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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2003)

KBS1 ‘TV, 책을 말하다’ 새 진행자 김미화ㆍ장정일씨

한국방송 봄 프로그램 개편에서 1텔레비전의 서평 프로그램 (매주 목요일 오후 10시) 진행자가 코미디언 김미화씨와 소설가 장정일씨로 바뀌어 12일부터 공동 진행에 나선다. 장씨는 <너에게 나를 보낸다>, <장정일의 독서일기>, <삼국지 해제> 등의 저자이다. 10일 오후 한국방송 본관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김미화·장정일씨를 만났다. 의 배기형 프로듀서는 “새 진행자로 책을 진지하게 많이 읽는 장정일 선생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며, “장 선생이 시청자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데다 달변이 아니어서 진행자로 조금 미진한 점은, 방송 경험이 많고 대중적인 친근감이 있는 김미화씨가 보완해줄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김미화씨는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아 망설이지 않고 진행자 제안을 승낙했다고 입을 열었다. “바쁜 방송 일정 때문에 책 읽을 시간이 많지는 않았어요. 책에 대해 전문적인 식견이 부족한 만큼 모르는 부분은 장정일 선생이나 우리 프로그램의 독서 전문가들에게서 도움을 받겠습니다.” 그는 앞으로 프로그램을 시청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편안하게 진행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의 애청자로서 ‘어렵다’ ‘전문가들만 보는 프로그램’이라고 느낄 때가 많았어요. 책을 읽지 않은 시청자의 처지에서 궁금한 점과 호기심 등을 대신 물어본다는 생각으로 진행하겠습니다.” 장정일씨는 평소 언론에 나서기를 아주 싫어하는 성격임에도 이번에 방송을 진행하게 된 데 대해 “원래 책과 텔레비전, 책 읽는 독자와 텔레비전 시청자는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왔지만, 텔레비전을 이용해 사람들이 책을 많이 읽도록 하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진행을 수락했다”고 밝혔다. “매주 신문에서 소개하는 책들은 천편일률적입니다. 책 몇권을 집중해서 조명하는 경향이 강하지요. 앞으로 우리 프로그램에서는 어떤 책을 정해놓기보다, 5·18과 관련한 책, 월드컵과 관련한 책 등 시의성을 살린 주제를 정해 관련서적을 소개함으로써 시청자들이 친근감을 느끼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학력이 있고 많이 배운 사람들만 책을 열심히 읽는 게 아니라 학력이 높지 않은 저 같은 사람도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는다는 메시지가 시청자들에게 전달돼, 쉽게 책에 접근할 수 있게 하는 용기를 주고 싶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혈의 누>를 말하다 [1]

“마지막 영화라는 심정으로 죽어라 달렸다” 김대승 감독은 스스로 소심한 인간형이라고 털어놓는다. 이전 인터뷰에서 “프린트를 뜬 이상 감독이 할 수 있는 건 없다”고 말했던 그는 요즘도 쉽사리 맘을 놓지 못하는 눈치였다. 대담 첫머리에 국내 극장들의 열악한 상영 여건에 대해 한바탕 성토한 그는 여러 차례 “내 영화를 볼수록 부끄러워 죽겠다”고 했다. 대담자가 “<혈의 누>는 요즘 영화들이 갖추지 못한 보기 드문 미덕을 갖고 있다”고 해도 “아직 멀었다”며 겸손의 손사래를 쳤다. 아마 5월9일 개봉을 한 다음에도 그의 소심함은 다음 영화를 내놓기 전까지 계속될 것 같다. “한 장면 한 장면 꼬치꼬치 물어볼까봐 사실 겁났다. 한 차례 기자시사회밖에 없어 그나마 다행이다.” (웃음) 영화에 관해선 소심하고, 깐깐하고, 고집불통인 김대승 감독과 “<혈의 누>는 역사 미스터리에 멜로를 끼워넣고 그 아래 신랄한 사회비판까지 깔아놓은 정직하고 뚝심있는 영화”라고 평가한 김봉석 영화평론가가 만나 이야길 나눴다. 김봉석 | 프린트를 뜬 뒤에도 여러 차례 영화를 봤을 텐데. 무슨 생각이 들던가. 김대승 | 왜 내가 2.35 대 1로 찍었을까 싶더라. 한국의 극장 환경이 한심한 수준이 아닌가. 좌우가 잘려나가니 프레임 안에 있던 인물이 바깥에서 들어오는 식이 돼버린다. 기술시사하는데 싱크가 안 맞아서 녹음실에 따졌는데 알고 보니 사운드가 16프레임 선행하는 걸 극장쪽에서 모르고 램프를 맞춰놨더라. 디테일한 것이지만 극장 영사기에 따라서 사운드의 하이(high)음이 다 깎여서 나오는 경우도 있다. 램프 밝기가 다 다르다보니 인물들의 얼굴색도 제각각이다. 그렇다고 가장 환경이 좋은 극장에 맞춰서 프린트를 뜰 수도 없는 일이고. 국제표준규격을 서둘러 적용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김봉석 | 영화진흥위원회에서 그런 걸 해야 하는 건데. 김대승 | 심의도 문제다. 요즘은 아비드 편집이 일반화되어 있어서 비디오테이프로 작업하잖나. 그런데 여전히 필름으로 찍어서 심의 받으라고 한다. 개봉일이 정해져도 감독은 욕심낼 수밖에 없는 게 영화인데 심의에 내기 위해 다 되지도 않은 CG를 출력해서 프린트 뜬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돈은 돈대로 시간은 시간대로 뺏긴다. 심의를 해야겠다면 자기네들이 작업실에 와서 보던가. (웃음) 김봉석 | 사실 외국 가서 영화 보면 분통 터질 때가 있다. 한국에서 볼 때와 완전히 다르니까. 현상도 마찬가지다. 박찬욱 감독, 김지운 감독 등도 LA에서 프린트를 하나 떠왔는데 아주 다른 영화가 됐다고 하더라. 김대승 | 1.85 대 1로 찍었다고 해도 제대로 구현될 것 같지 않다. 어떤 근거인지 모르겠으나 한국 극장의 스크린 가로세로 비율은 2 대 1로 일률적으로 맞춰놓은 것 아닌가 싶다. 좌우를 맞추면 위아래가 잘린다. 위아래를 맞추면 이번엔 좌우가 잘린다. 그나마 오른쪽은 덜 잘린다. 외화 자막 때문에. 자기네가 앵글을 바꾸는 경우도 있다. <서편제> 텔레시네 작업 때 기절할 뻔했는데 창작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앵글을 바꿔버렸다. 그런 무식한 짓이 어딨나 했는데, 지금도 크게 달라진 건 없는 것 같다. 김봉석 | 2.35 대 1로 찍은 영화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스크린이 서울에 2군데밖에 없다고 들었다. 김대승 | 기자시사 전에 극장을 멀티플렉스로 바꾸려고 했더니 현상하신 분이 ‘거기는 포커스가 반이 나가요’ 하더라. “이번 영화는 염치에 관한 이야기다” 김봉석 | <혈의 누>를 연출한다고 했을 때 모두들 좀 의아해했었다. 멜로판타지라 할 수 있는 <번지점프를 하다>로 데뷔한 감독이 미스터리 시대극에 고어장면도 많은 영화를 차기작으로 한다고 하니까. 김대승 | 어느 정도 위치에 오른 감독이라면 적절한 의구심이지만 난 이제 영화 2편 만든 신인감독 아닌가. 모색하고 탐색하고 뭐 그런 과정에 있는 건데. 김봉석 | 그런데 <혈의 누>를 보고 나니까 <번지점프를 하다>와 유사성이 보이더라.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도 비슷하고 과거를 통해서 현재가 재구성되는 플롯도 그러하고. 처음에 <혈의 누>를 어떤 영화로 만들고 싶었는지가 궁금하다. 김대승 | 닷새간 다섯 인물들이 다섯 가지 방식으로 살해된다는 이야기가 매력적이었다. 그뒤론 그 이야기 안에 어떤 주제를 담을 것인가 고민했다. 전작이 사랑을 지키지 못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라고 한다면 이번 영화는 염치에 관한 이야기로 만들려고 했다. 장르적으로 접근하되 그 안에 하고 싶은 다른 이야길 두고 싶었다는 점에서 2편의 영화가 통하는 부분이 있다. 전작의 동성애 코드나 이번 영화의 고어장면이나 내가 말하고 싶은 목표지점으로 가기 위한 에스컬레이터 같은 장치들일 뿐이다. 김봉석 | 스릴러라는 장르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나. 김대승 | 없었다. 만날 <샤이닝> 이야기 하는 게 사실 그 영화가 좋아서이기도 하지만 그쪽 유의 영화들을 별로 본 게 없어서이기도 하다. 사실 청룡열차도 잘 못 탄다. 그래서 지금은 인과관계의 디테일이 중요한 장르인데 만든 영화를 보면 그런 점을 지나치게 쉽게 본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장르에 대한 지식만으로 영화를 만든 것은 아닌가 자문하고 있다. 김봉석 | 영화 속 시대배경은 조선시대 말기다. 특별히 그 시대에 주목한 이유가 있다면. 김대승 | 처음에 이원재 작가가 쓴 시나리오는 시대적 배경이 조선시대 정조가 승하한 다음이었는데 부가 탐욕을 낳는다는 설정이 재밌었다. 자본이 축적되고 중인계급이 성장하고 동시에 서구 문물이 쏟아져 들어오고 그런데 조선은 여전히 비합리적인 가치들이 지배하고. 그런 충돌들을 다룰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과거를 끌어오는 게 과거를 이야기하기 위함은 아니잖나. 현실에 대한 어떤 발언을 하고 싶어서인데. 캐스팅 하는 과정에서 어떤 배우가 양복 입고 싶다면서 구한말로 바꾸면 안 되느냐고 하더라. 그렇게 했어도 큰 문제가 없었다고 본다. 보도자료에 보면 1808년이라고 되어 있긴 한데 영화에 꼭 그 시기를 담아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다. 김봉석 | 무당이 굿하는 장면이 처음에 나온다. 그녀의 입을 통해 풀려져 나온 강 객주의 저주는 이 섬에서 뭔가 큰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암시이기도 하다. 사람들을 호도한다고 하는 수사관 원규와 봉건시대 비이성과 광기를 대표하는 인물로서 무당의 갈등은 그러나 영화 후반부로 가면 애매해진다. 김대승 | 제의나 굿이 죽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모두 산 사람을 위로하는 것이다. 사실 이 섬을 지배하는 광기는 무당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무당은 사람들의 광기를 드러나게 하는 매개이자 때론 원규의 상처를 치유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중립적인 인물이라고 봐야 한다. 섬 주민들의 광기를 조종하는 건 그들 마음속의 양심없음, 염치없음이지 무당이 아니잖나. 그런 점에서 무당의 역할을 키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봤다. 김봉석 | 영화의 막바지에 혈우(血雨)가 내리는 장면은 그럼 어떻게 봐야 하나. 김대승 | 염치 이야길 해야 할 것 같다. 한번은 교통사고가 났다. 신호대기 하는데 앞 차가 갑자기 후진해서 내 차를 받은 거다. ‘백미러도 안 보고 이 사람 뭐 하는 거야’ 그랬는데 할아버지가 오시더니 ‘아, 미안해. 하하. 좀 긁혔네. 칠하면 되겠네’ 하시더라. 그래서 ‘웃지 마세요. 남의 차 받아놓고 재밌으세요?’ 하고 정색하고 말했던 적이 있다. 또 한번은 술 취해서 새벽 4시쯤에 집에 갔는데 엘리베이터가 빨리 안 내려오는 거다. 오줌도 마렵고, 오바이트도 쏠리는데. 한층한층 내려오기에 누가 장난치는구나 싶었다. 신문배달 하는 아르바이트 학생이었는데 말로는 못했지만 속으로 째려봤었다. 그런 짓 하고 나면 며칠을 앓는다. 내가 강자의 입장에서 염치없는 짓을 한 거구나. 그런데 내가 39살 먹기까지 저지른 잘못이 이것뿐이겠나. 마지막 장면에서 내 눈에도, 원규의 눈에도, 다른 사람들의 눈에도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핏빛이어야 한다고 생각한 건 염치 때문이다.

코믹하고 시적인 아마게돈, <지구를 지켜라!>

한국의 시나리오 작가 겸 영화감독, 장준환의 멋지고 장난기어린, 약간은 피비린내나고 자꾸 웃겨주며 예측하기 힘든 첫 극영화에는 광적인 음모들이 가득하다. <지구를 지켜라!>는 엉성하게 만든 공상과학 장비들로 무장한 두 괴짜가 중년의 사업계 거물을 지하주차장에서 납치하며 시작한다. 장준환의 초기 단편, <2001 이매진>의 주인공은 자신이 존 레넌의 환생이라고 믿었는데 이 영화에서 35살의 영화감독은 훨씬 더 망상에 들린 반영웅을 설정한다. 이병구는 자신이 일하던 화학회사의 사장, 강만식이 외계인, 더 정확히, 안드로메다 성운의 왕자라고 믿는다. 지구는 이 외계인들에게 넘어가 다음 월식 때 파괴될 터이다. 병구가 약간 어벙하고 느릿한 여자 동료인 순이에게 설명하듯 그야말로 강만식은 외계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한 놈이다. 일단 병구와 순이가 강만식을 별스럽고도 별스러운 다 쓰러져가는 산장에 가둔 다음 병구는 강만식이 안드로메다인임을 증명하기 위해 물파스를 발에 발라댄다. 어쩌면 지구의 구세주일지도 모르는 병구가 별 표정없는 포로를 고문하기 위해 끊임없이 옹알대는 허튼소리들을 통해 <지구를 지켜라!>는 마니아적인 분위기를 강화시켜간다. 병구가 양봉을 하고 순이는 한때 외줄타기 공연자였으며 병구를 “오빠”로 부른다는 사실들은 혼란을 가중시킨다. 요즘 개봉된 다른 한국영화, 박찬욱의 <올드보이>처럼 장준환의 영화도 복수, 환각, 그랑기뇰(Grand-Guignol)의 자극적인 혼합이다. <지구를 지켜라!>는 박찬욱의 2002년 스릴러, <복수는 나의 것>에 나온 주연배우(신하균)도 같고 분위기가 어딘가 닮아 있지만 모든 면이 땀으로 칠해진 듯한 매끈한 환상곡, <올드보이>보다 덜 짓누른다. <지구를 지켜라!>는 굴곡진 한국의 최근사를 언급하고 있지만 장준환은 느긋하게 영화를 끌어간다. 뉴웨이브적인 이 한편의 영화는 스틸 사진들, 감시용 카메라, 특수효과, 뉴스장면들과 반복되어 들려오는 불협적인 편곡의 노래, <오버 더 레인보우>를 능숙하게 사용하고 있다. 괴상하게 나가다 마음을 졸이게 하고 가학적으로 돌변하는 <지구를 지켜라!>는 그 기지와 인물들 속에서만 일관성을 유지한다. 영화에는 여러 미친 사람이 나오는데, 병구의 산장에 들렀다가 개가 사람의 뼈를 뜯고 있는 것을 볼 때까지 이상한 점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독특한 형사도 그중 하나다. 영화는 환경에 대한 과장된 히스테리를 보여주며, 섬뜩하게 하는 <양들의 침묵>식 수사물로 시작되어 인류 역사를 가장 가능한 한 잔혹한 면에서 되돌아보다가 <외계의 제9호 계획>(Plan 9 from Outer Space)와 언더그라운드 풍자작가인 크레그 발드윈의 언저리 어딘가에 놓이며 끝난다. 장준환은 지금까지 내가 본 가장 우스꽝스러운 공룡의 멸종 이론과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패러디를 시도하고 있고 윌리엄 버로(미국의 실험소설작가- 역자)를 위해 만들어진, 공장 제어실 아마게돈의 코미디가 있다. 이 섬뜩하고 사나우며 바쁜 구경거리가 지닌 가장 뛰어난 점은 이 영화가 얼마나 진지할 수 있는가, 다시 말해, 감동적이고 시적일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병구의 (산업재해로 코마에 빠진) 어머니가 환상 속에서 병구만이 지구를 구할 수 있다고 말할 때나 지구가 터져버릴지라도 텔레비전이 영영 늘 우리를 기억하리라는 생각이 어떻게 서글프지 않을 수 있을까? (2005. 4. 19 짐 호버먼은 미국 영화평단에서 대안영화의 옹호자로 가장 명망이 높은 평론가로 <빌리지 보이스>에 기고하고 있습니다. <씨네21>과 <빌리지 보이스>는 기사교류 관계에 있습니다.)

<4월 이야기>의 감독 이와이 순지와 배우 마쓰 다카코

도쿄의 풍경은 큰 변화가 없다. 번화가엔 높은 굽의 구두에 카우보이 모자, 헐렁한 루즈삭스를 신은 여고생들이 여전히 거리를 누빈다. 번잡한 시내를 벗어나 호텔 회견장에 들어서니 연애만화 같은 한쌍이 기다리고 있었다. <4월 이야기>의 이와이 순지 (38) 감독과 배우 마쓰 다카코(松たか子, 22). 배우, 감독이 아니라 오누이 같기도 하고, 진짜 ‘연인’처럼 꼭 어울리는 분위기라 해야 할까. 이와이 순지 감독은 약간 몽롱한 눈동자에 느린 말투로 인터뷰에 응했다. 질문을 던지는 상대방의 시선을 물끄러미 응시하면서. 최근엔 극장용 영화보다 뮤직비디오에 치중하는 느낌이다. 일본을 방문하고 있을 당시 공중파 TV에선 감독이 인기 그룹 Glay의 뮤직비디오를 작업하게 되었다는 소식이 연예계 뉴스로 다뤄지고 있었다. 마쓰 다카코 역시 승승장구. 지난해에 <선보고 결혼하기>라는 드라마에 출연했는데 방송사에서 연기상을 받는 등 부산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짧은 시간에 이루어진 인터뷰는 일반적인 질문들로 채워질 수밖에 없었지만, 그들의 ‘예쁜’ 인상은 뇌리에 깊이 각인되었다. 하늘에 벚꽃이 흩날리는 4월, 도쿄서 만난 베스트 커플. -감독의 <러브레터>는 한국에서 이제까지 개봉한 일본영화 중 가장 흥행성적이 좋다. 소감이 어떤가. 이와이 | 기쁜 일이다. 영화를 개봉하기 전엔 과연 한국에서 어떤 반응을 얻을지 은근히 걱정했다. 기대보다 좋은 성적을 거둬서 다행이라고 여긴다. 우연히 이런 프로그램을 본 적 있다. 일본 공중파 텔레비전에서 방송한 것인데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이 내 영화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있었다. ‘<러브레터> 같은 영화를 우리가 못 만들 리 없다.’ 정도의 내용이었던 것 같다. 대통령마저 내 영화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 감동스러웠다. 기분좋은 일이다. -한국엔 이와이 감독 팬이 많다. <4월 이야기>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이와이 | <4월 이야기>는 <러브레터>보다 몇년 뒤에 만들었는데, 새롭게 해보자는 기분으로 만든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대단한 의미는 없다. 방에 걸어두고 싶은 한폭의 그림 같은 영화 정도로 생각해달라. 요즘 한국과 일본은 점차 하나의 문화권이 되어간다는 인상이 짙다. 일본에서 만든 영화지만 한국 젊은이들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영화일 것이다. -배우 입장에서 <4월 이야기>를 말한다면. 마쓰 | 나 자신이 10대를 마감할 무렵에 찍은 영화다. 최소한의 스탭으로 만든 영화라 촬영장에선 늘 힘든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따뜻한 분위기에서 만든 영화라는 자부심이 있다. 이와이 감독과는 <4월 이야기>로 처음 만났지만 신뢰할 수 있는 연출자였다. 뭐라고 할까. 영화를 시작하기도 전에 감독은 이미 <4월 이야기>의 모든 것을 머릿속에 지니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믿고 일할 수 있었다. 감독이 말했듯,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동세대 젊은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감독이 <4월 이야기>에서 특별히 의도한 게 있다면 무엇일까. 이와이 | 난 영화에서처럼 고향을 떠나 다른 곳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요코하마라는 곳에서. 그리 많지 않은 나이에 혼자서 생활 전부를 책임졌던 거다. 멋진 일이었다. 그런 기분을 영화에 고스란히 담고 싶었다. 마치 인생이 처음 출발하는 순간을 화면에 담고 싶었다고 할까. -마쓰 다카코를 주연배우로 캐스팅한 이유가 궁금하다. 이와이 | 음, 다른 이유보다 평소 좋아했던 배우니까. <4월 이야기>는 실제 도쿄에서 4월에 촬영한 영화다. 평소 마쓰 다카코의 이미지를 좋아했고 이런 배우라면 꼭 한번 같이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감독은 평소 순정만화 같은 영화를 많이 만드는 편인데. 이와이 | 순정만화를 좋아하는 편이다. 물론 다른 방식의 영화를 만든 적도 있다. <러브레터>나 <4월 이야기>가 내 영화세계의 전부라고 여기진 않는다. -배우로서 영화에 특별히 담고 싶었던 게 있었나. 마쓰 | 글쎄. 영화를 보면서 관객 역시 ‘아, 나 역시 이런 기분 느낀 적 있어’라는 반응을 보였으면 좋겠다. 누구나 나이를 불문하고 사람을 만나 가슴이 두근거렸던 체험이 있을 터다. 그런 추억을 조금이라도 되살리면서 극장에서 나올 수 있다면 만족한다. 관객 역시 영화를 보면서 마음이 슬며시 움직이고 무언가 느낄 수 있다면 나로서도 흡족할 것이다. (웃음) 솔직히 말하겠다. 두 사람을 한꺼번에 인터뷰했지만, 이와이 순지에겐 무심한 편이었다. 마쓰 다카코에게로 자꾸만 시선이 향했으니까. 단아한 인상에 곧은 태도, 사람을 ‘기분좋게’ 만드는 미소를 지을줄 아는 여배우였다, 그녀는. 마쓰 다카코의 부친 마쓰모토 고시로는 일본에서 이름난 가부키 배우. 대대로 가부키를 연기하는 집안인데 그녀의 오빠 역시 일본에서 가부키 배우 겸 영화배우로 활동중이다. 마쓰 다카코가 연예계에 데뷔했을 적부터 일본에선 꽤 화젯거리가 되기도 했다. 집안 내력이 좋은 홍보수단이 된 셈이다. 마쓰 다카코는 신세대의 발랄함과 청순한 이미지를 겸비했다. 트렌디 드라마 <러브 제너레이션>에서 독립심 강한 ‘리코’라는 여성을 연기해 신드롬을 일으켰다. CF모델과 가수로도 활약중이다. 발라드 계열의 노래를 주로 부르는데 작사, 작곡을 겸하면서 남다른 재능을 과시하고 있기도 하다. 최근 발매된 싱글은 <언제나, 벚꽃의 비(雨)>. 마쓰 다카코는 이와이 순지의 <4월 이야기>에서 첫사랑을 찾아 용감하게 도쿄로 상경한 여학생을 연기했다. ‘사랑의 기적’ 운운하면서 말이다. 실제로 사랑의 기적을 믿느냐는 우문에, 그녀는 “네!”라고 크게 대답해 대기하던 매니지먼트 스탭들이 함빡 웃음을 짓게 만들었다. -영화에서 특별히 좋아하는 장면이 있다면. 마쓰 | <4월 이야기>의 거의 끝장면이다. 평소 짝사랑하던 학교 선배와 만난 뒤 비를 맞는 장면이다. 선배가 여러 가지 우산을 가져와 일일이 펴가면서 골라주는 대목이다. (웃음) 빨간색도 있고, 여러 색이 섞인 우산도 있고. 한 사람의 여자로서 가장 행복한 기분을 느끼는 순간이 그런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래서 제일 좋아하는 장면이다. - 영화 속 캐릭터가 실제 성격과 흡사한가. 마쓰 | <4월 이야기>를 작업하면서 감독이나 다른 스탭들이 참 자상하게 대해줬다. 영화를 찍기 전엔 과연 이 영화가 나에게 꼭 맞는 영화일지 의심스럽기도 했는데 스탭들의 정성에 깊이 감동했다. 지금와서 보면, 영화를 찍을 당시 난 잠시 우즈키라는 인물이 되어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영화를 찍은 배경도 실제 4월이었기 때문에 영화에 동화될 수 있었다. -영화 출연은 두 번째인데 자신의 연기를 자평한다면. 마쓰 | 영화는 텔레비전 드라마처럼 그때그때 모니터를 하기 힘들다. 완성본만 갖고 사후적으로 평가할 수 있기 때문에 나중에 후회해도 별 소용없다. 그래서 촬영할 때마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으로 임했다. 여유가 없는 작업이긴 했지만 참 신선한 체험이기도 했다. 어쩌면 내 짧은 연기인생에서 최고의 순간에 찍은 영화일지도 모른다는 자격지심이 들기도 한다. -이와이 순지 감독 영화에 대해 평소 좋은 느낌을 갖고 있었나. 마쓰 | 감독의 작품은 사실 <4월 이야기>를 찍기 전엔 본 영화가 없었다. 처음 본 것이 CF였는데 그랜드피아노가 등장하는 CF였다. 평소 피아노를 좋아하기 때문에 특별히 기억에 남았다. 보면서 화면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었다. -영화에서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기도 했는데. 마쓰 | 유치원 때부터 연주했다. 중간에 쉰 경험도 있지만 아직도 피아노 치는 걸 즐기는 편이다. 이와이 순지 감독은 전형적인 미소년형이다. 30대 후반의 나이인데도 얼굴 표정이나 헤어스타일은 청년의 그것이다. 상대편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태도도 호기심어린 소년의 얼굴이다. 이와이 순지 감독의 프로필은 더이상의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뮤직비디오와 텔레비전 드라마, 극영화를 오가며 바쁘게 활동중이다. 영화에 관한 글도 틈틈이 쓰는데 에세이를 단행본으로 낸 적도 있다. 음악에도 소질이 있어 작업하는 영화음악에 많은 부분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인지 이와이 감독의 영화에 입혀지는 음악은 늘 같은 빛깔의, 화사한 선율일 경우가 많다. 이와이 감독은 <4월 이야기>에 나오는, 벚꽃이 눈송이가 날리듯 떨어져내리는 장면을 “다른 효과없이 자연풍경 그대로 찍은 것”이라고 한다. 그의 영화는 늘 기억의 여린 부분을 건드린다. 첫사랑, 누군가를 만나는 들뜸, 그리고 상실의 아픔까지. 만화에서 음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지닌 ‘감성파’ 감독인 탓에, 이와이 순지와의 문답과정은 유쾌한 시간이었다. -감독의 영화를 보면 재미난 주변 캐릭터가 많은 편이다. <러브레터>에서도 학창 시절의 주변 캐릭터가 그렇고, <4월 이야기>도 비슷하다. 이와이 | 평소에 주변 사람들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는 편이다. 재미난 캐릭터가 있으면 잘 봐뒀다가 영화에 반영하곤 한다. 사람들을 관찰하는 게 버릇이라고 할까. -시나리오에서 영화 편집까지 도맡아 하는 편인데. 이와이 | 학창 시절부터 이런저런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뮤직비디오 스타일로 음악을 깔고 거기에 화면을 입히는 일부터 시작했다. 그때 직접 콘티에서 편집까지 도맡아 했던 버릇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 아닌가 싶다. 스스로 영화를 만드는 데 있어 하나의 스타일로 굳어버린 느낌이다. -<4월 이야기>를 보면 영화 속 영화로 사무라이들이 나오는 시대극이 있다. 직접 찍은 영화로 안다. 이와이 | 이 영화를 위해 직접 만든 것이다. 의미는 없는데. (웃음) 다른 감독들은 영화 속 영화를 다른 감독들의 작품으로 대충 집어넣곤 한다. 난 좀 다르게 해봤다. 낯선 화면이 갑자기 나올 때 관객의 반응이 궁금했다고 할까. 관객이 꽤 지루해 하는 것 같았다. 의미는 없다. (웃음) 하지만 나름대로 애착이 가는 장면이긴 하다. 다음 영화는 시대극을 만들기로 잠정적으로 예상하고 있는데 아직 확정된 건 없다. -영화에서 굳이 무사시노라는 지명을 택한 이유는. 이와이 | 일본인들에게 무사시노라는 지명은, 특히 도쿄에 사는 사람들에겐 특정한 지명보다 일반적인 의미가 있다. 그냥 시의 외곽을 뜻한다. 그러면서 어떤 그리움의 대상이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감독은 평소 만화도 즐겨볼 것 같은데. 추천작을 꼽아 달라. 이와이 | (한참 생각하다가) 글쎄…, 뭐가 있나. <슬램덩크>가 있고 <미야모토 무사시> 정도? 특별하게 큰 애착을 갖는 만화가 많은 편은 아니다. 마쓰 | 만화보다는 영화를 좋아한다. 어려서부터 영화를 즐겨본 편이다. 좋아했던 영화를 꼽으라면 펠리니 감독의 <길> 정도 아닐까. 여배우 줄리에타 마시나의 연기가 좋았다. 몸짓만으로 삶의 고통과 안타까움을 관객에게 전했기 때문이다. - 배우로서 드라마와 영화, 어느 쪽이 매력있나. 마쓰 | 글쎄. 그저 좋은 기회가 있을 때 일을 하자는 주의다. 눈앞의 일을 하나하나 해결해가는 게 제일 좋은 방법 아닐까. 감독이 생각하는 나의 이미지가 배우로서 도움이 된다면 언제든 영화를 할 용의가 있다.

영화로 간 PD들, 무엇이 문제인가 [1]

입사한 지 10년, PD로 입봉한 지는 6년차 되는 드라마국 PD ‘예술하네’씨는 오늘도 출근을 했다. 하지만 별다른 일없이 책상 앞에 앉아있다보면 점심시간이 오고 이럭저럭 책이나 잡지를 뒤적이다가 퇴근을 한다. 1년에 만들어지는 드라마라고 해봐야 6개월 단위의 주말연속극 2편, 월·화 혹은 수·목 미니시리즈 4편씩, 일일드라마, 아침드라마, 단막극 통틀어 봐야 스무개도 안 되는 편수에 비해 들이미는 숟가락 수는 너무 많지, 그렇다고 어디 AD급으로 공동 연출하기에는 자존심 상하고, 설상가상으로 외주 비율이 높아지면서 그나마 몇편 안 되는 굵직 굵직한 것들은 어느새 밖으로 나간 유명세 있는 선배님들 차지고보니 1년 아니 2년 동안 연출 한번 못해보고 나이만 먹고 있는 것이다. 아! 한때 그는 얼마나 잘 나갔던가? 어릴 땐 신동소리 들으며 크고, 좋은 대학 들어가 주위의 부러움을 사면서 그 힘든 ‘언론고시’에 합격했을 때만 해도 그의 미래의 청사진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일상에 지친 노동자들도 집안일에 치이던 주부들도 뛰어놀던 아이들도 그가 브라운관에 쏟아내는 이야기들에 매료되어 삶의 기쁨을 누릴 ‘대중적 예술가’가 아니었던가! 그래서 입봉 초기에는 영상미 뛰어나고 아름다운 ‘작품’을 몇편 만들어냈고 나름대로 ‘마니아’층도 형성된 ‘촉망’받는 감독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가 너무 ‘예술’적인 데 있었다. 조금만 굽히고 어디서 약간 베껴오고 유치하지만 사람들 좋아할 작품을 기획하면 좋으련만 아직 그럴 만큼 ‘대범’해지지 못한 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그래서 안 그래도 밟지 않으면 밟히기 쉬운 방송가에 그는 “예술하냐” “영화찍냐”라는 싸늘한 냉대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중이다. 그런 비난의 소리들을 들을 때면 ‘예술하네’ PD는 항상 영화를 찍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사실 자기보다 어린 장진이니 정지우 민규동 김태용 같은 ‘애들’도 영화감독이라고 대접받고 있는 데 그애들보다 ‘큐’소리를 불러도 더 많이 불러본 ‘탐미적 영상언어의 달인’인 자신이 점심시간만 기다리고 있을 때가 아닌 것이다. ‘영화 한편 찍어봐?, 사실 내 능력은 영화쪽에 더 가까운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두려움이 앞선다. ‘영화판’이라는 미지의 땅에 대한 두려움도 크지만 앞서서 그 땅으로 간 대부분의 선배님들의 처절한 패배를 알고 있는 그로서는 영화라는 신세계는 죽음을 동반한 매혹인 것이다. 그 선배님들이 어떤 선배님들이었던가? <꽃을 산 남자>의 H선배님, <아! 러브>의 L선배님, <개인병원에서 만일동안>의 C선배님 등 모두 예술성과 대중성의 두 마리 토끼를 다잡고 대중의 부름 아래 당당히 방송사를 박차고 나간 분들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TV에서는 ‘작가주의 PD’라는 소리를 듣던 분들이 영화만 가면 ‘삼류감독’이 돼버린 것이다. 문득 ‘예술하네’ PD는 궁금해진다. 이유가 무얼까? 똑같이 이야기를 만드는 일이고 사람사는 이야기인데… 자본의 차이인가? 시스템의 다름인가? 아니면 원래 TV PD들은 실력이 떨어지는 걸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느라 밤새 뒤척이다보니 문득 옆에 누워 있는 마누라한테 미안해진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지, 예술은 무슨 예술이냐. 내일은 실직하고 외판일하는 친구돕는 셈치고 <전래동화전집>이나 한질 사서 대본 연구 해야겠다.’ 그렇게 ‘예술하네’ PD는 오늘도 씁쓸히 잠을 청한다. ‘영화’를 향한 그의 꿈은 또 한번의 백일몽으로 끝이 나는 것일까? ‘예술하네’ PD, ‘부활하리’ 선배를 만나다 이곳은 ‘예술하네’ PD의 꿈 속. 하얀 연기 같은 구름을 뚫고 가니 어떤 한 사람이 그를 향해 손을 내민다. 한손에는 꽃을 들고 마라톤복을 입고 종합병원 약봉지를 들고 인자하게 웃는 그는 자신을 ‘부활하리’ 선배라고 소개한다. “아니 당신이 바로 그 유명한 ‘부활하리’ 선배님이란 말씀이십니까?” TV에서는 시청률 70%의 신화를 이룩한 스타 PD였던 그는 충무로로 간 뒤 거대한 제작비와 해외 올 로케이션 등 제작 단계부터 화제를 뿌린 영화 <이게 바로 예술이야>를 감독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보니 전국 1만이라는 싸늘한 관객의 판결이 내려졌고 쓸쓸히 잠적했다. 이후 아무도 그의 모습을 본 적이 없고 혹자는 자살을 했을 것이다, 절에 들어갔을 것이라는 등 무성한 소문을 뿌렸던 터였다. ‘예술하네’ PD는 온몸에 전율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런 그가 지금 바로 자신 앞에 서 있는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부활하리’ 선배는 마치 그가 지금 어떤 고민을 하는지 다 알고 있다는 듯 조목조목 이야기를 시작했다. “‘예술하네’ 후배, 지금 내가 하는 이야기를 잘 듣게, 그리고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말 것이야. 왜냐하면 이건 정말 비싼 레슨비를 치르고 배운 내용이기 때문이지….” 흥행 5계명 그 첫 번째, 네 이름값을 믿지 마라 “후배, 영화감독이 되고 싶나?” “글쎄요,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기보다는 영화를 찍고 싶습니다.” “그렇군, 텔레비전에서 드라마 찍던 사람들이 영화를 찍겠다고 하면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지. 하나는 작품세계에 대한 욕구가 강해 TV 안에서 그것을 펼치기에는 브라운관이 너무 좁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야, 예술가들 타입이지. 또다른 부류는 영화를 연출 인생의 승부처로 두는 경우일세, 주로 야심가들이 이 부류에 속한다고 할 수 있어. 하지만 야심가든 예술가든 절대로 잊지 않아야할 몇 가지 것들이 있어. 자네 지금 뭐 하나 안 받아적고!… 에, 그러니까… 첫째 자신의 이름값을 믿지말라는 것일세, 대부분 영화 쪽으로 오는 TV감독들은 자신이 방송사에서 얻은 명성에 대한 부풀린 믿음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TV의 명성은 참으로 위험한 것이라 만약 실패시에는 후배를 더욱 깎아내리는 구실이 되지만 흥행에는 별반 도움이 안 되는 꼬리표란 걸 명심해야 하네. 어떤 이도 내 시청률 70%의 신화를 보고 영화표를 사진 않았다는 말일세. TV시청자나 영화 관객이 설령 같은 사람일지라도 그들이 방바닥에 드러누워 발가락에 리모컨 끼우고 자네 프로그램을 볼 때와 꿈같은 주말을 할애해 하루 행사로 자네 영화를 볼 때의 자세는 180도 다르다고 보면 되는 것이지. 그러니 먼저 어깨의 힘을 빼게. 충무로에 온 이상 자네는 ‘유명한 TV PD’가 아니라 그저 ‘실전 경험 많은 늦깎이 신인감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게야.” 흥행 5계명 그 두 번째, 영화는 드라마가 아니다 “하지만 선배님, 사실 저도 나름대로 거품이 아닌 ‘마니아’ 팬들이 있다고 생각해서 적어도 그 사람들이 2∼3명만 데리고 와도 영화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거든요.” “글쎄, TV 마니아는 그저 TV 마니아일 뿐이야. 그리고 그들을 영화에서도 잃지 않고 가져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 좋아하는 드라마 스타일과 좋아하는 영화 스타일은 다른 거니까. H후배를 생각해 보게, TV 시절 H후배의 열혈팬이었던 한 시청자는 그의 영화를 보고선 실망했는지 다른 어떤 사람보다 강하게 보지말라고 말리더라는군, 애증이지. 오히려 더 무서운 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네, 물론 다시 돌아온 H의 드라마를 요즘엔 다시 열성적으로 본다고 하지만 말야….” “그래도 선배님 때는 단막극 만드는 재미가 있었겠어요. <잘 팔리는 책 극장>은 초반에 필름 작업도 했다면서요. 반은 영화를 만들어 보신 거나 다름없지 않나요?” “어허, 이렇게 자네 스스로가 나의 두 번째 충고의 화두를 꺼내는군. 둘째, 영화와 드라마는 다른 것일세. 아까 자네가 말했듯이 영화로 간 대부분의 PD들은 영화를 너무 쉽게 생각한 바가 없지 않았어. 우리가 영화를 찍어봤다고 스스로 생각한다는 거야. 가끔 비디오로 영화를 보다보면 ‘저거 너무 쉽지 않아? 저 정도면 <잘 팔리는 책 극장> 수준도 못 되잖아? 나한테 저 돈 주면 진짜 빨리 찍어줄 수 있겠다’하며 은근히 충무로를 얕잡아본 알량한 마음 같은 것들이 있었네. 사실 우리가 만든 작품은 항상 ‘영화적이다’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던 게야, 솔직히 무엇이 ‘영화적’이고 무엇이 ‘드라마적’인가 하는 정확한 구분도 안 선 상태에서 말일세. 영화를 드라마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하지 말게. 그 말이 영화는 우월하다, 드라마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다른 매체로 인식하고 시작해야 한다는 점이야.” “그렇다면 선배님, 영화와 드라마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후배, 숨 한번 쉬어보게.” “이렇게요, 휴우∼.” “아니 더 짧고 깊게… 그렇지, 하지만 그런 식으로 숨쉬는 것이 쉽게 익숙해지진 않을 거야. 왜냐하면 후배는 항상 그보다 긴 호흡에 익숙해져 있을 테니 말일세. 흥행 5계명 그 세 번째, 네가 프로듀서를 이용하라 시나리오부터 촬영, 편집의 모든 길이와 리듬은 드라마의 그것과 다르게 생각해야 하네. 하지만 편집 리듬의 차이, 화면 크기의 차이, 촬영 장비의 차이, 돈을 내고 안 내고 이런 것들이야 쉽게 유추할 수 있는 표면적 다름이 아니겠나. <인샬라샬라>를 제작한 K후배는 “TV가 소설이라면 영화는 시다”라고 말하더군. 보통 TV PD들은 ‘설명하기’가 몸에 배어 있는 편이지. 당위성을 위해 10분, 20분을 그냥 흘러보내기도 하고 많은 등장인물을 일일이 설명해야 하고…. 하지만 영화에서는 삭제하고 압축해야 하거든. 그런 면에서 소설과 시에 비유한 것 같아. 이런, 또 설명을 하는군. 그리고 <꽃을 산 남자>의 H후배는 프로듀서의 존재유무가 차이점이라고 말하더군. 그동안 우리는 어땠나, 몸은 하나인데 머리가 두개 달린 샴쌍둥이가 아니었나? TV에서 연출가(Director)와 제작자(Producer)의 두 가지 역할을 하던 우리에게는 같은 피가 흐르는 ‘같은 과’의 프로듀서를 만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네. 더욱이 요 몇년 사이 제작자의 위상이 얼마나 많이 달라졌나? 예전엔 제작비 오버만 하지 않으면 내용적인 간섭이 없었대지. 하지만 충무로에 요즘은 안목있는 젊은 제작자들이 자리 잡아가면서 제작의 내용적 측면까지 함께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 처음엔 간섭같고 부담스러웠네. 하지만 예술영화든 상업영화든 제작자와 연출가가 ‘동상이몽’하는 상태에서는 배가 산으로 가게 마련이지. 망하는 건 불보듯 뻔한 것이고…. 프로듀서를 부담스러워하지 말고 프로듀서를 이용하게. 연출만 하기에도 힘든 게 영화판 아닌가?” 흥행 5계명 그 네 번째, 스타가 뭐기에 “아! 선배님 잠시만, 잠시 꿈에서 깨서 노트 바꿔오면 안 될까요? 말씀이 너무 주옥 같아서 벌써 노트 한권이 넘었습니다.” “아까 내가 필기하라고 말한 것은 노트에 쓰라고 함이 아니라 마음에 새기라는 걸세.” “아! 제가 그 깊은 뜻을 몰라뵙고… 계속 하십시요.” “넷째, 스타를 믿지말게. 사실 TV드라마는 김히선이 나오면 그게 <토마토 케찹>이건 <미스터 G>건 30%를 넘는 게 당연한 일이지만 영화는 주연의 얼굴 가지고만은 안 되는 뭔가가 있네. 똑같은 이종재와 시모나가 주인공이라도 그 영화가 <이 재수좋은 날>인지 <인터뷰어>인지가 관객에게는 중요하거든. 예를 들어 <아! 러브>의 L후배를 생각해봐. 고소소, 정우상 정도의 스타들을 가지고 TV 미니시리즈라도 할라치면 안 봐도 대박 아닌가. 게다가 탁월한 구성력과 삶에 대한 통찰이 영민한 송자니 작가 정도라면 말야, 하지만 결과는 어땠지? <개인병원에서 만일동안>의 C후배의 경우도 마찬가지야. TV히트작 <개인병원>의 히로인이 배신 안 하고 출연했는데도 결과는 TV 반도 못 미쳤다는 이야기밖에 못 들었지 않나. 그러고 보면 <체인지 바디>의 L후배는 이런 면에서 꽤나 똘똘한 편에 속해. 적어도 자기가 잘하는 게 뭔가, 하는 데 대해서 분명히 알고 있거든. 캐스팅에 무리하지 않고 신인급 아이들을 데리고 영화찍겠다고 덤볐을 때만 해도 모두들 반신 반의 했지. 하지만 라이트한 소재에 청춘물에 익숙한 자신의 장기를 살려 고등학생 이야기로 가져간 것뿐 아니라 무리하게 욕심 안 내고 저작권 문제도 사전에 해결하고 결국 흥행도 어느 정도 되면서 이 친구는 ‘인정받는’ 영화는 아니라도 자기 나름대로의 ‘드라마 같은 영화’의 길을 튼 거야. 개중 영화를 산업으로 제대로 이용하는 축에 속한 거지. 하지만 ‘예술하네’ 후배, 자네의 목적이 이런 상업적 성공에 있지않고 정말 ‘예술’하는 데 있다면 마지막으로 정말 명심해야할 것이 있어.” 흥행 5계명 그 마지막, 다시 문제는 내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선배님. 서둘러 주십시요. 새벽이 밝아오려 하고 있습니다.” “쯧쯧쯧, 저 조급증, 그게 바로 문제야. 순간순간 느껴지는 대중의 반응에 휩쓸리기보다는 자기의 이야기를 가지고 대중을 이끌 수 있는 여유로움 말일세. 연출의 기회가 잦고 또한 이른 시간 내에 진행하던 제작에 익숙한 PD들은 이 정도면 드라마되지 않나!식의 안일함이 자신도 모르게 몸 속 깊숙이 침투해 있네. 사실 하루에 20신씩 찍어대야 하는 방송현실에 비춰볼 때 당연한 결과이지. 하지만 이 치열함의 부족이야말로 가장 큰 걸림돌이 될거야. 한 프로그램 망해도 다음 프로그램 시작하면 되고 굳이 목숨바쳐 일 안 해도 월급받던 곳, 즉 직장에서 하는 직업적 일로 영화를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거지, 친정이 가까이 있는 부인들이 더욱 쉽게 짐을 싸게 마련이지 않나? 영화가 안 되면 다시 드라마하면 되지 하는 식의 생각은 금물이네. 패장을 받아주기엔 이미 TV엔 너무 많은 좀비들로 포화상태란 말일세. 조급해하지 말게, 가슴속에 품은 후배만의 이야기가 있다면 40대에 <초록물고기>나 <박하사탕> 같은 깊이있는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지 않겠나? 결국 위 같은 패인분석을 다 무색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내러티브의 힘이고 이야기, 즉 시나리오의 힘이 아니겠나. 후배여, 오욕을 되풀이하지 말아다오 내가 왜 이 야밤에 야근수당도 안 나오는데 이렇게 떠들고 있는 줄 아는가? 만약 TV PD들이 영화란 건 애초에 꿈도 못 꿀 형편없는 집단이었다면 달밤에 체조한 격이겠지. 하지만 지금의 충무로를 보게. 후배들이 아무런 메리트가 없다고 생각하진 않네. 조감독 한번 하고 혹은 영화학교 졸업하고 현장 경험 없이도 바로 작품 들어가는 충무로 젊은 감독들에 비해 후배들은 수많은 현장경험의 노하우와 스피디한 진행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대중의 감을 쉬이 읽어낼 수 있는 밝은 눈이 있지 않은가. 이런 것들이 좋은 영화를 합리적으로 찍어낼 수 있는 훌륭한 거름임에도 불구하고 앞선 시행착오에 대한 올바른 진단도 없이 ‘TV PD는 영화 오면 망한다’는 징크스의 이야기만 떠돈다면 똑같은 실수를 자네 같은 후배들이 반복할 것이 아닌가? 망하더라도 한발 진보한 망함을 택하게. 내가 왜 ‘부활하리’인 줄 아는가? 나는 죽었으되 죽은 게 아니네. 어제의 바닥침으로 금보다 더 귀한 교훈을 얻었으니 다시 살 날만 남았네. 후배, 부디 나의 당부를 잊지 말아주게, 혹시 또 만날 기회가 있으면 그때는 더 깊은 노하우를 알려주리다. 그럼, 잘자! 내일도 내 꿈 꾸시게.”

[스크린 속 나의 연인] <아라비아의 로렌스> 피터 오툴

세상의 어떤 규칙들을 이제 겨우 하나하나 배워나가는 어린 나이의 소년, 소녀들에게 어른들이 저지르는 꽤 폭력적인 질문, 그러나 어른 입장에선 꽤 즐기게 되는 두 가지의 질문이 있다. 하나가 넌 누굴 가장 존경하느냐는 것이고 다른 하나가 넌 커서 무엇이 되고 싶으냐는 질문이다. 솔직히 별로 궁금하지도 않으면서, 괜히 할 말이 없을 때면 곧잘 해대곤 하는 이런 질문이, 어렸을 적 내겐 꽤 골치 아프고 귀찮았다. 교과서에 나오는 위인들마다 나름 존경할 거리들이 만만치 않게 있었고, 무엇인가 되고 싶기엔 세상 사람들이 무엇을 하며 사는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그런 질문에 재빠르게 확신에 차서 대답하지 못하게 되면, 나보다 더 의기소침해지고 걱정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어머니의 모습을 보기도 썩 즐겁지는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질문에 확신에 차서 대답을 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으니, 그것은 바로 데이비드 린 감독의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보고 난 뒤였다. 거대한 화면안에 불타는 사막이 광할하게 펼쳐지고 콤플렉스로 가득차 보이는, 뭔가 비어있고 나약해 보이는, 하지만 어린 내가 보기에도 꽤 귀족적인 느낌의 피터 오툴과 이글거리는 사막 저편에서 점처럼 희미하다 조금씩 거대하게 다가오며 카리스마를 자랑하던 오마 샤리프는 나를 한순간에 사로잡았다. 그 뒤로 내가 존경하는 사람은 로렌스와 그의 사막 친구들이었고, 장래 희망은 사막으로 가서 베두인족의 일원으로 함께 생활하는 거였다. 뭐, 나의 확신에 찬 이 대답이 어머니를 결코 평온하게 해주진 못한 것 같았지만 나의 사막에 대한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스무살이 넘어, 당시의 실제 역사가 제국주의 침탈의 역사였고, 로렌스 역시 그 안에서 장기알처럼 도구화된 영국의 식민지 정책의 한 단면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그러나 진실은 언제나 매혹적인 것들에 저당잡힐 때가 있다. 더군다나 피터 오툴이 더위를 극도로 싫어하는 체질인지라 사막에서 살기는커녕, 며칠동안의 여행조차 거부할 정도라는 것을 인지한 이후에도…. 난 <아라비아의 로렌스> 화면 안의 모든 것들에 여전히 매혹당했다. 기차를 보기만 하면 그 위에서 세상을 움직이듯 성큼성큼 걸어가는 로렌스를 떠올렸고, 그 영화로 인해 피터 오툴이 나오는 모든 영화를 보려고 애썼고, 특히나 당시 텔레비전를 통해 방영된 피터 오툴 주연의 <마사다>는 나를 아침형 인간에서 늦은 밤 잠 못드는 인간형으로 변신시켰다. 어쩌면 나는 피터 오툴의 이미지에서 언제나 무엇인가를 갈망하는 하지만 스스로 자신 안에 끊임없이 갖혀버리고 말았던 나의 성장과정을 예지몽처럼 보았는지도 모르겠다. 로렌스와 사막에 매료당하던 어느날 나를 또 한번 매혹의 뭉텅이안으로 빠트린 사람이 있었다. 바로 이장호 감독의 1975년 작 <어제 내린 비>의 김희라 선생이었다. 영화의 모든 것을 상세히 기억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하얀색 와이셔츠와 검은 바지를 입고, 사랑하는 여인 앞에서, 은혜를 갚기 위해 그리고 배다른 동생의 행복을 위해 갖은 추한 모습을 의도적으로 보여주며 울부짓던 김희라 선생의 연기와 이미지는 당시의 나에게 젊음의 어떤 이면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김희라 선생의 최고 걸작들은 모두 이장호 감독님과 함께였던 것 같다. <어둠의 자식들> <과부춤>에서 김희라 선생은 캐릭터가 인정하는 범위의 경계선에서 어떤 빛을 느끼게 해준다. 때때로 나 역시 연속적인 빛을 뿜어줄 그런 영화 안에서의 파트너를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대표적인 커플이 나에겐 이장호-김희라 커플인 것 같다.

[팝콘&콜라] 비즈니스 은하계의 왕 루커스씨 다스 베이더 돼가는것 아녜요?

스타워즈 시리즈의 조지 루카스 감독은 영화 홍보에 깐깐하기로 유명한 인물이다. 1999년 <보이지 않는 위험>을 개봉하면서 홍보용 스틸 사진도 직접 결정했고, 사전 정보도 그가 정하는 만큼만 공개했다. 또한 영화 시작 전에 광고 상영 금지 등 까다로운 조건을 붙였다. 이번에 개봉하는 <시스의 복수>도 예외가 아니다. 스틸 사진을 직접 고르는 것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어떤 컷을 언제까지 사용할 수 있는지도 제한했고 전세계 국가의 개봉 날짜는 물론 시사 일정까지 직접 정했다. 언론 외에 일반인들을 상대로 한 시사회도 열지 않았다. 몇 년 전 아내와 이혼했을 때는 직접 고른 매체들과의 인터뷰에서 “엄마 없이 아이들을 성실하게 키우는 아버지로 그려달라”며 이미지 메이킹까지 챙길 정도였다. 고인이 된 스탠리 큐브릭 감독도 자기 영화의 홍보 내용과 방식을 직접 챙기기로 유명했다. 그러나 큐브릭과 달리 루카스의 이런 태도를 두고서 현지 언론에서 이런저런 말들이 나온다. 큐브릭 영화와 달리 <스타워즈> 시리즈는 그 자체로 거대한 산업이 됐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알려져 있다시피 <스타워즈> 시리즈의 마케팅은 영화가 비즈니스로 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 시금석이었다. <스타워즈> 첫 시리즈부터 마케팅과 관련상품 개발에 비상한 열정을 보여온 루카스는 장난감부터 책, 의류, 과자에 이르기까지 수백 가지 상품을 개발하거나 기존 제품과 연계해 어마어마한 돈을 벌었다. 경제전문지 <포브스> 최근호는 <스타워즈> 시리즈가 지금까지 벌어들인 돈과 앞으로 벌어들일 돈을 환산하면 200억 달러 규모에 달한다는 수치를 내놓았다. 이는 파라과이의 한해 국내총생산과 맞먹는 돈이라고 한다. <워싱턴 포스트>는 <시스의 복수> 개봉 전부터 햄버거와 초콜릿, 시리얼 등 아이들의 코 묻은 돈을 겨냥한 상품의 포장지를 도배하거나 끼워팔기 식으로 등장하는 다쓰 베이더를 루카스에 비유하면서 “<스타워즈> 시리즈는 엔터테인먼트 판권 산업의 은하계 그 자체”라고 비꼬았다. 루카스는 몇 년 전 <스타워즈> 시리즈의 제작과정을 담은 한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에서 의미심장한 고백을 했다. “거대한 스튜디오 시스템의 통제를 벗어나 온전한 나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열악한 환경에서도 독립적으로 영화작업을 해왔는데 이제 내 작업과 스튜디오 자체가 내가 그렇게도 혐오하던 메이저 스튜디오처럼 비대해졌다”는 게 요지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여전히 메이저 방식의 홍보와 마케팅을 꼼꼼히 챙긴다. 스스로 혐오하던 악의 세력의 편에 서서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는 듯 그 길을 가는 다쓰 베이더가 연상되기도 하지만, 그건 잠시다. 다쓰 베이더에서 루카스로 옮겨가는 순간, ‘비장함’이 ‘쫀쫀함’으로 바뀐다.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수령님, 우리들의 수령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고려대학교에서 명예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위 논문의 제목은 “고려대 100주년 기념관 건립과 현대철학의 상관관계.” 무슨 명분을 갖다붙여도, 본질이 변하지는 않는다. 그는 고려대학교 100주년 기념관 건립을 위해 400억원을 냈고, 고려대학교는 그 돈의 가공할 덩치를 기리기 위해 “명예”롭게 영수증을 떼어주었다. 이것은 “철학”적 사건이다. 한국 철학계에 일찍이 이보다 더 큰 사건이 있었던가? 학생들은 학위에 전공표기가 잘못된 것을 문제 삼았다. 이건희 회장이 ‘명예’로나마 ‘박사’의 실력을 인정받는 분야는 ‘철학’이 아니라 노동탄압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런 학생들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전공자의 입장에서 봐도 이건희 회장은 철학적 소양이 많이 부족하다. 하지만 노조 만들려는 노동자들을 휴대폰 위치추적을 통해 감시하는 실력만은 ‘박사’의 학위가 무색할 정도로 탁월하다. 고려대의 보직교수들이 일괄 사퇴서를 냈다. 웃지 못할 코믹물은 여기서 괴기스런 호러물로 전환한다. 전직 대통령의 진입이 물리적으로 저지당했을 때도 나오지 않았던 사표. 그 귀중한 사표가 일개 기업 회장의 행사장 진입이 저지됐다고 총장 책상 위에 일괄적으로 올라온 것이다. 왜 그랬을까? 독신(瀆神)과 불경(不敬)이야말로 종교인의 가장 큰 죄. 보직 교수들의 일괄 사퇴는 모욕당하고 거역당한 신의 노여움을 달래는 거룩한 희생양 제의가 아니겠는가? 이번 사건은 종교적 경지에 달한 북조선 수령 문화의 자본주의적 버전이다. 회장님이 어떤 분이신가? 스키를 즐겨도 인간의 반열에 낄 수 없기에 레인을 통째로 임대하는 분이다. 외유라도 하실 참이면 교황의 행차를 무색할 정도의 예우가 조직된다. 색깔별로 차려입은 유니폼 점퍼들의 무리 속에 회장님이 거룩하게 출현하시는 장면은 사이비 종교단체의 집회 혹은 전체주의 사회에서 벌어지는 카드섹션을 연상케 한다. 북조선에서는 수령님이 인민을 먹여살린다. 남조선에서는 삼성이 국민을 먹여살린다. 인재 한 사람이 10만을 먹여살린다고 하지 않는가. 삼성에 인재 3천이 없겠는가? 곱하기 10하면 남조선 인민 전체를 여섯번 먹여살리고도 남음이 있다. 환웅은 3천의 무리를 거느리고 신단수로 내려와 나라를 세우지 않았던가. 회장님은 현대의 재림 환웅이시다. 박정희 덕에 먹고살던 불쌍한 인민들은 이제 이건희 덕에 먹고살고 있다. 대한민국은 삼성이 먹여살린다. 그 삼성은 내가 먹여살린다. 주머니 속의 휴대폰, 거실의 텔레비전, 부엌의 전자레인지가 그것을 증명한다. 이를 인정할 수 없다면, 삼성이여, 다음에 휴대폰 광고할 때에는 과감하게 이렇게 해보라. “소비자 여러분, 너희들은 우리 덕에 먹고삽니다.” 한 사람의 인재가 제 밥 벌어 먹으면서 따로 10만을 먹여살리는지는 모르겠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한 사람의 인재는 여러 범재들의 노력을 먹고산다는 것이다. “400억을 받고도 모자라서.” <중앙일보> 기사의 제목이다. 누가 삼성 계열 아니랄까봐. 언제 학생들이 돈 적게 줬다고 시위를 했던가? 바로 여기서 명예로 박사 학위 받은 이들의 철학이 드러난다. 삼성 철학의 상상력 밖에서는, 자주는 아니더라도 아주 가끔은, 돈 주고 살 수 없는 것도 있다. 돈 주고 살 수 없는 그 가치는 인문정신을 담당하는 교수들이 앞장서서 지켰어야 한다. 그들이 방기한 그 일을, 학생들이 했다. 그리고 그 빌어먹을 교수들은 그 장한 학생들을 ‘징계’하겠다고 벼르고 자빠진 모양이다.

운명을 신념으로 뒤흔드는 사랑의 해석, <걸 온 더 브릿지>

<걸 온 더 브릿지>는 불행에 관한 영화다. 그런데 파트리스 르콩트 감독이 생각하는 불행이란 남녀가 서로의 짝을 찾지 못하는 데서 온다. “난 아예 불행 자체니까요”라고 말하는 창녀 아델은 난간에서 흐르는 강물을 바라본다. 그녀의 말을 빌리면, 자신은 ‘역’과 같은 존재다. 수많은 남자들이 다가왔지만 누구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런 그녀에게 신념으로 행운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남자 가보가 찾아온다. 사실 파트리스 르콩트 감독의 주인공들은 언제나 새로운 행복을 찾아나설 준비가 되어 있다. 창녀 아델은 한 남자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공연을 가는 곳마다 남자들에게 추파를 던진다. 왜냐하면 아무도 그녀에게 만족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랑한다면 이들처럼>에서도 마찬가지다. 충만한 사랑의 기쁨을 나눈 뒤 물건을 사러간 여자는 강물 속으로 뛰어든다. 그녀가 자살한 이유는 이제 둘 사이에는 행복의 절정보다는 ‘하강’만이 남았기 때문이다. 행복해지고 싶은 남녀, 그러나 행복해질 수 없는 운명. 집요하게 그의 전작들을 연결하는 고리다. 하지만 진리는 단순하다. 과거의 영화 속에서 해답을 찾지 못했던 감독은 이제야 가보의 입을 빌려 하나의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자신은 어렸을 적 이웃집의 모습을 항상 부러워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이웃집은 우리집을 부러워했다는 것이다. 방금 만난 그리스 남자와 함께 떠나려는 아델에게, 가보는 행복은 자기 안에 있음을 은유적으로 들려준다. 사실 안과 밖의 경계는 영화 속에서 반복적으로 상징화된다. 예를 들어, 난간 밖에서 바라본 센강이 그렇게 아름답게 비춰진 것도, 사람들은 쓰디쓴 현실의 다리 안쪽보다는 난간 너머에 무언가가 있다고 꿈꾸기 때문이다. 그러나 난간 밖은 죽음일 뿐이다. 명암대비가 강렬한 흑백의 화면, 프랑스 특유의 시적인 대사 그리고 사랑에 관한 르콩트 감독의 독특한 해석이 개입한 <걸 온 더 브릿지>는 99년 프랑스를 대표하는 영화 중의 하나다. 특히 같은 이야기를 조금씩 변주하는 묘미와 사랑의 판타지를 엮어내는 유머넘치는 화술은 당대 프랑스 감독 중 단연 으뜸이다. 영화 속에서 칼 던지기 쇼는 세상에 내던져진 남과 여가 ‘섹스’를 나누는 명백한 은유이고, 남녀 사이의 우연을 필연으로 바꾸고 운명을 신념으로 뒤흔드는 사랑의 해석은 메마른 현대인들의 감성에 울림을 준다. 특히 어린 나이에 데뷔해 유럽을 뒤흔들었던 요정 샹송 가수 바네사 파라디의 묘한 매력과 눈빛으로 사로잡는 다니엘 오테이유의 연기는 프랑스 최고의 ‘남과 여’를 엮어낸다. 감독의 찬사 그대로, 이 영화의 주인은 바로 등장인물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파트리스 르콩트는 이 모든 것을 마치 현란한 서커스처럼 빠르게 엮어놓는다. 그러나 정작 영화의 시작은 재판정에서 자신의 과거를 진술하는 듯한 아델의 클로즈업이다. 운명의 사건이 시작되기까지 아델은 자신을 거쳐간 남자들과 불행에 관해 이야기한다. 마치 뒤에 등장하는 가보와의 만남은 하나의 꿈 아니면 어딘가에 묶여 있는 기억과도 같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 여자의 꿈, 아니면 행복을 꿈꾸는 운명적인 사랑이야기를 함께 꿈꾼 것은 아닐까. 사실 영화가 단박에 이해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관음주의적이고, 신파적인 요소들이 머리로 영화를 받아들이기에 어렵게 만든다. 하지만 영화의 틈새들을 힘이 넘치는 비약과 사랑의 대화들로 채워놓는 그의 방식은 누벨바그의 전통과 맥을 이으며, 이야기 자체보다는 이미지를 앞에 놓는다. 그래서인지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남녀의 대화를 마치 텔레파시처럼 교차 편집하는 황당한 장면도 자유롭고 감미롭다. 이 모든 것에는 바로, ‘남과 여’라는 단단한 하나의 끈을 상정한 것인데, 강박적이고 한편으로는 상투적이지만, 시적인 비약과 상상력으로 인해 90분이라는 시간은 남과 여의 운명에 관한 놀라운 향연으로 충만하다. 감독 파트리스 르콩트 사랑에 관한 기나긴 탐구 사랑에 관한 남다른 해석을 보여주는 파트리스 르콩트 감독은 90년대 초반부터 대중적이면서도, 비평적인 찬사를 동시에 받아온 독특한 감독이다. 그는 프랑스영화들을 주대상으로 하는(우리의 대종상과 비슷한) 세자르영화제의 단골 손님이기도 하다. 그의 대부분의 작품들은 감독상에 노미네이트되었으며, 급기야 97년에는 <조롱>이라는 작품으로 세자르영화제 최우수 감독상과 작품상을 거머쥐었다. 당시 베르트랑 타베르니에와 공동 수상을 하게 되어 좀 불쾌감을 표시하기도 했는데, 96년 최고의 프랑스영화로 선정된 <조롱>은 49회 칸영화제의 오프닝을 장식하기도 했다. 배경은 루이 16세가 마지막으로 베르사유궁의 주인으로 행세하며 프랑스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며 부도덕한 궁정생활을 할 시기에, 굶주린 농부들과 격리된 이 사치의 공간에선 말 한마디로 상대방을 몰락시키는 말장난 게임이 유행했다. 영화의 소재는 바로 이 말장난 게임. 그런데 독특한 소재로 프랑스의 역사를 재해석한 이 작품은 르콩트의 작품군에서는 의외다. 사실 90년대의 대표작인 <사랑한다면 이들처럼>(1990)이나 <살인혐의>(1989)를 보면 남과 여의 사랑과 이별에 관한 독특한 해석으로 관객을 당혹시켜왔다. 93년도에 완성한 <탱고>에서는 ‘마누라 죽이기’를 결심한 남자들의 여행을 소재로 삼았다. 코믹하지만 역시 주된 정조는 남녀의 사랑이다. 국내에서는 크게 소개된 적이 없지만 그의 주요작품들은 이미 비디오로 출시됐다. 좀 찾기 힘든 것도 있지만, 이 사랑의 곡예사가 펼치는 사랑이야기는 한번쯤 들어두면 좋은 파르마콘(독약이자 치료약)이다. 파리 태생인 르콩트는 원래 만화작가로 출발했으며, 아마 상상력이 자유롭게 느껴지는 것은 만화의 작업 탓일 것이다. 처음에는 주로 상업적인 작품들로 일관했지만 점점 그의 예술적 재능을 발휘하는 중이다. 최근에는 프랑스의 비평가들과 설전을 벌일 정도로 입김이 센 감독이다.

히치콕 전성기를 열다, 앨프리드 히치콕의 <다이얼 M을 돌려라>

인물들이 스크린의 평면을 뚫고 나오는 듯한 환영을 주는 3-D 테크놀로지는, 1897년에까지 거슬러갈 만큼 오랜 발전의 역사를 가진 것이었지만, 그 혁신의 절정기는 주지하다시피 50년대 초·중반이었다. 그것은 관객 수가 줄고 텔레비전의 위협이 등장하던 당시 관객을 영화관으로 다시 끌어 모으려는, 일종의 이미지 향상의 시도였던 것이다. 모든 메이저 스튜디오들이 손을 댔던 이 ‘획기적인’ 테크놀로지는 그러나 단지 진기한 볼거리에 지나지 않았고, 결국 그 유행은 대략 52년에서 54년까지 3년도 채 지속되지 않는 일시적인 것으로 그쳤다. 3-D라는 이 테크놀로지를 이용한 영화들은 거의 대부분 과거의 역사 속에서나 언급되는 범작들이었지만, 아마도 앨프리드 히치콕의 <다이얼 M을 돌려라>에 대해서만은 그렇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거장의 손길은 테크놀로지의 ‘한계’를 가뿐히 뛰어넘는 것일까? 히치콕의 이 영화는 당시 가장 성공을 거둔 3-D 영화 가운데 한편일 뿐만 아니라, 또한 완성도만을 놓고 봤을 때도 수작임에 틀림없으니까 말이다. <다이얼 M을 돌려라>는 거짓말, 기만, 위협, 살인 등의 모티브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전형적인 ‘히치콕 영화’다. 토니라는 인물이 이 이야기의 치명적인 음모의 주동자. 부인인 마곳이 미국인 극작가 마크와 외도를 하고 있음을 알게 된 그는 부인을 살해해 그녀의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을 계획을 세운다. 그 실행의 일 단계는 자기 대신 살인을 대행할 사람을 물색하는 것. 고등학교 동창인 스완이 곤혹스런 비밀을 감추고 있음을 알아낸 토니는 비밀 누설과 사례금을 미끼로 스완을 살인 거사에 끌어들인다. 이제 치밀하게 짜인 토니의 사전 계획은 단지 실행만을 기다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곳을 살해하려던 스완이 오히려 마곳이 집어든 가위에 찔려 죽게 되면서 사건은 예상 밖의 진로를 밟아나간다. 히치콕의 카메오 출연이 언제 어떤 식으로 나올지 눈여겨보는 것이 그의 영화에 잔재미를 더해주는 요소들 가운데 하나라는 것은 웬만한 영화팬들이라면 다 아는 사실. 다이어트 광고에 얼굴을 잠깐 내민 <라이프 보트>(1944)의 경우와 유사하게 <다이얼 M을 돌려라>에서 히치콕의 얼굴은 토니가 보여주는 동창 모임 사진 속에 등장한다. 이건 아마도 이 두 영화 모두, 히치콕이 잠깐이라도 모습을 보여줄 틈이 없을 정도로, 전적으로 협소한 공간 속에서만 사건이 벌어지기 때문일 듯 싶다. 과연 <다이얼 M을 돌려라>의 행위 공간은 <로프>(1948)와 비슷하게 토니의 저택 내부로 거의 한정되어 있다. 그 단일 공간 안에서 이미 살인 계획이 알려진 사건이 진행된다는 것은 다분히 연극적이라고 볼 수도 있고 또한 자칫하면 애당초 흥미를 상실케 할 위험마저 있다. 하지만 히치콕은 치밀한 플롯의 짜임새와 정교한 프레이밍으로 그런 잠재적인 위험들을 돌파해 가는 묘미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프레데릭 노트의 동명 희곡을 영화화한 이 미스테리 실내극은 36일이란 짧은 기간에 촬영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히치콕 자신은 이렇듯 속성으로 찍은 이 영화에 대해 별로 할 얘기가 없다고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재충전을 할 양으로 쉽게 만들었다고도 했다. 하지만 <다이얼 M을 돌려라>가 히치콕의 필모그래피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면, 그것은 이 영화의 성공이 1954년작 <이창>으로 시작하는 그의 전성기로 이월할 여유를 주었고 그레이스 켈리라는 히치콕의 이상적인 블론드와의 첫 만남이었기 때문이다. 배우 그레이스 켈리 우아하다면 그녀처럼 우아하고 고상한 매력의 대명사 그레이스 켈리(1929∼1982)는 참으로 영화계의 공주라는 별칭을 전혀 무색하게 만들지 않는 그런 여배우다. 이건 그녀가 스크린에서 발산하는 영화 속 이미지라는 측면에서도, 그리고 실제로 모나코 국왕의 부인이었다는 점에서도 타당한 것이다. 내적인 정열과 외적인 차가움 사이의 패러독스를 체현한 켈리는 또한 앨프리드 히치콕이 선호한 이상적인 금발 미인이기도 했다. 켈리는 히치콕과 세편의 영화를 찍었는데, 그 첫 번째 작품이 바로 <다이얼 M을 돌려라>이다. 이어 그해 그녀는 <이창>에서 제임스 스튜어트의 상대역을, 그리고 다음해에는 <나는 결백하다>(To Catch a Thief, 1955)에서 캐리 그랜드와 짝을 이뤄 출연했다. 결혼 뒤 은막에서 은퇴했던 켈리는 62년에 히치콕의 <마니>(1964)에 주연을 맡으면서 할리우드로 돌아올 것이라고 공표했다. 하지만 모나코의 국민들은 공주가 도둑 역을 맡는 것도, 그리고 숀 코너리와 로맨스에 빠지는 역을 연기하는 것도 원치 않았다고 한다. 결국 나중에 켈리는 그 프로젝트에서 손을 뗄 수밖에 없었고 결코 다시는 연기 세계로 돌아오지 못했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브로드웨이에 먼저 발을 디딘 켈리가 첫 출연한 영화는 <14시간>(1951). 이 단역을 시작으로 그녀는 프레드 진네만의 <하이 눈>(1952), 존 포드의 <모감보>(1953)에 출연하면서 할리우드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뒤 히치콕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스타덤에 오른 그녀의 다른 대표작들로는 <상류 사회>(1956) <백조>(1956) 등이 있다. 82년 자동차 사고로 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