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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영화제 개막작 <슈팅 라이크 베컴> 감독 거린다 차다

“축구영화라고? 여자애가 축구를 한다고? 그것도 인도 여자애가?” 인도계 영국 소녀가 축구선수의 꿈을 키우는 <슈팅 라이크 베컴>의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투자자들은 모두 도리질을 쳤고, 프로젝트가 성사될 가능성도 옅어만 갔다. 그런데 기획부터 완성까지 5년의 세월을 건너, 드디어 올 4월 첫선을 보인 이 영화가 개봉 주말 스코어 200만파운드로, 영국 박스오피스를 점령했다. “그러게 앞이 막히면 돌아가야 한다니까. 베컴의 킥처럼.” 영국에서 활동중인 유일한 아시아 여성감독, 그리고 최근 도처에서 뜨거운 러브콜을 받고 있는 스타감독 거린다 차다 감독의 말이다. 올 부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슈팅 라이크 베컴>의 거린다 차다(Gurinder Chadha) 감독은 이전에는 <해변의 바지> <왓츠 쿠킹> 같은 아트하우스 계열의 영화를 만들었다. 그의 영화는 그때나 지금이나 ‘인도계 영국 여성’이라는 그 자신의 정체성을 반영하고 있다. 세대와 인종과 문화와 성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서로를 오해하고 좌절시키고,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것. <슈팅 라이크 베컴>은 그중에서도 유쾌하고 떠들썩한 축제의 열기를 품은 영화. 낙천적이고 후덕한 인상의 거린다 차다 감독은 <슈팅 라이크 베컴>이 월드컵 열풍을 제대로 타고 있는 게 여간 반갑지 않은 눈치다. 영화제 개막식을 앞두고 진행된 인터뷰는 자연스럽게 월드컵 이야기로부터 시작됐다. <슈팅 라이크 베컴>의 인도 개봉일과 부천영화제 개막일이 거의 일치한다고 들었다. 인도 프리미어를 포기하고 부천행을 결심한 이유는. → 한국을, 서울을 꼭 한번 방문해 보고 싶었다. 평소 김치나 된장국 같은 음식을 즐기는데다, 월드컵을 통해 본 한국의 이미지가 매우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인도는 여러 번 들른 적이 있어서, 굳이 이번에도 고집할 이유는 없었다. 축구팬은 아니지만, 월드컵 사랑은 남다르다던데. → 축구는 남성적인 경기라서 개인적으로 별 매력을 못 느낀다. 그렇지만 월드컵은 정치적이고 문화적인 특성이 반영되는 행사이기 때문에 꽤 흥미롭다. 월드컵에서 다른 나라를 응원하는 것은 대개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다. 영국만 해도 그렇다. 우리는 독일이 우승할까봐 무척 걱정했고, 결승전에서 브라질을 응원했다. 뭐니뭐니해도 이번 월드컵의 하이라이트는 세네갈이 프랑스를 이겼을 때와 한국이 이탈리아를 이겼을 때다. 속이 다 후련하더라. 안정환의 팬이 됐다고 들었다. 베컴은 2순위로 내려가는 건가. → 세상 모든 여자들이 동의하지 않을까 싶은데, 안정환은 너무 잘생겼고, 경기도 잘한다. 영국에 올지도 모른다는 얘길 들었는데, 열혈팬 하나는 확보한 셈이다. 안정환이 한국의 베컴이고, 베컴이 영국의 안정환이라 할 만큼 공통점이 많은 것 같다. 부인이 미스코리아라면서? 모르긴 몰라도, 빅토리아 애덤스보다 미인일 거다. (웃음) <슈팅 라이크 베컴>은 최근 영국 최고의 흥행작이었다. 그렇게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 처음부터 대중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 작정이었기 때문에 관객이 어느 정도 들 것이라는 기대는 했다. 그렇지만 이렇게 큰 히트를 기록할 줄은 몰랐다. 할리우드영화에 밀려 찬밥 신세를 못 면하던 영국영화가 서서히 상승 분위기를 타고 있던 시점에 개봉한 덕도 있었다. 문화적인 다양성과 조화를 이야기한, 흔치 않은 영화라는 사실이 매력적이었을 수도 있겠다. 스토리의 큰 줄기로 영국의 축구와 인도의 결혼을 함께 다루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 이전의 두 작품 <해변의 바지>와 <왓츠 쿠킹>은 예술영화로 분류된다. 비평적으로는 성공을 거뒀지만, 상업적으로는 그렇지 못했다. 나는 그 다음 영화만큼은 멀티플렉스에 걸고 싶었다. 좀더 많은 사람들이 보고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이런저런 궁리 끝에 영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대중문화가 축구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리고 마초적인 그 스포츠에 인도 여자아이를 등장시킨다면 어떨까, 하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렇게 되면, 내가 속한 두 나라의 강박관념을 연관지어 얘기할 수도 있겠더라. 영국은 축구에, 인도는 결혼에 집착하니까. 제목을 <슈팅 라이크 베컴>(Bend It Like Beckham)이라고 지은 이유는 무엇인가. → 베컴에게는 공을 차는 특별한 기술이 있다. 그가 찬 공은 직선으로 가지 않고 완만한 커브를 그린다. 어린 소녀가 세상에 던져졌다는 것도 비슷한 상황이다. 세상은 그녀가 직구를 날리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뭔가 걸림돌이 있게 마련이고, 그걸 피해 굽이굽이 돌아가야 한다. 베컴의 기술과 소녀의 운명. 완벽한 매치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이유는 새로운 시대에 달라진 여성성을 보여주고자 함이다. 요즘 십대들은 나의 십대 때와 달리, 남성만의 것이라고 구획지어진 것에 도전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그건 좋은 일이다. 그러나 마초적인 것을 동경하고 과시하는 건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베컴이라는 아이콘, 마초적이라기보다는 여성적인 축구스타의 미덕을 돌아보길 바랐다. 베컴이 자기 이름 빌려준 보람을 느끼는 것 같나. → 처음 각본 작업을 시작한 것이 1998년이다. 월드컵이 열리던 해인데, 베컴이 퇴장당하는 바람에 아르헨티나에 졌고, 한동안 매국노 취급을 당했다. 모두가 그를 싫어하고 비난했는데, 너무 딱했다. 나라도 힘을 주고 싶어 ‘헌정영화’를 만들기로 했다. 그의 변호사와 연락해 이름 사용 허락을 받았다. 그 베컴이 지금은 거의 신이다! 인기 없을때 허락받았기 망정이지 지금 같으면 어림도 없다. (포스터를 가리키며) 저기에 사진도 못 넣지 않았나. 하지만 상관없다. 무엇보다 고맙고 기쁜 것은, 그가 영화를 맘에 들어했다는 것이다. 스토리도 뛰어나고, 인도 전통문화 묘사도 탁월하다고 말해주더라. 엔딩 크레딧에 스탭과 배우들이 한데 어우러져 노래하고 춤추고 하는 장면을 덧붙인 것이 인상적이었다. 어떻게 현장을 그토록 유쾌하게 리드할 수 있었나. → 날씨 덕이다. 촬영 내내 날씨가 너무 좋아서, 현장 분위기도 덩달아 떴던 것 같다. 그들 대부분이 처음부터 시나리오를 아주 좋아했던 데다 촬영이 원활히 돌아가는 걸 느끼며 즐거워했다. 처음엔 장난삼아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흥겹고 자연스럽게 잘 나와줬다. 비밀 하나 밝히자면, <토이 스토리>와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당신은 영국에서 활동하는 유일한 아시아 여성감독이다. 그런 정체성이 영화작업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궁금하다. → 예전 같으면 차별도 있었을 거다, 영화를 만드는 돈이 대부분 현지 남성에게서 나오다보니, 사고 차이를 극복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것은 흥행 성공으로 존재를 입증하기 전까진 펀딩이 힘들다는 사실이다. 정체성의 문제는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영국인, 인도인, 그리고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느끼기 때문이다. 리포터로, 다큐멘터리스트로 활동했다고 알고 있다. 어떻게 극영화로 옮겨오게 됐나. → 뉴스 리포터가 된 건, 미디어의 힘을 느껴보고 싶어서였다. TV 등의 영상매체가 만들어내는 이미지에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고 싶었다. 그러다 내 얘기가 하고 싶어져서, 영화로 선회하게 됐다. 저널리스트로서의 경험들은 극영화를 만드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된다. 각본을 쓰고 신을 만들고 할 때는 ‘포인트’가 무엇인지를 따져 묻고, 방송일을 하면서 익힌 편집감각으로 극에 리듬을 주곤 한다. <슈팅 라이크 베컴>에서 소녀들의 축구경기와 인도풍 결혼식의 교차편집 장면이 대표적이다. 흔히 우리가 발리우드 뮤지컬이라 부르는 마살라 장르의 영화들도 자주 보고 영감이나 자극을 구하는지. → 아버지가 인도 뮤지컬을 워낙 좋아하셔서 어렸을 때 덩달아 많이 봤지만, 언제부턴가 스토리도 스타일도 진부하게 느껴져서 싫어하게 됐다. 1990년대 중반 이후로는 종류도 다양해지고 질도 좋아지고 있다. 내가 발리우드영화에서 영향을 받냐고? 반대다. 오히려 그들이 내 영화음악을 카피하려 든다고 들었다. 개인 프로덕션에서 독립적으로 영화를 만든다고 하던데,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는지. → 아니, 지금은 없다. 모두가 내게 제작비를 대려 하니까. (웃음) 운이 참 좋다고 느낀다. 첫 장편 <해변의 바지>는 펀딩문제로 5년에 걸쳐 작업했다. 그런데 지금 추세로는 예전에 써서 쌓아둔 시나리오도 하나씩 볕을 볼 것 같다. 이제까지 주로 문화와 세대, 성과 성정체성이 충돌하고 갈등하고 화해하는 과정을 그렸다. 앞으로 하고자 하는 얘기도 그것인가. → 아마도, 아마도 그럴 거다. 그게 영화감독으로서 내가 보는 세상의 풍경이니까. 난 사람들에 관심이 많다. 그들 사이에서, 그들 안에서 가치관과 성향들이 부딪히고 서로가 서로를 변화시키는 것을 보곤 한다. 그런 변화가 좋다. 모든 형태의 스테레오 타입을 깨고, 사람들을 놀라게 할 수 있길 바란다. 차기작으로 진행중인 프로젝트가 흥미롭더라. → 뮤지컬을 준비중이다. 우리끼린 ‘British Bollywood Musical’이라 부른다. 영국의 음악과 인도의 전통음악을 결합한 아주 특별한 뮤지컬을 준비중이다. 인도, 영국, 미국, 세 나라에서 촬영할 예정인데, 아직 뮤지션 섭외가 덜 끝났다. 또 다른 하나는 <향신료 아가씨>(Mistress of Spices)라는 소설을 각색한 영화다. 미국에 사는 인도 여성 이야기인데, 향신료 가게를 찾은 사람들의 사연과 욕망을 다룬다. 2주 뒤쯤, 주연 배우감을 찾으러 인도에 갈 계획이다. <슈팅 라이크 베컴>이 부천 개막작으로 첫선을 보이는 데 이어, 8월 말에는 한국 극장가에 걸린다. → 비영어권 국가에서 이 영화를 보는 건 나도 처음이다. 내 영화에 자막이 얹혀진 걸 보는 기분이 어떨지, 나도 궁금하다. 관객이 어떻게 반응할지는 더 궁금하다. 흥분된다. 포스트 월드컵 열기가 좀더 오래 이어져, 영화 흥행에 도움이 되길 바랄 뿐이다. (웃음) 한국에 여성축구가 얼마만큼 활성화돼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영화가 미력하나마 기여할 수 있길 바란다. 영국 개봉 당시 여성축구 관련 단체의 전화번호를 포스터에 넣었더니, 문의전화가 엄청나게 쇄도했고, 결과적으로 여성축구 붐이 일기도 했으니까. 글 박은영 cinepark@hani.co.kr·사진 이혜정 hyejung@hani.co.kr

아시아나, 엔프라니 등 자전적 이야기로 포장한 광고

제작연도 2002년 광고주 아시아나 대행사 상암기획 ‘속았다?’ 광고의 거짓말이 새삼 도마에 올랐다. 설왕설래를 야기한 사례는 아시아나항공사 CF다.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이산’이란 17살의 ‘까까머리’ 축구선수가 주인공으로 출연한 이 광고는 월드컵 시류와 맞물려 소비자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란 문구로 일탈의 욕망을 기분좋게 자극한 현대카드 광고 못지않게 이 CF의 ‘떠나세요’란 마지막 메시지도 제법 귓전을 솔깃하게 만들었다. 특히 “영국에서의 첫골보다 더 가슴 벅찰 때는 세계 무대로 처음 떠나는 아시아나 비행기 안이었습니다”라는 CF 속 이산 선수의 내레이션은 비행기란 교통수단에 향긋한 감성적 향기를 불어넣으며 호소력을 배가했다. 때가 때이니만큼 외국 프로리그에서 활동중인 축구선수를 모델로 기용한 것은 시의적절한 선택으로 보였다. 그런데 자전적인 스토리 같았던 이 선수의 얘기가 진짜가 아니었단다. 이른바 ‘트루 라이즈’(true lies)였던 것이다. 실제 그는 벅찬 가슴을 안고 세계 무대로 처음 떠날 때 아시아나가 아니라 대한항공을 탔다. 이 선수가 영국으로 간 해는 1997년인데 당시는 아시아나가 유럽노선의 취항을 중단한 시절이었다. 이 선수는 모 언론과 인터뷰에서 아무렇지 않게 “실은 저, 대한항공 타고 갔어요”라고 말했고, 짐작과는 다른 새로운 사실로 인해 논란이 촉발됐다. 대한항공 광고를 담당하는 한 광고대행사 AE는 제보형식으로 아시아나 광고의 메시지가 사실에서 벗어나 있음을 적시한 문건을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에 제출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광고계에는 광고 메시지의 진실성 수위를 놓고 이러쿵저렁쿵 말들이 오가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약간의 배신감을 맛본 게 사실이다. 출근할 때마다 라디오 CM을 통해 이산 선수의 증언을 반복해 들으면서 ‘고 광고, 참 잘 만들었네’라며 호감을 표시해온 터라 ‘발칙하게 잘도 속였군’ 하며 잠시 분기탱천하는 시늉을 냈다. 그러나 한발짝 떨어져 생각해보면 과연 정색해서 반응할 문제인가 싶기도 하다. 광고의 감쪽같은 거짓말은 도처에 널려 있는 다반사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광고라는 게 꼼꼼하게 진위를 파고들면 물음표투성이일 수밖에 없다. 화장품 광고만 예로 들어도 그렇다. 화장품 CF엔 대부분 조각처럼 잘생긴 유명스타가 등장해 자신의 미모가 마치 해당 화장품을 사용한 덕분인 것처럼 행동하지만 따지고보면 이는 진실에서 떨어져 있다. 실생활에서도 그 모델이 그 화장품을 정말 선호하는지, 또 콕콕 집어 그 화장품만을 사용해 미모를 관리하는지 알 수 없다. 진심이 어느 정도 이상은 가미돼 있겠지만 모델은 짜여진 각본대로 성실히 좋은 척, 최고인 척 연기할 뿐이다. 광고를 제작하는 쪽도 얼마만큼 자사브랜드에 충성도를 갖고 있는가를 따져 모델을 선택하지 않는다. 광고 컨셉과 모델의 이미지가 얼마나 잘 어우러지는가, 모델의 몸값이 제작비와 비교해 적정한가 등을 고려할 따름이다. 광고에서 사실에 100% 밀착한 것은 브랜드와 브랜드의 기본적인 특성뿐인지도 모른다. 요즘처럼 매체의 속성에 밝은 소비자가 수두룩한 세상에 광고 속 얘기를 곧이곧대로 믿는 이는 흔치 않을 것이다. 상품 구매를 유도하고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일련의 포장과정을 관습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며 자발적으로 거리두기를 실시하는 경우가 많다. 누가 얼마나 기발하게 소비자를 속이며 강렬하게 메시지를 전달하느냐가 광고의 완성도를 가늠하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제작연도 2001년 광고주 (주)엔프라니 제품명 엔프라니 대행사 제일기획 그럼에도 가끔은 양해하지 못할 때가 있는 것 같다. 아시아나 광고처럼 ‘쇼’를 전제로 삼지 않는 실제 모델의 그럴듯한 거짓말을 담았거나, 지난해 참신한 화장품 광고로 주목 받는 엔프라니 광고같이 메시지를 아주 실감나게 구체화했을 때 반발이 일어난다. ‘스물일곱, 많지도 적지도 않은 나이’라는 카피로 타깃 여성의 심리를 절묘하고도 절절하게 꿰뚫은 엔프라니 광고는 수작이란 칭송을 들었지만 일각에서는 눈총도 받았다. 27살 여성을 대변한 신애라는 여성모델이 82년생이란 사실이 알려지면서 나이답지 않게 젊음을 뽐내는 미모의 모델을 향해 감정을 깊숙이 개입한 일부 여성은 허탈감을 맛본 것이다. 아시아나항공쪽은 “세계 무대에 도전하는 젊은이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한 광고적인 설정이었다”며 소비자를 의도적으로 기만하겠다는 의도가 없었음을 주장했다. 그러나 광고의 포장술을 어느 선까지 용인할 수 있는가는 일언지하에 답을 내리기가 쉽지 않은 듯하다. 광고에 좀더 커다란 표현의 자유란 날개를 달아준다면 전략을 위한 선의의 전술에 모두 오케이 사인을 보내야겠지만 영화나 드라마 같은 장르와 동격으로 광고의 모든 장치를 간주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을 터이다. 광고는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데서 그치는 감상거리가 아니라 상품을 매개로 파는 쪽과 사는 쪽이 줄다리기를 벌이는 현실적인 상업매체의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광고는 소비자의 감성과 사고를 좀더 섬세하게 고려하는 고단수의 제스처를 취할 필요가 있다.조재원/ <스포츠서울> 기자 jone@sportsseoul.com

맥스키블의 대반란

Max Keeble’s Big Move 2001년 , 감독 팀 힐 출연 알렉스 D. 린즈, 래리 밀러, 제이미 케네디, 노라 던, 제나 그레이 장르 코미디 (브에나비스타) 10대가 현실에서 원하는 것이란, 아주 단순할 수도 있다. 무시당하지 않는 것. 괴롭힘당하지 않는 것. 친구로서 인정받는 것. 그런 정도만 충족되어도 나름대로 즐겁게 살아갈 수 있다. 성적이나 미래의 꿈이나 뭐 그런 것들로 고민하지 않고. 중학교에 입학한 맥스 키블의 소망도 별게 아니었다. 아이들에게 얕잡아 보이지 않고, 단지 ‘쿨’한 인상을 남기는 것 정도. 그런데 친구들은 좀 문제다. 플루트를 부는 메건까지는 넘어가도, 늘 잠옷을 입고 땅에 떨어진 것을 태연하게 먹는 잠탱이 로브는 처치곤란이다. 맥스 키블의 소박한 꿈은 첫날부터 처참하게 박살난다. 어린 시절 친구였던 트로이. 언젠가부터 무섭게 성장하여 엄청난 키와 완력을 과시하는 트로이는 하루에 한명을 지목하여 신나게 괴롭힌다. 트로이는 첫날의 상대로 하필이면 맥스를 지목하여, 흙탕물에 빠뜨리고 쓰레기통에 집어넣는다. 그 꼴로 전교생이 모인 강당에 나타난 바람에 맥스는 사이코 교장에게도 찍힌다. 그것도 모자라 점심시간에는 답스에게 돈을 뜯긴다. 한심한 중학 생활에 괴로워하던 맥스에게 희소식이 들어온다. 아버지가 시카고로 전근을 가야 한다는 것이다. 친구들과 떨어질 생각에 슬퍼하던 맥스는, 발상의 전환을 한다. 금요일에 전학을 간다면, 그 전에 저질러놓은 어떤 일에도 책임을 질 필요가 없는 것이다. 맥스는 트로이와 답스, 그리고 교장에게 처절한 복수를 계획한다. 자신이 했다는 것이 알려져도 아무 상관이 없다. 금요일이면 시카고에 있으니까. 모두가 우습게 보던 맥스는, 사고를 치겠다고 작정한 뒤 앞에 나서 온갖 소동을 벌인다. 그러자 아이들의 시선이 모두 맥스에게 집중된다. 상급생의 멋진 ‘여자’까지도 관심을 보인다. 그 ‘성공’에 취해, 맥스는 친구까지 잊어버린다. 물론,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이 전근은 취소된다. 온갖 상황에서 당연히 면책될 것으로 믿고 있던 맥스는 끔찍한 상황에 닥친다. <맥스 키블의 대반란>은 익히 짐작할 수 있는 이야기다. 결론이나 교훈도 능히 점칠 수 있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 자신의 문제는 자신이 해결해야만 한다는 것. 지독하게 평이하고 고루한 이야기지만, <맥스 키블의 대반란>은 경쾌하다. 맥스의 곤경도, 복수도, 가볍고 빠르게 진행된다. 맥스의 최대 적수라 할 교장의 캐릭터도 흥미롭다. <맥스 키블의 대반란>은 10대가 일상에서 원하는 것들을, 아주 단순하게 희화시킨 킬링타임용 오락영화다. 주로 아이들을 위한. 김봉석/ 영화평론가 lotusid@hanmail.net

송윤아, <광복절 특사>에 뒤늦게 합류

설경구, 송윤아 잡으러 탈옥을 결심하다? 설경구, 차승원을 캐스팅하고 한창 촬영중인 <광복절 특사>에 뒤늦게 송윤아가 합세했다. <광복절 특사>는 천신만고 끝에 탈옥한 두 죄수가 광복절 특사 명단에 자신들이 포함된 사실을 알고 다시 감옥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좌충우돌 해프닝을 담은 코미디영화. 절도혐의로 7년째 복역중인 ‘무석’(차승원)과 함께 탈옥에 동조하는 ‘재필’(설경구)의 애인, ‘경순’ 역의 송윤아는 “연신 웃음을 자아내는 재미있는 시나리오에 반해” 출연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2년 전 선보였던 <불후의 명작> 이후 <선물> 등의 드라마와 함께 브라운관에만 머물렀던 송윤아는 “심사숙고 끝에 결정한 영화인 만큼 전혀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겠다”며 새로운 작품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출세작인 <미스터 큐>를 제외하고는 늘 얌전하고 참한 모습만 보여왔던 그에게 ‘경순’이란 역할은 타고난 미모와 순진한 미소로 감옥 안의 애인이 노심초사할 만큼 남자 홀리는 재주가 있는 엉뚱한 ‘바람녀’이기 때문. <신라의 달밤>의 김상진 감독이 설립한 제작사 ‘감독의 집’의 창립작품이 될 <광복절 특사>는 8월 말까지 모든 촬영을 마치고 오는 가을 그 뛰어난 ‘월담’ 실력을 보여줄 예정이다.

회고전 계기로 본 거장 장 르누아르의 작품 세계(1)

프랑스의 거장 감독 장 르누아르의 회고전이 부산(7월20일부터 8월4일까지 시네마테크 부산)과 서울(8월9일부터 18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다. 무성영화 시대의 걸작 <나나>(1926)에서부터 <탈주한 하사>(1962)까지 르누아르의 대표작 17편을 만나보자. 편집자 장 르누아르와의 인터뷰를 담은 한 소책자에 서문을 쓴 니콜라스 프랭거키스라는 사람은 자신이 실제로 르누아르를 만나게 되기 전에 어떤 식으로 그의 이름과 마주하게 되었는지를 흥미롭게 들려준다. 풋내기 배우였던 시절 그는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당시 그는 미술관의 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들을 보곤 했는데 그곳 로비에는 세계적으로 이름난 영화인들의 이름이 적힌 카드들이 걸려 있었다고 한다. 그 카드들 밑에는 해당 인물들이 개인적으로 뽑은 가장 위대한 영화 10편의 제목이 쓰여 있었다. 프랭거키스는 로렌스 올리비에의 카드, 오슨 웰스의 카드, 그리고 엘리아 카잔의 카드 등을 훑어보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카드들 아래에는 거의 빠짐없이 장 르누아르의 이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프랭거키스는 이것만으로도 그때까지 희미하게 들어본 적만 있었던 르누아르라는 영화감독에 대해 깊은 인상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시네필들의 목록 1순위에 오르는 이름 아마도 시네필이라고 자처하는 이라면, 자신의 최고 영화 목록에 르누아르의 영화들 중 적어도 한두편쯤 적어두고 있지 않은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을 듯싶다. 그 르누아르라는 영화감독은 영화역사상 사람들로부터 찬탄의 시선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시네아스트로 첫손에 꼽힐 만한 인물임에 분명하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면, 자신 역시 위대한 영화감독의 반열에 오른 찰리 채플린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영화감독이라? 내가 보기에 그는 프랑스인이다. 그는 장 르누아르라 불린다.” 동시대의 다른 영화평론가들보다 먼저 르누아르의 진가를 알아챘던 앙드레 바쟁도 장 르누아르의 영화에 대한 글을 쓰면서 자주 (특히 후기로 접어들면서) ‘장 르누아르는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영화감독이다’라는 식의 문장으로 시작하곤 했다. 이 밖에도 다른 많은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들을 들어보면 ‘가장 위대한 영화감독’이란 말은 르누아르에게 달라붙는 가장 간편한(혹은 가장 적절한) 수식어인 것만 같아 보인다. 아무리 영화감독들에게 순위를 매긴다는 식의 사고가 좀 아둔해 보이긴 해도, 르누아르가 보여준 빛나는 영화적 업적과 너른 영향력을 고려해볼 때 르누아르에 대한 그런 식의 정의는 사실 상당히 관성적인 것이면서도 또한 정당성을 상실하지는 않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장 르누아르는 뤼미에르 형제가 시네마토그래프를 공개하기 바로 전해인 1894년 9월 몽마르트르에서 태어났다. 주지하다시피 저명한 인상주의 화가 오귀스트 르누아르가 그의 아버지이다. 이미 어려서부터 영화에 흥미를 가졌던 장 르누아르가 영화를 본격적으로 ‘발견’하게 된 것은 군에 있을 무렵 ‘샤를로’(찰리 채플린)가 나오는 영화들을 보고 그의 열광적인 팬이 된 다음부터였다. 이후 그는 메리 픽포드, 릴리언 기시, 더글러스 페어뱅크스 같은 스타들을 동경하게 되었고 미국영화의 세계에 흠뻑 빠져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르누아르가 이때부터 자기 손으로 영화를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을 가지진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아버지의 바람대로 도예 일에 착수했다. 아내를 스타로 만들기 위해, 감독이 되다 르누아르의 말에 따르면, 그가 영화 만들기에 투신하게 된 것은 그의 아내 카트린 에슬링(‘아버지’ 르누아르의 모델이기도 했던)을 스타로 만들어주기 위해서였다(두 사람이 나중에 헤어지게 되는 것도 다름 아닌 영화문제 때문이었다. 르누아르의 31년작 <암캐>에 제작자의 요구 때문에 카트린을 주연으로 기용할 수 없게 되자 둘의 관계가 벌어지게 된 것이다). 1924년 르누아르는 아내가 주인공인 영화 <카트린느 또는 기쁨 없는 삶>의 제작에 참여하면서 앞으로 이어질 긴 영화인생의 첫 걸음을 내디뎠다. 이 영화의 감독은 알베르 디외도네였으며 여기서 르누아르가 맡은 것은 제작과 시나리오였다. <카트린느…>는 극장 상영의 기회를 갖지 못할 만큼 처참한 실패작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르누아르에게 영화를 통한 표현 욕구가 생기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는 영화다. 같은해에 그는 다시 카트린을 주연으로 기용하고 자신이 직접 연출을 맡아 <물의 처녀>라는 영화를 만들게 된다. 1924년에 시작해서 1962년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을 아우르는 르누아르의 영화인생은, 많은 평자들이 종종 지적하듯이, 용이하게 정리해내기가 매우 어려운 유의 것이다. 흔히 지적되곤 하는, 심도 깊은 공간과 물 흐르듯 유동적인 카메라 움직임과 같은 스타일도, 리얼리즘에의 경도도, 아니면 연극적인 것에의 매혹도, 사실 일관성 있게 르누아르의 전작을 관통하는 요소로 보기는 어렵다. 그래서 리처드 라우드 같은 영화비평가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만의 르누아르를 갖고 있다”고까지 말한다. 르누아르가 가장 위대한 영화감독이라면 그것은 그의 ‘전작’이 너무도 다양하고 풍성하며 또 복합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풍요로운 세계의 개요를 파악하는 가장 정통적인 방법은 그것을 몇개의 구획으로 나눠 들여다보는 것일 수 있겠다. 르누아르의 영화세계는 2차대전이 발발한 1939년을- 이것은 르누아르가 미국으로 망명하기 전 프랑스에서 <게임의 규칙>을 완성한 해이기도 하다- 전후로 크게 두개의 시기로 나뉜다. 먼저 1939년까지의 전전 시기를 살펴보자면, 이것도 르누아르가 사운드를 받아들였는가의 여부에 따라 또다시 두 시기로 분할이 가능하다. 대략적으로 말해서 무성영화를 만들던 시기의 르누아르가 가장 진력했던 것은, 그 스스로 회고하듯이, 무엇보다도 참신한 비주얼과 창의적인 테크닉을 만들어 보여주는 것이 아니었던가 싶다. 이 당시에 그는 폭넓은 스펙트럼에 속하는 다양한 작품들을 만들면서 빠른 편집, 카메라 움직임, 모형 합성 등의 다양한 테크닉을 마음껏 시도해보았다. 노엘 버치처럼 다분히 형식주의에 경도된 비평가가 이 시기의 르누아르를, 그리고 특히 <나나>(1926)를 매우 중요하게 평가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

장 르누아르 회고전 상영작 17편 프리뷰(1)

<나나> Nana, 1926년, 120분, 흑백 / 출연 카트린 에슬링, 베르너 크라우스 르누아르 자신이 자기 영화들 가운데에서 최초로 논의할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고 말한 <나나>는 저명한 자연주의 소설가 에밀 졸라의 원작을 영화화한 것이다. 르누아르가 이 영화를 만들면서 특히 영향받은 것은 에리히 폰 스트로하임의 <어리석은 부인들>(1921)이었다고 한다. 한 극장의 간판 여배우와 그녀를 둘러싼 상류사회 남자들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에서 나나 역을 맡은 것은 당시 르누아르의 부인이었던 카트린 에슬링이고,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1920)에서 칼리가리 박사를 연기한 베르너 크라우스가 무파 백작 역을 맡았다. 노엘 버치는 이 영화를 특히 높이 평가한 비평가였는데, 여기서 그는 오프 스크린의 구조적 사용을 지적해냈다. <암캐> La Chienne, 1931년, 100분, 흑백 / 출연 미셸 시몽, 자니 마레즈 혼자서 그림 그리는 것을 빼고는 낙이라고 할 게 없는 지극히 건조한 인생을 살고 있는 중년의 회사원 모리스 르그랑, 어느 날 그의 눈에 들어온 젊은 여인 룰루, 그리고 룰루의 사랑을 받지만 그녀를 ‘착취’하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는 건달 데데, 이 세 사람의 꼬인 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그려가는 영화. 르누아르 자신은 이 영화에서 그가 이른바 ‘시적 리얼리즘’이라는 스타일에 근접했다고 말한다. 실제의 장소를 촬영한 것이나 현장음을 담아 시각적으로만이 아니라 청각적으로도 리얼리즘의 감각을 제공한다. 인형극의 막을 열면서 영화를 시작하고 또 인형극의 막을 닫으면서 영화를 끝맺는 프레이밍 장치도 눈여겨볼 만하다. <보봐리 부인> Madame Bovary, 1933년, 120분, 흑백 -------------출연 발랑틴 테시에, 피에르 르누아르 프랑스의 저명한 소설가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 시골 소녀 엠마 루오는 최근 상처(喪妻)한 의사 샤를르 보봐리와 결혼한다. 그렇다고 그녀가 샤를르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샤를르가 평범한 지방 의사로 비교적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데 반해 엠마는 무언가 더 나은 것을 갈망하고 있다. 남편이 발수술을 엉망으로 망쳐버린 뒤 엠마는 남편에 대한 존경심을 모두 잃고 부자 바람둥이 로돌프와 외도를 시작한다. 공개 당시 흥행에는 실패한 작품. <보봐리 부인>에 대해 에릭 로메르는 이 영화에서 르누아르가 소설의 대사와 장면을 잘 살려내면서도 플로베르의 수려한 필체에 위협당하지 않고 자신만의 색깔을 잘 지켜냈다고 썼다. 엠마 역을 맡은 발랑틴 테시에의 훌륭한 연기가 빛나는 영화이기도 하다. 샤를르를 연기한 피에르 르누아르는 실제로 장 르누아르와 형제 사이이다. <토니> Toni, 1934년, 85분, 흑백 / 출연 샤를 블라베트, 제니 엘리야 프랑스 국경 근처 마을에 온 이탈리아 출신 노동자 토니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랑과 질투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마리와 함께 살고 있는 토니는 어느 날 조세파라는 여성과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그러나 조세파는 공장의 작업 감독 알베르의 유혹에 넘어가 그와 결혼한다. 그래도 여전히 토니가 조세파에게 미련이 남아 있는 것을 알고 마리는 질투의 감정에 휩싸인다. 프로방스 지역에서 비전문 배우를 기용해 촬영한 <토니>는 10년 정도 앞서 네오리얼리즘을 예견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영화평론가 리처드 라우드는 이 영화의 외적인 리얼리즘이 심리적, 사회적, 극적 리얼리즘에 의해 보완되기에 <토니>가 훌륭한 영화라고 말한다. <랑주씨의 범죄> Le Crime de Monsieur Lange, 1936년, 85분, 흑백 ---------------출연 르네 르페브르, 쥘 베리 거의 파산할 위기를 맞은 소규모 출판사의 사장 바탈라가 회사의 돈을 갖고 사라지자, 이 회사의 직원인 랑주는 다른 직원들과 함께 회사를 공동으로 운영한다. 이제 회사가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아갈 무렵, 바탈라가 갑자기 나타나 출판사의 소유권을 주장한다. 결국 랑주는 이 문제를 원만히 처리하기 위해서는 바탈라를 처리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장 르누아르의 30년대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랑주씨의 범죄>는 인민전선의 대의에 대해 그가 공감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는 영화다. 여기서 르누아르는 평범한 노동자들이 연대를 통해 파시즘의 폭정을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르누아르의 이 걸작은 그런 정치적 메시지만을 전파하는 프로파간다에 그치지 않는다. 자크 프레베르의 위트 넘치는 대사와 유려하게 흘러가는 롱테이크 같은 것들이 서로 협화음을 이뤄 <랑주씨의 범죄>는 세대를 초월해서도 살아 있는 예술로 남아 있다. <라 마르세예즈> La Marsellaise, 1937년, 135분, 흑백 프랑스 혁명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라 마르세예즈>는 인민전선의 입장에 동조해 만들어진 영화다. 이 영화에 대해 특기할 만한 것들 중 하나는 공적 기부의 방식으로 제작비를 마련하려 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방식이 충분히 제작비를 끌어모으지 못하자 보통의 관습적인 방식으로 제작비를 모았다. 전체적으로는 혁명의 대의에 공감하는 영화이지만 그 반대편에 해당하는 인물들, 즉 왕이나 귀족들에게도 인간의 성격을 불어넣은 것이 과연 르누아르답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프랑수아 트뤼포는 <라 마르세예즈>가 마침내 프랑스 혁명에 대해 제대로 된 몽타주를 그리고 있다고 말했다. <거대한 환상> La Grande illusion, 1937년, 113분, 흑백 실제로 1차대전에 참전해 부상을 입은 경험이 있었던 장 르누아르가 만든 전쟁영화. 1차대전 무렵, 프랑스 공군의 장교 부알디외와 마레샬은 그만 자신들이 타고 있던 비행기가 추락하는 바람에 독일군 포로로 잡히고 만다. 영화는 그들의 수용소 생활과 탈출 기도를 그려나간다. <거대한 환상>은 전쟁이 한창일 무렵 포로수용소를 배경으로 적군과 아군말고도 여전히 사람들을 갈라놓는 여러 경계선에 대해 흥미롭게 이야기한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 영화에 대해 오슨 웰스는 “만약 내가 무인도에 꼭 한편의 영화만 가져가야 한다면 그건 <거대한 환상>일 것이다”라며 말했다. 한편 나치의 괴펠스 같은 이는 이 반전영화를 “영화 공적(公敵) 1호”라며 비난을 퍼부은 적이 있었다. <인간야수> La B te humaine, 1938년, 105분, 흑백 에밀 졸라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주연을 맡은 장 가뱅이나 르누아르나 무엇보다도 기차를 다뤄보고 싶어서 만들었다고 한다. 장 가뱅이 연기하는 자크 랑티에는 기관사이다. 부역장인 루보는 자신의 젊은 아내 세브린느가 그녀의 대부인 그랑모랭과 통정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기차 안에서 그랑모랭을 살해한다. 이때 랑티에는 우연히도 같은 기차에 있었다. 그렇게 랑티에는 세브린느를 알게 되고 사랑에 빠진다. 남편으로부터 폭행당하던 세브린느는 랑티에에게 남편을 죽여달라고 부탁한다.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을 장식하는 광포한 속도로 질주하는 기차장면들이 특히 인상적인 이 영화는 랑티에-세브린느-루보로 연결되는 운명의 사슬을 어둡지만 시적인 터치로 그렸다. 뒤에 프리츠 랑이 <인간의 욕망>(Human Desire, 1954)이란 제목으로 리메이크했다.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

씨네큐브광화문 세계영화축제 『영화로 떠나는 유럽배낭여행』

㈜ 영화사 백두대간은 여름 휴가여행이 한창인 7월 29일부터 8월 1일까지 색다른 영화여행을 제안한다. 씨네큐브 광화문의 세계영화축제 1탄, <영화로 떠나는 유럽배낭여행> <영화로 떠나는 유럽배낭여행>에서 소개되는 영화는 유럽의 13개국에서 온 13작품.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문물을 만나고자 하는 여행객들의 바람을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을만큼 다양한 국가의 작품들로 구성되어있다.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에서부터 실제 유럽배낭여행에서라면 두루 방문하기에 시간과 비용이 만만치 않을 나라들, 북유럽(핀란드, 스웨덴, 아이슬란드)이나 동유럽(헝가리, 러시아), 지중해(그리스)까지 편히 감상할 수 있도록 작품을 선정했다. 색다른 체험을 제시하는 영화들로 알차게 채워져있기에 영화관을 찾는 호기심 많은 여행객들은 정말 유럽에서도 만나기 힘든 유럽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노 맨스 랜드>를 제외하면 백두대간의 개봉작 중 작품의 오락적, 예술적 완성도가 높았지만 상영기간이 짧아서 관객이 만날 기회가 적었던 작품을 다시 볼 수 있는 기회이다. 일사분기 우리 영화시장에서 한국영화와 헐리우드 영화의 점유율이 98.5%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소외되었던 유럽영화들을 한자리에 모아 선보인다는 점에서도 뜻깊은 자리가 될 것이다. 또 한가지 주목할 것은 '유레일패스'를 모방한 '큐브레일패스'이다. 30,000원짜리 큐브레일패스를 구입하면 <노 맨스 랜드>를 제외하고 영화제기간동안 상영하는 12편의 모든 영화를 자유롭게 볼 수 있다.(모든 패키지 관람권의 경우 상영 30분 이전에 발권절차를 밟아야 한다. <노 맨스 랜드> 관람에는 패키지 관람권 사용불가) 1회 관람료는 6,000원. 큐브Big3 Duo(20,000원)는 영화제 기간내 6편을 선택해서 관람할 수 있으며 한 회당 2매까지 사용할 수 있어 친구나 연인과 함께 와서 이용한다면 경제적인 데이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루종일 영화세상에 푹 빠져보고 싶다면 큐브데이프리패스(15,000원)를 선택할 수 있다. 방문예정국가 스페인/프랑스/이탈리아/영국/독일/러시아/핀란드/아이슬란드/스웨덴/유고 보스니아/헝가리/그리스 → 총 13개국 여행경비 1회 여행비 - 6000원 큐브 Big3-Duo 20000원 - 여행기간내 6개국가 선택방문가능 (한회당 2매사용가능) 큐브레일패스 30000원 - 여행기간내의 모든 국가 방문가능 큐브데이프리패스 15000원 - 당일여행일정의 모든 국가 방문가능 (모든 패키지 관람권은 <노 맨스 랜드> 관람에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상영 30분 이전에 발권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 작품소개 ① 붉은시편(18/88) - 헝가리, 미클로쉬 얀초 칸느영화제 감독상, 산티아고영화제 외국어영화상 등 다수 수상 19세기 말, 발린트 백작의 영지에 모인 농부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노래와 춤으로 단결을 과시하며 투쟁을 벌인다. 지주의 협박에도 농부들이 굴하지 않자, 지주는 군대를 투입한다. 군대의 총칼 앞에서 풍요로운 수확을 상징하는 메이폴을 중심으로 군무는 펼치는 농부들. 잠시 후 그곳은 대학살의 현장으로 변하고 만다. ② 성냥공장소녀(15/70) - 핀란드, 아키 카우리스메키 감독 아키 카우리스메키 자신이 선택한 최고의 걸작 이리스는 무능력하고 무표정한 얼굴의 엄마와 계부의 생활비를 위해 매일 성냥공장에서 기계처럼 일하는 노동자. 퇴근하면 집안일을 도맡아 해야만 하는 단조롭고 팍팍한 일상만큼이나 그녀는 그닥 예쁘지않은 한 마디로 볼품없는 소녀일 뿐이다. 그런 그녀도 가끔 저녁이면 댄스클럽에 나가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린다. 하지만 그녀에게 같이 춤추기를 원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그러던 어느 날, 화사한 빨간색 원피스를 사 입고, 댄스클럽에 간 이리스는 인텔리로 보이는 멋진 남자로부터 유혹을 받고 행복한 하룻밤을 보낸다. 하지만 하룻밤의 행복은 한낮 유희로 끝나고, 그녀는 임신한다. 예쁜 옷을 입혀줄 딸이길 바라는 그녀의 바람과는 달리 그와 가족들은 그녀를 외면한다. ③ 영국식정원살인사건(18/108) - 영국, 피터 그리너웨이 17세기 영국의 대저택을 무대로 귀족들의 욕망과 허위를 파헤친 미스테리 걸작. 17세기 왕정복고 시대 직후의 오만한 귀족들은 자신들의 집과 정원, 재산을 뽐내기 위해 화가를 고용하는 것이 관례였다. 영국 텐트주의 귀족 허버트 부인은 재능 있고, 콧대 높은 젊은 풍경화가 네빌과 특이한 계약을 맺는다. 자기 남편이 없는 동안 남편의 영지를 열 두장의 그림으로 그려주는 대가로 상당한 보수를 주며, 화가가 원할 때마다 성관계를 갖는다는 것. 어느날 사우스 햄튼을 여행중이라던 허버트 백작의 시체가 저택의 호수에서 흉한 몰골로 떠오른다. 사실은 영지의 상속권을 차지하기 위해 부인이 남편을 살해한 것. 어느 날 저녁, 그림을 마치려는 네빌 앞에 복면을 쓴 귀족들이 나타나 그를 실컷 모욕한 후 잔인하게 살해한다. 그러나 허버트 백작을 죽인 범인은 밝혀지지 않은 채 사건은 미궁에 빠진다. ④ 눈오는날의 왈츠(18/93) - 러시아, 비탈리 카네브스키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의 후속편격인 영화. 각박한 발레리카의 삶은 계속되고 고단한 그에게 소녀 발카의 눈빛은 특별한 두근거림을 갖게 한다. 직업훈련소에서 매춘에 연관된 사건으로 쫓겨난 발레리카는 자신의 삶이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절망에 빠진다. 그러나 어린날의 친구 갈리아가 그랬듯이 이번에는 발카가 지고지순한 사랑을 선사한다. 예전처럼 받아들일수 없는 발레리카는 고향을 떠나버리고 발카는 순수함을 잃고 지쳐버린 그를 찾아 먼 북쪽 지방까지 찾아온다. ⑤ 질주(18/99) - 스페인, 카를로스 사우라 마드리드의 뒷골목 출신인 파블로와 메카는 절도 행위를 하며 살아가는 소년들이다. 어느날 주차장에서 아슬아슬하게 차를 훔친 파블로는 카페에서 안젤라를 만나는데 안젤라는 파블로가 오래 전부터 사랑해오던 소녀로 그날 파블로는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안젤라 역시 파블로를 좋아했다며 그들은 영원히 함께 하자는 서약을 맺는다. 파블로는 안젤라에게 총 쏘는 법을 가르쳐주고 안젤라도 파블로 일행에 가담한다. 마드리드 교외의 공단 사무실을 털기로 한 날, 안젤라는 콧수염을 단 남자로 분장하고 한 몫 톡톡히 해낸다. ⑥ 자연의 아이들(18/88) - 아이슬란드, 프레데릭 쏘 프 리드릭슨 몬트리올 영화제 최우수예술공헌상(촬영상) 수상작.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양을 치며 홀로 살아온 게이리는 황혼의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도시에 있는 딸의 집을 찾는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는 것은 가족들의 따뜻한 보살핌 대신 극심한 세대차와 생활고로 인한 무관심 뿐이다. 곧 게이리는 양로원으로 보내지는데 그곳에서 첫사랑의 연인 스텔라를 만나게 된다. 그들은 감옥같은 양로원을 벗어나 고향(자연)으로의 여행을 시작하는데, 고생 끝에 도착한 고향은 아무도 살지 않는 폐허가 되어 있다. 하지만 그들은 옛 추억을 떠올리며 평화롭게 이 세상과 작별한다. ⑦ 차스키, 차스키(전체/91) - 스웨덴, 엘라 렘아겐 2000년 베를린 어린이 영화제 그랑프리 & 유럽 최우수 어린이 영화상 2000 베를린영화제 글래스베어 수상. 2000 스웨덴 아카데미상 4개부문 수상. 2000 스웨덴 비평가협회 선정 최우수영화. 여덟살 차스키는 락밴드 보컬리스트인 엄마와 단둘이 산다. 말로만 듣던 아빠는, 8년 전 지중해로 바캉스를 즐기러 간 엄마를 사로잡았던 섹시하고 멋진 그리스 잠수부이고, 그 만남으로 인해 차스키가 태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바캉스를 마치고 돌아온 엄마는 이후론 아빠의 존재를 잊고 살고 있으며, 발랄하고 터프한 성격과 아름다운 외모로 남자친구가 끊이지 않았었다. 게다가 엄마를 짝사랑하는 경찰관이 세들어 오면서 엄마는 남자친구인 베이시스트와 경찰관 둘 중에 누구를 택할지 행복한 고민을 한다. 한편 차스키는 한번도 보지 못한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엄마를 조르고, 드디어 그리스로 향한다. ⑧ 타인의 취향(18/112) - 프랑스, 아녜스 자우이 2001년 아카데미상의 프랑스 엔트리 세자르상 작품상, 각본상, 여우조연상, 남우조연상 등을 수상 중소기업 사장 까스텔라는 타인의 취향에는 조금도 신경쓰지않는 완벽주의자인 부인과 함께 살아가는 교양은 부족하지만 순수한 남자이다. 그는 부인에게는 살찐다고, 부하직원에게는 약속도 안 지킨다며 지적을 받으며 살고있는데, 우연히 찾아간 연극무대의 주연배우를 보고 그녀에게 빠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녀는 자신에게 영어를 가르치기로 소개받은 개인교사였다. 그녀의 관심을 얻기 위해 연극도 보고, 그녀의 친구들과 어울리며 전시회도 다니지만 그녀의 환심을 얻기는커녕 비웃음만 산다. 하지만 사랑으로 인해 평소에는 생각지도 않았던 타인의 취향에 빠지며 숨겨져 있던 자신의 취향마저 발견하게 된 까스텔라는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⑨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18/93) - 독일,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청소부로 일하는 독일인 중년여성이 20세 연하의 아랍청년과 사랑에 빠진다. 독일 중년 여자는 에미로 청소부일을 하며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어떤 술집에 들어가게 되고, 이 술집에서 모로코 출신의 젊은 남자 알리를 만난다. 우연히 춤을 추게 된 이 둘은 서로에게 끌리게 되고 사랑을 나눈다. 하지만 이 둘의 사랑은 순탄하지 않다. 당시 독일 사회는 아랍계 인종을 동물처럼 취급하는 현실로 이 둘의 사이를 곱게 보지 않는 것이다. 결국 이 둘은 가족과 직장, 이웃으로부터 차가운 멸시와 따가운 시선을 받게 된다. 역경 속에서도 이들은 또다시 사랑을 다짐하지만, 순탄할 리가 없다. ⑩ 거미의 계략(15/90)- 이탈리아,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1930년대 파시즘과의 투쟁에서 암살당한 후 영웅으로 추앙받는 아버지의 고향을 찾은 마냐니. 그는 동네 사람들로부터 무솔리니를 암살하기 위해 마을 극장에 폭약을 설치하기로 했지만 누군가의 밀고로 거사가 실패하고 아버지가 암살당했다는 당시의 설명을 듣고 의문을 갖는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던 그는 뜻밖에도 아버지가 바로 밀고자였으며, 영웅의 신화는 동료들이 함께 꾸며낸 거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아버지의 신화를 허물기 꺼려하는 그도 역시 진실을 밝히는 대신 침묵을 지킨다. ⑪ 안개속의 풍경(15/126) - 그리스, 테오 앙겔로풀로스 베니스 영화제 최우수감독상 등 5개 부문, 유럽영화제 최우수감독상 등 수상 엄마와 함께 살고 있는 남매, 불라와 알렉산더는 아빠를 찾아 무작정 북쪽으로 가는 열차에 오른다. 그때부터 두 아이들은 고통스럽고 절망스러우며, 때로는 희망이 엿보이는 여행길에 접어든다. 결혼식 날 슬피우는 신부와 눈덮힌 거리에서 죽어가는 말, 공연장이 없어 뿔뿔이 흩어지는 유랑극단의 풍경 등을 보며 인생의 슬픔을 어렴풋이 알게 되는 불라와 알렉산더. 불라는 우연히 얻어탄 트럭의 운전사에게 강간을 당하고, 첫사랑의 감정을 느낀 청년이 동성애자임을 알고 절망하며, 알렉산더는 빵을 얻기 위해서는 고된 노동을 해야한다는 각박한 현실을 처음으로 경험하게 된다.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남매의 여행은 계속되고, 마지막에 아빠를 만나는 대신 안개가 자욱한 풍경 속에 꿋꿋이 서있는 나무를 발견하게 된다. ⑫ 검은고양이 흰고양이(18/125) - 유고, 에밀 쿠스트리차 고요한 초록빛의 다뉴브 강가에서 이 곳에 터를 닦아 자손을 낳고 살고 있는 두 집시 집안이 있다. 먼저 1세대. 그르가와 자리야. 그들의 아들인 마초와 다단, 3대인 자레와 다단의 여동생은 반목과 우정을 거듭하는 집안이다. 집안을 책임져야 하는 처지이지만 늘 놀고 먹는 한심한 백수, 마초 어쩌다 석유밀수업에뛰어 들게 된 그는 오랜 친구인 깡패 두목 다단에게 사업 자금을 꾸게 되고 게다가 다단이 사기에 말려들어 깡통 신세가 된다.다단에게 돈을 갚을 일이 묘연한 가운데 다단은 부채를 탕감해주는 조건으로 자신의 여동생 딱정벌레에게 마초의 외아들 자레를 장가보내리라는 제안을 한다. 결혼식을 앞둔 하루 전, 천지신명의 도움인지 손자를 도와주려는 할아버지의 마지막 베품인지, 자리야가 세상을 뜬다.마초는 당장 다단에게 달려가 결혼식과 장례식을 한꺼번에 치룰 수 없다고 하지만 다단을 사망소식을 사흘 후로 연기할 것을 종용한다.어쩔 수 없이 다음 날, 마초의 집 마당에선 결혼식이 치뤄지고 혼인 서약이 울려퍼진다. ⑬ 노맨스랜드(?/98) - 유럽6개국공동제작, 다니스 타노비치 2001 깐느영화제 각본상. 2002 골든글로브 최우수외국어영화상, 아카데미 최우수외국어영화상 수상작 울다가도 웃고 있고, 웃다보면 가슴 찔리는 예리한 블랙코미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빚어내는 데, 전쟁만큼 재주 많은 녀석이 있을까. 비오듯 쏟아지는 폭격도, 리얼한 전투도 없지만 전쟁이 인간에게 주는 비극을 어느 영화보다 절절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한 참호에 보스니아 순찰대 치키와 세르비아 신참병사 니노가 고립되고 여기에 체라는 등 밑에 지뢰를 깔고 누워 꼼짝할 수 없는 처지. 이제 유엔군과 기자단이 그들을 돕겠다고 나선다. 올해 아카데미 심사위원들은 <아멜리에>의 미소를 뿌리치고 눈물보다 진한 <노 맨스 랜드>의 웃음을 선택했다. 인터넷 콘텐츠팀 cine21@news.hani.co.kr 여행일정표   7/29(월) 7/30(화) 7/31(수) 8/1(목) 11:30 거미의 계략 자연의 아이들 질주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1:40 붉은 시편 거미의 계략 영국식 정원 살인사건 눈오는 날의 왈츠 4:00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차스키, 차스키 성냥공장 소녀 타인의 취향 6:10 성냥공장 소녀 질주 차스키, 차스키 노 맨스 랜드 8:20 영국식 정원 살인사건 안개 속의 풍경 타인의 취향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

장진 · 장항준의 고삐풀린 수다 140분 [3]

수다 5 Round 난 집채만한 데스크탑, 넌 날렵한 노트북 장항준 너는 모르겠지만 참, 내, 이런 일도 있었다. 줄줄 나오네. 시나리오 쓰려고 수유리에 있는 아카데미하우스에 들어갔거든. 데스크톱 낑낑 안고 프론트에 가서 “저 영화…”하는데 프론트 언니가 반가운 목소리로 “어머! 장진 감독님이죠?” 하는 거야. 허참! 여기서도 장진을 찾나, 그러더니 저 맨 끝쯤에서 “아 여기 이름있네요. 장항준씨…” 하더라고. 그래서 장진이 방은 몇호예요? 물었더니 미치겠네 내 옆방이야. 그래서 내가 니방 찾아갔었잖아.(이런 이야기를 할 때 장항준 감독은 보통 일어나서 일인극 수준으로 허공에 팔을 휘휘 저으며 대사를 치고받는다) 장진 그랬냐? 나는 옷 다 벗고 목욕하려고 물 받아놓고 발 딱 담그려는데 초인종 울려서 놀랐잖어. 장항준 나는 초인종 눌러도 소식이 없기에 이 자식 시나리오 쓴다고 들어와서 혹시 여자랑 있나 했다니까. 초인종 누르고 니가 나오는 시간을 계산해볼 때 딱 여자숨기고 튀어나올 시간이었거든. 어쨌든 방에 들어갔더니 나는 그 집채만한 데스크톱 들고오느라 고생했는데 너는 날렵한 노트북들고 앉아 있더라. 그때 맥주 한잔하면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많이 했는데. 장진 그날 <불타는 우리집> 사정을 처음 들었잖아. 하지만 나는 ‘항준이는 언젠가 나랑 만날거다’라고 생각했었어, 만약 안 만났다면 그때가 나쁜 타이밍이라고 생각하면서. 난 사실 이번에 <라이터…>가 개봉해서 기쁘지만 니가 시나리오 쓴 <박봉곤…>이 영화될 때가 제일 기뻤던 것 같아. 그 시나리오 보고 정말 즐거웠거든. 장항준 나는 <박봉곤…> 끝나고 인생 필 줄 알았다니까. 그런데 아니데. 우리 아버지가 만날 나 붙잡고 영화는 한다고 한 게 언젠데 안 하니, 하려다가 엎어졌는데요, 그러면 방송해라 방송할 땐 돈도 잘 벌더니… 그러면서 아주 달달 볶으시는거야. 게다가 집에 쌀이 떨어졌어. 아주 상징적인 사건 아니니? 장진 정말 고전적인 시추에이션이다. 장항준 그럴 때마다 우리 마누라가 아버님, 그이는 하고 싶은 거 해야 해요, 돈은 제가 벌어올게요, 그랬다니까. 그래서 우리 마누라가 나는 고마워. 은희야, 사랑한다! 장진 물론 너는 내가 먼저 아무 일 없이 잘 커나갔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도 모든 게 간절했던 시절이 있었거든. 나는 ‘오야지’가 없었어. 늘 맨땅에다 박았어. 스승의 날에 카네이션 꽂을 사람이 없다고. 그런데 나에겐 그 간절했던 시절이 너무 짧았어. 그런데 너는 그 시절이 깊었단 말이야. 그런 놈들은 좀처럼 안 흔들리거든. 장항준 너도 알다시피 우리집 식구들이 진짜 말이 많잖아. 그나마 내가 제일 조용한 편이야. 우리 엄마가 내 결혼식에 연예인들이 몇명 올 건지 친구들하고 내기하고 있다고 해서 내가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전화하던 거 생각하면…. 장진 니네 가족사를 듣다보면 부러워. 나는 아무도 터치 안 하고, 그냥 나혼자 살아나온 것 같어. 장항준 야! 넌 진짜 좋겠다. 난 인생이 터치야. 아버지 터치, 엄마 터치, 형 터치 심지어 동생도 터치야. 딱 하나 맘대로 해본 게 영화야. 인생에서 승부 두번 걸었지. 나 연극영화과 가야겠는데요, 영화할 건데요. 이거 둘. 공부 잘했으면 아마 영화 안 시켰을 텐데. 그나마 다행인 건지. 수다 6 Round 별 5개짜리 코미디, 더이상 꿈이 아니다 장진 그동안 나 보면서 저건 아닌데 한 건 없었냐? 장항준 글쎄 <킬러들의 수다>는 이야기 자체가 내 과가 아니었거든. 나도 예전엔 내레이션을 좋아했는데 지금은 내레이션이 싫어. 물론 비주얼이나 다른 면들은 저놈이 언제 저런 거 공부했지 싶을 정도였어. 저 자식이랑 나는 이제 완전 인생이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 하지만 나는 <간첩 리철진>이 훨씬 장진다웠어. 장진 솔직히 <킬러…>는 어떤 부분 내 것을 많이 죽이고 간 게 있었지. 장항준 왜 <간첩 리철진>에서 유오성이 술먹고 경찰서에서 꼬장부리고 나오는데 길가에 인민복을 입은 남자가 서 있는 환영을 보는 장면이 있잖아. 그런 니 감성이 정말 좋아. 그런 표현들을 보면 장진이란 감독에 대한 확신이 느껴져. 저놈은 지가 생각하는 것을 실현하는구나. 거물 같은 느낌이 다 들더라구. 장진 어이고 말은…. 장항준 물론 예전에 <기막힌 사내들>을 보면서부터 이 자식 진짜 웃긴 놈이다. 진짜 배짱좋다, 생각했지. 그런 거 보면 확실히 너보다는 내가 훨씬 대중지향적인 것 같어. 나는 모험 안 하려고 하잖아. 그건 일종의 모험처럼 보였거든. 그런데 결국 만들더라고. 하여튼 대단해 보였어. 장진 넌 이제 시작이잖아. 앞으로 두세 작품 더 지켜보면 장항준의 세계가 보여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아직 니가 안 보여준 세계가 너무 많단 말이야. <라이터를 켜라>를 통해 보여준 니 세계는 극히 작단 말이야. 장항준 그렇지 장진 나는 니가 이제 메커니즘과 만나고 영상력이 뒷받침되면 충분히 시너지를 일으켜서 <인생은 아름다워> 이상의 코미디, 별 5개짜리 코미디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 장항준 칭찬이냐? 나는 웃음이 미덕이라고 생각해. 웃음 자체가 사람을 즐겁에 해줄 수 있으면 족하지. 성격이 쭈글쭈글한 걸 싫어하니까. 슬프고 참혹한 이야기를 즐겁게 하는 그런 글을 쓰고 싶다. 장진 항준이 니가 겪었던 이야기를 풀어내는 스타일, 톤, 제스처가 나랑 통하는 부분이 있는 거니까. 아무리 살벌한 이야기라도 항준이 너는 유쾌하게 들려주고 그 안에서 동화를 꿈꾸는 수준까지 갈 수 있는 놈이거든. 고루하거나 남루해지지 않는 느낌이 있다고. 장항준 난 진이 너는 나랑 다른 종자라고 생각했어. 쟤는 운동을 잘하고 나는 안 되고. 재는 패션감각이 있고 나는 후질하고. 오늘 이게 내가 제일 잘 입고 온 거라니까. 너를 보고 있으면 장진은 저지를 줄 아는 놈이구나. 되게 열심히 사는구나. 일을 하면서 즐거움을 찾는구나 하고. 특히 <묻지마 패밀리>는 정말 잘했다 싶어. <묻지마 패밀리>는 장진 아니면 대한민국에서 할 사람이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 이제는 니가 사람을 키우겠다는 사람 마음을 알기 때문에 충무로에 신선한 바람을 넣어보자. 처음엔 잘돼서 배가 아프기도 했지만, 농담 아니라 진짜 배가 아팠어. 내가 왜 너 밑에 들어가냐? 생각했지만 지금은 장진 밑에 기꺼이 들어가고 싶어. 장진 그래서 결국 들어왔잖아. (취재진을 향해) 이 친구 이제 수다에서 작가팀 팀장으로 일해요. 조그마한 회사에서 ‘이사’직함 달고. (웃음) 물론 오랫동안 원해왔던 것이기도 하지만 충무로 안에서 장항준이란 브랜드는 장진 이상이지 이하는 아니라고 생각했거든. 같이 가자 했을 때 너 하루 정도 고민했냐? 장항준 음, 하루 정도. 장진 같이 와줬다는 게 어쨌든 고맙고 든든하다. 그런데, 제발 건강 좀 챙겨라. 니 얼굴을 봐라. 병원에 가야 돼. 키가 172인데 52킬로그램이 인간이냐? 장항준 나도 안다. 그런데 쉴 틈이 있을는지 모르겠다. 나 아트서비스에서 <불어라, 봄바람>이란 영화하기로 했어. 사랑이야기인데 겨울 동안 한눈에 뽕가는 사랑을 나눈 몇명의 연인들이 결국엔 상처받고 봄바람과 함께 치유된다는 이야기. <문 스트럭> 같은 느낌이 나는 영화가 될 거야. 장진 코미디가 있는? 장항준 그럼! 그건 습관이지. 장항준과 장진, 나란히 놓고 봤더니… 의지를 물먹이는 우연, 그 이유있는 난센스 질문1) 다음 인용문에서 A와 B는 누구일까요? 질문2) A와 B 중 8년 뒤에 누가 더 자신이 원하는 걸 많이 성취했을까요? “A는 코미디 계열로 따지면 비주류 코미디다. 이해가 안 되는 점도 있었고. 굉장히 특이한 생각을 많이 하는 친구다. B의 코미디는 대중적이다. 무척 쉬워서 누구나 웃을 수 있다.… A는 남들에게 크게 폐를 안 끼치고 자기 할 일을 소리없이 하는 편이다. B는 민폐를 무척 많이 끼친다. 난데없이 집에 찾아와 돈달라 그러고 밥값을 내는 법이 없다. 그런데 특이한 건 B의 그런 민폐를 싫어하는 사람이 없다는 거다.… B는 한번 관계를 맺으면 나중에도 끊임없이 연락을 한다. 물론 그래서 돈 쓰게 만들지만. A는 별로 그러지 않는다. 전형적인 서울 사람 같다.… A는 여자를 잘 사귀는데 B는 못 그런다. A는 여자가 자기를 사랑하게 만들고, B는 그냥 뒤섞여 어울리는 것밖에 못한다.” 94년 시트콤 드라마 <좋은 친구들>을 연출하면서 장진과 장항준을 함께 작가로 두고 일했던 김병욱 프로듀서의 말이다. 69년생인 장항준은 1년 늦게, 71년생인 장진은 1년 일찍 서울예대 연극영화과에 같은 89학번으로 들어와 만났다. 특별히 친했다기보다, 서로를 “말이 통하는 몇 안 되는 친구 중 하나”로 여겼던 둘은 <좋은 친구들>에서 다시 만났다. 그때까지만 해도 같은 방송작가였을 뿐, 누가 더 잘 나간다고 말하기 힘들었다. 그해 장진의 희곡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얘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신춘문예에 도전하겠다는 말을 먼저 한 건 장항준이었는데, 장항준이 시도도 하기 전에 장진이 당선됐다. “그래 좋다, 나는 영화다.” 장항준은 방송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시나리오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둘의 차이는 더욱더 벌어졌다. 장진은 연극 <택시 드리블>로 대학로의 기린아가 되더니 장항준이 노리던 영화까지 밀고 들어와 <기막힌 사내들>로 감독 데뷔하고 <간첩 리철진>으로 흥행까지 성공시켰다. 지금은 ‘필름있수다’라는 프로덕션까지 차렸다. 장항준은 계속 안 풀렸다. 자신이 쓴 시나리오 중 처음 영화화된 <박봉곤 가출사건>은 흥행이 안 좋았다. <북경반점>의 타이틀에 각본자로 이름이 올라 있지만, 워낙 개작이 많이 돼 자기 것 같지가 않다. 물론 흥행도 비참했다. 장진과 달리 결혼까지 했는데 집에 쌀이 떨어지는 날도 있었다. 근근이 방송사에 가서 <천일야화> 같은 콩트의 대본을 써서 푼돈을 벌었다. 장진을 보면 “배가 아팠다”. 장진이 자기에게 오라고 하면, “내가 네 밑으로 왜 들어가” 하며 무시했다. 고진감래? 장항준도 데뷔했다. 7월18일 개봉하는 그의 첫 영화 <라이터를 켜라>는 예감이 좋다. ‘어리버리’한 실업자 봉구가, 깡패들이 탈취해 종착역 담벼락에 충돌시키려고 하는 서울→부산행 새마을호 열차를 구해내는 한국판 <다이 하드>다. 시속 140km로 논스톱 질주하는 열차 위를 기어가는 봉구의 모습은 존 매클레인 형사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싸움도 못하고 엉성하기 그지없는 그 꼬락서니가 존 매클레인과 비교돼서 더 웃긴다. <주유소 습격사건> <신라의 달밤>의 인기 작가 박정우의 시나리오로 만들었지만, 일회성 개그들로 캐릭터를 소모시키지 않고 코미디와 액션 장르를 짜임새있게 결합시키는 연출은 확실히 돋보인다. 장항준은 캐릭터들의 동기와 이야기의 개연성을 강화하기 위해 몇몇 시나리오의 중요한 부분을 고쳤다. 봉구가 죽도록 얻어터지면서도 라이터에 집착하는 걸 설명하기 위해 영화 앞뒤에 봉구의 동창회 장면을 넣었다. 또 봉구가 갑자기 브루스 윌리스가 되는 게 어색해서, 일대일 결투장면을 대폭 줄이는 한편 봉구의 머리가 돌머리라는 설정을 전반부에 집어넣었다. 원래는 총각이던 깡패두목 양철곤을 유부남으로 바꿔 부인 이야기를 추가했다. 그렇게 완성된 영화의 유머에는 장진과 유사한 부분이 있다. 봉구가 철곤에게 라이터를 달라고 처음으로 정색하고 말했을 때, 옆에서 철곤의 졸개가 “우리 형님이 화장실에서 라이터나 줍는 놈으로 보여?”라는 말만 안 했어도 철곤은 라이터를 줬을지 모른다. 그랬다면 봉구는 기차에 타지 않았을 거다. 인간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엉뚱한 변수가 상황을 끌고가는 건 장진 영화에서도 자주 나온다. 기차 안에서 봉구와 깡패가 가스총을 맞잡고 싸울 때, 그 총이 가스총인 줄 아는 이들조차 총구를 피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이처럼 ‘이유있는 난센스’도 장진과 통한다. 그러나 봉구가 과거의 나약함과 그로 인한 수모를 자기 의지로 극복한다는 설정은, 시종일관 의지가 우연에 의해 배반당하는 장진식 유머와 다르다. 드마라의 인과관계도 장진보다 강조된다. 얼핏 장항준의 유머는 장진의 그것보다 대중적이고 상식적으로 보인다. 이를 두고 김병욱 프로듀서는 “장진은 연극에서, 장항준은 방송에서 단련됐기 때문인 것 같다”고 해석했다. 장진은 “나나 항준이나 비현실적인 상황과 인물에 현실을 투영하려 한다, 다만 항준이는 평균치 이하로 취급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면서 그들을 평균치 이하로 보는 사회의 시선에 시비를 거는 데 관심이 많다”라고 말했다. <라이터를 켜라>를 마치고 장항준은 ‘장진 밑으로’ 들어갔다. 장항준은 ‘필름있수다’의 작가팀장으로 장진과 함께 작업할 것이다. ‘선의의 라이벌’이라는 표현이 좀 느끼하지만, 이 둘에게는 어울린다. 충무로의 코미디가 더 풍요로워질 것 같아 흐뭇하다. 답)1번은 이제 아실 테고, 2번은….

<챔피언> O.S.T

곽경택 감독은 추억을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는 잠수부다. 그 점이 맘에 들고 또 맘에 걸린다. 이번 영화는 구조 자체가 끝없이 과거의 심해로 자맥질해 들어간다. 나 역시 그 일요일 낮의 기억을 영화를 통해 되살린다. 김득구가 레이 붐붐 맨시니와 혈투를 벌인 뒤 혼수상태에 빠지던 날 말이다. 그는 비상한 기억력으로 당시를 영화 속에 재현하고자 노력한다. 또 영화 속의 김득구는 끊임없이 어린 시절의 바다로 자맥질해 들어간다. 영화가 끝난 뒤 자막 올라갈 때 흐르던 음악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일동 스포츠’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MBC 스포츠’로 타이틀을 바꾼, 매주 일요일 밤에 하던 권투시합 때마다 나오던 음악이다. 최고의 타이틀 선곡이라고나 할까. 음악이 당당하고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영화를 보며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한 시절을 풍미한 이 타이틀 음악을 들으며 거의 전율했던 초등학교의 기억 때문이다. 이 음악이 흐른 뒤, ‘개구쟁이라도 좋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라고 외치는 영양제 광고를 비롯한 CF가 끝나면 그 누구도 예상 못할, 실제로 상대를 죽일지도 모르는 피터지는 주먹의 대결이 펼쳐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 음악을 엔딩에 쓴 것을 보면, 곽경택 감독이 (주로 미디어를 통해) 문화적으로 공유된 과거의 기호들에 많은 관심과 굉장한 애착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라면 먹고 간다 물배 채우고 간다’로 시작하는, 박진영이 만들고 god가 부른 주제가는 북과 징, 꽹과리 같은 국악기들과 힙합적인 그루브를 얽은 수작이다. 거칠게 받은 소리들이 헝그리정신을 적절히 표현하고 있다. 윤민화를 비롯, 여러 사람들이 만든 스코어도 비교적 느낌을 압축해내는 힘을 지니고 있다. 영화가 시작할 때 나오는 김영동의 <바람의 소리>는 혼을 불러내는 듯한, 과거를 끌어내는 듯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O.S.T에는 뜻밖에도 god의 노래가 두곡, 보너스 트랙으로 들어 있다. 김득구의 로드워크신에 쓰인 <태권브이> 주제가는 이질적인 것들을 덧대어 관객을 과거의 한 공간으로 불러들이는 유쾌한 상상력의 소산이다. 버스에 탄 여자친구를 따라 남산 순환도로를 뛰는 김득구와 함께 우리는 아이가 된 심정으로 과거의 한때로 간다. 그러나 문득 김득구의 경기가 TV로 중계되던 그 시기를 떠올리면 이건 너무 아늑한 유년의 느낌이다. 자, 그러고나서 생각하니, 이 영화가 기억의 난파선에서 김득구를 건진 뒤 제대로 수면 위로 올라왔는지가 좀 의문이다. 김득구라는 유물이 너무 무거웠나. 아니면 올라오려는 의지가 조금 부족했나. 따뜻한 심해=자궁 속? 만일 그가 김득구를 제대로 건져올리려 했다면 현재와 그 시대를 연결시키는 의식, 다시 말해 ‘역사의식’이 좀더 필요했다. 심하게 말하면, 그 일요일 오후에 한 시대가 끝났다는 것을 영화는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은 그날 이후 알주먹 두개와 마우스 피스를 악문 하악골의 독기만으로 세계 챔피언이 되곤 하던 선수들에게 열광하기보다는 고비용의 좀더 체계화된, 이를테면 프로야구 같은 스포츠로 관심을 옮겼다. 독재자는 여전히 스포츠를 악용했지만 약아빠진 5공 군바리들은 이제 그 쾌락의 과정을 본격적으로 시스템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대목을 건드리지 않으면, 김득구라는 과거는 너무 무겁게 아름답다. 그래서 그 난파선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감독은 무거운 김득구를 껴안고 꿈을 꾼다.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

블록버스터에 도전한다,<워크래프트3>

게임에 조금이라도 관심있는 사람치고 ‘블리자드’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워크래프트>와 <디아블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국민게임 <스타크래프트>를 만든 회사지만 개인적으로 썩 좋아하지는 않는다. 뛰어난 블록버스터를 만드는 회사지만, 영혼을 담은 걸작을 만들 수는 없을 거라고 봤기 때문이다. 억지로 갖다붙이자면, 스티븐 스필버그 같은 회사지 스탠리 큐브릭은 아니라는 얘기다. 이번에 나온 <워크래프트3> 역시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의견이 달랐다. 요즘 패키지 게임업계는 게임산업이 형성된 이래 최악의 불황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지경이다. 시장에 숨통을 틔워줄 대작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하다. 온라인이고 오프라인이고 패키지 게임 유통망은 오랜만에 자금이 순환될 것을 기다리며 달아오를 대로 달아올랐다. <스타크래프트> 중계가 슬슬 시들해지기 시작한 게임방송들 역시 <워크래프트3>의 성공을 바라는 데는 패키지 시장 못지않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제일 애가 타는 건 PC방이다. <스타크래프트>로 태동한 PC방은 <디아블로2>로 르네상스기를 맞았다. 지금은 여러 온라인 게임들이 공존하며 근근이 꾸려나가고 있다. 대형 스타의 등장으로 다시 한번 바람이 이는 게 필요하다. 그리고 PC방 입장에서야 매달 사용료를 물어야 하는 온라인 게임보다는 한번 패키지만 사면 그 다음에는 돈 나갈 일 없는 패키지 게임이 훨씬 낫다. 이처럼 모든 업계 관계자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성공을 바라는 게임이 과연 또 있었던가? 그리고 <워크래프트3>가 나왔다. 몇 가지 지적할 게 없는 건 아니지만 블리자드표답게 완성도 높은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정말 놀라운 건 스토리다. RPG도 아닌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스토리가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다니 상상도 못했다. 는 배우들의 명연기가 훌륭했고 특히 여주인공 타냐에게 홀딱 반하기도 했으며 <배틀 렐름>의 시나리오 역시 욕망에 사로잡힌 권력자의 이야기를 꽤나 재미있게 풀어나갔다. 하지만 <워크래프트3>의 싱글 플레이만큼 스토리와 게임 진행, 동영상과 폴리곤 캐릭터의 연출이 환상적으로 맞물린 게임은 지금껏 없었다. 3D 활용방식에서도 블리자드의 개발능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2D에 비해 3D가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몇몇 불운한 태생의 게이머들에게는 어지럼증을 불러일으킨다는 약점도 있다. <배틀 렐름>이 3D면서도 시점을 고정하고 지형을 평평하게 해서 고저차를 준 것은 3D가 가지는 어지러움이나 사각지대를 완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나름의 성과는 있었지만 3D다운 느낌을 많이 잃었던 것 역시 사실이다. <워크래프트3>는 <배틀 렐름>의 방식을 가져다 쓰면서도, 전체적으로 볼록한 느낌을 주어 3D 기분을 완벽하게 살려내고 있다. 고생이야 했지만 그 결과 단순히 눈으로 보기에 좋은 것뿐 아니라, 지형을 이용하는 3D 실시간 전략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킬 가능성을 만들어냈다. 아이로니컬한 것은 목빼고 기다렸던 사람들보다는 뜨악하던 내 입맛에 더 맞는 게임이라는 것이다. 빠른 러시와 멀티 등 <스타크래프트> 하면 떠오르는 전략들은 <워크래프트3>에서는 유효하지 않다. <워크래프트3>의 새로운 시스템이 <스타크래프트>에 익숙한 PC방 유저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좀더 지나봐야 알 일이다. 하지만 <스타크래프트>에 편견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꼭 한번 도전해볼 일이다. 박상우/ 게임평론가 www.MadoeDea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