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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2003)

‘KBS 프리미어’ 시리즈 네번째 영화 <브라더스>

형제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가운데 십중팔구는 형과 동생의 상반된 캐릭터를 극명하게 대비시킨다. 모범적인 형과 끊임없이 비교 당해 삐딱해진 동생, 속물스러운 형과는 달리 세상의 때가 전혀 묻지 않은 동생…. 그러나 대부분 끝에 가서는 형과 동생 가운데 어두운 쪽이 밝은 쪽으로 동화돼 둘이 손잡고 환하게 웃으며 자막이 올라가는 식이다. 극장 개봉과 텔레비전 방영을 같은 날 하는 ‘KBS 프리미어’ 시리즈의 네 번째 영화 는 전혀 다른 방식의 형제 이야기다. 처음에는 비슷하게 나가는 듯하다가 뒷부분에선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어릴 때부터 모두의 본보기가 돼온 형 미카엘(율리히 톰슨)과 부모의 편애 속에 비딱해진 동생 야닉(니콜라이 리 카스)은 모든 면에서 비교가 되는 사이. 아내와 사랑스러운 두 딸, 늙으신 부모 앞에서 자상한 남편이자 아버지, 아들의 역할에 늘 충실한 형은 교도소에서 갓 출소한 동생마저도 사랑으로 감싸안는다. 어느날 직업군인으로 아프가니스탄 전장에 가게 된 형이 헬기 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가족은 견디기 힘든 슬픔에 빠진다. 형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뒤늦게 깨달은 동생은 엉망이었던 삶을 추스르고 형의 가족을 돌보기 시작한다. 날로 변해가는 동생이 형의 빈 자리를 채워나가면서 서로 깊이 알게 된 동생과 형수 사이에서는 묘한 유대감이 싹트고, 조카들은 삼촌을 아빠처럼 따르게 된다. 한편, 기적적으로 살아난 형은 적에게 포로로 잡히고 거기서 평생 지울 수 없는 충격적인 사건을 겪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게 되지만, 그는 이미 예의 그 미카엘이 아니다. 아내와 동생 사이를 끊임없이 의심하던 그는 점점 광폭해지고 평온하던 가정은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든다. <브라더스>는 사람의 심성이 외적인 변화요인에 의해 어디까지 바뀔 수 있는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형과 동생의 심성이 서로 뒤바뀌게 되는 계기와 과정이 충분히 설득력 있게 다가오며 억지스러운 해피엔딩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덴마크 영화로 2005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했다. 수잔 비에르 감독. 23일 단성사 개봉.

기발 엽기발랄 ‘썬데이서울’

전북 진안군의 한적한 시골길가에 자리잡은 한 주유소. 살랑대는 봄바람 위로 이상하리만치 스산한 기운이 감돈다. 주유소 안에는 두 무리의 사람들이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은 채 서로를 노려보고 있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다. 봉태규를 중심으로 늘어선 껄렁한 젊은이들은 그렇다 쳐도, 이청아와 함께 선 남자들은 삼국시대 도인을 떠올리게 하는 차림새부터 심상치않다. 게다가 두 무리의 가운데 진을 치고 심판인 양 관망하는 듯한 한 가족의 모습에선 엽기스러운 분위기마저 풍긴다. 일촉즉발의 팽팽한 긴장감 틈새로 묘하게도 코믹스러운 기운이 솔솔 피어오르는 순간, “컷!” 하는 외침이 적막을 깬다. 제작·출연진 모두 노개런티, 다시보는 정소녀 김추련 지난 18일, <썬데이서울>의 제작진은 모든 등장인물들이 영화 전체를 통털어 단 한번 한자리에 모이는 장면을 찍었다. 각 무리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세가지 이야기들이 절묘하게 합쳐지는 순간이다. 영화의 중심축은 세가지 각기 다른 사건들을 차례로 목격하게 되는 두 청년. 이들이 마주하게 되는 상황들은, 외계인이 지구에서 암약하고 있다는 음모론을 다룬 영화 <맨 인 블랙>이나 텔레비전 시리즈물 <엑스 파일> 못지 않게 그럴듯하면서 황당하다. “너무 안정적 구도로만 가는 한국영화에서 발상의 틀을 깨부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새로운 시도는 예술영화에서만 하는 게 아니거든요. 왜, 만화에서도 이현세·허영만 등의 정극보다는 <이나중 탁구부> 같이 황당하게 홀딱 깨는 만화가 더 재밌잖아요. 이런 식의 새로움을 영화로 보여주고 싶었던 거죠.” <품행제로>와 <에스 다이어리>의 프로듀서를 맡았던 박성훈(36) 감독은 자신의 첫 연출작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썬데이서울>은 80여명의 모든 제작진과 출연진이 선개런티를 한푼도 받지 않고 촬영에 들어간 것으로도 화제를 모은다. 이는 마당발을 자랑하는 박 감독의 힘이다. 한손에는 직접 쓴 기발한 시나리오를, 다른 한손에는 인간관계를 무기 삼아 들고 찾아온 박 감독의 제의를 뿌리치기는 누구도 쉽지 않았을 터다. “제작비를 줄이기 위한 것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모두가 영화에 애정을 갖고 임하도록 하는 게 더 큰 목적이었어요. 선개런티 없이 개봉 뒤 흥행 수익을 나누기로 한 거죠. 배우와 스태프들이 모두 투자자로 나선 셈이라고나 할까요?” 영화의 실제작비는 모든 촬영을 마친 지금까지 7억원 가량밖에 안들었다. “프로듀서로서 제작비를 계산해보니 처음에는 30억원 정도 나왔어요. 새로운 시도에 따른 위험부담을 줄이기 위해 최대한 거품을 빼다보니 이렇게까지 줄더라고요. 사실 스타시스템 등으로 한국영화 제작비가 너무 부풀려진 측면이 있었던 거죠.” 15년 이상의 공백을 깨고 돌아온 정소녀와 김추련의 캐스팅도 박 감독의 남다른 생각에서 나왔다. “흔히 배우가 없다고들 하지만, 조금만 달리 생각하면 좋은 배우가 많거든요. 예전에 날렸지만 지금은 잊혀진 배우 가운데 비중있는 조역을 잘 소화해낼 분들이 굉장히 많아요. 이런 분들을 너무 홀대해온 현실이 안타까웠어요.” 정소녀와 김추련은 “너무나도 진지하고 열심인 후배들로부터 배우는 자세로 열심히 임했다”고 출연 소감을 밝혔다. 이날 촬영분을 끝으로 크랭크업된 <썬데이서울>은 막바지 작업을 거쳐 오는 8월께 개봉된다.

[외신기자클럽] 낯선 억양을 접하는 즐거움 (+불어원문)

한국 영화에 있어 한국어의 다양함이 큰 역할을 한다고 할 때, 한국 관객들은 외국 배우들이 한국 영화에서 한국어를 말하는 것을 들을 기회가 아주 적다. 이런 결핍은 막연하게 나마 텔레비전 쇼 프로에서 충족되지만, 한국 관객들에게 있어 외국인 스타가 한국어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지켜 본다는 것은 미지의 경험으로 남아 있다. 반면에 그것은 서구에서는 꽤 흔한 일이다. 프랑스의 경우를 살펴 보도록 하자. 모든 사람들이 오드리 헵번을 좋아하지만, 프랑스인은 그녀와 어느 정도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봄이 뽕데자르 위에서 자신을 한창 뽐낼 때면 빠리의 영화광들은 그녀를 생각한다. <사브리나>를 시작으로 <샤레이드> 또는 <하오의 연정>을 거쳐 <퍼니 페이스>까지, 적지 않은 그녀의 영화는 빠리 생활의 즐거움을 발견하도록 이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녀는 프랑스어를 아주 잘 하고 그녀의 대사에는 종종 맛깔스러운 프랑스어가 있었다. 따라서 프랑스 사람들은 그녀가 ‘mon cher’, ‘rive gauche’를 발음할 때나 또는 험프리 보가트를 위해 ‘장미빛 인생’(La vie en rose)을 낮은 목소리로 노래할 때의 그녀가 ‘r’발음을 하는 방법에 매우 민감하다. 프랑스 사람들과 프랑스어권 사람들이 오드리 헵번의 이런 매력의 특혜 받은 대상이다. 그녀는 우리와 가깝다는 인상을 준다. 많은 여배우들은 (그리고 보다 드물게 몇몇 남자 배우들도) 그들의 전 연기 생활을 통해 그들의 말씨로 프랑스 영화를 풍요롭게 하며 뚝 떨어진 몇몇 단어의 경험을 뛰어 넘어 밀고 나갔다. 예를 들어 누벨 바그는 <네 멋대로 해라>에서 ‘지저분하다는 게 뭐야?’라고 어눌하게 말하는 진 시버그의 영어식 억양과 겨우 알아차릴 수 있을까 말까 한 말씨로 덴마크인 안나 카리나가 아주 부드러운 낯섦으로 문장들을 또박또박 발음하는 것에 많이 빚지고 있다. 오늘날 프랑스어권 국가는 영향력을 많이 잃었지만, 프랑스 사람들은 여전히 외국인들이 프랑스어를 발음하는 방식에 호기심을 갖고 있다. 우크라이나 출신의 젊은 배우 올가 큐리렌코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 있는데, 그녀는 요꼬 오가와의 일본 단편 소설을 각색한 함부르크를 무대로 한 디안느 베르트랑의 특이한 영화 <약지 손가락>으로 강한 인상을 주었다. 수줍은 듯한 그녀의 말투는 천진난만함, 이국 정조 그리고 신비감의 터치를 작품에 가져다 주며 인물의 연약함을 강조한다. (영화에서 그녀의 출신은 전혀 명시되지 않는다.) <노보>에서 약간은 넋이 나간 남자를 연기한 스페인 배우 에두아르도 노리에가의 (<오픈 유어 아이즈>의 주인공)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프랑스어를 할 줄 몰라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그는 대사를 외워서 했다. 쟝-삐에르 리모젱 감독은 병(주인공은 3분마다 기억을 잃어 버린다.)에 걸린 인물을 잘 드러내기 위해 배우의 연약함에 기댄다. 최근 장 만옥은 <클린>에서 프랑스어로 연기를 했다. 올리비에 아싸이야스 감독은 영어에서 프랑스어로 옮겨가는 과정을 통해 주인공이 흔들림에서 구원의 길로 나아가는 것을 보여준다. 언어는 여행승차권이다. 그것은 영상과 추억을 감싸 안는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모니카 벨루치가 프랑스에서 거둔 성공에 가끔 놀라와 한다. 그들은 이탈리아 식으로 발음된 구르는 ‘r’음과 노래하는 듯한 ‘e’음을 듣는 프랑스 사람들의 즐거움을 알 수가 없다. 벨루치의 분절법은 (그리고 어느 정도 아지아 아르젠토나 로베르토 베니니의 분절법도…) 프랑스인들이 그토록 좋아했던 치네치타의 영화로 그들을 돌려 보낸다. 그들의 억양은 소피아 로렌, 마르첼로 마스트로이얀니 또는 크라우디아 카르디날레의 메아리를 일깨운다. 스페인인이든 영국인, 이탈리아인, 포르투갈인이든 프랑스 영화는 불어를 배운 배우들에게 좋은 역할을 줌으로써 보답했다. 그 대신에 억양만으론 충분치 않다. 이 배우들은 그들의 분절법의 이국 정서가 단지 상투성을 실어 나르는데 사용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프랑스인들 못지 않게 갈고 닦아야만 한다. 자신의 언어가 아닌 외국어로 연기 경력을 쌓기 위해선 자신의 억양을 하나의 도구로 인식해야만 하고, 전형적인 형태를 뛰어 넘기 위해선 그것을 지혜롭게 이용해야 한다. 여기에서 나는 서구 영화에 있어 특수한 부분에 대한 몇 가지 즉흥적인 견해를 선보였다. 아시아 영화들을 보면서 기실 내 나라의 영화를 다른 관점에서 보게 됐다. 다음 번에는 금발 여배우들에 관해 이야기하려 한다. 나는 금발의 중요성을 이해하기 위해 한국에 가서 금발 여배우가 없는 영화를 발견해야만 했다. Specificites du cinema occidental. 1 : plaisir de l’accent etranger. Si le cinema coreen joue beaucoup sur la variete de sa langue, ses spectateurs ont peu l’occasion d’entendre le coreen parle par des etrangers au cinema. Ce manque est vaguement comble par des shows teles, mais pour le spectateur coreen, observer une star etrangere s’exprimer dans sa langue reste une experience inedite. Elle est en revanche assez frequente en Occident. Je vais tacher de decrire l’exemple francais. Tout le monde aime Audrey Hepburn mais les francais ont noue avec elle une relation quasi intime. Quand le printemps pointe son nez sur le Pont des Arts, le cinephile parisien ne peut s’empecher de songer a Audrey. Il faut dire que de Sabrina a Funny Face en passant par Charade ou Love in the afternoon, une bonne part de ses films l’amene a decouvrir les plaisirs de la vie a Paris. Elle parlait tres bien notre langue et ses dialogues etaient souvent pimentes de francais. Nous sommes donc sensibles a sa facon craquante de prononcer les ≪ r ≫ lorsqu’elle dit ≪ mon cher ≫, ≪ rive gauche ≫ ou lorsqu’elle chantonne ≪ La vie en rose ≫ pour Humphrey Bogart. Francais et francophones sont les cibles privilegiees de cette facette du charme d’Audrey Hepburn. Elle semble proche de nous. De nombreuses comediennes (et plus rarement quelques comediens) ont pousse l’experience au-dela de mots isoles, enrichissant notre cinema de leur accent tout au long de leur carriere. La Nouvelle Vague doit par exemple beaucoup a l’accent anglais de Jean Seberg balbutiant ≪ c’est quoi degueulasse ?≫ dans A bout de souffle et a la danoise Anna Karina dont l’accent, a peine perceptible, scande les phrases d’une douce etrangete. Aujourd’hui, la francophonie a perdu de son influence, mais les francais sont toujours curieux de la facon dont les etrangers prononcent leur langue. On attend beaucoup d’une jeune actrice ukrainienne, Olga Kurylenko, qui creve l’ecran dans L’annulaire, curieux film de Diane Bertrand situe a Hambourg et adapte d’une nouvelle japonaise de Yoko Ogawa. Sa diction timide accentue la fragilite du personnage, apportant une touche de candeur, d’exotisme et de mystere au projet (son origine n’est jamais precisee dans le film). Il en va de meme pour l’espagnol Eduardo Noriega (Ouvre les yeux) qui joue un homme un peu paume dans Novo. Ne parlant pas francais, il recite son texte d’oreille sans savoir ce qu’il dit. Le cineaste Jean-Pierre Limosin s’appuie sur la fragilite du comedien pour illustrer la maladie qui frappe le personnage (il perd la memoire toutes les trois minutes). Recemment, Maggie Cheung jouait en francais dans Clean. Le passage de l’anglais au francais permettait a Olivier Assayas de montrer le basculement de l’heroine vers la redemption. Les langues sont des carnets de voyages. Elles renferment des images et des souvenirs. Les italiens sont souvent surpris du triomphe de Monica Bellucci en France. Ils ne peuvent pas saisir le plaisir que nous avons d’entendre notre langue parlee ≪ a l’italienne ≫, ces roulements de ≪ r ≫ et ces ≪ e ≫ chantants. Le phrase de Bellucci (et dans une moindre mesure celui d’Asia Argento ou Roberto Benigni…) nous renvoie au cinema de Cinecita que nous avons tant aime. Ses intonations eveillent les echos de Sophia Lauren, Marcelo Mastroianni ou Claudia Cardinale. Espagnols, anglais, italiens, portugais, le cinema francais a recompense de beaux roles ceux qui ont appris sa langue. En retour, l’accent ne suffit pas. Ces comediens ont du s’escrimer autant que les francais pour que l’exotisme de leur phrase ne serve pas uniquement de vehicule a cliches. Pour faire carriere dans une autre langue que la sienne il faut considerer son accent comme un instrument, en jouer intelligemment pour s’elever au dessus des archetypes. J’entame ici quelques reflexions impromptues sur des details specifiques au cinema occidental. En frequentant le cinema asiatique je vois en effet celui de mon pays d’un autre point de vue. La prochaine fois, je vous parlerai des blondes. Il m’a fallu aller en Coree, decouvrir un cinema sans blondes, pour saisir leur importance…

그때 그 소녀의 10년만의 외출, <선데이 서울>의 배우 정소녀

시간이 많이 흘렀어도 이런 이름을 잊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정소녀. 사실 연기자보다는 텔레비전 오락프로그램의 명사회자로 더 잘 알려져 있던 그녀다. 하지만 근 10년 동안 영화 나들이를 하지 않았던 것이 꼭 역이 들어오지 않아서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굉장히 나이가 많아 보일 거라고 생각을 했는지 와서 보고 나더니 그냥 가더라고요. 나도 사실 대학생 딸이 있는데….” 이렇게 그 사이 들어온 역 중에는 실제로 그녀와 같은 연배의 엄마 역할도 있었지만 ‘너무 젊어 보이는 탓에’ 인연이 닿지 않았다. 이번 영화 <선데이 서울>의 출연은 경우가 좀 달랐다. “영화 자체가 70, 8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감독은 오랫동안 보이지 않던 배우를 찾는 것 같았고”, 그녀의 입장에서도 “얘기를 쭉 듣다보니 굉장한 야심을 갖고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어서 잠깐 출연해도 보람있을 것 같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노개런티가 아니었다면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일하는 재미가 먼저라는 말이다. 탤런트로 시작하여 사회자를 맡게 된 대한민국 여자 연예인 1호인 만큼 “연기자보다는 사회자가 더 편하다”고 생각하는 쪽이고, “연기는 탁 풀고 몰입을 해야 하는데, 정돈된 거 좋아하고, 게다가 스스로 내 연기를 보고도 저게 아닌데 할 때가 있어서… 활발하게 연기활동 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그거”라고도 말하는 정소녀가 이번에는 굉장히 편했다고 한다. 영화 속에 잠시 등장하는 이상한 가족의 엄마 역할에 꽤 재미있어 하는 눈치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지는 건, 영화 제목이 <선데이 서울>이라…. 70, 80년대 활동했던 여자 연예인치고 이 가십 잡지에 이름 한번 안 올린 사람이 있을까? 그랬더니 옛날이야기 한 토막이 흘러나온다. “그렇죠. 잡지 이름이었죠. 예전에 제가 <선데이 서울>에 아주 단골손님이었죠. (웃음) 이때 주간지들이 날개 돋친 듯이 나갔었죠. 한창 활동 때는 매주 다른 잡지 표지에 번갈아 실렸어요. 거의 한주도 안 빼놓고 내 기사가 다 나왔죠. 칭찬도 있었지만, 거의 다 가십이죠. 고고장에서 누구누구 연기자들하고 모여서 밤새 놀았다더라, 이런 거. 그때 사실 우리는 남자하고 잘 어울리지도 않았는데 무슨 큰 기사처럼 그렇게 내고 그러니까, 20대 초반 나이였는데 억울하더라고… 그렇게 덤터기 쓰고… 가면 모든 돈은 내가 다 지불하고선… 소문은 나쁘게 나니까….” 지금은 그냥 웃으면서 할 수 있는 옛날이야기다. 지금 그녀에게 <선데이 서울>은 잡지가 아니라 영화다. 갑자기 걸려오는 전화. “영화 출연한다는 말을 듣고 여기 저기 방송사에서 전화가 온다”고 한다. 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 망설이고 있는데, 옆에 있는 누군가가 다리가 참 예쁘세요, 라고 말한다. 소녀처럼 좋아한다.

특별전 갖는 피터 쿠벨카의 영화세계

영화언어의 기본 단위는 숏이 아니라 개개의 ‘프레임’, 쿠벨카는 리듬과 매체의 물질성이 강조된 일련의 ‘운율적’ 영화들(<아데바> <슈베하터> <아르눌프 라이너>)과 사진적 이미지의 병치 및 충돌에 의해 풍부한 함의를 띠게 되는 ‘은유적’영화(<우리의 아프리카 여행>)로 이를 실천한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를 방문한 오스트리아 영화감독 피터 쿠벨카는 실험영화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혁신자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인물이다. 지독한 과작(寡作)의 영화작가로 알려져 있는 그는 재작년에 26년 만의 신작 <시와 진실>을 내놓아 조용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 13분짜리 컬러영화는 텔레비전 광고를 위해 촬영되었으나 사용되지 않은 필름들을 쿠벨카가 직접 찾아내 모은 것으로, 운율적 반복과 리듬감, 그리고 필름이라는 매체에 대한 유물론적 인식 등등, 그야말로 ‘쿠벨카적’이라고 불릴만한 것의 진수들이 모두 담겨있는 작품이다. 쿠벨카 스스로가 “나의 진정한 계승자”라고 인정한 바 있는 오스트리아 영화박물관 - 쿠벨카는 이 기관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 의 알렉산더 호바트는 이 작품에 대해 다음과 같은 헌사를 바치기도 했다. “일련의 ‘운율적 영화’들과 <우리의 아프리카 여행>(1966)으로 대표되는 ‘은유적 영화’들의 단계를 거쳐, 쿠벨카는 이제 ‘형이상학적 영화’라고 불릴 수 있을 새로운 단계로 접어든 것처럼 보인다.” <시와 진실>을 발표하기 이전에 쿠벨카가 만든 영화들은 고작 6편에 지나지 않으며, 전작을 다 합쳐도 상영시간이 채 60분이 되지 않는 것들이었다. 게다가 그의 필모그래피에는 상영시간이 1~2분에 지나지 않는 ‘초’단편영화들도 포함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런 경력의 쿠벨카가 실험영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혁신자 가운데 하나이자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부상하게 되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쿠벨카의 중요성은 그의 영향력에서가 아니라 그의 영화작업 자체에서 찾아져야 할 것이라는 점은 말할 필요도 없다. ‘영화의 본질’(essence of cinema)을 파헤치기 위한 그의 집요한 노력은 그의 작업 전체를 관통하는 일련의 테제들을 이끌어내게 된다. 그것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영화는 실재의 직접적인 흔적인 동시에 ‘언어’이기도 하다는 것, 이러한 영화언어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는 (에이젠슈타인 이후 많은 사람들이 믿어왔던 것처럼) ‘숏’이 아니라 개개의 ‘프레임’이라는 것, 결국 영화적 기호작용의 ‘본질’은 숏과 숏 사이가 아니라 프레임들 사이에 놓여 있다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이와 같은 테제의 실천은 우선 리듬과 매체의 물질성이 강조된 일련의 ‘운율적’(metric) 영화들 - <아데바> <슈베하터> <아르눌프 라이너> -을 통해 이루어졌고, 지시적 속성을 지닌 사진적 이미지의 병치 및 충돌에 의해 풍부한 함의를 띠게 되는 ‘은유적’(metaphoric) 영화 - <우리의 아프리카 여행> - 들이 그 뒤를 잇게 된다. 피터 쿠벨카는 유럽출신의 영화작가이기는 하지만 요나스 메카스, 스탠 브래키지 등의 도움을 얻어 미국에서 활동 - 주로 강연 - 하기 시작하면서 북미권의 실험영화 작가들에게 서서히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는데, 특히 1960년대 이후 아방가르드 영화계의 이슈로 떠오른 유물론적 ‘구조영화’(structural film)의 선구자로서의 쿠벨카의 위치는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쿠벨카가 꼭 과거의 영화작가라는 뜻은 아니다. 그는 영화작업을 거의 그만둔 이후에도 차세대의 영화작가들을 가르치고 영화상영 및 교육 프로그램 등을 기획하면서 끊임없이 자신만의 ‘영화작업’을 계속해왔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오스트리아 영화작가 가운데 하나이자 쿠벨카가 매우 재능 있는 필름메이커로 꼽고 있는 마틴 아놀드는 쿠벨카 특유의 차이 나는 반복을 보다 미시적이고 미분화된 수준에서 수행함으로써 운율적 반복과 리듬을 통한 정서의 창출이라고 하는 쿠벨카적 기획을 잇고 있다. 쿠벨카의 신작 <시와 진실>을 어떤 점에선 마틴 아놀드와 같은 젊은 세대의 작업들에 대한 노장의 현재적 응답으로 간주할 수 있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한편 오늘날의 쿠벨카는 영화감독이라고 하는 특정한 영역에 자신을 가두기를 거부하며 - 그 자신의 표현대로라면 ‘탈전문화’(de-specialization) - 음악, 요리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중이다. 이때 우리는 비단 한 명의 시네아스트가 아닌 거대한 교양으로 무장한 르네상스인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기동전함 나데시코> 리마스터판 2006년 발매

그간 소문으로만 무성했던 일본 애니메이션 <기동전함 나데시코>의 재발매가 공식으로 발표됐다. <기동전함 나데시코>는 일본에서 1996년 첫 방영 이래 지금껏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TV 애니메이션으로, 국내에서도 방영되어 많은 팬들을 양산한 SF 시리즈다. <신세기 에반게리온> 등 이전의 인기 작품들을 패러디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작품성과 재미를 인정받았는데, 특히 극중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차가운 미소녀 ‘루리’는 역대 애니메이션 캐릭터들 중에서 인기 순위 1위에 오를 정도였다. 최근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가 기존의 인기 작품들을 업그레이드시켜 재출시하는 추세를 보이는 가운데, DVD로서 그리 좋은 화질이 아니었던 <기동전함 나데시코> 역시 재발매된다는 이야기가 팬들 사이에 퍼져있었다. 제작사인 스타차일드의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HD 텔레시네를 통한 고화질과 새롭게 녹음한 돌비 디지털 5.1 채널 음향으로 2006년 봄에 선보일 예정이다. 한편 <기동전함 나데시코>는 다우리 엔터테인먼트를 통해 국내에 발매된 바 있는데, <신세기 에반게리온 리뉴얼> <자이언트 로보 리마스터판> 같은 다른 일본 애니메이션 타이틀과 마찬가지로 재발매 버전이 국내에도 출시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What's Up] 미국 인디언족의 인디언영화 제작 투자 붐

미국영화에 등장하는 인디언은 대체로 백인 주인공의 적이었다. 잔인하고, 더럽고 낙후된 종족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고 있다. 현존하는 미국 인디언족들이 이미지 쇄신을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할리우드 투자시장에 적극 뛰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릭 슈로더 감독의 <검은 구름>(2004)이 한 예다. 미국 올림픽 복싱팀 소속 나바호족 인디언 선수를 소재로 한 영화 <검은 구름>의 제작비 100만달러는 미국 전역 12개 인디언 부족이 결합하여 내놓은 것이다. 한편, 텔레비전용 다큐멘터리 <미국춤의 세계>는 뉴욕 오네이다 인디언족이 와 협력하여 제작한 작품이다. <미국 인디언 춤의 세계>는 최초로 인디언족이 제작비 전액(35만달러)을 투자하여 네트워크 TV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가 됐다. 이런 움직임은 그동안 인디언족의 문화를 왜곡해온 할리우드영화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됐다. 오네이다족의 대변인 레이 할브리터는 “우리는 사업을 이해하고 백인들에게 우리를 이해시키기 위해 영화를 시작한 것뿐이다. 오로지 수익만이 우리의 동기는 아니었다”고 말하면서 “우리가 실제로 무언가를 산업적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프로듀서로 참여한 인디언족 소니 스카이호크도 “할리우드는 무한정 타락한 편협한 현명함으로 마치 언제나 우리가 없는 것처럼 생각해왔다”면서 종족 문화적 주권을 바로잡아 확립하는 것에 큰 의의가 있음을 강조했다. 그렇다면 인디언족들의 할리우드 제작 투자 붐을 가능하게 한 산업적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의 투자를 가능하게 한 것은 무상 카지노 산업의 성장에서 비롯됐다. 인디언족의 땅에 도박장을 허락한 1988년 연방법이 인디언들에게 돈을 쥐어준 것이다. 전국인디언게임연합에 따르면 인디언족들은 2004년에만 1850만달러를 거둬들여 2003년보다 10% 상승한 수익을 올렸다. 당분간 인디언족의 투자 경향은 다큐멘터리에 집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인디언 신문 <종족의 소리>의 편집자이자 라코타 부족의 일원인 프랭크 킹은 “좀더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형식이기 때문에 인디언 부족들은 다큐멘터리 프로젝트에 더욱 흔쾌히 투자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시아 영화 기행: 타이 [7] - 위시트 사사타니앙 인터뷰

“우스꽝스러운 도시 방콕을 보여주고 싶었다” <시티즌 독>의 위시트 사사타니앙 감독 부산국제영화제 김지석 프로그래머의 말에 따르면, 위시트 사사나티앙(41)은 ‘올림픽 감독’이다. 4년 만에 한번씩 신작을 내놓기 때문이다. 타이 최대의 광고회사 필름팩토리의 주력 감독으로 일하고 있는(코카콜라, 나이키 등 유명 브랜드의 광고를 도맡고 있다) 그는 “영화로는 밥먹고 살기 어려울 것 같아서” 광고 일을 놓지 못하고 가끔 취미로 영화를 만든다고 말하지만, 최근작 <시티즌 독>(Citizen Dog)을 본 이들이라면 지독할 정도로 완벽성을 기하는 성미 탓에 과작의 감독이 됐을 것이라고 쉽사리 추측할 수 있다. 6개월 이상 후반작업을 했다는 <시티즌 독>(타이에선 지난해 12월 개봉했다)은 데뷔작 <검은 호랑이의 눈물>과는 또 다른 판타지의 세계로 보는 이를 안내하는 영화. 타이 고유의 의상, 건축물 등의 색감에서 뽑아낸 화려한 비주얼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침이 나온다. 잇단 회의 때문에 1시간이나 기다리게 했던 것이 미안했는지 그는 인터뷰를 마친 뒤 선물이라며 칸에서 뿌렸던 <검은 호랑이의 눈물> 홍보용 티슈와 엽서를 손에 쥐어줬다. -광고와 영화를 어떻게 병행하나. =<검은 호랑이의 눈물> 만들 때 회사를 그만뒀다 다시 돌아왔다. 이번에는 나고 들고 그런 꼴 보기 싫었는지 하려면 해라, 뭐 그렇게 봐준 것 같다. -<시티즌 독>을 떠올린 계기는. =동화나 우화를 만들고 싶었는데. 일단 시골에서 공장을 다니던 한 청년이 잘린 손가락을 찾기 위해 방콕에 오게 된다는 설정을 끼적여놨었다. 그런데 소설가인 아내가 보고서 러브스토리를 집어넣고 인물들과 에피소드들을 늘려 먼저 출판했다. -아이템을 도용당한 것 아닌가. 보상은 받았나. =못 받았다. 나중에 편집본 보고서 진행이 너무 빠르다, 두 인물의 사랑 감정이 전해지지 않는다, 이 부분에서 음악을 써라, 뭐 그런 참견만 했다. (웃음) -포드가 방콕에 와서 통조림 공장에 취직한 뒤 일하는 장면은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에서 따왔는데. =기계 앞에서 왜소한 사람의 모습을 그만큼 잘 대비해서 보여준 장면은 없지 않나. 꿈이라곤 없는 포드나 꿈만 먹고사는 진이나 모두 찰리 채플린의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인물들이다. 처음엔 영화제목을 아예 <모던 독>이라고 붙이려 했었다. -포드와 진 외에 등장하는 엉뚱한 캐릭터들이 많다. =방콕이라는 도시가 우스꽝스러운 곳이다. 갑자기 도시가 팽창하면서 근대와 전근대가 기형적으로 몸을 섞고 있다. 창녀촌 옆에 절이 있고, 부촌과 빈촌이 맞붙어 있다. 그런 도시에 사는 사람들 중엔 이상한 사람들이 자연스레 많다. 포드처럼 몸은 컸지만 나이를 먹지 않은 이들이 있고, 진처럼 마트에 가면 물건은 사지도 않고 종일 물건을 반듯이 진열하는 데 열중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풍경을 보여주고 싶었다. -<시티즌 독>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도시에 솟은 거대한 쓰레기 산이다. =언눗이라는 곳에 대규모 쓰레기 매립장이 있다. 어느 날 그곳에서 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는 걸 봤다. 무척이나 예뻤다. 영화 속의 쓰레기 산은 그런 느낌이다. 그런 희망이 없다면 이 나쁜 세상에서 누가 살 수 있겠냐. 꿈을 좇아봤자 행복이 없는데 왜 달려야만 하느냐, 행복은 곁에 있는데 말이다, 뭐 그런 이야길 전하고 싶었다. -잘린 손가락이 자신의 주인을 알아보고, 포드의 할머니가 도마뱀으로 환생하고, 하늘에서 헬멧이 쏟아지고. 당신의 영화 중간중간에는 생뚱맞은 판타지 장면들이 수시로 등장한다. =머릿속에 떠오른 공상들을 그대로 보여준 것뿐이다.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세상에선 비일비재하게 일어나지 않나. 좀 과장해서 그런 걸 표현하고 싶었다. -영화를 볼 때 포드(Pod)와 진(Jin), 철자는 다르지만 두 주인공들의 이름에서 느닷없이 ‘Ford’와 ‘Jean’이 떠올랐다. 두 사람 모두 대량생산 체제 아래 부속품 같은 존재로 살아가는 인물들 아닌가. =하하. 가수 두명의 이름을 그냥 따온 것이다. 처음엔 실제 가수 두 사람을 출연시키려고 했는데 무산됐다. 영어로 써서 그렇지 포드의 타이 이름은 뽓이다. -<검은 호랑이의 눈물>은 당신이 유년 시절 보고 다녔을 1950년대 타이 서부극에서 비롯된 것이다. =톤부리라는 강가에서 자랐는데, 어렸을 적에 극장에 가보지 못했다. 극장도 많지 않았고, 돈도 없었다. 행사나 축제 때 천막 이동극장에서 보여주는 무료영화들이 전부였는데, 타이 서부극뿐만 아니라 홍콩영화, 할리우드영화도 심심찮게 틀어줬다. 변사의 설명으로 <카사블랑카> 같은 영화도 거기서 봤고, 쇼브러더스의 외팔이 시리즈도 거기서 봤다. -당신의 영화들에서 보이는 색들은 좀처럼 볼 수 없는 것들이다. =타이적인 인물, 타이적인 의상, 타이적인 무늬, 타이적인 색감이 뭔지 고민했다. 우리에게도 소중한 것들이 남아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이 사용했던 물건들에 쓰였던 색들을 가져왔다. 지금도 지방에 가면 광고판 하나에 20가지 색을 쓰기도 한다. 유행 좋아하는 요즘 관객이 내 영화를 보면 모두 촌스럽다고 한다. (웃음) 텔레시네 작업을 거쳐 광고에서 많이 쓰는 다빈치 프로그램을 갖고서 색감을 일일이 지정하고 조절한 결과다. <시티즌 독>은 CG 분량도 많은 편이라 전작보다 후반작업 기간이 배가 됐다. -당신의 영화에서 색은 인물들의 감정을 전하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맞다. 꿈많은 진은 푸른색 옷만 입고 다니고, 꿈없는 포드는 밤색 옷만 입고 다닌다. 단 어떤 장면에선 그런 도식을 비틀기도 했다. 블루는 우울함을 나타낸다는 도식 대신 핑크로 그 느낌을 전달하기도 했다. 폐기물로 가득 찬 진의 집은 그래서 핑크로 도배되어 있다. 배우들에게도 그래서 움직임을 크게 하지 말라고 했다. 깜짝 놀라더라도 일반적인 표정을 짓지 말고 눈만 두번 깜박여라 하는 식으로 주문했다. 신인배우가 아니었다면 답답해 했을 거다. 다행히 극중 인물들처럼 움직임이 크지 않고 말수도 굉장히 적은 배우들이었다. -다음 영화는 언제쯤 만들 예정인가. =부산영화제 PPP에 냈던 <핫 칠리(남플리) 소스>이긴 한데. 타이 민담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온 영화로, 대규모 예산이 필요해서 7년이 걸릴지 10년이 걸릴지 모르겠다.

현실엔 드문 드라마속 ‘악녀’ 들 여성에 대한 부정적 의식 심어

여성의 적은 여성이다.”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텔레비전 드라마들을 보면 누가 만들어냈는지도 모를 이 말이 실감이 난다. 에스비에스 월화 드라마 <불량주부>에서의 ‘은미’를 비롯해 문화방송 수목 드라마 <신입사원>에서의 ‘현아’, 그리고 한국방송 일일 드라마 <어여쁜 당신>에서의 ‘희주’가 바로 같은 여성이면서 여성을 괴롭히는 적들이다. <불량주부>에서 미나의 직장동료 은미(강정화)는 도대체 왜 직장을 다니는지 의아심이 들 정도로 회사 일을 하는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고, 오로지 미나를 괴롭히기 위해 회사를 다니는 것처럼 묘사된다. 은미는 자신이 마음에 둔 회사 기획실장 선우(조연우)가 미나에게 관심을 보이자, 사사건건 미나에게 트집을 잡고 다른 동료들을 부추겨 미나를 따돌린다. 아무리 드라마라지만 이런 은미의 모습은 비현실적일 뿐 아니라 직장여성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심어주기에 모자람이 없다. <신입사원>에서 엘케이그룹 회장의 딸 현아(이소연)도 아버지의 ‘빽’으로 입사한 뒤 엘리트 사원 봉삼(오지호)을 사이에 두고 회사 동료인 미옥(한가인)과 연적 관계를 이루며 미옥을 괴롭힌다. 일류대를 졸업하고 해외유학까지 다녀온 현아는 미옥이 상고를 졸업한 사실을 들먹이며 무시하고, 계약직인 미옥이 재계약을 못해 퇴사하도록 일을 꾸민다. 그런데도 봉삼과의 관계가 잘 풀리지 않자 바로 사표를 던져버린다. 대기업에 취직한 해외유학파 여성이 직장에서의 남자 문제 때문에 그리 쉽게 사표를 낸다는 게 이해가 잘 가질 않는다. 현아 역시 드라마를 보는 이들에게 여성은 직장생활도 취미처럼 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을까 우려된다. <어여쁜 당신>에서 인영(이보영)의 남편 기준(김승수)을 잊지 못하는 희주(오주은)는 거의 스토커 수준이다. 기준을 출장지까지 쫓아가는가 하면 이미 결혼한 옛 애인의 집을 제집 드나들 듯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다른 여성에게 빼앗긴 희주의 심정이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지만, 남의 남편을 계속 따라다니는 희주의 행동은 상식을 넘어선 것으로 인영을 고통스럽게 한다. 희주 역시 ‘여성=비이성적’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주는 대표적 인물로 꼽을 만하다. 남녀의 삼각관계를 다루는 드라마에서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설정 만큼 시청률을 높이는 데 좋은 모티브도 없을 것이다. 삼각관계의 한 축을 형성하는 악녀는 당당한 커리어 우먼이거나 모든 것을 가졌음에도, 여주인공을 좋아하는 남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자신을 망가뜨리면서까지 음모를 꾸미고 사건을 일으키며 드라마의 갈등을 만든다. 시청자는 여주인공이 어떻게 위기에서 벗어날까 궁금해하며 드라마를 지켜보는 것이다. 그런데 시청자들이 이런 여성들의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보다 보면 무의식적으로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과 부정적 의식을 내면화할 수 있다. 드라마의 특성상 시청자는 현실세계에서 드라마 속 허구세계로 빨려들어가게 돼 드라마 속의 가치관과 규범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여성인 드라마 작가들이 이런 점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극본을 쓰길 기대해본다.

우리 시대의 도덕적 아바타, 문근영

다소 진부하고 따분한 이야기부터 시작해보자. 19살 소녀 문근영은 ‘나무랄 데 없는’ 스타다. 이 표현이 스타에게 어울리지는 않지만, 문근영에게는 딱 맞는다. 예쁘고, 연기도 나쁘지 않고, 공부도 열심이고, 착하고, 성실하다. 심지어 그 나이에는 하기 어려운 기부와 선행을 끊임없이 베푼다. 스크린의 이미지와 일상생활이 일치해서 연예인의 살생부 X파일을 오히려 스타덤의 디딤돌로 만든 거의 유일한 배우다. 그러니까 감추고 싶은 소문이 무성한 연예계에서 뒷이야기를 미담으로 채울 수 있는 인물이 문근영이다. ‘미’가 아닌 ‘선’으로 스타가 된 배우 귀엽고 깜찍한 스타는 이전에도 있었지만 그녀에게는 다른 점이 많다. 부모님 모두 안정된 직장을 갖고 있기에 많은 여자 스타들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붙곤 하는 소녀 가장이 아니다. 외할아버지가 좌파 통일운동가였다는 등등의 집안 내력과 광주 출신이라는 태생도 이제는 더이상 금기가 아니며, 오히려 한국 현대사의 비극 속에서도 맑고 건강하게 자라난 대견한 소녀로서 긍정적인 이미지를 더해준다. 오디션에 친구 따라갔다가 또는 길거리에서 우연히 감독에게 발탁되었다는 그 흔한 연예계 신데렐라 입문기를 인터뷰에서 읊조리지도 않는다. 대신 탤런트가 꿈이어서 연기학원에 다녔다고 말한다. 완벽한 외모나 천재적인 재능이 아니라 대역부터 출발해 차근차근 연기실력과 자신의 이미지를 쌓아왔다. 이 당연한 과정을 생략한 것처럼 보이는 스타들과 달리, 문근영은 신데렐라 신화를 반복하지 않는다. 노력 끝에 재능을 발휘하고 스타로 성공했으면서도 인기가 떨어질까 조바심치기보다는 ‘정말 배우가 될 소질이 있는지’ 근심스러워 계속 연기를 할지 망설인다. 교양이 사라진 시대에 대학교의 교양 수업을 기대하고, 스타의 프리미엄을 활용해 대학을 선택하기보다는 인기없는 국문학과와 사학과가 좋다고 하고,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다고 한다. 배우가 되려고 온몸을 뜯어고치고 스타 되기를 로또당첨처럼 열망하는 세태에도 불구하고 마치 언제든 미련없이 스타의 자리에서 내려올 준비가 되어 있다는 태도를 보인다. 돈에 미쳐버린 사회에 살면서도, 문근영의 부모는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 한다’고 말하고, 어린 딸이 돈을 많이 버는 걸 반기지 않으며 딸의 수입으로 부자가 될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문근영은 돈에 대한 집착이 없는 듯 수시로 거액을 기부한다. 촬영장에는 할머니를 모시고 다니고, 출연결정에는 할머니와 엄마의 의견이 절대적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수많은 배우들 가운데 오직 문근영 단 한명만이 이런 식으로 설명된다. 사실 문근영을 흉내내기는 쉽지 않다. 문근영의 아름다움은 현실에서 실천하는 내면의 아름다움이 이미지의 힘을 빌려 더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근영의 모든 것들은 평범하며 정상적인 범주를 벗어난 것이 아니다. 학생은 공부를 열심히 하고, 사람은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 청소년은 하고 싶은 일에 따라 진로를 선택하고, 부모는 자식을 이용해 축재를 하려 해서는 안 되고, 일정한 부는 사회로 환원되어야 한다. 그러나 출연료를 선뜻 사회에 기부하는 스타와 자식이 돈을 너무 많이 벌어서 인생을 망칠지 모른다고 걱정하는 스타의 부모는 매우 드물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도 하지 못하는 그런 일들을 문근영은 아무렇지 않게 해낸다. 평범하고 상식적인 것들이 총체적으로 한데 모여 문근영이라는 스타의 ‘분위기’(Aura)를 형성할 때, 문근영은 대한민국 스타로는 드물게 우리에게 ‘윤리적 숭고함’의 대상이 된다. 그러니까 문근영은 ‘미’(美)가 아니라 ‘선’(善)으로 스타가 된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김지운 감독의 말처럼 ‘주변 인물들에게 죄의식을 불어넣는 배우’가 되고, 따라서 ‘안티’를 걸기는 쉽지 않다. ‘국민의 여동생’, 그 기이한 판타지 되돌아보면 문근영은 비교할 만한 모델이 없는 스타다. 최진실처럼 귀엽고 깜찍하지만 그늘이 없고, 김태희 같은 모범생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세련되지 않고 소박하다. 여배우 지망생들이 제2의 전지현을 지향하며 형성한 자장권에서도 벗어나 있다. 그렇다고 손예진에서 한가인으로 이어지는 청순가련형도 아니다. 스타의 계보 속에서 친족관계를 찾기 어려운 현재의 문근영에게 딱 맞는 수식어는 ‘국민의 여동생’(SBS ‘야심만만’의 카피)이다. 지금까지 출연한 영화 <연애소설> <장화, 홍련> <어린 신부> <댄서의 순정>에서 문근영은 계속 여동생으로 등장했다. 300여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어린 신부>와 문근영의 힘을 기대하는 <댄서의 순정>에서, 그녀는 여동생이면서 어린 신부가 된다. 할아버지의 뜻을 거역 못하는 착한 손녀 보은은 16살에 억지 결혼을 하고(<어린 신부>), 댄스 스포츠 선수로 성공하려는 채린은 19살에 위장 결혼을 한다(<댄서의 순정>). 보은과 채린은 자신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남자와 같이 살면서 조금씩 사랑의 감정을 느끼기 시작하지만 두 영화 모두 변변한 키스장면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보은은 유부녀이기에 같은 또래 남학생과의 연애도 금지된다. 고등학교 1학년인 보은은 성에 대해 완전히 무지하고 곧 20살 성인이 될 채린은 가짜 남편과의 성관계를 상상하며 무서워 벌벌 떤다. 그들은 섹스 상대가 아니라 업어주어야 할 귀여운 여동생이다. 그런데 사실 성적인 것은 그들이 아니라 문근영에게 금지된 것이다. 우리는 <어린 신부>의 타이틀 장면처럼 그녀가 차라리 (웨딩드레스를 입은) 초등학생이기를 바란다. 그녀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결정적인 노래 <난 아직 사랑을 몰라>의 가사처럼, 아직(혹은 끝내!) 사랑을 모르기를 바란다. 미성년자에게 결혼을 강요한 다음 성관계를 금지하는 건 정말 기이한 판타지이다(칸트와 함께 사드를?). 여기에는 (한국사회에서) 어른이 되는 것은 곧 타락이라는 전제가 있다. 그래서 문근영 자신도 ‘어른이 되는 건 부담스럽고 순수를 잃는 것 같아 싫다’고 말하는데, 어쩌면 아무도 그녀의(특히 상징적인 의미에서의) 스무살을 바라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어린아이 같은 어른, 어른 같은 어린아이로서의 문근영을 좋아한다. 기이한 판타지 위에 스무살을 눈앞에 둔 문근영의 스타덤은 위태롭게 자리하고 있다. 여기서 문근영은 아마도 할리우드의 전설적인 아역스타 셜리 템플과 비교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깜찍하고 귀여운 꼬마 셜리 템플은 1930년대 경제 대공황 시기에 환상적인 춤과 노래로 피폐한 미국인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해줌으로써 스타덤에 올랐다. 십대 소녀 문근영은 오랫동안의 경제 침체로 고통스러워하는 한국사회에서 셜리 템플 같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문근영의 스타덤을 둘러싼 현상에는 좀더 다른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최근 몇년 동안 한국영화는 과거를 다루면서 ‘기억’보다는 ‘추억’에 집착했다. 폭압적인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청소년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 시대를 ‘순수의 시대’로 자리매김하면서 돌아가고 싶은 시절로 만들었다(<친구> <해적, 디스코왕 되다> <몽정기> <품행제로> 등등).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는 기억상실증이 유행이다. 남자주인공이 교통사고를 당해 13살의 기억을 안고 깨어나거나(<봄날>), 여자주인공이 역시 교통사고로 기억상실증에 걸려 18살 된다(<열여덟 스물아홉>). 청소년들이 주인공일 때 1980년대 한국사회의 다사다난한 현실이 지워지듯이, 주인공들의 정신연령이 더이상 어른이 아닐 때 드라마의 갈등은 수면 아래로 잠복한다. 한편에는 미숙한 인물들이 주인공인 드라마(<원더풀 라이프>의 철없는 부모, <불량주부>의 살림이 서툰 남자 주부, <신입사원>의 실력이 모자란 신입사원)과 문근영의 영화 <어린 신부>와 <댄서의 순정>이 있다. 그들은 기억상실증과 미숙할 수밖에 없는 이유들로 인해 잘못을 용서받고 책임에서 벗어난다. 보은과 채린도 결혼을 했지만 결혼한 어른으로서의 역할은 면제받는다. 그러니까 이 모든 현상이 총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건 유아상태로 퇴행하고 싶은 욕구이다. 어른으로서 해야 할 행동과 책임을 회피하고, 현실에 직면하지 않고 과거로 후퇴해서 변화를 피하려는 욕구이다. 아이들은 책임질 필요가 없으며, 여동생은 언제든 언니나 오빠의 보살핌을 받을 수 있다. 나쁜 어른이 되느니 착한 아이로 남으렴? 문근영은 결국 한국사회가 요구하는 도덕적 아이콘의 아바타이다. 이 아바타의 훌륭한 점은 선을 현실 속에서 자발적으로 수행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그녀가 계속 그렇게 하기를 바라지만, 어른이 되면 그렇게 하지 못할 거라고 염려하면서 그녀가 어른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는 문근영처럼 살고 싶지만 비겁하게도 문근영처럼 살지 못하기 때문에, 그녀에게 가짜 애인, 가짜 남편만 부여하면서 성숙한 어린아이로, 여동생으로 언제까지 우리 곁에 남기를 바란다. 문근영의 스타 이미지를 최대한 활용한 <댄서의 순정>에서, 채린은 꿈꾸던 성공을 눈앞에 두고서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사랑을 선택한다. 그러나 그녀 앞에 놓인 현실은 가혹하다. 채린의 남편 영세는 앞날의 불행을 예고하듯 (또는 성관계의 불가능성을 암시하듯) 끝까지 한쪽 다리를 전다. 채린과 영세의 불행을 초래한 인물들은 여전히 건재하고, 두 사람의 공간 밖에는 살벌한 정글이 버티고 있다. 영화는 채린을 기어이 그 속에 집어넣고 사랑이라는 숭고함을 빌려 희생을 강요한다. 채린이 순진한 옌볜 처녀이기 때문에 그러한 선택이 리얼리티를 획득한다고 믿는다면, 문근영이 아직 (나쁜) 어른이 아니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현실의 믿음이 영화로 전염된 것이다. 그렇게 문근영의 스타 이미지는 숭고함과 희생 사이에서 소비된다. <댄서의 순정>의 결말은 스타 문근영 앞에 놓인 한계와 앞날의 불투명함을 예고한다. 채린은 착하고 순수하기 때문에 미래의 기회를 잡지 못한다. 채린처럼, 문근영이 스타로 장식된 숭고함과 희생의 그물망에 포획되어 좋은 배우로 성장할 기회를 놓칠까 걱정스럽다. 문근영이 건강하고 성숙한 어른이 되고 ‘국민의 여동생’이 아니라 ‘국민의 배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녀와 함께 우리도 진짜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녀를 스타덤에 올려놓고 대리만족을 느끼며 소비하기를 그만두고 우리도 그녀처럼 밝고 건강하고 희망차게 살았으면 좋겠다. 스타라는 신기루만으로 갈증을 채우기에는 실재의 사막은 너무나 삭막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