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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트루 라이즈, ‘비밀의 언덕’

이 영화를 으레 거짓말하게 마련인 어린이의 성장담으로만 이야기한다면 설명이 부족할 것이다. 생각 많은 여자아이의 마음 깊은 곳을 살핀 작품이라 말하고 나서도, 이 영화를 보고 나온 당신에겐 할 이야기가 넘치도록 남아 있을 것이다. <비밀의 언덕>은 인간 사회의 아주 넓은 땅에 창피함과 자랑스러움, 숨김과 드러냄, 거짓말과 참말 사이의 경계가 자리한다는 점을 짚는 영화다. 그러고는 그곳에 처한 인물들을 꼬옥 끌어안는다. 우리는 저 어정쩡한 경계에서 어느 쪽으로든 즉시 결정하고 다음 단계의 의사소통을 향해 발을 내딛어야만 하는 사회적 동물이다. 그때의 즉흥적인 선택이 얼마나 적절했는지 우리 대부분은 알지 못한다. 그렇게 충분히 아름다웠을 인생의 소중한 순간들 역시 지나치곤 한다. 영화는 10대 초반의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도, 나이와 성별을 불문한 우리의 평소 언행 중 대개의 경우가 눈치와 염치, 수치 등등이 머릿속에 오가는 가운데 자동기술적으로 행해진다는 점을 꼼꼼히 탐구한다. 그래서 소녀가 주인공인 국내 수작 가운데 김보라 감독의 <벌새>에서 당시의 우리를 보았고,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에서 과거의 자신을 본 관객은, 이지은 감독의 <비밀의 언덕>에 이르러 지금의 나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일까 상황일까

영화가 담는 시간은 명은이(문승아)가 초등학교 5학년을 시작한 1996년이다. 화면과 소리가 하도 예민해 관객을 애타게 하는 첫 장면에서, 명은이가 고심한 이유는 학기 초 가정환경조사 면담을 교실에서는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시장에서 젓갈 장사를 하는 부모의 직업을 친구들이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 담을 수 있는 정성을 죄다 담은 선물과 함께 ‘민원 편지’를 꼭꼭 눌러 썼다. 하지만 학교에 지각한 담임 김애란 선생님(임선우)은 편지를 볼 겨를이 없었고 면담은 반 친구들이 듣는 교실에서 이뤄졌다. 지각만 하지 않았더라면 극 중 명은이를 배려하는 선생님의 태도로 미뤄볼 때 면담 장소를 바꿨거나 원치 않는 질문은 건너뛰었을 수 있었다. 아빠가 종이 만드는 회사에 다닌다고 둘러댈 때, 책상 위에 놓인 흰 종이 뭉치를 클로즈업한 카메라는 명은의 거짓말이 계획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무엇이든 써질 것을 기다리고 있는 하얗게 빈 종이. “하얀 종이도 만들고 색종이도 만들고 노트나 책 종이도 만들고….” 이렇게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는 일 역시 그날 선생님의 지각과 때마침 눈에 띈 종이 뭉치 같은 것들을 따라 달려오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비밀의 언덕>의 거짓들은 만든다기보다 만들어진다.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우리가 벌이는 일들 중 대부분의 경우를 이끄는 건, 사람보다 상황이다. 인간은 상황에 맞게 새로운 걸 지어내는 존재다. 옷을 짓고 밥을 짓고 집을 짓고 말과 글을 짓고 죄도 짓는다. 사람이 짓는 것 중에는 거짓말도 있다. 사람이 사회적 존재인 이유 중 하나로 거짓말을 빼놓을 수 없다는 얘기다. 지난해 발표된 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60%는 10분에 한 차례 이상 거짓말을 하지 않고는 적절한 대화를 이어갈 수 없었고, 조사 대상 성인들은 하루 평균 4번의 명백한 거짓말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출처: onepoll.us). 대다수는 이걸 기억도 못한다. 용의주도한 계획이 아니라 상황에 이끌린 까닭이다. 이 영화의 거짓말들 역시 한 어린이의 성장통을 그리기 위한 수단이라기보다 성장하는 인간에게 주어지는 기본값으로 제시되고 있다고 보는 편이 적절할 것이다.

거짓계와 솔직계

<비밀의 언덕>에서 필요한 거짓말들을 가장 잘해내는 인물, 교장 선생님(김승욱)을 보자. 담임의 지각 출근 전 공백을 메워주던 그는 헐레벌떡 들어온 담임에게 짐짓 묻는다. “오는 길에 버스 고장났다면서 괜찮아요?”(젊은 담임은 교장의 원숙한 거짓말을 눈치채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전학 온 혜진·하얀 자매의 속사정을 숨기기로 한 교장은 다듬어진 거짓말로 학교를 순탄하게 이끈다. 극 종반 지자체 글짓기대회 최우수상 역시 명은이의 심정을 깊이 헤아린 교장이 시청에다 적당한 거짓말을 둘러대 취소시켰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미래 세대의 희망사항 같은 어른으로서 교장 캐릭터는 이처럼 성숙한 거짓을 구사함으로써, 자라나는 명은이의 설익은 거짓말들을 껴안아주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그런가 하면 제자의 마음을 충분히 살필 줄 아는 젊은 담임은 명은이가 내놓은 학급 운영 아이디어를 자신의 것이라고 말하는, 아직 어설픈 거짓말쟁이이기도 하다. 지각한 담임이 복사하러 자리를 비웠다고 말하는 등 명은이도 타인을 위한 거짓말을 시작한 나이다. 담임이 지각을 밥 먹듯 하는 이유도, 서점에서 만난 세련된 친구 엄마가 들고 있는 책이 <우울증 인지행동 치료>인 사연도 영화는 설명하지 않지만, 우리에겐 각자 숨길 거리가 있고 드러낼 거리도 있는 법이다. 담임이 흐뭇하게 바라보는 교문 앞 글짓기대회 수상 플래카드에는 지도교사 김애란의 이름이 또렷하고, 친구 엄마에겐 회장으로 선출된 아들이 있다. 영화는 이처럼 촘촘한 주변 인물 정보를 명은이가 아는 듯 모르는 듯 배치함으로써 명은이의 부끄러움과 자랑스러움 또한 어린이만의 것이 아니라는 점에 힘을 준다. 뿌듯함과 창피함, 그리고 그 경계를 이해한 프로페셔널 배우 문승아의 눈빛은 올해 한국영화의 가장 빛나는 장면 중 하나가 될 것은 물론이다. 명은이가 거짓 아빠를 만들기 위해 인터뷰한 회사원 아저씨가 “뿌듯할 때”를 얘기하다 “좀더 쉽게 설명해야 되지?”라고 묻자 명은이는 시원스레 답한다. “괜찮아요. 이해했어요.”

명은이에게 사회라는 우주의 거의 전부인 학교를 거칠게 구분해 ‘거짓계(界)’라 한다면 가정은 ‘솔직계’에 해당할 것이다. 엄마, 아빠가 가게 문을 닫고 저녁 외식을 하려면 일러야 밤 9시, 집에서 대게찜이라도 해먹으려면 그보다 1시간은 더 지나야 한다. 종일 장사에 지친 엄마가 밥상머리에서 “너희 아빠는”으로 시작하는 말의 대부분은 비난과 푸념이다. 늦게 일어나 늦게 나가는 아빠의 일상 대부분은 가게 한복판에 누워 있는 일이다. 이들에게 체면치레나 숨김이란 없다. 명은이네 엄마와 아빠는 올해 강력한 각본상 후보가 될 이 영화의 정교한 시나리오 안에서 단 한마디의 거짓말도 하지 않는다. 명은이의 오빠가 학교에서 싸우고 돌아와 거짓 핑계를 대는 대목은 있다. 오빠는 동생과 달리 부모의 직업을 숨기지 않다가 친구와 다퉜다는 점에서 그 역시 거짓계 바깥의 인물로 역할에 충실한 경우다. 반면 일정한 직업 없이 건설 현장에 나가 일하는 외삼촌은 명은이를 만나러 갈 때 회사원인 양 정장에 넥타이를 매고 서류가방에 쌓인 먼지를 턴다. 거짓은 때로 뭔가를 덧대는 게 아니라 털어내는 일이라는 것처럼. 솔직계가 창피한 명은이는 외삼촌네로 가출을 감행함으로써 거짓계에 편입하고자 애쓴다.

명은이가 거짓계를 향해 집을 나간 뒤 이어지는 대목은 낯설게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다. 가장 강력한 솔직계의 총아라 할 수 있는 혜진·하얀 자매와 자연스레 친해지면서다. 돈가스 집과 놀이공원으로 이어지는 몽타주 시퀀스에서 우리의 가슴이 뭉클해지는 이유가, 잘 어울리지 못할 것 같은 어린이들이 귀엽고 순수하게 가까워지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자랑스럽지 못한 환경에서 조숙한 명은이가 자신과는 비교하기 어려운 만큼 한참을 웃자라버린 전학생 자매와 만나 그간 지향해온 세계관의 충돌을 경험하는 감정이 전해지는 까닭이다. 자매로부터 솔직계의 작문 비법을 전수받은 명은이는 이로써 또 한 계단 성장할 디딤돌에 올라선다. 오랜 세월 펜을 쥐었을 때 검지에 생기는 굳은살처럼, 우리는 명은이가 적당히 덜 예민한 감각으로 살아갈 힘을 얻은 모습에 조금은 안도할 수 있게 된다. 명은이가 굳은살을 만지며 말한다. “아프지는 않아. 그냥 좀 못생겼을 뿐이지.” 대개 거짓말은 예민함에서, 있는 그대로 던지는 말은 무던함에서 나오지 않던가.

사라지기에 남아 있는 것들

이를 통과한 영화와 관객은 거짓계와 솔직계 어느 한쪽만을 올바른 곳이라 주장하지 않는다. 이들이 뒤섞여 있는 현실을 균형감 있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정말 중요한 건 솔직한 것보다 상대방을 헤아리는 마음”이라는 선생님의 다독임과 “고마움을 잊지 않는 최고의 방법은 숨기지 않는 것”이라는 혜진의 글이 서로 반대말이 아님을 함께 알아차리는 것이다. 혜진·하얀 자매는 가족과 출생의 비밀을 솔직하게 공개해 글짓기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명은이는 가족의 숨기고 싶은 모습을 있는 그대로 써 최우수상을 받은 다음, 수상을 포기하면서 숨기고자 하는 것을 끝내 지켰다. 거짓이 참을 만난 다음 제3의 영토로 나아갔다. 이 층위에서 <비밀의 언덕>을 바라보자면, 성실한 자료 조사와 사전 준비로 과제에 대처하는 인물이 직관으로 대응하는 친구들을 만난 다음 자신만의 계(界)를 개척하는 이야기가 된다. 솔직하지 않은 원고에서 나온 장려상 상장을 가지고 명은이는 솔직계의 고향인 엄마, 아빠에게 뛰어간다. 여전히 가게를 지키고 있는 엄마와 아빠는 이전의 그들이 아니다. 그들이 변해서가 아니라 명은이가 성장했기 때문이다. <비밀의 언덕>이 이처럼 빼어난 결말부로 달려가기까지는, 상충하는 것들 사이에서 유지하기 어려운 균형 감각을 지켜낸 공이 클 것이다.

“저마다의 일생에는, 특히 그 일생이 동터 오르는 여명기에는 모든 것을 결정짓는 한순간이 있다. 그 순간을 다시 찾아내는 것은 어렵다. 그것은 다른 수많은 순간들의 퇴적 속에 깊이 묻혀 있다. 다른 순간들은 그 위로 헤아릴 수 없이 지나갔지만 섬뜩할 만큼 자취도 없다.” 카뮈의 스승으로 유명한 철학자 장 그르니에가 에세이 <섬>의 서두에 쓴 말이다. 학년 초 하얗게 빈 종이에서 시작한 명은이의 거짓말은 종반부에 이르러 빼곡한 원고지에 쓰인 참말로 옮겨졌다. 명은이가 언덕에 고이 묻은 원고는 누구에게도 읽히지 않은 채 흙과 빗물과 미생물 속에서 자취를 감출 것이다. 그곳은 그녀가 여러 계를 돌아 개척한 조그만 세계이며, 이 영화의 제목이 된다. 6학년에 올라간 영화의 마지막 장면. 솔직하게 쓴 가정환경조사서를 뒤집으니 다시 하얗게 빈 종이가 나온다. 새 담임 선생님은 “각자 자기 자신에 대해 자유롭게 써보는 거야”라고 주문한다. 잔뜩 신이 나 빈 종이를 채워가는 명은이의 얼굴. 이를 로앵글로 비춰 종이가 아닌 얼굴에 집중하는 카메라. 설렘과 기대로 가득한 그녀의 눈빛에 마음을 빼앗기며 우리는 생각한다. 원고는 땅에 묻혔고 숱한 퇴적 속에 아름다운 순간들은 형체를 잃을 테지만, 명은이는 그렇게 자신의 세계를 한 걸음 한 걸음 넓혀갈 것이다. 잘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어 종종 슬퍼했던 그녀가 지금처럼 신이 나서 앞으로의 삶을 채워갔으면 좋겠다고, 우리의 응원에는 담을 수 있는 진심이 죄다 담기게 된다. 내가 <비밀의 언덕>을 세 차례 보면서도 이 장면에서 어김없이 눈물을 훔친 건 그래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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