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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검색결과

기사/뉴스(9404)

1년 반만에 <4인용 식탁> 준비 중인 전지현

여름이 한풀 스러지고 가을 느낌이 바람 속에 막 스미기 시작하는 환절기, 꼭 그처럼 분위기가 달라진 전지현을 만났다. 지난해 <엽기적인 그녀> 이후 거의 1년 반 만에 으로 필름 카메라 앞에 설 준비를 하고 있는 전지현은, 마치 긴 방학을 마치고 첫 등교를 하는 학생 같은 개운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긴 머리에 투명한 얼굴. 그녀의 트레이드마크는 여전하지만 군살이 확 빠져 예전보다 훨씬 단단해진 몸매와 좋아진 말솜씨, 특히 아무렇지 않은 듯 내뱉는 속깊은 말들에서, 그녀가 1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아주 잘 나이를 먹었음을 알 수 있었다. <엽기적인 그녀> 때의 전지현이 풋풋한 여름 같았다면, 을 준비하는 전지현은 내밀한 가을풍을 지녔다고 할까. 어딘가 전지현에게서는 전에 없던 어른스러움이 내비쳤는데, 그건 신작 이 가진 분위기 탓인 듯도 했다. 은 스릴러다. 전지현이 연기할 여주인공 연은 어린 나이에 결혼한 주부. 혼령을 보는 증상에 시달리고, 또 과거 인간관계에서 받았던 상처에서 자유롭지 못한 인물로,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다. 어느 날 그녀가 다니는 병원에 인테리어 공사를 하려고 인테리어 디자이너 정원(박신양)이 오고, 자신 역시 죽은 이의 혼령을 보는 정원은 비슷한 두려움을 갖고 있는 연과 가까워진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친화력에 관한 얘기라지만 바탕색이 무섭고 어둡다. 여름날의 전지현이 펼쳐보이기엔 더더욱. 전지현은, “<시월애>의 청순한 이미지에서 <엽기적인 그녀>의 엽기 이미지로 변해 봤기 때문에 연기의 변화를 갖는 게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면서도, 처음의 낯섦을 기억해낸다. “그래도 정말 내가 스릴러를 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항상 <엽기적인 그녀> 같은 것만 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하기로 했지만, 너무 낯설고 부담스러워서, 한 보름 동안 시나리오를 밀쳐두고 생각을 안 해 버리기도 했어요.” 더이상 피할 수 없는 시간이 되어 연이라는 인물 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주부들이 일상생활을 하는 모습, 어떨 때 주부들이 스트레스를 받는가, 무당기질이 있는 여성들의 인터뷰 자료, 육체적인 병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전지현은 연이 되기 위해 요즘 많은 자료테이프를 보고 있다. 그렇게 낯선 인물의 심연을 탐사하다보니, 처음의 무서움이 서서히 걷혀가고 연과 자신 사이의 비슷한 점까지 발견하게 됐단다. 근데 그게 바로 “연도 나처럼 무서워한다”는 것이라나. <화이트 발렌타인> <시월애> <엽기적인 그녀>에 이어 이제 4번째 영화를 시작하는, 5년차 배우 전지현. 전지현은 요즘 “일하는 게 너무 재미있고 편하고 즐겁다”. “예전에는 사실 재미는 잘 몰랐거든요. 근데 언제부턴가 너무 재밌어지더니 요즘엔 흥분되기까지 해요.” 그 원인을 캐보는 대신, 전지현은 계절처럼 “그냥” 찾아온 그 재미를 갈무리하는 법을 익혔다. 종종 누군가가 ‘너 예쁘다, 너 최고다’라는 말을 할 때마다, “있어도 없다고 생각”하는 마음가짐으로 스스로를 다스린다. “나중에 지금 제가 갖고 있는 그런 것들이 다 없어진다고 해도 제가 편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이 모든 게 있어도 없다고 생각해야 될 것 같아요. 제가 원래 별로 집착이 없는 성격이거든요. 그래서 누가 또 제 매력을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도 ‘에이, 몰라’ 그러고 말아요.” <4인용 식탁>은 전지현이 영화 데뷔작인 <화이트 발렌타인>에서 이미 함께한 적 있는 박신양과 다시 만나는 작품이기도 하다. 작업 때문에 인사를 나눌 때, 프로듀서가 둘 사이에서 “구면이시죠?”라고 했더니, 박신양이 “그때 그분이 아닌 것 같은데요”라고 답했단다. “이상하죠. 저는 키도 안 컸고 얼굴도 안 달라졌는데….” 하지만 이상해 하는 건 아마 그녀 혼자뿐일 거다. 전지현은, 정말 ‘그때 그분’보다 많이 성숙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배우로서 그녀의 성장기는 아직도 한창이다. 이 그녀에게 또 한번 중요한 성장의 단계가 돼지 않을까.

독불장군의 카리스마, 의 해리슨 포드

슬쩍 찌푸린 양미간이 심술맞아 보이고, 한일자를 그리며 앙다문 입술이 고집스러워 보이는 남자. 연녹색 눈동자의 표정은 이보다 더 복잡하다. 세상에 무서울 거 하나 없다는 듯 옹골차 보이지만, 때론 바람 한 줄기에 휘리릭 꺼져버릴 듯 불안하고 가녀리기도 하다. 안면 근육이 마비된 건 아닐까 의심스러워질 만하면, 왼쪽 입술이 위로 비스듬히 올라가며, 웃음인지 비웃음인지 헷갈리는 미소가 흘러나온다. 소리내어 웃는 일은, 물론 없다. 지루할 만큼 진지하고 성실한, 매사 단호하지만 그만큼 상처받기도 쉬운, 무뚝뚝하고 냉소적인 인상의 이 남자. 바로 미국인이 사랑하는, 미국의 얼굴 해리슨 포드다. 올 여름, 해리슨 포드는 꽉 찬 예순살이 됐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환갑을 맞은 동세대 액션 스타 아놀드 슈워제네거와 실베스터 스탤론의 원기는 예전 같지 않지만, 해리슨 포드와 그의 추종자들은 지칠 줄 모른다. 해리슨 포드는 처음부터 그들과 길이 달랐다. 아놀드나 실베스터처럼 근육질 몸매와 괴력의 소유자가 아니라, 평균치의 지성과 감성, 그리고 완력을 지닌 ‘보통 사람’이었다. 그가 보여준 것은 위기 상황에 맞서는, 보통 사람들의 영웅적인 활약상. <스타워즈> 시리즈의 불량스러운 파일럿 한 솔로에서,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고지식한 고고학 교수 인디아나 존스로, 다시 <패트리어트> <긴급명령>의 CIA 분석관 잭 라이언으로, <에어포스 원>의 미국 대통령 마샬로, 해리슨 포드는 대중이 공감하고 동조하고 대리만족할 수 있는, 그런 영웅의 모습을 체현해왔다. 영국의 한 영화잡지가 최고의 스크린 스타로 인디아나 존스를 선정하며 밝혔듯 대중은 “핸섬하고 ‘스마트’하고 ‘섹시’한 액션 영웅”을 애타게 기다려왔고, 때문에 해리슨 포드를 역사상 가장 흥행력 있는 배우로 기네스북에 올려놓기까지 했다. 명백히 대중이 사랑하는 그의 모습은, 예의 그 ‘억울한’ 듯한 얼굴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액션 영웅의 이미지다. 하지만 해리슨 포드는 “관객이 내게 뭘 원하는지, 영화가 어느 정도 흥행하는지 내가 상관할 바 아니다”라고 잘라 말한다. “매번 다른 성격의 영화에서 다른 부류의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이 자신의 유일한 목표이자 야심이라는 것이다. 해리슨 포드의 필모그래피는 그것이 ‘가진 자’의 ‘여유’나 ‘자만’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는 <블레이드 러너>의 어둠과 혼란, <위트니스>의 낭만, <워킹걸>의 코믹함, <랜덤 하트>의 나이브함, <왓 라이스 비니스>의 악마성 등 꾸준히 그리고 가열차게 운신의 폭을 넓히기 위해 도전을 거듭해왔다. 늘 결과가 좋았던 것은 아니다. “내가 악역으로 등장할 때는 아무런 영향력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사람들은 내가 영웅이길 바라지만, 난 쓸데없이 수십명씩 사람을 죽이는 역할 따윈 하지 않을 거다.” 그는 이 ‘선언’을 다시금 확인하기라도 하려는 듯 를 택해, 냉전시대 소련에서 미사일 테스트 임무를 수행하는 핵잠수함 함장 역할에 도전했다. 러시아 악센트로 말하고, 레닌 초상화를 배경으로 서 있는 모습은 낯설지만, ‘인류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 대원들의 희생을 독려하는 독불장군의 카리스마는 영락없는 ‘해리슨 포드표’다. “개인주의자가 아니라 집단에 충성하는 영웅이고, 관객이 쉽사리 익숙해지고 좋아할 수 없는 캐릭터라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의 도전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무려 10년 만에, 해리슨 포드는 <인디아나 존스4>로 돌아온다. 환갑이 지난 만큼, 그에게 이번 출연은 전과 다른 의미의 ‘고행’이 될 터다. 하지만 이런 의혹의 눈길에 꿈쩍할 해리슨 포드가 아니다. “나이가 무슨 문제인가? 인디아나 존스는 나이도 안 먹나?” 하긴, 50대 중반에 귀를 뚫고, 60살에 새로운 연인을 만나고, 여전히 ‘도전’과 ‘액션’이 고픈 그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이다.

심야에로물,남성용과 여성용 판별법

* 알림: 이번 이야기에는 18세 이하의 청소년 및 어린이에게는 부적합한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밤 12시 전후로 HBO Plus를 틀면, 상당히 선정적이고 민망하다 못해 웃음이 터지는 영화를 볼 수 있다(경고: 그러므로 부모님의 지도롤 요망합니다). 이름도 못 외는 수많은 에로물들은 희한한 제목만큼이나 초보자의 얼을 빼놓는다. 캐치원 시절부터 ‘캐치원 에로티카’라는 제목으로 나오던 에로물은 이제 HBO Plus라는 독립채널을 가지게 되었다. 분명히 에로물도 자체적인 시청군을 가지고 있다는 뜻일 게다. 모든 분류에는 하위 분류가 있는 법. 이른바 에로물이라고 통칭하는 성인물도 두 가지 분류로 나뉜다. 남자 시청자 위주의 성인물과 여자를 시청대상에 둔 성인물이다. 남자 위주의 성인물과 여자 위주의 성인물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분류는 분명히 가능한데, 과연 그 분류하는 기준이 무엇일까 궁금해졌고, 결국 이 글까지 쓰게 되었다. 같은 성인물이지만 <레드 슈 다이어리> <섹스 앤 더 시티>는 남자보다는 여자쪽이 많다. 본능 시리즈, 여대생 시리즈 등 비디오식 작명을 지은 심야영화는 분명히 여자보다는 남자쪽이 수용층이다. 수준으로 갈라보자는 의도는 아니지만, 확실히 여자들을 고려한 성인물과 남자들만을 염두에 두는 성인물은 이야기 플롯이나 촬영, 제작면에서 차이를 보인다. 여자를 고려하는 성인물은 그래도 비교적 튼튼한 이야기 구조나 화면발이라는 무기를 가진다. <섹스 앤 더 시티>같이 화끈, 기발, 통쾌한 이야기와 말발을 내세우거나 <레드 슈 다이어리>처럼 화면발이라도 세우려고 열심히 노력한다. 그러나 ‘원죄적’ 시리즈나 ‘부인’ 시리즈에 독특한 이야기가 있었던가? 아니면 화면발은? 배우들은 연기력도 떨어지고 의상은 물론 화장까지 조잡하다. 남자들을 위한 에로물은 <젖소부인 바람났네>처럼 이름이 인상적이어서 남는 것을 제외하고는, 양은 많지만 질적으로 남는 것이 없어서 단지 뭉뚱그린 ‘에로물’ 분류말고는 작품으로 언급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여자들이 보는 것은 고품격이고 남자들이 보는 것은 저품격이다? 이것은 너무 무의미한 비교다. 예외가 많다. 일본 비디오영화에서 거장이 탄생하듯이 남자 위주의 에로물에서도 톡톡 튀는 이야기의 혜성 같은 작품을 만나기도 한다(그래서 ‘캐치원 에로티카’를 꽤 좋아했다). 남자들의 에로물은 저급보다는 초저예산이라는 표현이 더 맞다. 그렇다면 무엇이 ‘남자를 대상으로 한 에로물’과 ‘여자를 대상으로 한 성인물’을 구분할 수 있게 해줄까? 이 둘을 가장 확실히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은, 다름 아니라 여자의 가슴이다. 좀 쑥스러운 분류법이지만 오밤중에 아무 생각없이 채널을 돌리다가 얼어버린 채 얻은 교훈이다. 성인물이다보니 가슴 노출은 상당히 빈번하고 가장 확실하게 구분 가능하다. 남자를 대상으로 한 에로/성인물에 나오는 여자들의 가슴은 말 그대로 수박이다. 엎어놓은 바가지이다. 임신한 여자 역을 하는 여자들의 배가 의도는 알겠지만 결국 부자연스럽게 보이듯이, 남자 대상의 성인물에 나오는 여자들의 가슴은 아주 전형적인 비너스 가슴이지만 오로지 가슴을 위해서 만들어놓은 가슴이란 생각이 든다. 한마디로 이야기는 증발하고 가슴만 보인다. 그에 비해 여자쪽 성인물에 나오는 가슴 노출은? 말 그대로 진짜 가슴이다. 목욕탕, 수영장 가면 여자들은 늘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가슴 노출은 보라고 만든 게 아니라 그럴 만한 이야기 전개가 있었기에 등장하는 일부일 뿐이지 구경거리가 아니다. 여자들이 남자들을 위한 에로물을 볼 때 그다지 몰입이 안 되는 것은 너무나 정형화된 ‘외양’이 한몫을 한다. 부잣집 마나님이건 화류계 여자건 옷을 벗고나면 다 똑같다. 그런 판국에 이야기 플롯은 엉성한 경우가 많다. 그러니 이야기도 똑같아보일 수밖에 없다. 이야기는 단지 노출을 위해서 존재하는 구실이다. 그러나 여자의 가슴은 결국 남자들에게는 일종의 스펙터클이며 구경거리이다. 그래서 에로물이라고 부르는, 여자들을 관객에서 배제하는 영화나 시리즈들은 어떻게 하면 이 스펙터클을 더 과장되게 보이게 하는가에 집중하게 된다. 그래서 체위도 거의 일정하고, 카메라워크도 비슷비슷하다. 그래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이야기보다 구경거리니까. 여자들을 위한 성인물과 남자들을 위한 성인물의 가장 확실한 분류법. 여배우의 가슴을 보라. 알고나니 참으로 확실하고 민망하면서도 여자라는 인종에게 자괴감을 심어주기 딱이다. 그래서 구경거리로 되어버린 인종으로서 <섹스 앤 더 시티>식으로 남자들의 에로물 쏘아붙이기. 에로물을 보다보면 실리콘 덩어리나 물주머니를 황홀하다는 듯이 만지는 남자배우가 좀 불쌍해진다, 파하!남명희/ 자유기고가 zoo@zootv.pe.kr

흥행 드림팀,김상진 감독과 박정우 작가의 <광복절 특사>(1)

김상진 감독과 박정우 작가는 ‘공생’관계다.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하지만, 정작 촬영에 돌입하면 ‘동거’에 들어갈 정도다. <주유소 습격사건> <신라의 달밤>에 이어 <광복절 특사> 역시 마찬가지. 한때 각자 갈 길 가자며, 이번엔 다른 사람, 다른 프로젝트를 물색하는 척하더니, 또 뭉쳤다. 교도소로 돌아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두 탈옥수의 고군분투를 그릴 <광복절 특사>의 촬영은 온갖 악재가 겹치면서 개봉이 늦춰졌고, 남은 일정 또한 소화하기 만만치 않지만, 오랫동안 손발을 맞춘 배터리의 못 말리는 아웅다웅은 극중 무석(차승원)과 재필(설경구)의 설전 못지않았다.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가 세치 혀를 라켓 삼아 인정사정 없이 주고받는 핑퐁게임만으로도 <광복절 특사>의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을 터. 두달 넘게 촬영이 진행되고 있는 전주를 급습, 그 숨막히는 게임의 하이라이트 장면만을 모았다. 편집자 김상진 vs 박정우 1967년생. 한양대 연극영화과 졸업. 강우석 감독의 조감독으로 충무로 입문. <돈을 갖고 튀어라>로 데뷔했으며, 그 밖에 <깡패수업> <투캅스3> 등을 연출했다. 이후 <주유소 습격사건>(1999), <신라의 달밤>(2001)으로 흥행감독으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환갑이 될 때까지 코미디영화에 매진할 생각이며, 칸영화제는 그 다음 목표라고 여러 차례 공언한 바 있다. ‘쌈마이’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표시하면서도, 곧잘 ‘넘버원은 자신’이라고 호언해서 주위의 눈총을 사기도. 현재 <광복절 특사>를 찍고 있다. 체인점으로 김상진 베이커리를 운영할 계획도 갖고 있는 그는 실제 요리에도 능통하다. 1969년생. 한국외국어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정지영 감독 아래 연출부를 시작으로 충무로에 발을 들였다. 감독이 되기 위한 초고속 방편으로 시나리오 작가를 택했다. 딱 3편만 하고 데뷔한다는 것이 당시 계획. <마지막 방위> <키스할까요> <산책>의 각본을 썼다. 다른 감독에게 주려고 썼던 <주유소 습격사건>이 엉뚱하게 좋은영화에서 영화화되고, 그해 대박 행렬을 만들어내면서 스타 작가로 급부상. <신라의 달밤> <라이터를 켜라>를 집필하면서 감독 데뷔 시기는 늦춰졌다. 올해 필름매니아라는 영화사를 차렸지만, 얼마되지 않아 결혼식을 올린 데다 뒤이어 <광복절 특사>에 합류하는 바람에 정작 연출 데뷔작 시나리오는 물론이고 새 사무실 의자에 앉아본 기억조차 많지 않다. 전주공업고등학교 안 오수교도소 세트 “자, 수고하셨습니다.” 하루 촬영을 갈무리했다. 목소리가 조금 갈라져 나온다. 등나무에 엉덩이를 붙이곤 신발부터 벗었다. 발을 나무 테이블에 걸쳐놓았는데 별 효과가 없다. 종일 지열(地熱)과 심열(心熱)로 달궈서 그런가. 얼굴까지, 온몸이 발갛다. 벌써 전주 세트에 ‘입소’한 지도 한달이 넘었다. 개학하기 전에 촬영을 마치겠다고 약속했는데, 일정은 한참 어긋나 있다. 수업이 끝났는지, 교복 입은 까까머리 학생들이 여기저기서 삐죽댄다. “학교 안에 웬 교도소냐”는 학부모들의 항의도 심심찮다. 전엔 현장에서 목소리 높인 적이 별로 없었는데, 요즘은 간간이 짜증도 내뱉는다. 부담이 늘어선지 ‘활력지수’가 떨어진 것 같다.2년 전 겨울. <신라의 달밤> 찍을 땐 천년 고도 경주의 지형 덕에 눈 한번 안 와서 촬영이 순조로웠는데. 올해는 하늘도 안 도와준다. 장마와 태풍으로 촬영이 지연됐다, 개봉은 11월22일로 연기됐다. ‘천하태평, 만사긍정’이 신조지만 느긋하지만은 않다. “광복절 특사? 개봉일을 추석에도 못 맞추고, 개천절도 넘기게 생겼는데 무슨 광복절” 지미향 대표가 일갈한다. 딴청밖에는 수가 없다. “오늘 많이 찍었어?” 필터까지 타들어간 손끝의 담배를 처리할 무렵, 정우가 현장에 떴다. 여전히 졸린 듯한 눈에 얼굴은 희멀겋다. “넌, 얼마나 많이 썼냐?” “오늘 세 장면이나 썼다.” 얄미운 것이 영락없는 <톰과 제리>의 제리다. 김상진 __ 어이, 존경하는 작가 양반. 박정우 __ 닭살 돋게 하지마, 날로 먹는 감독. 김상진 __ 캐스팅해줄 테니까, 그럼 니가 해봐. 말도 안 되는 시나리오를 영화로 만들어줬더니. 박정우 __ 됐어. 벌써 9월이 다 가는구만. 전주 내려올 때가 8월이었는데. 김상진 __ 도대체 그동안 넌 뭐했냐? 박정우 __ 내 말이 그 말. 아직도 라스트 장면 고치고 있으니. 김상진 __ 정작 책상에 앉아 쓰기 시작한 건 오늘부터면서. 박정우 __ 말하는 것 하곤. 자기가 설정을 계속 바꿔대니까 그렇지. 김상진 __ 내가 문제냐, 꿈이 문제지. 꿈에 ‘떡’ 하고 나오는데 그냥 버릴 수 있나. 하늘이 점지해준 장면인데. 물대포 진압 장면, 죽이지 않냐. 박정우 __ 그것만 들어가면 되는 줄 알어? 앞뒤 장면을 다 갈아엎어야 하는데. 김상진 __ 유별나게스리. 네 임무가 뭐냐? 그걸 대본으로 만들어주는 거지. 이번엔 중간에 힘이 떨어지는 것 같아서, 장면마다 좀 임팩트 있게 가자는 발상을 하던 차에 그런 꿈을 꾼 거 아냐. 내가 촬영 들어가면 노는 것 같아도 끊임없이 연구한다고. 주야불문하고. 사실 <주유소 습격사건>의 라스트 장면도 꿈에서 본 거잖아. 이쪽 팀하고, 저쪽 팀하고 오해하게 되는 설정. 박정우 __ 그건 원래 시나리오에도 있었어. 김상진 __ 무슨 소리야. 내가 그때 설정 바꾸자고, 성남여관으로 불렀잖아. 박정우 __ 어쭈 큰소리는. 콘티까지 그려다준 거 내가 까먹을까봐. 내가 이런 중노동에 시달리는 시나리오 작가라니까. 김상진 __ 관객 반응 좋았으면 됐지. 박정우 __ 오히려 그게 문제야. 전날 만들어서 잘되니까 재미 들려가지고는. 촬영장 가는 버스 안에서 시나리오를 바꾸질 않나. 당신이 무슨 홍상수야? 이번에 내가 된통 걸렸지. 그 변덕에. 김상진 __ 나라고 그러고 싶냐? 너도 현장 가봐라. 시나리오 때보다는 ‘더 세게, 더 폭력적으로, 더 코믹하게’ 뭐 이렇게 가게 된다고. 나야 순서대로 찍는 스타일이다보니 나중에 가면 라스트를 대폭 수정하지 않을 수가 없지. 박정우 __ 시나리오대로 찍는 영화 없다는 거 누가 모르나. 그래도 나같이 불쌍한 작가가 다신 안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야. 김상진 __ 투덜거리긴. 박정우 __ 그냥 해주면 약오르잖아. 빨리 쓰라고 해도 못 들은 척 늑장 부리고 그래야 작가 고마운지 알지. 그래야 나도 고소하고. 물론 당신은 이제 이력이 나서 잘 보채지도 않지만. 김상진 __ 너도 어차피 내가 또 변덕부려서 엎을 걸 아니까 요즘은 잘 쓰지도 않으면서.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

채플린 DVD·비디오 올 가이드(1)

키드 The Kid 1921년 68분 출연 (채플린 외) 재키 쿠간, 에드나 퍼비언스 프랑수아 트뤼포는 ‘찰리 채플린은 누구인가?’라는 글에서, 가난을 묘사한 예술가는 채플린 외에도 있었지만 그만큼 가난을 가까이 아는 사람은 없었으며, 그런 까닭에 채플린은 어떤 동료보다 카메라 앞에서 빨리, 멀리 달렸다고 썼다. 초기 단편들과 마찬가지로 채플린의 첫 장편영화 <키드>의 밑바탕도, 가정을 등진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어머니마저 정신병원에 수용된 어린 찰스가 런던의 거리에서 맛본 굶주림과 경찰에 대한 두려움, 홈리스의 불안이다. 사건은 불행한 미혼모가 부잣집 자동차에 버린 아기가 우연의 장난으로 작은 떠돌이의 품에 떨어지면서 시작한다. 영화는 5년 뒤로 날아간다. 키드와 떠돌이는 한 사람이 유리창을 깨면 한 사람이 갈아 끼우고 팬케이크도 똑같이 반으로 갈라먹는 환상적인 파트너가 돼 있다. 채플린 영화의 모든 가련한 소녀가 그렇듯 결국은 부와 명성을 얻은 생모가 떠돌이와 키드가 사는 거리에서 자선을 베풀고 있는 것도 모른 채. 촬영 시작 2주 전에 생후 3일된 첫 아들을 잃는 아픔을 삼킨 채플린은 <키드>를 “미소, 어쩌면 눈물 한 방울이 있는 영화”로 소개했지만 대중은 이 영화에 폭소와 진한 눈물로 반응했고 <키드>가 얻은 호평은 이후 채플린의 장편영화 창작욕을 북돋웠다. 씨넥서스 클래식 컬렉션에서 나온 3장짜리 DVD 세트의 첫 디스크에도 수록돼 있다. 파리의 여인 A Woman of Paris 1923년 90분 출연 에드나 퍼비언스, 아돌프 멘조 한두개의 릴로 영화가 끝나는 원 릴러, 투 릴러를 대체한 장편의 등장은, 극적 감정을 숙성시킬 수 있는 더 많은 시간을 의미했다. 그것은 감성을 건드리는 슬랩스틱 코미디언 채플린에게 희소식이었다. 채플린이 “내가 출연하지 않는 나의 첫 번째 비극”이라고 오프닝 자막을 붙인 <파리의 여인>은, 유나이티드 아티스츠의 지붕 아래에서 그가 만든 첫 장편으로 채플린의 벗이자 히로인이었던 에드나 퍼비언스를 염두에 두고 쓰여졌다. 최루성 멜로드라마의 공식인 간발의 차로 엇갈리는 운명과 여인수난기로 이루어진 <파리의 여인>은 초창기 영화에서 물려받은 정적이고 평면적인 스타일로 연출되었다. 애인을 만나러 몰래 밤 외출을 했다 쫓겨난 마리는 애인의 부모에게서도 내침을 당한다. 역에서 잠시 집에 다니러 간 그녀의 연인은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발이 묶이고 속단한 여자는 홀로 도시로 와 부유한 바람둥이의 애인이 된다. 에드나 퍼비언스의 커리어는 이후 내리막길이었으나 채플린은 나이 들어가는 그녀를 캐스팅하지 않으면서도 꾸준히 계약을 유지했다. 황금광시대 The Gold Rush 1925년 72분 출연 맥 스웨인, 조지아 헤일 금광 개척자들이 서부로 향하던 높은 희망의 시대. 작은 떠돌이도 알래스카 클론다이크로 향한다. 두터운 외투 한벌도 없이 언제나와 같은 헐렁한 입성으로. 찰리는 덩치 큰 빅 짐과 보금자리를 만들지만, 거구의 룸메이트는 정신이 나가면 찰리를 치킨으로 오인하는 못 믿을 친구다. 황금의 심장을 끝까지 잃지 않은 떠돌이는 천금과 사랑을 품에 안지만, 이 해피엔딩은 차라리 백일몽처럼 보인다. 그것은 <황금광시대>가 그린 추위와 허기의 고통이 너무 생생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황금광시대>에 나오는 빵과 포크의 댄스와 구두를 먹는 식사장면은 아마도 영화와 팬터마임 사상 추위와 허기의 고통에 대한 최고의 표현일 것이다. 한때 계급구조에 편입되지 않은 인간의 자유를 암시했던 떠돌이 찰리의 유연한 육체는, 그가 인파에 휘말리고 눈보라에 흔들리는 <황금광시대>에 이르러 더 거대한 흐름에 포획당해 몸부림치기 시작한다. 비디오로 출시된 <황금광시대>는 훗날 채플린이 대사와 해설을 덧붙인 1942년 수정판이다. 얼라이엔터테인먼트의 찰리 채플린 컬렉션1에도 수록돼 있다. 서커스 The Circus 1928년 72분 출연 메르나 케네디 앨런 가르시아 어릿광대를 연기하는 찰리 채플린이란 지나치게 의미심장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서커스>는 광대의 애환과 페이소스를 설교하는 대신, 절묘한 몸의 코미디와 흥미진진한 상황을 연쇄시켜 관객을 최대한 즐겁게 한다. <서커스>의 천막을 지탱하는 기둥은 낯익다. 가련한 소녀와 서커스 단장인 가혹한 아버지가 있고 거기에 선량한 떠돌이가 끼어든다. 이 트라이앵글은 핸섬한 줄타기 재주꾼이 입단하면서 깨어지고 떠돌이 찰리는 고이 품어온 반지를 연적에게 건네는 고귀한 포즈를 취한다. 원숭이들과 씨름하며 와이어 액션을 보여주는 줄타기 곡예 등 스턴트와 동물연기가 어우러진 슬랩스틱 연기가 화려한 작품. 거울 방에서 벌어지는 어지러운 추격전은 오슨 웰스의 <상하이에서 온 여인>의 명장면을 예고한다. 소녀와 젊은이를 맺어준 떠돌이는 서커스 마차들이 떠난 자리의 흙먼지 속에 홀로 남는다. 시티라이트 City Lights 1931년 87분 출연 버지니아 셰릴, 해리 마이어스 이미 무성영화가 가버린 시대의 유물이 된 1931년에 만들어진 무성영화라는 점에서 <시티라이트>는- 5년 뒤의 <모던 타임즈>와 함께- ‘저항의 영화’라고 불릴 만하다. 채플린은 토키가 영화의 시적 성격을 말살한다는 초기 비평가들의 의견에 동의했지만, 사운드의 도래가 작은 떠돌이의 임박한 죽음을 의미한다는 사실도 예감하고 있었다. 천덕꾸러기 떠돌이는 어느 날 꽃 파는 눈먼 소녀와 만나 사랑하게 된다. 떠돌이가 목숨을 구해준 술꾼 백만장자는 취했을 때만 은인을 알아보고 돈을 빌려준 찰리를 도둑으로 몬다. 자기를 부자로 믿는 소녀의 개안 수술을 위해 찰리는 안간힘을 다하지만 정작 소녀의 눈뜸은 관계의 종말을 의미한다는 점이 <시티라이트>의 눈물겨운 패러독스다. “당신인가요?” 눈뜬 소녀와 떠돌이의 재회에서 채플린이 짓는 마지막 미소는, 주로 힘세고 돈많은 자들에게 아첨하거나 그들을 속일 때 짓던 떠돌이의 보통 웃음과 달리 그 자신을 위한 것이다. 비굴하지 않은 그의 미소는 행복하면서도 너무나 어색해 가슴아프다. 그러나 <시티라이트>의 엔딩은 1930년대까지 채플린의 영화들이 그러하듯 모호하다. 떠돌이는 행복해진 여주인공과 맺어질 것인가? 가까운 친구로 초대받는 것으로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결국 어느 추운 새벽에 보퉁이를 들고 지평선을 향해 떠나게 될 것인가?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

제목 바뀐 한국영화들

<바람의 노래> <파괴된 사나이> <살인비가> <온에어> <여우비> <돌아서서 떠나라>…. 이들의 공통점은 뭘까. 모두 기획단계에서는 영화 제목으로 채택됐지만, 최종적으로는 다른 제목에 밀려난 경우들이다. 이들 영화는 결국 각각 <킬리만자로> <복수는 나의 것> <스물넷> <중독> <약속>으로 바뀌어 개봉됐거나 개봉될 예정이다. 영화의 제목은 영화의 첫인상을 크게 결정짓는 요소다. 때문에 영화를 만들고 홍보하는 이들은 제목에 상당한 신경을 쓴다. 하지만 그렇게 결정된 제목도 자주 바뀌곤 한다. 사람 이름을 바꾸는 일보다 훨씬 쉽고 간단한 일인데, 더 나은 게 있다면 주저할 이유가 있겠나. 물론 영화 제목을 바꾸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앞서 관객에게 선보였던 영화와 비슷할 경우. 의 애초 제목은 <즐거운 편지>였다. <편지>가 앞서 개봉하지 않았다면 이 제목으로 결정됐을지 모른다. <파이란>의 원제도 아사다 지로의 원작소설 <러브레터>였다. 제목을 바꾼 이유는 이와이 순지의 이름을 들먹이지 않아도 짐작할 터. <와니와 준하>는 <쿨>이란 제목으로 기획됐으나, 모 방송사가 같은 제목의 드라마를 제작해 부득불 변경했다. 기획중인 <어디까지 왔니?>는 애초 <가시나무>였지만, 조성모의 노래가 성공을 거두면서 <새벽>이라는 이름을 거쳐 현재 제목으로 굳어졌다. 두 번째, 제목이 주는 느낌이 복잡하고 어려울 때. <순애보>의 애초 제목은 <유린네이션>. ‘유린네이션’이라는 포르노사이트를 매개로 남녀가 교류한다는 내용이었지만, 쉽게 와닿지 않았다. 제작중인 변영주 감독의 <밀애>는 원작인 전경린 소설의 제목 그대로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로 기획됐지만, 너무 길어 기억하기 어려워 <밀애>라고 바꿨다. 이 역시 친근하지 않아 새로운 이름을 지어야 했다. <정글쥬스>의 원제는 <딕, 조, 멕>. 영화 속 세 주인공의 별명을 딴 이 제목은 너무 어렵게 느껴졌다. 현재 촬영중인 <품행제로>도 <명랑만화와 권법소년>이라는 다소 외우기 어려운 이름의 기획에서 출발했다. 세 번째, 영화의 내용이나 느낌을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할 경우.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은 연극 제목이기도 한 <날 보러 와요>에서 바뀐 것. 봉 감독이 연극과 달리 살인자의 입장을 강조하지 않길 원했기 때문이다. <먼지>가 <모텔 선인장>으로, <해적>이 <해적, 디스코왕 되다>로, <형사수첩>이 <인정사정 볼 것 없다>로 바뀐 것도 같은 맥락. <처녀들의 저녁식사>는 <우리들의 성생활>이라는 원제가 너무 노골적이어서 바꿨다. 처음 제목으로 돌아오는 일도 있다. <달마야 놀자>는 장난스런 느낌을 준다는 생각 때문에 <바른생활>로 바꿨다가 주위 반응이 썰렁해 다시 원안대로 지었고, <로드무비>는 밝은 느낌을 주려고 <레인보우>로 바꿨다가 <오버 더 레인보우>가 먼저 개봉하자 애초 제목으로 돌아왔다. 예전 충무로에선 홀수에다 다섯 글자 제목을 가장 선호했다. <결혼이야기> <터미네이터> <미스터 맘마> 등이 이런 경우.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는 ‘긴 제목은 흥행이 안 된다’는 속설을 뒤집었다. 한때는 두자 제목이 안 된다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접속> 이후 <약속> <편지> <쉬리> 등이 이어지면서 사라졌다. 넉자 제목은 ‘죽을 死’자와 관련해 금기시됐지만, <영웅본색> <첩혈쌍웅> 등 홍콩영화 덕에 오히려 유행하기도 했다. 씨네월드 정승혜 이사는 “좋은 영화 제목은 터부나 유행과 관계없이, 컨셉과 장르, 영화 내용이 묻어나는 것”이라며, <마누라 죽이기> <깡패수업> <주유소 습격사건> 등을 모범사례로 꼽는다. 영화 일에 종사하지 않는 누구라도 제목의 중요성은 인정할 것이다. <접속>의 제목이 한때 거론됐던 <접촉> <입맞춤> <블루노트>였다면? <공동경비구역 JSA>의 제목이 <판문점> <더 라인> <선> 였다면?(이 영화의 제목은 한때 <판문점>으로 확정되기도 했다.) 결과는 모르지 않냐고? 맞는 말, 과연 누가 알겠나. 하지만 확실한 것은 제목이 아무리 훌륭해도 영화가 빈약하다면 ‘말짱 꽝’이라는 점이다. 문석

영화 속 등장인물 이름짓기 천태만상

<박하사탕>의 영호가 영호가 아니라 ‘민’이나 ‘준’ 같은 이름이었다면? <번지점프를 하다>의 서인우가 ‘봉만수’나 ‘왕영구’였다면? 잘못 지은 이름 하나 평생 이지메의 타깃이 되는 지름길이고, 잘 지은 이름 하나 영화를 영생케 하는 방부제 같은 것. 하여 이 땅의 일만이천 영화제작자들과 감독, 작가들은 오늘도 제대로 된 이름 짓기에 골머리를 쥐어짜고 있는 것이다. 임상수 감독의 시나리오에 주로 등장하는 남자 이름은 ‘영작’. <처녀들의 저녁식사>에서 조재현도 ‘영작’이었고, 지금 준비중인 <바람난 가족>(가제)의 주인공도 영작이다. “‘영화작가’의 줄임말이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던데 사실 저희 어머니가 지어주신 이름이에요. 그러니까 그게 제가 데뷔도 못하고 빌빌대던 시절이었죠….” 영진위 공모전을 앞두고 있던 실업자 임상수는 어머니에게 시나리오를 우편으로 보내달라는 부탁을 하게 된다. “쪽팔리니깐 가명으로 보내주세요. 이름은 어머니가 알아서 쓰시고요.” 그렇게 그의 어머니가 즉석에서 휙휙 만들어낸 이름이 바로 ‘이영작’. 결과가 궁금하다고? “에이, 떨어졌어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서 중학교 동창 이름인 ‘석환’과 ‘성환’을 빌려쓴 류승완 감독은 “감독들이 매번 시나리오에 같은 이름을 쓰는 건 만화에서 영향을 받은 것 같다”라고 말한다. “이현세 만화의 까치, 허명만 만화의 이강토식으로 말이죠. 페르소나랄까. 그래서 지금 쓰는 시나리오 주인공도 석환이에요.” <반칙왕>의 임대호란 이름은 김지운의 대학동기 이름. “별로 친한 친구는 아닌데 왠지 듬직하고 우직한 스타일을 생각하자 그 이름이 떠올랐던 것 같아요.” <반칙왕>의 장진영이 맡은 ‘민영’의 경우는 <조용한 가족>에서 송강호가 맡은 ‘영민’을 꺼꾸로 뒤집은 케이스. “무슨 뜻이 있다거나 사연이 있는 것이 아니에요. 오히려 이름에 아무런 이유를 두지 않는 편이죠” 하지만 현재 준비중인 <장화, 홍련>은 ‘장미’라는 뜻의 장화는 ‘미’자를 ‘연꽃’의 홍련은 ‘연’자를 넣을 예정이라고. 의 김현석 감독의 시나리오엔 늘 ‘호창’이 주인공이다.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에서 임창정도 호창이었고 의 송강호도 호창이다. 물론 <사랑하기 좋은날>의 애초 시나리오에도 최민수의 이름이 ‘호창’이었지만 제작사 대표의 이름인 ‘형준’으로 교체되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라이터를 켜라>의 박정우 작가만큼 희안방통한 이름들을 쓱쓱 만들어내는 작가도 드물다. 하지만 그가 중요시 여기는 것은 오히려 조·단역의 이름. “잠깐 나와도 이름을 주면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이구나, 하는 생명력이 생기죠” 재미있는 작명 중 하나는 <주유소 습격사건>에서 유해진이 맡았던 ‘용가리’. “왜 양아치들이 “‘용가리’ 형님 오시면 끝이다”라고 위협했는데 막상 와보니 별것 아니었잖아요. <용가리>가 그랬어요. 엄청 기대를 모았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아무것도 없었던….” 이미 동창들 이름은 한번씩 다 써먹어서 밑천이 바닥났고 그냥 “그때그때 생각나는 대로 짓는 편”이라지만 여자주인공만큼은 ‘경순’ 아니면 ‘연화’다. 경순은 부인의 여자친구 이름이고 연화는 친했던 대학교 동창을 차고 도망간 여자라고. <선물>에서 이영애의 이름도 경순이었는데 감독이 촌스럽다고 바꿨다.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의 종두는 원래 ‘원두’가 될 뻔했고 박찬욱 감독의 <삼인조>에서 성으로만 불리던 ‘안’과 ‘문’은 원래 안성기씨와 문성근씨를 염두에 쓰고 만들어졌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김대박’이나 ‘박매진’ 같은 속보이는 이름인들, ‘한예술’이나 ‘나장인’처럼 머리아픈 이름인들 어떠하랴. 장미라 부르는 꽃을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아름다운 그 향기는 변함이 없는 것을.백은하 lucie@hani.co.kr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에 관한 짧은 보고서2 <동행>’ 연출한 김미례감독

“그들의 바람은 참 작은 거예요. 법으로 정해진 권리는 법대로 보장해달라는 거고, 똑같이 일한다면 정규직이 되게 해 달라는 겁니다.”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에 관한 짧은 보고서2 <동행>’을 연출한 김미례(38) 감독은 “여성이기 때문에 쉽게 비정규직이 되고,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소수로 몰려 개별화할 수 밖에 없는 이들의 아픔을 해결하는 데 힘을 보태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감독’이란 호칭이 쑥스러운 듯 했다. 97년 <대구건설노조 투쟁기록>을 시작으로, 98년 <고용한 실업의 나라>, 99년 <아이엠에프 1년, 두 번의 겨울> 등 노동자들의 삶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여러 편을 찍었지만, 그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감독이라기보다는 ‘동지’같은 따스함이 베어 있다. 영화를 찍기 이전 그는 평범한 주부였다. 그를 노동현장에 뛰어들게 한 것은 다름아닌 그의 아버지다. “98년 아이엠에프 이후 일용직 목수였던 아버지의 삶을 지켜보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겪는 고통을 깨닫게 됐어요. 일이 없으면 당장 생계가 곤란해지는데다, 예순살 가까이 목수일을 하셨는데 퇴직금을 달라고 할 곳조차 없다는 사실을 알고 힘들어 하셨죠.” 김 감독은 자신의 아버지의 하루를 기록한 15분짜리 다큐멘터리 <해뜨고 해질때까지>를 만들었고, 이 영화는 지난 2000년 서울국제노동영화제에서 상영됐다. 이번에 공개한 <동행>은 1년 전 만든 다큐멘터리 <나는 날마다 내일을 꿈꾼다>의 후속작이다. 그는 두 작품이 “똑같다”고 말한다. <나는 날마다…>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나이와 학력에 상관없이 비정규직으로 일해야 하는 현실을 그들의 목소리로 드러낸 것이라면, <동행>은 파견직이나 용역직, 영세사업장에서 일하는 중장년 여성들의 고된 삶에 초점을 맞춘 것일 뿐,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억울한 처지를 고발하는 것에는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불합리하거나 불법적인 대우에 맞서 싸우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은 수도 없이 많아요. 하지만 그들의 싸움은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두 세명이, 때로는 혼자 싸울 때가 많으니까요. 그래서 그들의 고통은 더욱 큽니다. 그들의 고통이 사라질 때까지 영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이지은 기자

개를 사랑하는 `사람들`에 관한 영화,<뽀삐>

■ Story 영화감독인 수현(백현진)은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가족처럼 지내온 애견 뽀삐가 시름시름 앓다 죽자 한없는 상실감에 젖는다. 그는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개에 관한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하고 개를 키우는 사람들과 잇따라 인터뷰를 한다. 시베리안 허스키종인 두마라는 개를 한국 온돌방에 적응시킨 추리작가 주인, 산 지 일주일 만에 목숨을 잃은 미니어처 슈나우저의 주인인 배우, 진돗개 자비의 ‘수행정진’을 위해 동정(童貞)상태를 계속 유지시키고 있는 스님 등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수현은 자신과 뽀삐가 지내온 나날들을 추억한다. ■ Review <뽀삐>는 아끼던 강아지를 저승으로 떠나보낸 인물을 중심으로 ‘애견인’들의 특별한 사연을 가짜 다큐멘터리 형식에 녹인, 독특하고 유쾌한 영화다. 공동연출작 <바다가 육지라면>에서 각기 다른 라면 조리법을 통해 그만큼 다양한 삶을 보여줬던 김지현 감독은, <뽀삐>에서도 개라는 거울을 내세워 우리들의 초상을 비춘다. 이 영화의 화자이자 주인공 수현은 어떤 사람인고 하니, 애견 뽀삐가 죽은 뒤 ‘개 죽은 것 갖고 뭘 그러냐’는 어머니의 말에, “엄만 왜 뽀삐 보고 개래 만약 엄마가 죽었을 때, 그냥 ‘사람 죽었다’고 하면 기분 좋겠어”라고 따지는 열혈 애견인. 이뿐만이 아니다. 뽀삐가 세상을 뜬 뒤 그는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강아지에 관한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하며, 그의 모친은 뽀삐가 극락왕생하라며 불공을 드리기도 한다. 개를 포함한 애완 동물을 사람 이상으로 사랑하는 것에 대해 아직 사회적 합의가 완전히 이뤄지지 않은 한국사회의 사정(‘아직도 도시락을 못 싸가는 학생이 있는 상황에서, 일부 부유층의 경우 애완견의 미용이나 액세서리에 신경을 써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투의 뉴스 꼭지는 심심할 만하면 방송을 탄다)을 고려할 때, 개의 죽음에 호들갑떠는 수현의 모습은 과도한 것으로 비칠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건 비단 수현만의 모습이 아니다. 수현이 영화 속 영화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 만난 여러 사람들은 자신의 ‘애견 체험’을 솔직하게 고백하며 자신의 감정을 함께 전한다. 영화 속 애견인들은 바람부는 날이면 베란다에 우두커니 앉아 고향인 북쪽 벌판을 추억하는 시베리안 허스키종 개나 항상 가식적인 표정과 말로 상대해야 하는 남자친구와 달리 자신의 속내를 있는 그대로 털어놓을 수 있는 강아지에 관한 사연을 말한다. 때론 우스꽝스럽고, 때론 쓸쓸해지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그동안 스스로 개에게 저질렀던 온갖 악행들을 뉘우치게 될 정도다. 그렇다고 <뽀삐>는 개에게 무한한 사랑을 바쳐야 한다거나 ‘견권’(犬權)을 확보하자고 고래고래 외치는 영화가 아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뽀삐>는 개에 관한 영화가 아니라 개를 사랑하는 ‘사람들’에 관한 영화다. 영화가 주목하는 바는 개 자체라기보다 각각의 사연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언술행위쪽이다. 눈물 흘리는 연기를 위해 개 사진을 동원했다는 영화배우가 등장하는 에피소드의 예를 들어보자. 그녀는 애완동물 가게에서 40만원을 주고 슈나우저를 샀는데 곧 시름시름 앓아 20여만원을 들여 치료를 했지만 끝내 죽어 1만원을 주고 화장 처리했으며 가게 주인에게 따지러 간 길에 주차위반을 해 4만원을 더 물게 됐다. 개의 사진을 볼 때 그녀 눈에 물기가 맺히는 것이 개에 대한 연민 때문인지, 아깝기 짝이 없는 돈 때문인지 아리송해진다. 비단 이 에피소드에서만이랴. 수행의 길을 걷게 하기 위해 진돗개를 생식의 욕구로부터 차단한 스님이나 포메라니안에게서 커뮤니케이션이 단절된 남자친구와의 관계를 위안받는 여성, “사람과 어울리는 행동을 하는 확률을 높여준다”며 애견들의 거세수술을 주창하는 수의사 등에서 볼 수 있듯, <뽀삐>에 등장하는 개들은 스스로의 운명에서 주인공 노릇을 하지 못한다. 지극한 사랑을 받는 듯 보이는 영화 속 애견들은 키우는 사람들의 욕망의 자장을 벗어날 수 없다. 영화 마지막 부분 수현이 개를 키우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엉뚱한 질문들이 어처구니없다기보다 의미심장하게 느껴지는 것도 그 때문이리라. 개가 말을 한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무슨 말을 할까, 개는 평소에 무슨 생각을 할 것 같나, 그리고 개도 꿈을 꿀까, 그 꿈은 어떤 것일까 등등. 물론 <뽀삐>는 인간과 개에 대한 철학적 명상을 제공하는 따분한 영화가 아니다. 사람들이 개, 그리고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방식을, 감독 나름의 시선을 통해 그저 보여주기만 하는 이 영화는 오히려 허물없는 웃음을 자아낸다. 상황을 우스꽝스럽게 과장하거나 뒤튼 것도 아닌데 <뽀삐>를 보는 얼굴들은 연신 싱글거린다. 그건 사람들이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감추려 하는 삶의 안감을 개라는 모티브를 이용해 들춰내는 감독의 탁월한 능력에 힘입은 것일 터. 웃음 뒤의 묘한 여운 또한 그 때문일 게다. 문석 ssoony@hani.co.kr

해외신작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역설적이게도, 미국인들은 이란이 전세계에서 가장 윤리적인 영화를 만든다는 사실이 거의 공인된 지금에도 여전히 이란인을 악마로 보는 경향이 있다.” 2년 전 <시카고 리더>의 영화평론가 조너선 로젠봄은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의 평을 그렇게 시작했다. 허구와 픽션, 삶과 영화의 결을 분별할 수 없도록 밀착시키는 영화세계를 가꾸어온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1999년작 <바람이 우리를…>은 그의 작품 중 보편적인 재미와 유머가 가장 뛰어난 영화로 꼽힌다. 작고 외딴 마을들을 사랑하는 키아로스타미가 <바람이 우리를…>에서 찾아간 곳은 쿠르드 촌락 시아 다레. 두개의 산 옆구리에 매달려 있는 이 작은 마을에 테헤란에서 온 엔지니어라는 남자 베자드와 동료들이 온다. 선조의 무덤가를 서성이는 타지인들이 보물을 찾으러온 것이라는 소문도 돌지만, 사실 베자드는 여인들이 제 얼굴에 상처를 내며 조의를 표하는 쿠르드 전통 장례의식을 취재하러 온 기자다. 100살이 된 한 여인의 임박한 죽음을 초조히 기다리면서 취재를 독촉하는 휴대폰 벨이 울리면 전파가 통하는 언덕배기로 내달리는 것이 베자드의 업무. 그러나 도시에서 온 사내는, 죽음을 앞둔 할머니의 손자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아무것도 독촉하거나 지배하려 들지 않는 유유한 태도에 천천히 젖어든다. “그리고 삶과 죽음은 계속된다”는 교훈부터 침묵의 미를 터득한 풍광까지 키아로스타미 스타일의 모든 것을 갖춘 <바람이 우리를…>은 2000년 베니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다. 김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