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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2003)

SBS 새 주말드라마 ‘백만장자와 결혼하기’ 26일 시작

‘짝퉁’ 두 남녀의 ‘진짜’ 사랑찾기 2년 전 폭스TV 리얼리티쇼 모티브 삼아 2003년 미국에서는 폭스티브이가 제작한 <백만장자와 결혼하기>라는 리얼리티쇼가 화제가 됐었다. ‘가난한 남자가 백만장자를 가장해 자신의 배필을 찾는다’는 내용의 이 오락 쇼는 국내 한 케이블 방송사를 통해 우리나라에도 소개됐다. 에스비에스가 이 리얼리티쇼를 모티브로 삼은 드라마를 방송한다. 주말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 후속으로 26일부터 시작되는 <백만장자와 결혼하기>(극본 김이영, 연출 강신효)가 그 드라마. <백만장자와 결혼하기>는 중학교 동창인 평범한 남녀가 우연히 ‘백만장자’ 리얼리티쇼에 출연하면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다루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김영훈은 가난한데다 머리도 나쁘지만 인물 하나는 잘생긴 꽃미남이다. 마음씨도 착하다. 이런 영훈에게 방송국에서 텔레비전 리얼리티쇼에 나와 가짜 백만장자 노릇을 해달라는 제안이 온다. 영훈이 가짜 백만장자로 나선 이 리얼리티쇼에 영훈의 중학교 동창이자 첫사랑이었던 한은영이 후보 여성으로 출연한다. 은영은 영훈이 공부도 못하고 가난했던 게 못마땅하지만 백만장자가 된 영훈에게 마음이 흔들린다. 영훈은 이 쇼에서 빼어난 미모의 여성 후보들을 제치고 볼품없는 은영을 파트너로 선택한다. 영훈의 선택을 받은 은영은 “영훈이 가짜라도 그를 좋아한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영훈이 가짜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은영은 이 프로가 끝나자 영훈을 차갑게 외면한다. 그런데 이 두 남녀 주위에 진짜 왕자와 공주가 나타나면서 애정 구도가 복잡해진다. 명문가의 아들에 사시 합격, 판사 출신의 화려한 경력을 지닌 이 프로그램 피디 유진하는 솔직하고 용감한 은영에게 사랑을 느낀다. 영훈에게 연기 지도를 해주던 배우이자 방송사 사주의 딸 정수민도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선 목숨까지도 내놓을 정도로 우직한 영훈에게 조금씩 마음이 빼앗긴다. 이 두 왕자와 공주의 애정 공세가 시작되면서 주인공들 사이에 복잡한 애정 구도가 펼쳐진다. 에스비에스 <토지>에서 최서희 역을 연기했던 김현주가 평범한 외모에 생활력 강한 계약직 은행원 한은영 역을 맡았다. 가난하지만 착한 남자 김영훈 역에는 에스비에스 <그린로즈>, 영화 <썸>의 고수가 캐스팅됐다. 또 유진하 피디 역은 신인 연기자 윤상현이, 배우 정수민 역은 손태영이 맡는다. 제작진은 10월 중순 프랑스 보르도 인근의 한 성에서 리얼리티쇼 제작과정을 촬영했다. 고성을 배경으로 한 화려한 영상은 3회부터 7회까지 그려진다. 일부에선 이 드라마가 호화로운 데이트 장면이 등장하고 드라마 제목에도 ‘백만장자’가 들어가 시청자들에게 자칫 위화감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연출을 맡은 강신효 피디는 “‘짝퉁’ 신데렐라와 개구리 왕자의 진실한 사랑 찾기를 다룰 예정”이라며,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사랑 이야기를 단막극이 아닌 미니시리즈로 풀기 위해 리얼리티쇼 등의 장치를 도입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주인공들은 친숙한 이웃 같은 이미지를 전할 것”이라며, “다른 미니시리즈에 견줘 주인공 주변의 인물을 많이 등장시켜 가족 이야기도 풍성하게 다룰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탐정과 의뢰인이 같은 기이한 추리소설, <이터널 선샤인>

배우 짐 캐리가 일련의 영화들에 출연하면서 다듬어온 고유의 페르소나는 영화라고 하는 픽션 속에 구축된 또 다른 픽션과의 관계를 통해 정의되는 경향이 있다. 편의상 여기서 전자의 것을 일차적 픽션, 후자의 것을 이차적 픽션이라고 해두자. 결론을 앞서 말해두자면 자신의 영화 속에서 짐 캐리는 많은 경우 ‘이차적 픽션의 수인(囚人)’으로 등장한다. 상업적인 코미디물인 <에이스 벤츄라> 같은 작품이건 좀더 진지하고 반성적 자의식이 두드러진 <맨 온 더 문> 같은 작품이건 마찬가지다. 물론 미셸 공드리-찰리 카우프만의 필모그래피 내에서 <이터널 선샤인>을 살펴보고 위치짓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겠지만, 짐 캐리라는 배우의 필모그래피를 가로질러가며 그의 페르소나를 꼼꼼히 살펴보다보면 <이터널 선샤인>이 왜 (독창적이라기보다는) ‘영리한’ 영화라 불릴 수 있는 작품인지가 명확히 드러난다. 이차적 픽션=현실적 픽션의 경우 짐 캐리의 영화들은 각각의 작품에서 구축된 이차적 픽션의 성격에 따라 크게 두개의 범주로 나누어 생각해볼 수 있다. 픽션 속에 구축된 또 다른 픽션이라고 말할 때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짐 캐리 주연의 영화는 피터 위어의 <트루먼 쇼>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가 실은 텔레비전 생방송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위한 거대한 세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는 주인공 트루먼은 분명 영화라는 픽션 속의 또 다른 픽션, 즉 이차적 픽션에 사로잡힌 수인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 같다. 물론 1990년대 할리우드에서 쏟아져나온 일련의 영화들- 즉 <토탈 리콜> <사랑의 블랙홀> <12 몽키즈> <다크 시티> <13층> 그리고 <매트릭스> 등등- 이 다양한 이차적 픽션의 수인들을 묘사하고 있으며 <트루먼 쇼>가 이들 영화와의 관련하에 논의될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여기서 해묵은 이야기를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더이상 세계에 저항할 수 없을 때 세계 자체를 픽션화하고 그 세계-픽션으로부터 도주를 꿈꾸는 자를 영웅화하는 픽션은, 내가 보기엔 참으로 미심쩍은 이데올로기의 발현이라고밖에는 생각되지 않는다는 점만 덧붙여둔다. 여하간 <트루먼 쇼>에서는 이차적 픽션이 일종의 가상현실 혹은 ‘현실적 픽션’(realistic fiction)으로 제시되고 있는데 이러한 특징은 짐 캐리 작품군의 첫 번째 범주를 규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현실적 픽션이 거대한 속임수, 반드시 빠져나와야만 하는 기만적 픽션으로서만 묘사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블랙리스트에 오른 할리우드 시나리오 작가 피터가 사고로 기억상실증에 빠져 한 마을 공동체의 실종된 청년 루크로 오인되는 과정이 묘사되는 <마제스틱>을 떠올려보라. 한편으로 <마제스틱>은 현실적 픽션으로서의 이차적 픽션이 소망충족적 판타지의 무대로 기능하는 사례이며 그런 까닭에 짐 캐리 작품군의 두 번째 범주로 넘어가기 위한 징검다리가 된다. 이차적 픽션=과도한 픽션의 경우 짐 캐리 필모그래피의 중추를 이룬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이차적 픽션이 극중 인물의 소망충족적 판타지가 실현되는 대안적인 현실인 동시에 ‘과도한 픽션’(ultra-fiction)으로서 나타나는 경우이다. <마스크> <브루스 올마이티> 그리고 <미, 마이셀프 앤드 아이린> 같은 영화들은 이의 가장 뚜렷한 예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딱히 새로울 것 없는 변신의 모티브를 끌어들이고 있는 이들 작품에서 짐 캐리는 비의지적인 무의식적 욕망의 분출을 ‘과도한 이차적 픽션’(초인이 되거나 아예 신의 자리를 떠맡음)의 도움을 빌려 체험할 수 있게 된다. 짐 캐리가 스스로의 욕망이 아니라 아들의 소망이 실현되는 이차적 픽션의 수인으로 등장하는 <라이어 라이어> 같은 영화는 사소하지만 제법 눈에 띄는 변형의 사례다. 하지만 이 범주에 속하는 영화들 가운데 좀더 흥미로운 것은 현실의 공간을 거의 강박적이라 할 만큼 적극적으로 픽션의 공간으로 전환시키려 시도하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작품들로서, <에이스 벤츄라> <케이블 가이> <맨 온 더 문> 등을 떠올려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영화들과 달리 초자연적 기적! 의 존재가 전혀 눈에 띄지 않는 이들 영화들은 두 번째 범주 내에서 일종의 하위 범주를 이룬다고 말할 수 있다. 그 누구보다 앞서 짐 캐리가 이차적 픽션의 수인에 제격인 배우임을 간파한 톰 섀디악이 <에이스 벤츄라> 이후 <라이어 라이어>나 <브루스 올마이티> 같은 영화로 지루한 제자리걸음을 했을 뿐인 반면, 벤 스틸러와 밀로스 포먼은 과도한 픽션으로서의 이차적 픽션을 바로 그 과도함을 통해 내부로부터 무너뜨릴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들의 영화에서 짐 캐리는 스스로가 강박적으로 창조해낸 픽션의 수인인 것처럼 묘사된다. 즉 여기서의 짐 캐리는 현실적 픽션이나 초자연적인 과도한 픽션으로서 이차적 픽션이 묘사되는 영화들에서와 달리 바로 그 자신이 픽션의 창조자가 되는 것이다. <맨 온 더 문>에서 코미디언 앤디 카우프만을 둘러싼 사람들은 그가 무대 위에서 쉼없이 만들어내는 픽션의 희생자들이자 수혜자가 된다. 세계에 예술을 선사하는 대신 세계 자체를 예술적 픽션으로 뒤덮어버리려 했던 그는, 스스로가 동방의 사기 치료술이라는 또 하나의 픽션에 기만당했음을 깨닫고는 씁쓸한 미소를 띠며 죽어간다. 현실적 픽션+과도한 픽션=<이터널 선샤인> 이상의 논의를 참고로 할 때, <이터널 선샤인>에서의 이차적 픽션은 현실적 픽션과 과도한 픽션이 한데 얽힌 복합체임이 드러난다. 여기서의 이차적 픽션- 컴퓨터 프로그램에 의해 남김없이 삭제되는 주인공 조엘의 연애의 기억- 은 그것이 분명 실제의 체험에 뿌리를 둔 기억이라는 점에선 현실적 픽션이지만 그 기억이 첨단장비의 도움을 빌려 다시 체험될 수 있다는 설정에서는 과도한 픽션의 성격을 띤다. 또한 여기서 초자연적인 힘을 대체하는 것은 과학기술의 힘이며 이는 과도한 픽션의 두 가지 하위 범주의 절묘한 혹은 영리한 결합의 사례에 다름 아니다. 자꾸만 과거로 거슬러올라가는 기억의 여행은 좀더 행복했던 시절로의 회귀를 뜻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결국 기억, 게다가 곧 삭제될 기억이라는 점에서 결코 소망충족적 판타지가 되지 못한다. 게다가 그 기억의 여행은 삭제작업 다음날부터 시작되는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또 한번의 연애에 일찌감치 암울한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이기도 하며 이는 영화의 서사적 구조에 의해 뒷받침된다. <이터널 선샤인>에서의 짐 캐리 역시 그 자신이 픽션의 창조자이자 수인이기도 한 인물이다. 그런데 여기서의 조엘은 조물주와 피조물이 일치하는 세계, 즉 꿈의 세계, 기억의 세계에 붙들린 인물일 뿐 아니라 무엇보다 탐정과 의뢰인이 일치하는 기이한 추리소설의 주인공이다. 사실 기억삭제 전문가들은 기억의 탐색과 제거가 철저하게 이루어지는 것을 돕기 위한 대리인들일 뿐이다. 그렇다면 나의 도주를 가로막는 자, 나의 뒤를 집요하게 뒤쫓는 자가 바로 나 자신일 때 그러한 상황에서의 도주가 도무지 가능하기나 한 것인가? 이렇게 보면 <이터널 선샤인>이 어쩐지 짐 캐리의 이전 영화들에 대한 일종의 ‘메타픽션’(meta-fiction)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편으로 <이터널 선샤인>에서의 이차적 픽션은 한명의 저자가 아닌 여럿에 의해 씌어지는 픽션, 상호작용적 ‘하이퍼픽션’(hyper-fiction)의 구조를 차용하고 있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여기서의 이차적 픽션은 카우프만-공드리의 입장에서라면 메타픽션일 수 있겠지만 주인공 조엘의 입장에서는 ‘과도한 동시에 현실적인 하이퍼픽션’이 되는 것이다. 클레멘타인과의 연애에 얽힌 조엘의 기억을 소재로 삼은 이 하이퍼픽션의 저자에는 비단 조엘뿐만이 아니라 기억 삭제 시술을 행하는 전문가들도 포함된다. 시간을 (정확히는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역순으로 거슬러올라가는 구조를 취하고 있는 이 픽션은 한동안은 전문가들과 그들이 사용하는 유틸리티 프로그램에 의해 지배당하지만 조엘이 어느 순간 기억의 삭제에 저항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좀더 흥미진진한 양상을 띠게 된다. 이 영화에서 가장 기발한 아이디어 가운데 하나는 특정한 기억의 망각에 저항하기 위해 가능한 유일한 방법은 바로 그 기억과 전혀 다른 종류의 기억으로 도피해야 한다는 역설이다. 미리 마련된 기억의 지도를 벗어나는 조엘의 정신적 여정, 자신의 기억 안에서 바로 그 기억에 대해 덧붙이는 조엘 자신의 논평, 그를 다시 원래의 지도 안으로 불러들이는 전문가들의 작업으로 인해 이 픽션은 좌충우돌하게 된다. 그러나 결국 이 픽션은 <트루먼 쇼>의 (하이퍼-)리얼한 픽션이나 <마제스틱>의 현실적 픽션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임이 드러난다. 결국은 빠져나와야 할 아름다운 세계. 다만 그 세계 바깥엔 오직 망각만이 존재할 뿐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하이퍼텍스트란 이미 전통적 텍스트(읽기)에 의해 식민화된 것’일지 모른다는 혹자의 지적을 떠올려본다면, <이터널 선샤인>의 하이퍼픽션은 이미 짐 캐리의 이전 출연작들에 나타난 이차적 픽션들에 의해 식민화되어 있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게다가 기억 삭제 작업 이전의 고백이 담긴 녹취 테이프를 ‘희생자’(?)들에게 애써 되돌려주는 메리의 존재는 <이터널 선샤인>을 감동적일진 모르나 좀 이상한 결론으로 몰고 간다. 백지 위에 다시 씌어질 수도 있었을 신선한 사랑은 이제 백지 위에 남은 흔적과 자국을 애타게 찾아 헤맬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조엘과 클레멘타인이 그들의 사랑이 처음 시작되었던 바다로 가는 건 그 때문이다. 이때 파도와 모래는 불길한 암시일까 사랑의 찬가일까?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김지하의 착각

“얼마 전 유럽에 다녀왔는데, 그쪽 대사들 얘기가 모조리 한류더군요.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을 본 유럽 사람들 말도 한국에는 삼성, LG만 있는 줄 알았더니 문화적으로도 막강하더라는 거였어요. 한류가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로 끝날 것 같지 않고 문학과 학문, 기초예술쪽으로도 이어져 나갈 수 있겠다는 기대가 생겼습니다. 이 책이 기존의 한류 작품들에 더해 미학적 체계가 같이 갈 수 있도록 자극해주는 하나의 힘이 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지난 11월2일, <한겨레>의 인터뷰 기사를 읽는 순간, 나는 눈을 의심했다. 신간 <흰 그늘의 미학을 찾아서>를 펴낸 김지하 시인의 말이었다. 김지하가 누구인가. 한때 무기징역까지 선고받았던 저항시인의 상징 아니던가. 그가 강대국 주도의 현재 세계질서를 추인하는, 이토록 순진한 말들을 늘어놓다니! 이 말들은 세 가지 현상을 언급하고 있다. 첫째, 삼성, LG의 급성장하는 국제적 위상, 둘째,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가 주도하는 한류열풍, 셋째, 문학과 학문, 기초예술의 한류열풍 가능성이다. 그 세 가지 현상은 모두 다 강대국들의 이익을 위해 강대국들의 주도로 벌어지는 지구촌 통합 과정의 부산물들로서, 김 시인이 희망하는 ‘한국 문화 창달’과는 정반대의 흐름에 있는 것이다. 우선 삼성, LG가 세계적 기업으로 도약하고 있는 것은, 지구경제가 신자유주의 체제 안에서 하나로 통합되는 과정에서 파생한 과도기적 현상일 따름이지, 한국 경제성장의 성과일 수는 없다. 오히려 국내에서는 극소수 대기업군의 경제권력 과점이 민주적 정치권력의 무력화(“권력은 시장으로 이미 넘어갔다”- 노무현 대통령)로 이어지는 등 사회문제를 확대하고 있다. 둘째, 대중가요, 텔레비전 드라마가 주도하는 이른바 ‘한류열풍’은 말 그대로 일부 아시아권 국가에 한정된 ‘바람’이지, 영속은 커녕 장기간 지속되리라는 보장도 없다. 벌써부터 중국, 대만 등 일부 국가에서 민족정서에 기반한 반발 움직임을 보이는 등 장기적으로 아시아권 국가와의 관계에서 손해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영화가 뜬다지만, 들여다보면 그것도 허상이다. 3대 영화제를 개최하는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가 할리우드의 독과점에 대항하면서 세력 규합을 위해 아시아권 영화를 의도적으로 키워주고 띄워주다가 생겨난 부수적 혜택이지, 한국영화 자체가 글로벌한 경쟁력을 입증받은 것은 아닌 것이다. 한국영화의 대선진국 수출 실적이 극히 미미하고, 섣부른 선진국 시장(주로 일본) 진출 과정에서 관객 외면을 가속화시킨 예를 보라. 게다가 국민적 관심과 국가적 지원이 영화분야에 집중되면서 문학, 공연예술 등 다른 문화장르가 주변화하고 있는 현상도 그냥 지나칠 대목이 아니다. 우리가 자만심에 도취해서 ‘한류’를 가리키는 손가락들만 쳐다보고 있는 동안, 인구 수에 맞지 않는 수많은 채널을 채우기 위해서 강대국 콘텐츠들이 아무런 심리적 저항없이 압도적인 속도로 한국에 유입되고 있다는 사실도 주목해야 한다. 셋째, 문학, 학문, 기초예술의 ‘한류’는 일어날 가능성이 한없이 제로에 가깝다. 학문, 기초예술의 ‘한류’ 희망은 거의 코미디다. 학문, 기초예술의 모든 ‘처음’은 강대국 천재들이 이미 점령해버렸다. 한국은 황우석 박사의 예처럼 그 ‘처음’에서 뻗어나올 수 있는 가지 중의 극히 잔가지들만 붙들고 잘난 척하고 있는 수준이다. 그나마 바란다면 문학 정도인데, 문화제국주의의 한 갈래인 ‘언어제국주의’ 질서 속에서, 한글이 영어나 불어, 중국어, 일어보다 우월한 지위를 차지할 수 있다고 믿는 나이브한 사람이 있을까. 서강대에서는 청소부마저 영어 가능자를 쓰겠다는 판이고, LG 등 일부 기업과 제주도를 비롯한 일부 지역에서 영어공용화, 상용화를 공공연히 실천하거나 주장하고 있다. 한국 문학이 조금 더 활발하게 번역, 소개될 가능성은 있지만, 이것도 한국 문학의 창달을 향해서라기보다는 영화와 마찬가지로 일부 유럽국가가 영어의 지구 제패에 저항하기 위해 벌이고 있는 문화적 종 다양성 확보 운동에 실효없는 들러리를 서는 격이 되기 십상이다. 현재 세계는 미국 대 유럽연합 양강의 세력 대결 양상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급속도로 신자유주의 체제 안으로 통합되고 있다. 유럽연합에서 보듯이 국가의 장벽은 무너지고, 문화의 장벽 또한 무의미해지고 있다. 한국적인 것의 세계화를 바라는 것은, 한국이 지구촌의 한 변방으로 영원히 귀속되리라는 사실을 추인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진정 한국적인 것이 소중하다면, 지구촌 통합의 흐름 자체에 저항할 일이다. 그런데 김지하는 그 와중에서 떡고물이나 얻어먹는 데 만족하자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충무로 소재 공장 <인간극장> [2] - 인간극장 제작기

<인간극장>을 보는 시청자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의문을 가질 것이다. ‘어디서 매주 저런 사람들을 찾아낼까?’ 국정원과 FBI의 도움이라도 받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아니면 자료조사원이 1천명쯤 되는 것인가 하는 망상을 휴먼다큐 <인간극장>은 품도록 만든다. <인간극장>의 외주제작사 리스프로와 제3비전의 기획과정을 듣노라면 이 사람들에게 이산가족 찾기를 시키면 절묘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또 다른 의문은 ‘어떻게 매번 격렬한 감정의 순간을 포착할까’ 하는 것이다. 그 비밀은 오로지 “인간적인 밀착마크”다. <인간극장>을 세상에 낳은 사람들과 5년 반 동안 매주 그들이 우리와 숨쉬도록 만든 장본인들에게 듣는 <인간극장>의 리얼 제작스토리. <인간극장>의 탄생 <인간극장>이 움트기 시작한 것은 1999년 겨울이었다. 찬바람이 쌩쌩 불던 어느 날, 경기도 안성에 소재한 동아방송대학 기숙사에 세 사람이 모였다. 2000년 5월1일 처음으로 방영된 <인간극장>의 첫 에피소드 <어느 특별한 휴가>를 연출한 강동석 PD, 리스비전 이동석 대표, 그리고 리스비전 박은희 본부장이 그들이다. 박 본부장은 초기에 <하늘이 준 다섯아들> <4인의 차력사> 등을 직접 집필한 작가였다. “당시 상대적으로 외주제작사가 접근하기 용이한 장르가 휴먼다큐였다. 하지만 고답적인 방식을 반복하고 싶지는 않았다”라고 박 본부장은 기획 배경을 밝혔다. <인간극장>은 처음에는 3부작으로 준비됐다. 1시간이라는 제한된 분량에서 보여줄 수 없는 “현재성에 충실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위해 연작 개념을 도입”했다. 그 과정에서 KBS가 “5부작으로 해보는 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고 이것이 현재 5부작 형태의 <인간극장>을 탄생시켰다. 처음 방영시간대는 오전 8시25분이었다. 주부를 주요 시청층으로 감안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집안일을 하는 주부들이 가장 바쁜 시간임을 간과한 점도 있었다. 어쨌든 오전 시간대에 첫발을 내디딘 <인간극장>은 책임CP(Chief Producer)인 KBS 김용두 PD의 설명처럼 “시청률 4%선에서 시작해서 단기간에 9%까지 올라갔다. 이후 <인간극장>은 개편이 되기 전에 시간대를 옮기는 이례적인 성과를 달성했다”고 한다. 아이템 선정 위해 하루 전화 취재만 50곳 현재 방영 중인 <분순 할매>는 <인간극장>의 285번째 작품이다. 편당 30분, 5부작을 기준으로 한 <인간극장>을 만들기 위해 평균 소요되는 기간은 두달 반이다. 리스프로 윤양석 PD는 “<인간극장>을 만드는 연출자는 1년을 다섯달로 산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방영이 끝나는 동시에 3∼4주 동안 자료조사에 몰두한다. 방송, 신문, 잡지, 인터넷,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 등 루트를 가리지 않고 저인망식으로 아이템을 찾아낸다. 이때는 자료조사원이나 작가뿐만 아니라 PD, AD를 가리지 않고 전 팀원이 전화기와 자료 분석과 제보에 매달리는 시기다. 윤 PD의 전언에 따르면 “PD가 하루에 전화취재만 50군데 하는 경우도 다반사”이다. 현장취재도 보통 10군데를 넘기기 일쑤다. 본격적으로 조사에 임하는 “자료조사 담당과 작가의 고통은 그 10배는 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인간극장>을 제작하는 리스프로와 제3비전의 사무실에 들어서면 모든 사람들이 텔레마케터처럼 통화에 몰두하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리스프로 박혜령 PD는 “예를 들어 혼자 섬에 사는 사람이라면 모든 인적 네트워크를 동원해 전국의 섬을 다 뒤지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그렇게 아이템이 정해지면 출연자 섭외에 들어간다. 제3비전 이귀훈 PD는 “사회적으로는 긍정적인 현상이지만 점차 사생활을 공개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라 힘들다”고 전했다. 섭외를 마치고 출연자와 친해지는 과정이 <인간극장>에서 “인간적으로 가장 힘든 부분”이다. 윤 PD는 “눈만 뜨면 무조건 만나러 간다”고 취재가 생활임을 강조했다. 일단 출연자의 집이나 직장에 찾아가서 밥도 하고, 김장도 해주고, 농사도 돕고, 장사도 거들며, 아이와 노인을 돌보는 출연자의 “가족 혹은 친구 되기”가 시작된다. 취재 당일에도 구순이 넘으신 할머니를 수발하러 나가는 한 PD를 동료 PD들이 격려하고 놀리는 광경을 목격했다. 장소가 머나먼 오지, 섬, 달동네가 되더라도 감내하는 것은 기본이다. 이귀훈 PD는 “<인간극장>에서 출연자들의 마음을 여는 특별한 기술은 없다. 그저 친구나 가족처럼 진심으로 그들을 좋아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모 PD는 지체장애가 있는 형제를 취재하러 섬으로 갔다가 때아닌 봉변을 당했다. “효성이 너무 지극했던 형제들은 어머니를 촬영하러 온 제작진이 무엇을 조금만 하려고 하면 무조건 돌을 던졌다”고 한다. 모 작가의 귀띔에 따르면 허리가 좋지 않은 모 PD는 “출연자가 머슴처럼 부려서 고민에 빠졌다”고 한다. 그래도 <인간극장>의 카메라는 돌아간다. 편집하다 호흡곤란으로 쓰러져본 적 있으신가요 이 과정이 무르익고 출연자의 마음이 정해지면 4주 정도 촬영에 돌입한다. 총 2시간30분 분량의 <인간극장> 한편을 위해 촬영 분량은 대체로 60분짜리 DV테이프로 70∼80개 선이다. 경우에 따라 100∼120개까지 촬영하는 상황도 생긴다. 당일에 촬영해서 저녁에 내보내는 엽기적인 스케줄도 있었다. 2002년 월드컵 태극전사를 다룬 <대한민국 나의 아들>은 감동을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당일 촬영, 편집, 방영을 해낸 에피소드다. 총동원된 모든 PD가 방영 직후 그라운드 위의 선수들처럼 초죽음이 된 것은 자명하다. 촬영에는 출연자를 배려하여 만반의 준비를 기한다. 윤 PD는 “거부감을 느낄까봐 심지어 와이어리스 마이크도 사용하지 않는다. 초지향성 마이크를 사용한다”고 말했다. <인간극장>의 AD들은 선배들의 현장에 따라나서기가 쉽지 않다. 출연자들은 사람이 한명만 늘어나도 금세 알아차리고 기껏 만들어놓은 감정을 숨겨버린다. 그럼 그날 촬영은 공치는 것이다. 촬영 중에도 설득과 인내는 계속된다. 만약 오랫동안 소원했던 가족이 놀이공원에 놀러가는 상황이라고 생각해보자. PD가 집을 나서는데 비가 쏟아진다. 거기서 그대로 물러서면 <인간극장> PD가 아니다. “짜증내는 아이들, 기껏 장만한 김밥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시선,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아버지의 얼굴을 잡아내야 한다”고 현장 PD들은 말한다. 촬영이 끝나면 “보는 사람에게는 <인간극장>이지만 만드는 사람에게는 ‘인간끝장’”인 ‘죽음의 편집’이 제작진을 기다린다. 평균 2주간의 편집은 “하루 24시간 중 평균 18시간을 꼬박 조그셔틀에 매달린다. 손목이 시큰거리고 젊은 남자들도 체중이 쑥쑥 빠진다”고 이 PD는 설명했다. <인간극장> PD라면 입을 모아 손을 내젓는 과정이 바로 이 편집 기간이다. 최악의 상황은 시사를 마친 뒤 재편집 명령이 떨어지는 경우다. PD와 카메라맨이 출연자와 가족처럼 지내는 특성상 감정이입으로 인해 에피소드를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볼 때 발생하는 상황이다. 다른 제작진으로 구성된 모니터들이 냉정히 판단할 따름이다. 수요일에 내부시사 뒤 재편집 명령을 받은 이 PD는 “월요일 아침에 일을 끝내고는 호흡곤란으로 쓰러져서 청소부 아주머니에게 발견된 일”도 있었다. <인간극장>은 인간 수양의 과정 <인간극장>을 만드는 일은 “인간적으로 수양되는 과정”이라고 현장 PD들은 입을 모은다. 이귀훈 PD의 표현처럼 “휴먼다큐를 만드는 PD들은 경력이 쌓일수록 사람들이 둥글둥글해진다”고나 할까. <인간극장> 담당 4년차이며 현장 PD를 총괄하는 윤양수 PD는 “내가 촬영에 나갈 때마다 우리 아이의 어린이집 선생님이 ‘아빠 촬영갔구나’라고 눈치챌 정도로 아이가 창밖만 바라본다고 하더라”고 술회했다. 이 PD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태어난 지 1년이 된 아이를 맡기고 <인간극장>을 하다보니 아이가 엄마를 봐도 데면데면한다. 어느 날 3살이 된 아이가 자기 가슴팍에 내 손을 가져가서 얹고는 ‘아 행복하다’라고 말하는 걸 보면서 놀란 일도 있다”고 그는 말했다. 두 사람 모두 <인간극장>은 “그럼에도 가급적 결혼하지 않은 PD에게는 맡기지 않는 분위기”라고 이야기했다. 다큐멘터리의 만듦새에 대한 경력뿐만 아니라 사람을 보고 대하는 경력을 <인간극장>은 요구한다. 그 이면에는 5년 전에 만난 출연자의 결혼식에 참석하는 PD와 가족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을 털어놓고 상의하는 출연자가 있다. 자연스러움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인간극장>은 방영 뒤에는 자연스러운 ‘인간관계’로 옮아간다. <인간극장>은 기다림의 미학이다. 거의 연출없이 진행되는 프로그램 특성상 “원하는 것을 찍으려고 조바심을 내면 사단이 나게 마련”이라고 제작진은 한결같이 지적한다. 그들은 “준비가 예정보다 일찍 끝나서 먼저 내려간 PD들은 출연자랑 싸우고 올라오는 경우가 많다”고 우스갯소리처럼 말한다. <한민족리포트>를 담당하다가 <인간극장>으로 넘어와서 “억 소리가 절로 난다”는 황명옥 PD는 이를 ‘고통 질량 불변의 법칙’이라고 설명한다. 출연자와 싸우고 올라온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기존 촬영분량을 모니터링해서 출연자가 큰 문제가 없고, PD와의 감정적인 사안이라고 판단되면 “담당 PD가 다시 촬영지로 내려가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완성해야 하는 것”이 <인간극장>이다. 5년 반을 줄곧 CP로 일한 김용두 PD는 <인간극장>의 성공요인을 “현장 PD와 작가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애착에서 비롯됐다. 그 사람들은 완전히 <인간극장>에 미쳐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외주제작이 아니라 KBS의 인하우스였다면 이런 결과가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간극장>의 제작과정에서 PD와 양날개를 이루는 사람들은 노련한 작가와 전문 카메라맨이다. <추적60분> <그것이 알고 싶다>를 두루 섭렵했고 처음부터 <인간극장>에 참여한 다큐멘터리 25년차 제3비전 이정혜 작가는 기억나는 작품을 묻자 “할 때마다 똑같이 어렵고 비명을 지를 만큼 힘들어 일일이 기억하면 이 일을 계속하지 못한다”라고 웃으며 답했다. 그는 “<인간극장>을 영화화하려면 책을 단순히 영상화하는 방식보다는 소재만 가져와서 영화적으로 변용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프로그램의 특성상 <인간극장>의 카메라맨은 전반적인 상황을 언제나 숙지해야 한다. 돌발적인 상황이 거의 전부를 이루는 탓에 “황야의 총잡이처럼 어떤 상황이라도 카메라를 빼들 수 있어야” 하고 “감정이 극에 달할 때는 PD도 자리를 떠야 하는 상황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촬영을 하다보면 “어느 제작진보다 카메라맨들이 출연자와 친해진 모습을 쉽게 발견한다”고 한다. 진짜 제작팀은 출연자들이다 제작진과 만났을 때마다 그들이 가장 강조한 점은 단 하나였다. “<인간극장>은 출연자들이 제일 중요하고, 이 프로그램의 성공도 전부 그들의 몫”이라는 것이다. <인간극장>은 시청률 경쟁에서 MBC <뉴스데스크>를 가뿐히 제압하고 요일마다 바뀌는 SBS의 오락프로그램 융단폭격에도 5년 반 동안 끄떡하지 않은 12∼13%의 평균시청률을 유지하는 KBS의 효자 교양프로그램이다. 그러나 <인간극장>의 PD들은 “이 프로그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출연자, 그리고 그 다음이 시청자”라고 단언한다. 촬영을 앞두고 팔목을 긋고 자살을 기도했던 아버지가 촬영을 통해 좋은 아버지로 변모했다면 “시청률에서는 한 발짝 밀려나도 아쉬움은 갖지 않는다”고 그들은 말한다. 한 사람의 인생을 미세하게 다루는 프로그램 특성상 “그들의 인생에 사소하게라도 누를 끼치는 상황이라면 언제라도 카메라를 거둬야 한다”고 제작진은 이야기한다. 시청자들도 이러한 제작진에 화답한다. <세진이 이야기>를 보고 게시판에 자살을 포기했다고 글을 올린 시청자가 있었다. “저런 아이도 그렇게 열심히 산다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한다. “<인간극장>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 사람에게 지친다. 하지만 다시 촬영에 임하면서 인간적으로 성숙해지는 것도 그들의 삶을 바라보면서 내 삶을 반추하게 되기 때문일 것”이라는 어느 PD의 마지막 전언은 그래서 가슴에 와닿는다.

<연애> 의 전미선, “사랑도, 주연도 늦깎이…딱 내얘기”

“얼굴 크게 나왔죠? 그쵸? 내가 또 이럴 줄 알았어….” 인터뷰 사진을 찍는 내내 불안하고 억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이는 12월9일 개봉하는 <연애>(오석근 감독)의 여주인공 전미선(33)이다. 그럴만도 한 것이, 방금 찍힌 사진 속 그의 얼굴에서는 ‘주먹만 하다’는 감탄이 절로 나오는 실제 얼굴의 느낌이 살지 않는다. 사진 기자의 탓이 아니다. 1989년 <토지>로 데뷔한 이래 지금까지 꼬박 16년 동안 출연했던 모든 텔레비전 드라마와 영화 속에서 그의 모습은 실물만큼 빛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도 모른다. 조명발, 화면발 기가 막히게 받는 또래 연기자들이 주연으로 승승장구할 때 그는 늘 눈에 띄지 않는 조연이었다. 그러다 서른을 훌쩍 넘긴 이제서야, 뒤늦은 연애와 함께 자아를 일으켜 세우는 <연애>의 어진 역으로 주연을 맡았다. 어진은 시체처럼 무능력한 남편과 이혼한 30대 여성으로, 두 아이의 엄마다. 어진의 일상은 좁쌀만한 이미테이션 보석 수백개를 손으로 일일이 붙여 머리핀을 만드는 그의 아르바이트처럼 고단하면서도 무미건조하다. 그러던 그는 전화방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만난 ‘드물게 괜찮은’ 남자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외로움을 달래고, 유흥업소에서 접대부로 일하다 만난 손님 민수(장현성)와도 연애 같은 감정을 나눈다. “차승재 싸이더스에프엔에이치 대표가 이 역을 제안했을 때, 내가 영화 한편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에 겁이 나서 도망다녔어요. 하지만 촬영이 시작된 뒤 어진을 연기하는 것 자체가 힘들지는 않았어요.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부터 ‘어진이는 나다, 딱 나다’라고 생각했거든요.” <연애>에서 어진은 서른이 넘은 나이에 2차까지 뛰는 유흥업소에 나가 뒤늦게나마 연애의 감정을 느끼게 된 주부 역을 맡았고, 충분히 짐작 가능한 것처럼 모멸스럽고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맞는다. 그런 어진을 연기하기 위해 전미선도 적나라한 정사 장면과 두들겨 맞는 장면을 연기해야 했다. 또 어진은 연애의 감정을 느꼈던 민수로부터 ‘납득하기 힘든 부탁’을 받고, 눈물로 이를 받아들인다. 충격적이기까지 한 이 장면은 연기자에게도 감당하기 벅찬 경험이었을 것 같지만, 전미선은 이 모든 연기에 대해 “어진은 나와 같기 때문에 힘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상황을 보지 말고, 사람을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어진이 처한 구체적인 상황 하나하나는 저와 다르지만, 힘들고 화나는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성격은 제 모습 그대로예요. 힘들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죠. 화나는 상황도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해못할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냥 받아들이는 거죠. 그러면서 깨달음도 얻는 거고, 성장하는 거고… 어진이나 저나.” 그런 그에게 연기보다 힘들었던 것은 오히려 “관객들이 이런 영화, 이런 연애에 대해 너무 답답해하지 않을까, 너무 올드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하는 점이었다. 전미선은 그런 걱정에 덧붙여 “하지만 영화가 아니라, 시나리오가 아니라, 그냥 어진이라는 사람을 봐주시면… 울림이 있지 않을까요”라는 기대를 내비쳤다. <연애> 뒤 “연기에 대해 없던 욕심이 생겼고, 해보는 데까지 해보겠다는 오기도 생겼다”는 그는 현재 촬영중인 친구 안진우 감독의 영화 <잘 살아 보세>에 이어 “잔잔함 속의 기쁨이 있는, 느낌이 확 오는 시나리오를 선택해” 적극적인 연기 활동을 이어나갈 생각이다.

<토이 스토리 2 SE> 전편만한 속편도 있다

‘전편만한 속편은 없다’는 속설은 적어도 <토이 스토리 2>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만장일치의 평가와 함께 흥행에서도 성공을 거둔 최초의 장편 3D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의 속편은 전편의 주제를 변주, 확장시키는 데 성공함으로써 속설을 멋지게 깨 버렸던 것이다. 1편이 ‘장난감은 갖고 놀아야 가치가 있는 것’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2편에서는 전편의 주제와 함께 ‘장난감을 갖고 노는 아이들이 점차 자라게 된다면 장난감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새로운 물음을 던진다. 이것은 단지 인간의 관점이 아닌 장난감의 관점에서 진행된다는 <토이 스토리> 특유의 세계관에서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성장’이라는 체험은 어린이와 어른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이기 때문에 관객들도 보다 깊은 공감이 가능했을 것이고, 바로 그 점이 이 영화의 성공 요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0주년 기념판으로 새롭게 DVD로 출시된 <토이 스토리>와 함께 특별판(SE) 사양으로 재발매된 <토이 스토리 2>는 먼저 1.78대 1 아나모픽 와이드스크린 지원의 영상이 반갑다. 기존 출시판은 일반 텔레비전 화면비에 맞춘 1.33대 1 스탠다드 영상이었기 때문에 아쉬움을 느꼈을 팬들도 많았을 터. 이번에야말로 극장 그대로의 영상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화질 면에서는 구판도 훌륭한 수준이었으나, 이번 특별판에서는 디지털 원본을 다시 한 번 리마스터하여 전례 없이 선명하고 깨끗하다. 도입부 버즈가 무수한 외계 로봇에 포위당하는 장면이나 클라이맥스에서 불스아이를 타고 질주하는 우디와 버즈의 장면 등 급격히 데이터가 증가하는 영상도 무리 없이 소화해 낸다. 돌비 디지털 5.1 EX는 원본인 영어 더빙은 물론 우리말 더빙도 함께 지원되어 보다 풍부하고 박력 있는 사운드를 감상할 수 있다. 부록에서는 감독을 비롯한 주요 제작진이 참여하여 새롭게 녹음한 음성해설을 꼭 들어보자. 이 속편을 만들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아이디어들이 추가되었는지, 만드는 과정에서 고민했던 것들은 무엇인지 등 당신이 <토이 스토리 2>에 관해 알고 싶은 모든 것들이 들어 있다. 배꼽 빠지는 NG 장면과 제작과정, 리모콘으로 즐길 수 있는 게임 등 영화 감상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즐거운 장난감과 같은 다양한 기능이 지원되는 DVD다.

스펙트럼DVD, 12월 출시작 라인업 공개

스펙트럼DVD의 12월 출시 라인업이 공개됐다. 조폭 코미디물로서 전작 <가문의 영광>을 뛰어넘는 흥행을 기록한 <가문의 위기 SE>와 이미숙, 이대근의 열연이 돋보인 토속 에로 영화 <뽕>, 그리고 세익스피어 원작의 <베니스의 상인>과 성룡 주연의 모험물 <용형호제 1, 2 박스>가 출시를 앞둔 작품들. <가문의 위기 SE>는 HD 텔레시네 과정을 거친 고화질 영상으로 선보일 전망이며 정용기 감독의 음성해설과 메이킹 필름 등 부록을 포함한 2디스크 디지팩 패키지로 구성된다. 출시예정일은 오는 23일. 21일 발매되는 <뽕> 역시 HD 텔레시네 과정을 거쳐 제작되는데 제작시기가 비교적 오래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앞서 출시된 <서편제>가 그랬듯, 이제껏 보지 못했던 준수한 화질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1.85:1 아나모픽 와이드스크린과 돌비 디지털 2.0 음향을 지원하며 예고편, 오리지널 포스터, 스틸 사진 모음 등의 부록이 수록된다. 알 파치노, 제레미 아이언스 등 호화 캐스팅으로 주목 받은 <베니스의 상인>에는 감독, 주연배우가 참여한 음성해설과 제작과정 등이 포함된다. ‘세익스피어 에디션’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에단 호크가 주연한 영화 <햄릿 2000>과 2,30 페이지 분량의 소책자가 함께 곁들여진다(21일 출시 예정). 성룡 특유의 리얼 액션에 인디아나 존스 식의 모험을 가미한 <용형호제>는 1, 2편 모두 성룡 팬들에게 특히 인기 있는 작품. 오리지널 화면비의 영상과 광동어 DTS 음향 등 우수한 스펙으로 무장했으며 예고편, 스틸 사진 모음 등의 부가영상을 담았다(13일 출시 예정).

짐 자무시의 모든 것 [2]

‘그 시각’이라는 횡적인 분산을 ‘그 시대’라는 시간의 종적 연속성 안에 끼워넣고 ‘문명 속의 고독’을 생각하는 것이 <데드 맨>(1995)과 <고스트 독>(1999)이다. “완전히 문화가 다른 시대, 다른 나라에서 후회없이 자신이 꿈꾸는 생활을 고집스레 끌어나가는 돈키호테를 떠올렸다 돈키호테처럼 고스트 독은 자신의 행보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자신의 신념을 전혀 존중하지 않는 세계에서 살아간다”고 자무시는 말한다. 그건 <데드 맨>의 주인공 윌리엄 블레이크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시대의 돈키호테다. <데드 맨>과 <고스트 독>은 형제처럼 닮은 영화다. 일단 이 둘은 웨스턴 무비와 갱스터 무비라는 장르를 기점으로 우회한다. 하지만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볼 때 이 두 영화의 닮은꼴은 더 잘 보인다. 영화는 한명의 주인공을 따라 흘러간다. 그들이 만나는 인물들, 사건들은 에피소드처럼 다시금 새로운 국면의 이야기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거기에서 주인공 블레이크와 고스트 독은 이질적인 존재다. 윌리엄 블레이크는 처음에는 문명인이지만 뒤에는 원주민에 동화되어간다. 야만스러운 것은 원주민이 아니라 이곳을 차지한 문명인이라는 것을 블레이크는 느낀다. 야만적 문명의 개척시대에서 시인의 영혼으로 명명되어 환생한 블레이크(그의 친구 인디언 노바디는 그렇게 믿는다)는 본의 아니게 킬러가 되어 서부를 맴돈다. 그런가 하면 고스트 독은 유령 같은 존재다. 왜냐하면 그는 현대의 규율보다 고대의 규율을 존중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가 영혼의 지침으로 삼고 있는 것은 일본의 무사도 정신을 담은 책 <사무라이의 길>이다. 어떤 계기로 그가 사무라이가 되었는지에 대한 증언은 (일부러 영화 속에서) 엇갈리지만, 어쨌든 지금 그는 문명 속의 고대인이다. 그리고 서구인의 육체를 가진 정신적 일본인이다. 흑인 래퍼 차림의 그는 일본식 무사도의 방식으로 삶을 꾸린다. “스즈키 세이준과 장 피에르 멜빌을 참고했지만, 오마주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자무시의 말은 진짜 참고 정도만 했다는 말로 들으면 된다. <데드 맨>과 <고스트 독>에서 주인공들은 문화와 역사를 지시하는 이질적 탐구자의 모습으로 변모한다. 어쩔 수 없는 건 그들이 모두 고독하다는 사실이다. 물론 친구는 있다. 그것도 말이 통하지 않거나 완전히 반대의 자리에 있을 때에만 진짜 친구가 된다. 그래서 블레이크의 친구는 오직 인디언 노바디이고, 고스트 독의 친구는 말이 통하지 않는 프랑스 이민자 아이스크림 주인청년이다. 하지만 죽음을 옆에 매달고 사는 이들에게 인생은 결국 혼자가 아닌가. 절대의 고독, 도대체 이걸 어떻게 할 것인가? 과연 이 고독의 실체는 역사와 문화를 휘도는 형이상학적 영화로만 물을 수 있는 몫인가? 자무시는 형이상학의 신화적 세계에서 일상의 미니멀리즘적 세계로 돌아간다. <커피와 담배>(2003)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 쇼>의 청탁으로 1986년에 단편을 만든 게 계기가 됐다. 자무시는 세편까지 뜸하게 만들더니 내처 작정한 듯 연달아 나머지를 만들어 장편으로 늘렸다. 말이 장편이지, 각기 다른 장소의 카페에서 둘셋씩 모여 커피 마시고 담배 피우며 한담하다가 끝나는 10분 내외 11개의 단편을 모은 것이다. 사랑스러운 소품이었지만 좀 의심스러웠다. 이거 일상으로 돌아가도 너무 돌아간 것 아닌가 싶었다. 그런 의심이 들 때쯤 들고 나타난 것이 <브로큰 플라워>(2005)다. 이 영화의 주인공을 맡은 빌 머레이는 <커피와 담배>의 에피소드 중 ‘Delirium’에서 우탕클랜의 RZA, GZA와 한담을 나누는 주방장으로 등장해 자무시 세계의 입문식을 거친 바 있다. 하지만 자무시와 빌 머레이가 <브로큰 플라워>에 합의한 건 그보다 더 오래전이다. 정확히 말하면 그전에 빌 머레이를 염두에 두고 쓰여진 다른 가상의 영화 <하늘에 뜬 세개의 달>(Three Moons in the Sky)의 각본이 먼저 있었다. 한 남자가 각각 세명의 부인과 가정을 따로 갖고 산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그 각본으로 제작비가 거의 모였을 때쯤 자무시는 생각을 바꿔 2주 반 만에 다른 내용으로 고쳤고, 그렇게 탄생한 것이 지금의 영화 <브로큰 플라워>의 내용이다. 자무시와 머레이는 4년 전 토크쇼에 게스트로 초대되어 서로를 처음 알게 됐는데, 그때의 느낌을 빌 머레이는 재치있게 표현한다. 얼마나 죽이 잘 맞았는지 “영화에 대한 생각을 나눴는데 꼭 그동안 있는 줄도 모르고 지냈던 사촌형제를 만난 것처럼 잘 통했다”고 말할 정도다. 그건 자무시도 마찬가지였다. 자무시는 실제 배우를 상정하고 나서야 각본을 쓰는 스타일이다. “내 영화에서 배우들은 항상 출발점을 제시한다. 빈칸이나 채우는 존재들이 아니다.” 어느 영화, 어떤 인터뷰를 봐도 그렇게 말한다. <영원한 휴가>는 크리스 파커를, <천국보다 낯선>은 존 루리를, <다운 바이 로>는 톰 웨이츠를, <데드 맨>은 조니 뎁을, <고스트 독>은 포레스트 휘태커를 염두에 두고 시작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번에는 “배우로서 고정되어 있는 빌 머레이의 이면을 보여주기를 원했다”고 한다. 영미권의 평단들이 <브로큰 플라워>를 계기로 ‘미국 독립영화의 기수 짐 자무시가 첫 번째 메인스트림 영화를 만들었다’는 쪽으로 분위기를 몰아가고 있는 이유도 배우들 때문이다. 빌 머레이를 위시하여, 제프리 라이트, 샤론 스톤, 제시카 랭, 프랜시스 콘로이, 틸다 스윈튼, 줄리 델피 등의 화려한 간판급 배역진이 그 증거로 손꼽힌다. 아니 그럼, 조니 뎁, 가브리엘 번, 빌리 밥 손튼, 존 허트, 로버트 미첨, 이기 팝이 나온 <데드 맨>은 간판이 덜 화려했던가. “도대체 왜 메인스트림 운운하는지 모르겠다”는 자무시의 반응은 그래서 이해가 간다. 비교를 하자면 자무시는 커트 코베인이 음악을 생각하듯 영화를 생각하는 인물이다. 자신에 대한 대중의 몰표를 절망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두 번째 이유를 찾자면 영화가 쉽고 재미있으며 곳곳에 유머가 넘치는 로맨틱코미디스럽다는 사실 때문이다. 특히 형이상학적 내러티브를 견지한 <데드 맨>과 <고스트 독>, 이 쌍둥이 같은 영화 이후에 나온 것이고, <커피와 담배>보다는 훨씬 더 대중적인 내러티브를 가졌기 때문에 그렇게 보인다. 하지만 이 영화가 자무시식 로맨틱코미디 정도로 치부되는 건 모함이다. “<데드 맨>에서는 웨스턴 장르를 일종의 틀로 썼다. <고스트 독>에서도 영화의 다른 장르들을 비유하는 인용이었을 뿐이다. 그 점에서 <브로큰 플라워>는 로맨틱코미디도 아니고, 침울하고 비극적인 영화도 아니다. 범주 그 사이의 무언가다.” <브로큰 플라워>는 9편 장편을 통틀어 백인 중산층이 주인공인 첫 번째 자무시 영화다. 미국사회의 가장자리에서 그 중심부에 사는 인물로 넘어온 것이다. 메인스트림이라는 말은 그런 점에서만 의미가 있다. 굳이 <브로큰 플라워>의 명함을 만들어야 한다면, 실마리는 그 이전까지 반복되던 영화들의 요소가 어떻게 흡수, 변주되었는가이다. 자무시는 여전히 인생은 난감하고, 고독은 운명이라는 믿음을 저버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스포일러를 피하고자 한다면 이 대목은 영화를 본 뒤 읽으시길) 주인공은 돈(빌 머레이)이다. 그는 그 이름의 의미를 텔레비전 속에서 흘러나오는 흑백영화 <돈 주앙의 모험>을 망연자실 보는 것으로 대신한다. 그도 한때는 돈 주앙처럼 못 말리는 바람둥이였다. 그러나 지금은 동거녀 쉐리(줄리 델피)조차 가정의 미래에 대한 계획이 없는 그를 탓하며 기어이 짐을 싸서 나가는 중이다. 그녀는 문 앞에서 분홍색(분홍색이라는 점을 기억하자) 편지 한통을 주워 돈에게 건네주고는 떠나버린다. 20년 전 헤어진 누구인지도 알 길 없는 애인이 보낸 그 편지에는 돈 몰래 낳아서 기른 19살짜리 아들이 지금 그를 찾아 여행을 떠난 것 같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옆집에 사는 절친한 흑인 친구 윈스턴(제프리 라이트)은 편지를 보낸 사람을 찾아보라고 권한다. 강권에 못 이겨 돈은 그녀들을 찾아 나선다. 로리타라는 딸과 홀로 사는 로라(샤론 스톤), 잡초 같은 히피 처녀에서 부동산 중개업자의 화초 같은 아내가 된 도라(프랜시스 콘로이), 잘 나가는 변호사에서 동물의사 소통사로 변해 있는 카르멘(제시카 랭), 험상궂은 남정네들과 같이 사는 페니(틸다 스윈튼), 그리고 죽어 땅에 묻힌 미셸 페페의 무덤까지 돌아다닌 뒤 돈은 성과없이 집에 온다. 그런데 어느 날 정말 아들 같은 녀석이 그의 동네를 초조한 눈빛으로 어슬렁거린다. 돈은 그 소년에게 말을 건다. 분명 그 분홍색 편지에는 “그 애가 아버지를 찾아 떠난 게 확실하단 느낌이 들어”라고 적혀 있었다. 먼저 영화의 분위기만을 놓고 설명하자면, <브로큰 플라워>는 완만하고 편안하지만, 궁금증이 동력이 되어 굴러가는 미스터리다. 이 미스터리극을 자무시는 두개의 미니멀리즘 동선으로 그린다. 그 하나는 얼굴 자체가 미니멀리즘인 빌 머레이의 무표정이고, 그 빌 머레이의 무표정을 영화의 무표정한 미니멀리즘 형식이 감싸안고 있다. 여기에 자무시의 키워드들이 변형된 형태로 버팀목이 되고 있다. 돈은 말 그대로 여행자다. 그리고 그 시각, 그 시대에 대한 자무시의 관심은 현재라는 시제로 바뀌어 이 영화의 화두로 자리잡는다. (다른 영화에서도 종종 그렇지만) 이 영화에서 돈은 한번 만난 사람을 두 번째 만나는 일이 없다. 이미 이 여행길 자체가 다시 만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고, 그보다 더 큰 이유는 그 여행길에서 만난 옛 애인들은 말 그대로 이미 지나간 과거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과거의 현현이다. 그래서 돈은 또다시 고독한 현재로 돌아온다. 아들같이 생긴 녀석이 눈앞에 나타나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다음에 아들이라고 믿고 싶지 않은 아들 같은 녀석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자무시는 마지막에 다시 질문을 던진다. 정말 미소년이 돈의 아들일까요? 그렇다면, 차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돈과 눈이 맞은 못생기고 뚱뚱하고 멍청하게 생긴 저 아이는 돈의 아들이 아니고 누구인가요, 라고. 또다시 판단은 유보되고, 그 순간 카메라는 현기증을 일으키듯 하늘을 한 바퀴 돈다. <브로큰 플라워>가 독특한 건 모든 정황이 다 펼쳐지는데 그중에서 진실을 밝히는 정황이란 아무것도 없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자무시는 <브로큰 플라워>를 ‘기표의 드라마’라는 구조로 만든다. 그 기표란 분홍색이고, 타자기이고, 복장이고, 개중에는 윈스턴이고, 농구대이다. 로라의 집을 방문했을 때 그녀와 그녀의 딸은 번갈아가며 분홍색 나이트 가운을 입고 있다. 도라를 찾았을 때 그녀는 자신을 소개하는 분홍색 명함을 건넨다. 동물의사 소통사 카르멘의 집 앞에는 농구대(열아홉살의 미국 소년이 즐기는 스포츠가 무엇이겠는가?)가 있고, 그녀의 인생을 결정적으로 바꾼 것은 사랑하는 개 윈스턴(이 여행을 강권한 돈의 흑인 친구 이름)이었고, 그녀는 분홍색 바지를 입고 있다. 네 번째 여자 페니의 집에서는 그보다 더 많은 정황들이 있다. 농구대가 있고, 분홍색 커버가 있는 오토바이(열아홉살의 소년이 가장 갖고 싶은 게 무엇이겠는가?)가 있고, 심지어 분홍색 타자기가 있다. 하지만 그뿐이다. 페니와 돈 사이의 아들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다. 돈은 분홍색 꽃을 한 다발 사들고 죽은 미셸 페페의 무덤을 방문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도 기표의 드라마는 끝날 줄을 모른다. 윈스턴은 아마 첫 장면에 등장했던 쉐리가 편지를 조작한 걸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러고보니 그녀는 떠날 때 분홍색 옷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돈에게 영화 말미에 분홍색 편지를 보낸다. 점점 더 알 길이 없다. 이젠 더 심해진다. 아들처럼 생긴 미소년의 가방에는 분홍색 꼬리표가 달려 있다. 엄마가 부적처럼 붙여준 것이라고 한다. 그럼 이 녀석이 내 아들 아닌가? 게다가 돈과 그 소년은 생각도 비슷하고, 복장까지 똑같다. 하지만 그 순간 돈과 그 아들로 보이는 소년과 똑같은 복장을 입은 또 다른 소년이 눈앞을 지나간다. <브로큰 플라워>의 기표들은 기의를 향해 있는 것이 아니다. 뭔가 있음을 밝히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아닌 것만이 있음을 증명하기 위한 맥거핀들이다. 자무시는 기표를 모아 뭔가 해보려 하지 않고, 그냥 기표 자체의 너저분한 널림으로 놓아둬버림으로써 만 가지 가능성을 갖게 한다. 그게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다. 돈의 여행은 끝없이 이 몇 가지 기표들을 따라 옮겨다니는 의식의 여행이다. 애타게 기표를 쫓아다닐 뿐이다. 짐 자무시의 로드무비가 해답이 없는 길이라는 것은 기표의 드라마로만 구축되어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영원한 휴가>의 파리가 그것이고, <천국보다 낯선>의 플로리다가 그것이고, <다운 바이 로>의 두 갈래 길이 그것이고, <미스테리 트레인>의 엘비스 프레슬리가 그것이고, <지상의 밤>의 시계가 그것이고, <데드 맨>의 담배가 그것이고, <고스트 독>의 <사무라이의 길>이라는 책이 그것이고, <커피와 담배>의 커피와 담배가 그것이다. “플롯을 먼저 가져야 한다는 생각은 나를 두렵게 합니다. 그보다는 과정 안에 뭔가 있다는 것이 나를 더 흥분시키죠. 내가 원하는 것은 이야기를 찾기보다 디테일을 첨가하고 모아서 퍼즐이나 그 이야기를 구성하려고 노력하는 겁니다.” 기표의 드라마는 이런 창작의 습성과도 관계가 있는 셈이다. 짐 자무시의 영화에 사실은 있지만 진실은 없다. 때문에 조급해하지 말아야 한다. 이 세계는 아예 정해져 있지 않은 것들로만 채워져 있다. 그래서 그의 영화를 감상하는 가장 좋은 방법을 소개하자면 그건 명상이다. 자무시는 ‘명상의 영화’를 만든다. 명상의 영화를 만들지, 성찰이나 통찰의 영화를 만들지 않는다. 가령 성찰의 영화를 만드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를 보고 나서는 무언가에 대해 열심히 반성해야 하는 책임 아닌 책임이 주어진다. 그러나 자무시의 영화는 잘 모르겠는 그 사실을 인정하고 깊이 그냥 거기에 생각을 적시면 된다. 옳고 그르고, 공감하고 아니고는 그 다음이다. 보고나서 아주아주 맑은 명상에 깊이 잠기면 되는 것이다. 그게 <브로큰 플라워>의 여행길이 인도하는 무언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