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씨네21> 이유란인데요, 이선희씨 내 인생의 영화에 글쓴 적 없죠? 이번 주에 쓰세요. 내일 오후까지 보내주시는 걸로 알고 있을게요. 재미있게 써주세요.”
내 인생의 영화? 재미있게? 새로 맡은 작품의 포스터 작업으로 인해 설악산 흔들바위만한 돌덩어리에 머리가 깔려버릴 참이었는데, 이젠 그 돌덩어리 위에 이유란 기자님마저 올라 앉아버린 기분이다. 하지만 같은 유부녀 동지의 고마운 명령인데…. 다른 직원들의 눈치를 살피며 사무실 구석의 컴퓨터 앞에 쪼그려 앉는다. 내 인생의 영화라.
하긴, 나는 영화를 선택한 적이 없었는데? 그저 어린 시절부터 유난히 영화보기를 즐겼던 나는 이 지면을 들렀던 수많은 이들이 그랬듯이 TV 주말영화의 단골객이었고 극장의 불이 꺼지고 영사기가 돌아가는 순간을 몸서리치게 좋아했고 그 몸서리칠 정도로 좋아한 어둠 속에서 설레는 가슴을 부등켜 안고 보았던 그 수많은 영화들이 지금의 나를 여기까지 몰고 왔을 뿐인데. <로미오와 줄리엣&g
모성의 '발해'를 꿈꾸며, <안토니아스 라인>
-
이 땅에서 초등학교를 나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었음직한 괴담이 있다. 이순신 장군 동상은 밤마다 움직인다, 미술실에 혼자 있으면 석고상이 노려본다, 유관순 초상화에는 7가지 비밀이 있다, 소풍날 비가 오는 건 학교 귀신 때문이다, 등등. 불합리한 교육제도나 폐쇄공간에 대한 공포라기보다는 원초적이고 근거없는 두려움들이, 어린 마음들을 떠돌았던 것 같다. <학교전설>은 어린 시절 우리의 귀와 입을 바쁘게 했던, 전설과 괴담을 다룬 영화다. 어른 관객도 나눠가질 수 있는 ‘재미’가 있는 건 이런 이유다.
<학교전설>은 시청각적으로 매우 공포스럽다. 음악, 음향효과, 특수분장, CG 등은 학교에, 아이들 머릿속에 떠도는 괴담을 실감나게 재현한다. 하지만 ‘본격 키즈엔터테인먼트 무비’를 표방한 이 영화도, 계몽과 선도에 대한 강박을 벗어내지는 못했다. 이를테면 영주를 죽음으로 몰아간 원인이 동급생들의 왕따로 밝혀지면서, 다시 이런 일이 되풀이돼선 안 된다는 식의, 진
본격 키즈엔터테인먼트 무비, <학교전설>
-
<본 콜렉터>는 철저한 할리우드식 시나리오의 영화다. 연쇄살인범의 초상은 <양들의 침묵> <쎄븐> 이후 할리우드의 단골로 급부상했고, 범죄를 일종의 예술처럼 여기는 기묘한 사디즘은 정교한 내러티브 속에서 관객과 게임을 벌인다. 물론 <본 콜렉터>는 현대인의 구미에 맞게 양념들을 듬뿍 쳐놓았다. 머리를 제공하는 것은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흑인배우 덴젤 워싱턴이며, 그의 수족이 되어 몸을 아끼지 않는 일은 안젤리나 졸리가 맡았다. 할리우드영화에서 남성의 두뇌와 여성의 몸의 결합은 요즘의 한 경향이고 그것도 다른 인종간의 결합이면 금상첨화다. 범인이 제시하는 단서를 따라 뉴욕의 과거를 훑어보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낡은 도살장, 한권의 추리소설, 뉴욕의 어두운 지하도 등. 영화는 끊임없이 우리를 하강과 결말로 이끈다.
하지만 범인의 등장은 빛이 되기에는 함량미달이다. <긴급명령> <패트리어트 게임>을 만든 호주 출신의 필립
철저한 할리우드식 시나리오, <본 콜렉터>
-
냉정한 역사가들은 뮤지컬과 네편의 영화에 원안을 제공한 애나 레노웬스의 회상록을 한 고독한 여인의 분홍빛 몽상에 불과할 가능성이 높다고 이미 감정한 바 있다. 그러니 이 로맨스가 실화인가는 따로 묻기로 하자. 무엇보다 <애나 앤드 킹>은 두 사람의 강한 인간, 온 세상을 짊어진 남자와 자기 안에 하나의 세계를 가꾸어 온 여자의 만남에 관한 이야기다. 무뚝뚝한 떡갈나무의 가지를 흔드는 산들바람. 우리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도 그런 커플을 보았다. 마리아가 폰 트랩 가에 노래를 가져다 주었다면, 시암의 왕궁에 당도한 애나의 트렁크에 들어 있었던 것은 자애와 용기다.
말레이시아 로케이션과 런던 스튜디오를 오가며 촬영된 2시간이 훌쩍 넘는 <애나 앤드 킹>은 호화 양장본의 증보판이다. 앤디 테넌트 감독이 생각한 이 리메이크의 존재이유는 무엇보다 미장센과 색채의 보강이었던 모양. 첫 그림부터 스크린은 데이비드 린의 <인도로 가는 길>을 상기시
무뚝뚝한 떡갈나무의 가지를 흔드는 산들바람, <애나 앤드 킹>
-
-
김영호, 비틀거리는 걸음, 초췌한 얼굴, 일그러진 표정의 마흔살 남자. 우리가 영화에서 맨 처음 만나게 되는 이 사내는 불행해보이지만 별 동정은 가지 않는다. 야유회장에 술 취한 채 나타나 분위기 깨는 이런 인간은 가능하면 피하는 게 상책이다. 다행히 사라졌나 했더니, 어느샌가 철로 위로 올라가 소리를 질러댄다. 뻔하다. 저 한심한 인생이 더러운 꼴 크게 한번 당한 게로군, 하면서도 놀던 사람들은 불편하고 불안하다. 아니나 다를까, 기차가 달려오는데, 사내는 물러서기는커녕 눈을 부릅뜨고 울부짖기 시작한다. 왜 저럴까. 정말 죽을 작정인가. 아무리 꼴보기 싫은 인간이라도, 죽겠다고 나서면 썩 내키진 않지만 놀이를 멈추고 일단 만류한 뒤 그의 사연을 들어주는 도리밖에 없다. 그런데 눈물이 흐를 듯 고인 채 파르르 떠는 사내의 눈은, 피하고 싶은데도 결국 속을 울렁이게 만든다.
<박하사탕>은 시간을 거꾸로 올라가며, 결코 호감은 안 가지만 냉큼 외면하기도 힘든 이 사내의 2
한 사내의 20년에 걸친 개인사, <박하사탕>
-
캐슬린 비글로의 <블루 스틸>을 처음 봤을 때 참 신선했던 기억이 있다. 적어도 여성문제에 관한 한 우리보다 100년쯤은 앞선 미국이고, 할리우드영화들은 ‘지 아이 제인’ 같은 여성투사들을 제법 배출해왔으며, 현대 여성의 정체성에 관한 한 <터닝 포인트> 같은 걸작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지만, <블루 스틸>은 새삼 “아, 이래서 남자가 만드는 여성영화와 여자가 만드는 여성영화는 다른 거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주인공 여성에게 경찰관이라는 권력적 지위를 부여한 것도 그렇고, 알코올 중독 아버지에 의한 가정 내 폭력과 사이코에 의한 사회적 폭력을 거기에 상응하는 폭력으로 해결하는 것도 그랬다. 가령 <밴디트 퀸>과 <엘리자베스>를 만든 인도 출신 세카르 카푸르 감독 정도면 페미니즘 영화비평의 연구주제가 될 만도 하지만, 정작 나는 두 작품이 모두 불쾌했다. <엘리자베스>는 충동적이고 의존적인 저것이 여제의 퍼스낼리
[편집장이 독자에게] 페미니즘 성적표
-
여느 해와 다름없이 한해가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아주 익숙한 기호들이 12월을 메우고 있습니다. 자선냄비, 캐럴송, 플래스틱 크리스마스 트리, 한두어개쯤 얻은 새해 달력… 그리고 송년회에 참석하라는 전화들…. 올해는 유난히 송년회가 많은 한해인 것 같습니다. 내 수첩에만 해도 작년 12월보다는 한결 많아진 송년회 약속들이 적혀 있습니다. 거기엔 몇 가지 이유가 있겠지요. 경기가 살아나 주머니 사정이 나아진 사람들도 늘고 IMF로 인한 위기 의식에서도 어느 정도 벗어나서이기도 하고, 한해의 바뀜뿐 아니라 세기의 갈림, 밀레니엄의 교체라는 생각 때문에도 송년의 느낌이 더 짙어진 탓도 있을 것이다. 물론 송년회가 너무 잦거나 폭탄주로까지 이어지는 송년회로 인해 몸이 피곤해지고, 때로는 은근한 질투와 원한이 뿜어져 나오는 송년회로 인해 개운치 않은 감정이 드는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삶에 매듭을 만들고 시간의 분할 속에 새로운 출발의 계기를 삽입하는 송년회, 따뜻하게 술잔을 건네는 송년회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송년 편지
-
[정훈이 만화] <허준> 메디칼 미스테리
[정훈이 만화] <허준> 메디칼 미스테리
-
'이게 돈 좀 될까?' 김주만(38)씨는 하와이의 친척집에서 1년간 머물면서 그동안 써두었던 시나리오 <삼양동 정육점 이야기>를 호형하는 프로듀서에게 보냈다. 돌아온 건 함께 작업하자는 제안. 좋은 기회라 여기고 98년 영화진흥공사 판권담보융자 시나리오 심사에 응모했다. 결과는 1차 통과, 2차 탈락. 그즈음 <노랑머리>를 제작한 여한구 사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삼양동 정육점> '개업'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러나 매상은 좋지 않았다. 서울의 대여섯 극장에 걸린 지 2주일 만에 모두 간판을 내렸다. "흥행은 기대하지 않았어요." 김주만씨가 보험금을 노린 한 남자의 사기극에 관한 기사를 읽고서 떠올린 건 사랑얘기. 다만 애틋한 감정의 주고받음이라기보다는 스스로 파놓은 질퍽한 구덩이에서 허우적대다 결국엔 자멸하는 그런 사랑을, 자신이 살았던 삼양동 시장 한복판에 던져놓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관객은 물론 평단의 관심을 거의 끌지 못했지만, 시나리오의 잠재력
16mm 에로영화도 건질 것은 있다, 시나리오 작가 김주만
-
“자네 다크 시티라고 들어봤나?” 오늘 아침, 편성국장이 기상 리포터 빌을 자기 사무실로 불러들였다. “처음 들어보는데요.” “아마 그럴 거야. 지금까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도시니까. 이 도시에서는 자정만 되면 빌딩들이 모두 사라지고 주민들이 잠에 빠져든다네. 그리고 밤 사이 전혀 다른 건물이 세워지고, 사람들은 새로운 기억을 주입받은 뒤 다음 하루를 살아가게 된다는군.” 빌리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노망이 들었나’ 하는 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밥줄을 위해 참았다. “아무튼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이 도시에서 방송을 진행하게. 매일매일 뒤바뀌는 도시에도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오는가, 어때 낭만적이지 않아?”
빌은 지지리도 재수가 없다고 여겨졌다. ‘남들 다 노는 크리스마스에 출장이라니. 게다가 PD는 앤디라고, 왜 밥맛없게 여자야? 출장길에 재미보기도 글렀잖아.’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다크 시티로 가는 도로 노선은 알려진 바가 없어, 터키인들이 운영하는 장거리버
[이명석의 씨네콜라주] 다크 시티
-
농촌 출신의 세 청년이 무작정 상경했다.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다가 마침내 자리잡은 곳은 서울 변두리, 새로운 개발 지역. 중국음식점, 여관, 이발소에서, 기술이랄 것도 없는 하찮은 일거리로 삶을 유지해야 하는 세 청년은 각기 고향은 다르지만 우연히 객지에서 만나 동병상련의 우정을 나눈다. 그들이 공통으로 소유하고 있는 것은 농촌에서 태어나 농촌에서 자란 우리의 정서와 뚝심이다. 심은 만큼 기르고 가꾼 만큼만 거두는 흙과 농사의 정직함을 조상 대대로의 삶에 이어온 그들이다. 눈속임으로 한탕 잘하면 떼돈 번다는 요사스러운 서울에서 그들은 당연히 시행착오의 혼란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끝내 좌절하지 않고 그들이 지니고 있는 소중한 우정을 조금도 잃지 않는 뚝심의 이야기가 내 영화 <바람불어 좋은 날>의 기둥 줄거리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만 자란 내가 농촌의 세련되지 않은 청년들 이야기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4년 동안의 값진 휴식기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장호 [37] - 한국영화가 담지 못하는 현실, <바람불어 좋은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