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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대중교통을 떠올리면 기억나는 사람들이 있다. 전철에는 흘러간 노래의 모창 CD나 온몸으로 매달려도 끊어지지 않는 허리띠, 손전등이 합쳐진 귀이개와 같이 잡다한 물건들을 파는 행상이 있었다. 고속버스에는 휴게소에 정차하면 험상궂은 사람들이 올라와 재빨리 경품을 추첨하고 행운(?)의 당첨자에게 제세공과금이라며 물건을 강매했다.
시내버스에는 “목마른 사슴이 우물을 찾듯~” 구성지게 사연을 읊으며 도움을 청하던 청소년들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삐뚤빼뚤 손으로 쓴 자신의 절절한 사정이 적힌 쪽지를 앉은 승객의 무릎 위마다 올려놓던 손은 곤궁함으로 거칠었다. 돌아보면 그 종이 위의 삶은 한없이 불행했다. 어려운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적 부모를 잃고 혈혈단신 도시로 올라와 배운 것 없이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는 올리버 트위스트 같은 이야기는 소설과 닮았지만 실재했기에 더욱 고단해 보였다. 화불단행(禍不單行), 화는 홀로 오지 않는다는 말처럼 남들에겐 당연한 것처럼 보이는 관계와 자산이
[송길영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무기력에 맞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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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공연을 준비하느라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다. 신곡도 준비하고 있고 여러 가지 볼거리들도 준비하고 있지만, 역시나 가장 기대가 되는 것은 기념품이다. 이런 말을 하면 좀 이상하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나는 공연 기념품에 정말로 진심이다. 우리 디자이너들도 진심이다. 멤버들 역시 진심인 것 같고 팬분들도 진심으로 기다리시는 것 같다.
어느 정도로 진지하게 기념품을 대하는지는 우리 멤버들의 생활을 돌아보면 알 수 있는데, 단순히 밴드의 이름만 새겨 가격에 비해 퀄리티가 아쉬운 제품들을 다종 생산하기보다는 검증된 물건들을 참신하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아름다운 미적 감각으로 제작해 직접 사용하는 데 있어서는 그 어떤 밴드보다 진심이라고 자부할 수 있다.
멤버들은 1년 내내 적어도 1/3의 시간을 밴드 티셔츠를 착용하고 보내며(나는 거의 연간 1/2 정도 밴드 티셔츠를 착용한다). 집에는 밴드 로고가 새겨진 수건이 있다. 물을 마실 때는 밴드 유리컵을 사용하며, 공연 현수막을 재활용해
[윤덕원의 노래가 끝났지만] 하나 더 살걸 그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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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탐정이란 뭐 하는 사람들인가? 현실 속 실제 직업에 대한 궁금증은 물론 아니다. 장르 세상 속에서 탐정이라 불리는 사람들, 혹은 그런 역할을 수행한다고 일컬어지는 캐릭터들에 대한 고민이다. 지금부터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뭘 알려드리고자 함이 아니라, 몰라서 늘어놓는 궁금증의 나열에 가깝다. 혹은 푸념이거나.
좁게 보면 탐정은 미스터리 소설의 주인공을 가리키는 호칭처럼 느껴진다. 그의 공식적인 직업명이 탐정일 수도 있다. 혹은 아닐 수도 있는데, 이야기 소비자들은 편의상 그들을 대충 뭉뚱그려 탐정이라 부르곤 한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은가? 구겨진 담배를 물고 회계사 남편의 지저분한 불륜 증거를 수집하는 사람과 폭풍우 치는 섬에 갇혀 몇 남지도 않은 생존자들 앞에서 인디언 인형의 비밀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는 사람이 어떻게 같은 직업일 수가 있느냔 말이다.
지난주 곽재식 작가님께서 <매닉스>를 소개해주셨는데, 그 작품을 직접 보진 못했으나 요약된 줄거리를 읽다
[이경희의 오늘은 SF] 해결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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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 달력을 새 달력으로 교체할 때, 혹은 새 다이어리에 첫 일정을 기입할 때 해가 바뀌었음을 실감한다. 아직은 낯선 2023이라는 숫자를 눈에 담으며 새 달력을 펼쳐본다. 두눈을 크게 뜨고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은 2023년의 공휴일이다. 새해의 첫날은 일요일이지만 현충일, 광복절, 개천절이 모두 화요일이다. 야호! 마침 정부가 2023년부터 부처님오신날과 성탄절을 대체공휴일로 지정하면서 토요일인 석가탄신일도 인자하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보낼 수 있게 됐다. 또한 2023년 6월부터 만 나이가 시행된다니 어쩐지 새해가 되어도 나이가 동결되는 기분이다. 물론 변하는 건 공식적 나이일 뿐 마음의 나이와 몸의 나이간 격차는 점점 커질 일만 남았지만. 그리고 새해에는 식품의 유통기한이 소비기한으로 대체되고(<씨네21>에도 소비기한이 있다면 만년으로 해주시고), 최저시급도 5% 인상돼 처음으로 주 40시간 근로 시 월급이 200만원을 넘게 된다고 한다(우리의 연봉도 계속 오르기를).
[이주현 편집장] 2023년, 한국영화계의 밝은 미래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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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펑크 SF가 유행한 후부터 전자부품과 인공지능이 도시를 뒤덮고 있는 이야기에 훨씬 더 친숙해진 느낌이다. 그렇지만 뛰어난 컴퓨터를 소재로 삼고 있는 SF로 범위를 줄여놓으면 그런 소재가 인기를 끈 것은 사이버펑크 자체보다는 한참 더 오래되었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대표 SF 단편으로 자주 언급되는 <최후의 질문>이 나온 것은 1950년대다. 실험적인 디지털 컴퓨터가 처음 제품으로 나와 연구소에 팔리기 시작할 때, 벌써 컴퓨터를 다룬 SF가 인기를 끌었다.
오늘 소개할 <매닉스>(Mannix)는 1960년대 후반 제작되어 한국에서도 방영된 적 있는 미국 TV시리즈다. 내용은 그 무렵 인기를 불러모은 구식 제임스 본드 영화를 좀더 진지한 분위기로 바꾼 뒤 TV에서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하면 어울릴 것이다. 그래도 매주 한번씩 지구를 위기에서 구하기는 쉽지 않을 테니 주인공의 직업이 사립탐정으로 바뀌기는 했다. 그래서 매닉스는 첩보 사건이 아니라 보통 범죄를 해
[곽재식의 오늘은 SF] 매끄러운 매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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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영화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나타나지요. 집중력 있고 프로페셔널한 태도로 항상 모든 영화를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해요. 매우 따뜻하고 순수한 영화 잡지. 앞으로도 활동할 때마다 꼭 만나게 되겠죠.” <씨네21> 기자 및 평론가들의 압도적인 지지로 영화 부문 ‘올해의 여자배우’에 선정된 <헤어질 결심>의 탕웨이가 전해온 감동적인 인사말이다. 탕웨이의 깊고 진실하면서도 개구진 눈빛, 자유로운 생각과 따스한 목소리가 자동 연상되는 애정의 인사를 받고 나니 지면을 빌려 이 말에 꼭 화답하고 싶어졌다. “그럼요, <씨네21>은 앞으로도 당신을 지켜보고 응원할 거예요. 앞으로도 영화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출몰할게요. 그러니 영화를 향한 따뜻하고 순수한 마음만 챙겨서, 우리가 사랑하는 영화에 대해 언제고 편안히 이야기 나눠요.”
탕웨이는 <헤어질 결심>의 서래를 통해 배우의 오롯한 존재감이 범상치 않은 캐릭터의 개성과
[이주현 편집장] 어디든, 영화가 있는 곳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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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는 서울에 살고만 있어도 성공한 시대가 될 거야.” 90년대 후반, 친구들하고 나눴던 대화 중에 들은 얘기다. 그 시절 이공대생들은 첫 직장이 지방인 경우가 많았고, 상대가 포함된 문과 계열은 주로 서울이 첫 직장이었다. 서울에 있는 대학을 졸업한 우리는 그렇게 사소한 차이로 직장의 위치가 갈렸고, 지방으로 발령받은 친구들은 서울에 남은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그러면서 웃기는 했어도 이렇게까지 서울만 남은 공화국의 모습으로 한국이 갈 줄은 아무도 몰랐다.
노무현 정권 때 엄청나게 많은 학교가 문을 닫았고, 폐교를 사들여서 뭔가 행사를 하는 게 유행했다. 그때 우리가 잘못한 거라고 생각한다. 싼값에 좋은 건물을 샀다고 좋아할 게 아니라 어떻게든 학교가 문을 닫지 않게 사회적으로 버텼어야 했다. 초등학교가 없어진 곳에는 젊은 부부가 살 수가 없다. 저출생과 탈지방이 만나면서 초등학교부터 시작한 학교 붕괴가 이제 대학까지 올라왔다.
자본주의는 자본의 집중을 만드는 경향이 있지
[우석훈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모두가 서울로 떠나고 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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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이승기씨가 데뷔 이후로 음원 수익을 한푼도 정산받지 못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톱스타로 오랜 시간 성과를 내왔음에도 응당 받아야 할 인세를 받지 못한 것도 당황스러운데, 그것이 자신이 부족해서라고 알고 있었다는 점이 너무 안타까웠다. 하물며 그 정도 되는 사람도 이런 일을 겪는데 실제로 수익이 크게 발생하지 않은 경우는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보면 인디음악은 원래 돈이 안되니까 하고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저런 이유로 애초에 제대로 정산을 받아본 적이 없는 경우도 허다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액수를 떠나 스스로에 대한 판단도 흐려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비교적 내 창작물에 대한 대가를 정당하게 받아온 축에 속한다. 물론 더 적게 평가받고 인정받지 못한 적도 있었겠지만, 대부분의 작업물을 직접 제작하고 관리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초기 작업 중 일부에 대해서는 특별한 계약이나 합의가 없었던 적도 있고 그 행방을 모르는 것도 있다. 그러나 본격적
[윤덕원의 노래가 끝났지만] 인세를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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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한국에서 사이버펑크 전문(?) 작가로 활동 중이어서인지 가끔 사이버펑크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SF의 정의가 무엇이냐는 질문만큼이나 답하기 어려운 주제인데, 내가 주로 답변하는 방식은 이렇다. 사이버펑크(Cyberpunk)는 ‘사이버펑크적인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활극이다. 혹은 가까운 미래의 암울한 첨단 기술이 잔뜩 등장하는 ‘펑크한 장르’다. 하하, 물은 축축하고 고담시는 고담에 있다.
모호하게 설명할 수밖에 없는 사정을 부디 이해해주시길. 사이버펑크를 접한 적 없는 사람에게 사이버펑크를 설명하는 건 마치 코끼리를 본 적 없는 사람에게 코끼리를 설명하는 일과 같다는 말이다. 사이버펑크에 대해 지금 당장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싶다면 그냥 윌리엄 깁슨의 소설 <뉴로맨서>를 읽으시길. 나는 가끔 이 서브 장르가 그저 <뉴로맨서>라는 왕릉의 부장품을 도굴하는 작업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물론 미학적으로는 <블레이드 러너>와
[이경희의 오늘은 SF] 망한 사이버펑크 세계에서 투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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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한해를 보낸 것 같은 착잡한 마음과 특별한 계획 없이 한해를 맞이할 때의 조급한 마음이 어지러이 교차하는 시기다. 이맘때 직업적으로 하게 되는 일 중엔 올해 최고의 영화와 시리즈를 꼽아보는 결산이 있다. 연말 결산은 아득한 기억을 구체적 작품으로 소환하는 일인 동시에 개별의 나무가 아닌 숲의 형상을 더듬어보는 작업이다. 아무튼 올해도 어김없이 결산의 시기가 돌아왔다. 이번주엔 영화 결산에 앞서 시리즈 결산을 먼저 준비했다. 놓친 작품들을 복습하느라 몸과 마음은 분주했지만, 한해 동안 화제를 모았거나 사랑받은 시리즈들을 쭉 정리하다보니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도 오늘과 다를 바 없는 시간들이 이 작품들로 인해 조금이나마 위로받았구나 싶다. 피곤한 노동의 굴레에서 우리를 잠시나마 해방시켜준 작품들에 새삼 고마움을 전한다.
올해 시리즈의 트렌드 중 하나는 법정물의 유행이었다. ‘2022 드라마의 경향과 트렌드’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듯 그 어느 때보다도 검사와 변
[이주현 편집장] 이 시리즈들 덕에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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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웃어볼까요, 는 내가 일을 시작한 뒤로 가장 많이 들은 말 중 하나다. 주로 인터뷰를 하러 갔을 때 사진기자나 포토그래퍼가 하는 말로, 저 뒤에 이어지는 말로는 계속 웃어볼게요, 조금만 더 웃어볼게요, 자연스럽게 웃어볼게요 등이 있다. 처음 몇년은 물색없이 웃다가 언젠가부터는 웃는 사진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미리 말씀드린다. 그래도 지면에 사진을 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왕이면 웃는 사진이 좋기 때문에 매번 같은 주문을 받게 된다. 그런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도 아니고, 지면으로 나를 처음 만날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겨 나쁠 것 없으니 여전히 웃는다.
웃음에는 죄가 없다. 문제는 웃는 사람을 우습게 보는 시선이다. 웃으면 복이 온다는데 가끔 그 복을 뚫고 예의 없는 사람들이 시비를 걸거나, 본인도 모르게 사람을 쉽게 본다. 젊은 여자의 경우 이런 난처함은 배가된다. 젊은 여자가 웃으면 이성적 호감이 있는 줄 안다. 젊은 여자가 웃으면 전문성보다는 인간성을 본다. 워낙
[김겨울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웃을 수 있을 때까지는 웃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