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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2003)

KTV, 시사다큐 시리즈 ‘라이프’ 1년간 방영

케이블 텔레비전 KTV가 세계화에 따른 빈곤, 소외, 기아, 질병 등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내년 5월 말까지 장기 방영한다. 한국정책방송 KTV는 세계 각 나라의 생활환경 문제를 다룬 영국 <비비시월드>의 시사 다큐 시리즈 <라이프>를 지난 3일 처음 방송한 데 이어, 내년 5월 말까지 매주 금요일 저녁 6시30분 방영한다고 9일 밝혔다. 영국 환경영상재단 TVE 제작 아프리카 등 소외 지역 조명 총 52편으로 구성된 <라이프>는 영국의 환경영상재단인 ‘TVE’가 세계화의 이면에 가려진 빈곤이라는 문제에 대해 세계인의 관심을 유도하고 해결책을 찾아보기 위해 제작했다. 주로 가난한 나라나 내전 등으로 경제난을 겪고 있는 지역, 특정 집단의 인권이 억압되고 있는 나라가 취재 대상이다. 이들 지역 소외계층의 경제, 의료, 교육 등 일상 생활환경과 문제점을 밀착 취재했다. 첫 회 방송된 ‘여성으로 살아가기’에서는, 94년 전세계 지도자 179명이 카이로에 모여 여성들의 인권 향상에 서명한 이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케냐, 나이지리아 4개 국 여성들의 삶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살펴보았다. 카이로 회의는 ‘모든 국가가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을 제거하기 위한 모든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선언했음에도 이 4개 나라들의 여성 인권 상황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음을 이날 방송은 잘 보여주었다. 10일 방송될 ‘에이즈와의 전쟁’편에서는 20년이 넘게 에이즈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잠비아와, 새롭게 에이즈 위험 지역으로 지정된 우크라이나를 찾아가 에이즈 감염 현황과 퇴치 노력을 살펴본다. 이어 17일 전파를 탈 ‘우간다 빈곤층의 삶’에선 독재정권의 부패와 내전으로 파산한 우간다가, 96년 무세베니 대통령 집권 이후 절대 빈곤층이 절반으로 감소하는 등 성공을 이뤄내고 있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달의 마지막 금요일인 24일엔 ‘터키의 교육개혁’이 방송된다. 터키 동부의 투르크족 소녀들은 정부의 교육개혁 의지에도 불구하고 부모들의 관습과 생활고 때문에 제도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에선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것이 더 나은 생활 여건을 만들 수 있다는 정부의 주장이 주민들을 설득해내 교육개혁이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 전망해본다. 이밖에도 <라이프>는 ‘세계화와 브라질’ ‘평화와 화해의 손짓, 부룬디’ 등의 방송을 준비하고 있다.

최초의 떨림, <정사>

올 4월28일부터 5월4일까지 일주일 동안 열리는 전주국제영화제가 채 두달도 안 남았다. 영화제 준비하랴 절반은 영화학교인 영상원 원장노릇도 같이 해야 하니 몸을 두쪽으로 나누고 싶은 심정이다. <씨네21> 기자로부터 ‘내 인생의 영화’란에 글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고서 응하기는 했지만 난감하다. 도대체 무슨 영화에 대해 써야 하지. 단순히 기억에 남는 영화라든가 강렬한 인상을 받았던 영화를 이야기하면 될까. 그러나 과연 영화가 내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쳤단 말인가. 영화는 젊음과 특권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영화 관객은 젊다. 젊음은 영화를 열망하고 영화는 젊음을 매혹시키며 그 매혹을 바탕으로 살아나간다. 영화가 갖는 ‘일과성’도 영화와 젊음과의 친연성을 보여주는 한 측면이라 볼 수 있다. 요즈음은 비디오테이프를 통해 아무 때나 원할 때 볼 수 있다고 하지만 영화는 역시 극장에서 ‘제때에’ 보아야 한다. 계절이 한번 지나가듯 그 계절과 함께 영화는 극장가를 스치고 지나간다. 영화가 이렇게 한번 스치고 지날 때 사람들의 삶과 영화와의 우연한 만남이 이루어진다. 영화에도 이른바 고전이라는 것이 있어서 이런 고전적 영화는 두고두고 보아도 여전히 감동을 줄 수 있다고 말하지만 내 경험으로는 이는 순수한 감동이라기보다는 지적인 만족에 더 가까운 것으로 생각된다. 영화 관람은 연애와도 같은 것이어서 반복해 보았을 때는 최초의 만남에서와 같은 감동을 느낄 수 없다. 영화가 주는 감동은 신선한 것이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곧 퇴색하는 것 같다. 오로지 그 신선함은 영화를 본 사람의 기억 속에만 살아 있다. 그래서 옛날에 보고 감격했던 영화를 다시 보면 마치 머릿속에만 그리던 옛 애인을 오랜만에 만나 실망하듯 실망하는 수가 많다. 보는 사람이 변한 것인가 영화가 퇴색한 것인가. ‘내 인생의 영화’라는 제목은 그래서 ‘내 젊음의 영화’라는 말과 동의어로 생각된다. 나이를 먹어서 영화가 내게 이미 과거형이 된 것인가. 젊은 나를 매혹시켰던 영화들은 어떤 것들이었나. 영화는 기억과 무슨 관계를 갖고 있을까. 영화의 회상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영화에 관련된 일로 정신없이 바쁘면서도 정작 나 자신의 영화는 챙기지 못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갑자기 들었다. 심지어 극장에 가서 영화 볼 시간도 내기 힘들지 않은가. 그런데 ‘내 젊음의 영화’에 대해 글을 쓴다니. 어쨌든 기억 속에서 맨 먼저 떠오른 것은 안토니오니의 <정사>다. 이 영화를 처음 본 것은 1963년 대학에 입학하던 해 봄, 19살, 성인이 되었다고 처음 자각할 때, 황폐하고 빈곤한 대학을 보고 절망하고 있을 무렵이다. 중앙극장에서 우연히 본 이 영화는 매우 놀라웠다. 어떻게 이해했는지는 잘 생각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때 받은 느낌이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영화 전체가 무척 세련돼 보였다. 영화주제가도 모니카 비티도 멋있었다. 스크린마저 특별한 광채로 하얗게 빛나는 것 같았다.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영화에 대해 부러운 감정마저 느꼈던 것 같다. 마치 영화 자체가 질투심이 불러일으킬 정도로 눈부시게 멋있는 사람인 양. 문자 그대로 자신이 흔들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최초의 떨림과 같은 것이었다. 그 매혹은 아주 새롭고 낯선 것이었다. 전에 다른 영화에서 맛보았던 멜로적 감동이나 액션의 박진감, 또는 장면의 현란함과는 다른 성격의 독특한 감각과 정서, 끝없이 추락하는 것 같은 현기증 같은 것이었다. 혼란스러우면서도 도취되는 느낌. 매혹과 그 매혹을 차단하는 브레히트적 소외효과가 동시에 작용하고 있었던 것일까. 당시에는 그런 단어나 개념을 전혀 몰랐지만 이른바 영화의 모더니티를 무의식적으로 감지했던 것일까. 확실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이 영화는 분명 새로운 영화, 아니 영화의 새로운 존재방식을 보여주는 것으로 느껴졌다. 대학초년생 특유의 스노비즘에 휩쓸려 감동을 과장하려 한 것은 아니었다. 그전에 안토니오니라는 이름도 몰랐고 서구에서 특별하게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라는 사실도 몰랐다. 연애를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 여자가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사춘기를 완전하게 벗어나지도 못한 젊은이가 정사의 허망함을 통해 사람 사이의 소통의 불가능성에 대해 말하는 영화에 전율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삶의 건조함과 황량함이 스크린 위에서 멋있고 세련된 형태로 보여진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이율배반적이다. 자기기만이 끼어 들어갔던 것일까. 인생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달리 어찌할 바도 모르는 젊음의 혼동이 영화의 스크린에 투사되었던 것인가. 흑백 장면들의 조형적 아름다움에 그저 막연하게 감탄했던 것인가. 그뒤 한참 동안 이 영화의 유명한 주제가를 다방이나 라디오에서 듣게 되면 그 최초의 떨림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그 느낌을 은밀하게 간직하려 했다. 왠지 부끄러운 것 같아 남에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이 영화를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텔레비전에서 한두어번 다시 보았고 각 장면이나 스토리도 잘 기억나지만 그 최초의 떨림을 다시 경험한 것 같지는 않다. 아니면 그 느낌을 쑥스럽다고 스스로 억압했는지도 모른다.

창조주 콤플렉스라는 이름의 함정, <스타워즈>

한국 <버피>(한국 방영명 <미녀와 뱀파이어>) 팬들 중 날 싫어하는 사람들이 꽤 될 거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난 내 <버피> 에피소드 리뷰에 분노하며 내 리뷰 사이트로 연결되어 있는 링크를 지워버리자고 주장하던 팬 커뮤니티 회원들을 몇명 알고 있다. 그들에겐 내가 당시 6, 7시즌에 박했던 게 팬으로서 배반행위로 느껴졌던 모양이다. 아마 날 팬의 가면을 뒤집어쓴 안티팬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들이 눈을 딱 감고 7시즌이 6시즌 때 잠시 주저앉았던 시리즈를 멋지게 회복했다고 아무리 믿고 싶어도, 6시즌 이후 이 시리즈가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었고 7시즌 이후 계속 바닥을 향해 달려갔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팬층이 더 넓은 의 애호가들은 조금 더 솔직할 것이다. 어디까지가 이 시리즈의 전성기였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겠지만 그래도 이 시리즈의 마지막 3시즌이 재능과 시간의 낭비였다는 사실을 당당하게 부인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운좋게 그럴 수 있는 나쁜 기억력의 소유자라고 해도 과연 피날레 에피소드의 허망함까지 잊을 수 있을까? 이건 텔레비전 세계에선 그렇게 드문 일이 아니다. 히트작인 텔레비전 시리즈들은 대부분 필요 이상으로 수명이 길다. 마지막 시즌까지 이전의 창의력과 매력을 그대로 유지하는 시리즈는 거의 없다. 대부분 그들은 조금 더 나간다. 그게 자의건 타의건 간에. 하지만 <버피>나 은 일반적인 시리즈들이 갖추고 있지 않은 핸디캡을 하나 더 가지고 있다. 그건 이들이 기본적으로 판타지/호러/SF라는 것이다. 두 작품들 모두 우리 세계와 외양은 비슷하지만 속은 전혀 다른 환상 세계를 다루고 있다. <앨리의 사랑 만들기>의 작가들은 기껏해야 보스턴이라는 실제 공간에 살짝 괴팍한 변호사들을 끼워넣었을 뿐이다. 하지만 <버피>와 의 작가들은 고유의 법칙이 존재하는 자기들만의 세계를 창조했다. 이런 식의 작품을 쓰는 사람들은 대부분 창조주 콤플렉스에 시달린다. 그들은 더이상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그들이 시리즈를 이어가는 동안 창조한 우주는 너무 근사하고 멋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세계의 법칙과 운명을 좌우하는 전능자인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그들은 이야기나 캐릭터보다는 우주 자체에 매달리게 된다. 수많은 이 장르의 작가들이 콤플렉스의 희생자가 된다. 아이작 아시모프와 같은 거장들도 예외는 아니다. 아니, 아이작 아시모프야말로 이 콤플렉스의 최대 희생자이다. 그의 후기작들이 재미없는 건 나이 들어 필력이 떨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물론 그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괜히 잘 연결되지 않는 그의 전작들을 연결해 하나의 거대한 역사를 만들려는 허망한 시도에 발목이 잡혔기 때문이다. 왜 이들은 실패하는 걸까? 그건 그들이 만든 우주가 사실 별게 아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그들의 이야기도 그들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깊이있는 것도 아니다. <버피>는 기껏해야 금발머리 치어리더가 뱀파이어를 사냥하는 재미있는 코미디액션이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은 기껏해야 심리역사학이라는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활용한 깜찍한 단편 모음집이다. 에서 매력적인 것은 외계인과 흡혈귀들이 공존하는 정체불명의 미로 자체이지 그 해답은 아니다. 제대로 정신이 박힌 작가라면 아무리 자기 시리즈가 인기가 많아도 아이디어와 캐릭터에 집중하지, 괜히 쓸데없이 자신의 우주와 설정을 과대평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장르의 작가들은 대부분 팬들이 형성한 좁은 컬트 그룹 안에서 과대망상증에 빠지게 마련이다. 그 결과는? 이야기는 지루해지며 주제는 생뚱맞아진다. 캐릭터들은 엉겁결에 우주의 운명을 짊어지고 헉헉거리다가 이전의 매력까지 날려버린다. 결정적으로 시리즈는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 이상의 것을 질겅질겅 씹어 삼키다가 심한 소화불량에 빠지고 만다. 선배들의 실수담 그대로 따른 조지 루카스 자, 그럼 <스타워즈>에 대해 이야기해보기로 하자. 아마 여러분들 중 상당수는 <스타워즈 에피소드3: 시스의 복수>가 미적지근했던 앞의 두 프리퀄들이 망쳐놓았던 시리즈의 위상을 어느 정도 회복한 작품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나도 그 사실을 아주 부정하고 싶지도 않고. 그러나 아무리 우리가 이 작품에 관대하고 싶어도 한계는 있다. 결국 우리가 보고 칭찬하는 영화는 조지 루카스가 만든 실제의 영화가 아니라 우리가 보고 싶었고 오래전부터 결말을 알고 있었던 친숙한 이야기라는 것을. 그리스 비극에 비유한다면, 관객이 정말 좋아한 건 눈앞에서 상연되는 소포클레스의 연극이 아니라 오이디푸스 왕의 이야기 자체였던 셈이다. 루카스는 자신의 히트작에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걸까? 아시모프나, 조스 위든, 크리스 카터가 저지른 실수들을 거의 그대로 저질렀다. 너무 모범적이어서 나중에 반면교사의 교과서로 써먹을 수 있을 정도다. 우선 그는 자신이 다루는 세계를 과대평가했다. <스타워즈>의 우주는 결코 그렇게 새롭거나 신선하거나 대단한 의미가 있는 곳은 아니다. 은하 제국과 그에 대항하는 저항군이라는 설정은 펄프 작가들이 몇십년 동안이나 써먹었던 아이디어다. SF와 구닥다리 판타지의 결합 역시 특별히 신기한 게 아니고. 조셉 캠벨 주니어 이야기는 꺼내지도 마시길. 요새 SF나 판타지를 쓰려는 작가들 중 조셉 캠벨의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을 안 읽은 사람이 어디 있나? 이것들은 모두 루카스가 엄청나게 잘한 일이 아니다. 그는 그냥 조심성 있는 풋내기 작가들이 대부분 그러는 것처럼 모범적으로 굴었을 뿐이다. <스타워즈>에서 루카스의 공헌은 뻔한 스페이스 오페라의 세계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그 세계를 영상 매체를 통해 기가 막히게 구현했다는 데에 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는 동안 루카스는 모두가 아는 그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언젠가부터 그는 자신의 우주가 포스트 모던한 잡탕찌개가 아닌 독자적인 깊이와 철학을 갖춘 무언가 대단한 곳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기가 만든 캐릭터들도 과대평가했다. 물론 나도 오리지널 시리즈의 다스 베이더를 좋아한다. 그는 멋있는 악당이고 목소리도 근사하며 뒤집어쓴 검은 가면도 죽인다. 돈만 충분히 있다면 나도 성게군처럼 다스 베이더 목소리 변조 가면을 사서 쓰고 놀고 싶다. 하지만 루카스는 왜 다스 베이더가 그렇게 인기있는 인물인지 까먹고 있었다. 다스 베이더의 매력은 루카스가 ‘정교하게’ 묘사한 캐릭터에 있는 게 아니라 설정과 폼과 미스터리에 있다. 관객은 오비완 케노비와 아나킨 스카이워커의 마지막 결투에 대해 피상적인 호기심을 품고 있긴 했지만 다스 베이더의 캐릭터 자체에 대해서는 별 생각도, 관심도 없었다. 결정적으로 그는 자신의 작가적 능력을 과대평가했다. 아마 그는 오리지널 시리즈에서도 잘했으니 이번에도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프리퀄의 세계와 오리지널 시리즈의 세계는 전혀 다르다. 오리지널 시리즈의 각본을 쓸 때, 루카스는 자신의 능력의 범위를 넘지 않았다. 오리지널 삼부작의 플롯과 갈등, 인물들은 단순했으며 종종 이야기가 어두운 쪽으로 빠지긴 했어도 바보스러운 만화적 유머를 잃은 적이 없었다. <스타워즈>는 기본적으로 어린아이도 즐길 수 있는 단순하고 소박한 이야기였다. 딱하게도 프리퀄에선 모든 게 그의 능력 밖이었다. 이 이야기는 고도로 복잡한 플롯과 그에 어울리는 복잡한 인물과 갈등들, 깊이있는 정치철학, 결정적으로 그들을 표현할 수 있는 세련된 대사가 필요했다. 한마디로 오리지널 시리즈가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들이다. 루카스가 제정신이었다면 그는 이 삼부작을 직접 쓰는 일 따위는 하지도 않았다. 그게 또 논리적으로 이치에 맞는 일이기도 하다. 그는 비전이 있는 프로듀서이며 기획자이며 리더이다.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더 능력있고 테크닉도 뛰어난 사람들을 고용해 부려먹는 게 그가 가장 잘하는 일이다. 슬프게도 루카스는 자기 발로 함정에 들어갔다. 왜 이렇게 똑똑한 사람이 그런 잘못을 저질렀느냐고 묻는다면, 이미 난 위에 답변을 했다. 이 장르에서 인기있는 시리즈의 발명가이면서 창조주 콤플렉스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으려면 그냥 똑똑한 것만 가지곤 어림없다. 아니, 이 함정 자체가 똑똑한 사람들만 골라서 빠트리게 디자인되어 있다. 처음부터 성공적인 SF/판타지 시리즈라는 것 자체가 그런 악순환의 함정을 품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처음부터 없었던 걸까? 아마 루카스가 다른 작가들과 감독들을 기용했다고 해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여전히 루카스의 ‘비전’은 남아 있었을 것이고 작가들 역시 거기서 벗어나지 못했을 테니까. 증거도 있다. <스타워즈 에피소드2: 클론의 습격>과 <시스의 복수>를 연결하는 겐디 타르타코프스키의 애니메이션 시리즈 <클론 워즈>를 보라. 여전히 타르타코프스키의 번뜩이는 스타일이 돋보이는 작품이긴 하지만 그 역시 루카스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있지 못하다. 그나마 해답 비슷한 건 경쟁 시리즈인 <스타트렉>에 있는 것 같다. <스타트렉>의 우주가 여러 편의 스핀 오프 시리즈를 내며 수십년간 수준저하 없이, 아니 상당한 수준의 질적 성장을 이룩하기까지 하며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그 세계의 창조주인 진 로젠버리한테서 해방되었기 때문이다. 팬들은 잘 이야기하지 않는 비밀이지만, <스타트렉: 넥스트 제너레이션>에서 로젠버리의 영향력은 미미하다. <스타트렉: 넥스트 제너레이션> 이후의 우주를 구축한 사람들은 로젠버리가 아니라 릭 버먼이나 브래넌 브래가 같은 그의 후배들이다. <스타트렉> 우주가 절정을 구가할 때 로젠버리는 살아 있지도 않았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로젠버리가 <스타트렉: 넥스트 제너레이션>을 위해 낸 아이디어 대부분은 받아들여지지도 않았다. <스타워즈> 우주가 앞으로도 가치있는 상상력의 공간으로 살아남길 바란다고? 해답은 하나다. 루카스가 포기하거나 죽을 때까지 기다리라. 하지만 그건 앞으로 한동안 어림없는 일이니 한 가지 대안을 내놓겠다. <스타워즈> 우주를 무대로 하되, 스카이워커 가족에서 될 수 있는 한 멀리 떨어진 변두리를 배경으로 독자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낸 뒤, 루카스에게 가져가는 것이다. 이야기가 충분히 좋다면 아마 루카스도 여기엔 큰 간섭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 정도로 그의 비전이 상처받는 일은 없을 테니.

[팝콘&콜라] 영화판의 소리없는 실력자 이동통신사 입김에 극장 ‘들썩’

영화 관람료는 보통 7천원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새 이동통신사 카드로 할인을 받아 5천원에 영화를 보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영화인회의의 최근 조사 결과를 보면, 에스케이(SK)텔레콤 카드와 케이티에프(KTF) 카드로 할인을 받은 관객들이 각각 26.5%와 10%를 차지했다. 둘을 합치면, 3명 가운데 1명이 할인된 값으로 영화를 봤다는 얘기다. 그런데 에스케이텔레콤이 7월부터 일부 극장에 대한 할인제도를 폐지하겠다고 밝히면서 극장가에 비상이 걸렸다. 에스케이텔레콤 홈페이지를 보면, 7월부터 메가박스와 프리머스 극장체인에 대한 할인서비스를 중지한다고 나와 있다. 한정된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내기 위해 할인 서비스 제휴업체를 조정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경우 상당수 관객들이 할인제도가 계속 유지되는 시지브이(CGV)와 롯데시네마로 몰릴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해 말을 기준으로 각각 23%와 11%로 관객점유율 1·2위를 차지한 이들 극장 체인의 독주가 더욱 심화될 듯하다. 관객들 입장에서야 어느 극장에서든 간에 할인된 값으로 영화를 볼 수 있으면 된다. 그러나 문제는 이동통신사의 입김이 극장가의 판도를 뒤흔들고, 이는 결국 전체 영화계 판도의 흔들림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식으로 일부 극장 체인에게 힘이 집중될 경우 영화 컨텐츠를 만들고 공급하는 쪽에 대해 우월적인 지위를 갖게 되고, 이 때문에 전체 영화 산업의 공정성과 안정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외국영화에 비해 제작사에게 불리하게 돼있는 한국영화 부율(관람료를 투자·배급·제작사와 극장이 나눠갖는 비율)을 조정하는 문제 또한 일부 힘있는 극장 쪽에 휘둘릴 가능성도 높다. 이동통신사 카드 할인제도에 대한 극장 당사자들의 불만도 높다. 처음에는 이동통신사가 할인에 따른 손실 전액을 부담했지만, 할인 관객이 늘어나면서 점차 극장 쪽에 부담을 떠넘기기 시작해, 지금은 절반 가까이를 극장이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 극장 쪽에선 받아들이자니 부담스럽고 포기하자니 관객이 줄 것 같은 할인 제도가 ‘계륵’처럼 여겨질 만도 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극장이고 제작자고 할 것 없이 영화계 전체에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 영화인회의, 극장협회, 제작자협회 등은 조만간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할 예정이다. 사실 이동통신사 입장에선 고객들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뭐가 잘못이냐고 항변할 수 있다. 물론 소비자 입장에서도 할인제도는 반길 일이다. 하지만 이동통신사 스스로 보유하고 있는 고객 수의 힘을 이용해 다른 업계의 지형도까지 좌지우지하는 상황은 그리 반길 일만은 아니다. 해당 업계가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응하는 할인제도보다는 차라리 그 비용으로 휴대전화 요금을 깎아주는 걸 고객은 더 바라지 않을까?

200회 맞은 ‘KBS 독립영화관’ 이관형 PD

지난 9일 한국방송의 ‘KBS 독립영화관’이 200회 고지를 밟았다. 평균시청률이 2% 남짓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놀랄 만한 일이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16일부터 3주에 걸쳐 ‘200회 특집 다큐 잔치’를 벌인다. 이 뜻깊은 잔치의 주인장, 이관형(38·1994년 입사) 프로듀서를 만났다. 이 프로듀서는 지난 2002년 초~2004년 초 ‘독립영화관’ 프로듀서를 맡았고, 지난해 말 다시 복귀했다. 또 극장 개봉과 텔레비전 방영을 동시에 하는 ‘KBS 프리미어’ 시리즈 처럼 새로운 영화 관련 프로그램들을 기획하는 등 영화에 대한 관심이 남다른 만큼 ‘독립영화관’에 애착도 각별했다. 16일부터 3주간 ‘특집다큐’ “신인감독들 실험자세 변치말고 기성감독들 독립영화 관심갖길” “2001년 11월 한국 영화계에 신선한 자극을 주는 독립 영화의 토대를 다지기 위해 ‘단편영화전’이라는 프로그램을 신설했다. 그리고 단편 독립영화라는 제한된 틀에서 벗어나 중·장편 독립 영화들도 소개하기 위해 이름을 ‘KBS 독립영화관’으로 바꿨지만, 애초 기획 의도는 그대로 이어받았다.” ‘KBS 독립영화관’은 지난 4년 동안 기획의도에 맞춰 한국예술종합학교영상원·한국영화아카데미 재학생들은 물론 일반 대학·대학원 영화과 재학생 등 신인감독들의 독립·실험·다큐멘터리 영화들을 소개하는 창구로 자리매김했다. 1년에 100여편의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고, 틈틈히 외국의 의미있는 작품들도 방영했다. 하지만 ‘독립영화관’이 토대를 다지는 동안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독립영화들은 매너리즘에 빠졌다. 이 프로듀서는 “‘독립영화관’ 초반까지만 해도 눈에 띄는 영화들이 많아 작품을 선정하는데 어려움이 없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신선하고 독창적인 작품들이 확연히 줄어들고 있다”며 “매년 국내에서 만들어지는 500여편의 독립영화 가운데 눈에 띄게 독창적인 작품은 이제 20여편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외국 작품의 비중을 늘일 수 밖에 없게 됐고, 현재 한국영화와 외국영화 소개 비율은 단편 7:3, 장편 5:5 수준이다. 이 프로듀서는 한국의 신인 감독들에 대한 애정어린 당부의 말을 덧붙였다. “최근 만들어지는 독립영화들을 보면 감각적이고 재기발랄하기는 하지만, 기성 상업영화의 기본 틀을 좇고 있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준다. 신인 감독들이라면, 무슨 메시지를 담아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를 끊임없이 실험하고 탐구하는 자세를 잃지 않길 바란다.” 끝으로 기성 감독들에게 덧붙이는 한마디. “심의때문에 방영하지는 못했지만 박찬욱 감독의 독립영화 <심판>이 기억에 남는다. 기성 감독들이 자기 활력을 찾고 한국 영화계에 새로운 기를 불어넣을 수 있도록, 독립영화를 만드는 데도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스크린 속 나의 연인] ‘연인’ 누구를 꼽지?

‘스크린 속 나의 연인’을 한 명 꼽자니 그리스 신화 속의 파리스가 된 기분이다. 곤혹스러우면서 동시에 우쭐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흠…, 중학교 때 좋아했던 소피 마르소로 할까? 아니면 최근 들어 좋아하는 스칼렛 요한슨으로 할까? 아니지. 우리나라 배우도 많은데 왜 외국 배우를 꼽아? 고두심으로 할까? 김태희로 할까? 잠깐, 그러고 보니 김태희가 배우던가? 텔레비전 광고에서나 가끔 보기는 했는데 연기하는 것은 통 본 기억이 없는 걸?’ 나는 한 명을 꼽기 전에 스스로 몇 사람으로 분열하여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책상머리에 앉아 일은 안하고 여인들을 밤하늘의 별처럼 세고 있는 내 모습이 한심했는지 아내가 한 수 거든다. “책에다가는 올리비아 뉴튼 존이 좋다고 썼잖아, 그새 마음이 바뀌었나 보지?” 며칠 전에 나온,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관해 쓴 수필집을 보고 하는 소리다. “에이, 한번 쓴 사람을 또 써?” “어머나? 좋아하는 스타가 그럼 맨날 바뀌어? 바람둥이 같으니라고!” 바람둥이라고? 어차피 보통 사람들은 스타를 일방적으로 흠모하고 그러다가 제풀에 지쳐 또 다른 스타로 옮겨가 사랑에 빠지고, 그렇게 되는 것 아닌가? 스타를 한 명 찍어 죽도록 좋아하면 그게 스토커지 팬이냔 말이다. 몇 년 전에 이런 경험을 했다. 주간 영화잡지(21이라는 숫자가 들어가는 잡지라는 것은 굳이 말하고 싶지 않다)에 만화를 하나 그렸는데 고소를 당한 일이 있다. 담당기자와 편집장과 나, 이렇게 셋이 고소를 당했다. 별 내용 아니었는데 기분이 나빴던 독자가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그래서 나름대로 마음이 몹시 상해 서울지방검찰청으로 조사를 받으러 불려갔는데, 정작 조사하는 사람은 아주 친절하고 여유롭게 진술서를 작성했다. “아, 그러니까 개인을 모독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는 말씀이시죠?” “그럼요. 보시다시피 입니다.” 한 이삼십 분 그러고 있는데 옆 자리에 차림새가 남루한 아가씨가 들어와 앉았다. 얼핏 보니 수갑까지 차고 있었다. 잠시 후 그를 담당한듯한 조사관이 호통을 친다. “그러니까, 김미숙씨네 집에 왜 또 갔어?” 아, 그는 영화배우 김미숙씨를 스토킹 한 죄로 붙잡혀온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쪽은 조용조용한데 반해 그 쪽은 제법 분위기가 살벌했다. 나는 덩달아 잔뜩 겁먹은 채로 그와 조사관의 대화에 귀를 쫑긋 세웠다. 나를 담당한 조사관도 나를 조사하는 것은 대강대강이고 옆으로 완전히 몰두하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요점은, 그는 김미숙씨를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것이다. 사랑하는데, 보고 싶은데 어쩌란 말이냐? 그는 아주 낮은 목소리로,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그러나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스크린 속 나의 연인’에 대해 써달라고 기자가 당부를 했는데, 엉뚱한 경험담을 늘어놓고 말았다. 억지로 마무리를 하자면, 누구 하나 꼭 집어 스토킹 할 정도로 좋아했던 스타는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사진을 책받침으로 코팅해 수업시간에 들여다 볼 정도의 스타는 밤 하늘의 별처럼 많았다는 것을 고백한다.

애니메이션 총량제로 <섀도우파이터> 등 국산 애니 봇물

오는 7월부터 지상파 텔레비전 방송 3사에 ‘애니메이션 총량제’가 실행됨에 따라 TV에서 볼 수 있는 국산 애니메이션이 대폭 늘어날 전망이다. 애니메이션 총량제란 방송사가 그 해에 방송하는 전체 프로그램 시간의 100분의 1 이상을 국내 창작 애니메이션으로 신규 편성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법령으로 인해 국내 전체 애니메이션 방송 분량은 현행 8,182분(재방 포함)에서 10,500분으로 2배 가량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총량제로 MBC는 26부작 국산 애니메이션 <셰도우파이터> <이야기여행>을 새롭게 방영할 예정이고, SBS는 <고미의 만화 호기심 천국><파닥파닥 비행선> 등을 마련했다. 국산 애니메이션의 TV 방영이 늘어남에 따라 관련 산업도 동반적인 상승 효과를 볼 전망이다. 일례로 <셰도우파이터>는 TV 방영에 맞추어 캐릭터 상품 및 만화 단행본, 게임도 함께 선보인다. <섀도우파이터>를 제작한 옐로우필름의 오민호 대표는 “이번 7월에 시행되는 애니메이션 총량제는 침체 중인 국산 애니메이션 사업에 새로운 기회 요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며 “특히 애니메이션 제작에 따른 신규 제작 창출 및 고용 효과 등의 직접적인 효과 외에 캐릭터, 만화, 게임 등 연관 사업으로의 파급 효과는 더 클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포스터 촬영현장 [2]

“그래도 우리 커플이 가장 정상적일껄” 최고령 커플 주현 & 오미희 최근 <고독이 몸부림칠 때> <가족> 등을 통해 스크린 나들이가 잦아진 주현과 영화는 이번이 처음이라는 오미희는 단관극장 주인 곽 회장과 극장 옆 매점 주인 오 여인으로 등장한다. 언뜻 전혀 다른 이미지를 가진 듯한 영화 속 두 인물은 오드리 헵번을 우상으로 삼고, 여배우의 꿈을 버리지 않는 등 한번 애정을 기울인 것들을 오랫동안 사랑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녔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의 최고령 커플이지만 열정과 애정, 낭만에 있어선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오랜만에 활동을 재개했다. =오미희 | 2001년에 SBS 드라마를 마지막으로 라디오만 계속 해와서 취재진들을 만나는 것도 오랜만이다. 모든 걸 설명해주는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출연을 결정했다. 특히 상대배역이 주현 선배님이라는 것이 좋았고. 상대의 영향력으로 인해 그간 내가 가지고 있었던 고정된 이미지를 벗고 싶었다. -영화 속 상대 캐릭터를 소개하자면. =오미희 | 곽 회장은 이 시대 마지막 남은 아날로그를 대표한다. 극장 옆에서 커피점을 운영하는 오 여인을 오랫동안 바라보다가 친숙함이 사랑으로 변한다. 한마디로 늪에 빠지는 거다. (웃음) =주현 | 오 여인은 곽 회장에게는 영원한 오드리 헵번이고, 우상이다. 곽 회장과 연령 차이가 나다보니, 쉽게 프로포즈를 하지 못하고 계속 머뭇거리게 만든다. -이 커플의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장면을 꼽자면. =오미희 | 곽 회장이 오 여인의 일거수일투족을 몰래카메라로 찍는 장면. 오 여인은 늘 혼자만의 꿈에 젖어 있고, 그런 오 여인을 사모하는 곽 회장은 자신의 감정을 담아 카메라에 오 연인을 담는다. =주현 | 그래도 우리 커플이 이 영화 속 커플들을 통틀어 가장 정상적이지 않나, 싶다. 다른 커플들은 다 조금씩 정상이 아니다. -촬영 당시 서로 호흡은 잘 맞았나. =오미희 | 단 둘이서만 등장하는 상황이 대부분이다보니까, 다른 사람들 속에 묻어갈 수도 없고 그 관계에 집중해야 했다. 주현 선배님 애드리브 덕을 많이 봤다. 그리고 선배님이 영화가 처음이라 많이 쑥스러운 나에게 “지금, 좋았어”라며 끊임없이 격려해주셨다. =주현 | 라디오 프로그램을 많이 해서 그런지 처음에 오미희씨는 대사가 기복이 별로 없이 지나치게 일률적이었다. 아나운서 같은 대사가 아무래도 많이 어색했다. 그래서 대사톤에 대해 지적을 하면서 캐릭터에 집중하라는 얘기를 많이 했는데, 금방 알아듣더라. “우린 거의 모든 장면에서 싸우는 것 같다” 가장 바쁜 커플 황정민 & 엄정화 새벽까지 <너는 내 운명>을 촬영하다 비행기로 상경한 황정민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피곤해 보였다. 쓰레기매립지에서 <오로라 공주> 촬영이 한창이라는 엄정화의 다리에는 밤샘촬영 때 모기에 물린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강간을 최악의 범죄라고 생각하는 노총각 나 형사와 여우 같고 당당한 의사 허유정을 연기할 이들은, 이날 한자리에 모인 한 무리의 배우들 중에서 가장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내 생애…>의 가장 마지막 커플인 이들은, 6월22일까지 각자 출연 중인 영화를 마무리하고 23일쯤 다시 만날 예정. -각자의 캐릭터를 가장 잘 드러낼 만한 장면을 뽑는다면. =황정민 | 나 형사는 경상도 남자 특유의 무뚝뚝함이 특징이다. 허유정을 좋아하면서도 늘 덤덤하게 대하고 돌아서면 후회하는데, 그런 장면이 몇번 반복된다. =엄정화 | TV 토론회에 나와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 형사와 허유정이 티격태격하는 장면이 많다. 모든 장면에서 싸우는 것 같다. 주로 허유정이 나 형사에게 관심이 많아서 시비를 거는 식인데, 여자가 먼저 사랑을 표현하는 게 재밌다. -여러 커플이 비슷한 비중으로 등장하는 영화라서, 부담이 좀 적을 것 같다. 시간이나 에너지도 좀 덜 소모되지 않을까. =황정민 | 더 수월하다든가 그런 건 없다. 커플마다 제 몫을 해줘야 영화 전체가 완성되는 등 각 커플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니까. 7개의 영화가 모여 <내 생애…>를 이룬다고 생각한다. 좋은 점은 최고의 배우들과 한 영화에 출연할 수 있다는 점. 이런 배우들이랑 같이 작업하는 기회가 몇번이나 있겠나. 각각의 영화를 잘 축약하면서도 조화를 유지해야 하는 감독이 제일 중요할 것 같다. =엄정화 | 어차피 세상은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아닌가. 이 영화에 등장하는 커플 역시, 영화 속 1주일 동안에 각자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를 보내는 거니까 모두 똑같이 중요하다. 그리고 영화가 진행되면서 다른 커플과 서로 얽히고 관계를 맺는 경우도 있다.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을 꼽자면. =황정민 | 결혼하기 이틀 전부터 신혼여행 끝날 때까지 1주일. (웃음) 남들은 그 기간에 신경질도 많이 내고 싸운다는데 난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로라 공주>와 이 영화가 많이 다른데, 바로 이어서 촬영하려면 좀 힘들 것 같다. =엄정화 | <오로라 공주>는 배우가 마음을 많이 닫아야 하는 영화인데, <내 생애…>에선 통통 튀어야 한다. 병원장면을 몇신 찍었는데 바로 분위기를 전환하는 게 생각보다 어색하더라. 그래도 이제 밝은 역할을 하게 된다고 생각하니까 기분이 좋다. (웃음)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의 익숙하고 새로운 얼굴들 정경호 정경호가 연기하는 전직 가수 유정훈은, 그를 스타덤으로 이끌었던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 속 캐릭터의 연장선상에 있는 듯 보인다. 하루아침에 소속사에서 퇴출당한 유정훈은 예비수녀 수경(윤진서)과 아슬아슬한 사랑을 선보일 예정. “수경과 정훈은 완전히 딴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에요. 둘이 정신병원에서 만나는데, 진서랑 저랑 한마디로 제정신이 아니죠. (웃음) <광식이 동생 광태>와 이 영화를 동시에 촬영했는데, 영화는 드라마에 비해 배우를 많이 배려하는 매체인 것 같아요. 서로 격려도 많이 해주고, 가족 같은 분위기에. 음. 목욕탕에서 샤워하는 장면에서 엉덩이를 노출하면서 전라연기를 펼쳤는데 많이 춥고 힘들었죠.” (웃음) 김진아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모 정보통신 회사 CF 속 깜찍한 여자아이로 익숙한 김진아는 최근에는 <친절한 금자씨>에도 출연했다. 이 꼬마는 <내 생애…>에서 무려 두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자신의 존재조차 몰랐다는 아빠(김수로), 언제나 곁을 지켜주는 든든한 남자친구 지석(이병준)이 바로 그 주인공. “이 영화에서 아픈 애로 나오기 때문에 머리를 빡빡 깎은 것처럼 보이기 위해 매번 머리에 뭐를 뒤집어쓰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엄마가 나 때문에 죽었다’며 아빠한테 미안하다고 말하는 장면을 찍을 땐 많이 울었어요. 그럴 땐 아무 생각을 안 해도 저절로 눈물이 나요. 그리고 사실은요, 저 진짜로 지석 오빠 좋아해요. 오빠한테도 벌써 얘기했어요.” (수줍은 웃음) 서영희 상반기 최고의 히트작 <마파도>에서 로또를 들고 사라진 끝순이였던 서영희. 이 영화에선 임창정과 함께 가난한 신혼부부로 등장하여 닭살 커플의 진수를 선보일 예정이다. 현재 주말드라마 <슬픔이여 안녕>에 출연 중이다. “<질투는 나의 힘> 하숙집 딸로 처음 영화에 출연해서 벌써 다섯 번째 영화인데, 운이 좋아서 그랬는지 모두 절대적인 분량보다 중요한 역할들이었어요. 이 영화에서 제일 힘들었던 장면은 임창정씨와 함께 김밥을 말면서 넌 단무지, 난 소시지, 이러면서 서로 사랑을 확인하는 신. 너무 쑥스러웠어요. 때로 여자가 더 적극적이기도 한 평범한 신혼부부의 일상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앞으로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배역을 맡고 싶어요. 그동안 한 역할들이 비중은 작아도 모두 극단적이어서.” (웃음)

‘개그 콘서트’ 마데홈쇼핑 떠나는 개그맨 안상태씨

“한 번 빠져보실랍니까아~? 자! 빠져 봅시다!” 많은 이들이 빠져들었던 ‘안어벙’의 미소를 당분간 텔레비전에서 볼 수 없게 됐다. 70년대 구식 양복을 입고 ‘2대8’ 가리마를 한 엉터리 홈쇼핑 쇼 호스트는 잊어야 할 듯싶다. 개그맨 안상태(27)씨가 26일 방송을 마지막으로 <개그콘서트>를 떠났기 때문이다. 다음해 방송 복귀를 기약하며, 그는 다음달부터 석 달여간 서울 대학로에서 공연을 펼친다.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아요. 끝났는데도 다음주에 또 동료들과 아이디어 회의를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에요.” 지난 22일 ‘마데 홈쇼핑’ 마지막 녹화 때 그의 표정은 시원섭섭해 보였다. 눈가는 촉촉이 젖었지만 특유의 장난스러운 표정은 천상 개그맨의 것이었다. 7월부터 대학로에서 3달 동안 공연 뜨기 전 길거리 공연하던 초심 복귀 “인기에 안주해 반복하면 미래 없어” 새 아이디어로 내년 방송 복귀 기약” “안어벙 말고 안상태의 매력에 빠져봅시다.” 녹화에 들어가서는 <개그콘서트> 무대를 떠나는 아쉬움을 이렇게 표현했다. 이제 ‘안어벙’이 아닌 ‘안상태’ 본연의 모습으로 더욱 당당히 팬들에게 사랑받고 싶은 솔직함이었다. 그는 한국방송 19기 공채 개그맨으로 들어오기 전, 4년여 동안 길거리 공연을 했다. 대학로 거리 곳곳을 비롯해, 지하철, 경찰서, 공원, 찻집…. 가리는 곳 없이 열정을 바쳤고, 소극장에서도 하루에 8차례까지 공연에 나설 정도로 강행군을 마다지 않았다. “무대에서 공연을 하면, 공연을 보려는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들 앞이라 어려움이 덜 하지만, 길거리에선 준비가 전혀 되지 않은 사람들의 시선을 온전히 내 끼와 노력만으로 사로 잡아야 하는 거라 집중력이 훨씬 중요하고 높아야 했죠.” 옛 시절을 회상하는 모습에선 그 시절 치기 어린 즐거움이 살아나는 듯, 눈빛도 반짝인다. 그는 길거리 공연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털어놨다. “지금 재미있고 사람들이 좋아해준다고 같은 걸 계속하면 절대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낼 수 없어요. 길거리 공연을 하며 ‘한번 웃긴 것은 버려야 한다’는 걸 배웠죠.” 이젠 거리 공연을 하던 시절과 한참이나 달라졌지만, 아직까지 그때의 마음가짐을 잃지 않은 덕에 다시 대학로로 나섰다는 말이다. 그러나 발걸음이 가볍기만 할 리 없다. 날로 치열해지는 연예계 생존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란, 겪어보지 않은 이들에겐 상상조차 어려울 만큼 힘겨운 일이기 때문이다. 한참 주가를 올리는 터에 과감히 자리를 박차고 떠나기가 생각만큼 쉬운 일이겠는가. 그러나 안씨는 결연하다. “안어벙은 이제 나의 한 부분으로 소중히 간직하고 앞으론 더욱 다양한 캐릭터를 들고 나올 겁니다. 고향이나 다름없는 대학로에서 공연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도 얻고 기운도 차려 다시 시작할 겁니다.” 그는 다음달 7일부터 대학로 탑아트홀에서 열리는 <안어벙의 깜짝 콘서트>의 주인공으로 선다. 혼자서 여러 인물을 소화할 예정이다. 바보스러우면서 동시에 아이의 천진함과, 아저씨의 능청스러움과 여성스러움까지 빠지지 않는 복합적 캐릭터가 ‘안어벙’이었던 까닭에, 변신 연기 또한 낯설진 않을 듯하다. 그는 1인 다역의 개그와 함께 노래와 춤, 마술 실력도 펼쳐 보일 계획이다. 최근 영화 <야수와 미녀>에 출연한 그는 “기회가 되면 영화뿐 아니라, 시트콤에도 출연하고 싶다”는 바람을 털어놨다.

‘삼순이’ 캐릭터 전성시대 [3] - <…김삼순> 인기 비결

삼순이 덕에 ‘음메~, 기 살어’ 아는 건 <웃음을 찾는 사람들>의 삼식이밖에 없다. 삼순이에 대해 뭘 써야 하나 고민한다. 이래저래 머리를 굴려본다. 떠오르는 게 별로 없다. 기껏 한다는 생각이 그래도 24부가 아니라 아직까지 4부밖에 안 한 게 얼마나 다행이냐는 위안 아닌 위안이다.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작정하고 <내 이름은 김삼순>을 주말 동안 몰아 본다. 먼저 약간의 진부함으로 여겨지는 것들. 주인공 김삼순(김선아)과 그의 적수이자 (아직까지는 가짜) 연인인 현진헌(현빈), 그리고 그의 옛사랑 유희진(정려원), 삼순의 옛사랑 민현우(이규한), 현우의 현재 애인 장채리(이윤미), 뒤에 유희진의 또 다른 파트너로 등장할 헨리 킴(대니얼 헤니)까지 그들의 관계 구성이 그다지 특별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리고 척척 장단을 맞추며 서로 막가고 있는 김삼순과 현진헌의 관계가 재미있기는 해도, 그 한쪽 현진헌의 캐릭터는 솔직히 어디선가 많이 본 것의 변형인 듯한 느낌이다. ‘부잣집 아들에 싸가지 없는 냉정한 “얼음왕자”이지만, 싸가지가 없으면 없을수록 더 멋있는 “미지왕”에, “뽀삽질”한 걸로 착각할 만큼 미남인데다, 능력까지 출중하고, 가슴 한구석에는 슬픔과 순수함까지 지닌 젊은 이 총각’(아~~ 써놓고보니 속이 쓰릴 만큼 멋지다. 하지만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느낌은 역시 여전하다). 김선아의 코믹연기가 선사하는 통쾌한 웃음 하지만 뭐가 힘인지도 보고나니 좀 알겠다. 일단 웃기다는 것을 알겠다. 억지로 웃음을 강매하는 충무로의 일부 허접한 영화들보다 한수 위이니, 그 방면에서만큼은 분명 더 후한 점수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도 하게 된다. 나오자마자 왜 30% 시청률을 훌쩍 넘어섰는지도 알겠다(시청률 조사기관 TNS미디어코리아에 따르면 6월1일 첫회 방영 이후 4회 만에 30.5%의 시청률을 기록했다고 한다). 시청률 감응 속도로만 보면 지난해에 인기를 끌며 방영했던 <파리의 연인> 수준이라고 한다.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평소에 은둔하여 짱박혀 살던 대한민국 삼순이 삼식이들이 이미 곳곳에서 모여들어 공식 클럽 ‘3344’(‘삼’순이와 ‘삼’식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도 결성해놓았다. 3344 결사대원 중 닉네임 용가리 통뼈님은 “<대장금>의 음식 이야기와 <브리짓 존스의 일기>를 보는 것 같은 두 가지 느낌이 팍팍 드네요… 역시 코믹의 여신 김선아”라는 짧은 문장 하나로 드라마의 앞뒤를 한번에 꿰뚫어보는 독창적인 소감을 올려놓았고, 닉네임 꽃사슴님께서는 “히히히 오늘은 재방 봐야 한다. 요번 주 벌써 5번째다. 그래도 재밌는데!!!!!”라며 요즈음 삼순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반복 무한 시청’의 기현상을 몸소 입증하고 있다(재방송 시청률만 해도 12.2%를 넘겼다고 한다). 인터넷, 종이매체 가릴 것 없이 모조리 삼순이를 주시한다. 한마디로 난리가 났다. 도대체 <내 이름은 김삼순>의 무엇이 이렇게 인기를 끄는 요인이 되는 걸까?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의 매력은 누구나 다 느끼듯이 ‘김선아가 연기하는 김삼순의 캐릭터’다. 그냥 김삼순의 캐릭터가 아니라 김선아가 연기하는 김삼순의 캐릭터다. 거기에서 첫 번째 흥미로운 건 인터넷 원작소설에서 빌려온 동명의 제목이다(원작자 지수현은 얼마 전 타 방송사에서 방영했던 <열여덟 스물아홉>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정기적으로 방영되는 텔레비전 드라마의 경우 제목은 쉽게 그 극의 흐름을 한눈에 포괄할 수 있는 수준에서 지어진다. 이를테면 제목은 드라마의 첫회와 마지막 회 모두에서 유효해야 한다. 그 점에서 보면 <내 이름은 김삼순>이라는 제목은 거의 선언이다. 주인공 캐릭터를 이해하는 어떤 단초로 그 제목이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촌스러운 이름은 콤플렉스에 억눌린 현대인 비교하자면 같은 방송사에서 방영하며 삼순이만큼이나 인기를 얻고 있는 또 하나의 순자 돌림 드라마 <굳세어라 금순아>하고는 다른 차원이다. <굳세어라 금순아>는 타자의 응원 형태로 지어진 제목이다. ‘어리고 착한’ 금순이에게 힘을 내라고 격려를 하는 제목이다. 세상이 녹록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고, 그 세파를 꿋꿋이 헤쳐가는 금순이의 일거수일투족이 극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힘들어도 네 곁에 ‘매일매일’ 우리 시청자가 있을 테니 용기를 잃지 말라는 메아리다. <굳세어라 금순아>가 정 많은 여성들을 타깃으로 하는 일일드라마라는 점은 왜 격려조의 감정이입 유도로서의 제목이 지어졌는지를 이해하도록 만든다. 하지만 <내 이름은 김삼순>은 말 그대로 주인공 스스로 이름을 밝히고 있는 자기 자신의 목소리다. 그래서 ‘내 이름은 김삼순’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핵심적인 두 가지의 뉘앙스를 모두 갖고 있다. ‘어쩌다가 나는 삼순이인가’라는 자학과 ‘어쩔래, 그래도 나는 삼순이다’라는 자신감이 동시에 있는 것이다. ‘어쩌다가와 어쩔래’ 이 동석할 수 없어 보이는 두 성격의 공존이 바로 그녀 캐릭터의 본색이다. 김삼순. 30살(홈페이지에 따르면 29살). 방앗간 집 셋째 딸.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시장상인들을 상대로 조그만 금융업을 하시는데 그녀 말에 따르면 “일수를 살짝 놓고 계신다”. 큰언니는 힘들게 사는 것 같고, 둘째언니는 이혼한 뒤 집에 돌아왔고, 남자 친구에게는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브를 계기로 차였고, 새로 알게 된 한 남자는 싸가지가 없어도 매력은 있는 직장 사장이다. 능력있는 파티셰지만 지금은 돈이 궁해 그 사장과 가짜 계약을 하고 그의 연인 흉내를 내고 있다. 이게 김삼순의 지금 모습이다. 여기서 첫 번째 ‘어쩌다가 삼순이’는 그녀의 피할 수 없는 결점을 자학하고, 내로라 하는 푼수 기질의 태생으로 사고를 치고 다니는 여자다. 어릴 때부터 바꾸고 싶어 안달이 났던 창피한 이름 삼순은 결국 희진으로 가명을 쓰면서까지 감추고 싶은 자신의 결점이다. 삼순이 자신을 김희진으로 부를 것을 레스토랑 입사 계약 최대의 조건으로 내거는 것으로도 그건 쉽게 알 수 있다. 게다가 어쩌다가 삼순이에게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푼수 기질이 가득하다. 어쩌다가 남자에게 채여 바짓가랑이 잡고 울고불고 매달리며 화장범벅으로 울어젖히기, 어쩌다가 남자 화장실에 잘못 들어가 변태로 오인받기, 어쩌다가 상대방 얼굴에 씹던 밥풀 몽땅 쏟아붓기, 어쩌다가 술 취해 업혀가다 남자 등에 실례하기 등등등. 거참 삼순이 같은 짓만 하네, 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그녀의 푼수짓은 끝이 없다. 그동안 영화계에서 다른 여배우들이 기피하던 캐릭터를 자기 것으로 인식시킨, 혹은 다른 여배우들에게서는 끌어낼 수 없었던 캐릭터를 자기 것으로 확정해버린 김선아의 연기가 이 드라마의 푼수짓을 단단하게 뒷받침하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김선아가 아니라, 김정은이었거나, 예지원이었다면 드라마의 주인공은 삼순이가 아니라 다른 것이 되어야 했을 정도다. 실력과 능력으로 세상에 맞서는 당당함 하지만 두 번째 ‘그래 어쩔래 삼순이’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사랑이자 자신감으로 가득 찬 여자다. 그걸 말하기 전에 종종 어쩌다가와 어쩔래 사이의 중간 형태로 벌어지는 것이 ‘은어와 쌍말과 성질부리기’라는 걸 먼저 말해야겠다. 잘난 척하는 사장 현진헌에게 미지왕(미친놈 지가 무슨 왕자인 줄 알아의 줄임말)이라고 말해서 그를 어리둥절하게 하는 것은 은어 사용의 대표 사례다. 헤어진 남자 친구가 어이없는 소리를 하자 “너 지금 뭐라고 씨부렁거리는 거냐?”라고 말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다. 이 새끼 저 새끼는 기본이고, 이년 저년은 보통이다. 현진헌의 옛 여자친구와의 첫 만남. 커피 잘 마셨다고 쪽지를 남겨둔 예쁜 글씨를 보고 삼순이가 칭찬하는 말. “얼굴도 이쁜 년이 글씨도 잘 써요.” 그래서 멋모르고 약올리는 새끼들은 다 봉변당하게 마련이다. 현진헌을 처음 만난 날, 그의 양복 윗도리에 ‘어쩌다가’ 낀 그녀의 머리카락을 그가 대뜸 잘라버리자, 바로 뒤이어 달려가 얼굴에 케이크 날려버리는 삼순이. 성질이 막무가내다. 그래 어쩔래. 그런데 얼굴 위로 곤죽이 된 케이크 맛을 본 현진헌의 반응은 환호다. 그래서 그 맛에 반한 레스토랑 사장 현진헌이 자신의 레스토랑에 그녀를 전격 파티셰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래 어쩔래 삼순이의 특징이 바로 이거다. 그녀는 성질만 끝내주는 게 아니라 자기 본업에서의 기술도 환상이다. 그래 어쩔래의 삼순이가 그렇게 당당할 수 있는 것은 사실 욕을 잘해서도 아니고, 발길질을 잘해서도 아니다. 그녀가 갖춘 전문 분야 여성으로서의 성실함과 능력 덕택이다. 사장과 ‘야자’ 뜰 수 있는 막나가는 사랑의 줄다리기도 실력을 인정받은 이때부터 시작이다. 성질만 있고 능력이 없는 김선아가 <위대한 유산>의 백조 미영이라면, 그 둘을 모두 갖추고 있는 김선아는 <내 이름은 김삼순>의 삼순인 거다. 자학에서 자존심 회복으로 말하자면, <내 이름은 김삼순>은 궁극적으로 자학에서 자존심 회복으로 나아가는 드라마다. 세상 삼순이들을 대표해서 자존심을 지켜주는 드라마라고 표방하고 있는 거다. 비교하여 <파리의 연인>이 여자들의 있을 수 없는 환상과 남자들의 있지도 않은 환상을 동시에 자극했다면, <내 이름은 김삼순>은 촌스러운 태생에 대한 자학에서 시작하여 그녀들의 자존심을 성대하게 회복해주는 전략을 택한다. 그래서 처음 시작이 좀 구차했으나 그 끝이 아름다울 거라는 걸 누구나 알게 된다. 때문에 어쩌다가의 삼순이가 지금까지 억척으로 코미디를 끌어안은 것처럼, 어쩔래의 길로 막 접어든 삼순이에게는 앞으로 순수하게 사랑에 성공하는 일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녀가 아름답고 감동적인 문장들을 무척 많이 외우고 있다는 점을 꼭 기억하자. 언젠가는 정말 중요한 순간에 자신을 위해 그걸 쓰게 될 거다. 삼순이는 “음식은 만드는 사람의 삶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여자가 달콤한 케이크를 만들 순 없다”고 생각한다. 능력만큼 중요한 게 사랑이라는 말이다. 그 말은 앞으로 만들어질 러브 케이크의 이름이 그녀의 촌스러운 이름과는 달리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로 지어질 거라는 이 드라마의 약속처럼 들린다. 추신: 재치있는 또는 얄팍한 또는 사소한 재미 하나. <내 이름은 김삼순>은 다른 기존의 드라마 장면들에 대한 언급을 서슴지 않는다. 레스토랑 무대에 올라 피아노를 치기 직전의 현진헌에게 삼순이는 “텔레비전 안 보는 척하면서 볼 건 다 보네”라고 말을 던진다. <파리의 연인>을 흉내낸 것이라는 비난을 아예 톡 까놓고 흉내낸다고 공언하면서 피해가는 방편이다. 사람들은 그래 알겠다고 한번 웃고 난 뒤 그 다음은 다시 흉내냈다는 사실을 잊은 채 흘러나오는 음악과 진지한 표정을 처음 보는 것처럼 열심히 감상할 것이다. 고단수는 아니지만 대략은 통하는 전법이다. <내 이름은 김삼순>의 작가 김도우 “취재는 무슨… 내가 오래 묵은 싱글, 평범한 삼순이다” -김삼순은 예쁘지도 않고 나이도 많다. 이런 인물이 드라마의 주인공이라면 위험한 부분도 있었을 텐데. =김윤철 PD와 나는 모두 일상성이 있는 캐릭터를 선호하고 그걸 표현하는 데 장점이 있다. 드라마적인 캐릭터였다면 취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연히 위험부담은 느끼지 않았다. -김삼순과 다르게 진헌과 희진, 헨리 등은 어느 정도 비현실적이고 전형적이다. 그들과 삼순 사이에서 어떻게 조화를 만들어내는가. =작가로서 지키려고 노력하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진정성, 리얼리티, 관습적이지 않기…. 그걸 지켜나간다면 잘되리라고 나를 압박하고 있다. -원작소설과 다른 점이 몇 가지 있다. 소설에선 진헌이 연하가 아니고 희진도 진헌을 사이에 두고 삼순과 경쟁하지 않는다. 어떤 점들을 염두에 두고 각색했는지. =원작이 괜찮다. 좋은 점들은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 가장 염두에 둔 것은 ‘관습적인 틀 안에서 관습적이지 않기’, ‘사실적인 로맨틱코미디 만들기’. 그 결과 좀 새로운 느낌이 나는 것 같다. 삼순이는 좀더 어른스러워지고 일상성이 더 부여됐다. 그리고 희진의 역할. 후반에 살~짝 나타났다 사라지는 희진을 갈등의 핵으로 키웠다. -<내 이름은 김삼순>의 대사는 현실적이고 구어에 가깝다. 뽀삽질이나 미지왕 같은 단어도 사용하고. 대사를 쓸 때 기준이 있는가. =대사가 본질은 아니다. 캐릭터를 잘 받쳐주는 것 같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미지왕>은 처음 봤을 때 시대를 앞서간 그 엽기정신에 박수를 보냈는데 문득 생각나서 인용한 것뿐이다. 그리고 삼식이는 좋아하는 소리꾼 장사익의 노래 <삼식이>에서 따왔다. -<파리의 연인> <가을동화> 같은 드라마 대사를 패러디하는 부분이 재미있다. =작정한 건 아니다. 불현듯 덤으로 얹어주는 한줌의 콩나물 같은 것이다. -<내 이름은 김삼순>은 30대 독신여성들의 마음을 건드리는 부분이 있다. 원작이 있다고는 해도 다른 취재나 경험도 필요했을 듯하다. =취재는 무슨… 내가 오래 묵은 싱글, 평범한 삼순이다(내가 못한 연애질을 시키려고 벼르고 있음. 지둘려 삼돌이들~). -김선아의 대사나 행동, 에피소드는 지금까지 그녀가 해왔던 연기의 톤과 비슷하다. 대사나 에피소드를 쓰면서 배우가 김선아이기 때문에 영향을 받은 부분이 있는가. =김선아의 연기가 기존의 것들과 같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버 더 레인보우>를 연주할 때 진헌과 희진을 번갈아보던 표정연기를 보라. 새로운 연출과 융합하여 더 구체적이고, 더 사실적이고, 더 섬세해졌다. 그리고 지금이 가장 아름답다. 그녀가 아니었더라도 지금 대본대로 갔을 테지만 고농축우라늄 같은 그녀를 만나 상상치 못한 핵폭발을 일으켰다. 방송을 본 뒤로는 “선아가 이렇게 해주겠지?” 하며 두려움 없이 쓴다. 맑고 사랑스러운 현빈과 정려원도 내게 상상력을 불어넣어준다. 배우의 힘을 실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