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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중국에서도 해뜰까

중국 박스오피스 시장에서 할리우드 영화들의 수익배분수익 향상될 듯중국영화 시장에도 해빙기가 오는 것인가. 현재 세계 최하 수준으로 알려져 있는 중국 박스오피스 시장에서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은 조만간 수익배분수익의 향상을 가져올 듯하다. 중영집단공사는 지난주 베이징에서 미국 스튜디오의 배급담당자들과 만나는 가운데 수익분배율을 개선할 의지가 있음을 밝혔다. 이에 메이저 스튜디오들의 수뇌들은 5월에 열리는 칸영화제 동안 중국 내 영화수익 분배율에 대한 의견일치를 볼 것을 기대하고 있다. 미국 스튜디오들은 지난 1994년 중국 시장 내 수익배분률이 고정된 이후 총수익 중 12∼13% 정도만을 가져갈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 17일 동안 상영되었던 한 영화의 경우 총 320만달러를 벌어들였고 뉴라인쪽은 이 영화로 38만달러를 벌었을 뿐이었다. 예외적으로 4350만달러의 흥행수익을 올린 <타이타닉>의 경우에는 스튜디오가 17%를 가져갔다.“수익배분률과 지불조건이 변경된 지 5년이 넘게 흘렀다. 이에 대한 재협상이 이루어지는 건 당연하다”고 미국쪽 담당자는 <데일리 버라이어티>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는 미국쪽이 몇 퍼센트의 수익을 요구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은 꺼렸으나 “상당히 많은” 퍼센트가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또한 이번 만남에서는 중국영화 시장의 발전을 위해서 더 많은 영화들의 수입을 허락해야 한다, 는 대안적 배급방안에 대한 논의도 있었다.중국은 WTO 가입 이후 일년에 10편이었던 분장제 영화쿼터를 20편으로 늘리긴 했지만 여전히 편수가 모자란다는 것이 전반적인 의견. 한 미국쪽 담당자는 “현재 많은 수의 극장이 중국에서 세워지고 있다. 하지만 그중 몇몇은 좀더 원활한 필름수급을 하지 않는 이상 망할 수밖에 없다”라고 덧붙였다. 미국 담당자들은 지난주 미팅에서 중영집단공사로부터 얻은 긍정적인 대답에 “이것은 양자를 위해 좋은 일이며 바람직한 일”이라며 상당히 만족하고 있는 상태라고.백은하

영화진흥위원, 누가 되어야 하나

<씨네21> 제2기 영화진흥위원 설문조사, 개혁성, 전문성 갖춘 영화인 추천인수 높아다시, 문제는 ‘사람’이다. 2기 영화진흥위원회 출범을 앞두고 문화관광부(문화부)의 위원 인선작업이 영화계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이번만큼은 ‘개혁성’과 ‘전문성’을 두루 갖춘 이들이 위원으로 위촉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영화계 안팎으로 높다. 3년 전, 민간자율의 행정기구를 표방하면서 출범했지만, 위원 위촉을 둘러싼 갈등으로 인해 혼선을 거듭했던 것을 곱씹는다면 당연한 주문인 셈이다.그럼에도 정작 문화부는 우려를 불식할 만한 태도를 취하는 것 같진 않다. 지난 4월17일 여러 유관단체에 영진위 위원 후보자 추천에 관한 공문을 보내는 등 실질적인 인선작업에 착수했지만, 1기 위원회 구성 때와 달라진 것은 없다. 특히 실질적인 활동이 없는 유명무실한 단체들에까지 후보자 추천을 요청한 것을 보면, ‘안배’ 말고는 별다른 위원 위촉 기준이 없어 보인다. 그러다보니 고분고분한 이들만을 골라내기 위한 ‘요식행위’ 아니냐는 걱정도 나온다. 이에, <씨네21>은 영화관계자 75인에게 “2기 영진위 위원으로 적절한 사람이 누구인가”를 물었다. 단순히 인물을 거명하는 설문방식은 자칫 명망 또는 이해관계로 인한 인기투표의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판단, 1기 위원회에 대한 평가, 2기 위원회의 주요 과제, 영진위의 자율성 확보 정도, 영진위 위촉시 필요한 원칙과 기준 등을 설문 항목에 넣었고, 이에 걸맞은 후보자를 추천해달라고 요청했다.또한 일종의 풀(pool)을 제공한다는 취지에서 정책, 제작, 배급, 상영, 투자, 기술개발, 감독/배우/스탭, 언론/학계/여성, 애니메이션으로 세분화해 우선 추천 순위대로 3인을 거명하는 방식을 택했다. 또한 별도의 항목으로 현 영진위 위원 중 연임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위원을, 위원들의 호선을 거쳐야 하지만 차기 영진위 위원장으로 적절한 인물이 누구인지를 물었다. 영진위 위원 추천 집계 결과 최용배(60점), 김홍준(57점), 변재란(40점), 김동원(39점), 박순홍(34점)씨 등이 너른 지지를 받았다. 김홍준씨는 감독, 부천영화제 프로그래머로서의 전문성을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1기 위원회에서 활동한 경험까지 고루 갖추고 있다는 점이 인정받은 것으로 보인다. 최용배, 김동원, 박순홍씨 등은 설문이 부문별로 나누어 지명하는 식이라 높은 득표를 얻은 면도 없지 않지만, 배급, 독립영화, 애니메이션 등을 대표하는 이들로서 각종 단체에서 열심히 활동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결과가 과하지 않다.국내 영화제의 테크니컬 슈퍼바이저를 도맡고 있는 문원립(32점)씨나 산학협동프로그램을 운영해 주목을 받았던 이충직(34점)씨 등이 많은 이들로부터 추천받은 것도 주목할 만하다. 2기 위원회는 “인력양성, 기술개발 등 한국영화 경쟁력의 기초 요소를 확충할 수 있는 방안까지 마련해야 한다”는 한 추천인의 지적에 꼭 들어맞는 인사라는 평가. 안정숙(30점), 정지영(27점), 문성근(27점)씨 등 출범 당시 위원회를 이끌었던 개혁 성향의 인사들이 대거 상위에 랭크된 것은 2기 영진위의 지향에 대한 바람으로 읽힌다. 20위권 내에 현 영진위 위원 4명이 거론된 것은, 풍랑에 직면할 때마다 영진위의 위상을 세우는 데 분투했으며, 임기 동안 비교적 잘 이끌어왔다는 평가를 가능케 한다. 이 밖에 오기민(26점), 윤정석(24점), 최재원(23점), 이효인(23점), 원용진(18점)씨 등 영진위 위원으로 위촉될 시 새 바람을 일으킬 만한 인물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여성쿼터를 적용할 경우, 주진숙(13점), 김소영(9점), 장미희(7점), 방은진(7점)씨 등도 주목할 만하다. 추천에 앞서 위원이 되어야 할 사람, 되어서는 안 될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한 영화인은 “영화진흥공사와 영진위의 내용적 차이를 아는 사람, 한국영화계에서 메이저로 분류되는 배급사 이름을 5개 이상 즉석에서 댈 수 있는 사람, 국내에서 열리되 국제영화제가 아닌 소규모 영화제에서 본 영화가 1년에 5편 이상인 사람”이 위원으로서 적격이고, 또 한 영화인은 “공공적 원칙과 공익적 명분보다 개인의 이익을 앞세우는 사람,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할 뿐 실질적인 대안을 내놓지 못하는 사람, 창작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데 기여해온 사람, 뚜렷한 주관이 없어서 외압에 타협할 가능성이 농후한 사람”은 절대로 위원으로 뽑혀서는 안 된다는 재밌는 설문을 보내왔다. 이번 여론조사는 4월 28일부터 배포해서 5둴 2일 오후 6시까지 회신된 총 41명의 응답내용을 근거로 집계했다. 설문대상자 중 일부는 영진위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어 회신하기 곤란하다며 기권 의사를 밝혔고, 몇몇 단체 대표들은 통보 없이 응답하지 않았다. 일부 인사의 경우, 응답자에 따라 서로 다른 분야에 추천한 탓에 부문별 집계는 하지 않았으며, 설문에 밝혔듯이 순위별 가중치를 두어 통합 집계했다. 설문대상자 명단은 아래와 같고, 개별 응답내용은 따로 밝히지 않는다.설문조사 정리 이영진 anti@hani.co.kr▶ 설문집계 결과

뇌쇄적 여전사의 꿈, <화성의 유령들> 나타샤 헨스트리지

1995년, <스피시즈>에서 종족 번식을 위해 남자를 구하러 다니는 뇌쇄적인 에일리언 여인 씰이 스크린에 등장한 그해. 화성이나 금성에서 갓 착륙한 듯 엑조틱한 외모, 틈만 나면 옷을 벗어던져 드러낸 완벽하게 굴곡진 몸, 두려움이 깃든 푸른 눈동자의 나타샤 헨스트리지는 단숨에 남성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7년. 화성을 무대로 삼은 SF영화 존 카펜터 감독의 <화성의 유령들>에서 나타샤 헨스트리지는 귀신들린 사람들과 싸우는 터프하고 강하고, 책임감 있는 화성 경찰대의 베테랑 경찰 멜라니로 모습을 드러냈다. 나타샤 헨스트리지는 카메론 디아즈, 르네 루소처럼 모델계에서 건너온 배우다. 캐나다 앨버타주 포트 맥머레이에서 자랐고, 14살에 모델이 되기 위해 단신으로 파리로 간 소녀는 곧 여러 여성지와 패션잡지의 표지를 장식했고, 뉴욕으로 건너가 오일 오브 올레이, 레이디 스텟슨, 올드 스파이스 등 미용제품 광고에도 출연하는 등 최고의 모델로 군림하게 되었다. 175cm가 넘는 키, ‘그리스 조각 같은’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몸매. 모델로서 그녀는 원하기만 하면 못할 것이 없었다. 소녀의 꿈은 이루어졌다! 하지만 좀더 흥미진진하고, 새롭고 창조적인 도전이 없을까. 그녀가 발견한 신세계는, 연기였다. 갓 스무살에 1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발탁된 <스피시즈>로 곧장 스타덤에 올랐지만 막상 유명세를 치르는 것은 혼란스러웠다. “<스피시즈>를 찍은 뒤 어항 속의 물고기가 된 기분이었다. 유명해지는 것이 겁났고, 내 커리어에 도움이 될 거라는 에이전트의 결정을 두고 사사건건 싸웠다.” 그러나 영화출연 제의는 몰려들었다. 메이저영화보다는 TV나 마이너영화쪽에서. 장 클로드 반담과 공연한 <맥시멈 리스크>(1996), SF영화 <아드레날린>(1996) 등에 출연했지만 실패였다. <스피시즈> 직후 했던 배우 다미안 차파와의 급작스러운 결혼생활의 실패도 겹쳤다. 1998년 에로틱한 장면을 잔뜩 추가한 <스피시즈2>에 씰의 복제인간 이브로 등장했지만 원해서가 아니라 계약을 지킨 것뿐이었다. 한해 5편의 영화에 마구잡이로 출연하던 그녀에게 어느 날, 멋진 영화 한편이 날아들었다. 브루스 윌리스와 매튜 페리가 등장하는 코미디 <나인 야드>(2000)를 만난 것. 전설적인 킬러 지미 튤립과 거액의 돈을 둘러싸고 죽고 죽이는 음모가 펼쳐지는 코미디 <나인 야드>에서 나타샤 헨스트리지는 지미 튤립의 아내 신시아로 출연, 코믹한 연기에 도전했다. “강하고, 터프하고, 팀의 리더이고, 쿨한 캐릭터라 맘에 든다”는 <화성의 유령들>의 멜라니 캐릭터는 원래 나타샤 헨스트리지 몫이 아니었다. 내정되었던 커트니 러브가 발목을 삐는 바람에 대신 투입된 것은 어쩌면 행운. 두꺼운 조끼와 중화기로 무장하고 밤새 기차를 타는 액션장면을 되풀이해 찍었지만, 여성전사 멜라니에게 ‘반한’ 그녀에게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화성의 유령들> 이후에도 나타샤 헨스트리지는 몇편의 TV나 비디오용영화, 코믹어드벤처영화 <케빈 오브 더 노스>, 드라마 <유디트 엑스너 스토리>를 필모그래피에 추가했고, <택시>의 감독 제라르 피레의 신작 <라이더스>에도 출연했다. 프로듀서들이 누드신을 요구하는 스크립트를 들이미는 데는 다 이유가 있음을, 자신이 슈퍼모델과 올림픽 선수의 신체를 합친 듯한 몸을 가졌음을 그녀는 안다. 누드신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옷을 벗든 벗지 않든, 주류든 싸구려든, SF든 액션이든, 나타샤 헨스트리지에게 영화는 여전히 흥미진진하고, 빠져나오고 싶지 않은 세계인 것이다.

시네마서비스와 로커스홀딩스 합병하는 플레너스 대표이사 박병무

오는 5월 말이면 플레너스 엔터테인먼트 주식회사라는 대형 엔터테인먼트 업체가 새로 출범한다. 국내 최대 배급사인 시네마서비스, 최대 규모 연예 제작사 싸이더스, 게임 업체 손노리, 넷마블 등을 자회사 형태로 거느리던 지주회사 로커스홀딩스가 아예 시네마서비스를 합병해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공룡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2000년 정보통신장비를 만드는 코아텍을 인수하면서 본격 엔터테인먼트 업체로 변신을 꾀했던 로커스홀딩스의 확대개편은 충무로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올 가능성이 크다. 금융자본과 기존 엔터테인먼트계가 유기적으로 결합해 서로의 장점을 극대화한다는 이 업체의 이상이 관철된다면, 영화계를 포함한 한국 연예계도 비로소 산업화라는 문턱을 넘는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실력자들을 묶어 큰 그림을 그리고, 간간이 ‘은밀한 힘’만을 행사해왔던 박병무(41) 로커스홀딩스 대표의 위상과 역할 또한 커질 것이다. 곧 플레너스의 대표이사직을 맡게 될 박 대표는 본격 출범을 앞두고 화이트 보드에 숫자를 가득히 적어놓은 채,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산업화로 나아갈 수 있는 공식을 도출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었다. 지난해 로커스홀딩스가 시네마서비스를 인수했을 때는 지주회사라는 형태가 이상적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이번에 합병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아직도 지주회사가 맞는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여건으로서는 어렵다. 재무자료 같은 것을 공시할 때도 미국에선 자회사의 매출이나 순익까지 포함한 연결재무제표를 발표하는데, 우리나라는 아직도 연결재무제표라는 게 활성화되지 않았다. 지난해 내내 로커스홀딩스 하면 코아텍 매출액만 계산됐다. 지난해의 전체 연결 매출액이 1500억원가량 되는데, 코아텍 매출은 160억∼170억원뿐이니까 뭔가 왜곡돼 보인다. 자회사의 순익과 손실을 합쳐서 과세 및 납세가 이뤄지는 연결납세도 안 되고, 대출 때도 연결재무자료를 토대로 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주주나 투자자들이 지주회사로부터 탈피하자는 의견을 냈고 스스로도 문제라고 생각됐다. 결국 수익이 안정화된 곳부터 자회사를 통합하는 방향으로 결론을 내렸다. 기존 운영방침의 변화가 있나. 앞으로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생각은 재무, 기획 등만 통합하고 영업에서는 지주회사 때와 유사한 형태, 즉 각각의 사업부서들이 독립적으로 영업활동하고 운영하도록 할 생각이다. 또 운영을 각 회사를 실질적으로 이끄는 ‘키 플레이어’에게 전적으로 맡기는 동시에 시스템화할 수 있도록 계속 보완해 나갈 계획이다. 시네마서비스 같은 경우에도 기존 이름과 조직을 유지한다. 키 플레이어들에게 경영을 맡긴다면, 예를 들어 영화사업에 관여하는 일 같은 건 전혀 없을 거란 얘긴가. ‘각자 잘하는 분야에서 일하자’는 얘기다. 내가 영화를 제작한다거나 관여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영화를 감독하는 사람이 투자자와 자본을 유치하고 자금을 조달하며 기업설명활동(IR)하는 것 또한 어렵다. 우리의 기능이라면 재능있는 분들이 딴 걱정없이 맡은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주위에서 서비스를 잘해주는 역할이다. 또 각 사업 부문간에 협력할 일이 있을 때 조정하는 일도 한다. 플레너스의 구체적인 상을 밝혀달라. 본사와 자회사를 포함, 전체적으로 수평적인 3개 사업군이 있다. 영상사업군, 음악-매니지먼트사업군, 게임사업군이 그것이다. 각 사업군 내에서는 수직계열화를 해야 한다. 영상사업군의 경우 제작 기획에서부터 스튜디오(아트서비스), 배급, 홈비디오까지 하고 있고 극장까지 넓힐 생각이다. 수평적인 포트폴리오 구성과 그 내의 수직계열화가 핵심이다. 극장 사업에 진출하는 것인가. 심각하게 검토중이다. 현재 말할 수 있는 것은 극장계에 진출한다는 사실 정도뿐이다. 생각보다 빨리 진행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방법은 외자유치일 수도 있고, 우리 자체로 자본을 끌어들일 수도 있다. 또 어느 정도의 규모인지, 어떤 형태인지 등도 아직 알 수 없다. 그리고 이것은 기업의 비밀이다. 극장에 뛰어드는 이유는 뭔가. 영상산업의 수직계열화를 완성한다는 의미, 매출과 이익 창출에 도움을 준다는 측면, 배급에 도움이 된다는 점 등 다양하다. 멀티플렉스가 포화상태라는 이야기도 나돈다. 선진국과 대비해 보거나 국내 영화시장의 성장률을 고려했을 때, 몇년 동안은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분명 니치마켓이 있다고 본다. 크게 금융부담을 지지 않는 선에서 뛰어든다는 원칙이다. 대규모 자본이 들어가지 않을 수도 있다. 지분구조는 어떻게 변화하나. 큰 변화는 없다. 로커스와 김형순 대표가 32%, 워버그핀커스가 17%, 강우석 감독이 13% 정도의 지분을 갖게 된다. 요즘 외국인들의 매수가 많아 외국인 지분율이 32%까지 올라갔다. 내 지분율은 채 1%도 안 된다. 합병되면 규모는 어떻게 되나. 우리 주식이 현재 1250만주 정도 되는데, 150만주를 신규 발행할 생각이다. 그러면 자본금이 65억원 정도 된다. 그리고 시네마서비스가 합병되면서, 자회사를 제외한 플레너스만의 매출은 700억∼800억원 정도가 될 것이다. 조직 통합은 시네마서비스 합병으로 끝인가. 수익구조가 안정화되는 자회사들을 순차적으로 통합해갈 것이다. 기업으로서 지속적인 매출이나 수익을 가져갈 수 있는 구조를 갖추면 된다. 넷마블, 청어람, 싸이더스, 예전미디어 등이 머지않은 시일 내에 통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합병 결정에는 주가 역시 영향을 미쳤을 텐데. 실적이 좋아야 주가가 좋고, 그래야 투자자나 주주에게 이익을 많이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뿐이다. 현재 외국인 투자자들이 많이 매수하고 있다는 것에서 보듯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다고 본다. 이름은 무슨 뜻인가. ‘플레너스’(Plenus)는 라틴어로 ‘많은’, ‘충만한’, ‘만족스러운’ 등의 뜻을 갖고 있다. 굳이 말을 하자면, 여러 가지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소비자에게 만족스럽게 제공한다는 의미라 할 수 있다. 애니메이션에도 관심이 있다고 들었다. 지난해 애니메이션 업체들을 무수히 보면서 느낀 건데, 우리 애니메이션 시장을 보면 현재로선 내수 시장이 형성되지 않는 등 성공을 위한 여건이 조성되지 않은 것 같다. 활로는 국제화라고 본다. 지역색을 없앨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은 우리나라가 국제적 경쟁력을 갖는 분야다. 미국이나 유럽 시장으로 나아가려면 그쪽과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길을 모색하고 있다. 영화-음반-게임 사이의 시너지 효과는 어느 정도라고 보는가. 지난해 성적으로 말하면 아주 크진 않다. 게임의 경우, 손노리를 인수한 게 지난해 10월이고, 넷마블은 11월이었다. 음반도 시너지를 내려면 사업군 자체가 커져야 하는데 유통사인 예전미디어를 인수한 게 오래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화산고> 예고편에 가수 유미가 등장했다든가, 1200만명의 회원을 가진 넷마블을 통해 영화, 음반 온라인 마케팅을 했다. 각 사업군의 규모가 커진다면 자연스럽게 시너지 효과도 커질 것이다. 싸이더스를 2개로 분할하기로 한 배경은 무엇인가. 영화와 스포츠, 쇼 MC 매니지먼트는 싸이더스 코퍼레이션으로, 음반과 매니지먼트는 싸이더스 HQ로 분할한다. 기존 싸이더스에는 참 좋은 분들이 많이 모여 있다. 이젠 각자 자기 회사처럼 책임경영을 하면 훨씬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할하면 실적도 좋을 것 같기도 했다. 싸이더스 코퍼레이션의 경우, 지분율을 40%대로 낮추는데 그 이유는 뭔가. 초기에는 싸이더스 작품이 시네마서비스 배급망을 타면 서로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싸이더스도 자유롭게 투자받는 데 지장이 있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차 사장이 좀더 책임경영을 하려면 지분율을 더 가져가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합의를 봤다. 그렇다고 계열 분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 정도 규모의 기업을 이끌려면 자본은 부족하지 않나. 시네마서비스를 인수하기 전에도 외국의 투자 제의가 있었다. 인수 뒤에도 제안이 왔다. 그런데 돈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 제안에 응하지 않았다. 다음 수순은 미디어 사업일 텐데. 사실 아직 다음 단계는 초기 그림을 그리는 상황이다. 기존 미디어를 인수할지, 신규로 진출할지 알 수 없다. 분명한 사실은 방송 사업 자체가 장치산업에서 네트워크 사업으로 변화했다는 것이다. 영국 의 경우에도 2000년부터 방송을 시설 사업에서 네트워크 사업으로 규정했다. 상당 부분을 분사해 네트워크로 해결한다는 얘기다. 타임워너가 궁극의 모델인가. 우리는 꿈이 작다. (웃음) 문화산업이란 게 독특하다. 글로벌하게 할리우드 문화가 평정하고 있지만, 지역적인 문화가 또 있다. 한류처럼 아시아권의 정서에 맞는 게 따로 있다. 일단 장기적 목표는 아시아에서 톱이 되는 것이다. 아시아 지역의 메이저는 가능하다. M&A 전문 변호사로 활동했는데,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분위기가 많이 다른 곳 아닌가. 적응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여기는 경제논리나 논리적인 면보다는 인간관계를 중시한다. 인간관계 때문에 비즈니스가 이뤄지는 경우도 많다. 이전에 있던 곳과 비교하면 색다르지만,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보편화된 현상인 것 같기도 하다. 미국 기업과도 협상을 여러 번 해봤는데 거기도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인간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더라. 창의력을 살리기 위한 것 같았다. 그러면 이젠 스스로 영화인이라고 생각하나. 나 역시 내가 잘하는 분야를 해야 한다. 나는 경영쪽에 책임을 져야 한다. 나에게 직접 시나리오가 오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아예 읽지 않고 담당자에게 전달한다. 내가 읽고 의견을 얘기하면 혹시라도 부담으로 받아들일까봐 우려해서다. 어쨌건 강 감독 같은 분을 만나고 하면서 영화에 무한한 애정을 갖고 있는 모습을 보며, 점점 이쪽에 심정적으로 기운다. 만약 순수 비즈니스계와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싸운다면, 엔터테인먼트쪽의 편을 들 것 같다. 글 문석 ssoony@hani.co.kr·사진 오계옥 klara@hani.co.kr

영화 감독 데뷔하는 마이클 잭슨

마이클 잭슨이 영화감독이 된다. 불쌍한 한 고아의 이야기를 담은 <밤에 그들은 동물들을 가둔다>(They Cage The Animals At Night)라는 제목의 영화가 그의 데뷔작. 제이닝스 마이클 버치라는 작가가 쓴 동명의 자전소설을 영화화하는 작품으로, 고아가 되어 입양가정들을 전전하며 어린 시절을 보낸 한 남자의 실화다. 마이클 잭슨이 이 책을 영화화하기로 한 데는 ‘동병상련’의 정이 다분히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가 이 책을 내게 가져다 보였어요. 고아 이야기인데, 잭슨은 스스로 고아처럼 자랐다는 느낌을 항상 갖고 있었죠. 그는 어린 시절을 잃어버린 사람이라고 할 수 있잖아요.” 공동연출을 할 <랜덤 팩터> <애증의 시나리오>의 캐나다 감독 브라이언 마이클 스톨러는 말한다. <밤에 그들은 동물들을 가둔다>의 주인공은 고아가 되고 입양이 되지만, 파양이 되어 다시 다른 가정으로 옮겨지는 등 상처투성이의 유년기를 보내는 소년이다. 5살 때 ‘잭슨 5’에서 리드보컬을 맡으며 세상에 나와, 유년기와 사춘기를 거쳐 성인이 되기까지 거친 쇼비즈니스의 틈바구니에서 살아온 잭슨의 삶은, 고요하고 포근한 사생활이 결여되었다는 점에서 고아의 처지에 비견될 수도 있겠다. 잭슨은 스스로 연출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고, 공동연출자로 브라이언 마이클 스톨러를 정한 것도 그의 의견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잭슨은 영화사 네버랜드를 차려 거액의 영화투자를 하고 최근에는 <맨 인 블랙2>에 카메오 출연을 하기도 하는 등 요즘 영화계에 자주 출몰하고 있다. 이번 잭슨의 데뷔작은 멜 깁슨의 영화사 아이콘 프로덕션이 제작할 예정. 몇년 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작품상 오스카 트로피를 거액에 사들이기도 한 잭슨에게, 공동감독 스톨러는 “이번에는 사지 말고 받아보자”고 격려하고 있다.

내게 거짓말을 해줘

밀란 쿤데라의 <생은 다른 곳에>라는 소설에는 다소 복잡한 사생활을 즐기는, 몰락한 부르주아 여성이 나온다. 무능한 남편에 대해 환멸의 기억만 간직하고 있는 이 여성은 전선에 나간 남편이 게슈타포에 체포됐으며 집단수용소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남편의 영광스런 순교는 그녀에게 자부심을 안겨주고 그녀는 불행했던 결혼생활과는 비교가 안 되는 품위있는 미망인 생활을 시작한다. 하지만 나중에 남편이 유대인 여자와 밀회를 즐기다가 엉겁결에 변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이 여인은 자부심이 산산조각나고 심히 불행해진다. 이제부터는, 그 사실을 아는 엄마와 모르는 아들, 모르는 주위 사람들 사이에 영원한 긴장관계가 만들어진다.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본다. 가령, 여기, 한 행복한 여자가 있다. 이 여자는 만족스런 부부생활을 하고 있고 물질적으로도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남편은 소문난 바람둥이고 그 사실을 모르는 건 오직 이 여자뿐이다. 그렇다고 할 때, 내가 그의 친구라면, 어떻게 할까. 그냥 한 세상 행복하게 살다가 가도록 내버려두어야 하나. 여자가 남편 얘기를 할 때 “그래, 그는 좋은 사람 같구나” 하고 거짓말하면서? 아니면 “정신 차려, 이 친구야”라고 해야 하나. 여자가 거짓과 위선의 인생을 마감하고 진실을 재료로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도록 도와야 하나. 나는 침대에 벌러덩 누워서 그런 생각을 해본다. 진실과 행복을 양자택일하라면 나는 어느 쪽을 택할까. 물론, 군인이 총 들고 청와대를 접수했는데 ‘반만년의 성군 나셨네’라는 소문을 믿고 ‘이번 성군이 붕어하실 때까지는 태평성대겠구나’ 하고 행복해 한다면 그건 역사적이고 형사적인 범죄행위다. 그런 것 말고, 이런 민사적이고 멜로적인 영역에 국한시켜서 이야기해보자. 아마도 이 문제를 가지고 ‘골든 벨을 울려라’고 하면 진실이라는 정답보다는 행복이라는 정답쪽에 훨씬 줄이 길어질 것이다. 그게 대중의 선택이라면, 그걸 잘 알고 있는 게 상업영화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는 이를테면 휴머니즘영화인데, 여기서 휴머니즘적인 감동의 절정을 이루는 대목이 마지막의 노벨상 시상식 장면이다. 평생 정신분열로 고생해온 천재 수학자 내시는 노벨상 시상식의 연단에서 객석의 아내에게 눈을 맞추면서 “이건 당신 거요”라고 말한다. 이 장면에서 감동의 눈물을 한 방울도 흘리지 않는다면 냉혈한이라는 비난을 받아도 싸다. 평생 제대로 된 직장 한번 가져보지 못하고 정신병원을 제집 안방처럼 드나들고 갓난아이를 목욕물에 빠뜨릴 뻔한 그런 남편 곁에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남아 있었다면 그런 여인은 노벨 경제학상뿐 아니라 노벨 평화상도 받을 자격이 있다. 나라도 그렇게는 못할 것 같아. 참 대단한 여자구나.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난 뒤 존 내시 전기를 읽은 친구로부터 썰렁한 얘길 들었다. 수상자 선정을 둘러싼 잡음 때문에 시상식이 몇 시간 지연됐고 내시도 감동의 연설을 할 형편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내와도 어찌어찌 같이 살긴 하지만 일찍이 법적으로 이혼상태였다는 것이다. <허리케인 카터>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흑인 권투선수 루빈 카터는 살인혐의로 종신형을 살고 있는데 이 영화에도 비슷하게 감동적인 신이 있었다. 카터는 면회 온 아내에게 슬픈 눈빛으로 “이혼해줘”라고 말했고 아내는 돌아서며 키스의 손짓을 보낸다. 정말 멋있는 커플이었다. 남자는 자기 때문에 한창 좋은 나이에 ‘수절’하고 있는 아내를 해방시키는 성명을 낭독한 것이고 아내는 ‘당신의 뜻이라면’ 하면서 눈물을 머금고 떠나가는 것이다. 아마 이 신에서 나도 코끝이 찡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실존인물 카터의 아내는 일찌감치 떠나버렸고 따라서 감옥에서의 애달픈 이별은 없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뷰티풀 마인드> 감독이 절대 무리한 건 아니다. 그는 다큐멘터리 감독이 아니라 극영화 감독이기 때문이다. 또한 코언 같은 뉴욕파가 아니라 할리우드 감독이기 때문이다. 그는 감동의 러브스토리로 영예의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도 챙기고 국내외 시장에서 달러도 긁어모을 수 있었다. 가령, 아까 그 행복한 여자가 지금도 옆에 있다 하자. 나는 그런 일급비밀을 죽을 때까지 지켜줄 만큼 입이 무거운 사람은 절대 아니다. 정의감과 의협심이 부쩍 동한 어느 날, 나는 폭로한다. “그 남자, 사기꾼이야. 부인이 셋이고 만날 해외출장 간다고 가방 싸들고 나가서는 서울에 있었다구.” 여자가 나를 빤히 쳐다본다. “그래서 어쨌다구?” “좋은 남자인 것 같다는 말, 거짓말이었어. 나는 벌써부터 다 알고 있었어. 내가 거짓말을 한 거라구.” “그게 뭐가 어때서? 내가 진실을 알면? 돈도 잃고 사랑도 잃잖아. 앞으로도 내게 거짓말을 해줘!” 뜻밖의 반응에 당황한 나머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상소리가 튀어나온다. “에이, 이 할리우드 같은 년!”

2만개 중의 하나 <바람을 본 소년>

당연한 이야기지만 필자는 일반인들보다 애니메이션을 많이 보는 편이다. 어릴 때야 뭐, 밥먹던 걸 잊어버리고 텔레비전에서 하는 만화영화를 보다가 야단맞은 일이 셀 수 없을 정도였고 일반 가정의 보급시기보다는 좀 늦었던 1990년에 비디오데크를 들여놓은 이후부턴 비디오 대여점과 해적판 비디오를 통해 거의 닥치는 대로 애니메이션을 보았다(요즘은 고속전용선과 CD-R만 있으면 몇 백원짜리 공 CD에 수십편씩 애니메이션 동영상을 넣을 수 있는 좋은 세상(?)이 되었지만 그 당시만 해도 애니메이션을 보기 위해서는 상당한 돈과 시간이 필요했다). 영화장르는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취향이지만 애니메이션을 볼 때는 고등학교 시절 학업으로 인해 애니메이션을 거의 보지 못한 반발력 때문인지 웬만큼 그림이나 스토리가 되어주면 웬만한 것은 불문에 부치고 구할 수 있을 만큼 구해서 보았다. 원작인 만화책이 긴 편이라 해적판조차도 제대로 전권이 나오지 않은 <란마1/2>이라는 작품의 TV애니메이션 전 시리즈(120분짜리 비디오 41개 총 161화)를 구해 8일 만에 다 본 적도 있을 정도였다. 회사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이야 그렇게 보진 못하지만 짬이 날 때마다 보는 편인지라 대략 하루에 2∼3편 정도 본 것으로 하여 이때까지 본 애니메이션 수를 계산해보니 2만편 정도 된다. 이 정도의 애니메이션을 보다보니 디지털기술의 발전이 가져다준 현란한 영상이나 좋아하는 감독이나 작가의 신작, 뇌와 감성을 자극해대는 몇몇 단편 애니메이션을 제외하고는 순수하게 작품에 몰입해서 보기에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르는 부작용이 생겼다. 발표시기보다는 조금 늦게 보게 된 <바람을 본 소년>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고질라> 시리즈로 유명한 오오모리 이쓰키가 총감독을 맡고 전쟁을 테마로 한 소설을 많이 써낸 C.W. 니콜의 원작에 체코 필하모니 실내 관현악단이 연주했다는 음악, 제24회 아시아태평양영화제 최우수 애니메이션상 수상 등의 사전 스펙(?)에 호감이 생겨 손을 대긴 하였지만 스토리가 진행되는 동안 이전에 보았던 작품의 이미지들이 중첩되면서 마치 패러디물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고 말았다. “오래 전 멸망한 ‘바람의 민족’의 힘을 이어받은 소년 ‘아몬’은 우수한 과학자인 아버지의 새로운 에너지 연구에 도움을 준다. 하지만 그 에너지를 탐낸 독재자 ‘브래릭’에 의해 부모님이 피살되자 ‘아몬’은 금독수리의 도움을 받아 ‘빛의 놀이’라 불리는 힘으로 탈출한다. ‘바람의 민족’의 근원지인 ‘심장의 섬’에서 곰의 왕 ‘우르스’에게 ‘바람의 민족’의 역사와 멸망되었던 사연을 들은 ‘아몬’은 자신의 힘을 시험하려고 표류하다가 한 바닷가 마을에 다달아 소녀 ‘마리아’에게 도움을 받는다. 하지만 그 마을이 ‘브래릭’의 공격을 받아 마을 사람들이 전멸하자 ‘아몬’과 ‘마리아’는 레지스탕스에 들어가 ‘브래릭’ 타도에 나선다”라는 짜임새 있는 스토리와 다양한 캐릭터, 세밀한 메커닉 설정이나 전투신 등의 장점은 어드벤처 판타지물로서의 미덕을 충분히 지니고 있다. 하지만 여러 군데 보이는 소재나 배경이 예전에 보았던 애니메이션 작품 이미지와 겹쳐 마치 예전에 ‘우주소년 원더키디’에 등장했던 여자주인공의 목걸이를 보았을 때와 같은 안 좋은 기분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고생하여 만든 작품을 이것저것 빗대며 폄하시키는 것은 과히 좋은 일은 아니지만, 황금독수리를 보면 <태왕의 왕자 에스테반>이나 <카잔>이, 곰의 왕 ‘우르스’와 심장의 섬을 보면 <원령공주>가, 바닷가마을에서의 공동체생활은 <태양의 왕자 홀스의 모험>이, 그리고 ‘브래릭’의 병사들이 쓰는 병기나 군사들의 모습에서는 <라퓨타>나 <미래소년 코난>이 떠오르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직업병(?)인 것 같다. 완전한 오리지널리티를 가진 창조적인 작품을 요구하는 것이 수많은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는 현실에서는 무리한 주문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어디서 베낀 듯한 드라마, 쇼 프로, 노래를 수시로 접하는 속에서 제발 애니메이션만이라도 보는 이의 뇌세포와 심장근육을 자극해주는 기폭제 역할을 다해주었음 하는 바람이다. 김세준/ 만화·애니메이션 칼럼니스트 neoeva@hitel.net

코언 형제의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 최근(2001년 가을-역자) 함께 개봉한 조엘과 에단 코언의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와 장 피에르 주네의 <아멜리에>는 두 작품 모두 “인간의 모습을 벗어난 라이브 액션만화”라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두편 모두 어마어마한 폭발력을 보여주진 않으나, 공히 만화의 세계에서 곧장 빠져나온 듯한 작품들이다. 한편은 지독하게 비관적이고 또 한편은 히스테리컬할 정도로 기분 좋지만, 두편의 캐릭터들 모두 찡그릴 줄 아는 고깃덩이인 꼭두각시 인형들과 잘 계산된 특수효과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다는 점에서 또한 공통적이다. 이들은 넘쳐나는 보이스오버 너머로, 향수에 푹 젖고 은둔자처럼 각자의 껍질 안에 잘 숨겨진 채, 잘 재단된 ‘프로젝트 세계’를 창조한다. <아멜리에>(이에 대한 짐 호버먼의 견해는 <씨네21> 327호를 참조할 것-역자)는 사람들이 좀더 편안히 좋아함직한데 비해 코언 형제의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는 지독할 정도로 건조하다. 이것은 아주 절묘하게 단색을 띤 흑백영화로서, 캘리포니아 태양 아래서 벌어지는 간통과 공갈 및 약탈과 살인 이야기를 그린다. 이 까다롭도록 초현실주의적이고 네오누아르적인 영화는 코언 형제 데뷔작인 <블러드 심플>의 리메이크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통제불능 수준으로 난폭했던 <블러드 심플>에 대한, 더욱 슬프지만 더욱 현명한 리메이크라고 말이다. 그리고 이것은 심지어는, 터프가이 소설가 제임스 M. 케인(<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의 저자)의 혼성모방 작품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프랜시스 맥도먼드와 빌리 밥 손튼이 불행한 부부 역할을 맡았다. 남편 에드는 수줍은 이발사이며 아내는 수다스런 회계원으로서, 보스 빅데이브(제임스 갠톨피니)와 대놓고 바람을 피우는 중이다. 화가 치민 에드는 빅데이브에게 익명의 협박편지를 보내 돈을 뜯어 새 사업을 시작할 계획을 품는다. 그는 부랑자 사기꾼 존 폴리토에게서 힌트를 얻어 드라이클리닝 사업에 투자할 것을 결심하는데, 이것은 결국 이 삼각관계를 비극적이랄 정도로 나쁜 상태로 몰아넣는 계기가 되어, 빅데이브는 결국 살해당하게 된다. 이에 오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에드를 둘러싼 진실과 비밀은 점점 커져만 간다. 이런 괴팍할 정도로 거친 통제불능의 세계에서조차, 코언 형제는 꼭두각시 인형들을 즐거움의 끝없는 원천으로 파악한다. 손님의 머리칼을 자르는 시늉을 하면서 담배를 피워 문 채 지루하게 질질 끌며, 손튼은 대단히 건조한 연기를 보여준다. 그의 딱딱하게 굳은 표정은 매우 바쁜 내면세계와 삶을 가려버린다. 그리고 그것은, 죽은 다음에조차도 머리칼은 “그저 계속 자라날 뿐”이라는 사실에 기초한 형이상학적 명상에 의해 완성되면서, 그저 뚱하고 침울한 보이스오버로 표현될 따름이다. 마치 부어오르듯 과장된 ‘의식의 흐름’도 부족했다는 듯, 손튼의 반응없는 과묵은 수다가 분출하는 맥도먼드와 나란히 놓임으로써 더욱 강조된다. 그리고 그는 언제나 꽥꽥거리는 수다스런 괴물들에 둘러싸여 있다. 전형적인 케인 스타일 그대로, 손튼은 한 백화점 크리스마스 파티중 베토벤의 소나타 <월광>을 우울하게 연주하는 소녀를 보고, 그 예민한 10대 소녀(스칼렛 요한슨)에게 병적으로 집착한다. 린치풍의 UFO 서브플롯이 지루하게 전개되지만 코언 형제는 그들의 영민함을 잃지 않았다. 한 사이트 개그(동작에 의한 개그)에서 손튼은 유리문에 부닥친 채 클로즈업되는데 그 유리문은 한방에 금가버린다. 보이스오버는 몇번씩이나 자의식 강한 프리첼(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먹고 의식을 잃었었다는 과자 - 역자)인 양 자신을 뒤틀어버리며, 영화는 별뜻없는 기표들로 가득하다(액션은 히치콕 영화 <의혹의 그림자>의 로케이션 장소인 산타 로사에서 만들어졌고, 변호사의 이름은 <아스팔트 정글>의 한 캐릭터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게다가 이 영화는 도덕적으로 아무런 주장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지나칠 정도로 하드보일드한 은유는 마이크 해머조차 말을 잃게 만들었을 것이다. 쿨한 것과 졸리는 것과 느려터진 것 사이에는 명확한 구분이 있을 텐데,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는 반복적으로 그 선을 넘나든다. 코언 형제는 운명의 바퀴 앞에서 잠이 들어 있었나? 아니면 아이러니의 죽음에 대해 선견지명을 갖고 미리 애도하고 있었나? 여전히, 영화만큼이나 무의미하게, 프로덕션 디자인은 나무랄 데 없고, 심지어는 경건해 보이기까지 한다. 완벽을 향해 불 댕겨지고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손튼은, 몽마르트에서 온 아멜리에보다 훨씬 더 도드라진 만화 캐릭터다. 그녀의 바보스런 미소는 “걱정할 게 뭐야” 하는 듯한데 반해, 그의 끌로 판 듯 윤곽 분명한 비극적 표정은 그를 프로작(우울증 치료약)의 포스터보이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짐 호버먼/ 영화평론가 (<빌리지 보이스> 2001.11.6. 짐 호버만은 미국 영화평단에서 대안영화의 옹호자로 가장 명망이 높은 평론가로 <빌리지 보이스>에 글을 기고하고 있습니다. <씨네21>과 <빌리지 보이스>는 기사교류 관계에 있습니다.)

아저씨,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보고 결혼제도를 고민하다

●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감독 유하씨는 말에 대한 감수성이 매우 뛰어난 시인이다. 누구도 말에 대한 감수성 없이 시인이 될 수는 없겠지만, 유하씨의 언어감각은 여느 시인에 견주어 특히 민첩하다. 첫 시집 <무림일기>에서부터 최근 시집 <천일馬화>에 이르기까지, 그는 그런 날랜 말놀이의 부력으로 독자들에게 어질어질한 부양감(浮揚感)을 베푼 바 있다. 그의 말놀이가 얼마나 매력적인가 하면, 독자들이 그 말놀이에 정신을 팔다 그의 시가 지닌 메시지의 핵심을 지나쳐버릴 정도다. 그의 몸은 언어와 버성기지 않는다. 그는 조각하듯 언어를 깎아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깎여져 몸 안에 갈무리된 언어를 아무 때나 꺼내 자유자재로 레고놀이를 수행한다. 그는 공기를 숨쉬듯 언어를 숨쉬며, 마침내 말과 한몸이 되어 통정한다. 말과의 접착도에서 시인 유하씨의 맞수로 내가 얼른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그와 동갑내기인 불세출의 논객 진중권씨 정도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보니 유하씨는 말놀이에만이 아니라 그림놀이에도 뛰어난 것 같다. 하기야 유하씨가 시에서 수행한 말놀이는 말-이미지 놀이이기도 했다. 아쉽게도 나는 유하 감독의 첫 작품인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를 보지 못했다. 그 영화는 상업적으로 별 재미를 못 본 모양이고, 본 사람들 얘기로는 작품으로서도 그리 탐스럽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결혼은, 미친 짓이다>는 볼 만했다. 그것은 유하씨가 겉멋으로 충무로에 발을 들여놓은 문인 출신의 얼치기 영화인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만교씨의 원작 소설을 읽지 못한 나는 이 영화의 이색적인 서사 줄기가 전적으로 원작자의 것인지 부분적으로 감독의 것인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두 주인공이 주고받는 재치있는 대사들의 일부는 유하 감독의 것이 아닐까 짐작한다. 그는 이 그림놀이에도 자신의 말놀이 재능을 충분히 투입했다. 일부일처제가 계급사회의 산물이라는 것은 원래 좌파의 주장이었지만, 요새는 좌우지간에 입 가진 자들은 다 그렇게 말하는 모양이다. 그러니 아마 그 말이 옳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일부일처제가 아닌 사회를 생각하면, 홀가분하기에 앞서 불안하다. 사실 일부일처제는 계급사회가 고안해낸 수많은 제도 가운데 약자를 배려한 매우 드문 예에 속한다. 일부일처제에 바탕을 둔 결혼제도가 없다면, 성이라는 재화는 지금보다 훨씬 더 불평등하게 분배될 것이다. 권력과 재산을 가진 남녀, 성적 매력을 가진 남녀는 그 재화를 무한대로 소비할 수 있는 반면에 그렇지 못한 남녀는 늘 독수공방을 감수하게 될 것이다. 일부일처제가 엄존하는 지금의 현실이라고 그것과 뭐가 다르냐는 반박이 있을 수 있겠지만, 법과 제도를 통해서 일정한 억제가 가해지는 경우와 그런 위선적 제도나마 없는 경우는 성의 분배 양상이 크게 다를 것이다. 성 소비의 자유와 다양성을 진작시키기 위해서라면, 나는 차라리 지금의 결혼제도를 그대로 둔 채 공창제를 운영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이 공창제에서 성적 쾌락의 일차생산자는 여성일 수도 있고 남성일 수도 있다. 또 이 제도 아래서 성적 쾌락의 일차생산자가 지금의 사창가에서처럼 중간상인들에게 착취당하지 않도록 세심한 법적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자크 아탈리라는 사나이는 이라는 책에서 결혼과 가족제도를 좀더 급진적인 상상으로 구부러뜨린 바 있다. 그는 결혼은 미친 짓이라고 말하는 대신 미치지 않을 수 있는 결혼 형태를 구상한다. 아탈리는 개인주의와 시장원리가 지금의 가족 형태를 그 뿌리부터 흔들 것이라고 예측하며 동시적 가족을 상상한다. 멀지 않은 미래에 사람들은 이혼/재혼을 통해 단속적(斷續的) 가정을 갖는 데 만족하지 않고, 동시에 여러 가정을 원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은 일부다처제와 일처다부제다. 또는 다부다처제가 될 수도 있겠지. 지금의 법률 용어로 말하면 중혼이 유행한다는 것이다. 여러 사람을 동시에 사랑할 수 있는 권리가 처음에는 관습의 수준에서, 궁극적으로는 법적 수준에서 보장될 것이라는 것이 아탈리의 예측이다. 그때 남녀 관계에서 최고의 가치가 되는 것은 감정의 솔직함이다. 사람들은 아무런 죄의식 없이 동시에 여러 가족을 인정하게 되고, 남자든 여자든 동시에 여러 배우자를 지닐 수 있게 된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연희처럼 들키지 않을 자신이 있는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말이다. 그런데 내 생각엔 그 경우에도 성이 공정하게 분배될 것 같지는 않다. 남편이라고 똑같은 남편이 아니고 아내라고 똑같은 아내가 아니어서, 성의 부익부 빈익빈은 지금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메시지가 결혼은 미친 짓이라는 거라면, 유하씨는 적어도 관객 한 사람은 설득한 것 같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나도 모르게 되뇌게 되더군. 결혼은 미친 짓이라고. 괜히 결혼했다고. 앞서 한 말들과 모순되지 않느냐고? 물론 그렇다. 앞서 한 말들은 무대용 발언이고, 방금 한 말은 분장실용 발언이다.고종석/ 소설가·<한국일보> 논설위원 aromachi@hk.co.kr

젊은 감독, 관객을 만나다 [4] - 류승완 ①

(두 손으로 브이자를 그리며 일어나) 안녕하세요. 영화배우 류승완입니다. (웃음) ‘나의 인생 나의 영화’라는 걸로 아무 얘기나 하라는데, 학교 다닐 때 보면 듣기 싫은 얘기 자기 혼자 몰입해서 막 떠드는 사람들 짜증나잖아요. 지금 지나다가 그냥 시간이 남아서 들어오신 분도 있고 하실 테니까. 그냥 류승완이라는 사람이 영화를 만들기까지 어떻게 살았나 간단히 말씀드릴게요. 저는 1973년 12월15일 충남 온양에서 태어났구요, (웃음) 다섯살 땐가 여섯살 때, 천안아카데미극장에서 영화를 처음 봤는데, 장철 감독의 <철장>이라는 영화였어요. 일본 도장에서 배신자의 눈알을 뽑는 장면이 인상깊었죠. (웃음) 저는 어려서 주위가 산만한 아이였고,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에 성룡 영화를 처음 봤는데, 바로 그해에 류승범이 태어났어요. 제 장난감을 부러뜨리는 바람에 류승범이 액션연기 하는 데 제가 많은 도움을 줬죠. (웃음) 저는 지방에 살아선지 특히나 영화에 대한 동경이 있었어요. 학교에서 장래희망 쓰라 그러면 항상 그 주에 봤던 영화의 주인공 직업을 썼어요. (웃음) <승리의 탈출>을 봤을 때는 축구선수, 을 봤을 때는 첩보원이라고 썼죠. 중2 때 서울로 올라왔는데, 성룡 같은 액션배우가 되고 싶었어요. 근데 ‘아무도 날 배우로 써주지 않을 테니까 내가 찍자’ 했죠. 그땐 감독이 있는 줄 모르고 카메라하고 배우만 있으면 되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카메라를 사려고 돈을 모았죠. 근데 <스크린>을 쫙 모아놓은 친구가 잡지를 보여주면서 ‘영화는 감독이 만드는 거다’라는 거예요. 보니까 감독이 멋있어 보이더라구요. 고2 때부터 8mm 필름카메라로 영화를 만들었어요. 공부와는 점점 멀어져서 남들 대학 다닐 때 일하고, 박찬욱 감독하고 힘든 시절 같이 보내고 그러다가 지금까지 온 것 같아요. 영화 얘기를 하자면, 저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때문에 필요 이상의 환대를 받았다가 그 부작용을 <피도 눈물도 없이>로 받은 것 같아요. ‘너무 요란한 환대는 건강에 안 좋다’는 예가 저예요. (웃음) 뭐, 이렇구요, 저는 그렇게 드라마틱하게 산 사람도, 천재도 아닙니다. (사회자: 류승완 감독은 보통 영화광들이 유럽 등지의 예술영화들을 보며 영화에 대한 꿈을 키워온 것과 달리 아주 대중적인 영화에서 자양분을 얻은 경우입니다. 홍콩이나 할리우드영화 등 장르영화에 매혹당했고, 그런 영화를 한국에서 지금 만들고 있죠. <죽거나…>는 단편옴니버스였고, <피도…>가 첫 장편인 셈인데, 사실 <피도…>가 첫 영화였으면 훨씬 좋은 평가를 받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자, 그럼 질문 시작할까요?) -단편영화와 장편영화 만드는 시스템 차이랄까, 장편이 어려운 점을 말해주세요. =보통 저예산 독립영화와 메인스트림 영화작업의 차이에 관한 질문은 많이 받는데, 그럴 때는 ‘별 차이 없다’고 하는데, 이런 질문은 처음이군요. 단편과 장편은 연출자의 자기관리능력이 얼마만큼 필요한가에서 차이가 나요. 단편은 촬영횟수가 많지 않으니까 체력이나 정신력을 유지하기 쉽죠. <피도 눈물도 없이>는 70회 넘게 찍었는데, 체력적으로 아주 힘들었어요. 몸이 지치니까 정신적 집중도 떨어지고 처음 내가 뭘 만들려 했었나 흐려지기도 했죠. 그런 걸 빼면, 숏별 연출에서는 단·장편이 큰 차이 없었어요. 다만 제가 요즘 생각하는 게 장편만의 드라마 구조거든요. 단편영화는 필름 한권을 넘어가는 적이 없지만, 120분짜리 장편은 35mm 필름이 6권이죠. 단편은 필름 한권 안에 기승전결이 있지만, 장편은 필름 한권이 바뀌는 것을 기준으로 이야기 구조가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주말연속극이 결정적인 장면에서 딱 끝나고 ‘다음 시간에’ 하듯이, 이야기를 끌어가는 사이사이 분절점이 필름 한권의 끝마다 있는 건 아닌가. <피도…>는 뭘 완성했다기보다는 다음 영화 만드는 데 이런 식의 교훈을 준 것 같아요. 3년동안 데뷔작만 세 편 찍다 -<죽거나…> 찍을 때 감독과 주연을 같이 했는데, 어땠나요? =힘든데 재밌었어요. 너무나 하고 싶었던 걸 하는 거니까. 찍을 때 이걸로 데뷔한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그냥 단편 만드는 것의 연장이었죠. ‘다른 방식’이구나, 하는 걸 느낀 건 <다찌마와 리>도 아니고 <피도…> 였어요. 상대하는 사람 많아지고, 스타랑 일하고. 흥분된다기 보다는 긴장됐어요. 이상한 건 <죽거나…> 보고 데뷔작이라고 하던 사람들이 <다찌마와 리> <피도…>를 그때마다 또 데뷔작이라고 하는 거예요. 저는 3년 동안 계속 데뷔작만 만든 거예요. (웃음) 데뷔라는 의미가 없어졌고, 단지 규모가 자꾸 커질 뿐이었어요. 소포모어 징크스라는 게 있잖아요, 두 번째 작품 실패에 대한 두려움. 저는 <피도…>도 그랬고, 그 다음도 그럴 거고, 계속 긴장할 것 같아요. -공부를 별로 안 하셨다고 하는데, 현장 경험만으로 감독하는 데 부족함은 없나요? 감독이 되려면 어떤 게 제일 필요한지 궁금합니다. =부족한 것 많죠. 제가 말은 그렇게 해도 공부를 했다면 한 놈인데(웃음) 이런 데 나오면 제일 무서운 사람들이 ‘현상은 어떻게 하셨나요?’, ‘조명은 몇 킬로를 썼어요?’ 그러는 사람들이에요. 그럼 저는 ‘왜 저한테 그러세요. 조명한 사람한테 물어보시지’ 그래요. (웃음) 저는 사실 그런 것 잘 몰라요. 사람들마다 다 재주가 다르잖아요. 심지어 초능력자도 손끝에서 광선이 나온다든지 하는 저마다의 특기가 있는데. (웃음) 제가 잘하는 건 엎드릴 때 바짝 엎드리는 건 것 같아요. ‘나 이거 좆도 모르니까 나 좀 봐달라’ 그러면서 엎드리는 거요. (웃음) 그러면 ‘어 알았어, 형. 이렇게 갈까’ 하면서 테스트한 걸 보여주거든요. 저는 제가 다 짜서 제시하는 게 아니라 도움을 많이 받는 편이에요. 그래서 캐스팅을 중시하죠. 배우만 아니라 스탭까지 포함한 캐스팅요. 나하고 마음 맞는 사람들을 소중히 생각하고, 그 사람들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북돋워줘요. 감독으로서 필요한 자질에 정답은 없어요. 감독들마다 노하우가 다르거든요. 영화를 계속 만들어 나가려는 의지가 가장 중요한 것 같고…. (객석 맨 앞줄의 어느 여자참석자를 가리키며) 저기 뭐 굳이 적으실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아요. (일동 웃음) 그냥 생각나는 대로 얘기하는 거니까. 제가 오늘 아침까지 이창동 감독 영화 <오아시스> 출연을 하다 왔는데, 이창동 감독 보면서 아 감독은 이렇게 냉정해야 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어요. <피도…> 찍을 때 보조 출연자가 투견장 2층 난간에서 떨어져서 하반신 불구가 될 뻔한 적이 있었거든요. 그순간 저는 모든 걸 접고 그 사람에게 달려가야 하나, 아니면 모니터 앞에서 계속 영화를 진행해야 하나, 정말 힘들었어요. 결국 메가폰을 들고 ‘다음 상황 진행합시다’라고 했는데, 마음이 많이 아프더라구요. 근데 그렇게 감독은 냉정해야 돼요. 현장에서 아무리 의기투합했어도 영화가 안 좋으면 스탭들과 관계회복이 안 되는데, 현장에서는 엄청 ‘뒷다마’ 까고 그랬어도 영화가 볼 만하면 작품 계속할 수 있거든요. 영화는 모든 스탭들의 손때가 묻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영화가 제일 소중한 거죠. 감독에게는 체력이 또 아주 중요해요. 스즈키 세이준이 영화 들어가기 전에 헬스클럽 다닌다는데, 정말 그런 게 필요하죠. 무엇보다 6mm 카메라로라도 자꾸 찍어보면서 경험을 쌓는 게 중요하구요. -류승완 감독의 열렬한 팬입니다. 수려한 외모와 화려한 액션을 자랑하시는데 배우로 전향하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웃음) 저는 가이 리치와 타란티노도 좋아하는데, <피도…>가 그 감독들 영화와 비슷하다는 말이 있잖아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그리고 하고 싶은 말이 있거든요, 사랑합니다.(순간 객석엔 약간의 긴장감 흐름. 질문자는 남자였음) =제가 치질이 있어서 격렬한 사랑행위는 못하거든요. (웃음) <피도…>가 네오누아르랑 비슷할 거라는 건 저는 찍기 전부터 얘기했었어요. 제가 네오누아르를 좋아하기 때문에 한번은 넘어야 할 산이라고 생각했죠. 더 잘 만들 자신은 없고, 큰 틀은 유지하되 디테일을 바꾸는 방식을 택했어요. 팜므 파탈이 아닌, 스스로 중심이 되는 여자인물을 설정했고, 쿨한 대신, ‘감정의 끈적거림’을 대결의 무기로 선택했죠. 심리적 충돌로서의 액션이요. 근데 보는 사람들이 그 차이를 못 느끼고, 심지어 표절이라고까지 하기도 하더라구요. 그게 장르영화 만드는 어려움인 것 같아요. 여기 계시지만 김봉석 기자한테 ‘과잉’이라는 지적도 받았고. 저는 제 욕망을 충실히 따르며 만든 영화이기 때문에 아쉬움은 있어도 후회는 없어요. -신인배우 캐스팅하는 기준이 무엇인가요? =기본적으로 대화가 되는 사람인가, 하는 걸 봐요. 표면적 이미지나 기본적인 재능도 보지만. 제일 두려운 부류는 너무 강렬한 열정을 가진 사람이에요. 목숨이라도 걸 듯한…. 그런 사람들은 까딱하면 무수한 상처를 받고 말거든요. 영화현장에서는 그런 과도한 열정보다는 릴렉스하게 상황을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피도…>에서 여주인공 2명도 있지만 저는 독불이 역이 더 인상적이었거든요. 그것에 대해 얘기해주시구요, 필생의 프로젝트가 있다면 어떤 게 있는지 얘기해주세요. =많이들 독불이 캐릭터를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피도…>에서 제가 남자 캐릭터들에 힘을 실은 건, 주인공인 여자들의 대척점에 있는 인물들을 강하게 그려서, 과연 저 여자들이 저 인물들한테서 탈출할 수 있을까, 싶게 하려 한 거예요. 그냥 강한 여자들이라기보다는 주변 상황들 때문에 강해진 여자들을 그리고 싶었어요. 그런데 인물 많은 영화가 처음이라 제 생각에도 드라마 장악력이 떨어졌던 것 같아요. 그리고,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를 만들면서도 저 자신 여성을 잘 모르고 있다는 걸 알게 됐죠. 여배우와 표면적인 이야기만 하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했어요. 그리고 저도 사람이라 진행하다가 애정 가는 쪽에 더 힘을 싣게 됐던 것 같아요. 독불이라거나 백일섭 선생님 캐릭터가 그런 경우예요. 그리고 다음 프로젝트는, 아니 필생의 프로젝트는…. (웃음) 다음 게 언제나 필생의 프로젝트죠. 저는 무성영화에 가까운 활동사진을 만들고 싶어요. 버스터 키튼의 슬랩스틱코미디 같은 흥분이 살아 있는 영화요. 또 뮤지컬도 해보고 싶어요. -<죽거나…>에서 식당에서 가족들이 말다툼하다가 딸이 심하게 뺨 맞는 장면을 보면서 상처를 받았어요. 혹시 여성에 대한 부당한 생각을 갖고 계신 건 아닌지 의심스러웠는데. =여성을 혐오한다거나 그런 건 전혀 없습니다. 딸도 있고, 참고로 제 와이프도 여자거든요. (웃음) 다만, 저는 강한 여자를 좋아하는 건 있어요. 와이프가 결혼 전에 저한테 이런 얘기를 했죠. 적들에 둘러싸였을 때 ‘피해!’ 그래서 여자가 등 뒤로 숨는 게 아니라, 같이 등을 맞대고 싸우는 사이가 되자고. 지금은 제가 숨는 처지가 됐지만. (웃음) 하여튼 얘기하다가 따귀 때리고 그런 거는, 저는 현실에서는 많이 봤어요. 룸살롱 여자들이 싸우는 걸 보면 장난이 아니에요. 하이힐로 찍고…. 현실이 더 영화적이죠. 그걸 일부 차용한 것 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