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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2003)

[투덜군 투덜양]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군! <미스터주부퀴즈왕>

오래전에 애니메이션 <심슨가족>에서 봤던 에피소드 중에 심슨네가 가족상담을 하러갔던 게 있었다. 회사 야유회에 갔다가 화목한 다른 가족들과 달리 아내는 술 취해 헤매고 애들은 싸우는 걸 보면서 호머는 자식보다 더 아끼던 텔레비전을 팔아 상담비용을 마련한다. 실패하면 치료비의 몇배를 물어주겠다고 장담하는 이곳은 전기충격으로 치료를 한다. 가족이 모두 전기충격모자를 쓰고 자기가 버튼을 누르면 고통받는 상대방을 보면서 반성하도록 유도한다는 게 그 테라피인데 심슨네 가족들은 상대방이 발작하는 걸 보면서 즐거워하며 더 신나게 버튼을 눌러대는 탓에 결국 상담자는 두손 들고 벌금을 물어준다. 그 돈으로 더 좋은 텔레비전을 사서 진짜 화목한 가족이 된다는 줄거리였다. 왜 이 에피소드를 썼느냐, 원만한 가족을 꾸리려면 돈이 중요하다는 진리를 말하기 위해서다. 심슨 가족이 화목해진 건 성격을 고쳐서가 아니라 공돈이 생겼기 때문이다. 물론 돈이 전부는 아니겠으나 어쨌거나 돈은 중요하다. 새삼스럽게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미스터주부퀴즈왕>의 결말이 나를 분노하게 만들어서다. 비범하지는 않지만 <미스터주부퀴즈왕>은 꽤 재미있는 영화다. 무엇보다 남성전업주부를 보는 시선이 밉지 않다. 가사에 적응 못해 허둥거리거나 지나치게 여성화된, 그러니까 억지스럽게 희화화한 모습으로 남성전업주부를 그리고 있지 않고 무엇보다 꽤 괜찮은 주부 캐릭터를 한석규가 연기한다는 건 나름 매력적이다(그러나 요즘 젊은 주부들이 한가하게 오순도순 모여 고스톱을 치고 놀 거라고 생각하는 건 남성감독의 올드한 착각이라고 본다). 어머니와 함께 오붓하게 김치를 담그는 진만의 모습도 꽤 근사하다. 진만을 보다보면 돈 많이 벌어오는 마초남편을 두는 것보다 이렇게 능력있는 주부남편을 두는 게 더 나을 거라는 확신도 든다. 그런데 말이다, 마지막에 결정적으로 진만은 나를, 그리고 이 세상 많은 주부를 배신했다(영화를 안 보신 분들은 여기서 읽기 중단하시길). 돈 안 벌어오는 거야 뭐라 할 수 없겠지만 굴러들어온 돈덩어리를 왜 걷어차냔 말씀이다. 물론 돈보다 가족간의 사랑이 중요하다는 아름다운 교훈을 전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러나 진짜 이 가족이 행복해지는 길은 화해하기 위해 결단을 한 수희와 진만이 보기 좋게 호흡을 맞춰 퀴즈왕이 되는 것이었다. 내 생각에 진만네 가족은 더 분위기 안 좋아질 것이다. 쪽팔린 거 무릅쓰고 무대 위에 나섰건만 어처구니없는 행동으로 3천만원을 날려버린 남편을 아내가 좋게 볼 수 있겠나. 날아간 곗돈이 우발적 사고라면 퀴즈왕 포기는 엄연한 귀책사유다. 비난받아 마땅한 과실인 것이다. <미스터주부퀴즈왕>은 하나는 알아도 둘은 모르는 영화다.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굴러들어온 돈을 포기하는 건 전혀 유쾌하지 못한 반전이었다는 말이다.

황당하지만 갖고 싶은 영화 속 발명품들

영화 속 괴짜 과학자들은 평생 인정받지 못하다가도 불쑥 괴상한 기계를 발명하곤 한다. 그 뒤 생길 수 있는 일의 경우의 수는 3가지다. 떼돈을 벌거나, 인생을 종치거나, 애먼 사람을 곤경에 빠뜨리거나. <인생은 오백오십 살부터>보다 더 인기있고, <무중력 상태에서 할 수 있는 또 다른 쉰세 가지 일들>보다 더 잘 팔리며, <알고 싶지 않았지만 억지로 알게 된 섹스에 대한 모든 것>보다 더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다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역시 그런 발명품의 현대판이라 할 수 있다. 비현실적이지만 그래서 갖고 싶기도 한 영화 속 발명품들. 어디 한번 구경해보실텨? 나도 과학자가 되겠다고 뒷북치시지만 않는다면 대환영이다. 애들이 줄었어요/ 전자자기축소기 이 영화는 하도 옛날 디즈니영화라(세상에 1990년의 영화닷!), 발명품의 작동 원리를 관객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 같은 것은 애초에 하지도 않는다. 때문에 어떻게, 어떤 원리로 만든 것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이 기계는 물체를 줄이기도 하고 늘이기도 하는 것이다.-그렇다니까!- 처음엔 이 기계도 (다른 모든 발명품들이 그렇듯) 제대로 먹혀들지가 않아 축소시키는 게 아니라 폭파시키기 일쑤였는데, 얼떨결에 작동하여 그집 애들과 옆집 애들을 개미보다 더 작게 줄여놓는다. 덕분에 애들은 잔디 깎은 지 2천년은 된 듯한 집 정원에서, 강아지 오줌 강을 뛰어넘고 스프링쿨러 해일을 피해다니며 갖은 모험을 하게 된다. 기계가 제대로 작동하게 된 계기가 ‘야구공이 레이저 구멍을 적절히 막아줘서’라니 화가 나지만, 고생 끝에 이웃끼리 친해졌다니 됐지 뭐. 끝이 좋으면 다 좋다잖아. 플라이/ 텔레포터 순간 물질 이동기계. 한쪽 텔레포터에 들어 있는 물질의 분자구조를 컴퓨터가 분석하여 다른 한쪽의 텔레포터로 전송한다. 두 덩이의 시커먼 알처럼 원시적인 디자인이지만 성능은 썩 괜찮은 편. 스타킹을 전송하면(코가 나가는 일 없이) 안전하게 전송된다. 처음엔 생명체 수송에 에러가 있어 관람객들은 튀김 원숭이와 강아지 묵사발 따위를 봐야 했으나, 나중에는 컴퓨터로 하여금 ‘Fresh’라는 개념을 인식케 함으로써 생명체 전송에 성공한다. 하지만 조심하자. 자칫 다른 생명체와 같이 전송기에 들어갔다간, 흰개미 인간, 모기 인간, 바퀴벌레 인간 같은 것이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들어가기 전에 진공청소기라도 돌리고 들어갈 일이다. 근데 생각해보니 좀 이상하다. 사람 몸(속)에 있는 그 수많은 기생충, 대장균, 먼지 진드기 따위들과는 왜 섞이지 않는 거냐? 어째 그런 거냐!! 백 투 더 퓨처/ 타임머신 자동차 드로리언 모터스의 DMC21은 영국 MTV 설문조사에서 가장 갖고 싶은 영화 속 자동차들 중 하나로 꼽혔다. 걸윙(Gull Wing) 도어에 스테인리스 합금 보디를 채용했고, 최고속도는 220km/h다. 물론 이 자동차가 인기를 끈 것은 코딱지만한 전면 윈도 때문이 아니라 <백 투 더 퓨처>의 브라운 박사가 장치한 시간이동장치 때문이다. 굉장한 기계지만 조작법은 심하게 간단하다. 가고 싶은 과거나 미래의 시간을 맞추고 시속 88km의 속도로 달려주면 끝. 보기엔 저래도 나름 전기 자동차인데, 시간여행에 1.21기가와트나 되는 전력이 필요하여 플루토늄을 연료로 사용해야 한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으나-테러단체에게서 플루토늄을 훔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예비 플루토늄을 준비해주는 센스가 없으면 영영 과거에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단 말씀- 영화 말미에는 쓰레기를 연료로 전력을 얻을 수 있게 보완되었다. 최초의 탑승객은 브라운 박사의 개 아인슈타인이다. 고스트버스터즈/ 유령 잡는 전자총과 트랩 미친 듯이 울리는 전화벨에, 소방서용 뺑뺑이 봉을 타고 날렵하게(과연 -_-) 내려오는 모습. 유령을 잡으러 간다기보다 농약이라도 살포하러 가는 듯한 차림이지만, 그 문제의 호스와 등에 멘 철가방이 그들 인생 대역전의 무기다. 만날 시시콜콜한 일로 말다툼을 해대는 이 아저씨 3인방도 알고보면 초심령학 박사들이란 말이지. 전자물리학을 어찌저찌 이용해서 유령을 탐지하고 포획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든 것인데(때 아닌 말이지만, 이콘이 동그란 안경을 번쩍일 때는 어린 마음에 가슴 꽤나 설렜다), 양자총을 쏴 유령을 묶어놓고 기타용 꾹꾹이처럼 생긴 페달을 열심히 밟아주면 트랩이 열리면서 유령이 쏙 빨려들어간다. 정전을 조심해야 한다. 유령창고에 전기가 끊기면 속절없으니까. 급박한 상황에서는 만화에서처럼 열심히 자전거 페달을 밟아 수동으로라도 꼭 전기를 공급하자. 빅/ 졸타 기계 놀이공원에서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이 기계는 소원을 들어준다. 누가 발명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유리장 안에, 코와 턱이 뽀족한 마법사인형이 들어있는 것이 이 기계의 대략적인 생김새. 돈을 넣으면 무섭게 생긴 졸타가 입을 뻐끔거리기 시작한다. 동전이 졸타의 입 속에 잘 들어가면 빙고! 적절한 타이밍에 소원을 빌면 된다. 드라마 <봄날>에서 조인성이 말을 더듬으며 외쳐대던 ‘조, 조, 졸타 기계’도 바로 이 물건을 지칭한다. <빅>의 주인공 조쉬가 빈 소원은 ‘어른이 되게 해주세요’인데, 어릴 때는 왜 그렇게 어른이 되고 싶은 생각이 드는지 지금 와서 생각하면 참 모를 일이다. 나나 당신이 지금 소원을 빈다면 주식 대박나게 해달라거나, 멋진 홈바와 욕실이 구비된 집을 달라거나, 촉촉하던 옛 피부를 되돌려달라거나 등등의 소원을 빌지 않았을지. 플러버/ 플러버 ‘날아다니는 고무(fly rubber)’라는 뜻으로 ‘플러버’라 명명된 이 물질은, 가열과 냉각을 빠르게 반복하여 만들어진 전도중합체가 뭐 어쩌고 저쩌고 하여 생긴, 준안정체 어쩌고란다. 처음 본 사람들은 푸딩이라느니, 헤어젤이라느니, 푸르죽죽한 엿 같은 것이라느니 하며 실례가 되는 표현을 할 수도 있을 것인데, 이놈은 간지럼도 잘 타고 강아지 모양 풍선으로 둔갑도 하고, 음악을 틀어주면 자기들끼리 춤도 추는 이상한 녀석이므로 플러버가 듣는 데서 그런 소리는 삼가기 바란다(쟈도 인격이 있단 말이다). 통통거리며 부지런하게 튀어다녀서 고양이 장난감으로도 그만. 감마선으로 플러버 내부의 흐름을 조절하면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만들 수도 있다. 신기하긴 하지만 세상사에 찌든 어른의 눈에는 영 현실성이 없어서, 초등학교 앞 문방구에서 팔던, 물에 넣으면 불어나는 고무 찐득이가 차라리 그리워질 수도 있다. A.I./ 사람 마음을 가진 로봇 유모로봇에서 섹스용 로봇까지, 겉보기에 사람과 다를게 없는 온갖 종류의 로봇이 나온 세상. 이쯤 되면 과학자들이 욕심낼 것은 (일본만화 어투로) 궁극의 로봇, 즉 사람처럼 감정을 가진 로봇이 될 수밖에 없다. 데이비드는 그 1호로 세상에 나온 존재. 하지만 뭐냐. 아들로 키우겠다고 입양한 가족은 친아들이 살아나자 대뜸 버린다. 사람이 되어 엄마에게 사랑받겠다고 서럽고 눈물겨운 고행길에 올라 ‘세상의 끝’이란 곳에 찾아갔더니 ‘내가 네 애비’라는 작자가 나타났는데…. 앞에서는 대략 ‘너는 굉장히 특별한 아이’라는 요지의 말을 하면서, 뒤로는 ‘야호, 이제 얘들 팔아 돈 벌어야지’라며 엄청난 수의 데이비드를 만들어놨으니… 원 참,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 그의 할아버지뻘로는 <블레이드 러너>의 로이가 있고, 고종사촌쯤 되기로는 <바이센테니얼 맨>의 앤드류, 이종사촌뻘로는 <아이, 로봇>의 써니가 있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 텔레비전 수상기로 초콜릿 전송하는 기계 쫙쫙 씹어주면 애피타이저부터 디저트까지 (질적으로 양적으로) 식사가 되는 껌이라거나, 상하좌우 심지어 궤도 밖으로까지 날아다니는 엘리베이터라거나, 다람쥐 노동력을 착취한 호두까기 시스템이라거나… 윌리 웡커의 초콜릿 공장에는 온갖 희한한 발명품들이 다 있지만, 역시 가장 신기한 것은 TV수상기 속으로 초콜릿을 전송하는 장치다. 이 발명품이 신기한 이유는 (아직까지 어떤 과학자도 만들지 못한 기계를) 분자구조고 에너지 변환이고 모두 무시한 막무가내 상태로 발명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TV로 방송될 땐 실물 크기보다 작아지기 때문에, TV로 전송된 초콜릿이 정상적인 크기가 되려면 애초에 엄청 커다란 초콜릿을 전송해야 한다. 낭비가 장난 아니신 것이 단점. 하지만 판매자가 개의치 않는다면 뭐 걱정일까. 어서어서 우리에게도 저런 기계를 만들어달라!

인기 드라마 애니메이션으로 재탄생

인기 드라마가 잇따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다. 애니메이션으로 제작이 끝나거나 제작 중인 작품은 문화방송 드라마 <대장금>과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 한국방송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 문화방송과 ㈜손오공, ㈜희원엔터테인먼트는 <대장금>을 30분짜리 26부작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장금이의 꿈>으로 공동제작해 이달 말부터 방영할 예정이다. 오현창 문화방송 글로벌사업본부 부국장은 “제작기간이 2년 걸렸고 제작비는 30억원이 들었다”고 말했다. 오 부국장은 “탄탄한 줄거리와 이색적인 이미지를 바탕으로 아이들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중국·홍콩 등 국외시장에서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제작 배경을 설명했다. <장금이의 꿈>은 주인공 장금의 생각시 시절 이야기를 다룬다. 장금과 한상궁, 민정호 등 등장인물은 드라마와 같지만, 줄거리는 장금이 궁궐 수랏간에 들어가 수련을 받으며 겪는 이야기로 드라마에서 볼 수 없었던 내용이다. <안녕, 프란체스카>도 10분짜리 6부작 디엠비(DMB)용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다. 지난 8월 <안녕, 프란체스카>의 공식 상품화 사업권자인 ㈜시은디자인과 애니메이션 제작사 효인동화, 화이트라인, 오렌지애니메이션스튜디오가 애니메이션 공동제작 계약을 맺고, 현재 시나리오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김명숙 효인동화 사장은 “<안녕, 프란체스카>는 시트콤이지만 판타지와 각각의 캐릭터 성격이 애니메이션에 적합한 소재란 판단이 들어 투자와 제작을 결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애니메이션에는 <안녕, 프란체스카> 1~3시즌의 캐릭터들이 모두 나오며, 등장인물은 시트콤 속 연기자의 모습이 아닌 등장인물의 성격을 갖고 있는 새로운 캐릭터로 재창조된다. 내년 2월쯤 완성돼 3월에 공개될 이 애니메이션은 먼저 브이오디(VOD)로 서비스된 다음 디브이디(DVD) 출시, 디엠비와 지상파 텔레비전 방영 등 다양한 경로로 선보일 예정이다. 한국방송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도 30분짜리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다. 이 작품을 공동제작하는 케이비에스미디어와 지앤지엔터테인먼트는 원래 드라마에서 풀리지 않았던 이야기를 애니메이션으로 보여줌으로써 드라마 팬을 흡수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이에 따라 주인공 무혁(소지섭)이 죽고 은채(임수정)가 자살을 선택하는 드라마 결말 전 1년 동안의 이야기를 다룬다. 등장인물을 최대한 드라마 속 연기자에 가깝게 설정하고, 분위기도 영상미가 뛰어났던 드라마를 고려해 제작하고 있다. 이 작품은 내년 2월께 완성돼 브이오디와 디브이디 등으로 제공된다. <안녕, 프란체스카>와 <미안하다 사랑한다> 애니메이션 제작을 맡은 모상준 피디는 “드라마를 바탕으로 한 애니메이션 제작은, 우리 드라마 등 대중문화에 대한 국외시장의 높은 관심을 침체에 빠진 애니메이션 시장으로 돌려 활로를 모색하겠다는 시도”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대중에게 알려진 소재로 더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어 그만큼 실패의 위험도 적다”며, “국내 애니메이션의 문제점인 취약한 이야기 구조를 드라마로 극복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이방인이 바라본 21세기의 동경이야기, <카페 뤼미에르>

허우샤오시엔의 1995년작 <호남호녀>의 도입부에서 영화배우 일을 하는 여주인공의 방에 놓인 텔레비전이 보여주는 영화는 오즈 야스지로의 <만춘>(1949)이었다. 허우는 자기에게 일종의 도전 의식을 불러오는 영화감독이라는 표현으로 오즈를 평가하곤 했다. 그러니 그 장면이 오즈에 대한 공경의 표시를 담고 있음을 알아채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오즈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카페 뤼미에르>는 그런 공경의 마음이 아예 온전한 출발점이 되어 만들어진 영화다. 영화는 오즈의 영화들로 들어가는 입구 역할을 했던 표준 비율의 쇼치쿠 영화사 로고 숏에 이어 마치 <동경이야기>(1953)의 도입부를 떠올리게 하는 듯 기차가 지나가는 숏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이쯤 되면 성급한 관객은 이제 오즈의 세계에서 가져온 스토리와 스타일을 스크린에 펼쳐놓는 영화가 진행되겠구나, 라는 예상을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금방 기대의 배반을 맛보고 말 것이다. 분명히 오즈의 세계에서 준거점을 찾을 수 있는 몇몇 장면들을 배치해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이를테면, 요코가 자기 집을 찾아온 아버지에게 대접하려 이웃에게서 사케를 빌리는 행위는 <동경이야기>의 노리코가 이미 했던 것의 반복이다), <카페 뤼미에르>에서 허우가 시도한 것은 수오 마사유키의 <변태가족, 형의 색시>(1984) 같은 오즈의 우스꽝스런 패러디는 물론 아니고 나가오 나오키의 <잔물결>(2002) 같은 극히 표면적인 이해에 기반한 오즈의 무미한 계승도 아니다. 허우는 오즈를 단순히 복제하거나 모방함으로써가 아니라 오즈의 정신과 적극적으로 교감함으로써 오즈와 만나려 한다. 허우에게 그것은 무엇보다도 당대 일본사회의 삶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의 문제이다. 그래서 그는 오즈의 것과는 다른, 멀찍이서 시간을 두고 오래 바라보는 자기 식의 시선을 굳이 폐기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게다가 무엇에 대해 유독 강한 호기심을 느끼는 듯한 어떤 때에는 그는 자기라는 관찰자가 이방의 존재임도 숨기지 않는다. <카페 뤼미에르>는 예민한 이방인 관찰자 허우가 바로 그의 시선으로 바라본 21세기의 ‘동경이야기’라고 부름직한 영화인 것이다. 허우는 프리랜서 작가로 일하는 젊은 여성 요코(히토토 요)의 발걸음들을 따라가면서 영화를 만들어낸다. 그런데 지하철을 타고 친구를 만나며 식사를 하는 등의 그녀가 하는 행동들이란 게 워낙에 극적인 가치를 거의 갖고 있지 않은 듯 사소한 것들인지라, 이것은 <오즈의 반(反)영화>라는 책에서 요시다 요시시게가 오즈의 영화에 대해 쓴, 드라마가 아니라 자잘한 사건들에 대한 영화라는 표현을 즉각적으로 떠올리게 한다. <카페 뤼미에르>는 스토리의 형체를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듯한 영화인데, 그래도 여기에 흐릿하나마 이야기의 전개 행로라는 게 있다면 그 중요한 하나는 요코와 그녀 가족의 문제가 될 것이다. 그녀는 대만인 남자친구의 애를 가졌지만 가족의 생각과는 달리 그와 결혼하지 않고 혼자 애를 낳아 키울 생각이다. 홀로 선다는 것의 가치를 대변하는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 영화는 젊은 여성들이 가족의 뜻을 존중해 결혼을 받아들였던 오즈 영화 속의 시대는 이미 지나간 시간이 되어버렸음을 인식한다. 하지만 시간에 대한 허우의 예민한 감각은 지나간 시간이 모두 증발해버린 것이라고 단적으로 말하진 않는다. 요코가 순간 과거의 침윤을 경험할 때처럼 과거는 현재로 경계를 넘어올 수 있는 것이고 전철의 소음을 기록하는 하지메(아사노 다다노부)가 그런 자기의 행위가 훗날 무언가의 증거가 될지도 모른다고 말할 때처럼 현재는 미래를 향해 열려 있는 것이다. 과거, 현재, 미래는 구획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흘러가며 젖어듦의 형태를 취하는 것이다. 이것을 <카페 뤼미에르>는 어떤 도식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연스레 흘러가는 삶 속에서 포착해낸다. <카페 뤼미에르>의 저류를 지나가는 또 다른 이야기의 행로는 요코의 조사에 대한 것이다. 그녀는 대만 출신으로 일본에서 활동했던 과거의 음악가 장웬예(江文也)에 대한 각종 자료들을 수집하고 있다. 그래서 요코는 그가 예전에 자주 다녔다던 서점과 카페를 찾아가고 그의 부인을 만나기도 하는데, 중요한 것은 그럼으로써 그녀가 자기 주위의 세계와 접촉을 갖는다는 점이다. 종종 점유 공간 그 너머를 암시하는 창문과 함께 포착되는 구도가 시각화하는 것처럼 그녀는 실내에 있으면서도 바깥으로 나갈 의지를 가진 인물이다. 그리고 그런 면에서 그녀는(틈만 나면 전철의 소리들을 녹음기에 담는 하지메와 함께) 호기심어린 관찰자 허우의 훌륭한 대리인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이 대리인(들)을 통해 허우가 동시대 일본에서 발견해낸 흥미로운 대상이 바로 전철이다. 영화 속에서 수시로 등장하는 전차는 우선적으로는 요코의 공간적 이동을 가능케 하는, 그래서 세계와의 접촉을 용이하게 하는 하나의 수단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자체가 고유한 존재의미를 갖는 접촉의 대상 혹은 ‘세계’라고까지 말해도 될 것만 같다. 전작인 <밀레니엄 맘보>(2001)의 한 장면에서 허우는 일본에 간 비키가 여관에 머물 때 창밖으로 지나가는 기차를 통해 정체된 그녀와 상관없이 시간은 흘러간다는 것을 효과적으로 보여줬었다. 어쩌면 <카페 뤼미에르>의 허우는 그로부터 더 나아가서 전차를 통해 시간이란 보이지 않는 대상, 그 보이지 않는 흘러감을 애써 시각화하려는지도 모른다. 특정한 종착지 없이 달려가는 전차 안에서 요코가 말없이 하는 여러 가지 행동들이란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긴다는 것의 변형처럼 보인다. 내내 전차와 함께 삶의 그런 광경들을 바라봤던 영화가 전철 주변과 안에서 마무리를 짓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 듯싶다. 약 7분여 정도 대사없이 그렇다고 극적인 행동도 없이 전달되는 영화의 이 마지막 시퀀스는 이상한 흥분과 긴장감을 안겨준다. 그건 여기서 허우가 단절과 지속을 미묘하게 이용하는 방법론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통과한다는 것이 놀랍게도 사건과 스펙터클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해서 <카페 뤼미에르>의 허우는, 삶의 흘러감을 영화들에 그려냈던 오즈와 자기만의 방식으로 재회한다.

게임 원작 영화<둠> 미국 박스오피스 1위

동명의 비디오게임 원작 영화<둠>(Doom)이 미국 박스오피스 정상을 차지했다. 유니버설 픽처스가 제작하고 <크레이들 투 그레이브>의 안제이 바르코비악이 연출한 <둠>은 10월21일 전미 3044개관에서 개봉하는 물량공세에 힘입어 3일간 1540만달러를 거뒀다. 일단 1위로 순조롭게 출발하긴 했지만 그리 높은 성적은 아니어서 속편이 제작될지는 미지수다. 역시 인기 게임을 영화화한 <레지던트 이블>1,2편과 <툼 레이더>1,2편의 오프닝 성적에도 미치지 못했다. 1993년에 출시된 <둠>은 최초의 1인칭시점 게임으로, 게임산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근미래에 인류가 화성을 탐사하는 과정에서 만든 텔레포트를 조작하던 도중 잘못 연결을 해서 다른 차원의 몬스터들을 불러내게 되고 그 몬스터들을 피해 지구로 귀환하는 내용이다. 영화에서도 1인칭 시점의 느낌을 살렸고 근육질의 배우 드웨인 '더 락' 존슨이 주인공으로 출연해 화려한 액션을 선보인다. <둠>이 완벽한 남성영화라면, 다른 두 편의 개봉작<드리머>(Dreamer: Inspired by a True Story)와 <노스 컨트리>(North Country)는 여성 취향의 영화들이다. 드림웍스가 제작한 <드리머>에서는 커트 러셀이 경마 조련사로 나오며 ‘최연소 흥행 보증수표’ 다코타 패닝이 다친 명마를 돌보는 딸을 연기했다. 930만달러 수입을 올려 2위. 5위를 차지한 <노스 컨트리>는 아카데미상에 안성맞춤인 영화다. 미국 최초로 여성 피고가 승소한 성희롱 소송을 다룬 작품으로, <몬스터>로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던 샤를리즈 테론이 또다시 전혀 꾸미지 않은 모습으로 열연을 펼쳤다. <웨일 라이더>로 주목받은 뉴질랜드 출신 여성감독 니키 카로가 연출했다. 개봉 3주차를 맞은 <월래스와 그로밋: 거대토끼의 저주>가 상영규모(3472개관)를 유지한 덕분에 870만달러를 거둬 3위에 올랐다. 지난주 1위였던 <안개>는 4위로 3계단 하락했다. <엘리자베스타운>은 6위, <플라이트 플랜>은 7위로 여전히 10위권에 머물렀다.

<오즈의 마법사> 특별판 출시 기념 파티 열려

영화사상 가장 인기 있는 고전 영화로 꼽히는 <오즈의 마법사>의 특별판 DVD 출시(10월 25일)를 맞아 미국에서 대규모의 출시 기념 행사가 열렸다. 미국 시간으로 지난 19일 미국 영화 예술 과학 아카데미에서 주최하여 열린 이번 행사에서는 <오즈의 마법사> 본편의 특별 상영과 함께 극중 오즈의 시민인 ‘먼치킨’을 연기했던 배우 5명이 초청되어 팬들과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영화 속의 먼치킨 배역은 모두 124명에게 주어졌는데, 현재까지 생존한 사람들은 이날 초청된 5명뿐이다. <오즈의 마법사>에 관한한 전문가적 식견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대중문화 역사가 존 프리케는 AP 텔레비전과의 인터뷰에서 “이 분들은 1939년 시사회 당시 초청을 받지 못했다. 오늘 밤은 이 분들을 위해 마련되었다.” 라며 이번 행사의 역사적 중요성을 강조했다. 먼치킨 배우들 중 한 사람인 칼 슬로버는 “제작 당시에는 이 영화가 오래 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완성 후 3년이 지나서야 보게 되었는데, 그 때야 굉장한 작품을 했다는 것을 느꼈다.” 라고 말했다. 행사에는 지금은 고인이 된 도로시 역 주디 갈란드의 아들 조 러프트도 참석했으며, 이들이 입었던 의상은 어린이 복지를 위한 경매에 붙여졌다. <오즈의 마법사> 특별판 DVD는 워너 브라더스를 통해 다음 달 11일 국내에서도 출시될 예정이다.

듀나의 DVD 낙서판 <앨프리드 히치콕 극장>

앨프리드 히치콕은 세계에서 가장 이미지가 잘 알려진 영화감독이다. 물론 찰리 채플린처럼 배우로서 활동한 사람들은 빼고 말이다. 이 뚱보 영국인 아저씨의 외모가 어쩌다가 이렇게 우리에게 익숙해졌는지 생각해보신 적 있는지? 물론 그는 찍는 영화마다 ‘숨은 앨프리드 히치콕 찾기’ 게임을 벌였었다. 하지만 히치콕의 이미지는 영화에서 슬쩍 지나가는 카메오가 만들어낸 것보다 더 유명하다. 그 정답은 앨프리드 히치콕이 전설적인 50년대 텔레비전 스타였다는 것이다. 1955년 그는 <앨프리드 히치콕 극장(Alfred Hitchcock Presents)>라는 30분짜리 앤솔로지 시리즈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1962년에 라는 제목의 1시간짜리 프로그램으로 바뀐 이 시리즈는 거의 10년 동안 미국 텔레비전을 장악했다. 그리고 히치콕은 이 모든 시리즈의 도입부와 결말에 출연해 지금은 전설적이 된 농담 따먹기를 했다. 덕택에 히치콕의 영화를 극장에서 단 한 편도 보지 못했던 사람들도 그의 얼굴을 기억했고 그의 텔레비전 시리즈를 한 편도 보지 못한 사람들도 간접적인 통로로 그의 괴팍한 이미지를 머릿속에 박았다. 그렇다면 시리즈 자체는 어떤가? 이 앤솔로지의 작품들은 대부분 영미권 단편 추리소설들을 각색하거나 그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오리지널 각본에 바탕을 두고 있다. 대부분 반전을 노리는 짧은 이야기들인데, 모두 조금씩 히치콕의 못되어먹은 취향에 조금씩 어필하는 경향이 있다. 부록에 따르면 부제작자인 조운 해리슨과 동료들이 히치콕의 취향을 고려해 뽑은 소설들이나 각본을 히치콕이 직접 선정하는 식의 방식을 취했다고 한다. 앤솔로지 시리즈들이 대부분 그렇듯, 작품의 질은 아주 고른 편은 아니다. 그러나 우린 이 시리즈를 통해, 도로시 세이어즈, 스탠리 엘린, 레이 브래드베리, 코넬 울리치와 같은 흥미진진한 영미권 단편 작가들의 작품들의 각색물들을 접할 수 있다. 배우진도 상당하다. 조셉 코튼, 베라 마일즈, 존 카사베티스, 찰스 브론슨, 조운 우드워드... 히치콕 자신도 이 시리즈에 17편의 에피소드들을 감독했는데, DVD로 출시된 1시즌엔 그 중 네 편이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그 중 3편은 놓치기 아까운 미니 히치콕 영화들이고 마지막 한 편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 1시즌 DVD의 화질과 음질은 만들어진지 반세기의 세월이 흐르고 디지털 복원이 되지 않은 걸 고려해보면 양호한 편이다. 하지만 가끔 히치콕 모놀로그 부분에 비가 내리고 <베이비시터> 에피소드엔 도입부의 히치콕 모놀로그가 빠져있다. 부록은 짤막한 제작 다큐멘터리 하나뿐이지만 시청자들이 원하는 정보들은 충분히 담겨 있다. DVD Talk의 리뷰에 따르면 몇몇 플레이어에서는 디스크가 작동되지 않는다니 유의하시길.

복고풍 코미디 중장년층 웃음보 터뜨릴까?

김보화·황기순 등 노장들 귀환…젊은층 위주 형식에서 탈피 비보연기 등 정통 코미디 도전 ‘식상하다’ 는 평도 맣아 지상파 방송3사의 코미디 전쟁이 본격적으로 벌어질 전망이다. 지난해말 한국방송 <개그콘서트>와 에스비에스 <웃찾사>의 뜨거운 접전으로 코미디의 새 부흥기를 맞았으나, 힘겹게 핀 꽃이 지는 모양새였다. 겉으로 드러난 바, 올 상반기 노예계약 파문과 폭력 사건이 주된 영향을 끼쳤다. 안으로는, 주로 젊은 세대를 끌어당겼던 휘발성 짙고 속도 빠른 ‘스탠딩 개그’의 한계 탓이기도 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다시 일어서려는 시도가 펼쳐진다. 타깃을 젊은 세대 위주에서 텔레비전 주 시청층인 중장년층으로 넓히고, 이를 위해 과거 코미디 주역들을 끌어들였다. 장르도 스탠딩 개그 일색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복고로 중장년층 잡기=문화방송이 복고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섰다. 지난 봄 시도한 공개 스탠딩 개그 <코미디쇼 웃으면 복이 와요>가 편성 시간의 불리함과 후발주자로서의 악조건을 넘지 못한 데 따른 것이다. 새 코미디 프로그램은 <웃는 데이(day)>. ‘퀴즈탐험 동물의 세계’ ‘라이브 요리쇼 간단합니다’ 등 주요 꼭지들은 공개홀이 아닌 비공개 녹화장에서 만들어진다. 프로그램의 숨통으로 신인 개그맨들이 꾸미는 공개 코미디 형식의 ‘11통 5반’도 마련했다. 방송시간도 본격 경쟁을 위해 수요일 밤 11시대로 바꿨다. 스탠딩 개그 붐을 일으킨 한국방송 <폭소클럽>도 본격 7080 프로그램으로 거듭났다. <개그콘서트>와 차별화하면서 동시에 중장년층 중심으로 일고 있는 복고 코미디에 대한 시청자들의 욕구를 반영하기 위해서다. 에스비에스 <웃찾사>도 이번 가을 개편에서 다시 재기를 위한 터를 잡은 뒤 이르면 올해 안으로 젊은 세대 위주의 획일화를 탈피해 다양한 꼭지 개발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코미디 주역들의 귀환=복고로의 회귀는 과거 코미디언들의 귀환으로 이어졌다. <웃는 데이>는 이경규·김국진 등을 코미디 무대에 올렸다. 조혜련·이윤석·정형돈도 여기에 가세했다. 개그맨으로 시작해 주로 엠시로 활동하던 이들이 다시 개그로 돌아온 셈이다. 이들은 주로 80~90년대식 바보 연기에 도전해 정통 코미디 연기를 선보이겠다는 각오다. <폭소클럽>도 김보화·황기순·이경래·배영만 등 과거 내로라하는 인기 코미디언들이 나온 데 이어, 고영수·김정렬·김상호·오재미 등도 출연을 앞두고 있다. 열쇳말은 신구의 조화. ‘최양락의 올드 보이’에서 후배 개그맨들과 함께 공개 코미디로 대결을 펼친다. 기존 <개그콘서트>의 인기 꼭지를 재연하는 방식이다. 근래에 휴식기에 들어갔던 컬투 정찬우·김태균도 ‘그때 그때 달라요 2’ 등을 들고 <웃찾사>로 돌아온다. 노예계약 파문 등에 이어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던 윤택·김형인 등도 새로 손질한 꼭지로 <웃찾사> 출연을 재개하고, 폭력 사건으로 쉬었던 김진철은 <폭소클럽> ‘피아노맨’으로 전격 복귀한다. 르네상스 다시 오려나=복고와 복귀에 대한 평가가 아직 그렇게 좋지만은 않다. <웃는 데이>의 경우, “유치하고 식상하다”는 악평이 대세다. <폭소클럽>의 과거 코미디언 출연 꼭지도 “어색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최근의 스탠딩 개그에 익숙한 시청자들의 기호가 고정된 탓도 있겠지만, 단순한 과거의 재연에 그쳐 호응이 낮다는 평가가 더 적절해 보인다. 코미디의 복고가 큰 흐름이라 하더라도, 재창조의 과정이 필수적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코미디 르네상스를 제대로 맞으려면 새로운 시대 변화에 발맞춰 코미디계의 전근대적 관행이 청산되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다양한 장르가 선보여야 한다. 이와 함께 새로운 인재를 받아들여 아이디어를 재충전할 기회를 부여하는 선순환 구조가 마련돼야 할 것이다. 여기에 코미디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의 성숙함이 보태진다면 르네상스의 윤활유 구실을 할 것이다. 눈길가는 꼭지들 세대간 조화 노린 ‘최양락의 올드 보이’ 한글파괴 빗댄 ‘그때 그때 달라요 2’ 손범수도 출연하는 ‘퀴즈 탐험 동물의 세계’ 요즘 코미디 프로그램은 꼭지들이 수시로 들고 나는 특징이 있다. 이는 내부 경쟁으로 이어져 콘텐츠 질의 향상이라는 긍정적 구실을 한다. 가을개편을 맞아 지상파 3사 코미디 프로그램의 꼭지들도 새로 선보이고 있다. 볼만한 꼭지들은 주로 세대간의 조화가 특징이다. 한국방송 <폭소클럽>은 ‘최양락의 올드 보이’를 새로 마련했다. 옛 코미디언들의 통로 구실을 하는 중요한 꼭지다. 이들은 요즘 개그맨들과 팀을 꾸려 요즘 유행하는 인기 개그를 재연해 대결을 벌인다. 재연에 머물지 않고 과거 자신들의 유행어를 변형해 구사하기도 한다. 지난 방송에선 “노개그맨은 죽지 않는다. 다만 캐스팅 되지 않을 뿐이다”라는 말로 요즘 개그계를 패러디하기도 했다. 에스비에스 <웃찾사>의 전성기를 일군 주역 컬투는 6개월여만에 ‘그때 그때 달라요 2’를 들고 나왔다. ‘그때 그때 달라요 1’에서 지나친 영어 열풍을 가볍게 꼬집었다면, 이번엔 한글 파괴 현상에 대한 패러디로 발전했다. 읽는 대로 써서 보내는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엉뚱하게 해석해 배꼽을 잡게 한다. 이른바 ‘인터넷 언어’ 등을 고쳐서 바르게 쓰자는 취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언어적 표현도 지난 번보다 더욱 과감해진 느낌이다. 문화방송 <웃는 데이(day)>는 ‘퀴즈 탐험 동물의 세계’를 내놓았다. 20여년 간 큰 인기를 끌었던 한국방송의 ‘퀴즈 탐험 신비의 세계’를 비튼 형태다. 손범수 아나운서가 진행자로 나와 의도를 명확히 했다. 이경규·김국진·이윤석 등이 패널로 나와 퀴즈를 푼다. 김경식·조혜련 등은 직접 동물 연기에 나섰다. 퀴즈쇼의 형식을 빌어온 독특한 구성에 아직은 시청자들이 낯설어 하고 있다. 다양한 아이템 개발을 통해 시청자들과 친숙해질 수 있느냐가 성패를 결정할 것이다.

루카스, 디지털의 ‘광선검’ 을 휘두르다

‘디지털 영화’하면 <스타워즈>의 조지 루카스다. 1997년 “디지털 기술은 영화에 사운드가 도입되고, 컬러가 입혀진 것과 같은 혁명이다”고 말한 이다. 하지만 디지털 혁명이 영화계에서 예고된 지는 오래. “‘전자 영화’라는 개념은 텔레비전이 실험적 단계에 있던 1920년대부터 계속 등장했다”고 케이 호프만(독일 영화저널리스트)은 설명한다. 그 오랜 세월 동안, 디지털 영화가 있기까지의 길이 고를 리 없다. 때 이른 코폴라=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은 1979년 “영화와 디지털 공학, 위성에 관한 커뮤니케이션 혁명을 보고 있다”고 선언했다. 컴퓨터를 통한 영화 제작으로 거대 자본 스튜디오가 아닌, 감독의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계산을 했던 것. 하지만 그 방식을 구현한 <원 프럼 더 하트>(1982년)의 3천만 달러가 넘는 제작비에 비해 수입은 고작 100만 달러. 이념만 앞선 탓일까. 하지만 이런 선견은 기술 부재 시대, ‘디지털’의 개념을 발전시킨 원동력이자, 반성 기제이기도 했다. 코폴라 때 이른 시도 ‘쓴맛’ 때 만난 루카스=조지 루카스 감독은 디지털 영화에 대한 불신이 많던 1999년, <스타워즈 에피소드 1>을 처음 디지털 영사시스템 프로젝터로 상영했다. 그리고 6년 만인 2002년, 아예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해 디지털 영사시설로 2000개의 스크린에 내건 최초의 디지털 시네마를 선보인다. 바로 <스타워즈 에피소드 2>다. 코폴라 때완 달리 필름으로 인한 환경 오염을 막겠다는 정부 정책, 연간 20억 달러의 필름 영화 배급비용을 줄이겠다는 영화사들의 의지가 순풍처럼 불던 때였다. 같은 해 7대 메이저 스튜디오가 결집해 디지털 시네마 표준화를 논의하는 협의체인 디씨아이(DCI:Digital Cinema Initiative)를 만들었으며 2005년 7월 디씨아이 최종 표준안(권고안)을 발표했다. 루커스 ‘스타워즈’ 로 대박 때 앞선 루카스=그럼에도 루카스의 선견은 뛰어나다. 21세기 디지털 영화가 있기까지 특히 그가 30년 전 세워 투자해온 프로덕션 아이엘엠(ILM)의 공은 절대적이다. 1970년대 ‘할리우드의 신동’으로 불렸던 그는 <스타워즈 에피소드> 1~3편으로 디지털 미학의 새 전기를 마련했다. 또 디지털 기술로 기존 작품조차 새 영화로 만들어 버렸다. 애플의 ‘파워북’ 덕인지도 모르지만, 그는 1977~1983년에 만들었던 <스타워즈> 1~3편을 1997년 새 디지털 효과로 재가공, <스타워즈 에피소드> 4~6편으로 제목을 바꿔 개봉해서 쉽게 4억 달러를 거머쥐기도 했다. 1962년, 한 대학원생에 의해 컴퓨터 그래픽 프로그램 ‘스케치패드’가 개발돼 컴퓨터 스크린과 인간이 소통하는 새 패러다임의 단초가 제공된 지 불과 얼마만인가. 너 뭐냐, <씬 시티>=오스카 시상식 집행위 노릇, 해먹기 갈수록 힘들다. 빼어난 디지털 영화가 늘어나면서, 촬영, 시각 효과 또는 디자인 따위의 현재 시상 부문 경계가 낡아버린 탓이다. 지난 7월 버라이어티지는 “올해 오스카 집행위가 가장 골머리를 앓은 영화는 대부분 화면을 디지털 기술로 만든 <씬 시티>”라고 전했다. <씬 시티>로 끝날까? 지난달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인간과 전혀 구분할 수 없는 디지털 배우의 탄생이 5~7년이면 가능하다”며 “노트북을 켜고 혼자서 영화를 완성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예견했는데, 디지털 배우들이 남녀 주연상을 다툴 날도 멀지 않은 셈.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는 10억원 짜리 디지털 영상카메라 HDW-F 900(소니사, 약 200만 화소)의 성능은 하루가 다르게 갱신된다. 카메라는 이미 천만 화소, 영상카메라도 700만 화소(필립스)까지 넘나든다. 라디오, 티브이 등장에도 건재했던 100년 영화가, 영화의 정의를 다시 추궁받는 때가 온 것이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한국은 아직 걸음마 단계. 씨제이, HD영화 프로젝트 추진 상업적 성공여부 실험대될듯, 중·일·유럽은 정부주도 가속화 필름의 대안으로 새롭게 등장한 고감도 화질인 에이치디 디지털 영화 작업은 아직 기지개 단계다. 2002년 <아 유 레디>와 <욕망>이 <스타워즈> 촬영에 사용됐던 것과 같은 기종인 소니 F-900 카메라로 촬영돼 필름으로 전환, 상영됐고 지난해 <시실리 2km>가 필름과 파나소닉 바리캠 카메라로 촬영돼 일부 극장에서 디지털 상영을 하면서 의미있는 성공을 거뒀다. 또한 영화진흥위원회와 한국방송이 공동으로 저예산 에이치디 영화 제작에 나서 지난해 선정된 4편의 프로젝트 가운데 <종려나무 숲>이 올해 개봉했으며 올해도 김진성 감독의 <즐거운 우리집> 등 5작품이 촬영을 준비하거나 기획 단계에 있다. 특히 박찬욱, 허진호, 유하, 최동훈 감독 등 실력있는 감독들을 영입해 350억원 예산 규모로 8편의 에이치디 영화 제작을 추진중인 씨제이엔터테인먼트의 프로젝트는 에이치디 영화의 상업적 성공 여부에 중요한 실험대가 될 전망이다. 그 첫 작품인 <짝패>가 기획상의 혼선으로 필름 촬영을 하고 있지만 나머지 영화들은 모두 에이치디 작업을 하기로 감독들과 약속된 상태다. 이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이태헌 프로듀서는 “제작 여건의 미비와 기술 부족으로 누구도 선뜻 나서지 못하는 에이치디 영화 제작의 노하우를 축적하고 시행착오에 대한 경험을 공유하면서 장기적으로 전체적인 영화제작 환경에서 에이치디 영화의 영향력을 넓혀나갈 것”이라고 이 프로젝트의 취지를 설명했다. 현재 중국과 일본, 유럽 등이 정부 주도로 디지털화 작업을 가속화하는 가운데 문화관광부도 지난 8월 ‘차세대 디지털시네마 비전 수립위원회’(이충직 위원장)를 출범시켰다. <시실리 2km>를 제작하고 비전 수립위원회로 통합된 영진위 산하의 디지털시네마포럼을 이끌고 있는 한맥영화의 김형준 대표는 해상도, 압축방식 등 디지털 상영 조건을 정하는 디지털시네마 표준화 작업이 매우 시급하다고 말한다. “아이티(IT) 강국에 자국 영화 점유율이 60%인 한국은 디지털시네마 표준화를 만들고 아시아로 확대시키기 유리한 조건임에도 그 논의가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 지나치게 늦게 시작됐다”고 지적한 그는 “업계와 정부가 손을 잡고 하루 빨리 표준화 작업을 추진해야 중복 투자 등의 비용 손실을 막고, 할리우드의 표준화 기준에 휘둘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디지털영화 더이상 변방이 아니다 주류로 ‘모드전환’ 실험영화로서의 의미 잃어 2005년 6회째 맞는 ‘레스페스트’ ‘디지털영화제’ 수식 빼 국내 디지털 영화 축제의 머리 격인 전주국제영화제와 세네프(SeNef). 다들 2000년께 시작해 올해 6회 행사를 마쳤지만, 지금 한창 애를 먹고 있다. 1999년 <스타워즈 에피소드 1>이 처음 ‘디지털’로 상영된 이래, 디지털 영화가 주류 영화에 빠른 속도로 침투해 간 탓이다. 올 봄 치렀던 전주국제영화제의 정수완 프로그래머는 “접근성과 개별성을 큰 매력으로 삼았던 디지털 영화가, 결국 완성도나 영화 미학을 높이기 위해 필름 영화에 버금 가는 물량과 자본을 찾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영화제 운영에 한계를 느끼게 된다”며 “새 방향을 찾아야 할 때”라고 설명한다. 기대와 달리, ‘디지털 영화만의 미학’이 애매모호한 것도 사실. ‘첨단 영상’일 뿐 굳이 필름 영화와 구분해야하는지 따져묻는 이도 많다. 무엇보다 할리우드가 꾀하는 ‘디지털 영화의 자본주의화’ 아래, 한편으론 대안·실험 영화로서의 의미도 퇴색하고 있다. 또 다른 디지털 영화 축제로 ‘레스페스트’가 있다. 마찬가지, 올해 6회를 맞는데 ‘디지털 영화제’라는 수식을 이번에 뺐다. 레스페스트 쪽은 “디지털이 이젠 ‘혁신’대신 ‘보편’을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중요한 건 실험·혁신성이지 디지털 자체는 아니란 얘기인 셈. 새로운 활로도 그렇게 구해지고 있다. 디지털 기술이 영화 제작의 혁신적 수단이 될 수 있다며 1997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처음 시작된 레스페스트는 매해 9월께 미국 도시를 시작으로, 런던, 로마 등 40여개 도시를 돌며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디지털 영상물을 소개하는 지구촌 축제다. 서울에선 오는 10~19일 남산드라마센터와 애니시네마에서 열리는데, 장·단편 영화는 물론 광고, 뮤직 비디오 등을 가리지 않고 기발한 착상, 삐딱한 시선들만을 한데 모아 선보인다. 모두 28개국 455편. 개막작은 뮤지션 벡의 특별전. 스타감독 미셀 공드리, 스파이크 존즈,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로 데뷔한 가스 제닝스 감독 등이 만든 그의 선도적 뮤직비디오를 선보일 참이다. 도시 탐험이란 소재의 환상성을 독특한 기법으로 살려낸 <시티 파라다이스>, 불법 이민자로 격리된 3명의 어린이를 인터뷰한다는 애니메이션 <잇츠 라이크 댓> 등 참신한 이야기, 형식 등이 빛나는 작품들로 짜인 ‘글로벌 단편’은 레스페스트의 좌표다. ‘삼인 공습전’에선 최첨단 영상과 상상력이 돋보이는 신예, 프랑소와 보겔, 조니 로스, 나기 노다의 작품들도 만날 수 있다. resfest.co.kr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