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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2003)

우리들의 성숙한 사랑, <굿바이 솔로>

<굿바이 솔로>. 대단히 쿨할 것 같은 이런 제목의 이 드라마는 하나도 쿨하지 않다. “개나 소나 쿨…. 좋아하시고들 있네. 뜨거운 피를 가진 인간이 언제나 쿨할 수 있을까? 절대로 그럴 수 없다고 본다. 나는.” 쿨하게 만나고 쿨하게 헤어지잔 호철(이재룡)과 미리(김민희)의 대화를 보며 영숙(배종옥)은 생각한다. 심지어 미리에게 말한다. “진짜 쿨한 건 뭐냐면, 진짜 쿨할 수 없단 걸 아는 게 진짜 쿨한 거야. 좋아서 죽네 사네 한 남자가 나 싫다고 하는데, 오케이 됐어 한방에 그러는 거, 쿨한 거 아니다. 미친 거지.” 노희경이 극본을 쓴다고 할 때부터 예상됐던 거지만, 이 드라마는 역시 노희경표다. 한없이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을 지닌 얄팍한 인물들만 나오는 여느 드라마와 사뭇 다르다. 한없이 손으로 다독여주고 싶은 등짝을 지닌 짠한 인물들이 나온다. 그렇다고 그들이 매번 눈물 콧물 다 짜고 앉아서 청승을 떠는 것도 아니다. 겉으론 멀쩡하다. 사람들 사는 게 그런 것처럼. 겉으론 잘나가는 회사의 중역이기도 하고, 멀쩡하게 잘나가는 조폭 두목이기도 하다. 또 흔히 보는 것처럼 멀쩡한 카페에서 일하는 바텐더에 월급 사장에 아티스트다. 그런데 그들 속으로 조금씩 조금씩 들어가면, 거기엔 악다구니와 온갖 아픔과 사연들이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인간의 모습이 있다. 그리고 선무당이 사람 잡듯이, 철학박사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언뜻언뜻 인간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듯이, 이 드라마 속 인간들이 그렇다. 더구나 재벌 2세에 왕자 공주가 등장해, 정말 사람이 아니라 마네킹 데려다 찍은 영화 같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찍고 앉았을 때, 노희경표 드라마는 묵묵히 사람 이야길 한다. 정말로 사람다운 사람 이야길 한다. 이러니 이 드라마를 보다가 다른 드라마를 보면, 소재는 같은 ‘사랑’일지라도 유치원 학예회 구경 간 느낌이다. 주인공은 절절한 척 구는데, 절절한 척 굴기 위해 갖은 아양을 다 떠는 음악만 넘친다. 화면 때깔 아름답게 만들고, 죽여주는 음악만 깔아주면 된다고 생각하는 오버와 오만만 넘친다. “다행이다. 첫사랑은 처음이란 뜻밖에 없는 건데, 텔레비전 보면 온통 첫사랑 땜에 목매는 거 비현실적이라 싫었거든.” 아무래도 노희경의 대변인 같은 영숙이 말한다. “두번 세번 사랑한 사람들은 헤퍼 보이게 하잖아. 성숙해질 뿐인데.” 그러게 말이다. 그래서 다른 드라마가 첫사랑에 목매달 때, 이 드라마는 성숙해진 사랑 이야기를 조근조근한다. 리얼하게. 드라마 속 대사처럼, 정말로 “사랑은 안 변하지만, 사람 맘은 변한다”.

‘스타 트렉’ 이은 우주평화 시나리오 결정판, <안드로메다>

<스타 트랙> 작가 진 로덴베리의 우주 시나리오 결정판이 큐채널에서 지난 20일부터 방영되고 있다. <안드로메다>(매주 월∼목요일 밤 11시) 시즌1은 로덴베리가 남긴 제작노트를 바탕으로 그의 아내이자 배우인 메이젤 바렛 로덴베리가 제작하고 티브이 시리즈 <헤라클레스>의 케빈 스로보가 딜런 헌트 함장역을, <13일의 금요일 10: 제이슨-X>의 렉사 더그가 인공지능 안드로메다 역을 맡아 고인의 꿈을 실현시켰다. 이 작품은 안드로메다 어센던트의 선장 딜런 헌트와 인공지능 안드로메다를 중심으로 뭉친 전사 다섯명이 우주의 평화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공상과학 시리즈물로 이미 2000년 10월부터 2005년까지 미국 케이블 텔레비전 사이파이(Sci-Fi) 채널에서 총 5개 시즌의 110편이 인기리에 전파를 탔다. <안드로메다>는 연방을 지키는 평화유지군 지휘관인 딜런 헌트 함장이 블랙홀의 시간지평선에 갇히고 ‘ 코먼웰스’ 행성연합이 위기에 처하게 된 시점에서 출발한다. 함장과 그를 구조하는 유레카 마루호의 리사 라이더(베카 발렌타인 역), 케이스 해밀턴 콥(티르 아나사지 역) 등의 요원들이 행성연합을 재건하기 위해 떠나는 험난한 여정을 담았다. 최근의 과학드라마처럼, 공상과학 시리즈면서도 질량의 법칙, 중력 등 현대물리학 이론을 바탕으로 각 이야기가 짜였다. 논리적이고 정교해 공상을 뛰어넘는 설득력이 있다. 광활한 우주와 박진감 넘치는 우주 전투 장면도 티브이 시리즈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 이상이다. 작품이 담고 있는 주제 또한 눈길을 끈다. 외계 종족간의 치열한 아귀다툼을 빗대어 인간사의 갈등과 분쟁을 풍자하고 화합과 공존만이 살 길이라고 강조한다. 작가의 분신과도 같은 딜런 함장은 “아무런 의미없이 생존을 위해 싸울 것이냐? ”고 대원들을 설득해 폭력과 분노로 가득찬 ‘어둠의 행성’에 화합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한다. 로덴베리가 60년대 텔레비전 시리즈 <스타 트랙>에서 이야기해온 ‘평화의 철학’을 고스란히 형상화한 인물이다. 그러나 이 철학 너머에는 미국적인 사고방식도 깔려 있다. 안드로메다 어센던트를 총 지휘하는 딜런 함장은 모든 문제를 혼자 해결한다. 안드로메다에서 그의 말은 곧 진리이자 법이다. 그 영웅주의에는 미국식 패권주의의 냄새가 배있다. 장면 곳곳에서 은근 슬쩍 미국 문화우월주의를 내비치기도 한다.

[스크린 속 나의연인] 마릴린 먼로

이상하게도 내겐 나만의 여신이 없었다. 한참 영화에 빠져들기 시작하던 시절에 같은 또래의 아이들처럼 <주말의 영화>를 목을 빼고 기다리거나 용돈이 생기면 얼른 영화관으로 달려가곤 했던 기억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게 꼭 특별히 내가 숭배하거나 사랑하는 어떤 스타를 보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예컨대 공책, 책받침, 책갈피 등등 온갖 학용품에 왕쭈셴(왕조현)이나 저우룬파(주윤발)의 얼굴이 넘쳐나던 시절에도 난 그저 그들의 얼굴을 보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영화관을 찾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난 스타 따위에 연연하는 철부지가 아냐’라는 식의 건방진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고, 그저 그 매력적인 홍콩스타들도 <공자다정>같은 영화에선 어처구니없을 만큼 꼴사나운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한다는 걸 알고 있었던 데 불과하다. 전설적인 섹스심벌이자 세기의 스타로 알려져 있는 마릴린 먼로에 대해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내가 처음으로 본 먼로 주연의 영화는 빌리 와일더 감독의 <뜨거운 것이 좋아>로 기억하는데, 유쾌하고 사랑스러운 작품이긴 했지만 먼로가 특별히 매력적인 여배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먼로의 하얀 치맛자락이 지하철 통풍구 바람에 날리는 그 유명한 장면이 등장하는 <칠년만의 외출>은 내겐 빌리 와일더의 영화였을 뿐이고, 제인 러셀까지 가세한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도 하워드 혹스의 이색적인 뮤지컬로 비쳤을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텔레비전에서 본 한 편의 마릴린 먼로 영화가 처음으로 내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그건 오토 프레밍거의 <돌아오지 않는 강>이었다. 블루진에 하얀 셔츠를 입은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먼로에게 어울리는 의상은 온갖 장식들로 한껏 멋을 낸 여성스러운 복장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기묘하게 성적인 암시를 풍기는 그녀의 얼굴과 제스처는 그걸 강조하고자 하는 의상과 만날 땐 오히려 천박한 인상을 줄 뿐이지만, 그와 대조적인 단순한 의상에 싸여 있으면 놀랄 만큼 청초한 빛으로 보는 이를 사로잡는다. 하지만 여타의 영화에서 찾아보기 힘든 먼로의 매력이 온전히 발휘된 유일한 영화는, 존 휴스턴의 <기인들>일 것이다. 잠시나마 그녀의 반려자이기도 했던 아서 밀러가 각본을 쓴 이 작품은 밀러의 먼로 예찬인 동시에 그녀를 향한 작별인사이기도 하다. 세파에 시달린 순수, 성스러운 창녀, 성숙한 소녀 내지는 경험 많은 처녀 등등, 먼로와 결부될 법한 ‘음란한’ 상상과 정의들은 이 영화를 통해 완성되었다. 한편으로 섹스심벌이 아닌 연기자로서의 먼로의 재능을 확인할 수 있는 이 영화에서 그녀는 대개의 사람들이 그녀에게서 전혀 기대하지 못했을 곰삭은 슬픔과 탄식, 절망을 내비치기도 한다. 영화의 안과 밖이 기묘하게 겹치는 순간이랄까. 먼로는 이 영화가 개봉되기 직전에 아서 밀러와 이혼했으며 일년 뒤엔 알콜중독과 수면제 과다로 세상을 떠났다. 영화 속에서 먼로는 클라크 게이블에게 묻는다. “어떻게 그냥 살죠?”(How do you just live?) 게이블의 답변. “먼저 잠을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가려운 데를 긁고, 계란 프라이를 하고, 날씨가 어떤지 보죠. 깡통에 돌도 던지고 휘파람도 불고요.” 그건 먼로가 결코 누려보지 못했던 삶일 것이다. 문득 작년에 열렸던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전에서 본 한 장의 사진이 떠오른다. 그것은 브레송이 바로 <기인들>의 세트장에서 촬영한 먼로의 사진이었다. 보는 이에게 기묘하게 슬픈 느낌을 전하던 그 사진은 앤디 워홀의 의도적인 과장과 풍자를 가볍게 넘어서며 거장다운 솜씨로 먼로의 내밀한 슬픔과 피로감에 공명하고 있었다.

출연하라, 그리하면 흥행할지니

#1 KBS2 <상상플러스> 지난 1월31일 방영분. 배우 김수로가 꼭짓점 댄스를 선보인다. 다른 출연자들이 대오를 맞춰 따라한다. 대부분 포털사이트에서 검색 1위에 등극한 꼭짓점 댄스는 수만명의 네티즌이 ‘월드컵 공식 댄스로 정하자’고 서명운동을 벌여 화제를 낳았다. 방송 9일 뒤 김수로의 첫 단독 주연작 <흡혈형사 나도열>이 개봉했다. #2 SBS <야심만만 만명에게 물었습니다> 2005년 9월5일 방영분. 배우 김수미가 어린 시절 어머니를 위해 유리그릇을 훔쳤다가 어머니에게 혼난 사연을 이야기한다. 김수미는 “국화꽃 무늬만 보면 어머니가 보고 싶다”고 말하다가 눈물을 흘린다. “첫 월급을 탔는데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드릴 수가 없었다”는 그의 모습에 방청석이 숙연해진다. 이틀 뒤 김수미가 출연한 <가문의 위기-가문의 영광2>가 개봉했다. #3 SBS <일요일이 좋다―X맨>, KBS <해피선데이―여걸식스>에 지난 1월8일부터 2주 연속 출연한 <투사부일체>의 출연진. 1월9일과 16일의 SBS <야심만만…>에도 연이어 등장했다. 1월10일에는 KBS2 <상상플러스>와 1월20일 MBC <유재석, 김원희의 놀러와>에 출연하며 이들의 오락프로그램 출연은 마무리됐다. 네티즌의 극심한 비난에도 1월19일 개봉한 <투사부일체>는 610만명을 기록하며 한국영화 역대흥행 7위의 성적을 거뒀다. 요즘 TV 오락프로그램은 영화 홍보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토크쇼와 주말 주요 오락프로그램에 개봉을 앞둔 영화배우들이 대거 얼굴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주로 코미디물 배우의 주무대로 여겨지던 토크쇼에 다른 장르영화의 배우들마저 가세하면서 오락프로그램 출연은 영화홍보의 최전선이 됐다. 충무로의 마케팅 속설 중에 ‘신문, 인터넷, 버스와 지하철 광고를 비롯한 모든 광고홍보 수단은 그걸 사용하거나 소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도달할 방법이 없다. 하지만 텔레비전을 안 보는 사람은 없다’라는 표현이 있을 만큼 영화홍보에 TV의 영향력은 가히 절대적이다. “배우들이 출연하는 프로그램들은 광고로 치면 SA급에 속한다. 그 시간대 스팟광고 15초를 하는 데 1천만원이 든다. 그런데 배우가 자기 영화를 소개할 기회가 생기는데 그걸 마다할 마케터는 없다”라고 <흡혈형사 나도열>의 마케팅을 담당한 아이엠픽쳐스 김민국 팀장은 말했다. <투사부일체> TV 출연 후 인지도 상승 프로그램 방영 2∼3주 뒤에도 TV 옴부즈맨 프로그램에서 다뤄질 정도로 여파가 컸던 <투사부일체>. 마케팅을 담당했던 시네마제니스 이점애 대리는 “원래 개봉이 1월27일이었는데 19일로 당겨지면서 방송이 한주에 몰렸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방송사의 지침상 이미 개봉된 영화를 홍보하는 성격의 출연은 규제된다. 이 대리는 “배우들이 최선을 다하는 상황에서 마케터로서의 욕심도 있기 때문에 눈앞에서 출연을 포기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투사부일체>는 제작기간이 짧았기 때문에 인지도 상승이 절박했다. <투사부일체> 출연진의 오락프로그램 출연을 통한 홍보전략은 결과적으로 대성공이었다. 영화사쪽은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 순위가 50위권에 머물렀는데 <일요일이 좋다―X맨>의 첫 방영 이후 단숨에 10위 내로 진입했다”고 설명했다. TV 홍보가 위력적인 배경에는 오락프로그램 출연이 인터넷의 입소문과 연동되는 특성이 있다. <가문의 위기-가문의 영광2>를 홍보했던 이진 실장은 “세계야구클래식(WBC)만 해도 TV보다 인터넷과 위성DMB의 시청률이 높았고, 이것은 TV를 인터넷으로 재확인하는 젊은 소비자의 특성이 반영된 결과”라고 말했다. 출연배우의 입담이나 에피소드가 인터넷을 통해 회자되면 해당 영화의 인지도는 수직으로 상승한다. 공중파 연예프로그램에서 일하기도 했던 영화홍보사 유쾌한 확성기의 류순미 실장은 “주요 TV오락프로그램을 통한 영화 인지도의 도달률은 80%에 이른다. 특히 광고가 취약한 지방에서의 영화 인지도를 고려하면 절대적인 홍보수단”이라고 말했다. 마케팅 격언대로 이런 ‘인지는 선호로 이어진다’는 점이 중요하다. 꼭짓점 댄스로 대박을 터트린 <흡혈형사 나도열>의 경우, 준비된 마케팅도 주효했다. 김민국 팀장은 “최초로 배우의 오락프로그램 출연 자체를 온라인과 신문광고로 선보였다”고 했다. 이후 꼭짓점 댄스가 인터넷을 통해 인기를 모으자, 마케팅팀은 보도자료에서 이를 널리 알리는 발빠른 후속조치를 취했다. 영화사는 흥행위해, 방송사는 시청률 위해 영화사가 흥행을 위해 비난을 감수하며 오락프로그램 출연에 뛰어드는 것처럼 방송사는 시청률을 위해 영화배우들에게 무대를 제공한다. 겹치기 출연이나 간접광고 조항 때문에 방송위원회의 경고 조치를 받는 상황을 감내하며 방송사가 입담이 좋은 배우들을 유치하는 것은 오로지 지상과제인 ‘시청률’ 때문이다. 프로그램 내적인 측면에서는 오락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모 방송작가의 말처럼 “일반 게스트들에 비해 영화배우들의 입담이나 화제의 내용이 신선하다”는 면도 부분적으로 작용한다. 옴부즈맨 프로그램을 통해 겹치기 출연을 비판하는 곳은 방송사다. 하지만 겹치기 출연을 불사하는 것도 방송사다. 최근 시청자들의 거센 비난을 샀던 <투사부일체> 출연진은 대부분의 오락프로그램에서 20∼25%를 상회하는 시청률로 자체 시청률 기록을 대부분 갈아치웠다. 시청률 제일주의와 흥행 제일주의라는 자본주의적 공통분모가 결합되면서 오락프로그램 출연의 과열 양상은 가속화됐다. 영화마케팅 일선에서는 “예산이 적은 영화일수록 TV프로그램 출연은 효과적이고 중요한 홍보수단”이라는 견해를 피력하지만 동시에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약한 출연진으로는 오락프로그램 출연 자체를 방송사에서 거부한다”는 딜레마도 안고 있다.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을 마케팅한 비단길 김진아 실장은 “배우가 약하면 방송홍보를 하고 싶어도 절대 못한다. 아무리 사정해도 시청률 앞에서 방송사는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코미디 외의 영화 홍보에는 부적절 모든 영화가 오락프로그램 출연으로 좋은 효과를 거두지는 못한다. “말장난에 가까운 유머, 감각과 일상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토크쇼와 오락프로그램에는 아무래도 코미디영화가 적합하다. 출연 프로그램의 시청률과 영화 흥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사례는 <가문의 위기-가문의 영광2> <투사부일체> <흡혈형사 나도열> 등 코미디물이 강세다. 오락프로그램에서 환대받는 김수로, 차승원, 임창정 같은 배우들도 코미디영화의 아이콘으로 인식된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러한 입담과 말장난에 모든 출연자를 끼워맞추는 방식이다. 김민국 팀장은 “2000년 즈음에만 해도 배우가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지금은 쇼프로그램의 성격에 맞춰 배우가 이야기하는 형태”라고 말했다. 영화평론가 허문영은 <한겨레> 3월9일치 “재담꾼 강요하는 ‘오락TV’”라는 글에서 “예컨대 백윤식이 출연한다면 그의 재담 거리가 아니라 그가 자기 분야에서 이룬 성취를 질문해야 한다. 이건 공익 이전에 예의의 문제”라고 평했다. 오락프로그램 출연의 대안으로 새로운 영화 전문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방법은 어떨까. 하지만 문제는 다시 시청률이다. 배우들의 진지한 대화가 시청률을 높일 수 있다면 방송사는 주판을 튕기며 자발적으로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달려들 것이다. 모든 마케터들이 입을 모아 “TV가 없어지지 않는 한 이러한 양상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한다. “오락프로그램에 환호하는 대중의 눈높이가 바로 영화 흥행의 눈높이”라는 현장 관계자의 말처럼 모든 것은 리모컨을 누르는 시청자들의 손에 달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배우 TV출연 10계명 현장 영화마케터들이 밝힌 오락프로그램 출연 10계명 1. 시청률 최고의 프로그램을 고른다. 2. 성격이 비슷한 프로그램에 반복해서 출연하지 않는다. 3. 영화 성격에 부합하는 프로그램을 배우와 신중히 논의하고 출연을 결정한다. 4. 노출 빈도보다 중요한 것이 프로그램의 방영 시기다. 일정 조정이 생명이다. 5. 배우의 이미지 메이킹과 성격을 최대한 고려한다. 6. 단답형 대답으로 일관하거나 방송을 싫어하는 배우가 억지로 출연하면 역효과가 난다. 7. 토크쇼 프로그램이라면 영화 소개보다는 일단 시청자를 즐겁게 해줘야 한다. 8. 비방송 용어를 주의한다. 9. 배우의 단면적인 특성만 드러나지 않도록 주의한다. 10. 방송 출연이 잦은 편이 아닌 배우라면 한 프로그램 출연에 집중한다.

중국서 3국 합작영화 <중천> 찍는 정우성·김태희

“판타지와 액션과 멜로가 결합된 독특한 영화”(김태희) “성공한 판타지 영화가 없었다고? 〈중천〉이 성공할 것”(정우성) 중국 저장성 헝뎬 영시성(영화·텔레비전 촬영소)에서 영화 〈중천〉(조동오 감독)을 촬영중인 정우성, 김태희가 27일 오후 촬영지 근처 숙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순제작비만 110억원에 이르는 〈중천〉은 한국 자본과 인력을 바탕으로, 일본과 중국 스태프들이 참여하고 중국 올로케이션으로 이뤄진 범아시아 프로젝트다. 제목 〈중천〉은 죽은 영혼들이 7일씩 7단계를 거쳐 이승의 기억을 정리하고 환생을 준비하는 판타지 공간 ‘중천’에서 따왔다고 한다. 퇴마무사 ‘이곽’ 역을 맡은 정우성은 “기존의 한국 판타지 영화들이 판타지라는 장르를 개척하기 위해 기술력과 비주얼을 보여주는 데 주력했다면, 〈중천〉은 인간의 ‘기억’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러브스토리에 중점을 두고 기술력과 비주얼은 그 얘기를 전달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며 그동안 관객들에게 외면당했던 국내 판타지 영화들과의 차별점을 강조했다. 또 인간 ‘연화’였다가 죽어서 천인 ‘소화’가 되는 김태희도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 〈천녀유혼〉을 떠올리기도 했지만 사실 전혀 다른 영화”라며 “단순하고 어린애 같은 소화만 봐도 〈천녀유혼〉의 섹시한 귀신과는 전혀 다르다”며 홍콩 판타지 영화와의 차이를 설명했다. 지난해 10월말부터 5개월 가까이 중국에 머물며 강행군을 계속하고 있는 두 사람은 중국 현지 촬영에 대해 각별한 감회를 드러내기도 했다. 정우성은 “물이나 기타 기반시설은 부족하지만 헝뎬이라는 도시 자체가 거대한 세트장이어서 참 부럽다”고 했다. 처음 영화에 출연하는 김태희는 “한국에 있었다면 촬영이 없을 때 친구들을 만나거나 식구들과 함께 보내며 ‘김태희’로 돌아가곤 했겠지만, 중국에 떨어져 있으니 오히려 ‘소화’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중천에서 다시 만난 이곽과 소화의 운명적인 사랑, 그리고 소화를 위협하는 이곽의 이승 동료 반추(허준호)와 이곽의 대결이 영화 속에 담겼다. 〈무사〉의 조민환 프로듀서와 김성수 감독이 제작을 맡았으며, 당시 조감독이던 조동오 감독이 첫 메가폰을 잡았다. 〈중천〉의 국내 개봉은 올해 말로 예정돼 있다.

장률 vs 정성일 대담 [1]

장률 감독은 한국과 중국, 두개의 국가에 속한 동포감독이고, 소설에서 영화로 활동무대를 옮긴 과거를 지니고 있다. 경계에 선 존재는 아무래도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씨네21>은 그의 첫 번째 장편영화 <당시>가 전주영화제에서 상영된 2년 전, 아시아 동포감독 중 한명으로 그를 소개한 바 있다. 그로부터 1년 뒤 한국에서 개봉한 <당시>는 실로 참담한 관객 수를 확인해야 했다. 그러나 뒤늦게 시작한 그의 영화인생은 그때부터 본격화된다. 비슷한 시기 장률 감독은 <망종>을 들고 칸영화제 비평가주간을 찾았고, 그해 <망종>을 상영한 부산영화제는 뉴커런츠상을 안김과 동시에 그의 세 번째 장편 <두만강>을 부산프로모션플랜(PPP) 지원작으로 선정했다. 오는 3월24일 개봉을 앞둔 <망종>은 장률 감독이 첫 번째 단편부터 일관된 철학과 스타일을 우직하게 밀어붙인 흔적이 역력한 영화다. 그의 두 번째 영화가 좀더 많은 관객과 한결 수월하게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정성일 영화평론가와 장률 감독의 긴 만남을 준비했다. 네 시간에 걸쳐 진행된 애정어린 질문과 성실한 대답은 아직은 낯선 감독의 영화를 맞이할 이들에게 충실한 가이드가 되어줄 것이다. 장률 감독과의 인연이 시작된 순간에 대한 회고부터 앞으로도 계속될 그의 필모그래피를 향한 기대로 이어지는 정성일의 글을 함께 싣는다. 평론가 정성일이 <당시> <망종>의 감독 장률을 만나고 싶어진 이유 영화란 무엇인가 그때 내가 장률의 영화를 처음 본 건 아무 준비가 안 된 상태였었다. 나는 그의 이름을 알지 못했으며, <당시>라는 영화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다. 심지어 많은 영화를 심사하는 자리였고, 그때 내가 보고 싶었던 영화는 김동원 선배가 12년간 준비한 다큐멘터리 <송환>이었다. 영진위에서 매년 하는 디지털영화 프린트 지원 사업심사에서였다. 이런 자리는 부주의해지기 쉽다. 나는 심사에 대해서 동료들에게 일종의 수도원에 들어가는 것과 비슷하다고 이야기한다. 새로운 영화들이 내게 말을 걸고, 나는 거기서 진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속는 것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놓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매번 영화를 향한 내 눈과 귀를 열기 위해 이리저리 다시 몸을 틀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서로 다른 테마, 서로 다른 화법, 서로 다른 교양을 갖고 세상을 다루기 때문이다. 나는 영화란 무엇인가, 라고 질문하는 것은 결국 세상이란 무엇인가, 라고 묻는 것만큼이나 황당무계하다고 생각한다. 그 무례함, 그것을 각오하고 해야 하는 질문.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겠지만 결국 (아주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는) 동어반복으로 끝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 대신 그 영화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 훨씬 중요하다고 믿는다. 혹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얻고 싶다. <당시>는 보자마자 그 질문을 하고 싶게 만드는 영화였다. 21세기 영화의 마술사 리스트에 장률을 넣자 내 경험적으로 좋은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무언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마술 같은 것을 부린다. 마치 마술사가 그의 손짓을 움직이자마자 즉각적으로 우리의 시선을 그 손에만 집중하게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 아니, 차라리 그 손짓이 시선을 훔쳐낸 다음 자기 멋대로 부린다는 말이 옳다. 그래서 거기 없는 것을 정말 본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오데사 계단에 선 어머니가 놓친 유모차에 멈추어선 혁명, 잉그리드 버그만에게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폼페이 화산의 미라가 된 연인의 숭고, 남의 호주머니를 훔치는 텅 빈 손 안의 증발해버린 영혼, 과년한 딸을 시집보낸 다음 텅 빈 집에 와서 쳐다보는 부엌 저편을 찾아온 죽음. 그 영화들은 무엇으로 나를 환대하는가? 영화 안에 무언가를, 지혜를, 깨달음을, 역사를, 눈물을 혹은 웃음을, 사유를 훔치러 온 일개 영화평론가인 나를 기꺼이 환대하면서, 하지만 내가 절대로 훔쳐갈 수 없는 배움을, 오직 배울 수만 있는 깨달음을,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펼쳐놓고 보여주는 영화들. 지난 세기가 거의 끝나갈 때 영화도 끝났다고 세르주 다네는 유언처럼 말했다. 물론 위대한 영화들의 시대는 끝났다. 하지만 그럼에도 계속해서 새로운 영화들이 나왔다. 이를테면 21세기에 그들의 첫 번째 영화를 만든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왕빙, 소피아 코폴라, 안드레이 즈비야긴셰프, 무랄리 나이르, 에릭 쿠(아마도 나는 많은 이름을 놓쳤을 것이다). 나는 여기에 장률을 포함시키고 싶다. <당시>는 시작하자마자 자기가 만들어낸 세상에 스스로 버티어 선다. 그냥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원래 그런 영화가 있었던 것처럼. 작은 아파트 안에 세상의 모든 사건을 품은 <당시> 솔직하게 심사에서 처음 <당시>를 만났을 때는 어리둥절했다. 아니, 왜 대한민국 영진위 돈으로 중국영화를 지원 사업 명단에 포함시켜야 하는가? 이 영화는 중국어로 진행되고, 중국 배우들과 중국 스탭들과 중국에서 찍었고, 중국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심사 서류를 보니 한국에서 촬영을 하는 최두영씨가 제작했고(이 사람은 김응수의 <달려라 장미>를 찍었고, 노동석의 <마이 제너레이션> 마지막 대목에 사채업자로 등장한다), 게다가 감독이 조선족 옌볜동포라는 설명이 있었다. DV로 찍은 <당시>는 장률의 첫 번째 영화이다. 이제는 손목을 못 쓰는 중년 남자 소매치기와 그를 스승으로 여기는 젊은 여자 소매치기는 일종의 뚜쟁이와 창녀 사이와 비슷하다. 남자는 여자를 뜯어먹으면서 지내고, 여자는 그에게 상납을 한다. 하지만 여자는 그에게 사랑을 느끼고, 남자는 스승과 제자 사이의 관계를 넘지 않으려고 한다. 감정과 배움, 여자와 남자, 제자와 스승. 영화는 시종일관 그 작은 아파트 방 안에서 바깥으로 나갈 생각이 없다. 말하자면 이 방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의 환유이다. 여자의 작은 동작, 마치 슬로모션처럼 느린 제스처, 거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무표정 안에서 무언가 읽어달라고 간절하게 하소연하는 눈짓, 아무렇지도 않게 하지만 아주 가끔씩 건네는 대화. 아무런 장식도 없는 모던한 조명. 멈추어선 카메라. 띄엄띄엄 검은 자막 위에 떠오르는 당시(唐詩)의 사무치는 시 구절. 막 이사를 왔거나 금방이라도 떠나버릴 것처럼 텅 빈 이 방 안에서 두 사람은 종잡을 수 없는 감정의 위기를 맞이한다. 그러나 속으면 안 된다. 장률이 하려는 이야기는 멜로드라마가 아니다. 이 방은 동시에 이 아파트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일부이다. 그런 다음 마지막 10분 동안 갑자기 마술이 벌어진다. 아, 이제까지 내가 본 것은 무엇인가? <당시>는 두 번째 볼 때 전혀 다른 자리, 전혀 다른 이야기, 전혀 다른 이야기의 구도, 힘의 방점의 이동, 배치의 재설정, 변경에 앉아서 자기의 자리를 중심으로 오해한 비극 안의 익살, 연약한 믿음의 부서짐, 심각하게 걱정했던 관심의 소스라치도록 갑작스러운 사소함. 그 안에서 주인의 자리로부터 사실상 보잘것없는 이웃에로 물러나는 초라함이 거기에 있다. 그런 다음 나는 이 사람의 다음 영화가 궁금해졌다. 그는 인터뷰 어디에선가 <당시>가 <송사>(宋詞), <원곡>(元曲)으로 이어지는 3부작 중 첫 번째 영화라고 말했다. 나는 속으로 생각하기를 그렇다면 그 다음은 <명소설>(明小說), <청극>(淸劇)까지 아예 5부작을 찍으시지, 라고 좀 불편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영화 제목이 어마어마해지면 좀 웃긴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혹은 거기에 허영이 있다고 지레짐작한다. 또 다른 인터뷰에서는 중국과 북한 사이를 흐르는 두만강을 두고 소년들의 이야기를 다룬 <두만강>을 만들겠다는 기사도 읽었다. 그 사이에 <당시>가 개봉하였다. 매우 유감스럽지만 이 영화는 ‘전국에서’ 268명이 보았다. 이런 게 ‘문화의 다양성’을 말하는 현실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두 번째 영화 <망종>을 보게 되었다. 소포모어 징크스와의 피할 수 없는 대결. 그런데 장률은 그걸 그냥 간단하게 뛰어넘었다. 그 어떤 삶의 흔적도 없는 쓸쓸한 무대 <망종>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니 스포일러를 피하실 분은 영화를 보고나서 읽으십시오.) 이야기는 좀더 복잡해지고, 인물들은 내내 바깥을 돌아다닌다. 거리에서 김치를 파는 32살 조선족 여자 최순희는 아들 창호와 함께 거의 무너질 듯한 집에서 하루 팔아서 하루 먹고산다. 최순희는 미모를 가졌고, 남자들은 남편없는 그녀에게 관심이 많다. 우연히 거리에서 만난 공장노동자 조선족 김씨는 그녀에게 호의를 베풀지만 사실 그의 관심은 그녀의 몸이다. 자꾸만 친절을 베푸는 공안원 왕씨는 다른 여자와 결혼을 앞두고 있지만 최순희를 시간 날 때마다 찾아온다. 아들이 찬 공이 유리창을 깬 집의 주인인 음식점 남자는 그녀에게 자기 식당에 김치 납품을 제안하면서 대신 자기에게는 무엇을 줄 수 있느냐고 묻는다. 불륜 현장을 목격당하자 아내에게 저 여자는 매춘부라고 거짓말을 한 조선족 김씨 때문에 경찰서에 잡혀간 그녀를 공안원 왕씨는 동료들이 술 마시러 간 사이에 문을 닫고 겁탈한다. 집에 돌아온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아들 창호의 죽음이다. 다시 거리에서 김치를 파는 최순희에게 공안원 왕씨의 약혼녀는 그녀의 결혼식에 쓸 김치를 부탁한다. 최순희는 정성을 다해서, 그 결혼식에 가져갈 김치에 쥐약을 잔뜩 맛나게 버무려서 배달한 다음 천천히 집에 돌아온다. 멀리서 기적 소리가 들리고, 그녀는 역으로 홀린 듯이 걸어간다. 지금은 보리를 거두고 벼를 막 심어야 하는 계절, 망종이다.(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 주의보를 해제합니다.) 장률 영화에서 모든 사람들은 더이상 침묵으로 이야기가 진행될 수 없을 때에만 말한다. 대사는 간결하고, 인물들은 대부분 등을 돌리고 서 있거나 거의 멈추어서 있다. 그러나 더 특별한 것은 영화 속의 등장인물들이 걸어다니는 속도이다. 너무 삶이 힘에 겨운 듯이 슬로모션처럼 가까스로 걸어다니는 인물들 속에서 가장 수다스러운 것은 텔레비전이고, 쉬지 않고 움직이는 것은 선풍기뿐이다. 거리는 텅 비어 있고, 공간들은 마치 세트장에 온 것처럼 황량하다. 거기에는 어떤 삶의 흔적도 묻어나지 않는다. 마치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처럼 혹은 사뮈엘 베케트의 무대와도 같은 쓸쓸한 그 동네에서 32살의 조선족 여자 최순희는 11살 난 아들 창호를 키우기 위해 그래도 매일 김치를 팔기 위해 거리에 나가야 한다. 세상 밖으로 나간 장률, 그를 알고 싶다 여기서는 두 가지가 문제가 된다. 하나는 방 안에서 거리로 나간 장률의 이동이다. 시종일관 화창한 늦봄 날씨의 거리에서 더 많은 인물들과 만나고, 그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사건은 여전히 조용하고, 잔인하며, 쓸쓸하다. 그러나 그 안에서 장률이 만들어내는 미학적, 정치적, 윤리적 선택은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영화가 산문적으로 설명되는 것에 대해서 저항한다. 물론 그것은 내가 보고 또 본 다음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할 질문이다. 하지만 두 번째 문제는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을 훨씬 뛰어넘는다. 이 영화의 주인공 최순희는 <(<당시>의) 손을 못 쓰는 소매치기보다 더 말이 없다. 절망의 끝에까지 밀려난 32살 조선족 여자는 아들의 죽음 앞에서조차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여기에는 ‘중국’에서 사는 ‘조선족’, ‘여자’라는 세 겹의 매듭이 있다. 그 매듭은 우리에게 문화적 번역을 요구한다. 우리는 국가와 민족이라는 경계 사이에 비스듬히 서서 우리를 돌아보면서 중국에 발딛고 서 있는 삶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 앎이란 거기에 산다는 문제와 만날 때 얼마나 빈곤해지는가? 나는 장률이 만나고 싶어졌다. 거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환대는 그에게 질문하고, 또 질문하는 것뿐이다. 그 대답 안에 스며든 삶의 육신. 그것을 이해하고 껴안으려고 맹렬하게 노력하는 것. 장률과의 대담은 여기서 시작된 것이다.

[스크린 속 나의 연인] 배종옥

대학 1년, 생애 첫 미팅에서 만난 K와 끝내 연인이 되지 못하고 멀어졌다. 미완성이 부른 집착이었을까. 무심히 텔레비전을 보던 찢어진 내 작은 눈이 놀라 동그래졌다. ‘아니, 쟤가 왜 광고에 다 나오지? 언제 연예인이 된 거야.’ 착시의 대상이 배종옥이었다는 걸 드라마 <왕룽일가>를 보고서야 깨달았다. 하여튼 그 때 내 눈에는 ‘두 사람이 무척 닮았다’. 헛것을 좇을 정도로 간절했던 K에 대한 허기를 <왕룽일가>의 배종옥을 보며 달랬고, 인기 급상승의 ‘쿠웨이트 박’에 비해 배종옥의 얼굴을 짧게 내보내는 연출자를 매회 저주했다. 급기야, 역시 배종옥이 출연했던 드라마 <도시인>을 볼 때는 드라마 프로듀서를 해야할까 보다, 하는 생각을 했더랬다(그래서였는지 알 수 없으나 졸업 무렵, 한 방송사의 방송아카데미에다 아르바이트 수개월치를 갖다 바치고 연출 과정을 마쳤다). 이쯤 되니 배우 배종옥 자체의 매력에 점점 빠질밖에. 그녀의 온전한 첫 영화 주연작 <걸어서 하늘까지>가 극장에 걸리던 날, 달려갔다. 그것도 첫 미팅의 K를 데리고. 현실 속의 K와 재회한 터에 스크린 속의 연인까지 어둠 속에서 함께 하니 영화에 대한 아쉬움은 크지 않았다. 그 후 K와 첫 연애에 빠져들었으니 ‘오우~ 스크린 속 나의 여신이여, 땡큐’였다. 1년 뒤에 나온 드라마 <걸어서 하늘까지>의 주제가는 음치를 증명해주는 나의 오랜 애창곡이 됐다. 신문기자가 됐다. 배종옥과의 첫 대면은 케이비에스 분장실에서 이뤄졌다. 긴장과 설렘에 살떨리던 인터뷰 순간은 허무하게 끝났다. 여신의 응답 방식은 대단히 경제적이었고, 교감의 수위는 기사의 범위를 넘지 않았다. 헤어진 K는 누군가의 아내가 됐고, 여신은 구름 궁전에 머물 뿐인 시절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질투는 나의 힘> 개봉 파티에서 여신을 다시 만났고, 여전히 경제적인 대화를 나눴다. 다시 시간이 흘러 <러브 토크> 마지막 촬영날, 여신이 내 앞에 툭 앉으며 아는 체를 했다. “<안녕, 형아> 때 인터뷰를 3주 동안 계속 하니까 너무 힘들더라. 근데 기자들도 공부 좀 하고 와야하는 거 아니니? 어이 없는 질문 할 때면 없는 기운이 더 빠져. 그렇지 않니? <씨네21>이 그렇다는 건 아니고.” 보자마자 특유의 말투와 억양으로 툭 반말을 던져주시는 그녀, 감동의 물결이었다. <러브 토크> 개봉 파티날, 누군가 눈 흘기며 면박을 줬다. “어째, 자리에 없다 싶으면 종옥 언니가 노래 부르고 있고, 그 뒤에서 열심히 백댄서하대. 번번이. 그렇게 좋아?” K는 바다 건너 머나먼 땅에서 새 삶을 시작했고, 그녀와의 기억은 구름 저 너머로 사라져간다. 반면, 노희경 작가의 <굿바이 솔로>에 출연중인 배종옥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단단해지고 있음을 증명하며 여신 독재의 시대를 마무리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구름 너머에서 이따금 내 코앞으로 하강해 그 또한 나처럼 생사고락의 인격이라는 걸 알려주니 참으로 정겨운 여신이요, 인간미있는 여신이다. 스크린과 텔레비전에서 똑부러지는 그의 눈빛과 어투는 여전하지만 외부를 포옹하는 기운은 나의 눈을 따뜻하게 해준다. 현실과 스크린 사이에 벌어지는 교차의 묘미는 삶을 진정시켜주곤 한다. 영원한 건 없다는 새삼스러움으로.

미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그늘진 이면, <스위트룸>

<스위트룸>은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와 함께 캐나다의 대표적인 감독인 아톰 에고이얀의 작품이다. 에고이얀이 자신의 두 번째 작품인 <패밀리 뷰잉>을 몬트리올영화제에서 선보였을 때, 그 영화를 본 빔 벤더스는 자신에게 주어질 상금을 양보하려 했을 만큼 그의 재능을 알아보았고, <스피킹 파츠> <엑조티카> <달콤한 내세> 등으로 이어지는 에고이얀의 영화는 빔 벤더스의 감식안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아라라트>에서 동시대를 배경으로 하던 영화적 경향에서 벗어나 ‘아르메니아인 학살’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영화 속 영화’의 형태로 재현하며 과거로 시선을 돌렸던 에고이얀은 다시 한번 과거의 시간을 배경으로 미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그늘진 이면을 들춰내고자 한다. <스위트룸>은 1950년대 최고의 코미디언 콤비였던 래니(케빈 베이컨)와 빈스(콜린 퍼스)가 소아마비 환자들의 치료 기금을 모금하는 텔레톤 공연의 무대에 오르기 전 서로를 마주 보는 그들의 시선으로부터 시작한다. 마치 결별하기 이전의 제리 루이스(Jerry Lewis)와 딘 마틴(Dean Matin) 콤비처럼, 로큰롤 분위기의 악동인 래니와 클래식에 어울리는 위트있는 신사인 빈스는 상보적으로 완벽한 콤비를 이루면서 1950년대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최고 스타로 군림했다. 이 도입장면에서 에고이얀 영화의 음악을 도맡다시피 하는 마이클 대너의 영화음악이 분위기를 마술적으로 전환시키면(이 영화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클래식과 팝, 펑크록과 재즈를 모두 아우르고 있는 영화음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의 텔레톤 공연 장면을 담던 카메라는 한 호텔의 스위트룸 욕조에 죽어 있는 한 여인을 향해 다가간다. TV를 통해 보여지는 화려한 쇼와 그 등가물인 듯한 스위트룸, 하지만 그 욕조에 발가벗은 채로 싸늘히 식어 있는 모린(레이첼 블랜차드)이라는 젊은 여성. <스위트룸>은 이 대조적인 도입부를 통해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생산한 스타의 겉으로 드러나는 삶과 그 이면에 감추어진 적나라한 실체 사이의 간극을 암시하는 것이다. <스위트룸>의 원제가 <진실이 있는 곳에>(Where the truth lies)임을 감안한다면, 에고이얀이 보여주려는 치명적인 진실은 표면과 이면의 어느 한쪽이 아니라, 이 둘이 조화에 실패함으로써 벌려놓은 그 간극에 놓여 있는 셈이다. 래니와 결별한 뒤 내리막길을 걷던 빈스는 자신의 전기를 출간하기로 결정하고, 그 저술 작업은 그들의 마지막 텔레톤 쇼에 출연했던 소녀이자 이제는 야심만만한 젊은 작가로 성장한 카렌(앨리스 로먼)에게 돌아간다. 카렌은 빈스와 래니의 삶에 놓여진 수수께끼인 모린의 죽음을 캐내려 하지만, 이는 결코 순수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영화 말미에 저널리스트를 꿈꾸지만 진실을 수단화하려 했던 모린의 얼굴이 카렌과 겹쳐지는 장면이 암시하듯이, 그녀에게 그 사건은 야심찬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미끼이기도 한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카렌은 <달콤한 내세>의 변호사와 유사하다. 그가 스쿨버스 사고로 아이들을 한꺼번에 잃어버린 마을을 조사하고 그 사건에 얽힌 진실을 밝히려 하지만, 이는 변호사로서의 의무감이나 정의감이 아닌 마약에 찌든 딸에 대한 죄의식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단이었다. 카렌은 모린의 죽음에 얽힌 사건의 실체를 조금씩 확인해가고, 이로 인해 어린 시절 우상이었던 래니와 빈스에게 품었던 환상이 그 이면의 마약과 사물화된 섹스에 잠식당한 추악한 삶과 충돌하며 발생하는 혼란 속에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스위트룸>은 미스터리스릴러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진실의 폭로 지점을 향해 숨가쁘게 질주하는 일반적인 장르의 공식보다는 현재(1972년)와 과거(1957년)를 오가면서 그 사건에 얽혀 있는 인물들의 표면과 이면의 삶을 병렬적으로 보여주는 데 방점을 찍는다. 그것이 일반적인 스릴러영화에 비해 속도감이 더딘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하지만, 시공간을 다층적으로 구성하여 파편화된 이야기를 병렬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이나 다소 느린 듯한 속도감의 사건 전개는 에고이얀 영화의 특징이기도 하다. 물론 <스위트룸>이 영화제에서나 간간이 만날 수 있는 에고이얀 영화의 특징들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해도,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큰 비중을 차지할 작품은 아니다. 하지만 <스위트룸>은 진실을 대하는 에고이얀의 태도를 다시금 확인시켜준다는 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달콤한 내세>와 <아라라트> 등에서 드러난 바 있듯이, 에고이얀은 어떠한 진실이 영화와 각종 미디어 그리고 심지어는 사법 제도와 만났을 때, 그 자체로 소통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의심의 눈길을 던지곤 한다. <스위트룸>에서도 진실을 상업적인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출판시장(혹은 저널리스트의 욕망)을 향해 곳곳에서 비판적 시선을 던지는 에고이얀은 진실이 매력적인 교환의 대상인 이상 그만큼 변질되기도 쉽다는 사실을 꿰뚫고 있다. 이러한 에고이얀의 진실에 대한 입장이 <스위트룸>의 엔딩에서는 진실이 누군가에게 화상을 입힐 수 있을 만큼 뜨거운 것이라면 폭로보다는 유예(<달콤한 내세>는 은닉에 가깝다)하는 것이 현명한 태도임을 강조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에고이얀은 약이지만 또한 독(질병)이기도 한 파르마콘과 같은 이중적 성격의 진실에 대해 약의 능력을 믿기보다는 독의 위험을 피해 움츠려드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 그것이 <스위트룸>을 보면서 그의 최고작인 <달콤한 내세>를 떠올렸던 이유일 것이다.

[로마] 난니 모레티, 21년 만에 TV에 출연한 사연

5년 전 <아들의 방>을 마지막으로 돌연 정치계에 뛰어들었던 이탈리아 영화감독 난니 모레티가 새 영화 <일 카이마노>로 이탈리아 관객과 만났다. 지난 2월24일 개봉한 영화 <일 카이마노>는 현 이탈리아 총리를 비유한다라는 말이 떠돌며 개봉 이전부터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개봉시기를 문제 삼았던 중도좌파 야당은 이 영화가 4월9일 있을 총선에서 중도우파 여당에 더 많은 표를 줄 수 있다는 우려를 표시했다. 관객이 중도우파 여당의 당수인 현 총리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에 관한 영화에 거부감을 품을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민감한 시기를 보내고 나서 영화를 개봉하더라도 늦지 않을 것이라는 중도좌파 야당의 주장에 난니 모레티는 “1년 전 영화 시나리오를 쓰면서 결정한 영화 개봉 시기를 총선 때문에 바꾸고 싶은 생각은 없다”고 거절했다. 한 나라의 총리를 영화화하는 일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2000년부터 5년 동안 총리를 맡고 있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는 4월9일 총선을 앞두고 언론으로부터 애초 공약을 지키지 않았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총선을 앞둔 이탈리아 언론들은 현 총리와 그의 여당이 공약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하였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러나 난니 모레티는 좀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는 어떻게 총리가 되었는가? 3개의 방송사를 운영하고, 출판과 신문을 장악하고 있는 그가 가진 돈은 어디에서 나왔는가?” 난니 모레티는 자질구레한 설명을 접어두고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돈뭉치에 관심을 쏟고 있다. 그리고 “베를루스코니가 돈이 많은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사람들 이름을 빌려 스위스 은행에 돈을 분산, 저금했는데 이 돈들은 하늘에서 쏟아진 것만은 아닐 거야. 마피아의 돈이다”라고 답을 내리고 있다. 영화는 이혼의 고통과 이탈리아영화에 대한 사랑도 말하고 있다. 두 아들을 둔 영화 속의 영화제작자는 이혼을 경험하며 뼈아픈 상실의 시대를 체험하고 아직도 사랑하고 있는 아내와 두 아들에게서 멀어져야 한다. 난니 모레티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 이탈리아의 현실을 영화를 통해서 볼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모레티는 텔레비전 인터뷰에 거의 응하지 않는 감독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영화 개봉과 함께 21년 만에 <케 템포 파>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 “<일 카이마노>는 코미디도 아니고 정치영화도 아니고 단지 영화일 뿐”이라고 답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을 뿐이다. 정치인들이 좋아하든 말든 그것은 영화를 보는 시각에 따라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을 수 있는 거나 다름없다”고도 했다. 4년 전 영화를 뒤로하고 ‘지로톤도’라는 대열에 앞장서 “정의는 모든 사람에게 평등해야 한다”, “방송 독점을 반대한다”를 외치던 그가 지금 다시 감독으로 돌아온 것에 이탈리아 관객은 연일 전 좌석 매진이라는 관심으로 응하고 있다. 이 영화는 이르면 칸영화제에서 세계 언론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양적으로 확장된 불치병 영화, <연리지>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불치병을 다룬 영화? 아니다. 그렇다면 황우석 박사 같은 이가 주인공이 돼야 한다. 이건 불치병에 걸린 사람이 주인공인 영화다. 최근 몇년 사이에 그런 영화들이 끊이지 않고 만들어진다. <연리지>는 그걸 조금 더 확장한다. 정확히 말해 양적으로 늘린다. 이 영화에선 불치병에 걸린 주인공이 둘이다. 민수(조한선)는 게임 개발 회사의 CEO이다. 돈 잘 벌고, 잘생긴 바람둥이다. 가벼운 교통사고로 병원에 가던 길에 혜원(최지우)을 만나게 된다. 어떻게? 비오는 날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 혜원 옆을, 민수가 탄 승용차가 지나가면서 길바닥의 물을 혜원에게 잔뜩 퍼붓게 된 게 인연이다. 혜원을 차에 태워줬더니 혜원 역시 목적지가 병원이다. 민수는 혜원에게 사심을 품지만, 혜원은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연락처도 남기지 않고 내려버린다. 그런데 다시 만난다. 어디서? 민수가 검사차 입원한 병실에서. 혜원은 민수의 맞은편 병실에 입원해 있던 환자였다. 이런 식의 우연이 겹치면서 둘은 사귀게 되고, 민수는 혜원의 불치병 사실을 알게 되고…. 영화는 공식을 따라가면서 옆길에 간간이 민수의 회사 선배(최성국)와 혜원 친구(서영희)의 로맨스를 코믹한 의도로 배치한다. 대체로 에피소드가 밋밋하고 평이하며, 화면은 텔레비전 드라마처럼 단조롭다. 민수의 바람둥이 기질이, 혜원에 대한 절실한 사랑으로 바뀌는 것 역시 시간문제일 뿐이다. <연리지>는 높이 사줄 점을 찾기가 쉽지 않은 영화다. 단 하나, 눈에 띄는 건 불치병 환자가 한명 더 등장한다는 점이다. 불치병 환자가 주인공이라면 그가 죽음을 받아들이기까지, 그 힘든 과정에 대한 묘사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연리지> 역시 최근의 비슷한 주인공이 나오는 영화들처럼 막상 주인공은 죽음을 너무 쉽게 받아들인다. 그래서 주인공의 죽음은 의미를 상실하고 그 주인공을 사랑한, 산 사람의 이별만이 문제가 된다. 이타적인 척하면서 실은 이기적인 텍스트라는 걸 새삼 이 영화를 두고 문제삼는 건 생뚱맞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그래도 불치병 환자가 둘이면 다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는 것도 생뚱맞은 일일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