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가 찾는 영화 정보를 손쉽게!

‘텔레@CASHFILTER365trc20전송대행코인현금화수수료trc20전송대행코인현금화수수료' 검색결과

기사/뉴스(2003)

카덴차의 고수 <올드 미스 다이어리>, <서동요>의 임현식

배우 임현식은 경기도 송추에 산다. 한때 젖소도 길렀던 터에서 지금은 개 여남은 마리와 훤칠한 나무들을 키우며 산다. 아니, 주인의 표현에 따르면 키우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으니 어찌할 수 없이 자라는 것이다. “어젯밤에 말이지, 서리가 내렸어요.” 생면부지의 기자를 대문 밖에 마중 나온 임현식은 자신이나 객의 안부 대신 첫 서리 소식을 인사말로 건넸다. 서리 내린 것이 대견한 듯 서글픈 듯 말투가 오묘하다. 가느다란 그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길가의 고춧잎들이 찬 기운에 풀이 죽어 수긋하다. 연기생활 35년째인 임현식은 아버지보다 아저씨나 양아버지에 가까운 이미지를 지닌 배우다. 요즘 출연 중인 <서동요>에서도 임현식이 분하는 기와장인 맥도수는 주인공 장이(조현재)가 사랑하는 장남의 죽음을 초래했음에도, 이 고독한 고아로부터 정을 거두지 못한다. 하긴 <올인>과 <대장금>에서도 임현식은 일종의 의붓아버지였다. 장이에게 친부 위덕왕이 유명무실한 허깨비고 목라수 박사가 이상적 자아라면, 긴 여정에 오른 장이의 일상을 참견하는 어미닭 같은 양부/아저씨 역이 맥도수의 몫이 될 법하다. 아버지는 독한 애증의 대상이지만, 아저씨는 시시콜콜한 잔정의 대상이다. 때로는 친구도 될 수 있는. 드라마와 영화 속에서도 임현식은 늘상 움직이며 낙을 찾아 두리번대는 역동적인 사람이었다. 살기 위해 늘 노동하지만 성취욕보다 인생을 즐길 궁리를 하는 남자였고, 위엄을 세우는 대신 젊은이들과 어울려 놀고 싶어하는 어른이었다. 오후가 돼 가을볕이 마당에 괴자, 그가 기르는 골든 리트리버 ‘장금이’가 얼마 전 낳은 아홉 마리의 강아지들이 일제히 깨어 칭얼거린다. 그 보드라운 꿈틀거림은 이 뜰에서 30년간 연주된 생(生)의 음악에 대면 짤막한 소절에 불과하다. 스물아홉의 초년병 탤런트 시절 임현식은 어머니와 이 집의 울타리를 세웠고 아내를 맞았으며 맏딸을 얻고 이듬해 쌍둥이 딸을 낳았다. 그리고 4년 전 이 집에서 어머니와 사별했고 지난해 아내를 앞세웠다. 슬픔이 가슴속에 쑥 들어올까봐 임현식은 일부러 쿵쾅대며 바쁘게 일해왔다. 이따금 먼산을 내다보면서. “씨,네,리”라고 명함을 읽어, 긴장한 기자의 웃음보부터 터뜨린 임현식은 인터뷰 중에도 한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지 않았다. 연신 서성이고 책장을 뒤지고 창 밖을 내다보았다. 타닥타닥 땔나무가 보채는 뜨거운 난로 곁에서 마시는 커피는 적당히 달고 미지근했다. -(인터뷰가 이루어진 서재 한켠은 클래식 LP와 CD, 오래된 각종 오디오 기기들로 빽빽했다.) 방금 선생님 전화벨 소리가 무슨 서곡이었죠?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듣고 직접 악기도 다루시죠? =벨소리?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서곡이지. 우리 어머니가 음악교사였는데, 성악을 하고 싶어 애를 많이 쓴 분이라 같이 살면서 내가 좀 배웠어. 바이올린도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사람 되게 만들려고 가르치셨지. -“사람 되게 만들려고”라니요? =음 뭐, 놀러만 다니고 그랬으니까, 정서적으로 안정을 갖는 소년이 되도록 그러셨는지… (불쑥 일어서서 난로에 나무를 넣는다.) 아이구, 이제 뜨끈하네. 당시에는 바이올린 선생님도 없어서 광주에 현악연주회하는 의사 모임의 회원이던 소아과 의사한테 레슨을 받았어요. 나는 열심히 안 했는데 가르치는 사람이 열심히 하는 바람에. (웃음) 예전에는 드라마 속에서 자신있는 곡을 연주해 써먹기도 했는데 언젠가부터 손을 안 대게 되었지. 최근에 좀 가다듬어보려고 악기도 손봐두었는데 또 가만히 있네. 올 겨울엔 좀 해야지. -그처럼 음악을 먼저 접하셨는데 왜 연극영화과를 지망하셨어요? =인간이란 누구나 유희본능이 있어서 춤도 추고 싶고 노래도 하고 싶은데 누가 탁월하게 끼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 그쪽으로 가는 사람이 나오겠지? 나도 그런 축이어서 극장 영화는 빼놓지 않고 보고, 음악과 더불어 살고, 뭐든 소년답지 않게 해내니까 친구들이 칭찬을 많이 해줬어요. 당시 마리오 란자 같은 훌륭한 성악가들이 만든 뮤지컬 영화에도 심취하면서 음악하면 저렇게 화려한 인생을 살게 되겠구나 싶었지. 그런데 나중에 고3쯤 되니 아무래도 마리오 란자처럼 되긴 힘들 것 같았고 우리나라 현실도 무시할 수 없었어. -그래서 연극영화과를 택하셨군요. 뮤지컬 같은 장르를 염두에 두셨나봐요? =그렇지. 종합예술 쪽으로 생각을 한 거지. 장래성이 있는지 검토해보고 뜻대로 하라는 어머니 말씀을 듣고 나서는 그렇게 마음이 편해지더라구. -이 집에서 1974년부터 사신 걸로 압니다. 선생님께서 ‘평생의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추억이 많은 곳이겠습니다. =추억? 글쎄, 추억인지 뭔지. 우리 어머니가 나 하나 잘 키워보려 했는데 내가 이런 길로 들어서는 바람에 고생 많이 하셨지. (갑자기 일어나 책장을 뒤진다. 한참 만에 찾은 낡고 정갈한 스크랩북에는, 맏딸과 부인을 옆에 세우고 쌍둥이 딸을 양팔에 안은 농부 차림의 젊은 그가 실린 기사가 있었다.) 예전에는 우리 어머니가 이런 것들 다 모아두고 그랬는데. -그보다 5년 전인 1969년에 MBC 공채1기 탤런트로 TV연기를 시작하셨지요? =방송국 들어간 지 8년 만인 1978년도에 내가 조연상을 탔어요. 요즘으로 치면 연말 연기대상 같은 거지. 그때까지 상은 김무생 선생 같은 선배들만 줬는데, 1기생 중에 내가 처음 상을 탔지. 어머니가 아주 좋아하셨어. 그때부터 출연료랍시고 어머니께 얼마라도 드릴 수 있었어. 악역을 꼭 한번 하고 싶다 -시청자들이 보기에는 이병훈 감독님의 세 작품에 나오는 선생님의 캐릭터, 그러니까 <허준>의 약방종사 오근과 <대장금>의 대령숙수 덕구 그리고 한창 방영 중인 <서동요>의 장인 맥도수가 극적인 기능이나 성격면에서 유사한 인물로 비치는데요, 연기하시는 입장에서는 어떻습니까? =내가 <서동요>에서 역할을 잘못 맡은 거 같아. 원래는 주인공을 죽이려고 괴롭히는 악역을 꼭 한번 하고 싶다고 했어. 악하다고 눈 부라리는 악역 말고 악역다운 악역을 무척 하고 싶었는데 또 엇비슷해졌지. -그와 관련해 <대장금>, <서동요>의 김영현 작가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선생님은 어떤 행동을 해도 나빠 보이지 않고 휴머니즘이 저절로 바닥에 깔리니까 작가가 마음 푹 놓고 쓸 수 있는 여유를 주는 연기자인 반면, 진짜 인간의 사악한 속성을 내포한 캐릭터를 의도한다면 선택을 주저할 수 있는 배우라구요. =그래서 작가들이 소홀해질 가능성도 있죠. 드라마는 영화가 아니니까 조연공은 조연공 나름대로 (그는 ‘조연공’이라는 단어를 썼다.) 뭔가 돼야 해요. (난로에 나무를 넣으며) 54회를 하는 동안 조연은 조연대로 뭐가 보여야 되거든. 뭐가 보여야 하냐면, (계속 땔감을 넣으며) 잘돼야 된다는 거지. 아니 잘돼야 된다는 것이 아니라, 에구… 일단 나무 넣고 얘기합시다. 헷갈려서 원. 그러니까 요즘 드라마가 사극 빼면 홈드라마들인데, 소위 실버들의 삶에 대한 희망이나 재미, 확실한 내용을 주는 연속극이 없어요. 주인공 부모나 비슷한 역을 맡으면 “어, 너 이제 들어오냐? 힘들지? 그래, 올라가서 자라.” 이거 하나로 한 회가 끝날 때도 있어. 그렇다고 아예 안 쓰면 출연료가 안 나오니, 무조건 쓰긴 하는데 내용은 그렇게 졸속해지는 거지. 그나마 시도하는 경우도 시도에 그치고 채널 돌아가게 만드는 재미없는 내용이기가 쉬워요. -뭔가 보여야 한다고 하시니 말씀입니다만, 영화 <튜브>에서 선생님의 연기에는 일선에서 발로 뛰며 살아온 형사의 체념과 긍지가 동시에 보였고, 드라마 <사랑찬가>, <올드 미스 다이어리>에서는 떠나가는 자식들을 보며 스스로 인생의 다른 단계로 접어드는 아버지의 페이소스가 보였습니다. 홀아버지 최부록 부장이 애인이 생긴 딸 미자에게 비오는 날 우산을 갖다줄까 말까 망설이며 비내리는 창 밖을 보는 얼굴은 대사 없이도 많이 슬펐습니다. 요컨대 웬만하면 웃으시니까 그저 웃음만 거두셔도 보는 사람 마음이 쓰라려오는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저 사람이 웃음으로 못 삭일 정도의 슬픔은 얼마나 클까 싶은 거죠. =허허허. 딸과의 그런 연기는 누구나 자식 키우는 어른이라면 충분히 맛을 느끼며 할 수 있지. 진솔해질수록 까닭없이 슬퍼지더라구. 애비의 마음이라는 게 이렇구나 싶고, 우리 어머니한테 소홀히 지낸 젊은 시절이 후회스럽고. 우리 딸들도 분명 제 아빠를 사랑하고 “아빠를 위해서라면 모든 걸 바칠 수 있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느낌을 다 못 전하지. 때가 돼야 아는 거야. 우리 어머니가 너도 자식 낳고 살아보라고 얘기했는데, 그때 난 “자식 낳고 살아도 어머니처럼 안 그래” 했다고. 인생은 끝까지 느끼면서 사는 거야. 절대 달관이란 게 있을 수 없어. 인간이 인간을 충고할 수가 없는 것이, 아무리 말해봐야 전달은 200분의 1도 안 돼. 영화에 공감해 관객이 울 수는 있지만 다음날은 또 씻은 듯 그 감정이 없어져 버리지 않아? 다시 말하면 예술가가 지닌 감정의 200분의 1만 전해져도 우리는 눈물 흘리고 감동할 수 있다는 얘기지. -임현식 선생님을 흔히 웃음을 많이 주는 배우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오히려 쉽게 우리를 울릴 수 있는 배우가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것도 안 하셔도 금방 슬퍼지니까요. =작가들도 내게 그런 페이소스가 엿보인대. 그런데 나 역시 한 장면에다가도 뭔가를 집어넣으려고 해. 옛날에는 뭘 해볼까 얘기를 꺼내면 “자식아, 써 있는 거나 잘해” 하고 구박 들었지만, 요즘에는 한 장면도 그냥 넘어가고 싶지 않아. -소위 애드리브, 그러니까 선생님이 ‘카덴차’(독주자의 테크닉을 보여주는 즉흥연주)라고 즐겨 부르시는 즉흥연기에서도 그런 의지를 느껴요. 지나가는 장면 하나에서도 나름대로 기승전결을 갖고 뭔가 따먹고 넘어가려는 긴장이랄까. =작품에 해가 되지 않는 한 그렇게 되려고 노력하지. 허투루 넘어가면 조연이니 가뜩이나 별 볼일 없는 장면이 정말 보잘것없이 흘러가 버려요. 그래서 결말도 없는 장면에서 괜히 나 혼자만의 엔딩을 가져보기도 하지. 그러면 혹시 보는 사람들이 뭔가 긴장하지 않을까 해서. 백만원짜리 연기자가 이백만원짜리 연기를 해야지, 대본에 “껄껄 웃으며 대사한다”고 적혀 있다고 그냥 웃으며 대사하고 20만, 30만원짜리 연기처럼 해버리면 왜 그 배우를 쓰겠어? 나를 캐스팅한 제 값을 하려는 의도가 40%, 연기를 하면서 의식과 내용을 갖겠다는 의지가 60%쯤 돼지. 실은 조연이 멋져야 하거든 -모든 배우들에게는 둥지 같은 장르가 있습니다. 선생님의 경우는 TV겠지요. 제가 만난 어떤 영화배우는 매일 같은 장소에서 같은 연기를 하는 것이 생경해 연극을 하지 않는다고 하셨고, 어떤 연극배우는 흐름이 끊어지고 연기를 하며 개선되는 재미가 없어서 영화나 TV가 힘들다고 하셨습니다. 흔히 TV는 일정에 쫓기고 영화보다 입체감이 떨어진다는 것이 약점으로 꼽히는데요. TV 연기의 매력과 편안함이 어디 있다고 보시나요? =뭐니뭐니해도 텔레비전의 맛은 한 장면을 그냥 샤프하게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이지. 카메라 세 대, 어떨 때는 네 대까지 써서 한 장면이 마치 연극의 한 장면처럼 스탭과 연기자들의 내용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질 때 그야말로 우리가 어떤 희열을 느끼지. -그러나 역시 처음에는 TV 메커니즘에 적응하는 것이 쉽진 않으셨을 것 같아요. 그맘때는 녹화 시스템도 지금보다 훨씬 실수를 용납지 않았을 것이구요. =그랬지. 그래서 우리 세대는 대사를 못 왼다거나 하는 법이 없어요. 요즘엔 기술이 발달해서 NG를 밥 먹듯이 하니, 연기가 갈수록 쉬워지는 거지. 대신 물량이 많아졌어요. 옛날에는 찍을 만큼 찍고 못하면 이튿날도 찍었는데 요즘에는 그런 여유가 없거든. 그리고 또 신이 많아졌어요. 템포가 빨라진 거지. 과거에 한 시간짜리 드라마가 약 120페이지였다면 지금은 150페이지쯤 돼요. 대사도 “에에, 저어, 그런데 으음” 이런 게 없어. 동작도 빨라 보이는 스타일이고 절대 늘어지면 안 돼. 자꾸 NG 내면 서로 맛이 떨어져. 내가 하는 연기는 세번 이상 다시 찍자 그러면 못 하겠더라고. -그런 면에서는 영화가 가장 힘들겠습니다. =영화는 불러 앉혀놓고 마냥 시간을 보내. 뭐, 원래 그런 줄 알고 사실 놀러가는 거야. (좌중 웃음) 기다리다가 한컷 찍겠다고 부르고 불러서는 또 한 20분 앉혀놔. 우리는 그저 카메라 서너대씩 두고 쫙쫙 찍어줬음 좋겠어. 영화만의 하나하나 만들어가는 맛이 있지만 그건 역시 감독이나 주인공만의 희열이고, 우리나라에서 조연이라는 건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지, 확실한 멋과 맛을 잘 못 싣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실은 조연이 멋져야 하거든. 서부 활극을 봐도 물론 주인공 총잡이가 다 잘하지만 주변에 넘나드는 조연의 이유 있는 등장, 멋진 죽음 혹은 퇴장, 그리고 그들의 확실한 내용이 중요하지. -<당신>으로 이름을 알린 1978년이 중요한 전환점이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제가 선생님을 뚜렷이 기억하는 첫 작품은 1984년의 <암행어사>거든요. 두 작품 사이의 6년은 어떤 시기였나요? =그전에는 남들 하는 말 듣기만 하고 “예 잘해보겠습니다”가 전부였는데 70년대 후반부터는 내 이야기도 하고 들어주는 이도 생겼어. 일 끝나면 감독들과 포장집에서 소주 한잔 하면서 뒷얘기도 하고 다음주 일도 상의하고. 웬만한 배우들은 끝나자마자 보따리 싸서 언제 없어졌나 모르게 사라져버리는데 말이지. 그맘때는 그러다 작가도 곧잘 불러내곤 했어요. 김운경 작가도 그랬지. 그런데 지금은 내가 그냥 정리해가서 촬영해요. 굳이 이래저래 얘기해봤자 젊은 작가들 머리에는 전부 청춘남녀만 있어가지고. (웃음) -그리고 1986년부터 <한지붕 세가족>에 출연해서 6년이 넘게 순돌이 아빠로 사셨습니다.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순돌이네 집이 이사를 나간 것으로 처리돼 빠졌을 때 기분이 어떠셨습니까? =<한 지붕 세 가족>을 6년7개월 했어요. 그만둘 때 내가 MBC 월간지에다 글도 썼지. ‘내키지 않은 보따리를 싸고’라는 제목으로. 허허. 그때가 SBS가 생기면서 좀 격동기였어. 탤런트들도 이동이 많았는데 MBC, 특히 <한 지붕 세 가족>은 연기자를 안 놓아주는 거라. 예를 들어 저쪽에서 출연료의 배를 주겠다고 섭외를 하는데 여기는 그저 30%만 올려주는 식이었던 거야. 박원숙이 고통을 많이 받았지. 출연료는 배우 값어치와 연결되니 동서를 막론하고 돈 이야기를 먼저 하는 것이고 나이 먹으면 더구나 배우가 의리 따져 연기하는 것도 우습잖아요. 난 지금껏 평생 동안 “봐달라”, “도와주시오” 하는 소리만 들었어요. 예전에는 돈 얘기가 힘들었는데 이젠 빨리 끝내버리지. 내가 그리 많이 받는 사람도 아니고. 그런데 우리가 무슨 얘기하다 이렇게 됐나? -<한 지붕 세 가족>을 떠나던 소감을 말씀하시다가 그만…. =음, 연기자 입장에서는 <한지붕 세 가족>을 끝까지 하고 싶었고 방송국에서 강력히 잡을 줄 알았는데, 알아서 하라고 그러더라구. 그래서 정말 보따리를 쌌어. 그랬더니 나중에 잡으려고 난리가 난 거야. 당장 스페인인가 어딘가로 도망갔지. 여행이 아니라 도망. 그렇게 미울 수가 없더라구. ‘빵꾸’를 내니까 그제야 찾은 걸 보니, 그동안은 다 회유였고 떠본 것이잖아? 연락 끊고 박원숙과 내가 단단히 약속하고 떠버렸어. (애석하게 조용히) 중간에서 순돌이만 안됐지. 배우는 독서를 제일 많이 해야 해 -배우 임현식하면 즉흥연기부터 떠올리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같은 방식을 오래 유지하신 것은 역으로 즉흥연기를 할 때 넘어서지 않는 미묘한 선에 대해서 본인의 마음속에 확실한 기준도 있다는 뜻 같습니다. 또한 같은 즉흥연기 안에도 몇 가지 유형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장금이로세” 하는 식으로 어미를 살짝 바꾸기도 하고, 되받아치는 리듬이나 리액션의 박자를 살짝 뒤틀어주기도 하고 아예 대사 자체를 만들어넣으실 때도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듣고 싶어요. =내겐 대체로 재미있는 연기를 기대해서 캐스팅을 해요. 예전에 시트콤 <오박사네 사람들>을 할 때 SBS에서 제의받은 뜻도 그런 것이었지. 지금도 그 테이프를 보면 내가 참 잘했다는 느낌이 들어. 허허. 아주 활발하게 했더라구. 일반적으로 교수들은 애드리브를 “짧고 간결하게, 반짝이는 것처럼 뭔가 하나 던져주는 것”이라고 설명하더라구. 그런데 옛날 우리 때 애드리브란 간을 때우기 위한 것이었어. 간이란 뭐냐면 포즈(pause)지. 예를 들면 등장인물이 딱 맞게 나와줘야 되는데 몇 초 늦게 등장해서 “그런데 자네 괜찮은가?” 하고 돌아볼 때 없는 거라. 그런 간을 메꾸기 위한 하나의 호흡일 수 있었지. -나올 연기자가 제때 등장을 안 하는 경우가 그렇게 잦았나요? =그럼, 인간이 등장하는 것이 기계도 아니고 말이지. 그 사이를 메꾸기 위해 말을 늘이기도 하고 방금 한 대사를 간추려 던지기도 하고 몇 가지 기법이 있어. 옛날엔 솔직히 엉망이었지. 예를 들어서 셰익스피어의 <햄릿>이면 왕도 있고 옆에 신하 폴로니어스, 누구누구 있단 말야. 정말 그 이름자 외기도 힘들거든. 그럼 누가 폴로니어스한테 대사를 해야 하는데 딴 사람한테 가서 대사를 하는 거야. 그러면 어떡하겠어? 진짜 폴로니어스가 “여보게, 나 여기 있소.” 이러는 거지. 그러면 그제야 슬그머니 그쪽으로 가서 다시 “그렇지 않은가?” 애드리브를 하는 거야. (폭소) -하지만 선생님은 즉흥연기를 임기응변이 아니라, 적극적인 방식으로 구사하지 않습니까? =재미를 기대하면서 이것도 저것도 아닌 바람 같은 인간을 만들어놓는 것이 내겐 힘들어요. 그렇다고 나까지 쉽게 가면 안 되니까 계산도 많이 하고 내 개성에 맞는 말도 고심을 하지. 그래서 배우는 독서를 제일 많이 해야 해. 그래서 뒷골에 잠재된 내용을 끌어내야 해. 저기 두꺼운 명언집 보이죠? (양주동 박사 편 <세계명언대사전>) 저게 내 평생의 필독서야. 소설 경우는 <쿼바디스>라든가 <레 미제라블>같은 스펙터클한 것을 잘 읽어요. 그런 작품의 완역판을 읽으면 정말 많은 것이 저장돼. 자베르, 코제트 아버지, 장발장, 모든 인물의 입장이 돼서 연기하는 스타일로 읽지. 내가 4년째 호남대학교 겸임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거기서도 독서를 강조해요. 연기는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한다, 너희들 눈 안에 들어오는 현실만으로는 이거 어느 세월에 배우될지 모른다고. 그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서 강의하는 거야. 시골길 꽃을 보는 감흥 하나도 본인의 감성적 체험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예요. 으흠, 이젠 코스모스도 빛을 잃었겠네. -그런 많은 느낌에 비해서 연기하면서 표현하실 기회가 부족하다고 느끼시겠어요. =그렇지! 나름대로 해보고 싶은 내용들이 참 많은데. <서동요>에서 우리가 1400년 전 백제를 연기하잖아요? 나는 말을 좀 달리 해보고 싶었어. 세종대왕이 만든 언문이 500년 전 것이라면 그 이전 사람들은 뜻글자 한문만 갖고 어떻게 언어를 구사했을까? 전라도, 충청도 사투리를 좀 넣어 백제말을 상상해본다거나, 신라 출신 인물은 억양이 좀 달라서 첩자인 사택기루가 신라인 만날 때와 백제 사람 대할 때 말투가 다르면 그게 또 재밌잖아. -선생님도 시대극과 현대극에서 연기가 미세하게 다른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사극이 연극적인 면이 강한데 “어, 내가 왜 힘을 주지?” 싶으면 빼야지. 매알매알하게 연기하고 싶어. -“매알매알”이 무슨 뜻인가요? =응? 사부작사부작이라는 뜻이지. 악역을 맡아도 눈 부라리고 이 드러내고 그러지 않고 그야말로 사부작거리면서 못된 놈, 명작에서 보는 인간상을 그려보려고 하는데 악역은 절대 안 줘. -생각보다 시트콤 출연작은 많지 않으십니다. 시트콤 제안에는 더 신중히 응하시나요? 게다가 최근작 시트콤인 <올드 미스 다이어리>에서는 오히려 선생님 개인으로 보면 어떤 작품보다 정극에 가까운, 정적이고 잔잔한 연기를 보여주셔서 흥미로웠습니다. =<올드 미스 다이어리>는 처음에는 시트콤에 맞는 연기를 하려고 했는데 아버지의 고독이 담기는 바람에 내 부분은 시트콤이 아니게 됐어요. 그런 역할은 거의 처음 해보았지. 그만한 드라마도 없다고 생각해요. 김석윤 감독이 참 잘 배운 감독이예요. - <한 지붕 세 가족>의 순돌이 아빠로 7년, <암행어사>의 갑봉으로 4년 반을 사셨습니다. <전원일기>에도 2년간 출연하셨지요. 요즘들어 시청자와 함께 늙는 아주 긴 호흡의 드라마가 희귀해지고 미니시리즈가 많아지는 추세에 대해 아쉬움은 없으십니까? =난 특별 기획드라마에는 관심이 있어요. 그런데 일일연속극이나 주말연속극은 어쨌든 홈드라마로 가야 하거든. 그런데 내가 겪은 드라마들을 보면, 사람만 바뀌는 식이지 별반 다르지 않아. 사위 들어온다고 한번 떠들썩하고 어쨌다고 야단하고 맨 그거지. 그리고 드라마는 1년 전에 제작을 하는 것이 맞아요. 올여름 에서 제의를 받았는데 내년 9월 방영될 드라마를 벌써 준비를 하는 거야. 아침 일일연속극인데 그 감독이 내가 나온 <슬픈 연가>를 보고 신부 역을 제안하더군. 그리움과 고독도 아름다워요 -중년을 넘은 연기자들이 사업을 시작하는 모습도 흔히 봅니다. 선생님은 나무를 키우는 일 외에 다른 계획은 세워본 적이 없으신가요? =나무야 그냥 있으니까 어쩔 수 없이 자라는 거지. 난 항시 연기생활을 바쁘게 해온 사람이에요. 나만큼 또 캐스팅이 잘 되는 사람이 없잖아요? (눈웃음) 그러다보니 35년째 이러고 살았는데-물론 연기도 내 생활이지만-이제 와선 참 지루하기도 해. 내 연기가 좋다 나쁘다 정리해주던 어머니가 4년 전 돌아가시고는 더욱 충격이 컸고. 또 작년에는 마누라가 아파서 죽었지. 그러다보니 내가 가정에 소홀했던 것 같아 후회가 많이 남아요. 그저 출연하고 연기하고, 그러면서 출연료도 제일 많이 받는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에만 신경 쓰고 살았단 말야. 그러다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빨리 사라져버리니까…. 그런 후회와 우울함에서 벗어나려고 올해 굉장히 많이 일했어요. 그냥 막 하자는 대로 하고 밖에 자꾸 나가서 생활하고. 하지만 그런 마음을 떨치고 남은 세월을 인간적으로 살고픈 느낌이 꽉 차 있지. 올 겨울에는 정말 몇 십년 만에 3, 4개월이라도 손을 놓고 싶었어요. 친구도 만나고 적조했던 사촌형제도 만나고 고향도 가보고 싶었어. <서동요>도 작년부터 약속하지 않았다면 안 했을 거야. -선생님은 카메라 앞에서 무방비해 보이십니다. 어떻게 보일지 자신을 전혀 방어하지 않는다는 느낌입니다. 얼굴뿐 아니라 의상도 그렇습니다. 현대극 경우는 의상은 어떻게 고르시는지요? =난 의상을 버리지 않아요. 지금 입고 있는 이런 옷도 입는 사람 드물 거야. 대신 내가 70년대, 80년대 배경 드라마를 한다면, 이 옷을 입고 연기할 수 있지. 이리 와봐.(<수사반장>에 나올 법한 해묵은 옷가지가 가득한 방으로 안내한다.) <한 지붕 세 가족>에서 입었던 점퍼도 여기 있잖아. -선생님한테서는 도저히 지울 수 없는 낙천성이 바닥으로부터 배어나옵니다. 그러나 나이 들고 가족과 사별하는 일도 겪으면서, 별안간 인생을 습격해서 흔들어놓는 재난이나 질병 같은 위협에 대해 생각이 많아지셨을 것 같은데요. =나처럼 낙천적이고 낭만적인 사람이 세상에 없었어요. 어머니가 좋은 분위기에서 키우고 만들어주신 거지. 그런데 일하러 가는 나를 아침에 손 흔들며 배웅까지 해주셨던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져 일주일 만에 돌아가셨어요. 정말 아주, 미치겠더구만. 그래도 우울에지면 안 된다 싶어 <맹가네 전성시대> 같은 드라마에서 막 코믹 연기를 하고 그랬어. “야, 이런 상황에서 연기가 되네.” 스스로 놀랐지. 그런 마음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고 살았는데 또 2년 만에 아내가 불치병에 걸리니 내가 완전히 뒤집어지더라구. 아내로 인해 그런 충격을 받을지는 짐작도 못했어. 하지만 약속한 일은 해야지 어떡해. 그렇게 투병하다가 마누라가 10개월 만에 죽어버렸어. 도대체 뭐가 뭔지 전혀 모르겠더라구. 그래서 또 드라마들을 닥치는 대로 했지. 바쁘게 일주일을 뛰어다니니까 역시 좀… 낫더만. -바쁜 생활로 슬픔을 잊으신 것 외에 선생님이 살아가는 태도에도 변화가 있었는지요? =성격이나 생활이 흔들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 물론 마누라 생각나서 술도 먹었지만 그걸로 해결하면 안 되지. 담배도 4개월 안 피다가 지금 다시 피우는데, 또 날잡아 끊으려 해요. 내 연기는 스트레스가 있으면 큰 손실이 와. -그렇다면 현재 선생님께 제일 큰 두려움은 무엇이고 가장 즐거운 순간은 언제입니까? =(인생의) 좋은 멤버들과 헤어진 일이 우울하지만 이렇게도 생각해요. 언제 내가 정말 고독해봤는가. 진정으로 슬픈 적이 있었나. 때리면 아파서 울고, 돈 빌려주고 못 받아서 애석한 적은 있어도 진정한 아픔과 그리움을 겪어봤던가. 그러니 이것을 슬퍼 말자. 이것도 삶의 과정이고 자연적인 섭리다. 우리 아내는 한참 좋을 때 나랑 헤어졌지만, 결혼식 때 말한 “죽음이 갈라놓은 때”가 빨랐을 뿐이다. 뭐, 그 정도로 다독이지. 그리움과 고독에서 오는 감정은 아름다울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리움에 겨워 먼산을 본다거나 비오는데 집 앞 철길을 혼자 걷는 시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 -가장 큰 즐거움과 큰 괴로움이 한데 있는 것인가요? =아냐. 난 괴로움이라고는 표현 안 했어요. 그리움이라 그랬지.

<러브토크> 이윤기 감독 인터뷰

29일 저녁 시작된 인터뷰가 30일 새벽으로 치닫고 있을 무렵, <러브토크>(11일 개봉)의 이윤기 감독은 말했다. “아픔을 많이 아는 사람들은 절망도 쉽게 하지 않는다”라고. 보일듯말듯한 희망을 암시하는 것처럼 알듯말듯한 정혜의 미소로 첫 영화 <여자, 정혜>를 끝마쳤던 이 감독이 또다시 아프고 고독한 세 사람의 더 쓸쓸한 <러브토크>로 관객들을 찾은 것은 그래서인 것 같았다. 감독이 “사람들 속에 있으면 외롭지 않다고 생각하는, 정말 외로운 게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들과 아픔을 함께 느껴보고, 쉽게 절망하지 말라고 얘기하고 싶어서. <러브토크>에는 상처를 간직한 채 서울을 떠나온 세 사람 써니(배종옥), 영신(박진희), 지석(박희순)이 등장한다. “마사지숍을 운영하는 써니는 성공이라는 뚜렷한 목적의식을 갖고 미국으로 가는 전형적인 인물이다. 미국에서 심리학 박사과정을 밟으며 ‘러브토크’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유학생 영신은 가정환경이나 본인이나 멀쩡하지만 과거에 집착하면서 자기 스스로 그림자를 만드는 사람이다. 그리고 애정은 있지만 그냥 싫어서 도피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는데, 지석은 그런 사람”이라는 게 감독의 설명이다. 세 사람이 과거를 잊기 위해 떠나온 도시는 로스앤젤레스다. 영신이 지석에게 “세상에 그 많은 나라와 도시가 있는데 어떻게 여기서 만나니”라고 말했던 것처럼, 왜 하필 엘에이일까. 감독은 “서울은 불행하든 어쨌든 너절한 인간관계라도 있는 도시인 반면, 엘에이는 노력하지 않으면 인간관계를 맺을 수 없는 도시”라고 말했다. 마음을 드러내고 타인과 소통하는 데 서툴다는 점에서 공통분모를 갖는 세 사람이 인간관계로부터 단절될 수밖에 없는 공간인 것이다. 그래서 엘에이는,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에게도 마음을 내보이지 않던 써니가 라디오 디제이에게 조심스럽게 상처를 드러내기에, 다른 사람들의 사랑을 단호한 어투로 상담해주는 써니가 유부남 애인과 사랑을 나눈 뒤 모텔방에서 멍하게 텔레비전을 보며 어둠 속에 갇히기에, 혹은 사랑하는 여자를 붙잡지도 못하는 지석이 겨울 강물 위를 부유하듯 굳은 채로 떠돌다 만난 옛사랑에게 “내 생각해 본 적 있어?”라고 쪼다같이 묻기에 가장 적합한 낯설고 쓸쓸한 공간으로 비친다. 감독은 이 아리고 스산한 영화에 대해 “여백을 많이 두었던 전작에 비해 수다스러운 영화가 됐지만, 아프지만 아프지만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 또다시 아프게 살게 될 소심한 사람들에 대한 얘기라는 점에서 <여자, 정혜>와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가 직접 경험하거나 내 주변의 누군가가 경험했을 법한 이야기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만한 감정이 있는 영화라는 점에서 <러브토크>는 ‘대중적인 영화’”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느낀대로 솔직하게’ 여러 번 볼수록 더 잘 보이고, 더 좋아지는 영화라는 점도 써달라”고 소심한듯 장난스레 덧붙였다.

김정대의 레퍼런스 DVD - 2005년 10월 (2)

아키라 SE Akira SE 재패니메이션 팬들의 애간장을 부단히 태웠던 문제의 타이틀 <아키라>도 드디어 10월에 정식 출시됐다. 그것도 두 장의 부록 디스크에 DTS 5.1, DD 5.1 음향 트랙을 모두 포함한 ‘세계 최강의 스펙’으로 말이다. <아키라>는 LD 시절부터 시작해 매체를 바꿔가며 지금껏 상당히 많은 버전으로 발매된 바 있는데, 이로 인해 팬들 사이에서 ‘어떤 것이 진짜로 감독이 의도한 색감이냐’라는 논쟁까지 벌어진 바 있다. 예컨대, LD 시절에 크라이테리언에서 발매한 버전과 파이오니아에서 발매한 버전의 영상은 각각 상충되는 장단점을 보유하고 있어서 어느 것도 오토모 가츠히로 감독의 본래 의도를 ‘완벽하게’ 구현한 버전이라고는 평가하기 힘들었다. 이번에 대원에서 발매한 DVD는 (현재로서는) 이 모든 논쟁의 외부에 위치한 ‘궁극의 버전’에 가깝다고도 볼 수 있다. 물론 본 타이틀의 화질은 (현재의 기준으로) 기계적으로만 평가한다면 아쉬운 부분이 적지 않다. 특유의 필름 잡티에서 시작해 입자 표현의 불균질성, 다소 떨어지는 밝기와 투박한 질감, 종종 출몰하는 윤곽선 노이즈까지 말이다. 하지만 만일 복원을 한답시고 이 모든 약점을 일거에 제거해버렸다면, 어쩌면 셀 애니메이션 고유의 질감마저 걷어 낸 ‘비인간적이고 밋밋한’ 결과물이 나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영상 면에서 <아키라>의 뛰어난 작화 수준은 세삼 거론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12년 전에 파이오니아의 LD가 출시될 때부터, 오토모 가츠히로는 (감상 시) 이 작품의 ‘음향’에 대해서도 각별한 관심을 기울일 것을 당부해 온바 있다. 가츠히로가 작화 못지않게 많은 심혈을 기울인 부분이 음향설계였기에, 2001년의 5.1채널 리마스터링 작업 및 2002년의 DTS 트랙 작업이 별도로 이루어진 것은 그다지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본 타이틀에 수록된 DTS트랙은 느낌상으로는 ‘화려함의 극치’인 영상을 완전히 압도하는 듯하다. 감상자를 완전히 감싸는 듯한 입체감이 훌륭하게 구현되고 있으며, 음향의 이동성과 임팩트감도 기대 이상의 수준이다. 대사, 주변 음향, 스코어 간의 밸런스도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또한 외국에서 DD 5.1 버전과 DTS 버전에 각기 따로 제공됐던 부가영상을 본 타이틀에서 한꺼번에, 그것도 한글 자막과 함께 감상할 수 있다는 점도 대단한 메리트가 아닐 수 없다. 필자가 꼽은 ‘베스트 신’은 영화 초반부의 오토바이 폭주 장면이다. 야마시로 쇼지의 기막힌 스코어와 함께 다양한 음향 요소들이 전 채널을 통해 쏟아지는데, 그 감동(?)은 말로 표현하기가 힘드니 직접 확인해보시길 바란다. (2005년 10월 24일 대원 DVD 출시) 킹덤 오브 헤븐 DE Kingdom of Heaven DE 작년 하반기, <스타워즈> 삼부작을 필두로 <투로모우>, <아이, 로봇> 등 최상급 퀄리티의 타이틀을 연달아 출시했던 폭스가 이번 년에도 <킹덤 오브 헤븐>을 앞세워 ‘하반기 대공습’을 감행하고 있다. <킹덤 오브 헤븐>은 <스타워즈 에피소드 3: 시스의 복수>, <타이타닉> SE 등 향후 폭스가 출시할 대작 타이틀의 퀄리티를 가늠케 하는 바로미터의 역할을 할 것으로도 예상됐었는데, 그 결과물은 한 마디로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 수준의 것이었다. 본 타이틀은 (<스타워즈 에피소드 3: 시스의 복수> 출시 이전 시점 기준) 현재까지 출시된 극영화 타이틀 중 가장 뛰어난 AV 퀄리티를 보여준다. 특히 D2D 방식으로 제작된 픽사의 애니메이션 타이틀에 버금가는 안정도와 정교한 표현력을 자랑하는 화질이 매우 인상적이다. 물론 디지털 색보정 과정에서 짙은 색감이 지나치게 강조된 탓에 전체적인 영상 톤이 어둡다는 점은 논란거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리들리 스콧 감독이 의도한 영상 컨셉을 충실히 구현하려는 과정에서 생긴 부산물일 뿐, 퀄리티 자체의 문제라고 볼 수는 없다. 다소 짙기는 하지만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색상에서 시작해 떨림 없는 안정된 영상, 디테일의 표현력까지 모든 면에서 본 타이틀의 영상은 ‘필름 영화’로서는 최고 수준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DTS 사운드트랙도 모든 면에서 최상급이다. 막강 우퍼 채널의 지원을 등에 입은 음향의 임팩트는 최근 출시작 중에서도 대적할 만한 상대를 찾기가 힘들 정도며, 음향의 이동감과 분리도, 각종 음향 요소들 간의 밸런스도 만점 수준에 가깝다. 필자가 꼽은 ‘베스트 신’은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는 공성전 장면. 비싼 돈을 들여 서라운드 시스템을 구비하신 분들은 무시무시한 사운드가 전 채널에서 쏟아지는 이 장면(마치 감상자 자신이 20만 대군에 의해 포위된 듯한 착각이 들게 만든다)에서 투자한 보람을 확실히 느낄 것이다. (2005년 10월 11일 20세기 폭스 출시) 서편제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가 드디어 출시됐다. 스펙트럼은 지난 6월에 발표한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를 필두로, 우수한 한국 영화를 디지털 리마스터링하여 연달아 내놓고 있는데 10월에는 <서편제> 외에 <춘향뎐>과 <장군의 아들>도 함께 출시했다.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가 그랬듯, <서편제>의 화질도 기대 이상의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HD 텔레시네를 거친 영상답게 표현력이 기대 이상이며 시종일관 부드럽고 안정된 입자 표현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 필름 특유의 잡티가 존재하긴 하나, 감상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며 세세한 부분의 디테일 묘사 상태도 대체로 만족스러운 편이다. 다만 엠버 톤이 지나치게 부각되는 등 색상의 화려함이 떨어지는 것이 흠이라 할 수 있다. 반면, 음질 쪽은 다소 실망스럽다고 평가할 수 있다. 대사나 주변 음향에서 잡음이 섞이거나 갈라져서 나오는 부분이 적지 않으며, 음향 자체가 뚝뚝 끊기는 듯한 느낌이 드는 부분도 있다. 영상 못지않게 음향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영화인 점을 감안한다면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이 부분은 사실 리마스터링 과정에서 생긴 문제가 아닌,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의 태생적 한계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외국 타이틀의 ‘기적 같은’ 복원 상태에 이미 익숙해져 있는 DVD 유저들의 입장에서 이는 묵과하기 힘든 약점이 아닐 수 없다. 필자가 꼽은 ‘베스트 신’은 유봉 일가가 진도 아리랑을 부르는 유명한 롱 테이크 장면이다. 워낙 설명이 필요 없는 명장면이기에, 여기에서도 ‘설명’ 따위는 생략하도록 한다. (2005년 10월 25일 스펙트럼 출시) 시선집중: 이 장면! <죠스 30주년 기념판 Jaws : 30th Anniversary Edition> 중 “인디애나폴리스 호가 어쨌다고?” 유니버설이 드디어 DVD 판매를 재개했다! DVD 유저에게는 대단한 희소식이 아닐 수 없는데, 당장 10월의 출시목록 중에도 놓치기 아까운 작품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이번 출시목록 중 <레이>와 더불어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타이틀은 바로 <죠스> SE (30주년 기념판)이다. 특히 이번 30주년 기념판에는 기존의 국내 출시판 <죠스>에서 빠졌던 DTS 트랙이 포함돼 눈길을 끈다(기존판의 경우, 코드 1번 타이틀은 DTS 버전과 DD 5.1버전이 따로 출시됐는데 국내에서는 후자의 버전만이 출시된 바 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이번 30주년 기념판의 백미는 바로 부록 디스크에 수록된 두 시간짜리 메이킹 다큐다. 지난 1995년에 발매된 LD에 수록되어 호평을 받았던 이 메이킹 다큐는 현역 최고의 메이킹 다큐 전문 감독 중 하나로 알려진 로렌트 부제로가 감독한 것으로, 이미 <죠스>의 팬들 사이에서는 전설이 된 유명한 작품이다. 지난 출시판에서는 이 메이킹 다큐가 절반가량이 잘려나간 상태로 수록돼 팬들의 아쉬움을 자아내기도 했는데, 이번 30주년 기념판에서 드디어 ‘완전한 버전’을 감상할 수 있게 됐다. ‘대체 얼마나 대단한 메이킹 다큐인데 저렇게 호들갑을 떠느냐’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직접 그 진면목을 확인해 보시기 바란다. 159일간의 사투 끝에 영화사에 길이 남을 걸작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관계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낱낱이 공개되는데, (약간 과장해서) 영화 본편보다 더 재미있으며 배꼽이 떨어져나갈 정도로 웃긴 에피소드도 상당수 소개된다. 특히 리처드 드레이퍼스의 유머 감각은 그야말로 ‘명불허전’이다. 이번에 <시선집중! 이 장면>으로 고른 장면은 퀸트(로버트 쇼)가 맷 후퍼(리차드 드레이퍼스)와 마틴 브로디(로이 샤이더)에게 ‘인디애나폴리스 호’ 침몰 당시에 체험담을 들려주는 부분(DVD 챕터 15)이다. 퀸트의 체험담을 대충 요약하면, 이렇다. “1945년 6월 29일, 내가 타고 있던 인디애나폴리스 호가 일본 잠수함에서 발사한 어뢰 두 방을 맞고 격침됐지. 티니언 섬에서 레이테로 돌아오던 중이었어. 히로시마 원자 폭탄을 수송한 후에 말이야. 천 백 명의 선원이 물에 빠졌고, 배는 12분 만에 침몰했지. 수송 작전 자체가 극비임무였기 때문에 구조 신호는 발신되지도 않았지. 동이 틈과 동시에 뱀상어들의 공격이 시작됐어. 상어들은 가까운 사람부터 차례로 공격했고 물린 사람은 비명을 지르며 허우적댔지. 동료들은 하나 둘 상어의 밥이 됐고, 바다는 피로 물들어갔지. 5일째 되는 날 정오에 우리는 상공을 지나던 벤투라 폭격기에 의해 발견되어 극적으로 구조됐는데, 물 속에 빠졌던 천 백 명 중 생존자는 316명에 불과했어.” 로버트 쇼의 기막힌 연기 덕에 이 장면은 지금은 <죠스>에서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로 손꼽힌다. 로버트 쇼가 내뱉는 ‘걸작’ 대사는 영화의 각색자 중 한 사람이었던 하워드 새클러가 처음 고안했으며, 이후 존 밀리어스에 의해 확장됐고 로버트 쇼가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맞도록 최종 각색을 한 것이다. 퀸트가 언급하는 ‘인디애나폴리스 호 침몰 사건’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이 일화는 세계 해전사에서는 꽤나 유명한 것이다) 천 백 명의 선원이 물에 빠진 것, 그리고 그 중 수 백 명이 ‘상어 밥’이 된 것도 사실과 일치한다. 그러나 퀸트의 언급과는 달리 인디애나폴리스 호의 침몰 당시 구조신호는 수차례 발신된 바 있다. 물론 이는 영화의 긴장감을 높이기 위한 ‘창조적’ 각색의 결과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로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은, 퀸트가 인디애나폴리스의 침몰일을 잘못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디애나폴리스 호의 침몰 사건은 실제로는 1945년 7월 30일, 그러니까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되기 7일 전에 있었던 일이다. 미국에서 이 사건은 꽤나 유명한 것이어서, 전쟁사에 관심이 없는 일반인들 중에도 이 사건을 정확히 기억하는 이들이 꽤 많았다. 실제로 <죠스>를 보는 관객 중에는 퀸트의 대사를 듣고 ‘공포감을 느끼는’ 대신 고개를 갸웃갸웃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치명적인(?) 오류가 세 차례의 각색 과정 중 어디에서 발생했는지는 아직까지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감독의 스튜디오, 쇼치쿠 110년 [2]

쇼치쿠 누벨바그와 <남자는 괴로워> 1953년 텔레비전이 첫 등장할 때만 해도 영화계의 우려는 크지 않았다. 1958년 당시 관객은 현재의 10배인 연간 11억2745만명에 달했다. 민간방송 출범 당시 영화계도 미국에 시찰단까지 보냈지만 흐지부지되었고 방송국은 신문사들이 맡게 된다. “여기에서 영화계의 운명은 갈렸다”고 하마노 교수는 말한다. 1965년 관객이 3억6천만명으로 격감했고, 1975년엔 처음으로 일본영화 관객이 외국영화 아래로 떨어졌다. 장기가 TV의 홈드라마, 가정극과 가장 비슷했던 쇼치쿠가 가장 타격이 컸다. 이전까지 확고한 업계 1위였던 쇼치쿠는 1958년 이미 3위로 떨어졌다. 하마노 교수는 역설적이지만 “일본에 홈드라마라는 장르를 확립한 것”이 쇼치쿠의 기여라고 했다. 기노시타 감독은 1970년대 실제 가 지원해준 기노시타 프로덕션을 통해 수많은 홈드라마들을 만들어냈다. 일본의 2대 드라마 작가 중 한명인 야마다 다이치는 기노시타의 조감독 출신이며, 또 한명 구라모토 소오는 오즈의 영향을 깊이 받았다. 쇼치쿠에게도 변화의 기회가 있었다. 1950년대 말 젊은 감독들을 데뷔시키면서 선전부는 ‘쇼치쿠 누벨바그’라며 이들을 내세웠다. 오시마 나기사, 시노다 마사히로, 요시다 기주(한국에선 요시다 요시시게로 잘못 이름이 알려져 있는) 등이 내건 강렬한 청춘·애정영화는 당시 절정에 달했던 안보투쟁을 배경으로 거친 에너지와 비판의식을 고스란히 담았고 흥행도 크게 성공했다. 하지만 너무나도 정치적이고 파격적이었던 오시마의 <일본의 밤과 안개>를 회사쪽이 개봉 4일 만에 극장에서 떼어내고 이에 오시마 등이 쇼치쿠를 나가면서 반짝했던 변화의 시도는 끝나고 말았다. 닛카쓰가 이시하라 유지로를 앞세운 새로운 청춘영화나 무국적풍 액션, 도에이가 야쿠자영화 등 그나마 방송에 없던 새로운 시도를 할 때 쇼치쿠는 과거에 안주한 셈이다. 도호나 도에이가 부동산 회사들을 각각 모태로 해 개발 거점에 극장을 세우며 출발한 영화사인 데 비해, 처음부터 ‘순수 연극, 영화사’라는 쇼치쿠의 높은 자존심도 작용했다. 오시마와 함께 1954년 입사했던 야마다 요지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입사 당시엔 전형적인 오후나 멜로드라마에 질려 있었다. 조명을 해도 오로지 밝게. 구로사와처럼 강렬한 콘트라스트를 쇼치쿠는 싫어했다. 소프트하고 부드럽고 구석구석 밝은 화면. 그런 것의 가치를 젊은 때는 알 수 없었다. 금방 망원렌즈를 사용해버리고 싶고. 하지만 쇼치쿠의 촬영감독들은 망원을 바보처럼 여겼다. 첫 촬영날 망원을 쓰겠다고 하다가 혼나기도 했다”고 말한 적 있다. 그런 야마다 감독이 ‘가장 쇼치쿠적’이라는 <남자는 괴로워>를 48편 만들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1969년 시작된 이 시리즈는 27년간 8천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총매출 480억엔을 기록했고 일본인들의 영원한 친구 ‘도라상’(아쓰미 기요시)를 낳았다. 다나카 고기는 “이 시리즈의 성공에 안주했던 게 쇼치쿠의 변화를 더디게 한 원인이기도 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쇼치쿠풍 드라마는 지금도 무시할 수 없다. 88년 시작된 <낚시바보일지> 시리즈는 올해 16번째 작품을 내놓았다. 낚시광인 만년 평사원 ‘하마짱’은 오늘날 샐러리맨들의 스트레스를 웃음으로 날려주는 존재다. 하마짱의 배짱 앞에서 꼼짝 못하는 사장 ‘스상’은 이상적인 기업주라 할 정도로 속이 깊다. 시리즈의 최근작 3편을 내리 감독한 아사하라 유조는 쇼치쿠풍의 영화를 시대에 맞게 새롭게 일궈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통이 무조건 부정되어야만 하는 건 아니다. 110년을 갈무리하고 내일을 준비한다 쇼치쿠의 변화의 시작은 더뎠지만, 착실히 진행되고 있다. 쇼치쿠는 촬영소를 매각하던 99년 블록부킹 시스템(일정기간의 상영을 보장하고 자사영화를 자기 극장에 걸던 방식)을 프리부킹 시스템으로 바꿨다. 갑작스레 영화수급이 끊기며 그해 경영은 마이너스로 곤두박질쳤지만 오히려 이것이 경영에 숨통을 틔워주었다. <반지의 제왕>의 대히트 같은 운도 따라줬다. 최근 1∼2년 사이엔 애니메이션 본부 신설, 개인투자펀드(<시노비>), 지적재산권신탁을 이용한 펀드(<아수라성의 눈동자>) 등 새로운 시도를 공격적으로 펴나가고 있다. 물론 일본 영화계가 메이저 스튜디오 중심으로 다시 돌아갈 가능성은 없다. 이미 80년대부터 메이저의 지배는 깨져나갔다. 도호가 막강 1인자라지만, 배급의 얘기일 뿐 더이상 제작사로 보기 어렵다. 1970년대 중반 일찌감치 방계 회사들에 제작을 넘기기 시작했고 지난해 <고질라>를 끝으로 아예 자체제작은 중단한 상태다. 멀티플렉스의 증대, TV 방송국의 영화계 장악, 단관계 개봉의 유행 등으로 영화계의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이치야마 프로그래머는 “단적으로 메이저 스튜디오가 쇠퇴했지만 일본영화의 전체 제작편수는 다시 늘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올해는 300편이 넘을 거라 추산된다. 경로가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1997년 <하나비>가 2개관에서 개봉해 장기상영하는 단관계 개봉 방식을 선택해 대성공을 거둔 이래, 일본에선 이제 영화계의 상식이 되어버렸다. 아예 비디오로 촬영해 단관의 레이트 쇼으로 개봉하는 사례도 크게 늘었다. 이전의 V시네마가 액션야쿠자영화 중심이었다면 요즘은 장르도 다양하다. 방송국의 영화제작은 바꾸기 힘든 흐름이다. 마케팅비가 총제작비의 절반을 훨씬 넘기 일쑤인 일본에서 채널에서 광고를 쏘아대는 TV의 힘은 막강할 수밖에 없다. 110살의 쇼치쿠는 이런 변화 속에서 새 출발점에 서 있다. “전통 속의 혁신이 우리의 힘이다” 쇼치쿠 영화부문의 실책임자 히사마쓰 다케오 상무 인터뷰 히사마쓰 다케오 상무는 영상본부 부본부장과 영상기획부를 맡아 쇼치쿠의 영화 관련 부문을 사실상 이끌고 있는 인물이다. -쇼치쿠 110년의 원동력은. =가부키가 400년 된 전통문화지만 혁신적인 면이 있다. 건담의 모빌슈트도 가부키의 연기에서 얻어온 것 아닌가. 토키영화와 컬러영화를 처음 만든 것도 우리다. 아마 쇼치쿠가 전통만을 고집해왔다면 이미 망했을 거다. 전통 속에서도 혁신을 이뤄왔던 게 힘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0년대부터 서서히, 그리고 90년대에는 심각한 위기가 왔다. 침체의 원인은 뭔가. =쇼치쿠를 빛낸 게 강력한 디렉터 시스템이었지만 거꾸로 말하자면 ‘시장’에 대한 생각을 덜 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밖에선 텔레비전이다, 외화 수입이다, 애니메이션이다 하는데 쇼치쿠는 자존심만 세우고 시장을 보지 않았다. 대중의 취향이 바뀐 데 대한 인식과 대응 프로세스가 없었다. -오후나 촬영소 매각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도 있었다. 당시 신키바 촬영소 건설을 노조에 약속했는데. =90년대 말 수십억엔 적자에서 지난해에는 43억엔 흑자로 돌아서고, 부채도 절반으로 줄었다. 그 계기가 촬영소 매각이었다. 쇼치쿠가 살기 위해선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신키바는 계속 검토 중이다. 하지만 무조건 촬영소를 만드는 게 아니라 만들 만한 기획과 인력의 정비가 먼저다. -제작, 배급, 흥행의 이후 계획은. =시네콘을 착실히 늘려 현재 목표로는 2007년 쇼치쿠의 전국 300여개 스크린 중 90% 가까이가 시네콘이 될 예정이다. 하지만 극장은 안정적인 대신 큰 비약도 없는 부문이다. 배급은 5∼6년 전엔 고생하다가 이제 겨우 외화, 애니메이션까지 포함한 라인업을 갖추게 됐다. 제작은 돈버는 건 아니지만, 어떤 의미에서 영상부문의 원점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걸로만은 안 되기 때문에 지금은 1년에 5∼6편 정도만 생각하고 있다. 대신 비디오는 좀더 늘릴 예정이다. 비디오 시장을 2배까지 늘릴 생각이다. -어쨌든 지난해부터 다시 자체제작이 늘어났다. 대중의 취향에 대한 분석을 어느 정도 했다는 얘기인데. =멀티플렉스가 지역에 확실히 자리잡고 도심까지 진출하면서, 쇼핑센터에 구경나온 가족 단위 관람객이 요구하는 가족 취향, 젊은이 취향의 영화 수요가 크게 늘었다. 예전엔 도시 대 지역의 흥행비율이 7:3이었으면 요즘은 그 반대다. 쇼치쿠가 지난해부터 내놓은 <퀼> <캐산> <시노비> 같은 게 그런 분석을 반영한 결과다. 아마 이전이라면 절대 쇼치쿠 영화라 믿지 않을 거다. 물론 야마다 요지 감독의 영화도 있고 <낚시바보일지> 시리즈도 만들지만, 액션영화나 젊은 감각의 영화들을 추가해 좀더 다양한 균형감을 갖추고 싶다. <세카추> 같은 순애영화도 만들고 싶다. 오즈 야스지로부터 야마다 요지까지 쇼치쿠의 산증인 다나카 고기가 말하는 쇼치쿠의 감독들 다나카 고기는 10년 전 <쇼치쿠 100년사>에 이어 올해 <쇼치쿠 110년사>의 발행 책임을 맡고 있다. 1955년 입사해 <조춘> 등 오즈 야스지로의 세 작품의 조감독을 거쳐 감독으로 활동하다가 제작, 영업에 두루 관여했던 그는 쇼치쿠의 산증인이다. 오즈 탄생 90주년인 93년엔 허우샤우시엔, 빔 벤더스, 스탠리 콴 등이 오즈에 대해 이야기하는 <오즈와 이야기하다>를 감독했고, 99년 오후나 촬영소의 폐쇄 당시에는 촬영소 역사를 담은 마지막 영상물을 만들기도 했다. 그가 전하는 쇼치쿠의 몇몇 감독들에 대한 사적인 기억과 평가. 혁신적인 오즈, 영상의 천재 기노시타 오즈 야스지로와 기노시타 게이스케_ “쇼치쿠에 입사 뒤 두달 만에 오즈조에 속하게 됐는데 이름 정도 들어봤지 영화는 본 적이 있어야지. 마침 집 주위에서 <도쿄이야기>를 재상영하더라고. 디테일은 잊었어도 밖에도 비가 오고 화면도 주룩주룩 비가 내렸던 일, 그리고 정말 해머로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던 건 기억해. 당시 젊은 입사자들 중엔 대학 영화연구그룹 출신이 많아 오즈에 대해 ‘낡았다’ ‘지루하다’ 했지만 난 처음부터 달랐어. 기노시타는 후배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멋쟁이 감독이었지. 젊은 조감독들과도 적극적으로 얘기하려 했고. 별로 후배와 교류가 없는 오즈와 비교될 수밖에 없었지.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럴 수밖에 없어. 폴 슈레이더가 오즈에 대해 ‘자신의 형식’을 가진 이라 말했지만, 그건 누가 얘기해준다고 생기는 게 아니잖아. 기노시타는 영상의 천재라는 면에선 구로사와 아키라와 맞먹는다고 생각해. 언제나 새로운 방식으로 영화를 찍었지. 구로사와처럼 에너지는 없었지만, 오히려 관객에게 더 어필할 수 있는 영화였고. 쇼치쿠 전성기의 3대 감독이라면 오즈, 기노시타 그리고 시부야 미노루였는데 오즈는 워낙 각별한 존재였고 나머지 둘 사이의 경쟁심은 대단했어. 오후나 촬영소 근처에 둘 다 단골식당이 똑같았는데 그 조의 조감독들은 둘이서 마주치지 않도록 점심시간 잡느라 고생했지.” 군계일학의 재능 오시마, 학자 같은 감독 요시다 오시마 나기사와 요시다 기주_“누벨바그라 해도 오시마나 요시다 같은 이들 사이엔 강한 연대 같은 건 별로 없었어. 영화 경향도 다르고. 오시마가 쇼치쿠를 나간 건 이미 그전에 이마이 다다시 같은 사람들이 독립 프로덕션으로 활동하고 있었기에 그리 큰 충격은 아니었어. 하지만 쇼치쿠로선 아쉽지. 재능면에선 단연 오시마였거든. 난 오시마가 쇼치쿠에서 멜로를 찍었으면 굉장했을 거라 생각해. 쇼치쿠에서 맘대로 한편 찍으면 그 다음엔 회사 위해 하나 하고 이랬으면 좋았을 텐데. 요시다는 내 동기인데 반은 학자였어. 관념적인 영화들이 많았지. 오시마는 요시다처럼 관념적이지 않았어.” 쇼치쿠 시행착오의 상징 노무라, 아쉬운 재능 야마다 노무라 요시타로와 야마다 요지_“ 노무라는 <모래의 그릇> 같은 걸작이 있는가 하면 태작도 있고 기복이 심해. 뭐랄까 쇼치쿠 시행착오의 상징 같아. 재주로 치면 야마다보다 한수 위지만 재주가 많아 회사가 원하는 대로 너무 다양하게 만든 게 문제였지. 야마다는 훌륭한 작품들도 많은데 <남자는 괴로워> <학교> <가족> 같은 시리즈로만 알려진 게 안타까워. 물론 이 작품들이 쇼치쿠의 효자들이긴 하지.”

<사랑해, 말순씨> 찬반양론 [2] - 남다은 비평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장 의아한 점은 이것이다. 왜 <사랑해, 말순씨>일까? 왜, <사랑해, 엄마>가 아니라 <사랑해, 말순씨>일까? 영화를 보기 전까지 별다른 사전 지식이 없었으므로, 나는 박흥식은 이제 엄마가 아닌, 엄마의 ‘이름’을 부르고 있구나, 했다.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지 않고, 말순씨라고 부르는 것의 그 의미심장함. 아마도 그는 <인어공주>에서 매우 긍정적인 의미로 한 발자국 나아간 게 분명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난 뒤, 동일한 제목이 다른 의미로 다시 의아해진다. “사랑해, 말순씨”라고 말하는 자는 누구인가? 왜 하필이면, “사랑해, 은숙(주인공 광호가 짝사랑해 마지않던 여인)씨” 혹은 “사랑해, 내 십대의 추억”이 아니라, 말순씨란 말인가? 이 영화에서 말순씨가 다른 인물들에 비해 그다지 특별한 비중을 차지하지 않음을 깨달은 순간, 나는 더욱 궁금해졌다. 단순히 관객 동원용이었나, 아니면 말순씨를 연기한 문소리 때문이었나. 우습지만, 이 이상한 제목에 대한 집착에서 이 글의 그림은 시작된다. 그러니까, <사랑해, 말순씨>라는 영화가 반드시 <사랑해, 말순씨>라는 제목을 달아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던가. 소년성장영화 클리셰의 반복 영화가 시작된 지 얼마지 않아, 나는 말순씨가 등장하는 장면이 교복을 입은 까까머리 소년의 장면에 양적인 측면에서 현저히 뒤지고 있음을 발견했다. 불길했다. 이건, 말순씨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또 소년의 성장기에 대한 이야기란 말인가! 최근 우리나라 소년성장기영화의 클리셰. 폭력적인 학교, 짝사랑, 성적 호기심, 도색잡지, 적당한 반항심, 그리고 박정희의 사진과 전두환의 목소리, 혹은 그들의 그림자. 19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를 배경으로 하는 <말죽거리 잔혹사> <친구> <해적, 디스코 왕 되다> <품행제로> 등에 반복 등장하는 이미지들. 이 영화들은 분명 과거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이들이 재현하는 시대성은 역사가 제거된 이미지이다. 사진과 라디오와 텔레비전에 갇힌 박정희와 전두환의 얼굴, 음성은 박제된 배경으로 소년들의 성장기에 일종의 면죄부를 주거나 연민을 느끼게 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소년과 역사는 만나지 않는다. 동일한 시절, 동일한 이미지로 돌아가는 이 감독들은 이 기형적인 성장기영화 속에서 소년과 역사의 성장을 멈추게 하는 역설적인 결과를 창조한다. 심지어, 나는 이 감독들이 두 권력자들의 이미지와 목소리를 아무런 사유없이 전면화하고 소비하는 과정에서 그 시대에 대한 자신들의 부채의식을 지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한다. 이건 최근 소년성장영화의 무언의 공식이었다. 그런 점에서는 <사랑해, 말순씨>도 다를 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그렇고 그런 소년의 성장기영화라는 전제를 인정하기로 하고, 그 틀 내부에서, 그 틀의 전형성을 균열할지도 모를 말순씨와 소년의 관계를 자세히 뜯어보기로 했다. 말순씨에게 집중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면, 아마도 말순씨와 소년의 특별한 관계가 드러나는 순간이 있겠지. 단순히 아들에 대한 엄마의 모정이라든가, 엄마에 대한 아들의 애증이나 그리움 이외에 어떤 유대관계가 존재하지 않을까. 실제로 영화 속에서 아버지는 단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는다. 흥미로운 건, 이 자리를 말순씨가 차지하기에 그녀는 너무 구김살이 없고(그녀는 화장품 외판으로 생활을 책임지는 가장임에도 ‘아버지’ 같은 권위가 없다), 그렇다고 아들 광호가 차지하기에 그는 경제적으로, 육체적으로 너무 어리다(광호는 철없는 말순에게 ‘아버지’처럼 충고하지만 그건 언제나 ‘처럼’일 뿐이다). 말순씨와 광호는 모두 아버지의 자리를 번갈아 맡으며, 그 자리의 주인이라고 믿어지는 누군가를 그리워하지 않으며(광호와 여동생은 단 한번도 아버지가 그립다는 말을 하지 않으며 말순이 병에 걸렸을 때도 그들은 아버지에게 편지하지만 답장은 오지 않는다), 그 자리의 권위를 지우며 공존한다. 그런데 영화는 안타깝게도 이처럼 흥미로운 조건 속에서 이 둘의 관계가 재미있어지는 순간들을 찾아내지 못했다. 말순씨와 광호가 친구처럼 싸운다거나, 함께 맥주를 마시고 취한 장면만으로 이들의 특별한 관계가 표현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두 캐릭터와 그들의 조건은, 미약했으나 신선했던 가능성을 묻어버리고 뻔한 운명과 상황의 틀에 의존하기로 결정한다. 그 필연적인 상황이란 말순씨의 불치병, 그녀의 죽음, 생각해보니 처음부터 예견되어 있었던 죽음이다.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없이 말순씨, 혹은 그녀와 광호의 관계를 다시 성장기의 철저한 틀 내부로 끌고들어올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이 지점에서 <인어공주>에 대한 미련, 상투성을 버린 관계에 대한 그리움 또한 잊기로 했다. 살아남아서 성장한 소년은 비겁하다? 그리하여 다시 성장의 이야기로 돌아와야 한다면, 이 영화의 흐름은 소년이 썼던 ‘행운의 편지’를 중심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어느 날, 소년 앞에 도착한 행운의 편지는 다른 누군가에게 부치지 않으면 불행을 몰고올 편지이다. 소년은 불행을 막기 위해 편지를 다시 쓴다. 그 편지의 수신자는 소년을 귀찮게 하던 다운증후군 친구 재명, 창피한 엄마, 소년에게 동경과 두려움의 대상인 같은 반 반항아, 그리고 몇몇을 지나, 마지막 수신자는 전두환. 그런데 그 편지가 수신자에게 전달되는 순간, 소년은 답장은커녕 그 편지의 존재감조차 믿지 않을 사람들에게 편지를 보낸 것을 후회한다. 소년은 그들에게 다가올 불행이 걱정스럽다. 재명과 엄마와 반항아 친구에게서 멈춘 편지는 불행이 되어 돌아온다. 재명은 변태 짓을 일삼다 어느 날 갑자기 연행되고(그런데 감독은 굳이 재명을 다운증후군으로 설정하여 거기에 바보 같고 변태적인 이미지를 부여한 이유가 무엇일까), 반항아 친구는 급우의 돈을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퇴학당하고, 엄마는 결국 죽는다. 그리고 소년이 청와대로 편지를 보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전두환만은 멀쩡하다. 나는 여기서 뜬금없이, 그 편지의 발송, 돌아옴의 의미가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영화는 혹시 끊임없는 편지의 흐름을 당대의 억압적 권력에 대한 알레고리로 상정한 것이 아닐까. 그 권력의 언어, 실체없는 위협의 호명에 답하는 순응적인 인간들은 살아남고, 권력의 부름을 거부한 세 사람은 처벌받았다는 것일까. 그래서 감독은 실체없는 권력에 굴복한 소년의 살아남음을 통해, 지금 우리의 이 비겁한 살아남음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의 상상은 끝없이 이어졌지만, 영화의 방향은 점점 다른 쪽을 향하고 있었다. 소년의 죄의식은 자신이 편지를 다시 써서, 타자에게 그 불행을 전가하며 스스로의 불행을 지연시켰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특정한 ‘그들’을 수신자로 정했다는 사실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소년은 그들의 불행에 죄책감을 느끼는 것과 별개로, 영화의 후반 엄마에게서 멈춰진 편지를 다시 누군가에게 써 보내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그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영화가 소년의 죄책감을 행운의 편지와 연결시키는 과정에서 소년이 진정 지녀야 할 죄의식을 지우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소년은 재명이 연행되는 순간, 재명의 마지막 구원의 요청에 답하지 못했고, 친구의 무죄를 목격했음에도 끝까지 변명해주지 않았으며, 엄마에게서 일찍이 시작되었던 병의 그림자를 알아채지 못했다. 영화는 소년의 죄의식은 어떤 외부적 힘, 행운의 편지에서 시작되기보다 소년 내부에서 시작되어야 함을 모른 척하고 있다. 왜? 그건 소년이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외부의 힘에 의해 상처를 겪으며 성장하는 것이 이 시대, 소년성장영화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화의 후반부, 퇴학당한 친구가 학교 창문을 깨며 뚝뚝 피를 흘릴 때, 엄마가 화장실에서 뻘건 피를 쏟을 때, 두려움 가득한 소년의 눈빛은 의미심장하다. 타자의 몸에서 흐르는 피, 타자의 상징적인 죽음. 영화는 기어이 주변 인물들 중에서도 상징계의 경계에 선 자들, 장애인, 피를 쏟는 병자 엄마, 그리고 끊임없이 법과 충돌하는 존재를 죽이고서 소년을 상징계의 주체로 인도한다. 혼자 살아남은 소년은 과연 이 무지막지한 죄의식을 어찌할 것인가? 영화는 여기서 마지막 판타지 혹은 꿈장면을 삽입한다. 죽은 엄마와 떠나간 재명, 퇴학당한 친구, 동생, 고향으로 돌아갔던 첫사랑 은숙이가 집 앞 마당에 모여 평화롭게 웃고 춤을 춘다. 희생되었던 타자들이 모여 소년의 죄의식을 쓰다듬고 소년의 성장통을 축하해준다. 난데없이 등장한 이 장면 하나로 영화는 소년의 죄의식을 말끔하게 봉합하고 있다. 이제 <사랑해, 말순씨>의 말순씨는 곧 재명, 퇴학당한 친구, 소년의 성적 환상을 채워주던 은숙씨 혹은 그 시절이어도 상관없다. ‘말순씨’는 특이성을 가진 그 누군가가 아니라, 소년의 성장을 위해 기꺼이 희생당한 모두의 이름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 이름을 부르는 자가 소년이라는 사실뿐이다.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소년은 교복을 고쳐 입고 모든 상처가 아문 얼굴로 우리를 향해, 영화 속 누군가가 아닌, 영화 밖 우리를 향해 말한다. “저, 이제 3학년이에요.” 그 순간, 그의 이기적이고 폐쇄적인 성장에 어떤 식으로든 공모한, 영화 밖 우리 중의 하나가 된 나. 성장기의 고통을 박제하지 말길 덧붙이며, 우리는 영원히 성장한다. ‘성장기영화’가 아픈 건, 현실의 타락한 내가 그 시절의 철없는 순수함으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 아니다. 그건, 세상 모든 것을 가슴에 새겼던 그때 그 정신과 육체와 마음의 예민함을 여전히 잊을 수 없기 때문에, 잊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아픈 것이다. 그러니 제발 피 흘리는 과거를 반복 박제하여,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쉬운 선택으로 만들지 않길. 성장기를 추억의 신화에서 꺼내길. 아픔과 고통의 그 순간을 정면으로 대면할 자신이 없다면 결코 다시 돌아가지 말길.

‘남 다 간길’ 택한 MBC 가을개편

수요일 밤이 허전했다. 좀처럼 보기 힘든 국내외 실력파 뮤지션들의 명연주도, 썰렁한 농담과 어눌한 진행으로 밤잠을 깨우던 재즈 피아니스트 김광민과 가수 이현우의 모습도 이제 볼 수 없었다. 프로그램 폐지 소식은 들었지만, 정작 수요일 밤이 되니 그 아쉬움이 절절히 사무쳤다. 깊은 밤 흔치 않게 텔레비전이 휴식 같은 친구가 돼줬던 시간. 문화방송 <수요예술무대>를 이젠 볼 수 없다니. <김동률의 포유>는 허전함을 메꾸지 못했다. 이름부터 <윤도현의 러브레터>(한국방송) <김윤아의 뮤직웨이브>(에스비에스)가 떠오른다. 뚜렷한 차별성 없이 베끼기나 따라가기라는 의심이 불거지니 불만이 터져나올밖에. 내용도 그랬고, 분위기도 그랬다. 다를 게 없었다. 내세울 것 없는 후속 프로그램이, 탄탄하게 자리잡은 경쟁 프로그램을 따라잡기란 쉬운 일이 아닐 터다. 다시 의문이 든다. 왜? 더 나을 게 하나도 없는, 오히려 경쟁력을 갖기 조차 어려울 ‘똑같은’ 프로그램을 ‘하나 더’ 만든 걸까? 그것도 문화방송의 대표 브랜드라고 할 수 있는 13살짜리 프로그램을 내쫓고 말이다. 누구는 저조한 시청률 탓이라고도 하고, 또 누구는 프로그램 소속 부서가 편성국에서 예능국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어처구니가 없다. 심야 프로그램 시청률이 1~5%면 괜찮은 것 아닌가. 부서 변경이 13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고품격 음악프로그램을 폐지한 이유라면 더욱 황당하다. 뭔가 설득력있는 설명이 빠진 듯 허전한, 문화방송의 이번 가을개편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바로 <수요예술무대>다. 다른 개편·신설 프로그램들도 그렇다. 몰래카메라를 부활시키고 정치인들을 출연시키면서 논쟁을 부르는 <일요일 일요일 밤에>, 정통 코미디 부활을 내세웠지만 웃기기보다는 민망함과 안쓰러움이 앞서는 <웃는 데이> 등도, ‘왜?’라는 의문을 품게 만든다. 과거 <경찰청 사람들>의 새 버전인 <형사>나 중년 연예인들이 추억을 되새기는 <스타스페셜 생각난다> 등을 보면, 가을 개편의 화두는 복고란 말인가? 그렇다면 더욱 13년을 이어온 프로그램을 쉽게 폐지해버리는 건 아귀가 들어맞지 않는다. 이러저러한 여러 사건·사고들과 전반적인 시청률 하락으로 문화방송은 위기를 맞고 있다. 대대적인 가을개편으로 분위기 쇄신을 꾀하지 않을 수 없는 사정이었을 터다. 그래서 지난 8월부터 여러차례 고심어린 회의와 조정을 거쳤다. 그러나 알맹이가 빠져있다는 생각이 든다. 알맹이란 가을개편의 중심을 꿰뚫는 철학이며, 이는 늘 문화방송의 자랑스런 표상이었던 ‘실험정신을 바탕으로한 창의성’이어야 했다. <내 이름은 김삼순>이나 등이 크게 성공하며 문화방송의 위상을 드높일 수 있었던 것 또한 다른 방송이 ‘가보지 않은 길’을 과감히 골랐기 때문이 아닌가. 허전한 수요일 밤, 아쉬우나마 토요일 밤을 기다리며 위안을 삼는다. 가을개편에서 돌아온 <베스트극장> ‘태릉선수촌’이 그나마 문화방송의 ‘명성’을 이어가는 씨앗이라 여기며.

누가 제2의 ‘장밋빛 인생’ 될까?

한국방송 2텔레비전 드라마 <장밋빛 인생>의 뒤를 이을 수목 드라마의 선두자리는 어떤 드라마가 차지할까? 40%를 넘나드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한 달 넘게 1위 자리를 지켜온 <장밋빛 인생>이 지난 10일 막을 내림에 따라, 같은 시간대에서 경쟁할 드라마들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문화방송도 수목 드라마 <가을소나기>가 같은 날 종영을 해 한국방송과 문화방송이 약속이나 한 듯 16일 새 드라마 <황금사과>와 <영재의 전성시대>를 각각 선보였다. <장밋빛 인생>의 인기에 눌려 기를 펴지 못하던 에스비에스의 <사랑은 기적이 필요해>도 밋밋하던 줄거리 진행에 반전이 도입되는 등 ‘3사 3색’의 치열한 경쟁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복고풍으로 중장년층 노리는 ‘황금사과’ 유쾌발랄 성공담 ‘영재의 전성시대’ 극적 반전 나선 ‘사랑은 기적이 필요해’ 방송 3사 수목금 경쟁 치열 한국방송의 <황금사과>는 <옥이 이모> <서울뚝배기> <서울의 달>을 쓴 김운경 작가와 <명성황후> <무인시대>를 연출한 신창석 피디가 의기투합해 만든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황금사과>는 1960년대 한 산골마을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4남매의 이야기를 그린 시대극. 복고풍을 앞세워 중장년층 시청자를 텔레비전 앞으로 끌어들인다는 전략이다. 경북 문경을 배경으로 4남매의 성장과 인생을 다룰 이 드라마는 초반까지 아역들이 나오고 8회부터 박솔미, 정찬, 김지훈, 이덕화 등 성인 연기자들이 등장한다. 아버지가 계모를 죽였다는 누명을 쓰게 되면서 가정이 풍비박산난 뒤 4남매는 파란만장한 인생사를 겪게 된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동생들을 돌보며 꿋꿋하게 살아가는 장녀 경숙 역은 박솔미, 서울의 대학에 진학해 현실적인 삶을 살아가는 남동생 경구 역은 김지훈, 반항적인 막내동생 경민 역은 지현우, 경숙의 집안에 계모가 데리고 들어온 딸 금실 역은 고은아가 맡았다. 전작 <가을소나기>에서 2~3%대 최악의 시청률로 참패를 맛봤던 문화방송은 <내 이름은 김삼순> 식의 유쾌한 ‘올드 미스’ 성공 스토리를 다룬 <영재의 전성시대>(극본 김진숙, 연출 이재갑)로 설욕을 노리고 있다. 이 드라마 역시 문화방송 드라마국장 출신의 베테랑 이재갑 피디가 연출을 하고, <한지붕 세가족> <전원일기> 등의 작품을 쓴 김진숙 작가가 극본을 맡아 기대를 모은다. <영재의 전성시대>는 30살 노처녀 주영재의 좌충우돌 성공담을 경쾌한 터치로 그린 트렌디 드라마로, <황금사과>와는 확실하게 구별되는 색깔을 드러낼 예정이다. <영재의 전성시대>는 반말투의 대사와 코믹한 상황 설정으로 시청자의 눈길을 끈다는 전략이다. <가을소나기>에서 진지한 분위기의 정통 멜로물로 처절한 실패를 경험한 문화방송은 가볍게 만들어야 시청자들에게 먹힌다고 판단한 듯하다. 이 드라마에서 주영재(김민선 분)는 보잘것없는 학벌과 많은 나이, 여성이라는 장벽을 넘어 조명 디자이너로 성공한다. 유준상은 주영재의 상대역으로 조명 디자인업계에서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로 출연한다. 영재는 스카우트 과정에서 착오가 생겨 중서의 회사에 취직하게 되고, 중서와 티격태격하며 사랑을 키워간다. 이들 사이에 영재의 전 애인 찬하(조동혁 분)가 끼어드는 것도 ‘삼순이’와 비슷하다. <장밋빛 인생>의 종영으로 반격에 나선 에스비에스 <사랑은 기적이 필요해>(극본 권민수ㆍ염일호, 연출 고흥식)는 그동안의 코믹 터치 외에 멜로 라인과 휴먼 스토리를 부각시켜 도약을 꾀한다. 김원희와 오대규의 감춰진 관계를 드러내는 것을 계기로 본격적인 스토리를 풀어가면서 시청자를 끌어들일 계획이다. 어린 시절 엄마에게서 버림받아 고아원에서 자란 김원희가 키우고 있는 진토가, 절친했던 친구가 죽으며 남긴 아이이며 진토의 아버지가 오대규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김원희와 오대규는 상처입은 사람들끼리의 공감을 서로 키워간다. 김원희를 둘러싸고 형제 오대규와 이규한이 빚어내는 미묘한 감정선도 극적 흥미를 돋울 듯하다. ‘쪽 대본’(녹화 직전에 급히 쓴 대본을 일컫는 방송가 용어. 책처럼 제본된 것이 아니라 낱장으로 돼 있어서 이런 이름이 붙었음)으로 그날그날 촬영을 하는 드라마 제작 현실에서, 이 주일치 대본이 미리 완성될 정도로 스토리를 탄탄하게 다진 뒤 제작에 임한다는 점도 제작진이 내세우는 강점이다.

테리 길리엄의 <그림형제: 마르바덴 숲의 저주> [3]

“미친 사람과 어린이들만이 이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다” 60대 중반을 지나고 있는 테리 길리엄은 나이를 모르는 악동이다. 테리 길리엄과 미라맥스의 하비 와인스타인은, 영화의 개봉 직전까지 온 할리우드가 수근거릴 정도로 요란한 싸움을 벌여왔다. 그러나 라운드 테이블에 마주앉아 끊임없이 너스레를 떨어대는 길리엄은 정작, 그건 별것 아닌 문제였다며 시치미를 뗀다.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어온 것만은 분명해 보이는 그와의, 수다스런 인터뷰의 일부를 전한다. -이 프로젝트를 처음 접한 게 언젠가. =2002년에 처음 시나리오를 봤다. 내가 쓴 시나리오로 영화를 만들려고 준비하고 있었고, 그 시나리오는 뭐랄까 너무 유행에 편승한 것처럼 느껴졌지만 컨셉 자체는 꽤 괜찮았다. 자신의 세계에 사로잡힌 사람의 이야기인데다, 동화를 바탕으로 특정한 세계를 만들어간다는 점에서 해볼 만했다. 그래서 <타이드랜드>의 작가 토니 그리조니와 함께 시나리오를 처음부터 다시 썼다. 물론 영화의 크레딧으로 올리진 못했다. 할리우드 시나리오 작가들의 규칙을 당신들도 알지 않나. 그래서 생각한 게, 드레스 패턴 메이커라는 항목을 만들어서 우리 둘의 이름을 거기에 집어넣었다. 다음 작품부터는 시나리오에 바탕을 둔 영화가 아니라 드레스 패턴이 중심이 되는 영화를 만들어볼 생각이다.(웃음) -영화가 찍은 뒤 개봉까지 2년이 걸린 이유는. =스튜디오와 나는 서로 완전히 다른 영화를 생각하고 있었다. 와인스타인은 정말 호전적이고 절대 지지 않는 사람인데, 나 역시 마찬가지였고, 우리는 거의 서로 죽일 듯이 싸웠다. 그러니 영화는 구제불능 상태가 되어버리고. 그래서 내가, “좋다, 어쨋거나 나는 이제 새 영화 <타이드랜드>를 지금 꼭 찍어야 된다. 그러니 그걸 찍고 다시 돌아오겠다.”고 말했고, <타이드랜드>를 찍은 다음 그들은,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들라고 하더라. -그럼 결국 당신은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은 셈인가. =그렇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결론적으로 이건 내가 옛날부터 생각했던 방식의 영화만들기다. 영화를 거의 끝까지 만든 다음에 몇 달 정도 치워놨다가, 다시 보면 영화가 달라 보인다. 처음에는 형제의 어린 시절이 영화의 맨 앞부분이 아니라 중간에 있었다. 그런데 둘의 어린 시절의 한 순간을 앞에 놓으니까 인물 설명도 명확하고 훨씬 부드럽더라. 그냥 쭉 편집했다면 그렇게 못했을 거다. 앞으로도 이런 방식을 종종 써먹어볼까 생각 중이다.(웃음) -가장 힘든 일이 무엇이었나. =집중을 유지하는 것. 나는 속도감 있게 작업하는 편인데, <그림형제>는 모든 것들이 문제를 일으키면서 굉장히 느리게 진행됐다. 매일 아침 출근하면서, 중심을 유지해야함을 다짐하고, 다시는 큰 영화를 만들지 않겠노라 결심했다. 항상 두세 파트로 나뉘어서 촬영을 천천히 진행하는, 군대 같은 거대한 규모의 영화를 찍으면서, 머릿속에 있는 걸 빨리빨리 꺼내놓을 수 있는 영화가 너무 하고 싶었다. 그게 바로 <타이드랜드>였다. -동화는 당신의 유년기에서 어떤 의미였나. =나의 모든 것이었다. 그게 문제였다.(웃음) 텔레비전도 별로 없던 그 시절에는 동화책밖에 없었고, 그게 내가 세상을 배운 곳이었다. 내가 만든 모든 영화들을 보면 알겠지만, 모두 동화의 구조를 띄고 있다. 거기서 벗어나질 못했다. 이젠 새로운 시스템을 개발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자신은 없지만.(웃음) -<그림형제> 속 판타지를 믿는 사람과 현실을 믿는 두 형제의 갈등에선 결국 판타지가 승리한다. 현대인들에게 판타지가 중요한 이유가 무엇일까. =모든 것이 숫자와 계산으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를 설명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 되어간다. 꿈과 상상은 확실한 숫자로 보여줄 수도 없고, 숫자에 비해서 설명하기가 더 힘드니까. 나는 그저 내 영화를 통해 사람들이 새로운 세상을 경험할 수 있고, 그리고 자신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미친 사람인 줄 알았던 누군가가, 자기와 비슷한 사람이 적어도 둘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안정감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웃음) 나는 미친 사람과 어린이들만이 이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는 지금보다 상상력도 풍부하고 생각도 열려 있으며 유연했다. 그러다가 성장하면서 점점 폐쇄적이 되어간다. 한계를 가지게 되는 거다. 나이를 먹어가면, 모두 예전의 어떤 것을 생각하며 받아들인다. 난 계속해서 거기에 반대해왔다. 매번 영화를 만들 때마다 내가 믿는 세상을 사람들에게 설득하려 했다. <브라질>(국내 비디오 출시명 <여인의 음모>)을 만들 때는 한밤중에 망망대해에서 깃발을 흔들고 있는 기분이었다. 누군가가 여기도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아주기만 해도 좋았다. 누군가 내 영화를 싫어하든 그건 상관없다. 내 영화를 좋아해주는 사람, 그들이 바로 내가 영화를 만들게 하는 동력이다.

야스쿠니신사의 재조명, <안녕, 사요나라>

“시민들이 군대비용을 치르게 하자. 우리가 사지로 내모는 아들들을 위한 비용을 그 아버지들이 치르게 하자. 우리에게 그렇게 할 권리가 없다고? 그렇다면 왕권신수설을 만들어내자. 우리의 군인들이 자신이 무엇을 위하여 죽는지를 모른단 말인가? 그렇다면 왕실숭배사상을 만들어내자.” 오스트리아 작가 아르투어 슈니츨러는 국가가 내세우는 전쟁의 논리를 이처럼 사뭇 신랄하고 냉소적인 어조로 꼬집은 바 있다. 일제에 의해 ‘대동아 성전(聖戰)’으로까지 미화되었던 태평양전쟁의 기반, 즉 메이지유신 이후 근대적 천황제를 수립한 일본이 ‘대동아공영권’의 기치하에 일본 국민들과 식민지인들을 사지로 내몰면서 내세웠던 허구적 이데올로기의 실체는 슈니츨러식의 비아냥거림만으로도 충분히 무너져내릴 만큼 시대착오적이고 엉성하기 짝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아 그 성긴 틈새를 채워넣고 이데올로기를 단단하게 하는 이들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일본인들- 사지로 내몰린 아들들과 그 비용을 댄 부모들- 자신이었다. 이제 과거 일제로부터 입은 피해에 대한 보상이나 과거사 청산을 요구하는 작업은 비단 황실이나 정부가 아니라 일본이라고 하는 민족-국가의 내셔널리티와의 싸움이 된다. 그렇기에 <안녕, 사요나라>에 삽입된, “총리나 각료가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하는 것은 내셔널 폴리틱스, 즉 국가 그 자체를 성립시키기 위한 정치적 행위”라는 다카하시 데쓰야 도쿄대 교수의 지적은 더할 나위 없이 정확한 것이다. 김태일과 가토 구미코의 <안녕, 사요나라>는 이 피할 수 없는 진실을 분명 간파하고 있다. 태평양전쟁 당시 끌려나가 전사한 부친이 야스쿠니신사에 합사(合祀)- 신사와 같은 특정한 장소에서 죽은 사람들 여럿의 혼을 한데 모아 제사지내는 것-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합사취하운동을 벌여온 이희자씨의 삶을 추적하는 이 다큐멘터리에는, 그녀의 투쟁에 호응하는 일본인들뿐 아니라 이에 격렬하게 반대하는 일본 우익 인사들의 주장까지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전쟁의 피해자들이 있었으며 그 상처는 아직까지도 남아 있다는 사실을 쉬이 받아들이길 거부하는 대다수 일본인들의 모습을 지켜보다보면, 그녀의 힘겨운 투쟁이 그저 도로(徒勞)에 그치고 말지도 모른다는 우리의 불안감은 점점 커져만 간다. 1995년 고베 대지진 때 이희자씨를 처음 만난 이후, 일제강점기 조선인 출신 군인들과 관련된 재판을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는 일본인 후루카와 마사키는 <안녕, 사요나라>를 이끄는 또 하나의 축이다. 그는 야스쿠니신사 참배의 본질이 “전쟁의 희생자들을 통해 과거의 전쟁을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영웅적인 행위로 미화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그러한 기만적인 의식이 중단되어야 함을 역설한다. 그가 이희자씨와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과거 일본제국주의가 얼마나 많은 희생자들을 만들어냈는가를 깨닫게 된 과정이 내레이션으로 들려오는 한편, 야스쿠니신사 참배반대 및 합사거부 운동 등의 현재적 실천이 비교적 상세히 묘사된다. 일본 내 진보진영 및 우익 각계인사들과의 인터뷰, 일본 고유의 민족종교인 신도(神道)와 거기에 수반되는 신사참배 및 마쓰리 등의 의식이 일본인들의 삶에서 차지하는 의미에 대한 설명 등은 <안녕, 사요나라>가 단순한 인물다큐멘터리에 머물지 않게끔 적절한 정보와 분석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안녕, 사요나라>가 한국의 비디오 액티비스트들의 작업에 종종 수반되곤 하는,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와 별다른 차별성이 없다’는 비판을 피해나가기 힘들 거라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여기서 ‘정치적 의의는 있지만 미학적 중요성은 없다’는 진부한 말을 되풀이하고 싶지는 않다. 이희자씨가 아버지의 비명(碑銘) 없는 무덤에 바치는 헌화, 그녀가 과거 일본군 병원 터에서 아버지에게 올리는 제사, 그리고 일본군에 학살된 중국인들의 유골이 전시된 박물관에서 속죄의 기도를 올리는 후루카와의 모습 등은 <안녕, 사요나라>에서 매우 중요한 감정적 클라이맥스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런데 이런 장면들이 점점 강조될수록 앞서 언급한 ‘불안감’은 좀더 탈개인적인 컨텍스트 내에서 정치적 힘으로 전화될 기회를 얻는 대신 개인적 위령(慰靈)- 사실 위령이란 죽은 이들과 관련해서 살아 있는 자들에게 허락된 유일하고도 숭고한 자기애이다- 의 언저리만을 맴돌게 되는 것이다. 스스로의 다큐멘터리에 담겨질 인물들에게 인간적인 따뜻함을 지니고 접근하는 연출자 김태일의 태도는 분명 존중할 만하지만, 그의 작업이 텔레비전 <인간극장>류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동지가 아닌) 연출자로서의 냉정함이 필요하다. 그가 냉정함 없이 동지로서만 남을 때, 그의 작품은 <길동무>(2004)와 같은 자족적 기록물을 넘어서지 못하기 때문이다. <안녕, 사요나라>는 <길동무>의 실패를 반복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김태일의 첫 번째 영화 <원진별곡>(1993) ‘다음’ 혹은 ‘너머’의 작업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는 자신의 작업이 ‘작품에 대한 욕심’ 때문에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지만, ‘작품에 대한 욕심’으로서의 냉정함은 미학적인 동시에 정치적인 입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부인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연장된 구단 광고, <레알>

레알 마드리드는 스페인의 마드리드를 거점으로 한 명문 프로축구팀이다. 베컴, 호나우두, 지단, 라울 등 전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그리고 가장 비싼 선수들이 모여 활동하고 있는 곳이다. 레알 마드리드는 스페인뿐만 아니라 전세계 축구팬들에게 일종의 축구 사랑에 대한 상징으로 자리잡은 팀이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그냥 알려진 대로 말한 것뿐이다. 이 영화의 중심적인 화자, 그것도 바로 레알 마드리드의 홈구장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스타디움이 창문 너머로 보이는 곳에 살고 있는 초등학교 역사 선생이 레알에 대한 사람들의 열광이 하도 궁금하여 구단을 찾아 “도대체 레알은 그들에게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그가 얻은 대답은 “레알은 감동입니다”라는 것이다. 구단에 배달된 팬레터의 내용 중 일부를 선별해 극화한 것이라는 이 영화는 몇 가지 에피소드를 나열한다. 베컴을 너무 사랑하는 일본 소녀와 그녀의 사랑을 얻기 위해 결국 베컴처럼 머리 스타일을 바꾸는 그녀의 남자친구 이야기, 부상당한 영국의 소녀 축구 선수와 그녀의 재기를 돕는 코치의 이야기, 세네갈 오지에서 레알의 경기를 시청하기 위해 텔레비전이 있는 시내까지 이틀을 걸어가는 축구광 아버지와 그 아버지만큼 축구광인 아들의 이야기, 레알 마드리드의 전설적인 축구 선수 디 스테파뇨를 납치했던 어느 노인과 그의 손자의 해후에 관한 이야기 등이다. 그리고 죽은 남편과 레알의 경기를 함께 보던 추억을 떠올리는 것이 괴로워, 일부러 레알의 경기 때마다 자리를 피하는 노부인에게 역사 선생이 티켓 두장을 선물하면서 마지막 에피소드가 끝난다. 노부인은 축구광 손자를 데리고 레알의 경기장으로 향한다. 극화된 이야기들 사이에 실제 선수들의 경기 모습 등이 쾌활하게 뒤섞이지만, 영화 전체를 놓고 보면 두서가 없는 뮤직비디오 같고, 한편으로는 연장된 구단 광고일 뿐이다. 하지만, 한국에도 있을 레알 광팬에게는 심심하지 않을 만한 소재다. 이 영화의 핵심은 간단하다. 축구를 통해서, 레알을 통해서 지구의 모든 관계가 회복되거나 더 나아지고, 레알은 그들의 삶 자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지구는 레알을 중심으로 돈다,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