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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2003)

30대 노처녀들의 속시원한 수다, <올드미스 다이어리>

개인적으로 <올드미스 다이어리>(연출 김석윤, 극본 최수영)를 정말 좋아한다. 지난해 11월 첫 방영 때부터 이 지면을 빌려 소개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려왔지만 사실, 뚜렷한 명분이 없었다. <안녕, 프란체스카>(MBC)처럼 방영 몇회 만에 마니아층을 형성하며 세간의 관심을 끈 것도 아니요, <귀엽거나 미치거나>(SBS)처럼 ‘시트콤 스타’의 출연으로 방영 전부터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도 아니니, “이 시트콤 정말 좋아”란 이야기는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을 일반화하려는 우려의 가능성이 컸다. 물론 <달려라 울엄마>를 만든 김석윤 PD의 작품이라는 점으로도 이야기는 됐겠지만, 이는 “내용으로 승부하고자 일체의 홍보활동을 하지 않았다”는 김 PD의 의도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한데 이제 대의적인 명분이 생겼다. 지난 3월24일 <올드미스 다이어리>의 시청률이 15%를 넘어선 것이다. 시트콤이 넘쳐나는 요즘 텔레비전에서, 여느 시트콤들이 9∼10%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단연 앞선 수치다. 입소문을 탄 결과라는 점에서 의미는 더욱 크다. 그러니 전국의 15%가 이 시트콤의 진가를 ‘스스로’ 알아차렸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그 수치를 핑계 삼아 이 기회에 한번 훑어보도록 하자. 4개월이란 시간 동안 도대체 무엇이 시청자들을 ‘제발’로 찾아오게 했는지를 말이다. 일단, 미처 내디디지 못한 이들을 위해 줄거리부터 간단히 소개하자면 <올드미스 다이어리>는 30대 싱글 여성들의 이야기다. 31살의 세 친구 최미자(예지원), 김지영(김지영), 오윤아(오윤아)를 중심으로 ‘일’과 ‘사랑’에 관한 고민이 매회 하나의 에피소드로 전개된다. 물론, 60살 할머니들의 이야기나 중년 남성의 이야기도 펼쳐지지만 <올드미스 다이어리>가 얻은 15%의 공신력은 바로 이런 ‘노처녀’들의 이야기를 통해 실제 ‘노처녀’들의 공감대를 얻어냈다는 점이다. 현실에서 도저히 일어날 수 없을 상황으로 웃음을 유발하기보단 “그래, 나도 그랬었지”, “맞아, 정말 그래” 등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양 손뼉을 치게 만드는 것. “젊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해봤을 고민을 한바탕 수다를 떠는 기분으로 가감없이 쏟아내고 싶었다”는 애초의 기획의도가 제대로 살아난 셈이다. 그래서 <올드미스 다이어리>에는 ‘정곡’을 찌르는 에피소드들이 주로 등장한다. 옛 남자친구가 결혼한다는 얘기에 괜히 마음이 상하고(2회), 조건 좋은 남자 만나 결혼하는 게 여자의 행복일까를 고민하고(22회), 이 남자를 놓치면 다른 남자를 못 만날까 두렵고(52회), 아직은 나도 잘 나간다는 걸 증명해보고 싶은 묘한 심리까지(26회), 노처녀가 아니고선 느낄 수 없는 소재들 중심으로 그려진다. 이들 에피소드들은 정극을 연상시키듯 꽤 담담하게 표현되고 있어 30대 여성들이 마치 자신의 일상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도 한다. “극중 캐릭터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면 그저 재미있는 에피소드에 불과하겠지만 비슷한 고민을 하는 이들에겐 <올드미스 다이어리>가 자신의 심리를 대변해주는 일기장이 될 수 있다”는 김 PD의 설명은 그래서 아주 적절하다. 하지만 자칫 흥미위주로 흐를 수도 있었던 ‘노처녀 이야기’가 시청자들의 가슴에 와닿을 수 있었던 데는 실제 비슷한 또래인 배우들의 연기력도 한몫한다. 오버하는 말투나 행동으로 웃음 만들기에 급급했던 기존 시트콤과 달리 <올드미스 다이어리>는 캐릭터의 감정과 절제된 대사들이 세밀히 묘사된다. 김 PD는 “정극보다 더할 때도 많다”고 강조한다. 특히 극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예지원의 섬세한 심리묘사와 디테일한 행동들은 김지영과 오윤아의 2% 부족한 연기를 채워줄 만큼 뛰어나다. 지난 14일 방송된 ‘당신을 좋아하는 남자가 있습니다’편에서는 삼각관계에 놓인 여자의 심리를 제대로 표현해 “내가 다 떨려올 정도로 감정이입이 됐다”는 시청자들의 극찬을 받았을 정도다. “앞으로 삼각관계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만큼 예지원의 연기력이 드라마의 공감대 형성과 함께 인기를 더해줄 것”이라는 게 제작진의 중론이다. 미자, 지영, 윤아와 함께 <올드미스 다이어리>의 또 다른 축을 이루는 60대 할머니 세 자매 김영옥, 한영숙, 김혜옥의 호연도 쏠쏠한 재미를 던져주고 있다. “30대 싱글 여성들을 통해 ‘리얼리티’를 강조했다면 60대 할머니 세 자매를 통해서는 시트콤의 기본인 ‘웃음’에 충실하고 싶다”는 김 PD의 바람은 30대 여성과 별반 다르지 않게 티격태격하는 할머니들의 모습을 통해 제대로 실현되고 있다. “할머니들의 등장에 칙칙함이 아닌 톡톡 튀는 매력을 주어 새롭다”는 것이 시청자들의 평가다. 이런 유쾌한 할머니들을 중심으로 노처녀에게 가장 큰 적인 가족을 감싸주는 캐릭터로 설정한 점도 이 시트콤이 사랑받는 이유 중의 하나다. <올드미스 다이어리>에서의 가족은 고민을 들어주는 친구이자, 인생의 조언자로 그려지고 있다. 할머니들을 비롯해 임현식이 맡은 아버지 캐릭터나 외삼촌은 권위를 강조하기보단 이해하는 역할로 결혼 스트레스에 상처받은 미자를 편안하게 어루만진다. “극중에서 가족은 결혼 스트레스를 주는 짐이 아니라 오히려 스트레스를 해소시켜 주는 마음의 고향임을 표현함으로써 결국 모든 것은 사랑으로 마무리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김 PD의 말은 <올드미스 다이어리>의 빼놓을 수 없는 미덕이기도 하다. <올드미스 다이어리>는 미자와 지 PD, 정민씨의 삼각관계가 정리되는 데로 좀더 본격적인 이야기들이 펼쳐질 예정이다. 지금까지 30대 여성들의 이야기에 비중을 두고 그들을 흡수하고자 했다면, 앞으로는 할머니들의 이야기와 임현식을 중심으로 한 중년 남성의 모습이 새롭게 전개되며 다양한 연령층에 초점을 맞춘다. 여성 시트콤을 표방한 <올드미스 다이어리>의 잘못된 판단이란 우려의 목소리도 있지만, 공감대 하나만으로 30대 여성들을 사로잡은 지금까지의 행보로 보아, ‘모든 세대가 공감하는 시트콤’을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김석윤 PD 인터뷰 “옆집 사람들 이야기처럼 생각하고 봐주길” -쟁쟁한 시트콤을 물리치고 언제나 1위다. =초반의 부진을 떠올리며 대기만성형 시트콤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처음엔 마니아층만 형성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편성상으로 어려움도 많았고, 앞뒤 프로그램에 따라 결과도 천차만별이라 시청률 부분이 안정되는데 시간이 좀 걸릴 것이라 예상했다. 입소문으로 알아주길 바라며 일부러 홍보를 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된 것 같아 기쁘다. -공감대 형성이 인기비결이다. 소재는 어떻게 찾아내나. =작가들이 30대 싱글이라 경험담에 많이 의존한다. 어떤 상황에 대해 여성의 시각은 어떨까를 생각하기도 하고, 요즘엔 시청소감에서 채택하는 경우도 많다. 일주일에 12개의 아이템을 섞어 가야 하기에 아무리 노력해도 아이템은 항상 허덕인다. -정극 같은 시트콤은 일종의 모험이기도 하다. =그래서 처음엔 고민이 많았다. 여자 세명을 <섹스 & 시티>처럼 갈 것이냐 <미녀 삼총사>처럼 갈 것이냐. 전자는 드라마에 치중해야 하고, 후자는 해프닝에 치중한다. 시트콤이기 때문에 후자에 끌리기도 했지만 ‘공감’을 우선시했다. 웃음과 함께 메시지도 주고 싶었다. -특정 타깃을 겨냥한다는 건 다시 말해 아닌 타깃이 아닌 사람을 잃을 우려도 있다. =30대 초반의 여성과 남자들은 어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외의 연령층은 할머니 라인의 코믹함으로 흡수하고자 했다. 우현(극중 미자의 외삼촌)의 캐릭터가 전체적인 연령에서 사랑받고 있고 할머니에 대한 호감도도 플러스되는 과정이라 앞으로는 전 연령대를 타깃으로 한 코미디가 많이 나올 것 같다. -여성민우회가 주인공들이 결혼에 너무 집착한다는 비판을 했다. =이 시트콤을 통해 진정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건 사랑이다. 메인타이틀에서 웨딩드레스를 입은 건 사랑을 보여주고 싶어서이지 결혼이 아니다. 결혼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있다고 해서 결혼지상주의라는 생각은 단편적이다. 하지만 그렇게 오해할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기에 홈페이지에 공개 토론방을 마련해놓고 그런 부분들에 귀를 기울이려고 한다. -특별히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나. =살아가면서 느끼는 희로애락을 생활하는 템포 그대로 제작할 것이고 그렇게 봐달라고 당부하고 싶다. 옆집에서 일어나는 일을 본다는 생각으로 너무 결말에 조바심내지 말고 봤으면 좋겠다.

[정이현의 해석남녀] <제니, 주노>의 재희와 준호

제니와 주노는 방년 15살의 파릇파릇한 아해들이지만, 재희와 준호는 15×2(+α)의 나이를 먹은 늙수그레한 연인 사이였다. 사귀기 시작한지도 어언 몇 해가 흘렀으며 얼마 전 나란히 삼십대의 문턱에 진입한 그 한 쌍. 그들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질문이 ‘대체 국수는 언제 먹여 줄 거야?’ 라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결혼? 언젠가는 해야겠지. 둘은 막연히 그렇게 생각했다. 문제는, 언제나 그렇듯, 돈이었다. 준호는 장남이었다. 일찌감치 생활능력을 상실한 부모를 위해 꼬박꼬박 생활비를 보태야했다. 오래 전 주식투자로 진 빚도 아직 남아있었다. 콧구멍만한 직장의 월급은 종종 밀렸다. 그럴 때면 돌려 막은 카드의 결제에 문제가 생길까봐 가슴이 바짝바짝 타 들어가곤 했다. 제 2금융권에서 텔레마케터로 일하는 재희는 계약직이었다. 요즘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인 셈이었다. 결혼하고 계속 지금의 직장에 근무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몰랐다. 서른 넘은 기혼여자가 새로운 직장을 구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만은 명명백백했다. 서울 혹은 그 언저리에서 신혼집을 얻으려면 수중에 몇 천만 원이라도 쥐고 있어야 했다. 그렇다고 재희는 일일 연속극 속 새댁들처럼 시집에 들어가 시부모와 시동생들과 함께 와글와글 부대끼며 살고 싶지는 않았다. 하긴 그러고 싶어도 그럴만한 여유 공간도 없었지만. 가끔 서울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높은 곳에 올라갈 때면 재희와 준호는 작은 한숨을 뱉어내곤 했다. “세상에는 집들이 저렇게 많구나. 저 사람들은 다들 돈이 어디서 났을까?” “그러게 말이야. 결혼하고 집사고 애 낳고. 요즘 같은 시대에 그걸 아무나 할 수 있냐.” “참, 자기야. 그거 알아? 1.2.3 운동이라고. 대한 가족보건복지협횐지 어딘지 하는 데서 캠페인 벌이더라. 결혼한 지 일년 안에, 애 둘을, 서른 살 되기 전에 낳으라는 거래.” “으하하, 고난이도 개그냐? 웃찾사에 나가보라고 해.” “그치? 분수도 모르고 1.2.3 운동을 따라하면 40대에 파산한대.” 큰 소리로 웃었지만 입맛이 썼다. 그들은 동시에, 얼마 전 같이 보았던 영화 <제니, 주노>를 떠올리는 중이었다. 열다섯 살의 중학생들이 사랑을 하여 아기를 가지고 결국 그 아기를 ‘지켜낸다는’ 그 영화. 그래, 뭐 그럴 수도 있겠다. 대한민국에서 한 해 동안 낙태당하는 태아의 수가 200만에 가깝다는데, 초등학생들도 임신을 하는 마당이라는데, 사실 별로 충격적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재희와 준호는, 차마 상대방에게 말을 하지는 못했지만 그 웃기는 영화를 보고 마음이 아팠다. 심지어 그 애들이 부럽기도 했다. 세상에는 다만 맘 내키면 아기를 만들고 또 ‘쑴풍’ 낳기만 하면 되는 커플도 있는 것이다. 낳아놓기만 하면 뒤처리는 모두 유복하고 자애로운 어른들 몫이다. 아기는 사랑과 정성을 담뿍 받으며 정상적인 중산층의 어린이로 자랄 것이다. 그러니 <제니, 주노>의 진정한 주제는, 애국도 부모 잘 만나야 할 수 있다는 것. 출산율 저하에 혀를 차며 이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는 어르신들께서, 입이 찢어지도록 흐뭇해 할 영화임에 틀림없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

2005년 4월 3일 서거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숭고한 삶의 행적을 담은 다큐멘터리. 서거 후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서도 여러 특집 프로그램이 편성이 되고 있지만, 이 다큐멘터리는 그것들과 달리 폭 넓은 교황의 세계를 다루고 있다. 58분의 시간 동안 교황의 어린 시절부터, 전세계를 다니면서 행한 감동적인 연설과, 크고 작은 사건들을 수 많은 자료 화면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교황의 존재란 어떤 것인가? 여기에 대한 해답은 고향 폴란드를 방문했을 때의 자료 화면과 인터뷰를 통해서 확인된다. 고르바초프가 얘기를 했듯이 공산국가에서 행한 가장 큰 실수가 교황의 폴란드 방문을 허가한 일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 다큐멘터리에는 폴란드 공상정권이 붕괴된 결정적 역할을 했던 교황의 방문을 비롯하여, 그가 세계평화를 위해서 행한 많은 일들을 다루고 있다. 그 어떤 영화보다 더 감동적인 순간이 이 다큐멘터리에 녹아있는 것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43분 정도의 부록 영상으로, CBS의 48시간을 통해서 방영이 된 'Inside the Vatican'이다. 이 부록 영상은 일반인들이 잘 알지 못하는 바티칸에 대한 여러 정보들도 담고 있다. 교황의 사적인 세계와 바티칸에 머무는 이들의 일상생활들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전세계에서 보고 되는 기적에 대해서 심사를 하는 부서에 관한 이야기가 이채롭다.

[충무로는 통화중] <유희왕> 예상 밖 흥행 가도, CGV 5개관 더 늘려

<유희왕>이 예상 밖의 흥행 가도를 달려 주목을 끈다. 지난 4월1일 전국 CGV 14개관(서울 4개관)으로 개봉한 <유희왕>은 지난 3일까지 서울 주말 9780명, 서울 누계 1만1568명을 동원하며 예상치 않은 흥행세를 보였다. 서울 주말 관객 수로 따지면, 의 9334명,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5700명, <호스티지>의 4157명보다 높은 수치다. 관계자에 따르면 150에서 250석 내외 규모 스크린에서 상영하여 총 좌석점유율 85% 정도를 상위하는 높은 수치를 보이기도 했다. 극장쪽은 최소 2주 동안 14개관을 유지하되, 상황에 따라 4월14일 이후 애니메이션센터로 자리를 옮겨 상영할 계획이었지만, 관객의 열기를 확인하면서 4월5일부터 CGV 목동·공항·주안·부평·익산 등 5개관을 보태 전국 총 19개관(서울 6개관)으로 상영관을 늘렸다. 이 영화는 4월6일까지 기준으로 서울 누계 2만3800명, 전국 누계 6만7200명을 불러모았다. 당초 ‘애들 영화’라는 이유로 덜 주목받았던 것에 비하면 놀라운 선전이다. <유희왕>은 아이들 영화여서 관심 밖이었지만, 아이들 영화여서 성공한 셈이다. 극장 안을 채운 건 대부분 초등학교에서 중학교까지의 아이들 관객. 주말, 샌드위치 데이로 낀 월요일, 식목일까지 휴일 휴교가 많아 개봉 조건도 좋았지만, “<포켓몬스터>처럼 <유희왕>도 기본적으로 마니아가 많고, 텔레비전 시리즈가 지난 3월까지 방영되면서 인지도를 유지”했다는 것이 수입사쪽의 성공요인 분석이다. 게다가, 영화 티켓 구입시 일인당 한장씩 나눠주는 총 4종의 유희왕 희귀 카드는 ‘유희왕 카드 게임’ 마니아들을 불러들인 또 하나의 주요인으로 추측된다. <유희왕>은 1996년 일본 만화주간지 연재를 시작으로 총 38권의 단행본으로 발간됐으며, 이후 텔레비전 시리즈로도 만들어졌다. 게임소프트 회사 코나미가 출시한 ‘유희왕 카드게임’은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영화 <유희왕>은 주인공 유희가 고대 악마와 카드 게임 대회에서 결전을 벌인다는 내용이다.

트랜스젠더 소재 지상파 드라마 다양성 인정하는 성숙함 엿보여

<한강수타령> 후속으로 방송되고 있는 문화방송의 연작드라마 <떨리는 가슴> 제2화 ‘기쁨’ 편(작가 정형수·연출 고동선)이 트랜스젠더를 소재로 다뤄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기쁨’ 편은 성적 소수자인 트랜스젠더가 이끌어가는 가족 관계와 화해, 사랑, 해프닝 등을 휴머니즘적 시각으로 담아냈다. 지상파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트랜스젠더를 다룬 것은 <떨리는 가슴>이 처음이다. 실제 성전환자가 트랜스젠더 역의 주인공으로 출연하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하리수는 성전환 수술을 받고 남자 김창호에서 여자 김혜정으로 변신한 트랜스젠더 역으로 출연했다. 성적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모른 채 어릴 때부터 여자처럼 살던 창호는 집을 떠난 지 2년 만에 성전환 수술을 받고 혜정이라는 이름으로 가족 앞에 나타난다. “자신은 창호의 형일 뿐 혜정의 오빠는 아니다. 더이상 우리는 가족이 아니다”라며 혜정을 거부하는 김창완의 냉대 속에 고개 숙이는 하리수의 연기는 실제 트랜스젠더인 하리수의 상황을 연상시키며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안겼다. 방송이 나간 뒤 이 드라마 시청자 게시판에는 6백여개가 넘는 의견이 올라와 시청자들의 높은 관심을 보여주었다. 트랜스젠더라는 우리 사회의 소수자 문제를 다룬 드라마에 감동을 받았다거나, 트랜스젠더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었다는 등 대부분 긍정적인 내용들이었다. 드라마 제작진은 트랜스젠더를 소재로 삼았다고 해서, 드라마를 통해 사회적·철학적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집착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오히려 그보다는 작은 선물을 주고받을 때 느껴지는 소박한 기쁨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그것을 떳떳하게 인정받을 때 느껴지는 뿌듯한 기쁨까지, 살면서 기쁨으로 가슴이 떨리는 순간을 포착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고 한다. 게시판에는 ‘기쁨’ 편이 트랜스젠더를 미화하고 있는 것 아니냐, 주말 온가족이 시청하는 시간대에 자녀와 함께 보기에 교육적으로 좋지 않다는 등 부정적인 글을 올린 시청자들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극중에서 혜정의 상황은 미화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트랜스젠더라는 사회적 소수자의 고민과 고통, 그들에 대한 사회의 편견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가족에게조차 거부당하며, 부당해고가 되어 부당함을 항의해도 주변사람들에게 조롱거리가 되고, 사람들의 가십거리밖에 되지 않는 그들의 모습을 리얼하게 그렸다. 작가는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사회의 편견과 부당함에 대해, 창완의 “걔도 사람이야”라는 대사로 사회적 소수자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행복추구권이 있다는 것을 얘기하고 있다. 한 시청자는 “외동으로 자라 자기들밖에 모르고 자신들과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왕따같은 것을 만들어내는 아이들에게 세상은 어우러져 살아야 행복하다는 것을, 또 일반인과 조금 다른 사회적 소수자들도 인간답게 살아야 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좋은 드라마였다”는 글을 남겼다. 트랜스젠더는 우리 사회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사람들로,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범죄자가 아니다. 성 정체성이 다수의 사람들과 다를 뿐이다. “난 분명히 여성인데 사람들은 트랜스젠더라 불러요”라는 혜정의 대사는 시청자들에게 사회적 소수자의 문제를 그들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도록 했다. 그동안 금기시돼온 소재들이 지상파에서 자주 다뤄져, 다양성을 폭넓게 인정하는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는 걸음이 빨라질 것을 기대해본다.

[인터뷰] <역전의 명수> 정준호

“잘 되던 못 되던 내 탓인 영화”란다. <역전의 명수> 개봉(15일)을 앞둔 정준호(35)는 1인2역의 여운이 아직 남아있는 것처럼, 초조한 듯 초연한 듯 상반된 표정을 번갈아 내비치며 새 영화 얘기를 풀어갔다. 정준호는 이 영화에서 2분17초 차이로 태어난 쌍둥이 형제 명수·현수 역할을 맡았다. 현수는 출세에 눈이 멀어 애인도 양심도 내던진 서울대 법대 출신 변호사고, 명수는 국밥 마는 어머니한테 빌붙어 사는 역전 ‘죽돌이’. 현수는 ‘잘될 놈에게 몰아주라’는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집안의 기대와 지원을 한몸에 받는다. 반면 명수는 ‘여자 말을 잘 듣자’는 가훈에 따라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현수 대신 군대와 감옥 가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한편, 명수 앞에 나타난 ‘현수가 버린 여자’ 순희(윤소이)는 현수와 똑같이 생긴 명수를 이용해 부모의 원수를 갚으려 한다. 명수는 ‘거사가 끝나면 한 번 자주겠다’는 순희의 말을 곧이 곧대로 믿고 영문도 모른 채 은행털기와 폭행치상에 휘말리지만 인생은 뜻밖에 역전의 발판을 마련한다. 선악구분 확연한 쌍둥이 형제, 연기 자평 55점…아쉽지만 뿌듯 정준호는 1인2역에 대한 욕심 때문에 제발로 제작자를 찾아가 배역을 따냈다. 하지만 이미 영화 <두사부일체>와 드라마 <안녕 내 사랑>에서 ‘일자무식 의리파’와 ‘비열한 악역’을 연기한 적이 있는 정준호에게도, 한 영화 안에서 선·악으로 확연히 구분되는 두 캐릭터를 소화하는 것은 녹록치 않았다. “명수는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돌보며 자신을 헌신하는 사랑의 화신이고, 현수는 성공과 야망을 위해 가족을 희생시키는 욕망의 화신입니다.” 정준호는 판이한 두 캐릭터를 소화하기 위해 그간 쌓아온 경험과 상상력을 총동원했다. “대접 톡톡히 받고 자란 장남이라,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명수를 백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능력만 된다면 조건 좋은 여자 만나고 싶고, 또 현실적으로 가능하다면 군대건 감옥이건 누군가 대신 가주길 바라는 게 사람 마음이겠죠. 현수도 십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경험과 상상력에 덧붙여, 정준호는 <범죄의 재구성>과 <인어공주>를 보며 박신양과 전도연의 1인2역을 사전 연습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번째 1인2역에 대한 자기평가는 55점. 특히 현수 역할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고 했다. “현수가 나쁜 동생으로 변할 수 밖에 없었던 현실적인 이유와 콤플렉스 등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것 같아요. 시나리오의 한계도 있었고, 연기도 부족했습니다. 촬영이 고되고 힘들어 ‘빨리 끝내고 자야지’ 하는 마음으로 찍은 장면들이 있는데, 영화 보는 내내 후회했습니다.” 하지만 정준호는 “<역전의 명수>는 영악하고 세련되게 만들 수 있는 길을 애써 피해간 순박한 사랑 영화”라며 “순박한 영화를 끌고 가는 순박한 1인2역 연기에 애정을 가져달라”고 애교섞인 주문을 덧붙였다. 연기생활 10년 만에 아쉽지만 뿌듯한 1인2역을 마친 정준호는 올 여름 브라운관으로 돌아간다. 6년 만에 드라마로 복귀하는 이유는 “어머니가 텔레비전 드라마를 좋아하시기 때문”. <가문의 영광>에서 호흡을 맞췄던 김정은과 드라마 <루루공주>에서 다시 커플이 된다. 연말에는 정웅인·정운택 등 <두사부일체> 멤버들과 함께 속편 <투사불일체>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코믹드라마 <신입사원> <불량주부> 속 사회풍자

눈물나는 현실이 왜 이렇게 웃기지? 요즘 텔레비전 채널마다 코믹물 일색이다. 이런 가운데 단순한 웃음이 아니라, 사회 현실을 풍자해 뭉클한 웃음을 주는 드라마들이 시청자들의 인기를 얻고 있다. 화제의 드라마는 문화방송의 <신입사원>(극본 김기호 이선미·연출 한희)과 에스비에스의 <불량주부>(극본 강은정 설준석·연출 유인식 장태유). 청년실업 문제를 주요 소재로 한 <신입사원>은 내세울 것 없는 학벌과 배경을 가진 ‘강호’(문정혁)가 LK라는 대기업에 우연찮게 입사해 직장생활을 하면서 겪는 에피소드를 그리고 있다. 강호는 LK그룹 입사시험에서 전산착오로 필기시험 만점을 받아 면접을 보게 된다. 면접관이 영어로 질문을 하자 강호는 옆사람에게 무슨 뜻인지 물어본 뒤 당당하게 한국어로 답을 한다. 즐겨 읽는 책을 물어보자 ‘무협지와 만화책’이라고 답하고, 경제와 관련한 질문에는 ‘생각해본 적 없다’고 대답해 면접장을 경악으로 몰아넣지만, 회사 전무는 강호가 필기시험 만점자라는 선입관에 사로잡혀 강호가 무슨 말을 해도 기특하게만 본다. 입사에 성공한 강호는 신입사원 연수과정에서 조직폭력배와 맞닥뜨리게 되는데, 무서워하거나 기죽지 않고 오히려 회사 물건을 팔 수 있는 기회로 역이용하는 적극성과 대담함을 보여준다. 이렇게 황당한 설정에도, 이 드라마는 일류대학을 나오고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공부형’ 인재들만 대기업에 입사하는 현실을 재미있게 풍자해 시청자들에게 대리만족을 준다는 평을 받고 있다. 한 시청자는 시청자 의견난에서 “비록 영어는 잘 못하지만 임기응변과 순발력으로 어떤 환경에서도 바보스러울 만큼 꿋꿋하고 당당한 강호 같은 인물이 이 시대를 끌어갈 원동력이 아닐까요?”라고 반문했다. <신입사원>은 하청업체의 접대 관행, 학연에 의한 줄타기, 비정규직 문제 등 기업에 만연한 잘못된 관행도 꼬집는다. 특히 아침회의에서 “조직의 뜻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말라”는 문 과장의 주문에 “그러면 회사와 조직폭력배가 다른 점이 무엇이냐?”고 따지는 강호의 모습은 직장인들의 막힌 가슴을 뚫어주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지난 14일엔 일방적으로 해고 통보를 받은 계약직 직원 미옥(한가인)이 1인 시위를 벌이고 강호가 이를 적극적으로 돕는 내용이 방송되자, 계약직 경험자로서 계약직의 비애를 현실감있게 그려 공감이 간다는 시청자들의 의견이 많았다. <불량주부>도 잘 나가던 영업과장 구수한(손창민)이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고 실업자가 되면서 전업주부로 바뀌어가는 모습을 통해 ‘조기 실업’ 문제를 다뤄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사오정’ ‘38선’ 같은 말이 유행하는 시대에 남편들이 겪는 고민과 말못할 괴로움, 그리고 아내들이 직장과 살림, 육아라는 삼중고를 동시에 짊어져야 하는 현실을 생활 속에서 푹 익혀진 에피소드로 보여주며 가슴 뭉클한 웃음을 자아낸다. 구수한이 주문을 따내기 위해 스타킹을 머리에 쓴 채 노래를 부르고 권투선수 흉내를 내거나, 해고 사실을 아내에게 숨기고 주차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아파트부녀회장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마스크를 쓰는 장면, 찜질방 노래경연대회에서 경품을 타려고 아줌마들 앞에서 춤추고 노래 부르는 모습 등은 절로 웃음이 나게 하면서도 코끝을 찡하게 했다. <신입사원>과 <불량주부> 두 드라마가 시청자들의 가슴을 파고드는 이유는 현실에서 낚은 듯한 인물들의 행동과 대사, 그리고 웃길 때는 웃기면서도 시원한 곳을 긁어주는 풍자의 묘미가 잘 어우러졌기 때문일 것이다. 시청자들은 이 드라마들이 단순한 코믹 드라마에 그치지 않고, 강한 사회 풍자와 메시지를 전달하는 드라마로 좋은 결실을 맺길 기대하고 있다. 안방극장 ‘로맨틱 코미디’ 넘실 실패위험 적은탓…실험정신 아쉬워 요즘 안방 극장이 코믹 드라마로 넘쳐나고 있다. 경제난으로 가뜩이나 살기 힘든 시절이라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드라마가 많은 게 꼭 나쁘기만 한 건 아니지만, 드라마가 너무 가벼워지는 게 아니냐는 평가도 많다. 현재 방송 3사가 방영 중인 월화 미니시리즈만 보더라도 모두가 로맨틱 코미디물이다. 한국방송의 <열여덟 스물아홉>, 문화방송의 <원더풀 라이프>, 에스비에스의 <불량주부>는 내용면에선 차이가 있지만 로맨틱 코미디물이라는 점에서는 별 차이가 없다. 수목 미니시리즈도 사정은 비슷해 문화방송이 <신입사원>을 방영 중이며, 에스비에스는 지난 13일부터 명랑 학원물인 <건빵선생과 별사탕>으로 흐름을 이었다. 왜 이처럼 방송사마다 로맨틱 코미디풍 드라마가 넘쳐나는 걸까? 시청률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방송사들이 로맨틱 코미디물은 시청률이 안정적으로 나온다고 믿기 때문이라는 것이 미디어 비평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문화방송의 <영웅시대>나 <슬픈연가>, 에스비에스의 <세잎클로버> 같은 대작이나 블록버스터 드라마는 흥행에 실패한 데 반해 지난해 방영된 <파리의 연인>과 <풀하우스>, <결혼하고 싶은 여자> 등의 로맨틱 코미디풍 드라마는 큰 인기를 얻었다. 올 들어서도 <쾌걸춘향>이 히트를 치자 방송사마다 로맨틱 드라마가 상대적으로 위험 부담이 적다는 공감대를 이뤘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하지만 아무리 로맨틱 코미디가 재미있다고 해도 채널마다 비슷비슷한 드라마가 계속 나온다면 시청자들이 식상해할 가능성이 크다. 코믹 드라마 붐에 대해 한 드라마 피디는 “유행은 말 그대로 일시적인 것”이라며, “실험정신으로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하는 드라마가 진정으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는다는 점을 제작진들이 빨리 깨달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부장 신화의 복음서, <주먹이 운다>

아무래도 한국 남성에게는 재기전이 필요하다. 경제위기가 불러온 가부장의 실패를 한방에 만회할 재기전이 필요하다. <주먹이 운다>는 ‘칙칙한’ 과거에서 벗어나 ‘신인왕’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은 한국 남성의 욕망을 담은 영화적 재기전이다. 남성들은 다시 가족의 ‘왕’으로 돌아가기 위해 주먹을 휘두르고, 윗몸을 일으키고, 피를 흘린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죄사함을 받는다. <주먹이 운다>는 21세기 서두부터 인기리에 상영되고 있는 한국영화 남성 재기전 시리즈의 2005년 봄시즌이다. 시리즈의 배경은 과거의 무대를 벗어나 오늘의 현실로 옮겨왔다. 이제는 직설법이다. 사업에 실패한 중년도 재기해야 하고, 범죄의 나락에 떨어졌던 청년도 일어서야 한다. 물론 시절이 시절인 만큼 예전의 영화를 온전히 되찾기는 어렵다. 감히 ‘세계 챔피언’은 꿈꾸지 못하지만, ‘신인왕’은 욕심낼 만한 현실이다. 한때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가부장의 권위가 추락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출구가 보이지 않는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가부장의 권위는 ‘그래도’ 다시 기댈 언덕으로 떠올랐다. 가부장제를 의심했던 가족조차 가부장제의 향수에 시달린다. 가부장의 권위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려 한다. 우리가 길들여진 가부장적 심정은 그토록 도저하다. <주먹이 운다>를 보면서 우리는 또다시 가부장제의 주술에 걸린다. 영화를 보러 가는 길에 용산역 광장에서 마이크에 대고 “짐진 자들이여 내게로 오라”를 외치는 사람들을 보았기 때문일까? 영화 초반에 인간 샌드백 강태식이 “울분에 가득 찬 모든 이들이여, 내게로 오라”고 외치자 <주먹이 운다>가 꼭 종교영화처럼 느껴졌다. 남자들이 온몸으로 고된 시련의 과정을 겪어내고, 가혹한 시련에서 뼈아픈 깨달음을 얻고, 우리는 남자들의 죄를 사하여 주고, 마침내 남자들을 다시 우리의 믿음직한 지도자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그린 종교영화 말이다. 영화를 보고 나니 “울분에 가득 찬 이들이여, 내게로 오라”는 대사는 “세상에 대한 울분에 가득 찬 관객이여, <주먹이 운다>를 보라”는 뜻으로도 이해됐다. <주먹이 운다>에는 우리가 보고 싶어하는 모든 것들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아빠(혹은 아들) 힘내세요, 우리가 믿잖아요 권투라는 80년대 복고, 피칠갑하는 남성 신파, 어떠한 고난도 이겨내는 가족주의까지, <주먹이 운다>는 최근 한국영화의 흥행 코드를 빠지지 않고 담고 있다. 잘 팔리는 재료들을 골고루 담아 만든 감동의 종합선물세트다. 그 재료들에 색다른 조미료도 첨가하지 않았다. 되도록 익숙한 방식으로 요리한다. 그래서 적당히 입맛에 맞지만, 강렬한 뒷맛을 남기지는 않는다. 볼 때는 눈물겹지만, 금방 잊혀진다. 일단 불행의 레퍼토리가 뻔하다. 불효자의 아버지는 돌아가신다. 설마 할머니까지 아프지는 않겠지 하는 순간 할머니는 병상에 누워 있다. 실패한 가부장의 아들은 아버지를 외면하고, 아내는 남편을 버린다. 그 모든 것들은 너무나 통속적이지만(혹은 통속적이어서) 너무나 간절한 욕망의 대상이다. 물론 통속적일 수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통속적’이라는 고투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것이 문제다. 영화는 그저 마지막 감동 한방을 위해 관객을 정신없이 코너로 몰고 간다. 강태식의 캐릭터는 한때 사랑받다가 이제는 버림받은 자들을 겹쳐 만든다. 왕년의 권투선수나 실패한 가부장이나 버림받긴 마찬가지다. 먹고살 만해진 국민이 맞으면서 싸우던 권투선수를 잊었고, 생활고를 겪는 가족은 돈 못 버는 가부장을 원망한다. 이중의 실패는 강태식의 비극을 만들어낸다. 권투선수 강태식이 “우리 국민들이 정말 우리한테 이러면 안 돼”라고 말할 때 “가족들이 나한테 이러면 안 돼”라는 가부장의 하소연이 겹쳐진다. 소년원의 류상환(류승완)은 지극한 사랑을 받지만 지독한 실망으로 돌려주는 인물이다. 상환의 불행도 너무나 익숙하다. 할머니와 아버지의 거듭된 불행은 신문 사회면의 상투적 기사를 떠올리게 한다. 양아치 어법은 여전히 생생하지만, 몇몇 대사는 새롭지 않다. “빠나마의 홍수환”이나 “88올림픽의 김광선”은 이제 닳고닳은 관용어구처럼 들린다. 상환이 자신을 괴롭히는 소년원 동기의 귀를 물어뜯는 장면에서는 타이슨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주먹이 운다>는 지나치게 불행을 설득하려 한다. 강태식의 불행을 묵묵히 지켜보는 국숫집 주인 상철(천호진)의 한마디는 역설적으로 설득력을 얻는다. 상철은 희망을 잃고 술주정 부리는 강태식에게 “야 강태식, 이 세상에 사연 있는 사람, 너 하나뿐이 아냐”라고 쏘아붙인다. 누군가는 이 말이야말로 <주먹이 운다>에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고 일갈했다. 우리는 모두 사연이 있는 사람들이어서 영화를 자기 이야기로 느끼고 눈물 흘린다. 우리는 또한 모두 사연이 있는 사람들이어서 영화의 아름다운 결말에 허탈하기도 하다. 그 모든 흥행 코드들을 모아놓았으니 감독이 ‘웰메이드’ 하면 흥행은 따놓은 당상이다. 영화는 웰메이드됐고, 관객을 울게 한다. 하지만 영화관을 나서면서 아쉬움은 커진다. 류승완 없는 류승완 영화였음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주먹이 운다>에는 비주류의 재기는 휘발되고 주류의 욕망이 남아 있다. 블록버스터가 되고 싶은 욕망이 너무 강렬하다. <주먹이 운다>는 짐작할 만한 결말로 끝난다. 지독한 시련에 증폭되던 갈등은 손쉽게 봉합된다. 두 주인공의 가족들은 한명도 빠짐없이 링 주변에 모여서 눈물을 흘리고, 영화의 출연진 일동은 신인왕전이 중계되는 텔레비전 앞에서 응원에 열을 올린다. 강태식의 ‘프레셔스’인 은메달을 빼앗아갔던 피도 눈물도 없는 조폭도, 류상환을 끝까지 ‘갈구던’ 소년원생들도 옹기종기 모여앉아 인간 승리의 드라마에 마음을 졸인다. 모든 갈등은 봉합되고, 순식간에 ‘우리는 하나’가 된다. 그리고 두명의 신인왕이 탄생한다. 승패가 갈라놓을 수 없는. 신인왕전의 진정한 심판이었던 강태식의 아들과 류상환의 할머니는 돌아온 탕아들을 기꺼이 끌어안는다. 아들은 “아빠가 뭐가 미안해”를 울부짖으면서 아버지를 부둥켜 안고, 할머니는 ‘모큐슈라’의 한국어 번역어인 “내 새끼”를 되뇌면서 손자를 감싸안는다. 그리하여 그들은 죄사함을 받고 가족의 중심으로 다시 돌아온다. 추신. <밀리언 달러 베이비>와 <주먹이 운다>는 우연히 권투를 소재로 가족 이야기를 하는 공통점이 있다. 영화의 소재는 같지만 영화의 선택은 다르다. 아웃사이더 출신 한국 감독은 전통가족을 복원하고, 메이저 출신 미국 감독은 일종의 대안가족을 선택한다. 아이러니한 선택이다. 역시 현실은 무섭다. 가족의 위기가 오래된 미국에서는 보수적인 감독조차 (생각이 있다면) 진보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고, 가족이 아직 신화로 남아 있는 한국에서는 ‘과격하지’ 않으면 전통적인 결말 너머의 상상력은 갖기 힘들다. 현실은 상상력을 잠식한다. 그래도 아쉽다.

오! 영화에 빠진 광란이여, <몽상가들>

아둔할지 몰라도 잊혀지지 않을, 젊음과 시네필리아, 68년 5월 학생 운동에 대한 찬가인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몽상가들>은 경쾌한 박자로 시작해 에디트 피아프의 떨리는 “Non, je ne regrette rien”으로 끝난다. 당신이 영웅적 유아론(唯我論), 끊임없는 섹스(혹은 풍성한 누드장면들)와 시네필리아에 대한 실내악적 탐닉을 후회하건 안 하건 우습기까지 한 이 영화는 분명히 베르톨루치의 작품이다. 아마 1968년 이후 젊은이들의 “척하기”가 이처럼 텅 비었던 적이 있던가. 멍하니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같이 잘생긴 얼굴로 호감스런 느릿함을 지닌 촌놈, 매튜(마이클 피트)는 파리의 시네마테크에서 한쌍의 남매, 거만하고 묘한 이자벨(에바 그린)과 낭만적이고 빤히 바라보는 테오(루이 가렐)를 만난다. <추한 미국인>(The Ugly American, 1963)이 <무서운 아이들>(Les Enfants Terribles, 1950)을 만나다. (실제 배우들도 프랑스 영화계의 유명인들의 자녀들이듯) 유명한 시인의 아이들인 이자벨과 테오는 샴쌍둥이처럼 서로 얽혀 있다. 예쁜 어깨에 나 있는 상처가 둘이 한때 연결되어 있었음을 시사한다. 매튜는 이자벨의 라이터와 식탁보의 패턴 사이의 신비한 우주적인 관계를 설법해 진지하고 주름진 아버지에게 깊은 인상을 주고 하룻밤을 지내도록 초대를 받는데 아마 그건 마약도 하지 않고 몽롱해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리라. 부모는 다음날 긴 휴가를 떠나고 매튜는 집에 남는다. 매튜의 여정은 길고 낯설까? 길버트 아데어의 (영화보다 더 미묘하고 모순적이며 총명한) 소설을 각색한 <몽상가들>은 청소년기의 신성함이 짙게 깔려 있지만 시대의 여운은 전혀 없다. 빛은 꿀처럼 떨어져내리고 재니스 조플린은 스테레오에서 고양이처럼 으르렁거리고 있지만 이자벨의 옷은 너무 세련되고 마오쩌둥은 우스꽝스럽게 여기저기에 널려 있다. 끊임없는 표시들에도, 진정 영화는 <인터뷰>나 <베니티 페어> 잡지의 접혀 있는 광고 사진처럼 지금 펼쳐질 듯하다. (출처야 무엇이든 간에 추모 밴드의 작품인 듯한) 클래식 로큰롤로 치장되고 영화 클립들로 처발라져 있는 <몽상가들>은 때때로 서툰 <포레스트 검프> 같다. 베르톨루치는 당대의 뉴스릴과 나이 든(<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의 순진한 시네필리아 정신이었던) 장 피에르 레오의 선동적인 연설을 섞어 시네마테크의 설립자, 앙리 랑글루아의 해고를 보여준다. 더욱 지독하게 베루톨루치는 다양한 30년대와 60년대 영화(<네 멋대로 해라>(breathless, 1960)가 가장 거슬린다) 파편들을 집어넣어 주인공들의 세계관을 보여준다.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매튜와 테오가 버스터 키튼과 찰리 채플린에 대해 비교하여 논쟁하는 장면이다. 가장 악용된 삽입은 브레송의 <무셰트>(Mouchette, 1967)이다. 근친상간인 듯 보이는 쌍둥이에게 영화 퀴즈가 항상 떠나질 않고 비오는 오후는 계속된다. 테오가 이자벨이 흉내낸 마릴렌 디트리히의 <푸른 천사>(The Blue Angel, 1930)에 나오는 고릴라 춤을 맞히지 못했을 때 자기 침실 벽에 신전처럼 걸린 <푸른 천사> 포스터 앞에서 공개적으로 자위를 하도록 벌칙을 받는다. 곧 이자벨도 테오가 흉내낸 폴 무니의 <스카페이스>의 죽음을 맞히지 못하고 매튜에게 호의를 베풀게 된다. 뚱한 테오가 오믈렛을 만들고 미국인이 부엌 바닥에서 도도한 이자벨의 몸 위에 오르는 동안 거리에서 일어나는 혁명! <몽상가들>은 나쁘지만 비슷하게 과장되었던 <리틀 부다>나 <스틸링 뷰티>와 달리 지루하지 않다. 베루톨루치는 매혹적인 아파트를 보여주는 기술적 도전을 뛰어넘는다. 셋이 욕조에서 마약에 취해 있을 때에도 카메라는 이들과 함께 몽롱해져간다. 하지만 남자아이들이 동성애를 하리라고 기대는 너무 기대마시라. <몽상가들>은 베루톨루치의 뉴에이지식 “나릿님” 판타지였던 <하나의 선택>처럼 눈치없게 거슬리진 않으니까. 다만 만취해 있을 뿐이다. 가장 어처구니없는 장면을 꼽는다면 난 데이트 장면을 고르련다. 매튜와 이자벨이 뒷줄에 앉아 <여자는 도울 수 없어>(The Girl Can’t help it, 1956)를 보면서 서로를 애무하고 거리로 나와 키스하고 있는 동안 상점 진열장 속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장면들은 다시금, 혁명! 오, 영화에 빠진 광란이여! 시작 부분에 나오는 입을 쩍 벌리고 <충격의 복도>(Shock Corridor, 1963)를 보던 시네마테크의 관객이 잘 꾸며낸 마지막 장면과 어울리며 비애를 느끼게 한다. 결국 베르톨루치는 이 “무서운 아이들”이 자기들이 찾던 영화를 발견했다고 알려주는 것이다. 바로 ‘혁명’이라는 영화를!!! 놀란 매튜를 불운한 관객으로 남기고 영화 속으로 들어가는 아이들. 바로 그때 <몽상가들>은 60년대의 삶에 대한 느낌을, 이 영화는 아닐지라도, 하나의 영화로 구체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