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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2003)

[추모기획] 비디오아트의 창시자 백남준을 추모하다

한국이 낳은 비디오아트의 창시자 백남준이 지난 1월29일(한국시각 1월30일) 미국 마이애미에서 숨을 거뒀다. 예술가로서는 한창 나이라 할 수 있는 일흔네살에 ‘아리랑’과 ‘엄마’를 흥얼거리며 먼 이국에서 눈을 감았다. 십대 후반에 조국을 떠나 일본과 독일과 미국을 떠돌며 지구적 예술가(글로벌 아티스트)로 살았던 그는 말년에 고향을 그리워하며 한국에 돌아가기를 원했다. 경기도 용인에 자신을 위해 세워질 백남준 미술관이 일종의 종착역이었으나 아쉽게도 개관이 늦어지고 말았다. 백남준은 전세계에 통하는 브랜드를 지닌 거의 유일한 한국 출신 예술가였다. ‘비디오 예술의 선구자’, ‘전위 음악가’, ‘행위 예술가’라는 소개 뒤에 따라붙던 ‘동양에서 온 문화 테러리스트’라는 과격한 별명은 그에겐 훈장이자 별점이었다. 서구예술의 우월주의에 맞서 뚝심으로 ‘백남준표 예술’을 밀고 나간 그는 아시아 또는 한국 문화의 가능성을 낙관하고 있었다. 그가 1995년에 쓴 다음 글은 이런 믿음을 잘 보여준다. “우리는 비빔밥의 미학이란 큰 장점을 가지고 있다. 걸쭉하고 청탁병탄(淸濁倂呑)할 배짱을 갖고 있는, 헐렁헐렁 살 수 있는 유머도 갖고 있다. 우리의 민속음악, 싱코페이트된 3박자의 율동은 일본 중국을 떠나 카자흐스탄에 직결하고 한국 색시의 색동무늬는 무지개의 스펙트럼의 과학적 분석으로서, 몽골 티베트를 거쳐 또 어느 개방적 공간을 응시하고 있다.” 1996년 뇌졸중으로 반신마미가 온 뒤 휠체어 신세를 져온 그는 최근 당뇨병 후유증으로 한쪽 시력까지 잃은 상태였다. 걱정하는 친구에게 “일목요연, 외눈깔이라 더 잘 보인다”고 농담을 했다는 그다. “나는 가난한 나라에서 온 가난한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항상 유쾌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그답다. 죽는 순간까지도 그는 명랑했을 것 같다. 특유의 헐렁한 멜빵 바지에 손가락을 걸고 “2012년(그가 스승으로 모셨던 전위음악가 존 케이지 탄생 100주년 되는 해)까지는 살아야 내가 케이지를 추모하고 환생시키는 일을 해볼 텐데”라고 웃었을 것 같다. 빌 클린턴 대통령을 만났을 때 바지가 흘러내려가게 해서(물론 속에는 아무것도 안 입고) 클린턴의 섹스 스캔들을 풍자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던 그때처럼, 미국 기자가 평생 예술 동지로 작업했던 여성 첼리스트 샬럿 무어맨과 혹시 섬싱이 있었는지 묻자, ‘차 안에서 한번 있었던 것 같은데, 내 마누라한테는 비밀로 해주소’ 했다는 그때처럼, 그는 장난기 띤 얼굴로 잠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 제목을 빌려 이렇게 인사하고 싶다. ‘바이 바이 미스터 백.’ ‘삼성’과도 바꿀 수 없는 ‘백남준’ ‘백남준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큰 광대 하나가 한판 잘 놀다 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통 크고 야심만만하며 영리하고 치밀했던 꾀돌이이자 큰 무당이었다. 1969년 그는 자신이 앞으로 해나갈 작품의 설계도를 서구미술사 전체를 예의 그 비빔밥의 미학으로 비벼버린 다음과 같은 말로 설명했다. “레오나르도(다 빈치)처럼 정확하게/ 피카소처럼 자유롭게/ 르누아르처럼 화려하게/ 몬드리안처럼 심오하게/ 폴락처럼 격렬하게/ 그리고 제스퍼 존스처럼 서정적으로.” 도대체 어떤 미술가가 이렇게 우주적인 예술관을 꿈꿀 수 있단 말인가. 백남준의 야심과 희망은 웬만큼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콜라주(뜯어붙이기) 기법이 유화(물감)를 대체한 것처럼, (TV)브라운관이 캔버스를 대신할 것이다”라고 내다봤던 그의 예언이 대부분 들어맞았다. 그가 1960년대에 시작한 비디오아트는 불과 20여년 만에 세계 미술의 총아가 되었다. 지금 우리는 세계 미술사의 한장에 한국 출신 미술가의 이름을 올리는 역사적 순간을 보고 있다. 고인을 누구보다 앞서 이해하고 협력자로 나섰던 존 핸하르트(뉴욕 구겐하임미술관 수석 큐레이터)는 1970년대 초반에 백남준을 처음 만났을 때 다락방 작업실에서 그가 한 말을 잊지 못한다고 말한다. “존, 앞으로는 비디오 설치작품이 예술세계를 장악할 거야. 두고 봐, 우리가 해낼 거라고.” 존 핸하르트는 백남준을 ‘한국이 세계에 준 선물’이라고 불렀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셰익스피어는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말했다면 노무현 대통령도 이 한마디쯤은 할 수 있겠다. “백남준은 삼성과도 바꾸지 않겠다.” “예술은 고등사기다” 백남준이란 이름과 작품세계가 정작 한국에 알려진 건 얼마 안 된다. 오히려 백남준의 죽음이 한국에서 그의 예술세계를 제대로 이해하기 시작하는 출발점이 되리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1963년 최초의 비디오 아트전을 독일에서 열고, 70년대 이후 휘트니미술관의 회고전 등 미국에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했지만 조국은 그의 진가와 명성을 알아보지 못했다. 한국인에게 백남준이란 예술가가 각인된 건 1984년 정초에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된 <굿모닝 미스터 오웰> 덕이었다. 세계 주요 국가에서 동시 방영된 이 프로그램으로 그는 스타가 되었다. 전세계에 즉각적으로 동영상을 방송할 수 있는 힘과 잠재력이야말로 그가 추구한 ‘더 빠른 테크놀로지를 통해 움직이는 소통의 물결’이었다. 더구나 그해 6월 35년 만에 귀향하면서 연 기자회견에서 그는 길이길이 남을 명언을 던졌다. “전위 예술은 한마디로 신화를 파는 예술이지요. 자유를 위한 자유의 추구이며, 무목적한 실험이기도 합니다. 규칙이 없는 게임이기 때문에 객관적 평가란 힘들지요. 어느 시대건 예술가는 자동차로 달린다면 대중은 버스로 가는 속도입니다. 원래 예술이란 반이 사기입니다. 속이고 속는 거지요. 사기 중에서도 고등 사기입니다. 대중을 얼떨떨하게 만드는 것이 예술입니다.” ‘예술은 고등사기’라는 백남준식 어법은 수없이 인용되고 독해되면서 여러 해석을 낳았다. 사람들이 무슨 말인가 싶어 난리를 치고 떠들썩한 바로 그 상황, 그 정경이야말로 백남준이 원한 사기였을지 모른다. 그는 “모든 상식과 틀은 사람을 ‘바보’로 만들기 때문에 수시로 파괴되고 변해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세계를 새로운 방식으로 보고 이해하려는 노력으로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만들고 도전을 거듭했다. 우리 자신과 우리가 몸담고 있는 세계에서 안전하게 보장된 재현 방식을 깨고 나와 이를 다르게 이해하고 더 나은 것으로 변화시키려는 의지의 화신이 그였다. 그 모든 노력과 장치와 구도가 ‘고등사기’가 아니겠는가. 그에게 삶이란 자신이 붙인 작품 제목처럼 ‘글로벌 그루브’(범지구적인 한판 놀이)였다. 백남준은 텔레비전을 자신의 행위예술이나 다각적 탐구와 연결해 낯설고 생소한 것으로 만들었다. TV는 의자가 되고, 젖가리개도 되고, 십자가도 되고 부처도 됐다. 백남준은 이미 결정되고 제한된 매체라는 텔레비전에 대한 고정관념에 반기를 들었다. 백남준에게 TV는 깊이 탐구해야 할 우리 시대의 중요 개념이었고 커뮤니케이션의 핵심 매체였으며 퍼포먼스의 대상이었다. 그는 한 예로 ‘침묵의 TV 방송국’을 제안했다. 이것은 일종의 지식인을 위한 TV 방송국으로 대부분의 방송 시간 동안 ‘무드 음악’과 같은 느낌의 아름다운 ‘무드 미술’만 내보내는 TV다. 그는 이 방송국을 “비발디의 TV판이랄까 혹은 전자 안정제로서 모든 시청자를 위로하는 빛의 미술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오늘날 환경의 본질은 영화나 회화보다는 TV를 통해 잘 드러난다고 봤다. “TV, 그 작은 전자들의 무질서한 움직임이 바로 오늘날의 환경인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88올림픽을 기념해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 세운 <다다익선>에 그는 이런 말을 달았다. “방송이란 것은 물고기 알과 같은 것입니다. 물고기 알은 수백만개씩 대량으로 생산되나, 그 가운데 대부분이 낭비되고 수정되는 것은 얼마 안 되죠. 84년 <굿모닝 미스터 오웰>은 수억의 세계 인구를 상대로 발신한 것이었는데, 이 발신의 내용이 얼마나 수정되었는지는 그야말로 다다익선(많을수록 좋다)입니다.” 백남준 비디오아트의 핵심은 비디오테이프의 내용이다. 백남준은 텔레비전이 단순한 가전제품이 아니며 일방적으로 정보를 배포하는 형태로 그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어느 누구라도 집에서 점점 늘어가는 여가를 이용해 자신의 텔레비전 수상기를 수동적인 소일거리가 아니라 적극적인 창조의 매체, 의사소통을 위한 양 방향의 채널로 이용해 수많은 가능성을 지닌 매개체로 발전시킬 수 있다”고 부추겼다. 그가 창조한 획기적인 동영상 처리기법을 보면 백남준이 왜 독립영화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지 알 수 있다. 마지막 가는 길도 퍼포먼스 백남준은 죽음 이후까지도 한바탕 행위예술로 마무리해 그다운 풍모를 보였다. 2월3일 미국 맨해튼 매디슨 애버뉴의 프랭크 캠벨 장례식장에서 열린 장례식 뒤 화장된 유해가 한국, 미국, 독일 3개국에 나뉘어 안치되는 것이다. 자신에게 목숨을 주고 사상의 뿌리가 된 한국, 정신적 스승인 존 케이지와 요제프 보이스를 만났고 실험미술집단인 ‘플럭서스’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져 예술가의 길을 열어준 독일, 백남준 예술이 활짝 꽃필 수 있는 무대가 된 미국, 세곳에 이 세상에 왔다간 흔적인 한줌 유골을 분산하는 퍼포먼스가 이어진다. 감동과 신화를 기다리는 대중을 위해 그는 죽어서도 또 한편의 비디오아트를 펼쳤다. 예술의 역할이 사회적이어야 한다는 그의 신념이 사후에 더 빛을 발한다. 한국을 빛내고 간 백남준은 “나는 한국에 대한 애정을 절대로 발설하지 않고 참는다. 한국을 선전하는 길은 내가 잘되면 저절로 이루어진다”고 말했다. 그가 우리에게 남긴 글을 읽으며 치열하게 타올랐던 그의 전위정신을 기린다. “한국에서는 말을 앞세우는 국수적인 애국자가 늘 이기는 것 같다. 세계주의자가 늘 패배하는 나라에서는 문화의 시야가 좁아진다. 이제는 군사독재도 사라졌으니 한번 모두가 뭉쳐 뛰어볼 만하지 않은가. 한민족은 기마민족의 뿌리를 갖고 있기 때문에 한곳에 정착하기보다는 자꾸 뻗어나가야 한다.”

[해외 타이틀] 정치적 발언의 수단으로서의 다큐멘터리

에밀 드 안토니오란 낯선 이름의 다큐멘터리 작가는 미국 좌파 지성사의 흐름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이다. 부유층 출신으로 아이비리그의 명문대를 졸업한 그가 부두노동자 등의 노동자 이력을 거쳐 60년대 중반, 거세게 몰아치는 서구 지성사의 소용돌이 속에 내던진 다큐멘터리는 당시의 급박했던 시대 상황과 지성의 흐름을 증언하는 정치·사회적 유산으로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1964년 발표된 첫 작품 <포인트 오브 오더!>는 매카시즘의 절정기에 벌어졌던 상원의원 매카시와 미 육군성간의 미 육군 내 공산주의자 색출에 관한 청문회에 대한 다큐멘터리이다. 매카시 자신이 키워낸 매카시즘이란 공룡 앞에 스스로 자멸해가는 과정이 미국 전역에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었던 역사적 사실을, 텔레비전 자료를 재편집하여 하나의 다큐멘터리 작품으로 완성해낸 <포인트 오브 오더!>는 매카시즘의 진실과 그 거대한 사기극에 동참했던 인물들의 추악함을 까발리는 생생한 기록이다. 더구나 형식 면에서도 다큐멘터리가 실제 촬영이 아닌 기존 영상 자료의 효과적 편집을 통해서도 작가가 원하는 시선과 주장을 전달할 수 있다는 새로운 선례를 남기기도 했는데, 이는 시대를 앞서간 베트남전에 대한 탁월한 다큐멘터리 <돼지의 해>로 연결된다. 베트남전에 대한 미국의 개입이 최고조에 달한 1968년에 발표된 <돼지의 해>는 베트남전에 대한 대중의 의식이 미 정부의 프로파간다에 놀아나고 있을 무렵, 전쟁의 기원과 전개를 베트남의 역사적 흐름을 바탕으로 당시의 국제·정치적 맥락에서 정확하게 짚어냄으로써 베트남전의 더러운 이면을 만천하에 드러낸 작품이다. 동시에 전쟁의 감상적 측면이나 역사적 사실만을 나열하는 통상의 전쟁 다큐멘터리와 달리 정확한 정치적 의도를 드러냄으로써 정치적 발언 수단으로서의 다큐멘터리의 가능성을 충분히 입증한 작품인데, 보고 있자면 행여 그의 정치적 노선에 동조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역사적 진실을 추구하는 다큐멘터리 작가로서의 열정과 방법론에 대해선 수긍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걸작이다. 두 작품의 DVD로서의 질은 보잘것없지만 출시만으로도 DVD라는 매체가 영상기록의 주류로 자리잡고 있음을 방증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게다가 생전의 드 안토니오의 음성을 편집하여 음성해설로 삽입한 것은 작품 자체의 역사·정치적 의미를 좀더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는 기획이라 평가할 만하다. 이쯤해서 드 안토니오가 촬영감독 하스켈 웩슬러와 공동 제작한 70년대 급진적 학생그룹에 대한 용감한 다큐멘터리 <언더그라운드>의 DVD 출시도 기대해봄직하다.

2005년 각종 일본영화상을 휩쓴 <박치기!>의 이즈쓰 가즈유키 감독

키네마준보, 마이니치 영화콩쿠르, 블루리본이 한목소리로 선택한 2005년의 일본영화는 <박치기!>다. 각종 영화제의 작품상과 감독상을 휩쓸고 있는 <박치기!>의 이즈쓰 가즈유키 감독은 독설가로 명성이 높다. TV에서 영화를 소개할 때마다 “저질, 최악”이라는 단어를 서슴지 않는 그가 자신의 신작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했다. 고등학교 시절 영화동아리를 만들어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라는 학원분쟁을 소재로 한 영화를 찍었고 <아이들의 제국>과 <키시와다 소년우연대>처럼 성장기 소년 소녀에 집중했던 이력, <임진강>을 들으며 자란 나라 출생인 것을 감안할 때 이즈쓰 가즈유키에게 <박치기!>는 각별할 수밖에 없다. 현해탄 건너편의 그와 주고받은 <박치기!>와 재일조선인에 관한 서면 인터뷰. -당신은 핑크무비로 영화를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 구로사와 기요시, 수오 마사유키, 오스기 렌, 에모토 아키라 등 수많은 일본 영화인들이 당신처럼 영화를 시작했는데 그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부탁한다. 당시에는 어떤 심정이었나. =하루빨리 넓은 바다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어떻게든 일반 영화를 찍고 싶었는데 당시에는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마땅한 수단이 없었다. 1975년 핑크영화 <간다, 간다 마이트가이>로 데뷔한 뒤 묵묵히 경력을 쌓다가 1980년 데뷔작 <아이들의 제국>을 찍었다. -당신은 평론가로도 활발히 활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창작자(감독)와 비평가를 겸하기 때문에 갖는 장단점에 대해 설명을 부탁한다. =특별한 장점이나 단점은 없다. 그리고 나는 평론가가 아니다. 내가 방송에서 영화를 소개하는 일은 그 영화의 특성을 이야기하는 정도이다. 덧붙이면 개별 작품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요소나 그 영화의 관점을 설명할 따름이다. 굳이 말하자면 텔레비전을 무대로 영화와 놀고 있는 것이라고 할까. (웃음) -나라 출신인 당신이 교토를 배경으로 한 <박치기!>를 만든 일은 매우 자연스러워 보인다. 1968년을 배경으로 한 영화이므로 원작자 마쓰야마 다케시처럼 당신도 고등학생이었을 텐데 당신이 기억하는 그 시절의 실제 상황은 어떠했나. =전세계가 불타는 시대였다.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일본 간사이 지방에서도 정치·사회적으로 큰 파고가 일었다. 나는 당시 아직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그러한 세계와 일본의 역동성을 신문으로 보고 느끼기만 했던 아이에 불과했다. -<박치기!>에서도 짙게 반영되는 대한민국, 북한, 일본이 가진 정치·문화적 관계에 대한 개인적 견해가 궁금하다. =현재는 상당히 이상한 삼각관계다. 삼국의 문제는 극동아시아에서도 가장 중요한 사안이다. 전쟁은 끝났다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당시 상황은 변하지 않았고 우리는 그 자리에 남겨져 있다. 일본이 미국만 바라보지 말고 한국, 북한을 포함한 삼국에 대한 실질적인 고민을 해야 한다. 그래서 제로에서 다시 시작했으면 한다. 일본은 가여운 과거에만 사로잡혀 있어서는 안 된다. 아직도 표면적이고 일방적인 외교를 고수하는 일본은 한국의 북한에 대한 햇빛정책에도 전혀 동참하지 못하고 있다. 서로를 인정하고 상대에 대한 이야기를 확인하면서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게 바로 젊은 세대다. -<박치기!>에서 안성, 방호, 재덕은 조선인임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냉대받고 머리가 터지도록 싸워야 한다. 1세대가 아니라 실제 조국을 경험하지도 못한 그들이 그럼에도 자신의 조국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민족교육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 조선인학교는 자기 나라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했다. 전후 일본의 조선인 사회에서는 그렇게 학교를 설립하고 교육을 강화하자는 운동이 있었다. 물론 그렇지 못한 환경에 처한 사람도 있었다. 그것이 <박치기!>에서는 주인공 안성이 조국의 축구국가 선수가 되겠다는 의지로 발전한다. -<박치기!>에서는 노래 <임진강>과 경자의 플루트 연주로 대표되는 음악이 매우 구체적인 매개물로 작용한다. 한편 축구는 하나의 상징이나 이데아처럼 스쳐 지나간다. 축구선수인 안성이 월드컵을 꿈꾸는 점을 감안하면 단순한 배경으로 보긴 어렵다. 이 점에 대해서 설명을 부탁한다. =원래 노래 <임진강>을 테마로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서 그 강을 뛰어넘을 것인가 하는 것이 <박치기!>의 테마다. 축구에 관해서는 영화에서 더 자세하게 다루면 또 다른 주제가 될 가능성이 있었다. 그것은 <박치기!>와는 또 다른 이야기다. -젊은 일본 감독이나 배우 중에서 장래가 기대되거나 현재 주목하고 있는 후배가 있다면 누구인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일본에서는 현재의 일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영상으로 이야기하는 작가가 적다. 영화를 봐도 일본이 어떤 나라인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작가다운 작가나 영상시인으로서의 작가가 줄어들었다. 그나마 사카모토 준지, 마쓰오카 조지 등이 그런 방향으로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작품 내적으로는 합당하다고 여겨지지만 한국 관객은 <박치기!>의 주인공들이 사용하는 조선어에 낯설어할 것 같다. <박치기!> 제작 당시 조선어가 가능한 재일 조선인이나 한국인 배우를 주연급으로 기용할 생각은 없었나. =<박치기!>에는 동포배우도 출연하지만 메인이 아니다. 우연히 그렇게 됐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극중에 사용되는 한국어는 그 지역사회를 배경으로 한 한국어다. 현재의 한국어와는 차이가 있고 일본어와 혼성된 혼합어라 할 수 있다. 현재 한국의 언어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역으로 그 차이점을 관객이 느껴줬으면 좋겠다. -이제까지 만든 당신의 전작 중에서 개인적으로 애착이 가거나 흡족한 작품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 그에 대한 이유도 설명해주기를 바란다. =특별히 없다. 전부 불만족스럽다. <박치기!>도 90점 정도라고 할까. 만족이란 불가능한 일이다. 어떤 영화감독이 자신의 작품에 만족한다면 다음 작품을 찍을 수가 없다. 항상 부족하기 때문에 다음 작품을 찍는 것이다. 감독이란 원래 그런 직업이다. -당신은 현장에서 매우 엄격하고 불같은 감독으로 유명하다. 젊은 배우가 많았던 <박치기!>에서는 어떠했나? 사와지리 에리카는 한번도 혼나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그 이유가 궁금하다. 반대로 가장 많이 혼난 배우가 있다면. =여배우한테는 엄격하지 않다. 여배우에게는 늘 얌전히 대한다. 왜냐하면 여배우에게 엄격히 행동하는 일은 아무런 이득이 없기 때문이다. 여자와 아이에게 얌전히 대하는 것은 인생의 순리이자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다. 대신 남자에게는 엄격하게 한다. 촬영현장에서도 남자한테는 항상 욕을 하는 편이다. 그것도 세상의 이치니까. -지나간 과거와 역사를 되돌아보며 자유와 평화를 갈구하는 젊은이들을 다룬 <박치기!>가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진심은 무엇인가. =전쟁과 평화를 보여주고 싶었다. 인간은 원래 끊임없이 전쟁을 하면서도 평화를 원한다. 나는 애국심을 표현하고 싶지 않았다. 나라를 지키거나 부자가 되는 방법도 그려내지 않는다. 뭔가에 동화하거나 오랫동안 집착하는 일도 내세우지 않는다. 다만 그러한 모든 것이 사라져가는 삶의 과정에서도 살아남는 것이 ‘신뢰’인 것 같다. 그것이 유일한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퀴즈로 보는, 뱀파이어에 관한 잡식백과 [2]

11. 1979년 스탠 드라고티 감독의 <드라큐라 도시로 가다>는 흡혈귀 코미디로 대박을 터뜨렸다. 드라큘라 역으로 캐스팅된 조지 해밀턴이 벨라 루고시 흉내를 내며 드라큘라 백작을 코믹하게 패러디했다. 그 상황이 아닌 것은? ① 밖에서 늑대 떼가 울부짖자 드라큘라 왈, “어둠의 자식들이여…, 시끄럽다!!” ② 루마니아에서 관이 도착하지 않아 연미복에 망토 차림으로 할렘을 헤매는 드라큘라. 한 청년이 “어이, 멋쟁이 백인 아저씨 어디 가시나?” 하자 드라큘라 왈, “난 백인이 아니다. 난 루마니아인이다!” ③ 연극 분장실의 드라큘라 여자에게 “내가 그 유명한 뱀파이어다!” 하자… 여자 왈, “알았으니까 화장이나 좀 지워요. 청소도 하고.” ④ 디스코클럽에서 만난 여자를 따라 지저분한 그녀의 아파트에 간 드라큘라. 여자가 뭐 필요한 거 없냐고 묻자 드라큘라 왈, “빗자루.” 정답 ③: 1935년 벨라 루고시 주연의 <마크 오브 더 뱀파이어>에 나오는 상황이다. 12. 뱀파이어와 관련한 다음 인물들 중에서 남자를 고르시오. ① <블러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의 사야 ② <블러드 플러스>의 하지 ③ <헬싱>의 인테그랄 윈게이츠 헬싱경 ④ <트리니티 블러드>의 카테리나 스포르차 정답 ②: 해당 애니메이션을 못 본 사람이라면 ②③번 사이에서 갈등했겠으나, 놀랍게도 인테그랄 윈게이츠 헬싱경은 여자. <블러드 플러스>에서 소리소문없이 나타나 (미소녀) 사야를 지켜주는 신비의 인물. 고로 하지는 당근 남자다. 그래야 그림이 되는 것이제~. 13. 다음은 각 영화나 만화에서 피가 사용된 목적을 설명한 것이다. 잘못된 것은? ① <블러드 플러스> 사야의 피: 뱀파이어 체내에 주입하여 조직을 파괴 ② <피안도> 인간의 피 일정량 이상을 섭취하여 악귀로 변하게 유도 ③ <드라큘라 2000> 드라큘라의 피: 반 헬싱이 스스로 혈관에 주입, 생명을 연장 ④ <흡혈희 미유> 뱀파이어의 피: 인간의 피를 빠는 신마를 제거하는 데 사용 정답 ②: 마쓰모토 고지의 만화 <피안도>는 미야비라는 뱀파이어에 의해 마을 전체가 흡혈귀화 된 섬 ‘피안도’에 갇힌 주인공 아키라 일행의 서바이빙 일대기를 담고 있다. <피안도>에서는 흡혈귀화 현상이 피를 통해 전염하는 일종의 병으로 설정되었는데, 피를 빨리는 것만으로는 흡혈귀로 변하지 않지만 상처나 입 등을 통해 몸속에 피가 침투되었을 경우 흡혈귀로 변한다. 이 흡혈귀들은 사람과 같이 음식을 먹고 사는데, 이들에게 인간의 피는 식량이 아닌 일종의 약으로 기능한다. 오랫동안 인간의 피를 마시지 못한 흡혈귀는 변태의 과정을 거쳐 이성도 감정도 없는 악귀로 변하기 때문에, 악귀로 변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인간의 피를 섭취한다는 것. 참고로 <블러드 플러스>의 사야는 특수한 뱀파이어로, 사람의 피를 빨지 않고도 살며 그녀의 혈액은 일반 뱀파이어의 몸에 들어가면 순식간에 조직 경화를 일으킨다. 사야는 자신이 사용하는 검에 자신의 피를 흘려 뱀파이어를 벤다. <흡혈희 미유>는 사람의 피를 빠는 ‘신마’라는 존재가 있고, 뱀파이어는 이 존재를 제거하는 존재로 설정되어 있다. 뱀파이어들은 자신의 피를 무기로 신마를 퇴치한다. 14. 다음 그림은 <피안도>에 나오는 상황이다. 일행이 도망하던 중, 까마득한 계곡 사이에 걸친 위태로운 다리를 만난다. 뒤에는 악귀가 쫓아오고 있다. 아츠시는 일행들을 먼저 다리를 건너게 하고 악귀가 닥쳐오자 홀로 남아 대적한다. 악귀를 막아선 아츠시 왈, “이 앞으로는…” “아무도 못 간다!” 자, 이 상황에서 연상되는 영화와 악귀의 모습에서 연상되는 화가의 이름을 바르게 짝지은 것은? ① <스타워즈: 시스의 복수>의 반 고흐 ②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의 에드바르트 뭉크 ③ <반지의 제왕: 반지원정대>의 히에로니무스 보슈 ④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의 제임스 앙소르 정답 ③: 이 상황은 간달프가 발록이라는 고대의 악마를 막아서는 상황과 매우 유사하며, <피안도>의 악귀는 히에로니무스 보슈의 지옥도에 등장하는 괴상한 생물들과 무척 닮았다. 15. 다음 중 상황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보기>와 가장 유사한 것은? <보기> 중세의 신학자들은 일반인들로 하여금 신을 믿고 따르도록 하기 위해서는 신을 강조하는 것보다 오히려 악을 강조하고 구체화하는 편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실례로 전염병을 신에 거스르는 악마의 소행으로 연결하는 해석은 민심을 유일신에게 결집시키는 데 효율적으로 활용되었다. ① 결국 마녀광란이 지난 실제적인 의미는 중세 후기의 위기에 대한 책임을 교회나 국가에서 인간의 형태를 취한 가상의 괴물들에게 전가했다는 데 있다. 소외되고 영세화된 대중들은 부패한 성직자들이나 탐욕스런 귀족들을 저주하는 대신 미쳐 날뛰는 악마들을 저주하게 되었다. -마빈 해리스 <문화의 수수께끼> 중에서 ② 시체의 부패나 손상에 관한 이해할 수 없는 일들, 배가 부풀어 오르거나, 입에서 피를 토한다거나, 관 속에서 자세를 바꾸거나, 살이 잘려나가 뼈가 노출되거나… 그러한 변화들은 미생물의 분해작용 때문이거나 대형 육식동물 또는 곤충 같은 청소동물 때문이었지만, 그들은 미생물을 볼 수 있는 방법이 없었고, …시체가 누군가에 의해 또는 스스로의 의지로 괴물이 되어 다시 태어났다고 생각하게 되지. -오시이 마모루 <야수들의 밤> 중에서 ③ 이는 이 지역 설화에도 나온 내용이고, 앞서 말했듯 설화와 민담은 역사의 수수께끼를 푸는 데 늘 중요한 단서가 된다. 예를 들면 쿠르테아 데 아르제슈의 한 유서깊은 교회에서는 신자들이 예외없이 제단의 오른쪽 특정 지점에 서 있으려 했는데, 이전 세대 모두 그랬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를 궁금하게 여긴 젊은 고고학자가 바닥을 파헤쳐보았고, 그곳에서 왈라키아 초기 영주의 무덤이 나타났다. -레이몬드 맥널리·라두 플로레스쿠 <드라큘라 그의 이야기> 중에서 ④ 세상 사람들은 특수한 환경 속에서만, 특수한 정신상태 속에서만 그 무도한 행위(살인)를 저지를 수 있다고, 어떻게 해서라도 생각하고 싶은 거네. 다시 말해 범죄를 자신들의 일상에서 분리하고, 범죄자를 비일상의 세계로 내쫓아버리고 싶은 거지.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들은 범죄와는 인연이 없다는 것을 암암리에 증명하고 있을 뿐일세 … 범죄자는 평균에서 일탈한 자로 파악되지만 평균이란 괴물은 존재하지 않아. -교고쿠 나츠히코 <망량의 상자> 정답 ①: 보기와 ①의 내용은 권력을 가진 자에 의해 상황이 왜곡·조작되어 편할 대로(일종의 프로파간다로써) 이용되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16. 다음 중 뱀파이어 역을 맡은 적이 없는 사람은? ① 게리 올드먼 ② 톰 크루즈 ③ 빌 나이 ④ 콜린 패럴 정답 ④: ③번에서 잠깐 아리카리 하셨을 수도 있겠다. <러브 액츄얼리>의 퐝당 록 가수만 떠올리고 빌 나이를 우습게 보진 마시라. <언더월드>에서 기품과 카리스마 넘치는 뱀파이어 제왕이었거늘. 17. 가와지리 요시아키의 극장판 애니메이션 <뱀파이어 헌터 D>는 현상금을 받고 뱀파이어를 뒤쫓는 뱀파이어헌터들을 따라 전개된다. 다음은 <뱀파이어 헌터 D>에 등장하는 헌터들을 비슷한 계열의 무기를 쓰는 뱀파이어헌터와 연결한 것이다. 연결이 잘못된 것은? ① D - <블러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의 사야 ② 보르고프 - <블레이드3>의 아비게일 ③ 레일라 - <헬싱>의 아카드 ④ 그로브 - <트리니티 블러드>의 트레스 신부 정답 ④: D와 사야는 모두 칼을 사용한다. 보르고프와 아비게일은 석궁이나 활을 쓴다. 레일라와 아카드는 은탄환이 든 총이 주무기. <트리니티 블러드>의 기계신부 트레스 신부 역시 권총을 사용하지만, 그로브는 해머형 말뚝을 휘두른다. 18. 아카드가 인간 세레스를 흡혈귀로 만들기 직전 했던 말은? ① 보통은 이럴 때 눈을 감는 거다. ② 너 여자 맞니? ③ 다음 기회에. ④ 고통은 잠깐이요, 생명은 영원하리라. 정답 ①: 아, 글쎄, 이 멋쟁이 아저씨 정말 저렇게 말했다지. 19. 아카드의 주요 기술이 아닌 것은? ① 벽 통과하기 ② 환각술 ③ 갈기갈기 찢어진 몸 도로 붙이기 ④ 복화술 정답 ④: 우아하고 자존감 높은 뱀파이어헌터 아카드는 뱀파이어이면서도 뱀파이어를 사냥하며, 저질 뱀파이어들이 명예를 실추하는 꼴을 못 본다. 뱀파이어는 안개나 공기로 변할 수 있으므로 벽을 통과해 나타나는 것은 예사이며, 카리스마 넘치는 말솜씨를 비롯 각종 환각술로 목표물의 전의를 상실시킨다. 걸레가 된 아카드의 몸이 도로 붙는 데는 몇 초도 안 걸린다. 그렇지만 아카드가 뱀파이어들에게 일종의 텔레파시를 보낸다고 해서 그것을 복화술이라고 볼 수는 없겠지. 20. 다음은 뱀파이어에 관한 속설이다. 틀린 것을 고르시오. ① 한국의 한 형사가 모기에 물린 뒤 뱀파이어로 변했다는 사례가 전한다. ② 프란체스카라는 이름의 여자 뱀파이어를 만났을 때 마늘이나 십자가, 성수 등으로 위협하는 것은 의미가 없으며, 그녀는 심지어 태양에서도 버젓이 걸어다니니 반드시 고스톱을 치자고 하여 승부를 내야 한다. ③ 흡혈귀는 숫자 강박증 환자다. 묘지에서 마을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양귀비 씨를 뿌려두면 그걸 다 세느라 마을까지 오지도 못한 채 새벽을 맞게 된다. ④ 일본에는 호스트바에서 일하며 나름대로 탐정 노릇을 하는 200살 먹은 흡혈귀가 있다. 정답 ② 프란체스카는 고스톱 중독자이므로 자칫 고스톱을 치자고 했다간 승부를 내기는커녕 죽을 때까지 함께 고스톱을 쳐야 할 가능성이 높다. 수나 원장 언니처럼 노련하지 못할 거라면 절대로 취해선 안 될 방책. 참고로 ③의 내용은 루마니아에서 전해오는 속설. ①은 루마니아 모기에 물린 뒤 뱀파이어가 된 ‘나도열’에 관한 설명, ④에 설명된 뱀파이어는 이름이 ‘스오’로, 여고생에게 매일 무릎을 걷어차이면서도 “너 찼지?” “너 또 찼지?” “너 또 한번만 더 차면 피 빨아버린다” 따위의 말 밖에 못하지만 범인을 잡을 때는 십자가 목걸이를 벗고 흡혈귀의 진면목을 보여(주던가?).

[팝콘&콜라] 니들이 강력부 여검사를 알아?

“서울지검 강력부 고은주 검삽니다.” 16일 개봉하는 코미디 영화 <구세주>의 여자 주인공 신이(고은주)는 서울지검 강력부 검사다. 지난해 9월 개봉했던 <가문의 위기>의 여주인공 김원희(김진경)도 마찬가지였다. 영화 속 두 여자 주인공의 ‘검사’로서의 공통점은 이런 거다. 서울지검의 강력부에서 근무하면서 조직폭력배들로부터 신변의 위협을 받기도 하지만, 현장에서 그들과 능수능란하게 주먹으로 ‘맞짱’을 뜬다. 갑자기 궁금하다. 서울지검 강력부 여성 검사들의 모습이 정말 그럴까? 그런데 초장부터 김이 확 빠진다. ‘서울지검 강력부 검사’라는 직함 자체가 이미 없어진 지 오래다. 서울중앙지검 마약·조직범죄수사부 검사가 맞다. 심지어 서울중앙지검 마조부에는 여성 검사가 없다. 그래서 우리 나라에서 유일한 마조부 소속 여성 검사인 수원지검 정옥자(37) 검사를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정 검사는 20일부터 서울중앙지검에서 근무한다. 그가 다시 마조부에 배치된다면, 서울중앙지검 마조부에도 여성 검사가 생긴다.) 일단, <구세주>와 <가문의 위기>에서처럼 여성 검사들도 ‘액션’이 될까? 조폭 두서너∼너댓명 정도 거뜬히 무장해제시킬 정도의 오버액션은 아니더라도, 손 올리는 놈 팔목 비틀고 덤비는 놈 옆구리 후려칠 정도의 격투기는 연수원이나 검찰청에서 가르쳐주지 않을까? 아연실색한 정 검사의 답변은 이렇다. “한국은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현장 수사는 대부분 경찰의 몫이다. 여성 검사뿐만 아니라 남성 검사들도 현장에 나가서 조폭같은 범죄자들과 치고받고 싸울 일 자체가 거의 없다. 싸울 일이 없는데 격투기를 왜 배우겠나?” 이쯤 되면 묻는 게 오히려 낯 팔리지만 ‘확인사살’ 차원에서 덧붙여 물었다. 영화 속에서는 조폭 두목이 여성 검사를 협박한다. “다치지 않으려면 얌전히 있으라”는 협박 정도는 양질. 가족에게 해를 가하겠다는 고전적인 협박에서부터 검사한테 수면제를 먹여 성폭행 비디오를 찍으려는 대담한 시도까지 등장한다. 정 검사, “조폭이 어떻게 검사를”이라는 말로 단칼에 벤다. “조폭들이 합법적인 기업가로 변신해 뒤에서 주가조작 같은 경제범죄를 일으키는 게 추세다. ‘조폭두목’이라고 전면에 나서 검사와 담판을 짓는 무모한 방법을 쓸 리가 없다. 수하들을 거느리는 원리도 주먹이 아니라 돈이다. 조폭들이 불법적으로 굴리는 돈의 흐름을 ‘머리로’ 좇는 게 요즘 조폭전담 검사들의 주된 업무다.” 이제 영화 속 두 여성 검사의 ‘여자’로서의 공통점을 이야기할 차례다. 고은주 검사는 철딱서니 없는 생양아치 졸부 아들에게 순정을 바친다. 김진경도 검사직까지 내던지며, 조폭 두목과의 사랑을 지킨다. 이제 남자들도 영악해졌다. 예쁜 것만으로는 좀 부족하다. 똑똑하면서도 강인한 여성들, 그런 여성들의 대표 이미지격인 ‘검사’ 정도는 돼줘야, 그런 다음 사랑을 위해 헌신해줘야 재미도 있고, 그 욕심 많은 판타지도 충족된다. 정 검사는 말했다. “어차피 영화는 허구다. 영화나 텔레비전에서 여성 검사의 이미지를 상품화하는 것도 검찰에 대한 일반인들의 거리감을 없앤다는 측면은 있다. 하지만 하려거든 현실을 좀 제대로 알고 해달라. 그렇게 터무니없는 설정들은 재미를 위한 변형치고는 너무 심한 왜곡이다.”

KBS <해피 선데이> ‘날아라 슛돌이’ 예상외 성공

평범한 아이들 기량 ‘쑥쑥’…4월 독일 유소년팀과 한판 한국방송 <해피 선데이>의 한 코너로 방영되고 있는 ‘날아라 슛돌이’는 축구를 통해 어린이들의 꿈과 열정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팀이 21대 0으로 져도 멀뚱멀뚱 서있기만 하던 아이들이 하루가 다르게 축구선수로 구색을 갖춰가는 모습은 ‘삼미슈퍼스타즈 신화’나 ‘대한민국 월드컵 4강 진출’을 떠올리게 하면서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 14일 오후 촬영장인 수원 케이비에스 드라마센터에서 만난 최재형 피디는 98년 프랑스 월드컵 직후 ‘병아리 월드컵’이란 코너를 연출하면서 가졌던 경험과 느낌을 살려 다시 한번 기획했으며, 그것이 ‘예상외의 성공을 거두었다’고 평했다. “잔디 위를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그때 프로그램 전체가 없어지면서 그 코너도 없어졌는데 나중에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을 꾸준히 하고 있었습니다. ” ‘날아라 슛돌이’ 팀의 선수들은 서울경기지역 오디션을 통해 뽑았다. ‘평범한 아이들의 성장 리얼리티’ 라는 프로그램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축구선수나 연예인이 꿈인 아이들이 아니라 운동신경, 승부근성 등 축구 잘할 가능성이 있는 아이들을 모았다. “유치원 행사인 줄 알고 데려온 부모님들도 많습니다. 처음 선발할 때부터 아역배우를 만들 생각은 마시라고 확실히 말씀드렸습니다. 시청률이 올라가서 기분은 좋지만, 부모님들에게 아이들이 집에서 텔레비전을 못보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아직 아이들은 케이비에스 슛돌이 축구교실쯤으로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러나 배우 차태현을 비롯 스타들의 출연문의가 쇄도하는 프로그램이 되면서 ‘아이들을 이용해 연예인을 홍보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이날도 가수 이효리가 서포터로 나와 있었다. 구단주이자 선수들의 보호자인 담당 피디의 입장은 어떨까. “처음에는 부모님들도 곁에 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축구라는 게 함성이 있어야 힘이 나는 스포츠입니다. 다들 모여 응원해야 아이들이 힘낸다는 사실을 알고는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쪽으로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5개월만에 드디어 지난 19일 첫승을 거둔 슛돌이들은 4월에는 독일 유소년 축구팀과의 독일 경기를 가질 예정이다. 이 프로그램은 독일 월드컵전까지만 방영될 계획이다. 축구선수를 만들 목적이 아니라면, 아이들을 평범한 일상으로 돌려줘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가혹한 테러의 추억, <뮌헨>

1972년 뮌헨올림픽 때 11명의 이스라엘 선수들을 죽인 팔레스타인 그룹에 대한 이스라엘 비밀요원들이 벌이는 암살 작전을 다룬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진지하면서 자부심 가득한 영화, <뮌헨>은 공포와의 전쟁이 그렇듯 가혹하다. 영화는 느릿느릿하고 반복적이지만 일종의 분석적인 매력을 뿜어낸다. <뮌헨>은 한 영화감독의 간청을 담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극화나 보복 테러의 도덕성에 대한 반추가 아니다. 영화는 정치를 넘어 스필버그가 믿는 할리우드 엔터테인먼트를 통한 속죄에 근거하고 있고 ‘마셔’뿐 아니라 ‘멘시’까지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어하는 감독의 계속되는 시도이다(마셔와 멘시 모두 이디시 속어며 각각 일반인과 성인을 구분하는 단어다-역주). 따라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관점에서 만들어졌어도 <뮌헨>은 끈질기게 팔레스타인인들을 인간적으로 비추고자 노력한다. 모사드와 검은 9월단만 이상한 커플이 아니다. 시나리오는 (본질적으로 비정치적인 <포레스트 검프>로 오스카상을 받은) 에릭 로스가 처음 쓰고 (상당히 정치화된 <엔젤스 인 아메리카>로 퓰리처상을 받은) 토니 쿠시너가 개작했다. 미국의 신보수주의자들과 팔레스타인 민족주의자들이 동시에 싫어할 것이 뻔하다. 스필버그가 헤집고 들어간, 이성적인 분석을 용납하지 않는 이 상황 속에서 양쪽은 피해의식을 느낀다. 취한 미국인 선수들이 일단의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을 선수촌에 들어오게 하면서 <뮌헨>은 과장된 가짜 유대인 비애로 비극을 증폭시킨다. 그들은 이스라엘인 숙소로 들이닥쳐 선수 몇을 쏘고 나머지는 인질로 가둔다. 세계가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동안 게임은 계속된다. 스필버그는 오스카상을 받은 <9월의 하루> 다큐멘터리의 부분을 맥루한(핫미디어와 쿨미디어의 개념으로 유명한 캐나다의 문명비평가-역주)식 광란으로 편집해 보여준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처럼 오프닝 장면이 가장 뛰어난 장면이다. <뮌헨>은 확인될 수 없는 아브너의 모사드 암살팀에 관해 들려주는 조지 조나의 1984년작 <복수>를 각색했다. 그는 <복수>와 1986년 HBO판 각색 <기드온의 칼>의 모사드 지휘관들처럼 유능하지만 도덕적으로 갈등을 겪고 있다. 신경과민 폭파 전문가(마티외 카소비츠), 불안한 외교관(시아란 힌즈), 호전적인 근육질 유대인(대니얼 크레이그), 둔감한 위조 전문가(한스 지쉴러)와 그들의 능수능란한 조직책(제프리 러시) 등 혼돈에 혼돈을 더할 다양한 부대원들 사이에서 에릭 바나가 연기하는 아브너는 다소 공허해 보인다. 아브너의 요원들은 11명의 암살 목표를 지정받는다. 그러나 의도하지 않은 사상자들을 내고 목표를 더 늘리며 작전을 멈추기를 거부한다(무고한 모로코 웨이터를 살해한 릴리함메르 사건은 나오지 않는다. <복수>에서 릴리함메르는 다른 모사드 팀이 한 일로 설명된다). 잔인한 살해가 양팀이 따르는 규칙이지만 팔레스타인인은 좋은 이웃이나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로 인간화된다. 반면 민간인 피해는 잘려나간 팔이나 다리 정도로만 보여준다. 액션은 로마에서 파리, 사이프러스, 베이루트, 아테네, 런던으로 이어지지만 정보를 팔고 있는 전지한 프랑스인 조직 외에는 아무도 아브너 요원들이 뭘 하는지 모르는 듯하다. <복수>에서 이 가족으로 구성된 스파이 조직은 ‘르 그룹’으로 알려져 있다. <뮌헨>에서 이들은 오히려 ‘루테세’ 같아서 훌륭한 요리사인 아브너에게조차 ‘전통적인’ 요리를 내온다(루테세는 뉴욕의 유명한 프랑스 식당-역주). 이들 미식가 무정부주의자들은 반쪽 액션영화에 철학적인 요소를 버무리며 의도하지 않은 코미디적인 순간들을 제공한다. “우리가 어떻게 조국을 되찾았다고 생각하나? 친절로?” 복수를 거듭하며 <뮌헨>은 점점 어두워져 고뇌로 점철되는 악몽이 되고 만다. “우리는 의로운 사람들이어야 하고 그게 아름다운 삶이야.” 폭파 전문가는 울부짖지만 동료들은 여자 살인청부업자(마리 호세 크로즈)를 살해한다. “네가 바로 우리가 기도한 존재야.” 아브너의 어머니조차 영화의 궁극적인 유대인 애국주의 표현을 사용하며 아들을 확신시키려 하지만 막상 아들이 한 일을 알고자 하지는 않는다. 도덕적 불확실함에 눌린 <뮌헨>은 있을 수 없는 상황들을 어렵게 어렵게 억지로 뚫고 나간다(한 장면에서 르 그룹은 모사드 요원들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 수행원들을 동시에 같은 안전 가옥에서 지내게 한다. 그중 한명이 아브너에게 “고향을 잃은 게 어떤지 당신은 몰라”라고 말할 때 알 그린의 가 흘러나온다). 하지만 영화 후반부에 오프닝 시퀀스처럼 매끈하진 않지만 스필버그는 유혈의 72년 사건을 한번 더 보여주면서 거슬리지만 거부할 수 없는 진실을 들려준다. 생존한 이스라엘 인질들이 공항으로 끌려가지만 공포로 초래된 폭력의 촉발로 테러범들에게 모두 죽는 장면이다. 독일 경찰이 서투르게 구조 작전을 펴면서 벌어지는 이 시퀀스를 스필버그는 아내와 섹스를 나누는 아브너의 고통스런 표정과 번갈아가며 편집하고 영화 오프닝에서 사용된 슬픈 멜로디를 입혀 보여준다. 이것이 감독의 ‘빅뱅’ 이론인가? 그의 울화인가? 전형적인 학대의 경우처럼 스필버그는 그 자신의 절망을 관객에게 쏟아붓고 있다.

[LA] <아메리칸 아이돌>의 무시무시한 시청률의 비밀은?

다섯 번째 시즌을 시작한 <아메리칸 아이돌>의 반향이 시끄러워 눈을 돌리지 않을 수가 없다. 경쟁사들의 편성계획까지 좌지우지하는 폭스사의 이 황금 프로그램은 지난 1월, 3500만명이라는 경이적인 수의 시청자가 지켜보며 시즌 첫 방송을 시작한 이래 파죽지세로 올 시즌 텔레비전을 일찌감치 장악했다. 언론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아메리칸 아이돌>의 혁혁한 승전고와 비화를 전하느라 바쁘다. 날고 기는 도 제치고, 같은 편 <하우스>까지 자체 최고 시청률로 동반 상승시켰다. 미국이 알파인 스키에서 금메달을 딴 동계올림픽 중계도, 팝계의 별들이 총출동한 그래미상 시상식도, ‘별되기’를 꿈꾸는 미국인들의 노래자랑대회를 이기지 못했다. <아메리칸 아이돌>보다 절반쯤 모자란 미국인들이 시청한 그래미상 시상식에서는 <아메리칸 아이돌> 출신 캘리 클락슨이 머라이어 캐리를 제치고 ‘베스트’ 2관왕에 등극하고 있었다. 이쯤 되면 <아메리칸 아이돌>의 진정한 승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때맞춰 ‘아이돌 신드롬’에 빠질 수 없는 사건사고와 비화 역시 일찌감치 물꼬를 틀었다. 예선통과자의 범죄 경력이나, 벌써부터 우승이 점쳐지는 소녀의 가정 배경, 역대 우승자들의 활발한 할리우드 활동기 등은 소소한 가십거리. 지난해 폴라 압둘 스캔들의 바통을 이어받은 독설가 심사위원 사이먼 코웰이 미국적 ‘올바름’을 전혀 개의치 않고, 외모 폄훼, 성적 성체성 조롱 발언으로 비만인, 동성애자 인권단체들을 분노케 했다든지 하는 심각한 뉴스까지, 심심할 새가 없다. 왜 미국인들은 <아메리칸 아이돌>에 열광하나. <아메리칸 아이돌>의 인기 비결 분석에 나선 는 이 프로그램이 일반인들도 자기 전시에 능하게 된 디지털 미디어 시대의 ‘버추얼 혁명’과 영웅이 빛바랜 시대에 유일한 ‘연예인 영웅 숭배’ 현상이 결합해 빚어내는 시대적 드라마라고 진단한다. 한편 지켜보건대, <아메리칸 아이돌>은 정말 ‘미국적으로’ 재밌다. 익숙한 ‘전국노래자랑’의 신종 리얼리티 쇼버전인 <아메리칸 아이돌>에서 음악은 일차적인 오락거리지만 또한 미국적 내러티브가 변주된 거대한 드라마의 일부다.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모티브는 두말할 나위 없는 이 드라마의 주제, 미디어가 좀체 담아내지 않는, 광활한 미국땅 구석구석에서 등장한 ‘꿈 많은 청년들’(이자 너무나 리얼한 미국인들)은 주요 출연자. 인종별, 성별 스테레오 타입과 개인사에 따라 적절하게 깔아주는 인생극장 뒷이야기(텍사스 출신 카우보이들로 엮은 ‘브로크노트 마운틴’은 올해의 최고 스토리), 무례한 영국(!) 심사위원 코웰의 독설에 때로 상처받는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미국적 평등주의, 너와 나 ‘대중의 한표’로 정해지는 진실. 따지고 보면, ‘시골 처녀(총각) 할리우드 성공담’은 유구한 역사를 지닌 미국의 대중 신화가 아닌가. 원형적 스토리는 생명력이 긴 법. 새로운 리얼리티 쇼 개발이 최대 이슈가 된 듯한 미국 방송계에서 ‘장기자랑대회’는 ‘메이크 오버쇼’와 더불어 팔리는 포맷으로 탄탄히 자리잡았다. 댄싱 콘테스트, 스타와 함께 스케이팅 콘테스트를 거쳐, 코웰이 준비 중인 스타와 함께 노래하기(스타끼리)까지 대기 중. 덩달아 가 <아메리칸 아이돌>에 대적해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미국판을 만든다니, 투표하는 미국인들 손길은 더욱 바빠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