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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연 실황 영화는 결국 팬덤 영화다, 오윤동 감독 겸 CJ 4DPLEX ScreenX 스튜디오 팀장

국내 공연 실황 영화를 말할 때, ‘오윤동’이라는 이름은 반드시 알고 지나가야 하는 일종의 업계 용어다. 올해 공연 실황 영화 흥행 순위 1, 2위를 기록한 <아임 히어로 더 파이널>과 <방탄소년단: 옛 투 컴 인 시네마>뿐만 아니라 <몬스타엑스: 더 드리밍> <블랙핑크 더 무비> 등 저명한 아티스트들의 공연 실황 영화 대부분을 그가 연출했다. CJ 4DPLEX ScreenX 스튜디오 팀장으로서 기술특별관에 최적화된 공연 실황 영화를 직접 기획, 제작하고 있기에 그는 이 분야 최고의 전문가로 손꼽힌다. “여전히 죽고 못 사는 팬의 마음으로 만든다”는 오윤동 감독에게 공연 실황 영화만의 강점과 가능성을 청해 들었다. - 2023년 한국 영화산업의 트렌드 중 하나를 공연 실황 영화의 약진으로 잡아도 될 만큼 올해가 공연 실황 영화에 있어 상징적인 해였다. 이와 같은 분석에 공감하나. = 수치적인 결과만 놓고 보면 올해 공연 실황 영화의 잠재력이 터졌다고 말할 수 있다. 큰 스크린을 갖춘 기술특별관에서 공연 실황 영화를 보면 뭔가 다르다는 걸 느낀 관객이 늘어나고 있고, 그렇게 체험하는 즐거움을 알게 된 관객이 기꺼이 같은 영화를 N차 관람하는 문화도 자리 잡으면서 이 시장이 점차 커지고 있다. 사실 국내로 국한할 수 없는 전세계적인 트렌드라고 봐야 정확하다. <방탄소년단: 옛 투 컴 인 시네마>의 국내 관객수는 9만명 정도였지만 해외에서 는 400만명 가까이 들었고, 테일러 스위프트의 공연 실황 영화 <테일러 스위프트 디 에라스 투어>가 엄청난 북미 흥행 수익을 올린 것만 봐도 그렇다. - 공연 실황 영화의 확실한 수요가 있다는 걸 감지한 시기는 언제인가. = 아티스트쪽에서든 제작사쪽에서든 공연 실황 영화를 만들어달라는 요청이 급격하게 늘어난 건 오프라인 공연이 불가했던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이었다. 아티스트와의 만남이 단절된 상황에서 팬들이 ‘내 가수’를 보고 싶다는 욕망을 분출하고 해소하는 창구로 공연 실황 영화를 찾는 분위가 함께 감지됐다. 내부에서 공연 실황 영화를 본격적으로 사업화해 보자는 이야기가 나온 것도 이 시기였다. 제작비가 여타 일반 영화보다 현저히 적기 때문에 투자금을 회수하는 데 장벽이 낮고 국내외 팬들을 다 따지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데도 유리하다 보니 마다할 이유가 없는 사업이었다. - 라이브 콘서트 현장이 아닌 극장에서 상영하는 공연 실황 영화의 특장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보통 공연장은 2채널의 스테레오타입으로 사운드를 출력한다. 반면 상영관은 5.1채널로 따로 믹싱한다. 그만큼 극장에서 공연 실황 영화를 보면 전체 세션 소리는 풍성하게 그룹 개개인의 보컬은 더 까랑까랑하게 들린다. ScreenX 같은 특별관에서 보면 또 다른 즐거움이 있다. 일반적인 1면 상영 형식에서는 카메라가 마이크를 잡고 노래하는 화자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ScreenX와 같은 3면 상영 형식에서는 각기 다른 지점을 포커싱한 3개의 이미지가 3개의 화면을 통해 동시에 보여지면서 좀더 공연장 안에 있는 느낌, 나아가 VR 기계를 쓰고 보는 것 같은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 8K 촬영으로 아티스트가 실물에 가깝게 표현되는 것 역시 관객이 만족을 얻을 수 있는 지점이다. - 퍼포먼스 영상을 통해 아티스트의 프로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 못지않게 아티스트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예컨대 연출작 <바람 따라 만나리: 김호중의 계절>에서는 가수 김호중의 여행기가 콘서트 장면만큼 비중이 크다. = 아티스트와 팬들 모두 공연 실황 영화에 담기길 원하는 것이 인간적인 면모가 아니라는 걸 경험적으로 깨달은 뒤부터는 다르게 접근하고 있다. 영화를 통해 아티스트는 받은 사랑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고 싶어 하고 팬들은 아티스트가 얼마나 우리를 생각하는지 확인받고 싶어 한다. 그래서 항상 아티스트와 팬의 ‘관계’를 염두에 두고 연출한다. <방탄소년단: 옛 투 컴 인 시네마>는 특정 멘트가 BTS가 아미에게 꼭 전하고 싶은 멘트라고 느껴지면 그것이 팬들에게 명료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시간의 흐름을 바꿔 재편집했다. <아임 히어로 더 파이널>에서는 콘서트 방석을 일일이 확인할 정도로 ‘영웅시대’(임영웅 팬클럽 명)에 각별한 임영웅씨의 모습을 연출적으로 강조해 팬들이 그의 애정을 쉽게 알아챌 수 있도록 했다. - 공연 실황 영화의 대중화를 고려하진 않나. = 전혀. 팬들만을 위한 팬덤 영화이고 그 점이 공연 실황 영화의 차별화된 포인트다. <보헤미안 랩소디>처럼 일반 관객을 타깃으로 한 음악영화가 되려면 전체적인 만듦새와 구성이 아예 달라져야 할 거다. - 코로나 이후로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고 있는 극장에 공연 실황 영화가 향후 주 수익원이 될 거란 기대가 있나. = 기획사가 극장과의 협업을 적극적으로 고려한다면 낙관적이다. 이런 협업이 자리 잡으면 극장도 안정적인 수익원을 확보할 수 있다. 공연 실황 영화를 제작하면 전세계 거의 모든 극장이 아티스트의 공연장이 되는 셈이고 영화가 극장에 걸려 있는 동안 공연이 계속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으니 기획사 입장에서 매력적인 사업 아이템이라고 생각한다. - 콘서트 티켓값보다 저렴한 티켓값, 특별한 경험을 하고 그것을 SNS에 인증하는 문화, 콘서트에 다녀온 관객이 좋았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 공연 실화 영화를 찾는 패턴 등 공연 실황 영화의 약진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감독의 생각은 어떠한가. = 공감과 연결감이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공연장보다 좁고 어둡고 밀폐된 공간에 같은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한 공간에 있는 건 굉장히 특별한 경험이자 체험이다. 그것이 주는 감동이 깊고 크기 때문에 수많은 관객이 실제 아티스트 없이 팬들만 있는 공간에 모이고 티켓 전쟁을 치르고서라도 싱어롱 상영회에 간다고 생각한다. 재밌는 점은 내가 좋아하는 가수를 슬쩍 소개하는 용도로 공연 실황 영화가 사용된다는 점이다. 그렇게 끌고 가고 데려가면서 관객층이 확장되면 이 시장이 더 활성화될 거라는 확신이 있다. 필모그래피 감독 2023 <엔시티 네이션: 투 더 월드 인 시네마> 2023 <비더원: 비퍼스트 더 무비> 2023 <아임 히어로 더 파이널> 2023 <바람 따라 만나리: 김호중의 계절> 2022 <세븐틴 파워 오브 러브: 더 무비> 2022 <인생은 뷰티풀: 비타돌체> 2022 <방탄소년단: 옛 투 컴 인 시네마> 2022 <엑스칼리버 더 뮤지컬 다큐멘터리: 도겸의 찬란한 여정> 2022 <엔시티 드림 더 무비: 인 어 드림> 2022 <몬스타엑스: 더 드리밍> 2021 <몬테크리스토: 더 뮤지컬 라이브> 2021 <블랙핑크 더 무비> 2020 <그대, 고맙소: 김호중 생애 첫 팬미팅 무비> 2020 <토이솔져스: 가짜사나이2 더컴플리트> 시각효과 2023 <밀수> ScreenX Chief Produce 2021 <모가디슈> ScreenX 제작 2017 <군함도> ScreenX Studio

[특집] 올해의 시리즈 베스트5

1위 <무빙> “한국적 신파의 좋은 사례.”(이다혜) “스케일과 디테일의 훌륭한 조화.”(진명현) “비밀과 초능력의 서정성을 발명해낸 올해의 드라마.”(남지우) 디즈니+를 살린 구원투수로 평가받는 <무빙>이 필자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올해의 시리즈 1위를 차지했다. “역사와 정서 면에서 지극히 한국적인 서사를 서양 히어로물과 결합”(박현주)한 <무빙>은 “할리우드 히어로 문법에 기생하지 않고”(남지우) “신기한 능력을 지녔지만 거창한 히어로가 아니라 자신만의 안락한 공간을 위해 싸우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배동미)를 담았다. 이 스토리를 움직이는 캐릭터들은 “선도 악도 아닌 어중간한 인물이 아니라 명확한 선악 구도로 배치돼 안정감”(이자연)을 주었고, “한국 배우군의 깊이와 넓이를 재확인해주는 매력적인 캐릭터 플레이”(남선우)를 통해 “앙상블 캐스트의 가장 성공한 사례”(남지우)를 남겼다. 그렇게 “대담한 구조와 끊임없이 변화하는 캐릭터의 관점을 통해 끝까지 힘을 잃지 않고 우리를 놀라게 하고 또다시 ‘움직이게’(moving) 한”(피어스 콘란) <무빙>은 “액션물, (청소년)로맨스물, 누아르, 첩보물, 히어로물 등 다양한 장르가 알맞게 배치”(오수경)된 종합 장르물이기도 하다. 특히 “한국이 발명한 최고의 콘텐츠 IP는 남북분단임을 재증명하며 부모세대의 정서적 역사를 재해석”(남지우)한 냉전 드라마로서의 성취는 <무빙>의 텍스트를 보다 풍부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무빙>이 올해의 시리즈로 강력한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를 꼽는다면 역시 “신파, 히어로, 가족애, 첫사랑 등에 부과된 식상함의 오명을 벗기고 잘 다듬어진 전형의 저력으로 시청자를 감동”(김소미)시켰다는 지점에 있을 것이다. <무빙>은 “관객을 사로잡을 요소들과 서사를 잘만 구성한다면 숏폼 시대에 맞지 않는 느린 호흡도 용인될 수 있고, 요즘 관객이 싫어한다던 신파도 여전히 유효타를 날릴 수 있음”(조현나)을 확인한 작품이다. “이제는 무가치하다고 여겨지기까지 하는 캐릭터 빌드업에 시간을 들이며 모든 캐릭터가 자기 서사를 부여받은” (이유채) 점도 특기할 만하다. <무빙>은 “뿌린 씨앗은 반드시 추수하는 강풀 작가의 스타일은 확실한 보상을 주고, 인물들의 고양된 감정과 개인사 역시 반드시 다시 한번 연결되고 열매 맺는”(유선주) 구조를 취해 우려되는 단점을 상쇄하며 관객을 설득하는 노련한 스토리텔링을 선보였다. 단연 “서사의 위기 시대에 이야기의 힘을, 인간성 상실 시대에 휴머니즘의 가치를 증명하여 우리 시대 서사의 위기가 곧 인간의 위기라는 진실을 일깨워준”(김선영)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2위 <더 글로리> “시청자는 물론 모든 매체가 주목”(이자연)하며 “학교 폭력에 대한 주의를 다시 환기할 만큼 사회적 여파가 컸던”(박현주) 작품의 주인공, <더 글로리>가 올해의 시리즈 2위를 차지했다. “유튜브와 틱톡, 인스타그램을 휩쓴 <더 글로리> 열풍은 드라마를 보지 않은 사람들도 캐릭터 이름과 명대사를 인지하게 만들고 나중엔 학교 폭력을 대체하는 대명사처럼 활용되는 진풍경”(이자연)을 만들어냈다. 특정 드라마가 이 정도 반향을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은 기본적으로 “생물적인 카타르시스로 대중을 사로잡은 신명나는 복수극”(남지우)으로서 재미를 보장하면서 작가의 사유를 내밀하게 담아냈기 때문이다. <더 글로리>는 “자신의 인생을 짓밟은 학교 폭력 가해자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의 ‘가장 오래된 소문’이 되기로 결심한 문동은(송혜교)이 교원 자격증을 따고, 바둑을 배우고, 스스로 흥신소가 되는 과정을 흡인력 있게 그리며 ‘한국인이 좋아할 만한 복수’”(복길)를 제시하지만 결국 “강인한 인내심과 성실한 노력은 보이는 것과 다르게 더 잃을 것도 없는 피해자의 ‘죽은 시간’에 불과”(복길)하다는 본질을 망각하지 않는다. “복수자의 사고체계를 거의 완전무결한 수준으로 건설”(남지우)하며 “복수의 카타르시스로도 재생시킬 수 없는 그 영구적인 상처를 비추며 가해자들에게 강력하게 경고했고, 그와 동시에 피해자에게도 당연히 ‘내일’이 있을 거라는 가능성과 희망을 암시”(복길)하는 사려를 보여준다. 그렇게 <더 글로리>는 김은숙 작가의 인장처럼 인식되던 “‘로맨스’와 ‘오글거리는 대사’를 걷어낸 자리에 (학교)폭력, 피해자들의 연대, 존엄과 구원 등에 관한 묵직한 고민과 통찰”(오수경)을 채워 넣어 무거운 소재를 윤리적으로 다루는 진정성 어린 태도를 보여줬다. “이제 더는 피해자의 이야기를 듣지 않으려 하는 세상에서 이 처절하고 지독한 고백 앞에 사람들을 다시 불러 모은”(복길) 필력은 <시티홀> 이후 김은숙 작가의 기술이 가장 바람직한 방향으로 작용한 사례로 남을 것이다. “이토록 흡인력 있는 김은숙의 뉴월드”(진명현)가 조성된 자리에 진입한 “더없이 놀라운 배우들의 매력 배틀”(진명현)은 “박성훈, 차주영, 정성일, 김건우, 김히어라 등 향후 주연급으로 성장할 것이 확실한 라이징 스타들을 대거 등장” (남지우)시켰다는 점에서도 의미 있다. 가히 “좋은 대본, 좋은 연기, 좋은 연출”(이다혜) 삼박자가 어우러져 “김은숙 작가와 넷플릭스의 조합이 만들어낸 최상의 결과물”(오수경)이다. 3위 <사랑의 이해> 3위 <사랑의 이해>는 “배경 차가 남녀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조현나)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형편이 다른 네 사람의 연애 사건을 중심으로 동료, 가족, 친구 사이의 감정적 역사까지 아우르는 일종의 사회파 로맨스”(남선우)다. “인물과 인물간의 작은 공기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모두의 감정선에 골고루 같은 무게를 안배하는 작가의 기묘한 능력”(복길)은 <사랑의 이해>가 한국 드라마의 전형적인 로맨스에 그치지 않고 “드라마 밖에 수없이 존재하는 진짜 한국 남녀의 일과 사랑을 섬세하게 구현”(복길)할 수 있게 했다. 그렇게 “사랑투정과 계급투쟁의 유비와 대비를 치밀하게 묘사”(김성찬)하며 “조금의 스킵도 허락할 수 없는 섬세한 몰입도”(진명현)를 보여준 결과 “시청자마다 자신이 이입하는 캐릭터와 이유가 각기 다른”(조현나) 풍경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사랑의 이해>는 “네 남녀의 울화가 치미는 멸렬한 연애를 통해 결혼과 사랑, 계급과 빈부의 함수 관계를 섬세하게 그리고 소름 돋게 그려낸 역작”(정재현)이다. 때문에 <사랑의 이해>는 2003년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 이후 19년 만에 “‘사랑은 계급을 넘어설 수 있을까?’를 16부작 내내 끈질기게 탐구하는 한국 드라마”(정재현)로 정의되기도 한다. “‘헤게모니’라는 개념을 직접 입으로 말하던 <발리에서 생긴 일>보다 훨씬 더 노골적으로 사랑의 ‘조건’과 ‘자격’을 논하는”(복길) 이 작품은 “사랑과 돈, 가장 아름답고 추한 것들의 만나 마음이 금세 끓고 단숨에 식기를 반복”(이우빈)하는 과정을 치밀하게 그려내며 “명실상부 2023년의 사랑법”(이우빈)을 탁월하게 보여줬다. 형식적으로는 <사랑의 이해>가 지닌 고전성을 주목하는 의견도 다수 등장했다. 빠른 전개가 선호되다 못해 숏폼으로 시리즈를 소비하는 시대에 “누군가는 답답하고 올드하다 말할 수 있는, 입을 떼기 위해 수십번 침을 삼키고 계속 뒷걸음질치다 겨우 한 발짝 떼는”(이유채) 전개를 보여줬지만 “이 시리즈만의 느릿한 호흡은 이해받고 사랑받기에 충분”(이유채)했다. “현대사회에 걸맞은 현실적인 러브 스토리인 동시에 고전적인 멜로드라마 장르의 공식, 즉 계급을 넘어서 사랑이란 판타지의 실마리를 놓지 않는 미덕”(배동미)을 갖춘 <사랑의 이해>는 “언제나 동시대적으로 기능하는 주제”(남선우)를 섬세하게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 “사랑 이야기가 귀해진 2023년, 사랑을 사랑만으로 지탱하기 힘든 세대의 초상이 여기 기록”(남선우)되어 있다. 4위 <연인> 4위 <연인>은 “사극의 탈역사화가 점점 심화하는 가운데, 여전히 사극의 가장 중요한 미덕은 역사를 재해석해 현재에 맥락화하는 것임을 강렬하게 각인시킨 작품”(김선영)이다. “장현(남궁민)은 비혼주의자이자 여성의 선택과 결단을 존중하는 면모를 지녔고, 길채(안은진)는 전란의 상황에도 남자주인공의 도움을 수동적으로 기다리거나 민폐 캐릭터로 전락하지 않는”(이자연) 등 동시대에 맞게 해석돼 안전하게 볼 수 있는 로맨스였다. 지금 한국 사회와 청년들에게 유효한 메시지도 담겨 있다. “‘대의’를 앞세워 억압과 차별을 공고히 하고 불필요한 혐오를 부추기는 세상에서 불온한 혁명을 꿈꾸는 청년 장현과 자신을 구하기 위해서 세상에 저항하기 시작한 청년 길채의 모습” (복길)은 “역사가 제한하고 있는 시대적 한계를 현대적 가치로 극복”(복길)하게 만들었다. 또한 “백성과 자식을 죽음으로 내몰며 내세우는 유교적 명분의 허위를 드러내고 왕으로도 아비로도 시대의 지성 역할도 변변치 못했던 가부장의 면면을 폭로”(유선주)한 점은 조선 시대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더 나아가 “<토지>의 서희 이후 처음으로 등장한 투쟁과 생존이 삶의 목적인 사극 속 여성주인공”(정재현)을 통해 “전쟁으로 인한 비극을 여성의 관점으로 재인식하게 하고 환란 가운데 최선을 다해 살아내고 살리고자 한 평범한 이들의 관점에서 재구성”(오수경)한 점을 높이 평가할 만하다. 5위 <박하경 여행기> “올해 가장 즐겁게 본 시리즈”(듀나), “올해의 드라마이자 올해의 숨구멍”(오수경). 5위 <박하경 여행기>는 “유난히 대자본이 투입된 작품, 무거운 주제를 품은 서사, 자극적인 화면이 넘실댔던 드라마 세계의 틈새로 빼꼼히 등장해 ‘힐링’을 담당했던 드라마”(오수경)였다. “초과로사회 한국을 가까스로 버티는 존재들에게 보내는 일용할 위로”(김선영)를 담아 이 작품을 보며 “세상을 향해 한 발짝씩 내딛는 적정 온도의 인간 박하경의 태도에 감화할 수 있는 드문 체험”(남선우)을 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여행을 다녀왔는데 인생이 급변하지 않는다”(이유채)는 소박한 이야기를 담은 것처럼 보이지만 “현대인이라면 느낄 법한 일상의 피로와 외로움, 사라지지 않는 절망과 슬픔의 단면을 사려 깊게 그려내며 자신을 돌볼 틈과 타인을 향한 이해와 존중의 공간을 넓혀주는”(오수경) 드문 성취를 거뒀다. “주말마다 일상 공간에서 벗어나 새로운 풍경과 의외의 시간을 만난다는 설정”(오수경)과 “에피소드당 25분의 미드폼 편성 등 드라마를 둘러싼 모든 요소가 전에 없던 것”(정재현)이라 형식 면에서도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아는 여자> 이후 마침내 배우 이나영을 걸출하게 활용한 최상급 사례”(정재현)이기에 “<박하경 여행기> 시즌2든 ‘박하경 학교 생활기’와 같은 스핀오프든”(이유채) 이나영 주연의 또 다른 후속편을 기다린다.

[특집] ‘콘텐츠간 경계는 허물고 가능성은 확장했다’, 올해의 시리즈 총평, 6위부터 10위까지 시리즈들, 과소평가·과대평가된 작품들

‘영화감독’이나 ‘드라마 작가’를 굳이 나누는 관례가 무의미한 시대다. 원천 스토리를 만드는 이들을 ‘창작자’라는 포괄적인 개념으로 정의하는 것이 최근 업계의 생리에 더 적합해 보인다. 어느덧 한국의 영상 콘텐츠 산업은 스토리텔러들이 영화, 드라마, 예능, 소설, 웹툰 등 어디서든 출발해 어디로든 뻗어나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했다. 올해의 시리즈 1위를 차지한 <무빙>은 웹툰 작가 강풀이 직접 각본을 쓰고 <모비딕> <특별시민>의 박인제 감독이 연출했다. 2위 <더 글로리>는 전통적인 TV드라마 영역에서 활약했던 김은숙 작가와 안길호 감독이 첫 OTT 시리즈에 도전해 뛰어난 구관은 어딜 가도 명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3위 <사랑의 이해>는 이혁진의 동명의 원작 소설을 고집스럽게 느릿한 호흡으로 영상화했고, 4위 <연인>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모티브를 병자호란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5위 <박하경 여행기>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을 함께한 손미 작가, 이종필 감독, 더 램프가 다시 의기투합한 결과물이다. 6위는 간발의 차이로 <마스크걸>이 차지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을 연출한 김용훈 감독의 첫 OTT 시리즈 각본·연출작이다. “지그재그 스타일과 스토리로 우리를 놀라게”(피어스 콘란) 하며 “감각적인 표현력과 매혹적인 영상미로 일궈낸 페이소스”(진명현)를 담아 “외모 지상주의와 권력관계에 대해 인상적인 이야기”(듀나)를 펼쳐냈다. “데이트 폭력과 관음증적인 인터넷 문화 등 한국 사회가 진통을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해 여러 코멘트를 남긴 점도 특기”(배동미)할 만하지만, <마스크걸>의 가장 큰 성취는 전에 없던 여성 서사라는 점에 있다. “못생긴 여자 인물의 심리에 대해 내적으로 완결된 관점을 제공”(남지우)하며 “‘강간하면 죽는다’는 급진적 인과관계를 스토리에 녹여내 새로운 차원의 페미니스트 서사를 탄생”(남지우)시킨 점이 호평받았다. “올해의 캐릭터들이 쏟아져나온 요람”(이우빈)으로 주인공뿐만 아니라 다양한 배우가 주목받은 시리즈이기도 하다. “비난당하기 무섭게 남 탓으로 튕겨내고 우회하며 끝까지 가버리는 약자의 ‘근성’”(유선주)을 되돌아보게 한 김경자(염혜란), “강한 여성 캐릭터의 대척에서 남성 인셀의 내적 파탄을 완벽하게 보여준 주오남(안재홍)”(남지우) 등이 언급됐다. 7위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예능 프로그램 출신 이남규 작가의 크루와 일찌감치 드라마, 영화를 오가며 경계 없는 활동을 이어온 이재규 감독이 만난 작품이다. “여전히 ‘정신병’에 관한 편견과 경계가 존재하는 사회에서 정신질환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참고서”(오수경)로서 “정신질환은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예상할 수 없는 병이라는 인식에 도달”(유선주)한다. “‘힐링’을 강요하기보다 돌봄의 양면을 비추는 성숙함”(남선우)이 빛나는 이 시리즈는 “한국의 사회적 관계에 대한 밀도 높은 분석”(남지우)을 보여준 것은 물론 “올해의 캐스팅이자 올해의 캐릭터 앙상블”(진명현)로서도 주목할 만하다. 방송 채널은 SBS, OTT에서는 디즈니+에서 독점 공개된 8위 <악귀>는 “한 사람의 희생을 세계의 종말처럼 그리는 김은희 월드 애도 서사의 집약본”(김선영)이다. “상징과 도전적인 테마로 가득 차 있고 풍부하고 복잡한 신화와 조화된 <악귀>”(피어스 콘란)는 “SNS가 발달한 지금 시대의 추악함, 즉 타인의 것을 훔쳐보고 탐하는 행동을 악귀라는 민속학적 서사를 통해 탁월하게 표현”(배동미)한 작품이다. “많은 오컬트 호러물이 분위기를 조성하는 목적으로 괴기스러운 장면을 연출하는 경우가 많은 데 반해 부를 축적하기 위해 청년의 욕망을 착취한다는 <악귀>의 괴기는 서사와 직접적으로 연결을 가졌다”(박현주)는 점은 이 시리즈가 장르물로서 거둔 성취라 할 수 있을 것이다. 9위 <재벌집 막내아들>은 “‘회빙환’ 소재의 웹소설 원작들이 드라마화될 수 있는 최고의 경우”(이다혜)로 꼽힌다. “신계급사회 한국에 대한 분노를, 가장 낮은 곳에서의 복수로 풀어낸 <더 글로리>와 달리 가장 높은 곳에서의 그것으로 풀어냈다”(김선영)는 점에서 두 작품을 짝패 같은 관계로 읽는 해석도 있었다. 10위 시즌2는 “전편의 성공을 견인한 위트 있는 화법을 누그러뜨리고, 각을 세워 문제의 핵심을 겨냥하는 뚝심을 발휘함으로써 작품의 존재 이유를 증명”(남선우)했다. “트랜스젠더 군인과 한국전쟁 탈영병을 병치함으로써 시대를 막론한 문제의식”(남선우)까지 담고 “범람하는 악에서 선의 평범성을 자구하려는 발악은 아직 유효하다”(이우빈)는 점을 보여준, “속편이 행할 수 있는 선택과 집중의 모범 사례”(남선우)다. 과소평가 시리즈로는 “이렇게 우아하게 가족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조현나) 생각하게 해주는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가 꼽혔다. “스토리와 연출 모두 적정선 이상의 기대를 충족” (이자연)시켰지만 “플랫폼의 규모 혹은 중년들의 이야기라는 한계”(조현나)로 완성도 대비 주목받지 못한 작품으로 언급됐다. 올해의 시리즈 8위에 오른 <악귀>는 “각본에 응집된 수많은 상징과 디테일을 충분히 끌어내지 못한 미약한 연출과 촬영”(이유채) 면에서 과대평가된 작품에 이름을 올렸다. “오컬트 장르물로서 인상적인 순간이 별로 없다”(위근우)거나 “김은희 작가가 플롯을 위시한 ‘구성’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아야 할 때”(정재현)라는 애정 섞인 비판이 제기됐다. 선정 대상 기간 내 케이블, IPTV,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최초 공개된 작품(한국 플랫폼 공개일 기준, 한국 프리미어) 중 최고의 해외 시리즈를 묻는 질문에 상당수의 필자가 <성난 사람들>을 호명했다. <성난 사람들>은 “애니메이션 시리즈 <투카 앤 버티>에 이어 수치심, 분노, 열등감 등 인간의 어두운 감정을 포착하는 데 빼어난 재능을 가진 크리에이터 이성진”(배동미)이 만든 “최고의 한국인 분석 리포트”(조현나)다. “주인공들과 함께 어둠을 의식화하는 과정에서 뜻밖의 위로”(오수경)를 준 이 시리즈는 “10화의 마지막 시퀀스와 함께 스매싱 펌킨스의 가 흐를 때 올해의 드라마가 되었다”(복길).

[인터뷰] 올해의 작가 <더 글로리> 김은숙 인터뷰 ② 신데렐라가 아닌 쌍방 구원 서사

- 동은과 현남, 동은과 경란 등 폭력의 피해자였던 여성들의 관계성도 눈에 띈다. 남성의 구원 없이도 서로를 도울 수 있는 현실적인 여성 연대를 보여준다. 심지어 동은과 현남이 가까워지는 과정은 로맨틱 코미디 뺨치는 재미도 자랑한다. (웃음) = 내가 로맨틱 코미디를 오래 쓰다 보니 ‘샤랄라’한 이미지가 있나 보다. 하지만 내 인생이 어떻게 ‘샤랄라’ 하기만 했겠나. <더 글로리>에 담긴 여성 연대는 내가 살면서 직접 겪고, 듣고, 보고, 혹은 읽었던 글 안에 다 들어 있던 것이었다. 여자 김은숙과 성공한 작가 김은숙이 어떤 접점에서 만난 결과물이다. - 극 중 문동은과 이성적 텐션을 만드는 캐릭터는 주여정(이도현)과 하도영, 두명으로 설정돼 있다. 사실 과거 한국 드라마의 남성주인공 클리셰에 가까운 쪽은 하도영 같다고 생각했다. 대놓고 <화양연화>를 연상시키는 신도 있지 않았나. (웃음) <더 글로리>를 구상할 때 두 인물에게 부여한 롤이 각각 어떤 것이었나. = 주여정은 명확했다. 동은의 복수를 응원하며 피해자의 연대를 보여준다. 그의 과거를 숨기다가 반전 포인트로 쓰려고 했다. 하도영은 피해자도 가해자도 아닌 제3의 시선을 담기 위해 탄생한 캐릭터다. 남의 일이라고 생각할 땐 복수를 멈추라는 입바른 소리도 하지만 본인이 피해자가 됐을 때는 다른 선택을 한다. 두 인물 모두 힘을 갖고 있지만 각자 다른 곳에 권력을 쓰는 모습을 대비하고 싶었다. 그런데 하도영의 ‘화양연화’가 너무 부각됐다. (웃음) - 문동은과 하도영이 잘됐으면 좋겠다는 반응도 있는 것을 보고 많이 놀랐다. 그렇게 좋은 남자가 아니라고 폭로하는 신이 중간 중간 심어져 있는데도 말이다. = 나도 그런 반응을 보고 깜짝 놀랐다. (웃음) - 그런데 멋진 남자에 열광하는 반응 때문에 빚어지는 딜레마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파리의 연인>, <인어공주>의 재해석이었던 <시크릿 가든> 등 전작에서도 늘 존재했다. 혹자는 계급의 한계를 인식하지만 권력을 가진 남자의 구원으로 이를 극복해가는 서사가 가진 한계와 남성 숭배적인 면모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동시에 멋진 남자주인공이 만드는 판타지는 당신의 드라마를 보게 만드는 원동력이기도 했다. 김은숙 월드의 남성 캐릭터가 가진 명암 사이에서 당신은 어떻게 줄타기를 하고 있는가. = 내가 올해로 드라마 작가가 된 지 20년째다. 강산이 두번은 변했을 시간인데 아마 요즘은 더 빠르게 많은 것이 달라졌을 것이다. 처음 드라마 작가를 시작했을 때는 작가가 시청률이 잘 나오게 하기 위해 여성 시청자들을 유입시켜야 했고 이를 위해 남자주인공을 부각하는 게 당연했다. 그럼에도 나는 ‘줄 타기’를 잘해보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다소 억울한 면도 있다. (웃음) 나는 항상 내가 만드는 이야기들이 ‘쌍방 구원 서사’라고 생각했다. 권력은 가졌지만 다른 것은 갖지 못한 남자주인공이, 가진 것은 없지만 자존심 세고 영리하고 자신의 일과 꿈을 구체적으로 사랑하는 여자주인공을 만난다. 그리고 권력을 옳은 방향으로 쓰는 법을 배우고 같이 구원받는다. 내가 쓴 드라마가 남성을 숭배한다는 지적은 늘 따라왔고 역으로 그 덕분에 내가 영광을 누린 것도 사실이다. 아주 솔직하게 말하면, ‘양날의 검’인 것이다. - 사실 <파리의 연인>과 <시크릿 가든>을 다시 보면서 당시 여성 캐릭터와 배우 김정은, 하지원의 성취가 상대적으로 지워졌다는 점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런 의미에서 <미스터 선샤인>의 고애신(김태리)이 보여준 진취성과 그 의미가 대중에게도 충분히 조명받은 점이 좋았다. 시대가 바뀌었다. = 예전에도 여성 캐릭터를 놓치지 않고 잘 만들기 위해 늘 노력했는데 대중에게 반응이 더 오는 쪽은 남자주인공이었다. <더 글로리>는 여자주인공이 복수를 하는 이야기다 보니까 상대적으로 부담을 덜었지만 앞으로 할 작품에서 남성과 여성 캐릭터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여전히 헷갈린다. 내가 쓴 대사와 상황들이 요즘 친구들에게 받아들여질지 점검하기 위해서 젊은 작가들의 의견을 많이 듣는다. 가령 남자가 먼저 키스하는 장면이 있다고 하면, 그건 ‘폭력’이라는 지적이 회의 시간에 나온다. 그런데 여전히 남자가 키스를 리드하는 그림을 좋아하는 시청자가 존재하고 그들의 선호를 배제할 수 없다. 지금 시대에 맞는 기준이 무엇일까 매일 공부하고 있다. - <상속자들>만 해도 안하무인 유라헬(김지원)을 좋아하는 시청자들도 많지 않았나. 여성 캐릭터가 마냥 착하기만 한 게 아니어도 시청자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 그건 유라헬이 주인공이 아니었기 때문에 넘어갈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예전에는 착하지 않은 여자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있었다. 무결하고 순결하고 나쁜 짓을 해서는 안되지만 돋보여야 한다. 그래서 악역을 그리는 게 훨씬 수월하고 주인공 캐릭터를 만들 땐 움직임에 한계가 생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에도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었는데…. 지금 얘기를 나누다보니 그런 아쉬움이 든다. - 요즘 사람들은 피해자의 사연에 그리 큰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단지 창작자가 진심과 진정성을 갖는 것만으로는 시청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이 어려운 과제를 해냈다는 점에서 당신이 ‘올해의 작가’로 선정된 게 아닐까. 작가의 기술이 무척 바람직한 방향으로 발휘된 사례로 보였다. 사람들이 더이상 귀 기울여 듣지 않는 목소리를 듣게 하기 위해서 발휘한 테크닉은 무엇이었나. = 엄마들의 레시피를 보면 “소금 약간, 마늘 적당히”라고 하는데 그건 감으로 하는 거지 숟가락 몇 스푼이라고 정량화하면 그 맛이 안 나지 않나. 드라마도 똑같다. 후배 작가들에게 “끔찍한 신일수록 깜찍하게 써라.”, “한보 말고 반보만 신선하게 써라”라고 조언한다. 일단은 사람을 홀려놓고 나중에 돌이켜보면 어떤 이야기였는지 알아차릴 수 있게끔 써야 한다. - 틱톡과 유튜브 쇼츠를 통해 <더 글로리>는 더 유명해졌다. <파리의 연인>과 <시크릿 가든> 시절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드라마가 중요한 트렌드로 잡아가는 풍경이 작가에게도 신선할 것 같다. = 딸 때문에 틱톡을 알게 됐다. “너는 책도 안 읽고 커서 뭐가 될래?” “엄마! 이 안에도 세상이 있어.” 그렇게 딸과 대판 붙었다. (웃음) 심지어 나에게 직접 “유튜브 쇼츠로 드라마를 다 봤다”고 얘기하는 분도 있었다. 유튜브 쇼츠에 들어가봤더니 자꾸 나한테는 <미스터 선샤인> 영상을 보여준다. 재방료가 나오지 않는 방송이라니 신선했다. (웃음) 숏폼으로 보고 재밌다고 느끼셨다면 의리로 1~2회 정도는 풀버전으로 봐주셨으면 좋겠다. 드라마는 대본, 배우, 음악, 미술, 편집 등 모든 것이 합쳐진 종합예술인데 쇼츠로만 보면 누군가의 수고는 지워질 수 있다. 비행기에서 목격한 어떤 승객은 <더 글로리>를 10초씩 스킵하며 보고 있었다. 도대체 왜 드라마를 넘기면서 보는 건지 너무 궁금해서 화장실 가는 것도 까먹고 나도 모르게 10분 동안 서 있었다. (웃음) 어쨌든 자고 일어나면 세상이 바뀌어 있어서 작가로서 고민이 많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글로리>가 넷플릭스에서 흥행하고 젊은 층이 숏폼 플랫폼에 패러디 영상을 올리며 열광했다는 점이 신기하지 않나. 시대의 흐름을 따라잡겠다며 작가가 틱톡의 세계를 따로 공부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웃음) = 나도 아직 이유를 잘 모르겠다. 오히려 젊은 층을 사로잡겠다는 사심 없이 써서 그런 걸까. <더 글로리>는 연출과 연기, 음악, 미술 모든 것이 잘 어우러진 작업이었다. 그 덕분인 것 같다. - <더 글로리>를 두고, 작가의 이름을 지우고 보면 김은숙 드라마 같지 않다는 평도 있다. 이러한 반응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 그런 분들은 내 전작을 보지 않은 게 아닐까. (웃음) 송혜교씨가 내레이션을 잘해줘서 그렇지 보통은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가 나오는데 말이다. “모든 날이 흉흉할 거야.” 이런 표현은 나만 쓴다. 아무튼 최고의 칭찬이기도 한 것 같다. 그냥 얼떨떨하고 좋다. 뭐가 됐든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다. - 당신의 작품에선 늘 ‘유행어’와 ‘밈’이 탄생한다. 대사뿐만 아니라 기획 의도도 한편의 문학처럼 잘 쓴다. 문장을 잘 쓰는 비결이 있나. = 20년째 받고 있는 질문인데, 솔직히 타고난 게 있긴 하다. 지금까지 이 부분을 인정하지 않았더니 주변 후배 작가들이 약오른다고 해서 최근에 수긍하게 됐다. (웃음) 회의를 하다가 내림을 받은 것처럼 나도 모르게 재미있는 대사들이 나올 때가 있는데 그런 것을 보면 작가도 타고나긴 해야 하는 것 같다. 8살 때부터 미술 실력을 뽐내는 친구들이 있는 것처럼 글도 타고나는 재능 중 하나가 아닐까. 하지만 ‘글쓰기에 천재가 존재할 수 있나?’라는 근본적인 의문이 들긴 한다. - 절묘한 단어를 골라 내기 위해 유의어 사전을 옆에 끼고 산다거나. = 전혀. 오타 점검할 때만 쓴다. - 의식적으로 책을 많이 읽는다거나. = 의식적으로 사기만 한다. 책이 쌓여 있으면 일단 기분이 좋다. 사실 <토지> <아리랑> <태백산맥>을 읽고 오정희, 신경숙 작가를 좋아했던 그때가 내가 ‘독자’였던 유일한 시절이었다. 드라마 작가가 된 이후 읽은 책은 대부분 자료 조사를 위한 것이다. 일단 소재가 겹친다 싶으면 웹툰, 웹소설, 웹드라마, 해외 드라마 등을 가리지 않고 다 찾아봐야 한다. 내가 그 작품을 보지 않았는데도 비슷한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지만 혹시 모를 표절 시비를 원천 봉쇄하기 위해서다. 그러다 지쳐서 잠들기 전에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을 펼쳐서 ‘작가의 말’을 읽는 정도로 책을 읽는다. (웃음) 지금 구독하는 OTT가 7개인데 어디서 신작이 나왔다고 하면 1~2회는 대부분 시청한다. 그렇게 시간을 쏟아 붓느라 정작 독자인 나는 사라지게 됐다. - 어렸을 때 읽은 책이나 영화가 평생의 취향을 결정한다는 말이 있지 않나. 독자였던 시절 읽었던 <토지> <아리랑> <태백산맥>, 오정희와 신경숙 작가의 책이 이후 당신의 드라마에도 영향을 미친 것 같나. 신춘문예에 지원하던, 책을 좋아하던 김은숙의 자아가 드라마 작가 김은숙에도 남아 있다면. = 좋은 문장을 가진 글을 좋아한다. 화려한 문체를 좋아해서 시집을 읽게 됐고, 시를 읽다 보면 어느 한줄에 꽂혀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는 경험을 할 때가 있다. 그렇게 사람을 홀리는 단어와 문장 하나를 찾아냈던 기억이 이후 내가 대사를 쓸 때 영향을 많이 줬다. 그래서 작가 지망생들에게 당선되기 전에 책을 많이 읽어두라고 조언한다. 막상 일을 시작하고 나면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고, 시간이 있을 때 읽은 책들을 평생 뽑아 먹으며 살아야 한다고. (웃음) - 앞으로 새롭게 도전해보고 싶은 장르가 있나. = 진지한 정통 사극을 작업하다 잠시 멈춰놓았다. 언젠가 다시 꺼내보고 싶다. 가상의 인물이 실제 역사의 어떤 시간대를 관통하는 이야기다. 남녀주인공은 있지만 로맨스보다는 구국에 가깝다. <더 글로리>를 포함해 계속 비극적인 이야기를 다루다 보니 내 자신이 너무 다운되더라. 내가 쓰는 이야기가 재미있는지 아닌지 판단이 잘 안됐다. 작가가 우울한 분위기에 취하면 글도 그렇게 달려간다.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밝은 현대극을 먼저 하기로 결심했다.(<다 이루어질지니>는 이병헌 감독이 연출하고 김우빈, 수지가 주연을 맡았다.- 편집자) - <씨네21>과 김은숙 작가의 중요한 인연이 있다고 들었다. = 강릉 가구 공장에서 경리로 일하던 시절, 다른 친구들은 대학에 가고 홀로 지방에 남아 책만 읽고 있었다. 친구가 가게를 새로 오픈해 놀러갔는데 거기에 <씨네21> 잡지가 놓여 있었다. 서울예전(현 서울예술대학교) 모집 공고가 실려 있었다. 어? 내가 좋아하는 신경숙 작가가 나온 학교인데? 나 이 학교를 가야겠어! 접수 마감일이 얼마 남지 않아서 부랴부랴 원서를 준비했다. 부모님에게는 서울 본사로 발령받았다고 거짓말을 하고 서울로 상경했다. 그리고 시험에 합격해 27살에 서울예전 문예창작과 97학번으로 입학했다. 그렇게 작가가 될 수 있었다.

[정화예술대학교 융합예술학부]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창조하는 융합형 예술인을 양성한다

홈페이지 ipsi.jb.ac.kr 전화번호 02-3789-2020 교수진 이재용, 한동현, 전기주, 차현희, 임주현, 김성택, 손지영, 최종환, 박재민, 최인영, 전경배, 강동균, 류진희, 박현규, 백철기, 이상노, 김영래, 서철, 김기훈, 박소연, 박지예, 최광호 커리큘럼 학부공통과목 융합예술과미디어, 공연과융합예술, 행복나눔크리에이터, 예술과기술의융합 영상제작전공 모션그래픽, 사진및촬영기초, 스토리텔링, 영상제작기술과진로탐색, 영상편집, 숏폼콘텐츠제작, 라이브커머스, 모션과합성, 영상음향, 영상콘텐츠제작, 촬영과조명, D.I (Digital Intermediate), 방송영화편집, 드론및특수촬영, 사운드 디자인, 영상특수효과, 영화제작워크샵, 크리에이티브광고영상, 방송영화제작현장실무, 디지털미디어전략, 스튜디오제작, 졸업프로젝트, VFX스튜디오, 뮤직비디오제작 연기전공 공연예술일반상식, 연기, 발상과표현, 희곡읽기와분석, 호흡과발성, 뮤지컬 Choir, 움직임, 화술, 공연제작워크샵, 연극사, 공연기획과연출, 무대기술과 제작, 카메라연기, 연기와소리, 연기와 움직임, 프로덕션워크샵, 공연예술세미나, 졸업프로젝트, 오디션프로젝트, 전공커리어세미나 학과소개 정화예술대학교 융합예술학부가 개편 이후 두 번째 기수를 맞이한다. 기존의 영상미디어학부와 공연예술학부를 통합 재편한 융합예술학부는 영상제작, 시각디자인, 연기, 실용댄스의 4개 세부 전공으로 나뉘어 신입생을 모집한다. 전공 간 유연한 연계를 통해 다양한 장르의 문화예술 콘텐츠를 창출할 수 있는 융합형 문화예술인 양성이 목표다. 모든 전공이 함께 듣는 학부 공통 수업에서는 전공간의 소통과 협업의 기회를 제공한다. 일례로 3학기에 개설되는 ‘행복나눔크리에이터’는 서로 다른 전공의 학생들이 함께 공연 및 영상 콘텐츠를 제작한다. 나아가 제작한 결과물을 지역사회를 위한 재능기부에 활용하며 행복을 지향하는 정화예술대학교의 교육이념을 구현한다. 지난 8월에 개관한 대학로 캠퍼스 또한 큰 장점이다. 공연 문화의 중심인 대학로는 전공간의 자연스러운 협업과 풍부한 현장 실습 기회를 제공한다. 캠퍼스 내에는 4K카메라와 촬영용 드론 등 최신 장비가 구축된 촬영 스튜디오인 미디어센터, 영상 후반작업 전용 스튜디오, 복합 미디어 공연장, 연습실, 콘텐츠 제작 실습실 등을 마련하여 전문적 이고 체계적인 현장 중심 교육을 실시한다. 한동현 영상미디어학과장은 “대학로로 이전하며 캠퍼스와 주변 현장이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열린 문화가 자리 잡았다”고 평가했다. 연기전공 최종환 교수는 “연극 무대만이 아닌 카메라와 방송 매체 등을 경험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한 후 학생들의 교육 참여율이 높아졌다”고 밝혔다. 급변하는 미디어 산업의 트렌드에 발맞춘 정화예술대학교 융합예술학부의 교육과정은 전공별 전문성의 깊이를 더한다. 영상제작전공은 영화계 현직 제작 스탭들이 참여하는 단편영화 워크샵을 통해 프로젝트의 전문성을 높이며 ‘숏폼컨텐츠제작’, ‘라이브커머스’, ‘디지털 미디어전략 ’등 뉴미디어 콘텐츠 전반에 대한 교육도 진행한다. ‘숏폼컨텐츠제작’, ‘라이브커머스’, ‘디지털미디어전략’ 등 뉴미디어 콘텐츠 전반에 대한 교육도 진행한다. 특히 컴퓨터그래픽 기술의 발전에 대응하기 위해 향후 3년간 언리얼 엔진  5.0 교육의 도입을 계획하고 있다. 다양한 미디어 환경을 아우르는 전문가 양성 교육은 미디어아트, 버추얼 프로덕션 등 진로 선택의 다양성을 보장한다. 연기전공은 무대 연기를 기반으로 융합예술 시대에 걸맞은 매체 연기에 필요한 실전 교육을 제공한다. 현역 배우와 연출가, 영화감독들로 구성된 교수진은 무대와 영상 사이의 조화로운 균형은 물론 실제 현장과의 유기적인 실습 환경을 조성한다. 뮤지컬, 실용댄스 등 인접 전공과의 교류를 통해 다양한 장르의 표현력을 넓힐 수 있다는 것 또한 정화예술대학교만의 차별점이다. 입시전형 2024년도 정화예술대학교 융합예술학부는 영상제작, 시각디자인, 연기, 실용댄스 등 4개 전공에 걸쳐 총 258명을 선발한다. 영상제작과 시각디자인전공의 경우 각각 수시 27명, 정시 3명을 선발하며, 정시모집은 학생부 성적 100%로 선발한다. 연기전공의 경우 수시 80명, 정시 8명을 선발하고 자유연기(카메라 테스트) 형식의 실기 고사 100%로 진행된다. 실용댄스전공은 수시 102명, 정시 8명을 선발하며 자유댄스 형식의 실기고사 100%로 진행된다. 자유 형식의 실기 고사는 맞춤형 입시 준비에서 탈피해 지원자의 재능과 잠재력, 흥미 등을 종합적으로 파악하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 완벽에 대한 욕심과 부담감을 떨치고 자신만의 재능과 끼를 열정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좋다. 정시모집 원서접수는 2024년 1월3일(수)부터 15일(월)까지다. 자세한 내용은 정화예술대학교 입학 홈페이지(ipsi.jb.ac.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소통 능력과 본인의 강점을 보여주는 것이 좋다” 한동현 정화예술대학교 융합예술학부 영상제작전공 학과장, 최종환 융합예술학부 연기전공 교수 - 학부가 그리는 융합예술인의 모습을 위해 갖추어야 할 자질이나 태도가 있다면. 한동현 이제 융합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촬영과 편집 같은 제작 과정간의 팀워크도 필요하고 장르간의 협업도 중요해졌다. 스탭들에게 연출 의도를 명확히 설명하 려면 무엇보다 뛰어난 커뮤니케이션 역량이 요구된다. 최종환 연기자는 연기만 하고 댄서는 춤만 추던 시대는 지났다. 각자의 영역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장점을 공유해 좋은 퀄리티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필요하다. 자신의 취향에만 매몰되어 있지 말고 주위의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지는 자세가 바람직하다. - 자유 형식의 면접고사에선 지원자의 어떤 역량에 중점을 두나. 한동현 역시 소통 능력을 집중적으로 관찰한다. 단순히 말을 잘하는 학생보다 대화를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이어나갈 수 있는 학생을 선호한다. 포트폴리오가 있으면 좋지만 없더라도 앞으로의 계획을 자율적으로 설계해 나가는 능력을 보려 한다. 학생이 가진 이야기를 듣고자 전공분야 외에도 최대한 다양한 질문을 던진다. 자신의 생각을 명확하게 전달하려 노력할 필요가 있다. 최종환 1학년에게 프로페셔널한 역량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당장의 실력보다는 연기에 대한 관심도와 의지, 성장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보려고 한다. 자유연기는 다양한 요소보다는 지금 자신이 가장 자신 있는 분야에 집중해서 보여주는 것이 좋다. 발음이 좋다면 딕션이 강조되는 대본을, 움직임이나 노래에 자신이 있다면 그에 맞는 연기를 준비할 것을 추천한다.

[송경원 편집장] 별 셋 짜리 영화를 위한 밤

취미가 뭐예요? 살면서 받아온 질문을 리스트로 짠다면 상당히 앞자리에 있을 텐데 여전히 답하기 쉽지 않다. 어렵다기보다는 애매해서다. 사전을 뒤져보니 ‘경제적 이익이 없어도 즐거움을 얻기 위해 지속적으로 하는 좋아하는 일’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당장 떠오르는 건 독서와 영화 감상인데 대한민국 모두의 공식 취미인지라 ‘취미 없음’이나 다름없어 보일까 매번 소심하게 구석으로 밀어둔다. 그다음으로 많은 시간을 쏟는 일이라면 공상(이라 포장하고픈 망상)이다. 멍하니 혼자만의 세계로 떠나는 걸 시도 때도 없이 즐기는 편이다. 연말을 맞아 올해의 영화 리스트를 뒤적이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에 빠진다. 놓친 영화가 참 많구나. 이건 좀 길고 어려울 것 같은데. 이중에 10년이 지나도 다시 소환될 영화가 몇편이나 될까. 올해 가장 좋았다는 영화들을 정리하다 문득 물색없이 중얼거린다. 아, 이런 영화들만 하루 종일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잠깐. 진짜 좋을까? 영화기자를 업으로 삼은 후 유독 힘든 점 중 하나는 보기 싫은, 좋아하지 않는 영화도 구태여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봐야 한다는 거다. 영화기자 월급의 상당 부분은 (취미로는 절대 보지 않았을) 힘겨운 영화를 꾸역꾸역 보고 버텨낸 값이라 생각한 때가 있었다. 극장을 나설 때 ‘이걸 보려고 반나절을 투자한 건가’ 싶은 허탈감에 없던 피로까지 몰려오는 게 다반사다. 그런데 연말이 되면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 그렇게 실망스러웠던 영화들이 어느새 어여뻐 보인다. 실망스러웠던 영화들이 다른 얼굴로 찾아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문득 감사한 마음이 차오르고 겸손하게 자세를 가다듬는다. 사실 명작 리스트를 찬찬히 살피다 보면 가끔 숨이 막힐 때가 있다. 깊이 있는 사유를 바탕으로 꾹꾹 눌러담은, 밀도 높은 영화들‘만’ 본다면 계속 감탄하고 좋을 수 있을까. 좋은 영화, 정확히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만 보면 정말 행복할까. 적어도 나는 그렇지 못할 것 같다. 걸작이 걸작일 수 있는 이유는 수많은 범작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나머지 시간들을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범작들이 걸작을 위한 배경이란 뜻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 삶의 대부분은 특별하지 않은 순간들의 연속이다. 범상해서 기억되지 않는 일상의 시간은 일종의 숨구멍 같다. 비어 있는 시간이 아니라 그저 아직 의미가 되지 않은(어쩌면 영원히 의미가 되지 않아도 좋을) 순간들. <미스터 션샤인>의 김희성(변요한)의 말을 빌리자면 “내 원체 무용(無用)한 것들을 좋아하오. 달, 별, 꽃, 바람, 웃음, 농담 그런 것들. 연말 베스트를 꼽을 때가 되면 별 셋짜리 영화들은 무용한 영화가 된다. 마치 없었던 영화처럼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히고 기록되지 않는다. 그래서 연말이 되면 일부러 이 기억들을 꺼내어본다. 고백하자면 별점과 한줄 평 그리고 연말 베스트 리스트는 영화기자가 짊어진 업보다. 감히 무슨 자격으로 영화를 평가하냐고 묻는다면 애초에 창작자에 대한 점수 매기기가 아니라고 소심하게 항변하겠다. 이건 (산업으로서의 기능을 위한) 최소한의 지표를 세우는 작업이자 오직 대중을 향한 말 걸기다. 각기 다른 마음의 준비를 하고 극장으로 오시라는 눈높이 가이드라고 해도 좋겠다. 그럼에도 마음이 편친 않은 게 사실이다. 직업적 책무라곤 하지만 한편의 영화가 탄생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고와 애정이 들어가는지 모르지 않는 입장에서 마음 한구석 죄송함을 품고 1년을 보낸다. 그리고 한해의 마지막, 올해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버텨준 범작들을 한편씩 떠올리며 감사와 반성의 밤을 지샌다. 영화기자가 된 후 생긴, 연말에만 허락된 소소한 취미다.

[OTT 추천작] ‘아트풀 다저’ ‘사랑한다고 말해줘’

<아트풀 다저> 디즈니+ 8부작 / 연출 제프리 워커, 코리 첸, 그라시에 오토 / 출연 토머스 브로디 생스터, 데이비드 튤리스, 마이아 미첼 플레이지수 ▶▶▶▷ | 20자평 - 신대륙에서도 여전한 디킨스 듀오의 매력. ‘아트풀 다저’로 불리던 과거를 청산하고 호주에서 외과의의 삶을 살아가는 전직 소매치기 잭 도킨스(토머스 브로디 생스터). 도박 빚으로 손목을 잃을 위기에 놓인 그는 타고난 손기술이 선물해준 양극단의 역량을 동시에 발휘하기 시작한다. 재회한 옛 두목 패긴(데이비드 튤리스)과 협업해 부자들의 재물을 훔치는 한편, 최초의 여성 외과의를 꿈꾸는 벨 폭스(마이아 미첼)와 함께 더 효과적이고 안전한 의술을 시도한다. <아트풀 다저>는 영국의 대문호 찰스 디킨스의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 속 인물인 아트풀 다저와 패긴을 모티브로 삼는다. 런던 뒷골목에서 좀도둑질로 연명하던 이들은 이민자와 죄수들의 땅이던 호주로 무대를 옮긴다. 원작의 캐릭터성에 의존하지 않고 현대적인 유머 코드를 가미하지만, 그 바탕색은 분명히 디킨스적이다. 당시 최고의 구경거리였던 수술 쇼의 풍경부터 금녀의 구역이던 의학계에 발을 내딛는 여성까지, 근대 의학사를 배경으로 19세기 신대륙의 시대상을 경쾌하게 훑는 <아트풀 다저>는 런던의 빈민에게 따뜻한 눈길을 던졌던 <올리버 트위스트>의 해학을 충실히 계승한다. <사랑한다고 말해줘> 지니TV, ENA, 디즈니+ 16부작 / 감독 김윤진 / 각본 김민정 / 출연 정우성, 신현빈 플레이지수 ▶▶▶▷ | 20자평 - 사랑한다는 말을 하기 위해 천천히 조심스럽게 나아간다. 승무원을 그만두고 극단 생활 중인 모은(신현빈)은 아직 배우보다는 단역이라고 더 많이 불리는 무명 배우다. 촬영차 제주도를 찾았다가 화가인 진우(정우성)와 거듭 동선이 겹치고 곧 그에게 청각장애가 있다는 걸 알아챈다. 모은이 불이 난 카페에서 그를 구출하면서 둘은 가까워지고 인연은 서울에서도 이어진다. <사랑한다고 말해줘>는 동명의 1995년작 일본 드라마의 옛날 느낌과 현대 도시의 세련됨이 부드럽게 섞인 작품이다. 바람에 날아가는 스카프와 같은 고전적 소품을 적절히 활용하는 동시에 초고층 건물과 도시인이 즐비한 거리의 풍경을 감각적으로 포착한다. 전체적으로 차분하고 따뜻한 톤으로 설계된 조명. 얼굴과 공간에 조바심 없이 머무는 촬영이 잔잔한 멜로드라마의 분위기를 극대화한다. 농인과 청인의 특별한 로맨스로 안일하게 빠지는 일이 없이 그들 각자의 인생을 충분히 들여다봄으로써 삶 자체를 이야기하는 쪽으로 나아가는 극의 지향점이 인상적이다. 12월12일 기준, 16부작 중 6편까지 공개됐으며 <그 해 우리는>의 김윤진 감독이 연출하고 <구르미 그린 달빛>를 쓴 김민정 작가가 집필했다.

[인터뷰] 아스팔트 위에 핀 장미, <스위트홈> 시즌2 진영

<스위트홈> 시즌2의 뉴 페이스는 배우 진영이다. 그가 분한 이등병 찬영은 괴물화 사태가 터지자마자 괴물 처리를 전담하는 까마귀부대에 자원 입대해 생존자들을 구출하는 정의로운 남자다. 작품을 연출한 이응복 감독이 찬영에 대해 “진영을 두고 만든 캐릭터다”라고 공언했을 만큼, 진영은 그 어떤 배역보다 자신과 높은 싱크로율을 자랑하는 캐릭터를 만나 백방으로 뛰며 쑥대밭 세상 속 미약한 인류를 구한다. - <스위트홈> 세계관에 새로 합류한 소감은. = 시즌1을 정말 재밌게 봤다. 당시 시청자로서, 또 배우로서 <스위트홈>을 보며 내가 저 세계 안에 있으면 어떤 모습일까를 그려보기도 했는데, 마침 캐스팅 제안이 와 기분이 좋았다. ‘어떤 캐릭터일까?’ ‘나는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매일 기대하며 촬영을 기다렸다. - 이응복 감독과 촬영 전 미팅을 가졌다고 들었다. = 캐릭터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찬영이 어떤 삶을 살다 까마귀부대에 입대했는지 들려주며 찬영을 향한 감독님의 기대와 바람을 얘기하셨다. 그날 이후로 캐릭터 빌딩에 들어갔다. 찬영의 외형도 그날 정했다. 가령 찬영은 군복 조끼 속에 휴대용 숟가락과 손전등을 지참하고 다닐 정도로 꼼꼼하고 섬세한 캐릭터다. 이같은 디테일을 통해 찬영의 모습을 내면화해갔다. - 찬영이 보여주는 친절함이 있다. 생존자들의 손목에 묶인 결박 끈을 풀 수 있도록 조치한다거나, 어둠을 무서워하는 영수(최고)와 함께 소변을 누며 아이의 공포를 달래주는 장면을 보면 자신보다 약한 이들을 절대 그냥 넘길 수 없는 찬영의 모습이 드러난다. = 찬영의 성정을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인류애일 것이다. 눈앞의 생존자가 괴물일지도 모르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한 채 인류를 지켜내야 한다는 신념이 올곧은 사람이다. 찬영이 존재하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위기가 쏟아지는 스토리 속에서도 한숨 쉬어갈 수 있다. 카오스 속에서도 바른 생각을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라 찬영을 ‘아스팔트 위에 핀 장미’라 상정하고 연기했다. 악다구니 같은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다른 캐릭터들과 대비를 보이는 것이 핵심이었다. - 대비를 염두에 두었다지만, 모두가 드센 연기를 하는 와중에 혼자 다른 톤을 견지하는 일이 우려되지는 않았나. 게다가 극 초반에 등장하는 생존자들은 이미 전작에서 한 차례 호흡을 맞춘 배우들이다. = 찬영은 다른 캐릭터들과 생존 목적이 다르다. 괴물화 사태에서 사람들을 지키고 이송해야 하는 하나의 목적을 외골수처럼 고수하는 인물이라 홀로 튀는 게 당연하고 맞다고 판단했다. 다만 말씀하신 것처럼 이미 <스위트홈> 세계관이 익숙한 시즌1 출연배우들과 내가 잘 섞일 수 있을까를 많이 걱정했다. 그리고 실제로 촬영 초반에 외롭기도 했다. 나를 제외한 배우들은 서로 익숙한 사이인 데다 심지어 시즌1과 동일한 의상을 입고 있다 보니 오히려 내가 출연배우가 아닌 시청자로서 드라마를 보고 있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다행히 좋은 배우들을 만나 점차 섞이는 데 문제가 없었다. 은유 역의 고민시 배우는 정말 배려심이 넘친다. 내가 힘들고 외로워할 걸 미리 안다는 듯이 현장에서 많은 부분을 챙겨주었다. - 고민시 배우를 향한 헌사를 들으니 은유와 찬영의 묘한 케미스트리를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 예고를 하자면 찬영이 형성하는 몇 갈래의 러브라인은 시즌3까지 이어진다. 찬영은 하나의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성격이다. 그래서 오빠 은혁(이도현)을 찾겠다는 일념을 고집하는 은유에게서 동질감을 느꼈을 것이다. 딱 잘라 이성간의 사랑이라 정의할 수 없는 감정도 둘 사이에 흐른다. 전우애와 사랑의 중간이랄까. - 전우애는 은유와 함께 흙구덩이에 빠지는 4화부터 쌓였을 것 같다. 동료 배우로서도 말이다. = 찬영에게 그 신이 정말 중요하다. 은유가 처음으로 찬영에게 의지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배우로서 그 신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정말 힘들게 찍었기 때문이다. 현장에 가니 실제로 구덩이가 깊게 패 있었다. 구덩이 안을 보니 말 그대로 진흙탕이고, 장면간 연결을 고려하며 얼굴과 몸에 진흙을 잔뜩 묻힌 채 며칠을 연기했다. 실제 찬영과 은유처럼 고생해가며 장면을 만들었고, 서로 수고 많이 했다며 독려했다. - 결국 <스위트홈> 시즌2에서도 변함없는 주제는 “무엇이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가?”이다. 괴물화로부터 인간을 수호하며 괴물과 인간 모두를 끊임없이 마주해야 하는 찬영도, 그를 연기한 배우 진영도 작품의 주제의식에 부합하는 고민을 했을 것 같다. = 살면서 어떤 일에 혈안이 돼 미쳐 있는 사람을 보면 “괴물이 됐다”고 표현하지 않나. 그 말과 우리 작품의 주제가 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을 괴물로 만드는 과도한 욕심들이 있다. 나 또한 한번 일을 시작하면 쉬는 법을 잘 모르고 마구 일만 하는 사람이라 ‘적당히’가 잘 없다. 찬영을 연기하며 내 욕망에 잡아먹히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을 수차례 했다. 쉴 타이밍을 잘 확보해 쉬고, 오래 할 취미도 찾아야겠다. - 입영 전 배우로서 동안 이미지에 한계가 있다는 고민을 토로한 적 있다. 그런데 정작 소집해제 후 <경찰수업>의 경찰대생 강선호, <스위트홈> 시즌2의 이등병 찬영까지 나이 어린 배역을 독점 중이다. = 이젠 동안 이미지가 나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성숙한 배역에 눈길이 갔었는데 실제로 나이를 먹다 보니(웃음) 할 수 있을 때까지 어린 배역들을 소화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배우로서 역할의 폭을 넓히고 싶은 마음은 변함이 없다. 늘 이전 작품의 연기에 관해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때 이렇게 연기해볼걸’, ‘지금 이 감정으로 그때 그 배역을 다시 만나면 연기가 달랐을까’ 하는 생각들 말이다. 다양한 캐릭터를 만난다면 배우로서 연기에 접근하는 방법을 늘려갈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든다.

씨네21 추천도서 - <소설 보다: 겨울 2023>

김기태, 성해나, 예소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펴냄 고등학교 교사 곽은 고전 읽기 수업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독서를 통해 보편적인 교양과 바람직한 인성을 가르치고 싶어 한다. 고전을 열심히 읽을 뿐 아니라 마르크스에 대해 설득력 있는 논술을 써내는 은재 같은 우등생은 곽에게 빛과 소금 같은 존재다. 수능 시험에 나올 문제집 풀이가 아닌 독서를 통해 청소년의 인격 함양을 꾀한다는 점에서 곽은 좋은 선생님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독자로서 곽을 완전히 지지하긴 어렵다. 그가 무지한 학생들을 향해 뇌까리는 속마음이 이중적이기 때문이다. 문학과지성사에서 계절마다 세편의 소설을 선정해 출간하는 <소설 보다> 시리즈의 2023년 겨울편에 수록된 김기태의 <보편 교양>은 이처럼 지극히 평범한, 보편적인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한다. <소설 보다> 시리즈는 단편소설 다음에 작가의 긴 인터뷰를 수록하는데, 김기태 작가는 일반적인 소설에서 주인공으로 다루는 문제아나 체제 밖 탈주자가 아닌 체제에 완벽히 적응한 선생님이나 모범생 은재를 통해 보편적인 인물들의 지극히 현실적인 복잡성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한다. 한편 성해나의 소설 <혼모노>의 주인공은 박수무당 문수다. 문수가 모시던 장수할멈이 어느 날 어린 ‘신애기’한테 옮겨가버리며 문수는 갑자기 신을 잃어버린다. 점을 보러온 사람들에게도 아무것도 예지해주지 못한다. 할멈을 극진하게 모셨으나 하루아침에 직업을 잃게 된 것과 마찬가지인 그는 할멈의 말대로 더이상 ‘혼모노’(진짜)가 아니다. 성해나의 <혼모노>는 무당 세계를 사실감 있게 그릴 뿐 아니라 인간의 욕망과 질시를 굿판의 칼춤으로 승화시키며 한편의 영화적인 이미지를 완성시킨다. 예소연의 <우리는 계절마다> 역시 자기 의지로 삶을 진척시킬 수 없는 아이들의 무구함과 이유 없이 고장나버리는 삶의 슬픔을 그렸다. 작가들은 자신이 창조한 인물들에게 미안할 정도로 가혹한 시련을 줘 미안하다고 인터뷰에서 밝히지만, 사실 이 세 소설의 미덕은 인물들이 사실적이면서도 ‘혼모노’라 독자들이 마음을 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올겨울에도 <소설 보다>는 여전히 이 작은 소설집의 가치를 증명한다. 56쪽 “언젠가부터 ‘가르치다’라는 말의 뉘앙스가 나빠졌지요. ‘왜 날 가르치려고 해?’ 같은 문장만 떠오릅니다. 그런데 가르치는 게 그렇게 나쁜가요. 서로 가르치고 배우고 영향력을 주고받고 함께 변화하지 않고서 어떻게 더 좋은 세상을 만들까요.”

[특집] 올해의 시나리오 - 정주리 ‘다음 소희’, 올해의 촬영감독 - 조형래 ‘콘크리트 유토피아’

올해의 시나리오 - <다음 소희> 정주리 현장 실습에 나선 10대 청소년의 죽음을 다룬 <다음 소희>가 올해의 시나리오로 선정됐다. 아이들이 처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학교와 사회에 변화를 촉구하는 <다음 소희>는 “올곧은 응시, 맹렬한 목소리, 부드러운 연민으로 비극을 감싸쥔”(김소미)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감독의 슬픔과 바람을 유려하게 풀어낸다. “이 영화의 진짜 매력은 대사가 없는 부분에서 발견된다”고 평한 이지현 영화평론가는 “시각적인 힘을 믿는 이야기 구조”가 작품이 현실을 효율적으로 반영하며 메시지 또한 효과적으로 전달한다고 언급했다. 올해의 시나리오 선정 소식을 들은 정주리 감독은 영화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통과해야 했던 어려움을 회고하며 소감을 전했다. “<도희야> 이후 오랜만에 시나리오도 쓰고 영화도 만들었다. 주인공이 중간에 죽어버리고 그 이후에도 이야기가 절반이나 남는 구조가 낯설다는 반응을 시나리오 단계에서 정말 많이 접했다. 그런 고초가 있었는데 올해의 시나리오로 뽑아주시니 더더욱 기쁘다.” 실제로 정주리 감독은 <다음 소희> 각본 작업에 있어 실화와 비등한 현실성을 담보하기 위해 가장 오랜 공을 들였다. “실제 사건을 접하고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던 건 영화의 힘을 믿었기 때문이다. 영화 한편으로 소희가 겪은 일들이 모두 해결될 리는 없겠지만 적어도 소희를 통해 이 아이들이 얼마나 빛나게 살아 있었는지, 이런 아이들을 잃었다는 게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남기는지 생각해볼 기회가 되면 좋겠다.” 올해의 촬영감독 - <콘크리트 유토피아> 조형래 “늘 믿음직스럽게 이야기와 맞아떨어지는 이미지를 찾아내”(배동미)왔던 조형래 감독은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기본 위에 기교를 더한 촬영으로 시각적으로 충만해지는 경험”(남선우)을 하게 했다. “화면의 어둠과 그림자를 피하지 않은 뚝심으로 한국영화의 새로운 질감”(이우빈)을 만들어냈고 “익숙한 배우의 얼굴에 존재하던 이면을 발굴하고 일부 창조해냈다는 점에서 기념할 만한”(정재현) 성취를 이뤘다. “감사하다”는 말로 운을 뗀 조형래 감독은 2021년 여름 연천 촬영장에서 겪었던 무더위를 맨 먼저 소환했다. “대재난 발생으로 하늘이 온통 잿빛이 됐다는 설정상 큰 세트장 위를 천막으로 다 덮어버려 무척 더웠다. 기쁜 소식을 듣고도 그때의 더위가 가장 먼저 떠오른 걸 보면 당시 정말 고생스럽긴 했나 보다. (웃음)” 엄태화 감독과 작업하는 동안 그는 “레퍼런스였던 <7인의 사무라이>를 계속 보며 집단의 움직임을 어떻게 보여줄지”를 고민했다. 디스토피아 세계를 구현하기 위해 “직선광선을 최대한 줄이고 손전등이나 양초를 조명으로 써 명암을 잘 표현하고자 했다. 후반부로 갈수록 아파트 주민들의 조명에서 나오는 날카로움을 강조해 강렬한 느낌을 살리고 싶었다.” 조형래 감독의 2024년 스케줄은 변성현 감독의 신작 촬영으로 이미 꽉 찼다. “이제 준비 단계인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실제 촬영에 들어가고 마무리하다 보면 내년이 다 가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