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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2003)

[LA] 힐러리 클린턴 대 <뜨거운 커피>와의 전쟁

태풍 카트리나가 몰고온 재앙의 무게에 가려 빛을 잃었지만 미국 게임 업계에도 <뜨거운 커피>(Hot Coffee) 라는 작은 태풍이 강타했다. ’힐러리 클린턴 대 <뜨거운 커피>와의 전쟁’이라고도 알려진 이 사건의 직접적인 피해자는 유례없는 선정성과 폭력성으로 악명 높은, 그러나 PS2 최고의 인기 아이템으로 알려진 <그랜드 테프트 오토>(GTA: Grand Theft Auto) 게임 시리즈를 제작해온 록스타 게임사. (San Andreas)는 소프트웨어 심의 등급이 ‘성인 전용’으로 재조정되고, 일반 판매는 중지되었으며, 미 연방무역협회가 록스타 게임사의 모회사 공식 수사에 들어가는가 하면, 여차하면 의회 청문회까지 열릴지도 모른다고 하니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태풍의 발단은 의 모드판(Mod: modification의 준말로 정품 컴퓨터 게임의 변형판)으로 알려진 <뜨거운 커피>에 담긴 포르노에 가까운 노골적인 섹스신. 지난 6월 <뜨거운 커피>를 빌미삼아, 클린턴 상원의원이 청소년을 유해환경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게임 업계의 규율을 강화할 것을 제청하고 나서면서 게임 업계 전체가 긴장하기 시작했다. 일차적으로는 정품에 이미 숨겨져 있던 이미지들을 해독해서 인터넷 버전으로 만들었을 뿐이라는 모드 제작자와 이것이 해커의 순수한 창작물일 뿐이라는 록스타 게임사쪽의 해명이 엇갈려 누구에게 책임 소재가 있는지 관심을 모아왔다. 결국 수개월의 심사 결과, <뜨거운 커피> 외전의 선정성이 도마에 오르기 이전에도 특정 도시를 배경으로(샌 앤드레아스는 샌프란시스코가 배경이라고 알려져 있다) 무한대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1인칭 시점의 주인공을 내세워 폭력성과 범죄를 부추긴다고 여론의 따가운 비난을 받아온 시리즈쪽이 유죄 판결을 받고 말았다. 이번 사건이 록스타 게임사의 비운을 떠나 흥미로운 이유는 대중문화 등장 이래 끊임없이 변주되어온 ‘미디어 해악론’을 둘러싼 논쟁이 태풍의 핵 속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청소년은 미디어의 호환마마에서 보호되어야 할 순수하고 수동적인 대상인가 아니면 자유로운 해석 능력을 갖춘 주체적인 수용자인가라는 문제에서부터 텔레비전, 영화, 컴퓨터 게임, 인터넷에 이르는 대중 미디어의 고유한 표현의 특성을 고려한 윤리성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각종 모드판이 범람하는 디지털 미디어의 세계에서 진정한 창작자는 누구인가, 클린턴 전 대통령 집권 시절부터 보수적인(혹은 보호적인) 청소년 미디어 정책을 펴온 민주당의 색깔 논쟁까지 감안하면 <뜨거운 커피>의 여파는 쉽게 식지 않을 듯하다.

[스크린 속의 나의 연인]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때> 멕 라이언

나는 종종 ‘이영애가 누구야?’와 같이 뜬금없는 질문을 해서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곤 한다. 방금 <웰컴 투 동막골>을 보고 나오는 길이면서도 동행들과 대화하며 영화에 출연한 배우 이름을 말하려면 잘 떠오르지 않는다. ‘여일’이라는 여주인공 이름은 떠오르는데 ‘강혜정’이라는 배우의 이름은 좀처럼 기억할 수 없는 것이다. 또 다른 영화나 드라마에 출연한 동일한 배우의 얼굴마저 매번 구별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흔히들 길눈이 지독히 어두운 사람을 ‘길치’라고 일컫는 것처럼 나는 ‘배우치’임에 틀림없다. 주변 사람들이 쏟아내는 핀잔에 대한 나의 방어는 ‘그래도 황신혜는 알아’라는 궁색하기 이를 데 없는 변명이다. 그러면서 나는 ‘암, 배우라면 황신혜 정도는 돼야지. 왜 다들 그렇게 밋밋한 거야’라는 혼잣말로 자위를 하는 것이다. 영화에 텔레비전 드라마에 각종 광고까지 다중 출연하는 국내 배우들에 대한 사정이 그러하니 외국 배우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거의 유일하게 이름이며 얼굴을 또렷이 기억하는 여배우가 있으니, 그녀가 바로 멕 라이언이다. 1989년에 개봉된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에서 나는 그녀를 처음 만났다. 그 당시는 나는 스물다섯이었고 한창 열애 중이었으니 내 인생의 황금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영화관에 나와 나란히 앉은 이는 바라볼수록 눈부신 아름다움으로 새록새록 다가오던 나의 연인이었다. 해리와 샐리의 로맨스에 나오는 사소한 에피소드들과 미묘한 심리들이 우리의 그것과 많이 닮아 있어서 영화를 보는 동안 무척 즐거웠다. 그러면서 나의 연인과 샐리와 그 역을 맡은 멕 라이언은 내 마음 속에 완전히 겹치는 존재로 각인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해리와 샐리의 해피 엔드와 달리 우리는 각자의 길로 갔고 어느덧 블혹의 나이에 접어들었다. 한때 연인이었다가 친구로 남은 그녀를 어쩌다 해후하는 일은 세월의 무게를 확인하는 일이기도 했다. 멕 라이언이 우리보다 너댓 살 위라는 사실은 때때로 나에게 큰 위안이 되곤 한다. 만일 멕 라이언이 세월을 거슬러 여전히 샐리 역의 귀엽고 발랄한 젊음인 채로 남아 있다면 그 또한 견디기 끔직한 출렁임으로 내 마음의 연안을 침식할 것이다. 나는 오랜만에 멕 라이언을 <유브 갓 메일>에서 다시 만났다. 이 영화는 1998년에 개봉된 영화지만 최근 몇 년 간 나는 새 영화를 개봉관에서 보기 힘들 정도로 분주한 생활을 한 탓에 7년이나 뒤인 지난봄에야 디브이디를 구해 비로소 보게 된 것이다. <유브 갓 메일>은 나의 직업적인 관심사와 맞물려 꼭 보고 싶어했던 영화다. 수도권 외곽 도시에 자리잡은 조그만 의원을 꾸려가던 치과의사에서 어린이책을 만드는 출판사 대표로 전직을 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나는 언젠가 틈을 내어 이 영화를 꼭 보리라 벼르고 있었다. 대형서점 ‘폭스’가 들어서면서 42년 간 뉴욕의 한 동네를 지켜온 조그만 어린이 전문서점 ‘길모퉁이’가 밀려나는 사건을 중심으로 이메일을 통해 펼쳐지는 두 서점 주인의 로맨스가 나의 흥미를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월의 무게가 더해졌을 멕 라이언의 모습이 무척 보고 싶었다. 역시 멕 라이언은 나의 기대를 조금도 배반하지 않았다. 그녀는 한없이 젊고 발랄한 ‘샐리’가 아니라 수수하고 소박하고 친근한 여인 ‘캐슬린’으로 나에게 다시 다가왔다. 세월의 침식을 적절히 견뎌낸 모습으로 그녀는 잠시 종종걸음 치는가 싶더니 또 그 걸음을 제어하려 열 손가락을 활짝 펴서 허공을 가볍고 단단하게 짚는 것이었다. 상대역인 톰 행크스가 하얀 데이지 한 다발을 바친 것처럼 이 가을에, 나도 그녀에게 보랏빛 국화 한 다발을 바치고 싶다.

창작과 비평, 애증과 공생관계 [2]

프랑스에선 지금 99년을 마감하는 현재 프랑스영화계의 최대 화제는 <리디큘>(Ridicule)의 감독 파트리스 르콩트에 의해 시작된 감독들과 비평가들의 일대 격전이다. 모든 것은 지난 10월13일 르콩트 감독이 시나리오 작가, 감독, 제작자 연합인 ARP 회원들에게 보낸 짧은 편지에서 시작됐다. “얼마 전부터 프랑스영화를 대하는 비평가들의 태도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로 시작되는 이 편지는 “몇몇 평론가들이 마치 대중적, 상업적인 프랑스영화를 죽이기 위해 비평을 쓰는 것처럼 보인다”며 이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지 함께 토의하자고 촉구하며 끝난다. 원래는 사적인 성격을 띤 이 편지가 외부에 알려지면서 그야말로 영화계와 언론계가 발칵 뒤집혔다. 여기에 가장 빠르게 대처한 언론은 암묵적으로 공격의 표적이 된 일간지 <리베라시옹>. 지난 10월25일 문제의 편지와 함께 르콩트 감독 인터뷰를 실어 논쟁을 확산시켰다. 이 인터뷰에서 르콩트 감독은 프랑스영화의 시장 점유율이 점점 떨어지는 상황에서 프랑스영화를 매도하는 데 혈안이 된 비평가들의 태도는 더이상 참을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며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이제 곧 미국영화가 시장을 휩쓸 것이라는 우려를 감추지 않았다. 르콩트 감독은 특히 대중적인 프랑스영화에 적대적인 매체로 <리베라시옹> <르몽드> <텔레라마> 삼총사를 지목하면서 <제5원소> 개봉 때 뤽 베송이 인터뷰에서 한 말을 인용했다. “영화는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길 원치 않는 착한 것이다.” 그런데 왜 어떤 극우파 정치가에게도 하지 않은 증오에 찬 인신공격까지 하며 영화를 매장시키려 하느냐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성토대상이 된 매체들이 바로 반박을 하기보다는 그간 잠복해있던 문제들을 공론화하는 건설적인 계기로 삼으려는 노력이 역력했다. 그런데 르콩트 감독의 토론제의에 화답한 감독들이 지난 11월4일 모여 작성한 공동선언문이 미처 수정되기도 전인 초안상태에서 지난 11월25일 <르몽드>에 공개되면서 상황은 악화되었다. 베르나르 타베르니에 감독이 초안을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이 선언문은 이제까지 프랑스영화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방식으로” 매도해 나간 비평문들을 조목조목 제시하며 그 필자들의 이름을 일일이 적시했다. 영화 못지 않게 항상 옳은 말만 하는 것으로 유명해 곧잘 이곳저곳에서 인용되곤 하는 고다르의 말이 이 선언문에도 인용됐다. “평론가들은 영화를 위해 살지 않는다. 이들은 영화 덕에 산다.” 가장 문제가 된 것은 이 선언문의 공식적인 요구사항인데, 이는 비평가가 한 영화를 보고 비호의적인 평을 내릴 경우에 관객에게 끼칠 나쁜 영향을 고려해 영화가 개봉하는 주에 이 비평문을 싣지 말고 한주가 지난 다음에 실으라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선언문에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사람들은 또다른 감독들이다. 아네스 미르나 자크 로지에, 로베르 게디귀앙 등 63명의 감독들이 지난 12월5일치 <리베라시옹>을 통해 문제의 선언문에 전혀 동의하지 않음을 선언했다. 프랑스 전국에서 900만명의 관객을 모은 <아스테릭스>의 대대적인 성공으로 희망차게 시작된 99년은 공공연히 대중적인 영화를 표방하면서 여름 바캉스 이후 개봉한 바르니에의 <동서>, 다이안 큐리의 <세기의 아이들> 등이 전혀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를 낳으면서 ‘대중적, 상업적인 영화의 위기 및 프랑스영화 시장점유율 추락’에 대한 우려로 이어졌다. 이 시점에서 감독들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이 논쟁을 둘러싸고 제기된 문제들은 대략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과연 대중영화와 작가영화를 평가할 때 다른 비평기준을 가져야 하느냐는 것이다. 이것은 곧 <르몽드>나 <리베라시옹> 같은 일반대중을 상대로 하는 일간지가 <카이에 뒤 시네마> 같은 영화전문지와 동일한 비평기준을 가지고 영화를 평가하는 것이 정당한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둘째, 미국영화라는 거대한 기구와 경쟁해야 하는 프랑스영화, 특히 이들과 직접 경쟁상대가 되는 대중적, 상업적인 영화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이들 영화에 대해 특별한 애정을 가져야 하느냐는 것이다. 마지막은 비평의 자유와 책임에 대한 것이다. 대부분의 비평가들이 절대적인 비평의 자유를 옹호하고 작품 외적인 요소의 고려없이 절대적인 기준으로 영화를 평가해야 한다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반면, ‘도대체 무슨 권리로 남의 작품을 평가하는지, 과연 자신에게 그럴 능력이 있는지에 대한 회의’를 토로한 소수 평론가들의 자아비판도 동시에 존재한다. 이는 문제의 선언문에서 “셀린이 사르트르를 비판할 수 있었던 것은 셀린 뒤에 <밤으로의 여행>이라는 걸작이 있기 때문인데, 과연 현재 비평가들은 그들이 속한 매체에서의 위치말고 자신의 비평을 정당화할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생각하게 만든다. 어쨌든 논쟁은 시작됐다.

창작과 비평, 애증과 공생관계 [4]

비평없으면 셰익스피어도 없다 아주 오래 전에, 비평적으로 막 재평가받기 시작하던 60년대 초에 앨프리드 히치콕은 <무비>의 빅터 퍼킨스와 나눈 대담에서 비평가를 싫어한다고 말했다. 영화감독은 카메라 뒤에서 수십번 고민한 끝에 장면을 만든다. 그러나 평론가는 정확하지 않은 기억에 기초해 영화의 좋고 나쁨을 일필휘지로 판단한다. 시사회를 보고 집으로 돌아간 그날밤에 신문이나 잡지에 실릴 평을 휘갈기는 혐오스러운 존재가 바로 평론가라는 것이다. 보신 분은 다 아시겠지만 최근 개봉한 송능한 감독의 <세기말>에도 잘난 체하는 평론가를 야유하는 장면이 나온다. 극중 시나리오 작가의 입을 빌려 평론가들의 경솔하고 천박한 20자평에 독설을 퍼붓고 있는데, 이번 기회에 아예 영화감독들에게도 평론가들에 대해 20자평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은 어떨까, 라는 심정이 드는 것이다. 다른 언론인과 마찬가지로 평론가도 독자에게 정보와 해설을 제공하고 가치 평가 기준을 제시하는 역할을 맡는다. 평론은, 특히 저널리즘 평론은 특정영화를 볼 것인지 말 것인지, 그 영화가 볼 만하다면 무슨 이유로 볼 만한지 정곡을 찔러야 한다. 그것이 로저 코먼이 말한 평론의 역할, “비평가들은 영화에 대해 지적인 논평을 해주기를 바란다”는 바람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면 이미 평론의 역할은 끝난 것이다. 80년대 말에 소장 평론가들이 이론적 수사를 구사하며 공식 언론에 나타났을 때 보여준 대중의 호의는 벌써 사라지고 없다. 비평의 계몽주의 시대가 지나간 것이다. 비평은 표적을 잃어버렸고 대중은 즐길 만한 영화를 찾아내 스스로 여론을 형성하는 중이며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한국영화는 대중의 취향을 민감하게 반영하고 있다. 유행에 개입하고 때로는 유행을 만들어내며 역겨운 유행을 공격할 만한 힘을 한국 영화평단은 이미 상실했다. 지금까지 한국의 영화비평 문화가 체계적인 지식과 가치평가 토대를 축적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전국에 50여개의 영화과가 있고 영화 마니아의 영향력이 대단하다는 나라에서 로베르 브레송의 회고전이 만원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이때까지 한국 영화비평은 그 추억의 계몽주의 시대에 홍콩 누아르(이것은 전세계에서 한국이 처음으로 개발한 용어다), 예술영화, 컬트영화, 할리우드영화로 재빠르게 옮겨가며 속물적 유행을 퍼트렸지만 표면만을 떠다니는 가운데 한국영화에 대한 주목할 만한 평문을 제출하지 못했다. 우리의 불행은 너무 늦게 대중문화 적자로서 영화가 부상하는 시기를 목격했고 그것을 문화적으로 숙성시키기에는 너무 빨리 활기없는 시청각 문화의 노예가 돼버렸다는 것이다. 텔레비전에서는 초저녁부터 심야까지 스타 연예인들의 신변잡기 농담이 대중의 시야를 휘어잡고 있으며 개그맨들이 서로 면박을 주며 웃음을 유발하는, 이런 빈정대는 문화에서는 누구나 잘난 체한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몸을 사리게 마련이다. 게다가 불행하게도 한국 영화평단은 ‘재미있으면 그만이지…’ 하는 투의 냉소주의를 돌파하기에는 공력이 달리는 것 같다. 평론가 개개인의 재능과 영화문화의 형세, 그리고 제도면에서 모두 큰 시련을 맞아 영화판의 미운 오리새끼 취급당하고 있는 것이다. 브루스 윌리스는 장차 인류 역사에서 사라질 공룡 같은 존재가 평론가들이라고 예언했는데, 그것이 한국 땅에서 실현될지 두고 볼 일이다. 저널리즘 비평과 전문 비평, 그리고 학계로 이어지는 유기적인 비평 공동체를 이뤄내지 못하면 우리 평단도 정말 그런 운명을 맞을지도 모른다. 저널리즘 평론은 그때그때 영화에 대한 해석과 가치평가를 제출하고 잡지를 축으로 한 전문비평은 저널리즘의 해석을 심화시키거나 수정하며 학계는 그것에 대한 이론적 담론을 생산하는 유기적인 관계, 그것이 곧 비평 ‘제도’이며 또한 비평을 제도로 인정받는 유일한 해결책이다. 노드럽 프라이가 말한 대로 비평이 없었으면 셰익스피어도 없었다. 오늘날 히치콕이 거장으로 칭송받는 것도 또한 평론가들의 공이다. 그런데 다소 시비를 걸자면 비평의 공력은 상당 부분 영화가 키워주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영화계는 걸작과 수작을 고루 내놓고 있는데 평단은 삼류 수준에 머물고 있는 그런 기현상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과연 한국영화가 고도의 지적 담론을, 진정한 전문비평을 요구할 만큼 질적 비약을 이룬 것이 대세이기는 한 것일까.

[스크린 속 나의 연인] 슬픈 눈빛…감미로운 몸짓…장귀룽

4월 1일엔 거짓말을 한다. 악의 없는 거짓말에 속은 사람도 껄껄껄 속인 사람도 헤헤 웃으면 그만이다. 분명 우리의 전래 풍습은 아닌데 4월 1일은 만우절이라 불리며 우리에게 잠깐의 활력과 웃음을 주는 그런 날이 돼온 지 오래되었다. 하지만 2년 전부터 내게 4월 1일은 더 이상 만우절로 기억되지 못하고 활력과 웃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그 날은 이제 장궈룽(장국영)을 추모하는 날이 된 것이다. 만우절 장난 같은 소식처럼 장궈룽의 죽음은 아직도 믿기지 않는 일이다. 어제도 보았던 <아비정전;>에서 장궈룽은 여전히 런닝, 팬티 바람으로 춤추고 있었는데 말이다. 내가 장궈룽을 처음 만났을 때(물론 스크린 속에서) 그의 이름은 ‘아걸’(<영웅본색2;>, 1987)이었다. 공중전화 박스 안에서 죽어가던 그의 슬픈 눈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신파조의 음악과 그의 슬픈 눈이 만나 이룬 장면은 내겐 ‘최고의 장면 가운데 하나’로 남았다. 우리 말과 달리 높낮이의 차이가 심한 중국어를 좋아하게 된 것이 그쯤이었다. 그 후 그는 ‘영채신’(<천녀유혼>, 1987)으로 감미롭게 다가왔다가 곧 ‘원영정’(<인지구>, 1987)으로 나를 눈물짓게 하더니 ‘아비’(<아비정전>, 1990)로 나를 사로잡았다. 그의 눈빛, 그의 몸짓, 그의 음성, 그의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런닝 하나만 달랑 걸쳐도 그건 패션이 되었으니까. 깡통을 발로 차며 주리를 틀던 관객들이 급기야 환불 소동을 벌였지만 그건 ‘아비’를 모르는 자들이 벌이는 바보짓이라 코웃음 치며 난 ‘아비’에게 빠져 들었다. 나를 사로잡은 그는 ‘탁일항’<백발마녀전>, 1993), ‘데이’(<패왕별희>, 1993), ‘구양봉’(<동사서독>, 1994)이 되어 나를 흔들어 댔고 급기야 ‘보영’(<해피투게더>, 1997)으로 나타나 나를 바보로 만들어 버렸다. 허걱. 이런 것이 사랑이로군. 심장이 멎느니, 눈앞이 하얘지느니,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느니 하는 말들이 다 진실이었다. 그건 그에게 빠진 나를 두고 하는 말들이었다. 바보 같지만 뒤늦은 나의 고백이다. 사실 장궈룽은 스크린 속에서 언제나 멋지지만은 않았다. 그의 초기작들에서 그는 별 매력없는 홍콩 배우 이상이 아니었고(그래도 잘생기긴 했었다) <해피투게더> 이후의 작품에서는 빛을 잃어 가며 쇠락한다는 느낌을 주기도 했다. 그의 눈은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깊이도 얕아지고 레이저를 쏘아댈 것 같던 광채도 사라져 가기 시작했다. 그런 연유로 그는 자기 자리를 조금씩 내주기 시작했고 그런 그를 보는 건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그가 아닌 원영정을, 그가 아닌 아비를, 그가 아닌 데이를, 그가 아닌 보영을 난 상상 할 수 없다. 그는 그저 한 시대를 스치는 연예인이 아니라 존재감이 드러나는 배우였다. 눈에 콩깍지가 씌어 불꽃같은 사랑을 하는 상태가 아닌 지금도 난 그가 최고의 배우였다고 생각한다. 그의 2주기에 씨네21 기자 몇과 함께 그를 만났었다. 오랜만에 보는 아걸은 무척 반가웠고 자주 만나는 아비는 언제나처럼 눈부셨다. 그는 더 이상 현존하는 최고의 배우는 아니었지만 우린 행복했다. 그를 처음 만났던 그 날처럼 그는 여전히 스크린 안에서 빛나고 있었으니까. 그를 꼭 캐스팅하겠다던 꿈을 이룰 수는 없지만 그는 오늘도 내 작은 옥탑방의 텔레비전 속에서 살아 있고 컴퓨터 엠피쓰리 파일 속에서 노래하고 있다. 그걸로 됐다. 그걸로 난 행복하다. 별이 된 그도 행복하길 바란다.

시의 죽음을 슬퍼하며, <일 포스티노>

과문의 탓인지 모르겠으나 오늘의 프랑스에서는 시(詩)도 시인도 보기 어려워지고 있다. 과거에 읽고 생각하던 사람들이 지금에는 텔레비전, 영화, 컴퓨터 등이 토해내는 화면의 홍수 속에서 보고 즐기는 사람들로 바뀐 것인지 모른다. 이른바 ‘흥행 사회’에서 시인들이 소리 소문없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남의 땅에 있지만 아내와 나는 ‘창작과 비평사’가 고맙게도 꾸준히 보내주고 있는 시집들을 읽고 있다. 한국사회에 아직 시인들과 시들이 꿈틀대며 살아 있음은 실로 놀라우면서도 다행스런 일이다. 그 시들이 가벼운 언어의 조합이나 유희들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진수들이라면 말이다. 인간의 소박한 꿈과 이상은 현대에 올수록 더욱더 현실의 무게에 짓눌리고 있다. 그래서 시인을 일컬어 ‘현실로부터 스스로 추방된 사람’이라고 부르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현실로부터 추방되고 물질이 가난한 시인들만이 이 팍팍한 시기에 인간성의 풍요로움과 깊이를 보여줄 것이다. 또 하나의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가 부르주아적 인습주의에 의해 시의 세계가 죽어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면, <일 포스티노>에서 주인공의 죽음은 이데올로기에 의한 시인의 죽음을 암시하고 있다. 아니, 이데올로기에 의하지 않더라도 시인의 죽음은 이미 예고됐다고 말할 수 있다. 그의 인간성은 이미 현대와 어울리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중해 위의 외딴 마을. 푸른 바다보다 더 파란 하늘과 파란 하늘보다 더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어느 이름없는 우편배달부는 먼 데서 온 이방인과 벗이 되고 시를 쓴다. 그의 행복은 다만 단순함에서 오고 자연과 벗함에서 온다. 다시 먼 데로 떠난 벗에게 보내기 위해 정성스럽게 구닥다리 녹음기에 자연의 소리를 담는다. 파도 소리, 바람 소리,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의 소리와 뱃속 아기의 숨소리까지…. 시인보다 더 시인인 그의 모습이 하나도 어색하지 않고 아름답게 보이는 까닭을 우리는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또 하나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와의 본원적인 인간 관계, 외딴 마을 사람의 순진무구한 인간성, 그리고 대자연과의 조화가 없다면 말이다. 결국 우리는 장래에는 지구상 어디에서도 <일 포스티노>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일 포스티노> 자신도 소박하게 꿈꾸었던 사회주의 이상은 이미 옛 이야기가 되었다. 이른바 세계화의 시대, 그리고 디지털 정보화의 시대에 인간들의 꿈과 이상은 그야말로 덧없고 하릴없는 것이 돼버린 게 아닐까? 정보시스템의 발달로 멀리 있는 사람들과도 소통할 수 있다고 사람들은 믿지만 실제로는 가까이 있는 사람들하고도 멀어지면서 점점 더 외로운 모래알이 돼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물질은 풍요로워지더라도 인간의 정신은 더욱더 가난해지고 있는 게 아닐까? <일 포스티노>가 살던 그 마을에도 지금은 온갖 화면들과 상품들과 그리고 관광객들이 덮치고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성에도, 인간 관계에도 그리고 자연에도 ‘풍요’와 ‘복잡’이라는 이름의 기름때가 묻고 있을 터이다. 그러므로 <일 포스티노>는 이미 과거의 인물이다. 우리에게 잠깐 손짓하고 사라진 과거의 인물. 영화 속이 아니더라도 그는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그런데 과연 지금 누가 있어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할까? 나는 이 글을 쓰기 위해서라도 다시 한번 <일 포스티노>를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파리에 <일 포스티노>는 비디오로도 존재하지 않았다. 007 시리즈나 할리우드산 영화의 비디오들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는데. 상혼마저 시인의 혼을 버린 것일까, 아니면 시인의 혼이 스스로 이 세상을 떠난 것일까? 한편, 과거로 사라진 ‘인간’ <일 포스티노>는 그리워하면서도 ‘영화’ <일 포스티노>에 대한 의문은 그대로 남아 있다. 영화라는 매체가 갖고 있는 성격 때문이다. 예부터 인간을 가리켜 소우주라고 일컬었다. 또 가장 아름다운 것은 길섶에 핀 꽃도 아니며,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도 아니고, 그것은 인간 내면의 광휘라고 했다. 그런데 인간 내면은 결코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눈에 보이기 위한 영상에 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 내면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사람들은 흔히 명작일수록 영화화한 것을 보지 말라고 충고해준다. 그런 충고에도 불구하고 움직이는 화면이라는 마력에 이끌려 나 역시 영화를 보고말지만 보고나면 여지없이 후회하고 만다. 단 한번의 예외가 없었다. 그렇다면 ‘영화’ <일 포스티노>가 보여준 아름다움조차 인간 내면의 깊이에 비하면 가볍기만 한 게 아닐까? 문외한에 지나지 않는 나의 어줍잖은 의문일 수도 있다. 한국의 영화인들은 어떤 대답을 갖고 있을까?

[이명석의 씨네콜라주] 다크 시티

“자네 다크 시티라고 들어봤나?” 오늘 아침, 편성국장이 기상 리포터 빌을 자기 사무실로 불러들였다. “처음 들어보는데요.” “아마 그럴 거야. 지금까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도시니까. 이 도시에서는 자정만 되면 빌딩들이 모두 사라지고 주민들이 잠에 빠져든다네. 그리고 밤 사이 전혀 다른 건물이 세워지고, 사람들은 새로운 기억을 주입받은 뒤 다음 하루를 살아가게 된다는군.” 빌리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노망이 들었나’ 하는 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밥줄을 위해 참았다. “아무튼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이 도시에서 방송을 진행하게. 매일매일 뒤바뀌는 도시에도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오는가, 어때 낭만적이지 않아?” 빌은 지지리도 재수가 없다고 여겨졌다. ‘남들 다 노는 크리스마스에 출장이라니. 게다가 PD는 앤디라고, 왜 밥맛없게 여자야? 출장길에 재미보기도 글렀잖아.’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다크 시티로 가는 도로 노선은 알려진 바가 없어, 터키인들이 운영하는 장거리버스를 타야만 했다. 빌, 앤디, 카메라맨은 자정 무렵에야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매표소에는 오잘린이라는 이름표를 단 터키인이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앤디가 주문했다. “다크 시티, 세장.” “다르크 시티?” 오잘린이 퉁명스럽게 되묻자, 앤디가 빌에게 물었다. “다르크 시티라는 데도 있나요?” 빌은 귀찮다는 듯 대답했다. “터키식으로 읽은 거야. 다르으으크 시티.” 버스에 타자마자 곯아떨어진 세 사람은 다음날 아침 하얀 눈송이가 뿌려지는 다크 시티에 도착했다. 앤디와 카메라맨은 신이 나서 소리질렀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다!” 하지만 빌은 시큰둥했다. “강아지처럼 좋아하는군. 빨리 찍고 가자고. 다크 시티라고 해서 뭔가 그로테스크할 줄 알았더니, 그냥 시골 마을 아냐?” 일행은 빌의 성화로 30분 만에 촬영을 마쳤다. “너무 아름답고 평화로운 도시예요. 사람들은 아무 걱정도 없어 보이고.” 앤디는 아쉽다는 듯 거리를 돌아보았지만, 빌은 카메라맨에게 빨리 버스표를 사오라고 보챘다. 얼마 후 카메라맨이 즐거운 얼굴로 돌아왔다. “헤헤, 버스는 내일 아침에나 있대요.” 다음날 아침에도 여전히 탐스러운 눈이 내리고 있었다. 빌은 서둘러 버스 정류장으로 가, 개찰구에서 차표를 내밀었다. “죄송합니다. 이건 내일 차표인데요? 오늘은 버스가 없어요.” “뭐라구요? 분명히 26일 차표를 샀는데.” “그러니까요. 오늘은 25일이잖아요.” 대관절 무슨 일인가 싶어 신문을 샀더니, 25일. 텔레비전 뉴스도, 25일. 모든 게 어제 그대로였다. 빌은 몸서리치며 소리질렀다. “맙소사, 정말 다크 시티로 왔구나.” 그때 어떤 노인이 빌의 어깨를 툭툭 쳤다. “이봐. 여긴 다크 시티가 아니라, 닭 시티라고. 여기 사람들은 전부 닭처럼 기억력이 나빠서 하룻밤 자고 나면 뭐든지 다 잊어먹지…. 엥,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었지?” 다음날도, 아니나 다를까, 똑같은 날이 계속되었다. “이 바보 같은 닭대가리들! 하루가 지났단 말이야, 하루가!” 빌은 버스 정류장에서 소리를 질렀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리고 분에 겨워 술을 마시고 곤드레만드레가 되었다. “그래, 외상이야. 내일 갚으면 되잖아. 어차피 다 까먹을 텐데, 뭐.” 며칠째 횡패를 부리던 빌은 급기야 술집 사람들에게 두들겨맞고 유치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돌아갈 곳도 없이 또 똑같은 하루를 마감해야 하는 빌. 그렇게 측은한 마음에 눈물을 흘리는 빌에게 누군가 따스한 손을 내밀어주었다. 앤디였다. “미안해요. 앤디. 나 같은 것에게 이렇게 신경을 써주다니.” “아니에요. 저는 당신 마음을 알아요.” “그렇지만, 흑흑. 아 미안해요. 콧물이 당신 손에 묻었네요.” “괜찮아요. 당신은 사실은 따뜻한 사람. 그래서 콧물도 이렇게 따뜻하네요.” “그것은 당신의 보석 같은 손에 닿아서지요.” 얼어붙은 빌의 마음이 열리고, 둘 사이에 닭살 돋는 대사가 오고갈 때. 아 하늘도 이들의 마음을 알았던 것일까? 둘의 몸에 오소소 닭살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들의 뇌도 닭대가리로 바뀌어, 그들은 과거를 잊고 행복하게 닭 시티에서 살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등장인물 빌 머레이: 자기 중심적이고 냉소적인 기상 리포터. 다크 시티에서 운명의 시험에 빠진다. 앤디 맥도웰: 상냥하지만 내성적인 프로듀서. 내심 빌을 동정 반, 사랑 반으로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