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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영화 80여편 올가이드-한국영화(2)

중독 감독 박영훈 출연 이병헌, 이미연, 이얼 제작 씨네2000 배급 쇼박스 개봉 10월 중 컨셉┃사랑하는 이의 영혼이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갔다. 그가 사랑을 호소해올 때 당신은? 온 스테이지┃대진(이병헌)과 호진(이얼)은 형제다. 은수(이미연)는 호진의 부인이다. 셋이 함께 사는데, 공교롭게 같은 날 대진과 호진이 교통사고를 당해 식물인간이 됐다. 먼저 깨어난 대진이 호진처럼 행동하고 말한다. 자신은 호진이라며 은수에게 사랑을 호소한다. 사랑은 영혼끼리 나누는 것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있다. 영혼의 짝, ‘솔 메이트’라는 컨셉을 끌어온 <번지점프를 하다>처럼 <중독>도 같은 이데올로기에 호소한다. 그 컨셉은 ‘빙의’(영혼이 다른 사람의 몸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빙의가 일어났을 때 사랑은 어떻게 될까.오프 스테이지┃<번지점프를 하다> 같기만 하다면 은수와 대진(호진의 영혼)과의 사랑에 걸림돌은, 형수와 시동생이 사랑해도 되냐는 관습과 제도의 시비뿐이다. 그러나 <중독>에는 역설이 있다. 영혼끼리의 사랑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끌어왔다가 거기에 저항한다. 그 역설이 어떤 울림을 줄지에 더해 이병헌, 이미연이라는 두 스타의 연기도 성패의 관건이다. 사랑에 대한 컨셉들이 퍼즐처럼 꽉 짜여진 이 이야기에, 사람의 숨결을 불어넣는 건 그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H 감독 이종혁 출연 염정아, 지진희 제작 봄 배급 A 라인 개봉 10월 중 컨셉┃연쇄살인이 벌어지는데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감옥에 있다. 관객의 추리력과 정면승부하는 ‘인텔리전트 스릴러’. 온 스테이지┃신현은 6명을 죽인 연쇄살인범으로 사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이다. 해맑게 생긴 20대의 이 청년은, 살인을 통해 사람들을 구원하겠다는 확신범이다. 그가 수감된 지 1년 뒤 여고생, 임산부 등 신현이 죽인 사람과 같은 유형의 인간들이 같은 방식으로 살해되기 시작한다. 여형사 미연(염정아)과 강 형사(지진희)는 신현이 사주하고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감옥을 찾아간다. 그러나 지능까지 겸비한 이 확신범이 녹록하지 않다. 영화사 봄이 정통 스릴러 시장을 노리고 착수한 영화로, 탄탄한 시나리오를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오프 스테이지┃ 스릴러영화답게 제작사쪽의 보안이 철저하다. 전반부의 설정이 <양들의 침묵> 전편격인 <맨 헌터>와 흡사하지만 전혀 다른 반전들이 준비돼 있다고. 신현 역을 맡은 배우도 개봉 직전에 공개할 계획이다. 여자와 남자 형사가 파트너를 이루는, ‘남녀 버디무비’라는 시도도 눈길을 끈다. 신인인 이종혁 감독은 박광수, 박종원 밑에서 조감독을 거쳤고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직접 썼다. 죽어도 좋아 감독 박진표 출연 박치규, 이순예 제작 메이필름 배급 청어람 개봉 9월 중 컨셉┃70대 할아버지 할머니, 열애에 빠지다 온 스테이지┃사랑하는 순간만큼 살아 있음의 환희를 온몸으로 느끼는 순간이 또 있을까? 70대 노인의 애정과 섹스를 다룬 <죽어도 좋아>는 그런 점에서 삶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찬가다. <청춘가>의 가사로 챕터를 나눈 박진표 감독의 관점도 그것이다. 카메라는 검버섯이 핀 피부와 늘어진 육신에도 억누를 수 없는 에너지와 욕망이 살아 숨쉬고 있음을 비춘다. 거리 가판대 1평 남짓한 공간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하루종일 앉아 껌을 팔고 신문을 팔아 오늘 먹을거리를 장만하는 70대 할아버지에게 어느 날 사랑이 다가온다. 아니 사랑을 쟁취한다. 할머니를 만난 다음 할아버지의 방은 낙원이 되고, 사랑은 젊음이 부럽지 않은 정열을 되찾아준다. 올해 칸영화제 비평가주간 초청작.오프 스테이지┃ 지난 7월23일 영화등급분류 소위원회는 성기노출 등의 이유로 <죽어도 좋아>에 제한상영등급 결정을 내렸다. 그것은 제한상영관이 없는 현 상황에선 어디서도 이 영화를 틀 수 없다는 얘기. 메이필름은 수정이나 삭제없이 재심의를 신청했고, 재심의 결과는 8월27일 나올 예정이다. 밀애 감독 변영주 출연 김윤진, 이종원 제작 좋은영화 배급 시네마서비스 개봉 10월 중 컨셉┃모든 것이 무너졌다고 생각한 순간, 거부할 수 없는 유혹게임이 시작된다. 온 스테이지┃시골로 내려왔지만, 미흔은 여전히 두통과 불면에 시달린다. 2년 전, 크리스마스 오후에 급작스레 날아든 끔찍한 악몽을 잊지 못하기 때문. 그러던 어느 날 이웃집에 사는 시골병원 의사 인규와 우연히 만나게 되고, 섹스는 하되 절대로 사랑해선 안 된다는 그의 게임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미흔의 생(生)은 점차 기운을 되찾는다.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낮은 목소리> <숨결> 등의 다큐멘터리로 주목받았던 변영주 감독의 첫 번째 장편 데뷔작으로, 전경린의 장편소설 <내 생에 꼭 하루뿐일 아주 특별한 날>이 원작이다. 김윤진이 미흔으로, 이종원이 인규로 나온다. ‘격정멜로’라는 타이틀로 미뤄보건대, 남해의 고요한 풍광을 오선지 삼아 한 여자의 내면을 카메라에 고스란히 기록한 영화가 될 듯. 오프 스테이지┃“우리, 돌아갈 거예요.” 신혜은 프로듀서가 듣기 두려워하는 말 중 하나다. 권혁준 촬영감독을 돕고 있는 폴란드 촬영스탭들의 귀국 날짜가 다음 작품 스케줄 때문에 못박혀 있어서, 8월 말까지 촬영지인 남해 생활을 청산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그를 압박하고 있는 것. 이 모든 것이 변덕스런 날씨 때문이다. 하루에도 세번씩 비가 왔다 그쳤다 하는 섬 기후 탓에 촬영장 세팅에 여간 애를 먹는 것이 아니다. 얼마 전엔 부산의 갈대밭을 점찍어놨다가 낙동강 일대의 범람으로 부랴부랴 다른 장소를 물색해야 했다. 하루 4시간 수면으로 일주일 중 5∼6일 촬영에 나서는 변영주 감독의 꿋꿋함이야말로 신 PD에게는 둘도 없는 보약. 장염에 걸려 고생했던 김윤진을 비롯 두달 가까이 계속되는 여관의 합숙생활에 배우들과 스탭들의 체력은 바닥난 상태지만, 현장은 사이사이 농담이 그치질 않는다고. 품행제로 감독 조근식 출연 류승범, 임은경, 공효진 제작 KM컬처 배급 청어람 개봉 11월 초 컨셉┃모범시대 불량영웅, 본색을 드러내다. 온 스테이지┃여기, ‘전설’을 먹고사는 불량학생이 있다. 그의 이름은 박중필. ‘로라장’ 관리와 춘화사업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실력을 내보인 적은 없지만, 문덕고 최고의 쌈닭으로 불린다. 정작 본인은 하루하루가 따분함, 그 자체다. 그런 천하태평 박중필에게도 시험이 찾아온다. 이웃 여학교 퀸카 민희에게 홀딱 반하는 바람에 자신을 짝사랑해온 오공주파 나영의 방해공작에 시달리게 되는 것.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혜성처럼 나타난 전학생 상만과의 피할 수 없는 쟁투도 치러야 한다. 영화아카데미 13기 출신의 조근식 감독이 염두에 두는 건 이른바 열일곱 청춘들의 생동하는 기운을 어떻게 잡아낼 것인가 하는 점. 80년대의 고등학교로 보는 이들을 불러들이지만, 감독은 “촌스럽고 우울한 분위기 대신 경쾌하고 명랑한 템포”로 끌어갈 것이라고 말한다. DJ DOC의 이하늘과 양동근의 첫 번째 앨범을 프로듀싱했던 제이가 함께 만들고 있는 오리지널 사운드트랙도 기대를 모은다.오프 스테이지┃ 캐스팅은 클린업 트리오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다. 중필 역의 류승범을 비롯 민희 역의 임은경, 나영 역의 공효진 등은 명랑만화 캐릭터에 못지않은 발랄함을 지니고 있는 개성만점의 배우들. 특히 처음으로 주연을 맡은 류승범은 투철한 책임의식으로 무장, 조근식 감독에게 곧잘 대든다고(?). “현장에서 감독님이 상황만으로 끌고가는 경우가 있거든요. 인간 류승범을 원하기도 하고, 시나리오상의 중필을 원하기도 해요. 그런데 제 의견이 같을 수만은 없잖아요. 싸웠다기보다는 격렬한 토론이라고 봐야죠.” 토론은 술자리까지 이어지는 게 다반사라 촬영현장에선 “감독과 류승범이 사귄다”는 믿지 못할 소문도 퍼져 있다.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

<헤드윅>에 대한 감상문: 소수자 혹은 주변자를 보는 두개의 각도

<헤드윅>이라는 영화에 대한 소문을 접했을 때 나의 기대감은 그리 크지 않았다. ‘시큰둥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었을 것이다. ‘드랙퀸’이라든가 ‘트랜스젠더’라는 단어들이 이제는 주류 문화산업에 의해 만만하게 착취되어 이미 너덜너덜해진 상태라는 편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 대해 누가 평을 쓸지도 이미 헤아릴 수 있었다. 그건 이 방면의 전문가렸다. 그 전문가가 ‘포스트 스톤월 시기의 퀴어 폴리틱스’에 대해 설파하는 글이 어딘가에 실릴 것이고, 나는 그저 인터넷을 뒤지다가 우연히 그 글을 발견하고는 ‘복습’하는 마음으로 한번 죽 읽어내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왜 그럴 때 있지 않은가. 영화를 직접 보기 전에 이런저런 말을 전해 들으면서 그 영화에 대해 ‘마치 진짜로 본 것 같은 환상’에 빠지는 일 말이다. 이번이 딱 그런 경우에 속했다. 이건 너무 냉소적인 반응이다. 하긴 누가 나더러 ‘당신 글은 허구한날 덜 떨어진 록과 인디 타령이냐’라고 말한다면 나 역시 과묵해질 것이다. 그렇지만 까놓고 말해서 이런 영화 하나 더 개봉되면 뭐 하나. 한국인들의 트랜스젠더에 대한 일반적 관념은 향후 5년간 하리수의 성형발과 꽃단장을 넘어서기 힘들지 않을까. 그건 최근 방영되는 한 TV 드라마의 여주인공이 인디 밴드의 멤버로 나온다고 해서 인디 록에 대한 세인의 시선이 달라지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나만 더. 음악이 많이 나오는 영화라는 말을 전해 들은 것도 그리 좋은 경험은 아니었다. 시사회를 다녀온 후배에게 “어떤 음악이냐?”라고 물었더니 이기 팝(Iggy Pop),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루 리드(Lou Reed) 스타일의 음악이라는 응답이 왔다. 그 말을 들은 즉시 “1970년대 글램 록의 흥망성쇠(Rise and Fall!)의 야사(野史)를 펼쳐 보였던 <벨벳 골드마인>이 나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라는 질문을 거둘 수 없었다. 도착적 섹슈얼리티를 담은 음악도 이제 그렇고 그런 식으로 소비되는 패턴이 정착했다는 건방진 판단까지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에 대한 에세이의 필자로 내가 ‘당첨’되고 말았고, 요리조리 피해 보았지만 급기야는 영화를 보게 되었다(그 주된 이유는 연전에 <벨벳 골드마인>에 대한 에세이를 내가 썼기 때문이다. 그 죄 아닌 죄로 다시 한번 아마추어가 하는 영화평론(이랄 건 없고 잡문)을 하게 되었다. 독자들의 깊은 아량을…). 불행히도 영화를 보고 난 뒤 나의 곤혹스러움은 더욱 커져버렸다. 한술 더 떠서 영화 텍스트와 무관한 상상까지 펼치게 되어버렸다. 이런…. 영화가 주는 느낌은 뜻밖에 ‘짠한’ 것이었다. 드랙퀸이 나온다고 해서 아찔한 미모를 소유한 꽃미남이 등장할 줄로만 알았는데 주인공은 마치 ‘노창’(老娼) 같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헤드윅의 연인으로 등장하는 토미도 꽃미남이라고 하기에는 무언가 좀 모자라 보였고, 게다가 그의 섹슈얼리티는 영화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헤드윅의 중성의 아줌마 같은 섹슈얼리티를 느끼면서 나는 트랜스젠더가 ‘예쁜 여자’가 되고 싶은 욕망 이상의 것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이제까지 잘 깨닫지 못했다는 사실에 심히 부끄러워해야 했다. 또한 주인공 헤드윅의 밴드의 기타 연주자로 등장하는 남자의 실제 성별이 여성이라는 정보는 감독의 구도가 꽤 치밀하고 복선이 많다는 징후였다. 게다가 영화의 진행은 ‘성적 소수자’의 영화란 게 “우리끼리도 행복하게 잘산다”라는 천사표(標) 메시지 아니면 “우리를 억압하는 자들과 투쟁하여 권리를 찾는다”는 투사표 메시지 중 둘 중 하나라는 나의 편견을 흐트러뜨리고 있었다. 물론 ‘사랑’이나 ‘행복’이라는 단어에 대해 닭살이 돋는 나로서는 <사랑의 기원>(The Origin of Love)(사운드트랙 수록곡 중 하나다)에 대한 추구가 진부하게 들렸다. 그렇지만 사랑과 행복을 갈구하는 방식은 진부하지 않았다. 영화 마지막에서 브래지어 속에 넣어두었던 토마토를 터뜨리는 제의(祭儀)를 통해 ‘나는 남자이면서도 여자’ 혹은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무엇’이라는 식으로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재정의하는 장면은 트랜스젠더라는 단어의 접두어 ‘트랜스’를 잘 정의해 주었다(나에게 트랜스라는 단어의 의미는 변압기를 지칭하는 ‘도란스’의 기능을 연상할 때 가장 잘 와 닿는다). 그건 ‘모든 것은 부유하는 기호일 뿐’이라는 <벨벳 골드마인>의 허무한 결론보다는 덜 모호했다. 퀴어 혹은 변방의 로큰롤 드림 그런데 이런 ‘성정치적 해석’으로 충분할까. 나는 이 영화를 평한 많은 글에서 주인공을 비롯한 몇몇 등장인물들이 ‘민족적 소수자’(ethnic minority)라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는 점이 다소 이상했다. 주인공 헤드윅이 동독 출신이라는 사실은 하나의 배경 이상으로는 언급되지 않는다. 앵그리 인치의 다른 멤버들 중에도 동구권(이른바 ‘이스턴 블록’) 출신이 등장하고, 헤드윅이 처음 밴드를 시작할 때 한국계 미국인들이 잠깐 등장한다는 사실은 거의 언급되지 않고 있다. 이런 것들이 영화의 주요한 모티브는 아닐 수도 있다. 민족적 소수자라는 정체성은 그저 헤드윅이 성적 소수자임을 강조하는 양념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앞서 내가 ‘영화 텍스트와 무관한 상상’이란 바로 이 점을 말한다. 그렇지만 이런 불필요한 상상이 허용된다면 이 영화는 ‘퀴어영화’의 관점 이외에 또 하나의 관점에서 조망될 수 있다. 다름 아니라 이 영화를 ‘로큰롤 드림’을 다룬 텍스트, 그것도 록음악의 제국으로부터 고립된 지역 출신의 로큰롤 드림을 다룬 텍스트로 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케이스에 속하는 영화는 공교롭게도 같은 해인 1989년에 나온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와 마이클 앱티드의 <더 롱 웨이 홈>(The Long Way Home)이 대표적이다. 전자에 대해서는 설명을 생략해도 되겠지만, 후자의 경우 ‘러시안 록의 지존인 보리스 그레벤시코프가 미국과 영국에 가서 음반을 레코딩한 과정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라는 부연이 필요할 것이다(참고로 마이클 앱티드는 <넬>의 감독이고, 보리스 그레벤시코프는 빅토르 최를 ‘키워준’ 존재다. 한편 레닌그라드 카우보이스는 ‘서방세계’ 출신이지만, 밴드의 이름에 있는 ‘레닌그라드’라는 단어는 서방세계와 단절된 지역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두 영화는 많이 다르다. 무엇보다도 <레닌그라드…>가 코미디이고 픽션인 반면, <더 롱…>은 실제 상황을 담담하게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로큰롤 드림이 좌절되는 이유와 과정에 대한 묘사 역시 천차만별이고 주인공들이 좌절한 뒤 발길을 돌리는 곳도 상이하다. 그렇지만 록문화의 변방의 음악인들의 로큰롤 드림이 좌절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그린 점은 공통적이다. 영미의 록음악은 변방의 록 음악인에게 유년 시절부터 지대한 영향을 끼쳤지만, 그가 막상 록음악의 ‘성지’에서 경험하는 일은 그들의 꿈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다. 레닌그라드 카우보이스는 미국 시장에서 아무런 기회를 잡지 못한 채 멕시코로 건너가 밴드 활동을 계속한 것으로 나오고, 보리스 그레벤시코프는 음반이 상업적으로 실패한 뒤 러시아로 돌아갔지만 동료들로부터 배신이라는 말을 듣고 그의 밴드는 해체된다. 전자는 희극적이고 후자는 비극적이지만 공통분모를 발견하기는 어렵지 않다. 조금 ‘오버’해서 말한다면, 10대 시절 “롤링스톤스나 퀸 정도는 되어야지”라고 다짐했던 한국 ‘그룹 사운드’의 운명을 그린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결론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조용히 손잡은 두개의 정체성 그런데 이렇게 ‘좌절의 상황을 리얼하게 묘사한 영화’를 넘어서는 길은 없을까. 이 점에서도 <헤드윅>은 하나의 출구를 제시해 준다. ‘베를린 장벽이 세워진 날 태어나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날 남자에게 차였다’는 헤드윅의 ‘팔자’는 동독이나 동구권 출신의 혼란되고 희망없는 정체성을 상징한다. 그에게 로큰롤 드림은 미군 병사가 던져주는 미제 젤리의 맛처럼 삼삼한 것이고, ‘야메’로 수술을 해서 성별을 전환해서라도 추구해야 할 꿈이다. 그렇다면 동구권 출신이라는 소수성은 트랜스젠더라는 성적 소수성과 처음부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그게 너무나도 유기적으로 엮여져 있기 때문에 부각되지 않았을 뿐이다. 그렇다면 혹시 영화의 말미에서 헤드윅이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재정의하는 장면은 자신의 민족적 정체성도 재정의하는 장면으로 읽어낼 수 있지 않을까. 불행히도 영화를 볼 때는 ‘동구권 출신의 미국인’이라는 정체성이 압도했고, 감독 역시 그 이상을 말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트랜스젠더가 문화적 옵션이라면 트랜스에스니시티(transethnicity: 죄송! 한국어 표현을 찾기 정말 힘듭니다)라는 문화적 옵션도 가능한 것 아닐까. 별말이 아니라 국적과 민족을 ‘문화적으로’ 왔다갔다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라는 상상이다. 하지만 상상은 이쯤에서 그치기로 하자. 하지만 마지막 질문은 남는다. 그건 영화에 잠깐 등장했던 한국계 여성들에 관한 것이다. ‘기지촌’ 부근에서 만난 여성들이다. 미제 젤리를 먹고 싶어했던 헤드윅의 욕망은 한국인들에게는 징그러울 정도로 친숙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경험이 보편적인 한국인이 이 영화에서 표상되는 방식은 성적·민족적 주변자인 헤드윅보다도 더 주변적이다. 미국에 동독 출신보다 한국 출신이 많으면 많았지 적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그 장면에서 헤드윅이 한국계 멤버들과 함께 연주한 음악이 제니 최(Jenny Choi)의 노래와 비슷하다고 느낀 것은 나의 환청이었을까. 아니면 한 장면을 침소봉대하여 한국계의 로큰롤 드림을 다룬 영화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엽기적인 것이었을까. 어쨌거나 ‘야, 한국 애들 나왔다. 재밌다’라고 시시덕거리는 수준은 넘어서야 할 텐데…. * 제니 최(1977년생)는 시카고에서 서드 시프트(The Third Shift)라는 인디밴드를 이끌고 활동하는 한국계 여성 음악인이다. http://www.weiv.co.kr/view_detail.asp?code=interview&num=1639에 오시면 그녀와의 인터뷰와 음악을 들어볼 수 있습니다. 신호미/ 문화비평가 http://homey.wo.to

가을은 크랭크인의 계절?

솔솔 불어오기 시작하는 가을 바람과 함께 제작현장도 분주해지고 있다. 올해 말에서 내년 초 개봉을 목표로 제작에 들어가는 이들 작품은 소재나 주제면에서 각기 다른 표정을 갖고 있지만, 예년에 비해 유독 좁아진 투자의 관문을 통과했다는 점에선 모두 나름의 경쟁력을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8월27일 전남 장성에서 크랭크인하는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제작 싸이더스)은 경기도 화성에서 일어났던 부녀자 연쇄살인사건을 소재로 삼는다. 이 영화는 사건을 집요하게, 하지만 각자의 방식대로 추적하는 형사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연쇄살인마가 훑고 지나간 1980년대의 공기를 그려낸다. 송강호와 김상경이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12월 말까지 전라도 일대를 돌며 촬영을 마친 뒤 내년 봄 개봉할 예정이다.최근 <쓰리> 중 한편인 <메모리즈>를 만들었던 김지운 감독의 장편 신작 <장화, 홍련>(제작 마술피리)도 9월 말 전남 보성에서 크랭크인할 예정이다. 전통설화 <장화홍련전>을 바탕으로 하는 이 영화는 조선시대의 ‘계모형 가정 비극’을 현대로 옮겨와 호러라는 형식으로 표현한다. 1월 중순쯤 크랭크업해 5월 이후 개봉한다. <엽기적인 그녀>를 만든 곽재용 감독의 <클래식>(제작 에그필름)은 9월 초 크랭크인할 예정이다. 조승우와 손예진이 출연하는 이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는 두 남자와 한 여자의 사랑이야기는 12월 초 크랭크업해 내년 1월쯤 개봉할 계획이다. 연극연출가로 유명한 이윤택씨가 메가폰을 잡는 <오구>(가제·제작 마오필름)는 8월24일 밀양시의 대폭적 지원 아래 크랭크인했다. 이 감독은 자신의 연극 <오구, 죽음의 형식>을 각색해 “주성치 같은 골때리는 코미디”로 만들 계획이라고. 내년 2월 말 개봉예정이다.김수현 감독의 ‘콩가루 집안’ 이야기 <귀여워>(제작 튜브픽처스)는 9월 중 크랭크인해 12월 촬영을 마치고 내년 4월 개봉할 예정이며, 에로비디오계에서 충무로로 전격 입성한 봉만대 감독의 <사랑>(제작 기획시대)은 9월 말부터 11월 말까지 찍은 뒤 내년 3월 스크린에 등장한다. <재밌는 영화>를 만들었던 장규성 감독의 <선생 김봉두>(제작 좋은영화)는 10월 초 크랭크인한다. 음주, 가무, 촌지받기에 능한 한 ‘문제교사’가 시골 분교로 쫓겨난 뒤 학교를 폐교시키기 위한 공작을 벌인다는 내용의 코미디로 12월까지 촬영한 뒤 내년 상반기 개봉할 예정이다.<두사부일체>로 데뷔했던 윤제균 감독의 신작 <색즉시공>(제작 두사부필름, 필름지)도 8월19일 촬영에 들어갔다. 차력동아리 소속 남학생들과 에어로빅 수업을 받는 여학생들이 펼치는 섹시코미디. 임창정과 하지원이 주연하는 이 영화는 10월 말 촬영을 마치고 12월13일 극장을 찾을 예정이다. 본격 뮤지컬을 표방하는 조명남 감독의 <미스터 레이디>(제작 인디컴)는 8월25일 크랭크인했다. 위기에 처한 클럽을 살리려는 사장의 좌충우돌 해프닝을 그리는 이 뮤지컬에는 소찬휘, 안성기, 백재현 등이 출연한다. 11월 말 크랭크업, 내년 1월 개봉예정이다.문석

권교정 <어색해도 괜찮아>

마치 에로비디오영화의 전략적 제목짓기를 흉내낸 것처럼 보이는 ‘강한’ 남성지향 만화들의 덜떨어진 제목에 비해 여성작가들의 만화제목은 매력적이다. <호텔 아프리카> <바람의 나라> <불의 검> <스타가 되고 싶어?>처럼 제목을 떠올리면 작품이 오버랩되는 잔잔하면서도 강한 힘을 느끼게 해준다. 권교정 역시 제목을 꽤나 잘 만들어내는 작가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잡지의 폐간으로 중도하차한 비운의 SF만화 <제 멋대로 함선 디오티마>, 우스개 만화처럼 보이는 제목이지만 꽤나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제 멋대로’는 기존 통념과 관념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규칙이 지배하지 않는 랜덤한 우주 혹은 그 우주공간을 사유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비유적으로 드러내는 수식어다. ‘함선’이라는 정의도 멋스럽다. 작품을 보면 이해하겠지만 공간배경은 ‘함선’이라기보다는 ‘우주정거장’이다. 그런데 주인공 나머 준은 부임한 첫날 연설에서 디오티마가 우주정거장이 아닌 인류역사상 최초의 우주함선이라 불릴 수 있다는 말을 한다. 작품의 도입부에서 ‘정거장’과 ‘함선’을 구분하고 주인공의 존재와 앞으로 풀어갈 이야기에 대해 깊은 복선을 깐다. ‘디오티마’라는 제목도 마찬가지다(디오티마에 대한 이야기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생략). <헬무트>는 주인공의 이름을 그대로 제목으로 사용했지만, 중세시대에 시대의 관념을 벗어나 인간중심의 세계관을 갖고 이단으로 몰린 주인공 헬무트의 무게를 생각한다면 그리 나쁜 작명 솜씨는 아니다. 그리고 세편의 학원물인 <정말로 진짜>와 <올웨이즈> <어색해도 괜찮아>도 적당히 가벼우면서도 내심 무언가를 기대하게 하는 예쁜 제목들이다. ‘어색해도 괜찮아’라는 제목이 관계와 관계 속에서 처음으로 타인을 내 마음에 받아들이려는 순간을 얼마나 잘 묘사한 것인지, 권교정의 팬이거나 이 만화를 먼저 읽은 사람이라면 쉽게 긍정할 수 있을 것이다. 학교를 현실로 되돌리다 <어색해도 괜찮아>는 이제 막 고등학교 1학년이 된 이긍하와 한강, 소현민, 최정언, 정희정, 김덕현의 이야기다. 서로를 향한 호감, 엇갈리는 감정, 오해와 그것들의 드러냄이 작품의 뼈대다. 이 두줄이 <어색해도 괜찮아>의 모든 것이다. 만화, 그리고 유행하는 학원만화에 대한 고정관념만 아니라면 이 두줄로도 <어색해도 괜찮아>에 대한 훌륭한 리뷰가 완결될 터인데 현실은 그리 만만치 않다. 2002년 오늘, 우리나라에서 학원물은 트렌드다. 그것도 10대 초반과 중반의 여학생 독자를 겨냥한 순정만화 잡지에 실리는 만화들의 대부분은 학원만화다. 연재만화도 그렇고, 미니시리즈도 그렇고, 단편도 그렇다. 학원만화라는 장르는 만화에서만 도드라지는 장르로 ‘배경이 학교’라는 단 하나의 조건만으로 장르의 필요조건이 충족된다. 학원물이 창궐한 배경에는 독자엽서와 잡지 편집부가 있다. 몇 퍼센트에 불과한 독자엽서가 독자들의 취향을 대변하고, 이 몇 퍼센트의 취향은 트렌드가 된다. 그 결과 독자들의 연령(더불어 수준까지)은 지속적으로 하향조정되고 있다. 배경이 학교이기만 하면 되는 간단하고도 명료한 조건은 학교를 격투장으로, 멋진 서클활동의 공간으로, 화려한 연애의 무대로 만들고 일상을 지워버렸다. 독자들은 내가 살아가는 공간과 판이한 공간인 학교를 볼 수밖에 없었다. 권교정의 학원만화는 다른 학원물에서 지워진 일상을 복원시켰다. 성적에 대한 고민이 있고, 체육시간의 무서운 물구나무서기가 있고, 합반수업이 있으며, 식사시간이 있다. 현실의 학교보다 이상의 학교에 가깝지만, 적어도 그 안에는 학생들과 그들이 생활하는 일상이 있다. <어색해도 괜찮아>의 주인공들은 바로 나처럼 SICAF에 가고, 에버랜드에 가며, 박물관에서 봉사활동을 한다. 이 일상성은 내 마음의 장벽을 허문다. ‘그건 뻥이야’라는 마음이 무너지고 나면 주인공들의 기분에 감염된다. 그들의 고민이 내 고민이 된다. 상대방의 마음을 확신하지 못해 고민하는 긍하와 강의 내면이 나의 내면과 일치되는 순간 나도 답답해지고, 사랑이 조금씩 진전되는 순간 나도 두근거리게 된다. 아! 뻥이라는 걸 확실히 내비치는 많은 만화들이라면 책을 덮으면 금방 나의 일상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어색해도 괜찮아>는 아주 오래 내 마음을 간섭한다. 보편적 경험에 호소하는 학원만화 이건 풍만한 가슴의 노출이나, 팬티의 노출로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과 다른 성질의 것이다. 조금 더 내면적이고, 조금 더 감성적이다. 그래서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게 한다. 가슴 한편이 아프고, 내려앉고, 싸한 느낌. 이 만화를 본 사람이 30대라면 10년 전에 느낀 기분일 것이고, 20대라면 불과 몇년 전이나 지금 느끼고 있을 기분이고, 10대라면 이제 곧 감당해야 할 느낌이거나 막 발을 담근 열병일 것이다. 나는 그랬다. 20살 때, 누군가를 만나고 난 뒤 “나도 모르게 휘둘려버리”게 된 기억이 있다. 비단 사랑의 감정만이 아니다. 세상을 살아가며 경험하는 여러 감정 중 얼마쯤은 <어색해도 괜찮아>에서 경험할 수 있다. 이를테면 단행본 3권 123쪽부터 134쪽까지 모두 11쪽은 다른 만화에서 본 기억이 없는 매력적인 시퀀스다. 일상의 소음들(하교시간 학생들의 잡담)이 그대로 살아 있고, 칸의 세밀함과 넉넉함으로 호흡을 조절한다. 처음에는 희정과 하교하는 긍하의 모습, 긍하의 내레이션, 우연히 긍하의 시야에 등장한 정언, 정언의 내레이션, 다시 희정과 긍하의 대화, 천천히 걷다 서다 걷는 정언의 발, 그리고 주변의 대화들, 정언의 내레이션. 바로 내가 언젠가 경험했던, 일상의 어느 한순간에 번접한 공간에서 분리되어 나만이 혼자 있는 것과 같은 느낌, 바로 그 느낌을 전해 주는 대목이다. 쉽지 않은 감정의 표현을 상황과 감정을 교차시키며 독자들을 서서히 동일한 감정의 늪으로 끌어당긴다. <어색해도 괜찮아>는 마지막 5권을 남겨두고 있다. <올웨이즈>를 소개하며, ‘다시 문제는 이야기다’라는 화두를 던졌는데, 마지막 단행본의 출판을 기다리며 ‘일상의 감정’이 만화라는 매체에서 어떻게 구현되는가를 함께 지켜보자. 좋은 만화는 독자를 기쁘게 한다.박인하/ 만화평론가 enterani@yahoo.co.kr

[Review] 격돌대신 이해를 구하는 유연함, <슈팅 라이크 베컴>

■ Story 인도계 영국 소녀 제스(파민더 나그라)의 꿈은 베컴처럼 멋진 킥을 날리는 축구 선수가 되는 것이다. 전통적인 생활방식과 가치관을 고수하고 있는 제스의 부모는 제스의 꿈을 이해하지 못한다. 신부 수업 잘 받고 조신히 있다가 시집가길 바라는 것. 같은 동네에 사는 여자 축구단 소속 줄스(키이라 나이틀리)는 공원에서 공을 차던 제스의 화려한 플레이를 눈여겨보고, 코치 조(조너선 라이 메이어스)에게 소개해 훈련을 받도록 도와준다. 제스는 정식 축구 선수가 되는 동시에 줄스라는 든든한 동지를 얻게 되나, 그런 행복도 잠깐이다. 제스는 조에 대한 연정으로 줄스와 신경전을 벌이게 되고, 언니 혼사문제로 집안의 압력을 받는 등의 위기에 처한다. ■ Review 베컴의 커브 킥은 예술이다. 발끝을 떠난 공이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꽂힐지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베컴뿐일 것이다. 거대한 바리케이드에 다름 아닌 수비수 진영을 긴 포물선으로 휘감아 뚫는 그의 킥 솜씨. 누군가 베컴 ‘헌정영화’를 만들겠다고 나선다 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런 영화를 ‘인도계’ ‘여성’ 감독이 만들어냈다. 베컴의 킥에서, 여성으로서, 이방인으로서, 수많은 장애물을 통과하는 어떤 지혜, 삶의 기술을 읽어낸 까닭이다. <슈팅 라이크 베컴>은 그러니까, 단순한 축구영화가 아니다. <슈팅 라이크 베컴>의 소녀들은 단순히 베컴을 흠모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들의 바람은 베컴처럼 그라운드를 누비고, 그처럼 멋진 킥을 날리는 것이다. 란제리 코너에서 뽕 브래지어를 만지작거리는 대신 스포츠 브래지어를 골라잡는 그들에게는 “스파이스 걸 중에서 왜 스포티 스파이스만 애인이 없는 줄 아느냐”는 타박도 자극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오직 축구가 하고픈 씩씩한 소녀들도, “여자는 모름지기…”하며 딴죽을 걸어오는 세상 앞에 의기소침해질 수밖에 없다. 사정이 어렵기론 보수적인 전통에 덜미잡힌 인도계 소녀 제스쪽이 더하다. 요리 배우고 신부 수업 받아야 할 나이에, 걸핏하면 ‘반벌거숭이’ 사내들과 뛰어노는 딸이 제스의 부모는 탐탁지 않다. 품행이 방정하지 못한 제스 때문에 그 언니가 파혼당할 위기에 처하는 등 제스를 막아서는 장벽은 점점 그 몸집을 불려나간다. 이 상황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이 바로 ‘베컴처럼 차라’는 것이다. 때로 우리 앞의 장애물은 밀어붙여 무너뜨리기에 너무 크고 소중한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제스에겐 부모가, 가족이, 전통이 그런 것이다. 격돌하는 대신 이해를 구하는 유연함. 제스는 베컴을 벤치마킹한 멋들어진 벤딩 슛으로 화합을 이끈다. 소녀들이여, 야망을 가져라. 막혔거든 돌아서 가라. 인생의 한 고비를 넘어선 소녀 줄스의 깨달음이다. ♣ 줄스는 공원에서 공을 차는 제스를 눈여겨 보고 축구단 가입을 권한다. 스타 플레이어가 된 제스는 부모의 눈을 피해 축구 경기에 출전하는 이중생활을 감행한다. 고난은 그뿐이 아니다. 제스는 코치 조를 사이에 두고 단짝 친구 줄스와 냉전을 벌이게 된다. 영국에서 활동하는 유일무이한 아시아계 여성 감독 거린다 차다는 이렇듯 영화 속에 언제나 자신의 정체성을 반영한다. 서로 다른 세대의 인도 여성들이 해변으로 여행을 떠나는 여정을 따라잡은 데뷔작 <해변의 바지>, LA 이민자 가족이 추수감사절 회합에서 오래 곪은 갈등을 터뜨린다는 내용의 <왓츠 쿠킹>은 최신작 <슈팅 라이크 베컴>과 한가지 테마로 꿰어진다. 다양한 문화, 세대, 성정체성의 사람들이 어렵사리 서로를 끌어안는다는 것. 거린다 차다는 그런 갈등과 화합의 여정을 밝고 말랑말랑하게 그려내곤 하는데, <슈팅 라이크 베컴>은 그중에서도 가장 친절하고 유쾌하고 흥겨운 영화다. 빠르게 치고 받는 만담식 대사와 우스꽝스러운 오해들이 끊임없이 웃음을 자아내고, 인도의 전통 혼례식과 독일과의 축구 경기가 교차편집된 클라이맥스(다소 진부하고 안이하지만)에 이르면, 그 열기와 신명에 취하게 된다. ♣ ˝야 까까머리 사내가 뭐가 그리 좋다는 거니?˝ 터번을 둘렀다는 이유로 크리켓 선수의 꿈을 박탈당한 과거가 있는 아버지는 제스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슈팅 라이크 베컴>은 축구를 좋아하는 이들이나 그렇지 않은 이들, 모두가 만족할 다종다양한 서비스를 구사한다. 웬만한 축구팬이라면 알아차릴 축구 스타들이 등장하는데, 그중 도입부에 축구 해설자로 등장한 이가 80년대 축구 스타였던 게리 리네커다. 베컴도 자료화면이나 사진으로 등장하지만, 아내 빅토리아와 걸어가는 뒷모습은 안타깝게도, 대역 연기다. 축구팬들을 위한 서비스라면, 리얼한 경기장면을 빠뜨릴 수 없다. 이는 배우들이 전문 트레이너의 혹독한 훈련을 거쳐 실연을 한데다 촬영에서 그 생동감을 잡아냈기 때문. 리안의 초기작과 거린다 차다의 전작을 촬영한 대만 출신의 종린은 낮은 앵글에서의 빠른 움직임 포착에 강한 ‘위고’라는 장비를 개발해, 카메라로 포착하기 힘들다는 축구 경기의 리듬감을 잘 살려내고 있다. 배우들의 호연도 돋보이는데, 그중 반가운 얼굴이 하나 있다. 축구 코치 조를 연기한 배우는 <벨벳 골드마인>의 신비로운 미소년 조너선 라이 메이어스. 분위기는 많이 달라졌지만, 그가 제스와 줄스의 굳건한 우정을 흔들어놓는다는 설정에 고개가 끄덕여질 만큼 여전히 매력적인 모습이다. 박은영 cinepark@hani.co.kr

[Review] 기타노스타일 로드무비 <기쿠지로의 여름>

■ Story 할머니와 둘이서 사는 초등학생 마사오(유스케 세키구치). 아빠는 돌아가셨고 돈 벌러 멀리 가셨다는 사진 속 엄마는 소포만 부쳐온다. 마사오의 이웃에는 빈둥대는 전직 야쿠자 기쿠지로(기타노 다케시)와 말투는 무서워도 마음은 착한 그의 아내 미키(기시모토 고요코)가 산다. 여름방학을 맞아 가족과 시골로 놀러간 친구들 뒤에 홀로 남은 마사오는 소포의 주소에 사는 엄마를 찾으러 길을 나서자마자 동네 불량배들한테 괴롭힘을 당한다. 이를 목격한 미키는 기쿠지로에게 마사오를 동행하도록 한다. 경륜과 술로 여비를 날리고 출발한 둘의 여행은 어이없는 히치하이크로 이어지고 길에서 만난 낯선 괴짜 어른들은 모두 마사오의 그림일기에 추억을 남긴다. ■ Review “내 영화 속 폭력의 의미를 묻는 외국 기자와 평론가들의 질문이 지겨워서 다음에는 폭력이 전혀 없는 영화를 만들기로 했다”고 1998년 로테르담영화제에서 기타노 다케시가 선언했을 때, 아마 대다수 사람들은 코미디언 비트 다케시의 천연덕스런 조크거니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진담이었다. <기쿠지로의 여름>에서 기타노 다케시는 번개처럼 젓가락으로 적의 눈을 쑤시는 대신 수영장에서 튜브를 끼고 물장구를 친다. 물론 전직 야쿠자 기쿠지로는 바람직한 베이비시터가 못 된다. “너네들 정신 안 차리면 커서 이 인간 꼴 난다!”고 남편을 손가락질하며 동네 불량배들한테 호통치는 호랑이 아내에게 등 떠밀려 아홉살 꼬마 마사오의 보호자가 되긴 했지만, 기쿠지로는 타인과 접촉하고 사회적 행동 규범에 적응하는 일에 마사오보다 더 미숙하다. 상대가 누가 됐건 일단 속임수를 쓰려 하고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다짜고짜 모욕하고 그도 안 통하면 주먹을 내지른다. 그렇다고 속임수가 교묘하거나 한 것도 아니다. 택시를 훔쳐놓고는 기어도 제대로 못 넣고 히치하이크 솜씨는 더 한심하다. 그저 공손히 부탁하면 풀릴 문제인데 보는 사람마다 대뜸 유치한 별명을 붙이고 윽박지르기 일쑤인 그는 쉴새없이 매를 벌고 말썽을 청한다. 한편 그런 기쿠지로가 첫눈에 “우울한 녀석”이라고 평가하는 꼬마 마사오는 만사에 별로 기대가 없는 말수 적은 왼손잡이 소년. 친구들이 모두 가족과 피서를 떠난 여름방학의 어느 날 혼자 외로이 밥 먹고 숙제하고 공을 차던 마사오는 문득 돈 벌러 멀리 갔다는 엄마가 보고 싶어진다. 그러나 소포만 부쳐오고 마사오를 찾지 않는 엄마에게는 돈벌이 이외의 사연이 있다. 기쿠지로가 먼발치에서 요양소의 한 노부인을 바라보는 귀로의 삽화가 암시하듯, 남자와 소년은 모두 버림받은 아이다. ♣ <기쿠지로의 여름>의 러닝 개그는 황당함으로 얼어붙은 정지장면들(왼쪽에서 첫번째)♣ ˝우울한 녀석이군.˝ 기쿠지로는 처음 본 마사오의 인상을 이렇게 요약한다. 경륜으로 여비부터 날리고 시작한 마사오와 기쿠지로의 여정은 무전여행에 가깝다.(두번째, 세번째) 대책없는 어른과 해맑은 아이의 듀엣, 그리고 그들이 여행을 통해 이루는 공동의 성장을 그린 플롯은 구태의연한 것이다. 그러나 감독은 이 평이한 이야기에 온통 기타노 다케시 스타일의 지울 수 없는 지문을 묻혀 특별한 로드 무비로 만들었다. <그 남자 흉포하다> <소나티네> <하나비>의 관자놀이를 관통한 정적과 폭력의 폭발적 충돌은, 동화적인 여름의 초록빛 속에 자취를 감췄지만, 기타노 다케시 영화의 3원소로 불리는 코미디와 폭력, 센티멘털리즘은 함량을 달리할 뿐 <기쿠지로의 여름> 안에 그대로 고여 있다. 세 요소가 어우러지는 양상은, 흉포한 생을 살아온 사나이의 감상적 에필로그 <하나비>와 비슷하지만 좀더 천진하고 가볍다. 기쿠지로가 때리고 맞을 때 카메라는 아주 멀찍이 물러서거나 딴청을 부린다. 카메라는 시종 짓궂다. “누가 널 데려가야겠구나!” 하는 대사는 어정쩡하게 나란히 선 기쿠지로와 마사오의 투 숏으로 이어지고, 열심히 남의 차바퀴를 빼는 기쿠지로에게서 카메라가 물러나면 그의 작업을 구경하는 차 주인이 보인다. 하이쿠 혹은 네컷만화를 연상시키는 기타노 다케시 특유의 함축적 리듬으로 연결된, 황당함으로 얼어붙은 활인화와 슬랩스틱은 <기쿠지로의 여름>에서 개그의 요체다. 번역자 강민하의 명료하고 위트있는 자막도 <기쿠지로의 여름>의 코미디와 훌륭히 어울린다. 상황의 반전으로 마사오의 엄마가 사는 집은 영화의 대단원이 아니라 반환점이 된다. 돌아선 소년은 울고 남자는 거짓말로 달랜다. <기쿠지로의 여름>은 알고보면 소년에게 가혹한 여정이다. 그러나 영화는 슬픔을 머금는 대신 까맣게 잊은 시늉을 하고 우연히 다다른 강가에 죽치고 앉아 마냥 시간을 보낸다. 기쿠지로의 지휘 아래 떠돌이 시인, 마음씨 고운 폭주족이 캠핑하며 벌이는 즐거운 놀이는 마사오와 함께 관객의 슬픔도 지워버린다. 세발 자전거 벨소리처럼 귓전에 굴러드는 히사이시 조의 음악만이 영화의 정서를 일관되게 유지한다. 여행은 마사오와 기쿠지로의 인생에 극적인 상승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아니, 대단한 인격적 성숙이나 성격의 변화도 없다. 두 사람은 떠날 때와 마찬가지로 엄마에게 외면당한 사랑에 굶주린 아들들이고, 앞으로도 교실에서 거리에서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존재로 그럭저럭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두 사람에겐 이제 엄마를 다시 보고 싶을 때 같이 가 줄 친구가 있다. 붉은 해와 푸른 물, 더위에 들뜬 꿈으로 알록달록하게 채워진 일기장과 새로 사귄 친구들. 하긴 여름방학이 우리에게 준 가장 큰 선물도 그런 것들이었다. 김혜리 vermeer@hani.co.kr

<언페이스풀>로 돌아온 다이앤 레인

“뭘… 벗으라구요?” 바람이 몹시 불던 날, 고압 전류에 감전된 여인. 청년은 그저 코트를 벗으라고 말한 것뿐인데, 그에게 매혹당한 여인은 그렇게 속내를 들키고는 귓볼을 붉히고 만다. 자상한 남편과 귀여운 아들을 둔 결혼 11년차 주부가 ‘감각의 제국’에 발을 들이는 순간이다. 서른일곱, 다이앤 레인이 <언페이스풀>의 그 ‘위기의 여자’로 돌아왔다. 화사한 청춘이 지나간 자리에 지난 세월의 무게가 쌓이긴 했지만, 여전히 섹시하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아니, ‘여전하다’는 수식은 어울리지 않는다. <커튼 클럽> 이후 18년 만에 다이앤 레인과 재회한 리처드 기어가 “그때 다이앤은 눈부신 아이였지만, 지금은 눈부신 여인이다”라고 증언하고 있으니까. 그 18년 동안 정말 많은 게 달라졌다. 스무살도 채 되기 전에 백만장자였던 아이돌 스타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내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라고 말하는 겸허한 배우가 됐고, 맷 딜런과 존 본 조비 등 당대의 터프가이들과 염문을 뿌리던 스캔들메이커는 크리스토퍼 램버트와의 사이에 아홉살배기 딸을 둔 싱글 맘이 됐다. 누구나 한번쯤 품어봄직한 의문. 다이앤 레인은 그때 그 시절이 그립지 않을까. “나는 일하지 않는 것보다 일하는 것이 좋지만, 빛과 그늘을 품은 스타덤이 아쉽진 않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내가 여전히 이 자리에 있다는 사실이 다행스러울 뿐이다.” 잊어버리기 쉬운, 그러나 그래선 안 될 사실 한 가지. 다이앤 레인이 20년 넘는 세월을 할리우드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름다운 생존’이다.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다이앤 레인은 여전히 신비롭고 사랑스러운 소녀다. 동네 양아치들의 패싸움에 빌미가 되는 <아웃사이더>의 빨강 머리 소녀이고, 폭주와 방화의 아수라장 속에서 옛사랑의 비호를 받는 <스트리트 오브 파이어>의 로커이고, 목숨을 내던져서라도 차지하고픈 <커튼 클럽>의 보스의 여자다. 다이앤 레인의 페르소나는 자신이 원하는 걸 포기하는 법이 없었다. 자기애가 유난히 강했고, 사랑이 장애가 될 때는 과감히 버릴 줄도 알았다. 그렇듯 쉽게 범접할 수도 떨쳐낼 수 없는 거대한 매혹으로, 다이앤 레인은 80년대의 청춘들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커튼 클럽>으로 실패의 쓴맛을 본 다이앤 레인은 “배우로서의 존재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며 은퇴를 선언했다. 그때 나이 열아홉이었다. 그건 일종의 반항이고 도피였다. 연기 코치인 아버지와 <플레이보이>의 간판 모델인 어머니 사이에서, 다이앤 레인은 배우의 삶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부여받았다. 여섯살 나이에 연극무대에 올랐고, 열세살에 찍은 영화 데뷔작 <리틀 로맨스>로 ‘제2의 그레이스 켈리’라는 찬사를 들으며 <타임>의 표지를 장식했다. 너무 비범한 유년기였다. 어린 다이앤은 “내가 예쁘지 않거나 인기가 없어도 빼앗기지 않을 일”을 갈망했고, 결국 자연인으로 돌아가고자 했지만, 그 3년은 지루하기 짝이 없는 시간이었다. 다시 돌아온 다이앤 레인에게 할리우드는 호의적이지 않았다. <외로운 비둘기>라는 TV시리즈로 에미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지만, <나이트 게임> <채플린> <나이트 무브> 등 그만그만한 영화들이 손짓할 뿐이었다. 중요한 것은 90년대 중반 이후로 <저지 드레드> <머더 1600> <퍼펙트 스톰> 같은 블록버스터부터 <워크 온 더 문> 같은 인디영화까지, 다이앤 레인의 필모그래피가 갈지자를 그리며 ‘끊임없이’ 이어져오고 있다는 사실. “1천 파운드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데도, 내게 5파운드만이 주어진다는 것은 남들이 꼭 그만큼만 나를 인정한다는 뜻이다. 이제 조금씩 그 무게가 불어가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지난 2월에 운명을 달리한 다이앤 레인의 아버지는 <언페이스풀>이 다이앤 레인의 연기인생을 바꿔놓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아버지에게 그렇게 말했다. 나, 아버지가 죽으면 연기를 그만두리라는 판타지가 있었다고. 나를 배우로 만든 사람이 바로 아버지니까. 그랬더니 아버지가 그러시더라. 넌 바로 나의 커리어, 그 전부라고. 난 아버지의 메이저 프로젝트다. 인정한다.” 아버지는 떠나고, 프로젝트는 남았다. 다이앤 레인은 지금 그 ‘미완의 프로젝트’를 완성하기 위해, 애타게 다음 작품을 찾고 있다.

<쓰리> 마케팅 담당 선지연

“…행복하니?” 그녀는 전혀 엉뚱한 대답을, 아니 질문을 하고 있었다. 인터뷰 마지막, 으레 던지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질문을 놓고 그녀는 한국영화의 미래가 행복한지 되레 묻고 있었다. 선지연(29)의 묻는 듯한 눈빛 앞에서 추상적이게나마 한국영화의 낙관론을 돌려줄 순 없었다. 그녀가 묻고 있는 건 단호하고 단순했으며, 사실적이었다. “영화만 하고도 생활이 들까요? 기자 분이 보기엔 그래요?” 고개가 슬그머니 가로저어진다. “지금 이 자리에서 제 꿈을 말하기 위해선 우선 그 꿈이 가능한 상황인지를 먼저 물어야 하지 않을까요. 영화판의 막내까지 영화만 하고도 먹고살 수 있을 때, 그땐 정말 ‘영화만 하는 선지연’이 가능할 테니까요.” 흠, 그렇다면 그녀의 바람은 쪼들리지 않는 영화쟁이인가? 아니다. 선지연의 꿈은 원래 백수다. 아직까지 한 차례도 쉰 적 없는, 그래서 백수의 생활이 어떤 건지 가늠조차 하지 못하는 그녀가 백수가 꿈이란다. (그/런/데) 외국어 고등학교를 거쳐 연세대 독문과를 다니던 그녀는, 아직 졸업도 하지 않은 재학생 신분으로, 흥미 반 응시한 면접에 덜커덕 붙어 면접 다음날부터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불운(?)을 겪었다. 패션 머천다이저. 그녀의 첫 번째 직함이었다. 외국에 자회사를 둔 패션업체를 소개한 건 같은 과 교수님이었다. 몸에 걸치는 것이라면 남보다 조금씩 센스업된 그녀를 눈여겨본데다, 독일어와 영어 실력이 뛰어난 점도 추천 이유가 됐다. 종이 한장의 디자인을 실제 옷으로 둔갑시키는 일에 매진하던 그녀는 홀연히 영화사 마케팅팀 직원으로 탈바꿈한다. 당시 <씨네21>에 실렸던 영화사 ‘봄’ 구인광고를 본 직후였다. 본인만 빼고 다 말렸단다. 수당 높고 대우 좋은 전 직장의 매력은 구구절절이 그녀도 아는 사실이었지만, 굳이 전직 이유를 대자면 의상은 ‘취미’요, 영화는 ‘취향’이기 때문이었다. 취미는 바꿀지언정 취향을 바꿀 수 없다는 이유에서 그녀는 영화 마케터가 됐다. 마케팅이라는 게 국내일이든 해외일이든 멀티태스킹이라는 점에선 동일한데, 국내에선 관객과 대면하고, 해외 마케팅에선 바이어를 상대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란다. 영화의 기획단계부터 실시간으로 영화에 대한 정보(시나리오 작업, 캐스팅, 제작 진행 등)를 흘리고, 영화의 개봉과 함께 포스터, 스틸, 각종 보도자료 뿌리고, 각 협력업체를 통한 프로모션(영화의 이미지와 맞는 상품을 함께 홍보하여 양대 광고효과를 봄)과 크고 작은 이벤트로 영화에 대한 확실한 인상을 심어주기까지가 그녀가 하는 대충의 일이다. <쓰리>는 유명 감독들이 모여 만들었다는 입소문이 진작에 난 작품이라 바이어들이 알아서 모여들었다. 개봉일은 3국이 맞추려고 노력했지만, 한국이 가장 마지막 개봉지가 됐다고. 좀 쉴 때가 안 됐냐고 하자, 이번주 개봉인데, 지금부터 뛸 때라고 도리어 스스로를 채근한다.글 심지현 simssisi@dreamx.net·사진 정진환 jungjh@hani.co.kr 프로필 → 1974년생 → 연세대 독어독문학과 졸업 → 98∼99년 봄 패션 머천다이저로 활동 → 99년 여름부터 영화사 봄 근무 → <정사> 해외 마케팅 → <반칙왕> 국내외 마케팅 → <눈물> 국내외 마케팅 → <쓰리> 국내외 마케팅 → 현재 <장화, 홍련> <스캔들> 준비중

장진영·박해일, 영화 <국화꽃 향기> 캐스팅

장진영과 박해일이 올 가을 사랑에 빠진다. 연상녀와 연하남의 순애보를 그린 <국화꽃 향기>로 조만간 아름다운 인연을 맺게 된다고. 동명의 베스트셀러 소설이 원작인 <국화꽃 향기>는 10년 동안 한 여인을 해바라기하는 한 남자의 순정, 그리고 이들의 사랑을 방해하는 가혹한 운명을 그린 멜로영화다. 손수건 몇장이 필요한 그런 영화. 공공장소에서 목에 핏대를 올리며 싸우는 여자 희재(장진영)에게서 ‘국화꽃 향기’를 맡은 남자 인하(박해일). 이들은 대학 서클 선후배로 다시 만나지만, 이미 다른 사랑에 빠져 있는 희재는 인하의 진심을 한순간의 열정으로 치부해버린다. 긴 세월이 흘러, 사랑을 잃고 시름에 빠진 희재에게 인하의 사랑이 진하게 가 닿는다. 인하가 라디오 프로그램에 희재와의 추억이 담긴 연서를 띄워보내면서 성사된 재회와 사랑은 그러나, 슬픈 결말을 품고 있다. <국화꽃 향기>의 제작진은 두 주연 배우의 캐스팅에 대해 매우 만족하는 눈치다. 장진영은 강하고 의로운 듯한 이미지와 중성적인 매력이, 박해일은 모성애를 자극하는 여리고 순수한 이미지가 역할과 잘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소름>에서 혼신의 연기로 주목받은 장진영은 이어 출연한 <오버 더 레인보우>에서 멜로의 히로인으로 변신했다. <국화꽃 향기>의 캐릭터는 그보다 터프한 버전이지만, 장진영과 잘 어울려 보인다. 박해일은 <국화꽃 향기>에 출연하는 것을 매우 망설였다는 후문. 곧 촬영에 들어갈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그는 베일에 싸인, 신비로운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다른 작품에 출연하거나 노출되지 않고자 했지만, 결국 <국화꽃 향기>의 시나리오에 반해 어렵사리 출연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해일은 <질투는 나의 힘>에서도 바람 같은 연상녀 배종옥의 사랑을 갈구하는 청년으로 호연한 바 있다.

<죽어도 좋아> 이번에는 심의절차 논란

영화 <죽어도 좋아>의 제작사인 메이필름과 배급사 IM픽쳐스가 색보정 작업과 타이틀 자막 수정 등을 통해 다시 등급분류를 신청하겠다는 방침을 정한 가운데 이번에는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심의절차규정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현행 관련규정은 ‘재심 결과에 의의가 있을 때는 소위원회 결정일로부터 3개월이 경과한 후 다시 신청할 수 있으며 이 경우 새로운 등급분류 신청으로 본다’고 못박고 있다. 재편집한 필름에 대한 규정은 마련돼 있지 않으나 영등위는 필름을 수정하더라도 이 규정에 준해 3개월 후 신청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IM픽쳐스 관계자는 ‘당초 문제가 된 장면을 삭제하거나 손질하면 다른 영화로 간주되기 때문에 언제든지 등급분류를 신청할 수 있다는 영등위 관계자의 말을 듣고 여러가지 방안을 모색해왔으나 재심 결정 직전 재편집을 하더라도 3개월이 지나야만 신청할 수 있다고 번복하는 바람에 난처한 처지에 빠졌다’고 주장했다. 영등위의 영화등급분류소위원회가 <죽어도 좋아>에 대해 ‘제한상영가’ 판정을 내린 것은 지난 7월 23일. 영등위의 해석에 따르면 10월 23일 이후에나 등급분류를 신청할 수 있어 곧바로 ‘18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더라도 적절한 개봉시기를 놓칠 가능성이 높아졌다. 지금까지 영등위는 소위원회의 결정 이후에도 개봉 전에 필름을 재편집해 심의를 요청하면 다른 영화로 간주해왔다. ‘18세 관람가’ 등급을 받은 <수취인불명> 제작사는 지난해 4월 편집이 잘못됐다며 신청서류를 회수한 뒤 다시 신청, 같은 등급을 받았다. 그러나 개봉 이후에는 등급분류를 다시 신청한 전례가 없어 청소년용으로 재편집된 <취화선>은 <오원 장승업 취화선>으로 제목을 바꾸는 편법을 택하기도 했다. 영화계 일각에서는 ‘소위원회의 등급 결정 이후 재편집한 필름에 대해서는 기간에 제한없이 등급분류 신청을 받으면서 재심을 거친 필름에 대해 재편집 여부와 관계없이 3개월 경과 규정을 적용하겠다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에 대해 홍창기 영등위 영화부장은 ‘같은 제목 아래 재편집된 필름을 다른 상품으로 보기는 어려운데다가 이를 악용해 극히 일부만 고쳐 계속 등급분류를 신청할 가능성도 있다’면서 ‘이 방침에 대해 민원이 제기되면 전체회의를 열어 타당성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