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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V 20주년

MTV엔 뮤직비디오가 없다. 미국의 MTV에서 뮤직비디오를 보려는 것은 붕어빵을 먹으며 담백한 생설살의 감촉을 느끼려는 것과 비슷한 일이다. 사실 `Music Television`이라는 MTV에서 뮤직비디오를 만날 수 없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 일이다. 자매채널인 VH1, M2, MTV 베이스 등으로 터전을 옮긴 뮤직비디오의 자리를 메우는 프로그램들은 일반인들이 참여해 환상과 사랑의 모험을 펼치는 <리얼 월드><로드 룰스>, 또는 엽기적인 일만 골라서 행하는 <앤디 딕 쇼><잭 애스>, 대학생들의 봄방학 철인 3월이면 어김없이 방송되는 비치 댄스 파티 <스프링 브레이크>, 우리의 <주부가요열창>의 10대 버전쯤 될 등이다. “우리 오빠가 내 친구와 `거시기`하는 것을 봤어요”등등의 `고민`을 낄낄거리며 토론하는 토크쇼, `치정극`을 스포츠로 표현한 프로레슬링 게임, 스타들의 시시콜콜한 일상생활을 과격하게 추적하는 다큐멘터리 역시 이 채널에서 선보이는 주요 메뉴들이다. 이같은 변화에서 읽을 수 있는 점은 MTV가 이제 다이상 음악 전문 방송사가 아니라 일종의 종합엔터테인먼트 채널로 탈바꿈했을 뿐 아니라, 강력한 타깃층인 10대 중반에서 20대 초반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기 위해 지칠 줄 모르고 변신하다는 것이다. 사실 요즘과 같은 변화는 1992년 <리얼 월드>가 시작할 때부터 예견됐던 일이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에 이르는 젊은 남녀들의 일상생활과 고민, 갈등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이 프로그램의 성공은 공중파 방송에서도 이와 비슷한 유의 `실제상황 소프 오페라` 프로그램을 만들도록 추동했고, 결국 이는 <서바이버>로 발전했다. <리얼 월드>의 뒤를 이은 <언드레스드><로드 룰스><스파이더 게임스>등 최근 MTV 프로그램은 젊은이들을 자극하는 다양한 소재, 실제상황과 가상을 오가는 극 구성, 기존 소프 오페라 뒤틀기 등을 통해 실험적 `다큐-드라마`프로그램 제작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1955년 히트 싱글들을 틀어 주는 AM라디오의 , 1967년 `프로그레시브 록`을 방송했던 FM라디오의 <앨범 록 스테이션>이후 “음악방송에서 세번째의 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받는 MTV가 이처럼 `5반세기`만에 음악과는 별 관계가 없는 방송으로 변신한 것은 도대체 무슨 이유일까. MTV의 역사를 살펴보면 엉뚱하게 모태가 흔히 `아이멕스`라 불리는 신용카드업체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1979년 아멕스는 워너 케이블 코퍼레이션의 주식 50%를 매입했고, 이 기업은 워너-아멕스 케이블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으며, 뒤에 워너-아멕스 위성 엔터테인먼트사(WASEC)로 독립했다. MTV는 이 WASEC가 소유하고 있던 네개의 채널 중 하나로 편성되었고, 1981년 8월 1일 `24시간 논스톱 채널`로서 세상에 태어났다. “(텔레비전으로부터) 무시당하고 잇는 일군의 청년들이 존재한다”는 MTV 초대 CEO 존 슈나이더의 일성과 더불어. 그런데 1981년의 청년들이 누구한테 무엇을 무시당한 것일까? 록문화를 다림질하고 미국의 `별`을 찾아서 그 이전까지 청년문화의 꽃은 `록음악`이었다. 지겨운 이야기라고? 어쨌든 록문화는 거리와 클럽의 문화였고, 1970년대에는 대형 스타디움으로 `재영토화`되는 양상이 없지는 않았지만 `거실에 놓인 TV`와는 아무래도 거리가 있었다. 어쩌다가 록스타가 TV에 등장하는 일이 있다고는 해도 라이브연주 비슷한 세팅 위에서 어색하게 립싱크를 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소파나 침대에 앉아 TV를 보는 일은 `계집애들`이나 하는 짓이라는 것이 록문화의 `편견`이었다. 하지만 록음악도 1970년대 말 음악산업의 대불황앞에서는 용빼는 재주가 없었다. 더구나 대불황은 음악산업에 떼돈을 안겨주던 바로 그 시스템이 삐걱거린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래서 MTV는 가정의 거실 분위기에 맞게 록문화에 남아 있는 거친 요소들을 말끔하게 다림질하는 것을 자신의 소임으로 삼았다. MTV가 처음으로 송출한 작품이 버글스의

케이블TV 시대를 사는 MTV의 전략

케이블 TV의 시대는 TV를 '보는' 시대가 아니다. 이 시대는 '채널을 돌리는 시대'이다. 나는 오늘도 TV를 본다. 아니, 정확히는 채널을 돌린다. 채널을 돌리는 걸 TV 보는 것과 착각하는 시대가 케이블 TV의 시대이다. 채널을 돌린다는 건, 다른 말로 하면 나의 손에 쥐어진 리모콘이라는 총을 쏨으로써 한 채널의 한 프로그램이 가지고 있던 최소한의 지속성, 문법적인 맥락을 죽이는 행위이다. 채널을 돌리는 행위는 근본적으로 탈 맥락적인 행위이다. 나는 무슨 신경증 걸린 사람처럼, 그 총을 마구 쏘아댄다. 드라마가 나왔다가 뉴스가 나왔다가 39쇼핑의 광고가 나왔다가 2차대전의 어느 전선을 소개하는 다큐멘터리가 나왔다가 불교 방송이 나오기도 하고 그 다음엔 만화가 나오기도 한다. 그 모든 걸 나는 거의 동시에 관람하고 있다. 너 미쳤니? 이렇게 리모콘을 쏘아대는 나는 불특정 다수를 향해 총을 쏘아대는, 알고 보면 정신병에 걸린 살인범일지도 모른다... 광고와 뮤직비디오, 구분할 수 있니? 그러다가, 어쩌다가 MTV가 걸린다. 어느 뮤직 비디오가 진행 중이다. 아, 그런데 알고 봤더니 이건 뮤직 비디오가 아니다. 'MTV 스테이션 아이디(Station ID)'라는 거다. 그 시퀀스의 맨 끝에 MTV 로고가 뜨기 전까지, 나는 그걸 뮤직 비디오로 착각했다. `쳇, 엠티비 광고로군.` 그 다음에, 어느 시퀀스가 이어진다. 흑인이 나와서, 테크노 풍의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춘다. 이건 다시 뮤직 비디오인가? 그러나 그 끝에는 어느 술 이름이 등장한다. 그 술이름이 등장하기 전까지, 나는 그 시퀀스를 또다시 뮤직 비디오와 혼동했다. `쳇, 이건 술 광고로군.` 술 광고 다음에, 이번엔 광고와 비슷한 어느 뮤직 비디오가 나온다. 가령 '푸 파이터스(Foo Fighters)'의 어느 뮤직 비디오가 나온다고 치자. 그들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목 캔디 비슷한 사탕을 파로디하여 '푸토스(Footos)'라는 가짜 상표를 지어냈고 그 광고의 화면과 거의 흡사한 장면들을 차용하여 뮤직 비디오를 만들었다. 맨 끝에, 혹은 맨 처음에, 'Foo Fitghers'라는 자막이 없었더라면 나는 이 화면을 정말 사탕 광고로 착각했을 지도 모른다. MTV는 하루 종일 이런 식이다. 만일 내가 하루 종일 MTV를 켜놓고 있다면, 사실 어떤 것이 프로그램이고 어떤 것이 광고인지, 또 어떤 것이 자사 공지 사항인지 모른 채 MTV를 시청하는 것이 된다. 그 각각의 프로그램들 사이의 상업적인, 혹은 미학적인 경계가 없다. 그것들은 모두 비슷한 맥락이거나 맥락이 없이 자기 자신을 지우고 있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MTV 자신을 광고하는 화면과 MTV를 먹여 살리는 광고주의 광고 화면과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는 '뮤직 비디오'의 화면이 연속된다. 그건 마치, 케이블 텔레비젼의 각 채널들을 오가며 맥락없이 시청하는 시청자의 머릿속을 재현하는 것 같아 보인다. MTV의 편성 자체가 '탈 맥락적'인 것이다. 미학적 혁명의 절정, 탈맥락적 편성 MTV 편성의 미학적 혁명은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어느 한 프로그램이 탈맥락적이라기 보다는, 편성 자체가 탈맥락적이다. 나는 논리가 결여된, 혹은 서로가 서로를 닮아가며 동시에 서로의 온전한 몸뚱아리를 숨김으로써 결국에는 전체가 다 어떤 '돈벌이'의 수단으로서 동일하게 참여하는 아주 큰 차원의 '광고'를 보고 있는 것이거나, 혹은 광고가 광고가 아니고 프로그램이 프로그램이 아닌, 그래서 결국에는 각각의 욕망들이 가지고 있는 이면을 보여주는 어느 포스트 모던한 정치 프로그램을 목격하고 있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이러한 MTV 편성의 미학은 그대로 뮤직 비디오의 미학과 연결된다. 뮤직 비디오는 확실히 기존의 영상물들과는 구별되는 미학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가령 우리의 뇌리 속에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아하'의 히트 넘버 의 뮤직 비디오를 보자. 주인공들은 일차적으로 음악을 연주하는 뮤지션들이다. 그들의 연주 장면이 명백히 뮤직 비디오에 드러나 있다. 그러나 그들은 뮤직 비디오에 등장하는 어느 패스트푸드점 여종업원이 즐겨 보는 만화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들은 내러티브의 주인공이다. 그 내러티브는 뮤직 비디오의 내러티브이기도 하고 여종업원이 보는 만화의 내러티브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 주인공들은 뮤직 비디오라는 영상물의 내러티브를 직접적으로 구성하는 등장인물들이기도 하고, 동시에 그 내러티브의 안에 존재하는 2차적 내러티브의 격자 속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이기도 하다. 여기서 '출발 비디오 여행'의 MC처럼 질문을 하자. 그들은 누구인가? 가수인가? 아니면 아하 그들 자체인가? 그것도 아니면 뮤직 비디오라는 하나의 짧은 '극영화'의 등장인물들인가? 뮤직 비디오에 관한 이러한 의문은 보통의 피쳐 필름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제기할 수도 있는 동일한 의문에 비해 훨씬 심각하고 복잡하다. 대답을 하자. 그들은 그 모두이다. 최소한 그 등장 인물들은 세 겹이다. 그 '세 겹'의 그들이 동시에 맥락화되어 있다. 아니, 정확히 이야기 하자. 그 세 겹을 구분하는 맥락이 탈각되어 있다. 그들은 가수이기 때문에 마치 '라이브' 공연장을 시뮬레이션 하듯 노래를 하고, 동시에 그들은 음반을 팔아먹는 스타 자체이기 때문에 그들 자신으로 광고되는 광고 대상이고, 또한 뮤직 비디오라는 특별한 영상 구성물의 내러티브를 존재하도록 만드는 등장인물들이다. 그 세 겹의 상업적, 미학적 맥락들이 '아하'라는 밴드의 멤버들을 둘러싸고 형성되고, 동시에 그 세 겹의 맥락을 배타적으로 특징짓던 경계선들이 뮤직 비디오를 통해 무너진다. MTV의 스테이션 아이디, 광고, 뮤직 비디오의 경계가 탈맥락화되어 있는 것과 이러한 뮤직 비디오의 정황은 일직선으로 소통한다. 그래서 오히려, 뮤직 비디오는 MTV의 편성 내에서 연속성을 가진다. 등장인물에 관한 이러한 미학적 문제제기는 그대로 공간적인 문제제기로 이어질 수 있다. 공간에 관한 논점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실제로 이들이 노는 공간이 공연장인가, 아니면 세트인가에 관한 문제로부터 시작된다. 영국 밴드 스웨이드의 어느 뮤직 비디오를 보자. 그들은 한 순간은 지하철이었다가, 다음 순간은 공연장이 되는 어느 공간에 위치한다. 공간은 탈맥락화되어 있다. 다른 하나는 도상학적 차용에 관한 문제이다. REM의 뮤직 비디오들이 그런 걸 잘 보여 준다. 예를 들어 의 뮤직 비디오를 보면, 그 공간은 명백히 영국의 화가인 프란시스 베이컨의 도상학적 공간이다. 살들은 정육점에 걸린 고기들처럼 흩어져 있고, 대신 그 살들은 서커스장처럼 구분되고 배치된 기하학적 라인에 의해 재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특유의 운동성을 보여주는 베이컨의 공간을 REM의 뮤직 비디오는 거의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이럴 때 그 공간은 고전에서 차용된, 그리하여 탈맥락화된 새로운 공간이다. 그 공간 속에 마이클 스타이프가 마치 베이컨 그림의 등장인물처럼 이상한 자세로 존재하고 있다. 이상과 같은 간단한 예를 통해 보더라도 뮤직 비디오가 제기하는 영상적 의미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그것이 처음에는 어느 가수의 어느 음반이 팔리는 양을 늘리기 위해 제작된 일종의 광고였겠지만 나중에는 점차 그 모든 것을 혼합하고 뒤섞으면서 새롭게 존재하게 되는 탈근대적 텍스트의 대표적 사례로 자리잡게 되는 것이다. 더군다나 재미있는 것은, 뮤직 비디오의 이러한 특성이 MTV의 독특한 편성 속에서 탈맥락적으로 기능한다는 것이다. 성기완/대중음악 평론가 creol@hitel.net ▶ MTV 20주년 ▶ MTV의 프로그램들 ▶ 대단했던 순간 베스트 20 ▶ MTV 네트웍스 인터내셔널 부사장 리사 해킷 인터뷰 ▶ MTV 코리아 김순철 대표 ▶ MTV가 영화에 끼친 영향 - 속도와 편집, 그리고 소리의 조화 ▶ 뮤직비디오에서 출발한 영화감독들 대표작 ▶ 케이블TV 시대를 사는 MTV의 전략 ▶ 인상적인 뮤직 비디오 네편

고마 해라, 충분히 지루했다

<시사매거진 2580>의 보도로 촉발된 문화방송(MBC)과 한국연예제작자협회(연제협)의 갈등에 대해 여기저기서 많은 말들이 쏟아졌다. “보도 취지가 옳은 것이긴 해도, <…2580>이 좀 오버했다”, “그래도 집단으로 출연거부하겠다는 건 잘못이다”, “한바탕 소동 피우고 시간 지나면 어차피 해결될 문제 아니냐”…. 연제협의 주장을 매일 그대로 실어나르다시피 하는 일부 신문들을 본 뒤 인터넷을 뒤져보면 마치 딴 세상에 온 것처럼 대다수 네티즌들은 정반대의 편에서 연제협을 비판하고 있었다. 참 요란했다. 연제협의 출연거부선언(7월3일)에 이어 김건모, 박진영, 신승훈 등 연제협 소속 인기가수들이 모여 “우리는 노예라 불리기를 거부한다”고 선언(10일)했고, <…2580>은 ‘연예인 대 매니저’ 2편을 내보냈다(15일). 사태 초반의 관심사는 <…2580>에서 언급된 ‘노예 계약’의 진위 여부였지만, 그동안 매니저들이 문화방송에 대해 가졌던 불만들이 한꺼번에 터져나오면서 ‘힘겨루기’ 양상으로 전개됐다. 그 과정에서 PD 비리, 가수들의 출연료문제 등이 우회적으로 제기되기도 했다. ‘긴박하게’ 돌아가던 사태는 연제협이 <…2580>의 후속보도에 대해 ‘무대응’을 선언하면서 김이 팍 빠졌다. 연제협은 문화방송과 어떤 대화도 하지 않는 대신, 언론중재위와 민·형사상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했지만, 더 내놓을 카드가 없음을 공식적으로 알리는 모양이 됐다. 시끌벅적했던 사태는 그뒤 ‘지지부진’이다. 문화방송은 시종 “보도에 문제가 있다면 법적 절차를 통해 해결하면 되고, 시청자들을 위해 방송 파행은 끝내자”는 의견이고, 연제협은 “매니저들을 사기꾼으로 매도한 것은 왜곡·편파보도니 <뉴스데스크>를 통해 사과하라”는 원칙을 버리지 않고 있다. 제기되는 새로운 현상이 없으니 시청자와 네티즌들의 관심도 시들해졌다. 난감해진 것은 당사자들이다. 법적 대응을 천명한 연제협은 곧바로 태도를 누그러뜨리기도 힘들고, 문화방송이 사과방송 요구를 받아들일 가능성도 적다. 사태를 죽 지켜봐온 시청자들의 눈이 있으니, 타협을 한다 해도 적정선을 정하기 힘들다. 이번 일이, 연예매니지먼트산업이 거대 방송사를 난처하게 만들 정도로 급성장했음을 알리는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하다. 또 연제협과 방송사 모두에 ‘교훈’을 주는 계기도 됐다. 먼저 연제협. 연제협 구성원들은 그동안 주로 방송사 예능국 PD들과 개별적인 접촉을 하며 공생관계를 유지해온 사람들이다. 방송사에는 필수적이라 할 연예인들을 거느리고 있다는 사실은 그들의 막강한 협상력의 근거가 됐다. 하지만 이를 너무 과신했다. 연제협은 문제가 된 <…2580>쪽에는 한마디 이의제기도 없이 곧장 문화방송 텔레비전 출연거부라는 강수를 뒀고, 이 때문에 처음부터 ‘집단행동’이라는 비판을 떠안은 채 싸움을 진행했다. 연제협 고위관계자마저 “초반에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를 하지 않은 것이 두고두고 마음에 걸린다”고 말했다. 연제협은 또 “일부에서 불공정 계약이 있을 수 있다”면서도, 개선방안에 대해서는 별다른 노력없이 <…2580> 보도를 부인하는 데 급급했다. 집단적인 출연거부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효과는 있었지만, 그를 뒷받침할 설득력을 갖추지 못한 처사였다. 문화방송에는 “이번 일은 다 방송사의 업보다”라는 비판이 따라붙는다. 방송사는 탤런트들에게는 회당 수백만원씩 주면서, 가수들에게는 10∼20만원이라는 턱없이 적은 출연료를 지급하며 프로그램을 만들어왔다. 비판에 아랑곳없이 연예인들을 떼거리로 출연시켜 비슷비슷한 프로그램들을 경쟁적으로 제작·방송한 것이 방송사들이다. PD 비리 시비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이렇기에 “이번 기회에 방송 프로그램들을 확 바꾸자”는 시청자들의 의견에 귀가 기울여진다. 문화방송의 가요순위 프로그램인 <생방송 음악 캠프>가 뮤직비디오로 대체됐을 때, 많은 네티즌들은 “립싱크를 안 보니까 훨씬 좋다”에서 “이참에 가요순위 프로그램을 없애버리자”며 반겼다. 가수들을 방송사에 공급하는 연제협과 그들을 화면에 담는 방송사 모두 곱씹어봐야 할 대목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문화방송 내부에서도 이런 의견들을 반영할 조짐이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문화방송 예능국의 장태연 책임프로듀서는 “사태가 마무리되면 가요순위 프로그램을 포함해, 그동안 문화방송이 타성에 젖어 제작·방송했던 프로그램들에 대한 논의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방송사와 연제협의 최종적인 소비자인 시청자들은 방송 파행을 동반한 둘 사이의 지루한 다툼을 지켜봐왔다. 이제, ‘달라진 프로그램’으로 보상받지 못한다면 이번엔 시청자들이 방송사를 향해 ‘보이콧’을 선언하지 않을까. 황준범 기자/ 한겨레 문화부 jaybee@hani.co.kr

<한국영화 걸작선>을 만드는 사람들

60, 70년대 한국영화 방송하는 EBS 프로그램 <한국영화 걸작선>이 궁금하다 ● 일요일 밤 10시10분. 채널13으로 가보자. ‘한국영화 걸작선’ 두툼하고 육중한 고딕체 타이틀이 떴다가 사라지면, 중년 남자가 극장 객석 사이 통로를 걸어내려오며 우리에게 말을 건다. 나직하고 차분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그가 영화, 혹은 영화라는 이름의 추억 여행 가이드임을 알게 된다. 그렇게 그 남자, 김홍준 감독은 객석에서, 영사기 옆에서, 그날의 영화이야기를 조근조근 들려준다. ‘한국영화 걸작선’이라는 요리를 선택한 시청자들을 위한 전채인 셈이다. 그리고 메인 디시인 영화가 시작되고, 끝난다. 여기서 바로 채널을 돌리거나 TV를 끈다면, 그는 ‘초짜’ <한국영화 걸작선> 시청자다. ‘진득한’ 마니아들은 2, 3초 동안의 검은 자막을 지켜보며 한숨 돌린다. 달콤한 디저트가 기다리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주 방영작과 관련된 사람들에게 듣는 영화이야기나 김홍준 감독이 들려주는 남은 이야기들이 그것. 예를 들어 지난해 12월23일 김기덕 감독의 <맨발의 청춘>을 방영했을 때는 신성일, 엄앵란 커플이 등장했다. 지난 7월15일 석래명 감독의 <고교 우량아>를 방영했을 때는 주연배우 김정훈씨가 인터뷰에 응했다. 조각 같은 미모의 청년 모습에서 곧이어 세월의 흔적이 새겨진 현재의 신성일씨, 그리고 소년 시절의 앳된 얼굴을 그대로 간직한 채 장년의 나이로 카메라 앞에 나타난 김정훈씨의 얼굴은 직전에 보았던 영화 속 모습과 오버랩되면서 아련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시청률을 뚫고 KBS <태조 왕건>과 ‘맞장뜨는’ 프로그램인 <한국영화 걸작선>의 조용한 혁명은 그렇게 7개월 넘게 계속되고 있다. 6월부터는 본방송을 일요일 밤 10시10분에 하고, 원래 본방 시간이었던 토요일 낮 12시에는 재방송을 하고 있다. “<한국영화 걸작선>이 방송타고 있다는 것이 역사적 사건이다”라는 김홍준 감독의 평가를 빌리지 않더라도 그동안 공중파에서 한국영화가 찬밥이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시청률이 원인이었으리라. 그러나 한국영화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무장한 몇몇 동지들의 ‘봉기’로, 지난해 12월9일 토요일 한낮에 작은 혁명이 발발했다. 시작은, 사랑이었다. 한국영화에 대한. <한국영화 걸작선> 이승훈 PD는 96년에서 97년 사이 <시네마 천국>에서 한국영화 작가 시리즈를 한 적이 있다. 그때 김상옥, 임권택, 김기영, 김수용, 이장호, 정지영 등의 작품을 방송했는데, 한국영화 필름을 구할 수 없어 안타까웠다. 결국 비디오 출시된 것만 틀었다. 절름발이 방영을 한 것이다. 그러나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그는, 그뒤로도 오랫동안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어떻게 <한국영화 걸작선>을 기획했나. = 어떻게든 한국영화를 틀고 싶었다. 상시적 프로그램으로 안 되면 <세계의 명화>에 한달에 한번씩이라도 한국영화를 끼워달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1999년에서 2000년 사이에 언젠가는 1회성 특집으로도 검토한 적이 있다. 물론 그것도 연이 닿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해 12월에 소규모 편성 개편이 있었다. 그때 기획팀장이 개편에 맞추어 한번 추진해보라고 했다. 수급과 가격을 알아보니 다행히 예상 제작비와 맞았다. 일단 50, 60년대 영화 중 작품성과 흥행성, 감독 등을 안배하여 20∼30편을 추려냈다. 그리고 영화의 행방을 찾기 시작했다. 11월쯤 영상자료원쪽과 만나 목록에 있는 작품들의 판권과 네거필름 상태 등을 확인했다. 판권계약과 텔레시네 작업까지는 배급업자에게 맡겼다. 첫 작품은 <마부>로 정했다. 첫 방송을 시작할 때까지도 확정된 리스트는커녕 당장 그 다음주에는 무엇을 할지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물론, 매주 작품을 찾아 뛰어야 했다. 사정은 지금도 비슷하다. <카인의 후예> <명동 나그네>까지 7월 리스트는 정해져 있지만 8월엔 어떤 작품들을 할지 아직 확정하지 못했다. 왜 <마부>였나. = 일단, 많이 알려진 작품이었다. 사실 처음엔 <김약국집 딸들>을 먼저 하려 했다. 그런데 <김약국집 딸들>은 텔레시네를 해야 해서 방송시간에 맞출 수가 없었다. <마부>는 스탠더드 사이즈였다는 점에서 합격점이었다. 그리고 첫 방송이었기 때문에 좀더 대중적인 작품, 속된 말로 흥행에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마부> 시청률이 2.4% 나왔다. 교육방송 평균 시청률 1%에 비하면 경이로운 수치였다. 격려성 전화, 사례성 전화세례도 빗발쳤다. 공군 예비역 장교 출신이라고 신분을 밝힌 어느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대한독립만세’라도 부르는 것 같았다. “이형(?), 잘했다! 정말 좋다!” 이후로도 시청률 2%대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얼핏 생각하기에 옛날 영화니 나이든 사람들만 볼 것 같지만 실제로 그렇진 않다고.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발견하곤 그 다음부턴 매주 챙겨본다는 젊은 사람들도 많다. 그들의 공통적인 반응은 “60년대 우리 영화, 이렇게 훌륭할 수가 있나요”란다. 전화로 다음주에 뭐하느냐고 물어보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도 많고 심지어 보도자료라도 보내줄 수 없느냐는 요청도 받는다. 제작은 외주업체인 브이투원에서 맡고 있다. 브이투원 윤팔남 PD가 연출을, 이승훈 PD는 기획을 담당한다. 한국영화를 트는 프로그램을 한다는 컨셉을 잡고 외주업체들에 세팅을 맡겼다. 경쟁률 10 대 1. 브이투원이 제출한 기획안은 인터뷰를 뒤에 배치한 포맷이 눈에 확 들어왔다. 대개 외주업체들이 영화 프로그램은 쉽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다. 노하우가 없으면 안 된다. 자료가 잘못된 것도 너무 많은데 그걸 그대로 쓰기 쉽다. 그런 것도 일일이 확인해야 하는 등 쉽지 않은 작업이다. 워낙 자료도 없고. 자료가 그렇게 없었나. =변변히 믿을 수 있는 자료가 없었다. <한국영화 걸작선> 만들면서 딱 3번 놀랐다. “이렇게 영화를 잘 만들었을 수가!” “이렇게 자료가 없을 수가!” “시청자가 이렇게 많이 볼 수가!” 디비디비딥닷컴에 많이 의존했고, 정종화 선생님의 증언도 참조했다. 스크린 뒤의 두 남자 외에 시청자와 직접 마주치는 진행자도 중요했다. 처음에 물망에 올랐던 사람들은 이른바 당시 스타성 있는 사람들. 하지만 발에 맞지 않는 구두를 신은 듯했다. 이승훈 PD는 김홍준 감독을 떠올렸다. 느낌이 통했을까. 어느날 교육방송 부사장이 복도를 스쳐지나가다 툭 던진 말, “진행자 생각했어? 김홍준 감독 어때?” 60, 70년대 한국영화에 조예가 깊은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 더욱 신뢰가 갔다. 김홍준 감독에게는 지난해 10월 부산영화제 때 만나서 운을 뗐더니, “한국영화에 관계되면 무보수라도 돕겠다”고 흔쾌히 승낙했다. 희·로·애·락, 그리고 에피소드들들들 프로그램을 만들다보면 희로애락의 순간들이 쉴새없이 교차한다. <한국영화 걸작선>도 슬프기도 하고, 아찔하기도 했던 순간이 있다. 2월3일 홍성기 감독의 <춘향전>을 방영할 때였다. <춘향전>은 홍성기 감독의 내리막길이 시작된 영화라고 볼 수 있다. 1961년작인데, 개봉 당시 신상옥 감독의 <성춘향>과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다가 흥행에서 실패한 영화다. 2월3일 토요일 12시에 방송되기 직전 감독의 타계소식을 들었다. 김홍준 감독에게 전화가 왔다. 30분 전에 돌아가셨다고. 어떻게 대처했나. = 사실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꼭 인터뷰를 하고 싶었는데 병원에 계셔서 못했다. 그래서 그냥 “쾌유를 빕니다”라는 자막을 집어넣은 상태였다. 급히 그 부분을 자르고 “홍성기 감독이 30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로 대치했다. 사실 조금만 늦게 돌아가셨으면 쾌유를 빕니다로 나갔을 것 아닌가. 돌아가신 분에게. 아찔했다. 오리지널 사이즈를 복원한 것은 정말 뿌듯하다. <맨발의 청춘> <김약국집 딸들> <갯마을> <춘향전> 등 시네마스코프 사이즈를 그대로 방영했다. 왜 위 아래에 검은 띠를 두르느냐 하고 항의하는 시청자들도 있지만, 원작의 분위기, 감독과 촬영감독의 의도를 존중하고자 되도록이면 그대로 방영한다. 필름이 잘린 것도 그대로 내보낸다. 예를 들어 <남과 북>은 원래부터 중간에 1분 넘게 필름이 없다. 검열에서 잘려나간 것이다. 이 부분도 내보냈다. 대신 블랙 부분을 자막 처리했다. 이러이러한 사정으로 블랙으로 나갑니다, 하고. 방영할 때 2대 원칙이 무편집, 무삭제다. 하지만 방송이다보니 불가피하게 어쩔 수 없을 경우가 있다. 원칙을 어긴 경우가 2번 있었는데 <팔도 며느리>와 <공처가 삼대>가 그것이다. 물론 감독이 생존한 경우엔 감독에게 미리 알려 허락을 구한다. 그리고 등급 고지 뒤에 삭제한다는 말을 내보내 시청자들에게도 알린다. 시청자들이 어디가 잘렸는지 알 수 있을까. = <공처가 삼대> 때 홈페이지 게시판에 지난 4월 여성영화제에서 봤다며 어떤 분이 글을 올렸다. “두 장면이 삭제되었는데, 잠을 자다 깬 신성일씨가 꼬마 삼촌을 발견하고 아내를 깨워 꼬마 삼촌을 바닥으로 옮겨놓고 아내와 침대에 드는 장면에서 삼촌의 잠꼬대에 놀라고 나서도 정사장면이 계속 이어지는데, 이 부분이 약간 잘린 듯하고요…, 남자들이 여관방에 모여 있을 때 혼자 빠져나온 신성일씨가 아내를 공원으로 끌고가 싸우다가 화해하고 여관에 간 장면에서도 둘의 정사를 의미하는 부분이 약간 삭제된 듯해 보입니다”라고. 정확했다. 가슴이 서늘했다. 시청자들 중에는 녹화하는 사람도 많다.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러닝타임이 정확하지 않아 녹화하다가 테이프가 끊겼다고 항의하는 글들도 눈에 띄며, 자신이 녹화한 영화들의 목록을 줄줄이 적고 미처 녹화하지 못한 것과 교환하자고 제의한 열혈 시청자도 있다. 그중 청운양로원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한다는 네티즌 김승희씨는 자료를 검색하다 우연히 <한국영화 걸작선>을 발견하고 보게 되었다면서, “… 물론 영화를 사랑하시고 공부하시는 분들에게도 반가운 일이지만 저희 양로원 어르신들에게도 매우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어르신들이 잘 아는 옛 배우들이 화면에 나오자 너무너무 좋아하셨어요”라는 가슴 한구석이 짜해지는 글을 올렸다. 어떤 영화를 방영해달라는 요청 방식도 가지가지다. ‘극장장(이승훈 PD의 아이디)님 멋쟁이’ 운운하는 애교파, ‘안 해주면 굶어죽겠다’는 협박파도 있다. 제작과정 A to Z 대본 작가는 따로 없다. 이승훈 PD는 예전에 <시네마 천국> 시절에도 영화 마니아 중에서 작가를 선별해 썼고, 따로 작가를 두지 않았다. <한국영화 걸작선> 대본은 윤팔남 PD가 전담한다. 수급상황 등을 고려해 다음주에 상영할 영화를 정하면 먼저 테이프를 보고 이승훈 PD와 회의를 한다. 예를 들어 <고교 우량아>의 경우 누구를 인터뷰할까, 주연배우인 이승현, 김정훈씨는 어떨까. 각본을 쓴 윤삼육 작가는 어떨까, 둘 다 하자. 그렇게 해서 7월15일 밤, 시청자들은 70년대 상황과 <고교 얄개> 시리즈 등 당시 유행하던 하이틴영화는 70년대 억압된 현실에 해방되는 판타지였음을 김홍준 감독의 입을 통해 들었다. 그리고 “<고교 얄개>의 엄청난 흥행에 고무된 제작사에서 <고교 얄개2>를 준비하고 있던 중에, 다른 영화사(삼양)에서 원작자 조흔파 선생, 석래명 감독, 윤삼육 작가를 스카우트해 가버린 거야. 이에 놀란 연방은 작가를 다시 스카우트해 와 <고교 우량아>를 만들었지. 감독과 원작자는 포기하고 대신 캐스팅을 그대로 가는 선에서 아쉬운대로. 그래서 이승현, 김정훈이 그대로 캐스팅되어 갔지.” <고교 우량아>와 관련된 에피소드는 윤삼육 작가가 들려줬다. 7월 마지막주에는 <명동 나그네>를 방영할 예정인데, 조영남씨가 신성일씨 흉내내면서 노래하는 장면이 나오니, 조영남씨를 섭외하면 어떨까 이야기하고 있다고. 이 PD와 김홍준 감독에게도 VHS 테이프를 복사해서 미리 준다. 그리고 대본을 작성하고, 촬영장에서 슛 들어가기 전에 다시 디테일한 부분에 대해 의견을 나눈다. 이승훈 PD는 <한국영화 걸작선> 잘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저 불씨를 댕긴 것뿐이다. 좋은 점이 있다면 한국영화사에 DVD나 책 등 자료출시 기회를 열었다는 것이다. 그것으로 족하다”라고 말한다. 앞으로 하고 싶은 작품들은 60년대 모더니스트인 이성구 감독, 60년대 코미디영화의 대가 이봉래 감독, 그리고 <서울의 지붕 밑>을 만든 이형표 감독 등이다. 김기영 감독 작품은 방영 요청도 많고, 가장 하고 싶은 감독인데 여러 가지 제약이 많아 못 하고 있다. 방영시간과 심의등급이란 걸림돌도, 작품 화질과 음질이 안 좋은 것도 모두 안타깝다고. 불씨를 댕겼다, 불꽃이 타올랐다 몇 사람이 댕긴 한알의 불씨가 어떤 불꽃으로 타오를지 <한국영화 걸작선>을 시작할 때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교육방송 내부의 평가대로 ‘50대 후반 이후 장년층의 20, 30대 때의 잃어버렸던 문화를 되찾아줬다’는 데에는 누구도 의의를 달지 않을 듯하다. 물론 더러 ‘걸작선’이라는 이름이 무거운 듯한 영화도 있고, 지금 감각으로만 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 영화도 있다. 그러나 그 모습이 ‘초라’해 보일지라도, <한국영화 걸작선>은 그동안 잊혀졌던 지난 시대의 한국영화들이 오늘의 관객과 수인사를 했다는 점만으로도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21세기 충무로가 향유하고 있는 ‘한국영화 르네상스’의 아버지 어머니가 거기 있었고, <한국영화 걸작선>이 잃어버렸던 그때를 복원했다면, 한국영화 미학의 젖줄을 다시 발견했다면 지나친 평가일까. 글 위정훈 기자 oscarl@hani.co.kr·사진 손홍주 기자 lightson@hani.co.kr디자인 한정연 han7329@hani.co.kr ▶ <한국영화 걸작선>을 만드는 사람들 ▶ <한국영화 걸작선>이 발굴한 영화, 영화인 ▶ 판권을 찾아서

김희선, 중국 CF `송신`

한국의 인기배우 김희선(24·사진)씨가 `한류'를 타고 중국 휴대폰 광고모델로 나선다. 중국 유명 이동통신업체인 TCL은 베이징에서 김희선씨와 광고계약을 맺고 시내 중국대반점에서 기자회견을 했다고 중국 언론이 31일 보도했다. 중국의 최대 관영 는 이번달 중순부터 김씨를 광고모델로 한 TCL 광고를 방영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광고는 중국의 유명 영화감독인 장이모 감독이 연출했으며, 김희선은 2년간 CF 모델료 등으로 약 1천만위안(약 16억원)을 받게 된다고 중국 언론들이 전했다. 김희선씨의 이런 행운은 최근 중국에서 김씨가 출연한 영화 <비천무>가 선보인데다, 텔레비전 드라마 <토마토> <미스터 Q> 등이 중국에서 방영돼 인기가 상승한데 따른 것이다.

포켓몬스터2, 11일 개봉

1999년 주간지 <타임>이 올해의 인물로 포켓몬스터를 뽑았을 때, 어른들은 아이들을 사로잡은 이 형형색색 캐릭터가 지닌 힘에 놀랐다. 뺨에 있는 주머니에서 전기를 뿜어내는 노란색 앙증맞은 피카츄나 말하는 고양이 나옹 등 150여가지 포켓몬은 각자 능력을 지니고 진화해 더 발전된 포켓몬으로 자라나면서 사람들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생명체였다. 캐릭터, 게임, 텔레비전 연작, 카드놀이 등 엄청난 돈을 벌어들인 이 문화산업의 역군은 영화에서도 대박을 터뜨렸다. 지난해 극장판 <뮤츠의 역습>을 선보였던 포켓몬스터가 올 여름방학에 2편 <루기아의 환생>으로 돌아왔다. 포켓몬 트레이너인 지우가 포켓몬들과 함께 멸망 직전의 세상을 구하는 과정이 컴퓨터 그래픽 등으로 한층 진화한 화면을 보여준다. 바다의 신 루기아, 불의 신 파이어, 번개의 신 썬더, 얼음의 신 프리져 등 환상적인 포켓몬들의 싸움이 볼 만하다. 정재숙 기자jjs@hani.co.kr

단편영화 만들기

#Scene 6 감독의 위치를 확고하게 하라 며칠 전 어느 청소년영화캠프의 강사로 아이들과 함께 4박5일간 영화를 찍고 왔다. 그곳에서 아이들과 영화를 만들면서 느낀 가장 큰 문제점은 아이들이 모두 감독이었던 점이다. 한명의 연출자를 정해서 그 아이의 진두진휘 아래 일이 진행되는 게 아니고, 영화 촬영장에서 토론하고, 말싸움하고, 영화는 대체 누가 찍고 있는지…. 난 어떤 조보다 많은 시간을 PRE-PRODUCTION에 투자하도록 아이들에게 가르쳤지만, 아이들은 정작 촬영 때는 준비했던 사항들을 잊어버리고, 다들 각자의 영화를 만들고 있었다. 옛말이 틀린 게 없다고, 정말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그러나 이 문제는 많은 단편영화 현장에서도 비일비재한 일이다. 이 아이들이 어려서라기보다는 누구나 이 아이들 같은 맘이다. 극장에서 영화를 친구들과 함께 봐도 누구는 좋다고 하고, 누구는 싫다고 하는데 영화를 찍을 때 그 영화를 바라보는 시각이 각자 얼마나 다르고 다양하겠는가? 여기 감독의 역량과 위치가 정해진다. 감독은 괜히 감독이 아니다. 이 모든 것을 진두진휘하고 진행시켜나가야 한다. 그렇다고 고함을 질러가면서 악을 써가면서 사람들을 몰아세우라는게 아니다. 모든 사람에게 감독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그들이 이해하고 함께 갈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서 스토리보드가 중요한 것이다. 난 항상 스토리보드를 모든 스탭에게 쥐어주고 다음 찍을 게 무슨 장면인지를 말해준다. 그러면 모든 스탭들이 그 장면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리고 다음 장면은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를 알고 각자의 일을 해나갈 수 있다. 감독이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해나가고 있어야만, 다른 스탭들도 자신의 일에 몰두할 수 있게 된다. 한번 장편영화의 엔딩크레디트를 보라. 그 많은 사람들은 각자 매우 중요한 역할이다. 그 모든 사람들이 함께 감독의 생각을 읽고 배를 저어가는 것과 감독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각자 배를 저어가는 것과 어느 배가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겠는가? 감독의 권위는 스탭들에게 얼마큼 이해받는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쉰들러 리스트>를 만들 때 폴란드에서 9일간 잠을 자지 않았다고 한다. 촬영이 끝나고 나면 그날 촬영본 러시필름을 바로 뽑아서 자신의 스틴벡에 앉아서 밤새 편집을 해보고는 다음날 촬영계획과 함께 추가로 어제의 모자란 부분을 촬영했다고 한다. 이런 감독에게 어떤 스탭이 헌신하지 않겠는가? 아무리 현장에서 친절하고 스탭들에게 잘해주더라도 소용없다. 영화가 엉망으로 나오면 어느 누구도 당신을 감독이라 부르지도 다시 함께하지도 않을 것이다. 난 그 점을 항상 기억하려 한다. 마지막 시사회날 스탭들의 만족스럽고 기뻐하는 표정. 난 그 모습을 위해 영화를 찍을 때 악을 쓰고 찍는다. 그런 모습이 바로 감독의 권위를 찾아가고 스탭간에 서로 하나가 되는 길인 것 같다. #Scene 7 찍은 필름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어봐라 난 집에 있는 잡지들의 멋진 사진이나 그림들을 잘라서 모으는 것을 즐기곤 한다. 그리고 그 여러 사진들을 이리저리 잘라서 붙여보곤 한다. 그 중에 하나는 영화 <터미네이터> 레이저디스크의 재킷사진을 복사한 것에다가 모청바지회사의 광고에 쓰인 “WOW∼”라고 적힌 만화 글풍선을 잘라서 붙인 게 있다. 복사한 검은색 거친 ‘터미네이터’의 얼굴에 밝은 노란색 글풍선에 빨간색의 만화스런 글자체의 “WOW∼”가 옆에서 반짝이는 것. 그 그림엔 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듯해서 난 그 그림을 내 책상 앞 창문에 붙여놓았다. 내가 생각할 때 편집이 그런 게 아닌가 생각한다. 영화를 순서와 계획에 맞게 찍고 나면 남는 건 찍은 필름 또는 비디오테이프다. 이젠 그걸 어떻게든 순서를 정해서 이리저리 붙여서 뭔가 하나의 영화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편집은 내 책상 앞 터미네이터 그림처럼 엉뚱한 화면을 연결시켰을 때 묘한 감정과 긴장감을 일으킬 때가 있다. 나의 4번째 창작작업인 편집은 그래서 더욱더 설레는 작업이기도 하다. 혹 당신이 영화를 찍을 돈도 없고, 카메라도 없다고 불평한다면 친구네집 비디오를 빌려와서 당신의 비디오와 연결하여 녹화 버튼과 일시정지 버튼을 쉼없이 눌러가면서 편집연습을 해보라고 말할 것이다. 예전에 군대에서 나를 가르쳐주셨던 중사님이 하신 말씀이 있다. “넌 1년간 편집만 해라. 그 전엔 카메라 찍을 생각도 마. 편집을 하면서 어떤 화면이 편집 때 쓰일 만한 건지 알아두고 나중에 카메라를 들 때 그런 화면을 찍어와∼.” 난 아직도 이 말을 머릿속에 신조처럼 기억하고 있다. 편집을 알아야 무슨 화면이 필요하고, 어떻게 만들어낼지를 알게 된다. 영화를 찍을 돈과 여력이 없다면, 기존에 출시된 영화를 1시간 또는 30분짜리 영화로 재편집해보는 연습을 해보라. 난 군대에서 모특수부대 홍보영화를 찍을 때 찍은 화면이 너무 평범해서 고민하다가 영화 <지 아이 제인>의 몇 장면을 집어넣은 적이 있었다. 그 영화 시사회날 특수부대 대장님의 뿌듯해하던 미소를 난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내 기억으론 얼굴은 한국군이고 다리는 미군들이고, 헬기가 지나가는 5컷이 모두 다른 헬기였던 걸로 기억한다. 좋은 화면들을 볼 줄 알기 시작하면 곧 그런 화면들을 만들 수 있게 될 것이다. 아날로그로 할 것이냐? 디지털로 할 것이냐? 이것이 문제로다∼. 나에게 편집은 개인적인 작업 중의 하나이고, 최종적인 창작단계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편집에 들어가기 전에 가장 떨리고 두렵다. 내가 뭔가 모자라게 찍어온 것은 아닐지 항상 두렵고, 이제까지 스탭들의 노력을 내가 망칠 수도 있는 작업이기에 더욱더 신중해지는 것 같다. 편집은 크게 러프필름을 뽑아서 스틴벡 등의 편집기로 편집하는 아날로그 방식과 촬영한 필름의 키코드를 입힌 키코드 텔레시네를 아비드 등의 디지털 편집기에 입력하여 편집하는 디지털 편집의 두 가지로 나뉜다. 현재는 대개 아비드를 이용한 디지털 편집을 선호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보다 시간을 절약할 수 있고, 디졸브나 오버랩 같은 여러 옵티컬 효과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면서 작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우개 따먹기>도 아비드를 이용한 디지털 편집이 없었다면 부산국제영화제의 데드라인에 맞추지 못했을 것이다. 한 5일간 편집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런 시간의 문제도 있지만, 아이가 누나를 그리워하는 장면에 쓰인 환상장면 등에는 옵티컬 효과만 40개가 넘게 들어가서, 아비드로 옵티컬 효과들을 즉각적으로 프리뷰하지 않았다면 만들 수 없었던 장면이었다. 그리고 지우개 따먹기 시합장면같이 한 프레임 단위로 느낌이 달라지는 장면 등에는 디지털 편집이 효과적이다. 그러나 이광모 감독님의 <아름다운 시절>같이 풀숏이 많은 영화들은 디지털 편집으로는 그 효과를 제대로 보기가 힘들다. 특히 텔레시네한 화면으론 그 화면이 포커스가 맞았는지도 잘 모를 때가 많기 때문에 경제적 사정만 가능하다면 꼭 러프필름을 뽑아보고 체크하여 문제가 없는 화면들만 텔레시네를 해서 디지털로 편집하는 게 효과적일 것이다. 그리고 아직도 스티븐 스필버그는 편집을 스틴벡으로 한다는 사실도 꼭 기억하기 바란다. 필름으로 직접 편집하고 가편집한 것을 영사해가며 모니터하는 것과 29인치 텔레비전에 그것도 주사선의 한쪽만 주사하느라 떡이 된 화면을 보며 모니터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을 테니 말이다. 무엇이든 각각의 장단점은 있으니 자신에게 맞는 편집방식을 선택하길 바란다. #Scene 8 뻔한 음악보단 독창적인 소음이 낫다. 이제 우리에게 다가온 작업이 바로 믹싱이다. 영화를 동시녹음으로 했는가에 따라서 약간의 공정에 차이가 있지만, 동시녹음을 했어도 어차피 소리의 입체감을 위해서 후반 음향작업은 필요하기에 믹싱작업은 중요하다. 믹싱은 크게 ADR이라고 부르는 대사녹음과 FOLLY라고 불리는 효과음 녹음이 추가로 입혀지는 창작작업이다. 그리고 음악도 입혀야 하고, 만약 35mm라면 돌비 스테레오에 맞게 5.1채널로 디자인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구체적인 사항들은 비전공자인 내가 설명하는 것보다 일단, 영화를 찍고 녹음실을 찾아가서 겪어보면서 배우는 게 빠를 것이다. 그러나 믹싱은 이런 기술적인 작업들이 전부가 아니다. 믹싱이 중요한 이유는 소리를 통해서 만들어진 화면에 또다른 창작작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이 만든 단편영화를 보면 음악이 과잉으로 쓰이는 경향을 보이곤 하는데, 그것은 마치 편집에서 앞뒤 장면의 연결이 어색해서 디졸브나 여러 효과들로 어색함을 감추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흔히들 믹싱에 대해서는 영화를 다 찍고 나서 “이제 무슨 음악을 깔아볼까나?” 하는 식으로 접근하곤 하는데 적어도 이 부분에선 어떤 음악을 아니면 음향 등을 쓸지를 찍기 전부터 계산해야 한다. 마틴 스코시즈는 <좋은 친구들>을 찍을 때 주인공이 집에서 나와 차에 타는 장면에서 실제 믹싱에 쓸 음악을 틀어놓고 촬영했다고 한다. 먼저 생각한 것을 기본으로 하고, 그것에 덧붙여서 더 좋은 음악과 음향을 쓰는 것과 그저 좋은 음악들만 열거하듯 풀어놓은 것은 누가 생각해도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때로는 뻔한 음악보다는 생생한 실제음들을 활용하는 것도 좋다. 얼마 전에 풀장이 있는 건물 앞을 지나가다가 풀장에서 들려오는 소음들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공간에서 울려퍼지는 사람들의 노는 소음들이 매우 몽환적으로 들려서 이 음을 따다가 살인마가 사람을 죽이는 장면에 피해자의 신음소리로 넣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처럼 어떤 실제의 음들은 다르게 적용하고 차용하면 어떤 음악보다 효과적으로 쓰일 수가 있다. 잊지 말아야 할 사항은 촬영이 끝났다고, 편집이 끝났다고 창작의 고민에서 해방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믹싱도 당신의 기발한 아이디어를 기다린다는 걸 잊지 말길 바란다. #Scene 9 아트영화로 찍어서 블록버스터처럼 홍보하라 흔히들 사람들이 <지우개 따먹기>를 기억할 때 함께 생각하는 게 지우개를 나눠줬던 기이한 홍보활동일 것이다. 민동현은 몰라도 <지우개 따먹기>는 알더라. 우리 스탭 중의 한명이 했던 말이 기억난다. 영화는 어떻든 그 태생부터가 사람들과 소통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대개의 창작자들 흔히 처음 영화를 만든 이들은 남들 앞에 쉽게 영화를 못 내놓는 경향이 있다. 바로 자신이 생각했던 영화의 경지에 이르기 전에는 장롱 속에 고이 간직하겠다는 그런 뜻이란다. 뭐 좋다. 그렇게 자신에게 철저해지는 것도 좋지만, 내 생각에는 그 사람은 장롱을 하나 더 사야 할 것이다. 영화를 찍을 때마다 장롱에 보관해야 할 테니 말이다. 영화는 일단 보여져야 한다. 그 작품이 저질이건 고급 예술영화이건 간에 보여져야 그 작품에 대한 평가를 자신 스스로 정의내릴 수가 있다. 난 아직도 <지우개 따먹기>를 혼자 보곤 한다. 이유는 어떻게든 내가 부족했던 부분들을 다시 상기시키기 위해서이다. 영화제를 가보면 자신의 작품이 상영되는 것을 보지 않는 감독들이 있는데 난 어떻게든지 내 영화가 상영될 때는 관객과 함께 있는다. 영화를 보는 게 아니고 관객을 보기 위해서다. 어떤 때 웃는지, 어떤 때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보고, 내 스스로 평가를 내리고 공부를 하는 것이다. <지우개 따먹기>도 이탈리아에서 상영할 때와 노르웨이에서 상영할 때 서로 관객의 반응이 달랐다. 그러나 두 나라에서 본 사람들이 지적한 문제점은 내가 이미 알고 있었고, 그것만은 남들이 몰라주길 바랐던 창피한 부분이었다. 난 그 관객에게 그런 반응과 질타들을 들으면서 더욱더 커나갈 수 있는 것이다. 지금 당신의 영화는 장롱에서 들어가기도 힘들지 모른다. 그럴 가치조차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기억하라! 당신은 결코 지금의 모습에 만족하거나 멈춰 있을 사람이 아니다. 더 좋은 영화를 만들고, 날 감동시킬 그런 감독이 될 사람이다. 보여주자∼. 그리고 알리자! 돈도 한푼 못 받아가면서 끼니도 걸러가면서 나의 스탭들이 헌신해준 이유는 무엇인가? 함께한 영화를 관객과 만나고 세상과 만나게 하려는 거다. 그리고 더욱더 좋은 모습으로 성장한 모습으로 서로서로 함께 밀어주고 이끌어주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단편을 지속적으로 찍으려는 이유이다. 영화를 최대한 홍보하자! 영화제는 많다. 영화제에서 꼭 상을 타거나 본선에 진출해야 하는 건 아니다. 영화제는 그저 패션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상영할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나에게 영화제가 중요한 것은 그저 관객과 소통할 유일한 출구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만약 영화제에 가게 되었다면 문방구에서 색지라도 사서 거기에 당신의 영화제목과 상영날짜와 못 그리는 그림이라도 아니면 영화스틸이라도 붙여서 곳곳에 붙여라! 그것이 당신을 성장시키고 단련시킬 선생들을 극장으로 불러모을 테니 말이다. #Scene 10 에필로그: 이제 자기만의 작업방식을 찾아가라 이제까지 내가 말한 사항들은 처음 영화를 시작하려는 사람에게 편하게 이야기하고픈 사항들이었다. 모든 사람은 각각 생각과 느낌이 다르듯 어느 누구처럼 살아가거나 영화를 찍을 순 없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영화 작업방식을 찾아가는 것이다. 나의 방식들은 그저 당신이 영화로 뛰어들어가게 만들 수 있는 단초에 불과하다.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영화엔 무수히 많은 공정들이 있고, 복잡다단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 모든 공정들은 직접 영화 한편을 만들기 시작하면 어떻게든 부딪쳐서 극복하게 되어 있다. 중요한 것은 무식하게 일을 벌려보는 용기다. 지금 자신이 처해 있는 현실에서 우선 영화를 아니 영화라고 불리지 않아도 좋다. 잡지라도 잘라서 이어 붙여보면 된다. 뭔가 자신 안에서 밖으로 표출하고자 하는 것을 담아두지 말고 뿜어내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하다. 당신의 아름답고 도발적인 영화인생에 작은 보탬이 되었기를 바라면서 이 모자란 글을 마감한다. 민동현/ 단편 <지우개 따먹기> <외계의 제19호 계획> 감독 ▶ 이렇게 하면 누구나 민동현만큼 만들 수 있다 (1) ▶ 이렇게 하면 누구나 민동현만큼 만들 수 있다 (2) ▶ 카메라 장만부터 워크숍까지

카메라 장만부터 워크숍까지

카메라 구입·대여 6mm: 6mm 디지털카메라의 경우 가격대별로 다양한 것들이 있다. 400만원대 캐논 DM-XL1, 300만원대 소니 DCR-VX2000, 200만원대 소니 DCR-TRV30, TRV900, 100만원대 파나소닉 PV-DV200, 캐논 ZR10 등. 전문가용인 소니 VX시리즈는 좋은 화질을, 일반소비자용으로 나온 TRV시리즈는 여러 가지 화면연출의 기능을 특징으로 한다. 각종 영화 관련 인터넷 사이트의 게시판(영화과 게시판, 영진위 게시판 등)을 수시로 살펴보면 저렴한 가격으로 중고 디지털카메라를 내놓은 사람과 연결될 수도 있다. 16mm: 16mm 카메라는 대여해서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방배동의 동우필름(02-595-7964), 동대입구의 신성사(02-2266-2043), 세운상가 근처의 진영사(02-2275-9925) 등에서 대여할 수 있다. 대여료는 동시녹음이 되는 아리플렉스 16BL의 경우 카메라 상태에 따라 1일 12∼14만원, 최상급 카메라인 아리플렉스 SR시리즈는 1일 30∼50만원이다. 동시녹음이 되지 않는 아리플렉스 ST는 10만원, 캐논 스쿠픽은 5만원 등 좀더 저렴한 가격으로 대여가 된다. 테이프·필름 구입 6mm 테이프: 종로4가 세운상가나 남대문 숭례문 수입상가, 미디어포트 등 인터넷 사이트에서 살 수 있다. 가격은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60분짜리의 경우 6천원 내지 6500원. 소니와 TDK의 제품이 있다. 16mm 필름: 태창엠피필름(02-516-4575), 신성사, 대성필름(02-508-4387), 코닥프로센터(02-2277-1356) 등에서 코닥필름을 살 수 있고, 후지포토살롱(02-2266-3722), 후지필름 본사(02-3281-7700), 윤필름(02-511-5641) 등에서 후지필름을 살 수 있다. 가격은 코닥의 경우 100피트 1롤에 3만원대이고, 후지는 2만원대다. 감도에 따라 여러 가지 종류의 필름이 있다. 조명기 대여 조명기는 동우필름, 신성사 등에서 대여할 수 있다. 동우필름에서는 텅스텐 조명기의 경우 1kW 이하는 1만원, 2kW 2만원, 5kW 5만원에 대여하며, 극영화제작에 주로 쓰는 HMI 조명기는 4kW일 경우 1일 20만원에 대여하고 있다. 신성사에서는 텅스텐 조명기의 일종인 요소라이트를 1일 1만원에, 주피터라이트를 1일 2만원에 대여한다. 구입을 하여 쓸 경우, 동경조명 혹은 세트스토어를 이용할 수 있다. 동경조명에서는 요소라이트를 30만원, 주피터라이트를 20만원 정도에 판매하고 있다. SMG(3141-1675)는 KINO FLO 전문업체로, 200만원대의 조명기를 1일 10만원에 대여하고 있다. 편집실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한 경우: 6mm 데크 2개를 가지고 하는 방법, 프리미어, 파이널 컷 프로 등 편집프로그램이 깔린 사양높은 컴퓨터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프리미어나 파이널 컷 프로가 깔린 컴퓨터를 시간당 요금을 내고 이용할 수 있는 곳으로 대학로에 있는 채널인의 e-cafe(02-747-0108)와 흥국생명 빌딩 내 일주아트하우스 스튜디오(02-2002-7779)가 있다. e-cafe는 시간당 5천원이고 일주아트하우스는 이용내역에 따라 3천 혹은 5천원을 받는다. e-cafe는 프리미어 5.1이 깔린 컴퓨터 14대와 RT, 랩터 등 캡처보드를 갖추고 있다. 렉스, 랩터, 매킨토시 G4, 아날로그 자막기 등을 갖추고 있는 일주아트하우스에서는 1년에 한번씩 영상작가들이 시설을 1년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지원작가프로그램도 실시한다. 16mm 필름으로 촬영한 경우: 일반편집실에 맡겨 아비드편집을 하거나 현상소 등에 있는 스틴벡 수동편집기로 편집할 수 있다. 아비드편집을 해주는 고임표편집실(3448-0062)의 경우 동시녹음 사운드 매칭, 러시편집, 네가커팅을 모두 포함하여 10분짜리 필름편집에 50만원을 받는다. 텔레시네를 하여 프리미어나 파이널 컷 프로로 동영상편집을 한 뒤 이를 편집실에 맡겨 아비드로 컷 일련번호를 내고 네가커팅을 할 수도 있다. 박곡지편집실(02-3442-7216), 이경자편집실(2279-5732) 등에서 16mm 작업을 해준다. 녹음장비 대여 및 믹싱 녹음은 동시녹음을 하는가 후시녹음을 하는가에 따라 비용의 차이가 많다. 동시녹음 장비는 보통 전문가가 장비를 가지고 나와 일을 하는데, 이에 1일당 15만원 내지 20만원의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장비만 대여해주는 곳으로는 동우필름이 있다. DAT(디지털오디오테이프)를 이용한 동시녹음과 믹싱을 전문으로 하는 사운드퍼퓸(02-517-5604)의 경우, 학교나 단체의 장비를 쓰는 학생들에게 장비 다루는 법을 설명해주기도 한다. 비전문가가 동시녹음을 했을 때, 나중에 쓸 수 없는 상태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믹싱비용은 10분당 50만원. 영동사거리 부근에 있는 동양녹음실(02-517-5006)은 광학녹음을 포함하여 10분당 40만원이라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을 받는다. 비디오를 떠오거나 필름 자체로 갖고 오거나 모두 작업해주는 장점이 있다. 동시녹음 장비를 구하는 게 여의치 않을 경우 마이크가 내장된 디지털카메라에 붐마이크를 연결하여 동시녹음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동시녹음 장비를 쓰는 것에 비해 음질이 떨어지므로, 보통 후시녹음을 염두에 둔 상태에서 소리를 따놓는 용도로 쓰인다. 일반적으로 녹음실에서 후시녹음을 하는 데 드는 비용은 1분에 4만원이다. 한양녹음실(02-752-1246), 돌코녹음실(02-783-1573), 사운드스케치(02-514-3750), M&M(02-793-0401), 영진위 녹음실(0346-579-0652). 남양주시에 있는 영진위 녹음실은 영화과 학생에게 50% 할인을 해준다. 현상 및 색보정 서울역 부근의 세방현상소(02-392-0066), 방배동의 제일현상소(02-523-3390), 잠원동의 서울현상소(02-516-8031), 선릉역 부근의 헐리우드 현상소(02-555-7300), 영진위 현상소(02-958-7500+4) 등에서 현상과 색보정작업을 해준다. 영진위 현상소의 경우 네가현상은 피트당 120원, 프린트현상은 피트당 100원을 받는다. 사운드를 입히는 데에는 피트당 100원이다. 예를 들어 10분짜리(900피트) 단편을 만드는 데 3000피트의 필름을 썼을 경우 54만원이 드는 셈이다. 현상을 맡기면 색보정은 보통 그냥 해준다. 텔레시네 및 키네코 필름을 비디오테이프로 전환하는 텔레시네는 삼성역 근처의 무비라인(02-539-1110), 마포역 근처의 A&D(02-715-4011) 등을 이용하면 된다. 비용은 무비라인의 경우 10분당 10만원, A&D는 10분당 6만원선이다. 디지털을 필름으로 전환하는 키네코작업은 양재동에 있는 디엔비필름(02-589-0044)에서 하면 된다. 비용은 1분당 15만원. 키네코작업에다가 외부업체와 연결하여 현상과 프린트까지 해주는데 10분 기준으로 200만원이다. 학기 초인 3월과 9월에는 키네코비 15만원을 12만원으로 할인해주는 선불쿠폰을 판매한다. 키네코작업 시간은 10분을 기준으로 했을 때 1주일. 전체 작업은 10분 기준 약 2주 정도면 된다. 단편영화제작 워크숍 독립영화협의회(02-2237-0334)에서는 매년 6회 3개월 과정의 워크숍을 시작한다. 워크숍은 원칙적으로는 3개월 과정이나, 최근에는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4개월 정도로 기간이 지연되기도 한다. 회비는 기초이론교육 및 정해진 시나리오로 6mm 실습을 하는 1차실습, 창작시나리오로 6mm 실습을 하는 2차실습까지 35만원, 16mm 작품제작을 하는 3차실습 이후로는 30만원의 회비를 받는다. 1인당 200피트의 필름과 조별로 40만원의 녹음비, 카메라와 아날로그 편집기를 제공한다. 독립영화협의회에서는 워크숍과 별도로, 기자재 지원과 완성 뒤 상영까지를 포함하는 ‘열린영화제’를 열기도 한다. 전혀 포트폴리오가 없는 초보자도 서류심사를 통해 공모에 응할 수 있다. 선정되면, 독립영화협의회가 가지고 있는 장비들, 프랑스제 동시녹음카메라인 ‘에클레어’나 아날로그 편집기 등을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을 받으며, 필름쿠폰도 제공받는다. 한겨레문화센터에서는 6개월 과정의 영화제작학교와 1년 과정의 영화연출학교를 개설해놓고 있다. 지난 2월부터 3월에 걸쳐서는 디지털영화제작의 전 과정을 배울 수 있는 워크숍을 열기도 했다. 한겨레영화학교의 가장 전문적이고 집중적인 코스인 영화연출학교는 1년간 3개학기에 걸쳐 영화개론, 시나리오 창작, 촬영, 영화사, 연출론, 디지털비디오 실습 및 필름 실습 등 9개과목을 강의 및 실습한다. 현역 감독과 스탭들이 직접 지도하는 것이 특징이다. 영화제작학교는 직장인이나 학생도 참여할 수 있도록 평일 저녁과 토요일에, 영화연출학교는 좀더 집중적으로 1주일에 3일 평일에 강의가 있다. 그 밖에 영화제작을 배울 수 있는 곳으로 다음과 같은 곳이 있다. 서울필름아카데미(566-6176): 3개월 과정의 16mm 영화제작코스가 있다. 이론 및 실습과정인 1단계는 49만원, 제작과정인 2단계는 34만원의 회비를 분납받는다. 2달짜리 디지털편집워크숍에서는 디지털편집 시스템을 익힌다. 전주국제영화제 디지털워크숍(063-255-3800): 기초반인 열린 강좌는 1개월코스에 10만원의 회비를 받고, 완성된 작품을 자체상영한다. 숙련반인 전문강좌는 4개월 코스에 30만원을 받고, 전주국제영화제 때 작품이 상영된다. 모두 6mm 디지털작업이다. 네오영화아카데미(02-422-5009): 1년짜리 영화제작 코스가 있다(www.neofilm.co.kr 참조). 영화의 공개장소, 영화제 완성된 작품이 관객을 만날 수 있도록 여러 단편영화제들이 열리고 있다. 매년 5월 경 인디포럼(02-595-6002), 겨울에는 한국독립단편영화제(02-334-3166)가 열리며, 디지털영화만을 상영하는 레스페스트(02-3275-3747)와 서울넷페스티벌(02-325-4095)도 있다. 이 밖에도 부산국제영화제(02-3675-5097), 전주국제영화제(0652-255-3800),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032-345-6313), 서울여성영화제(02-541-3917) 등에서 단편섹션을 두고 있으며, 단편작품만을 대상으로 하는 부산아시아단편영화제(051-622-0048)도 있다. 고등학생일 경우 고딩영화제(02-2238-8753), 혹은 초·중·고생의 작품을 두루 받는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02-755-6712)에도 출품할 수 있다. 6mm나 8mm 캠코더로 찍은 작품만을 대상으로 하는 십만원비디오영화제(02-333-3995)도 있다. ▶ 이렇게 하면 누구나 민동현만큼 만들 수 있다 (1) ▶ 이렇게 하면 누구나 민동현만큼 만들 수 있다 (2) ▶ 카메라 장만부터 워크숍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