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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리포트] 발리우드의 영국성공기

인도 문화와 할리우드 코미디 접목한 <구루>, 영국 흥행 선전 조짐 지난 주말인 8월23일 영국에서 개봉된 <구루>(The Guru)는 ‘발리우드, 할리우드에 가다’라고 표현될 수 있는 영화다. 할리우드식 로맨틱코미디에다가 발리우드식의 춤과 노래, 감상적인 요소들을 잘 섞어서 나온, 할리우드 마살라라고 할까? 이 영화는 영국의 주류 대중문화로 진입 중인 발리우드 열풍을 타고, 할리우드의 대형 블록버스터들 틈에서 선전할 것으로 점쳐진다.주연은 영화 속의 주인공 라무 굽타처럼 자신의 재능과 운명을 시험해 보려고 할리우드에 막 발을 내디딘, 영국의 촉망받는 젊은 배우 지미 미스트리가 맡았다. 지미 미스트리는, 1999년 히트작인 에서 핸섬한 바람둥이 둘째아들 타릭 역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지미 미스트리가 사랑에 빠지는 상대역 샤로나는 <오스틴 파워즈2>의 뇌쇄적인 금발미녀 헤더 그레이엄. 라무의 플랫 메이트이자 요리사로 나와 코믹 연기를 선보이는 Sanjeev Bhaskar는 영국의 인기 TV코미디 프로그램인 의 스타.영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젊은 인디언 댄스 선생인 라무는 영화스타가 되기를 꿈꾸며 인도를 떠나 뉴욕에 오지만 포르노영화에 출연하게 된다. 카메라 앞에서 제대로 연기(?)를 못하는 라무는 동료 포르노 배우인 샤로나에게서 도움을 받고, 샤로나에게서 배운 이 포르노 연기 철학 덕에 라무는 얼떨결에 뉴욕 사교가의 ‘섹스 구루’로 떠오르게 된다.발리우드영화가 비주얼한 화려함을 좀더 우선시한다면, 이 영화는 할리우드식의 코미디와 로맨틱 클리셰를 따르는 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1930년대의 할리우드 뮤지컬을 가져다가 발리우드식 뮤지컬로 발전시킨 것을, 다시 할리우드로 가져와 할리우드식으로 변용시켜 보여준다는 면에서, 이 영화는 서로 다른 문화들이 서로 끊임없이 뒤섞이며 영화적으로 발전해가는 흔적을 담고 있다고도 보여진다. 화려한 춤과 노래, 부담없이 마음을 열고 웃을 수 있는 코믹한 요소들에다 문화적인 오해(혹은 환상?)와 미국 상류층의 테라피 컬쳐에 대한 풍자가 어우러진 지적인 코미디라는 호의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올해 들어 영국 정부 차원에서 힌디영화, 발리우드영화 등 다양한 인도영화들을 소개하고 있는데다가, 기존에 해외 시장이나 외국 관객에게는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던 발리우드 역시 적극적으로 합작영화 제작이나 외국 시장들을 겨냥한 영화들을 내놓고 있어서 머지않아 발리우드영화가 영국 내 주류영화 시장으로 도약하지 않을까 하는 전망을 가능하게 한다. <구루>는 로맨틱코미디라면 따를 자가 없는 영국 워킹 타이틀의 손을 거쳤고 미국 회사인 UIP가 배급을 맡았다.런던=이지연 통신원

니들이 캐나다 애니를 알아? [1]

제1회 서울-캐나다 국제교류전 ‘NFBC 스페셜’, 9월13일부터 18일까지 남산 서울애니메이션센터에서 열려애니메이션의 무한한 표현력을 가꿔온 캐나다 애니메이션의 명가 NFBC 영화제가 오는 9월13일부터 18일까지 남산 서울애니메이션센터에서 열린다. 제1회 서울-캐나다 국제교류전 ‘NFBC 스페셜’은 예술적인 애니메이션의 실험과 작가들의 인큐베이터로 알려진 캐나다국립영화협회(NFBC)의 다채로운 작품세계를 소개하는 영화제. 서울산업진흥재단 서울애니메이션센터와 주한 캐나다대사관이 주최하며, 이미 세계 유수의 영화제를 통해 주목받은 NFBC의 단편애니메이션 50여편을 상영한다.캐나다의 애니메이션은 프레데릭 벡의 <나무를 심는 사람>을 필두로 그동안 국내 애니메이션 관련 영화제를 통해 틈틈이 소개된 바 있다. 특히 국적에 상관없이 재능있는 애니메이터들을 적극 발굴하고, 새로운 이미지의 개척이나 다양한 기법을 실험하는 단편애니메이션의 제작을 지원해온 NFBC의 작품들은 애니메이션의 스펙트럼이 얼마나 넓은가를 보여준다. 60년 이상의 오랜 전통을 지닌 만큼 많은 인재를 배출해낸 NFBC의 작가들 가운데 이번 영화제에서 집중적으로 소개될 작가는 노먼 맥라렌과 이슈 파텔. 스코틀랜드 태생으로 영국에서 주로 활동했던 맥라렌은, 캐나다 정부에 NFBC 설립을 건의하고 초대 영화과장을 지냈던 영국 다큐멘터리 감독 존 그리어슨의 부름을 받고 건너와 1941년에 애니메이션 부서를 만든 당사자이다. 독창적인 애니메이션 실험의 선구자로 유명한 맥라렌은 애니메이션은 움직이는 그림이라는 정형화된 틀에 얽매이지 않고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작품을 만들어왔다.이를테면 이번에 소개될 초기작 <이웃>(오른쪽 사진)은, 실사 배우의 연기를 정지동작으로 한 프레임씩 촬영한 애니메이션. 사이좋게 지내던 두 이웃이 각자의 영역 가운데 피어난 꽃을 두고 티격태격하다가 극단적인 싸움으로 치닫는 과정을 통해 인간의 탐욕을 우화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으로, 1952년 아카데미 단편애니메이션상 수상작이다. <발레리나>와 <발레 아다지오>는 실제 무용수들의 발레 동작을 바탕으로 역동적인 움직임의 미학과 리듬의 애니메이션을 보여주는 작품들. 그 밖에 무생물인 의자를 움직여 더이상 인간의 도구이기를 거부하는 의자 이야기를 코믹하게 담은 <의자 이야기>, <크리스마스 불꽃놀이> 등 맥라렌의 초기 실험작들을 만날 수 있다. 이슈 파텔은 맥라렌과 조금 다른 의미로 애니메이션의 경계를 넓혀온 작가. 인도 출신으로 71년부터 30년 가까이 NFBC에 몸담았던 그는 인도의 전통 설화와 민속음악 등 동양적 색채와 이색적인 기법의 탐색을 접목한 작품들을 선보여왔다. 이번 영화제에서 상영될 <퍼스펙트럼>은 맞물렸다가 흩어지는 원과 사각형 등 기하학적 이미지의 변주와 일본의 전통 현악기 고토의 선율을 조화시킴으로써 형태의 역동적인 흐름을 그려낸 추상적인 애니메이션. <게임의 법칙>은 ‘구슬 게임’이란 원제대로 조그마한 색구슬 수만개로 온갖 형상을 만들었다 부수길 반복하며 생명의 진화와 인류의 역사를 담아내고 있다. 유리판 위에 점토를 깔고 뾰족한 도구로 파내듯 그림을 그린 <사후>(오른쪽 사진)는 죽음 뒤의 영혼의 여정에 대한 사색을 담고 있으며, 같은 기법을 발전시킨 <우선순위>에서는 관개사업을 통한 물의 공급을 기다리는 사막의 가족과 그들의 생존에 아랑곳없이 국경 분쟁에 바쁜 정부의 대비를 통해 피지배자와 지배자의 관점의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화려한 궁전에 사는 새를 부러워하다가 자신이 가진 자유의 소중함을 깨닫는 새의 이야기인 <파라다이스>는 검은 종이에 일일이 핀으로 구멍을 뚫는 핀홀 기법과 종이에 그린 화사한 색감의 그림이 어우러진 작품. 끊임없이 자연을 강탈해온 인간의 탐욕스러움에 대한 경고를 담은 <인간의 운명>은 종이에 그린 그림을 셀에 붙여 만든 애니메이션이다. 종이나 셀은 물론, 구슬, 유리, 점토 등 말 그대로 다채로운 재료를 활용한 파텔의 작품들은 인간의 삶에 대한 진지한 시선과 함께 애니메이션의 폭넓은 상상력을 이미지로 보여준다.그 밖에 NFBC를 거쳐간 세계적인 작가로 캐롤라인 리프, 코 회드만 등의 작품도 상영될 예정. 임종을 앞둔 할머니를 둘러싼 가족들의 반응을 아이의 시선으로 담아낸 <거리>는 유리 위에 물감으로 그린 부드럽고 유동적인 이미지를 선보이는 리프의 대표작이다. 눈오는 겨울에 버려진 인형을 정성껏 돌보는 아기곰 루도빅과 살아난 인형의 즐거운 한때를 통해 장난감에 대한 동심의 판타지를 그려낸 <루도빅>과 모래에서 태어난 생명체들이 모래성을 짓다가 바람에 소멸해가는 과정을 담은 <모래성> 등은 인형과 모래 등을 활용한 코 회드만의 소우주를 보여준다.열대 우림의 두 카멜레온이 벌레 하나를 놓고 싸우다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재닛 펄만의 <둘을 위한 저녁식사>,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닌 부부가 핵폭발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른 채 싸우고 화해한다는 리처드 콘디의 <대혼란> 등은 유머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들. 중산층 치과의사 밥과 외과의사 마가렛 부부의 일상을 만화의 정감이 살아 있는 그림체로 그려낸 앨리슨 스노덴과 데이비드 파인의 <밥의 생일>을 비롯한 오스카 수상작 및 후보작들과 아기를 바라는 부부에게 외계인 같은 아이가 생기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통해 육아의 어려움을 웃음으로 풀어낸 코델 바커의 <이상한 침입자들>,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풍경과 전통 문화를 수려한 유화풍으로 묘사한 <블랙 소울> 등 NFBC의 최신작들도 만날 수 있다. 황혜림 기자 blauex@hani.co.kr▶ 니들이 캐나다 애니를 알아? [2] - 상영시간표

<광복절특사> 촬영현장

‘1 1250’(설경구)과 ‘1 1052’(차승원)가 사라졌다.교도소 감옥에 고이 갇혀 있어야 할 이들은 어디로 간 걸까? 그것도 내일모레면 광복절 특사로 사랑하는 애인 곁으로 돌아갈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오직 숟가락 하나로 6년간 땅굴을 파온 ‘1 1052’(무석)는 어찌어찌해서 ‘1 1250’(재필)이라는 혹 하나 달고 교도소를 탈출한다. 물론 몰랐다. 교도소를 그냥 걸어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나 다시 돌아갈래!’라고 절규하는 무석을 가로막는 이 있으니. 바로 재필이다. 무석보다 더 똘아이인 재필은 바람난 애인 경순(송윤아)의 결혼을 막으려는 일념밖에 없다. 결국 경순을 들쳐업고 교도소로 돌아가기를 시도하는데…. 잘 들어갈 수 있을까? 김상진 감독이 직접 만든 영화사 ‘감독의 집’ 창립작품인 <광복절특사>는 70% 촬영, 10월 말 개봉예정.사진·글 이혜정 ♣ “좀더 굴러야 해. 더 과하게 해도 되는 장면이니까 한번 더 가자고….” 비와 흙탕물로 힘들어하는 배우들에게 더 센 주문을 하는 김상진 감독.♣ 카메라와 스텝들- 오수교도소 외부로 연결된 땅굴을 만들고 그 주변에 풀을 심는 스탭들. 열심히 심어놓은 풀들을 밟는 기자들이 야속한지 연신 풀 짓밟는 기자들에게 풀 심고 가라고 농을 하기도.♣ 교도소전경- 전북 전주시 전주공고 안에 세워진 ‘광복절특사’ 오픈 세트인 ‘오수교도소’. 붉은 벽돌로 외관을 꾸민 두채의 사동과 높다란 외벽, 망루, 고압선 등이 교도소의 분위기를 그대로 재현했다. 실제 교도소에서 촬영하기 어려워 짓게 된 오수교도소는 6천여평 부지에 8억원의 제작비를 들여 7개월여에 걸쳐 세운 세트장이다. 옛 서대문형무소 모양을 그대로 재현했다. ♣ ‘1 下 7’(1동 하층 7호)의 수인번호 ‘1 1250’(설경구)과 ‘1 1052’(차승원)가 박힌 주황색 죄수복을 입은 두 사람은 촬영 개시와 함께 이내 진흙투성이가 됐다. 좁은 땅굴을 나와 천둥번개가 몰아치는 밤에 탈출한 이들은 기쁨에 얼싸안고 뒹군다. 그렇지만 촬영이 끝나면 바로 눈에 들어간 흙 때문에 괴로워한다.

<가문의 영광> 개봉 앞둔 배우 김정은

김정은을 만나는 날, 불청객의 습격을 당했다. 김정은의 열렬한 팬을 자처하는 여중생이었는데, 김정은을 인터뷰하고 싶다고 했다. 인터뷰와 사진촬영이 당하는 이의 진을 빼는 일임을 아는 까닭에, 본게임 앞으로 끼어든 오픈게임만큼은 막아내고 싶었다. 그런데… 기자보다 먼저, 매니저보다 먼저, 김정은이 입을 열었다. “그래, 얼마든지. 이리로 들어올래?” 그리고는 머리와 화장을 매만지는 분장실로, 문전박대 내지는 정중한 거절을 각오했을, 그래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어린 팬의 손을 잡아끌었다. 곧 반쯤 문이 열린 분장실 밖으로 김정은의 빠른 말들과 잔웃음들이 새어나왔다. 무슨 얘기를 그리도 재미나게 하는지, 궁금증이 발동해 분장실 앞을 서성댈 참이었는데, 누군가 “기자 체면이 있지, 엿듣긴 좀 그렇죠” 하는 바람에 자리에 눌러앉고 말았다. 사진촬영과 병행하느라, 분장실 담소는 끊어졌다 이어지길 반복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기념촬영도 하고 살갑게 작별인사를 건넨 뒤, 김정은이 다가와 마주 놓인 소파에 앉았다. “그동안 제 말에 얼마나 군더더기가 많았는지, 좀전에 알았어요. 쉽게 풀어서 말하는 게 참 힘드네요.” 말은 그랬지만, 김정은은 인터뷰의 달인 같았다. 그걸 본인도 인정했다. 연예 프로를 진행하면서 과묵한 게스트의 밉살스러움을 겪어보니, 인터뷰당하는 입장으로 돌아가면 몇 시간을 혼자 떠들 만큼 수다스러워지더라는 것이다. 초승달 모양의 귀여운 두 눈이 ‘자,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하며 웃고 있었다. 직업병이겠지만, 언제부턴가 보이는 걸 그대로 믿지 않는 습성이 생겼다. 김정은이 이동통신 광고에서 “묻지마, 다쳐”라고 윽박지를 때, 카드 광고에서 “여러부운, 부자 되세요” 하고 덕담을 건넬 때, <재밌는 영화>에서 “야, 대가리 박어” 하고 호방하게 소리칠 때, 재밌어 하는 한편으로, 그 모습들이 자연인 김정은의 반영일 리 없다고 생각했다. 설령 그렇더라도, 화사한 에너지를 브라운관과 스크린에 너무 자주 방사한 나머지, 피로와 우울 속으로 침잠해 있거나, 샐쭉하게 방어막을 두르고 있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이 인터뷰에서 기자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미션은 그 ‘간극’을 엿보는 일이었다. 그런데 초장부터 기자는 김정은에게 말렸다. 김정은은 본능적으로 사랑받는 법을 알고 있는 사람 같았다. 이야기할 땐 상대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봤고, 듣는 동안에도 “그렇죠”, “맞아요” 하는 식의 추임새를 끊임없이 넣어주며, 자주 웃고 크게 반응했다. 지금 이 순간,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건 ‘우리의 대화’라는 듯이. <재밌는 영화>의 촬영-조명팀이 그대로 옮아온 <가문의 영광>의 첫 촬영날, 스탭들이 ‘우리 정은씨 예쁘게 나와야 한다’면서 조명에 몇 시간씩 공을 들였다는 일화는 과장된 게 아니었다. “저는 웃을 줄 아는 사람이 코미디도 잘한다고 생각해요. 저 웃기기 되게 쉽거든요. 웬만하면 웃으니까.” 그 말을 하고 나서, 김정은이 또 웃었다. 좀 허탈해졌다. 김정은의 무기는 타고난 성격? 그렇게 모든 게 쉽기만 했을까? “처음부터 이러진 않았어요. 내 안에 없는 걸 끄집어낼 순 없겠지만, 여러 단계를 거쳐오면서, 더 긍정적으로 변한 것 같아요. 남들이 저한테서 보고 싶어하는 모습이 어둠이 아니라 밝음이라는 건 다행이죠.” 김정은이 언급한 그 ‘여러 단계’ 중 일부는 알려지지 않은 것들이다. 대학교 때 학교 패션쇼에 모델로 발탁되고, 방청객으로 갔던 TV녹화장에서 무대까지 불려 올려가는 ‘엄청난 일’을 겪은 뒤에, 그 충격으로 탤런트 공채에 응했고, 6천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다고 했다. “거기까지가 우연이에요. 다음부턴 아니죠.” <해바라기>의 삭발연기로 주목받은 뒤에 일 욕심이 치솟아 겹치기 출연도 마다하지 않았다는 것. ‘이런 것도 할 수 있다’는 걸, 알아주길 바라면서. “독하게 했죠. 다 득이 되진 않았지만. 급하게 공부할 때 ‘서머리’가 유용하잖아요. 그 시간들은 저한테 그런 의미예요.” 뿌린 대로 거뒀다는 얘기군, 만감이 교차하는 얼굴을 들여다보며 생각했다. 그런데 이 아가씨, 독심술이라도 배운 것인지, 자신이 과한 사랑을 받고 있다며, 퇴로를 열었다. “시대를 잘 만난 거죠. 새롭고 특이하고 엽기적인 걸 좋아하는 세상이잖아요. 그러니까 저 같은 사람도 배우를 하는 거죠. 인기요? 만만해 보여서 그런 거 아닐까요? 두루두루 은근하게 사랑받는 게 특정 소수의 광적인 사랑을 받는 것보다 좋은 이유가 있어요. 가늘고 길게 갈 수 있다는 거.” 곁에 있던 사람들이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리는데, 이에 아랑곳없이 김정은이 갑자기 진지 모드로 돌입했다. 직장인도 경력이 쌓이면 승진하는데, 왜 연예인만 위치가 달라지면, 변했다고 탓하느냐면서. “날 무너뜨리는 건 쉬워요. 몰아세우거나 자존심 상하게 하면 무너지죠. 그래서 더 빈틈을 안 보이려고 바둥대는 거 같아요.” 김정은의 얼굴에서 아주 잠깐 그늘을 느낀 순간이었다. 비장의 카드까지는 아니지만,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질문이 하나 남았다. 왜 또 코미디인가. 김정은이 ‘왜 그러면 안 되냐’는 표정으로, <재밌는 영화>와 <가문의 영광>은 엄연히 다른 코미디라고 받아쳤다. “미친 듯이 웃기는 영화를 찾다가 <재밌는 영화>를 했구요, 거기선 오버할 필요가 있었어요. <가문의 영광>은 드라마틱하면서도 예쁘고 귀여운 코미디인데다, 제 포지션은 웃겨야 한다는 부담이 적었어요. 슬프고 심각한데, 그게 더 웃기는 그런 연기요.” 이어지는 속사포 같은 대답. “벗어나고 싶지도 않고, 변신에 대한 목마름도 없어요. 갑자기 손바닥 뒤집듯 돌아서야 할 필요가 뭐 있겠어요. 서서히 조금씩 달라져야죠. 코미디 안에서 더 보여줄 게 있구요, 개발하고 싶은 것도 많아요. 관객이 따라와줄 거라는 믿음도 있구요.” 까짓 체면 좀 구기고 말 것을. 그날, 분장실을 기웃거리지 못한 것이, 내내 아쉬웠다. 김정은을 독대한 시간이 짧았던 것도 아닌데, 미션 해결은커녕 무장해제까지 당했으니 말이다. 하긴, 김정은 말마따다 “새털같이 많은 날이 있고, 보여줄 게 아직 많다”는데, 무슨 걱정인가. 그래서 김정은을 그냥 지켜보기로 했다. 앞으로 주욱.

[단편] 특집!노래자랑

■ Story 지방 소도시에 한 노총각이 추어탕집을 개업하고는 열심히 홍보하러 다니지만 장사가 안 된다. 같은 도시에 사는 뚱뚱한 노처녀는 선보는 남자에게마다 딱지를 맞는다. TV프로그램 <전국노래자랑>이 이 도시를 찾는다. 노총각은 식당 홍보도 하고 상을 타서 명예도 높일 목적으로, 노처녀는 공개구혼할 무대로 노래자랑에 참가를 신청한다. 둘은 신청서 내는 자리에서 우연히 만나고, 노처녀가 추어탕 먹으로 왔다가 또 만난다. ■ Review 보잘것없는, 어쩌면 남들에게 따돌림당할지도 모르는 남녀가 만나 사랑을 시작하는 소박한 이야기다. 연출도 소박하다. 뚱뚱한 노처녀는 전혀 예쁜 척하지 않고, 노총각도 마찬가지로 촌스럽다. 만날 남자에게 딱지맞는 노처녀에게 노총각의 ‘필’이 꽃히는 건, 노처녀가 자신의 추어탕을 맛있게 먹을 때부터다. 노처녀와 함께 온 친구가 추어탕을 시켜놓고 먼저 가는 바람에 한 그릇이 남았다. “제가 먹으면 되죠.” 노총각이 옆에 앉아 먹는다. 나란히 앉은 둘이 추어탕을 그릇째 들고 마신다. 동그란 그릇의 바닥이 둘의 얼굴을 가린다. 단순하고 뻔하지만 밉지 않은 연출이다. 그러나 자칫하면 관객으로 하여금 “짚신도 짝이 있다”는 식으로, 동정심과 약간의 비웃음으로 이 둘을 보게 할 수도 있다. 그 위험을 비켜가게 하는 건, 이 둘과 달리 세상에서 잘 나가는 사람들에 대한 풍자다. <전국노래자랑>의 연출자들은 참가자들의 의상뿐 아니라 노래까지도 자기들 마음대로 ‘연출’한다. 그 안하무인의 태도가 자연스럽게 영화 안에 녹아들면서 영화의 한축을 받쳐준다. 임범 isman@hani.co.kr

스크린쿼터문화연대 신임 이사장 유지나

유지나(42) 교수는 대중에게 잘 알려진 스타평론가 중 한명이다. 오랫동안 방송에 출연해서 영화 관련 프로그램 진행을 맡아와서인지 낯익은 얼굴. 그런데 요즘은 브라운관에서 그의 모습을 보는 것이 어려워졌다. 연구에 전념하기로 마음을 굳힌 것인가. 그렇게 여길 법도 하다. 하지만 여전히 종횡무진 뛰어왔고, 뛰고 있다. 동국대 영화영상학과장, 한국영상자료원 자문위원, 한국영화학회 감사, 영상문화학회 부회장,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 편집위원 등 수많은 직함이 그 증거의 일부다. 지난 5월에는 또 영화진흥위원회 2기 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한번 터진 일복은 좀처럼 추스르기 힘든 것인지, 얼마 전에는 사의를 표한 문성근 전 이사장에 뒤이어 스크린쿼터문화연대 신임 이사장으로 선임됐다. “이사장하려고 로비한 적 없고 그냥 떠밀려서 됐다”지만, 어쨌든 ‘슈퍼우먼’의 능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맞은 것. 개강한 지 2주밖에 안 돼 밀려드는 학사업무와 강의준비도 만만치 않은 부담이라며 그는 조바심을 낸다. 그런 그의 아까운 시간을 비집고 들어가 스크린쿼터문화연대가 기치로 내건 ‘국제연대 강화론’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문성근 전 이사장이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를 돕게 되면서 사의를 표명한 게 석달 전이다. 그동안 이사장직이 공석이었는지. → 바깥에선 그렇게 보였나? 그동안에도 할 일은 다 하셨다. 다만 후임자를 물색하고 설득하는 기간이 좀 길었던 것이지. 이사장직 수락을 망설였던 것으로 아는데. → 나보다 더 좋은 사람 찾느라 그랬다. 영화과 교수보다는 현장에 있는 사람이 더 어울릴 것 같았다. 아무래도 문성근씨를 옆에서 오랫동안 봐서 그런가보다. 내 이름이 오르내릴 때도 안성기씨처럼 오랫동안 스크린쿼터에 관심을 보여온 분이나 최민식씨처럼 열혈 배우가 후임으로 나서는 게 적절하다고 봤다. 학교 내에서도 학과장직을 맡고 있다. 혹여 수업이 부실해져서 학생들의 원성을 사는 것 아닌가. → 내 철칙이 ‘강의는 충실히’다. 이사장직을 받아들인 것도 그런 원칙을 어기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같이 공부하는 대학원생 제자들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줬고, 또 많이 격려해주지 않았으면 결정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한국영화에 있어 스크린쿼터가 중요한 쟁점이니만큼 강의와 무관하지도 않다. 내부적으로는 쿼터연대가 사단법인 형태로 출범한 지도 꽤 됐고, 양기환 사무처장을 중심으로 실무팀들이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도 결정에 보탬이 됐다. 지난 7월24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밝혀졌듯이, 정부는 WTO에 문화부문을 포함한 양허안을 제출한 상태다. 문화부문을 교역의 도마 위에 올려선 안 된다고 주장해온 쿼터연대로서는 급박한 상황을 맞이하게 됐는데. → 현재 WTO 회원국들은 서로의 요구안을 갖고서 비공식 협의중이다. 알려진 대로 미국이나 중국이 한국의 스크린쿼터제 폐지를 요구하고 나선 상황인데, 내년 3월30일이면 각국이 개방의 범위 등을 포함하는 입장을 밝히게 된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스크린쿼터제가 희생될 것이라는 우려다. 미국에의 대외의존도가 심한 한국으로서는 철강, 자동차 등 다른 산업을 위해 스크린쿼터제를 내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봉착할 것이다. 경제부처 관료들 사이에선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주장도 나오는데. → 문화부문을 양허안에 포함시켜서 자초한 위기다. 정부는 길이 있는데도 보질 못한다. 타개책은 분명 있다. 국제법상 양허안을 제출하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유럽연합 소속 15개국과 캐나다 등 다른 나라들을 봐라. 문화부문을 양허안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그들은 다자간 무역협정에 맞서기 위한 세계적 문화기구 또는 협정을 만들어서 거기서 논의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우리 정부 역시 양허안을 철회하고 그 흐름에 동참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영화가 일거에 붕괴될 수밖에 없다. 그땐 정말 큰 것을 잃는 거다. 쿼터연대가 주장하는 국제연대는 세계문화기구의 결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있나. → 일례로 공동제작협정이라는 게 있다. 프랑스만 해도 현재 40여개국과 이 협정을 맺은 상태다. 이 협정은 각 나라의 문화다양성을 보존하기 위해 만든 상호보조 조치다. 협정에 따르면, 프랑스와 한국이 각각 80:20으로 투자를 해서 만든 영화의 경우, 이 영화는 각각의 나라에서 자국영화로 인정된다. 우리의 경우, 프랑스쪽으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도 있고 배급 역시 원활해진다. 자본 및 배급 활로 확보뿐 아니라 기술협력도 가능하다. 할리우드에 대항하기 위한 유효한 방법 중 하나다. 세계문화기구는 이러한 협정을 밑바탕으로 구성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영진위가 나서 프랑스의 CNC와 협정을 맺으려 했지만 정부가 양허안을 제출하면서 프랑스가 발을 뺀 상태다. 쿼터연대의 향후 일정은 양허안 철회에 맞추어지는 것인가. → 맞다. 쿼터연대가 포함된 ‘세계문화기구를 위한 연대회의’가 중심이 되어 정부를 상대로 설득작업에 나선다. 9월24일부터 시작될 국정감사를 활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대규모 집회를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대선 분위기에 묻혀선 안 된다는 판단에서 열심히 뛸 각오를 하고 있다. 그렇게 뛰다보면 ‘민간인은 뭘 모른다’든지 ‘관료가 별 수 있겠어’ 하는 식의 편견들도 줄어들고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이번 스크린쿼터문화연대의 정책방향은 국제연대 강화로 요약된다. 내부적인 팀 구성의 변화도 있나. → 특별히 달라질 건 없다. 정책팀을 비롯해서 기존 6개 팀의 업무가 국제연대라는 부분에 좀더 포커스가 맞춰지는 것 정도다. 어느 한팀이 전담해서 고민할 사항은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다들 멀티플레이어처럼 뛰어왔으니까 별 무리는 없을 것이다. 쿼터연대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 프랑스쪽에 나름의 개인 네트워크가 있어서다. 국제연대 위원장을 맡게 된 것도 그런 이유였는데, 처음에는 외국 나가서 광고지 뿌리고 그랬다.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이었는데, 그렇게 한국의 상황을 알리다보니 유력한 국제 통신사들이 나중에는 인터뷰하자고 먼저 손을 내밀더라. 그때와 비교하면. → 돌이켜보면 바람 잘 날 없었던 것 같다. 지금도 위기라고 하지만 두려워하진 않는다. 지금은 문화다양성을 위한 연대(CCD: Coalition for Cultural Diversity) 등을 비롯한 전세계 NGO들과의 교류도 활발하고, 국내에서도 언론, 출판, 음반 쪽 단체들과 함께 KCCD를 꾸린 상태다. 낙관론자여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우군이 더 많은 상황이니 해볼 만하다고 여기고 있다. 쿼터연대를 비롯한 업무 등을 맡으면서 개인적인 관심의 변화도 있을 텐데. → 영화 공부를 계속 해왔지만, 처음과는 관심이 다소 달라졌다. 91년에 박사 따고 강의하던 시절과 달리 이제는 내 입장이 좀더 사회학적 관심에 가닿아 있다. 학교에서 시나리오, 영화사 강의를 주로 하는데 영화 미학적인 측면보다는 사회학적 관점에서 문제를 제기하곤 한다. 쿼터 투쟁을 비롯해서 이슈가 있을 때마다 같이 활동하다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 영화는 사회적 생산물이다. 관객의 반응을 통해 집단 무의식의 흔적들을 엿볼 수 있는 텍스트인 것 같다. 이를테면 조폭영화에 대한 관객의 반응을 통해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를 엿볼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다. 조폭영화의 범람과 그에 대한 환호는 가상적이든 실제적이든 남성의 박탈감에 대한 집단적 위로로 볼 수 있지 않나. 며칠 뒤에 출간되는 남성 판타지로부터의 탈주라는 부제가 달린 책 역시 그런 관심들을 조금씩 옮겨놓은 것을 모은 것이다. 조폭코미디영화가 다시 쏟아져나오고 있다. 이런 경향은 곧잘 한국영화 퇴행, 거품, 위기론과 맞물린다. 평론가로서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나. → 영화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불량식품에 가깝다. 1970년대 근대화라 불리는 시기에 만들어진 영화들만 놓고 봐도 안다. 사회의 도덕률을 거스르지 않는 이른바 건전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영화들이 쏟아져 나왔다고 해서 살기 좋은 시절이었나. 오히려 보수적인 프로파간다를 숨기는 것이야말로 건강한 게 아니다. 불량식품도 먹어야 내성이 생긴다. 오히려 한국영화의 경우 조폭을 코미디로 다룬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치하고 얼토당토않은 설정은 곧 이 장르가 그만큼 관용적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굳이 미학적인 가치관이나 도덕적인 잣대로만 판단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한국영화가 성장한 만큼 스크린쿼터를 폐지해도 되지 않느냐는 주장도 있는데. → 그렇게 주장할 수 있다. 다만 시장의 성쇠를 2∼3년 단위로 파악할 수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시장점유율이 40%이니 스크린쿼터를 폐지해도 되지 않냐고 하지만 여전히 불안한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고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인다고 섣불리 예측할 수 없다. 문화적종다양성 확보라는 큰 대의뿐 아니라 산업적으로도 좀더 장기적인 발전이 가능한 안정세를 보일 때까지 쿼터제는 유지되어야 한다. 글 이영진 anti@hani.co.kr·사진 오계옥 klara@hani.co.kr

구로사와 낯설게 보기, <데르수 우잘라>

구로사와 아키라의 65년작 <붉은 수염>은 두 주인공이 영광스럽게 걸어들어가는 진료소의 문을 보여주면서 끝을 맺는데, 돌이켜보면 이것은 구로사와의 빛나던 한 시대가 이제 그만 막을 내리게 되었음을 알려주는 상징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후로 구로사와는 결코 짧다고는 할 수 없는 실의의 시기를 보내야만 했던 것이다. <폭주 기관차>나 <도라! 도라! 도라!> 같은 미국과의 합작 프로젝트가 연이어 불발로 그쳤는가 하면, <붉은 수염> 이후 무려 5년 만에 내놓은 야심찬 ‘실험작’ <도데스카덴>(1970)은 (상업적) 실패작이 되고 말았다. 게다가 구로사와는 그새 일본의 제작자들로부터 흥행성이 없는 영화감독으로 분류되고 있었다. 그래서 좀체 영화제작의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던 구로사와에게 길을 터준 것이 바로 소련의 영화제작사 모스필름(Mosfilm)이었다. 모스필름으로부터 제작 의뢰를 받은 구로사와는 조감독 시절부터 마음에 품고 있던 프로젝트- 러시아 탐험가 블라디미르 아르세니에프의 이야기를 영화화하겠다는- 를 꺼내놓았다. 그렇게 구로사와의 열망까지 채워주며 그야말로 오랜만에 만들어진 <데르수 우잘라>는 침체에 빠져 있던 그의 70년대를 그나마 완전한 불모의 시기가 되지 않게 막아주었다고 기록될 만한 영화다. 영화는 1910년, 아르세니에프(유리 살로민)라는 전직 군인 겸 탐험가가 옛 친구 데르수 우잘라(막심 문주크)의 묘지를 찾아와 데르수와의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1902년 지형탐사차 시베리아의 우수리 지방에 온 아르세니에프는 몽골계 사냥꾼 데르수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 데르수가 낯선 땅에서 고생하던 아르세니에프 일행의 안내인 역할을 맡으면서 아르세니에프와 데르수는 서로간의 신의를 쌓아간다. 아르세니에프 일행이 탐험 임무를 완수하자 두 사람은 헤어지고 1907년에 재회한다. 구로사와의 영화들을 어느 정도 본 사람들에게 <데르수 우잘라>는 구로사와의 영화치고는 아주 ‘낯설다’는 인상부터 주게 될 그런 영화다. 이건 이 영화가 구로사와의 영화들 가운데에서는 유일하게 일본 외의 지역에서 일본인이 아닌 배우들을 데리고 찍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그동안 구로사와의 영화들이 보여주었던 것과는 상이한 양식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더 그럴 것이다. <데르수 우잘라>는 구로사와의 영화라고 하면 곧바로 떠오르는 특징들, 즉 갈등들이 정묘하게 엮여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치밀한 스토리구조라든가 역동적인 시각적 스타일 같은 것들과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는 유의 영화인 것이다. 단적으로 이것은 여느 구로사와 영화들처럼 관객을 적극 영화 속으로 끌어들이는 ‘참여의 영화’가 아니라 관객으로 하여금 한 발짝 물러 선 자리에서 다소 초연한 태도로 보게 만드는 ‘관조의 영화’다. 다른 한편으로 이것은 비주얼 설계면에서나 연기면에서 과장, 장식 혹은 기교를 거의 배제한 ‘자연스런(혹은 자연주의적인) 영화’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데르수 우잘라>가 구로사와적인 표지를 완전히 지워버린 영화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 증거로 우리는 여기서도 구로사와의 데뷔작 <스가타 산시로>(1943)에서부터 꾸준히 이어져온 사제관계라는 모티브가 여실히 드러나 있음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데르수는 아르세니에프에 대해 확실히 인생의 지혜를 알려주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데르수의 자발적인 선의는 아르세니에프의 감탄과 신뢰를 사기에 충분하고 심지어 데르수의 타고난 용기와 총기는 아르세니에프의 생명마저 구해주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 둘의 관계는 <붉은 수염>에서 결국에는 완전한 이해에 이르는 스승과 제자 사이의 그것과는 달리 실패할 수밖에 없는 사제관계이다. 이건 아주 단순히 말하자면 데르수는 ‘자연’의 가치를 대변하는 인물이고(주위의 모든 것, 태양, 달, 바람, 물, 불 등을 사람이라고 부르는 그는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반면 측량일을 하는 아르세니에프는 어쩔 수 없이 자연에 문명의 침입을 가져오게 하는 인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아르세니에프는 데르수에 동화하기보다는 종국에는 그의 운명에 ‘탄식’을 던질 수 있을 뿐인 것이다. 여하튼 구로사와는 아르세니에프가 몹시 그리워하는 어조로 “데르수…” 하고 던지는 두번의 탄식을 영화의 도입부와 마지막에 배치해놓음으로써 데르수가 체현하는 그 가치에 대해 끔찍이도 향수를 가지고 있음을 효과적인 방식으로 내비친다. 즉 <데르수 우잘라>는 데르수가 대변하는, 지금은 상실했고 또 사라져버린 어떤 아름다운 세계와 그 가치에 대해 애조띤 밭은 탄식을 던지는 영화인 것이다. 그것이 너무 진부하거 나 보수적이지는 않은가는 별개의 문제로 하고 말이다. デルス·ウザ-ラ/ Dersu Uzala1975년, 컬러감독 구로사와 아키라출연 유리 살로민, 막심 문주크자막 한국어, 영어오디오 돌비 디지털 모노화면포맷 2.35:1 와이드 스크린출시사 스펙트럼 홍성남/ 영화평론가 gnosis88@hani.co.kr

온라인영화를 체포하라?

나는 컴퓨터를 제법 능숙하게 활용하는 축에 속한다. 인터넷예매, 인터넷쇼핑, 이메일, 뉴스 검색 등은 물론이고, 금융업무는 모두 인터넷뱅킹으로 처리하기 때문에 은행 갈 일이 거의 없을 정도여서 컴퓨터가 없으면 상당한 불편함을 느낄 지경이다. 아주 가끔은 컴퓨터 또는 인터넷 중독이 아닌지 진단이 필요하다는 위기의식에 섬뜩해지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하드웨어에도 제법 눈을 떠 회사에 있는 컴퓨터끼리의 네트워킹에서 생기는 오류도 어렵지 않게 처지하고, 어떨 땐 전문가들도 갸우뚱하는 문제를 해결해놓고 스스로 ‘역시 순돌이 아빠’라며 감탄하기도 한다. 하지만 유독 게임과 ‘동영상’에는 취약하다. 게임은 정서적으로 잘 안 맞아서 원래 흥미가 없고, 동영상은 화면이 작고 대체로 화질이나 음향 상태가 나쁜데다가 다운로드받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는 게 질려서 큰 재미를 못 느꼈다. 최근 주변에선 때아닌 동영상 다운로드 바람이 한바탕 불었다. ‘소리바다 사건’으로 답답해하던 차에 속속 대체 프로그램을 사용하면서 뒤늦게 곁눈질을 시작한 사람들이다. 소리바다로는 주로 음악 파일을 주고받던 사람들이 새 프로그램을 쓰면서 동영상 파일 다운로드에 재미를 붙인 것이다. 가끔 사용 중인 컴퓨터를 슬쩍 훔쳐보면 이들은 ‘야리꾸리’한 제목을 단 이른바 ‘야동’(포르노나 이에 버금가는 야한 동영상을 이르는 은어)을 다운로드받고 있었고, CD로까지 만들어 돌려보는 게 영 마뜩찮았다. 그런데 정작 이들의 관심사가 야동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는 약간 당황했다. 알고 봤더니 야동은 양념이고, 영화를 다운로드받아서 보는 데 잔뜩 흥이 나 있었던 것이다. 내가 놀란 것은, 온라인에 떠도는 영화 파일 종류가 엄청나게 많은 건 아니지만, 일본 애니메이션을 비롯한 유명 영화는 물론이고 개봉을 앞둔 최신작까지도 어렵지 않게 다운로드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화질은 마치 DVD를 보는 듯했고, 친절하게 번역도 다 되어 있는데다가 자막까지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다운로드받는 시간 동안 기다릴 수 있는 약간의 인내심만 있다면 완벽하게 영화를 볼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인터넷에 떠도는 이런 파일은 우리나라보다는 주로 미국과 중국 등지에서 올린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소리바다 사건에서도 보았듯이 인터넷 속성상 유통을 막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약간의 장비만 갖추면 편집이 가능하고, 비디오를 VCD로 만들거나 DVD 파일을 압축한 다음 이런 파일을 인터넷에 올리거나 주고받는 일을 누구나 어렵지 않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국영화는 야한 장면 일부를 편집해 야동으로 올려놓은 몇편 외 영화 전편을 담은 파일은 거의 없고, 설사 있더라도 상태가 워낙 나빠 파급력이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한국영화 파일은 대개 극장에서 상영 중인 영화를 캠코더로 찍은 파일이라 화질이나 음향이 아주 나빠 흥행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고 한다. 시사회 때 캠코더를 가지고 들어가지 못하도록 소지품 검사를 하거나 영화 상영 중에도 관계자들이 객석을 감시하는 웃지 못할 신풍속이 생긴 것도 이 때문이다.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영화 동영상 파일 인터넷 ‘불법 유통’이 현실적인 문제가 됐다. 영화계에서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으며 실제로 유통시킨 사람을 색출해서 사법처리 직전까지 갔던 일도 있다. 영화인회의와 한국영화제작가협회 등을 중심으로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지만 딱히 묘안을 내놓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동영상 파일의 온라인 유통이 창작물에 대한 지적재산권과 직결된 첨예한 문제이고, 유통구조를 뒤흔들어 영화의 산업적 근간에 금이 갈 수도 있는 절박한 문제이긴 하지만, 양방향 통신과 정보(자료) 공유가 속성이자 미덕인 인터넷 환경의 현실을 감안하면 ‘특단의 조처’를 마련하는 것도 쉽지는 않은 일이다. 대안? 대책? 조종국/ 조우필름 대표 kookia@jowoo.co.kr

제값,그 이상

다국어지원과 자막변환이 가능한 DVD 보급으로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본어 더빙에 일본어 자막을 지원하는 일본 애니메이션이 많이 출시되고 있지만 일본 문화에 대한 터부인지 아니면 애니메이션에 대한 부정적 시선 때문인지 거의 대부분의 작품들이 극장이나 TV에서 공개된 작품이어야 되고 시리즈물의 경우 한글 더빙이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출시에 많은 난항을 겪고 있다. 단지 DVD 출시를 위해서 출시 바로 직전에 유선방송에서 방영되는 경우도 있고 방영된 지 오래되어 그 당시 성우가 죽는 바람에 재녹음이 안 돼 중간에 등장인물의 목소리가 바뀌는 등 웃지 못할 에피소드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다. 주말 저녁만 되면 영어나 불어 대사에 한국자막이 들어가는 외화를 본 지도 수십년이 지났고 일본어 대사에 한국자막의 일본영화를 보는 것도 이젠 낯설지가 않은데 굳이 일본 애니메이션만은 멀티플레이어가 되어야 하는지 의문스러울 때가 많다. 한국에서 방영된 애니메이션 가운데 갑자기 사회자의 내레이션이나 자막으로 몇 회분의 이야기를 전달하면서 도중에 방영이 중단되는 경우도 많았는데 이러한 작품들의 DVD는 현재의 기준대로라면 방영된 부분까지밖에 출시 못하게 되는 것이고 <황금박쥐>나 <스머프> 같은 작품들도 국내 방영본 테이프를 찾는다는 게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방영한 것은 분명하지만 어쩔 수 없이 재더빙하고 다시 방송시간을 잡아야 국내에서 DVD로 출시할 수 있다. 이러한 기준이 나오게 된 배경에는 애니메이션은 ‘유치한 것이고 자칫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하찮은 것’라는 인식도 한몫했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작품이 올해 안에 국내에서 출시될 예정이다. 비록 비디오 테이프로 출시된다는 아쉬움이 남지만 아직까지는 열악하다 할 수 있는 국내 애니메이션소프트 수의 빈약함에 비한다면 희소식임에 틀림이 없다. 아동문학의 영예인 프랜시스 윌리엄스상 수상 등의 경력을 자랑하며 영국의 대표적인 동화작가 중 한 사람인 레이먼드 브릭스의 원작에 기초해 만든 는 27분 정도의 짧은 러닝타임을 가진 작품이지만 보는 순간 그 시간의 분량이 그리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브릭스의 이전 작품인 <스노우맨>이나 <파더 크리스마스>처럼 에서도 꿈인 듯하면서 현실감이 있게 다가오는 분위기나 부드럽고 포근한 느낌을 주는 선과 색이 자아내는 편안함은 사람들의 창작력과 노력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어릴 때 새를 쫓던 중 길을 잃고 헤매다 인간에게 잡혀 동물원에서 자라게 된 ‘북극곰’과 그 곰을 보러갔다 아끼는 테디베어 인형을 우리에 떨어뜨려 상심하는 소녀 ‘틸리’가 만나 한밤중의 런던을 산책하면서 다양하고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되는 내용이라고 이 작품은 요약할 수 있다. 하지만 글만으로는 광경을 상상해보기 힘든 부분이 많다. 한장한장 그려나간 페이퍼애니메이션의 따뜻한 질감과 <스노우맨>에서도 활약한 하워드 브레이크의 음악 그리고 맨 마지막 ‘어디엔가 당신을 위해 빛나는 별이 있어’라는 샬롯 처치의 노래는 이 환상적인 여행이 끝난 뒤 남는 아쉬움을 달래주고 있다. 출시 뒤 ‘청소년을 위한 좋은 비디오’ 리스트에 오를 게 분명한 작품이지만 문제는 아직까지 이러한 작품을 돈주고 사서 보여주는 곳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와 같은 작품은 비싸서 못 사보고 <스머프>는 국내 방영본이 없어져서 출시가 안 되고 <아키라>는 너무 폭력적이어서 안 된다는 식의 변명이 계속되는 한 우리나라 애니메이션 시장은 그 자리에서 맴돌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양한 작품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주는 나라만이 문화 콘텐츠 강국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김세준/ 만화·애니메이션 칼럼니스트 neoeva@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