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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득한 과거가 되었을 뿐 사장된 기억을 꺼내 보니 나도 한때는 수면과 식사를 거르고 게임에 몰두하던 때가 있었다. 모니터를 뚫고 들어갈 듯 <스타크래프트>와 세이클럽 맞고에 빠져 지낸 게 내 게임 역사의 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계속해서 누적된 패배와 사이버 세상에서 모은 고액의 고스톱 머니를 탕진한 슬픔 때문에 다시는 게임에 손을 대지 않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게임을 할 때 느끼는 기쁨과 슬픔은 영화를 보며 느끼는 기쁨과 슬픔과 다르기에, 개인적으로는 늘 게임과 영화의 상호 간 구애에 의구심이 있었다. <툼레이더> <레지던트 이블> <언차티드> <앵그리버드 더 무비> 등 게임 원작 영화들이 꾸준히 제작되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텐데 게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인지 ‘왜 굳이’라는 물음만 생길 뿐 마땅한 이유를 찾기는 어려웠다. 최근 역대 게임 원작 영화 흥행 1위를 기록하며 승승장구 중인 애니메이션 <슈퍼 마리
[이주현 편집장] 게임과 영화의 만남, 슈퍼스타와 <씨네21>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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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소희>를 본 관객은 ‘다음에 올 소희’의 삶을 향해 기도했을 것이다. 콜센터 소희를 괴롭힌 자본과 소비자의 갑질이 사라지기를, 다음 소희에게 권리와 노조가 주어지기를 소원했을 것이다. 다음 소희의 일터는 자신의 적성과 전공을 살린 곳이기를, 특성화고가 이를 받쳐주기를 희망했을 것이다. 나의 바람은 조금 더 나아간다. 나는 다음 소희가 본인이 원한다면 부담 없이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고, 그의 직업 탐색이 여유롭기를 바란다.
“우리나라 진학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맹목적으로 대학에 진학한다. 국가적 낭비다.” 지난 3월31일, 국회 인구위기특별위원회에서 한 의원은 이렇게 발언했다. 많이 듣던 말이다. “대학은 공부할 놈만 가자. 대학 안 가도 먹고살 수 있게 해주면 된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이 제 자녀를 ‘공부 안 해도 될 놈’으로 분류하는 경우는 못 본 것 같다. 자기네는 ‘바다를 포기하지 않는 강물’이고, 남의 집은 ‘개천의 가재, 붕어, 개구리’인가.
[김수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다음 소희’는 대학을 안 가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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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진실을 알지 못한 채 시작한다. 매거진은 과거의 영광을 잃은 지 오래고, 시네마는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진실이 그렇게 중요한가. 처음 부재중 번호로 전화가 왔을 때 잡지를 만들겠다는 사람들이 서점에 몰려와 수많은 잡지를 뒤적거리던 중이었다. 서점 주인은 무엇이든 알고 있을 것이라는 크나큰 착각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요즘 어떤 잡지가 잘 팔리는지, 무슨 잡지가 유행인지, 좋아하는 잡지는 무엇인지 등 끝없이 질문을 던지는 중이었다. 사실 잡지 창간을 앞둔 그들에게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빨리 도망치세요”였지만 굳이 내색하지 않았다. 모두가 망해서 사라졌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거기에도 사는 사람이 있다. ‘여기 아직 우리 살아 있어요.’ 이런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지나간 어제와 달라지지 않는 오늘과 이미 정해져버린 미래의 경계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지금 시대에 잡지를 만드는 사람이, 영화를 보는 사람이 있다고
[김민성의 시네마 디스패치] 1. 프롤로그: 쇠락과 사망 섹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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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달력을 들춰본다. 노동절인 5월1일은 월요일, 어린이날인 5월5일은 금요일. 이러면 대체 5월 첫째 주는 어떻게 마음을 다잡고 일해야 하는가. 가만, 5월의 황금연휴를 이제야 눈치챈 건 나뿐인가. 포털 사이트에 ‘5월 황금연휴’를 검색하니 제주행 비행기표가 일찌감치 동났다는 기사가 우수수 뜬다. 놀지 못할 운명을 직감한 내 마음도 우수수 떨어진다. 아니다. 어차피 매년 4월 말 5월 초는 전주국제영화제(이하 전주영화제)와 함께했고, 올해도 이변은 없을 것이다. 긍정 회로를 가동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전주에 가면 좋은 영화와 맛있는 음식과 반가운 사람들이 있다. 콩나물국밥과 모주 한잔, 가맥집에서 청양고추간장마요 소스에 찍어 먹는 황태포는 언제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전주 경기전에서 쉬엄쉬엄 광합성하며 산책하는 것도 좋아한다. 어느새 전주는 여행 로드맵이 자연히 그려지는 친근한 도시 중 하나가 되었다.
무엇보다 올해 전주에서 만날 영화들에 대한 설렘이 크다. 진지하고 아름답
[이주현 편집장] 5월 황금연휴도 영화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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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을 찢어놓는 것은 언제나 행복의 낱말들이다. 사랑, 축하, 벚꽃, 여행 같은 말들. 소박하고 아름다운 말들이 그렇게 나를 낭떠러지로 끌고 가곤 했다. 예를 들면 내가 빌리지도 않은 돈을 갚아야 하던 시절에 그랬다. 한번도 거래한 적 없는 은행에서 걸려온 독촉 전화를 받느라 사무실을 뛰쳐나가던 시절에는 가족에 대해 생각하는 게 두려웠다. 가족이 두려웠다.
그 무렵 어느 날, 친구가 대여섯살 된 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뒷모습을 본 적이 있다. 아무렇지도 않은 그 장면이 눈이 아플 만큼 부러웠다. 다시는 그 길로 다니지 않았다. 나의 좌절과 슬픔이 남의 희망과 기쁨을 해칠 것 같았다. 적어도 나 자신은 해쳤다. 많은 시간이 흘렀고 그럭저럭 이겨냈으며 그보다 더한 일들을 겪기도 했다. 이제는 확실한 행복을 느낄 때도 있지만, 저 아래엔 그때의 서늘함이 남아 있다. 웃을 때 조심하게 된다.
봄은 왜 매번 갑자기 올까. 마음이 아직 겨울에 있는 사람에게 봄은 어려운 계절이다. 밝
[김소영의 디스토피아로부터] 꽃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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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외계인, 아기, 임신, 자신, 복제, 출산, 탈피, 수영장, 반복…
인터넷을 처음 사용할 수 있게 된 10살 무렵부터 나는 종종 위의 키워드들을 나열해 검색했다. 위 키워드들은 텔레비전으로 본 어느 영화 속 한 장면이자 아주 긴 시간 간헐적으로 꿨던 꿈 장면의 요소이다. 중학생 때 수업이 시작하기 전 쉬는 시간에 컴퓨터실로 뛰어가 학교 컴퓨터로, 대학 신입생 때 도서관 컴퓨터로, 늦은 새벽 카페에서 과제를 하다 노트북으로, 지하철을 타고 가며 휴대폰으로 장면의 근체를 찾기 위해 검색했다. 이 미스터리는 장시간에 걸쳐 불현듯 얼굴을 드러내고 검색창에 나를 풍덩 빠뜨렸지만 재능 없는 탐정인 나는 여전히 어떤 영화의 장면인지 알지 못한다.
유치원 등원 중 작은 사고가 난 이후로 어린이 시절은 집에서 홀로 영화를 보며 지냈다. 영화 채널에서 나오는 영화들이었는데 팀 버튼 감독의 영화들, <애들이 줄었어요> 같은 가족 코미디 영화, <죽어야 사는 여자> &
[김세인의 데구루루] 굴러가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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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근영은 별 미동도 없이 정물처럼 앉아 임수정을 기다렸다. <장화, 홍련> 이후 두 사람이 사석에서 따로 만난 적이 없다고 하니 실로 오랜만의 만남인데도 문근영은 들뜬 내색 없이 차분히 ‘언니’를 기다렸다. 거침없이 반가움을 표한 쪽은 오히려 임수정이었다. 초여름 같았던 봄날의 더운 공기를 상쾌하게 가르며 두팔 벌려 문근영과 인사를 나눈 임수정은 곧장 종달새처럼 반가움의 말들을 쏟아냈다. 그런 언니를 문근영은 촉촉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런 자리를 마련해줘서 심장이 콩닥콩닥했어요. 처음엔 ‘무슨 이야기로 시작하지?’라고 생각했는데 만나는 순간 모든 걱정이 사라졌어요.”(임수정) “20년 전 언니랑 지금 언니가 너무 똑같아서 울컥했어요.”(문근영) 문근영의 눈동자에 물기가 고인 순간을 몇번 목격했지만 다행히 이날 두 사람은 내내 웃으며 과거와 현재로의 시간 여행을 왕복했다.
<씨네21>이 창간 28주년을 맞아 반가운 만남을 주선했다. 임수연 기자가 기사에 썼
[이주현 편집장] ‘장화, 홍련’, 20년의 시간을 거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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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에 기고를 하게 되었다는 나의 자랑에 그러던지, 라며 심드렁해하던 친구에게 코너의 이름이 ‘디스토피아로부터’라고 하자 눈을 반짝이던 것이 기억난다. 영화광은 아니지만 디스토피아 장르는 빠지지 않고 챙기는 그에게 중요했던 것은 칼럼의 내용보다 제목이었던 것이다. 왜 그런 영화들을 좋아하냐고 물으니 진지한 얼굴로 “모두 다 함께 망했으면 좋겠어”라는 답이 순식간에 나와서 실소가 나왔다. 하지만 곧 살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공감할 수밖에 없는 대답이란 생각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넷플릭스에 같은 키워드를 검색해보면 수많은 영화들이 우르르 쏟아지는 것을 보아 친구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상당한 듯하니 앞으로도 이 시장은 굳건할 것임을 짐작게 해준다. 섬네일을 하나씩 들여다보면 우리가 상상한 암울한 미래의 원인은 제각기 다르다. <투모로우>처럼 기상이변으로 빙하로 뒤덮일 수도, <블랙 미러>처럼 초연결 사회에서 각자의 정보가 기록되고 감시
[송길영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미래는 디스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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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스럽지만 한번쯤은 내 소설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내가 쓴 장편소설 <그날, 그곳에서>는 원전 사고로 엄마를 잃은 자매가 엄마를 되살리기 위해 과거로 시간 여행을 반복하는 이야기다. 이야기 속 주인공인 해미와 다미는 일종의 웜홀을 통과해 사고 현장으로 되돌아간다. 하지만 엄마를 구출하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고, 자매는 몇번이고 같은 재난의 순간을 반복해 경험하게 된다.
처음에 이 이야기는 단편으로 쓰였다. 그 버전에서 이 소설은 ‘구조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구조를 방해하는 이야기’였다. 더 큰 재난을 막기 위해 누군가의 생존을 가로막고 희생을 강요하는 이야기. 억지로 완성은 했지만 쓰는 내내 어딘가 어색하고 맞지 않음을 느꼈다.
장편으로 소설을 확장하며 나는 <그날, 그곳에서>를 ‘구조하는 이야기’로 고쳐 썼다. 주인공을 자매로 바꾸고, 구조 대상을 엄마로 설정했다. 그러자 당황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이 소설이 2014년 4월의 어떤 사건을 아주 강
[이경희의 오늘은 SF] SF로 세계를 치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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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블루베리가 들어간 견과류를 먹으며 눈 건강과 뇌 건강을 챙긴다. 홍삼도 한포 뜯는다. 이주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체력 관리가 필요하다. <씨네21>은 올해도 창간 28주년을 기념해 평소보다 두툼하고 특별한 잡지를 선보인다. 20세기의 기운을 가득 담은 촌스럽기도 멋스럽기도 한 이번호의 제호는 <씨네21>의 시작을 알린 첫 번째 제호 디자인이다. ‘첫’ 제호 디자인을 특별히 꺼내본 이유는 역시나 초심 때문이다. <씨네21>의 초심을 알기 위해 1호를 찾아 읽어본다. 잡지의 마지막 쪽에 실린 ‘편집자에게 독자에게’ 지면의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씨네21이라는 제호가 누구든 영화에 관한 정보나 비평을 말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그로부터 28년이 흐르는 사이 <씨네21>은 ‘영화에 관한 정보나 비평을 말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 되었나? 그보다도 요즘 사람들은 영화에서 무엇을 기대하
[이주현 편집장] 다시 초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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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일본의 로봇공학자 모리 마사히로는 인공물이 사람을 닮을수록 호감도가 증가하다가 어느 순간 오히려 사람을 닮은 모습이 불쾌함을 불러일으키게 된다는 가설을 내놓았다. X축에 표시된 인간과의 유사성이 50%를 넘어가면서 호감도를 나타내는 Y값이 갑자기 음(-)의 영역, 즉 비호감의 영역으로 떨어지며 그래프는 움푹 파인 골짜기 같은 모양이 된다. 어설프게 인간을 닮아서 오히려 기괴해 보이는 로봇이나 사이보그를 두고 ‘불쾌한 골짜기’에 빠졌다는 표현을 쓰는 이유이다. 예를 들어 <알리타: 배틀 엔젤>에서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들어진 알리타의 과하게 큰 눈은 ‘예쁘장한 소녀’ 사이보그를 불쾌한 골짜기로 미끄러지게 만든다.
‘대유쾌 마운틴’은 이 불쾌한 골짜기를 지나 인간과의 유사성이 100%에 근접하여 호감도가 다시 급격히 상승하는 부분을 가리키는 인터넷 밈이다. 나는 최근에야 대유쾌 마운틴이라는 용어를 알게 되었다. 원하는 외모와 복장, 포즈 등을 텍스트로 주면 그에 딱
[임소연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불쾌한 골짜기 너머 ‘대불쾌 심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