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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9404)

해외신작 <체인징 레인스>

볼링장에 공이 굴러가는 레인들은 평행선을 달린다. 공은 한 레인으로만 굴러가야 한다. 다른 레인으로 길을 바꿔 굴러가면 애초 레인의 게임뿐 아니라 다른 레인의 게임도 망가진다. <체인징 레인스>의 개빈 베넥(벤 애플렉)과 도일 깁슨(새뮤얼 잭슨)의 삶은 서로 평행선이다. 베넥은 잘 나가는 로펌의 변호사이고, 깁슨은 알코올 중독으로 아내로부터 이혼당하기 직전에 놓인 중하층 흑인이다. 같은 뉴욕에 살지만 마주칠 일이 없는 처지이다. 어느 날 아침 둘의 차가 충돌한다. 이 사고를 계기로 둘이 상대방의 삶의 레인에 침범하기 시작하면서 둘 다 망가지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서로 예의가 있었다. 다만 서로의 일처리 방식이 달랐을 뿐이다. 베넥은 보험증서를 교환하는 정상적인 절차를 무시한 채, 백지수표를 건네주고 먼저 사라진다. 깁슨은 당혹스럽다. 더구나 그의 차는 바퀴가 펑크나 고속도로 한가운데서 혼자 움직일 방법도 없다. 아내와 화해하기 위해 은행 융자 서류를 가지고 법정으로 가던 깁슨은 법정에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화해에 실패한다. 베넥은 뒤늦게 사고현장에서 중요한 서류를 잃어버렸음을 알고 깁슨에게 연락하지만, 깁슨은 버렸다고 거짓말을 한다. 베넥은 해결사를 찾아 깁슨을 신용불량자로 만들고, 서류를 돌려주려던 깁슨은 복수를 벼른다. 그러나 <체인징 레인스>는 희망적인 이야기이다. 물고 물려 최악으로 내몰리면서 둘은 각자 삶의 레인을 돌이켜보게 된다. 베넥은 자신의 로펌이 재단기금을 횡령한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고, 깁슨은 충동적인 성질이 다시 도진다. 벼랑 끝에서 둘은 돌아나오기 시작한다. 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사려깊은 영화’라며 올해 최고 영화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케네스 튜란은 후반부의 반전이 디즈니랜드의 놀이열차를 타는 것 같다고 비꼬았지만, 자꾸만 꼬여가는 상황을 묘사하는 로저 미첼 감독의 연출력을 두고 “<노팅 힐>의 영국 감독이 미국에서 성공적으로 데뷔했다는 의미 이상”이라며 격찬을 보냈다.임범

임상수 감독의 <바람난 가족>에 캐스팅된 김혜수,황정민

정림양과 광태군이 바람이 났다굽쇼? 에서 신여성 민정림과 야구에 매료된 청년으로 호흡을 맞추었던 김혜수와 황정민이 <바람난 가족>에 나란히 캐스팅되었다. <처녀들의 저녁식사>와 <눈물>을 연출한 임상수 감독의 세 번째 작품 <바람난 가족>에서 김혜수가 연기할 은호정은 시어머니에게 바람피울 것을 부추기는 한편 자신도 연하의 고등학생과 불륜을 펼치는 대담한 여자. 황정민이 맡은 호정의 남편, 변호사 주영작 역시 젊은 여자와 정기적으로 사랑을 나눈다. 호정은 ‘쿨’하게 그 사랑을 인정한다. 이같은 ‘콩가루 집안’은 입양한 아이가 시골 집배원에게 우발적으로 살해되면서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최근 김지운 감독의 <쓰리>와 을 통해 “영화적인 호흡과 사고를 깨우쳤다”는 김혜수는 17년의 연기생활 동안 유지해왔던 건강하고 밝은 이미지를 깨고 다소 과감한 노출과 함께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줄 예정이다. 김혜수를 캐스팅한 임상수 감독은 “예전에 황인뢰 감독의 베스트셀러극장 <누군가를 사랑하려는 이유>에서 대사도 별로 없고 조용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김혜수를 보았는데 아주 묘하게 매력적이었다. 기존의 이미지를 생각해 보면 상당히 놀라웠고 아주 좋은 연기자구나라고 생각해왔다”며 “그동안 다소 낭비되었던 재능을 이 작품을 통해 제대로 펼치게 해줄 작정”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한편 일반 관객에게 다소 낯선 황정민은 서울예대 졸업 뒤, <지하철1호선> <개똥이>를 거쳐 최근엔 뮤지컬 <토미>까지 무대에서 실력을 다져온 배우.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오디션에서 우직한 드러머 강수 역으로 발탁되어 스크린에 데뷔했고 10월 개봉을 앞둔 <로드무비>에서는 우연히 다가온 사랑에 스스로를 파멸에 이르게 하는 동성애자 대식으로 출연해 과감한 연기를 펼쳤다. 몇달 전 <로드무비>의 기술시사에서 황정민을 본 임상수 감독은 “영화 내내 황정민밖에 안 보였다. 그의 존재감이 영화를 이끌어 나간다는 느낌이었다. 설경구도 <지하철1호선> 출신인데 설경구 같은 가능성이 있구나 생각했다”며 황정민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추었다. 명필름이 제작하는 <바람난 가족>은 시어머니와 시아버지를 비롯, 그외 주요 인물들의 캐스팅을 마친 뒤 10월 말 크랭크인할 예정이며 내년 초 관객에게 그 가족의 적나라한 바람행각을 펼쳐 보인다.

사운드 맡은 ‘국보급’ 사운드 수퍼바이저 김석원 스토리 (2)

예민한 더듬이, 트랙을 더듬다 유년 시절부터 그는 ‘소리’에 관한 더듬이가 남달랐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어도 “악보를 보면 노래를 부를 줄 알았고, 노래를 들으면 악보에 옮겨 적을 줄 알았다”. 물론 누구도 그를 신동이라고 부르지 않았고, 그 역시 “남들도 그 정도는 다들 하는 줄 알았다”. “어디서 났는지 모를 설계도면을 들여다보는 것이 마냥 좋아서” 건축가를 꿈꿨던 시절, 그래서 스무살 언저리에 한양대 공과대학에 진학하는 수순을 밟았던 그는 대학연합노래모임 쌍투스에 몸담으면서 숨겨둔 장기를 발휘한다. 통기타 연주와 보컬을 도맡게 되고 이때부터 서클룸에서 기거하다시피 하며 악기 연주와 편곡에 빠져들었다. 그때만 해도 ‘우연한’ 곁눈질이라고 여겼다. ‘예정된’ 길이 있을 거라곤 상상조차 못했다. 그런 그가 사운드 레코딩과 조우한 것은 대학 졸업 뒤 김도향씨가 대표로 있던 서울오디오에 입사하면서다. 명상음악가로 알려진 김씨는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등의 히트곡을 부르기도 했으며, 당시에는 “맛동산 먹고 즐거운 파티!”, “12시에 만나∼요 브라보콘” 등 CM송 바람을 불러일으키며 광고계의 주목을 받고 있던 인물. 그는 “작업실 청소를 도맡으며 간간이 CM송도 부르던” 어느 날 김씨로부터 “음악을 아니까 좋은 사운드맨이 될 수 있겠다”며 엔지니어링을 공부해보라는 제안을 받아든다. 공업고등학교를 나와서 몇년 동안 견습생활을 해낸 다른 동료들에 비해선 한참 늦깎이라 결심이 쉽지는 않았지만, 김씨의 줄기찬 꼬드김 끝에 그는 트랙의 세계에 발을 들인다. 김씨의 후원 아래 1년에 2차례씩 미국의 녹음실을 둘러볼 특혜를 얻기도 했던 그는 광고음악을 레코딩하며 테크닉을 갈고 닦았다. 당시 미국의 음대에서 교재로 사용하던 개론서도 구해서 틈틈이 독파해나갔다. “뒤돌아보지 않고 한우물 팠던” 6년이었다. 디지털음향에 대한 관심이 무르익었을 1991년 무렵, 그는 사촌형을 꼬셔 자금을 마련하고 지하 변전실 30평을 얻어 리드사운드를 차린다. 초라한 외형이었지만, 엄연한 독립이었다.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광고계에서 명성을 알렸던 터라 개시(開始)하자마자 성시(盛市)를 이뤘다. 물량은 끊이질 않았고 3년 만에 100평의 공간을 더 마련할 정도로 규모를 키웠다. 그의 애초 구상은 음반기획까지 ‘사운드’와 관련된 작업은 모두 해보겠다는 것이었다. 영화작업에 대한 관심을 가졌던 것도 이 무렵이다. 홀로 영화진흥공사 녹음실을 들락거리면서 귀동냥을 구했지만, 벽은 의외로 두터웠다. 정작 믹싱작업시엔 “네가 영화를 아느냐”며 따돌렸다. 급기야 영화까지 촉수를 뻗친 그가 마음에 안 들었던지 대표이던 사촌형과의 다툼도 심해졌다. 결국, 95년 블루캡이라는 자신의 회사를 따로 차려서 나와야 했다. 하지만 “영화는 문외한”이었던 그는 앞길이 막막했다. 그때 그가 떠올린 유일한 인물은 할리우드에서 사운드 슈퍼바이저로 활동하고 있던 존 모리스. 그는 조언을 구하기 위해 무작정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동년배지만, 존 모리스는 그에겐 ‘사부’와 같은 존재다. <레옹>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엑스맨> 등의 사운드 작업을 맡은 존 모리스와 안면을 텄던 것은 1993년 대전 엑스포 행사. 당시 전시 영상물의 사운드 책임자였던 존 모리스는 고가의 스크린 사운드 장비를 갖고 있던 리드사운드를 파트너로 택했고, 김석원에게 일부 영상물의 대사녹음을 의뢰했다. 하지만 ‘나홀로 작업’이 기본인 김석원은 주어진 1주일 동안 한숨도 자지 않고 사운드 편집은 물론이고 믹싱작업까지 완전히 끝내놨다. 따지고 보면 원치 않은 완성품을 만들어놓아 망쳐놓은 셈. 그러나 결과물을 본 존 모리스는 화를 내긴커녕 술자리에 그를 불러냈다. “내가 할 일을 다해버리면 어떡하냐”는 농담으로 인사를 건넸을 정도로 만족스러워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얻어들었던 것은 격려뿐이었다. 소니픽처스를 찾았을 때 존 모리스는 “이 사람이 내가 말한 슈퍼맨이야”라고 소개하며 환대했지만, “너 정도면 충분하다. 프로세싱이 다르긴 하지만 사운드는 근본적으로 같은 것”이라고만 했다. 동료의 소개로 알게 된 김상진 감독의 <돈을 갖고 튀어라>를 덥석 문 것도 더이상 앞뒤 잴 여유가 없어서였다. 덤벼든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1995년 12월 명보극장. 블루캡의 첫 번째 영화 <돈을 갖고 튀어라>의 시사회가 끝난 뒤, 영화관계자들은 처음 맛본 디지털 사운드에 대해 만족스러워했다. 이은 감독은 “백그라운드 노이즈가 자연스럽게 담긴 한국영화는 처음이었다”고, 동시녹음 기사 이승철씨는 “입체적인 사운드의 도래를 알린 영화였다”고 평한다. “소리는 내는 것이 아니라 빚는 것” 광고·음반부문과 달리 영화계에선 여전히 마그네틱의 자장을 이용해 소리를 쓸어담던 아날로그 방식이 대부분이었다. 녹음과정에서 여러 번 복잡한 공정을 거쳐야 했고, 비용문제로 테이프마저 지우고 썼던 일이 빈번했으니 디테일한 사운드 작업은 불가능한 일. 샘플링한 데이터를 가지고서 자유자재로 변형작업이 가능했던 디지털 작업 방식이야말로 영화계로선 “자다가도 눈이 번쩍 띌 만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그가 여기서 멈출 리 없었다. <돈을 갖고 튀어라>는 “디지털 작업 방식의 장점을 온전히 전달해준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주수입원이었던 광고에서 영화로 무게중심을 이동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그는 동시에 1인 플레이의 한계를 느낀다. 영화사운드의 경우, 각 세부 분야별로 전문가를 키우지 않는 한 만족스런 작품을 대할 수 없다고 판단했던 것. 그래서 <접속> 때부터 앰비언스 작업을 김창섭 팀장에게 완전히 맡겼다. 물론 모두에게 세분화할 만한 형편은 아니어서 일단은 겸업하는 형태로 시작했지만, 그는 <인샬라>부터 <연풍연가>까지 “장기적으로 전문인력을 키운다는 구상 아래 블루캡을 다지는 데 힘을 쏟았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나. 사운드 작업도 마찬가지였다. 블록버스터를 표방한 <쉬리>는 중압감이 더욱 컸다. 작업시간은 채 한달이 안 됐다. 더구나 제작사로부터 전달받은 영상은 순서편집은 물론이고, 오케이 컷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날것 그대로의 촬영분량이었다. 자신감이 솟아날 리 없었고, 고민할 시간도 없었다. 일단 존 모리스를 찾아 태평양을 건넜다. 할리우드의 노련한 스탭이라고 뾰족한 수가 있었을까. <쉬리>의 서두인 갈대밭 장면. 그는 전체적인 분위기만 내주면 되겠거니 싶어 “저건, 앰비언스”구나 했는데, 존 모리스는 실제 갈대를 흔들어 왼쪽, 오른쪽 채널 모두에 담았다. “어차피 다 묻힐 소린데… 왜 저러는 거지” 했지만 믹싱이 끝난 뒤 예상은 어긋났다. 바람에 서걱거리는 갈대밭의 느낌은 “존 모리스의 디테일한 폴리작업 때문이었음”을 뒤늦게 느낀다. “소리는 내는 것이 아니라 빚는 것”이라는 원리를 깨친 이후부터 일사천리였다. 총격전이라고 다를 바 없었다. 그저 사운드 이펙트로 처리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노리쇠가 전진, 후퇴하고, 탄피가 떨어지고, 총알이 어떤 재질에 가서 박히느냐는 것까지 계산에 넣어야 했다. 깨달음을 얻은 건 그 혼자만이 아니었다. 당시 제작실장이었던 이성훈 프로듀서는 “실감나는 총격전으로 변해 있는 <쉬리> 완성본을 보고서야 동시녹음이 얼마나 부족했는지 뼈저리게 느꼈다”고 털어놓는다. ▶ 사운드 맡은 ‘국보급’ 사운드 수퍼바이저 김석원 스토리 (1) ▶ 사운드 맡은 ‘국보급’ 사운드 수퍼바이저 김석원 스토리 (2) ▶ 사운드 맡은 ‘국보급’ 사운드 수퍼바이저 김석원 스토리 (3) ▶ [김석원스토리] 블루캡 사람들

<로드 투 퍼디션>의 원작이 된 만화들

매일 아침 출근하는 엄마와 아빠 때문에 이른 시간에 억지로 잠에서 깨야 하는 세살짜리 아들녀석을 보고 있으면, ‘측은하다’는 말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정말 독특한 감정이 생겨난다. 그러다 며칠 전 자는 아이를 억지로 깨우다가 녀석이 갑작스럽게 코피를 쏟아내는 바람에 잠시 정신적 공황상태에 휩싸였을 정도다. 나를 닮아서 코와 목이 약해 감기나 염증이 자주 생겨나긴 했지만, 그렇게 코피를 쏟아내는 모습에 ‘아버지’인 나는 두렵고 당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 그저 생물학적인 문제만은 아니라는 사실은 그런 순간마다 더욱 확실해진다. 이제 겨우 세살배기 아들녀석을 두고 있기는 하지만, 결국 ‘자식은 부모가 져야 할 십자가’라고 하는 말이 가슴속에 사무치는 것이다. 샘 멘데스의 <로드 투 퍼디션>은 그런 면에서 ‘한 아버지의 아들이자, 한 아들의 아버지’로 살아가고 있는 나 같은 이들에게 엄청난 영화일 수밖에 없다. 물론 21세기 초를 살아가는 아버지 혹은 아들들이 1930년대 미국에서 마피아로 살아가는 아버지인 마이클 설리반 같은 경험을 하기는 거의 불가능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인간이 세상에 나타난 이후, 절대로 풀리지 않고 있는 몇 안 되는 수수께끼 중 하나라는 부자관계의 복잡성을 그렇게 보편적인 정서로 잘 풀어낸 영화가 최근에는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완벽히 샘 멘데스표일 것 같은 이 무게감 있는 영화가 실은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 헌팅>을 각색하고 의 각본을 썼던 신예 데이비드 셀프의 각색이 훌륭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지만, 원작만화 자체가 뛰어났다는 점을 강조하는 평도 여기저기서 나왔을 정도다. 영화 <로드 투 퍼디션>의 원작은 DC코믹스에서 1998년 출간된 같은 제목의 304페이지짜리 흑백만화였다. 출판사가 ‘만화’가 아닌 ‘그래픽 소설’이라고 광고를 했던 이 만화는, 그러나 출간되고나서 별다른 시장의 반응을 얻어내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10대 고객을 대상으로 스타 캐릭터들을 자랑하는 만화들의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미국의 만화시장에서, 우울한 대공황 시대를 그린 흑백만화가 주목을 끈다는 것 자체가 처음부터 무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만화의 작가인 맥스 콜린스가 워런 비티에 의해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딕 트레이시>를 쓴 장본인이고 1995년 독립영화 를 시작으로 세편의 영화를 만든 감독이기도 하다는 사실은, 당장 할리우드 제작자들의 관심을 끌기에는 충분했다. 더불어 그림을 담당한 리처드 피어스 레이너가 일반적인 만화가와는 달리 원하는 장면을 사진으로 연출한 뒤, 그 사진을 바탕으로 사실적인 화면을 그려냈다는 사실은 제작자들에게 이 만화가 영화화되었을 때의 이미지를 쉽게 떠올리게 만들어준 면도 있었다. 그렇게 할리우드에 팔려간 이 만화가 영화화되는 과정에서 가장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이는, 각색을 담당한 데이비드 셀프였다. <헌팅>을 각색하고 의 시나리오를 쓴 것이 할리우드 경력의 전부여서 어떻게 보면 믿음직스럽게 보이지 못할 수도 있는 그는, 원작만화의 이야기를 최대한 살리면서도 많은 부분을 영화에 걸맞게 훌륭히 바꾸었던 것이다. 만화에 대비해 눈에 띄게 바뀐 부분으로, 우선 영화 속 톰 행크스가 연기한 마이클이라는 인물의 설정을 들 수 있다. 마피아의 충직한 부하라는 이미지 이외에는 별달리 부정적인 느낌이 들지 않는 영화와는 달리, 만화 속에서 마이클은 ‘킬링머신’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그의 살인자로서 잔인한 인간으로 그려진다. 이와 함께 원작을 쓴 맥스 콜린스가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기 때문에, 만화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죄악과 구원의 본성에 대해 많이 묘사하고 있었던 점도 각색되는 과정에서 거의 사라졌다. 예를 들어 마이클이 살인을 저지르고 난 뒤에는, 성당을 찾아가 살인한 숫자만큼 촛불을 켜고 고해성사를 하는 장면 등은 영화 속에 등장하지 않는 것이다. 이보다 영화는 마이클이 아들에게 자신이 걸어온 길을 걷지 못하게 보호하려는 모습을 강조하면서, 일종의 개신교적인 분위기를 많이 풍겼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 그런 과정에서 만화보다는 훨씬 아버지와 아들간의 관계라는 부분이 부각되었고, 결국 샘 멘데스 같은 ‘인간관계’를 풀어가는 데 출중한 능력을 지닌 감독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원작만화 <로드 투 퍼디션>조차도 원작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1960년대 일본에서 출간된 만화인 <외로운 늑대와 그 아들>이라는 제목의 사무라이 만화가 바로 그것이다. 그림체에서부터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이 사무라이 만화는 복수를 위해 아들과 함께 일본 열도를 누비는 한 사무라이의 비장함을 그려낸 작품. 우연히 그 만화를 보게 된 맥스 콜린스가 주인공 사무라이의 비장미에 매혹되어, ‘그래픽 소설’로 <로드 투 퍼디션>을 만들게 된 것이다. 그렇게 출간되었던 <로드 투 퍼디션>이 영화를 통해 큰 성공을 거두자, 최근 할리우드에서는 ‘그래픽 소설’이라고 출간된 만화들에 대한 관심도가 급증하는 중이다. 최근 몇년간 <고스트 월드> <프로 헬> 등 예상을 뛰어넘는 성공을 거둔 몇몇 영화들도 ‘그래픽 소설’들을 원작으로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할리우드 일부에서는 당분간 영화화된 ‘그래픽 소설’들을 만날 기회가 점점 많아질 것으로 점치고 있다. 이철민/ 인터넷 칼럼니스트 chulmin@hipop.com <로드 투 퍼디션> 공식 홈페이지 : http://www.roadtoperdition.com Max Allan Collins 비공식 홈페이지 : http://muscanet.com/~phoenix

꿈속의 애니,애니 안의 꿈 <천년여우>

꼭 머피의 법칙처럼 어릴 때 재미있게 보았던 애니메이션은 항상 밥 먹을 시간이나 이른 아침, 아니면 제사와 같은 큰일이 있을 때 방영되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또 하나의 법칙을 더하자면, 그런 애니메이션 시리즈나 단편은 재방송을 안 하거나 아니면 또다시 보기 힘든 시간대에 방영되는 것이 보통이다. TV에서 방영된 애니메이션이 정식비디오로 전편이 출시되는 경우가 채 10∼20%가 안 되는 것이 한국의 실정이다보니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나서 어린 시절 약 10년간 보아왔던 애니메이션 중 마음에 드는 것을 다시 찾아보는 데 다시 10년의 세월이 걸렸다. 추억 속의 애니메이션을 모아가는 후반 10년 동안의 즐거움 중 하나는 자신이 보아왔던 작품 속에서 여러 번씩 중첩되어지는 이름을 접하면서 내가 좋아했던 작품들의 성장사를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을 예로 들자면 어린 시절 푹 빠져 보던 <미래소년 코난>이라는 추억의 기반 위에 고등학교 시절 해적판 비디오로 우연하게 보게 된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나 <천공의 성 라퓨타>을 보면서 이 감독의 작품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극장판만 모으기 시작했지만, 이후 작품 일부나 레이아웃을 담당했던 <명탐정 홈즈>나 <하이디> <엄마찾아 삼만리> 등을 찾게 되고 그가 1960년대 몸담으며 초창기 시절을 보낸 ‘도에이 동화’ 시절의 작품인 <걸리버 우주여행기> <태양의 왕자 홀스의 모험> <장화신은 고양이> 등을 구하게 되고, 급기야 그의 작품세계의 영향을 받았다고 이야기한 <백사전>이나 <왕과 새> <이야기 속의 이야기>와 같은 작품에까지 손을 대게 되었다. 이렇게 거슬러올라가 본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대부분의 작품들이 자신의 취향에 맞아떨어지는 것을 느끼게 되면서, 아무리 대표적인 집단작업 중 하나인 애니메이션에서도 면면히 흐르는 작가의식과 그 사람의 작품의 성장과정을 공감하게 된다. 1998년 애니메이션 장르로는 상당히 생소한 서스펜스 스릴러물 <퍼펙트 블루>로 화제를 모은 곤 사토시 감독과 각본가 무라이 사다유키 콤비가 다시 뭉쳐 만든 <천년여우>(千年女優)가 지난 9월14일 일본에서 개봉하였다. 각종 영화제의 수상소식이나 드림웍스에서 미국 배급을 맡았다는 겉포장만이 아니더라도 세밀한 화풍 속에 현실과 환상이 중첩되어져가는 스토리를 짜임새 있게 풀어가는 두 콤비의 실력과 일본 내에서도 최상위 레벨의 작화실력을 자랑하는 ‘매드하우스’가 만든 작품이라는 면에서 충분히 가치가 있다. 인기여배우 후지와라 치요코가 연기해내는 수많은 배역들이 펼치는 여러 세계는 마치 수십편의 작품을 보는 듯한 경험을 하게 해준다(미우치 스즈에의 <유리가면>이 연상된다). 과거 재미있게 본 작품 중에 <노인 Z>와 <달려라 메로스>라는 작품이 있었다. 그리 유명한 작품은 아니었고 스토리도 그럭저럭이었지만 영상의 퀼리티나 음악 부분은 마음에 들었는데, 곤 사토시의 프로필을 뒤적이다보니 이 두 작품에서 ‘미술설정’과 ‘레이아웃’을 맡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리도 기쁠 수가 없었다. 좋아했던 몇몇 애니메이터들은 작품활동을 접거나 그저그런 매너리즘에 빠져가는 모습을 보며 실망할지라도 또 하나의 작가가 하나하나 자기 작품의 라이브러리를 넓혀가고 있는 것을 느끼면 아직은 본 애니메이션보다는 볼 애니메이션이 더 많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기쁜 것이다. <천년여우>의 주인공처럼 수많은 인생을 살아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그래도 아직 애니메이션 속에서 많은 꿈들을 경험하는 것은 배우 되기보다는 훨씬 손쉬운 일일 것이다.김세준/ 만화·애니메이션 칼럼니스트 neoeva@hitel.net

우디 앨런이 <쉰들러 리스트>를 리메이크 하면?

<인섬니아> <미스터 디즈> <레드 드래곤> 등 과거 영화를 개작한 영화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시카고 선 타임즈>와 영화전문지 <필름 스래트>가 각각 보고 싶은 리메이크와 절대로 막아야 할 리메이크 기획을 꼽았다. 영화제작자들의 창의력 고갈을 경계하는 몸통 기사에 덧붙여, 기대되는 가상의 리메이크영화를 물은 <시카고 선 타임즈>의 질문에 노스웨스턴 대학원의 척 클라인한스 영화학과장은 감독들의 장기에 착안한 흥미로운 답을 내놓았다. 스파이크 리가 흑인의 관점으로 다시 찍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존 워터스가 패러디하거나 알리슨 앤더스가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개작하는 히치콕 스릴러, 우디 앨런의 신판 <쉰들러 리스트>, 셜리 템플 주연 영화들에 감춰진 ‘아동 포르노적’ 시선을 폭로하는 토드 솔론즈의 리메이크 등의 기획이 클라인한스 교수의 선택이다. 한편 공격적인 문체와 비주류 영화에 대한 관심으로 알려진 영화잡지 <필름 스래트>는 “더이상 나빠질 수 없을 것 같을 때에 더 나빠지는 것이 이치”라고 운을 떼면서‘우리를 고통 속에 비명 지르게 만들 10편의 리메이크’ 리스트를 뽑았다. 최악의 가상 리메이크 명단의 선두는 스탠리 큐브릭이 연출한 <시계태엽장치 오렌지>의 개작과 미소년 이미지를 벗고 싶어하는 아이돌 스타가 주연할 <택시 드라이버>의 리메이크가 장식했다. 이 밖에 마크 월버그가 토니 몬타나로 분하는 <스카페이스>, 존 맥티어넌 연출 아놀드 슈워제네거 주연의 논스톱 롤러코스터 액션판 <블레이드 러너>, 쿵후를 할 줄 아는 형사 하리가 활약하는 <더티 하리>의 리메이크 프로젝트 등이 <필름 스래트>의 저주를 받았다.

[베를린 리포트] 한국영화, 독일에 가다

한·일영화제, 쾰른을 시발로 한국영화 17편 소개 2002년 월드컵을 개최한 나라는? 한국과 일본. 2006년 월드컵을 개최할 나라는? 독일. 이렇게 축구를 매개로 만난 한국, 일본, 독일의 접점을 문화적으로 연장해본다면? 하여 마련된 행사가 지난 9월13일 쾰른 주재 일본문화원에서 개막된 한·일영화제다.한국, 일본, 독일은 월드컵을 개최했거나 개최할 것이라는 공통점을 넘어서, 올해의 축구축제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는 교집합을 갖는다. 그런 만큼 세 나라는 월드컵 이후 한동안 벅찬 연대감으로 가슴이 팽팽해 있었다. 따라서 독일에 나와 있는 한국과 일본의 기관들은 월드컵의 열기가 채 식기 전, 이 세 나라를 얽어 하나로 맬 수 있는 이벤트 구상에 집중했을 터이고, 그런 노력은 독일에서의 한·일영화제라는 문화 한마당으로 구체화되어 나타났다.물론 독일 각지의 고만고만한 아트하우스들에서 개최한 ‘소’규모 한국영화제는 과거에도 꽤 있었지만, 규모나 관객 동원에서 볼 때 한국영화제라는 이름 자체가 무색하고 민망스러운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 만큼 주독 한국·일본문화원이 공동 주최했다는, 관제 행사의 냄새가 좀 풍기긴 하지만, 번듯한 틀 속에서 번듯한 레퍼토리를 갖추고 한국영화 작품들이 본격적으로 소개되는 행사가 적어도 독일에서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9월13일을 시작으로 10월28일까지 열리는 쾰른 한·일영화제의 주제는 “영화를 통해 본 2차대전 뒤의 한국과 일본”이다. 한국영화 상영작품은 총 17편으로, 영화제를 공동 개최한 주독 한국 문화홍보원은 이 17편 영화를 다시 ‘전후 한국사회’와 ‘청년문화’라는 섹션으로 나누고 있다. <시집가는 날> <정> 등의 작품들은 되도록 오리지널을 선보이고자 하였으나 프린트 수급 과정의 어려움 탓에 리메이크로 대체했다고 한다.그러나 <로맨스 빠빠> <종군수첩> <남과 북>에서 <아름다운 시절>까지 가능한 한 전후시대 한 매듭매듭을 대표하는 작품들을 선정한 노력이 엿보인다. 또한 ‘청년문화’ 섹션에는 <바람불어 좋은 날> <고래사냥> <접속> <편지>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에서 <엽기적인 그녀>까지 두루 선보이며 80년대 이후에서 현재까지 한국 청년문화의 스펙트럼을 커버하고 있다.이번 한·일영화제가 독일 관객에게 한국영화를 본격적으로 소개한다는 점에서 고무적인 것은 이 행사가 쾰른 일본문화원에서의 한달 반 상영이라는 1회성 행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쾰른을 시발점으로 해 프랑크푸르트, 베를린, 라이프치히 등 독일 대도시들을 오가며 순회 개최된다는 점에 있다. 쾰른영화제 개막식에 참가한 독일 영화인의 말처럼, “한국영화를 알고 싶어도 알 수 없는,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것이 현 상황이다. 따라서 이번 쾰른 한·일영화제는 독일 관객에게 한국영화의 저력을 본격적으로 알리는 시금석이라고 하겠다.베를린=진화영 통신원

[LA리포트] LA의 독일영화 붐

10월 로무알트 카르마카 회고전, 11월 AFI필름페스티벌 등 다양한 작품 소개돼 벨라 마르타올 가을 로스앤젤레스에 독일영화 붐이 일고 있다. 9월 초 베르너 헤어초크 회고전으로 바람을 예고한 아메리칸시네마테크가 10월로 접어들며 다큐멘터리와 극영화 장르를 넘나들며 주변부 삶을 그려온 로무알트 카르마카 감독의 특별전을 열었다. 11월에 열리는 AFI 필름페스티벌에는 ‘메이드 인 저머니’라는 이름의 독일영화주간이 마련된다. <비욘드 사일런스>의 캐롤라인 링크 감독의 신작 <노웨어 인 아프리카> 등 10여편이 여기서 상영될 예정이다.독일풍은 예술영화관에도 불어왔다. 헤어초크의 신작 <인빈서블>, 신예 산드라 네틀베크의 <벨라 마르타>, 올리버 하쉬비겔 감독의 <익스페리먼트> 등 세편의 독일영화가 로스앤젤레스에서 한꺼번에 상영됐다.<벨라 마르타>는 대꼬챙이 같은 성격의 일중독자 독일인 주방장 마사가 교통사고로 엄마를 잃은 조카를 돌보고 새로 들어온 이탈리안 주방장을 만나면서 인간과 세상을 보는 눈이 너그러워지는 과정을 그린 로맨틱코미디이다. 지난해 몬트리올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익스페리먼트>는 심리학자가 만든 모의 감옥안에 자원해서 실험자로 들어간 두 사람이 겪는 혼란감을 그린 액션스릴러물. 헤어초크의 극영화로는 무려 18년 만에 미국 개봉한 <인빈서블>은 팀 로스의 악역 연기가 돋보인다. 유대인임을 숨기고 사는 최면술사 팀 로스가 운영하는 베를린의 카바레에서 힘자랑 묘기를 선보이는 폴란드 유대인 청년 장사가 주인공이다. 점점 불어닥치는 나치의 거센 바람에 환멸을 느끼고 유대인임을 밝힌 뒤 고향으로 돌아가서 우연히 죽게 된다는 청년의 이야기를 헤어초크는 우화처럼 전한다.로스앤젤레스 언론들은 이런 움직임에서 제3세대 독일영화의 조짐을, 표현주의와 뉴저먼시네마를 잇는 또다른 새물결의 도래를 읽어내려하고 있다. 뉴저먼시네마의 전성기가 지난 뒤, 30년 가깝도록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던 독일영화는 지난 99년 톰 티크베어 감독의 <롤라 런>이 근자에 독일영화로서는 최고흥행을 기록하면서 새로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트하우스의 세 영화들이 공통점을 찾기 어려운 각양각색이라는 사실만 봐도 새로운 ‘새물결’을 점치기는 아직 이르다고 관계자들은 말한다.독일 영화인들 스스로도 미국에서 소개되는 독일영화들은 아주 예외적인 작품일 뿐이라고 자평하고 있다. 이들은, 1981년 볼프강 페터슨 감독의 <보트>(Das Boot)가 빅히트를 치며 가능성을 보여주는 듯 했지만 이어지는 작품이 없었다는 경험치까지 제시하면서, 산업적 기반이 약한 독일영화가 몇년 사이에 갑자기 훌륭한 영화를 쏟아낼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하지만 자국 영화산업의 전망은 불투명하다해도, 독일영화는 영국, 오스트리아, 스위 등의 공동투자를 받은 <인빈서블>과 <벨라 마르타>나, 미국 미라맥스가 배급하는 톰 티크베어의 <헤븐> 등으로 살아남고 있다. 또 90년대 통일 이후 영화가 분명 변하고 있다는 것은 공통된 견해다. 독일영화는 할리우드영화로 떠나버린 관객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새로운 소재와 스토리텔링 발굴에 몰두해왔고 그 결과 지금 미국에서 좋은 호응을 얻고 있는 영화들의 경우에서 보듯 대중적 영화들이 충분한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는 점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점칠 수 있다. LA=이윤정 통신원

[단편 Review] 바람이 분다

■ Story 준은 친한 친구 상이가 아이들에게 얻어맞는 동안 무기력하게 지켜보기만 한다. 이 사건 때문에 준과 상이는 각각 죄책감과 그동안 쌓아온 우정에 회의를 느끼게 된다. 상이가 수업을 빠지고 혼자 농구를 하던 날, 두 친구는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무언의 화해를 나눈다. ■ Review 삶은 누구에게나 가혹하다. 아직 스무살 문턱에도 닿지 못한 아이들조차 잔인하면서 공정한 이 규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극도로 말을 아끼는 <바람이 분다>는 느닷없이 찾아온 시련, 한 소년을 수치로 물들게 했을 뿐 아니라 다른 한 소년과의 관계까지 위기로 몰아가는 사건에서 시작하는 영화다. 인적이 드문 굴다리 그늘, 상이가 무자비하게 구타당하고 있을 때 준의 존재는 찾을 수가 없다. 준은 아이들이 물러간 뒤에야 몸과 마음을 모두 다친 친구에게 가방을 내민다. 말없이 먼지를 털고 일어나 등을 보이는 소년. 이유없는 폭력이라면 차라리 이해하기 쉽겠지만, 믿었던 친구의 방관은 용납하기 어려울 것이다. <바람이 분다>는 그처럼 한번 무너진 관계, 증오보다 더 극복하기 힘든 불신으로 금간 관계가 상처없이 회복될 수 있을까,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한강과 학교에 떨어져 있는 두 아이가 함께 운동장에서 달렸던 시간으로 돌아가 마치 같이 있는 것처럼 평행선을 그으며 달리기를 할 때, 영화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 질문에 답한다. 말보다 중요한 것은 공유하고 있는 기억의 힘이라고.김현정 기자 parad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