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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터를 켜라> 포스터 촬영 현장에서

7월 19일 개봉이 확정된 한국 최초 본격 기차액션 <라이터를 켜라>가 대규모 포스터 촬영을 마치고 2002년 여름 흥행가에 출사표를 던졌다. 이날 포스터 촬영을 위해 지난 5개월간 새마을호 기차에서 생활해온 김승우, 차승원 두 주연배우가 새마을호 기차를 다시 찾았다. <라이터를 켜라> 포스터 촬영작가는 최근 <집으로...><결혼은 미친짓이다><울랄라 시스터즈> 등 흥행영화의 포스터를 촬영해온 강영호 작가. 열정적인 촬영모습으로 촬영된 사진만큼이나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그는, 이번 <라이터를 켜라>에서 새마을호 기차를 배경으로 야외촬영을 시도하여 스피디하고 역동적인 기차액션영화 <라이터를 켜라>의 컨셉을 정확하게 잡아냈다. 김승우, 차승원이 비장한 각오로 자세를 잡고 서있는 대결구도가 너무 진지한 나머지 웃음을 불러일으키는 가운데, 뒤쪽에선 10여명의 경찰과 건달들의 육탄전이 벌어지고 있다. 여기에 통쾌한 카피 한마디, "대한남아여! 단 한번 열정을 불살라라!"는 <라이터를 켜라>를 보고난 뒤 느껴지는 유쾌, 상쾌, 통쾌함을 말해준다. 무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날려줄 스피디하고 통쾌한 영화<라이터를 켜라>의 컨셉을 포스터 한 장에 담는다. 새마을호 기차, 강풍기, 포그머신 등 동원 포스터 촬영지로 낙찰된 수색역은 새마을호가 다니지 않지만 <라이터를 켜라>의 든든한 후원자인 철도청의 협조로 수색역 최초로 새마을호가 서 있게 되었다. 여기에 10여명의 무술팀과 대형 강풍기, 포그머신(스모그를 내는 기구), 촬영 분위기를 한껏 띄우는 빠르고 경쾌한 음악과 쉴새없이 날아다녀야 했던신문지가 4시간 촬영 내내 동원되었다. 또한 의상, 분장을 비롯 조명, 특수효과팀 등 50여명의 스탭이 포스터 촬영에 동원되어 대규모 영화 촬영을 방불케 했다. 이날 연신 신문지 세례를 받아야 했던 김승우, 차승원은 흙먼지 가득한 거센 강풍기 바람을 맞으면서도 즐겁고 성실하게 촬영에 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여러 가지 노력의 결과로 <라이터를 켜라>에서 예측불허의 변신을 보여준 김승우, 차승원의 다양한 표정과 포즈를 포착, 힘있고 역동적인 포스터가 탄생하게 되었다. 7월 19일 개봉예정인 <라이터를 켜라>는 역동적이고 파워풀한 비주얼의 포스터를 시작으로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들과 전면전을 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 가고 있다. 인터넷 콘텐츠팀 cine21@news.hani.co.kr

미야자키 하야오의 지브리 스튜디오 탐방기

지브리 스튜디오는 <천공의 성 라퓨타>로 시작해, <이웃집 토토로> <원령공주> <추억은 방울방울> 등 무수한 수작들의 모태가 되어왔다. 메이저 스튜디오 시스템을 잘 견디지 못하던 고집쟁이 미야자키 하야오가 다카하다 이사오와 함께 1985년에 설립한 이곳은 재패니메이션의 산실이 되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국내 개봉을 앞두고 지브리 스튜디오와 미야자키의 꿈이 영근 지브리 박물관을 찾았다.편집자 ‘세계를 움직이는 재패니메이션의 산실’, 이라고 하기엔 지브리 스튜디오는 작고 아담했다. 도쿄 교외의 고가네이시 주택가에 자리한 이 3층의 목조 건축물은, 누군가 ‘여기가 바로 거기’라고 말해주지 않으면 그냥 지나쳐버릴 만큼, 별난 구석이 없었다. 대부분 2층인 주변 주택들보다 조금 높고, 조금 넓을 뿐. 유난스러운 게 있다면 흰색 벽을 타고오르는 담쟁이덩굴과 건물을 둘러싼 키 큰 나무들이다. 가로 50cm가 넘지 않을 만큼 자그마한 스튜디오 간판도 나무에 둘러싸여 주의를 기울여 주위를 둘러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다. 개인 주택 크기만한 제2, 제3 스튜디오 또한 소담했다. 집은 집주인의 취향과 삶의 태도를 그대로 반영한다고 했던가. 문득, 이 건물이 미야자키의 영화세계를 고스란히 전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과의 친화, 인간과 자연의 조화, 그리고 인간에 대한 낙관으로 표현되는 민중주의 등이 그 건물에서 읽혀졌다. 이 스튜디오뿐만이 아니다. 건물 설계에서 자잘한 내부 소품까지, 그가 직접 진두지휘해 완성한 지브리 박물관, 작업실 겸 아틀리에인 그의 개인사무실 ‘니바리에’ 역시 스튜디오의 건축 철학을 고스란히 반복하고 있었다. 2층 건물인 니바리에 외벽은 온통 진초록색으로 칠해져 있으며, 건물보다 더 높은 우람한 나무가 그가 인터뷰를 하거나 손님을 맞는 홀의 커다란 유리창을 커튼처럼 뒤덮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에게는 자연친화가 관념이나 사상이 아니라 그야말로 타고난 ‘취향’ 같은 게 아닐까, 그는 시골로 낙향해 밭가는 농부가 될 수 있을지언정 의지적으로 자연보호를 위해 행동하는 환경운동가는 될 수 없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들을, 그의 일상의 언저리를 둘러보며 멋대로 해본다. 아이들의 벗인 할아버지 ‘살아 있는 거장을 만나러 간다.’ 미야자키 하야오를 만나러, 그리고 지브리 스튜디오를 방문하러 도쿄행 비행기에 오르면서 내심 그런 생각을 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그렇게 ‘큰 이름’이었다. 물론 그럴 만한 근거는 충분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를, 그의 애니메이션을 너무 심각하게만 이해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도쿄에 머무는 3일간 번뜻번뜻 스치고 지나갔다. 비유하건대 이런 얘기다. 좋은 동화는 우주적 진리를 아주 간단한 이야기에 담아 전한다. 그런데 아이들을 즐겁게 하는 건 그 이야기이지, 거대한 진리가 아니다. 진리를 염탐하는 건 어른들이다. (모든 작품은 아니지만) 미야자키의 애니메이션에도 이런 논리가 해당되지 않을까? 그러니까 어른들 모르는 사이 그와 아이들은 ‘직접’ 만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미야자키가 진정으로 말을 건네고 싶어하는 상대도 바로 그 아이들이다. “애니메이션을 만들면서 가장 마지막에 남는 것은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자는 마음이다. 그저, 그것뿐이다. 아는 아이들 5,6명이 즐거워하면, 그걸로 만족할 수 있다.” 2년 전 그는 <씨네21>과의 서면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의 천국인 지브리 박물관에 가면, 이 말에 조금도 거짓이 섞여 있지 않음을 절감할 수 있다. 지브리 스튜디오는 아이들에게 말을 건네는 하야오의 통로다. 그는 정말로 아이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어한다. 이런 그의 바람은 나이가 들어 점점 더 절박해지는 것 같다. 또한 “1만평의 대지를 구입해 아이들이 마음껏 활개칠 수 있는 100채 규모의 동네를 만들고 그 가운데 보육원을 짓는 게 나와 미야자키의 남은 꿈”이라고, 프로듀서 스즈키가 말하기도 했다. ‘그의 나와바리’에서 만난 미야자키는 자신이 만들어놓은 풍경 안에 편안히 들어앉아 ‘다음엔 아이들에게 무슨 얘기를 들려줄까’ 하고 골똘히 궁리하는 할아버지처럼 보였다. 그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미야자키 하야오는 그 이야기를 ‘제대로’ 해보려고 지브리 스튜디오를 세웠다. 그에게 걸림돌이 됐던 건 거대 메이저의 시스템이었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인 1960년대. 그가 애니메이터로 일했던 도에이영화사는 TV시리즈물을 만들어 성공하기 시작했다. 몇년 뒤 도에이의 직원은 500명이 되었고 작업분량은 많아졌고 생산은 규격화되었다. 작업은 완벽하게 틀지워진 위계 속에서 이루어졌다. 그런 조건 속에서 그는 원하는 대로 영화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와 같은 절망을 느꼈던 또 한 사람의 애니메이터가 역시 도에이에서 <태양의 왕자 호루스 대모험>을 만들던 다카하다 이사오. 이 애니메이션을 만들면서 다카하다는 애초 제작 예정기간인 8개월을 훨씬 넘겨 3년을 끌었고 그 바람에 제작비는 7천만엔에서 1억3천만엔으로 치솟았다. 스탭들의 노력으로 힘들게 영화를 완성했지만 영화는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 도에이의 압박이 어땠을지, 그가 느꼈을 염증이 어땠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이들이 스튜디오를 탈출하기까지는 좀더 시간이 걸린다. 그들에게 호기가 되어준 건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미야자키 하야오 연출, 다카하다 이사오 제작)의 대대적인 흥행이었다. <…나우시카>의 성공에 힘입어 미야자키 하야오와 다카하다 이사오는 1985년, 출판사 도쿠마쇼덴이 출자한 500만원을 자본금 삼아 지브리 스튜디오를 만들었다. 지브리의 입지를 확고히 해준 건 미야자키가 감독하고 다카하다 이사오가 제작한 <천공의 성 라퓨타>의 성공이었다. 이어 널리 알려진 대로 두 사람은 제작과 감독을 번갈아가며 잇단 성공작을 내놓았다. ‘지브리’(ghibli)는 사하라 사막에 부는 뜨거운 바람의 이름. 2차 세계대전 때 이탈리아 정찰 비행기들이 이 이름을 사용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그 뜻대로 지브리가 일본 애니메이션에 바람을 불러일으키길 바랐을까? 어쨌든, 현실은 그렇게 진행되었다. 지브리의 작품들은 도에이를 통해 배급된다. 도에이가 지브리의 애니메이션을 얼마나 목말라할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리고 이 관계에서 지브리가 우위를 점하고 있음은 자명하다. 지금 일본에서 전국 관객 2450만명(<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동원할 수 있는 감독은 미야자키가 유일하다. 이같은 역사의 진행 경로는 선뜻 조지 루카스를 떠올리게 한다. <청춘낙서>의 대대적인 성공을 기반으로 루카스는 혐오하던 할리우드를 (정신적, 지리적으로) 벗어나 샌프란시스코에 루카스필름을 설립, <스타워즈> 시리즈를 만들어 메이저들을 자신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나의 영화’를 만들겠다는 창작자의 지독한 욕망, 그것없이 영화 미학이 어떻게 진보할 수 있었겠는가. 지브리는 처음부터 TV시리즈물을 만들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대신 작가 개인의 미학적 야심을 최대한 실현시킬 수 있는 ‘작가주의의 산실’을 지향했다. 물론 그 작가는 미야자키와 다카하다다. 두 사람이 없는 지브리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 더구나 미야자키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이 작업한다고 해서 좋은 작품이 나오는 건 아니다. 재능있는 한 사람의 생각이 공동작업으로 구체화될 때 좋은 작품이 나온다”라는 프로듀서 스즈키 도시오의 얘기는 지브리의 존재 방식 그리고 존립 기반을 간결하게 요약한다. 작가의 의도를 충실하게 살리는 극장용 애니메이션 제작과 함께 지브리가 지금껏 고집해온 또 다른 창작 원칙 하나는 ‘애니메이션은 손으로’이다. 출판부, 사업부를 포함한 전체 직원 150명 가운데 60명이 작화실에 속한 인적구성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지브리도 <원령공주> 때부터 작업에 컴퓨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제작일지 1996년 1월16일치에 실린 일화 하나. “CG부가 간단한 CG를 만들어 보이자 미야자키 감독은 ‘굉장하다, CG부의 새벽이다’라고 크게 흥분했다. 이에 지금까지 미야자키로부터 ‘늦는다’, ‘도움이 되지 않는다’ 등의 얘기를 들었던 CG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무렵부터 CG에 대한 저항감은 사라졌지만, 지브리는 채색이나 데이터의 보존, 손으로 그리기가 불가능한 극히 일부 장면에서만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다. 동작과 동작을 연결하는 프레임들을 포함해 그림 자체를 컴퓨터로 그리는 일은 절대로 없다. 손으로 그린 바탕그림을 스캔받아 컴퓨터로 채색을 하는 정도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경우 약 10만장이 이렇게 ‘손수’ 그려졌다. 애니메이션의 참맛은 손끝에서 나온다라는 것이 40여년간 애니메이션을 그려온 ‘장인’ 미야자키의 철학이다. 두 얼굴의 사나이 “10살 아이가 지브리 스튜디오에 들어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를 생각하면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구상했다.” 그의 아틀리에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미야자키는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프로듀서 스즈키를 보며 유바바를 떠올렸다고 했다. 유바바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주인공 센이 일하게 되는 온천장의 주인할멈. 악질 주인인 유바바는 그 외모에 걸맞게 종업원들을 마구 닦달한다. 유바바에겐 똑같이 생겼으나 다른 성품을 지닌 쌍둥이 언니가 있다. 유바바의 언니는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고 헤매던 말없는 귀신 가오나시를 받아들이고, 센에게도 중요한 교훈을 깨우쳐준다. 미야자키는 유바바의 캐릭터를 스즈키에게서 끌어왔다고 했지만, “내게서 나온 건 유바바의 큰 머리”라고 눙쳤지만, 정작 유바바를 닮은 건 미야자키 하야오 같다. 유바바 ‘자매’를 닮았다고 해야 더 옳겠지만 말이다. 미야자키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지브리에서 그는 스탭들의 창조력과 정신세계을 고양시키는 ‘영혼의 아버지’이자, 생산을 독촉하는 ‘악질 공장장’이다. 공장장으로써 그의 면모를 보여주는 지브리의 제작일지 몇 구절. “원화를 그리는 젊은 스탭이 지나치게 손이 늦은데 화가 난 미야자키 감독이 그를 회의실에 불러…”, “머지않아 작화 감독의 보좌 한 사람을 기용해야 하는데, 죄다 거절당한다. 미야자키가 무섭다는 게 업계에서는 전설이 되고 있는 것 같다…”. 또 지브리 박물관에는 ‘지각의 제왕 Y씨’가 하야오에게 칼 몇대를 맞은 채 서 있는 낙서가 그 증거인 양 ‘보존’되어 있다. 물론 이건 ‘농담’으로 여길 만한 미야자키의 아주 작은 그림자다. 되레 스탭들의 푸념은 그를 관념의 세계가 아니라 현실에 발딛고 선 일상인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그도 마감기일에 쫓겨 후배들을 다그치지 않으면 안 되는 한 회사의 대장. 이러한 사실이 어쩐지 생경하게 느껴졌다. 다 함께 다이어트 작전에 돌입하고, 다 함께 개개 스탭 가족의 대소사를 염려하거나 축하하고, ‘지진이 났으니 영화를 완성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라는 헛공상에 빠진 미야자키를 생뚱맞게 쳐다보며, 그리고 무엇보다 다 함께 모여 영화의 기획 방향을 몇 시간씩 토론하며 같은 꿈을 꿔온 지브리의 스탭들은 올 여름 신작 <고양이의 보은>을 내놓기 위해 독한 산고를 겪고 있다. ‘아이들의 왕’ 미야자키 하야오가 아이들을 만나러 가는 길은 그렇게 험난해 보였다. 도쿄=이유란 fbird@hani.co.kr / 사진제공 웍 스튜디오 / 디자인 이윤진 yjklimt@hani.co.kr 사진설명 1-2. 주택가에 자리한 지브리 스튜디오는 건물이 아니라 무성한 나무 때문에 도드라져 보였다. 실제로 스튜디오가 세워진 뒤 이 일대는 더 푸르러졌다고. 지브리의 제 2스튜디오 옆에는 고압선이 흐르는 높은 철탑이 세워져 있는데, 그 탓에 땅값이 쌌다고 한다. 3. 스튜디오 옥상의 전원 4. 미야자키 하야오의 개인 사무실이 있는 제 3스튜디오. 파스텔톤의 예쁜 벽화는 미야자키의 아이디어다. 5. 1층에 자리잡은 작화실 내부. 그림을 컴퓨터로 스캔받아 채색작업을 하고 있다. 6. 올 여름 개봉할 지브리의 신작 <고양이의 보은> 포스터. 한 여고생이 베푼 은혜를 갚기위해 고양이가 소녀를 고양이나라로 데리고 가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7. 센과치히로의 행방불명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이런 영화 이사를 간다는 사실에 풀이 죽은 10살 소녀 치히로는 새집으로 가던 중 엄마 아빠와 함께 음산한 터널 안으로 들어간다. 버려진 놀이공원 처럼 보이는 그곳의 한 식당에 차려진 음식을 마구 먹어댄 엄마 아빠는 돼지로 변하고 치히로는 엄마 아빠를 구하기 위해 귀신들의 온천장 주인할멈 유바바를 찾아가 일하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유바바에게 이름의 일부를 빼앗겨 센이 된 치히로는 그곳에서 위기에 처한 치히로를 구해준 미남 소년 하쿠, 수줍고 말없는 ‘왕따’ 귀신 가오나시, 팔이 여섯 달린 가마할아범, 밥으로 별사탕을 먹으며 석탄을 나르는 숯검댕이이 등을 만난다. 이들과의 만남, 그리고 뜻하지 않은 상황들을 겪으며 치히로는 조금씩 철이 나고, 결국은 엄마 아빠를 구해내 이곳을 벗어난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지브리 스튜디오 탐방기 ▶ 미야자키 하야오 & 스즈키 도시오 인터뷰 ▶ 지브리 박물관

인상비평 혹은 여성학 에세이로 풀어낸 결혼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1)

아니다, 지극히 이성적인 경제활동이다 인상비평 혹은 여성학 에세이로 풀어낸 결혼에 대한 경제학★1적 분석 경고: 영화를 보기 전에, 먼저 이 글을 읽지 마시오! 해도 후회. 안해도 후회. 결혼은 미친 짓일까? 당신은 당신의 배우자와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죽어도 좋은` 변함없는 애정을 견지할 수 있는가. 일부일처제라는 해묵은 판타지에 과연 돌파구는 있다고 믿는가. 여기, 그 모든 의문에 관한 한편의 도발적인 보고서가 있다. 욕망의 거래소인 결혼시장의 본질은 무엇이며, 결혼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만족의 극한점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합리적으로 욕망을 추구할 수 있는가? 공식적 의미의 결혼 뿐이 아닌 비공식적인 결혼인 동거나 사실혼까지를 포함하는 새로운 `결혼`의 개념을 소개한다. 대관절 결혼이 무엇이며, 무엇하자는 것일까. 애들은 가라! 결혼시장에 분할혼을 허하라. 연대박사과정에 있는 황진미씨의 원고는 한편의 흥미로운 딴죽걸기이다. 편집자 어떤 이는 이 영화를 보고, 결혼은 정말 미친 짓이라는 메시지를 충실히 전달★2받았다고 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이 영화를 보고 그녀의 발칙함에 치를 떨며, 이 시대의 ‘몸 따로, 마음 따로’인 성도덕을 개탄★3하기도 한다. 또, 한 분석적인 평론가는 이 영화를 “현대 한국사회의 결혼제도에 대한 성찰과 함께, 제도의 이면에 존재하는 풍속도와 심성을 읽을 수 있는 텍스트★4로 평하기도 하였다. 한편 세상에는 “당신이 미리부터 선을 긋지만 않았더라도 그렇게 빨리 당신을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그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며, 심지어 그녀를, 그들을 동정하기까지 하는 순진하기 짝이 없는 관객★5도 (믿어지지 않겠지만 정말) 있다. 그러나 이 영화가 말하고자, 혹은 까발기고자 한 것은 “간통, 혹은 중혼을 통한 결혼의 ‘규범성’(모럴리티)과 ‘정형성’(스테레오 타입)에 대한 이의제기” 정도가 아니다. 오히려 이 영화의 의도는 “분할혼을 통한 결혼의 본질 규명”으로 보여진다. 즉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결혼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따라서 무엇으로 분할 가능한지, 결혼은 무엇에 의해 움직여지며, 궁극적으로 무엇에 복무하는지에 대한 것… 한마디로 결혼이 무엇이며, 무엇 하자는 짓인지에 대한 보고서로 읽혀지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대체 결혼이 무엇하자는 짓이라는 겐가? 이 영화의 대답은 역설적이게도, 제목에서처럼 ‘미친 짓’이 아니라, ‘지극히 이성적인 경제활동’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욕망의 거래소인 결혼시장★6의 본질을 규명하기 위해, 경제학이라는 칼을 들고 영화 속으로 들어가보자. 이 영화에는 세 인물이 나온다. 감우성★7, 엄정화, 엄정화의 남편. 경제학적 분석을 위해 우선 그들의 욕망과 자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경제학의 정의가 바로 “인간의 무한한 물질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희소한 자원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연구하는 학문★8이기 때문이다. 먼저 감우성의 욕망은 무엇인가? 그는 처음부터 “섹시한 여자친구”를 원했다. 그리고 위장결혼 운운하며, 결혼의 허위 의식적인 일체의 것은 배제한 채, 섹스만은 실제로 하고 싶어한다★9. 그리고 그녀의 출가 권유에 쾌히 응하였듯, 그는 꽤 오랫동안 집에서 혼자 나와 살기를 원했다. 엄정화의 욕망은 무엇인가? 그녀는 “가난하지 않은 남자의 아내”가 되고 싶은 욕망과 “못생기지 않은 남자와 사랑 혹은 섹스하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다. 그녀의 경제적 욕망은 감우성의 입을 통해 “나라고 해도 절대로 포기 못할” 확고한 욕망으로, 그녀의 성적 욕망은 역시 감우성의 입을 통해 “일생 동안 누군가를 끊임없이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항구적이고 영속적인 욕망으로 거듭 해설되어진다. 그러면 엄정화 남편의 욕망은 무엇인가? 남편과의 성생활을 비롯한 부부생활이 자세히 언급되지 않아서 분석에 한계를 지니나, 아마도 가사에 능한 아내로부터(시부모 공경까지 포함된★10) 서비스를 충분히 받고 싶었으며, (특히 남들이 보기에) 성적 매력이 있는 여자와 살고 싶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감우성의 자원, 쿨한 냉소주의 자, 그럼 이제 그들이 지닌 자원은 무엇인가 살펴보자. 감우성은 “아직은 보따리장수”라 경제적으로는 방 하나 얻을 돈도 없을 만큼 무력하다. 그가 가지고 있는 자원은 “테크닉이 뛰어난” 점, 그리고 (제자에게까지) 귀여워 보이는 용모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그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간과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그가 충분히 자기냉소적★1 이고, 상당히 세련된 교양을 갖춘 지식인이라는 점이다. 좀더 풀어서 말하자면 감우성은 타인의 욕망을 정확히 간파하고, 자신의 지불한계를 명백히 숙지하고 있다. 비록 분할혼의 형태를 먼저 제안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자신의 한계에 걸맞은 형식의 이 결혼을 정확히 이해하였고, 기꺼이 동참하여★12 자기 몫을 챙겼다. 그는 합리적이며, 무리한 허풍이나 과도한 독점욕, 객쩍은 폭력성 등이 거세(!)되어 있다★13. 그는 때로 이죽거릴망정 고전영화의 명장면에 등장하는 결혼식장 난입이나 불과 수년 전 영화인 <해피엔드>의 주진모식 ‘그녀 집주변을 불안하게 서성거리기’나 ‘기존의 가족관념에 망상적으로 집착하며(“난 너한테 대체 뭐니? 내가 네 첩이니?”), 자괴감에 몸을 떨기’ 따위의 불온한 행태를 보이지 않는, 매우 안정되고 깔끔하며, 쿨(Cool)한 남자라는 것, 그것이 감우성이 지닌 최대의 자원이다. 영리한(따라서 자기 보존욕구도 상당한) 엄정화에게는 이 점이 가장 구매욕을 자극하는 대목이었을 것이다. 엄정화의 자원은 무엇인가? 1500만원가량★14 의 유휴자금이 있을 만큼 경제력은 감우성보다 높다. 상당한 정도의 성적 매력을 지니고 있으며, 요리기법을 비롯한 가사에 능통하여 결혼시장의 소비자인 배우자를 만족시키기에 충분한 자질을 지니고 있다. 또한 그녀는 합리적인 소비자로서 냉철하고 용의주도한 경제적 마인드를 가지고 있으며(그녀는 일반시장에서건 결혼시장에서건 충동구매 따위는 하지 않는다), 더구나 자신이 지닌 재화와 서비스를 제때에 제값을 받고 팔 수 있는 훌륭한 마케팅 능력★15 을 지니고 있다. 엄정화 남편의 자원은 뭐니뭐니해도 재력이다★16 . 성적 매력은 별로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이들 3자로부터 거래가 이루어진다. 경제학에서의 정의가 그러하듯 이들 중 누구의 욕망이 특별히 이기적이거나 부도덕하지 않으며, 어느 누가(흔히 비난받듯 엄정화가) 이기적이라면, 다른 누구도 마찬가지로 이기적이다★17 . 그들은 다만 각자 서로 다른 욕망을 가지고 있고, 모두 자신의 욕망과 자원의 한계를 잘 알고 있는 합리적인 “경제인”(Homo economicus)일 뿐이다. 욕망의 공정한 거래를 이루다 이들간에 서로 다른 욕망이 공정하게 거래됨으로써, 서로의 욕망이 충족되고 있다. 감우성이 꿈꾼 “결혼의 허위의식이 배제된 채 섹스만이 실존하는” 내실있는 결혼생활이 ‘그들만의 결혼’을 통해 구현되었다. 한편 엄정화의 양립 불가능해 보였던 두 가지 욕망은 그녀가 두개의 남편과 두개의 결혼을 구매, 소비함으로써 충족되었으며, 두개의 결혼이 적절히 분배되고 조화됨으로써 편익이 최대화되고 있다(한계 대체율 체감의 법칙). 엄정화 남편의 욕망도 마찬가지로 구현된다. 그 역시 결혼생활에 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이유는 그녀가 남편과의 결혼생활에 성실하게 복무함으로써 고객 만족을 이루어내고 있기 때문이며, 따라서 그녀는 “들키지 않을” 수 있고, 그녀의 중혼은 법적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18 . 결과적으로 이들 3자는 자신들의 욕망과 자원을 교환함으로써, 이 정직한 거래를 통해 각자의 후생이 증진되는 매우 바람직한 결과를 얻는데, 이 지점이 바로 “파래토적 최적”이며, 이 균형점에서 그들의 활동은 (미친 짓이 아니라!) 합목적적인 경제행위인 것이다. ★1 왜 하필 경제학인가? 인간의 사회적 행동을 규명하고자 하는 이른바 사회과학들 중에서 가장 논리적이며 정교한 체계를 갖춘 학문이며, 연역적 방법론을 취하는 거의 유일한 사회과학이라는 경제학자들의 견해에 이견이 없기 때문이다. ★2 고종석. <씨네21> 351호 106쪽 ‘맞아, 괜히 결혼했어’. ★3 주로는 남성 관객이다. ★4 김소희. <씨네21> 351호 104쪽 ‘감동적인 그녀의 뻔뻔함’. ★5 스무살을 갓 넘긴 여자 관객이나, 그에 준하는 정서를 가진 여린 이들이다. 이들에겐 이 글의 일독을 별로 권해주고 싶지 않다. 마찬가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나름대로 이해할 것이기 때문이다. “오, 거룩한 단순함이여!… 애들은 가라!” ★6 이 글에서 이야기하는 결혼이라는 시장, 혹은 결혼시장이라는 것은 단순히 배우자를 선택하는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거래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 이후의 배우자들간에 이루어지는 모든 가치의 교환을 포괄하는 개념이며, 또한 비공식적인 결혼인 동거나 사실혼까지 포함함을 분명히 밝혀둔다. ★7 극중 인물의 이름은 잊어버리고, 소통의 편의상 배우의 이름으로 대신해보자. ★8 유시민. <경제학 카페> 돌베게 2002. 19쪽. ★9 “그럼 섹스는?” “그건 진짜로 해야지!” ★10 “까다로운 시댁식구들 비위도 맞춰야 되겠고….” ★11 그의 강의 도중에 암시되기도 한다. ★12 이들 관계에서 처음 “왕복 택시비면 여관비와 비슷하겠다”는 암시적 언급을 먼저 한 것이 그였다는 것을 제외하면, 이들 사이에서 무엇인가를 제안하고, 기획하고, 주도하는 것은 언제나 그녀이다. 그는 늘 추인하고 이행한다. ★13 그녀의 몸에서 나는 다른 남자의 향수 냄새에 단 한번의 볼멘소리가 고작이었으며, 젓가락을 집어던지는 행패가 단 한번 있었을 뿐이다. ★14 옥수동? 15평 신축 옥탑방의 전세금으로 추정. ★15 물론 여기에는 처음 만난 남자와 동침할 수 있는 과단성과 수시로 보여지는 연극기도 포함되어 있다. ★16 양재동? 45평 빌라? 시가 5억원 이상? ★17 감우성이 감히 그녀를 이기적이라고 비난할 수 있을까? 그러려면 그는 하루빨리 그녀에게 전세금을 변제하고, 이사를 가는 것이 스스로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길일 것이다. ★18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물론 엄정화의 정직한 노동이다▶ 인상비평 혹은 여성학 에세이로 풀어낸 결혼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1) ▶ 인상비평 혹은 여성학 에세이로 풀어낸 결혼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2) ▶ 인상비평 혹은 여성학 에세이로 풀어낸 결혼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3)

인상비평 혹은 여성학 에세이로 풀어낸 결혼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2)

위의 3자의 거래구도를 좀더 일반화시켜보면, 결혼시장에서 거래되는 품목은 세 가지- 화폐, 노동, 성이다. 감우성은 그녀에게 성을 제공하고, 엄정화는 감우성에게 화폐와 노동과 성을 제공하고 있으며, 남편에게 노동과 성을 제공하고 있다★19. 그녀의 남편은 그녀에게 화폐를 제공한다. 위 교환관계를 도표로 표시할 수 있다(각자 그려보기 바람). 화폐, 노동, 성이 거래되는 결혼시장의 일반 노동시장과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첫째, 화폐와 노동이 거래된다는 점에서는 일반 노동시장과 같으나 성이 거래된다는 점이 큰 차이점이다. 성의 교환은 일반적인 매매춘시장에서도 볼 수 있으나, 매매춘시장에서의 성은 제공방향이 일방적이며, 성이 하나의 완전한 상품으로 단지 화폐로 지불될 뿐이지만, 결혼시장에서의 성은 제공방향이 쌍방적일 수 있어서, 성이 상호교환될 때 상품인 동시에 지불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다. 엄정화와 감우성의 관계는 이런 쌍방향적 관계이다. 그러나 그녀와 남편과의 관계는 일방적인 관계이다. 그녀는 남편과의 관계에서는 성적 만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그녀에게 남편과의 성관계는 일방적 제공이고, 지불수단은 성 이외의 것, 이 관계에서는 화폐일 수밖에 없다. 둘째, 3가지 거래요소가 시계열적으로, 또는 공간적으로 분할되지 않고 하나의 패키지 단위로 거래된다. 대게의 고전적인 결혼 모델에서 여성이 남성에게 노동을, 남성이 여성에게 화폐를 제공하고, 성이 상호 지불되는 관계가 상정되며, 이러한 관계가 근대 이후 이상적인 결혼으로 간주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 영화 속 모델에서는 여성이 남성에게 노동을 제공하고, 남성이 여성에게 화폐를 제공하는 결혼의 측면이 공식적 결혼에서 나타나고, 남성과 여성이 성을 상호 지불하는 측면이 비공식 결혼에서 나타나는 분할된 방식을 취하고 있다. 즉 거래단위의 패키지가 풀린 채 나타난다. 셋째, 노동시장에 비해 매우 높은 경직성을 들 수 있다. 공식적인 결혼은 법적인 의미를 지니며, 중혼을 금지하는 법적 장치로 진입 장벽이 존재한다.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이혼의 경제적 비용 탓에 퇴출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 이러한 진·출입 장벽으로 시장의 유연성이 떨어지고, 비교적 장시간 지속되는 시장이 형성된다. 그에 반해 비공식 결혼은 상당히 유연하며, 진·출입의 장벽이 낮아, 일반 노동시장과 큰 차이가 없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비공식결혼을 공식결혼과 동등한 자격으로 평행하게 진행시키고 있다. 비공식결혼의 영역과 지분이 확대되면, 결혼시장의 유연성은 당연히 증대된다. 위의 두 번째, 세 번째 특징을 자세히 살펴보면, 결국은 거래단위의 문제임을 알 수 있는데, 두 번째 특징은 결혼의 거래단위가 분할이 불가능한 자연수(분수가 아닌)이어야 한다는 것을 뜻이며, 세 번째 특징은 중복이 허용되지 않는 단수(복수가 아닌)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즉 통념상 결혼은 자연수 1의 단위로만 거래되며, 분수나 복수의 단위로 거래되지 아니한다. 다시 말해 분할혼이나 중혼이 아니라야 한다는 거래규칙을 지닌다고 믿어져왔다. 이 영화에서 보여지는 엄청난 파괴는 다름 아닌, “단위의 파괴”이다. 결혼의 거래단위가 자연수 1이 아니라- 분수로, 복수로, 즉- 유리수 범위로 분화, 확장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 감우성은 온전한 결혼의 형태가 아닌 부분적 결혼의 형태를 구매하고, 소비하였다. (결혼 k/n개, 단, 0 ● 엄정화는 감우성과의 결혼과 남편과의 결혼을 구매하고, 소비하였다. (결혼 k/n + p/m개, 단, 0★20 , 1 ≤ k/n + p/m) ● 엄정화의 남편은 그녀와의 결혼, 또는 그 이상★21 의 결혼을 구매하고, 소비하였다. (결혼 p1/m1 + p2/m2 + p3/m3 +………=∑pn/mn개, 단, 0 감우성은 결혼시장에서 성적 자원 외에는 다른 구매력이 없기 때문에★22 , 1개 이하의 결혼을 구매한다. 엄정화는 충분한 지불수단을 보유하므로, 1개 이상의 결혼을 구매할 능력을 갖고 있으며, 그녀는 자신의 능력껏 결혼을 소비하고, 향유한다. 그녀의 남편 역시 그의 상당한 재력과 빈약한 성적 매력에 상응하는 결혼을 구매, 소비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근면 · 성실하게 두 가정에 복무하다 좀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감우성은 분할혼을 통해 이전의 자연수 1의 단위로만 거래되던 결혼의 높은 실무율(Threshold)을 넘어, 비로소 결혼시장에 참여하게 된다. 마치 전일 근무만 가능하던 노동시장이 다원화, 세분화되면서 파트타임을 폭넓게 포함하는 등 유연성이 증가하는 것, 개인의 능력과 의지에 알맞은 다양한 고용수준이 적용되어 노동시장 참여율을 높이는 것, 고용 창출을 위한 일종의 “일자리 나눠갖기”와 비슷하다★23 . 다만 이것이 가능한 것은 전술하였듯 그가 분할혼을 감내할 수 있을 만한 캐릭터라는 데에 있다. 독점욕이 미약하고, “전체가 아니면 무”라는 추상적 결벽으로부터 상당히 자유로운 그의 캐릭터는 전통적의 남성상과는 상당한 거리★24 를 두고 있다. 물론 이런 체념적(자기 냉소적)인 캐릭터는 그동안 여성에서는 드물지 않게 관찰된 바 있다★25 . 엄정화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녀는 자신의 욕망을 분할된 결혼을 통해 충족시키면서, 동시에 두개의 결혼에 철저히 복무한다. 그녀는 “(남들보다) 바쁘다”. 그녀는 직장에 근무하듯 ★26 가사를 충실히 수행한다. 즉 그녀는 근면·성실하며, (특히 가사에) 유능하다. 더구나 투자도(자본금 1500만원) 했다. 그녀의 정당성은 <봄날은 간다>의 이영애와 비교해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이영애는 아무런 노동도 제공하려고 들지 않았고★27 , 아무런 투자도 한 바 없다. 그녀는 유지태와의 관계를 다만 소비하려고 하였을 뿐이다★28 . 그러나 엄정화는 정당한 자본과 노동을 투입하였고, 따라서 그 대가를 받을 만하다. 그래서 그녀는 또 하나의 결혼을 떳떳하게 향유하며, 온전하게 구축하고, 당당하게 기록한다. 이 또한 다른 영화 속의 여주인공들과 비교해보면 확연해진다. <생활의 발견>의 추상미는 길(여관과 호텔) 위에서 잠시 소요하였을 뿐이고, <해피엔드>의 전도연은 집이 아닌 유목 천막을 원했다★29 . 그러나 엄정화는 그녀의 집을 짓고★30 , 살림을 꾸렸다. 추상미는 외도를, 전도연은 연애를 하였으나 엄정화는 (또 하나의) 결혼을 한 것이다. 엄정화는 자본주의적으로 정당하다. “그녀는 유능했다! 너끈히 두집 살림을 하리만큼!” ★19 남편에게 제공되는 노동의 양이 훨씬 큰 것으로 추정되고, 두 남자에게 제공된 성의 양은 비교하기 어려우나(감우성과는 2주에 한번이었으므로) 아마도 남편에게 제공되는 양이 많았을 것으로 추측되며, 두 남자에게 제공된 성의 강도나 만족도는 비교추정이 불가능하다. ★20 그녀와 남편의 결혼생활이 온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므로 ★21 그 또한 그녀와의 결혼 이외에 어떤 미지의 다른 결혼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2 그는 이것을 고상하게 “거짓말하며 살 자신이 없어서”라고 말한다. 그러나 잉여자본이 많아서, 지불능력이 충분하다면 그다지 거짓말할 일도 많지 않다. 그는 자신의 화폐 부족과 노동으로 지불할 의사마저 없음을 “거짓말하지 않고” 고백하고 있을 뿐이다. ★23 물론 이 말에 경악을 금치 못할 사람들이 많다. 노동시장의 유연성 등을 운운하면, 고용 불안을 곧바로 연상하기 때문이다. 실업에 대한 안전장치가 없는 우리나라에서 이는 어쩌면 당연한 유추일 것이다. 그러나 노동시장의 경직성이 ‘이미’ 노동시장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안전장치가 될 수 있을지 모르나, ‘아직’ 노동시장 외부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결코 복음이 될 수 없다는 것도 필히 염두에 두어야 할 일이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노동시장 전반에 걸친 유연성의 확대는 불가피한 대세이자 고용의 가능성을 증대시키는 당위성을 지닌다. ★24 많은 이들이 엄정화라는 여성상이 획기적이라고 말하지만, 이상하게도 감우성이라는 남성상이 매우 파격적이라는 것을 지적하는 이는 그다지 많지 않다. ★25 흔히 유부남을 사랑하는 여자들로 묘사돼왔는데, 그녀들은 자신의 욕망이 자신의 지불 범위를 넘어서려 할 때, “나, 자꾸 욕심이 생겨. 이러면 안 되는데…” 하고 읊조리기도 한다. ★26 “새로 잡은 직장은 어때?” ★27 그녀의 대사 “라면 끓여!” ★28 이영애를 상도덕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 그보다 이영애와 유지태와의 관계는 평등하지 않았다는 것이 더 문제일 것이다. “정보의 비대칭”이 심각하게 존재하였기 때문에, 유지태는 관계가 종료되는 시점까지 그녀가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 아무튼 이영애는 거래가 아닌 갈취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엄정화보다 훨씬 무도하며, 스스로 망가지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나쁜 남자>의 나쁜 남자(사실은 불쌍한 남자)보다도 더 극악하다. ★29 따라서 그녀는 기록은커녕 흔적조차 남기기를 완강히 거부하였다. ★30 “여긴 내가 꾸민 공간이라구!”▶ 인상비평 혹은 여성학 에세이로 풀어낸 결혼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1) ▶ 인상비평 혹은 여성학 에세이로 풀어낸 결혼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2) ▶ 인상비평 혹은 여성학 에세이로 풀어낸 결혼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3)

멜로드라마 베스트 100편

은막 최고의 러브스토리는 과연 어떤 영화일까? 미국영화연구소(AFI)의 답은, 험프리 보가트와 잉그리드 버그만 커플의 <카사블랑카>다. AFI는 지난 6월11일 를 통해 방영된 <백년간의 백 가지 열정>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멜로드라마 100편을 호명했다. 1800명의 AFI 회원들이 투표로 선정한 이 순위에서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로마의 휴일> <어페어 투 리멤버> <추억> <닥터 지바고> <멋진 인생> <러브스토리> <시티 라이트>가 순서대로 <카사블랑카>의 뒤를 이어 톱10을 구성했다. 로맨티시즘의 황금기는 오래 전에 흘러간 것일까? 이번 AFI 순위에서는 비교적 최근에 제작된 멜로드라마, 로맨틱코미디들의 부진이 두드러졌다. 최근 40년간 만들어진 영화는 한편도 5위 안에 진입하지 못했으며 1990대 영화로는 단 여섯편만이 50위권에 진입했다. AFI가 내건 후보 자격은 2001년 1월까지 개봉된 영화였으나 톱100 러브스토리 중 최신작은 <셰익스피어 인 러브>(1998)인 것으로 집계돼 1999년 이후의 애정영화들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100편의 러브스토리 중 가장 오래된 영화는 1931년 만들어진 찰리 채플린의 <시티 라이트>였고 흥행 챔피언 <타이타닉>은 37위에 랭크됐다. 100편의 러브스토리 중 출연작 편수가 가장 많은 스타는 캐리 그랜트와 캐서린 헵번으로 집계됐다. 위대한 사랑에 해피엔딩이 필수는 아닌 듯. 는 10위권에 든 7편의 영화가 이별로 끝을 맺는다고 보고했다. 또 100편의 애정영화를 통틀어 발생한 사랑싸움은 총 187회이며 키스장면은 260회 등장한다는 통계도 덧붙였다.

[Review] 판타스틱 소녀백서

■ Story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이니드(도라 버치)와 레베카(스칼렛 요한슨)는 세상 만사에 냉소적인 단짝 친구들. 맘에도 없이 친한 척하는 동창생, 겉멋만 든 남자애들부터 예술에 대한 지적 허영을 가진 미술 선생님, 카페에서 본 사탄 숭배자 커플까지 매사 시시콜콜 비꼬는 게 낙이다. 내심 호감은 있지만,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 조쉬(브래드 렌프로)에게도 곱게 말하는 법이 없다. 우연히 잡지에서 예전에 스쳐간 여인을 찾는 광고를 본 둘은 장난전화를 걸고, 광고를 낸 시모어(스티브 부세미)를 불러낸다. 시모어는 볼품없는 외모에 레코드 수집광인 중년의 독신남. 장난스런 호기심으로 시모어에게 접근한 이니드는 자신만의 세계를 가진 그에게 차츰 빠져든다. ■ Review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거나 직업을 갖는 사이, (원작자) 클라우즈의 말을 빌리면 ‘마술 같은 시간’에 놓인 태만한 두 10대에 대한 영화.” 공식 홈페이지에 소개된 문구처럼, <판타스틱 소녀백서>는 학교와 사회의 점이지대 즈음에서 유예기간을 보내는 두 소녀들의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여기서 이들의 ‘마술 같은 시간’이란, 마치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마술 모자 속을 궁금해하듯 모호하고 불안한 기다림의 시간이다. 무난하게 섞여들기엔 불만스럽고 시시한 세상에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소외된 이니드와 레베카. 발랄하게 번역, 개명된 한글 제목과 달리, <판타스틱 소녀백서>는 이들 아웃사이더들의 비타협적인 퉁명스러움과 재기 넘치는 독설을 미덕으로 삼고 있다. 이니드와 레베카는 보통 10대 소녀와는 거리가 멀다. 그들은 할리우드 청춘영화에서 자주 보이는 대다수 소녀들처럼 외모나 인기, 파티 따위로 고민하지 않는다. 통통한 편인데다 커다란 뿔테 안경을 쓴 이니드는 결코 인기인이 아니며, 오히려 그런 게 전부인 양 획일화된 또래문화에 가차없이 조소를 보낸다. 새빨간 원피스에 새빨간 립스틱 혹은 호피무늬 스커트처럼 튀는 패션에서 드러나듯, 남의 시선에 아랑곳 않는 개성의 소유자다. 이니드만큼은 아니지만, 종종 남자애들의 눈길을 끌 만큼 예쁘장한 외모가 무색하게 서늘한 말투로 자신에 대한 환상을 깨버리는 레베카도 마찬가지. 염증나는 집단문화에 녹아들거나 자격지심에 허우적대는 대신, 매사에 시큰둥한 표정으로 자신들만의 유희를 궁리하는 부적응자들의 당돌함은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그런데 탄탄하던 두 친구의 연대전선은, 세상 밖으로 나오면서 이상기류에 휘말린다. 졸업을 인정받기 위해 여름 동안 미술 보충수업을 듣는 이니드가 여전히 별 계획이 없는 반면, 독립하길 원하는 레베카는 커피숍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기 때문. 길이 달라진 레베카와 소원해질수록 이니드는 시모어에게 집착한다. 치킨 체인점 본부에서 19년째 대리로 일하고, 중년이 되도록 애인도 없는 시모어는 겉보기엔 낙오자에 가깝지만, 이니드가 꿈꾸듯 봉인된 자신만의 세계를 유지하고 있는 인물이다. 끊임없이 변해가는 세상의 흐름에 휩쓸려 쉽게 변하는 ‘가짜’가 아니라 변하지 않는 ‘진짜배기’를 찾고 싶은 고집과 그 때문에 감수해야 할 소통 불능의 외로움. 세상에 몇장 없다는 원판 레코드, 이제는 거의 사라진 78회전 LP에 담긴 1920년대 블루스와 정통 재즈음악 등을 수집하며 시류와 무관하게 살아가는 시모어는 이니드와 닮은꼴이다. 시모어의 음반을 들으며 속내를 나누는 이들의 교감은 미묘한 사랑의 빛깔을 띠지만, 외로운 두 사람의 결합이라는 뻔한 해피엔딩으로 치닫지 않는다. <판타스틱 소녀백서>는 미국의 언더그라운드만화가 대니얼 클라우즈의 만화 <고스트 월드>를 원작으로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미국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딛고 선 땅은 끊임없이 불도저에 밀리고, 복구와 개작의 과정을 거친다”는 클라우즈는, 빠르게 변화하면서 기업화되는 현대의 도시와 문화를 과거의 ‘유령(에 다름없는) 세상’으로 표현했다. 테리 즈와이고프는 미국의 반문화를 대표하는 만화가 로버트 크럼을 다룬 <크럼>, 무명 블루스 뮤지션의 삶을 추적한 <루이 블뤼> 등 2편의 다큐멘터리로 선댄스영화제와 평단의 찬사를 받은 감독. 스스로 1920년대 블루스를 좋아하는 수집광이며, 그런 사적인 취향에 따라 미국 문화사의 잊혀져가는 유산을 재발굴하는 작업을 해온 그는 <고스트 월드>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사람은 각본을 공동으로 각색했고, 패스트푸드와 쇼핑몰, 대량 생산되는 유행과 같은 획일적인 문화에 잠식당하는 세상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고스트 월드>의 욕망을 스크린에 살려냈다. 하지만 <판타스틱 소녀백서>는 결코 경직된 설교를 늘어놓는 영화가 아니다. 졸업식 장면의 연설 중 “유머감각을 잊으면 안 된다”는 대사처럼, 영화는 시종일관 유쾌한 냉소와 신랄한 풍자로 웃음기를 잃지 않는다. 비디오 가게 점원이 펠리니의 을 찾는 손님에게 <나인 하프 위크>를 내미는 장면으로 문화의 획일성을 은근히 꼬집는가 하면, “만화 같은 가벼운 엔터테인먼트”보다 개념만 그럴싸한 조형물을 높이 평가하는 미술 선생님을 통해 예술에 고정관념을 희화화하는 식이다. 그렇게 킥킥거리며 ‘유령 세상’의 주류에서 이탈한 이들의 걸음을 쫓다보면, 어느덧 온전히 벗어나지도 적응하지도 못한 같은 곳을 맴도는 제 모습도 겹쳐진다. 그들의 여정이 어떠한 결론에도 이르지 않은 진행형이란 점에서 미리 실망할 필요는 없겠지만, 가슴 한구석 안쓰러운 여운이 남는 영화다. 황혜림 blauex@hani.co.kr 사진설명 1. 오늘은 사탄숭배자 커플을 그려볼까. 그때그때 눈에 들어오는 세상 풍경을 만화적인 그림으로 담아놓은 스케치북은 이니드의 일기장과 같다. 2. 원색적인 패션,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널린 방은 만화적인 이미지를 보여준다. 3. 장난전화로 불러낸 시모어를 바람맞힌 뒤 뒤쫓아간 이니드와 레베카. 4. 세상에 적응할 수 없는 두 사람의 교감은 두 배우의 호연으로 살아났다. 5. 두 친구에게는 세상 만사가 조소의 대상. 순진한 조시도 예외는 아니다. 6. 옛날 희귀 레코드와 포스터로 가득한 공간처럼, 획일화된 세상의 흐름에서 동떨어진 이니드와 시모어는 서로 닮은꼴이다. 7. 데이트 장소는 이니드가 한번쯤 가보고 싶었던 섹스숍. 자신만의 세계를 유지하는 시모어는 이니드의 스케치북에 영웅으로 남는다. ▶ 판타스틱 소녀백서 / 황혜림 기자 ▶ <고스트 월드>, 만화에서 영화까지

해외 신작 <프릭스>

<프릭스>는 무척 교훈적인 영화다. 유독성 폐기물을 아무데나 버리면 안 된다는 가르침을 뼛속 깊이 새겨주는. 사건이라고는 일어나지 않는 조용한 탄광촌. 거미 농장으로 흘러든 폐수가 수백 마리의 앙증맞은 거미를 터무니없는 덩치로 키워놓는다. 더욱 바람직하지 못한 점은 그들이 몹시 굶주려 있다는 사실. 눈치빠른 거미들은 심심한 시골 마을의 유일한 놀이장소인 쇼핑몰로 꾸역꾸역 모여든다. 재난의 도래를 믿으려 하지 않는 주민들과 훼방만 놓는 쓸모없는 시장 틈에서 보안관 샘 파커(캐리 워러)와 화학자 크리스 매코맥(데이비드 아퀘트)은 마을을 구하는 사명을 떠맡는다. 9·11 테러의 후유증으로 말미암아 기획단계의 가제 <아라크 어택>을 대체한 현재 제목 <프릭스>(Eight Legged Freaks)는 방사능을 쐰 곤충 괴물이 스크린을 휘젓고 다니는 1950, 60년대 공포영화를 적절히 연상시킨다. <인디펜던스 데이> <고질라>처럼 다른 ‘잡념’없이 엔터테인먼트 기능에 몰두한 영화를 제작해온 딘 데블린과 롤랜드 에머리히가 이끄는 제작사 센트로폴리스가 겨냥한 것도 <타란튤라> <토마토 공격대> 같은 옛날 영화들의 직선적이고 발랄한 재미와 스릴. 물론 컴퓨터그래픽으로 훨씬 다종다양하게 배양한 거미들로 선배 B급영화들과 차별을 꾀했다. 촬영은 의 존 S. 바틀리, 특수효과는 <인디펜던스 데이>의 CFX가 맡았다. <스파이더 맨>으로 열린 2002년 여름, 거미의 전횡이 끝나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할 모양이다. 김혜리

월드컵 열풍 속 흥행호조, <해적, 디스코왕 되다> 김동원 감독

월드컵 열풍으로 파리 날리던 극장가에 <해적, 디스코왕 되다>가 뜻밖의 바람을 몰고왔다. 개봉 첫 주말인 지난 6월8∼9일 이틀 동안 전국 51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스타 파워가 센 것도 아니고, 감독도 신인이고, 80년대로 보이는 복고적 시대배경에 멜로와 코미디와 춤이 두서없이 어울려 딱히 장르를 구분하기도 애매한 이 영화의 흥행은 뜻밖이다. 김동원(28) 감독의 말마따나 “순진하고 솔직한” 영화의 모습이 그 비결인 듯하다. 복고적인 영화의 분위기와 달리 긴머리에 벙거지 모자를 눌러쓴 김 감독은 요즘 젊은이들 같았다. 얘기 도중 “이거 말 되나요?” 하며 곧잘 웃는 표정에서 재기가 읽혔고, 가끔씩 20대 답지 않게 속깊은 말을 하기도 했다. 포항에서 태어난 그는 ‘포스코문화’의 세례를 받고 자랐다. 학창 시절 서울에서 화제가 되는 영화나 연극이 포항제철소 직원들을 위해 바로바로 포항에 내려왔고, 그때마다 포철 직원들 틈에 끼어서 구경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텔레비전에서 봤던 한 한국영화가 그의 진로를 결정했다. “영화는 재밌든 재미없든 나름의 법칙으로 만드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영화를 보니 나도 저것보다는 잘 만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감독이 되자고 마음먹고는 고교 졸업 뒤, 해병대를 갔다와서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이곳저곳 워크숍에 참여하다가 서울예대에 들어가서 졸업작품으로 98년에 만든 단편이 였다. 그걸 장편으로 확대한 <해적…>으로 김 감독은 데뷔하자마자 흥행감독이 됐다. 한번 한 얘길 다시 하면서 데뷔한다는 게 드문 일인데. 장편 준비하면서 포기해버려? 그런데 버릴 수가 없었다. 자기 자식 못 버리듯. 이건 내가 해야 해. 세편은 해봐야 감독을 알 수 있지 않을까. <해적…> 하면서 많이 배웠다. 25억원짜리 과외였다. 한번 더 해보면 좀더 배우고, 세 번째는 홈런 날려야지. 후회없는 영화. 물론 <해적…>도 후회는 없지만 연출에 부족한 부분이 있으니까. 80년대에 대한 특별한 인상이 있나. 그런 건 아니다. 장편 만들면서 현재의 이야기로 해보려는 생각도 했다. 원조교제도 나오고, 춤은 힙합 추고…. 그런데 자신이 없더라. 나는 자신없으면 못한다. 디스코가 좋고 옛날 이야기가 더 편하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왜 힙합이 재미없지? 코미디도 구봉서, 이기동 그런 분들의 만담 같은 개그가 좋다. 구조나 형식이 요즘 코미디와 비교가 안 된다. 예술이다. 영화도 고전이 좋고, 요즘 건 재미없다. 그때면 10살 무렵인데 디스코 췄나. 영화의 춤은 디스코라기보다 그냥 춤이다. 차차차를 변형한 것도 있고,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춤을 연출한 거다. <토요일 밤의 열기>를 장편 준비하면서 봤는데 너무 시시했다. 그러니까 80년대라는 건 과거라는 이미지의 추상형에 가까운 것인가. 그때 재밌게 기억되는 것들을 집어넣었다. 서울우유 병 같은 거. 베지밀은 병이 나오는데, 우유는 왜 병이 안 나오지? 병이 팩보다 느낌이 좋은데. 그런 게 사라지는 데 대한 아쉬움 같은 거다. 이사할 때 뒤에서 이삿짐 밀어주는 정서, 지금은 없다. 너무 삭막하다. 죽일 때도 열번, 스무번씩 찌르고. 나는 <친구> 재미없게 봤다. 초반 30분만 재밌었다. 뒤는 억지 같았다. 내 영화도 마찬가지겠지만. 처음에 단편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어떤 점에 끌렸나. 이야기 자체가 특이하고 재밌었다. 교복입고 나와서 춤추고 싸우고. 춤과 액션이 있고, 싸움꾼이 춤으로 여자를 구한다…. 650만원을 여기저기서 빌려서 찍다보니까 이렇게 할 게 아니다 싶었다. 또 시나리오는 더 길게 해야 할 이야기인데. 그래서 장편을 했다. 그러다보니 내 20대가 <해적…>과 함께 갔다. 이대근의 첫사랑이 해적의 어머니라는 건 좀 무리 아닌가. 장편 시나리오 작업 하면서 마지막 부분이 잘 안 풀렸다. 해적이 디스코경연대회에서 1등을 해서 봉자를 구한다는 설정은 무리라고 생각해서 처음부터 배제했다. 1주일 만에 디스코왕이 된다는 건 웃기지 않은가. 마지막까지 고민하다가 엄마가 나와서 말도 안 되는 장난을 해결해준다는 발상이 떠올랐다. 어색할 수는 있지만 귀엽게 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단편에선 해적이 막춤을 춰서 1등을 한다. 단편에는 그런 게 많았다. 마지막에 서울이 올림픽 개최지로 확정된다는 소식을 듣고 “그럼 우리나라가 잘살게 되는 거야?”라는 희망적인 대사로 끝낸 것도 지금 보면 창피하다. 너무 얄팍한 것 같다. 자료조사하다가 81년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걸 발견하고 넣은 건데. 그래서 장편에서는 솔직하게 간 거다. 나는 80년대 모른다. 그냥 해적이 춤을 잘 춰서 1등상을 받는 걸로 했으면 안 될 이유가 있나. 나는 어설픈 게 좋다. 약간 뒤떨어지고, 잘 넘어지고, 바보 같고. 해적이 1등 해서 봉자와 끌어안고 그런 건 어색하다. 물론 춤의 비주얼을 <울랄라 씨스터즈>처럼 했다면 관객이 더 좋아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물랑루즈>처럼 못할 바에는 어설프게 가는 게 더 낳지 않은가. 다음엔 잘해야지. <물랑루즈>처럼. (웃음) 처음부터 컨셉을 어설픈 걸로 잡았다. 데뷔작이니까 솔직하게 하자. 나름대로 실험도 해보고 싶었다. 드라마도 기승전결이 아니라, 처음부터 파동치는 형태로 했고. 딴에는 젊은 감독답게 한 건데, 봐주는 사람들이 다른 의미에서 어설프다고 한다. 의도적으로가 아니라 진짜로 어설프다고. (웃음) 준비중인 다음 영화가 있다는데, 거기에도 춤과 액션이 있나. 있다. 어설픈 느낌을 지워서 보는 이들이 “저 감독 맞아?” 하게 할 거다. 영악하게, 하나도 안 순진하게 할 거다. 그런데 <해적…>은 내가 50살쯤 돼서 봐도 기분이 좋을 것 같다. 꼼수를 안 부린 것 같아서 좋다. 모르는 걸 아는 척하지 않고. 이대근의 졸개로 나오는 주명철씨가 지나가는 여자를 보고 “아름답소!” 하는 대사는 압권이다. 나는 배우들의 애드리브를 많이 존중해준다. 그러다보니 단역들끼리 경쟁이 심했다. 쟤가 저렇게 재밌게 해? 나도 뭔가 하자. 그런 식이었다. 촬영 전에 스스로 뭔가를 궁리해서 가지고 온다. 주씨도 그랬다. 들어보니 재밌어서 하자고 했다. 그뒤부터 촬영장에서 유행어가 됐다. 믹싱, 편집하는 분들이 작업 중간중간에 “아름답소!”를 연신 외치고, 다른 스탭들도 지나가는 여자 보고 또 그러고. 똥장면이 유달리 많고 실감난다. 마지막에 해적과 성기, 봉팔 셋이서 똥 푸는 장면은 진짜 똥으로 했다. 진짜 똥을 퍼봐야 연기가 실감날 것 같아서였다. 그 장면을 맨 먼저 찍었다. 그때 미술팀이 진짜 똥을 보고나서 가짜 똥을 만드는데 너무 실감나는 거였다. 똥장면을 일부러 많이 넣자는 생각은 없었다. 처음에 봉팔 아버지가 똥차 밀다가 사고나는 건 이야기의 시작이니까 뺄 수 없고, 그뒤에 봉팔이 혼자 푸는 건 봉팔의 고생을 표현한 거고, 마지막에 셋이 푸는 건 우정이고. 어떤 영화를 좋아하나. 외국영화는 잘 안 본다. 이장호, 배창호, 이명세 이 라인을 좋아한다. 이 라인이 이명세에서 끊겼다. 그게 참 안타깝다. 봉준호 감독의 <플란다스의 개> 연출부 일을 했는데, 기회만 됐다면 이명세 감독 밑으로 갔을 거다. 배창호 감독 영화 중엔 어떤 게 제일 좋은가. <기쁜 우리 젊은 날>이다. 놀이터에서 안성기가 최불암에게 안겨 엉엉 우는 장면, 너무 좋다. 실험도 많았던 것 같다. 안성기가 김서린 안경으로 황신혜를 보는 건, 아마도 김서린 안경을 카메라에 걸고서 찍었을 텐데 재밌지 않은가. 밝고 따뜻한 영화를 좋아하나. 그런 편이다. 나는 매우 긍정적이다. 농담을 막 던지면서 그 안에 숨겨진 진실을 드러내는 것. 어떤 사람이 곧 죽는데, 가족들 다 모인 자리에서 “슬퍼하지 말아라, 음악을 틀어라” 하는 거. 나도 그렇게 죽을 것 같다. 죽을 때도 웃는 게 좋다. 얻어터져도 웃고. 나는 어떻게든 재밌게 살아보려고 노력을 많이 한다. 어설프든 세련됐든…. 다른 인터뷰 기사를 보니까 제일 싫어하는 게 ‘무서운 여자들’이라고 했던데. 여자들 무섭다.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자기 관리를 잘하고, 더 이성적이지 않나. 영화평론가도 유지나, 심영섭 무섭다. 변영주 감독 무섭다. 남자보다 여자 좋아하고, 말은 또 얼마나 잘하나. 여자들한테 많이 당한 것 같다. 여자들이 나를 보면 보호해주고 싶은가보다. 편안해하고 그러는데 나중에 보면 당한 게 많다. 여자들은 심중을 모르겠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남자들은 알기 쉽지 않은가. 꼭 하고 싶은 영화가 있다면. 사랑영화, 슬픈 사랑이든 웃기는 사랑이든. 여자들 무섭다면서. 안 무서운 여자 골라서. <정사> 보면서 이재용 감독 되게 부러웠다. 내가 저런 거 해야 하는데. <지독한 사랑> 보고서는 내가 <지독한 사랑2>를 찍고 싶었다. <기쁜 우리 젊은 날>도 사랑 이야기이고. 나는 보고나서 어떤 장면이 오래도록 각인되는 영화가 좋다. <봄날은 간다>에서 유지태가 택시 타고 강원도까지 가고 이영애가 기다리고 그런 장면. <해적…>에서 관객이 오래 간직했으면 싶은 장면이 있다면. 봉자가 디스코경연대회 전날 밤 이불에서 혼자 구르는 장면이 있다. 뭔가 되게 바라면서 엉뚱한 짓을 하는 게 사실적이지 않은가. 그때 창가에 비치는 초승달은 이명세식 표현주의이고. 이 초승달은 이명세 감독에 대한 오마주다. 홍상수식 사실주의와 이명세식 표현주의의 중간단계쯤? 말이 되나? 아쉬운 건. 좀더 영화적으로 만들었어야 하는데. 25억원을 들였으면 그만한 상품을 만들어야 하는데, 상품을 잘 만든다는 건 아직도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영화라는 매체가 참 애매하다. <포레스트 검프> 같은 것도 너무 짜여져 있으니까 재미가 덜하다. 뭐가 답인지 잘 모르겠다. 정말 대중영화라면 할리우드 같은 상품을 내놔야 했겠지만…, 왠지 그런 건 잘 안 할 것 같다. <복수는 나의 것>을 보니까 영화적 표현기법을 쓰는 솜씨가 대단하더라. 그런데 그런 건 앞으로 다른 감독들도 잘할 것 같다. 이제는 철학의 문제인 것 같다. 내가 뭘 하는지, 뭘 좋아하는지, 내가 이 색을 좋아하는데 왜 좋아하는지 확실히 아는 것. 그게 최고의 철학 아닐까. 어떤 제작자가 영화를 하려면 개똥철학이라도 있어야 한다고 했다. 영화라는 건 참 고급예술 같다. 글 임범 isman@hani.co.kr·사진 이혜정 hyejung@hani.co.kr

<지미 뉴트론>의 감독 존 A. 데이비스

자신의 꿈을 생생하게 살려내 뛰놀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애니메이터 혹은 애니메이션 감독은 부러운 직업이다. 오픈카처럼 위가 뻥 뚫린 로켓을 타고 버젓이 대기권까지 날아오른다든지, 롤러코스터와 대회전차 등 놀이공원을 통째로 우주선으로 개조해 우주에 띄운다든지, 아무리 황당무계한 상상도 이들의 손을 거쳐 생명을 얻는다. 최근 개봉한 3D 컴퓨터그래픽애니메이션 <지미 뉴트론>의 감독 존 A. 데이비스 역시 부러운 그들 중 한 사람이다. 집안의 비밀통로, 로봇 강아지, 외계인과의 전투 등 “내 유년의 판타지, 내가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살려낸” <지미 뉴트론>은 그에게 지켜보는 것만으로 즐거웠던 작품. 보는 이들도 자신처럼 어린 시절의 꿈을 환기하는 재미를 나눌 수 있길 원했던 그의 바람대로, 가족 관객의 환대를 받으며 미국에서 제작비의 4배에 가까운 8천만달러를 벌어들이는 성공도 거뒀다.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자란 존 A. 데이비스가 판타지를 실현하는 마법의 트릭을 목격한 것은 중학교 때. 우연히 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 놀러갔던 그는 스톱모션애니메이션 기법을 시연하는 워크숍에 눈길이 갔다. 물체를 한 프레임씩 움직여가며 찍고, 나중에 화면에서 그 프레임의 연결에서 살아나는 애니메이션이 못내 신기했던지, 소년은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비디오카메라를 꺼냈다. 액션 피겨 장난감들을 책상 위에 늘어놓고 움직여가며 찍어본 경험이 잊을 수 없는 첫 애니메이션 습작이었다. 그뒤 데이비스는 댈러스의 영화사와 애니메이션 제작사를 거쳤고, 딱히 컴퓨터를 잘 알았던 것은 아니지만 현장에서 배워가며 일했다. <지미 뉴트론>의 실무 프로듀서이자 오랜 동료인 키스 알콘을 만난 것도 그 시절. 회사가 문을 닫은 뒤 2∼3년간 할 일이 없었던 두 사람은, 87년 자신들의 꿈의 공장인 DNA프로덕션을 설립하기에 이른다. DNA프로덕션은 30분짜리 3D애니메이션 <산타 vs.눈사람> 등 TV물과 CF에서 2D와 3D 캐릭터 디자인으로 먼저 이름을 얻었다. 장편은 <지미 뉴트론>이 처음. <지미 뉴트론>은 데이비스가 95년에 만든 단편 <런어웨이 로켓보이>를 바탕으로, <에이스 벤츄라>의 작가이자 감독인 스티브 오데커크와 함께 TV시리즈로 기획했던 작품이다. 하지만 기획을 맘에 들어 한 니켈오디언과 자매회사 파라마운트가 시리즈와 장편을 둘다 원해서 장편을 먼저 하게 된 것. 마침 올해 신설된 오스카 장편애니메이션 부문 후보에까지 오른 <지미 뉴트론>의 첫술을 뒤로 하고, 데이비스와 그의 팀은 가을에 방영될 TV시리즈 준비에 한창이다. 작품마다 새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곤 하는 픽사나 PDI의 규모를 따르기는 힘들고, 대부분의 중소제작사들과 마찬가지로 차별화가 그의 전략. 라이트 웨이브 등 누구나 살 수 있는 소프트웨어로 만든 <지미 뉴트론>처럼, 더 적은 인원과 비용으로도 2년이면 볼 만한 장편을 만들 수 있다는 DNA의 전략을 내비친다. 아직도 퍼낼 수 있는 아이디어의 우물이 깊고 깊은 모양이다. 황혜림 blauex@hani.co.kr 사진 정진환 jungjh@hani.co.kr

지상파 외화 핍박의 살아있는 증거

Movie Plus 월∼목 오전 10시, 오후 11시 캐치원(HBO로 바뀌기 전에)에서 월요일 오후 10시에 처음으로 이라는 드라마를 선보였을 때, 행복 그 자체였고 신선함 그 자체였다. 행복한 월요일. 을 보고 채널을 곧장 돌리면 KBS에서 을 볼 수 있었다. 치밀한 이야기, 수많은 재미난 사연들, 박진감 넘치는 전개….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만의 아우라가 있었다. 바로 생과 사가 갈리는 상황에 부딪히면 소박해질 수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이 있었다. 의 배경무대는 시카고 쿡 카운티 병원의 응급실이다. 수술하러 위층으로 올라가기도 하지만, 주무대는 응급실과 바로 앞의 길 건너 식당뿐이다. 그 좁은 공간 안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왔다갔다 하며 자기들만의 사연을 털어놓는다. 코믹한 사연에서부터 안타까운 사연, 인간이 싫어지는 순간부터 삶의 경이를 느끼는 순간까지, 우리가 살면서 만날 수 있는 모든 감흥이 살아 숨쉰다. 현재 케이블에서 계속해서 방송해주는 은 시즌 1과 2다. 의 정수이자 영혼과도 다름없는 시즌이다. 그 시즌에서 보여준 저력이 8년, 9년을 지속하고 10년을 목표로 나아가고 있다. 상당수 의학드라마가 의사와 의사의 관계에 치중하고, 환자는 단지 지나가는 손님으로만 치부했다면, 은 지나가는 환자에게 순간이라도 따뜻한 애정을 보여준다. 에서는 ‘사람이 손을 댈 수 없는’ 인생 부분에 중심이 있다. 의료보험이 될 수도 있고, 장기기증이 될 수도 있고, 죽음과 삶이 될 수도 있다. 수많은 캐릭터들이 이 한정된 공간에서 서로 반응을 일으키다보니 충돌하고 화합하고 토닥이는 것이다. 이게 을 구성하는 진짜 느낌이고, 그래서 특유의 아련함과 감동이 있다. 의 화려함도 박진감도, 그린과 루이스의 고생담도, 카터와 벤튼의 승강이도, 로스와 해서웨이의 사랑도, 사실 이 아련함과 감동이 있기에 배가 된다. 이 뛰어난 드라마 은 우리나라 지상파에선 너무도 많은 시련을 겪었다. SBS는 골프중계하며 만날 시간도 제대로 안 지키고 방영한 것은 생각도 안 하고 시청률을 핑계로 시간대를 옮기다가 중단해버렸다. 놀랍게도 KBS가 을 방영했으나 시즌 3은 건너뛰어 버리는 바람에 보던 시청자들까지 혼란에 빠졌다. 시청률은 급락해서 밤 11시에 ‘2%’의 오명을 뒤집어쓰고 수요일 밤 12시20분으로 밀려났다. 외화 최후의 보루, KBS가 시간대 핍박을 하기 시작한 것이 이때였다(이 월요일 11시를 이때 계속 지켰다면 시즌 1, 7, 8, 9가 금요일 12시30분에 방영될 확률은 낮았다). 그런데 이 겪은 황당무계한 피해는 단지 시간대뿐만이 아니었다. SBS는 그날 그날의 우리말 성우진이 훌륭했다. 그런데 KBS에서 방영한 의 수준은 말 그대로 참혹했다. 말도 안 되는 인물설정을 해놓은 번역(남자 의사들은 성씨로 부르고 여자 의사들은 이름으로 부르기 같은)과 무성의한 성우진(보조의사 지니의 남편과 애인은 성우가 같았다. 바람피우는 보람이 없었군….), 줄거리 전개를 무시하는 삭제로 이전에 보던 팬들마저 떨어져나가게 해버렸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몇몇 드라마가 을 대놓고 베끼기 시작했다. <해바라기>까지는 그래도 메디컬 드라마를 가장한 삼각관계물이었지만, <메디컬 센터>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아예 대놓고 을 모사한 것이었다. 수준이 떨어질 뿐 비슷한 카메라워크, 비슷한 인물 설정, 비슷한 줄거리와 분위기, 심지어 음악은 아예 사운드트랙을 쓰기까지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팬들은 표절이라는 말은 자제하고 너무 비슷하다고 주장했건만 <메디컬 센터>의 이창한 PD는 이런 문제제기를 ‘마니아의 문화사대주의’로 몰아붙였다.(이 어처구니없는 반론은 <씨네21> 280호에 실려 있다) 은 우리나라에서는 수난의 드라마다. 시즌을 건너뛰고, 충분한 홍보도 없고, 무단으로 방송시간이 변경되고, 엉망인 번역에 성우진은 더 나빠지고, 별것도 아닌 이유로 삭제당하고, 도용당했다. 정말로 같은 드라마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이 드라마를 동시대에 만나 향유한다는 것은 축복이다. 한 세대에서 몇편이나 되는 드라마가 감수성을 흔들며 삶의 축복과 저주를 동시에 풀어놓는단 말인가? 이런 훌륭한 드라마가 왜 수모를 당하는가? 미국에서는 닥터 그린까지 응급실을 떠난다. 그러나 한국에선 그의 퇴장을 슬퍼할 기회조차 없다. 그것이 너무 슬프다. 그리고 화가 치민다. 한국의 팬들은 약자라서 당하는 것이 아니다. 너무 올곧고 솔직해서 당하는 것이다. 남명희/ 자유기고가 zoo@zootv.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