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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챔피언>, 월드컵 장벽 힘겹게 넘다

<챔피언> 첫주 94만여명 동원 그쳐, <센과 치히로…> <스타워즈…2>는 선전<챔피언>이 날린 회심의 한방도 월드컵의 마지막 열기를 꺾진 못했다.6월28일 개봉한 곽경택 감독의 <챔피언>은 개봉 1주일 만인 7월4일까지 서울 31만명, 전국 94만여명의 관객을 동원해 다소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기록했다. 이 영화는 개봉 두 번째 주말을 넘기며 전국 130만명 정도를 돌파할 전망이다.<친구>의 흥행신화를 이어나갈 것으로 전망됐던 이 영화가 애초의 예상보다 낮은 흥행을 기록한 데는 우선 폐막을 앞두고 막바지 열기를 뿜었던 월드컵이 가장 큰 힘을 행사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 영화는 개봉 주말 이틀 동안 서울에서 10만4천여명을 동원했는데, 이는 휴일이었던 7월1일 하루 성적이 6만4500명이었다는 사실과 비교해보면 상당히 저조한 성적이었다. 특히 한국과 터키의 3·4위전이 있었던 6월29일의 경우, 개봉 이틀째가 되는 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후 6시께부터 시작하는 4회와 오후 8시30분쯤 시작하는 5회의 객석은 썰렁하기 그지없었다. 다음날인 30일에도 월드컵에 대한 관심이 극대화된 상황에서 결승전이 열린 탓에 극장가는 평소보다 한산한 편이었다. 평소 같으면 주말 이틀 동안 서울의 총관객 수는 35만명 정도였으나, 6월의 마지막 주말 서울의 극장을 찾은 발길은 29만여명에 그쳤다. 게다가 대학의 방학이 시작되면서 본격적인 여름시장이 열렸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수치는 더욱 저조하다. 예년의 여름 시즌 서울 주말관객 수는 40만명에 달했기 때문이다. <챔피언>의 부진에 관해서는, 관객의 기대 수준과 영화가 큰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친구>처럼 다소 과장됐지만 화끈한 이야기를 기대했던 관객이 김득구의 삶을 차분하게 뒤쫓는 이 영화에서 실망감을 느꼈다는 얘기다. <챔피언>이 애초 예상보다 저조했다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기대 이상의 선전을 펼쳤다. 서울 35개, 전국 83개 스크린을 통해 6월28일 개봉한 이 영화는 4일까지 서울 19만, 전국 37만5천명의 관객을 불러들였다. 이미 첫주 성적만으로도 <이웃집 토토로>(서울관객 12만8900명)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4만8900명)보다 월등히 높은 흥행성과를 올렸다. 일본 애니메이션으로서는 지방에서도 예상보다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이 작품은 어린이들보다 20대의 젊은 관객이 집중적으로 찾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월드컵 열풍이 지나가기 시작한 7월 초의 극장가에 최대 변수로 떠오르는 영화는 <스타워즈 에피소드2: 클론의 습격>이다. 이례적으로 수요일인 7월3일 밤부터 극장의 문을 연 이 영화는 평일 이틀(3일은 1회만 상영) 동안 전국에서 10만명의 관객을 불러들였다. 예매성적도 다른 영화들에 비해 압도적이어서 서울 50개, 전국 150여개 스크린을 통해 본격적으로 개봉되는 5일부터는 무시못할 관객몰이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바야흐로 크고, 세고, 비싼 영화들이 무차별적인 공세를 펼치는 여름 시즌이 시작된 것이다. 문석

<서프라이즈> 음악감독 박정원

첫사랑의 느낌이 딱 이랬을 것이다!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노래한 의 제목 그대로, 소녀와 여인 사이에서 묘한 떨림을 내는 ‘마리’의 목소리는 음악감독 박정원(40)의 귀와 가슴으로 예민하게 파고들었다. 50여명이 모여든 오디션장에서 열에 아홉이 R&B창법으로 박화요비, 휘트니 휴스턴, 머라이어 캐리, 카디건스 등을 불러젖힐 때, ‘마리’는 조금의 기교도 없이 어린아이 같은 목소리로 지정곡 (진추하 노래)를 소화해냈다. 그 순간 박정원의 가슴속에는 ‘와! 멋있다’는 감탄이 절로 터져나왔다. 노래를 불러줄 가수가 결정됐지만, 주제곡 는 더디게 제 모습을 드러냈다. 진작에 작곡을 마친 뒤에도, 가사가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 공모된 여러 편의 가사 중에서 영화의 분위기에 맞는 걸 찾기가 힘들었다. 스무편 정도를 반려하고 난 뒤였나. 문득 가사 한줄이 눈에 띄었단다. “살금 살금… 다가가도 괜찮은 거니….” 그 말투가, 내용이 어찌나 조심스럽고, 예쁘던지 입가에 웃음까지 걸렸다. 를 부르게 된 임성훈 역시 그 음색이 맑고 상큼할뿐더러, 수줍은 느낌을 간직한 외모 덕분에 박정원의 레이더망에 포착된 케이스. 오디션에서 지정곡으로 쓰였던 는 분위기가 잘 맞아 애초에 영화에 직접 쓸 생각이었으나 대만 매니지먼트먼사에서 개사를 반대하는 바람에 무산됐다고. 음악작업 전, “단서가 되는 한 가지의 느낌”을 찾기 위해 박정원은 여러 편의 코믹멜로영화를 참조했다. 그러다 푼수끼 가득한 이요원의 캐릭터가 멕 라이언과 닮아 있음을 깨닫고,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등을 통해, 상큼하고 풋풋한 이미지를 악보 속에 벤치마킹했다. “일단 영화가 예쁘잖아요. 음악도 그렇게 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신선하고 예쁘게….” 박정원의 특기는 무엇보다 ‘가벼움’이다. 그는 칙칙하고, 무겁고, 진한(그의 표현이다) 음악, 과격한 음악을 젤 싫어하고, 그의 말마따나 젤 못한다. 그래서 코드를 써도 무조건 마이너보단 메이저다. 인간의 희로애락을 표현하기엔 피아노만한 악기가 없다고 하면서도, 그의 전공은 베이스 기타다. 이미 중학교 때 진로를 결심한 그는 귀가 상할까봐, 등교길에 큰소리로 트로트를 틀어주던 버스기사 아저씨와 충돌한 웃지 못할 추억도 가지고 있다. 대학 때 다양한 그룹사운드를 활동을 통해 퓨전재즈 음반을 내기도 한 그지만, 당시 너무 투쟁적인 자세를 견지하는 통에 사람들과 적잖은 갈등을 빚기도 했다고. 지금은 어느 때보다 즐기면서 음악을 하는 중이다. 영화에 앞서 드라마음악의 연이은 대박(<가을동화> <겨울연가>)이 그에게 많은 자신감을 실어준 것도 여유로움의 큰 이유가 됐다. 앞으로 제작될 국내 애니메이션에도 보폭을 넓힐 예정이라는 박정원은, 끝으로 “창작은 정보가 아니”라며, 확산되는 음악 무료 다운로드 사이트의 폐해를 경고했다.글 심지현 simssisi@dreamx.net /사진 오계옥 klara@hani.co.kr 프로필 → 1963년생·동아대학교 관광경영학과 82학번 → 대학 재학 중 그룹사운드 ‘평균율’, ‘허니문’ 등에서 베이스 기타리스트로 활약하며 음반을 내기도 함 → 3인조 그룹 ‘모노’로 활동 → 드라마 <종이학> <가을동화> <겨울연가> 등의 음악 맡음 → 영화 <댄스댄스> <서프라이즈>의 음악감독

문제적 감독 4인의 차기작 맛보기 [8] - 민규동 ①

사라진 에우리디케를 찾아 명부로 내려간 오르페우스가 그를 실어다준 뱃사공과 거역할 수 없는 사랑에 빠졌다면? 페넬로페가 기다리는 고향으로 상처투성이 몸을 이끌던 오디세우스가 어느 섬의 공주에게 돌연 마음을 빼앗겼다면? LJ필름(이승재 대표)에서 제작을 준비하고 있는 민규동 감독의 새 영화 <솔롱고스>는 신화 속 연인의 또 다른 딜레마를 상상한다. 무지개라는 뜻을 지닌 제목 ‘솔롱고스’는 몽골인들이 동경을 담아 한국을 일컫는 말. 그러나 <솔롱고스>의 주인공 민식에게 무지개의 땅은 몽골이다. 오케스트라의 화음에 몰입하지 못하는 청각 때문에 바이올린 주자의 일자리를 잃고 인생 중턱의 벼랑에 봉착한 민식의 말라붙은 마음은 몽골의 초원을 무턱대고 열망한다. 이제 무심한 침묵을 친밀하게 공유할 수 있는 누이 같은 아내와 떠난 오랜만의 여행. 푸른 초원에서 아련한 희열을 맛보고 있는데, 무엇 하나 숨길 수 없어 보이는 벌판에서 아내 만옥이 홀연히 사라진다. 그가 멀리서 흔들리는 어느 유목민 소녀를 바라보고 있던 짧은 순간에. 어쩌면 그의 무의식이, 아내를 포함해 그가 알아온 세계의 완전한 무화를 은밀히 꿈꾸던 그 순간에. 필사적인 노력에도 만옥의 종적은 묘연하고 민식의 죄책감은 강박이 된다. 끊긴 현을 잇기 전에는 어떤 연주도 할 수 없는 음악가처럼 민식은 모든 삶을 유예하고 행방불명된 아내의 자취를 더듬는다. 그러나 애타게 아내를 찾는 남자와 그의 여정에 길잡이가 되는 유목민 소녀 침게는 아주 이상한 사랑의 포로가 된다. 그들은 서로의 곁에 머무를 이유를 잃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해 남자의 아내를 찾아 초원을 헤맨다. 민규동 감독은 2001년 여름과 가을, 두 차례 몽골 여행을 통해 <솔롱고스>의 트리트먼트와 이야기를 완성했다. 7월의 첫 번째 여행에서 알게 된 몽골 소녀와 7월에 스쳐갔다가 10월에 다시 만나 그가 유목민 생활을 체험할 수 있도록 도와준 아가씨의 기억은 주인공 침게의 초상 속에 하나로 녹아들어 있다. 장르영화로서 <솔롱고스>는 말할 나위도 없이 광야의 바람 냄새가 물씬 나는 스케일 큰 로맨스지만, 속내로 들어가면 거침없는 판타지다. “<솔롱고스>는 아마도 두개의 판타지와 관련지을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저 푸른 초원 위에’라는 표현으로 요약되는 환상이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카피의 호소력에서 보듯이 좁은 땅에 갇히고 일에 눌려서 사는 우리에게는 막연하지만 뿌리 깊은 탈출욕구가 있다. 또 하나는 새로운 사랑에 대한 판타지다. 여행이 우리의 마음을 흔드는 것은 낯선 세상, 멋진 풍경에 대한 기대보다 예상 못한 사랑을 선물받을지 모른다는 가능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 판타지는 결혼한 남자들의 마음에 그림자처럼 서려 있는 죄의식과도 고리를 맺는다. 배우자의 대안으로서가 아니라 그저 새로 찾아오는 감정, 설득할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는 감정에 관한 이야기다. 한편 실종된 이후 민식의 아내는 영화에 긴 시간 동안 등장하지 않지만, 그녀의 존재감은 점점 짙어진다.” 단편들과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를 통해 민규동 감독이 애착했던 사춘기는 그렇다면 이제 추억이 된 것일까? 아니, <솔롱고스>에서도 삶의 통과의례는 계속된다. <여고괴담2>의 소녀가 다른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 죽음의 문턱을 넘었다면, 조금 더 지친 <솔롱고스>의 30대 남자는 초원으로 떠난다. “예민함과 정열을 상실한 민식은 열아홉살의 침게와 함께 두 번째 사춘기를 나는 것이다.” 그리고 민 감독은 아내를 향한 진심이 새로운 사랑에 대한 진심으로 남고 마침내 거짓의 힘을 빌리지 않고 욕구를 실현시키는 <솔롱고스>의 판타지가 사춘기의 고통을 정면으로 극복한 용감한 자가 받아 마땅한 선물일 거라고, 아주 공명정대한 주석을 덧붙인다.

문제적 감독 4인의 차기작 맛보기 [7] - 이재용 ②

"우아하고 에로틱한 사랑 이야기" -어떤 영화인지 한마디로 말한다면. =요부와 바람둥이와 정절녀가 벌이는 사랑게임이라고 하면 될까. 기본적으로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덜 사랑하는 사람이 권력을 갖는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 사랑보다 게임을 벌이는, 사랑에 병든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축이고 덧붙여 그 시대 조선이라는 변방 유교국가에서 태어난 사람들의 비애 같은 게 담기면 좋겠다. 또 중요한 건 에로틱하려고 한다. 꼭 벗어서가 아니라 에로틱함은 한복에도 있고, 버선발에도 있고, 목에도 있다. 여러 면에서 우아하고 에로틱했으면 한다. 아주 통속적인 이야기가 있고 에로틱한 코드가 있고. 그 안에 내가 하고 싶은 걸 넣을 거다. -원작이 <위험한 관계>라면 현대극으로 꾸밀 수도 있을 텐데, 왜 사극으로 가는가. =이 영화는 사극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했다. 사극 중에 맘에 드는 사극이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미술적, 이야기적으로 멋있는 사극을 해보고 싶었다. <정사> 끝내고 두 번째 영화를 고르던 중, 바흐의 바로크 음악 듣다가 우리 사극에 저런 음악이 들어가면 어떨까 싶었다, 보통 사극하면 대금, 가야금이 나오고 방자와 향단 스타일의 유머가 등장하고, 당파싸움이나 여인의 한이 나온다. 꼭 안 그래도 되지 않을까. 그 궁금증에서 출발했다가 전에 봤던 스티븐 프리어즈 <위험한 관계>가 떠올랐다. 남자 여자 사랑 배신 음모 퇴폐적 정서 등등, 그런 게 다 담긴 동서고금을 막론한 이야기였다. 그때부터 다듬은 아이템이다. -각색이 힘들지 않았는가. =이 영화의 출발점은 고증이다. 제대로 고증해내면 그게 더 현대적 감각에 맞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흔히 말해져온 한국적인 미, 한국적인 정서 같은 걸 잘 아는 세대가 아니다. 막연한 느낌만 있는 세대다. 그런 내가 한국적인 미를 담아내려고 하는 게 아니다. 그보다 내 궁금함이다. 한국적인 게 뭔지, 그동안 주입받은 한국 문화와 역사를 의심해보는 데서 출발하는 거다. 그것도 한국인이라서 하는 게 아니고. 단지 내가 여기서 낳고 자라서다. 그 때문에 열등감도 있고, 그 열등감을 다스리는 방법일 수도 있다. 또 우리 사극 중에 사대부들의 일상을 다룬 게 없는 것 같다. 왕실 얘기 아니면, <뽕>류의 해학극이거나, <춘향전>처럼 양반과 상놈의 만남을 다룬 것들이었다. 조선적인 이야기가 사대부 사회 안에 있을 텐데, 그걸 찾아보려 한다 그래서 SF영화를 찍는 것 같다. -스타일이 두드러졌던 <정사>나, 캐릭터와 일상사를 중시한 <순애보>와 비교해보면 이번이 꽉 짜인 드라마를 전달하는 첫 영화인 것 같다. =드라마를 전달하는 데 자신이 없지는 않다. 오히려 튼튼한 원작이 있다는 게 듬직하다. 그로 인해 내 이야기를 더 넣을 수도 있고. -같은 원작의 여러 영화가 있었다. 어떤 게 가장 좋았는가. =스티븐 프리어즈 것이 제일 좋았다. 원작에 충실하고, 대사의 맛이 살아난다. 무엇보다 배우들 연기가 압권이다. 로제 바댕 것은 재미없어 보다 말았다. 미국쪽 평을 보니까 <위험한 관계>의 글렌 클로즈는 사자처럼 연기했고, <발몽>의 아네트 베닝은 매춘부처럼 했다고 하더라. 미국적 시선인지 몰라도 맞는 말 같다. 이 영화에서 조씨부인은 글렌 클로즈 같을 거다. 예쁜 글렌 클로즈. 글렌 클로즈가 예쁘지는 않지 않은가. 남자도 <위험한 관계>에서 존 말코비치가 인상적이었다. 이 영화를 위해 몇몇 남자 배우를 떠올려봤다. 아마도 그중에서 여자 쓰다듬을 때 손이 예쁜 남자를 고르게 되지 않을까 싶다. 시놉시스 유교사상과 신문화가 충돌하던 18세기 말 영정조 르네상스기의 조선. 조씨부인은 어려서부터 총명해 어깨 너머로 사서삼경을 깨쳤지만, 여자로 태어난 것에 한과 불만을 지니고 있다. 겉으론 사대부 현모양처의 삶을 살면서, 남몰래 남자들을 정복해가는 사랑게임을 즐긴다. 그녀의 사촌동생 조원은 시, 서, 화에 능하지만, 권위적인 주류 가치관을 비웃듯 고위관직을 마다하고 뭇 여인들에 탐닉한다. 어릴 적 첫사랑의 대상이기도 한 사촌누이 조씨부인과는 서로에 대한 감정을 숨긴 채 사랑게임의 은밀한 동업관계를 유지한다. 어느 날 조씨부인은 남편의 소실로 들어올 막 피어나는 꽃봉오리 같은 어린 소옥을 범해줄 것을 조원에게 부탁한다. 그러나 조원의 마음은 9년간 수절하며 열녀문까지 하사받은 과부 숙부인에게 가 있다. 나름의 신념을 갖고 천주교 모임에도 나가는, 학처럼 고고한 숙부인을 유혹하려는 조원은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문제적 감독 4인의 차기작 맛보기 [6] - 이재용 ①

이재용 감독의 차기작 제목은 <스캔들-조선시대 남녀상열지사>다.여기서 ‘조선시대’와 ‘남녀상열지사’라는 말은 서로 모순이다. 인터넷 검색엔진에 두말을 함께 처넣으면 화면에 뜨는 사이트의 거의 전부가 이런 내용이다. 조선시대 학자들이 고려 속요들을 악보에 수록하면서 상당수의 노래를, 남녀상열지사를 다뤘다는 이유로 배제했다는 것이다. 마치 ‘음란폭력성매체 대책 시민협의회’(음대협)와 영화 <거짓말>을 한데 묶어놓은 것 같다. 조선시대 엄격한 유교윤리로 남녀상열지사가 금기시됐겠지만, 실제로도 그랬을까. ‘조선시대 남녀상열지사’라는 두 단어의 조합은 우리의 익숙한 관음증을 유발시킨다. 창작물에 관음증이 없다면 얼마나 무미건조할까. 보이지 않는 것, 숨기려는 것 다 빼고 보이는 것, 말해주는 것만 가지고 만든 이야기가 재밌기 힘든 건 당연하다. <스캔들…>은 조선시대에 대한 이재용 감독의 관음증의 소산이다. 자기 시대뿐 아니라, 전 시대의 남녀상열지사까지 기록에서 배제할 정도로 덮으려는 게 많았던 조선사회였던 만큼 이 감독의 관음증은 더욱 정당해 보인다. 마침 그가 들추려는 건 조선시대 치부의 한가운데인 사대부 사회의 성문화다. 수백년의 시차를 넘어서는 관음증을 채워 담을 이야기 틀을, 이 감독은 독특하게도 18세기 말 프랑스 소설에서 끌어왔다. 1782년에 발표된 쇼데를로 드 라클로의 서간체 소설 <위험한 관계>가 이번 영화의 원작이다. 스티븐 프리어즈 감독의 <위험한 관계>(1988), 밀로스 포먼의 <발몽>(1989), 로저 컴블의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1998), 더 거슬러올라가 로제 바댕의 59년작 <위험한 관계>까지 4편의 영화가 모두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200여년 전 발표 당시 초판 2천부가 매진돼 그해에 8쇄까지 찍은, 당시로서 초베스트셀러였던 이 소설은 시공간을 초월해 사람들의 관심을 끌 만큼 불순하고 위악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다. 요부와 바람둥이는 사랑과 게임의 모호한 경계선을 드러내는 데 적격인 캐릭터다. 그래서 그들은 바보만큼이나 자주 동서고금에 이야기의 주인공이 돼왔다. 이 소설에서는 백작부인 메르테유라는 요부와 발몽 자작이라는 바람둥이가 함께 나온다. 그 둘이서 정숙한 유부녀 트루벨을 타락시키는 게임을 벌인다. 사랑보다 사랑에 내재한 권력관계에 몰두하고 그걸 이용하는 인간들의 불경한 이야기지만, 소설은 이들이 지닌 허약한 구석을 들추어낸다. 상처받기 싫어 사랑에 빠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그 모습에 연민을 보낸다. 소설의 배경은, 발표 당시와 동시대인 혁명 직전의 프랑스다. 그때 조선사회는 정조 재위기간이었다. 이 감독은 시간 배경은 그대로 두고 공간만 이동시켰다. 그러면 엄격한 유교 질서 아래, 프랑스 귀족들의 사교모임은커녕 남녀가 말도 못하고 유별하게 지내야 했던 조선 땅에서 이런 호사스럽고 불경한 게임이 가능했다는 걸까. 이 감독은 자신있게 말했다. “사교계가 없었고, 남녀의 유별이 있다는 게 이야기를 옮겨오는 데에 단점이 되지 않는다. 되레 그런 금기의 벽이 이야기 전달에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그 벽이 무너질 때도 더 세게 느껴질 것이고.” 이 감독에 따르면 당시 남녀가 소통하는 방식은 이런 식이다. 조씨부인과 조원은 사촌지간이어서 대화가 자유롭다. 그러나 조원이 숙부인을 포함해 다른 여자와 말을 할 때는 발을 치고 하든가 아니면 하인을 전언자로 삼는다. 이 감독 말대로 이런 게 더 긴장감이 있을지도 모른다. 천주교 모임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숙부인은 아직 독실한 신자는 아니지만 불쌍한 사람들을 돕겠다는 마음에서, 또 외로움을 달래는 한 방편으로 천주교 모임에 나간다. 숙부인을 노리는 조원은 그 사실을 알고 같은 모임에 나가 독지가 행세를 한다. 춘화나 가채 등은 조선시대 부르주아였던 사대부 사회의 문화를 훔쳐보는 데 열쇠 같은 구실을 한다. 사대부들 사이에 중국이나 일본에서 들어온 최신판 춘화가 돌고, 부인들도 “그것”이라는 대명사로 춘화에 대해 잡담을 나눈다. “요즘은 조선에서도 이런 걸 만든다더라” 하면서 호기심을 갖기도 한다. 가채는 부잣집 마님들에게 인기가 치솟아, 집값만큼 뛰어서 영조 때 사용을 금하기도 했다. 한 부인이 다른 부인에게 이걸 선물하면서 “시골 처녀들 머리카락으로만 만든 최상품”이라고 소개한다. “나라에서 금하는 걸 사대부집 여인이 어떻게 받겠느냐”고 되물으니까 “유행과 제도는 돌고 도는 건데 보관하셨다가 나중에 긴요하게 쓰시라”고 말한다. 이런 디테일들의 역사적 사실성에 대해서도 이 감독은 자신있다는 표정이다. 고증의 정확함을 위한 자료조사에 상당한 정성을 쏟은 탓이다. 그는 의상부터 가구, 주택까지 당시 사회의 시각적 재현에도 큰 의미를 두고 있다. 그 때문에 컴퓨터그래픽이나 군중신 같은 게 없음에도 제작비를 최소한 40억원으로 잡고 있다. “당시 춘화에 나오는 여성들의 의상을 보면, 품이 크게 늘어지기보다 팔과 어깨에 꽉 달라붙는 ‘쫄티’에 가까웠다. 그때 여자들도 자신의 몸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겠는가. 주택도 한옥은 다 비슷한 형태인 것으로 알지만, 이언적의 ‘독락당’ 같은 곳에 가보면 대문 바로 안에 벽이 나온다. 그 벽을 돌아가면 마당이 나오고 집채가 사선으로 들어서 있다. 관직에서 밀려난 뒤 애첩을 두고 나 혼자 즐기겠다는 주인의 뜻이 그대로 담겨 지어진 것이다.” 이런 식으로 각색될 디테일의 개연성 못지않게 관심이 가는 건, 시대 배경이 정조 때라는 점이다. 실학과 예술이 꽃피고, 봉건적 신분구조를 깨려는 정조의 의지가 드높았던 그때를 두고 어떤 사가들은 조선이 자생적으로 근대화할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 도사린 보수반동의 벽은 쉽게 무너질 것이 아니었다. 조선 땅에 여자로 태어나 애도 못 낳는 조씨부인의 자신과 사회에 대한 염증이나, 관직에서 출세하기를 일찍 포기한 조원의 냉소적 세계관은, 희망적인 조짐에도 불구하고 봉건체제의 불감증이 쉽게 치료되지 않을 것임을 생리적으로 감지한 결과일 수도 있다. 이 감독도 이 점을 중요하게 보고 있었다. “그들의 냉소적, 퇴폐적인 세계관이 정조 때라는 시대 배경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말대로 200년 전의 남녀상열지사에서 동시대적인 느낌이 전해지기를 기대해도 무리가 아닐 듯하다. <스캔들-조선시대 남녀상열지사>는 7월 말까지 캐스팅 완료하고 9월 중 촬영에 들어가 내년 봄 개봉예정이다.

문제적 감독 4인의 차기작 맛보기 [4] - 임상수 ①

걸ː다- ①(흙이나 거름이) 기름지고 양분이 많다… ④(말솜씨가 험하여) 거리낌이 없고 푸지다. 임상수 감독의 영화를 보고 있으면 이 단어가 떠오른다. 미혼녀 세명이 나누는 거침없는 성과 사랑의 이야기 <처녀들의 저녁식사>와 아웃사이더 청춘들의 적나라하지만 서글픈 방황기 <눈물>, 이 두편의 영화의 느낌은 정말 걸다, 그 자체였다. 비단 주인공들의 ‘발랑 까진’ 대사뿐 아니라, 끊임없이 출렁이는 핸드헬드 카메라 또는 디지털 카메라로 포착된 이미지까지 미화되거나 포장되지 않은, ‘거리낌이 없고 푸진’ 그것이었다. 그의 신작 <마지막 연애의 상상>(가제) 또한 그렇게 ‘건’ 영화가 될까. <버스, 정류장>의 이미연 감독 말마따나 <처녀들의…>의 처녀 중 하나인 순(김여진)의 결혼생활을 그리는 듯한 이 영화는 엉뚱하게도 정지우 감독의 <해피엔드>로부터 시작됐다. “극장에서 그 영화를 보고 있는데, 옆의 아줌마들이 너무 흥미진진하게 보더라. 아, 사람들이 간통을 꿈꾸거나 즐겁게 받아들이는구나. 그래? 그렇다면 내 버전으로 ‘간통영화’를 찍어봐, 하는 생각을 했다.” 그때부터 자신만의 스타일과 주제를 녹여내는 ‘간통영화’를 생각하던 임 감독은 “겉으로는 그럴듯하지만, 실은 지리멸렬한 주변 사람들의 결혼생활들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들을 발전시켜” 나갔다.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호정은 나름대로 반듯한 변호사를 남편으로 뒀고, 입양했지만 너무나 사랑스런 아들을 두고 있는 주부. 한때 무용가를 꿈꿨으나 포기한 뒤 그 언저리를 맴돌고 있다는 점만 빼놓으면 별 특별한 것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호정을 둘러싸고 있는 관계들의 이면을 바라보면, 그녀의 속이 편할 수만은 없다. 남편 영작은 젊은 여인과 바람을 피우고 있고, 시아버지는 허구한 날 술을 마시다 간 기능이 정지됐으며, 시어머니는 초등학교 동창생과의 정사를 나누고 있는데다 아이는 입양아라는 사실 때문에 혼란을 겪고, 옆집 열일곱 소년은 그녀를 뜨거운 눈길로 스토킹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 영화를 ‘임상수만의 간통영화’로 만드는 점은 코믹하다고까지 할 수 있을 정도의 뒤얽힌 관계설정만이 아니다. 호정을 포함한 영화 속 모든 인물들이 사건의 전개에 따라 각기 극한적인 상황을 맞게 된다는 점, 그리고 그 울림이 사회적 맥락에까지 가닿는다는 점이야말로 이 영화를 다른 ‘간통영화’와 구별짓게 한다. 일종의 파국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영화의 결말은 외부의 영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인물들의 개인사와 상호관계 속에서 배태된 결과물이다. 우리 대다수의 그것과 비슷하게도 사랑과 미움, 용서와 분노, 갈망과 무관심 등이 뒤얽힌 호정네의 일상이 훗날 엄청난 비극을 배태하는 강고한 고리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때문에 현재 최종적인 마무리 작업만 남겨놓고 있는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읽는 심경은 묘하다. 아찔한 현기증과 지극한 평온함이 뒤섞여 심사가 복잡해진다. 사실, 임상수 감독에게 일상과 파국이라는 대조적인 상황은, 최소한 한국사회에서 그리 멀리 있지 않다. 어느 조용한 아침 한강에선 다리가 동강나고, 바닷가로 캠핑을 떠난 유치원생들은 끔찍한 화재사고를 만나는 등 ‘충격적이고 치명적인 일’들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그에게 이곳은 “끔찍하면서도 매력적인 사회”다. 이 영화 속의 관계들도 클로즈업으로 당겨 볼 때는 평범한 일상에 불과했지만, 렌즈를 줌 아웃함해 바라봄에 따라 점차 치명적인 파국으로 치닫고 있음이 분명해진다. 하지만 임상수 감독은 이같은 일상과 파국의 교차를 표현하기 위해 유쾌한 우회로를 설계하고 있다. “그런 슬프고 비극적인 이야기를 어깨에 힘주고 그리는 대신, 겉으로는 태연한 척 유머러스하고 경쾌하며 섹시하게” 그려낼 계획이란다. ‘치명적’ 느낌의 결말조차 일상의 연장선상에 놓인 듯 보이게 말이다. 이는 영화 안에서 스며나오는 슬픔이 관객의 가슴에 더 절실하게 와닿을 수 있도록 하려는 그의 미학적인 방법론이 반영된 탓이기도 하다. 알코올중독자 치료소에서 나오는 도중, 며느리에게 술 한잔 사달라고 조르는 시아버지의 모습이나 입양됐다는 사실을 자신에게 왜 가르쳐줬냐고 엄마에게 투정부리듯 묻는 아들의 표정 등은 분명 관객의 입가에 살가운 웃음을 머금게 할 듯하다. <처녀들의…>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를 여성주의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도 가능할 듯싶다. <…상상>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들이 세상을 대하는 태도는 상당히 쿨하며 훌륭하기까지 하다. 호정은 남편의 외도 사실을 뻔히 눈치챘으면서도 친구에게 “뭐 유부남도 연애할 자유는 있는 거 아냐?”라 말하며, 병한은 며느리와 아들 앞에서 “나, 요새 생전 처음 오르가슴이란 걸 느껴… 얘야, 인생 솔직하게 살아야 되는 거더라”라고 외도 사실을 툭 털어놓는다. 임상수 감독은 “시나리오를 읽은 한 여성이 ‘당신이 그린 여자들은 당신의 환상이다. 실제로 여자들은 그렇게 훌륭하지 못하다’라고 말하더라. 그럴 수 있다. 사실 시나리오상의 남자들을 현실적으로 그리려고 노력했다면, 여자들에게는 그들에 대한 내 바람 따위를 많이 불어넣었다. 난 그게 더 멋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 이번 영화에서 임상수 감독이 가장 신경쓰는 점은 배우와의 호흡이다. 데뷔작 <처녀들의…>를 만들 때는 신인 감독이었던 탓에 배우들과의 관계 속에서 놓치고 지나친 것이 상당히 많았고, <눈물> 때는 신인 배우들을 기용했기 때문에 배우의 피드백을 충분히 받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풀겠다는 이야기다. “이번 영화는 카메라고 조명이고 편집이고 다 잊어버리고 배우들과 씨름하면서 연기로 승부할 거다.” 임 감독은 캐스팅이 마무리되면 배우들과 충분한 사전토론을 통해 함께 캐릭터를 만들어 나가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런저런 정황으로 미뤄볼 때, <…상상>은 전작들보다도 더 ‘걸다’는 느낌을 주는 영화가 될지 모른다. ‘거리낌이 없고 푸질’ 뿐 아니라 ‘기름지고 양분이 많은’ 영화 말이다. <…상상>은 초가을부터 촬영에 들어가 올해 안에 촬영을 마치고 2003년 초 개봉될 예정이다.

문제적 감독 4인의 차기작 맛보기 [1]

그들의 촉수는 한창 예민하다. 빨간 속살이 드러날 만큼 부풀어올라 세상과 접촉하려고 안달한다. 감독 데뷔 2∼4년차, 장편 필모그래피가 1∼2편에 불과한 그들은 자기 영화세계가 완성돼 있지 않다. 그래서 모든 감각기관을 동원해 하고 싶은 말, 할 수 있는 말을 찾아나선다. 그들이 이제 막 뭔가를 찾았다며 들고와 씻고 다듬고 자르기에 바쁘다. 90년대 후반, 30대 신인감독들이 대거 나타나 빛을 발하면서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를 열었다. 감독을 세대별로 봤을 때, 40대 이상의 머리 부분은 작고 20대의 다리는 짧으면서 30대들의 몸통만 커진 이상발육 현상까지 나타났다. 이 30대 감독들은 80년대 한국 뉴웨이브 감독들까지 포함해 선배 세대에 젖줄을 대기 싫어한다. 장르를 중시하고, 그 안에 자기 이야기를 담으려 하는 이들은 작가와 장인, 그 사이 어디쯤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 시대를 들여다본다. 이들의 차기작이 궁금한 건, 단지 영화뿐 아니라 한껏 발기한 촉수로 낚아챈 이 시대의 모습을 보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7∼8명을 염두에 두고 접촉한 결과, 사냥터에서 돌아와 자신있게 포획물을 내놓는 감독이 임상수(40), 김지운(38), 이재용(37), 민규동(32) 네명이었다. 넷 중 임상수, 이재용, 민규동 셋의 차기작이 공교롭게도 일탈되거나 서로 어긋나는 사랑의 이야기였다. 셋을 한데 묶으면 아주 독특하면서도 밀도있는 ‘사랑에 대한 삼색 단상’이 될 것 같다. 임상수 감독은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다른 이성을 만나는 ‘콩가루 집안’을 다룬 <마지막 연애의 상상>을, ‘간통영화’라는 새로운 장르로 분류했다. 이재용 감독의 <스캔들-조선시대 남녀상열지사>는 요부와 바람둥이가 정절녀를 타락시키는, 그것도 조선시대에, 불순한 멜로다. 둘에 비하면 민규동 감독의 <솔롱고스>는 온전한 편이다. 30대 남자가 몽골에서 잃어버린 아내를, 몽골 소녀와 함께 찾아다니다 사랑의 전이를 겪는다. 결혼한 뒤 찾아온 ‘제2의 사춘기’에 경험하는 이 사랑을 성장의 연장선에서 다뤄나가는, 쉽지 않아 보이는 테마다. 김지운 감독은 단편 <커밍아웃>의 코믹호러, 옴니버스영화 <쓰리>에서 중산층에 대한 그로테스크한 스케치를 거쳐 정통 호러 장르로 옮겨가는 중이다. 이번 영화는 전통설화 <장화홍련전>을 현대판으로 각색한 <장화, 홍련>이다. 그는 <반칙왕> 같은 이전의 코미디에서도 공포와 대면하는 순간의 인간의 모습을 요긴한 실마리로 사용해왔다. 그게 정통 호러물로 옮겨가서 어떤 느낌을 줄지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아직 시나리오를 완성하지 못한 김 감독은 선문답하듯 머릿속 영화에 대한 단서들을 조각조각 던져줄 따름이었다. 독자들과 함께 맞춰나가는 수밖에.

홍콩 국제 영화&TV견본시, 홍콩 필름마트를 가다(2)

합작 혹은 메인랜드 진출의 교두보 웃통을 벗고 주판알을 튕기는 걸쭉한 상인들이 아니라 깔끔한 슈트에 마음속에 계산기를 품은 냉정한 바이어들이 분주히 오고가는 이 시장은 ‘영화’라는 상품을 ‘신뢰’라는 포장으로 파는 곳이다. 이 시장 저 시장을 메뚜기처럼 뛰어다니는 ‘보따리장수’나 일단 팔고보자는 식의 ‘야바위꾼’은 살아남기 힘든 곳이다. 또한 이 시장의 주소는 ‘홍콩’이지만 그 상품이 ‘메이드 인 홍콩’이냐, 아니냐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지난 20년간 하강곡선만을 그려온 홍콩의 영화시장은 쓸 만한 인재들은 죄다 해외로 떠나보내고 텅 빈 상태다. “값싼 오락성 영화나 붕어빵찍듯이 생산해내는 상태에서 이런 식의 전시성 행사에 돈을 쓰는 건 국내 영화발전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불만을 품고 있는 홍콩 사람들도 있다. ◀ 홍콩을 비롯, 중국 동남아시아 바이어들은 한국드라마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특히 아름다운 배우, 뛰어난 영상"이 가장 큰 경쟁력이라고. 물론 필름마트에 참가한 홍콩영화인들 역시 홍콩영화 자체부활에 대한 장밋빛 미래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영화를 파는 전시업체보다는 바이어들의 숫자가 월등이 많은 홍콩참여자들의 비례불균형에서도 나타난다. “홍콩 내에서는 더이상 희망을 발견할 수가 없다. 그래서 합작을 꿈꾸고 메인랜드(중국)로의 진출을 꿈꾸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에게 이런 마켓이 필요한 이유다”라고 3개국 합작영화 <쓰리>의 막바지 작업이 한창인 진가신 감독은 말한다. 실제로 필름마트가 열리는 기간에는 합작이나 해외자본 유치 등의 이유로 한국의 몇몇 영화사 대표들도 홍콩을 찾았고 영진위는 ‘아시아 영화네트워크 구축사업’을 위해 필름마트에 참여해 아시아의 다른 국가들과의 합작시 유통과 관세 및 지원시스템 등에 대한 케이스를 찾는 데이터베이스 작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물론 마켓의 입구에 전시해놓은 이소룡의 밀랍인형이나 대형화면을 통해 틀어대는 <해피투게더>, 천장을 대형스크린 삼아 머리 위로 수놓는 홍콩영화의 빛나는 장면들은 여전히 서극이나 오우삼, 왕가위가 만들어놓은 홍콩영화의 부흥기를 그리워하는 이들의 마음을 비춰보이고 있다. 하지만 홍콩은 영화라는 도박판에서 일확천금을 만져보겠다는 야심보다는 안전하고 확실하게 떨어질 ‘하우스비’에 더 관심이 많은 듯하다. 누구든 팔고 사세요, 택스(tax)는 프리(free)입니다. 하지만 우리를 당신들의 일에 소외시키진 말아주세요. 홍콩은 나라가 아니다. 도시다. 그것이 홍콩의 한계이자, 휘어질듯한 유연성의 힘이다.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 필름마트에서 만난 사람들 한국영화 해외 세일즈, 이들에게 물어봐 “보험도 얼마나 많이 들어놨는지 몰라요.” 한국영화를 들고 해외에서 뛰는 해외 마케팅 담당자들. 크게 상반기에 열리는 베를린영화제와 AFM을 시작으로 칸영화제, MIFED, 홍콩필름마트, 베니스영화제까지 일년의 2/3는 해외를 돌아다니다보니 이들의 목숨은 비행기가 쥐고 있는 셈이다. 본격적인 해외 세일즈의 시작을 <쉬리> 이후로 본다면 3, 4년 남짓한 기간에 비해 한국의 해외 세일즈, 마케팅 분야는 꽤나 대견한 성장을 이루었고 이들은 그 성장의 숨은 공로자들이다. 시네클릭아시아의 서영주씨는 1998년 일산창투에서 영화 해외업무를 담당하다가 3년 전인 2000년에 처음 회사를 차리고 해외업무를 시작했다. <번지점프를 하다> <조폭 마누라>, 최근 <챔피언>까지 크고 작은 영화들을 해외에 팔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2000년 칸 마켓에 들고나간 <박하사탕>. 워낙 좋은 작품인데다가 현지반응이 좋아 당시만 해도 무명이었던 회사가 다양한 바이어들을 만날 수 있게 해준 고마운 영화였기 때문이다. 시네마서비스 이용신씨는 뉴욕주립대 MBA에서 아트매니지먼트를 공부했고 마지막 한 학기를 미국 굿머신인터내셔널에서 인턴생활을 했다. 귀국 뒤 2000년부터 시네마서비스에서 일해온 그는 <시월애>를 들고 대만이라는 녹록지 않은 마켓에 뛰어들었던 일과 결국 그 영화의 리메이크판권을 워너브러더스에 50만달러에 성사시킨 순간을 잊지 못한다. 미로비젼의 남경희씨는 충무로 조명감독 남진아씨의 친동생. 국문학도였던 그가 영화판으로 떨어진 데는 언니의 영향이 없지 않았다. <텔미썸딩> <반칙왕>을 통해 해외업무의 ABC를 배웠던 그는 이번엔 중국영화 <크라이우먼>과 박진표 감독의 <죽어도 좋아>를 들고 홍콩으로 날아왔다. 강제규필름의 황병일씨는 우연한 기회로 이 일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시드니의 UTS에서 영화연출을 전공한 그는 강제규 감독의 조감독으로 강제규필름에 입사했다가 마침 해외담당자 자리가 비는 바람에 엉겁결에 일을 하게 된 케이스. 이제 겨우 1년을 넘긴 초보 세일즈맨이지만 <쉬리>부터 <오버 더 레인보우>까지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영화가 없을 정도다. 특히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전에 <블루>를 일본의 포니캐년에 20% 투자와 함께 프리세일 70만달러까지 총 20억원 넘는 딜을 성사시킨 것이 가장 뿌듯한 기억이다. 해외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폴 이라는 이름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픽처스 대표인 폴 이는 버클리대를 졸업하고 1, 2회 부산국제영화제 어드바이저로 일했고 3회 때부터 제1회 부산프로모션플랜(PPP)을 만든 장본인이다. 영진위 해외진흥부를 잠시 거쳐 지난해 명필름과 손잡고 본격적인 해외 세일즈 회사인 이픽처스를 설립했다. “한국 시장이 전세계 시장의 2%라는데 국내 시장에서 번 돈 이상을 외국에서 못 벌라는 이유가 없다”는 게 그의 믿음. 하지만 “모든 해외 마케팅의 발전은 내부에서 질높은 영화들을 만들어줄 때 가능한 것”이라며 좋은 영화만 있다면 기꺼이 목숨을 내놓고 비행기에 오를 거라고. 서영주 이용신 남경희 황병일 폴 이

<오스틴 파워3: 골드멤버> 세계 첫 시사

“Oops, Austin is Back!”과연 여름이 맞는지 의심스럽도록, 런던의 7월은 쌀쌀하기 짝이 없었다. 흐린 하늘은 수시로 비를 흩뿌리고, 늦가을처럼 서늘한 바람은 반팔 차림을 무색게 하는, 셜록 홈스의 추리극에 어울릴 듯 음산한 런던의 악천후. 런던 날씨의 변덕스러움에 익숙한 사람들은 바바리와 재킷을 여미며 걸음을 재촉하고, 이를 미처 예상치 못한 일부 관광객이나 체감온도에 아랑곳없이 멋을 낸 일군의 젊은이들만이 얇은 옷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풍경이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얇은 차림의 사람들이 많은 시내 중심가, 에로스 동상이 서 있는 피카딜리 서커스부터 레스터 스퀘어로 이어지는 길목은 런던 문화의 심장부라 할 만하다. 고급 쇼핑가와 대형 레코드점, 각종 뮤지컬 및 연극이 공연되는 극장가가 늘어선 이곳에, 대형 영화광고물을 내건 멀티플렉스도 자리잡고 있다. 최근 영국에서 개봉돼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는 <마이너리티 리포트>부터 <스타워즈 에피소드2: 클론의 역습> <레지던트 이블> 등의 포스터가 곳곳에 보이니, 블록버스터들이 경합을 벌이는 분위기에서 여름이 조금 느껴진다. 7월7일 저녁 7시30분, (적어도 영미권에서는) 이들 블록버스터 대열에 동참을 앞둔 또 하나의 기대작 <오스틴 파워3: 골드멤버>(Austin Powers in Goldmember, 이하 <오스틴 파워3>)의 첫 시사회가 레스터 스퀘어 부근 샤프츠베리가의 오데온 코벤트가든에서 열렸다. 3년 만에 찾아온 오스틴 파워의 세 번째 황당무계한 모험담을 보기 위해 세계 각국의 기자들이 모여들었고, 특별 초대된 일반 가족관객이 좌석을 남김없이 메웠다. 상영장의 불이 꺼지는 순간부터, 객석은 다시 한번 마음껏 웃어젖힐 만반의 채비를 차리듯 숨을 죽였다. 70년대 디스코타고 귀환한 오스틴 1편과 2편이 각각 90년대와 60년대를 오갔다면, 3편의 주무대는 디스코 리듬이 넘실대는 70년대다. 오스틴 파워는 미니 미와 함께 우주로 떠났다가 돌아온 닥터 이블을 체포한다. 트랙터 빔을 개발함으로써 미다스 행성을 녹여 지구를 물바다로 만들겠다는 새로운 음모를 막기 위해서다. 오스틴은 여왕에게 기사 작위를 받게 되지만, 경사스러운 날 정작 축하해줘야 할 아버지 나이젤이 보이지 않는다. 상심한 채 미녀들과 시끌벅적한 축하파티를 벌이는 오스틴에게 날아든 비보. 아버지가 골드멤버라는 악당에게 납치됐다는 것이다. 알고보니 골드멤버는 닥터 이블의 새로운 파트너. 골드멤버를 찾고 아버지를 구하려면 1975년의 디스코 클럽 ‘스튜디오 69’로 가야 한다. ‘스튜디오 69’에서 잠복근무중이던 옛 파트너 겸 연인 폭시 클레오파트라와 재회한 기쁨도 잠시. 오스틴과 폭시는 나이젤을 납치해간 골드멤버와 탈옥한 닥터 이블을 쫓아 도쿄의 이블 기지로 향한다. 속편인 만큼 <오스틴 파워3>는 전작에서 확보한 인물들의 친숙함과 웃음의 금맥을 바탕으로 자기 패러디를 서슴지 않으며, “더 크게, 더 낫게”(the bigger, the better)를 주문으로 삼아 캐릭터와 스펙터클을 보강했다. 우선 오프닝만 해도 그렇다. ‘유타주 어딘가’라는 자막과 함께 갑작스레 등장한 새규어의 질주. 섹스를 의미하는 속어로 이미 전작들을 통해 이 시리즈의 유행어가 된 섀그(shag)를 응용한 이름의 자동차가 화면을 가르면, 황토색 암벽이 펼쳐진다. 오토바이를 탄 여성과 이들을 쫓는 헬리콥터. 새규어에 타고 있던 오스틴은 슬로모션으로 한 바퀴 공중제비를 돌며 헬리콥터를 향해 총알을 날린다. <미션 임파서블2>의 패러디겠거니 하고 넘어가려는 순간, 헬멧을 벗는 두 남녀…?! 관객에게 깜짝 선물로 남겨 달라는 제작진의 간곡한 부탁이 아니더라도 스포일러임이 분명한 탓에 다 밝히긴 어렵지만, 할리우드 스타들과 내로라 하는 감독이 카메오로 합세한 이 영화 속 영화장면은 오스틴 파워의 이상한 나라로 향하는 문을 폭소로 열어젖힌다.녹슬지 않은 패러디와 농담 오스틴에 대한 영화를 찍는다는 일종의 자기 패러디로 천연덕스럽게 닻을 올린 영화는, 여전히 음악과 춤과 드라마의 버라이어티 쇼에 가깝다. 오스틴은 촬영장의 스탭들을 백댄서 삼아 특유의 익살스런 표정으로 춤추고, “이 영화는 바로 이 사람에게서 모조를 얻는다”며 영화음악에 참여해온 퀸시 존스를 소개하더니, 리허설중인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마주쳐 한바탕 대결을 벌인다. 가슴에서 총알을 발사하는 브리트니를 처치하고 “Oops, I did it again, Baby”라며 돌아서는 장면은 <오스틴 파워>의 엘리자베스 헐리와 브리트니의 노래 제목을 비튼 유머. 전작들은 물론 온갖 영화와 음악, 스타, 광고 등 대중문화의 이미지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패러디와 패스티시는 이 시리즈의 장기이기도 하다. 이같은 장기는 새로운 인물 구성과 70년대로의 귀환이란 설정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이야기의 새로운 핵심으로 등장하는 나이젤은, 오스틴 파워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60년대 영국 스릴러 시리즈의 주인공 해리 파머의 재현. 마이크 마이어스는 실제 파머를 연기했던 영국 배우 마이클 케인에게 나이젤 역을 부탁함으로써, 스타 카메오들이 그러했듯 그 자신의 이미지를 교묘히 변주한 웃음을 제공한다. 디스코를 좋아하고, 롤러스케이트를 탄 채 ‘스튜디오 69’를 휘젓는 골드멤버와 블랙스플로이테이션 영화의 여성 캐릭터를 되살려낸 폭시 클레오파트라는 70년대의 문화적 유산에 대한 오마주. R&B 그룹 데스티니스 차일드의 보컬인 비욘세 놀즈가 연기 경험이 거의 없음에도 섹시하면서도 박력 넘치는 여전사에 잘 녹아들었다. 닥터 이블과 미니 미, 스콧, 넘버2, 팻 배스타드 등이 전편에서 눈에 익은 얼굴로 친근함을 준다면, 신나는 디스코 무대에서 클럽 가수로 화려하게 등장하는 폭시와 골드멤버는 번쩍이는 의상, 조지 클린턴의 쿵짝거리는 리듬과 더불어 70년대 스타일에 대한 향수를 보탠다. “마이크 마이어스는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대중문화의 변화를 감지하는 바로미터를 갖고 있는 것 같다. 1년 반 전에 각본을 구상할 때, 이유는 모르지만 75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는데 영화가 개봉될 때가 되니 디스코 붐이 다시 일고 있다.” 2편과 3편의 프로듀서 존 라이언스의 말대로, <오스틴 파워> 시리즈의 대중문화에 대한 해박한 취향과 재해석에는 마이크 마이어스의 공이 크다.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같은 쇼와 <웨인즈 월드> <나는 도끼부인과 결혼했다> 등의 영화에서 코미디 감각을 다져온 마이어스는, 이 시리즈를 창조한 수장. 우드스탁과 퀸 등 팝음악에 대한 애정어린 패러디로 웃음을 끌어낸 <웨인즈 월드> 1, 2편에서 대중문화란 재료를 농담과 함께 버무려냈던 그는, 96년 <오스틴 파워> 시리즈로 더욱 본격적인 요리에 나섰다. 제임스 본드 등 그가 좋아했던 60년대 스파이영화에서 희화화되고 과장된 오스틴 파워의 캐릭터를 구상했고,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 출신의 작가 마이클 매컬러스와 공동으로 시나리오를 썼다. 장편 연출 경력이 거의 없는데다 실험적인 영화들을 주로 만들어온 제이 로치의 시나리오 해석을 높이 사 감독으로 발탁한 것도, 결국 그 팀 그대로 <오스틴 파워 제로>를 탄생시킨 것도 그의 고집이다. 무엇보다도 성적인 것에 관심이 쏠려 있고 멍청해 보이는 오스틴 파워의 느슨하고 분방한 매력을 수십가지 표정에 담는 그의 과장된 캐릭터 연기는 이 시리즈의 진정한 모조라 할 만하다. 전편에서 이미 오스틴과 닥터 이블, 팻 배스타드의 세 사람을 맡았던 그는 <오스틴 파워3>에서 골드멤버까지 1인4역을 소화해냈다. 더이상 <오스틴 파워>는 없다? 그 밖에 투항하려는 미니 미를 자루에 넣고 사정없이 휘두른다든가, 스모 선수가 된 팻 배스타드와 한판 승부를 벌이는 식의 과장된 슬랩스틱, 미니 미와 오스틴 파워가 짝을 이룬 절묘한 그림자 소극처럼 성적인 풍자와 화장실 유머까지 넘나드는 유머의 다채로움은, 원색적인 색감만큼이나 오색찬란한 웃음을 선사한다. “때로 어떤 완고함을 깨기 위해 불경스러워지기도 한다”는 감독 제이 로치의 말처럼, 모든 것을 희화화시키면서 웃어버리는 것. 네덜란드식 영어를 쓰는 골드멤버와 네덜란드에 대한 나이젤의 이유없는 적대감을 동시에 웃음거리로 삼아버리는 <오스틴 파워3>는, 경직된 진지함보다는 망가질 대로 망가지는 웃음이 솔직하고 즐겁다는 이 시리즈의 철학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결코 2, 3편을 만들 거라고 예상치 못했다는 <오스틴 파워 제로>가 5300만달러를 넘는 준수한 성공을 거두고, <오스틴 파워>가 2억달러 이상의 대성공을 거두며 3부작에 이를 수 있었던 것도, 망가지도록 적나라하게 웃어보자는 능청맞은 제안이 먹힌 덕분 아닐까. 세 번째 이야기에 이르는 동안, <오스틴 파워> 시리즈의 제작비는 1700만달러에서 3300만달러, 다시 6300만달러로 늘어났다. 할리우드 스타들이 <오스틴 파워3>란 이름만으로도 카메오에 응할 정도라니, 시리즈의 인지도도 그만큼 높아진 셈이다. 규모와 스펙터클을 키우는 게 늘 이야기의 부족분을 채우기 위한 것은 아니지만, 닥터 이블과 오스틴의 대결구도를 과장된 가족적 감상주의로 무마한 결말을 보자면 어쩐지 시리즈의 완결편 같은 맥빠진 여운이 남는 것도 사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아직 속편 계획이 없다는 <오스틴 파워> 시리즈가 이어질진 알 수 없지만, 적은 예산과 기발한 재기의 초심을 잃고 비대해지는 것보다는 전편을 능가하는 아이디어가 있을 때 돌아올 수도 있다는 불확실한 제작진의 대답이 오히려 믿음직하다.런던=황혜림 blauex@hani.co.kr▶ <오스틴 파워3: 골드멤버> 감독 제이 로치 인터뷰▶ <오스틴 파워3: 골드멤버> 배우 마이크 마이어스 인터뷰▶ <오스틴 파워3: 골드멤버> 배우 마이클 케인 인터뷰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톰 크루즈

2002년 7월3일. 톰 크루즈는 마흔살이 되었다. 나이 마흔에, 이 세계가 사랑한 ‘꽃미남’은 아랫니가 내려앉는 바람에 입을 다물기가 어려운 지경에 이르자 아이들처럼 교정용 ‘철도’를 깔았다. 1990년에 <탑건>으로 만났었던 미미 로저스와 한번, 2001년에 <파 앤드 어웨이> 로 만난 니콜 키드먼과 또 한번, 두번의 이혼경력을 등판에 백넘버처럼 달았다. 그리고 키드먼과의 사이에서 입양한 이사벨라와 코너라는 두 아이를 “테러와 범죄가 가득한 미국에서 키우지 않을 것”이라 공언하며 ‘극성아빠’ 티를 내고 다닌다. 그러나 불혹(不惑)의 나이 40살. ‘사물의 이치를 터득하고 세상 일에 흔들리지 않을 나이’에 톰 크루즈는 달린다. 철도 물고 달린다. 백넘버 보이며 달린다. 아이들을 매달고 달린다. “중년의 위기란… 적어도 나에겐 없어요. 나는 그냥 하던 대로 열심히 살고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성장할 뿐이에요. 물론 지난해는 일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이었어요. 하지만 난 쭉 축복받은 삶을 살았잖아요.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만난다는 건 축복이죠.” 애초부터 ‘국가대표 미국배우’ 톰 크루즈의 입에서 ‘불안하다’느니 ‘절망적이다’라는 부정적인 대답이 나올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개봉을 앞둔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포함해 그가 출연했던 지난 4편의 영화에서는 공교롭게도 비슷한 장면이 등장한다. 그가 가면을 쓰고 카메라를 향한다는 것. 위장전술 때문에 얼굴덮개를 썼던 <미션임파서블2>에서도, 가면을 쓴 채 난교파티장을 허둥대며 걷던 <아이즈 와이드 셧>에서도, 사고로 일그러진 얼굴을 기괴한 가면으로 가리던 <바닐라 스카이>에서도, 일시적으로 얼굴을 늙고 추하게 만드는 주사를 맞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도 그는 잠시 가면 뒤로 자신의 진짜 얼굴을 가린다. 지난 1년간 그를 괴롭히던 여러 소문들과 결혼 10주년의 니콜 키드먼과의 갑작스런 이혼발표. 공식적인 석상에서 늘 강인한 모습만 보여주던 그의 모습과 개인적인 트라우마로 시달렸을 실제모습을 영화의 설정과 연결시켜 생각하는 건 지나친 비약일까? 물론 그는 “그저 우연이었을 뿐”이라고 말하지만. “어떤 언론이 이번주에 페넬로페 크루즈와 내가 깨졌다고 말하면, 다음주에 다른 언론에선 우리가 바하마에 결혼식을 하러 간다고 말할 지경이었죠”. 수많은 추측성 기사에도 ‘그저 친구’라고 주장하다 직접 제작을 맡았던 <바닐라 스카이> 개봉과 함께 연인 사이임을 밝혔던 페넬로페 크루즈와의 스캔들은 그의 이혼소식만큼이나 언론의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그는 이런 언론의 호들갑에 관심이 없다. 죽음을 목전에 둔 아버지와 애증어린 조우를 하던 <매그놀리아>의 프랭키처럼 84년 암으로 죽어가던 아버지를 만난 것이 그 생애 아버지와의 두 번째 만남이었을 만큼 불우하고 가난한 성장기를 거친 톰 크루즈. 1962년 이혼녀의 아들로 태어나 미국과 캐나다를 오가며 15번의 전학을 거듭했던 학창 시절을 거친 그에게 사람들의 호기심어린 시선은 어쩌면 꽤나 익숙한 것인지 모른다. “난 늘 학교에서 ‘새로운 학생’이었어요. 학교를 옮길 때마다 나도 모르는 이상한 소문들과 추측들이 따라다녔죠. 나는 늘 보통 아이들과는 ‘다른’ 아이였고 당연히 파티에는 초대받지도 못했죠. 그러나 언젠가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는데…. 그럴 때마다 엄마가 냉정하게 충고했어요. ‘톰! 정신차려, 이게 바로 세상이야.’ 그래요. 그게 바로 세상이었어요.” 톰 크루즈가 “감독계의 마이클 조던”이라고 소개하는 스티븐 스필버그. 스필버그와 크루즈는 20년 전인 1982년 <위험한 청춘> 세트에서 데이비드 게펜의 소개로 처음 인사를 나누었다. “나는 그 순간 나 자신이 그와 일하길 원한다는 걸 알았어요. 하지만 이렇게 오래 걸릴진 몰랐죠.” 결국 몇번의 스침 뒤에 운명의 끈은 짝을 찾았다. 그가 스탠리 큐브릭의 유작 <아이즈 와이드 셧>을 찍고 스필버그가 를 찍어가는 동안 필립 K. 딕의 소설과 초벌 시나리오를 읽어내려가던 톰 크루즈의 머리속엔 단 한 사람밖에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이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지면 굉장할 거라 생각했죠. 그리고 스티븐 스필버그라는 필터를 통해 만들어질 이 영화를 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스필버그의 확답을 받아낸 그는 <바닐라 스카이>의 촬영을 끝내고 24시간 뒤, <마이너리티 리포트> 촬영장으로 달려갔다. “3살인가 4살 때, 침대보를 찢어서 낙하산 삼아 창고 옥상에서 뛰어내렸던 기억이 나요. 많이 다치고 깨지면서도 매일 나무에 오르는 그런 소년이었어요.” 그는 이번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촬영 때도 타고난 운동신경과 <미션 임파서블2>를 찍을 때 2천 피트 높이의 암벽을 안전장치 없이 7번이나 재촬영하며 오우삼을 질리게 했던 그 ‘완벽주의자’다운 풍모를 여실없이 드러냈다. 숨막히는 추격전과 자기부상자동차를 넘나들며 펼치는 아슬아슬한 액션씬을 스턴트맨 없이 연기하겠다는 톰 크루즈에게 스티븐 스필버그는 “제발 내가 ‘NO’ 할 수만 있게 해달라”고 말했을 정도다. 요즘 톰 크루즈는 검술연습에 한창이다. <커리지 언더 파이어>의 에드워드 즈윅이 연출하는 <마지막 사무라이>(The Last Samurai)를 위해 ‘사무라이’식 칼솜씨를 연마하고 있는것. 이제 고풍스런 19세기의 일본으로 날아갈 그는 얼마지 않아 다시 <미션 임파서블3>의 에단 헌트 요원이 되어 최첨단 장비들을 작은 슈트케이스 안에 챙기고 우리 곁으로 달려올 것이다. 누명을 쓰고 프리크라임 대원들에게 쫓기던 존 앤더튼이 계속해서 읊조리는 그말(“모두들 달린다”)처럼, 톰 크루즈는 오늘도 쉬지 않고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