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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작 연출에 혼이 난 나는 다음 영화로 속 편하게 <어둠의 자식들> 속편을 만들 생각이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문공부에 제작 신고를 하려면 당시엔 반드시 시나리오 사전 심의를 받아야 했는데 여기에 통과하지 못하고 자꾸 반려되었다. “내용이 어둡다” “사회의 어두운 면만 부각시켰다”는 게 반려 이유였다. 더욱 괴로운 것은 그 시절 한국영화 제작 독려 정책으로 해당 분기 안에 의무 편수의 영화 제작을 하지 않으면 외화 쿼터를 주지 않는 악독한 시행령이 있어 영화사가 줄기차게 나에게 계약 이행을 촉구하는 까닭이었다. 이른바 시한부 제작에 걸려든 것이었다. 괴로워 미칠 지경이었다. 마치 양쪽에서 기계처럼 밀고 들어오는 철벽을 양팔 벌려 막아야 하는 악몽의 형국이었다. 그때 내가 찾을 수 있었던 유일한 구멍은 그저 포기하는 것이었고 그 포기마저 허락이 안 된다면 곱게 영화판을 떠나야겠다는 마지막 결단뿐이었다.
우선 영화 하나를 철저히 망쳐버릴 수 있도록 결심을 단단히 했다.
이장호 [44] - 독재시대가 만든 영화, <바보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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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버튼이 아직 ‘어른스러운’ 주제는 다뤄본 일이 없지만, 돈 되는 할리우드 감독치고 미학적 완결성을 그보다 더 엄격하게 추구하는 이 또한 없다. 데이비드 린치보다는 좀더 폼잡는 대중적 감독이고 스티븐 스필버그보다는 대중적 성공에 신경을 덜 쓰는 편인 버튼은, 스튜디오 영화의 소잿감을 특유의 음습하고 수다스러운 표현주의적 목표를 위해 끈질기게 뒤집고 뒤틀어왔다.
<슬리피 할로우>는 ‘반(反)엔터테인먼트적’이라는 측면에서는 그의 비운의 실패작 <화성침공>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 끝내주게 멋지고 살 떨리게 무서운 신작의 순수한 영상은 가히 눈부시다. 떨어지는 나뭇잎이 목표물에 명중하고, 신호에 맞춰 셔터가 흔들리고, 번개가 악귀의 등장을 비추는 일종의 할로윈 귀신 영화라고나 할까. 이 버튼판 유령의 집은, 비록 살아 숨쉬는 배우들이 우글거리기는 하지만, 반세기 전 워싱턴 어빙의 귀신이야기에(빙 크로스비의 내레이션은 말할 것도 없고) 코믹한 한기를 불
디즈니랜드에 들어선 공포 극장, <슬리피 할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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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란 옷이 공기와 같아서 입고도 입은 줄 모른다면, 결국 문화를 잡는 방법은 그릇과 종지, 촛대와 장신구 같은 사소한 것들이 들려주는 작은 이야기에 귀기울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오늘은 좀 멀리 돌아가야겠다.
와리바시- 일회용이 주는 비장함
<러브레터>와 <철도원>을 이야기하는 마당에 웬 난데없는 젓가락 장단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일단 일본하면 빼놓을 수 없는 ‘사이즈’ 이야기부터 시작해야겠다. 얼마 전에 도쿄에 갔을 때, 일본의 청담동격인 비교적 좋은 동네라고 소문난 데서 묵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고급 호텔이라는 그곳은 겨우 손바닥만한 방 하나에 침대가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었고, 그 방의 조립식 목욕탕은 뚱뚱한 사람 절대 사절이라는 팻말을 붙여놓은 것처럼 작았다. 푹신한 의자 하나 없이 영업하는 카페며, 맞은편 사람의 무릎이 닿을 것 같은 지하철. 이게 정말 ‘땅이 작아서’ 생기는 문제일까? ‘땅이 작아서’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모든 사라지는 것들의 이름을 부른다, <철도원> <러브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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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이 넘은 나이지만 1등 기관사의 꿈을 보듬고 있는 사람. 그의 종착역은 관객이 모여 있는 상영관이다. 극장 라인을 잡는 것부터 비디오 및 공중파, 유선방송 판권까지 포함하는 배급의 역할을 김길남(33)씨는 “소프트웨어를 시장에 공급해서 수익을 발생시키고 이를 다시 제작에 재투자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배급은 영화제작 현장과 영화관을 부단히 왕복하는 기차인 셈. <박하사탕>으로 새해 첫 기적을 울린 김길남씨는 “흥행의 성패를 배급력만으로 이야기하거나 배급력을 라인업과 극장수 확보만으로 설명해선 부족하다”고 미리 못박는다.
배급에도 컨셉과 전략이 엄연히 있다. 제4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였던 <박하사탕>이 좋은 예. 주위에선 영화제 열기가 식기 전에 곧바로 극장 개봉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가 염두에 두고 있던 것은 단관 개봉. <박하사탕>은 “판을 크게 벌이는 것보다 판이 최대한 데워질 때까지 기다려야 할 영화”라 판단했다. “극
현장과 영화관을 왕복하는 기차, 배급 김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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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영화제에서 은곰상을 탄 1996년작 <그림 속 나의 마을> 개봉에 맞춰 서울을 방문한 히가시 요이치 감독(東陽一·66)에게 한국 나들이는 이번이 네 번째다. 1993년 <NHK> 다큐멘터리 <한국의 서커스>를 위해 두 차례 취재 여행을 다녀갔고, 1998년 서울 국제독립영화제 손님으로 초대받은 것이 세 번째 방문이었다. 교육 영화와 다큐멘터리로 이름난 이와나미영화사를 거쳐 1969년 히가시프로덕션을 설립한 히가시 감독은 <써드>(78), <다리없는 강>(92) 등 일본사회의 저변을 훑는 사실주의적 영화들로 일본평단에서 가볍지 않은 믿음을 쌓아온 노장. 필름 위에 빛으로 그린 그림책 같은 영화 <그림 속 나의 마을>에서도 그의 투명하고 엄정한 시선은 그대로다.
지난 2월9일 회색 양복에 갈색 편물 넥타이를 맨 젊은 차림새로 <씨네21>을 방문한 히가시 감독은 활달한 손짓을 곁들여 자신의 영화와 인생
베를린영화제 은곰상 <그림 속 나의 마을>의 히가시 요이치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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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테레사와 함께 캘커타의 빈민가에서 보낸 일주일을 생애 최고의 경험으로 기억하고, 달라이 라마와의 만남에서 느꼈던 초월적 영감을 잊지 못하고, 어쩌지 못할 내면의 불안과 공포를 치유하기 위해 크리슈나무르티의 명상서적와 프로이드의 <꿈의 분석>을 읽는 여배우. 페넬로페 크루즈(26)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한다면 뜻밖일까? 그러나, ‘스페인의 최고스타’ ‘안토니오 반데라스 이후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스페인 배우’ ‘청순과 관능의 아우라를 함께 두른 여신’이라는 수사어보다 이 단편들이 그녀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그러니까 이미지와 풍문의 미망에서 벗어났을 때라야 제대로 보이기 시작한다. 그녀가 페도르 알모도바르의 <내 어머니의 모든 것>에서 여성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여성성의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 있었던 건 나이에 비해 깊고 넓은 내면을 지녔기 때문일 게다.
원색의 나라, 스페인의 딸답게 크루즈는 <하몽하몽>(199
인형이 난 싫어,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의 페넬로페 크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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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꼬질한 차림에 어수룩한 윤주가 뭘 생각하는지 정도는 말이다. 그런데 ‘추리닝’에 손 넣고 빈둥대는 윤주가 오늘은 심상찮다. 삐주룩한 머릴 빨간 조교 모자로 감추고 얼굴 반만한 크기의 뿔테 안경으로 변장하고 나선 것이다. 주위를 살피는 윤주. 곧바로 자신의 적 강아지를 싸고도는 주인이 방심한 틈을 타 재빨리 다가가선 냉큼 집어든다. 그러고는 주인이 뒤돌아볼 틈도 주지 않고 비호처럼 옆 화단으로 몸을 날린다. 그러곤 성공을 외친다. <플란다스의 개>는 개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빠짐없이 기록하고, 아파트는 실험실로 변한다. 계속 반응하느라 헐떡대는 윤주는 이성재가 아끼는 또 하나의 분신이다. “일상적이고 평범한 캐릭터예요. 때론 과장이나 극단적인 면도 갖고 있고. 떳떳하거나 마음 편한 위치에 당당히 서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살아가면서 다들 갈등하는 거죠. 순수와 타협의 갈림길에서 희화화한 윤주는 제 모습이기도 해요.”
원래 무겁고 신경질
"배우, 직업이자 취미이자 특기", <플란다스의 개>의 이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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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스 동산에 방울소리 들린다
새 천년 2월, 애니메이션 은하계 에로스 행성에서 한국 비디오시장을 향해 두번째 운석이 날아왔다. 휴대폰은 커녕 편지 쓸 종이도 없는, 컴퓨터는 고사하고 기계라곤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원시사회의 성 풍속도를 담아낸 비디오용 애니메이션(OVA) <고인돌>. 보이면 난리가 나는 신체 특정 부위를 아슬아슬한 의상으로 슬쩍 가린 원시 남녀들을 내세운 이 에로스의 운석은, <누들누드>1탄과 2탄으로 패인 성적 판타지의 구덩이를 또 한뼘 넓힐 요량이다.
박수동 화백의 18년 연재물 <고인돌>
<고인돌>은 서울애니메이션과 오돌또기가 공동으로 기획하고 오돌또기에서 실제작을 담당한 성인용 비디오 애니메이션이다. 고인돌? 제목을 되새겨보고 ‘아하’하는 감탄사를 흘린다면 20대 후반 이상일 가능성 90%. <고인돌>은 74년부터 <선데이 서울>에 연재된 박수동 화백의 만화가 원작이다. 정력 센 미
2000년 애니메이션 제1탄, <고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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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에는 영화가 없다?
본선 진출작 <비치>의 기자회견장.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게 연이어 질문의 화살이 꽂혔다. 역할에 대해, 작품에 대해, 연기관에 대해, 환경문제에 대해, 그리고 어젯밤 파티에 대해. 보다 못한 모리츠 드 하델른 집행위원장이 사회자의 마이크를 빌려 들더니, “지금은 개인 인터뷰 시간이 아니”라고 취재진에게 주지시켰다. 그러자 곧바로 다음 기자가 감독 대니 보일에게 질문을 던졌다. “왜, 그리고 어떻게 디카프리오를 캐스팅했나?” 장내가 떠나갈 듯 웃음이 터져나왔지만, 짐작하듯이 그리 유쾌한 상황은 아니었다.
영화제인가 배우잔치인가
어찌된 일인지, 올 베를린영화제에서는 영화가 보이지 않는다. 영화보다는 사람이, 감독보다는 배우가, 그 중에서도 ‘오로지’ 할리우드 배우가 관심사다. 대중의 사랑은 대개 감독보다 배우 차지이지만, 이번 영화제에서는 더 유별나다. 파파라치와 극성팬들을 따돌리기 위해 여러 호텔에 동시에 예약했다는 디카프리오를 필두로
[현지보고] 제50회 베를린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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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오토바이를 탄다. 핸들을 잡아야 할 두팔을 벌려 고개를 하늘로 치켜든다. 질주하는 젊은이, 그는 궤도를 벗어나고 있다. 그는 달리는 기차에 털썩 오른다. 가벼운 옷차림에 변변한 짐도 없이. 기차가 멈추는 곳이 땅끝마을이든, 아프리카든, 홀로 당당할 수 있는 남자. 그는 욕망과 야심이 질척거리는 땅에서 떠나온 지 오래다. 정우성의 뚜렷한 이목구비와 당당한 체격에는 그 무엇으로도 구속할 수 없는, ‘자유’의 이미지가 있다. 어린아이처럼 씩 웃을 때면 투명한 마음이 비치는 듯하지만 착한 눈망울이 독기를 품을 땐 순수한 분노가 타락한 어른들을 겁먹게 만든다. 그것은 80년대를 창백한 회색지대에 웅크려 있어야 했던 청년문화가 정우성에게서 발견한 시대정신이다.
서태지의, 혁명과도 같은 폭발적 힘은 아니지만, 정우성의 순수한 반항에도 큰 물결을 거스르는 몸부림이 있다. 고등학교를 다니다 그만두고 자기 재능에 운명을 내맡긴 과정도 비슷한 구석이 있지만, 폭력교사의 행동을 힘으로 제압하는
스크린의 아름다운 청년들 [7] - 정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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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는 여자들마다 녹아내렸다던 전설의 돈 주앙이 이런 모습이었을까. 먼지 한점 섞이지 않은 햇살 같은 소년, 천상에서 추락한 듯한 천사의 얼굴. 옆에서 바라보아야만 그 이마와 코와 턱의 선이 얼마나 완벽한 각도를 그리며 떨어지는지 알 수 있는 라이언 필립(25)은 미켈란젤로의 조각 <다비드>에 영감을 주었던 소년의 모습을 짐작하게 한다. 향기를 품은 그 입술이 무언가를 호소할 때, 하늘이 내린 천재 미켈란젤로도 욕망을 떨치지 못했을 것이다.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에서 무심하게 드러내는 그의 나체는 그저 서 있는 것만으로도 견딜 수 없는 유혹이다.
그러나 그토록 아름다운 소년이 순진무구해 보일 때는 조심해야 한다. 짧게 곱슬거리지만 짓궂지 않은 머리카락과 키스의 자취가 남아 윤기있게 빛나는 입술은 신의 특별한 은총을 받아야 가능한 것이겠지만, 그는 결국 인간이다. 독을 품지 않은 아름다움이란 지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언뜻 보기에 그저 금발의 미소년일 뿐인
스크린의 아름다운 청년들 [6] - 라이언 필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