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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길의 슬픔의 케이팝 파티] 그대 나에게만 잘해줘요

나는 지금 카페베네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내가 대학생이던 무렵, 카페베네는 발길이 닿는 모든 곳에 존재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이곳을 ‘바퀴베네’라고 불렀고, ‘베네’가 이탈리아어로 ‘좋아’라는 의미인 것을 상기하며 괴로운 웃음을 지었다. 친하게 지냈던 선배 중 한명은 그곳을 그냥 ‘바퀴’라고 불렀는데, 늘 내가 좋아하던 딸기빙수를 사주는 멋진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가 “바퀴로 와”라고 하면 나는 속으로 ‘베네’ 하며 고민도 없이 달려나갔다. 유적지에 오니 역시 이곳에 얽힌 추억들을 팔게 되는구나…. 하지만 추억할 것은 이름뿐, 이 공간은 내 기억 속 베네와 한 군데도 닮지 않았다. 커다란 벽시계도, 붙박이 화단에 심긴 가짜 식물도, 온갖 목재 무늬가 섞인 각진 가구도, 천장에 투박하게 설치된 레일 조명도 없다. 지독하게 오랫동안 유행한 인테리어였는데 지금은 아무리 외진 곳에 가더라도 이 양식을 보기가 힘들다. 나는 벽에 그려진 카페베네의 새 로고를 한참 동안 쳐다봤다. 모든 것이 바뀌었고, 내 추억들 또한 ‘EST. 2008’이라는 글자에 작게 가려져 있다. 로고 옆에 그려진 턱을 괸 고양이 그림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언제부턴가 나타난 이 고양이는 간판, 창문, 벽, 파티션 등 가게의 중요한 위치마다 의미심장한 크기로 그려져 있었다. 너무 궁금해서 홈페이지에 들어가 찾아보니 그 고양이의 이름은 ‘베네캣’. 성수동에 산다고 적혀 있다. 좋아하는 것은 산책이고 싫어하는 것은 산책을 못하는 것. (장난하나.) 내가 알고 싶은 건 이 카페가 리브랜딩을 하면서 로고에 고양이를 그려넣게 된 복잡한 사연인데, 대뜸 “저는 3살이고요” 하며 혀 짧은 소리를 하는 고양이의 등장에 말문이 막혔다. 그래서 브랜드에 관련된 기사나 마케터 인터뷰 같은 것을 찾아볼까 생각했지만 관뒀다. 그게 대체 나랑 무슨 상관이겠는가? 나는 카페 구석에 앉아 지난주에 구입한 책을 펴서 읽으며, 내 글에 달린 ‘지적 사유가 부족하다’라는 리플을 떠올리고 있다. 하. 어떻게 하면 이 책처럼 넓은 지식과 깊은 통찰 그리고 담백한 글쓰기 기술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한번도 보지 못한 표현으로 인류 보편의 철학을 인용해 특별한 관점에 도달하는 이 수많은 문장을 보시라…. 책을 덮었다. 무슨 내용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나는 오직 한 가지 생각에 사로잡혔다. “어떻게 하면 타인의 글과 말을 나의 글 속에서 멋지게 인용할 수 있을까!” 나는 내 글에 얕은 허세라도 부리기 위해 탁월한 구절들을 기억해내려 애썼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다. 무언가 어렴풋이 떠올릴 때마다 멜로디가 생기고 만다. 전부 노래 가사인 것이다. 지겹기만 한 내 고민에 등을 지고, 하하하하 다신 날 비웃지 못하도록 내 말을 단단히 묶어줄 강력하고도 서정적인 인용구가 내 머릿속엔 없는 것이다….멋진 말을 생각하는 동안 계속 떠오르는 문장들은 왠지 모두 2NE1의 노래였다. 유 갓 더 파이어, 나의 가슴을 쿵. 쿵. 쿵 하면 공민지의 팡팡 뛰던 춤이 내 몸으로 전해지는 듯했고, 건드리면 감당 못해 암 핫, 핫, 핫, 핫 파이어, 하면 CL이 내 영혼을 건드려 그 중독적인 발음과 특유의 리듬감을 재현해냈다. 롤리, 롤리, 롤리팝, 달콤하게 다가와 하며 산다라 박의 높이 묶은 야자수 머리가 오아시스처럼 눈앞에 아른거리기 일쑤였다. 박봄의 솔로곡 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나는 그 노래의 모든 구절을 수시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안녕이란 말은 네버, 내게 이 세상은 오직 너 하나기에’라는 대목을 힘주어 부르는 박봄을 떠올리면 정말 죽을 것 같을 때도 반짝 힘을 낼 수 있었다. 무언가를 생각하느라 진이 다 빠지고 있는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노래 역시도 그들의 곡 였다. 2NE1은 무엇을 말하든 이미 슬픔을 이해하는 듯한 태도로 노래한다. 도 세련된 비트와 독특한 구성보다 노래 전반에 깔린 묘한 쓸쓸함에 먼저 마음이 가닿는다. ‘그뎨 나예계망 잘혜줘용.’ 의 가사는 외계어 블로거 ‘롑흔리나’체를 써야 원곡에 가깝게 부를 수 있다. 발음만 그런 것이 아니라 노래 자체가 미지의 외계 행성을 탐험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CL이 내레이션으로 나지막한 경고를 외치고 나면, 가느다란 멜로디에 나긋나긋한 공민지의 보컬이 유혹하듯 감긴다. 간드러지지만 묘하게 엇박자를 타는 도입에서 고개를 갸웃하고 있으면, 산다라 박이 갑자기 무거운 비트를 쿵, 쿵, 내리찧으며 다가와 침입자를 혼낸다. 힘차게 달려 박봄이 자신만의 언어로 무언가를 호소하고 있는 깊은 계곡을 지난다. 그렇게 다다른 클라이맥스는 전부 가성으로만 이루어진 고요하고 완만한 산맥이다. 나는 2NE1이 영원할 줄 알았다. 이건 사랑과 그리움을 대충 뭉뚱그려낸 응원의 표현이나 순진한 바람이 아니다. 정말로 나는 2NE1이 영원할 줄 알았다. 아이돌 그룹 안과 밖에 맞물린 수많은 이해관계를 생각하면 ‘영원’이란 얼마나 연약하고 부질없는 개념인가 싶지만, 적어도 2NE1에게는 그게 가능한 일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자신들의 노래 속에서 신이자 마녀이자 전사가 되는 불멸의 존재였고, 그래서 어떤 마음을 노래해도 모두 신화로 보존되리라 생각했다. “박봄의 신비로운 목소리를 지키기 위해 겁이 많은 전사 산다라가 모험에 나서고, 인류의 ‘미래’인 소녀 공민지가 힘을 보태면 마침내 이 세계의 왕인 CL을 깨운다”와 같은 어디서 들어봤을 법한 전설…. 그것이 바로 (그들이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내가 스스로 깨우치게 된 최초의 ‘K팝 세계관’이었다. 벽시계가 없는 카페베네에 앉아서 하염없이 2NE1 생각을 했다. ‘멋진 널 위해 에브리 데이 사랑 노래를 불러’준다던 박봄의 목소리를. 영원할 거라 여겼던 두 세계는 이제 흔적만 남은 옛터가 되었다. 누군가는 지나간 과거를 붙잡는 것은 추한 일이며, 사용한 흔적이 없는 새것의 상태가 가장 좋다고 할 테다. 그러나 나는 덤덤할 수 없다. 과거를 소환하는 노래 한 소절에도 가슴이 찢어질 것처럼 아팠다. 아프면 왠지 엄마 생각이 난다. 나는 바뀐 카페베네 로고 하나를 보고도 이렇게 세계가 무너진 것처럼 대성통곡을 하는데 자신의 강산이 수십번 갈아엎어진 엄마는, 할머니는, 대체 어떤 마음으로 사셨던 건지. 아, 오늘도 깊어지는 것은 사유가 아닌 효심뿐이로구나….

[비평] ‘여자’는 팀이 될 수 있는가,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ONE’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ONE> 개봉 이후 톰 크루즈가 없는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는 상상도 할 수 없다는 말을 여기저기에서 종종 듣는다. 그 말에 100% 동의하지만 그래도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 어리둥절해하며 머리를 긁적일 수밖에 없다. 오리지널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설정은 캐릭터가 몽땅 바뀌어도 이야기 진행에 아무 지장이 없는 종류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시리즈의 배우들은 꾸준히 바뀌었고 1988년에 나온 속편 시리즈까지 포함한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고정으로 출연한 배우와 캐릭터는 단 한명도 없다. 피터 그레이브스(영화에서는 존 보이트)가 연기한 팀의 리더 짐 펠프스도 시즌2부터 등장했다(첫 번째 리더인 댄 브릭스는 배우 스티븐 힐이 안식일에 일하는 걸 꺼려하는 정통주의 유대교도라 하차했다). 설정에서 캐릭터보다 더 중요한 건 그 캐릭터들의 역할이었다. 리더, 변장의 명수, 테크 전문가, 근육 그리고 여자의 역할만 확보된다면, 그들이 누구더라도 팀은 별 탈 없이 움직였다. 여성 캐릭터의 ‘홍일점’ 위치 여기서 신경 쓰이는 건 ‘여자’라는 표현이다.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엔 늘 흑인 남자가 한명 있었지만 (이 전통은 영화 시리즈에서 빙 레임스가 연기한 캐릭터 루터 스티켈로 이어진다) 그들의 역할은 ‘흑인’이 아니었다. 모두 테크 전문가라는 역할이 따로 있었다. 하지만 여성 캐릭터의 역할이 뭐냐고 물으면 ‘여자’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물론 모두가 연기를 해야 하는 사기 집단에 여자가 한명 있으면 큰 도움이 되긴 한다. 하지만 정말 그게 전부인가? 시리즈 내내 여성 캐릭터의 ‘홍일점’ 위치는 쉽게 바뀌지 않았다. 다시 말해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는 여자들에게 ‘여자’ 역할이 아닌 무언가를 주지 않았다. 그리고 속편에선 순전히 새 여성 멤버에게 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해 이전 여성 멤버를 살해해버리는 일이 일어났다. 속편의 케이시 랜들은 영화 시리즈가 시작되기 전, 시리즈 내에서 목숨을 잃은 유일한 IMF 멤버였다. 영화 시리즈가 시작되기 전엔 그래도 사정이 좀 나아지긴 했던 모양이다. 브라이언 드 팔마가 감독한 <미션 임파서블> 도입부에선 여성 멤버가 둘로 늘어나 있다. 하지만 에단 헌트를 제외한 팀원들 전원이 몰살당하면서 이 느린 발전은 순식간에 의미를 잃는다. 여기서부터 치밀한 팀워크라는 <미션 임파서블>의 설정도 깨진다. 그보다 에단 헌트의 버스터 키튼 스타일의 맨몸 액션이 더 중요해졌다. 에단 헌트가 근육, 변장의 명수, 리더까지 맡았으니 교묘한 사기 행각의 앙상블도 의미를 잃는다. 이제 미션 임파서블팀은 현장 요원과 테크 전문가로 나뉜다. 3편부터 사이먼 페그가 연기하는 벤지 던이 고정이 되었지만 이 캐릭터도 루터와 마찬가지로 테크 전문가다. 젠 레이(매기 큐)와 제인 카터(폴라 패튼)라는 여성 멤버가 3, 4편에 등장했지만 이들이 시리즈 안에 녹아들 수 없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이들이 안정적으로 시리즈 안에 머물며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톰 크루즈라는 남성 슈퍼스타가 그 공간을 먹어버렸다. 다시 말해 여자들에게 IMF의 환경은 텔레비전 시리즈 때보다 나빴다. 이런 상황에서 레베카 페르구손이 연기한 일사 파우스트라는 캐릭터가 등장해 만만치 않은 존재감을 드러낸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건 일사가 IMF라는 팀 바깥에서 존재하며 에단 헌트와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일사는 상대역이었다. 팀원이 아니라. 톰 크루즈가 버티는 한 IMF는 여자들에게 그리 좋은 직장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이런 걸 고려해봤을 때,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ONE>의 포스터는 예상외로 바람직했다. 일사 파우스트와 버네사 커비가 연기한 무기상 알라나 미트소폴리스를 포함해 적어도 네명의 여자들이 등장했다. 영화가 시작되니 네명의 존재감도 상당했다. 폼 클레멘티에프가 연기한 파리는 훌륭한 악당이었고 헤일리 앳웰이 연기한 소매치기 그레이스는 거의 투톱 주인공 중 한명이라고 해도 될 것 같았다. 그리고 그레이스는 만능의 현장 액션 요원이 아닌, 자기 전문 특기가 있는 최초의 여성 캐릭터처럼 보였다. 이 모든 게 바람직했다. ‘여자’ 역할 이상의 기능을 가진 존재는 가능할까 그러다 다들 분노하는 일이 일어났다. 일사 파우스트가 그레이스를 지키려다 죽어버린 것이다. 여기에 어떤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모든 걸 고려한다고 해도 이 부분은 모든 게 안 맞았다. 일단 일사에게 어울리지 않는 안티 클라이맥스였다. 둘째로 이 죽음은 케이시 랜들의 죽음을 연상시켰다. 이놈의 시리즈는 수소 원자도 아니면서 내부의 여성 캐릭터를 오로지 한명밖에 허용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여담이지만 죽음 전에 에단 헌트와 어울리지 않게 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한 것도 걸렸다. 그 때문에 일사는 ‘냉장고 속 여자 친구’에 더 가까워졌다. 결국 조금 전으로 돌아간다.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ONE>이 많은 여성 캐릭터들에게 숨 쉬고 활동할 기회를 준 건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의 존재감과 운명은 오로지 에단 헌트와의 관계에 의해서만 결정된다. 그리고 그레이스가 등장하자 궤도에서 튕겨나가는 일사에 비하면 에단 헌트가 목숨을 살려줬기 때문에 ‘은혜 갚은 호랑이’가 되는 파리는 그래도 정상적인 편이다. 여성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에서 이번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ONE>은 수상쩍을 정도로 옛 본드 영화를 연상시킨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도. 원작의 앙상블 공식이 유지되었다면 여자들의 위치는 보다 안정적이었을 것이다. ‘여자’ 역에 그친다고 해도 그 위치는 리더와의 관계와 상관없이 독립적일 것이기에. 우리가 본 영화는 시리즈의 1부다. 그리고 이 영화는 최근 유행하듯 나오고 있는 2부작의 1부치고는 이야기를 잘 마무리한 편이다. 하지만 아직 이야기의 끝이 열려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를 기대할 수 있다. 이 글과 어울리는 기대는 에단 헌트와 함께 일하는 여성 캐릭터가 두명 이상으로 늘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중 한명은 ‘여자’ 역할 이상의 기능을 가진 존재일 것이다. 물론 이 수상쩍을 정도로 본드 영화스러운 흐름 속에서 이 숫자가 줄어들 가능성도 만만치 않고 반대로 우리가 지금까지 본 걸 다 뒤집는 일이 일어날 가능성도 아주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모든 게 기대 이상으로 잘 풀린다고 해도 톰 크루즈의 원맨 액션쇼라는 영화 시리즈의 틀 안에서 이 여자들이 숨 쉴 틈을 찾아낼 수 있을까. 아니면 그 기회는 톰 크루즈가 퇴장한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라는,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단계를 거쳐야 찾아오는 것일까.

[최지은의 논픽션 다이어리] ‘TEO 테오’의 ‘살롱드립’

장도연이 진행하는 웹 예능 <살롱드립>은 조금 묘한 프로그램이다. “상스럽지만 예의 있는, 무례하지만 친절한, 차-분하게 마시는 귀-족같은 시간”을 표방한 사교모임이라는 컨셉에 따라 세트를 티룸처럼 꾸미고 장도연에게 우아한 의상을 입혔지만, 이처럼 ‘보이는’ 지점은 정작 재미와 무관하다. 오히려 출연자들이 “여기 컨셉이 뭐냐”라고 물으며 어색해하는 바람에 20분 안팎의 러닝타임만 아깝게 흘러갈 뿐이다. 모처럼 공유를 초대해놓고 이미 널리 알려진 에피소드를 묻거나 16년 전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의 대사를 들려달라 요청한 첫회의 어수선함에 “좀더 과감해도 될 것 같다”라고 한 공유의 조언은 적절했다. 중요한 건 컨셉이 아니라 어떤 대화를 끌어내고 무엇으로 재미를 주느냐의 여부라고 할 수 있다. “농담의 난이도는 높고, 질문의 수준은 낮다”라는 장도연의 농담은 <살롱드립>의 강점과 약점을 요약한다. 낯을 가리면서도 번뜩이는 장난기를 가진 장도연의 재능은 출연자를 놀릴 때 가장 빛난다. “항간에 이런 소문이 떠돌던데…”라며 방금 지어낸 이야기를 태연히 늘어놓고, 혼잣말인 척 “그래도 카메라 앞에서 사람을 치진 않겠지?”라며 무방비 상태의 상대를 웃기는 식이다. 몇달 전 ‘술방’으로 물의를 빚었던 김희철이 “술 먹고 생방송에서 상스럽게 욕하는 거, 정말 경멸하는 부류다”라고 자폭할 때 “카메라를 셀카 모드로 한 다음에 다시 한번 말씀해보세요”라고 상냥하게 권유하던 장도연은, 그가 자신에 관한 미담을 늘어놓으려 하자 일부러 크게 하품하며 “아아아아 루즈해~”라고 구박함으로써 토크가 뻔하게 흘러가지 않도록 만든다. 그러니 “귀-족같은”이나 “시벨롬들”처럼 신선하지 않은 말장난을 반복하기보다 좀더 과감해지면 어떨까. 어차피 <살롱드립>이 <문명특급>이나 <차린 건 쥐뿔도 없지만>이 될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CHECK POINT <살롱드립> 첫 시즌 마지막 회에는 유튜브 ‘인급동(인기 급상승 동영상)의 남자’로 떠오른 이동욱이 출연했다. 과거 <이동욱은 토크가 하고 싶어서>에서 장도연과 호흡을 맞췄던 그는 어깨 근육이 파열되어 앉아 있기 힘든 컨디션으로도 녹화 내내 “장도연에 대한 믿음”을 강조하며 분위기를 띄웠다. 장도연이 제시하는 온갖 상황극과 <나는 솔로> 동반 출연 제안 등에 덤덤하면서도 물 흐르듯 대처하는 이동욱의 콤비 플레이는 확실히 일회성으로 끝내기엔 아까울 정도다.

[인터뷰] “영화와 음악이 공생할 수 있게”, 이동준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집행위원장

지난해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이하 제천영화제)는 큰 위기를 겪었다. 2022년 영화제를 치르는 동안 운영비를 과다지출해 대규모 결손이 났고 이로 인해 사무국 직원들의 임금 체불 사태가 발생하는 등 운영난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에 제천시는 부실 운영의 책임을 물어 조성우 제5대 집행위원장과 장지훈 전 사무국장을 해임하고 영화제 몫으로 할당된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존폐 기로에 섰던 제천영화제는 전담 TF팀을 꾸리며 영화제 전반과 내부 조직을 쇄신했다. 그리고 올해 6월 <초록물고기> <태극기 휘날리며> 등의 음악을 맡은 이동준 음악감독이 제천영화제 6대 집행위원장으로 취임했다. 개막 준비에 여념이 없는 이동준 집행위원장을 만나 집행위원장 임명의 내막과 8월10일부터 15일까지 정상 개최될 제19회 제천영화제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 영화제 개막이 얼마 남지 않았다. 어떤 날들을 보내고 있나. = 상상 이상으로 바쁘다. 집행위원장이 책임져야 하는 영역이 정말 많더라. 제각기 열정이 충만한 사무국 직원들과 끝까지 힘을 다해 영화제 개막을 준비 중이다. 처음 집행위원장 자리를 수락할 때는 예술감독의 업무를 맡으면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실무가 많다. 영화제를 향해 쏟아지는 여러 이슈에 대응해야 했고, 언론인이나 제천시 공무원들도 자주 만나야 했다. 음악인으로 살 땐 한번도 해보지 않은 경험을 해가는 과정이 생소했지만 이젠 적응했다. 처음엔 예술감독 정도의 일로 생각했다 하지 않았나. 그래서 그런지 공연 기획이나 포스터 디자인 등에서 예술적 성과가 나오면 작곡할 때 이상으로 보람을 느낀다. 평생 음악을 창조하는 아티스트로 살았는데 요즘 행사 기획을 계속하다 보니 마음속에서 새로운 도전 의식이 살아나는 중이다. - 집행위원장 자리를 수락할 땐 고민이 적지 않았을 듯하다. 어떻게 집행위원장 자리를 수락하게 됐나. 보도된 바에 따르면 제천시의 올해 영화제 개최 계획은 집행위원장 자리를 공석으로 둔, 임시추진 위원회의 비상체제 운영이었다. = 올해 1월 초 영화제 집행위원과 영화계 관계자들이 나를 집행위원장 자리에 추대했다. 당시 이미 전임 집행위원장이 해임된 상태라 집행위원장 없이 영화제를 운영하는 것이 그분들 입장에선 큰 사고라 생각하셨던 것 같다. 제의를 받은 후 고심하며 이 자리를 맡아야 하는 명분을 찾았다. 우리 영화제는 음악영화제다. 음악영화제의 정체성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작곡가이자 영화음악감독인 나였다. 결정을 내린 후 사무국이 제천시에 집행위원장 추대 건을 전했는데, 그즈음 제천시가 영화제 임시추진위원회 발족 결정을 내렸다. 제천시의 결정과 사무국의 결정이 거의 동시기에 이루어졌는데, 내 임명 확정 건이 훨씬 나중에 보도되며 여러 말이 나온 셈이다. 영화제를 살리기 위해선 집행위원장 자리가 공석일 수 없으니 영화계 인사들과 제천시 관계자들이 시의회를 설득한 것으로 안다. - 2013년에 제천영화음악상을 받았고, 2021년엔 제천영화제 국제경쟁부문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제천영화제와의 인연이 집행위원장직을 수락하는 데도 영향을 줬나. = 물론이다. 여름이면 제천영화제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내게 제천은 집 같은 곳이다. 그동안은 제천영화제의 초청을 받았다면, 이제는 내가 손수 제천에 손님을 모셔야 한다. 영화제 실무자로 업무에 뛰어들면서 시야가 많이 확장됐다. 긴 세월 동안 외부자의 입장에서 바라봤던 제천영화제의 개선 방안을 올해부터 내부에서 하나씩 다잡아나가려 한다. - 집행위원장으로서 그리는 올해 영화제의 큰 그림이 있나. 서울과 제천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선 그간 불거진 예산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하던데. = 휴양 도시인 제천의 이미지에 맞는 편안한 분위기 그리고 이에 걸맞은 영화와 공연을 준비할 것이다. 장기적으로 그리는 청사진은 하이테크(high tech)가 도입된 영화제다. 음악영화제는 영화와 음악을 동시에 건드릴 수 있는 인프라의 확보가 중요하다. 이때 첨단기술이 조금만 뒷받침되면 제천영화제를 이루는 양축을 동시에 부각할 수 있다. 가령 제천 청풍호에서 진행하는 개막식이나 여러 공연 등이 제천 시내에 거주하는 제천 시민들에게도 생중계될 수 있을 것이다. 올해는 예산 문제 등으로 엄두를 낼 수 없지만 음악과 영화가 공생할 수 있는 영화제로 키워나가는 것이 나의 궁극적 바람이다. 가본 적은 없지만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영화제의 운영 형태도 많이 참고해보려 한다. - 2023년 제천영화음악상 수상자는 작고한 류이치 사카모토다. 그를 추모하는 공연도 올해 영화제에서 열릴 예정인데 류이치 사카모토에 얽힌 기억이 있나. = 1998년 그가 내한했을 당시 만난 적 있다. 당시 류이치 형님에게 내가 작업한 <은행나무 침대>의 사인 CD를 선물했다. 그러다 2000년대 중반 즈음, 친한 사진가 선배가 뉴욕에 있는 류이치의 작업실에 방문했다가 그의 음반 컬렉션 정중앙에 내 사인 CD가 보관돼 있다는 사실을 제보해줬다. 그 소식을 듣고 꼭 다시 뵙고 밥 한끼 먹자는 말을 전했는데…. 류이치 사카모토는 음악적인 면부터 음악을 대하는 태도까지 내게 많은 영감을 준 아티스트다. 올해 영화제에 음악상의 대리 수상자이자 국제경쟁부문 심사위원으로 류이치 사카모토의 딸인 뮤지션 미우 사카모토가 온다. 그는 심사 중간 관객과의 만남 행사도 가질 예정이다. - 이번 상영작 중에서 개인적인 추천작이 있다면. = 폐막작 <블루 자이언트>다. 영화를 보며 두번 정도 눈물을 글썽였다. 재즈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영화라 재즈의 언어를 잘 아는 관객이라면 더없이 즐길 수 있는 영화기도 하다. 빤할 수 있는 스토리를 애니메이션과 음악을 통해 변주한 점이 일품이다.

[인터뷰] 차분한 강인함, <무빙> 김도훈

다른 학생들과 다르게 강훈은 정원고의 실체를 안다. 때문에 자신의 엄청난 스피드와 괴력을 드러내는 대신 학급 반장으로서의 소임을 다한다. 봉석(이정하)과 희수(고윤정) 역시 능력을 감추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에게도 조금씩 변화가 인다. “비밀을 품고 있을 것 같고, 혼자 알아서 공부 잘하는 이미지”라는 박인제 감독의 말대로 강훈을 연기한 김도훈은 유독 표정에 따라 다양한 이미지를 내비친다. 영화 <최면>, 드라마 <다크홀> <목표가 생겼다> <오늘의 웹툰> <법대로 사랑하라> 등에 출연하며 내공을 다져온 덕일 테다. “의젓해 보여도 아직 순수함을 지닌 고등학생이란 점을 놓치려 하지 않았”기에 그는 강훈을 더욱 입체감 있게 그려낼 수 있었다. - <무빙>의 배역을 따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다고. = 오디션을 통해 합류했는데 4화까지의 대본을 먼저 받았다. 읽는데 너무 재밌는 거다. 액션, 판타지, 히어로…. 내가 좋아하는 요소들이 다 들어가 있었다. 정말 간절해서 오디션 때 대본을 넘기는 손이 덜덜 떨렸다. (웃음) 원작 웹툰을 봤을 때부터 강훈을 하고 싶었고 오디션장에서도 그렇게 말씀드렸는데, 실제로 역할이 주어져서 신기하고 감사했다. - 왜 이강훈 캐릭터가 욕심났나. = 강훈이네 부자 관계가 내게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강훈이라는 인물도 마찬가지였다. 생각은 많은 것 같은데 그게 겉으로 드러나질 않아서 그 속내가 궁금했다. 마침 차분한 인물을 연기해보고 싶던 차였는데 강훈이 지닌 에너지의 결이 내 바람과 잘 맞았다. 그리고 강훈이가 세서 좋았다. - 말한 것처럼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아 표현하기 힘든 지점이 있었겠다. = 캐스팅돼 너무 좋은데 막상 연기하려고 생각하니 어렵더라. 말이나 행동으로 설명되지 않는 인물이고 그만큼 많은 걸 숨기고 자제하는 친구다. 그래서 이 친구가 “네” 한마디를 하더라도, 기분이 어떻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찾아내려 했다. 알맹이가 없는 친구처럼 표현되지 않았으면 했다. 그러다보니 머리가 복잡해지는 순간도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선배님과 감독님이 도움을 주셨다. - 체지방 6%까지 감량했다던데. = 최종적으로 편집됐지만 원래 싸우다가 옷이 찢어지면서 상의가 노출되는 신이 있었다. 당시 감독님이 이 장면 때문에라도 이소룡 같은 몸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이소룡의 몸이라 하면 슬림하면서도 근육이 잘 잡혀 있어야 할 텐데. 어쨌든 강훈이가 엄청난 스피드와 괴력을 가진 친구이니 몸이 가벼운 게 좋겠더라. 그래서 처음으로 매일 웨이트를 했다. 상의 탈의 신은 없어졌지만 몸을 만들어둔 게 다른 신을 촬영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됐다. - 극 중 강훈은 가공할 만한 스피드를 자랑한다. 실제로 학창 시절에 육상을 해서 그런지 간단한 동작에서도 각이 잡혀 있다고 느꼈다. = 중학생 때 체육부장 선생님의 눈에 들어 수영, 농구, 육상, 검도 등 다양한 운동을 섭렵했다. 그래서인지 달리는 장면 자체가 어렵진 않았다.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그런데 주먹을 휘두르고 다른 배우와 액션 합을 맞추는 건 쉽지 않았다. 재빠르게 움직여야 하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을 때가 있었다. - 류성철 무술감독이 치타에 비유하며 액션을 칭찬하던데. = 과찬이다. 그래도 기분은 좋다. (웃음) 액션영화를 좋아한다. 그래서 내 액션이 어떻게 구현될지 기대가 컸고 덕분에 힘들긴 해도 즐겁게 촬영할 수 있었다. 강훈이의 경우 와이어 액션보다 직접 달리고 구르는 액션이 많았는데 거의 모든 걸 대역 없이 직접 했다. 특히 2화에서 방기수(신재휘)와 다투는 신이 재밌었다. 전투적으로 임하기보다 자기 힘을 최대한 아끼면서 여유 있게 싸우는데 해보지 않은 유형의 액션이었다. 또 다른 재밌는 액션은 후반부에 몰려 있다. - 강훈은 희수와 친해지고 싶어 하면서도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못한다. = 강훈이는 기본적으로 붙임성이 없는 친구다. 그리고 이 학교의 존재 목적에 대해 알고 있다. 비밀을 지켜야 하는 상황에서 다른 친구들과 가까이 지낸다는 게 쉽지 않았을 거다. - 강훈이가 무척 외로웠을 것 같다. = 너무. (웃음) 현장에서도 연기할 때 이상하게 서러울 때가 많았다. 봉석이랑 희수는 어느 순간부터 가까워져서 똘똘 뭉쳐 다니고 나는 그런 둘을 그저 바라본다. 강훈이가 질투하는 장면을 찍고 나면 실제로도 ‘그렇게까지 친하게 지내야 했나’ 싶은 생각이 들면서 묘하게 서운했다. “자율학습시간에 어딜 갔냐”고 묻는 장면에서도 봉석이랑 희수가 같이 “‘자율’ 학습인데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답했을 땐 정말… 말 그대로 ‘킹받았다’. (웃음) - 아버지에 대한 강훈이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아버지를 아끼면서도 한편으론 어려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 어색함 그 자체다. 유년기 때 아버지랑 떨어져 있던 시간으로 인해 서먹해진 게 가장 클 테다. 그럼에도 아버지를 끔찍하게 챙긴다. 처음과 달리 점점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하고 거리낌 없이 남들에게 소개하기 시작하는데 그렇게 변화해가는 모습이 좋았다. 아버지와 강훈이 슈퍼 앞에서 마주치는 장면이 매번 똑같다. 아버지는 기다리고 강훈이는 ‘다녀왔습니다’ 인사하며 같이 들어가고. 어떻게 차별화할지 고민하다 강훈이의 하루를 떠올렸다. 학교에서 뿌듯한 일이 있었을 때, 반대로 본인이 초라하게 느껴졌을 때의 기분을 생각하면서 아버지에게 인사를 드리려고 했다. - 만약 실제로 초능력을 갖게 된다면 어떤 능력을 갖고 싶나. = (손가락을 튕기며) 탁! 하면 모든 물건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거다. 정리하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편인데 그러다보니 쉬는 날에 집에서 계속 뭔가를 치우고 있더라. 이런 초능력을 가지면 제대로 휴식을 취할 수 있지 않을까. - 이번 작품에서 새롭게 도전한 부분이 있다면. = 생각을 없애는 것. 평소에 생각도, 걱정도 많은데 어느 날 감독님이 즉각적인 디렉팅을 주셨다. 원래 디렉팅을 받으면 한번 생각한 뒤 들어가는 편이라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나중에 촬영이 끝나고 감독님이 오히려 바로 질렀을 때의 연기가 더 좋다고, 그래서 일부러 그렇게 디렉팅을 주셨다더라. 배우로서의 도전이었다. 더 일찍 깨달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래도 덕분에 시야가 넓어졌다. <무빙>을 찍고 나선 촬영 때 혼자 생각하기보다 현장을 살피며 주변을 관찰하려 노력한다.

[최지은의 논픽션 다이어리] ‘좀비버스’

재난물이라는 장르가 대개 그렇듯 넷플릭스 예능 <좀비버스>의 시작은 밑도 끝도 없다. 갑자기 좀비로 뒤덮인 세상에서 출연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서로 협력하거나 배신하며 다양한 퀘스트를 수행한다. 그러나 “이들의 과몰입에 주의를 요합니다”라는 문구가 무색할 만큼 이 세계에 과몰입하기는 쉽지 않다. 좀비 역을 맡은 연기자들은 출연자들을 공격하면서도 미묘하게 망설이고, 출연자들은 위기 상황에 몰입하기 위해 애쓰면서도 웃음을 참지 못한다. 좀비물 특유의, 인간의 밑바닥을 보여주기 위한 갈등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버려야 하는 딜레마, 처절한 비극 같은 건 <좀비버스>에 없다. 기름이 떨어진 차에 갇힌 채 나가서 주유 좀 하고 오라며 서로 미루는 출연자들의 대화는 평범하게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쪼잔하다. “제 차는 전기차예요.” “형은 나랑 띠동갑이잖아요.” 모두가 위기에 빠졌을 때 “뻥이요!”라고 외쳐 소음에 반응하는 좀비들을 유인하는 뻥튀기 아저씨의 영웅적 행위는 ‘K신파’ 코드의 노골적인 패러디다. 좀비에게 물려 혼자 쓸쓸히 침대에 묶여 있던 조나단은 죽음을 예감하자 브이로그 라이브 방송을 켠다. “구독과 좋아요, 알림설정 눌러주세요. 100만 가자! 5천만 가자~”라는 그의 유언은 관심경제 시장에 뛰어든 현대인의 ‘웃픈’ 초상이다. 갇혀 있는 좀비 앞에 굳이 뛰어들어 스파링할 때는 <피지컬: 100>, 다 같이 라면을 끓여 먹다 밀웜을 넣는 바람에 우당탕탕 소동이 벌어질 때는 <1박2일>, 좀비에게 물려 ‘반좀비’가 된 박나래가 “시집갈 줄 알고 난자도 얼려놨는데, X발. 싱글은 더 비싸요”라고 한탄할 때는 <나 혼자 산다>가 되는 이 희한한 혼종 예능을 속절없이 웃으며 따라가다 보면 깨닫게 된다. <좀비버스>의 장르는 시트콤이다. 1.5배속으로 시청하기를 추천한다. CHECK POINT 한국적 밈의 활용은 <좀비버스>에서 인상적인 요소 중 하나다. 놀이공원에서 구조선을 기다리다 좀비들과 맞서게 된 출연자들은 누군가 디스코팡팡에 떨어뜨린 네뷸라이저를 찾아야 한다. 그러자 수상할 만큼 싱글벙글하는 DJ가 이들을 돕기 위해 디스코팡팡을 가동하고, 코요태 노래가 신나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디스코팡팡이 위아래로 들썩일 때마다 좀비와 인간들이 풀썩풀썩 쓰러지고 밀치는 광경은 좀비 액션의 신세계를 보여준다.

[인터뷰] ‘평범’과 ‘몸부림’의 딜레마, <보호자> 정우성

<보호자>의 수혁은 러닝타임 내내 평범한 삶의 가치를 찾아 헤맨다. 그런 수혁을 평범과 가장 거리가 먼 정우성이 연기한다는 점이 놀랍다. <보호자>의 서사는 폭력의 세계에서 벗어나길 희구하는 한 남자의 몸부림이다. 그런 영화를 한국영화 역사에서 숱한 액션 명장면을 끊임없이 만들어온 배우 정우성이 연출한다는 점 또한 의미심장하다. 일견 모순으로 가득해 보이는 <보호자>는 영화인 정우성이 커리어 내내 고심한 의문에 대한 결론이라는 점에서 그가 만들 수밖에 없는 영화기도 하다. - 수혁은 주인공임에도 대사가 많지 않고 수혁의 전사도 극 중에서 자세히 설명되지 않는다. 연출자이자 각색 작가로서 의도한 여백인가. = 영화를 만들다보니 지금과 같은 여백이 생겼다. 출소 전 수혁의 모습도 촬영해두었지만 편집 과정에서 전부 걷어냈다. 수혁은 폭력 조직에 몸담았던 스스로에 대한 회한으로 가득한 인물이다. 수혁은 언어보다는 물리적 폭력이 우선되는 세계에서만 살았던 터라 언어 표현이 서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끊임없이 ‘평범함’이란 개념을 염두에 두지만 그 의미를 명확히 알진 못한다. 평범함이라는 말은 누구에게나 자연스럽고 편안한 단어여야 하는데 수혁에겐 그렇지 못한 것이다. - 수혁이 영화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가 ‘평범’이라면 감독 정우성이 <보호자>를 설명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몸부림’이다. 몸부림은 결국 무언가를 달성하기 위해 혹은 저항하기 위해 움직이는 몸의 동작인데, 수혁과 수혁의 액션은 둘 중 어디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나. =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저항이다. 둘은 분리될 수 없다. 수혁은 출소 후에도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에 노출돼 있지만 “평범한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는 민서(이엘리야)의 바람에 따라 폭력을 사용할 수 없는 딜레마에 처해 있다. 수혁의 궤적은 결국 폭력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인 것이다. 끊임없는 신체적 위협이 닥쳐도 폭력이라는 익숙한 방식으로 대응할 수 없는 수혁의 딜레마가 몸부림으로 느껴지길 바랐다. - <보호자>의 연출 경험을 정우성스러운 연출로 정의했다. 배우 정우성, 제작자 정우성, 자연인 정우성의 취향이 모두 함축된 표현인가. = <보호자>엔 영화인 정우성의 고민을 담았다. 긴 시간 영화인으로 살아오며 영화계가 특정 소재를 다루는 방식에 관해 의문이 많았다. 영화연출은 곧 감독의 영상언어의 구현이지 않나. 그런데 최근 영화들을 보면 감독 고유의 화법이 살아 있는 영화가 몇이나 되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정우성이 연출을 맡는다면, 영화계의 문제라 생각되는 지점들은 지양한 채 클리셰가 다분한 이야기를 정우성만의 언어로 담아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 세탁기 콤비가 사용하는 무기가 상당히 독특하다. 네일건은 시나리오에서부터 명시된 무기인가. = 그렇다. 우진(김남길)은 폭력의 일상성을 상징한다. 우진이 게임이라며 자행하는 범죄를 통해 우리가 세상에 산재한 유무형의 폭력에 얼마나 무감한지 드러내고 싶었다. 또 소통의 의지 없이 제 말만 하는 우진을 통해 자기 감상에만 빠져 있는 사람이 어떤 파국을 만들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 세탁기 콤비의 아지트인 폐유원지는 인비(류지안)의 납치 공간이 되기도 한다. 로케이션 헌팅 중 발견한 공간이라 들었는데. = 실재하는 공간을 다시 꾸몄다. 아지트의 가장 중요한 오브제인 원형 풀은 이번 영화를 위해 새로 만들었다. 영화 후반 수혁이 물속으로 뛰어드는 그림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수혁이 인비를 안고 물속으로 뛰어들었을 때 그 모습이 자궁 속 태아 같은 구도였으면 했다. 수혁과 인비가 마치 양수 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 혹시 영화 마지막 장면의 일산 호수공원 장면도 앞선 물의 심상의 연장인가. = 그렇다고 할까. (웃음) 이번 영화 덕분에 일산 호수공원을 처음 가봤다. 공원은 수혁이 온전히 노출되는 공간이다. 수혁이 모든 위협 인자에 노출돼 있는 상황에도 인비를 수혁이 보호해줄 수 있음을 호수 공원 장면을 통해 보이고 싶었다. - 올해 초 <씨네21>과 진행한 <보호자> 관련 인터뷰에서 “어떤 배우는 한번도 큰 역할을 맡아본 적이 없었는데 우연한 자리에서 보고 이미지가 마음에 들어 기억해뒀다가 역할을 요청했다”고 귀띔해주었다. 이들이 누군지 이제는 말해줄 수 있나. = 안마남은 상갓집에서 캐스팅했다. 김종수 배우의 옆자리에 앉아 계셨는데 이미지가 딱 안마남이어서 캐스팅 제의를 건넸다. 게르는 몽골인으로 설정돼 있어 처음엔 몽골 배우 위주로 물색했다. 그런데 액션 연기를 하다보면 감독과의 소통이 가장 중요한데 언어가 다르면 소통에 차질이 생기고 이는 자칫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어 한국인 배우 중에 찾게 됐다. 지인과 바에 갔다 게르로 캐스팅하고픈 배우를 만났다. 내가 자꾸 위아래로 훑어보니 ‘정우성 저 XX 왜 저래?’ 싶었을 거다. 다음날 캐스팅 제의를 받고 상당히 놀랐다고 하더라. - 작품 속에서 도시 재개발 이슈가 끊임없이 등장한다. 인비가 사는 아파트에도 재건축 반대 플래카드가 걸려 있고, “도시 전체가 무덤”이라는 우진의 대사도 재개발로 인해 스러진 구도심을 연상케 한다. = 종종 한국의 집은 거주지보다 욕망의 매개체로 기능한다는 느낌이 든다. 집이 개인에게 가져다주는 안식보다 개발과 수입의 수단으로 취급되지 않나. 영화 초반 등장하는 교회도 재개발 지역에서 이득을 취하려 알박기 중인 교회다. 지금 사회 전반이 가치 전도를 심하게 겪는 중이다. 요즘은 물류 자동화 경쟁 체제가 고민이다. ‘더 빠른 배송을 위한 빠른 배송의 경쟁’이 어디까지 치달을지 우려스럽다. - 결국 영화 속 수혁의 궤적은 평범해지기 위함으로 귀결된다. 평범함이란 단어에 관해 인간 정우성도 촬영 중 내내 고민했으리라 생각한다. = 가치 전도 현상이 팽배한 세상에서 수혁은 평범한 삶을 찾고자 하지만 평범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런데 우리도 그렇지 않나. 삶은 평범해야 하는데, 삶이 고단하고 어렵다는 건 결국 평범하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그 상황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평범한 일상은 모두가 어울리는 사회다. 사람은 혼자서 살 수 없고 사회에 속해 불특정 다수와 서로 어울리며 살아가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수혁을 통해 던지고 싶었다. - 한국에서 가장 다양한 액션 연기를 소화한 배우기도 하다. 직접 액션을 소화하며 연출 현장까지 컨트롤하는 일은 까다롭지 않았나. = 까다롭진 않았고 오히려 허명행 무술감독에게 이런저런 요구사항을 많이 건네 미안했다. 가령 10년 전 수혁이 플래시 불빛에 의존해 펼치는 몹 액션은 단시간 내에 수혁이 얼마나 공간과 빛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활용해 싸울 줄 아는 사람인지 보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리고 카이저 호텔 로비 자동차 액션은 수혁이 신체 접촉을 최소화하며 자신을 방어하려는 몸부림을 보여줘야만 했다. 만약 수혁이 차에서 내려 신체적 폭력으로 이어진다면 걷잡을 수 없이 폭주했을 것이다. 수혁은 차로 도피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신의 액션은 차와 수혁이 일체화된 몸부림이다. - <비트> <태양은 없다>를 찍던 90년대부터 영화연출의 꿈을 밝혀왔다. 장편 연출작을 공개하기까지 오래 걸렸다는 생각은 안 드나. = 조바심이 없었다. 언젠간 장편 연출작을 세상에 내놓으리란 확신이 있었고 <보호자> 전에도 연출하려다 엎어진 작품이 꽤 됐다. 그런데 주변의 여러 요소를 희생하면서까지 감독 데뷔의 꿈을 이룰 필요는 없었다. 온전히 좋은 환경에서 연출에 몰두해도 힘든데 여러 가지를 타협하며 영화를 연출하고 싶진 않았다. 결국 지금이 가장 적기였던 셈이다. - 시나리오를 쓸 때 타자가 아닌 자필로 쓴다는 과거 인터뷰가 인상적이었다. <보호자> 작업은 어땠나. = 지금도 연필로 쓰는 걸 선호한다. 그런데 자필로 쓴 시나리오는 초고를 공유할 때 난점이 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사무실 스탠딩 데스크로 가 독수리 타법으로 자필 시나리오를 워드로 옮긴다. (웃음)

[인터뷰] ‘고유한 연기의 결’, ‘밀수’, ‘비공식작전’ 배우 김종수

올여름 극장가에서 김종수는 가장 바쁜 배우 중 한명이 됐다. <밀수>의 악당인 세관계장 이장춘과 <비공식작전>의 외무부 최 장관 모두 배우 김종수의 손길을 거쳐 태어났다. 앞서 그는 홈리스 출신의 축구부 에이스 김환동으로 <드림>에서도 활약했으니 2023년의 기대작에 줄줄이 이름을 올린 셈이다. 건달부터 대통령까지, 거치지 않은 직업과 지위가 없지만 다작 배우임에도 소모되지 않은 그의 저력은 “단 몇분, 몇신만 나온대도 그 인물에 매료되면 전부 내 작품이라고 생각한다”는 소신과 직업정신에서 나온다. <밀수>로 어느 때보다 안타고니스트적 존재감을 자랑하는 요즘,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화란>까지 줄줄이 예고된 그의 다음 행보도 기대감을 자아낸다. - <밀수>의 세관계장 이장춘은 엄격한 공무원처럼 보이지만 후반부에 장르적 변곡점을 지닌다. 본색을 드러내는 인물의 포인트를 어떻게 준비했나. = 낮과 밤이 다른 사람이지 결국은 한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접근했다. 연기 톤을 과장해서 확 바꾸기보다 싸늘함을 주고 싶었다. 법의 테두리가 느슨하던 시대적 타성에 젖어 있던 사람의 현실성을 살리되, 후반부에 총을 들고 횡포를 부릴 땐 영화적 상상력을 더했다. 류승완 감독님이 보여준 외모 레퍼런스는 멋진 제복을 입은 이탈리아 남자들이었다. 그만큼 댄디한 느낌을 내지는 못했지만 머리를 바짝 깎고 아껴두었던 흰머리를 과감하게 드러내 나름대로 임팩트를 주었다. 부하 수복(안세호)을 부를 때도 일부러 더 부드럽게 굴리듯 했다. 어떤 캐릭터의 공포스러움이나 카리스마는 그를 연기하는 배우 자신만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 배역의 반응을 통해 비로소 완성된다. 큰 칼을 들고 있다고 더 무섭고 작은 바늘을 들고 있다고 덜 무서운 게 아니다. 수복이 이미 이장춘 앞에서 완전히 얼어붙어 있으니 나는 슥 목덜미를 감아서 쥐는 식의 부드러운 동작만으로도 충분했다. - 배우 김종수의 1980년대 공무원 세계관이 있다.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의 비리 세관 공무원, <헌트>의 안기부장, 그리고 최근의 <비공식작전> 외무부 장관까지. = 그러니까 나이 많은 남자는 공무원 아니면 힘없는 아버지, 양복 입은 나쁜 놈 아니면 돈 많은 나쁜 놈인 거다. (웃음) 시나리오를 받으면 나는 주로 영화별로 컬러와 질감을 연상하면서 각 작품의 가장 자연스러운 공기를 찾아나간다. <비공식작전>은 약간 브라운 톤, <헌트>는 어두운 청색, <밀수>는 경쾌한 파랑을 떠올리며 인물들의 차이와 고유한 결을 그려나갔다. - <밀수>에선 후반부의 주요 갈등을 이끄는 안타고니스트다. 배우에게 주연과 조연 등 출연 비중의 차이는 연기의 접근법에 있어 어떻게 작용할까. = 주연, 조연, 단역 따지면서 연기를 한 적은 없지만 시나리오 전체로 본다면 확실히 각자의 매력이 다른 건 사실이다. 주인공의 감정에 내 캐릭터가 곁가지로 관여하고 있는지, 아니면 메인 플롯에 포함되지 않고 다른 맥락 속에 외따로 존재하는지에 따라 시나리오를 읽는 방향도 달라진다. 가령 <밀양>의 시나리오를 나는 덤덤하게 읽었다. 내 땅이나 팔고 이익만 추구하면 되는 부동산 신 사장 역이니까. 굳이 주인공의 마음을 다 알려고 하면 너무 부대끼게 된다. 내 신을 다 찍고 나서야 <밀양>을 다시 읽었고 정말 힘들었다. <밀수>는 반대로 마지막까지 같이 달려가서 터뜨려야 해서 춘자(김혜수)와 진숙(염정아), 장도리(박정민)의 감정선까지 다 파악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수복은 어떻게 다루고 권 상사(조인성)는 어떻게 회유할지를 계산하는 속내가 이장춘의 눈빛에서 드러나니까. - 울산에서 오랫동안 무대 생활을 하던 중 2006년 이창동 감독의 <밀양>에 발탁됐다. 이후에도 오랫동안 매니지먼트 없이 혼자 울산과 서울을 오가며 출퇴근했다고. = 울산 연극판에 있을 때 여긴 좁다고 서울에 가고 싶어 하는 동료들도 있었지만 나는 어차피 상황도 안됐고, 무엇보다 지금 머무는 곳이 나의 최선이라 생각하고 일했다. 환경이 얼마나 좋아지든지 간에 지금 가진 재능과 태도를 그대로 가져가자는 마음이었다. 그러다 마흔 즈음 <밀양>을 만났고 영화에 출연하기 시작했지만 독립영화 <소셜포비아> <글로리데이> 등에 출연할 때까지도 혼자 필름메이커스에 프로필을 올리거나 에이전시 소개로 작업했다. 처음 7~8년은 울산에서 서울까지 출퇴근하다가 어머니가 병원 생활을 시작하면서 더이상 울산에 갈 필요가 없어졌고, 2014년에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0만원짜리 방을 구했다. 그 무렵 <미생>을 마치고 혼자 동네 술집에 앉아 있는데, 어느 샐러리맨이 부인에게 회사라고 거짓말하곤 혼자 우울하게 술 마시는 뒷모습을 우연히 지켜보게 됐다. <미생>의 현실이 거기 있었고, 그때 내 직업의 책임감 비슷한 것도 함께 실감했다. - 1985년 연극 <에쿠우스>로 데뷔해 40대에 영화계로 진출하고 성실히 경력을 쌓았다. 김종수에게 세월에도 변함없는 연기의 재미는 무엇인가. = <밀수> 리허설 때 밧줄에 걸려서 넘어질 뻔했는데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어떤 반응이 내 것이 아니라 이장춘의 것이었다. 그 현장에서 내가 이장춘으로 충분히 준비되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감독님도 이를 즉각 알아보고 실전에서도 해보자고 하셨다. 마찬가지로 <헌트>를 찍을 때는 리허설 때 실수로 담배를 거꾸로 무는 바람에 중간에 담배를 빼서 다시 무는 잠깐의 공백 동안 묘한 긴장감이 생성됐는데, 그 느낌이 마음에 들어 본 촬영에도 그대로 적용했다. 100% 협업의 현장인 영화는 이렇게 현장에서 종종 준비된 우연을 채집한 뒤, 그것을 모두가 유연하게 동의해나가는 과정의 기쁨이 엄청나다. 연극의 경우엔 일단 질러놓고 뒷수습하는 재미다. (웃음) 그 과정에서 막내 스탭들, 단역 배우들까지도 같은 보람을 공유할 수 있길 바라고 그게 이 이 일의 진정한 보람이라 느낀다. 나는 그걸 종종 ‘보람 공유’라고 부르곤 한다.

[인터뷰] 모른다는 주문을 외우며, ‘마스크걸’ 고현정

영화 데뷔작이 홍상수 감독의 <해변의 여인>이었듯, 첫 OTT 시리즈물 작업에 있어서도 고현정은 의외의 선택을 보여준다. <마스크걸>의 세 번째 김모미, 일명 모미C인 그는 폭주기관차 같은 작품의 종착지에 묘령의 얼굴로 유유히 서 있다. 한국 여자배우 중 여왕(<선덕여왕>)과 대통령(<대물>)을 모두 연기한 유일한 인물인 그에겐 “혼자 이끌고 가야 하는 역할도 있었다면, 좋은 배우들 사이의 일부로 놓여 즐겁게 촬영할 수 있겠다는 기대가 들어 새롭고 반가웠던” 작품이 <마스크걸>이다. 드라마 <너를 닮은 사람>에서 에르메스 백을 바닥에 내팽개치는 순간마저 아이코닉해 충격을 준 이 배우는, “평소 자연스럽게 짓게 되는 표정과 근육을 최대한 쓰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의 스타성을 탈색시키면서 지금의 김모미에 충실하고자 했다. 그렇게 몸의 움직임까지 최소화해 만들어낸 고현정의 김모미는 무망한 삶에 간신히 적응한 비련의 여자이기보다 언젠가 다가올 다음 기회를 노리며 조용히 웅크린 맹수 같다. 힘을 툭 털어버렸지만 화면 속 그의 존재감은 여전한 박력을 품고 있다. - 7회차 시리즈에 6회부터 등장하는 독특한 포지션으로 합류했다. 앞서 같은 인물을 이한별, 나나 배우가 차례로 연기한다. 이같은 배우의 쓰임과 형식이 낯설진 않았나. = 다들 과감한 선택 아니냐고 물으시는데 내게는 언제든 있을 수 있는 일일 뿐이다. 작품 전체를 보는 감독님의 눈을 믿으면서 항해사인 그가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의심하지 않고 걸어가면 된다. 그러니 <마스크걸>을 보고 고현정이란 배우를 쓰고 싶은 분들은 어떻게든 데려다가 쓰셨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웃음) 3인의 배우가 한 사람을 연기할 때의 캐릭터의 일관성에도 비교적 자유롭게 접근했다. 과거의 내가 꼭 현재의 내가 아니고, 지금의 우리가 어디까지나 과거로부터 논리적이고 인과적으로 탄생한 존재라고 보긴 어렵다. 인생의 실제가 그렇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저 지금의 모미였으면 했다. 항상 나 김모미는 단 5분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혀 모른다고, ‘나는 정말로 아무것도 모른다… 모른다…’ 그렇게 주문을 외우는 심정으로 현장을 돌아다녔다. - 김모미C가 등장하는 순간 인물이 전보다 한결 초연해진 인상이 든다. 시간의 경과 속에서 어떤 변화를 주고자 했나. = 과거의 모미에겐 여자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참담함들이 있었고 자기 나름대로의 극복 방식으로 성형도 감행했는데, 내가 출연하는 구간 즈음에 이르면 그 모든 에너지가 다 식어버린 상태일 거라고 봤다. 살아서 돌아다니긴 하지만, 정말로 산 사람인지 죽은 사람인지 말하기는 힘든 그런 상태. 분장을 한번 해놓으면 일절 건드리지 않고 밥 먹고 쉴 때도 그냥 그렇게 살았다. 예전엔 “그런다고 뭐 감정이 더 잡혀?” 하는 부류였는데(웃음) 이번에는 그냥 그러고 싶더라. - 등장 이후 꽤 시간이 흘러 첫 대사가 나온다. 딸의 행방을 알리는 경자(염혜란)의 편지를 받은 직후다. 꺼져 있던 한 사람의 불씨가 확 되살아나는 순간 아닐까. = “나 여기서 나가야겠어.” <마스크걸>은 김모미의 많은 선택에 관한 이야기다. 모미는 과거에 여러 선택을 해왔는데 사실 잘 풀린 적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어쩌면, 요 근래 이 말을 의심하고 있지만 어쨌든, 트라우마가 있었을 것 같기도 하다. 모미가 나가야겠다고 읊조리는 그 순간은 한동안 아무것에도 의미를 두지 않으려던 인물이 다시 무언가를 선택하는 장면 같아서 좋아한다. 그동안 살기에만 급급했던 사람이 탈옥을 결심할 때는 처음으로 자신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엄마로서의 모미도 중요했지만, 인간으로서 한 사람이 이타적인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 생각했다. - <마스크걸>에서 고현정이 연기하는 모성이 신파적이지 않았던 이유도 될 수 있겠다 싶은 답변이다. = 왜 모미를 내게 맡겼을까, 생각해봤다. 여러 이유 중에는 모녀간의 서사라는 점도 있지 않았을까. 감독님께 내 경험을 살짝 말씀드리기도 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감정이라는 생각도 물론 있었다. 김모미와 김경자는 참 다른 엄마다. 경자가 비록 삐뚤어지고 과격하더라도 자신의 모성에 자부심을 갖고 그걸 동기로 삼아 무엇이든 해볼 수 있는 여자라면, 모미에게 모성은 쑥스럽고 민망한 감정과 함께 뒤로 물러나 있다. 스스로 그럴 염치가 없다는 마음도 있을 테고. 아무리 딸을 구하려 탈옥까지 한다지만 그걸 딸이 알 리는 없고, 이제 와 엄마의 권위로 딸을 좌지우지하거나 생색낼 처지도 못 된다. 그래서 아주 조용히 움직이는 느낌으로 있고 싶었다. 실제로 현장에서 미모 역의 신예서 배우를 볼 때도 그런 기분이었다. 후반부에 동굴(젓갈 창고)에 들어가 모미가 처음 미모를 마주한다. 잠시 그 애를 쳐다보고는 그냥 곧장 손에 묶인 줄을 풀어주러 등 뒤로 간다. 그 장면을 그렇게 담담하게 찍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느꼈다. - 뭉툭 자른 쇼트커트 스타일도 의외였다. = 처음엔 머리가 굉장히 길었다. 감독님이 원해서 단발 정도까지 자른 뒤 카메라 테스트를 했는데 아무리 봐도 화면 속에 그냥 고현정이 있는 거다. 당시 쇼트커트를 하기엔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하룻밤 고민하고 그냥 가서 왕창 잘라버렸다. 기왕이면 누군가한테 억지로 잘림을 당한 것처럼, 뭉툭뭉툭 엉성하게. 그러고 나니 내 마음도 편해졌다. - <마스크걸> 후반부에서 김모미가 보여준 무언가 비워낸 듯한 기운은 캐릭터 해석이기도 하지만 지금의 고현정이 보여주는 진심이기도 한 셈이다. = 하하, 감독님께 죄송하지만 아주 살짝 투영된 건 사실인 것 같다. 내가 잘 쓰는 말투와 근육, 그런 것들이 다 김모미를 보여주는 데 방해가 될 것 같아서 최대한 비우려 했는데, 그래서 오히려 나 자신이 들어갈 틈새가 생겨나기도 했다. 한동안 몸이 많이 아팠다가 건강해졌다. 오만함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내가 아플 줄 몰랐다. 회복하는 시간들을 보내면서 시쳇말로 ‘현타’가 왔다. 그동안 내가 가진 좋은 것들을 모르고 참 투정을 부렸구나, 싶어서. 한마디로 의심이 많았다. 겁이 나면 대신 화를 내버리는 성격이었는데, 몇년 새 정말 무섭고 힘든 것은 따로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일하고 연기하는 것에 깨끗한 감사함 같은 걸 느끼게 됐다. 지금은 그저 잘 쓰이고 싶다. 어릴 때부터 내가 평생 해온 일을 늦기 전에 더 제대로 잘해내고 싶다. 감독님이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소리와 표정, 감정을 내어드리는 일에 몰두할 수만 있다면 좋겠다. - 과거 <씨네21> 인터뷰에서 50대가 되면 조금 더 편안한 사람이 될 것 같다고 했다. 지금은 어떤가. = 생애 주기가 달라지면서 요즘 50대는 또 옛날 50대하고 다르다 하더라고. (웃음) 글쎄, 욕심이 가벼워진 건 사실이다. 살면서 집중해야 할 것들을 좀더 추려내서 생각하게 된다. 여러 의욕이 줄어든 것 같은데 다행스러운 점은 연기에 대해서만큼은 다르다. 아직도 하고 싶은 걸 너무 못해봤다는 갈증이 더 크다. - 이광국 감독의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2017) 이후로 신작 영화를 기다리는 관객들이 많다. 상대적으로 영화쪽에서는 만족스러운 작품 제안이 없다고 느끼나. = 영화가 정말로 안 들어온다. 복귀 후 <씨네21>과 함께 능동적으로 인터뷰 코너도 만들어보고 했던 것이 내게는 나름대로의 영화계를 향한 마음의 표현이었다. ‘저도 좀 끼워주세요!’ 하고. 노력은 했지만 작품으로는 잘 연결되지 않더라. 솔직히 말해도 될까, 지금 나는 작품에 목이 마르다. 그저 내가 가지고 있는 배우로서의 엔진이 꺼지기 전에 최대치의 힘을 발휘해서 나 자신을 계속 시험해보고 싶다.

[기획] 팬들이 직접 완성한 과몰입의 자리들, ‘우리 애들 살아있다!!’

작품의 세계관을 새롭게 확장하는 것을 하나의 놀이문화로 정착시킨 팬들은 문 밖으로 나가 스스로 장을 마련한다. 이들은 작품 안에만 존재하던 인물을 현실로 꺼내 살아 숨쉬게 하고, 작품이 채 다루지 않은 이야기 공백을 애정 담긴 상상으로 채워나간다. 즐거운 과몰입의 영역을 넓혀나가는 팬덤의 주체적인 탐험은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주인공이 어딘가 살아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을, 우리 모두가 연결된 듯한 감각을 일깨운 여섯 가지 사례를 소개한다. THE FIRST: 송태섭 생일 전시&광고 <슬램덩크> 팬들은 북산고등학교 농구부의 포인트가드 송태섭 생일(7월31일)을 맞이하여 갤러리 전시와 영상 광고를 진행했다. 후원자를 대상으로 펼쳐진 갤러리는 송태섭을 사랑하는 창작자들의 다채로운 2차 창작품을 내걸었다. 이들은 새로운 그림을 통해 NBA 선수로 거듭난 송태섭, 유명 잡지 화보를 찍은 송태섭 등 원작에서 볼 수 없던 농구부 소년의 미래를 빼곡하게 상상했다. 또 가족과 농구장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거나 평범한 졸업식을 보내는 등 어린 시절 외로웠던 송태섭의 시간에 다정한 위로를 덧대기도 했다. 원작 만화가 가닿지 못한 인물의 미래와 과거를 애정 담긴 시선으로 재해석하면서 팬들은 작품과 자신의 연결 고리를 더욱 두텁게 만들었다. PROJECT 720522 5월22일 정대만 생일을 맞이하여 이뤄진 광고 프로젝트로 신촌, 강남, 부산에 각각 지하철 광고가 실렸다. 이 프로젝트의 특징은 대만의 절친인 영걸이 불꽃남자단 단장이 되어 대만이 몰래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준비한다는 컨셉이다. “곧 대만이 생일인데 한번 뭉치자!”는 반가운 말투로 이어지는 공지는 팬덤과 영걸이 작당 모의를 이어가는 듯한 현실적인 느낌을 준다. 특히 ‘싸이월드’ 형태로 개설된 홈페이지는 팬들의 과몰입을 더욱 뜨겁게 만들었다. 정대만이 실제로 미니홈피를 운영하는 듯한 일상 사진을 일러스트로 그려 올리고, 북산고 친구들과의 일촌평을 디테일하게 만든 것. 팬들의 참여도 세세하게 기록했다. 지하철 광고마다 부착된 팬들의 편지를 버리지 않고 미니홈피에 하나씩 찍어 올린 것이다. 그중 많은 팬들의 눈시울을 붉힌 편지 내용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거센 비바람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단 하나의 불꽃 정대만. 모두의 마음속에서 일렁이는, 사그라들지 않는 용기의 증표가 되어주길.”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덕톡회 덕톡회는 같은 대상을 좋아하는 덕후끼리 만나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말한다. 하나의 작품을 두고 대화하거나 작품 안의 특정 인물로 대상을 좁혀 말하기도 한다. 동일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어떻게든 가닿고 싶은 팬들의 소박한 열망이 담긴 자리인 셈이다. 멀티버스 세계관을 지닌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의 덕톡회에선 팬들 각자의 개성 넘치는 해석과 애정 담긴 코멘트를 들어볼 수 있다. 혼자가 아니라 다 함께 호들갑 떨며 좋아할 때 그 기쁨이 배가 된다는 것을 새삼 되새기게 된다. 주인공 마일즈가 거주하는 뉴욕의 브루클린이 떠오르도록, 치즈 피자를 곁들이며 담소를 나눴다는 한 덕톡회의 일화도 무척 흥미롭다. Wave: 波浪 준섭, 태섭 생일 카페 아이돌 생일 카페 문화에서 넘어온 캐릭터 생일 카페는 다양한 특전과 흥미로운 공간 구성이 매력 포인트다. 7월31일 같은 날짜에 태어난 송준섭, 송태섭 형제의 생일을 기념한 ‘Wave: 波浪’은 두 인물에게 의미 깊은 공간을 재현했다. 형의 죽음 이후 자기만의 애도 시간을 가졌던 준섭의 방과 두 형제가 각각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던 동굴을 그대로 구현한 것. 팬들은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서 관객으로 지켜봐야만 했던 공간에 직접 입장하면서 두 형제의 마음으로 다시금 이야기를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공간이 지닌 함의를 팬덤의 힘으로 새롭게 분해한 사례라 할 수 있다. ‘하기-마츠’ 기일 카페 기일도 카페를 차린다? 생일 카페에 익숙한 이들에게도 충격으로 다가오는 기획은 <명탐정 코난> 팬들의 발상으로부터 나왔다. 생일 카페 아닌 기일 카페에는 근조 화환이 필수. 제단 위의 꽃은 4년의 시차를 두고 같은 날 폭탄물 해체 중 순직한 하기완 형사(하기와라 겐지), 송보윤 형사(마쓰다 진페이)의 기일 11월7일을 뜻하는 메리골드다. 케이크 디자인 역시 폭탄 앞에 나란히 선 두 사람의 모습을 반영했다. 이는 코난뿐 아니라 코난의 경찰동기조 캐릭터가 제각기 팬덤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중 수려한 외모로 인기를 얻은 송 형사, 그런 송 형사와 특별한 감정선을 그려낸 하 형사의 서사에 몰입한 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런데 왜 멀쩡한 생일을 놔두고 기일을 챙기느냐고? 캐릭터가 등장한 지 오래지 않아 죽는 바람에 팬들조차 생일을 알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기일에 진심인 팬들은 드레스코드를 블랙으로 맞추고 카페를 방문했고, 카페 스탭들은 왼팔에 완장을 차고 그들을 맞이했다. <킬링 로맨스> 싱어롱 “영화 관람 중에 노래를 부르고 싶으면 마음껏 불러주세요~(내 멋대로 싱어롱).” 지난 4월, <킬링 로맨스>의 과격한 미감을 똑 닮은 디자인의 안내 문구가 극장 스크린 위에 커다랗게 떠올랐다. 이어 극 중 팬클럽의 이름이기도 한 여래바래로 하나 된 관객들이 말 그대로 영화를 따라 부르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킬링 로맨스>는 마니아층의 입소문, 홍보를 향한 팬덤의 전투력에 힘입어 N차 관람은 물론 싱어롱 상영회까지 추진된 경우다. 팬들은 SNS를 통해 이원석 감독에게 싱어롱 상영관을 제안(“싱어롱관 열어주시면 너무 좋겠다”, “<여래이즘> 떼창하고 싶어요”), 롯데시네마가 이를 받아들였다. 싱어롱 상영회 후 열린 GV에서 이원석 감독은 트위터에서 작품을 매일 적극적으로 ‘영업’해온 또 다른 팬을 직접 찾아내는가 하면 이후 소소한 팬미팅도 가졌다. 관객 연령은 2030 여성이 90% 이상을 차지했다. 늦덕을 위한 덕후 용어 전프레 응모자 혹은 참여자 전원에게 지급되는 특전 상품(프레젠트). 특정 행사에서만 받을 수 있다는 희소성 때문에 전프레 유무에 따라 행사 참여를 결정하기도 한다. 온리전, 배포전 일종의 덕후 중심적 작은 박람회. 2차 창작으로 완성된 소설, 코믹스, 각종 굿즈를 구매할 수 있다. 행사에 따라 다양한 이벤트가 진행되기도 한다. 럭드 럭키 드로의 줄임말. 제비뽑기, 구슬 돌리기, 가챠 등 다양한 형태로 진행되며 등수에 따라 차등적인 상품을 받을 수 있다. 중독성이 강한 게 장점이자 단점. 폼림 대다수의 행사 티케팅을 ‘윗치폼’ 사이트에서 하는데, 대학교 수강 신청처럼 경쟁이 과열될 때 ‘폼림픽’이라고 부른다. 미친 듯한 광클이 주요한 성공 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