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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최고의 메소드 배우 알 파치노와 <인썸니아> [2]

알 파치노가 여러 영화에서 거듭 확인시킨 것도 이런 도덕적 갈등과 시련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대부>의 마이클 콜레오네다. 아직 범죄세계를 모르는 앳된 청년 마이클, 그는 가족을 버리는 편이 옳았다. 아버지가 부상을 입고 형이 죽었더라도 눈 딱 감고 뉴욕을 떠나야 했다. 하지만 마이클은 그러지 못했다. 가족에 대한 애착 때문?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부상당한 아버지의 병실을 찾는 장면에서 마이클은 세상을 알아버린다. 아버지에게 총을 쏜 자들과 경찰이 같은 편이라는 사실이 그를 범죄의 땅에 머물게 만든다. 그는 권력뿐 아니라 정의도 총구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마이클이 화장실 물통에 들어 있는 권총을 꺼내들고 나오면서 마피아의 길에 발을 디딘 것처럼 당시 32살이었던 알 파치노의 미래도 그때 정해졌는지 모른다. <대부>의 마이클 콜레오네로 시작해 <스카페이스>의 토니 몬타나, <칼리토>의 칼리토 브리간테, <도니 브래스코>의 레프티로 이어지는 알 파치노의 갱스터 이미지는 회한과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선택의 기로에서 그는 항상 불운한 쪽을 택한다. <스카페이스>의 토니 몬타나는 콜롬비아 조직의 요구를 거절한 탓에 온몸이 벌집이 된 채 죽어갔고 <칼리토>에선 변호사 친구의 부탁을 뿌리치지 못해 낙원으로 가는 기차에 올라타기 직전, 심장에 구멍이 난다. <도니 브래스코>의 레프티 역시 3만달러를 들고 이곳을 떠나라는 도니의 제안을 거절하는 바람에 비참한 최후를 피할 기회를 놓친다. 그렇게 알 파치노는 살길이, 희망이 보이는 순간에도 기어이 악운에 몸을 맡기는 비극적 영웅으로 스크린에 자신의 피를 떨어뜨렸다. 그리고 이런 과거가 겹쳐질 때 <인썸니아>의 알 파치노는 비록 형사지만 갱스터와 다르지 않은 비극의 주인공이 된다. 영화에서 진정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것은 윌 도머가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순간이다. 6일째 한숨도 자지 못해 퀭한 눈의 이 사내는 용서를 구하거나 동정을 호소하지 않는다. 그는 정말 말을 하고 싶다. 아무에게도 하지 않은 비밀을 토로하는 말, 그것은 <대부>의 마지막 장면을 연상시킨다. 피의 복수극이 끝나고 아내 케이(다이앤 키튼)가 묻는다. “당신이 죽였나요?” 굳게 입을 다문 채 잠시 생각에 잠겼던 마이클이 답한다. “아니.” 마이클의 거짓말과 더불어 피로 얼룩진 가족사는 감춰진다. 하지만 마이클의 가슴에 응어리진 가책은 어찌될 것인가? <인썸니아>에서 알 파치노의 고백은 마이클이 덜고 싶던 마음의 짐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마 조각가 로댕이 살아 있었다면 알 파치노를 <칼레의 시민들>과 <지옥의 문>의 모델로 썼을 것이다. 조각칼로 깎은 듯 광대뼈가 뚜렷한 알 파치노의 얼굴은 비극을 형상화한 로댕의 조각품과 놀랄 만큼 흡사하다. 로댕이 알 파치노를 알았다면 비극을 꼭 군상으로 표현할 필요가 없었으리라. 세월이 내려앉으면서 알 파치노의 얼굴은 전보다 그림자가 짙어졌다. 뚜렷한 음영이 지난날에 대한 후회와 현재의 번민을 좀더 깊고 또렷하게 만든다. 갱스터와 형사영화라는 거칠고 남성적인 장르에서 시간의 흔적을 쌓은 알 파치노의 얼굴에는 비극의 기운과 더불어 전문가적 자존심과 자기확신이 들어 있다. 마이클 만의 영화 <히트>와 <인사이더>에서 알 파치노가 보여주는 단호한 태도는 도시의 거친 남자들이 도덕적 불안과 정서적 혼란을 극복하는 방법을 일러준다. <히트>의 수사반장 한나는 집요하게 일에 매달리는 남자다. 사건수사에 열을 올릴수록 가정은 부서지지만 거꾸로 가정이 무너지고 있기에 그는 더욱더 강박적으로 수사에 모든 것을 바친다. <히트>는 로버트 드 니로의 죽음으로 마지막을 장식하지만 알 파치노의 승리가 축복받을 만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수사반장 한나처럼 앞만 보고 달리는 사내라면 적이 보이지 않는 시대를 잘 살아갈 것 같지는 않다. <인사이더>의 알 파치노가 안정적인 가정을 가진 남자인 것은 아마도 방송사 프로듀서라는 직업 덕분일 것이다. 그렇지만 안전한 체제에 편입돼 있으면서도 분노와 흥분을 감추지 않는 그의 행동방식은 갱스터나 형사를 닮았다. 위기의 시대를 공격성과 단호함으로 돌파하는 남자로서 알 파치노의 이미지는 시간의 풍화작용을 너끈히 견뎌내고 있다. 이같은 알 파치노의 이미지를 살려 <애니 기븐 선데이>를 찍은 감독 올리버 스톤은 이렇게 말한다. “니체를 인용한다면, 알 파치노는 ‘에너지의 괴물’이다. 한 인간으로서의 부드러움, 스크린에 활력을 넣다 뺐다 할 수 있는 엄청난 고통이 그를 유례없는 세련되고 열정적인 연기자로 만든다.” 언제 폭발할지 모를 부글거리는 마그마가 그의 몸 속 어딘가에 있음을 그의 영화를 본 사람은 누구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데블스 애드버킷>의 악마 존 밀턴을 보라. 말끔한 양복을 입은 노신사에 불과한데도 이 영화에 나오는 알 파치노를 보노라면 팔에 소름이 돋는다. 심장박동을 측정하듯 연기의 파동을 재는 기계가 있다면 알 파치노가 품어내는 연기의 에너지를 인간의 한계치로 규정지어도 좋을 것이다. 물론 알 파치노가 격정적인 연기만 잘하는 배우라면 지금의 위치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알 파치노는 한번 터져나오면 감당할 수 없는 용암을 가슴에 숨긴 채 눈빛만으로 그걸 드러낼 줄 아는 배우다. <대부>의 마이클이 화장실에서 권총을 들고 나와 태연한 표정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은 캐스팅 당시 알 파치노 기용에 극력반대했던 스튜디오 관계자들을 하얗게 질리게 만들었다. “키가 작고 첫눈에 띄는 미남도 아닌데다 지저분해서 하버드를 나온 청년 마이클로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던 그들은 이 사내가 말론 브랜도의 뒤를 잇는 거인이 될 것이라고 믿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혜안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알 파치노가 퇴락하는 늙은 마피아 레프티로 출연한 <도니 브래스코>는 극에서 극을 오가는 그의 연기폭을 느낄 수 있는 영화다. 양피가죽코트만 입으면 한눈에 조직의 보스나 노련한 형사로 느껴지는 알 파치노가 이 영화에선 목 주변에 털이 달린 체크무늬 모직코트를 입고 축 처진 어깨를 드러낸다. 의상 한벌의 차이로 정반대의 인간을 형상화할 수 있는 능력, 그것이 알 파치노가 일정한 연기틀을 벗어나지 않는데도 찬탄을 자아내는 이유일 것이다

감독,각본,주연 겸한 졸업작품 <쉬브스키> 찍은 김인권의 영화 만들기(2)

시간, 배우, 스탭... 장애물을 넘어서 여기서 다시 두 번째 장애물. 열여섯 시간을 맞붙었던 악몽의 합기도장에서 촬영을 시작했는데, 전날 쉰밥을 먹은 감독이자 주연 김인권이 식중독에 걸렸는지 화장실을 쉴새없이 들락거렸다. 약국가서 지사제 먹고, 합기도 찍고, 다시 지사제 먹고, 합기도 촬영. 결국 김인권은 고모 충고에 따라 다음날 개고기를 먹고서야 기운내 촬영을 재개할 수 있었다. 이어서 하고 많은 조그만 장애물들이 몰아쳤지만, 관장 역을 맡은 배우의 캐스팅 실패는 영화가 초반에 방향을 잡는 데 단서가 됐다. 시나리오에선 두명을 멋지게 제압하는 관장이, 실제 배우를 데려다놓으니 무술이 엉망이었던 것. 김인권은 “원래 니들이 보는 무술 시합은 다 짜고 하는 거야. 다 그런 거지 뭐”라고 떠벌리는 식으로 관장의 캐릭터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 변두리 동네 관장이라면 충분히 그렇게 사기를 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많은 인물들과 상황이 이런 식으로 방향을 틀었다. 액션은 기본적인 동작만 맞췄을 뿐 실제로 치고받는 동네 싸움이 돼, 거의 맞기만 하는 김인권은 온몸에 파릇파릇한 멍자국을 달고 다녔다. 팔을 너무 심하게 꺾여 인대가 늘어나는 사고를 당하기도 했을 정도. 부모와 함께 TV를 보며 좋아하는 지블리언 아이들은, 배우로 데려온 김영아 PD 친구 아이들이 덥다며 짜증내는 바람에 설정과 달리 울고 떼쓰는 장면을 연출했다. 매사가 이런 식이었다. 단골로 가는 KFC 매장을 촬영 며칠 전에야 간신히 빌리고, 아파트 경비 아저씨에게 얼굴 팔아가면서 촬영 허락을 받고. 확실하게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확실하게 펑크난 적도 한번도 없었다. <쉬브스키>는 신기할 정도로 만드는 사람들의 말을 잘 듣는 영화였다. ♣ 동국대학교 스튜디오 안에 위치한 <쉬브스키> 세트. 촬영이 없는 배우들까지 모두 나와 잡일을 거들고 있다.♣ 외계인 `지블리언`이 사는 집. 교수님 쓰시는 세트벽을 세워놓고 동국대 불교미술과 학생들이 일일이 손으로 채색한 천을 덧씌웠다. 솔직한 혈기로, 패싸움하듯 김인권은 <쉬브스키>를 만들면서 삼촌들이 입던 광택나는 의상을 가져왔다. “친삼촌은 아니구요. 그 왜 있잖아요. 어렸을 때 아버지한테 ‘형님’이라고 부르면서 드나들던 삼촌들. 나는 삼촌이 ‘장비’들고 다녀서 형사인 줄 알았다니까요.” 그에게 <쉬브스키>는 이렇게 옛날 옷을 다시 입은 것 같은 영화다. 활개치고 돌아다니던 기억과 자세히 관찰해보니 영역을 두고 다투는 짐승들 비슷했던 주위의 남자들과 일찍 어머니를 여읜 외아들인 탓에 아직도 미지의 존재인 여자들. 김인권이 알았던, 지금도 알고 있는 세계가 <쉬브스키>다. “촌스럽게 생긴 애들 다 모이라”는 말을 듣고 타고난 얼굴 그대로 응모했던 <송어>의 오디션, 거기서 따낸 산골소년 태주의 이름을 다시 한번 쓴 것도 그런 이유의 연장선에 속한다. 한때는 트림할 때마다 콜라 요정이 나타나는 이상한 이야기나 고문받던 남자가 쓰레기통에 볼일을 보며 황홀해하는 알지 못하는 세계를 영화로 만들었지만, 한 시기를 마감하는 졸업영화만큼은 그래선 안 되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장편을 만들겠다는 김인권의 말을 듣고 “지레 겁먹어서 일일이 설득해야 했던” 스탭들이 두달 넘는 한여름의 강행군을 견뎌낸 것도 비슷한 까닭에서가 아닐까. <쉬브스키>를 촬영하면서 엄청나게 뻔뻔해졌다는 프로듀서, 찌개 10그릇에 밥은 14공기를 놓고 먹으면서도 기운넘치는 어린 스탭들, 오다가다 간식비를 건네주는 스탭들의 사회인 친구들, 교수님 세트를 몰래 쓰도록 눈감아준 학교 선배, 외계인의 트림 소리와 괴성과 교성을 열심히 조합해 사운드트랙을 만든 음악감독. 알고보면 조금씩 비슷한 시절을 거쳤을 이들 때문에 <쉬브스키>는 <송어> <아나키스트> <조폭 마누라>의 배우 김인권의 영화라고만 부를 수 없을 것이다. 솔직한 혈기로, 패싸움하듯 정신없고 충동적으로 만든 영화 <쉬브스키>. 이 영화 제목의 어원 씹**를 거센 발음으로 눈치보지 않고 소리칠 수 있는 젊음이 <쉬브스키>를 1천만원 그 이상의 가치로 끌어올리는 원동력이다.글 김현정 parady@hani.co.kr·사진 손홍주 lightson@hani.co.kr <쉬브스키> 촬영장에서 생긴 일야구장 2만원에 빌리기 촬영 막바지에 이른 8월 초, <쉬브스키>팀은 청구역 KFC 매장에서 태주와 장원이 치킨 먹는 장면을 찍고 있었다. 이때 카메라 사이로 불쑥 끼어든 할머니 한분. 스탭과 배우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떡을 팔기 시작했는데, 김인권이 갑자기 연기를 시작했다. “이건 얼마예요? 이거는요? 그럼 이거랑 이거 하나씩 주세요.” 할머니가 카메라를 흘끗거려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태주는 할머니와 단둘이 살기 때문에 옆에서 떡을 파는 할머니를 그냥 지나치지 못할 거라는 것이 이 즉흥 연출의 변. 반면 희택과 태주의 싸움장면은 김인권의 의도와 관계없이 “연기에 탄력을 받은” 희택 역 배우가 혼자 끌고 나간 신이다. 얼굴을 정통으로 맞은 김인권이 기절했는데도 눈치채지 못하고 무자비하게 두들겨팬 것. 놀란 배우와 스탭들이 말렸지만, 깨어나고 보니 그 당황한 모습이 더욱 리얼해 그대로 OK 사인을 내렸다. NG가 따로 없고, 컷을 외친 다음 제각기 할 일을 하는 모습도 최종 편집본에 들어갈 수 있다는 김인권의 신조가 이런 부분에서 빛을 발할지도 모를 일이다. 종잡을 수 없는 것은 내부의 상황뿐이 아니다. 가장 먼저 섭외를 끝낸 장소 중 하나인 야구연습장. 안심하고 야구장을 찾았는데, 야구장 주인 아저씨가 갑자기 대여료 30만원을 내라고 막무가내로 요구했다. 30만원이면 일주일치 간식비에 해당하는 금액. 그대로 물러설 수 없어 음료수를 들고 아저씨를 설득하기 시작, 결국 2만원에 합의를 봤다. 대신 영화 찍는 내내 “겨우 2만원 받고 내가 이걸 빌려줬어”라며 주민들에게 넋두리를 늘어놓는 아저씨의 목소리를 참아야 했다. 정오까지만 매장을 쓸 수 있다는 KFC 본사의 허락을 외면하고 손님이 붐빌 즈음인 오후에 촬영을 감행한 것은 비교적 쉬운 경우였던 셈이다. 아프다고 촬영에 빠진 배우와 감정 싸움을 벌이는 마음고생까지 있었지만, 강촌 MT를 시작으로 출발한 <쉬브스키>는 결국 8월 중순 수많은 사고를 극복하고 촬영을 마무리했다.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

뉴욕한국영화제 2002 [2] - 영사기사 호세 라모스 인터뷰

“한국영화는 재미있고 독특하다”뉴욕한국영화제 기간 내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영화제를 도와준 숨은 일꾼, 영사기사 호세 라모스(47). 그는 영화제가 열린 맨해튼에 자리한 유서깊은 극장, 앤솔로지 필름 아카이브에서 20년째 영사 일을 하고 있는 푸에르토리칸계 미국인으로 본업은 음악교사이다. 은퇴 뒤, 언더그라운드영화를 지원하는 극장을 여는 것이 꿈인 그는 낮에는 초등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고 밤에는 이곳 앤솔로지에서 일한다. 1980년부터 앤솔로지에서 근무하면서 무수히 많은 실험영화와 인디영화, 단편영화, 외국영화와 각종 영화제를 경험해온 그에게 한국영화는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지난해 이어 올해 또 뉴욕한국영화제를 겪으면서 한국영화 마니아가 된 호세 라모스는 대단한 열정으로 한국영화를 진단한다.=한국영화를 다른 나라 영화들과 비교한다면.-매우 재미있는 영화가 많고, 때때로 과장된 표현이 있는 경우도 많다. 피가 튀고, 폭력적이고, 미국영화보다 스케일이 큰 영화도 많다. 이해하기 어려운 영화도 많다. 나는 할리우드영화보다 미국 인디영화나 유럽영화를 더 많이 보고 있는데, 그 영화들과 비교해볼 때도 한국영화는 개성이 넘친다. 할리우드 스타일의 영화도 많지만. =영화제에 소개된 영화들에 대해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작품은 어떤 것인가.-12편 영화를 다 보았다. 개인적으로 기막힌(‘crazy’라는 표현을 썼다) 경찰영화를 좋아하기 때문에 <공공의 적>이 최고였다. 액션과 모험, 크레이지한 경찰 등등 할리우드 요소가 많이 있는 영화지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훌륭하다. 또 <해피엔드>. 일종의 상투적인 러브스토리지만 매우 낯선 기법의 영화였다. 다음은 <소름>. 느린 예술영화이다. 하지만 이야기는 아주 이례적이고 독특하다. 특히 마지막에 주인공이 미쳐가는 것을 보라. 그것을 지켜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뉴욕한국영화제가 성공적이라고 보는가.-물론이다. 나는 이곳 앤솔로지에서 많은 영화제들을 봐왔다. 그리스영화제, 인도영화제, 필리핀영화제, 게이 앤 레즈비언영화제, 언더그라운드영화제 등등. 하지만 한국영화제가 제일 성공적이다. 처음 며칠이 아니라 일주일 내내 관객이 찾아온다는 것은 굉장한 성공이다. 극장 앞에 길게 늘어선 관객을 보라. 극장 안 좌석도 꽉꽉 차고, 특히 한국인보다 백인이나 다른 인종들을 많이 볼 수 있다는 게 흥미롭다. 한국영화제 주최쪽을 대단히 신뢰하게 되었다.=뉴욕한국영화제에 바라는 것은.-영화제를 통해 영화가 미국 내에 배급되는 것이다. 지난해 <섬>을 재미있게 보았는데, 그 영화가 이번에 뉴욕에서 개봉된다는 사실에 매우 기뻤다. 영화제 기자시사회 도중 기자 한명이 기절해 실려나간 당시가 생생히 기억난다. 독특한 영화 보기 경험이었다. 이 영화가 뉴욕에서 공식 개봉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만큼 훌륭한 영화이고 결과도 좋을 것이라 전망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10분 내외에 모든 이야기가 전개되는 단편영화를 좋아한다. 내년에도 나는 앤솔로지에서 일할 것이고, 그때는 한국에서 온 실험적인 단편영화들을 보고 싶다. 호세 아저씨는 뉴욕한국영화제를 하면서 한국인들이 인정이 많아서 좋다고 강조한다. 상영시간이 늦어지기 일쑤라 휴식 시간 없이 일하다보면 식사 시간을 자주 놓치곤 하는데, 유독 한국영화제 때만 간식을 영사실로 날라준다고 한다. <시네마천국>의 알프레도 아저씨처럼, 그도 딸이 영사실로 음식을 공급해주었는데, 그나마 딸이 법대에 진학한 바람에 식사 시간도 없이 일하고 있었다. 그는 한국영화도 한국인처럼 사람냄새가 난다고 한다. 영화를 통한 문화의 교류는 이런 사소한 데서 출발한다.▶ 뉴욕한국영화제 2002 [1]

<화산고> 온라인 게임 개발자 윤강희

‘김경수가 사비망록을 노리는 장량을 막기 위해 10갑자 넘는 벽력무공을 퍼붓고, 장량은 이에 맞서 괴력을….’ 지난해 개봉한 영화 <화산고>가 아니냐고?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말씀. 이같은 학원고수들의 일합은 8월30일부터 본격적인 서비스를 시작한 온라인 게임 <화산고 기투전>(www.whasango.com)을 통해서도 볼 수, 아니 직접 할 수 있다. 영화 <화산고>의 배경과 캐릭터를 그대로 옮겨온 이 게임은 <포트리스2>처럼 특정한 맵 위에서 실시간으로 기공을 겨루는 온라인 격투게임이다. 그동안 <반칙왕>을 소재로 한 모바일용 게임이나 <후아유>와 함께 소개된 채팅게임 등 한국영화를 소재로 한 게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화산고 기투전>은 영화에서 비롯된 최초의 본격적인 온라인 액션게임이다. 이 게임은 모그엔터테인먼트의 윤강희 사장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지난해 7월인가 8월인가 대학 선배인 김태균 감독을 따라 <화산고>의 편집본을 봤어요. 머릿속을 뭔가 탁 치더라고요. 이거야말로 게임을 위한 영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죠.” 한 대기업에서 신규사업팀을 맡다가 독립, 386닷컴과 CEO의 주식을 거래하는 사이트를 개발하기도 했던 그는 이 영화를 본 뒤 평소 꿈꾸던 게임을 향한 첫발을 내디뎠다. 영화를 보자마자 제작사인 싸이더스의 차승재 사장을 소개받아 판권 계약을 맺었고, 곧바로 게임 개발에 착수했다. 개발 과정에서 그는 학원무협물이라는 영화의 특성상 액션게임이 적합하다고 판단을 내렸다. 또 게임의 주된 고객인 10대의 감성에 맞게끔 캐릭터를 애니메이션의 그것처럼 만들었다. 게임의 개념도 영화 <화산고>에서 모티브를 따와 불, 냉기, 뇌전, 바람이라는 네 가지 기의 속성을 설정하고 이것이 서로 물고 물리는 관계를 맺도록 했다. 그런데 국내외를 막론하고 영화를 소재로 한 게임 중 크게 성공한 게 있었던가? “대박은 없었지만 손해본 게임도 거의 없었다”는 게 그의 답. 성공작이라 할 수 있는 최근의 <해리 포터>나 <스파이더 맨>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대부분의 영화 소재 게임은 최소한 실패하진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그 이유를 막대한 마케팅 비용에서 찾는다. 영화 마케팅 활동이 같은 브랜드를 쓰는 게임에까지 그 효과가 미친다는 얘기다. “<화산고>도 20억원 가까운 마케팅 비용을 쓴 것으로 아는데, 몇달 개봉하고나면 끝이라는 게 아쉽더라고요.” 마케팅면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는 장점은 그가 영화를 게임으로 제작하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그가 보기에 영화와 게임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영화가 종합예술이라면 게임은 그래픽에서부터 네트워크 기술까지 포함하는 정보통신 기술의 종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공동의 작업을 펼쳐야 하는 과정도 비슷하고 감독이 존재해야 한다는 점 또한 유사합니다.” 또한 영화쪽 사람들과 교류하다보니 생각지 못했던 이점도 생겼다. 이 게임을 개발하면서 <화산고>의 원작자인 서동헌씨와 함께 작업한 것처럼, 영화 시나리오 작가는 게임 시나리오를 쓰기에 좋은 능력을 갖고 있다. 또 치밀한 기획이 필요하다는 점에서도 두 산업간 인력의 교류는 긍정적이라는 평가다. “앞으로요? 우선 12월 <화산고>의 일본 개봉에 앞서 10월부터 일본에서 이 게임의 서비스를 시작할 계획이고, 나중에는 <툼레이더>처럼 내가 만든 게임이 영화로 만들어질 수 있다면 기분 좋겠죠.”글 문석 ssoony@hani.co.kr·사진 정진환 jungjh@hani.co.kr

구조조정이라구요?

개인적으로 꽤 즐거운 ‘외국영화 보기’가 계속된 몇달이었다. 7천원이 아닌, 7만원이라도 내고 싶었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2시간30여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시각적 황홀경’으로 넘쳐났던 <마이너리티 리포트>였고, 감각적이고 아이디어 넘치는 카메라 워킹과 편집이 한수 배울 만했던 <레퀴엠>,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박수치고 노래 부르고 싶은 <헤드윅>이었으며, 언제나 샘나게 부러운 워킹타이틀사의 깜찍한 <어바웃 어 보이>였다. 앞으로도 꼭 찾아보아야 할 외국영화들은 아직도 줄줄이 사탕인 것 같다. 나는 평론가나 기자가 아니니, 내 영화적 취향에 대해 비웃지는 마시길. 흠흠. 그토록 외국산에 빠져 도락을 즐기는 와중에, 얼마 전 모 영화주간지에서 이십세기 폭스코리아의 이주성 대표 인터뷰 내용을 읽었다. ‘올 여름은 영화시장 판도 변화의 시금석. 이른 판단이긴 하지만 한국영화의 구조조정이 반드시 일어날 것. 메인 스트림의 많은 한국영화들이 실패했다는 것은 제작자들이 경청해야할 부분’이라는. 이 말이 강렬한 톤으로 다가왔다. 괜한(?) 걱정도 들었다. 내 평소 성격의 특징인 ‘오버해서 반성하기와 원망하기’가 발동했다. 맞아. 한국영화 만드는 사람들, 현실을 직시해야 하는 거 아냐? 그렇다. 나의 오버는 계속된다. 누군가는 곧 촬영에 들어갈 영화의 총촬영횟수를 70회 이상으로 잡았단다. 즉 하루에 평균 1.5신 찍겠다는 거다. 참 팔자가 늘어졌다. 스필버그는 대작 를 40회에 끝냈다고 하는데…. 누군가는 돈 벌 확신은 없지만 그저 그 감독이 꽤 재능이 있는 것 같고 하려고 하는 이야기가 의미있다 싶어서, 스타도 없고, 대중적 컨셉도 없는 이야기를 어렵게 투자자를 설득해 제작에 착수했는데, 원래 계획이나 약속을 훌쩍 넘겨 제작비를 초과해서 울상이라고 한다. ‘영화의 완성일은 며느리도 몰라. CG맨이 결정하는 거야!’라는 괴이한 농담이 충무로에 오간다는 소리도 들린다. 어느새 4억∼5억원으로 영화 한편을 만들어내는 충무로식 경쟁력은 사라져가고 있는 중이다. 요즘은 13억∼15억원짜리를 ‘저예산영화’라고 부른다. 스탭을 착취하는 사기꾼 제작자가 되지 않고서도 저예산영화를 만들 수 있는 근거는, 그런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일사불란한 제작시스템과 노하우인 것이다. 우리 영화계는 요즘 너무 배부르다. 그렇다고 벤츠 승용차를 타고 다니고, 스포츠 트레이너가 상시 대기중이거나, 수영장이 딸린 저택을 소유한 할리우드식 부자가 아닌, 그저 정신적으로 게으른 이상한 부자인 것이다. 넌 어떠냐고? 난 게으르진 않지만 좀 무식한 편이다. 흠흠. 지나친 헛소리라고? 왜 갑자기 입 부르튼 소리냐고? ‘구조조정’ 말이 나와서 좀 흥분한 것 같다. 80년대 초, 뒤늦게 <안개마을> <영자의 전성시대> <바보들의 행진>을 보면서 한국영화의 매력에 빠졌던 걸로 기억한다. 극장에서 본 이장호 감독의 재기작 <바람불어 좋은 날>이나 배창호 감독의 데뷔작 <꼬방동네 사람들>은 그야말로 내게 ‘새로운 발견’이었다. 최근 모 신문에 배창호 감독이 <꼬방동네 사람들>을 찍을 당시의 헐벗고 열악한 제작 환경을 회고한 글을 읽고 격세지감을 느꼈다. ‘돈’이 반드시 ‘좋은 영화’를 낳는 건 아니라는 당연한 생각도 다시 한번 들었다. 그 사람들은 그렇게 힘들었는데, 나는 그 영화들로 마음의 양식을 얻었고, ‘한국영화’에 대한 구체적인 꿈을 키웠으며, 이 별볼일 없는 능력으로, 지금 한국영화를 만들고 있는 분에 넘치는 행운을 누리고 있다. 가난하지만 ‘형형한 눈빛’이 매서운 그런 사람들을 만났을 때의 존경과 긴장을 다시 한번 한국영화에서 만나고 싶다. 오★한국영화!심재명/명필름 대표 shim@myungfilm.com

<언페이스풀>이 내포한 에이드리언 라인식 상투성(2)

행위의 대구, 불완전한 화합을 위한 연가 그렇지만, 코니와 에드워드는 결코 서로를 증오하여 파멸시키려는 관계로까지 나아가지 않는다. 아내와 정부가 짜고 남편을 죽이려들거나, 아내의 외도에 미치광이가 된 남편이 그 둘 모두를 죽이기 위해 계획을 짜지는 않는 것이다. 에드워드와 코니 둘 사이를 대응시키는 행위의 ‘대구’가 그들을 서로 지탱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니는 폴과의 첫 번째 정사를 나눈 뒤, 기차 안 화장실에서, 그의 정액을 닦아내려는 듯 정신없이 화장지를 뜯는다. 한편, 에드워드는 살인을 저지른 뒤, 아들의 학예회가 열리고 있는 학교로 찾아가, 그곳의 화장실에서 폴의 피를 닦아낸다. 또는, 코니의 행동에 의심을 느낀 에드워드가 날 사랑하냐고 묻자, 당황한 코니는 그렇다고 대답한 뒤, 방에 남아 있는 에드워드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전등을 끄고 나가려는 실수를 저지른다. 그리고 자신의 살인행위에 넋이 나가 있던 에드워드는 각각 다른 신발 한짝씩을 신고 코니 앞에 나타난다. 서로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흔적을 지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그 둘이 마주한 상황에서는 징후적인 행위의 착오를 번갈아 반복한다. 결과적으로, 에드워드와 코니는 그들의 결혼생활을 파경으로 몰고 가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는 것이다. 각각 대조의 구도로 놓여 있는 에드워드와 폴은 유리장식과 책으로 상징화되는 사물의 분신화를 통해 사건을 일으키거나, 그 잔해를 내러티브화한다. 에드워드가 폴을 죽이는 이유는 그 유리장식, 즉 25년 뒤에 아내가 보기를 바라며 편지와 가족사진을 넣어둔 바로 그 유리장식이 폴의 집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폴의 실종을 수사하기 위해 경찰이 코니를 찾아왔을 때, 그녀의 품에는 여전히 폴이 선물한 책이 품에 안겨져 있다. 서로가 멀찌감치 떨어져 객관적 대조로서만 존재해야 했던 에드워드와 폴의 위치가 서로의 자리에 파고들 때 사건이 일어난다. 코니와 폴의 만남을 위해 불어온 인위적 바람과, 에드워드가 폴을 죽이도록 만든 그 유리장식에 새겨져 있는 ‘windy city’라는 문구의 교차성! 관음증과 도덕률 법칙 너머의 무엇 사물들이 펼치는 이야기의 갈등(대조의 내러티브)과 행위의 착오가 깨우치게 하는 도덕률(대구의 내러티브)이 에드워드와 코니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한다. 이제부터는 이 둘 모두가 주인공이다. 그러니까 <언페이스풀>은 코니의 행동을 중심으로 하는 앞부분과 에드워드의 의혹과 살인을 중심으로 하는 중간부분, 그리고 이 둘이 서로의 사실을 교환한 채 이어나가는 마지막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에드워드와 코니의 행위가 대구를 이루고 있는 것은, 폴의 죽음을 계기로 이 둘을 불완전한 화합의 장으로 인도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만약 에드워드와 코니 둘 중 하나에게 죽음이 내려진다면 영화의 이야기는 틀어진다. 그러므로 사실 폴은 처음부터 아무것도 아니었던 셈이다. 아니, 그보다는 코니에게는 섹스를 제공하고, 에드워드에게는 살인을 유도하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즉, <언페이스풀>은 충분히 관음증의 시각으로 눈을 쾌락으로 유인한 뒤에, 도덕률의 법칙으로 불완전한 합의에 이르게 한다. 지금까지의 에이드리언 라인의 영화가 그렇듯 <언페이스풀> 역시 마치 쾌락의 함정에 빠져버린 주인공과 그/그녀를 둘러싼 위기국면으로 치닫는 영화인 것만 같다. 이미 가정은 균열되었으며, 쉽게 이어놓을 수 없는 간극이 생긴 것만 같다. 경찰서 옆에 세워져 있는 차에서 미래를 중얼거리며 영화는 불안하게 끝난다. 불륜을 소재로 결혼이라는 허약한 계약관계의 본질을 드러내고, 몸의 욕망을 빌려 정신의 사랑을 해체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영화는 그러나 이상한 메아리를 동시에 울린다. 분출되는 섹슈얼리티와 그로 인한 위기가 지배하는 에이드리언 라인식의 클리셰적 결말, 이라고만 단정짓기에는 부족한, 무언가 다른 독해가 요구된다. 명징한 독해 이외의 시선들이 남는다. 침묵의 외침, "가정을 사수하라!" 말하자면, 이 영화에서 ‘사랑’이란 무엇이 아니라, 어떤 역할이다. 에이드리언 라인의 영화에서 사랑 따위는 자리를 찾이할 곳이 없다고 말한다면, 과연 이 영화가 ‘사랑한다’는 의미전달 행위를 폴쪽으로 향하지 않고, 끝까지 아껴둔 채 에드워드에게만 향하게 하는 것은 또한 어떤 징후에 속하는 것일까. 에드워드가 아내와 헤어지지 않는 것은, 그녀가 폴에게 남긴 절교선언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전화로 폴에게 마지막 남기려던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코니와 폴의 관계는 끝내 불순한 불륜의 기억으로만 남게 된다. 코니는 폴을 처음 만난 그때를 회상하며, 택시를 타고 곧장 집으로 왔어야 했다고 후회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벌어진 그 불륜은 영화의 나머지 부분이 전할 수 없는 말초적 쾌락을 이미 시각적으로 만족시켰다. 그것으로 역할을 다한 것이다. 이것은 에이드리언 라인이 언제나 동어반복하는 것 중 하나이다. 그런 뒤에 그 불륜의 기억을 가지면서 에드워드와 코니는 미래를 설계한다. 불륜을 저지른 코니는 남편 에드워드에게 용서받고, 살인을 저지른 에드워드는 경찰에 잡히지 않는다. 둘 중에 벌을 받거나 피해를 보는 사람은 없다. 이제 다시는 그런 일을 벌이지 않으면 될 것이고, 또 그럴 것이라고 다짐한다. 따라서, 관음증의 쾌락은 성취되고, 윤리의 협약은 지켜진다. 마지막 남은 ‘사랑’이라는 담보물을 가지고,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면서, 균열적인 상태 그 자체로 멈춰 서버린다. 그럼으로써 이 영화는 오히려 불륜이 일으키는 죄악의 견본으로 제시되면서, 가정을 공고히 하는 판타지를 내포화하게 되는 것이다. 의도하지 않은 방식으로 다짐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에이드리언 라인 영화에 “불륜은 가라”라는 외침이 메아리처럼 맴돌고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지나친 독해의 자유일까?정사헌/ 영화평론가 taogi@freechal.com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

<언페이스풀>이 내포한 에이드리언 라인식 상투성(1)

스스로의 계보로 쌓은 자생적 클리셰들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영화를 맞부딪치는 순간, 그것을 비평적 언어로 접근해야만 하는 의무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곤혹스런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이에는 이라는 식으로 대응할 것인가, 말하자면 수려한 무관심으로 노가리를 풀거나 무섭게 찡그린 비난으로 씹어댈 것인가, 아니면 그 영화적 클리셰가 유도해내고 있는 비평적 언어의 클리셰들을 물리치기 위해 진땀을 흘리며 어떤 방식으로든지 최선을 다할 것인가. 즉, 영화에 부여되는 ‘명징한 독해’의 위험성으로부터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지금 에이드리언 라인의 <언페이스풀>이 그런 위치에 놓여 있는 대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이건 명징한 독해의 위험성으로부터 벗어나보기 위한 경험적 수난기이며, 그 시도에 관한 고백록에 가깝다. 바람, 바람, 바람-일탈의 귀환 에이드리언 라인은 잊혀져가던 감독이다. 돌이켜보건대, 그의 감각이 정점에 이른 것 같았던 <야곱의 사다리>에서조차 그는 CF의 개념으로 각 신을 이루어 한편의 영화를 완성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그럼으로써 그 영화에서의 베트남전에 관한 후유증은 어느 순간 현란한 이미지 스타일에 휩싸여 어디론가 증발해버리고 말았다. 그에게 육체의 욕망은 카메라의 동기이며, 그것이 춤이든지 섹스이든지 간에 그 감정의 흐름을 짧은 호흡을 따라 포착할 때만이 생동감 있게 살아 움직이게 된다. 결국 그는 마치 극단의 선택인 듯 <로리타>를 소재로 다시 돌아왔지만, 외부로부터는 피할 수 없는 사형선고를 다시 한번 언도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로드 샤브롤의 영화를 각색하여 만든 <언페이스풀>이 그 다음 영화가 되었다는 점은 그의 영화적 궤도가 별로 변한 것이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것은 또한 그에 대한 통상의 평가 역시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예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에이드리언 라인의 영화에 관한 ‘일반적인’ 독해의 의미에서, 그가 집착하는 것은 평온한, 또는 정상적인, 또는 굳건한 삶의 계약관계에 균열을 일으키는 섹슈얼리티의 융기과정이다. 인물들은 <나인 하프 위크> <위험한 정사> <은밀한 유혹> <로리타> <언페이스풀>에 이르기까지 역할을 뒤바꿔가면서 같은 위기를 반복한다. <언페이스풀>의 에드워드와 코니 역시 남부러울 것 없는 중산층 부부이다. 뉴욕 외곽에 살고 있는 그들 가정이 소개되고 난 뒤, 영화는 곧장 본론으로 입성한다. 시내로 쇼핑을 나간 에드워드의 아내 코니는 심하게 부는 ‘바람’에 넘어져 상처를 입고, 젊은 남자 폴에게 도움을 받는다. 택시를 잡아타고 곧장 집으로 갈 수도 있었던 코니는, 그러나 폴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는다. 세 번째 만남만에 그녀는 폴의 품에 안긴다. 그런데 도대체 이토록 빨리 코니를 침대로 이끄는 폴의 매혹은 어디에서 생겨나는 것인가. 코니의 일탈을 촉발시키는 원인은 무엇인가. 이것은 코니와 폴 사이에 놓이는 것(그 둘은 아무런 불화도 없으며 다툼도 없다. 진심으로 사랑하기까지 한다)이 아니라, 남편 에드워드와 정부 폴 사이의 구도에 놓인다. 남편 에드워드와 폴은 하나부터 열까지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현실적이며 가정적인 에드워드에 비해 폴은 낭만적이고 격정적이다. 주식시세의 오르내림에 관심을 쏟는 무기차량 판매상(무기차량 판매상! 이 희소한 직업을 에드워드에게 선사한 건 그와 폴의 거리가 더 멀어져야 했지 때문이다) 에드워드에 비해 중고서적 판매상인 폴이 코니에게 선사하는 것은 아름다운 문구가 박혀 있는 서적이다. 시내 외곽에 거주하면서도 전형적인 뉴요커의 삶을 살아가는 에드워드에 비해, 시내 한구석에 살고 있는 프랑스인은, 그녀에게 뉴욕에 세워진 샹젤리제 거리인 것처럼 일탈의 자유로움을 만끽하게 한다. 코니로 하여금 섹슈얼리티의 일탈을 감행하도록 하기 위해, 그것의 보장을 위해, 에이드리언 라인이 걸어놓은 유혹의 미끼는 ‘대조’이다. 이 대조의 양극이 한점에서 만나 엉클어질 때 사건은 발생한다. 침착하고 이성적인 에드워드가 폴의 격정적인 장소 안으로 들어서면서 긴장의 장력이 형성된다. 그리고 그 장소 안에 자신의 애정이 담겨 있는 유리장식을 보는 순간 살인이 일어난다.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

재심받은 <죽어도 좋아>,영상물등급위원회 15인의 견해 (1)

<죽어도 좋아>의 극장상영이 또다시 좌초됨에 따라 이를 둘러싼 논란이 더욱 불붙고 있다. 영화계 및 문화단체들은 8월27일 영상물등급위원회가 재심 결정에서도 <죽어도 좋아>에 제한상영가 등급을 부여하자 이해할 수 없다며, 회의록 공개를 요구하는 등 강하게 ‘압박’하고 나섰다. 회의에 참여했던 임정희, 박상우, 조영각 등 영상물등급위원회 위원들 또한 “등급위원들의 의사결정 근거들이 정당한가”라는 문제제기와 함께 사퇴의 뜻을 밝혔다. 이와 관련해 <씨네21>은 15인으로 구성된 등급위 위원의 <죽어도 좋아> 등급분류에 대한 각각의 견해를 위원 이름 가나다 순으로 싣는다. 인터뷰는 전화통화로 이뤄졌으며, 일부 위원의 경우 등급위가 발표한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며 자세한 언급을 피했다. 권장희(38·기독교윤리실천운동본부 총무) (각 위원들의) 성향을 분석하려는 것 같아서, 발언하고 싶지 않다. 회의과정에서 나왔던 제한상영 등급이 적절하다는 의견과 18세 등급이 적절하다는 의견을 정리해서 보도자료를 냈으니 그걸 참고해 달라. 김방옥(50·동국대 연극학과 교수) 토론을 통해 상호의견들을 확인할 수 있었고 그 과정이나 표결이 공정하게 이뤄진 만큼 등급위의 결정에 대해서는 존중한다. 개인적으로 18세 등급결정을 냈던 것은 신체의 특정 부위 노출에 관한 우려보다는 개별적인 작품의 맥락을 짚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사회 가치관이 많이 변해 있는 만큼 등급위도 그 흐름을 수용할 필요가 있으며, 세부 규정이 있긴 하지만 해석의 묘를 살려야 한다고 봤다. 김수용(73·영화감독, 대한민국예술회 회원) 나 자신 스스로 전향적인 시각으로 영화를 보고, 또 만들어왔다. 그러나 한국영화 83년사에 신체의 특정부위가 노출되고 구강성교를 거쳐 성행위로 직결되고 그것이 남녀의 실제상황인 경우는 없었다. 영화는 배우가 시나리오라는 허구를 감독의 연출로 연기해서 관객에게 감동과 실감을 주게 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 경우는 카메라가 장치되어 있고 그 앞에서 출연자들이 감독의 아무런 연출지시도 없이 임의로 연기하고 있다. 과연 극영화로서의 요건을 갖추고 있는가 검토할 문제다. 일반 극장에서 이 영화가 상영되기 위해선 더 큰 진통을 거쳐 사회적인 합의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김숙현(36·서울 서원초등학교 교사) 논란이 일어 재심까지 했지만, 표결 결과가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경향을 반영해주고 있다. (위원들 모두) 전문가는 아니지만 상식에 근거해서 의견을 냈다고 본다. 굳이 <죽어도 좋아>를 두고서 말하는 것도 아니고, 예외 또한 많지만 성이라는 것을 상품화해서 공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소견을 갖고 있다. 이 영화의 내용은 일견 합법적인 부부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해가 가겠지만, 다른 나라에서 전례가 없는 표현까지 등급위에서 허용해줄 순 없다. 70대의 삶을 굳이 그렇게 초점화하고 부각할 필요가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은밀한 것을 굳이 대중화할 필요가 있을까. 제한상영관이 빨리 생겼으면 한다. 노계원(63·삼성언론재단 연구위원) 등급을 매기는 기준은 비슷하지만 일정한 공간에서 다중이 보는 영화의 특성을 고려해서 비디오쪽이 더 관대한 편이다. 그런데 비디오에서도 성기나 체모 노출은 일체 안 된다. 제작하는 사람들도 감히 엄두를 못 낸다. 그들도 촬영 때 잠금장치 등을 이용해서 철저히 통제한다. 그런데 이 영화에선 성기가 나오고 거기에 펠라치오가 나온다. 완전히 포르노다. 등급위의 심의는 그 영화의 예술성이나 작품성을 고려하는 게 아니라 연령에 적합한 수준을 파악하는 것이지만, 그렇게 분류하기에는 어불성설이고 그래서 제한상영등급 의견을 냈다. 묵살당해온 문제를 부각시키는 것은 좋은데 현 등급분류상 불가능한 장면을 가지고 18세 등급을 요구하는 것은 우리나라 현실을 무시한 행동이다. 간접적으로 우회적으로 순화시켜서 충분히 묘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잖은가. 노인들의 성도 중요하지만, 손자뻘의 젊은이들이 보기에 노인들이 모두 색(色)에 빠져 있다고 볼 수 있는 위험도 있다. 박상우(37·게임평론가) 상영을 제한할 만한 어떠한 음란성이나 반사회성도 없다. 이후 다른 작품을 심의함에 있어서 기준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획일적인 잣대를 가져다대는 것은 등급위원의 역할을 방기하는 것이다. 자기 편하려고 영화를 죽일 순 없지 않나. 오정진(32·한국여성개발원 연구위원) 소위원회에서 성기노출 장면과 구강성교 대목이 일반인의 정서를 과도하게 해하기 때문에 제한상영등급 결정을 내렸다고 들었다. 내부 규정이 그렇다는 이유 외에는 논리적으로 왜 안 되는지를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했다고 본다. 법률에 있는 조항도 아니고 내부 규정이라면 사회적인 변화를 고려해야 한다. 앞으로의 사회적 파장에 대해서도 걱정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제한상영 등급을 주는 결정적인 근거가 될 순 없다. 그건 기존 논리에 집착하는 것이다. 어떤 식으로 그렸고, 또 어떤 느낌을 주는지 작품마다 다르며 등급위는 그때마다 판단을 내놓아야 한다고 본다. 문제시된 장면은 카메라 앵글을 봐도 다큐 형식이지 포르노가 아니다. 노부부의 여러 가지 생활의 단면들을 드러내기 위한 하나의 장치라고 봤다. 그 장면을 빼도 충분하지 않느냐는 의견이 있었지만, 일부러 감추는 게 더 이상한 것 아닌가. 유수열(63·여의도클럽 회장) 영상물은 소설이나 음악에 비해 대단히 구체적이다. 덜 은유적이어서 상상이나 해석의 여지가 없다. 가리워졌다거나 다른 앵글로 잡아서 간접적으로 묘사했다면 모르지만, 이번 경우는 그림으로 영상으로 그대로 남아있는 것 아닌가. 성 또한 향유되어야 할 예술이라고 생각하지만, 다 드러내 보이면 예술성이나 미학성은 사라진다. 피카소가 왜 필요한가. 사진 찍어놓고 예술이라고 하면 되지. 개인적인 입장이라면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겠지만, 난 국민의 보편적인 정서를 중요시하는 영등위원이다. 또 그러한 업무를 국가로부터 위탁받았다. 임정희(45·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지도위원) 등급위가 일방적인 결정권을 가져선 곤란하다. 등급위원들도 여론을 충분하게 살필 의무가 있다. 여러 차례 시사회와 토론회 자리에 참석해서 의견을 청취했고 그것에 전제해서 소위원회의 제한상영등급 판정이 부당하다고 느꼈다. 표결에 앞선 토론에서 음란물은 아니라면서도 관습적으로 내려오는 내부규정을 따라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는데 모순되는 발언이다. 규정은 시대나 상황에 따라 변할 수도 있고, 변해야 한다. 누구나 음란물이 아니라는 것에 동의하고 있다면, 그 지점에서 규정을 놓고서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새로 고민을 시작해야 하는 것 아닌가. 등급위 무용론에 동의하지 않지만, <죽어도 좋아>를 시발로 등급위의 위상과 기능에 관해 좀더 심도깊은 고민이 이뤄질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해 안타깝다. 장옥님(44·KBS 심의실 차장) 영화마다 심의기준이 달라지다보면 큰 혼란이 예상된다. 예술이냐 외설이냐를 가릴 수 없는 것이다. (규정상의 조항이) 마지막 보루라고 생각했고, 존중했다. 규정을 무시할 정도로 이 영화가 대단히 훌륭한 작품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물론 메시지를 볼 때 의미있다. 인터뷰를 보면 박 감독이 18세 등급을 받기 위해서 굳이 작품을 수정하지 않겠다고 강경하게 말했는데, 부분적인 편집이나 모자이크 등의 방법을 통해 타협점을 찾을 생각은 없는지 아쉽다.

신인배우상 수상자 문소리 인터뷰

제59회 베니스 영화제에서 자신의 두번째 영화 <오아시스>로 신인배우상(Marcello Mastroianni Award for Best Young Actor or Actress)을 수상한 문소리(28)의 기자회견이 8일 베니스 리도섬의 카지노 3층에서열렸다. 기자회견장에 모인 각국 150여명의 기자들은 문소리가 <오아시스>에서 보인 연으로 신인배우상의 영예를 안은 사실을 축하하며 큰 박수와 함께 함성으로 그를 이했고, 문소리는 약간 상기된 표정으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세계 언론은 문소리에 대해 높은 관심을 드러내며 비교적 짧은 시간에 진행되는수상자 기자회견치고는 많은 질문을 잇따라 쏟아냈다. --연기가 대단히 인상깊다. 특별한 준비 과정이 있었나. ▲이런 질문이 나올 것 같아서 많은 준비를 했다. “지금 모습이 연기이고 영화속의 모습이 진짜 모습이다”라고 말하라는 농담도 들었다. 뇌성마비 장애인들과 편한 친구가 되려고 노력한 끝에 실제로 편안한 친구가 됐다. 운동 등으로 유연성을 르기 위해 힘썼고 뇌성마비 장애인처럼 보이기 위해 많이 연습했다. 힘든 과정이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좋았던 시간이다. --유명배우 이름을 딴 상인 것을 알고 있나? 소감을 얘기해 달라. ▲이름을 알고 있으며 「해바라기」 등의 영화에서 본 적 있다. 3년 전 작고했다는데 유감이다. 그분의 상을 받게 돼 영광이다. --힘든 영화에서 힘든 역할을 연기했다. 이 상이 앞으로의 삶과 연기에 어떤 도움이 될 것 같나. ▲사실 지금 이런 큰 상을 받는 것이 부담스럽고 무겁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이런 상 받았던 것 다 잊고 <오아시스>를 만들었던 마음 자세로 임하겠다. 이 상이 앞으로 더 많은 시나리오가 들어오도록 만들어줄 것이라는 바람도 있다. 성균관대 교육학과 출신의 문소리는 대학시절 「노랑꽃」 등에 출연하면서 연기를 익혔고 2000년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에서 주인공 영호(설경구)의 옛 애인순임 역으로 스크린에 처음 얼굴을 내밀었다. (베니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