여주고 싶은 감독판을 만들기 위해 과감한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더욱이 개봉 결과에 많은 아쉬움이 남자 감독판에 대한 의지를 더더욱 굽히지 않았다. DVD는 그러한 의도를 수렴한 결과다. 다소 화질이 떨어진다 해도 비디오와는 비교할 수 없고, 설사 마니아분들에게 다소 실망스러울 지는 몰라도 일반 대중들에게 감독이 극장에서 미처 전달하지 못했던 내용을 보여준다는 데 비중을 두어 작업했다. 프로듀서로서 타이틀에 만족한 부분과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 개인적으로 크게 자랑할 만한 것은 없지만(웃음), 프로듀서로서 어떤 감독의 영화를 DVD로 만들고 나면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만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송해성 감독도 에서 같이 작업을 하고 으로 다시 만났다. 앞으로 이 일본 개봉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어 이 DVD가 감독에게 좋은 소장품으로 남겨지기를 기대한다. 아쉬움이라면 지금의 시장 자체가 한계를 수용할 수 있는 범위가 좁기 때문에, 앞으로는 극장에서 부족했던 점을 DVD로 메울 수 있는 시장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부가판권이나 2차 저작물의 시장이 활성화 되어 소비자들이 외면하지 않는 DVD가 되었으면 한다. 그렇게 된다면 화질이나 음질에 대한 논란도 훨씬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텔레시네(telecine) : 영화를 비디오, DVD로 출시하거나 TV를 통해 방영하기 위해 거치는 단계로, 24프레임의 필름이 1초를 구성하는 영화를 30프레임에 1초를 구성하는 TV용 영상으로 전환하는 작업이다.

[팝콘&콜라] 번쩍거리는 조연배우 그런데 왜 남자뿐일까

얼마 전 <달콤한 인생>의 시사회를 보고 나오면서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요새 한국 액션영화의 진짜 스타는 오달수야.” 오달수는 같은 날 개봉하는 <주먹이 운다>와 <달콤한 인생>에서 비중있는 조역을 맡은 배우다. 특히 <달콤한 인생>에서 그가 등장하는 길지 않은 장면은 매력이 넘친다. <올드보이>에 출연했을 때만 해도 그는 ‘장도리 들고 설치는 그 아저씨’였지만 이제 오달수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지 않을 것 같다. 탄탄한 연기력의 조역배우들의 영화를 받쳐주는 지지대로 기능한 지는 꽤 됐다. 이문식, 성지루, 유해진 등 한때 이들이 없으면 영화가 완성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적지 않은 배우들이 이 영화에서 번쩍, 저 영화에서 번쩍하며 ‘조연 전문배우’라는 말까지 탄생했다. 그런데 요사이 영화들을 보면 조연배우 전성시대도 조금씩 진화해 가는 걸 느낄 수 있다. 조역=코믹 연기라는 등식이 가능할 정도로 영화의 ‘당의정’ 역할에 머물던 조역들의 역할 스펙트럼이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앞에서 말한 오달수다. 물론 <달콤한 인생>에서 그의 러시아어 연기는 웃음을 참기 힘들 정도지만 <올드보이>나 <주먹이 운다>, <마파도> 같은 영화에서 그는 오히려 싸늘함과 냉혹함의 카리스마를 보여줬다. 99년 <여고괴담>부터 단역 출연을 하면서 <살인의 추억>으로 얼굴을 알린 김뢰하는 주로 비애감이나 연민을 자아내는 캐릭터들을 보여줘 왔다. <잠복근무>에서 시종 진지하면서도 썰렁한 농담으로 주인공 김선아의 코믹연기에 대응한 오광록 역시 <마지막 늑대>나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 <올드보이> 등에서 어딘가 하나 빠져있는 것같으면서도 허허실실한 온기가 느껴지는 인물들을 연기했다. 이 밖에도 많은 영화의 조역들이 이제는 주연 못지 않게 단순한 캐릭터를 벗어나면서 영화를 윤택하게 만들고 있다. 이문식표 코미디 영화 <마파도>의 흥행성공은 다른 맥락에서 조연배우 스펙트럼의 확장을 보여주는 것같아 반갑다. 이문식은 대표적인 ‘조연 전문배우’로 꼽히는 인물이었다. ‘조연 전문배우’라는 말에는 물론 연기력 좋은 배우라는 호감도 있지만 좋은 연기력에도 불구하고 조연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배우라는 느낌이 묻어 나온다. <마파도>는 이런 선입견을 보기 좋게 깨면서 ‘조연 전문배우’ 이문식을 성공적인 주연배우로 올려놓았다. 아쉬운 건 이런 현상이 아직까지는 남자배우들의 역할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여전히 스크린 속 여성 조역은 후덕한 어머니이거나 인간성 좋은 선배이거나 대책없는 독신여성이며 배우나 배역의 수도 절대적으로 적다. 몇년 전 한 술자리에서 만났던 30대 중반의 이름이 알려진 여성배우는 “영화를 정말 하고 싶은데 배역이 없다”고 한탄했다. 울며 겨자먹기로 텔레비전으로 활동무대를 옮겼다던 그를 충무로에서는 여전히 보기 힘들다.

KBS-단성사 동시개봉 1호 <신부와 편견>

국내에서 처음으로 극장 개봉과 텔레비전 방영을 동시에 시도하는 ‘KBS 프리미어’의 첫 영화 <신부와 편견>이 2일 서울 단성사에서 개봉함과 아울러 이날 KBS 2TV ‘토요명화’를 통해 공중파를 탄다. <신부와 편견>은 <슈팅 라이크 베컴>을 만든 인도 출신의 영국 감독 거린다 차다가 인도를 배경으로 찍은 인도 영화풍의 ‘발리우드 뮤지컬’이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각색해 부잣집의 두 딸이 부유한 인도인, 그리고 미국인 남자와 키워가는 사랑과 실랑이를 그린다. 심각한 대화를 하다가도 음악이 나오면 수십명의 인물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즐겁게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인도식 뮤지컬의 즐거움을 흠뻑 맛볼 수 있는 작품으로 할리우드와 한국 상업영화를 집중적으로 틀어온 텔레비전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영화다. 한 영화당 일주일씩, 6주 동안 6편을 개봉하는 이 기획은 이처럼 할리우드의 손맛과는 다른 재미를 구비한 예술영화들로 짜여져 있다. 3년 전부터 이 기획을 구상해온 편성기획팀의 이관형 프로듀서는 “흥행작을 중심으로 영화가 편성되면서 시청자들의 영화선택 폭이 줄어드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시도하게 됐다”며 “2000년 <쉬리> 방영 때 40%에 가까웠던 영화 시청률이 최근 <실미도>는 15%에 미치지 못하는 등 텔레비전 영화의 시청률 침체를 벗어나는 데 하나의 돌파구가 될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이 기획은 KBS와 수입·배급사인 미디어 소소, 단성사의 협력으로 성사됐다. 방송사로서는 재탕, 삼탕이라는 인식을 벗어나 좀 더 다양한 영화를 방영하고 배급사와 극장으로서는 텔레비전 방영을 홍보 수단으로 삼아 좀 더 많은 시선을 끌 수 있다는 판단을 깔고 있다. 이 프로듀서가 필름 마켓 등을 다니면서 골라온 작품 목록 가운데 6편을 수입사와 협의해 선정했고, KBS는 수입가의 50% 이상을 부담하고 TV 판권을 가져왔다. 지상파 영화 프로그램에서 미개봉작을 방영한 적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제작된 지 1, 2년이 안 된 따끈따끈한 해외 화제작을 트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4월 16일 개봉, 방영하는 <퍼펙트 크라임>은 <야수의 날>, <커먼 웰스>와 최근 개봉한 <800 블릿>을 연출한 스페인의 젊은 감독 알렉스 드 라 이글레시아의 최신작으로 스페인에서 흥행 1위에 오른 영화다. 23일 개봉, 방영하는 덴마크 영화 <브라더스>는 올해 선댄스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KBS는 이번 시리즈가 시청자들의 관심을 모으면 이런 방영 형식을 브랜드화해서 정기적으로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물론 이 계획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두자리수의 시청률은 나와야 할 것”이라는 게 이 프로듀서의 고민과 기대이다. 단성사는 이번에 상영되는 여섯 편의 영화 가운데 관객들의 반응이 가장 좋은 한 작품을 앙코르 상영할 계획이며 배급사는 지방 순회 상영도 준비하고 있다. 4월9일에는 <머시니스트>(브래드 앤더슨 감독), 30일에는 <알츠하이머 케이스>(에릭 반 루이 감독), 5월7일에는 <하와이, 오슬로>(에릭 포페 감독)가 차례로 개봉, 방영된다. 텔레비전에서는 더빙으로, 극장에서는 자막으로 상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