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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2003)

과장과 소란을 앞세운 매력적인 스페인 영화, <죽여주는 여자>

제빵사 노인 네스토(에밀리오 구티에레즈 카바)는 아내의 죽음으로 실의에 빠져 산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그를 위해 딸과 사위는 밤새 영화를 볼 수 있도록 위성채널을 달아준다. 그런데 밤마다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온통 야한 영화뿐이다. 점잖던 노인은 어느새 매일 밤 텔레비전 앞에 앉아 수음하는 것이 일이 되고 만다. 때마침 마리벨(잉그리도 루비오)이라는 아가씨가 점원으로 일하게 되고, 네스토는 그녀에게 마음을 뺏긴다. 마리벨은 푼돈이나 벌기 위해 몸을 팔며 청춘을 보내지만, 늘 발칙하고 도발적인 것을 사랑하고 꿈꾸는 여자다. 그녀는 어느 날 마놀로(알베르토 산 후안)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마놀로는 토끼 옷을 입고 채무자를 쫓아다니며 망신을 줘서 돈을 받아내는 소극적인 수금원이다. 그러나 마리벨을 만난 그날만은 과격하고 충동적인 면모를 보여주어 마리벨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마침내 마리벨은 연애는 마놀로와 결혼은 네스토와 한다. 이때부터 네스토, 마리벨, 마놀로 세 사람의 삶은 얽히고 또 변한다. 네스토로 시작한 영화는, 마리벨로 옮겨가고, 마놀로로 옮겨간다. 혹은 마리벨이라는 존재와 그녀의 욕망이 네스토와 마놀로의 삶을 송두리째 뒤바꿔놓는다. 네스토는 평생을 안정적이고 평온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지만, 그녀를 통해 욕망의 화신이 된다. 마놀로는 그녀와의 사랑이 안정적인 가정으로 이어지기를 바라지만, 끝내 그것은 그녀와의 홍역 같은 사랑 다음에야 찾아온다. 이를테면, 네스토와 마놀로에게 마리벨은 삶의 촉매제 역할을 한다. 반면에 마리벨 자신도 욕망의 결을 따라 끊임없이 충동적으로 살고 싶어한다. 그래서 범죄도 거짓말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녀는 결국 자기의 욕망을 따라 또 어디론가 흘러간다. 누구도 정해진 삶은 없다는 것이 이 영화가 말하고 싶어하는 바다. 그런 점에서, <죽여주는 여자>는 분위기에서도 유쾌함과 황량함이 손을 잡고 춤을 추는 불균질한 윤무의 영화다. 전체적으로 틈이 많고 비약이 심하지만, 한편으론 그 때문에 과장과 소란을 앞세우는 스페인영화 특유의 매력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말하자면, 삶의 모호함에 대해 치기의 힘으로 질문하는 스페인식 소품이다.

드라마 ‘그 나물에 그 밥’ 신인작가 좀 키워라

텔레비전에 드라마가 넘쳐난다. 그런데 정작 그 많은 드라마 중에서 볼 만한 드라마는 찾기 어렵다. 불륜에 출생의 비밀, 삼각 관계, 난치병, 신데렐라 등 뻔한 소재에 줄거리도 비슷비슷한 드라마 일색이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그마나 탄탄한 극본의 단막극들이 체면치레를 해 주고 있다. 지난 7일 밤 방송된 문화방송 <베스트극장>의 ‘사랑해, 아줌마’(극본 설경은, 연출 김도훈)와, 같은 날 밤 방영된 한국방송 2텔레비전 <드라마시티>의 ‘집으로 가는 길’(극본 김찬주, 연출 고영탁) 두 작품은 잘 쓰인 극본이 드라마에 얼마나 힘을 주는지를 여실히 보여 준 사례였다. ‘사랑해, 아줌마’는 2005년 문화방송 극본공모 우수작으로 만들었다. 부모의 이혼으로 졸지에 혼자 남게 된 까탈스런 17살 여고생 세리와 세리의 살림을 맡은 가정부 ‘끝순이’의 ‘좌충우돌 동거기’를 따뜻하게 그렸다. 또 ‘집으로 가는 길’은 가족을 위해 보험금을 타내려고 자살을 기도하려는 영수의 차에 자해공갈범 용철이 뛰어들면서 친구가 된 두 남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인생과 가족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작품이었다. 두 작품 모두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이야기로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으면서도, 상황 설정의 기발함이 보는 이로 하여금 “저렇게 극본을 쓸 수도 있구나” 하는 감탄을 자아 냈다. 여기에 재미와 감동까지 함께 선사했다. 그동안 <베스트극장>은 지난해 10월29일 부활한 이후 ‘태릉선수촌’ ‘문신’ ‘가리봉 오션스 일레븐’ 등의 참신한 작품을 방영해 시청자들에게서 호평을 받았다. <드라마시티> 역시 신선한 소재와 줄거리로 마니아 시청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이처럼 단막극들이 시청자들에게서 좋은 반응을 얻는 이유는 무엇보다 극본의 참신함 때문이다. 단막극은 본격적인 드라마 집필 경험이 적은 신인 작가들이 주로 극본을 맡는다. 반면 단막극을 제외한 대부분의 드라마들은 이미 여러 편의 드라마를 쓴 기성 작가들이 극본을 집필한다. 지상파 방송사들이 시청률을 의식해, 재능있는 신인 작가와 함께 작업하는 모험을 시도하길 꺼리는 것이다. 어느 정도 흥행이 보장되는 인기 작가들의 작품을 주로 드라마화하다 보니 늘 줄거리가 ‘그 나물에 그 밥’이다. 매주 지상파에서만 20편이 넘는 드라마가 만들어지는데, 숫적으로 적은 드라마 작가 인력들이 좋은 작품을 많이 공급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지상파 방송사의 드라마 피디들 사이에도 “매주 수많은 드라마가 쏟아지지만 대개 뻔한 이야기이며 방송사마다 이렇게 많은 드라마를 양산하는 것은 낭비”라는 목소리가 높다. 제대로 된 극본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이제 지상파 방송사들은 외국 방송사에 비해 편성비율이 높은 드라마 방영을 줄이는 문제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 아니면 더욱 적극적인 극본 공모나 신인 작가 발굴·육성 등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장기적인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할 것이다.

2005년 우리가 놓친 외화 10 [10] - <크래쉬>

폴 해기스 감독의 <크래쉬>는 이른바 ‘날이 선’ 영화다. 등장인물만도 계층과 피부색이 다른 미국인이 한 다스. 이들이 로스앤젤레스 곳곳에서 본의 아니게 얽히고 설키면서 마음속에 숨은 증오와 두려움을 한바탕 드러내고야 마는 소동극이니 오죽하랴. 이들의 감정적 충돌이 얼마나 날이 섰는가 하면, 비평가들은 <크래쉬>를 미국영화 역사상 가장 터프한 대사들로 가득한 영화로 꼽길 주저하지 않는다. 상당히 미국적인 이 터프함의 실체는 현대 미국사회의 금기 중 하나라 할 만한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인종 비하 발언들이다. ‘인종’ 문제야말로 숨기고 싶으나 숨길 수 없는 미국사회의 비수 아닌가. 지난해 5월, <크래쉬>가 개봉했을 때는 <그랜드 캐년> <숏컷> <매그놀리아>의 맥을 잇는 복합 인종 도시 로스앤젤레스에 대한 또 한편의 영화라고 생각했다. 브랜트우드, 사우스캠튼(사우스햄프턴??), 다운타운, 샌타모니카, 차이나타운 등 지명만 들어도 그곳에 사는 사람의 계급과 피부색이 감이 잡히는 섬들로 연결된 로스앤젤레스의 삶의 한 단면을 하룻밤의 소동으로 압축해 보여주는 촌철살인의 시선에 눈이 갔다. 그런데 ‘크래쉬’는 로스앤젤레스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시나리오 작가이자 오랫동안 텔레비전 극작가로 활동했던 캐나다 출신의 폴 해기스 감독은 이 영화가 인종 문제라기보다는 9·11 사태 이후 ‘타자와의 접촉’에 대해 신경증과 불신의 골이 깊어진 미국사회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하지만 ‘인종’이야말로 미국인의 정체성을 그 시작부터 정의해온 핵심적인 척도였음을 고려할 때, <크래쉬>의 파열음은 9·11을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어디 미국뿐이랴. 카트리나 홍수나 프랑스의 인종 소요 사태, 호주의 인종 충돌 사태를 거치면서, 나와는 다른 ‘타자의 존재’와 ‘더불어 살기’가 불러일으키는 사회적 신경증의 무게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크래쉬>는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드러나고 있는 이 증오와 두려움, 신경증의 실체를 직시할 것을 시의적절하게 요청한다. <뉴욕타임스>가 지적하듯, <크래쉬>의 이러한 문제의식은 <몬스터 볼> <모래와 안개의 집> <21그램> 등에서 나타난 최근 미국영화의 어떤 경향, ‘(인종·계급적으로) 서로 다른 미국인 사이의 관계’라는 주제의식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렇지만 강요하는 생생한 대사들이 전달하는 사실성에도 불구하고 <크래쉬>는 휴머니즘으로 무장한 사실주의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크래쉬>는 인종별로 스테레오 타입으로 구성된 등장인물과 <매그놀리아>식의 얽힌 내러티브 구조를 통해 인물들이 충돌하는 매 순간의 예측불허의 반응을 관찰하는 일종의 실험보고서의 형식을 띤다. 입으로는 진보주의자든 인종차별주의자든 막상 상황에 부딪혀서 어김없이 자신도 모르게 ‘정치적 올바름’의 가면 밑에 숨겨진 두려움과 현실과 타협하고 마는, 그래서 미워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는 우리 같은 인간들의 캐리커처.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도 지적하듯, 로스앤젤레스의 하루라는 시공간 속에, 우연적으로 발생하는, 전형적인 인종 갈등의, 예측불가능한 양태를 극적으로 집약한 이 우화의 구조가 영화의 매력이라고 하겠다. 골든 글로브(최우수 남우조연상과 시나리오상 후보), 전미 비평가협회(테렌스 호워드 조연상, 최고 캐스팅상) 등은 맷 딜런, 샌드라 불럭, 라이언 필립, 돈 치들, 로렌스 호워드 등 독립영화에는 좀 넘친다 싶은 배우들의 호연과 탄탄한 시나리오의 힘에 점수를 줬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로스앤젤레스와 쌍벽을 이루는 다인종 도시 뉴욕의 비평가들과 로스앤젤레스의 비평가들의 견해가 대체로 상반된다는 것. <뉴욕타임스>와 <빌리지 보이스> 등의 비평가들은 <크래쉬>의 전형적인 인물 묘사, 도식적인 이야기 구조를 비판하는 반면, 인종별 안전지대에 모여사는 로스앤젤레스의 비평가들은 전형성이 가진 현실성에 좀더 공감한다. <크래쉬>는 미국영화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인종들의 스테레오 타입 전시장처럼 보인다. 그 스테레오 타입이 어떻게 까발려지고 뒤틀리고, 스크린 너머로 그 상처를 전달하는지 주목하라. 주위를 둘러보면, 오늘도 ‘정치적 올바름’의 가면 아래 비수를 숨긴 스테레오 타입들이 거리를 누비고 있지 않은가.

<지 채널 - 거대한 강박> 아트영화 전문 채널의 영광과 좌절

텔레비전을 켤 때 마다 보고 싶은 영화가 딱딱 나와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케이블 TV의 영화전문 채널이 이런 컨셉이겠지만, 소위 “아트영화”를 즐기는 씨네필들에겐 그저 그런 상업영화나 들이대는 의미 없는 공간일 뿐이다. 세상에 아트영화들만 24시간 틀어대는 공간이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내 나중에 성공하면 시네마테크나 아트영화 케이블 TV를 꼭 세운다.” 지금까지 만나 본 많은 씨네필들이 항상 취중에 펼치는 공상의 나래지만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나기는 그들의 면면을 볼 때 요원할 듯 하다. 대신 오늘도 한국 씨네필들은 저작권의 감시를 피해가며 파일공유 사이트를 뒤지거나 아니면 아마존 같은 외국 사이트의 휘황찬란한 DVD 섹션에서 통한의 구입버튼을 클릭한다. 하지만 놀랍게도 20여 년 전 미국 LA에서는 공상 속에서만 가능할 것 같았던 “아트영화” 전문 케이블TV가 실제로 있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돈도 벌었었단다. 이름 하여 “Z 채널 (Z Channel)” 잔 카사베티스의 다큐멘터리 은 초창기 케이블TV 시장에서 LA 일부 지역에서 서비스되던 Z 채널이 경험한 성공과 실패에 대한 일대기이다. 이 영광과 좌절의 역사를 지휘했던 프로그래머 제리 하비의 영화에 대한 애정이 어떻게 한낱 프리미움 영화채널이었던 Z 채널을 강력한 아트하우스이자 할리우드 문화 트렌드로 변모시켰는지를 기술함과 동시에 자살로 마감할 수밖에 없었던 그의 비극적인 강박관념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Z 채널을 통해 할리우드의 이단아로 꼽히던 로버트 알트만의 <맥케이브와 밀러 부인>이 재평가 받을 수 있었던 것이나 안드레이 줄랍스키가 처음으로 미국에 소개될 수 있었던 에피소드 등의 소개는 당시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보여주며, 특히 마이클 치미노의 <천국의 문>이 극장 흥행 참패 후 Z 채널을 통해 복원 상영됨으로써 복권되는 과정에 대한 증언은 오늘날 유행하는 감독판 내지 확장판의 의미와 기원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명백히 밝히고 있다. 이번에 발매된 DVD에는 감독 및 스탭의 육성해설이 담긴 영화 본편 뿐 아니라 추가 인터뷰 장면들이 보너스 디스크에 수록되어 있으며, Z 채널 방송만큼이나 인기를 끌었다는 Z 매거진의 복각 카피가 북클릿으로 들어있다. Z 채널에 대한 회고는 지나간 케이블TV에 대한 단순한 회고가 아니라 할리우드 시스템이 영화시장에서 어떻게 작용하고 그 시스템 내에서 필름메이커들이 어떻게 영화를 기획하고 만들고 살아가는지에 대한 기록으로서도 의미 있는 타이틀이다. 감독 잔 카사베티스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아메리칸 뉴 씨네마의 기린아 존 카사베티스와 지나 롤랜즈의 딸이다.

[로마] 이탈리아 영화산업 어떻게 변했나

최근 5년 동안 이탈리아 영화시장을 분석, 기록한 보고서가 출간됐다. 국립 영화전문기관 시네시티는 ‘시청각 감시소’를 운영하면서 2년 동안 준비한 끝에 지난해 말 <이탈리아 영화시장 2000-2004>를 출간했다. 이 보고서는 시네텔, 메디아 살레스, 우니비데오, 닐슨 이탈리아, 인포카메라, 상공업 회의소, 이탈리아 통계청 등의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했다. 시청각 감시소 소장인 안토니오 브레스키는 보고서 서문에서 “최근 5년 동안의 이탈리아 영화산업을 총망라하여 보기 쉬운 도표로 만들었다. 영화산업 각 분야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최근 영화산업의 경향을 한장의 사진처럼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보고서다”라고 전했다. 이 보고서는 개봉영화 분석, 이탈리아영화 제작현황, 배급, 할인, 영화산업, 홈비디오, 텔레비전영화, 국제 영화시장의 경향 등을 주요 내용으로 다루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탈리아 영화제작 편수는 해마다 늘고 있고 티켓판매 수도 상승곡선을 보이고 있다는 것. 2004년 제작된 이탈리아영화는 138편으로 2000년 103편에 비해 34% 증가했다. 이에 비해 국내외 영화들의 전체 평균 개봉 수는 2000년 435편에서 2004년 392편으로 감소했다. 보고서는 영화 개봉 편수는 줄었지만 2000년에 비해 2004년 영화티켓 판매량은 11.6% 상승해, 일반 관객은 예전에 비해 영화를 더 많이 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흥미롭게도 지난 5년 동안 미국영화 판매수익은 8.33%가 감소했는데 이탈리아영화는 13.75% 더 많은 판매수익을 올렸다. 이탈리아영화 지지율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현상이 이탈리아 영화시장의 직접적인 수입 증대로 연결되지는 못한다는 분석도 보고됐다. 미국영화의 이탈리아 시장점유율이 2000년 66.72%였던 것이 2004년 59.7%로 감소하기는 했지만 최근 5년 동안 많은 관객을 동원했던 <반지의 제왕> <해리 포터> 시리즈 등 미국영화들이 대박을 터트리며 이탈리아 영화시장을 침식해왔다는 것이다. 이탈리아영화 시장에 최근 나타난 새로운 경향은 홈비디오 시장의 성장이다. 보고서는 홈비디오 시장이 지난 5년 동안 53% 상승률을 보이고 있어 영화산업이 안방을 주목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이 외에도 이탈리아영화 중 국가예산으로 지원을 받아 제작된 영화는 지난 5년간 제작된 591편의 영화들 중 224편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해 동안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하는 계절은 12월과 1월로 집계됐는데 이는 크리스마스 연휴 동안 영화관을 찾는 이들이 가장 많기 때문이다. 가장 저조한 달은 여름휴가가 끼어 있는 7월과 8월인 것으로 나타났다.

현장영화인 20인의 추천도서 [5]

테크놀로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제기 <하이테크네-포스트휴먼 시대의 예술/디자인/테크놀로지> R. L. 러츠키 지음/ 김상민·윤원화 외 옮김/ 시공사 펴냄 <하이테크네-포스트휴먼 시대의 예술/디자인/테크놀로지>는 모더니티의 시작부터 현대의 테크노-문화에 이르는 테크놀로지, 예술, 문화의 관계 변환을 고찰함으로써 ‘테크놀로지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는 책이다. <이론을 위한 전략-마르크스에서 마돈나까지>를 공동 편집했던 R. L. 러츠키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는 프리츠 랑의 영화와 옥타비아 버틀러의 과학소설, 토머스 에디슨의 발명품과 일본 아니메, 구성주의와 사이버스페이스를 전방위적으로 아우르며 새로운 하이테크네의 지형도를 흥미진진하게 그려내고 있다. 테크놀로지라는 단어 자체가 넘쳐나는 지금. 우리는 어쩌면 테크놀로지라는 단어 자체를 오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어린 시절에 상상했던 서기 2000년대는 지금의 2000년대와 같은 모습이었을까?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미래를 굳이 테크놀로지와 연관시키며 우리에게 그 많은 정보들을 던져주었던 것일까? 그건 어쩌면 단순히 흥미를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었을까? 이토록 많은 궁금증이 있었던 나에게 R. L. 러츠키의 <하이테크네-포스트휴먼 시대의 예술/디자인/테크놀로지>는 조금이나마 어떤 단서를 전해주었다. 영상 미학 세계에 대한 친절한 안내서 <영상제작의 미학적 원리와 방법> 허버트 제틀 지음/ 박덕춘, 정우근 옮김/ 커뮤니케이션북스 펴냄 1973년에 초판이 발행된 <영상제작의 미학적 원리와 방법>은 1999년에 두 번째 번역본이 출판되었으며, 다시 2002년에 2판에 비해 새로운 장을 만들고 디지털 시대에 맞춰 새로운 개념들이 추가되어 재출판되었다. 물론 그 지나온 세월 동안 ‘영상’이라는 분야가 엄청난 변화와 발전을 이루었고 영상을 만드는 기술 또한 다양해졌지만, 이 책은 우리가 영상제작에 앞서 이해해야만 하는 기본적인 다섯 가지 미학적 요소(빛, 공간, 시간, 동작 그리고 음향)가 어떻게 상호조화를 이루며 텔레비전과 영화에 적용되는지에 관해서 여전히 잘 설명하고 있다. 또한 각 미학적 요소들의 세부적인 구성 요소들을 사진이나 일러스트, 그림 등을 예로 들며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어 처음 영상을 접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도 돋보인다. <영상제작의 미학적 원리와 방법>은 보는 이가 가시적인 메시지의 이면에 존재하는 영상의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영상미학의 원칙을 제시하고 다양한 텔레비전과 영화 장르를 경험하고 판단하게 해준다. 또한 이 책은 텔레비전, 컴퓨터, 그리고 영화 영상의 효과적인 표현을 위해 하나의 사건(event)을 명료화하고 강조하며 해석하는 방법을 보는 이에게 제시해준다. 다시 말해 ‘사람의 지각작용을 조절하기 위해 어떤 미학적인 요소들을 어떻게 적용시키는가’ 하는 것을 이 책을 접한 이들에게 말해주는 것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이럴 때에는 이렇게 촬영해라’ 식의 단편적인 정보 전달이 아닌 좀더 체계적인 영상제작 기법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 다양한 영상 이론을 바탕으로 실질적이고 응용적인 바탕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영상제작의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우리 주위에서 흔히 접하고 상상할 수 있는 여러 예시들을 다양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책을 읽는 사람들이 빠르고 즐겁게 이론을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음향과 영상과의 결합에 관한 여러 정보들은 영상과 소리가 결코 뗄 수 없는 관계임을 새삼 확인해준다. 어느 광기어린 영화인의 초상 <올리버 스톤1, 2> 제임스 리어단 지음/ 이순호 옮김/ 컬처라인21 펴냄 <올리버 스톤>은 정확히 말하자면 <내추럴 본 킬러>의 올리버 스톤이 있기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저자 제임스 리어단은 <올리버 스톤>을 쓰기 위해 3년여에 걸쳐 올리버 스톤과 그의 가족, 주변 사람들과 수많은 인터뷰를 했다. 증권브로커 미국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자라난 그가 겪는 문화적 혼란, 방황, 베트남 참전을 거쳐 현재에 이르는 이야기가 한편의 영화처럼 펼쳐진다. <올리버 스톤>은 기존 감독들의 평전과는 달리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인간 올리버 스톤과 영화감독 올리버 스톤을 파헤친다. 스티븐 스필버그나 구로사와 아키라를 비롯한 한 세대를 풍미한 감독들의 평전에는 대부분 상찬으로 가득하지만 <올리버 스톤>은 한 영화감독을 현미경처럼 해부하는 치밀함을 견지한다. 올리버 스톤은 모든 사람들을 위한 영화를 만들지 않는다. 무엇인가를 느낄 수 없는 영화를 그는 근본적으로 만들지 못한다. 느낌을 생생히 살리려는 그의 열망은 때때로 극단적이고 과도한 방법을 수반한다. <스카페이스>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그는 실제로 코카인과 헤로인에 중독되어 많은 범죄자들과 어울리며 생생한 대사와 리얼한 상황을 얻어냈고 이를 여과없이 반영했다. 소재의 위험성 때문에 생명의 위협을 받기도 했다. 이 책의 제작 당시 에피소드를 읽는다면 그의 영화적 의지에 대해 존경심을 품게 될 것이다. 그의 논쟁적 작품들이 어떻게 발생했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예술적 광기와 동력의 원천이 무엇인가를 <올리버 스톤>은 보여준다. 마이클 더글러스는 <올리버 스톤>의 추천사를 이렇게 적었다. “올리버는 할리우드를 감동시키려고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며 돈을 위해서는 더더욱 아니다. 세상에 영향을 주려고 예술을 하는 것도 물론 아니다. 그는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즉 그 자신의 악마를 정복하지 많으면, 광기를 이겨내지 않으면 그리고 격발적인 성향과 대결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영화를 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한국 영화인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특히 술자리에서 “흔히 할리우드이니까 가능한 이야기이다. 나도 거기서는 그렇게 할 수 있다”라고 쉽게 말하는 이들에게 <올리버 스톤>을 권하고 싶다. 한국에서도 못하는 일이라면 그곳에서는 더욱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올리버 스톤>을 읽어보면 실감할 것이다. 참고로 서점에서 <올리버 스톤>은 영화가 아닌 인문서적 인물 코너에서 만날 수 있다. 영화적인 사진이란? 필립 로르카 디 코르시아·피터 갈라시/ Museum of Modern Art 펴냄 필립 로르카 디 코르시아/ Twin Palms Publishers 펴냄 영화의 스틸을 찍는 것이 사진을 하는 사람으로서 창의력(혹은 더 거창하게 예술성)을 발휘하는 데 제한적 작업이 아니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렇다고도 할 수 있지만, 같은 영화를 다른 사진가가 스틸을 찍는다면, 분명 서로 다른 결과물을 낼 것이라 생각한다. 영화의 스틸이더라도, 사진은 역시 피사체와의 교감이 중요하고, 상대(즉 극중 캐릭터)와 그의 인생을 대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찍어내는 인물과 그의 인생은 물론 가상의 것이지만, 진짜인 것만 같은 순간을 마주할 때는 배우가 아닌 극중 그 인물을 만난 것만 같아서 가슴이 설렌다. 필립 로르카 디 코르시아는 일반인을 모델로 ‘영화적’인 사진을 찍어온 작가로, 미리 선정된 일반인 모델이 포즈를 취하고, 임의로 거리를 지나는 행인들이 적절한 장면을 만들어내는 순간을 포착한다. 이런 식으로 그는 <할리우드> 연작 시리즈를 내놓았고, 나아가 세계 도시들의 거리 위에서 ‘거리 장면’(street scenes)들을 보여주었다. 영화의 스틸이 가상의 인물의 삶을 담는다면, 디 코르시아의 작품들은 거꾸로 현재를 살아가는 누군가의 실제 삶을 영화적으로 보여준다. 그의 작품들은 마치 각자의 인생을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각자의 인생이란 영화의 주인공이라는, 누구나 인생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그런 흔한 말들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사진은 순간의 이미지이다. 좋은 사진은 대상의 그럴듯한 외형적 멋이 아니라 그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에 담긴 이야기까지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디 코르시아의 사진 안에서 배경과 자연스럽게 융화된 인물은 사전에 합의된 어느 정도의 연출에도 불구하고- 혹은 반대로 그러한 연출에 의해서 각자의 스토리를 가진다. 는 필립 로르카 디 코르시아의 대표적인 작품을 보여주는 사진집이다.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많이 찍어보는 연습도 필요하지만, 좋은 작품을 많이 보는 훈련도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피사체에 대한 이해와 설득력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디 코르시아 작품은 하나의 모범과도 같은 사진이다. 수년 전에 본 그의 작품은 아직도 나에게는 큰 자극이고 영감이다.

[스크린 속 나의 연인] 오드리 햅번

술자리에서 조금만 유치해지면 나는 영화 배우 얘기를 늘어놓는다. <킹콩>에서 나오미 와츠 죽이지 않든? 그래. 머홀랜드 드라이브 때부터 예사롭지 않더라. 아네트 베닝의 젊은 시절을 보는 것 같아. 에이, 아니다. <러브 어패어>에서의 그녀를 따라갈 수는 없지. <이터널 선샤인>의 케이트 윈슬렛은? 그렇게 팔뚝 굵고 매력적으로 보인 여배우는 처음이야. 맞아, 맞아. 주절 주절…. 마치 헤어진 여자 친구를 회상하듯이 이야기가 꼬리를 물고 계속되다보면, 궁극적으로 나는 세 명의 여배우를 거론하는 것으로 그 주제의 신선함을 떨어뜨리는 치기를 재탕한다. <카사블랑카>의 잉그리드 버그만. <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의 셜리 맥클레인. 그리고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오드리 햅번. 이미 여러 번 들어온터라 지인들은 별 관심도 없는데 나 혼자 잔뜩 감상에 빠져 이 세 여배우 예찬론을 다시금 늘어놓고 집으로 돌아온다. 술기운이 잔뜩 오른 나는 늘 그랬듯이 손닿기 쉬운 곳에 놓아둔 디브이디를 플레이어에 넣고 텔레비전 앞에 늘어진다. 헨리 맨시니의 꿈결 같은 멜로디가 흘러나오고 지방시의 검은 드레스를 입은 고혹스런 미스 고라이틀리가 티파니 쇼윈도우 앞을 서성인다. 안녕, 미스 고라이틀리. 이젠 거의 나의 일상이 되어버린, 행복한 기분으로 잠을 청하는 방법. 오드리 햅번. 그녀가 헐리우드 역사의 아이콘인 것도, 패션 리더였으며 말년에 아름다운 일을 많이 했다는 것도 내겐 관심사가 아니다. 사실 오랜 세월 그녀의 영화들을 봐오면서도 전혀 여성적 매력을 느끼지 못했고 다른 배우들에 비해 더 특별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다. 그녀보다 예쁘고 섹시한 여배우들은 수없이 많았다. 단지 그녀가 나오는 영화들은 대부분 재미있었다, 는 정도였을 뿐.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그 많은 영화 중에서 <티파니에서…>는 무의식중에 늘 내 곁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그 영화의 어떤 게 나를 끌어당기는 것일까. 헨리 맨시니의 음악? 블레이크 에드워즈의 경쾌한 연출? 그 해답은 나중에 의외의 영화를 통해 찾을 수 있었다. <사랑과 영혼> 이란 덜떨어진 흥행작 땜에 묻혀버렸던 스티븐 스필버그의 또다른 걸작 <영혼은 그대 곁에>(1989)에서 나는 노년의 햅번을 만나게 된다. 그녀는 영화에서 불의의 사고로 죽음을 맞은 드레이프스를 인도하는 천사 ‘햅’으로 깜짝 출연하며 자신의 필르모그래피의 마침표를 찍는다. 환갑의 나이로, 여전히 맵씨가 좋은 하얀색 옷으로도 미처 가릴 수 없는 주름살 가득한 얼굴로 환하게 웃으며 햇살을 받고 있는 그녀에게서 나는, 노년 여배우의 처량함이 아니라 신비로운 슬픔같은 걸 느꼈고, 곧 그 얼굴은 오래 전 젖은 눈으로 애처롭게 웃어보이던 미스 고라이틀리로 오버 랩되며 내 마음을 마구 뒤흔들었다. 한 여배우를 바라보며 신비롭다, 라는 느낌으로 마음마저 뭉클해진 경험은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40여년 전 그녀가 만든 홀리 고라이틀리는 생각보다 훨씬 내 마음 깊숙이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햅번은 <영혼은 그대 곁에>를 끝으로 착한 일 많이 하다가 4년 뒤인 1993년에 저 세상 사람이 되었다. 그녀에 대한 무수한 좋은 평판으로 보건대 아마도 지금은 마지막 영화에서처럼 천사가 되어 활동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천사로 햅번을 기용했던 스티븐 스필버그. 새삼 뛰어난 예지력을 가진 감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논술대특강 - 한방에 끝내는 영화 논술 [2]

논술백서3. 잘난 척 떠들지 말고 뭐든지 왜냐고 다시 한번 따져보라. 자, 출석 부르기 전에 선생님한테 감사의 봉투들 안 주니? 썰렁하구나. 요즘 너희들 <왕의 남자>의 준기 오빠한테 꽂혀서 공부도 게을리한다는 소문이 자자하더라. 자, 수업 들어가자. 연산군은 왜 늘 미친 사람처럼 나오는 걸까? 왜 연산군은 광기의 임금으로 알려지게 된 것인지에 대해 논하라 <왕의 남자> 보면 신하들이 다 그러지. ‘아니 되옵니다’, ‘아니 되옵니다’…. 왜 신하들이 다 연산군만 보면 이가 갈려서 그러니? 학생1 | 임금이 임금다워야 하는데 그러지 않으니까 비판적인 여론을 만든 거 아닐까요? 이걸 생각해보자. 조선시대 중·후기에 연산군, 광해군, 사도세자 같은 불운한 사람들이 많이 나왔단 말이야. 그런데 이런 역사적 평가는 누가 내리는 거지? 그렇지. 다음에 왕권을 잡은 세력이 <조선왕조실록>을 통해 평가하는 거지. 물론 독단적으로 역사를 적을 수 없는 제도적 장치가 있기는 하지만 그거야 고양이한테 ‘생선 가게를 공정하게 잘 봐주십쇼’ 하는 거랑 마찬가지 아니겠니? 야만의 기록이 아닌 역사가 어디 있겠니? 역사는 늘 승자의 역사라는 점을 유념하고 역사를 대해야 돼. 우리가 늘 역사책에서 장군들이 폼나게 칼 휘두르는 것만 봤지만 <황산벌>을 보면 거기서 신음하는 건 이름도 없고 힘도 없이 전쟁터에 끌려나온 농사꾼들이야. 미치광이로 몰린 연산군이나 사도세자에 대한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그들이 처음엔 자질이 모자라기는커녕 촉망받는 군주였다구. 왕이 자신의 힘을 강화해 중앙집권을 하겠다는 왕권정치와 당쟁구도에서 승리해 정국운영을 주도하겠다는 신권정치가 긴장 상태를 이루는 가운데 그들은 희생당하고 역사에서도 부당한 대우를 받게 되었을 가능성이 높아. 물론 이건 그냥 그럴 거라는 추정이 아니라 꼼꼼한 역사 읽기를 통해 역사를 재구성한 몇몇 학자들의 주장이야. 여기에 덧붙일 만한 게 야사나 정담, 그리고 각종 개인적 기록들이지. 그리고 음모론도 빼놓을 수 없어. 음모론은 그냥 하나의 가십이 아니라, 통제된 여론 속에서 진실을 찾아내려는 사람들의 노력이라고 할 수 있어. 가령 영조의 경종 독살설, 정조 독살설 등이 그것이지. 연산군은 이런 음모론적인 측면에서 보면 조선시대 중기부터 강력해진 신권정치와 이후의 세도정치에 점차 세력을 내주게 된 왕권의 부실 징후를 보여준 사건이라고 볼 수 있어. 학생2 | 그렇다면 광대들의 정치풍자극은 연산군이 물타기를 통해 신권을 압박하려는 시도였을지도 모르겠네요? 너 이녀석 똑똑하구나. 너는 ‘봉투’를 면제해주마. 영화적으로 본다면 그렇지. 연산군은 예술의 정치화를 통해 반대세력에 압박을 가하고 싶었을지도 몰라. 이를테면 광대들은 참여예술을 한 셈이지. 군사정권 시절 마당극을 탄압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을까? 부당한 권력을 풍자하는 게 예술의 최대 목적은 아니지만 말이야. 더 볼 영화 날로 보수화해가는 미 군부와 군산복합체가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어떻게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는가에 대한 연구. <영원한 제국> 왕권과 신권의 다툼이 빚어낸 비극에 대한 추론. 논술백서4. 세상이 너무 복잡하면 가족을 확대해서 생각해보라. 젖을 때까지 써. 논술 딴 거 없어. 읽는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하면 젖을까, 그걸 열나게 궁리해야 하는 거야. 나 같은 사람이 많아지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될까? 성의 개방화가 사회에 가져올 영향에 대해 논하라 너희들 그런 생각 하고 있지? 이렇게 생각하면 돼. 성적 자기결정권이 집단에서 개인으로 이양되고 있는 과도기라고 말이야. 너희들 하라는 공부 안 하고 술 마시고 집창촌 근처에서 기웃거린 적 있지? 학생1 | 왜 선생님의 취미를 저희한테 덮어씌우세요? 왜 공창제가 생겼을까. 그건 은밀한 축첩제도라고 할 수 있어. 물론 전근대적이고 마초적이지. 그런데 여성에게 성적 자기결정권과 그를 뒷받침해줄 호적제도의 근본적인 개혁과 여성의 경제적 자립이 이루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되면 정말 자기가 직업으로 택하고 싶은 사람만 집창촌에 취직을 하게 되지 않을까. 집창촌에 드나드는 사람을 검거하는 현행 제도는 이를테면 여성의 경제적 조건과 법적 제도는 알 바 아니고 들키지 않게 잘하라는 ‘눈 가리고 아웅’ 정도밖엔 안 되는 거야. 왜 <연애의 목적>의 홍이(강혜정)는 그렇게 수동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표현할까? 왜 유림(박해일)이는 ‘5초만 넣고 있겠다’는 준강간적 태도로 연애에 임할까? 그들은 서로 자신의 성적인 자기결정권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성인이지만, 아직 성에 대해 이중잣대를 대고 있는 한국사회의 감시망 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에서 그들은 아직 어린애라고 할 수 있어. 학교 안에서 선생님들이나 학생들이나 남의 연애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잖아. 성적인 권리, 몸의 권리를 사회적 도덕적으로 통제해야 한다는 보수주의와 그 권리를 개인에게 이양해야 한다는 자유주의가 여기서 맞붙은 거야. 너희들이랑 상관없을 거 같지? 너희들이 머리 하나 마음대로 못 기르고 학교의 잣대대로 잘라야 하는 거랑 이건 굉장히 밀접한 관련이 있어. 그런 점에서 <싱글즈>에서 아빠도 없이 자기 애를 자기가 키우겠다는 동미(엄정화)는 홍이의 믿음직스러운 선배라고 할 수 있고, <바람난 가족>에서 고등학생 애인의 애를 낳아기르며 무용가로서의 꿈도 키우려는 호정(문소리)은 그런 동미들의 왕언니라고 할 수 있지. 호정은 인권변호사이자 동시에 한국사회의 성의 이중잣대를 실천하는 남편 영작(황정민)을 쫓아내잖니. 그게 경제적 자립이 없으면 안 되는 일이지. 근데 봐라. 이제 호주제 폐지되지, 여성들의 경제력이 남성을 앞지를 기세지, 그리고 동미나 호정처럼 대안가족을 만들어가는 여성들이 늘어나면 어떻게 되겠니. 이제 경제구조가 개편이 되는 거야. 전통적인 남성 가부장 호주들이 나라를 이끄는 게 아니라 저마다 제각각의 사람들이 각자 형편대로 가정을 꾸리면서 살게 될 거란 얘기지. 그런 사람들이 등록금 내주는 학부모가 되면, 글쎄다, 너희들의 머리 길이도 이제 너희들이 결정할 수 있는 때가 오지 않을까. 더 볼 영화 <델마와 루이스> 남편에게 절절매는 델마가 친구 루이스와 함께 처음으로 자기 자신만의 삶을 향한 여정을 시작한다. 논술백서5. 신문과 텔레비전이 먹여주는 대로 먹지 말고 스스로 떠먹어라. 너희들 바쁘구나. 인사 좀 하지. 어, 그래. 오늘은 거짓말의 효용과 기회비용에 대해 생각해보자 <달콤한 인생>의 선우(이병헌)와 강 사장(김영철)이 서로에게 한 거짓말과 황우석 박사의 논문조작을 연관시켜 거짓말의 기회비용을 논하라. <달콤한 인생>에서 왜 보스랑 2인자가 서로를 믿지 못하고 거짓말을 했을까? 아는 사람? 학생1 | 보스로서는 자기 사람이 믿을 만한 사람인지 검증하는 단계가 필요하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선우는 자기만 입을 다물면 아무도 피해를 입을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겠죠. 그래, 그런 점에서 선우는 어리석은 선택을 했지. 이실직고를 해서 잃을 것과 거짓말을 해서 잃을 것의 크기를 비교했어야 옳았는데. 낭만적인 상상과 자기 목숨을 맞바꾸고 말았어. 강 사장도 이런 무리한 검증절차를 밟음으로써 굳이 치르지 않아도 될 기회비용을 낭비했어. 조직도 날려버리고 자기 목숨까지 잃었잖아. 황우석 박사도 자신이 보유한 기술만을 이용해 연구했을 때와 논문조작이 들통났을 때의 경우를 여러모로 따져서 생각해야 옳았지. 강 사장네 조직은 소규모라 기회비용이 조직 내부에서만 소모되었지만, 황 박사의 경우는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연구비까지 끌어쓰면서 국가와 국민의 기회비용까지 낭비했다는 데서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부작용, 즉 불필요한 외부효과까지 발생했지. 대외적으로는 한국 과학자들의 신인도 추락 같은 걸 생각할 수 있겠지. 대내적으로는 국가와 언론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 추락이지. 학생 2 | 하지만 국익을 위해서 조금만 더 기다려주고 덮어줬어야 하지 않나요? 글쎄. 언제 성취될지도 모르는 불확실한 국익을 위해서 불필요한 많은 세금과 국제적 신인도와 도덕성을 희생한다는 건 비합리적이지. 그나마 브릭 같은 젊은 과학자들, MBC 같은 ‘내부고발자’에 대한 오해를 긍정적인 인식으로 바뀐 건 큰 수확이지. 만약 이런 내부고발자가 없었다면 더 큰 국익의 손실이 있었을 거야. 황 박사는 정보의 비대칭성(불균형)을 이용해 계속 거짓말을 하고 국익에 호소했잖아. 연구비를 대주는 국가도 그 세금을 낸 시민도 그걸 몰랐지만 대신 그 도덕적 해이를 내부고발자들이 잡아냈으니 무너지는 둑을 가까스로 막은 셈이지. 국제사회에서 신용을 잃을 경우에 받을 타격, 애국적인 광기로 진실을 가리게 될 경우 입을 사회적 혼란은 상상할 수도 없지. 그런 큰 위험을 감수할 정도로 열렬하게 한국사회가 영웅을 고대하고 있다는 슬픈 얘기지. 심각한 도덕적 해이에 빠진 슈퍼맨에 대해 아직도 큰 미련을 갖고 있다는 건 한국사회가 어딘가 깊은 외상을 입었다는 증거가 아닐까. 국가의 이익=나의 이익이라는 집단주의적 사고와 효율성의 신화에 대한 맹신이 도리어 집단의 이익과 효율을 해친다는 게 아이러니지. 그러니 무조건적으로 텔레비전과 신문이 말하는 대로 믿지 마. 그건 진실이 아니라 누군가 진실이길 바라는 희망에 불과한 건지도 몰라. 더 볼 영화 <인사이더> 담배회사가 매출을 늘리려 담배에 암모니아 화합물을 첨가하자 연구개발부 책임자가 목숨을 걸고 회사의 비리를 폭로한다. <에린 브로코비치> 대기업 PG&E의 공장에서 유출되는 크롬성분이 마을 사람들을 병들게 하지만 회사는 발뺌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