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가 찾는 영화 정보를 손쉽게!

‘바람' 검색결과

기사/뉴스(9404)

[리뷰] ‘영화 스미코구라시: 푸른 달밤의 마법의 아이’, 꿈이라는 정체성, 몽글몽글 차오르는 행복

마법사 파이브는 꿈을 이뤄주는 능력이 있는 다섯 마법사 중 막내다. 아직 요술봉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초보지만 가족들과 함께 꿈꾸는 친구들 ‘스미코구라시’가 사는 마을로 잠시 내려간다. 그곳에서 즐겁게 지내는 건 잠시뿐, 복귀하는 가족들을 놓치는 바람에 마을에 혼자 남는 시련을 겪는다. 다행히 스미코구라시들의 보살핌으로 지낼 곳을 얻은 파이브는 새 친구들에게 보답하고자 마법을 부린다. 이루지 못한 꿈 때문에 힘들어하는 그들에게서 꿈을 없앤 것. 그러나 예상과 달리 친구들이 편해지지 않자 당황한다. 일본 인기 캐릭터 스미코구라시의 두 번째 극장판 <영화 스미코구라시: 푸른 달밤의 마법의 아이>는 보고 있기만 해도 행복이 차오르는 애니메이션이다. 둥글둥글한 그림체의 스미코구라시들이 부드러운 곡선의 세계를 아장아장 걸어다니는 모습에서부터 귀여운 매력이 뿜어져나온다.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듯한 다정한 내레이션과 잔잔한 배경음악, 온화한 색감으로 묘사한 가을 풍경이 아늑함을 준다. 꿈이란 곧 그 사람의 정체성이라는 메시지를 초보 마법사의 성장담에 살포시 얹어 쉽지만 강력하게 전달한다. 우정 에피소드를 켜켜이 쌓아 결실을 이루는 결말은 코끝을 찡하게 하며 여운을 남긴다.

[인터뷰] 우리에겐 죽음 이전의 삶을 논할 자리가 필요하다, <소풍> 김용균 감독

환한 대낮에 서울 아파트의 거실에서 낮잠을 자던 은심(나문희)은 고향 남해의 청보리밭 풍경과 돌아가신 엄마 꿈을 꾼다. 때마침 어린 시절의 친구 금순(김영옥)이 은심을 찾아와 둘은 함께 남해로 내려가고 그곳에서 60년 전의 친구 태호(박근형)와 은심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마주한다. <와니와 준하>(2001), <분홍신>(2005), <더 웹툰: 예고살인>(2012)을 연출했던 김용균 감독은 <소풍>으로 인생의 황혼 녘에 다시 만나 우정을 나누는 70대의 은심, 금순, 태호의 이야기를 스크린에 펼친다. 영화 안팎에서 그가 경험한 삶과 죽음으로 천천히 매만지고 다듬어왔을 생각들을 김용균 감독은 활자에 눌러 담기 벅찰 만큼 들려주었다. - 수많은 이야기에서 노인은 주변부를 장식한다. <소풍>은 60년이 흐른 뒤에 고향에서 다시 만나 우정을 나누는 노년의 삶을 한가운데 놓고 다루는 영화다. 이 이야기를 선택한 이유는. =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 그 점이 신선했다. 하지만 신선하다는 건 현실적으로 투자받기 어려운 영화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도 역시 원동력은 개인적 끌림이자 경험이었다. 부모님의 노환과 죽음을 겪으면서 죽음이라는 건 멀리 있는 당신들의 문제만이 아니라 내 문제이기도 하다는 걸 크게 느꼈다. 처음 제목은 ‘가지 마오’였는데 제작자가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 천상병 시인의 <귀천>이 떠올랐다고 해 지금의 <소풍>이 되었다. 제작진이 영화 제목으로 한참 고민했다. ‘소풍’을 검색하면 ‘김밥’ 이런 것밖에 없고(웃음), 망설였지만 나는 직감적으로 마음에 들었다. 이 단어 하나로 내가 어떤 태도로 이 영화를 연출하면 좋을지 선명하게 그려졌다. - 나문희, 김영옥, 박근형 세명의 베테랑 배우가 한자리에 모였다. 연기 앙상블이 관객에게는 편안하지만 현장을 지휘하는 연출자로서는 어려웠을 점이 먼저 상상되는데. = 걱정됐다. 처음에는 어떻게 연출할지 머릿속에 그려보기도 했다. 그런데 대본 리딩을 하러 배우들이 모였을 때 캐릭터는 거의 완성이 되어 있었고, 아닌 척하지만 이미 어떻게 연기하겠다는 계획이 세워져 있었다. 배우들이 지나온 나이인 70대를 연기하기 때문에 경험에서 비롯된 배우들의 통찰과 50대인 나의 어림짐작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여기서 내가 뭔가 끌어내기 위한 연출을 하면 안될 것 같았다. 그래서 관객의 마음으로 연기를 보고 솔직한 느낌을 잘 전달해보자 마음먹었다. 이런 소통 과정에서 내 막내 기질을 믿었던 것도 있다. 어떻게 말하더라도 이분들은 내 말을 기분 나쁘게 듣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이 있었다. 촬영 회차가 쌓여가면서 의견을 나누는 데 서로 조금씩 편해진 부분도 있다. 베테랑 배우들이라 촬영이 대부분 한두번 의 테이크에 오케이가 났고, 그런 현장 자체가 놀라운 경험이었다. - 영화는 플래시백으로 세 주인공의 과거와 추억을 지금으로 계속 불러낸다. = 흔히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면 어려진다고 말한다. 신체가 노쇠해 누군가의 돌봄을 필요로 한다는 측면에서 어려진다는 의미도 분명히 있다. 그런데 그뿐만이 아니다. 정신적으로 마음이 더 젊어진다고 할까. 나이가 들면 어린 시절의 기억이 오히려 더 선명해진다. 세파에 시달리지 않았던 순수함을 떠올리면서 그때로 더 가까워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해에서 세 배우와 영화를 촬영하면서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 세 주인공의 아들과 딸들의 삶도 골고루 비춘다. 나이가 들었어도 자식들의 삶은 떼려야 뗄 수 없음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 애초에 이 영화 각본이 은심의 아들 해웅(류승수)의 시선에서 시작되는 이야기였다. 각색하는 과정에서 은심과 금순이 중심에 놓이게 된 거다. 나로서는 시나리오의 방향이 바뀐 게 좋았는데 원안에서 워낙 비중 있는 캐릭터다 보니 아들의 존재가 양날의 검이 되었다. 해웅을 아예 없애서도 안되었고 지금보다 더 강력한 서사가 나와도 안되었다. 노인들에게 자식은 중요하니 어느 정도 필요한 역량을 주고받을 수 있는 비중으로 균형을 잡는 데 상당히 오래 공을 들였다. 자식들이 가업을 잇거나 사업에 실패하고, 아파트로 이사하고 싶어 하는 현실적 문제는 노인들의 개인적이고 사소한 삶을 드러내는 부분과의 균형을 고려한 결과다. - 금순의 방에서 은심과 금순이 나란히 누워 있거나 부엌에서 목욕하는 장면의 카메라 위치가 낮다. 이렇게 촬영한 이유는. = 남해에서의 촬영은 핸드헬드로 찍었다. 남해로 가는 순간부터 카메라를 많이 움직여서 생동감을 주자는 촬영감독의 의견에 공감했다. 금순의 집으로 나오는 공간을 빌려서 리모델링하긴 했지만 세트장에서처럼 카메라가 자유롭게 오갈 수 없었다. 집 안의 상황에 맞춰 어떻게든 찍어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에 이르렀는데 그래서 자연스럽게 낮은 앵글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또 나중에 주로 앉아 있거나 누워 있는 배우들의 눈높이에 맞추려는 의도에서 탄생한 결과물이 아닌가 싶다. - 천연 염색을 한다거나 금순의 반지에서 풍기는 예스러움, 금순이 은심에게 차려주는 밥상에서 힘주지 않은 소박한 우리네 정서가 물씬 풍긴다. = <한국기행> 같은 다큐멘터리 보는 걸 좋아하는데 귀촌한 분들이 천연 염색을 곧잘 하더라. 또 영화에서 의미가 있는 해당화 꽃물로 천을 물들이는 설정을 영화에 가져오고 싶었다. 반지는 오롯이 김영옥 선생님의 아이디어다. 평소에도 그런 반지를 많이 끼시는데 영화의 마지막에 반지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주셔서 반영했다. 그 시절 어른들에게는 당신 것이라고 할 만한 물건이 거의 없지 않나. 그러니 반지 하나조차도 굉장히 소중한 나만의 것이라는 의미가 있다. 밥상이 나오는 장면에서는 일상의 리얼리티를 지키고 싶었다. 요리 연구가를 불러서 밥상을 조금 더 예쁘게 잘 차릴 수도 있었을 거다. 하지만 금순이 은심에게 차려주는 밥상은 자연스럽고 사실적으로 보이기를 바랐고 우리가 먹는 진짜 집밥으로 보이고 싶었다. - 이번 영화를 통해 특별히 바라는 점이 있다면. = 운 좋게도 지금 같은 귀한 상황이 되었다. 결과에 대한 기대보다는 많은 부모와 자녀들이 이 영화를 보고 나이 들어간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으면 좋겠다. 어떻게 늙는 것이 좋은지, 죽음을 어떤 태도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개인적 경험에서도 이런 대화는 나누는 게 바람직하다. 세상에 나온 뒤부터 작품은 창작자의 것이 아니니 사람들이 어떤 말을 나누게 될지 모를 일이지만 관객들이 이 영화로 죽음 이전의 삶을 이야기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

[특집] 이두용에 관한 끝나지 않은 질문들, 이두용 영화의 굴곡은 지금도 왜 유의미한가

<최후의 증인>은 어떻게 전설이 되었나? 1982년, 남산 밑, 영화진흥공사(영화진흥위원회의 전신) 시사실. 이두용 감독의 <최후의 증인>의 엔딩 크레딧이 오를 때 두 남자가 충격에 빠진 채 자리에 앉아 있었다. 막 영화계에 입문한 강우석 감독과 20대의 철학도 박찬욱 감독이었다. 이후 두 사람은 각자의 방식대로 <최후의 증인>에 관한 경외 가득한 소문을 퍼뜨린다. 류승완, 오승욱 감독 등이 이들의 후일담을 듣고 <최후의 증인>을 어떻게 볼 수 있을지 궁리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1980년 11월. <서울의 봄>에 담긴 일촉즉발의 하루가 채 1년도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이두용 감독은 극장에서 자신의 영화를 보다가 그냥 나와버린다. 2시간46분으로 마감편집한 영화가 100분짜리로 난도질되어 있었으므로. 이후 그는 <최후의 증인>을 잊고 살아간다. 절망할 시간이라고는 없었다. 같은 해 3월에 <우산속의 세 여자>가 개봉한 이후였고, 연말에는 영화 <쌍웅> 개봉을 앞두고 있었으며 동시에 <귀화산장> <피막> 작업을 준비해야 했다. 1970년대에 이미 짧으면 2주 만에 영화를 완성하기도 한 이두용 감독에게 <최후의 증인>은 이례적으로 10개월 이상 프로덕션을 진행한 영화라는 점이 쓰라릴 뿐이다. 어쨌든 스토리보드를 장악하는 판단력과 직관이 따라주지 않으면 밀어붙이기 힘든 속도의 작업은 이후에도 내내 이어진다.<최후의 증인>은 살인사건을 하달받은 우울한 형사 오병호(하명중)가 겨울 저수지를 떠돌며 어느 양조장 주인의 죽음을 조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살인 피해자가 실은 근현대사의 격동 속에서 악행을 저질러온 인물이었음이 서서히 드러나는 동시에, 한국전쟁이 낳은 가해와 피해의 정체성으로 엮인 인물들이 뒤섞인다. 감독 스스로 영화의 ‘어두움’을 예고하고 ‘인간 보호’라는 주제를 내거는 오프닝 타이틀은 선언적이고, 주인공 또한 죄의식의 그물망에 연루되어 결국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는 엔딩은 비정한 이미지로 매듭짓는다. 영화제 출품 심사용으로 1982년에 영화진흥공사 시사실에서 <최후의 증인> 최종편집본이 비공개 상영되었을 때, 운 좋게 합류하게 된 학생 신분의 박찬욱 감독은 덕분에 인생의 행로가 바뀌는 경험을 하고 만다. <최후의 증인>이 일반에 공개되고 블루레이와 DVD까지 나오게 된 데에 암묵적으로 큰 공을 세운 장본인인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임권택이라는 거장, 일찍 전성기를 맞이한 김기영, 이미 돌아가신 지 오래인 이만희. 이 세 사람 외에 한국영화에 누군가가 더 없을까 한참 궁금해하며 목말라 하는 시기가 있었다. <피막>과 <최후의 증인> 이후에 극장 개봉작으로 걸린 <해결사>까지 보고 나서 엄청나게 뿌듯했다. 한국에서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을 나도 해볼 수 있을까 고민할 때 진정 큰 힘이 되었다.”(<최후의 증인> 블루레이 오디오 코멘터리 중) 이후 한국영상자료원이 온전한 필름을 복원한 뒤 <최후의 증인>을 일반에 공개했고 서울아트시네마도 이두용 감독을 초대했다. 2009년에는 <돌아온 외다리>가 복원되었다. 2008년부터 2012년은 이두용에 대한 재발견·재조명의 움직임이 특별전이나 회고전의 이름으로 이어진 시기였다. 2019년, 한국영화 100년을 맞아 열린 시네마테크KOFA 특별 상영 프로그램 ‘나의 친애하는 한국영화’에서 박찬욱 감독은 이런 말도 보탠다. “<최후의 증인> 속 오병호 형사의 비극적인 죽음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그것이 <공동경비구역 JSA>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1970년대 태권영화는 그저 흥행을 위한 장르였나? 이두용 감독에 관해 이야기하려면 그가 1970년에 데뷔한 감독이라는 사실을 먼저 말해야 한다. 어쩌면 이것은 언젠가 2024년에 데뷔한 감독을 서술할 때에도 유효한 레토릭일 수 있을까? 어느 분야나 초심자가 피어나기 어려운 냉혹한 시대가 왔다가 물러가고 또다시 찾아온다. 한국영화에서 1970년대가 그랬다. 다만 이두용에겐 빛나는 첫 르네상스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 있었다. 김기영, 신상옥, 유현목, 이만희, 정진우, 김수용 등이 꽃피운 1960년대 한국영화의 도제 시스템 속에서 매섭고 유능한 조연출로 먼저 이름을 알린 그였다. 현장에서 다진 구력으로 우선 업계에 뛰어들기로 한 그는 신파 멜로드라마 <잃어버린 면사포>로 시작해 1972년까지 단 2~3년 만에 무려 12편의 기획영화를 연출했다. 시스템의 요구에 응하는 그저 그런 영화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중 <어느 부부>처럼 당대 멜로드라마의 흐름 안에 있으나 상투성에서 탈피해보려 시도한 흔적이 돋보이는 영화도 있다. TV 도입과 함께 침체기에 접어든 영화산업은 73년에 유신영화법이 도입되면서 작품이 가위질당하거나 현장이 중단되고 감독이 검찰로 불려가는 크나큰 두려움으로 더욱 숨죽였다. 암흑이 짙어진 무렵임에도 이두용 감독은 자기 영화의 개척가를 자처하고 나섰다. 모두 1974년 영화로 기록된, <용호대련> <죽엄의 다리> <돌아온 외다리> <속 돌아온 외다리>가 이때 나온 이른바 ‘태권영화’다. 류승완 감독의 <짝패>의 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닿는, 1960년대 홍콩 영화산업을 이끈 쇼 브러더스 액션영화들과 차별화를 꾀한 한국형 액션영화들에 관해 이두용 감독은 스스로 양가적인 입장을 취한다. 흥행이 절실한 극장업자들의 요구에 떠밀려 2~3주에 한편씩 영화를 찍어내는 양산 행위에 일조했다는 자조감, 동시에 만주 웨스턴과 홍콩 무협에 완전히 수렴되지 않는 한국영화의 대안을 개발해냈다는 자부심이 1970년대의 생존자였던 그의 내면을 지탱하는 두 기둥이었다. 흥행 감독이라는 명성이 곧 부상으로 주어졌다. 훗날 현역에서 물러난 뒤에도 액션 장르에 대한 그의 애착은 확고했다. “할리우드처럼 프랜차이즈화가 가능한 킬러 콘텐츠로서의 캐릭터 액션영화가 필요하다거나 이소룡, 성룡, 브루스 윌리스류의 액션영화나 수많은 B급 액션영화들이 한국 영화산업의 저변을 지켜야 한다는 말씀을 하곤 했다.”(오동진 영화평론가) 류승완 감독의 회고에 따르면 <피도 눈물도 없이>(2002)를 준비하던 무렵, 이두용 감독은 그에게 “여성이 활약하는 액션영화를 하루빨리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2024년인 지금, 한국 액션영화의 가장 중요한 기착지였던 이두용으로부터 한국영화는 얼마나 멀리 나아갔나. 마석도라는 존재감 강한 캐릭터가 두드러지는 <범죄도시> 시리즈, <악녀>와 <마녀> 시리즈, <길복순> 등이 나온 현재 이두용 감독의 바람은 어느 정도 이루어진 것일까? 그러나 지금 한국영화에서 액션은 장르가 아니라 요소다. 근래 남다른 밀도와 속도감을 지닌 복도 액션 신으로 회자된 장면이 해녀들의 활극을 표방한 류승완 감독의 <밀수>에 있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더불어 동시대 액션영화가 로컬영화로서는 무색무취에 가깝다는 사실도 길 잃은 액션영화의 현재를 보여준다. 아이코닉한 캐릭터인 마석도를 떠올릴 때 배우 마동석의 육중한 신체성 외에는 영화적 몸짓으로 기억되는 액션이 없다는 실패 지점도 뚜렷하다. 물론 <범죄도시> 시리즈가 묘사하는 밈화된 인물과 심도 얕은 풍경이 그 자체로 오늘날의 한국이라고 인정한다면 누군가는 이것을 최선이라고 할 것이다. 영화감독은 산업과의 타협 속에서도 쇄신할 수 있을까? 태권영화가 저급한 2, 3류 영화로 취급받고 고락을 함께한 무명 및 비전문 배우들(날것의 하드한 액션을 위해서 그는 체육관에서 배우를 캐스팅하기도 했다)이 ‘으악새 배우’로 폄훼되는 분위기에 이두용 감독은 절치부심했다. 트럭 뒷자리에 모여 앉아 서울의 흙길을 달려 뚝섬, 잠실 등의 허허벌판으로 향하곤 했던 동료들에게 진 부채감을 토로한 적도 다반사다. 2008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 상영회에 이 시절 액션 배우들을 초대해 한 사람 한 사람을 이두용 감독이 소개하는 모습을 본 후배 감독들은 감동했다. 한편 오승욱 감독이 <영화천국> Vol.8에서 밝힌 <해결사> 관람 경험(“원래 영화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신이 들어가 있고, 감독의 이름조차 제멋대로 갖다 붙인, 무참하게 훼손된 영화였다”)에서 알 수 있듯이, 홍콩 수입업자들의 만행으로 그의 영화가 멋대로 편집되거나 크레딧까지 갈아끼운 채 유통되는 열악한 환경도 견뎌야 했다. 이러한 어려움과 더불어 이두용의 ‘외다리’, 배우 차리 셸(한용철)이 미국으로 돌아가면서 <무장해제> <사생결단> <아메리카 방문객>을 끝으로 액션영화의 시기가 마무리된다. <무장해제>는, 이 영화를 통해 한국식 마셜아츠를 발견한 할리우드 프로덕션이 이두용 감독에게 샘 존스, 린다 블레이어 주연의 <침묵의 암살자>(1988)의 메가폰을 건넨 계기점이 된 영화다. 잘 알려진 대로 이두용은 이로써 할리우드에 진출한 첫 한국인 감독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신파 멜로드라마에서 태권영화로의 이행을 마치고 액션 장르에 고착된 자신의 쓰임새를 염려한 이두용 감독은 민간신앙과 샤머니즘, 토속적 에로티시즘의 무대로 장르의 저변을 개척해나간다. <피막>으로 1981년 베니스국제영화제 특별감독상을 수상하고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로 1984년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한국 최초로 진출하면서, 흥행용 액션영화만을 만든다는 인식에서 벗어나 작가감독으로 대우받기 시작했다. 채 진사 집 머슴 윤보(신일룡)와 그의 아내 길례(원미경)가 길례를 강간하려는 채 진사를 죽이고 함께 도망치는 것이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의 도입부다. 이어지는 전개는 지금 보아도 기이한 매혹을 품고 있다. 이두용 감독은 도망자 신세가 된 길례의 황망한 얼굴을 비춘 다음, 윤보를 만나기 이전에 이미 세도가 집안의 망자와 혼례해 열녀문의 수단으로 동원되었던 길례의 어린 시절을 마치 분절된 악몽처럼 편집했다. 거침없는 플래시백과는 또 다른 형식으로 일면 빙의나 환각의 순간처럼 호러적인 기운까지 부여했다. 배경음을 제거하고 스산한 바람 소리 속에서 서술되는 이 대목은 안드레이 타르콥스키가 자신의 유년 시절을 만다라처럼 이어붙인 <거울>(1974)을 차용한 듯 야심차다. 부분적으로나마 영화적 내러티브에 대한 이두용 감독의 작가적, 테크니션적 실험 정신을 짐작할 수 있는 연출이다. <뽕>은 에로영화인가? 이두용 감독의 영화 세계는 19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반에 전성기를 맞이했다. <초분>을 기점으로 쇄신해, <경찰관> <최후의 증인> <피막>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 <장남> 그리고 <뽕>이 나왔고 이들 영화의 숏에는 시대의 공기를 낚아채려는 감독의 기민함이 서려 있다. 윤삼육 작가와의 호흡이 당시로서는 “흥행하는 영화와 작품성이 있는 영화는 다르다”고 믿었던 이두용 감독이 양쪽을 오가도록 돕는 교각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 최초로 칸영화제에 다녀온 주목할만한 성과가 당대 감독에게는 제작 여건의 양분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씁쓸한 현실도 엿보인다. 이두용 감독은 사전 대본심의제 도로 여러 제작사를 전전하며 몇 차례나 반려당한 끝에 마지막으로 태흥영화사의 허가를 받아 <뽕>을 만들 수 있었다. 제5차, 6차 개정영화법으로 제작 자유화의 바람이 불기 직전의 일이다. 선정성이란 무엇인가 고뇌하던 시절의 문제의식을 이두용 감독은 이렇게 회고한다. “당시 스칸디나비아쪽 나라들은 성 표현에는 관대해도 폭력에 대해선 엄격해서 총구 클로즈업은 불가능했고, 대만은 여자가 겉옷도 벗을 수 없었으나 목이 잘려 피가 분수처럼 솟구치는 것은 괜찮았다.” (<이두용 영화-나의 연인 60>)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의 제약은 <뽕>에 미묘한 에로티시즘과 토속적 아름다움, 여성 캐릭터에 보다 과격한 욕망을 심는 결과로 이어졌다. <뽕> 시리즈가 주는 강력한 에로영화로서의 인상 이면에서 이두용 감독은 장면화의 경지가 절정에 오른 베테랑 감독의 기량을 뽐내고 있다. 아카데미 시상식 우수외국영화부문(현 외국어영화상) 후보에도 오른 <내시>와 이어지는 <뽕> 시리즈는 이두용 감독이 직접 두성영화사를 설립하여 제작한 작품들이다. 이어 극장 임대사업도 4곳이나 운영했다. 이후 <업> <흑설> <청송으로 가는 길> 등 작품 활동을 지속했지만, 극장 및 제작사 운용과 창작 활동을 병행하면서 사업가로서의 고민에 더 많은 집중력을 할애해야 했다. 이두용이 남긴 한국영화의 ‘박력’이라는 문제 복원된 <최후의 증인>을 보면서 <살인의 추억>(2003)을 떠올린 이들이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정종화 한국영상자료원 선임연구원은 “한국 현대사의 음울한 공기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크고 작은 권력들이 자행하는 폭력의 역사를 여실히 드러낸다는 점에서” <최후의 증인>을 “<살인의 추억>이 한국영화 계보에서 뚝 떨어져나온 작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영화라고 짚었다.(<영화천국>Vol.6, ‘영화 속 명대사’) 1980년대 후반의 정치적 부패와 연쇄살인사건이라는 심리적 병폐를 겹쳐낸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은 한국 누아르의 풍경과 몸짓을 스크린에 각인시켰다는 점에서 <최후의 증인>과 병기해 볼 만한 작품이다. 이는 달리말해 시대적 요구 바깥으로 삐져나온 한국 남성의 히스테리를 낚아챈 영화들이라는 중요한 공통 분모도 된다. 이두용 감독의 경우 당대 흥행 영화들과 비교하면 평균 2~3배는 많은 컷 수를 구사하면서 영화의 속도감에 과감하게 접근했는데, 이렇듯 자신만의 비트(beat)를 불어넣는 연출적 박력은 액션만이 아니라 느와르, 가족 드라마, 코미디를 비롯한 다양한 장르적 관습과 동행했다. 그 가운데 이두용의 관점은 신분제 사회부터 현대 신자유주의에 틈새에서 욕망하거나 좌절하는 초상을 낚아채는 순간에 빛났다. <최후의 증인>과 더불어 <경찰관> <생사의 고백> 그리고 <장남> 등이 주요 사례다. <장남>에서 컴퓨터 회사 기술개발 실장인 장남(신성일)은 생계를 온전히 장남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노부모에게 가족의 양옥집을 지어주겠다는 감당하기 어려운 선언을 하고 부채감에 시달린다. 꿈만 같은 결속을 기다리면서 자식들의 부름에 이곳 저곳을 전전하던 노부모는 지쳐버리고, 결국 영화의 엔딩에서 어머니는 관 속의 시신이 되어 장남 앞에 나타난다. 출장을 마치고 뒤늦게 도착한 아들이 어머니의 죽음을 확인하는 종반부의 장면은 지금 보아도 날카로운 당대의 리얼리티를 품고 있다. 복도식 아파트의 고층 창문 밖으로 빠져나온 어머니의 관이 철근 크레인에 매달려 지상으로 내려올 때, 이두용의 카메라는 허공에 매달린 관이 중심을 잡지 못해 아파트 콘크리트 외벽에 쿵쿵 박는 모습에서 회심의 숏을 만들어 낸다. 마침내 지표면에 당도한 모친의 관 위에 드러누워 오열하는 신성일의 이미지는 <뽕>과 <돌아이>로 이두용이 흥행 감독으로서의 피날레를 선언하기 직전인 1984년에 나온 그의 실질적인 정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김기영이나 이만희, 혹은 동시대의 임권택과 비교해 비평계의 지원은 적었을지 몰라도 이두용 감독을 저평가 받았거나 외면받은 감독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당대의 손꼽히는 흥행 감독이었고 은 후배 감독들을 위시해 컬트적 지지를 불러내기도 했다. 다만 그는 여전히 대중과 평단이 산발적으로 호출할 수 밖에 없는 숙명의 소유자다. 굴곡을 통과해 온 비슷한 세대의 감독들과 비교해서도 이두용의 필모그래피의 일관성보다는 그 변화무쌍함으로 인해 놀라움을 준다.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급속도로 변화하는 한국영화 산업에 적응하는 역량을 끊임없이 의식한 작가인 이두용 감독이 스스로 돌파구를 만들어간 궤적은 거칠고 혼란스럽기 그지 없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이 지금의 위기 속에서 그를 돌아보게 한다. 긴 시간 지속된 어느 감독의 전투적 타협은 한국영화의 액션, 느와르, 에로티시즘, 리얼리즘 드라마에 보기 드문 활력을 불어넣었다. 산업의 요구를 박력있게 끌어당겨 영화적 무법지대를 개척한 감독, 장르로서의 액션 이전에 장면의 액션(action)을 새긴 감독. 이두용은 실로 기민한 감각의 해결사였다.

[특집] 이두용을 기억하는 ‘최후의 증인’들, 감독들의 추모사, 잊히지 않는 명장면

“김기영 감독의 <화녀 ’82>와 함께 이두용 감독의 <최후의 증인>과 <피막>이 나로 하여금 한국에서 필름메이커가 되는 일에 용기를 내게 해주었어요.”(박찬욱 감독) 감독들의 감독이라 불러도 좋을 이두용 감독. 그의 영화로 청년기의 취향을 다듬거나 충무로의 영화 현장에서 짧지만 강렬한 접점을 형성했고, 훗날 이두용 영화의 번뜩이는 면면에 대해 소문내길 주저하지 않았던 감독들의 목소리를 새롭게 모았다. 회고와 추모, 잊히지 않는 한순간에 대한 담담하지만 깊은 애호의 말들이다. 강우석 감독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 <피막> 같은 영화들을 보면서 후배들은 깜짝 놀랐다. 액션영화, 오락영화도 곧잘 찍었지만 사실 그는 어떤 ‘칼’을 숨기고 있는 사람이었다. 영화진흥공사에서 <최후의 증인> 최종편집본 필름 상영을 본 이후에는 그에 대한 완전한 재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확신했다. 단순히 선배 감독으로 기억되어서는 안된다고 말이다. 그러나 이두용 감독님은 동료들, 후배들에게조차 감춰진 면이 있다. 지금도 <최후의 증인>의 마지막 장면에서 (형사 오병호가 권총으로 자살하는 순간에) 총소리와 함께 새들이 날아가는 장면을 잊지 못한다. 오래된 영화이기에 그 장면만 떼어놓고 보면 이제는 조금 낡아 보일 수도 있지만 드라마를 끝까지 끌고 온 힘으로 인해 엄청나게 강렬한 인상을 안기는 엔딩이다. 이두용 감독 특유의 표현력과 연출력이 그 한 장면 안에 단단히 응집되어 있다. 박찬욱 감독 <최후의 증인>은 어떻게 이런 편집을 밀어붙였을까 생각이 들 만큼 오병호의 걸음을 반복적으로 담는다. 나는 특히 영화 초반에 광각렌즈로 펼쳐지는 무채색의 황량한 풍광을 좋아한다. 벌거벗은 나무들 사이로 부는 바람, 거리의 반공 푯말, 시골길을 지나가는 상여와 죽음의 이미지…. 이제 세월이 지나 연기가 조금 어색하게 다가오거나 대사가 설명적으로 들릴 수는 있어도, 숏에 관한 일관된 목표를 가지고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작가적 고집만큼은 빛바래지 않았고 여전히 존경스럽다. (…) <최후의 증인>에는 없어도 스토리 전개에 지장 없는, 그러나 대단히 공들인 장면들이 많다. 가령 엄 기자가 윤전기 앞에서 전화를 받고 다방에 오병호를 만나기까지의 장면 같은 것. 그러니까 다른 감독이라면 넣지 않았을 장면들을 보여주는 데에서 비로소 한 감독의 독특함이 생기는 것이다. 달리 말해 없어도 무방한 것처럼 보이는 장면을 찍을 때 더 공을 들여야 한다. 대충 찍으면 사라지게 되어 있으니 더더욱 목숨 걸고 찍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최후의 증인>은 스쳐 지나가는 풍경, 장소, 단역 하나하나가 소중하다. (<최후의 증인> 블루레이 오디오 코멘터리 일부 발췌 및 재구성) 이명세 감독 내가 학교에서 영화를 배울 땐 영화를 잘 찍으려면 이두용의 액션을 배워야 한다고들 했다. 생각해볼수록 맞는 말이다. 숏을 나누고 미장센을 구성하는 데 있어 액션영화는 가장 어려운 경지다. 이것을 깨닫고 나서 꼭 이두용 감독님의 연출부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기회가 없었다. 다행히도 ‘2008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의 이두용 감독 특별전에서 그분을 만나게 됐다. 행사가 끝난 후, 후배 감독들 모두 어려운 마음에 그분께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용기를 내어 “감독님, 소주 한잔하실래요?”라고 물었다. 감독님은 흔쾌히 낙원상가 뒤쪽 아귀찜 가게로 우리를 데려가 늦은 밤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으셨다. 그게 마지막 만남이었다. 어릴 적 극장에서 <돌아온 외다리>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 나는 그의 영화가 지닌 멋에 반했다. <피막>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 <최후의 증인> 등 걸작으로 불리는 영화뿐 아니라 에로영화처럼 오해된 <뽕> 같은 작품들이 영화적으로 얼마나 뛰어난지, 그의 작품들이 동시대에 더욱 정확히 평가받고 재조명되기를 바란다. 감독님의 부고를 뒤늦게 접하고 혼자 기도했다. 마지막 가시는 자리가 쓸쓸하지 않으셨기만을 빈다. 오승욱 감독 그의 태권영화들을 쫓아다녔다. 이두용 감독님의 영화를 처음 본 것은 1974년 공덕동의 마포극장에서였다. 아저씨들만 꽉 들어찬 극장에 앉은 당시 초등학교 4학년생인 내가 <배신자>의 잊을 수 없는 한 장면을 만난 순간이었다. 뒷골목에 부감으로 뜬 카메라가 대머리 아저씨, 조춘 선생과 차리 셸(한용철)의 뒷모습을 잡고 있었다. “니가 누구냐!” 하니까 “나다!” 그러고 싸움이 붙는다. 차리 셸은 조춘 아저씨를 드럼통에 처박아버리더니 발로 난타하기 시작한다. 킬러를 응징하던 차리 셸이 고갯짓을 하면 한쪽 눈을 덮고 있던 장발의 머리카락이 뒤로 촥 넘어가던 모습도 생생하다. 어린 눈에도 <배신자>는 어딘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 뒷골목 냄새, 그 생생함에 약간 쇼크를 받은 것 같다. 컬러도 사운드도 선명했던 당대 홍콩 무협영화에 비해 어딘가 희뿌옇고 품질은 조금 떨어져 보이는, 그러나 무시무시한 활력을 지닌 영화였던 거다. 이소룡의 발차기가 세련된 아트였다면, 왼발을 높게 들어올려 쉴 새 없이 적의 뺨을 후려치는 차리 셸의 발차기는 이두용식 액션영화가 품은 ‘쾌’의 감각 그 자체였다. 류승완 감독 “액션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다.” 이두용 감독의 말을 기억한다. 1970년대에 1년에 몇편씩 양산형 영화를 만들 때를 이두용 감독 스스로도 자조적으로 돌아보곤 했지만, 흥행에 다급해진 극장주와 서슬 퍼런 검열을 동시에 마주하는 와중에 비로소 그만의 독특한 장르 세계가 펼쳐진 것이기도 하다. 숙명적으로 하위 장르, B무비로 나온 영화들을 이제 와 걸작으로 둔갑시키고 싶지는 않지만 그 시대 영화들이 가진 특별함은 있다고 본다. 말도 안되는 저예산으로 영화를 완성해야 했던 조악한 환경에서 액션을 하다보니 사람들이 부딪치면 세트 전체가 흔들리기 일쑤였는데, 그런 것을 보는 재미가 결국 당대 영화를 보는 즐거움이기도 할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만든 영화 <짝패>의 세트 구성 같은 것이 무의식적으로 이두용 감독님 영화의 영향을 품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그의 액션영화 중 단 한편을 꼽으라면 <생사의 고백>을 가장 좋아한다. 한창 감독님의 영화에 빠져 있을 때 한국영상자료원에서 VOD로 찾아 본 기억이 난다. <생사의 고백> 중간에 대단히 강렬한 슬로모션이 튀어나온다. (북에서 넘어온 간첩 피정덕을 연기한) 박근형 배우가 여주인공 용옥(유지인)의 손을 잡고 뛰는 장면에서 난데없이 슬로모션이 시작되는데 그 강렬함이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정성일 감독 ·영화평론가 그해 여름 초저녁 연병장에서 나는 이두용 ‘감독님’을 발견했다. 우리 부대는 주말에 아무도 면회 오지 않는 장병들을 위해서 영화를 한편씩 상영했다. 대부분 시시한 영화들이었다. 그날 <선배>를 상영했다. 나는 홀린 듯이 보았다. 그전에 이 이름을 알고 있었다. 몇편의 영화를 보았다. 하지만 보는 내내 지루했다. 이 영화는 다른 영화였다. 그날 이두용은 내게서 비로소 이두용 ‘감독님’이 되었다. 이 사람의 영화를 모두 보겠다고 결심했다. 어떤 영화는 서울 중심가에서 개봉했지만 어떤 영화는 서울 변두리에서 개봉했다. 나는 단 한번도 망설이지 않고 보러 갔다. 항상 훌륭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항상 잘 찍었다. 어떤 이야기, 어떤 소재, 어떤 시나리오도 잘 찍었다. 게다가 어떤 신은 미칠 듯이 현장이 궁금할 정도로 홀린 듯 진행되었다. 정말 이 장면들의 ‘어떤’ 비밀이 궁금했다. 모두 <최후의 증인>과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만을 이야기하지만 나는 <귀화산장> <해결사> <장남> <뽕> <내시>에서 넋을 잃은 듯이 바라본 순간이 있음을 내 동료들에게 웅변하듯이 말하곤 했다. 아마 언젠가는 이 영화들의 ‘명장면의 순간’에 대해서 장황하게 말할 순간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나는 이두용 ‘감독님’을 만나지 못했다. 한참 뒤에, 우연히도, 충무로역 부근 남산골 한옥마을 올라가는 길 오른쪽 이층에 자리한 구식 ‘레스토랑’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계시는 모습과 마주쳤다. 꼭 인사를 드리고 싶었다. 내 소개를 하기도 전에 나를 보더니 내 이름을 불러주셨다. 용기를 내서 <선배>를 본 이야기를 드렸다. 내 이야기를 듣더니 말없이 빙그레 웃으셨다. 나는 그 미소를 본 다음 갑자기 용기가 나서 약간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내가 좋아했던 장면들을 말하기 시작했다. 단 한번도 내 말을 끊지 않고 들어주셨다. 그리고 말했다. “감독님의 현장을 견학하고 싶습니다.” “그래요, 꼭 오세요. 보여드리고 싶군요.” 하지만 나는 너무 늦게 만났다. 이두용 ‘감독님’의 다음 영화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나는 한국영화의 귀중한 ‘비밀의 순간’ 중 하나를 놓쳤다. 정말 안타깝다. 너무 안타깝다. ‘감독님’, 다음 영화가 보고 싶습니다.

씨네21 추천도서 - <생텍쥐페리와 콘수엘로, 사랑의 편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콘수엘로 드 생텍쥐페리 지음 / 윤진 옮김 / 문학동네 펴냄 <어린 왕자> <전시 조종사>를 쓴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가 아내 콘수엘로와 15년간 주고받은 168통의 편지를 책으로 묶었다. 장정이 아름다운 이 책의 목차는 1930년부터 1944년에 이르는 동안 ‘남아메리카, 프랑스, 북아프리카’, ‘뉴욕’, ‘북아프리카, 사르데냐’로 나뉘어 있다. 전시 조종사로 살았던 생텍쥐페리의 삶의 궤적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콘수엘로는 화가이자 조각가인 동시에 비행사이자 작가의 아내였고, 남편이 속한 세상에서 자주 외면받는, 바람기 있는 남편 때문에 쉼 없이 고통받던 여자였다. 이 책에서는 세상에 대해 절망하던 전쟁 중의 생텍쥐페리를 생생하게 만날 수 있는데, 무엇보다도 <어린 왕자>가 어떻게 태어났는지를, 그 글이 콘수엘로와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오직 한 사람을 위해 쓰인 이 문서의 묶음. “옛날 옛적에 한 아이가 보물을 발견했어. 하지만 그 보물은 어린아이의 눈으로 그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두팔로 그 아름다움을 안고 있기에는 너무 아름다웠지. 그래서 아이는 우울해졌어” 같은 대목에서는 <어린 왕자>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도 있다. <생텍쥐페리와 콘수엘로, 사랑의 편지>는, 이렇게 말하면 너무 얄팍하게 들리리라는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방식으로, 비극적으로 낭만적이다. 콘수엘로의 편지에 담긴 상실의 감정은 이 사랑을 고통에 가깝게 만들기도 한다. “당신이 결혼반지를 다른 여자들에게, 다른 손가락들에 끼워주는 바람에 영원히 되찾을 수 없게 되었지. 우리는 같은 산에 사는데, 나는 오늘 저녁 그 산의 반대편에서 당신에게 편지를 써.” 별거를 시작한 시기의 편지다. 실종되기 얼마 전 비행을 앞둔 앙투안이 쓴 편지에서 잉크와 타자기용 종이, 차, 자신이 쓴 책들을 보내달라고 하는 대목에 이르면, 그가 실종되지 않았다면 우리가 읽을 수 있었을 그의 글에 대한 아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고개를 파묻고 읽어가게 만드는 이 서간집에는 각주가 달리지 않은 페이지가 없을 정도다. 그게 편지의 특성이다. 주고받는 사람에게는 완벽한 맥락이 있는 글. 제3자가 읽기에는 해설이 필요한 글. 하지만 두 사람 사이의 감정만큼은 100여년이 지나 읽는 독자들의 마음에도 선명히 행간을 흘러넘친다. 289쪽 당신에게는 빛이 있어. 당신은 그 빛을 어디서 얻었지? 그 빛을 어떻게 돌려줘? 자기 행성을 떠난 어린 왕자들이 노래하게 만드는, 그 왕자들을 소생시키는 달빛은 어디로 스며들지?(콘수엘로의 편지)

씨네21 추천도서 - <루친데>

프리드리히 슐레겔 지음 / 박상화 옮김 / 문학과지성사 펴냄 프리드리히 슐레겔은 낭만주의 문학이론을 주도한 철학자이자 작가다. 프랑스혁명으로 변화의 바람이 불던 때, 슐레겔은 문학계 역시 새로운 문학운동이 필요함을 역설했고 그 일환으로 <루친데>를 서술했다. <루친데>는 그가 남긴 유일한 소설이며 다양한 장르와 형식, 요소들이 섞여 있다. 이는 법칙 없이 모든 것을 포괄하고자 하는 낭만주의 문학이론을 실험적으로 체현한 결과다. 책은 총 13개의 텍스트로 구성됐으며 개별 텍스트들은 대체로 편지글의 형태로 알레고리와 농담, 상상, 성찰 등의 주제를 다룬다. 7번째 <남성 수업 시대> 텍스트를 중심으로 앞뒤의 6개 텍스트가 대칭적으로 분리된 구조인데 한 텍스트의 말미와 다음 텍스트의 도입부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도 시간적, 내용적 측면에서의 연결고리가 약한 것이 특징이다. 개별 텍스트의 흐름 자체는 흥미로운 반면 이러한 독특한 구조와 문체로 인해 일반적인 소설의 진행을 떠올리며 책을 펼친 독자에게는 생경한 느낌을 줄 것이다. 내용 면에선 ‘루친데’라는 자유로운 여성상을 중심으로 사랑에 대한 관능적인 묘사, 결혼에 관한 가치의 전복 등을 이야기한 점이 눈에 띈다. “사랑은 그 자체로 영원히 새롭고 영원히 젊”되, “사랑의 언어는 예전의 고전적인 풍속대로 자유롭고 대담하기를” 바랐던 그의 의도가 반영된 대목이다. 쏟아질 비난을 예견하면서도 슐레겔은 글 곳곳에서 육체의 감각, 쾌락이 진정한 사랑의 요소라는 도덕관을 주장하길 멈추지 않는다. 1829년 슐레겔이 사망한 뒤 그의 수많은 미발표 원고가 유작으로 발견됐는데 그중 <루친데>에 덧붙이려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단편 5편이 책에 추가로 수록되어 있다. 프리드리히 슐레겔이 전개한 낭만주의소설에 관한 이론, 실험의 의미를 파악하기에 좋은 발판이 되어줄 것이다. 슐레겔의 철학과 <루친데>에 관해 상세한 설명을 더한 역자의 해설도 함께 읽어보길 추천한다. 22쪽 우리는 사랑처럼 영원한데, 왜 우리는 우연히 찾아오는 쓰라린 기분을 멋진 재치나 생동감 있는 일시적인 변화로 받아들이면 안되는 것일까요?

[김민성의 시네마 디스패치] 맛과 요리 섹션: 인터뷰 취재

1. 기획이 정해지면 취재가 시작된다. 취재를 한 후에 데스크에서 정리한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계간지는 계절의 변화에 맞춰서, 월간지는 한달의 시기에 따라서. 지금 일하는 부서는 월간지라 대부분 월초에 치열하게 기획 회의를 마치고 중순까지 취재를 마치고 남은 기간 마감을 치는 형태로 한달의 업무 스케줄이 짜인다. 그나마 주간지에서 일하는 게 아니라 다행이라 해야 하나.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잡지를 만드는 사람에게 야근은 대부분 필연적이다. 나 역시 그렇다. 심지어 옮긴 팀에서 첫 취재였고, 첫 인터뷰였다. 어떤 형태로든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녹취를 풀기 전에 저장해둔 좋아하는 인터뷰 기사를 다시 찾아 읽었다. <씨네21>이 금정연, 오한기, 이상우와, 정지돈 작가와 나눈 대화, 인터뷰에서 브래드 피트가 앤서니 홉킨스를 인터뷰한 기사, <뉴요커>에서 마이클 슐먼과 프랜 리보위츠의 인터뷰. 각각 톤과 방식은 다르지만, 좋은 인터뷰의 요건은 모두 충족하고 있다. 서로에 대한 존중과 호감, 그리고 대화를 나누는 순간의 분위기가 그대로 느껴지는 인터뷰. 나는 그날 이런 인터뷰를 했는가. 이 정도로 준비했을까. 스스로에게 얼마나 떳떳한지 질문하면서 녹취를 풀었다. 밤 10시가 훌쩍 지났지만, 풀어낸 녹취를 몇번이고 돌려 들으며 그날의 장면과 분위기를 다시 떠올려보았다. 2. “준비한 질문에 너무 연연해하지 마.” 뚝배기에 담긴 순두부를 수저로 휘저으며 선배가 말했다. “중요한 건 대화의 흐름이야. 모든 것이 준비된 상황에서 준비된 것만 해내는 건 본전이라고.” 내가 미덥지 않았는지 선배는 굳이 같이 취재 일정을 잡아 서로 취재하러 가기 전 근처에서 조금 일찍 점심을 먹었다. 우리가 간 곳은 마포구에 있는 콩청대라는 오래된 두부 요리 전문점이다. 선배는 콩비지 찌개를, 나는 콩국수를 시키고 모두부도 같이 주문했다. 빠르게 밑반찬이 나온다. “밑반찬이 맛있는 집이 맛집일 확률이 높아.” 선배는 열무김치를 성큼 집어 어석어석 씹으며 말했다. “이런 게 별거 아닌 거 같아도 기본적인 신뢰를 주잖아.” 선배가 생각하는 좋은 인터뷰는 뭔가요. 그런 건 알려주는 게 아니야. 기자가 치열하게 고민해야지. 그럼, 선배가 고민한 좋은 인터뷰라도 알려주세요. 대화가 이어지기 전에 주문한 음식들이 속속 나오고 선배는 익숙하게 공깃밥을 흔든다. “모두부를 시키면 나오는 김치가 끝내줘.” 선배는 수저통에서 새 젓가락을 꺼내 모두부와 김치를 집어 그릇 위에 올려둔다. 비지찌개가 선배 자리 앞에 놓인다. 담백해 보이는 흰색 비지찌개다. “일단 인터뷰이에 대한 신뢰가 전제되어야 좋은 기사가 나오는 것 같아.” 선배는 비지를 휘휘 저어서 공깃밥 위에 올려서 비비며 말을 이어간다. “우리가 인터뷰이를 아무나 뽑는 게 아니잖아. 아주 유명한 사람이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겠지. 하지만 기본적으로 기획에 어울려야 하지만 꼭 그 주제가 아니어도 할 이야기가 좀 있어야 하고. 그렇게 필터링하다 보면 남아 있는 사람이 얼마 없어. 그러니까 그런 과정을 거쳐 뽑은 사람에 대한 애정이 기본적으로 있어야 좋은 질문을 할 수 있지.” 그다음은요? 그다음은 인터뷰이의 몫이기도 하지. 편집부가 고심해서 고른 사람이라도 매번 성공적일 수는 없잖아. 그럴 때는 기자가 아무리 좋은 질문을 준비하고 자연스러운 흐름을 만들어도 어쩔 수 없는 거야. 인터뷰이에 대한 신뢰와 애정, 인터뷰이의 좋은 태도, 그리고 준비와 자연스러운 흐름. 이러면 좋은 인터뷰가 완성되는 건가요? 아니지. 그 과정이 끝나면 비로소 좋은 인터뷰가 될 수 있는 시작선에 서게 되는 거지. 우리는 기본적으로 인터뷰를 활자로 옮겨야 하는 사람이잖아. 영상으로 올린다고 해도 마찬가지야. 어떤 형태로든 편집을 거쳐야 한다고. 에디터란 직업은 기본적으로 좋은 재료를 어떤 언어로든 잘 편집할 줄 아는 사람이야. 선배는 먹으면서 들으라는 듯 모두부와 김치를 내 그릇에도 옮겨준다. 콩국수를 콩물에 잘 저어서 한입 크게 먹었다. 콩국수로 유명한 진주회관처럼 부드러운 느낌과는 조금 다른 찐득한 콩물의 느낌이 강한 콩국수다. 소금이나 설탕을 굳이 더 치지 않아도 그 자체로 담백한 콩물의 맛이 입안에 맴돈다. 콩 특유의 비릿한 냄새 때문에 콩국수를 싫어하는 사람도 꽤 맛있게 먹을 맛이다. 어느새 매장 안은 본격적으로 점심을 먹으러 온 사람들로 꽉 차 기다리는 사람까지 생길 정도로 붐비기 시작한다. 식사를 마치고 나와 선배는 내 어깨를 두드려줬다. “인터뷰 잘하고 와.” 이 말을 마치고 선배는 다음 취재를 가야 한다며 급하게 자리를 떴다. 3. 그날의 녹취를 다시 돌려 들으며 장면과 분위기를 떠올려보았다. 이제 이 인터뷰를 어떻게 쓸 것인지, 어떤 말을 헤드라인으로 뽑을 것인지, 무슨 답변을 강조할 것인지는 온전히 인터뷰를 진행한 나의 몫이 되었다. 언젠가 선배가 내게 해준 편집장의 말을 떠올려봤다. 모든 취재는 데스크가 아닌 현장에 있다. 하지만 모든 취재의 완성은 데스크에서 이루어진다. 내가 쓰고 싶은 인터뷰는 어떤 인터뷰인지 곰곰이 생각하다가 콩청대에서 먹은 점심 식사 같은 기사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사에도 음식처럼 영양 성분이 표기되어야 한다면 당과 나트륨은 낮고 단백질 성분은 높으면 좋겠다. 그것이 맵고 짜고 자극적이지 않아서 많은 사람이 읽지는 않을 수도 있지만 누군가 읽고 나면 든든한 포만감이 드는 글. 언젠가 너무 바람이 차고 혹한이 이어지는 날이면 오랫동안 시간을 들여 만든 뜨끈한 두부로 찌개를 끓여 먹거나, 팬에 갓 부친 두부를 먹으며 부쩍 따뜻해진 몸의 온기로 하루를 버틸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 모든 건 거창한 목표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감까지는 이제 하루도 채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목표가 거창해도 마감을 지키지 않으면 편집장이 어떤 난리를 피울지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시간 내에 어떻게든 좋은 인터뷰를 완성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해가 뜨고 있었다.

[인터뷰] 'LTNS' 임대형, 전고운 감독, 더 용감하게 표현할 욕망

한 공간에 같이 누워본 게 언제인지 까마득한 섹스리스 부부 우진(이솜)과 사무엘(안재홍)은 여느 날처럼 아무 굴곡 없는 평범한 날을 보낸다. 익숙함과 지루함 사이에 텐션을 높여주는 건 다름 아닌 친구의 외도 사실. 자신의 비밀을 은닉하기 위해 거리낌없이 3천만원을 내어놓는 모습을 보면서 호텔리어 우진은 밝은 묘수를 떠올린다.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모조리 기록한 치부책을 활용해 불륜 커플을 협박 및 갈취해보기로 한 것이다. 계획은 간단하다. 증거 사진과 영상을 만들어 협박 메시지와 함께 돈을 요구하기만 하면 된다. 수금 요구를 따르지 않거나 경찰을 부르면 폭로해버릴 거라는 강력한 한방까지 잊지 않는다. 점심시간에 짧고 굵은 스릴을 즐기는 직장인 커플, 산행 속에 한눈파는 중년 커플, 알고 보면 레즈비언의 정체성으로 외도하는 맏며느리 등 는 다양한 입장에 놓인 불륜 관계를 오가며 에피소드를 이어간다. 기존 시리즈와 영화가 선한 주인공에게 시련을 주기 위한 장치로 불륜을 선택했다면 는 주인공들이 그 우스꽝스러운 장면을 정면으로 목도하도록, 그래서 시청자가 이들의 눈을 빌려 비틀린 관계를 직시할 수 있도록 돕는다. 부지런히 추궁하는 부부와 성실하게 숨기는 연인의 엇박자가 표면적으로 경쾌해 보이더라도 그 안에 담긴 찜찜함과 의문스러움을 쉽게 거두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작품 초반에 청소년관람불가의 안전지대에서 음란한 농담이 폭발하듯 쏟아지던 것과 달리 후반에 도달할수록 우진과 사무엘은 오랫동안 웅크려왔던 문제를 뒤늦게 직면하며 주요 질문을 힘겹게 고백한다. 의 특징은 이런 식이다. 작품이 자체적으로 정답을 정해두기보다 이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주도권을 기꺼이 내어준다. 도덕적 결함과 부부관계의 모호성, 악의 평범성과 사적 제재까지 개인의 불가침 영역을 진솔하게 드러내길 선택한 것이다. <윤희에게> 임대형 감독과 <소공녀> 전고운 감독의 만남은 예측 가능한 기대를 모았다. 섬세한 연출과 아름다운 이미지, 현실 세계를 위트 있게 반영한 블랙코미디와 그것이 추구하는 다양성까지. 동시에 예측 불가능한 충격도 전한다. 노골적인 유머와 끝을 알 수 없는 서사적 질주, 파멸처럼 용솟음치는 대사들. 임대형과 전고운, 둘이기에 완성될 수 있는 화학작용이 여기에 있다. - 전체 회차가 공개되면서 온라인상에서 많은 사람의 관심을 얻었다. 그 여정을 돌아본다면. 임대형 창작자로서 기획부터 작품 공개까지 전 과정에 함께했다는 그 자체가 의미 있다. 정말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인지 조금 헛헛하고 허무한 마음도 든다. 하루는 정진영 배우가 늦은 밤 문자를 보내셨다. 1, 2화를 보고 “졸라 재미있다” 하시더라. (웃음) 그리고 마지막 화가 공개된 이후에는 “예술했네”라고 짤막하게 덧붙여주셨다. 그 말씀이 큰 위로가 됐다. 전고운 시리즈가 공개되고 나서 영화 개봉과는 달리 마음이 편했다. 주변으로부터 들었던 “저질스러운데 세련됐다”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 말이 무척 좋았다. 그게 우리가 의도하고 싶었던 바이기도 하니까. 또 부모님이 딸의 새 작품이 나왔다고 동네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은데 차마 말 못하는 그 모습이 너무 웃기고 재미있었다. 너무 통쾌했다. (웃음) 임대형·전고운표 코미디의 규칙 - <윤희에게>와 <소공녀>의 만남이다. 임대형 감독과 전고운 감독의 협력을 쉽게 상상할 수 없었다. 전고운 어느 영화제의 시나리오 심사를 하다 처음 만났고 같은 동네에 살고 있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각자 글쓰기에 조금 지쳐 있던 상황이라 내가 시나리오를 같이 써보자고 제안했다. 처음에는 탈고가 목표였다. 진짜 시리즈를 완성하는 건 너무 먼 얘기인 것만 같았다. 그냥 타인으로부터 평가라도 받고 싶었다. 그렇게 시나리오 작업을 마치고 여기저기 문을 두드린 결과 티빙과 함께하게 되었다. 어떤 점에선 우리에게도 용기가 필요한 프로젝트였다. 초고를 탈고하는 과정이 길어질 즈음엔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기획개발비를 지원받아 작업을 이어가기도 했다. 둘 다 독립영화 감독이기 때문에 지원사업이 얼마나 중요한지 경험적으로 잘 알아서 그걸 활용하고 발판 삼을 수 있었다. 또 그게 우리에게 데드라인을 주기도 하고. 임대형 마감형 인간의 숙명이다. (웃음) - 첫 번째 시리즈다. 영화와 시리즈의 차이를 어떻게 체감했나. 임대형 영화가 이미지 중심이라면 드라마는 대사 중심인 것 같다. 는 말맛이 정말 중요한 작품이다. 작업하는 과정엔 큰 차이가 없다. 시간이 부족하다는 정도? 촬영 현장에서 즉흥성을 요구받는 순간들이 많았다. 철두철미하게 준비를 마치고 들어갈 수 있는 여건이 안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 뜨겁게 찍었다. 전고운 영화와 드라마 사이엔 큰 차이가 없지만 관객 태도엔 차이가 있는 듯하다. 영화는 날 잡고 좋은 옷 입고 외출해서 봐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있다면 드라마는 그보다 더 캐주얼하고 편안하게 소구된다. 만드는 사람 입장에선 이게 여러 회차에 걸쳐 완주되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이 다른 곳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구애의 마음을 펼쳤다. 끝까지 봐달라고, 사랑을 요구하는 시도를 했다. - 19금 코미디는 국내 시리즈의 주요 소재로 흔하게 활용되지 않는 편이다. 이를 다루는 게 워낙 어렵기도 하고 소재 자체가 대중 사이에 논쟁적이기도 하다. 가 안정적인 성인 코미디를 구현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임대형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불편하지 않은 이야기는 없다. 그래서 우리도 용기를 내서 만들었다. 다만 우리는 작품을 만들기 전부터 성별이나 계층, 성 지향 등에 따라 혐오하지 말자는 대원칙을 세우는 데 합의했다. 그래서 표현은 지향하되 노출은 지양했다. 성인용 콘텐츠이지만 베드신이 직접적으로 나오지 않도록 만들었다. 이미 세상엔 너무 많은 성적 대상화 이미지가 넘쳐나는데 가 거기에 더 힘을 보탤 이유가 있나, 생각했나. 전고운 기존 콘텐츠 시장이 너무 안전한 이야기만 하고 있다는 생각이 종종 들곤 했다. 사람들의 삶과 일상에는 복잡한 이야기가 많은데. 그래서 더 용감하게 말하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다. 무엇보다 이번 작품에서 혼자가 아니라 둘이기 때문에, 서로 다른 성별이기 때문에 가능한 지점도 있었다. 각자 놓치는 것들을 보완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그런데 실제로 그랬다. 둘 다 젠더 감수성에 기민하지만 또 저돌적이고 야성적인 면이 있어서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었다. 만약 혼자 썼더라면 10에 그쳤을 것들을 더 밀고 나가 20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함께여서 더 용기낼 수 있었다. - 둘이었기 때문에 보완할 수 있었던 장면을 예시로 말해준다면. 전고운 우리에겐 이야기의 현실성이 무척 중요했다. 그래서 어떤 상황이나 자세를 두고 현실에 있을 법한지 계속 토론했다. 베드신에서도 “이 자세가 가능해요? 너무 불편하지 않아요?” 하는 내용을 아무도 웃지 않고 진지한 과학자처럼 의논했다. 현실적이고 이성적으로. 공중에 붕 뜬 이야기는 참을 수 없으니까. 임대형 우진과 사무엘이 의논하는 장면은 대부분 우리가 실제로 회의하면서 나눈 대화 내용에서 나왔다. 불륜 커플에게 얼마를 요구할지 결정할 때 “2천만원은 너무 많은 거 아냐?” “만약 주차장에 경찰이 잠복해 있으면 어떡해?” 은 내용 모두 우리의 고민이고 상상이었다. “고운 감독님, 500만원 달라고 협박하면 줄 거야?” 하는 주제로 내내 회의를 했다. 쉽게 단언하거나 재단하지 않고 - 불륜이라는 소재를 현실적으로 그리면서도 미화하지 않고, 당사자들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하면서도 그들이 얼마나 이 관계에 진심인지를 드러낸다. 상반된 개념을 균형 있게 보여주는 과정에 어떤 고민을 담았나. 전고운 가 무엇도 단언하지 않는다면 그건 대형 감독님과 내가 함부로 판단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는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해 시작한 작품은 아니다. 또 둘 다 쉽게 재단하는 것을 무척 조심스러워해서 그 태도가 작품에 자연스레 반영된 듯하다. 임대형 도덕적 잣대는 남한테가 아니라 나한테 들이밀어야 하는 것 아닌가. 모든 사람에겐 양면성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입체적이다. 작가가 특정 사안에 대해 도덕적 판단을 내려버리는 순간 이야기는 유치해질 수밖에 없다. 그게 우리가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이기도 하다. - 불륜에 대한 조사는 어떻게 이뤄졌나. 전고운 공부를 많이 했다. 주변 사람에게 조언을 얻을 수 없는 소재라 생각보다 자료 찾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글이 안 써질 때에는 불륜 명소를 찾아가보기도 했다. 임대형 미행하는 방법을 알기 위해서 히치콕 영화도 많이 보았다. 그런데 히치콕 영화를 참고하는 건 불가능했다. 드라마는 숏을 많이 활용한다. 히치콕 작품은 똑같은 숏으로 길게 가면서 서스펜스를 쌓아가는데 시리즈에 통용되기에 반겨지지 않는 장치였다. 사람들이 기다려주지 않으니까. 그외에 불륜 장면들은 통계와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창작된 상상이다. 이를테면 점심시간에 패스트푸드를 먹으며 밀회를 즐기는 에피소드는 이토록 바쁜 와중에도 패스트푸드 같은 사랑을 즐긴다는 일종의 풍자다. 전고운 자동차 천장에 머리가 닿아 고개가 꺾인 건 정재원 배우가 키가 커서 예기치 못해 나타난 것이지만 생각해보니 너무 급하면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묘하게 풍기는 우스꽝스러움이 마음에 들었다. - 를 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실소를 터뜨리는 장면들이 많다. 파도 탄 듯 자연스럽게 쫓아가다가 웃게 되는 힘이 강하다. 임대형 안재홍 배우가 코믹 연기를 자연스럽게 보여줘서 많이 웃었다. 시나리오 쓰면서 이미지를 상상하다 눈물나게 웃었던 건 3화 백호(정진영)와 영애(양말복)의 첫 만남 신이다. 영애의 가발이 바람에 휘날려 날아갈 때 너무 웃겼다. 정작 촬영장에선 아무도 웃지 않는다. 힘드니까. (웃음) 가발이 왜 안 날아가지? 왜 진짜처럼 날아가질 않지? 이런 얘기만 나올 뿐이다. 전고운 를 작업하면서 다양한 웃긴 일들이 있었다. 내가 새로운 작품을 하게 될 때마다 어머니가 절을 찾아 기도를 올리신다. 스님께 작품 제목을 말씀드리면 그것을 입으로 외면서 기도를 드리는 게 일반적이다. 이번에도 기도를 드리기 위해 어머니가 절을 찾았는데 의 전체 제목을 물으시더라. 그래서 라 답했더니 “ 그냥 라고 할게” 하시는 거다. (웃음) 그러고선 다음날 어머니가 갑자기 새로운 제목을 나에게 제안했다. “그런 단어 쓰지 말고 ‘쓸모가 없어졌다’ 어때?” 하고. 심지어 내 대본을 보지도 않았는데. (웃음) 더 웃긴 건 그 제목과 실제 작품 내용이 어느 정도 맞다는 거다. - 반면 사무엘과 우진의 갈등을 끝까지 끌어올리기도 한다. 특히 6화의 연출이 무척 은유적이다. 비가 내리던 2년 전으로 돌아간 둘의 상황을 이어받듯 이들의 집에서도 그대로 비가 내린다. 촬영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임대형 모두가 예민하고 힘들어했다. 물에 닿으면 안되는 기기 장비도 무척 많고. 배우들도 입술이 파래진 채 촬영에 임해야 했다. 부부는 싸우면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가게 되곤 한다. 이들이 회피하고 외면해온 2년 전 이야기를 끄집어냈을 때, 현재의 시간도 그때로 돌아간 것 같은 연출을 하고 싶었다. 또 문제를 직면한다는 것은 부부에게 재난과 같다. 직면하는 순간 붕괴하기도 하니까. 그래서 재난을 이미지화하는 데에도 집을 침수시켜 비를 내리는 게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 전고운 둘 다 플래시백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필요하다면 납작하지 않은 방식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대사 자체도 정말 길다. 거의 연극무대에 가까운 수준이다. 하지만 배우들이 뛰어난 집중력으로 몰입해주었고 그 덕에 감정적 밀도를 높일 수 있었다. 그동안 보기 어려웠던 이솜과 안재홍의 얼굴을 담아낼 수 있어 연출자로 기뻤다. 다양성·다각화, 현실을 비추는 거울로 - 는 동성애, 중장년층의 사랑, 현실적인 여성의 성욕 등 다양성을 담아낸다. 이렇게 다양한 관점이 를 어떻게 넓혀줬다고 생각하나. 임대형 상업드라마에서 다양한 형태의 커플을 등장시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렵다. 하지만 현실엔 정말 많은 사람이 있지 않나. 젊은이만 연애하지 않고, 헤테로의 사랑만 있는 것도 아니다. 그 실제 이야기를 반영했을 뿐 우리가 문화적 지평을 넓혔다거나 새로운 시도를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왜 이런 게 미디어에 더 드러나지 않는지 의문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전고운 우리 작품도 다양성이라고 말하기 부끄러울 만큼 대표적인 사례만 넣은 느낌이 강하다. 다만 콘텐츠를 제작하는 사람으로서 상대적으로 낯설고 이질적인 장면을 계속 보여주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느낀다. 자꾸 보면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면 이해할 수 있고 이해하면 용기도 낼 수 있으니까. - 우진, 영국 등 인물들의 이름도 중성적이다. 특히 초등학생 영국이는 어른에게 깍듯하게 예의를 차리면서도 자기 몸집보다 몇배 큰 책상에 앉아 듀얼 모니터를 돌려 주식을 한다. 잠시 짧게 스쳐가는 인물에게도 통통 튀는 개성을 부여했다. 전고운 이름에서 성별을 지우고 중성적인 이미지를 발휘하고 싶은 건 우리 둘 모두 동의한 방향이었다. 우진과 사무엘 부부와 반대되는 가정이 바로 영국이네 집이다. 유복해 아이를 키울 여력이 되고 주식과 재산에 관심이 큰 아이가 등장하는 가정이다. 사회에서 말하는 일반 가정에 해당된다. 영국이가 어른의 말을 잘 듣고 예의 바르지만 뛰어놀기보다 주식에 몰두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알 수 없는 씁쓸함을 느낀다. 아이의 귀여움이 가리지 못한 사회적 그늘 같은 것이다. 이렇게 곳곳에 틈틈이 풍자를 넣으려 노력했다. - 우진과 사무엘은 보편적으로 정의된 성역할과 거리가 멀다. 잠자리를 시도하는 것은 우진, 사랑 없는 관계는 싫다는 사무엘. 이런 그림을 그려내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임대형 미러링하고 싶었다. 여자는 이렇고 남자는 저렇다는 전통적인 성역할과 편견은 현실과 많이 다르다. 현대 사람들은 이제 성별 이미지와 거리가 먼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려 하는데 미디어는 그것을 채 담지 못하고 있다. 콘텐츠와 현실 세계의 변화 속도가 차이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에 등장하는 남녀 인물들은 그 이미지가 반대되는 경우가 많다. 가상 현실을 상상한 게 아니라 오히려 그게 더 현실적이다.

[기획] 모두의 안전을 위해 <워 호스>, 해외영화계의 동물 촬영 사례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은 지금 시대에 나왔다면 꽤 시끄러운 영화가 됐을 것이다. 실제 물소를 도축하는 신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후 할리우드에서 동물 연기 촬영 여건도 여러 변화를 거쳤다. 영화 엔딩크레딧에 등장하는 “No Animals Were Harmed®”는 해당 작품이 제작 가이드라인을 준수해 제작되었음을 인증하는 문구다. 미국의 동물보호단체 ‘미국 인도주의 협회’에서 84년간 동물 배우 보호를 의무화한 이 프로그램은 연간 1천여편의 작품에 출연하는 동물 10만 마리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작동하고 있다. 양서류, 조류, 야생생물, 파충류, 영장류 등 동물별로 세세한 가이드라인이 존재하며 현장은 이를 준수해야 한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워 호스>는 영화가 취한 고전영화적인 촬영 방식상 CG 작업이 최소한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주인공 조이를 연기한 대역마는 무려 14마리. 말마다 각기 다른 특성을 갖고 있는 데다 그들의 노동환경(!)을 고려했을 때 한 마리가 모든 임무를 떠맡지 않게 배려하는 것이 필요했다. 분장팀과 말 전담 미용사의 손을 거쳐 탄생한 다이아몬드 모양의 흰 점은 이들이 동일한 조이로 보일 수 있게 하는 장치였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서 조이가 목줄에 묶인 돼지를 데리고 등장하는 신은 돼지가 지시어를 들으면 걸어 나올 수 있도록 훈련한 결과물이다. 특정 소리나 행동에 따라 동물이 원하는 움직임을 보여줄 수 있게끔 학습시키는 메커니즘은 돼지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개가 공중을 나는 장면은 그린스크린 배경으로 촬영됐다. 스텐드 스테이 위에 놓인 개가 카메라를 마주하고, 가볍게 선풍기 바람을 날려주며 털의 섬세한 움직임을 얻어냈다. 발이 공중으로 뜨는 장면은 초록색 쫄쫄이 옷을 입은 훈련사가 직접 팔로 안아 올려 촬영한 것이다. <웡카>에서 세탁 노동을 위해 개가 달리던 러닝머신은 전기가 아닌 개가 달리는 동작에 의해 작동됐다. 트레이너가 러닝머신 앞에 웅크리고 필요에 따라 수동으로 러닝머신을 멈출 수 있는 다른 트레이너도 대동했다. 개는 러닝머신을 달리면 음식 보상을 받게끔 학습받은 후 촬영에 들어갔다. 물론 이같은 풍경이 할리우드만의 일은 아니다. 지난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추락의 해부>에서 시각장애인 다니엘의 안내견 스눕을 연기한 7살 보더콜리 메시는 칸영화제 상영작 중 가장 뛰어난 연기를 펼친 견공 배우에게 수여되는 ‘팜도그상’을 수상했다. 메시는 <추락의 해부>에 출연하기 전까지는 눈동자가 너무 밝다는 이유로 캐스팅이 잘 되지 않던 개였다. 총 22일 동안 촬영장에 나간 메시는 다니엘 역의 밀로 마차도 그라네르와 가까워지기 위해 사전에 많은 시간을 함께했고, 아픈 연기를 해내기 위해 꼼꼼한 훈련을 거쳤다. 스눕이 축 늘어져 혀를 늘어뜨리고 있는 모습은 <추락의 해부>에서 가장 인상적인 이미지 중 하나다. 그리고 동물배우의 연기는 그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기본이고 각자의 개성과 재능을 존중받는 방향으로 진화 중이다. 메시의 훈련을 담당한 로라 마틴 콘티니는 “연기를 타고난 개는 없다. 개마다 다른 신체 능력과 성격을 갖고 있다. 그들의 구체적인 특성을 탐구하고 캐릭터를 위해 작동하도록 만들면 누구나 스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