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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2003)

테헤란 파지르국제영화제, 이슬람 금기에 도전하는 영화들 봇물

이란영화는 말 그대로 새로운 천년을 맞이하고 있는 중이다. 키아로스타미와 마흐말바프로 대변되는 20세기 말의 이란영화가 올해를 기점으로 또 한번의 엄청난 변신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변화의 현장을 테헤란에서 지난 2월2일부터 11일까지 열린 파지르국제영화제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파지르영화제는 지난 1979년의 이슬람혁명을 기념해 만들어진 영화제로, 국제경쟁 부문과 국내경쟁 부문이 있지만 해외 게스트들에게는 단연 국내경쟁 부문이 관심의 대상이다. 조직위쪽도 이러한 관심을 반영, 해외의 게스트들만 따로 모아 이란영화를 볼 수 있도록 배려했다. 새 천년 이란영화의 새로운 도약을 예고하는 징후는 자파르 파나히가 도발적으로 제기한 사회·정치적 영화의 문제, 놀라운 신인감독들의 등장, 그리고 단편 영화의 눈부신 성장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금기에의 도전: 자파르 파나히의 <순환> 이번 영화제 국내경쟁 부문에서 자파르 파나히의 <순환>은 애초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막판에 빠졌으며 게다가 상영금지까지 당했다. 이란영화마켓(Iranian Film Market)의 리셉션이 한창이던 2월9일 저녁, 자파르 파나히의 집에서 그 문제의 작품을 볼 수 있었다. 그 자리에는 로카르노영화제 집행위원장 마르코 뮐러, 베니스영화제 집행위원장 알베르토 바베라, 밴쿠버영화제 집행위원장 알랜 프레니 등 극소수의 게스트만이 초대됐다. 자파르 파나히는 세편의 영화를 통해 끊임없이 변신을 도모해왔고, 이번 작품은 그런 면에서 가장 파격적이다. 카메라가 테헤란의 길거리에서 만나는 여인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담아나가는 평범한 작품이지만, 그들의 모습은 여태껏 이란영화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것들이었다. 외손녀를 출산한 딸의 장래를 걱정하는 어느 어머니의 모습에서 시작된 이 영화는 낙태, 거리의 매춘, 아이의 유기 등 현재 이란 여성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억압과 모순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프로젝트의 제작자 모하마드 아테바이는 사태의 추이를 좀더 지켜봐야겠다고 했다. 어쩌면 해외영화제 참가조차 불가능할지 모르겠다고도 했다. 곧 있을 총선의 결과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여자아이가 세상에 태어나는 병원의 밝은 색깔 문에서 시작하여 갖가지 이유로 이런저런 여성들이 한자리에 모인 교도소의 어두운 문으로 끝나는 이 영화는 분명 2000년대 이란영화사의 첫머리에 놓일 것이다. 자파르 파나히는 이슬람혁명 뒤 금기에 도전한 최초의 감독이며, 이후의 문제는 여타 감독들이 그의 뒤를 이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하지만 침울한 분위기 속에서도 자파르 파나히는 부산영화제에 대한 즐거운 추억을 이야기하며 올해도 꼭 참가하고 싶다고 했다. 사실 이번 영화제에서 중견감독들의 작품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다. 또 한명의 거장인 다리우스 메흐르지 감독의 <믹스>는 영화제작의 뒷배경을 다뤘으나, 지나치게 혼란스러운 구성으로 예전의 정갈함을 잃고 있었다. 또 20년 만에 다시 메가폰을 잡은 바흐만 파르나마라의 <장뇌의 향기, 재스민의 향기> 역시 이번 영화제에서 대상과 감독상을 수상하기는 했으나 지극히 전통적인 양식의 평범한 영화였다. 특히 후자는 파르나마라의 오랜 친구인 키아로스타미의 도움이 수상에 영향을 끼쳤다는 이야기도 있다. 키아로스타미 그늘 벗어나는 신인들 기대작은 오히려 다른 곳에 있다. 즉, 지금 제작되고 있는 작품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천국의 아이들>과 <신의 색깔>로 미국에 성공적으로 진출한 마지드 마지디가 캐나다 자본으로 <비>를 준비중이며, 미래의 거장으로 주목받고 있는 아볼파즐 잘릴리는 일본 자본으로 <달바란>을 제작중이다. 그리고, 주목받는 또다른 두편의 영화가 있다. 먼저 파르나마라처럼 오랫동안 작품을 만들지 못하다가 지난해에 다시 컴백한 바흐람 베이자이의 <개 죽이기>가 있다. 지난 2월12일 늦은 밤시간에 제작자 베흐루즈 하셰미안(그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된 터키영화 <태양으로의 여행>의 제작자이기도 하다)의 초청으로 촬영현장을 방문했다. 쌀쌀한 날씨 속에서 오랜만에 다시 현장으로 돌아온 베이자이의 모습은 열정에 넘쳐 있었다. 오랜 망명생활을 통해 미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으며, 지난 수년간 프랑스로부터 제작의뢰가 쇄도할 정도로 국제적인 지명도를 지닌 그였지만 조국에서 영화를 만들겠다는 그의 열정이 이제야 그를 현장에 불러 세운 것이다. 하셰미안은 이 작품이 베니스영화제를 노리고 있다고 밝혔다. 당연히 올 부산국제영화제의 유력한 초청 후보작이기도 하다. 2월13일 귀국 당일 오전에 파르하드 메흐란파르의 신작 <사랑의 전설>의 가편집본을 볼 수 있었다. 지난해 PPP의 초청 프로젝트였던 이 작품이 이제 드디어 완성단계에 이른 것이다. 이란의 북부 전쟁지역에서 실종된 연인을 찾아나선 한 여인의 여정을 따라가는 이 작품에는 쿠르드족의 아름다운 문화와 풍습이 담겨져 있다. 메흐란파르는 쿠르드족의 전설을 통해 사랑의 의미를 깨닫게 하고, 또한 일반인들에게 호전적인 이미지로 각인돼 있는 쿠르드족의 평화롭고도 아름다운 생활양식을 전달하고자 했다. 그의 이전 작품들이 그러했듯이 ‘산의 감독’ 메흐란파르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좀더 심화된 통찰력을 이 작품에서 보여주고 있는 듯했다. 이란은 신인감독의 등장이 가장 잦으면서도 가장 쉽게 사라지는 이상한 전통이 있다. 지난 몇년간 내가 주목했던 감독 가운데 지금은 소식조차 알 수 없는 감독도 상당수에 달한다. 올해도 이러한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올해의 신인감독을 주목하는 이유는 이제 그들이 키아로스타미와 마흐말바프의 그늘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란영화에서 키아로스타미류의 어린이 영화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키아로스타미는 이제 더이상 어린이 영화를 만들지 않지만 후배 감독들에게 시나리오를 계속 써주고 있다. 이번에 소개된 모하마드 알리 텔레비의 <버드나무와 바람>은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와 유사한 재미와 정서를 지닌 작품이다. 올해의 신인감독 중 바박 파야니는 단연 발군이다. 그의 데뷔작 <하루 더>는 로베르 브레송과 홍상수를 반쯤 섞어놓은 듯한 영화였다. 버스 정류장에서 늘 만나는 중년의 두남녀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소외와 고독이 절절히 배어나오는 작품이다. 이 밖에 어린이를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선배의 작품들과는 달리 거리의 아이들을 사실적으로 그린 <속삭임>의 파브리즈 샤흐바지도 주목의 대상이다. 주목! 단편 영화, 상업 영화의 젖줄 그러나, 21세기 이란영화의 진정한 혁명은 단편영화에서 시작될 것이다. 그것은 최근 단편영화들의 수준이 세계최고급인데다, 장편 극영화의 든든한 젖줄 노릇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란에서 단편영화는 연간 400여편이 만들어진다. 그것도 거의 16mm이거나 35mm 영화이다. 영화제 기간중 이란영화마켓에 참가한 이란 영시네마 소사이어티(이란에서 가장 중요한 단편 영화 제작 배급하는 회사)의 부스를 찾아 지난 한해 동안 만들어진 단편영화 50여편을 꼼꼼히 살펴볼 수 있었다. 올해는 특히 근래에 보기 드문 우수작을 두편이나 발견할 수 있었다. 이란에서는 이미 스타급 단편영화 감독이지만 국내에는 전혀 소개가 되지 않았던 알리 모하마드 카세미의 신작 <너무 먼>은 매우 충격적인 작품이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낙타의 시선을 통해 사막과 오아시스에서의 아름다운 추억, 그리고 인간세계의 잔혹함이 교차되는 이 작품은 그 간결한 형식과 뛰어난 촬영으로 눈이 번쩍 띄는 작품이다. 그리고, 또 한편. 너무도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단편이 있다. 여성감독 마흐바시 셰이콜 에스라미의 <차르쇼>가 그것으로, 결혼을 앞둔 소녀가 어머니의 허락으로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차르쇼(전통의상)를 입고 신랑을 따라 길을 떠난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이 모든 이야기가 아름답고도 구성진 민요와 함께 전개되는데,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붉디 붉은 차르쇼를 입은 소녀가 말을 타고 신랑과 함께 만개한 해바라기밭을 지나 길을 떠나는 장면은 나의 뇌리가 아닌 가슴에 박혀버렸다. 올해 이란 단편영화의 약진은 이미 시작되고 있는데, 세계 곳곳의 단편영화제에서 초청이 쇄도하고 있다. 이러한 이란 단편영화의 힘은 정부의 체계적인 지원과 영화를 사랑하는 이란인들의 열정이 어우러진 결과일 것이다. 마흐말바프, 영화 만드는 일가족 이제 이 글을 마흐말바프와의 만남으로 마무리지어야겠다. 나는 마흐말바프를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해왔지만, 그를 만날 때마다 늘 새로운 경이를 느끼곤 했다. 한 인간으로서, 한 감독으로서 그는 늘 나의 가장 이상적인, 아니 때로는 이상을 넘어서는 모습으로 다가왔다. 이번 만남도 그러했다. 영화제의 마지막 날인 2월11일, 마흐말바프와 점심을 한 뒤 그의 사무실을 방문했다. 그는 나를 만나자마자 또 전화와 팩스번호가 바뀌었다며 새 번호를 알려줬다. 그가 번호를 자주 바꾸는 이유는 물론 이사를 자주 다니기 때문이다. 이사를 자주 다니는 이유는 제작비 문제 때문이다. 그는 지금 맏딸 사미라의 두 번째 작품 <칠판>과 아내 마르지에의 데뷔작을 제작중이다. 두편의 영화를 제작하면서 자동차(그의 차는 한국산 차다)와 편집기를 팔기로 했다. 사미라의 데뷔작 <사과>를 제작할 때는 집과 차를 팔았었다. 다행히 <사과>가 세계적으로 호평 받고 제작비도 환수가 돼 집과 차를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사실 그는 마음만 먹으면 제작비는 해외에서 얼마든지 조달이 가능하다. 하지만 영화의 순수성을 훼손하는 그 어떤 제작비도 받지 않겠다는 게 그 나름의 고집이다. 그리고, 마흐말바프는 온 가족과 함께 영화를 만들고, 영화를 통해 자녀들의 교육을 시킨다. 11살 된 막내딸 한나는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영화일을 하고 있다. 지금은 엄마인 마르지에의 작품에서 스크립을 하고 있다. 이 아이는 이미 독학으로 초등학교 졸업자격증을 취득한 상태다. 아들 메이삼은 누나 사미라의 두 번째 작품의 제작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다. 마흐말바프는 자신의 사무실이 곧 학교이며 가정이라고 말한다. 흔히들, ‘영화보다는 삶 그 자체가 더 중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마흐말바프에게 있어 삶과 영화는 완전한 동일체, 바로 그것이다. 마르지에는 지금 이란 여성에 관한 옴니버스 영화를 만들고 있으며, 이미 그 첫편인 <내가 여자가 되는 날>은 완성됐다. 마흐말바프의 사무실에서 그 작품을 볼 수 있었다. 2월11일, 9살이 되는 소녀 하바는 이제 헤잡을 쓰고 다녀야 한다. 그것은 곧 여성으로서 사회의 구속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지만 하바에게는 남자친구인 하산과 아이스크림 사러갈 생각뿐이다. 어머니는 하바에게 한 시간 안으로 돌아와서 헤잡을 써야 한다고 말한다. 하바에게는 이제 자유가 한 시간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이 작품의 구상은 마르지에가, 그리고 시나리오는 마흐말바프가 썼다. 그리고, 나와 만난 그날 오후 마흐말바프는 촬영이 한창인 키시섬으로 내려갔다. 아내에게 부족한 제작비를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점심을 먹으면서 마흐말바프는 이란인들이 즐겨 인용하는 한 구절을 이야기했다. “꽃을 팔아 돈을 벌었다면, 그 돈으로 당신은 무엇을 하겠는가?” 나는 “당신은 아마 다시 꽃을 사겠지요”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는 수긍의 미소를 지었다. 그와 헤어지기 전, 마흐말바프는 차를 잠시 세우고 나에게 줄 선물을 하나 사왔다. 그것은 다름아닌 꽃이었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가 보석이라면, 마흐말바프의 영화는 꽃이라는 나의 생각은 그래서 더욱 확고해졌다.

<우주전쟁>과 스필버그 [3] - 외계인침공영화 계보

참을 수 없는 외계의 매혹 장르 세계에서 외계인들이 본격적으로 지구를 침공하기 시작한 건 허버트 조지 웰스의 <우주전쟁> 때부터다. 20세기 초가 되자 영미권에서 본격적으로 SF 장르가 성립했고 외계인 침공은 그중 가장 인기있는 소재가 되었다. 할리우드에서 외계인 침공이 본격화된 건 UFO 열풍과 냉전시대의 히스테리가 공존하던 50년대. 외계에서 온 채소 외계인이 남극 기지를 공격하는 <또 다른 세계에서 온 물체>(The Thing From Another World)가 이 장르의 본격적인 시작이다(30년대 인기 스페이스 오페라 시리즈인 <플래시 고든>이나 <버크 로저스> 같은 작품들의 영향력을 무시한다면). 아마 가장 대표적인 영화는 하늘에서 떨어진 우주 콩깍지가 사람들로 변신하는 <신체 강탈자의 침입>(Invasion Of The Body Snatchers)일 것이다. <화성에서 온 침입자>나 조지 팔 버전인 <우주전쟁> 역시 빼먹을 수 없다. 50년대 말부터 시작된 SF/호러 시리즈인 <트왈라이트 존>이나 <아우터 리미츠>도 흥미로운 외계인 침략 에피소드들을 남겼다. 그중 가장 유명한 건 제목의 잔인한 말장난으로 유명한 <투 서브 맨>(To Serve Man)일 것이다. 50년대의 외계인 침공 영화들을 모두 냉전시대의 산물로 몰아붙이는 건 지나치게 단순하다. 레드 콤플렉스가 당시 장르물의 부흥을 가져온 건 사실이지만 그런 분위기는 차별화에 대한 욕구를 자극하기도 했다. <그것은 외계에서 왔다>(It Came from Outer Space)나 <나는 외계에서 온 괴물과 결혼했다>(I Married a Monster from Outer Space)와 같은 영화들은 복제 외계인의 침공이라는 고전적인 소재를 다루면서도 외계인과 지구인의 대결을 분명한 선악구별 없이 입체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로버트 와이즈의 <지구가 정지된 날>처럼 비행접시를 타고 온 외계인이 평화의 사절인 경우도 있다. 60, 70년대 접어들면 전형적인 외계인 침공 영화들은 줄어든다. 장 뤽 고다르나, 스탠릭 큐브릭,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와 같은 주류 거장들이 장르를 실험했고 뉴웨이브 운동의 영향으로 장르 자체도 큰 변화를 겪던 때였다. 고전적인 외계인 침공 아이디어를 담고 있는 <쿼터매스 앤 더 피트>(Quatermass and the Pit)과 같은 영화도 외부의 외계인보다는 발굴된 화성 우주선의 영향 아래 변해가는 지구인의 내면에 더 큰 관심을 쏟고 있다. 리들리 스콧의 <에이리언>과 같은 사악한 외계 생물을 다룬 영화들도 나오긴 했지만, 70, 80년대 SF영화들은 외계인과 지구인의 조우에 대해 비교적 낙관적이었다. 여긴 <미지와의 조우>와 라는 두편의 낙관적인 영화를 만든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향이 크다. 당시엔 존 카펜터의 <스타맨>처럼 스필버그의 감성에 영향을 받은 아류영화들 역시 만들어졌다. 90년대 이후 사악한 외계인의 지구 침략이라는 주제는 히트 텔레비전 시리즈 을 통해 부활했다. 꾸준히 물밑에서 이어지던 회색 외계인의 인간 납치 전설은 이 시리즈를 통해 다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인디펜던스 데이>처럼 복고적이고 호전적인 외계인 침공물이 성공한 것도 이 분위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당시 분위기가 일방적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는데, 50년대의 단순한 공식이 이전의 모습 그대로 부활할 수 있을 만큼 당시 관객들이 순진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50년대 SF의 관습을 놀려대던 팀 버튼의 <화성침공>이 더 그 시대의 분위기에 맞는 작품이었다. 역시 분명한 외계인 침공 의사가 드러나기 전이 전성기였다. 50년대 이후 ‘외계인 침공’이라는 아이디어는 장르 세계에서 가볍게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옵션으로 자리잡고 있다. 영화는 <스피시즈>처럼 공식에 충실한 복고풍 SF가 될 수도 있고 <에볼루션>처럼 장르 공식을 가볍게 가지고 노는 액션코미디가 될 수도 있다. 와 <미지와의 조우>를 감독한 스필버그가 무자비한 외계인들이 지구를 침공하는 <우주전쟁>을 만들었다고 해서 그게 특별한 심경 변화나 배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단지 고정된 장르 소재를 선택해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만들었을 뿐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건 거의 언급도 되지 않는 외계인의 정체가 아니라 그들의 공격을 받는 9·11 사태 이후의 미국인들이다.

<웰컴 투 동막골> 영화음악 맡은 히사이시 조

“영상과 음악의 완벽한 일치를 이뤄내는 게 영화음악의 목표입니다. 음악이 아무리 훌륭해도 영상과 맞지 않으면 좋은 영화음악이라 할 수 없어요. 영화가 좋지 않으면 좋은 영화음악이 나올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거죠.” 오는 8월4일 개봉하는 영화 <웰컴 투 동막골>(감독 박광현)의 음악을 맡은 일본 영화음악계의 거장 히사이시 조(55)는 영화 홍보를 위해 한국을 찾은 19일 영화음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1984년 <바람의 계곡 나우시카> 음악작업을 시작으로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 인연을 맺은 그는 <이웃집 토토로> <붉은 돼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지난해 <하울의 움직이는 성>까지 모두 8편의 작품을 하야오 감독과 함께 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왈츠풍 메인테마는 텔레비전 오락 프로그램에 삽입되고 휴대전화 벨소리로도 애용되는 등 국내에서도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기타노 다케시 감독과 함께 <소나티네> <키즈 리턴> <하나비> <기쿠지로의 여름> 등을 작업하기도 한 그는 일본 아카데미 최우수 음악상을 5차례나 받았다. 유럽 쪽과도 여러 차례 작업한 그가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나라의 영화음악을 맡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예전부터 히사이시 조의 열렬한 팬이었던 박광현 감독이 일본어로 번역한 시나리오를 보냈고, 이를 읽어본 그가 흔쾌히 승락을 한 것이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한국에서 전쟁 속에서도 남북한 군인이 힘을 합쳐 마을을 지켜내고자 하는 희생정신과 휴머니즘에 반해서”라고 한다. “<웰컴 투 동막골> 영화음악을 굳이 분류하자면 하야오 감독 애니메이션의 음악 스타일보다는 기타노 다케시 감독 영화의 음악 스타일에 가깝습니다. 밝고 환상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좀 무겁고 진중하게 접근했어요. 영화 속 동막골 마을 이야기가 너무나도 아름답고 판타지적으로 그려졌기 때문에 현실감이 좀 떨어질 수 있거든요. 그래서 음악을 통해 무겁게 눌러줌으로써 현실감을 부여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다고 시종일관 장엄한 음악만 흐르는 것은 아니다. 영화 속 멧돼지 습격 장면과 같은 곳에선 발랄하고 통통 튀는 음악으로 희극적인 재미를 더한다. 그가 애니메이션 작업에서 많이 선보여온 음악 스타일이다. 그는 “희극적으로 보여져야 할 부분과 현실감이 중시돼야 할 부분 사이에 음악을 달리함으로써 균형을 맞추려 했다”고 설명했다. “작업을 하다가 영화 가편집본을 봤는데, 감독의 열정이 느껴졌습니다. 한 장면 한 장면에서 감독이 무엇을 보여주려 하는지 명확하게 드러나더군요. 최선을 다하는 흔적이 역력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어깨가 무거웠는데, 좋은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어요.” “기회가 된다면 또 한국영화 작업을 하고 싶다”는 그는 오는 11월3일 성남아트센터에서 지난 2001년에 이어 두번째 내한공연을 할 계획이다.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쾌도변명

(당사자인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쾌도난담은 희한하다. 양심수들이 애독한다는 양식있는 시사주간지에 지성도 교양도 함량 미달인 두 건달이 별다른 준비도 없이 두세 시간 횡설수설하는 게 매주 멀쩡하게 실려나간다. 한두번의 해프닝으로나 어울릴 이 믿기 힘든 일은 해를 넘겨서도 계속되고 있다. 풍문으로는 쾌도난담 덕에 <한겨레21> 웹사이트 조횟수가 몇배 늘었다고도 하고, 이 수채 같은 기사를 저주하며 구독 중단을 선언하는 비장한 독자가 나타났다고도 한다. 그런 극단적인 반응은 내 머리통 속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런대로 진지한 얘기들을 무겁지 않게 전한다는 장점(제대로 전하는가는 논외로 두고)도 있지만, 사적 톤으로 발언하고 공적 톤으로 읽히는 쾌도난담의 작동 원리는 나를 늘 불편하게 한다. 쾌도난담은 마치 내가 어느 카페에서 친구와 편하게 나눈 대화를 수많은 사람에게 생중계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같은 것이다. 쾌도난담을 읽는 사람들은 나를 실제보다 조금 더 경박한 인간으로 실제보다 조금 더 방자한 인간으로 짐작하는 듯하고, 그것은 사람들에게 나를 실제보다 조금 더 기품있는 인간으로 실제보다 조금 더 진지한 인간으로 인상지우고 싶은 내 욕망과 충돌한다. 처음 만난 사람들은 내게 말하곤 한다. “생각보다 점잖은 분이군요.” 빌어먹을. 별의별 얘기를 다루다보니 별의별 잡음이 끊이지 않지만 나나 김어준이나 지성의 부족분을 고집으로 채우고 사는 스타일이라 일일이 개의친 않는다. 다만 이따금씩 내 말에 내가 후회하고 그러는데, 내가 율려라는 걸 들고 나온 김지하 선생을 애처로운 왕자병 환자에 앵벌이하는 상이군인이라고 비아냥거린 일은 바로 그런 예다. 내가 오늘의 김지하를 존중할 수 없는 게 사실이라 해도 그 비아냥은 무슨 얘기든 짧게 훑고 지나가는 쾌도난담의 형편과 결합하여 비열한 인신공격이 됐다. 다른 곳에 김지하 선생에 대한 좀더 차분한 비판문을 쓴 적이 있긴 하지만 나는 내 20대의 치명적인 선생에게 씻을 수 없는 결례를 하고 말았다. 얼마 전 매매춘을 필요악이라고 표현한 일은 쾌도난담의 형식이나 사정으로 변명할 수 없는 부끄러움을 내게 남겼다. 후배들은 그 발언으로 별 문제는 없느냐 조심스레 물어왔고, 평소 내 글에 호의적이었던 한 학자는 무척 실망했다며 내 말이 고도의 반어법이기를 바란다는 편지를 보내왔다. 나는 김강자라는 여성경찰관의 해프닝과 구성애라는 보수주의자의 맞장구에 내가 가진 이른바 ‘과학적 매매춘론’을 사용하는 일이 왠지 허망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러나 내 발언은 고도의 반어법은커녕 그저 반동적 매매춘론을 한번 더 강조하는 일이 됐다. 두어달 전 나는 담당기자에게 쾌도난담을 그만두겠다 말했다. 내가 뒤늦게 글쓰기라는 걸 시작하여 체험수기류의 잡문이나마 열정을 가지고 끼적댈 수 있었던 건 내 팍팍한 삶에서 빚어지는 나와 세상의 긴장감 덕이었다. 매주 한번씩 세상의 일들을 연예가 방담 하듯 주절대는 쾌도난담’은 그런 내 긴장감을 느슨하게 만들고 있었다. 쾌도난담 덕에 나는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지만, 내가 그런 허명이 한 인간을 얼마나 가련하게 만드는가을 모르진 않았다. 그만두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목요일이 다가오면 으레 쾌도난담 하러 갈 요량하는 나를 보면, 내가 쾌도난담을 정말 그만두려 하는 건지 쾌도난담으로 일어나는 내 민망함을 보상하기 위해 나 자신을 속이고 있는 건지 나도 헛갈린다. 대견하게도(가증스럽게도) 이젠 공적 톤으로 읽힐 것을 염두에 두고 사적 톤으로 발언하는 일에도 어지간히 익숙해졌다. 또한 나는 쾌도난담이 스테레오타입화된 공격 대상 이외의 대상을 공격하기엔 몹시 불리하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한편으론, 진지한 거라면 질색을 하던 나이 어린 후배가 쾌도난담을 낄낄거리며 읽는 모습을 보며 자못 계몽주의자의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쾌도난담이 내게, 내가 쾌도난담에 차분해진 셈이다.

설 연휴 비디오 가이드 [5] - <에드워드 펄롱의 포토그래퍼> 外

숨은 비디오 걸작 5 - <에드워드 펄롱의 포토그래퍼>와 워터스 감독 뒤죽박죽 컬트, 웃고 즐겨라 존 워터스는 참 이상한 영화만 만든다. <에드워드 펄롱의 포토그래퍼>(이하 포토그래퍼)도 마찬가지. 줄거리만 보면 차분한 드라마 같은데, 막상 영화를 보면 아니다. 기묘하고 엉뚱한, 그리고 천박한 장난들이 가득하다. <포토그래퍼>가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에드워드 펄롱과 크리스티나 리치 등의 스타급 연기자들이 출연한다는 것이다. 특히 크리스티나 리치는 왜 진작 존 워터스 영화에 출연하지 않았는지 의아할 만큼, 영화에 딱 어울린다. 영화에서 ‘패커’라는 이름의 청년은 취미삼아 사진을 찍는다. 그의 재능은 금세 사람들 눈에 뜨이고, 뉴욕으로 초청되어 개인전을 갖기도 한다. 잡지에도 이름이 실리고 텔레비전에도 출연한다. 그야말로 승승장구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청년은 고민한다. 내가 과연 옳은 길을 가고 있는 것일까. 패커의 모델이 되었던 가족들과 동성애자, 매춘부들의 삶이 침해받으면서 사진작가의 고민은 깊어만 간다. 기이하지만 소박한 인생을 살던 패커의 가족들은 점점 다른 사람들이 되어가고 패커는 결심을 굳힌다. 나 혼자만의 길을 스스로 개척하겠노라고. <포토그래퍼>는 감독의 70년대 영화인 <핑크 플라밍고>와 <암컷 소동>에 비하면 온건하다. 속이 메슥거릴 만한 장면은 눈에 띄지 않는다. 시간(屍姦)이나 배설물에 관한 언급도 없다. 그럼에도 <포토그래퍼>는 정치적 은유로 무장하고 있다. 패커와 그의 연인이 투표장에서 섹스를 벌인다든가 종교에 대한 풍자를 유머스럽게 표현한다. 영화는 매춘부와 스트립걸, 동성애자 등 비주류 인생에 대해 따스한 시선을 던진다. 존 워터스 감독이 미국사회의 가치관에 줄곧 반기를 들었던 것을 상기하면, 놀랄 일도 아니다. 게다가 ‘엽기성’이라는 단어 하나로 요약되었던 전작들에 비하면, <포토그래퍼>은 감독의 원숙함마저 보인다. 패커가 온갖 유혹에도 불구하고 촌구석에 남길 결심하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스스로 찾기로 마음먹는 결말은 그래서 빛난다. ‘니들은 엿이나 먹어라’는 식의 비아냥이니까. 존 워터스의 영화는 비디오 출시작이 거의 없다. 조니 뎁의 앳된 모습을 담은 <사랑의 눈물>(Cry Baby) 한편뿐이다. <사랑의 눈물>은 50년대 미국의 청춘문화를 다룬 코미디로 뮤지컬과 공포 등의 장르가 뒤죽박죽 뒤섞인 컬트작. 여느 존 워터스 영화보다 캐릭터들 개성이 돋보이는 영화이기도 하다. <핑크 플라밍고>까지 볼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최소한 캐슬린 터너가 중년주부이자 엽기적 살인마로 분한 코미디물 <시리얼 맘> 정도는 소개되었으면 좋겠다. 정신없이 웃고 즐길 수 있는 존 워터스의 또다른 수작이다. <비밀의 꽃>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을 만든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영화. <내 어머니의 모든 것> 이전에 제작되었지만, 여러 면에서 연장선상에 있다. 특히 상처입은 여성들의 연대를 애정어린 시선에서 그린다는 점이 그렇다. 레오는 필명으로 연애소설을 쓰는 작가. 남편과는 서먹한 사이가 된지 오래고 가끔 외국에서 전화만 걸어온다. 점차 연애소설을 쓰는 데 이력이 난 레오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직접 글을 쓰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불현 듯 찾아온 남편은 그녀에게 결별 선언을 던지고 레오는 적지 않은 상처를 입는다. 고향으로 내려온 레오는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삶을 찾기로 한다.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덧 그녀 주변엔 새로운 친구가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던 것. <비밀의 꽃>은 여성의 ‘모순성’을 전례없이 온화한 눈길로 바라본다. 알모도바르 영화세계의 새로운 출발을 알린 작품. <어플릭션> 원제는 ‘고통’이라는 의미다. 전미 비평가협회 최우수 남우주연상과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수상작. 폴 슈레이더는 익히 알려진 바 대로, <택시 드라이버>의 시나리오 작가로 널리 알려진 연출자다. 지역 경찰로 일하는 웨이드는 가족문제로 골치가 아프다. 아버지는 늘 술에 절어 있고 웨이드 자신도 이미 부인과 이혼한 처지다. 새로운 출발을 하고 싶지만, 부모 등의 가족들이 그의 발길을 부여잡는다. 마을에서 우연한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웨이드는 사건의 배후에 모종의 음모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한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가 어머니를 겨울날 동사하도록 만드는 일이 생긴다. 닉 놀테, 시시 스페이섹, 제임스 코번 등 연기파 배우들을 만날 수 있는 수작. 특히 아버지 역의 제임스 코번은 불굴의 노익장을 과시한다. 종교적 구원의 문제에 천착해온 폴 슈레이더 감독의 최근작. <빌 머레이의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 맥스는 명문 사립학교 러시모어의 졸업반 재학생. 다채로운 교내 활동으로 늘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처지다. 맥스를 잘 모르는 사람은 그를 대단한 모범생으로 착각하지만, 실제는 다르다. 학업성적은 형편없고 친구도 나이가 한창 어린 아이뿐이다. 맥스는 학교 교사인 크로스 선생에게 연정을 느끼고 선생을 위해 교내 수족관을 짓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블룸이라는 재벌을 찾아가 자신의 견해를 밝힌다. 원제가 <러쉬모어>인 <빌 머레이의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는 성장 영화의 공식을 거꾸로 뒤집는 모험을 감행한다. 왕따당하던 아이는 스스로의 처지를 이해하면서 제자리를 찾는다. 80년대 존 휴즈 식의 청춘드라마와 일맥상통하는 영화. 해외에선 ‘올해의 수작’으로 평가될 만큼 평가가 좋았던 영화지만 국내에선 아예 개봉기회조차 잡지 못했다.

[스크린 속 나의 연인] 내 심장을 멎게 한 <노팅 힐> 의 안나스콧, 줄리아 로버츠

단언컨대, 나는 줄리아 로버츠를 좋아하지 않았다. 거실에 앉아 케이블 텔레비전의 채널을 이리저리 떠돌다가 문득 걸리기라도 하면 결국 끝까지 보고야 마는 그 재밌는 영화 <귀여운 여인>에서도 나는 줄리아 로버츠만은 미스 캐스팅이라고 생각했다. 멀대처럼 큰 키에 인천공항만큼 큰 입을 소유한 여자는 나의 이상형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나는 1970년대의 다이안 키튼이나 80년대의 피비 케이츠, 혹은 90년대의 맥 라이언처럼 작고 귀여운 느낌의, 고양이 같은 여자가 좋다. 그런데 어느날 문득 단 한 편의 영화, 그것도 단 하나의 장면 때문에 그녀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 영화는 <노팅 힐>이고, 그 장면은 후반부에 그녀가 휴 그랜트의 서점에서 마지막으로 사랑을 확인할 때다. 스크린을 보면서 이야기해야겠으나 불가능하므로 지면으로나마 한번 재현해보자. 서점에 찾아온 그녀. 하늘색 카디건에 파란 스커트를 입은 그녀는 자신의 실수 때문에 상처를 받은 휴 그랜트에게 사과하며 조분조분 상황을 설명한다. “이제 나는 당신의 판결을 기다리는 죄인”이라며 농담하는 그녀, 하지만 소심한 휴 그랜트는 결국 그 사랑을 포기한다. 그 거절의 말을 듣는 순간, 그녀의 얼굴이 클로즈업 된다. 그를 멍하니 쳐다보는 그녀. 잠시 입술을 꽉 다물고 있더니 이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어색하게 웃는다. 그녀의 눈은 툭 건드리면 눈물이 쏟아져 나올 것만 같지만, 그녀의 굵은 선은 그녀를 단지 ‘연약한 여자’로 놔두지 않는다. 금세 본연의 자세로 돌아와 한숨을 내쉬며 하는 말. “훌륭한 결정이에요. 하지만 잊지 말아요. 지금의 나는 단지 한 남자 앞에 서서 사랑을 구하는 여자일 뿐이라는 걸.” 그러곤 그녀는 뒤돌아선다. 나는 스크린 속에서 이 모습을 보는 순간 가슴이 쿵 내려앉더니 이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그러곤 나도 모르게 마음 속으로 휴 그랜트에게 ‘이 얼간아, 그녀를 잡아!’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이처럼 내가 영화 속 여배우를 보고 가슴이 뛴 건 <천녀유혼>의 왕쭈셴(왕조현) 이후 처음이 아닌가 싶다. 한마디로 나는 단숨에 그녀에게 반하게 되었다. 이런 걸 사랑이라 말하면 우습지만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한 순간 반하게 되는 것. 누군가에게 반하는 것이 그 사람의 인품이나 능력 등을 하나하나 따진 후에 결정하는 게 아니듯, 내가 그녀를 좋아하게 된 것도 그녀의 전작이나 <할리우드 뉴스 101> 같은 가십 프로그램에 나오는 그녀의 사생활에 기인하지 않는다. 그저 단 한 장면, <노팅 힐>의 마지막 장면 속에서의 모습으로 인해 그녀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그 이후 다른 작품에서의 그녀도 꾸준히 사랑해왔다고 말하긴 힘들다. 예를 들어 <오션스 일레븐>의 줄리아 로버츠, 혹은 <에린 브로코비치>의 그녀를 좋아하느냐면 고개를 끄덕이기 힘들다. 그런 면에서 내가 좋아하는 그녀는 오로지 <노팅 힐>에서의 극중 배역인 ‘안나 스콧’뿐인 것 같다. 더 이상 그녀에 대해 구구절절 할 말이 없다. 나는 <노팅 힐> 이전의 그녀의 모습, 혹은 그 이후의 그녀에 대해 온통 부정하고 있으니까. 마치 17살 여름방학 때 동네 도서관에서 첫눈에 반했으나 두 번 다시 보지 못한 어여쁜 여학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그녀에 대한 나의 감정엔 서론도, 본론도 없다. 그저 <노팅 힐>에서와 같은 그녀의 모습을 다른 작품에서 만날 수 있게 되길 바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사랑했던 옛 연인을 다시 만날 것 같은 기대감으로 오늘도 줄리아 로버츠의 새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 앞을 기웃거린다.

북과 공동작업 <심청전> 만화영화로

“우리 고전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는 심청전으로 한국적인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남북이 함께 만들었다는 점에서 개인적 소원도 풀었고요.” 다음달 남(12일)과 북(15일)에서 동시 개봉하는 애니메이션 <왕후 심청>의 넬슨 신(68) 감독은 이번 작품을 만든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동양인으로는 최초로 할리우드 애니메이터로 활동하며 <심슨 가족> <핑크 팬더> 등을 만드는 데 참여한 그는 무려 7년 동안 70억원을 들여 <왕후 심청>을 완성했다. “캐릭터부터 한국적으로 표현하는 데 중점을 뒀어요. 눈과 눈썹 사이를 멀게 그린 게 그 단적인 예입니다. 심청의 경우에는 왕후가 될 인물감으로 보이도록 몰락한 조정 대신의 딸이자 ‘얼짱’, ‘몸짱’, ‘인품짱’으로 재해석했어요. 그렇다고 원작의 기본틀까지 바꾼 건 아닙니다. 고전은 그 자체로 보전할 가치가 있거든요.” 황해도 평산에서 태어나 1·4 후퇴 때 월남한 그는 이번 애니메이션의 원·동화 작업을 북한의 ‘조선 4·26 아동영화 촬영소’에 맡겼다. 통일을 위해서는 직접적인 정치적 교류보다 먼저 문화적 교류를 통해 정서적 물꼬를 터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그래서 더 많은 어려움과 비용에도 아랑곳 않고 공동작업을 밀어붙였다. “어렵사리 공동작업 승낙을 받아내고 2001년 처음으로 북한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이후 서해교전이니 부시 미국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이니 하는 악재들이 잇따라 터져나오는 겁니다. 언제 작업이 중단될지 몰랐죠. 그래서 그들에게 모든 작업을 단계별로 끊어서 하도록 했습니다. 혹시 중단되더라도 남쪽에서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말이죠. 그래서 작업이 더 오래 걸렸어요.” 작업 때문에 수없이 남북을 오가던 그는 중국에서 발생한 사스 때문에 북으로 들어가는 여객기 운항이 중단됐을 때 화물기를 타고 평양에 들어가기도 했다. 그는 무려 18번이나 평양을 다녀온 끝에 <왕후 심청>을 완성할 수 있었다. <왕후 심청>에는 북한 지명도 나온다. 그의 고향인 평산은 물론, 평양과 한양의 이정표가 함께 나오는 장면도 있다. “남과 북은 엄연히 하나의 나라였다는 사실을 그렇게라도 알리고 싶었다”고 그는 말한다. “북한의 애니메이터 수준은 상당합니다. 말 타는 장면을 그리기에 앞서 실제로 말 타는 모습을 수없이 관찰하고 작업에 들어가는 사람들이죠. 앞으로도 계속 함께 작업을 하고 싶어요.” 차기작으로 고구려를 다룬 텔레비전 시리즈를 준비 중인 그는 이 또한 남북 공동작업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친절한 금자씨> [2] - 박찬욱 감독 인터뷰

“이번엔 좀 따뜻한 결말이기를 바랐다” 그는 이틀간 종일 인터뷰가 있다고 했다. 잠도 호텔에서 잔다고 했다. 유명세가 불러온 영광의 감금(?)이었다. 하지만 친절한 찬욱씨는 다시 한번 <친절한 금자씨>를 성심성의껏 구석구석 설명해준다. 아직 여과없이 말하기 힘든 부분까지도 말이다. 그래서 이 인터뷰는 중요한 특정 인물의 이름을 살짝 건너뛰거나, 장면 설명을 약간 다듬어서 묘사하는 정도의 수정을 거쳤다. 그 때문에 잠깐씩 미로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그래서 더 꼼꼼히 읽으시기를 권한다. 영화를 보고 나서 읽는다면 더 오롯이 들릴 거라고 생각한다. -먼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야기하자면 현장 검증에 끌려다니는 금자 모습을 보면서 칼 비행기 폭파범 김현희가 떠올랐다. 영화 속에 설정된 시기도 비슷하고. 의도한 건가. =그렇게 보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적인 연결을 갖는 건 아니다. 미모의 젊은 여성이 수갑차고 사람들한테 막 끌려다니는 모습은 누가 만들어놔도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하지만, 나중에 정말 알카에다 비디오를 연상시키는 장면이 있긴 하다. 아마 테러리스트들에 대한 이미지가 떠오르는 건 확실히 모종의 관계가 있는 것 같다. 테러라고 불러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영화의 끝에서 뭔가 집단적으로 응징을 한다는 점도 그렇고. -초반에 금자에 관한 요약판 시퀀스를 보여주는데, 그 부분이 굉장히 빠르게 편집되어 있다. =금자의 수형 생활이 그렇게 악몽 같지 않았고, 교도소가 지옥처럼 끔찍한 세월이 아니었다는 걸 보여주는 게 중점이었다. 요약 시퀀스 안에서 금자는 활짝 웃고 있고, 남을 돕고 있고, 공부도 한다. 교도소 세팅이 우중충하게 보이게 하고 싶지 않아서 살구빛으로 예쁘게 해달라고 주문까지 했다. 그곳에서의 생활이 활기있고 행복한 그녀의 전성기였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앞신에 뒤신의 이미지 또는 사운드가 먼저 들어오는 경우들이 굉장히 많다. =이리저리 시제가 옮겨지는 일이 많아서 섞이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다. 단지 왔다갔다한다는 느낌뿐만 아니라 정신없이 뒤죽박죽되면서 섞이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클로즈업이 굉장히 많다. <올드보이>가 최민식의 영화라면 확실히 <친절한 금자씨>는 이영애의 영화다. 그들의 얼굴 자체에서 느껴지는 양면성 같은 것이 영화의 큰 동기가 됐겠다는 생각이 든다 =맞다. 이 영화에는 금자뿐 아니라 많은 조연들의 클로즈업도 있다. 하지만 역시 제일 많은 건 금자다. 병원에서 김부선하고 누워 신장 떼어줄 때 금자는 장난으로 욕을 하면서도 해맑게 웃는다. 그렇지만 출소하고 난 뒤 철공소에서 김부선을 끌어안고 반가워할 때 그 안을 살피는 모습이 나오는데, 그때 얼굴은 침대에 누워 있던 그 맑고 화사한 얼굴하고는 대조적으로 나이들고 칙칙하고 음모를 꾸미고 있는 그런 표정이다. 그 대조가 참 그럴듯하고,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는 금자의 빅 클로즈업도 인상적이다. =필름 400자 한캔을 다 쓸 만큼 고생해서 얻어낸 장면인데, 카메라 앞에 유족들이 서 있고 영애씨가 그걸 고정된 채로 서서 쳐다보면서 찍은 거다. 보기에 추하다 싶을 만한 제일 예쁘지 않은 얼굴이 되기를 바랐고, 그렇게 해달라고 했고, 본인도 그게 제일 안 예뻐 보이는 걸로 노력한 거다. (웃음) -많은 카메오가 등장하는데 그 배치에 의도가 있었나. =<복수는 나의 것>에서 대적했던 두 사나이 송강호와 신하균이 동료로 등장한다. <올드보이>에서 피해자였던 최민식은 악한으로 나온다. 유지태가 피해 아동인 원모의 유령으로 나오는 것은 <올드보이>에서 누나를 떠나 보낼 때 아역배우하고 유지태하고 교차되는 장면을 생각하면서 썼다. 그런데 여자배우들 스케줄이 안 맞아서 좀 뒤죽박죽이 됐다. 제니의 양부모가 한국에 왔을 때 금자 집에 가서 텔레비전 보는 장면이 있었다. 그때 두나가 연속극에 출연하는 장면을 생각했었는데 안 됐다. 또 혜정이가 원래 하려고 했던 역할은 “뭐 락스를 먹였다고?”라고 말하는 초반 감옥장면의 금자 동료였다. 윤진서도 그 장면에 출연해서 “아! 친절한 금자씨”라고 말한다. <올드보이>의 두 아가씨가 모두 출연하는 거였다. 그런데 혜정이가 그때 시간이 안 돼서 그냥 뉴스 앵커가 됐고, 이 역을 맡기려고 했던 두나는 결국 시간이 안 맞아서 못 나왔다. -여전히 동일한 인물에 내재된 양면성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금자의 경우 잔인한 면이 있지만, 한 편으로는 사랑스럽고 달콤한 케이크를 만들 줄 아는 제빵사다. =금자가 그렇게 달콤한 케이크를 만들 줄 아는 제빵사가 된 건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은 직업과 돈벌이 수단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출소한 전과자들을 찾아가서 삥을 뜯을 수도 있지만 그건 너무 쉬운 것 같고, 직업훈련도 받았으니까 멀쩡한 숙련공이자 장인으로서 직장 생활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모든 일이 끝나고 나서 유족에게 최선을 다해 대접하는 게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럴 땐 먹을 게 제일 좋다. 먹을 것 중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지만 찌개 이런 것보다는 케이크가 제일 깔끔하고, 더군다나 케이크가 주는 아주 달콤하고 화려한 장식도 매력적이었다. 지나고 생각해보니 이 영화의 음악을 포함해서 화사하고 장식적인 면이 강해진 것도 거기에서 시작한 게 아닌지 모르겠다. -복수를 다룬 앞의 작품의 인물들은 영웅의 느낌이 없는데 금자는 영웅의 느낌이 있다. 마치 여전사 같다. =하지만 영웅적인 행동은 못한다. 말했듯이 처형자의 입장에서 구경꾼의 입장으로 전락하니까. 금자는 입을 가리고 있는데 속을 알 수 없고, 얼굴을 드러내놓고 있어도 가면을 쓰고 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을 바랐기 때문이다. 어떤 장면들에서는 좀 유령 같은 모습이었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마지막에 빵집 나루세에 와서 파티를 할 때, 다들 금자가 거기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그때 그녀는 유령 같은 느낌이다. 나는 영화에서 호흡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서 인물들의 숨소리를 사운드로 많이 넣는 편이지만, 그 장면을 후시녹음할 때 일부러 금자 숨소리는 가급적 뺐다. 동시녹음에서도 잘 안 들리도록 뺐다. 유령처럼 느껴지길 원해서 그랬다. -그런데 왜 하필 유령 같은 느낌을 원했나. =금자가 관찰자라는 점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복수라는 퍼포먼스를 보는 관객 같은 느낌. 그래서 눈만 강조한 것이다. 유족들이 천사가 지나간다는 둥 터무니없는 말과 행동을 할 때 금자는 거기 끼어들 자격이 없는 거다. 자기 아이는 살아 있으니까. 그러니까 숨소리도 내지 않고 죽은 듯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물들의 관계, 특히 금자와 백 선생의 관계를 꼼꼼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백 선생과 금자가 어떻게 시작했는지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곧 소설 <친절한 금자씨>가 출판될 예정인데, 그건 다른 작가가 쓴다. 그 사람이 쓴 원고를 나에게 보내왔는데, 아직 바빠서 전부는 못 읽어봤지만, 백 선생의 성장과정 같은 걸 넣었더라. 그가 왜 이런 악마가 되어야 했는지등등의 그런 과정. 그런 게 책에서는 흥미로울 수도 있겠으나 영화 속에서는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 사람이 왜 이렇게 됐는지, 어떤 동기가 있고 어떤 성장과정이 있었는지를 설명할 겨를은 없었다. 이것은 금자의 영화이기 때문에 백 선생에 대해서는 그 정도면 충분했다. 요즘 관객은 어디로 봐도 나쁜 놈인 그런 것만 보여줘도 그가 타고난 악마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어떤 사연이 있어서 그렇게 되었거니 생각을 한다. 최민식 같은 배우가 동정의 여지가 있는 역할보다는, 진짜 나쁘기만 하고 비열하기만 한 그런 걸 하는 게 훨씬 보기 좋았다. -백 선생이 영어 선생이라는 점을 이용해서 아주 중요한 장면에 코미디를 발휘한다. =왜 안 써먹겠나. 이걸 써먹겠지 싶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준비해서 이제 막 죽일 때가 된 건데 그럴때일수록 한번 다른 길로 가는 게 필요하기도 했고. 의사소통이 안 돼서 애를 먹는 모녀지간인데 그게 되는 사람이 가운데 있으면 당연히 써먹겠지 싶었다. 그게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상황이 되는 거다. 원래 촬영할 때는 뒤에서 총을 대고 있으니까 담담하게 어쩔 수 없이 통역한다는 걸로 촬영했는데 나중에 녹음을 새로 했다. 연기하듯이. 모녀의 말투를 흉내내서. 매를 버는 짓이지만, 백 선생은 그러고도 남을 종자니까. -전작들과 같이 놓고 볼 때 <복수는 나의 것>은 차갑고 <올드보이>는 뜨거운 영화였다. 그런데 말한 것처럼 <친절한 금자씨>에는 중요한 곳곳에 유머가 있다. 공표한 것처럼 <친절한 금자씨>가 복수 삼부작의 최종회라면 왜 여기서 그 정리의 키워드가 유머가 되어야 하는지 궁금증이 생긴다. =앞의 두편은 전부 사람을 긴장시키고, 보는 데 힘이 들어간다. 육체적으로 피곤하게 만드는 영화이기 때문에 이번에는 좀더 여유로운 영화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거고, 그런 면에서 유머가 좀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나도 좀 지친 기분이 들고…. 하지만 우습다라는 기조로 가다가도 웃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식으로 주저하게 되고, 또 나중에는 웃은 게 조금 미안하게도 되는 그런 상태로 가는 거다. 제일 따뜻하달까? 전작들이 차갑고, 뜨거웠다면 이건 좀 따뜻한 결말이기를 바랐다. 금자의 마지막은 용서받았다고 말은 못해도 수고했다라고 격려할 만한 점이 있다. 결국은 앞의 두편의 주인공들도 별별 고생을 다하고 나쁜 짓까지 하지만, 어떻게든 악마가 되려 하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내 심정은 그 사람들까지 포함해서 “모두 다 수고하셨습니다”라고 인정해주고 싶었던 거다. -여러 명의 화자가 금자를 이야기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그중에서도 특히 영화 바깥에서 금자의 심리를 설명하는 중년의 여자 목소리는 중요하다. 그게 누구의 목소리인지 밝혀지면서 이 영화는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금자씨에 대해 들려주는 오랜 옛날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마지막에 이르러서 “그래도 나는 금자씨를 좋아했다”라는 말이 나올 때 비로소 우리는 성우 김세원이 낸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알게 된다. 그제야 비로소 관객은 이 영화가 2050년쯤의 미래영화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금자씨는 이제 막 늙어서 병으로 죽었고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지금 누군가에게 금자씨에 대해 설명해주는 그런 회고담, 옛날 이야기 같은 거다. 관객이 보는 영화는 당대의 이야기지만, 이건 사실 미래에서 온 회고담이다. “금자는 끝내 영혼을 구원받지 못했다”라고 말할 때 그건 도대체 누가 어떻게 판단을 내리는 건지 근거가 없는데, 내 상상에 의하면 만약 죽기 전에 금자가 그 목소리의 주인공에게 그런 말을 남기고 죽었다면 그 목소리의 주인공도 남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동화 같은 발상에서 시작한 거다. 처음에는 지금보다 몇배 동화 같은 이야기였다. 많이 줄었지만 그런 점에서 지금도 많이 남아 있긴 한 것 같다. -복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게 정말 맞을까 할 정도로 결론이 모범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결론은 모범적이라도, 과정이 충격적이다. =모범적인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끔찍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래야 효과가 있다. 그걸 통해서 원론적인 교훈을 절실하고 뼈저리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같다. 관객을 한 방향으로 몰고 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백 선생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의 문제에서 점점 더 우스꽝스럽게 갔고, 그리고 이제부터는 유족이 더 잔인하게 느껴지도록 했다. 무방비상태의 인물을 놓고 벌이는 그들의 행동을 보는 금자는 구경꾼이 된다. 복수를 막 수행하려는 사람, 오랜 세월 준비해서 이제 막 잡아놓고 죽일 수 있는 그 단계에서 금자는 이 모든 복수극의 구경꾼, 관객이 되는 거다. 그제야 금자는 어떤 깨달음을 얻는 거다. 금자가 직접 복수를 수행했다면 좀 달랐을 거다. 내가 했을 법한 걸 남이 하는 걸 지켜볼 때 이 모든 것이 다 그릇되었다는 걸 깨달을 수 있다. 고지식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금자씨가 그 과정을 거쳐서 뭔가 자책하고 괴로워하는 제스처가 바로 두부 모양의 케이크를 먹으려고 할 때다. 금자는 독자적인 방식으로 자기 구원을 갈망하는 인물이다. 전도사가 제시한 두부가 아니라, 자기 손으로 만든 두부 케이크를 먹는다는 거다. -그런 점에서 보는 사람에 따라 금자가 구원을 받았다고 여길 수도 있을 것 같다. =화장실에서 원모의 유령을 만났을 때 원모의 표정이 바로 금자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 될 텐데, 금자가 뭔가 변명하려고 할 때 원모는 왜 그러셨어요 하는 식으로 입을 탁 막아버린다. 이게 금자의 생각이라면 결코 스스로가 용서받았다고 여기는 건 아닐 거다. -올드보이를 본 관객은 사실 이 영화에서도 반전을 기대할 것이다. 하지만 스토리상 반전이라고 할 만한 내용이 있지는 않다. 그게 오히려 이 영화의 어떤 메시지처럼 보인다 =이 영화는 금자가 숨겨진 비밀을 알게 되는 그 순간 완전히 다른 영화, 독립된 영화처럼 되어버린다. 스토리상의 비밀이라기보다는 플롯상의 방향전환 내지는 비약 같은 게 순식간에 일어나는 거다. 사실 그게 이 영화를 구상할 때 핵심적인 두 가지 동기 중 하나였다. 하나는 백 선생을 향한 금자의 원한이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사실 별거 아닌 약한 동기로 보일 수 있겠다는 점이었고, 두 번째는 갑자기 다른 종류의 영화로 비약해버린다는 점이었다. 그 내용은 <올드보이>에서의 반전 같은 것은 아니지만, 또 그렇다고 쉽게 공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반전은 없는데 공개를 하긴 어렵다… 뭐 그렇게 말할 수밖에…. -그 두 가지가 복수라는 테마를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중요한 장치인가.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다. 기껏해야 동시통역 장면에서 제니에게 해명하는 것처럼 금자가 생각하는 백 선생의 죄는 “엄마(금자)를 죄인으로 만든 죄”라고 할 수 있는데, 그건 상당히 추상화된 거다. 애가 죽은 것도 아니고, 금자는 애를 되찾지 않나. 백 선생쯤 잊어버리고 살면 될 것도 같고. 또 감옥 생활을 했다고는 하지만, 어차피 금자도 유괴 사건에는 직접 관여했으니까 그렇게 억울하다고 보기는 힘들고. 그런데 어떤 사람들이라면 원모의 죽음에 책임이 없다고 빠져나갈 수 있는 사안이 금자에게는 커다란 죄의식과 책임감으로 다가오는 거다. 그래서 비밀이 폭로된 순간 금자는 그 예민한 죄의식으로 감당하기 힘든 몇배의 책임감에 빠져들게 되는 거다. 그래서 이 두 가지 특징적인 요소가 불가분의 관계가 되는 거다. 그런 것을 관객이 아주 쉽게 동일시할 수 있도록, 함께 분노할 수 있도록 만드는 건 쉽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이 스토리가 가진 윤리적인 장치라고 보면 된다. 감정적으로 끌려가는 것보다는, 저런 상황이라면 나는 가만있을 것 같은데, 혹은 저런 원한이라면 복수에 나설 만할 텐데, 이런 식의 여러 생각이 들 수 있도록 강력하지 않은 어떤 것이어야 이 윤리적인 측면이 잘 드러날 수 있다고 봤다. -우리가 죄의식에 대해서 너무 가볍게 지나친다고 지적하고 싶은 것인가. =그렇게 설교할 생각은 없고… 그런 민감한 죄의식을 갖고 사는 사람들, 그래서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어리석은 방법으로 가거나, 벗어나려고 싸우는 사람들이 보기 좋다는 생각은 갖고 있다 -부조리함 자체에 대해서 매혹을 느끼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한다. =매혹이 있다. 하지만 그건 나의 내면에서 논리적으로 진행되어 만들어지는 부조리다. 내가 목표로 하는 게 그거다. 나로서는 나름대로 정교한 논리로 만들어낸 장면들이 보는 이에게는 부조리하고, 낯설고 기이해 보이는 것, 그런 게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 비극 속에 나오는 유머나 희극이 효과를 강조하는 이번 영화와는 좀 다른, 희극적인 상황이 주조인데 이따금 비극이 드러나는 그런 작품을 해볼 생각은 없나. =해보고 싶다. 다음 HD 작품이 그럴지도 모르겠다. 정신질환 환자들 이야기라서…. -그 HD영화 프로젝트는 어떤 내용인가. =<사이보그지만 괜찮아>라는 제목이다. 자기가 전투용 사이보그라고 착각하는 망상증 소녀가 입원을 한다. 그중 젊은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 이 남자는 자기가 개발한 조잡한 기계로 원하는 사람의 영혼을 훔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원하는 기간 동안 그 사람 행세를 하고 다시 돌려줄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문제는 이거다. 그렇다면, 이 소녀의 망상 속의 캐릭터도 이 사람이 훔쳐갈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 소녀는 치유될 수 있을 텐데… 하는 그런 얘기다. 내가 할 수 있는 청춘영화 같은 걸 만들어보고 싶었다. (웃음). 결국 치료에 성공하지는 못해도, 자기 망상의 정체는 이해하게 되는, 결국엔 사이보그지만 괜찮아, 이렇게 끝날 거다. 가급적이면 몇대의 캠코더를 동원해서 섞어 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친절한 금자씨>는 베니스에 가나. =보여달라고 해서 일단 보내줬다. 월말에 라인업을 공식 발표한다니까 그때 연락 올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