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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감독, 관객을 만나다 [2] - 장진 ①

“영화 많이 좋아하지 마세요, 아류가 돼요” 이날은 원래 박찬욱 감독과의 대화가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전주영화제에서 <공동경비구역 JSA> 상영행사에 참가하고 올라오던 박찬욱 감독은 6시쯤 차가 너무나 막혀 제 시간에 닿기 힘들 거라는 소식을 전해왔고, <씨네21> 진행자는 부랴부랴 5월2일 순서로 예정돼 있던 장진 감독님을 모셨습니다. 박찬욱 감독을 만나러 참석했던 독자 여러분, 그리고 5월2일 장진감독과의 대화를 기다리던 분들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다시 한번 드립니다. 이탈리아의 ‘우디네영화제’에 참가했다가 서울에 온 지 불과 2시간 만이라 경황도 없으셨을 텐데 특유의 재치있는 솜씨로 행사를 이끌어준 장진 감독님께는 감사하다는 말씀을 다시 전합니다. 안녕하세요? 장진입니다. (박수) (마이크를 뽑아들고 일어서며, 사회자석에 앉아 있는 남동철 기자에게) 여기 계속 앉아 계실 건가요? (남동철 기자, 웃으며 내려간다. 단상 테이블에 걸터앉는 장진 감독.) 제가 이탈리아의 무슨 영화제에 갔다가 오늘 2시간 전에 서울에 왔어요. 그래서 시차적응도 안 되고, 한국말도 많이 잊어버려서…. (웃음) 이 자리가 참 애매해요. 무턱대고 ‘젊은 감독들, 관객을 만나다’라고 해놓았는데, 관객 만나서 뭘 어쩌자구? (웃음) 게다가 이 네명을 다같이 젊은 감독이라 그러면 어떡해요. 박찬욱 감독이나 김지운 감독은 나한테 삼촌뻘인데…. (웃음) 저는 지금 32살이에요. 71년생이죠. 학교 다닐 때는 연극을 했고 안 믿겠지만 연기를 전공했어요. 그러다 만들어보고 싶어서 연출을 했고, 내가 하고 싶은 얘기 써보고 싶어서 써도 봤고…. 솔직히 영화가 꿈은 아니었어요. 저는 영화를, 1995년 말 <개같은 날의 오후> 시나리오를 쓰면서 시작했어요. 그리고 <모래시계>의 김종학 감독이 불러서 제이콤 들어가서 <쿠데타> 준비하다가 잘 안 돼서 심심해서 쓴 게 <기막힌 사내들>이었어요. 1주일인가 열흘 만에 썼는데, 김종학 감독이 보고 “이런 거 누가 하냐, 네가 해라” 해서(웃음) 원한 것보다 빨리 감독을 하게 됐죠. 그리고나서 ‘반공영화’ <간첩 리철진>, ‘킬러권장영화’ <킬러들의 수다>를 했죠. 단편이나 디지털 단편작업도 조금 했구요. 기타 연극도 좀 했어요. 그런 절 더러 ‘크로스오버’라는 말을 하기도 하죠. 하지만, 전 제가 그냥 이야기꾼이라고 생각해요. 감독 되기는 쉽다, 감독으로 살기는 어렵다 비가 오는 날 여기까지 찾아왔다면 저보다 몇배 더 영화에 대한 광팬이겠죠. 오늘 여러분과 2시간 동안 이야기를 할 텐데 제 얘기의 30% 정도는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고 심지어 책에도 나와 있는 것일 테고, 30%는 아무도 얘기하지 않는 것들일 거고, 40%는 나부터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새빨간 거짓말일 거예요. 그런 걸 염두에 두시고… 제가 요즘 한국영화판에 대해 할 수 있는 얘기를 좀 해볼게요. 대한민국은요, 감독 되기 가장 빠른 나라인 것 같아요. 감독이 되는 길은 크게 4가지가 있죠. 옛날식으로 충무로에서 연출부부터 시작해서 10년 걸려 조감독, 감독 되는 거. 근데 확률은 얼마 안 돼요. 다음, 1990년대 중반 ‘검증 안 된’ 유학파들이 들어왔는데, 이제는 거의 그 바람은 사그라들었죠. 다음, 국내에 자생적으로 생긴 독립영화인들의 경우예요. 어디 단편영화제에서 상을 받거나, 하다못해 졸업작품이 눈에 띈 후 감독이 된 경우인데, 그들은 나름대로 선방하고 있죠. 허진호, 정지우가 그 예예요. (웃음) 단편영화에서 먹을 거 다 먹고 온 분들이죠. 다음이 시나리오를 쓰다 감독이 되는 경우예요. 라인 프로듀서 시스템 안에서 차라리 좋은 각본가가 감독 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돌았고, 그 예가 김지운, 김기덕, 장진이죠. (웃음) 시장에 빨리 나간다는 장점은 있는데 전문 시나리오 작가가 없다는 문제가 있어요. 지금 유학파 바람은 죽었지만, 단편이나 조감독 출신 중에 모든 사람들이 ‘0순위’라고 하던 사람들은 첫 작품은 실패해도 두 번째, 세 번째 작품은 성공하더라구요. 송해성 감독이 그 경우예요. 요즘은 20대 감독들도 많은데, 감독되기는 쉽지만 감독으로 살기는 어려운 나라가 또 한국이에요. 저는 언제나 ‘이 작품이 유작이 될지도 몰라’ 하며 만들고 있어요. 어떻게 보면 감독은 불행하고 위험한 직업이에요. (이 밖에도 배급사의 힘, 라인프로듀서 시스템, 시나리오 작가의 현실, 배우 캐스팅의 문제와 대안, “실력으로 승부해야지, 젊은 사람들 중에는 쪽팔려하는 사람도 있다. 태권도 쿼터를 생각해보라”는 스크린쿼터에 대한 딴죽 등 한국영화계 전반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고, 곧 질의응답 시간이 시작됐다.) -저는 장진 감독님의 광적인 팬이거든요. 휴가 나와서 내일 복귀하는데, 원래 5월2일이 장진 감독님 차례라 안타까워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순서가 바뀌니 인연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너무 좋아서 여기저기 (팬클럽에) 가입을 했는데, ‘필름있수다’는 서울예대 사람들 위주의 조직이더라구요. 저는 연대라서…. 어떻게 안 될까요? =조직이라니까 좀 그렇네요. (웃음)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학연이에요. 서울예대도 막 가고 싶어 간 학교는 아니었어요. 저는 전문대를 7년 다녔는데(웃음) 친척들은 절더러 ‘의대 다니냐’고 했죠. 군대 어디 있어요? 빨리 군대 마치고, 졸업하고 들어와요. -저는 연극 전공으로 입학해서 영화로 전공을 바꾼 연극영화과 학생인데요, 감독이 하는 일 중엔 연기지도도 있잖아요. 연극을 하고 영화하는 게 어떤 도움이 되나요? =도움이 많이 돼요. 제가 스물여섯살 때 첫 영화 연출을 하면서, 최종원, 양택조, 이런 분들을 상대했거든요. (웃음) 저는 연극할 때 연기지도를 하는 게 아니라 연기제안을 해요. ‘이게 잘 안 되면 이런 것 어떻겠냐.’ 그래도 그래도 안 되면 ‘미안하다. 너 딴 역할 해라’ 뭐 이렇게. (웃음) 영화 갓 연출하는 사람들이 헤매는 이유가 카메라 스위치 켜기 전에 배우를 고작 5번밖에는 못 만나는 데 있어요. 연극하는 사람들은 한 작품 올리기 위해 배우를 50번은 만나잖아요. 저는 <택시 드리벌> 때는 당대 최고배우라는 최민식씨를 60번은 만났어요. 싸우기도 많이 했지만…. 그렇게 해본 감독은 배우를 어떻게 대하고 다뤄야 하는지 잘 알고 있죠. 연극은 직접 연출을 안 하더라도 연습현장에 있기만 해도 도움이 될 거예요. -학교에서 영화소모임을 하면서 영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사람들하고 치이고 부딪히고, 영화만들기가 너무 힘든데, 현장에서의 노하우를 알려주세요. =뭐, 카리스마죠. (웃음) 그게 웃을 문제가 아니에요. 카리스마가 얼마나 현장을 부드럽게 하고 모든 사람들을 편안하게 하는데요. 인상, 욕, 골질, 이런 게 카리스마는 아니에요. 이 작품에 관한 모든 것을 감독은 누구보다 제일 잘 알고 있어야 해요. 그게 카리스마예요. 예를 들어 점심을 언제 먹냐 하는 문제가 있다고 해요. 감독이 몇컷을 얼마 만에 찍을지 딱 예상을 해서 그대로 연출부가 식당 예약을 하고 먹는 거하고, 잘 몰라서 예약하라고 해놓은 시간에도 계속 촬영 못 끝내고 있는 거하고, 얼마나 현장이 달라지는데요. 감독은 사람이 하는 일이라 유연성도 중요하죠. 감독이 너무 꿍하거나 너무 예술가면 안 좋아요. 가끔 조명부 막내 어깨도 주물러주고, 그의 이름도 불러주고… 저, 그런 거 잘해요. (웃음) -<킬러들의 수다>에서 화면을 둘로 분할한 장면이 참 재밌었어요. 어떻게 생각해내신 거죠? 그리고 캐스팅 기준은 어떤 건가요? =화면 분할한 건, 대단한 건 아니고 한번 해본 거예요. 근데 그런 치기어린 테크닉은 한달 후에 보면 후회가 돼요. ‘내가 왜 이렇게 까불었지?’ 하게 돼요. 그저 관객이 뭘 좋아할지 반발 앞서 알고 그걸 한 것이거든요. 캐스팅은, 물론 스타가 좋아요. 관객이 많이 들어서가 아니라 스타는 이름값을 하거든요. 신현준이나 원빈이나 제가 캐스팅할 때만 해도 그렇게 스타는 아니었죠. <킬러들의 수다>는 그래도 제 영화 중에서는 호화 캐스팅이에요. 근데 그들, 정말 이름값을 하더라구요. 신현준보고 눈만 부라린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정말 연기 잘하는 배우예요. 정말 그 가격대 그런 배우 없어요.(웃음) 아무도 모르던 장면간 연결문제 같은 걸 딱딱 집어냈죠. 원빈은, 뭐 꽃미남이라고 하잖아요. 전, 처음 보고 기획사 사람한테 ‘애 옷도 안 사주냐’고 했어요. (웃음) 원빈은 카메라가 어떻게 클로즈업 들어가도 다 각이 나오는 흔치 않은 배우에요. 스타의 이름값이라는 것, 하지만 저는 그것 때문에, 내가 원하는 걸 바꾸지는 않아요. 한석규 캐스팅이 안 돼서 영화 엎어지고, 그런 건 말도 안 되잖아요. 내가 만들려는 이야기보다 위에 있는 건 없어요. -하지만 제작사하고 부딪히는 경우도 많을 것 같은데요. =하면 할수록 귀를 많이 여는 편이에요. 그들 말이 나중 가면 맞거든요. 그나마 내가 썼기 때문에 저는 ‘싫으면 관둬요’ 하고 시나리오 들고 나오는 수가 있어서 내맘대로 할 수 있는 거죠. 소소한 것들은 귀를 점점 열고 있지만, 정말 중요한 게 어긋나면 누워야지, 별 수 있나요. (웃음) 배 째라 하는 거예요. <킬러들의 수다> 때 정재영 캐스팅 갖고 한번, 마지막 검찰청 들어가 총쏘는 장면 갖고 한번, 총 2번 누웠어요. (웃음) -감독님 영화에는 같은 여자 이름이 계속 나오는데요. 자기를 버린 여자라는 소문이 있는데, 영화 보고 돌아오라는 건가요? =<씨네21> 안 보시죠? 거기 문답 코너에 나왔는데. 제 영화에는 ‘화이’라는 여자가 계속 나오는데, 역대 화이만 모아도 꽤 될 거예요. 그걸 갖고 제 과거를 추측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데, 과거 여자 얘기하면 어떤가요. 그런데 그런 건 아니구요, 그냥 지은 거예요. 저는 소개팅, 미팅, 헌팅, 이런 거 한번도 안 했거든요. 근데 화이라고 해놓고서 ‘화이팅!’ 하는 거죠. (웃음)

정성일 · 허문영, 임권택 감독을 만나다 (2)

시대의 멋과 흥, 문화 정성일 이 영화는 장승업이 그림 그리는 장면으로 시작해서 자막이 떠오를 때 장승업이 그림 그리는 장면을 보여주는 대신에 차를 우려내는 과정을, 그 단아한 과정을 일일이 찍어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또 영화 중간중간 그림을 그리고 있는 동안에도 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이별가>가 나오는 대목과 <흥타령>이 나오는 대목이 맞물려들어갈 때 그것이 갖고 있는 힘이 종종 그림을 압도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니까 사실 <취화선>의 관심은 장승업이라는 한 화가의 치열한 거듭나려는 노력과 동시에 그 시대의 멋과 흥, 즉 수많은 다른 문화들인 것 같습니다. 임권택 나는 거듭 얘기하지만 우리만이 가지고 있는 우리의 삶과 문화적 개성을 영화에 담고 싶은 거예요. <서편제>나 <춘향뎐>에서 어쩌면 트레이닝이 됐다고 할까,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이제는 어떻게든 폭넓게 수용해서, 환쟁이가 살아가고 있는 땅의 사람들의 총체적인 문화적 개성이나 정서랄지, 이런 것들을 이렇게 아우르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굉장히 포괄적이고 넓게 수용해간다는 인상을 받았다는 것은 사실이라고 생각한다고. 실제로 그런 노력을 무진장 했으니까. 어쨌거나 그것 때문에 장승업을 쫓던 흐름이 잠시 좀 빛깔을 잃는다고 해도 넓게 봐서는 절대로 그럴 리 없다고 봐요. 오히려 강렬한 어떤 것을 심어냄으로써 우리 소리, 우리 문화, 그리고 그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정서가 크게 뭉뚱그려지면서, 그러니까 지엽적 단위로 꼬집어서 얘기할 수 없는 큰 감동이, 나는 반드시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고. 그런 걸 노린 거야, 그런 걸. 허문영 감독님이 처음 이 영화에 대한 구상을 말씀하셨을 때, 참 굉장한 야심을 갖고 시작하신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중 하나가 감독님이 90년대 들어서 계속해오시던, 근대화 과정에서의 한국인의 뿌리 뽑힌 삶에 관한 얘기를 또 다른 방식으로 하실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왜냐하면 시대상이 <개벽>이나 <서편제>와 인접하거나 겹쳐지는 시기이기 때문에. 제 방식대로 얘기하자면 근대와의 불화가 감독님 영화의 주된 모티브라고 봅니다. 장승업에게는 어떤 방식으로 근대적인 게 다가올까라는 점을 궁금하게 여겼어요. 그런데 뜻밖에 <취화선>에서는 이를테면 <개벽>이나 <서편제>에서처럼 근대적인 것이 장승업의 삶과 충돌한다기보다 약간 추상적인 수준에서 세상사의 번뇌의 하나처럼 그려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근대화의 불화라는 모티브를 이번엔 의도적으로 축소하고 있다는 느낌. 임권택 축소한 것은 아니에요. 장승업 선생의 드러난 행적을 보고 있으면 순탄치 않았던 역사적 격변과 맞닿아 있는 곳이 한 군데도 없어요. 그럼 배제시킬 것인가. 즉, 세상이야 어찌 됐던 그냥 그림 속에 빠져서 사는 인간으로 그럴 것인가. 이 문제에 부딪히는 거지요. 근데 절대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이 사람은 산에서 승려들 살 듯이 그렇게 산 게 아니고, 세속에서 상당히 깊이 들어와 살아왔단 말이에요. 더군다나 이 사람의 후원자들은 이른바 개화사상을 전파한 지식인들이란 말이에요. 장승업도 그런 세상 흐름에 대해서 전혀 뚝 떨어진 세월을 살 수가 없는 거예요, 듣는 게 있는데. 그런데 이런 건 그림에 전혀 드러나지 않았어요. 그러니 이 사람을 억지로 근대화되어가는 어떤 실제 역사 속에서 그런 조류와 만나, 개화에 대한 자기의 생각을 해가면서 살아가는 인간으로 해낼 수는 없는 거야. 그렇다고 이 큰 사건들로 점철된, 국가의 명운이 걸린 사건들과 물리는 시대를 아주 나 몰라라 하고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 그려가지고는 또 말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저거죠. 동학 봉기와 얽히는 부분인데. 그걸로 봐서는 뭔가 바뀌어야 될 세상이라는 인상을 영화 전체가 담고 있는 거 아니겠어요. 장승업 자신도 신분적으로나 뭘로 봐서 그 안에 충분히 휘말릴 수 있는 인간이란 말요. 새로움을 추구하는 물결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사람인데도 그런 것이 없기 때문에 그림으로 해결하는 거예요. 매에 쫓기는 되새떼 그림으로. 정성일 그 대목 대해 저는 굉장히 토론할 부분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한편으로 <취화선>이라는 영화에 담겨 있는 많은 장면들이 근대에 부정적인 입장을 갖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갖게 하는 많은 대목이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이 영화 전체의 이야기 속에서 장승업이라는 사람이 초반부터 끝까지 만나는 사람은 두 사람이었습니다. 한 사람은 매향이었고 또 한 사람은 김병문이었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두 사람은 모두 허구의 인물인데, 이미 근대에 들어선 사람이었습니다. 매향은 천주교 신도였고 또 김병문은 개화파 지식인이었습니다. 하여튼 이 허구로 만들어낸 이 인물을 의도적으로 김옥균의 개화파의 관점에 세워놓고 처음부터 영화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평생 만나는데 장승업은 천주교에도 전혀 영향받지 않고, 김병문에게도 끝내 영향받지 않는 사람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임권택 그것은 <개벽>을 거슬러서 얘기할 수밖에 없는데, <개벽>에서도 똑같은 소리를 하고 있어요. 동학의 봉기가 바람직한 것이었지만 외세를 불러들이는 빌미를 줌으로써 조선이 문 닫는 데 속도를 가속화시켰다는 거죠. 이것은 사실이요. 그때 아주 싫은 소리를 많이 들었어요. 왜 농민전쟁에 대해서 포커스를 맞추지 않고 최시영을 다뤘냐 하는 얘기요. 나는 그때 어떤 얘기를 했냐면, 나는 농민전쟁에 대해서 찍으려고 한 게 아니고, 최시형 선생이 평생을 걸고 지키고자, 넓히고자 했던 동학에 관심을 맞췄다, 어찌보면 성급한 봉기가 조선을 닫는 것을 가속시킨 단점을 가진 데 비해서, 개벽이라는 것은 민주적 세계와 맞닿고 있는 것이었기에 훨씬 더 소중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찍었던 영화라고. <취화선>에서도 김병문이 개화를 통해서 나라를 바꾸고자 했던 것이 이제 다 일장춘몽이라고 자각하는 것은 <개벽>과 똑같은 시각으로 시대를 읽어내고 있는 거요. 패배주의자로서 어떤 늪에 빠져 있는 게 아니요. 정성일 한편으로는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역사적 시기가 조선 500년사에서 아주 특별한 시기이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장승업과 조선화에 대한 관심이 있겠지만, 또한 한편으로 이 영화는 역사적인 사건들을 함께 타고 가고 있습니다. 사실 제가 이러한 생각을 멈출 수 없었던 가장 큰 까닭은 이 영화는 명백히 1897년에 끝나고 있다는 것 때문입니다. 언제 죽었는지 알 수 없는 사람인데도 1897년, 딱 못박아서 영화를 끝내고 있습니다. 1897년이면 조선이 끝나고 대한제국이 시작됐던 바로 그해라는 것과 영화의 끝이 딱 맞물려 떨어집니다. 그래서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겁니다. 임권택 그렇게 바라볼 수도 있겠으나, 나는 전혀 그런 쪽에 눈을 돌리지 않았다고. 이 영화는 그런 기울어진 시대를 중요하게는 다루고 있지만, 장승업이라는 한 환쟁이를 통해서 큰 동양화를 그린다는 데 더 큰 목적이 있었지. 나는 근자에 와서 그런 생각을 해요. 영화가, 무슨 우리의 아픔을 어떻게 드러내고 어떻게 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사회를 교화시킨다고 하는 데는 굉장히 미미한 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별것이 아니에요. 최근에는 영화라는 매체가 사람의 삶에 대해서, 이 고단한 삶에 대해서 조금 정서적으로 풍요로움쪽으로 기여해주는 그런 편한 영화가 더 바람직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해요. 내가 나이 들어서 그런지 몰라도. <서편제>, 그리고 10년 정성일 지금 하신 말씀이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에 <서편제> 찍고 나서 했던 말씀과 반대네요. 그때 기억나는 얘기가, 영화가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고며 만들었는데 이렇게 사회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정말 무겁다는 것이었죠. 임권택 이 사람이 별걸 다 기억해가지고…. (웃음) 그때와 다른 것이 10년이라는 세월이 있는 거요. 그때로부터 한치도 변함이 없는 것을 진리인 양 끌어안고 살 리가 없잖아요. 변할 수밖에 없는 거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또 달라지고 또 거듭 달라지는 건데, 10년 전에 너 이런 얘기해놓고 지금 와서 또 무슨 딴소리하고 있냐는 질문은 그 질문 자체가 우스운 거요. 나이에 따라서 세상 보기가 끊임없이 달라진다고 생각해. 무슨 큰 덩어리의 이데올로기를 끌어안고 사는 사람들이면 몰라도 그런 것은 아니라고. 허문영 제겐 약간 충격적인 말씀으로 들립니다. 감독님 말씀을 듣고나니 확 풀리는 의문이 있습니다. 저는 김병문이라는 존재가 좀 애매하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장승업한테 좀더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김병문은 개화파였고, 계몽주의자였고, 그림이 민중의 삶을 그리고 교화시키는 데 일익을 담당해야 한다는 생각을 장승업에게 말합니다. 선경이 아닌 진경을 그리라는 말. 요즘식으로 말하면 판타지가 아닌 리얼리즘을 추구하라는 뜻이지요. 그러나 결국 장승업은 궁극적으로는 승복하지 않았지요. 어릴 때 생명을 구해준 은인이고 자기의 평생의 후원자이기는 한데, 결국 장승업한테 예술세계나 정신세계에나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사람으로 남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김병문조차도 결국 선경을 지지합니다. 감독님의 지금 말씀을 들으니까 김병문이 그런 인물이었던 이유가 좀 짐작이 되네요. 임권택 김병문은 말하자면 장승업이 살아가고 환쟁이로서 거듭나는 데 필요한 장치였지, 그걸 통해서 그림의 세계를 확 바꾸고, 그런 것은 아니었다니까. 왜 애매하냐 하면 김병문은 개화에 모든 것을 걸고 산 사람이었지, 장승업의 그림세계에 대해서 미친 영향은 미미한 거라고. 가령 김병문이 너 생활로 내려와라, 했을 때 장승업이 화내고 집을 나가는 것도, 장승업이 자기도 달라지고 싶은데 아는 소리를 자꾸 하고 있으니까 화가 나는 거지. 김병문이 달라져야 한다고 이야기하니까 그제서야 깨닫고 갔다고 한다면, 이것은 영화가 잘못된 거죠. 그것은 처음부터 짚고 있었단 말이요. ▶ 정성일 · 허문영, 임권택 감독을 만나다 (1) ▶ 정성일 · 허문영, 임권택 감독을 만나다 (2) ▶ 제2장 <취화선>, 그 열두폭 병풍 속으로 ▶ 제3장 <취화선>, 임권택 영화 미학의 새로운 시원

서동진 vs 남미영화의 기수들 올란도 루버트와 리산드로 알론소

올해 전주영화제는 남미영화의 변화를 가장 주목할 경향으로 내세웠다. 군부의 몰락과 경제적 불안 속에서도 그들은 동시대 젊은이들의 삶을 관찰하거나 혼자 힘으로 자신만의 영화를 완성시켰다. 쫓기듯 떠난 땅에 다시 돌아와 공감을 끌어내는 데 성공한 이도 있다. 올해 전주를 찾은 남미 감독은 <삼인조 택시강도>의 올란도 루버트와 <자유>의 리산드로 알론소, <끽연구역>의 베로니카 첸 세명. 이중 망명지에서 칠레로 돌아온 루버트와 과거 제3영화를 알지 못하는 26살의 젊은 아르헨티나 감독 알론소를, 전주영화제 서동진 프로그래머가 만났다. 스무살 차이가 나는 두 감독은 과거의 영화에 대해선 반대의 입장을 보이면서도 현재의 영화에 관해서는 서로 깊은 교류를 나눴다. “이전 세대로부터의 영향 거의 없다” 서동진 이번 전주영화제에서 남미영화가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모두 아시아 지역을 처음 찾았다. 먼저 올란도 루버트 감독에게 자기 소개를 부탁한다. 루버트 75년 아옌데 대통령이 살해당하고 피노체트가 정권을 장악한 직후, 나는 독일로 망명했다. 그때까지는 <대포에 저항하는 주먹> 등 단편작업을 주로 했다. 망명 당시 나는 칠레의 노동운동을 다큐멘터리로 제작중이었는데, 독일로 망명한 뒤에도 작업을 계속해 영화를 완성했다. 그뒤에는 독일 TV방송사를 위해 정치적인 내용에 문화적인 색채를 더한 단편을 만들었고 장편 <행진>과 <식민지>도 만들었다. <삼인조 택시강도>는 내가 처음으로 칠레에서 만든 극영화다. 서동진 당신이 망명했을 무렵, <칠레전투>의 파트리시오 구스만과 라울 루이즈 등 많은 남미 감독들도 망명을 택했다. 당신은 그들과 교류하거나 그들로부터 영향을 받았는가. 그들은 어떤 식으로 해외에서 활동했는가. 루버트 구스만이나 루이즈는 내 바로 앞세대에 속한다. 그들은 칠레에서 작업한 결과가 있었고, 유럽에서도 계속 활동할 수 있었다. 그들은 결국 칠레로 돌아오지 않았다. 루이즈는 이제 크레딧에도 프랑스식 이름을 올리고 있다. 구스만은 여전히 칠레적인 취향을 가지고 있지만 파리에서 활동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들이 만든 칠레에 관한 다큐멘터리는 외부인의 시선으로 본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는 칠레로 돌아왔다. 서동진 그 세대와 당신 세대 사이에는 단순히 조국에 돌아왔다는 차이 이상의 무엇이 있을 것 같다. 루버트 구체적으로 선을 그을 수는 없겠지만, 칠레를 바라보는 시선에 분명한 차이가 있다. 프랑스에서 칠레에 관한 영화를 만들 땐, 아직도 낭만적이다. 이데올로기를 부각시키는 이 영화들은 칠레가 아직도 정치와 혁명의 격류에 휩싸여 있다고 믿게 한다. 그러나 칠레는 더이상 전투적인 국가가 아니며, 이데올로기도 더이상 우리의 화두가 아니다. 우리는 좀더 일상적이고 사소한 영화를 만드는 데 반해 바깥에서 칠레를 그리는 영화는 70년대에 머물러 있다. 7년 전 구스만을 베를린에서 만난 적이 있는데, 그는 언젠가는 칠레에 돌아오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똑같이 칠레에 관한 영화를 만들더라도, 그의 영화와 우리의 영화는 다르다. 서동진 알론소 감독은 루버트 감독 세대로부터 영화적인 경험을 시작했을 것이다. 당신의 영화는 이전 남미영화와 전혀 다를 뿐 아니라 그 자체로도 독특한데, 어떻게 자신의 영화를 발전시켰는가. 알론소 옥타비오 헥티노나 페르난도 솔라나스 같은 감독은 해외에 많이 알려졌지만, 아르헨티나 내에서는 거의 상영 기회를 얻지 못했다. 아마 그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아르헨티나 감독은 별로 없을 것이다. 나만 해도 그들의 영화를 보지 못했으니까. 차라리 더 앞선 세대인 레오나르도 파비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는 대중성이 있었고 페론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도 했다. 루버트 젊은 세대가 이십여년 전의 정치적인 영화로부터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았다는 건, 좀 무리한 결론이 아닐까. 알론소 내 경우엔 학교에서 수업받기 싫었다는 것이 영화를 택한 가장 큰 동기였다. (웃음) 아르헨티나에선 십여년 전부터 영화학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인력도 크게 늘어났다. 나도 영화학교에 갔지만 졸업은 하지 못했다. 영화사에 다니거나 조감독을 하다가 싫증이 나 아버지 목장에서 일을 거들었는데, 한 벌목공을 만났다. 영화로 만들면 좋을 것 같았다. 친구 네명을 모았고 가족들로부터 3만달러를 빌려 제작비용을 충당했다. 촬영기간은 9일. 하지만 후반작업 비용이 많이 들어 총제작비는 11만달러다. 그래서 아직도 빚이 많다. (웃음) “<아모레스 페로스>는 미국영화나 마찬가지” 서동진 남미영화는 한동안 침체에 빠져 있었다. 그런 나라에서 갑자기 영화가 붐을 일으킨 특별한 계기라도 있는가. 알론소 그건 아르헨티나만의 현상이 아니다. 영상에 관한 관심은 세계적인 것이고 아르헨티나도 그 흐름을 따를 뿐이다. 현재 아르헨티나의 영화학도는 1만명 정도인데, 관심 분야도 연출과 편집, 촬영 등 무척 다양하다. 루버트 칠레도 아르헨티나와 상황이 비슷하다. 십여년 전부터 영화학교에 진학하려는 젊은이들이 크게 늘었다. 6년 전 칠레에 돌아온 뒤, 나 역시 그런 젊은이들과 관계를 맺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학교에서 직접 강의를 하기도 했고. 그들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물론 젊은이들이 영화에 매력을 느끼고 뛰어드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러나 빈부격차가 극심한 칠레에서 이것은 왜곡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보자. 나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선 정신적으로 성숙해야 하고 지적인 능력도 뛰어나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칠레의 거부 중 한명이 영화를 만들고 싶은 아들에게 돈을 준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칠레의 상류층이 흔히 그렇듯 그 아들도 외국 TV프로그램과 뮤직비디오를 접하면서 현란한 영상에만 젖어 있을 거고, 자기가 아는 대로 쉽게 영화를 만들 거다. 나는 그런 미숙하고 경박한 영화들을 좋아할 수 없다. 서동진 멕시코영화 <아모레스 페로스>는 2000년 중남미영화 중 최고의 수작으로 꼽힌다. 이 영화를 본 적이 있는가. 루버트 매우 좋은 영화였다. 특히 다중적인 방식으로 전개되는 플롯이 훌륭했다. 타란티노와 비슷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아모레스 페로스>는 그런 영화들과 다르다. 그런 영화에선 아들이 어머니를 살해하고 피가 지나치게 많이 흐른다. 영화보단 사디즘에 가깝다. 아마 로버트 알트먼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 영화를 중남미영화 최고의 수작이라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영화는 국적만 중남미일 뿐, 미국영화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서동진 타란티노가 대표하는 현대영화의 한 경향과 거리를 둔다는 점은 알론소 감독도 비슷하다. 당신 세대는 타란티노 영화나 뮤직비디오를 보며 영화를 배웠을 텐데. 당신의 영화 <자유>는 매우 관조적이다. 알론소 젊은이들이 비디오만 좋아한다는 건 언론이 퍼뜨린 편견이다. <아모레스 페로스>의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은 주류영화에 편입돼 있는 감독이고, 나는 뭐랄까, 돈이 없는 감독이다. 나 역시 <아모레스 페로스>를 좋아하지만 동질감은 느낄 수 없다. 서동진 루버트 감독은 칠레를 떠난 지 오래됐으므로 국내에 기반이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삼인조 택시강도>를 어떻게 만들고 배급했는지 궁금하다. 당신이 이십년 만에 돌아와 경험한 칠레 영화산업은 어떤 것이었는가. 루버트 칠레에는 영화산업이라 말할 수 있는 실체가 아예 없다. 영상 분야에 종사하는 인력은 대부분 광고에 몰려 있고, 그들을 기용하면 인건비가 훌쩍 올라간다. 나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칠레에는 정부가 예술가를 후원하기 위해 만든 폰다르트 재단이라는 것이 있다. 이전에는 미술이나 음악만 지원했는데, 내가 처음 7만달러를 지원받은 뒤로 매년 세편의 영화에 지원비 10만달러를 지급하게 됐다. 배급 역시 힘들었다. 제작자인 친구가 배급을 도왔고, 뜻밖에 흥행결과가 꽤 좋았다. 요즘은 미국이나 호주의 위성방송 채널이 다큐멘터리와 실험영화까지 폭넓게 받아들이고 있어 배급에 도움을 받는 편이다. 서동진 아르헨티나의 상황 역시 매우 어렵다고 들었다. <자유>는 어떻게 상영 기회를 얻었는가. 알론소 지난해에 제작된 아르헨티나영화 30편 중 10편 정도만 국내에서 개봉했다. 그런 기회나마 잡으려면 해외영화제에서 추천을 받는 등 뭔가가 있어야 하므로, 독립영화는 거의 상영할 수 없다고 보는 편이 맞다. 나는 그나마 행운아였다. 칸에서 초청을 받았고, 세 군데뿐이기는 하지만 극장에서 개봉도 했으니까. “중남미의 삶에서 중남미의 정체성을 발견하라” 서동진 올해 로테르담영화제에서 매우 인상적인 사건이 있었다. 아르헨티나 영화인들이 자국의 경제상황과 이것이 아르헨티나 영화산업에 미치는 영향 등을 비판하는 성명서를 발표한 것이다. 그들은 아르헨티나는 지금 경제적으로 심각한 처지에 빠져 있는데, 그 부담을 부당하게도 영화산업이 일부 짊어지고 있다고 했다. 알론소 감독도 거기에 서명을 했다. 그 이후 아르헨티나의 상황은 어떻게 변했는가. 지속적인 활동이 있는지. 알론소 그 성명서는 조직적으로 발표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단발성으로 그치고 말았다. 영화제에 참석한 감독 중 루크레시아 마르텔이 갑자기 제안한 성명이었다. 듣자니, 아르헨티나 정부에서도 웃고 말았다고 했다. 사실, 나는 그때 매우 수치스러웠다. 우리나라의 문제를 내 입으로 폭로해야 했기 때문이다. 서동진 올해 전주영화제는 남미영화에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제 남미영화는 현실로 귀환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흔히 말하는 피상적 의미의 사실주의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자유>는 한 남자의 일상을 관찰하는 영화고 <삼인조 택시강도>는 하층민의 현실을 폭로하는 영화다. 70년대의 정치적 격랑을 거친 뒤 남미영화는 남미의 혼란을 재현하거나 현실을 은유적으로 담아내는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지금 다른 나라의 젊은 영화는 유희나 개인적 고백에 치중하는 경우가 많은데, 남미 영화인들을 현실적인 영화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동력은 과연 무엇인가. 루버트 미국영화의 장점은 삶과 영화를 조화시킨 뒤 상업적으로 연결시키는 노하우다. 요즘 남미영화는 그런 장점을 수용하려 한다. 물론 그것만이 아니다. 나는 현실이 역사를 만드는 게 아니라 역사가 현실을 만든다고 믿으며, 영화는 사회 표면에 나타나지 않는 깊은 세계를 관통할 때 의미를 가진다고 믿는다. 그런 점에서 남미영화에 본질적으로 영향을 행사한 흐름은 이탈리아의 네오리얼리즘이다. 그 건조한 시선은 남미의 현실에 적절하게 들어맞는다. 내 선배들은 거대 서사에 매달렸지만, 우리는 건조한 일상을 통해 역사를 이야기할 수 있다. 나는 계속 잔잔한 일상을 담은 영화를 만들 것이다. 알론소 나 역시 루버트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어느 나라의 영화이든,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무언가를 꺼내야 한다. 루버트: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면서 <백년 동안의 고독>의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중남미가 외부의 물결에 휩쓸려왔다면서, 문학이나 영화를 하는 사람들은 중남미의 삶 속에서 중남미의 정체성을 발견해야 한다고 말했다. 내 생각도 마찬가지다. 서동진 당신 두 사람은 모두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유>와 <삼인조 택시강도>가 돌아가려 하는 삶의 세계는 극히 이질적이다. <자유>는 멀찌감치 떨어져 보이는 한 벌목공의 삶을, <삼인조 택시강도>는 처참한 지경에 몰린 하층민들의 삶을 담는다. 당신들에게 삶이란, 리얼리티란 무엇인가. 알론소 나는 항상 주변 사람들을 관찰한다. 그 주변 사람들이란 교육받지 못하고 소외당한 사람들을 뜻한다. 그들을 볼 때, 나는 한편으로 내 배경을 의식하며 관찰하고, 다른 한편으로 나를 벗어나 오염되지 않은 시선을 유지하려 애쓴다. 그렇게 주관과 객관을 모두 꿰뚫는 영화가 내겐 리얼리즘영화다. 루버트 삶이 다양한 만큼, 리얼리티의 정의 역시 다양하다. 내게 리얼리티란, 감독이 대상 속으로 들어갈 때 나온다. 감독은 소외받은 사람들 틈에서 함께 느껴야 하고, 그 감정을 표현해야만 한다. 서동진 루버트와 알론소 감독은 전주에 남미영화의 새로운 힘을 전해줬다. 두 사람의 의견에 깊은 공감을 느끼면서, 전주영화제를 찾아준 데 감사한다. 전주=대담정리 김현정 parady@hani.co.kr▶ 미국독립영화계의 대모 크리스틴 바숑, 7문7답 ▶ 크리스틴 바숑과 킬러필름즈 ▶ 서동진 vs 남미영화의 기수들 올란도 루버트와 리산드로 알론소 ▶ <삼인조 택시강도>와 <자유>

[Review] 소림축구

■ Story 소림사 여섯 사제 가운데 다섯째인 씽씽(주성치)은 쿵후를 발전시킬 묘안을 고민하던 차에 황금발 명봉(오맹달)을 만난다. 오래 전 최고의 축구선수로 이름을 날렸으나 다리가 부러진 뒤 부랑자 신세가 된 명봉은 씽씽의 발차기가 괴력을 발휘하는 걸 보고 축구팀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씽씽은 사형들을 찾아가 축구를 하자고 설득하지만 쿵후만으로 살기 어려운 세상에 익숙해진 사형들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씽씽을 외면한 뒤 사형들은 품에서 한장의 사진을 꺼내본다. 여섯이 함께 쿵후를 닦았던 지난날이 담긴 사진, 그것이 마음을 움직이고 드디어 소림축구팀이 탄생한다. ■ Review 위대한 희극은 누추한 우리 모습을 감추지 않는다. 추레한 행색에 손가락질하지 않으며 궁핍한 안주머니를 탓하지 않는다. 위대한 코미디 배우는 세상의 밑바닥까지 추락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는 권력자의 구두를 닦기 위해 무릎 꿇고 닳고 닳아 구멍난 운동화를 신고 있는 순간에도, 당당하다. <모던 타임즈> <시티 라이트> 등 채플린의 걸작들이 그랬고 주성치와 그의 영화 <소림축구>가 그렇다. 가난과 비애가 약동하는 삶의 에너지로 돌변하는, 믿을 수 없는 환희의 시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소림축구>에서 그 순간은 현실의 낙오자들이 승리의 노래를 부를 때 찾아온다. 누가 그들의 가망없는 꿈에 재기의 의지를 불어넣는가? 아디다스 상표가 반쯤 떨어져나간 허름한 트레이닝복, 발가락이 튀어나오는 헌 운동화, 대책없는 낙관론을 펼치며 소림 쿵후 부활을 열망하는 청년, 주성치가 연기하는 씽씽은 한낮의 번화가에서 자신의 꿈을 피력한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쿵후를 한다면 바나나 껍질에 미끄러져 쓰러질 때도 우아한 공중돌기를 하고 장풍으로 주차를 시키는 아름다운 세계가 펼쳐질 것이라는 꿈. 그러나 바쁜 세상은 그의 꿈을 믿지 않는다. 쓰레기 더미를 나르는 초라한 젊은이에겐 눈길조차 줄 리 만무하다. 이때, 등장하는 한 사내, 영원한 그의 짝패 오맹달이 연기하는 황금발 명봉, 왕년의 축구스타에서 거리의 부랑자로 전락한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한다. 정지상태에서 360도 회전하는 카메라가 보여주는 씽씽의 놀라운 발차기, 천지가 진동하는 충격 속에 명봉은 씽씽의 내공이 발휘될 기회를 발견한다. 바로 축구팀을 만들자는 제안이다. 씽씽을 필두로 소림사 여섯 제자가 명봉 앞에 등장하는 순간은 감동과 웃음이 교차하는 주성치식 코미디의 정수이다. 선글라스를 쓰고 바바리 코트를 휘날리면서 담배를 질겅질겅 씹으며 슬로로 다가오는 그들, 비록 코트 안쪽에 사각팬티에 러닝셔츠만 입은 망측한 옷차림이지만 결연한 의지는 하늘을 찌른다. 살벌한 경쟁사회에서 이러저러한 이유로 좌천되고 강등당한 그들에게 보이지 않는 인력이 작용한다. 소림사에서 쿵후를 배우던 시절 찍은 여섯 제자가 환히 웃는 사진 한장, 영원히 간직할 좋은 시절의 기억이 그들을 소림축구팀으로 뭉치게 만든다. <풀 몬티>의 실업자들처럼, <반칙왕>의 송강호처럼 사회의 패배자인 소림축구팀은 현실과 싸운다. 상대는 특수효과와 미국의 첨단의학이 만든 발명품이지만 중국적 전통에 뿌리박힌 판타지는 소림축구팀의 것이다. 여기서 주성치는 직접 사회를 고발하거나 공격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작은 희망의 불씨를 피운다. 그것은 잠시 뒤 화염이 되어 그들의 눈동자 속에서 이글거린다. 주성치에게 분노는 파괴가 아니라 창조의 힘이다. 가난과 핍박의 설움이 키운 공력으로 그들은 축구를 한다. 공은 벽을 뚫고 골대를 날려버린다. 어마어마하게 과장된 이런 제스처들은 단지 웃자고 설정한 행동이 아니며 단순한 특수효과가 아니다. 영화 속 주인공 씽씽만이 아니라 주성치 자신이 진심으로 그런 세상을 꿈꿔왔다. <소림축구>에서 주성치의 킥은 그의 우상 이소룡이 일본군 장교를 향해 질렀던 발차기를 닮았다. 골키퍼를 맡은 넷째 사형의 옷차림이 아니라도 <소림축구>에는 이소룡에 대한 주성치의 존경심이 물씬 배어 있다. 이처럼 <소림축구>가 주는 또 하나의 감동은 주성치가 영화를 향해 바치는 애정고백에서 비롯된다. 명봉이 축구협회장의 구두를 닦을 때, 소림사 다섯 제자들이 코트 자락을 펄럭이며 나타날 때, <소림축구>는 <영웅본색>의 비장함에 위트를 덧붙인다. 거기다 씽씽과 마을 건달들의 대결장면에선 서부극의 결투장면이, 소림축구팀과 마을 건달팀의 축구시합에선 전쟁영화의 치열한 교전장면이 겹쳐져 배꼽을 잡게 한다. 그중에도 최고는 만두가게 아가씨를 향한 구애의 시퀀스이다. 정상적인 대화장면에서 갑자기 모든 등장인물이 뮤지컬의 댄스 대형으로 돌변하는 이 대목에 이르면 주성치를 ‘희극지왕’이라 불러 마땅한 이유를 누구나 발견할 것이다. 엄숙한 순간 기지를 발하고 차분해지려는 찰나 진지한 표정으로 농담을 건네는 주성치식 코미디는 한마디로 예측불허다. 온갖 장르를 종횡무진 아우르는 재담과 익살의 달인 주성치는 그만의 사랑법 또한 갖고 있다. 해진 운동화에 미키마우스 스티커를 붙여 꿰매는 촌스럽고 어눌한 사랑이 얼마 지나지 않아 보는 이의 마음을 찢어놓는다. 주성치에게 환상적인 로맨스는 그림 같은 집이나 예쁜 드레스 같은 걸 필요로 하지 않는다. 찢어진 운동화와 눈물 젖은 만두 정도면 된다. 충분하다. 아니 그것이야말로 주성치 영화의 매력이다. 전작 <희극지왕>에서 장백지가 폴짝 뛰어올라 주성치의 허리를 두 다리로 감싸안는 장면에서 보여지듯 주성치는 가난한 연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진심’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주성치는 이소룡 같은 쿵후스타를 꿈꿔왔다. 영화 속 씽씽의 소망도 주성치와 다르지 않다. 결국 주성치는 이소룡과 전혀 다른 방식이긴 하지만 홍콩의 마지막 쿵후스타가 됐다. 씽씽 역시 쿵후를 축구에 접목시켜 최강의 팀을 만든다. 그들의 바람이 이뤄진 것처럼 지금의 고통을 참고 이기면 좋은 일도 있을 거라고 <소림축구>는 전한다. 극장에서 멋진 미래를 찾을 순 없을지언정 유쾌한 영화는 볼 수 있을 거라고 위로한다. 주성치가 이 영화에서 동료와 연인, 모든 낙심한 인물들에게 들려주는 한마디가 있다. 그건 “자신감을 가지라”는 말이다. 부당한 좌천이 억울해도, 잘생긴 얼굴이 대머리로 망가져도, 비만으로 모든 의욕이 사라져도, 울퉁불퉁 부스럼이 생겨 고개 들기가 두려워도, 절대 꺾이지 말고 “자신감을 가져라”. 주성치의 이 말은 촌철살인의 대사도, 깨달음을 주는 화두도 아니지만 <소림축구>가 만드는 정서적 공감대로 오래 간직될 것이다. 그리하여 ‘모두 오랫동안 잘살았습니다’라는 해묵은 해피엔딩이 주성치 영화의 새로운 경지로 돌변한다. 한참을 웃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감흥을 억누를 수 없는 영화 <소림축구>는 분명 위대한 희극이다. 남동철 namdong@hani.co.kr

또 하나의 `원작`을 위하여

일본의 마루야마 겐지라는 소설가는 영상이 따라올 수 없는 소설을 쓰겠다고 공언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는 철저히 문체위주의 글을 쓰는 것으로 자신의 공언을 지켜나가고 있다. 그의 저서인 소설가의 각오를 읽다보면 엄격하고 철저한 그의 작가정신 때문에 마음이 얼얼할 지경이다. 쓰고 싶은 소설만을 쓰기 위하여 그는 생을 아주 단순화시켰다. 결혼은 했으나 아이를 낳지 않았고 최소의 생계비로 버티기 위하여 도시를 떠났으며 소설을 쓸 수 있는 체력과 긴장을 위하여 가혹할 정도로 몸을 단련시켰다. 그 영향일까. 그의 작품은 비루한 일상이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으나 소수의 독자들로 하여금 눈을 부라리게 할 만큼 강렬한 마력을 내뿜는다. 그의 뜻대로 영상이 따라올 수 없는 소설이어서인지 그의 작품이 영상화되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한때 박상륭의 <죽음의 한 연구>에 푹 빠져 지낸 적이 있었다. 이해가 잘 되지 않은 대목들이 있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매혹을 물리칠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도 다시 읽기를 반복하는 몇 권 안 되는 책 중의 한 권이 <죽음의 한 연구>이다. 박상륭의 소설을 완벽하게 이해해보겠다는 나의 욕망이 부질없이 느껴진 것은 그의 소설을 기존의 독법으로 읽어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이다. 지금의 나는 젊은날처럼 박상륭의 소설을 처음부터 차근차근 읽지 않는다. 시나 경전을 읽듯이 내 마음대로 읽는다. 아무 장이나 펼쳐들고 눈길이 멎을 때까지 그냥 읽어내리다가 덮어놓는 식이다. <죽음의 한 연구>가 <유리> 라는 제목으로 영화화 된다고 했을 때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박상륭 소설을 어떻게 영화로 만든다는 것일까, 궁금했으나 내 식으로 유지시키고 있는 박상륭 소설 읽기를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 영화가 개봉되었는데 보지 않았다. 나는 우리가 흔히 환타지라 부르는 영화나 소설들 특히 SF나 가상현실이 등장하는 것들을 일부러 사서 읽거나 애써 찾아가 보지는 않는다. <에이리언>이 열광적으로 후속작들이 만들어지고 있었을 때도 단 한편도 보질 않았다. 4편이 나왔을 때던가. 그때 내 마음을 애타게 하던 사람이 <에이리언> 4편이 개봉되었다면서 함께 보자고 했다. 그와 함께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이 기뻐서 내 생전 처음으로 영화표를 예매(그는 일터에 있었으므로) 하러 서울극장에 갔는데 와, 세상에 종로3가까지 줄이 이어지지 않는가. 그 줄의 끄트머리에 붙어 있다가 표를 끊었다. 사람에게만 마음이 있었지 영화에는 시큰둥했는데 막상 영화가 시작되고 나서는 내가 그보다 더 <에이리언>에 빠져 들었다. 연초에 <반지의 제왕>을 보러 갔을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어찌어찌 세 사람이 영화를 보러 나섰을 때 나는 <반지의 제왕> 같은 영화는 어린이들이나 보는 영화 아냐? 깎아 내리는 것으로도 모자라 재미있으면 얼마나 재미있겠나, 은근히 그날 밤 표를 끊을 수 없기를 바래기까지 했다. 그런데 무색하게도 영화가 시작되고 나서는 세 사람 중에 내가 <반지의 제왕>에 가장 몰두했다. 얼마나 재미있던지 영화가 끝날까봐 전전긍긍이었다. 완결편이 아니라 제 2부는 올 크리스마스 때를 기대해달라는 자막이 나왔을 때 아니 뭐야? 어떻게 그때까지 기다려? 영화제작자가 야속할 지경이었다. 여세로 다음날 밤엔 또 <디 아더스>를 보러갔는데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마냥 또 마음을 홀딱 빼앗겼다. 밤길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이구, 무슨 영화들이 이렇게 재미있담, 이러니 책은 누가 읽겠는가, 싶어서. <반지의 제왕>이나 <디 아더스>나 다 원작이 있는 영화들이다. 나는 영상이 범접할 수 없는 소설을 쓰겠다는 마루야마겐지를 존중하지만 내 소설을 영화로 만들겠다고 나섰던 사람들에게 원작사용을 수락한 사람이기도 하다. 영화문법과 소설 문법은 기본적으로 다르다고 여기기에 원작을 수락한 다음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대신 풍금이 있던 자리 같은 작품은 문학작품으로만 읽혔으면 하고 생각되어 영화제의를 거절했다. 순전히 내 개인적 취향에서 비롯된 결정일 뿐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다. 어쨌든 영화와 소설은 서로 다른 장르이긴 하나 각색의 과정을 성공적으로 거치기만 하면 더할 나위 없이 친밀한 관계가 된다. 최근에 공동경비구역 JSA나 결혼은 미친 짓이다, 같은 작품이 영화적으로 성공을 거둔 것은 각색의 공정을 잘 거친 몫이 컸다고도 생각한다. 그런데 각색에 대한 영화계의 관심은 무척 소극적이라는 느낌을 갖는다. 어느 영화제에서 각본상으로 파이란 편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원작이 있어 자격이 안 된다고 했다. 원작이 있어서 안되면 각색부문의 상이 따로 있어야될 것 같은데 사정은 그렇지 못했다. 그 영화제만이 아니라 다른 영화제에서도 마찬가지 아닌가 싶다. 국외의 아카데미시상식에는 각색상이 마련되어 있는 모양이다. 각색의 공정은 원작을 성공적으로 영화화 시키는데 결정적인 요인 가운데 하나라는건 누구나 다 인정할 것이다. 상이라는 것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에 대한 평가를 해주는 제도적 장치가 된다면 새로운 활력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외국영화]인섬니아, 윈드토커 등...

인섬니아 Insomnia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출연 알 파치노, 로빈 윌리엄스 개봉 7월중 Synopsis LA 시경의 베테랑 형사가 알래스카의 작은 마을에서 벌어진 십대 소녀 살인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파견된다. 형사는 유력한 용의자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총기오발 사고로 동료 형사를 죽이고, 본의 아니게 억지 알리바이를 만들지만, 죄책감과 사건 해결에 대한 부담감으로 불면의 나날을 보낸다. Note 1997년 노르웨이영화 <인섬니아>에 깊이 매료된 크리스토퍼 놀란은 본편의 제작자와 워너브러더스의 간부들에게 자신의 전작 <메멘토>를 보여주는 것만으로, 리메이크의 권한을 따냈다. 조지 클루니와 스티븐 소더버그가 총제작자로 이름을 올리고, 알 파치노, 로빈 윌리엄스, 힐러리 스왱크가 합류하면서, <인섬니아>는 가히 최강이라 할 만한 ‘맨파워’를 자랑하게 됐다. Key Man _ 크리스토퍼 놀란. 시간과 기억에 관한 지적인 스릴러 <메멘토>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음 행보에 눈길이 쏠리는 것은 당연지사. “역순으로 플롯을 짰던 전작과의 연결점은 전혀 없다. 이번엔 한 남자의 내면 여행을 밀착 동행하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한다. 윈드토커 Windtalkers 감독 오우삼 출연 니콜라스 케이지, 크리스천 슬레이터, 애덤 비치 개봉예정 8월15일 Synopsis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은 일본군이 절대 해독할 수 없는 암호를 개발한다. 세계에서 가장 복잡하다고 알려진 나바호 인디언 언어가 그것. 해병 조 엔더스(니콜라스 케이지)는 암호 코드를 알고 있는 나바호 군인 벤(애덤 비치)을 보호하되, 그가 포로가 될 위험에 처하면 죽여버리라는 명령을 받는다. Note 오우삼은 9·11 테러 이후 “착한 영화를 만들겠다”고 선언한 적이 있다. 전쟁영화인 <윈드토커>는 여전히 피와 먼지가 날리기는 하지만, 의리와 명분을 중시하는 그의 신념이 미국적인 형태로 빛을 본 작품이다. 우정과 임무 사이에 선 남자의 고뇌와 함께, 열세대의 카메라를 돌리고 280개의 폭탄을 한꺼번에 터뜨린 전투장면처럼 보기 드문 스펙터클이 압도해 오는 영화. Key Man _ 오우삼. 물량에 짓눌리지 않고 자신만의 액션을 안무하는 그는 진정한 장인이다. 어바웃 어 보이 About a Boy 감독 크리스 웨이츠, 폴 웨이츠 출연 휴 그랜트, 레이첼 와이즈, 토니 콜레트 개봉예정 8월23일 Synopsis 부모의 유산으로 살아가는 미혼남 윌 프리먼(휴 그랜트)은 결혼은 자유를 포기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가볍게 즐기기에 가장 좋은 여성이 혼자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고 생각한 그는 ‘작업’에 들어간다. Note <노팅 힐> <브리짓 존스의 일기> 등을 제작한 영국의 워킹타이틀 필름과 휴 그랜트가 다시 로맨틱코미디로 만났다. 여기에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의 원작자인 닉 혼비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삼았다는 점과 <아메리칸 파이>의 폴과 크리스 웨이츠 형제가 감독을 맡았다는 사실 등은 이 영화를 더욱 기대하게 하는 점. Key Man _ 휴 그랜트 이 영화의 성공 여부는 역시 휴 그랜트의 미소가 좌우할 듯하다. 바람둥이에다 백수로 자유롭게 살아가며 여자들을 찔러대는 이 ‘보이’ 역에 그 이외의 배우를 떠올리기는 어렵다. 스쿠비 두 Scooby-Doo 감독 라자 고스넬 출연 매튜 리아드, 사라 미셸 겔러, 프레디 프린즈 주니어, 로완 앳킨슨 개봉예정 7월19일 Synopsis 그레이트 데인종인 강아지 스쿠비 두와 미스터리 머신이라는 탐정단이 스푸키 아일랜드라는 곳에서 인간을 노예로 만들려는 마술적 힘과 맞서 싸운다. Note 토요일 아침 미국의 어린이들을 사로잡아온 애니메이션 <스쿠비 두>의 실사영화 버전. 벨마, 프레드, 다프네, 그리고 섀기 등은 유령이나 괴물을 퇴치하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사고뭉치면서도 사건 해결의 일등공신인 스쿠비 두가 없다면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것. 강아지가 사람으로 변장할 수도 있다고 한다면 더 할말이 없을 듯.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들어낸 스쿠비 두와 배우들의 실사연기가 영화 속에서 함께 어우러진다. Key Man - 브라이언 웨이드 사라 미셸 겔러와 약혼자 프레디 프린즈 주니어가 10대 관객을 끌어들이더라도, 스쿠비 두를 살아 움직이게 만들어야 하는 특수효과 담당 브라이언 웨이드가 손끝을 잘못 놀린다면 이 영화는 유치한 아동물로 전락할지 모른다. ▶ <챔피온>에서 <맨 인 블랙2>까지, 무더위 날릴 여름영화 70편 올가이드 ▶ [한국영화]오아시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 [한국영화]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 예스터데이 등... ▶ [한국영화]아 유 레디?, 라이터를 켜라 등... ▶ [한국영화]서프라이즈, 남자, 연애소설 등... ▶ [한국영화]묻지마 패밀리, 남자, 태어나다 등... ▶ [외국영화]맨 인 블랙2, 싸인 ▶ 외국영화]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웨이킹 라이프 등... ▶ [외국영화]릴로 & 스티치, 아이스 에이지 등... ▶ [외국영화]마이너리티 리포트, 스튜어트 리틀2 ▶ [외국영화]패닉 룸, 퀸 오브 뱀파이어 등... ▶ [외국영화]인섬니아, 윈드토커 등... ▶ 그리고도 이 만큼이나 남은 영화들

젊은 감독, 관객을 만나다 [5] - 박찬욱 ②

그로테스크, 창과 방패가 결합해 만들어지는 아이러니 -<복수는 나의 것>이 하드보일드로 가다 마지막에 관객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인지, 감독님의 의도인지 모르지만 코믹하게 나간다는 판단이 많은데요. 그것에 대해 해명을 해주세요. 그리고 충무로 연출부 생활을 했던 사람으로서 영화감독이 되려고 하는 후배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요. =<복수는 나의 것>은 하드보일드와 코믹이 불가분의 관계로 처음부터 끝까지 섞여서 가기를 원했어요. 오히려 하드보일드한 느낌은 뒤로 갈수록 강해진다고 보구요. 의도적으로 점점 코믹하게 가려고 했었고. 송강호의 죽음에 대해서도. 송강호가 그런 식으로 죽는 것이 굉장히 우스꽝스럽다고 실망한 관객도 있겠지만, 나는 주인공의 죽음이 우스꽝스러운 것이 아주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해요. 우스꽝스러울수록 비참한 기분이 더 들기 때문에. 두 번째 질문, 영화감독이 되려는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은, 사람이 1만명이 있다면 그걸 직업으로 삼는 사람은 100명, 그중 성공하는 사람은 10명, 그중에서 성공했으면서 가정적인 사람은 1명? (웃음) 성공이 뭔지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되는데…. -감독님은 가정적인가요? =오늘도 대판 싸우고 나왔어요. (웃음) 성공이란 것도, <공동경비구역 JSA> 만든 감독이다, 그래서 성공했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그것 하나로 끝날 수도 있어요. 내 나이 서른 몇인데, 이후 40년을(웃음) 계속 힘들게 지낸다면 그게 성공한 인생이랄 수 있나요. 그렇게 계속해서 성공하는 감독은 찾아보기 힘들고, 특히 한국에서는 50살만 넘어도 거의 퇴출 분위기니까. 여러 가지 면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직업이니까 말리고 싶어요. 그래도 해야 한다면 뻔하죠. 좋은 각본을 만드는 것. 한국은 전문적인 각본가가 별로 없었어요. 왜 그런지 아세요? 뛰어난 각본가는 다 감독이 되어버리기 때문이에요. (웃음) 데뷔를 하려면 자기가 좋은 각본을 갖고 있어야 해요. 연출부를 100년 해도 소용없어요. 결국 마지막 순간에 좋은 각본을 갖고 있지 않으면 아무도 데뷔시켜주지 않아요. 또, 단편영화를 썩 잘 만들어서 픽업되는 것도 좋죠. 그런데 좋은 단편영화를 만드는 데도 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혼자서 쓰는 게 좀 싸죠. (웃음) -감독님께서 주성치를 좋아하셔서 어떤 영화에 주성치를 오마주했다는데…. =<공동경비구역 JSA>예요. 이병헌이 김태우를 데리고 월북하는 장면에서 다리를 건너가잖아요. 거기서 김태우가 “다음에 가자”고 하니까 이병헌이 “통일의 물꼬를 트러 가는 거야”, 그러니까 “나중에 트면 안 될까요?” (웃음) 그 장면은 에서 정부 첩보기관의 높은 사람이 주성치의 임무에 대해서 한참 동안 설명하고 엄청난 자료를 준 다음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없나?” 하니까 “안 가면 안 될까요?”(웃음) 너무 웃겨서 그걸 썼어요. -많은 분들이 <복수는 나의 것>에 대해 질문을 하시는데 영화 자체가 <공동경비구역 JSA>보다 신선하다고 느껴서 그러는 것 같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세 가지 정도 질문을 드리겠는데요. 감독님이 잡지 인터뷰에서 “이 영화는 코미디다”라고 말했는데 조금 전에 그로테스크한 것, 하드보일드한 것, 우스꽝스러운 것 등이 섞여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요소들을 어떤 방식으로 배치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둘째는 시청각을 많이 배제시켜 찍으셨다고 했는데 오히려 고도로 계산되어 있지 않나 하는 겁니다. 카메라 각도라든가, 류가 일하는 공장에서 기계소리만 지나치게 크게 들린다든가 하는 부분에서요. 마지막으로 동진이 유선 시체를 해부할 땐 울먹이다 누나 시체 해부할 땐 하품을 하잖아요. 인간 본성이 파괴되는 것 같아 충격적이었어요. 감독님 작품들에서는 나중에 주인공이 죽잖아요. 사람 사는 것에 대해 염세적으로 보고 계신지 알고 싶습니다. =우스꽝스러운 것이 어떤 식으로 결합되어 있느냐 했는데, 코미디라고 한 것은 영화의 잔인성, 폭력성이 너무나 두드러지게 소문이 나서 전략적으로 얘기한 거예요. (웃음) 그러다간 손님 하나도 안 올 것 같아서. 그래도 손님 안 오긴 마찬가지였지만. (웃음) 코믹한 부분들이 있지만, 한마디로 코미디라고 말할 순 없죠. 그로테스크는 그 안에 이미 유머를 갖고 있어요. 유머가 없는 그로테스크는 엽기취미일 뿐이고, 유머 빼고 잔인하거나 끔찍하기만 한 묘사는 재미도 없고. 사람마다 언어의 뉘앙스가 다르겠지만 내가 말하는 그로테스크는 모순된 것이 결합돼서, 모와 순, 창과 방패가 결합해 만들어지는 아이러니예요. 그것이 영화의 핵심적 방침이었고. 그런 것이 부조화하기 때문에, 부조화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참기 어려울 것이고, 그런 부조화가 인간실존의 부조리한 것까지 생각하게 하는 관객한테는 즐거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두 번째 질문, 처음엔 미니멀한 영화를 만들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결과는 미니멀한 영화는 아닌 것 같아요. 물론 배우가 많이 표현하지 않는 것, 컷 수, 음악 등은 미니멀하지만 결과는 아닌 것 같아요. 다만, 아주 엄격한 고전적인 비극의 느낌이 잡혔으면 했어요. <버라이어티>의 데릭 엘리라는 평론가가 이 영화를 “아시아에서 온 희랍비극이다”라는 평을 썼는데 칭찬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그 말이 마음에 들어요. 잔인한 묘사가 많다고 하지만 희랍비극이나 <일리어드> <오디세이>에 묘사된 전쟁, 폭력의 장면들이 엄청나게 많아요. 잘 아시는 오이디푸스의 비극은 상상을 초월하는 엽기 스토리구요. 아주 엄격한 구도와 그런 분위기가 담긴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런 숨막힐 듯한 엄격함 속에 썰렁한 개그가 틈틈이 끼어드는. 세 번째 질문인 세계관은, 낙천적이진 않은 것 같아요. 물론 생활에서는 즐겁게 살려고 노력하는데 자꾸 이런 영화만 만드는 것은 해피엔딩을 만드는 것을 제가 거부했기 때문이에요. (웃음) 앞으로는 일부러라도 그런 영화를 만들려고 합니다. 나의 원동력은 분노 -개인적으로 여덟개의 질문을 준비했는데(웃음) 지금 분위기가 너무 <복수는 나의 것>쪽으로 가면서 무거워지는 것 같아서 가벼운 질문을 하겠습니다. 엊그저께 류승완 감독님은 따님에게 절대 영화일 안 시킬 거라고 말씀하셨는데 감독님도 부모님 영향을 받았다고 말씀하셨듯이 감독님이 거실에서 DVD로 스플래터, 호러무비 등을 보면 영향을 받을 텐데 그런 영화에서 따님을 어떻게 보호하실 건지요. =그런 영화는 애 있을 땐 안 보죠. <슈렉> 같은 것 보죠. (웃음) 영화감독은 멋진 직업일 수도 있지만 그저그런 감독이라면 그것처럼 비참한 직업이 없어요. 딸애가 지금 초등학교 2학년인데, 제가 하는 일보다 더 보람있고 재미있는 일도 많은데 그런 일 시키고 싶죠. 지금 하고 싶어하는 일은 동물보호 액티비스트. (웃음) -감독님께서 아까 시나리오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는데 좋은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어떻게 하셨는지, 또 감독님이 생각하기에 좋은 시나리오란 어떤 건지요. 그리고 좋은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요. 마지막으로 <공동경비구역 JSA>를 굉장히 감명깊게 봤는데 감독님은 군생활을 어떻게 하셨는지 알고 싶습니다. =군생활은 그저, 방위. (웃음) 그때는 6개월 방위가 많았는데 18개월로 늘어난 첫 번째 기수였어요. 그것도 육군본부 도서관 방위. 내가 가장 공부를 열심히 한 시절이었어요. 아마 대한민국 군인 중에서 제일 편한 생활을 했을 거예요. 좋은 각본은 어떤 것이냐. 일단 재주부리지 않고 진심으로 쓰는 것은 표가 난다고 생각해요. 상투적인 이야기지만 사실이에요. 스스로 절실해서 안 쓰면 못 참겠어서 쓰는 스토리가 진짜라고 생각하고. 좀더 기술적인 얘기를 하자면 지문을 아주 간단하게 쓸 필요가 있어요. 인물과 꼭 필요하다면 장소의 풍경 정도. 대사도 줄일 수 있는 데까지 줄여보는 게 좋아요. 이 말을 안 하면 얘기가 안 통한다거나 성격 전달이 안 된다거나 하는 경우 빼놓고는 다 없애버리는 게 큰 도움이 되고. 그렇게 아주 콤팩트한, 가벼운, 얇은 시나리오를 쓰는 버릇을 들이는 것이 기술적으로 큰 도움이 될 것이고. 갈등과 이야기 전개면에서는 셰익스피어가, 인물의 성격 창조에서는 도스토예프스키와 발자크가 교과서 같은 작가죠. 시나리오 작법 책은 한권도 안 봤어요. -감독님의 작품을 보면 사회적인 분노나 메시지 같은 것이 보이는데요, 분노가 혹시 영화를 만드는 원동력은 아닌지요? =원래 매사에 투덜이, 불평분자예요. 세상에 잘 돌아가는 부분도 있고, 좋은 사람도 많지만 안 되는 것, 나쁜 쪽에 더 관심이 가고. 나쁜 짓을 하고도 멀쩡히 잘사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많은가 그런 것에 관심이 가고. 그게 크게 작용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것만 갖고 영화를 만들 순 없잖아요. 그것만 갖고 하다보면 나도 지치고. 세상과 인간을 좀 다른 모습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지만, 아직까지는 분노가 가장 큰 원동력이 아닌가 생각해요. 나이가 더 들어서 원숙한 통찰력이 필요할 때까진.

젊은 감독, 관객을 만나다 [4] - 박찬욱 ①

“연출부 100년해도 소용없어요, 좋은 각본을 쓰세요” (‘젊은 감독, 관객을 만나다’ 4번째는 원래 장진 감독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첫날 예정되었던 박찬욱 감독이 전주영화제에서 올라오는 도중 비를 만나 제시간에 도착하기 힘들게 되어 부득이 장진 감독과 시간을 맞바꾸게 되었다. 약속시간 약 15분 전, 어린 시절 자신을 사로잡았다는 영화 속 ‘스파이’처럼 짙은 색 선글라스를 끼고 나타난 박찬욱 감독은 ‘바꿔친 감독사건’의 원인제공자로서 사과의 멘트로 ‘나의 인생, 나의 영화’에 대해 입을 열었다.) 장진 감독을 만나러 온 분들에게는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월요일에 전주에서 충분한 시간을 갖고 출발했는데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그만…. 다음 작품 때 <씨네21>이 혹평을 해도 받아들일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웃음) 용서해주시리라 믿고, 제가 살아온 이야기를 할게요. 저는 1963년에 태어났어요. 부모 양가가 서울에서만 오랫동안 여러 대에 걸쳐 살아온 보기드문 서울 토박이인데, 그런 출생의 발견이 어려서는 콤플렉스 비슷한 것이었어요. 대개 위대한 예술가는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시골 사람이(웃음) 많잖아요. 서울 토박이는 깍쟁이, 예술가보다는 공무원이나 회사원이 어울릴 것 같구요. 어렸을 때 영화를 좋아하긴 했어요. 부모님이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이셨구요. 어머니도 영화를 좋아하셔서 당시 <동아일보>가 석간이었는데 저한테 주말영화 프로그램을 읽으라고 시키곤 하셨어요. 예를 들어 감독 앨프리드 히치콕, 주연 누구 하면서 읽으면 “아, 그 영화! 봐야지” 하곤 하셨죠. 저는 보통 우리 세대 동료 영화광들과는 취향이 달랐던 것 같아요. 제임스 본드의 영향이 컸고, 첩보, 스파이 영화에 소년다운 호기심을 가졌죠. 고교 때 영화라는 매체에 매력을 느껴 감독이 될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영화판은 터프한 곳, 나약한 내가 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영화과는 지레 겁먹고 포기했죠. 왜 그렇게 겁이 많았나 몰라. (웃음) 예술에 가까운 다른 길을 해볼 수 없을까 생각해봤고 글재주는 좀 인정받았는데 가난하게 살아야 한대서…. (웃음) 미술에 관심이 많았고 작가는 되지 못해도 미술비평을 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미술비평과가 없어서 철학의 한 분과로 미학과를 가려다 주위의 조언으로 철학과를 가게 됐어요. 그런데 집안이 대대로 오래된 가톨릭 집안이라 서울대 아니면 서강대를 가야 하는 분위기야. 서울대는 못 갔고, 서강대를 갔는데 거기 철학과는 당시에는 미학에 전혀 관심이 없는 곳이었어요. 중세 교부철학에서의 미학, 할아버지 신부님의 토마스 아퀴나스 강의(웃음) 이런 것만 듣고 있으려니 못하겠더라구요. 백수 생활, 날품팔이 생활, 그리고 데뷔작 일찌감치 포기하고 동아리 활동에 취미를 붙였는데 영화와 그나마 비슷한 사진반에 들어갔어요. 서강대는 영화와 관련된 책들이 비교적 많은 학교였는데 그런 책들 뒤에 대여카드에 이름이 씌어 있잖아요. 근데 서강대는 작은 학교니까 빌려간 사람이 뻔하거든. 하나둘씩 만나기 시작했죠. 83년쯤에는 전국에 영화를 진지하게 공부하겠단 사람들이 많았어요. 정성일, 김소영, 그런 사람들 만나고 체계적으로 영화를 공부하면서 점점 깊숙이 수렁에 빠져들게 됐죠. 졸업할 때쯤 되니 막막했는데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현장에서 본격적으로 영화를 익히라고 충고해주더라구요. 이장호 감독님의 회사에 연출부 막내로 들어가 유영식 감독의 <깜동>을 했어요. 이장호 감독님은 엄청 다혈질이라 이런저런 고생을 했는데, 당시 연출부 세컨드하던 곽재용 감독이 “제작사 차릴 테니 조감독 해라” 해서 고속승진했죠. 같이 각본을 써서 <비오는 날의 수채화>라는 영화를 만들었어요. 근데, 곽재용 감독님은 또 이장호 감독님 저리 가라 할 만큼 다혈질이라서 좀 힘들었어요. 그래서 나왔는데, 그땐 이미 결혼도 한 상태라 살길이 막연하고…. 이렇게 끝낼 순 없으니 시나리오라도 한편 써보자 해서 처음으로 장편 시나리오를 혼자 썼어요. 그런데 써놓고보니 이런 재능을 충무로에서 나오게 하는 건 너무나 큰 피해다 싶어(웃음) 마음을 추스르고 작은 영화사에 취직했죠. 싼 외화 사다가 자막번역도 하고, 보도자료도 쓰고. 보따리장사 같은 것을 한 거죠. 그때 그 영화사에서는 영화를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제작비만 모이면 데뷔시켜주겠다는 약속이 있었어요. 고맙게도 제작자가 약속을 지켜주더라구요. 1억원이 조금 넘는 제작비로 영화를 만들었는데 그때는 데뷔만 할 수 있으면 뭐든 하겠다는 생각이었으니까 찍었죠. 당시엔 저예산영화라는 개념이 별로 없었고, 흥행은 해야 하니까 아주 토속적인 스토리에 형식은 이렇게 하면서 아주 현학적인 태도로 <달은 해가 꾸는 꿈>을 찍었어요. 주연배우는 영화사에서 이승철을 시키라고 해요. 당시 마약파동 때문에 인기는 있는데 TV 출연 못하니까 이럴 때 영화 만들면 얼마나 좋겠나(웃음) 이승철 아니면 안 찍겠다 하는 거예요. 선배 감독을 만나 고민을 털어놓으니까 데뷔 여부에 따라 대우가 달라지니 무조건 하라 그러더라구요. 그런데 이승철이 너무 바쁜 사람이라 도무지 만나주질 않는 거야. 촬영 전날 처음 만났어요. (웃음) 첫 마디가 “감독님, 줄거리가 뭐예요?” (웃음) 어쨌든 데뷔작은 실패하고, 그뒤로 오랜 백수 생활을 했죠. 글쓰고, 방송 출연하고 하는 날품팔이 생활. 그무렵에 이훈이라는 사람을 만났어요. 일찍 죽어서 여러분은 잘 모르시겠지만, 정말 싸구려 B급영화를 두편 만든 사람인데, 그 사람을 소개받아 미국서 사온 영화를 보면서 영화에 대한 생각이 근본적으로 바뀐 것 같아요. 살아 움직이고, 거칠고 엉뚱하고 유머러스한 영화의 세계를 안 거죠. 정말 나한테는 큰 영향을 준 친구예요. 이런 친구들의 영향이 <달은…>과 <삼인조> 사이에 있어요. 어쨌든 <삼인조>도 흥행이 안 됐고…. 내 영화로 만들고 싶은 아이디어는 너무나 많은데 계속 남의 영화만 갖고 이야기하고 있으니 못 견디겠더라고. 그래서 돈을 구해서 단편영화 <심판>을 하다가 명필름에서 <공동경비구역 JSA> 기획을 의뢰받아서 일을 시작했어요. 이 정도까지만 하고 질문을 듣죠. 모호함이 남아있는 영화가 좋다 -잡지에서 읽었는데, <공동경비구역 JSA>를 퀴어영화로 갈까 했다는데…. =남북한 병사의 우정은 약하다. 저 정도 가지고 감동이 올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그냥 우정이 아니라 사랑으로. (웃음) 어차피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개인과 개인의 휴머니즘을 억압하는 체제와의 싸움을 다룬 영화니까 병사들의 사랑과 그걸 용납 못하는 군대가 겹쳐지면 주제가 더 강해지지 않을까 했는데, 일언지하에 거절당했죠. (웃음) 아니, 대꾸를 안 하더라구요. 침묵이 잠시 흐르더니 그 애기를 아예 못들은 척하는 거야. 다시 이야기했더니 “농담이시죠?” 이래서 그냥 싸움이 끝나버렸지. 결과적으로 그렇게 안 한 것은 잘한 것이라 생각해요. -영화감독이라면 누구나 고민하는 문제라고 생각하는데요. 감독이 말하려고 하는 것을 관객이 이해 못할 때가 있잖아요. 관객과의 의사소통을 못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복수는 나의 것>이나 <공동경비구역 JSA>를 관객이 감독님이 원하는 만큼 이해했다고 생각하시나요. =관객은 여러 사람으로 이루어진 집단이니까 관객에 따라 다른 거죠. 하나의 해석만을 바라면서 만드는 건 아니고, 다양한 해석이 있을수록 재밌죠. <공동경비구역 JSA>는 비교적 비슷하게 받아들인 영화였다면 <복수는 나의 것>은 정말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더라구요. 그런데 다른 건 다 흥미롭게 받아들일 수 있는데, 도덕적 비난은 받아들이기 힘들더라구요. 너 감독 아니지라든지, 인명을 경시한다라든지. 또 명확한 정치적 노선을 갖고 만든 영화는 아닌데, 이건 스탈린주의라고. (웃음) 어떤 분은 이 영화에서 정치적인 이야기는 그냥 웃자고 한 말이다 전혀 진지한 게 아니라는 분도 있는데, 다 좋아요. 나름대로의 독법이 있는 것이고. 하여간 정말 훌륭한 영화는 한줄로 꿰어지지 않고 뭔가 모호함이 남아 있는 어떤 것이 있어야 재밌다고 생각합니다. -<복수는 나의 것>에 대해 질문드리겠는데요. 호두 이론이라고, 하드고어는 껍데기가 딱딱해 깨물면 이가 빠져 진짜 맛있는 알맹이는 먹을 수 없는 호두와 같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복수는 나의 것>이 그런 경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감독님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너무 딱딱한 껍데기 때문에 관객이 이해하기 힘들었다고 생각해요. 그것에 대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 정도로 하드고어라고 할 수 있나? (웃음) 너무 잔인한 폭력묘사라든가 이런 데 눈을 뺏겨 진짜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다는 말이죠? 그건 이 경우에는 맞지 않다고 생각해요. 이 영화는 토마토예요. 껍질도 먹고, 알맹이도 먹고. (웃음) 그러니까 폭력묘사도 내가 똑같이 중요하게 생각한 이 영화의 핵심이고. 그 안에 그것말고 다른 뭔가 맛있는게 있지는 않았다는 거죠. 단편 <심판>도 그렇고, <복수는 나의 것>도 그렇고 굉장히 종교적 냄새가 나는데, 아까 가톨릭 집안이라고 하셨는데 처음부터 그런 해석이 들어갔는지 궁금하구요. 또 <복수는 나의 것> 마지막 장면이 상당히 실망스러웠는데, 송강호가 죽는데 배두나씨 조직이 와서 죽이잖아요. 그전까지 배두나 혼자 생각인 줄 알았는데 정말 조직이 와서 죽이는 것이 껄끄러웠고, 또 조직에서 가슴에 꽂은 죄명을 송강호가 보잖아요. 그것이 약간 촌스럽게 느껴졌거든요. 그런 점에서 감독님의 죽음에 대한 철학을 좀 밝혀주세요. 종교적 분위기에서 성장한 것이 분명히 영향이 있다고 생각해요. 가톨릭이라는 종교가 죄와 구원의 문제를 눈에 선한 이미지로 제시하는 것도 그렇고, 인간의 원죄나 수많은 성인들의 순교사 같은 것들이 영화적인 요소를 많이 갖고 있어요. 제 영화에서는 항상 죄와 구원의 문제가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 같아요. <복수는 나의 것>의 끝은 보기 나름인 것 같아요. 저는 그 장면이 촌스러움의 반대라고 생각하는데, 극단끼리 만난다더니 그렇게 보는 분도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송강호가 판결문을 보는 부분은, 나라면 죽기 전에 자기를 살해한 사람이 무슨 이유로 그러는지 알고나 죽자는 하는 마음이 생길 것 같았기 때문이죠.

5월9일

“너 사는 게 힘들구나. 늙었다….” 이렇게 만난다는 건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사실은 좀 민망했다. 친구 상가에서 같이 운구를 했던 게 1990년쯤이니 12년 만이다. <씨네21> 평론상 당선작을 뽑고 나서 뽑힌 사람이 1962년생이라는 걸 알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이 마흔 넘어 이런 짓을 하고 있다니…. 이 사람도 속에 바람이 어지간히 많은 모양이군…. 그런데, 이름이 낯익었다. 설마 했다. 사실은 내가 아는 친구와 동일 인물일 거라는 예감이 곧바로 들었으나, 그렇지 않길 바랐다. 그런 예감이 든 이유도 그게 아니길 바란 이유도 잘 모르겠다. 그 친구와 나는 딱히 친한 편은 아니었다. 그저 같은 시대에 같은 학교를 다니고 비슷한 고민을 했던 터라, 강의실에서보다는 술집에서 거리에서 좀더 자주 마주쳤고, 난 사람 좋아보이는 잔주름 많은 그의 얼굴과 처진 눈과 느린 말투를 기억하고 있었다. 살다보면, 느리게 천천히 다가와서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사람들이 있다. 대개 목소리가 낮고 마음이 여린 사람들이다. 그리고 대체로, 가진 게 늘 적은 사람들이다. 공장에서 4년 동안 일했고, 동료들이 왕창 빠져나간 뒤에도 90년대 중반까지 노동운동에 관여했다는 사실말고는 그가 어떤 세월을 살았는지 난 모르고 있으나(그걸 새삼스레 물어볼 자격이나 의지가 없다), 이 친구는 그런 사람처럼 보였고 지금도 그렇게 보인다. 인터뷰를 위해 찾아온 그를 보고나서(그리고 늙었다는 소리를 듣고나서) 복도에 나가서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웠다. 이런저런 상념들이 한꺼번에 몰려와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나쁘거나 추하지 않은데도, 그냥 말하지 않은 채 묻어두고 갈 수밖에 없는 게 있다. 그의 갑작스런 등장이 불러일으킨 지난 세월에 대한 상념들은 당분간 그렇게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어슬픈 정리와 회고는 그 세월을 함께했던 누군가를, 아니면 고귀한 무언가를 모욕한다. 그때의 노래들이 지금 CF의 배경음악으로 나올 때, 혹은 빠른 비트로 리메이크될 때, 왠지 나도 모욕자의 대열에 빨려들어가는 느낌이 들어 마음이 불편하다. 다만, 그 늙은 친구는 좋은 평론가가 됐으면 좋겠다. 그 이름 뒤에 영화평론가라는 직함이 붙는다는 게 아무래도 낯설지만, 그리고 그게 그에게 어떤 걸 갖게 해줄진 모르겠지만. 우리가 아주 작게나마 진심으로 할 수 있는 일이 그렇게 많이 남은 것 같지 않다. 알립니다. 아줌마 코너를 쓰던 오은하씨가 두 번째 후예를 분만하느라, 두달간 쉽니다. 그 사이에 파출부 코너라도 마련할까 했으나, 섭외받는 사람이 별로 좋아할 것 같지 않아 포기하고 그냥 그 코너를 비워두기로 했습니다. 보고에 따르면 두 번째 아기는 3.85kg으로 그날 빛을 본 친구 중 가장 거구였으며, 모친의 표현을 옮기면 얼굴이 ‘누운’ 달걀형으로 눈이 끝나고도 얼굴이 한참 이어진다고 합니다. 어쨌거나 둘다 건강하답니다. 아줌마 팬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인디포럼 2002 애니메이션 부문

내러티브보다 이미지에 천착한 갖가지 실험과 다양한 주제의식이 빛난다. 형식면에서 2D와 3D는 경계를 허물었고 퍼핏, 스톱모션, 클레이, 페이퍼 등 여러 기법이 사이좋게 공존한다. 인간의 내면과 현대 자본주의사회를 응시하는 시선이 만만치 않다. 퍼스 포패 린다 김 / 6분47초 / DV6mm컬러 / 퍼핏 어둡고 환상적인 작품으로 이름높은 체코의 초현실주의 아티스트 얀 스팡크애머와 그의 상상력을 이어받은 인형애니메이션 작가 퀘이 형제, 인체에 관한 기형적이고 에로틱한 상상력을 보여준 일련의 인형작품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초현실주의자 한스 밸머 등에게 영향을 받은 퍼핏애니메이션. 기괴한 이미지와 풍경, 낡고 지저분한 인형의 딱딱한 움직임으로 표현한 거짓된 자의식과 정체성에 대한 음산한 상상력은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의 악몽>을 연상시키지만, 그보다 몽환적인 느낌은 덜하고 기괴한 압박감은 더하다. ‘퍼스 포패’는 거짓된 인형이란 뜻이다. Now, Who Rules You? 이우진 / 4분 / DV6mm컬러 / 3D 현대 자본주의사회를 지배하는 다국적 자본의 보이지 않는 손길을 풍자적으로 보여주는 작품. 소비에트 공화국의 붉은 깃발이 위압적으로 솟구쳐오르고, 사람들은 압제에 시달린다. 사람들은 저항하여 독재자를 무너뜨리고, 자유·평등·박애의 삼색기가 깃대에 오른다. 그러나 그 기치를 짓밟고 사람들을 지배하는 깃발이 올라간다. 새로이 ‘당신을 지배하는’ 독재자는 바로 맥도널드. 맥도널드 로고가 새겨진 깃발이 펄럭이면서 맥도널드 인형 동상이 우뚝 솟는 통렬한 반전이 돋보인다. 연분 이애림 / 17분 / beta컬러 / 2D&3D&스톱모션 샤갈의 그림, 또는 캐나다 애니메이터 이슈 파텔을 연상시키는 현란한 비주얼과 색채감이 돋보이는 컷아웃 애니메이션. ‘신랑은 졸고, 신부는 머리를 만지고 있었다…’라는 이야기가 자막으로 떠오르면서 시작한다. 졸고 있는 신랑 옆에서 머리를 만지던 신부는 훔친 꽃을 바치며 사랑을 속삭인 도둑과 사랑의 도피를 해버리고 복수를 위해 쫓아가던 신랑은 자신을 부추겨 함께 쫓아가던 사람과 사랑에 빠진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를 풀어낸다. 운명의 아이러니, 인연의 기이함을 이국적이고 환상적인 톤으로 채색한 수작. 너나 잘해! 신영재 / 5분 / 35mm컬러 / 페이퍼애니메이션 선과 면, 원, 입방체의 단순명료한 조형 요소들의 움직임이 스타카토처럼 톡톡 튀는 애니메이션. 빈 공간에서 떨어져 정육면체로 변한 하얀 종이에 ‘애정’이 가해진다. 갑자기 등장한 물체가 상자의 색과 모양을 바꾸려 한 것. “애정이 때로는 상대방에게 고통으로 다가올 수도 있음”이라는 주제를 간결하고 깔끔하게 표현했다. 여름 김정화 / 11분 / 35mm컬러 / 2D 신발을 갖게 되어 너무 기쁜 소년. 그런데 신발을 날리다 그만 시냇물에 빠뜨리고 만다. 신발을 찾아 물 속으로 들어간 소년은 물고기 한 마리를 만난다. 중국 수묵애니메이션의 걸작인 테웨이의 <피리부는 목동>을 연상시키는 담채화 같은 느낌의 화면이 돋보인다. 외로운 동심과 물고기로 대변되는 자연과의 교감이라는 주제를 세련된 화면이 단단히 받쳐준다. 레인 이규희 / 6분 / beta컬러 / 2D 순정만화풍의 그림과 움직임을 자제한 컷으로 도심의 메마른 일상과 외로운 사랑을 그린 작품. 출퇴근 길에 마주친 남과 여는 서로 사랑하게 되지만 다가가지 못한다. 어느 날 남자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곁에는 아무도 없다. 그가 흘린 눈물 한 방울이 때마침 불어온 바람을 타고 그녀에게 전해진다. 단정하게 정지된 그림체와 아르페지오로 들려오는 기타소리가 쓸쓸한 여운을 남긴다. 음양(陰陽) 안소정 / 2분30초 / beta컬러 / 2D 사람의 얼굴과 입술 사진을 다양하게 변형시켜 인간 내면의 이중성을 표현한 전위적인 작품. 인간의 야누스적인 면을 얼굴 사진 한장이라는 간소한 재료로 표현한 재치가 돋보인다. 얼굴과 입술의 클로즈업, 흑과 백의 강렬한 콘트라스트, 데칼코마니처럼 쪼개서 펼쳐보이는 등 사진을 해체, 재조합해서 나타나는 효과를 노련하게 잡아냈다. Lunch Times 김경미, 박수영, 서정엽, 양세희 / 4분30초 / beta컬러 / 2D 햄버거를 베어먹는 만족스러운 입을 클로즈업하면서 시작하는 는 소를 의인화해서 들려주는 햄버거에 대한 섬뜩한 명상이다. 햄버거 공장 컨베이어 벨트에서 일하던 한 노동자가 사고로 기계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노동자는 햄버거 속 패티로 ‘부활’하고, 게걸스럽게 햄버거를 먹어치운 사람들에게는 재앙이 닥친다. 위정훈 oscarl@hani.co.kr▶ 인디포럼2002 5월18일부터 9일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 인디포럼 2002 극 . 실험영화 부문 (1) ▶ 인디포럼 2002 극 . 실험영화 부문 (2) ▶ 국내 · 해외초청작 ▶ 인디포럼 2002 애니메이션 부문 ▶ 인디포럼 2002 다큐멘터리 부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