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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모범적인 남자 고등학생을 일탈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가장 쉬운 방법은? 미모의 여성을 등장시켜 그동안 억압된 성욕을, 혹은 성에 대한 호기심을 마구 자극하기. <아메리칸 파이> 시리즈를 비롯한 할리우드 청춘물이 즐겨 다루는 소재다. 성에 대한 이미지는 여기저기 널려 있으나 정작 아무것도 ‘경험’해보지 못한, 말로만 ‘섹스’하는 아이들의 이야기. <내겐 너무 아찔한 그녀>는 여기에서 한발 나아가 유치한 성적 욕망과 낭만적 사랑을 결합시키며 섹스코미디의 상상력에 로맨스의 진정성을 부여하려고 시도한다. 게다가 거기에는 포르노 배우와 포르노 사업이 단순히 눈요깃거리가 아니라 중요한, 심지어 교육적인 비중을 차지한다는 ‘신선함(?)’도 있다.
모범생 매튜(에밀 허시)는 명문대학교의 입학 허가를 받아놓고 장학금을 타기 위한 준비에 한창이다. 졸업을 앞둔 동료 학생들의 들뜬 분위기 속에서, 그에게 일탈이란 순간의 몽상에 불과하다. 그러던 어느 날, 매튜 앞에 매혹적
평범한 모범생의 야심찬 성공담, <내겐 너무 아찔한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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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리족 소녀 파이키아(케이샤 캐슬 휴즈)는 두 사람의 죽음과 함께 태어난 아이다. 파이키아를 낳다가 죽은 어머니와 일족의 지도자가 됐어야 할 쌍둥이 오빠. 족장인 할아버지 코로(라위리 파라텐)는 사내아이의 죽음만 애도하면서 갓난 손녀를 돌아보지 않고, 고집스럽게 지도자의 이름 파이키아를 딸에게 준 아버지 포루라니는 슬픔을 달래기 위해 외국을 떠돌아다닌다. 어린아이에게 천형을 짊어지도록 만든 전사(前史)를 짧게 읊어내린 <웨일 라이더>는 순식간에 세월을 뛰어넘어 열두살이 된 파이키아에게로 도약한다. 씩씩하고 사려 깊은 파이키아는 맏아들로 태어난 소년들 중에서 지도자를 뽑으려는 할아버지의 수업에 참여하려 하지만, 여자아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한다. 고래 등에 올라타고 바다를 건너온 조상 파이키아. 코로는 오직 남자만이 그 신성한 이름을 이어받을 수 있다고 믿어왔다. 후계자의 자리를 둘러싼 할아버지와 소녀의 갈등이 폭발로 다가갈 무렵, 바다 멀리에서 고래들이 헤엄쳐온다.
뉴욕에
고래를 타고 꿈을 꾸는 천진난만한 영웅, <웨일 라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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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네트가 별을 덮고, 전자와 빛이 뛰어다녀도 국가나 민족이 사라질 정도로는 정보화되어 있지 않은 근미래. <공각기동대>를 여는 이 한 문장으로 오시이 마모루는 다가올 멋진 신세계를 제시했었다. 그로부터 9년이 지난 지금, 이 문장은 지금의 현실에 대한 예언서처럼 보인다. 언제나 그렇듯이 현실은 상상력의 발전속도를 손쉽게 능가해오지 않았던가.
2032년. 네트의 전뇌공간 속으로 쿠사나기가 사라져버린 지 3년이 지난 어느 날. 인간의 모습을 한 소녀로봇(‘인형’이라 불린다)이 주인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인형들은 “도와줘요”라고 중얼거리며 자살을 감행한다. 고스트(영혼)가 없고 AI(인공지능)만이 탑재된 인형이 ‘자살’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 공안 9과의 바트는 미스터리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수많은 인형들을 만난다. 기이한 종교적 색채를 지닌 축제에서 인간에 의해 불태워지는 인형들, 인간을 초월하기 위해 스스로를 시체로 만들어버린 인형들. 오시이 마모루는 이
수줍은 ‘존재’들의 러브스토리, <이노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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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소년보다 생일이 며칠 빨랐다. 그러니까 소년이 태어난 뒤에 소녀가 이 세상에 없었던 적은 없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소녀가 죽어버리고, 소녀가 없는 세상에서 소년은 17년을 더 살았다. 함께했을 때 그들은 궁금해했었다. 사람이 죽으면 사랑도 죽는 걸까. 이제 30대 중반으로 접어든 소년은 어렴풋이 그 답을 깨우친다. 그리고 붉은 사막과 푸른 하늘, 시간도 문명도 사라진 태초의 진공 같은 ‘세상의 중심’으로, 해묵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떠난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는 새로울 게 없는 영화다. 찬란했던 첫사랑, 연인과의 사별, 남겨진 자의 슬픔을 다룬 전형적인 최루성 멜로드라마. 그런데 이 영화가 올해 일본에서 크게 사고를 쳤다. 원작소설이 30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역대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등극하는가 싶더니 5월에 개봉한 영화는 한술 더 떠 7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롱런했다. “왜 잊게 되는 걸까. 소중한 것들이 많았는데.” 주인공의
아련한 그리움의 서정,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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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씹새끼들아!” 원빈의 첫마디가 거칠게 열린다. 주먹질을 막 마치던 참이다. 눈물 한 방울 똑 떨어뜨릴 것 같던 그의 해맑던 눈이 꼴통의 눈깔로 변신했다. 잘생기고 깡다구로 똘똘 뭉친 고교짱 종현으로 말이다. 이 깡다구에게 연년생 형이 있었으니, 공부 빼면 시체인 성현이다. 입술을 갈라놓는 특수분장을 했지만 신하균은 꺼림칙한 이미지와 여전히 거리가 멀다. 성현은 성격은 천사표에 반성문을 써도 문학적이라고 칭찬받는 우등생이다. 깡다구가 “형제는 용감했다”고 스스로 빈정댈지언정 빈말은 아니다. 형은 전교 석차로, 동생은 싸움 석차로 그 학교를 평정해버렸으니.
문제는 동생이 깡다구가 되고, 형이 천사표 우등생이 된 까닭이다. 갖고 싶었으나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설움이자 믿음이다. 형은 입천장이 벌어져서 태어나는 선천성 기형의 한 종류, 언청이다. 가족사진을 찍어도 끝내 얼굴을 돌려 입술의 흉을 감추고 마는 슬픈 운명이, 노골적인 편애로 억척스럽게 뒷바라지해대는 어머니가 그를 천사표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설움과 믿음, <우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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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 프로그램 한 코너의 이름을 빌린 제목과 코미디언 정준하가 얼굴을 들이미는 포스터 때문에 <노브레인 레이스>는 막가파 영화처럼 비칠지 모른다. 그러나 제리 주커 감독에 녹록지 않은 배우들이 포진해 있는 이 영화는 반듯한 짜임새를 가지고 제대로 웃기는 코디미영화다. 라스베이거스의 한 호텔 카지노에서 슬롯머신을 당기던 이들 가운데 6명이 호텔 사장이 참석하는 파티에 초대된다. 거기서 사장은 사물 보관함 열쇠 6개를 나눠주며 뉴멕시코의 실버시티역 1번 사물함에 현금 200만달러가 든 가방이 있으니 먼저 가서 가지라고 한다. 초대된 이들 가운데 몇은 그 말을 안 믿고, 몇은 “바보 짓 안 하겠다”며 버티다가 실버시티를 향해 사막길을 달려간다.
원제 ‘Rat Race’는 영한사전에 ‘무의미한(극심한) 경쟁’이라고 번역돼 있다. 그 뜻이 돈에 눈이 멀어 미친 듯 달려가는 이들의 경주에 어울리지만, 정작 경주 결과에 돈을 벌고 잃는 이들은 따로 있다. 돈 많고 할 일 없어 내
‘예스 브레인’ 코미디, <노브레인 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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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해변의 카프카>에서 조각가가 왜 그리 잔혹하게 고양이 연쇄 살해에 나서는지 이유가 불분명하다. 짐작건대, 그는 좀체 길들여지지 않는 고양이의 개인주의를 혐오하거나 고양이의 불온한 눈빛에 불길함을 자극받은 건 아닐까. 하지만 고양이와의 대화법을 체득한 나카다가 마주치는 고양이들과 성심성의껏 나누는 대화를 들어보면, 고양이의 내면은 다정다감하고 사랑스럽다. <캣우먼>은 이렇게 전형화됐다고까지 할 수 있는 고양이의 이미지를 캐릭터로 끌어온다. 자신의 소심함에 쩔쩔매던 여성이 고양이의 혼으로 새 생명을 얻는 순간, 그녀는 규범에 속박받지 않는 ‘고양잇과 여성’이 된다. 길들여지지 않은 본능으로 꿈틀대며 날카로운 공격성을 순간적으로 드러낸다. 욕망은 통제될 필요도, 여지도 없다. 수줍은 미소와 너그러움을 여전히 지니고 있어 이따금 두 본성이 대립되지만, 결국 사랑스러운 존재라는 통일성을 갖는다.
남성 영웅 대열에 홀로 선 할리 베리의 <캣우
섹시하고 독립적인 단독자, <캣우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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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제의 오페라로 더 잘 알려진 <카르멘>은 프랑스인 작가이자 고고학자였던 메리메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사랑에 구속되지 않는 팜므파탈 카르멘, 그리고 그녀에 대한 호세의 집요한 사랑과 파멸은 엑조티즘과 맞물리면서 잘 팔리는 이야기로 자리잡았다. 19세기 메리메의 글에 매혹적 소재였던 스페인의 이 ‘비극과 사랑’은 21세기 영화에서 탐스러운 볼거리로 재림한다. 스페인의 메이저 프로덕션이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영화 <카르멘>은 19세기 중반 스페인의 거리를 감각적으로 재현해낸다. 붉은 톤의 강렬한 화면은 사랑의 열정뿐만 아니라 대자연과 고대 유적, 투우, 스페인 미인들을 전시한다.
그리고 이 시선의 중심에 집시여인 카르멘(파즈 베가)의 몸이 있다. 영화는 작가 메리메의 분신일 프로스퍼(제이 베네딕트)에게 들려주는 호세(레오나르도 스바라글리아)의 회고담을 통해 카르멘에게 다가간다. 그곳에서 카르멘의 몸은 호세가 욕망하는 대상이지만 결코 소유할 수 없다. 그렇기 때
자아도취에 빠진 카르멘의 스페인, <카르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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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잘 듣고 예쁜 아내.’ 그건 남자들의 실로 오랜 꿈이다. 시대가 바뀌면서 그들의 꿈은 ‘돈도 잘 버는 말 잘 듣고 예쁜 아내’로 업그레이드된다. 그리하여 등장한 ‘슈퍼우먼 콤플렉스’. 더욱 피로한 인생을 살게 된 건 여자들이요 그 콤플렉스의 수혜자는 남자들이다. 이러한 세태 속에서 다른 모든 조건은 기꺼이 발전시키면서도 오직 ‘말 잘 듣는 것’만은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아내들이 있다. 그러자 잘나가는 아내들에게 언제나 딸려오는 부록, 주눅든 남자들이 큰 맘 먹고 비굴한 혁명을 시작한다. 아이라 레빈의 소설을 영화화한 1975년의 <스텝포드 와이프>는 끔찍했지만, 2004년의 그것은 웃긴다. 공포 대신 코미디를 선택한 시도는 미리 말하자면 싱겁기 그지없는 오락영화로 귀결되었다.
성공가도를 달리던 방송사 사장 조안나 에버트(니콜 키드먼)는 단 한번의 억울한 사고로 해고를 당한다. 부사장이자 조안나의 남편이기도 한 월터(매튜 브로데릭)는 미련없이 사표를 던지고 조안나와 아
주눅 든 남자들에게 선사하는 백일몽, <스텝포드 와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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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혜성같이 등장하여 광고계에서 갈고닦은 화려한 비주얼로 영화계의 ‘때깔’을 바꿔놓았던 일군의 감독들 중 선두주자는 단연 토니 스콧이었다. <탑건>이라든가 <악마의 키스> <폭풍의 질주> <트루 로맨스> <크림슨 타이드> 등으로 명성을 날렸던 토니 스콧은 90년대 중후반에 들어오면서는 방향을 잃은 듯했다. 토니 스콧보다 훨씬 스타일리시하고 야심만만한 신진감독들이 속속 등장했고, 90년대 후반에 내놓았던 <더 팬>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스파이 게임> 등의 액션스릴러들은 여전히 근사한 화면을 보여주지만 그에 걸맞은 내러티브의 개연성과 깊이를 잃은 채 표류하고 말았다. 한마디로 토니 스콧의 위치는 화려했던 과거에 비해 몹시 어정쩡해졌다. 그러던 차에 그가 <미스틱 리버>의 작가 브라이언 헬겔런드와 손잡고 A. J. 퀸넬의 하드보일드한 소설 <맨 온 파이어>를 영화화한다고
피도 눈물도 없는 무자비한 복수극, <맨 온 파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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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스 센스>(1999) 이후 반전(反轉)은 꽤 오랫동안 영화의 트렌드였다. <디 아더스> 같은 비슷한 주제의식을 가진 스릴러부터 충무로 호러와 멜로드라마에 이르기까지 ‘막판 뒤집기’ 기술은 위세를 떨쳤다. 급기야 “이제 반전없는 호러를 보고 싶다”는 푸념까지 나왔다. 그동안 M. 나이트 샤말란은 무엇을 했던가? 웬만하면 우아한 환멸을 표하며 180도 다른 영화를 내놓을 법도 하건만 그는 <언브레이커블>과 <싸인>을 만들었다. 그리고 다시 <빌리지>에 착수했다. 미친 발명가처럼 나사 하나를 비틀면 전체가 변형되는 기계 장치를 연신 고안했다. 물론 “돈이 되니까”라고 일축할 수도 있겠지만, 명예욕을 지닌 감독으로서 샤말란의 태도는 가히 저돌적이다. “반전 유행은 끝났다. 경찰 불러!”라고 외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시선 속에 <빌리지>는 꿋꿋이 만들어졌다.(*주- 이하 기사는 스포일러로 간주될 수 있는 정보를 포함합니다).
‘언브레이커블’ 샤말란 스타일, <빌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