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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숙의 장르의 감정] 일의 고통과 고통, <더 베어>와 자기 파괴적 열정으로서의 일
이연숙(리타) 2024-08-21

<더 베어>

우리는 일을 그만둘 수가 없다. 단지 생계 때문만은 아니다. 일이 우리를 만성피로와 수면 부족에 시달리게 하고 공황장애와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불러일으키고 심지어 일을 그만두느니 삶을 그만두는 게 빠를 것 같다고 생각하게 할지라도, 우리는 일을 도무지 그만둘 수가 없다. 왜일까? 우리가 일을 너무 ‘사랑’해서일까? 아니면 우리가 일이 삶을 완전히 망치고 부숴주기를, 천천히 물어뜯어 숨통을 끊어주기를 마음속 깊은 곳에서 갈망하고 있는 마조히스트이기 때문일까? 2022년 6월 훌루(한국에서는 디즈니+)를 통해 첫 시즌, 그리고 마찬가지로 올해 6월 세 번째 시즌이 공개된 드라마 <더 베어>는 주인공 카르멘(‘카미’) 베어제토를 통해 우리가 일과 맺고 있는 애증 병존의 교착 관계를 거울처럼 보여준다. 이탈리아계 이민자 집안 출신인 카미는 마약중독자였던 형의 자살 이후 이탈리안 비프 샌드위치를 주 종목으로 하는 형의 가게 ‘더 비프’를 운영하기 위해 고향 시카고로 돌아온 실력 있는 요리사다. 카미는 요리를 좋아하고 잘하지만, 그건 그에게 ‘건강한’ 일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전 직장의 가학적 사수가 행한 ‘교육적’ 폭력으로 인한 트라우마, 마찬가지로 요리사였던 형의 자살로 인한 죄책감과 분노가 요리라는 일을 매개로 계속해서 반복 재생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은 카미에게 고통을, 혹은 고통이 그 자리에 여전히 있다는 기쁨을 준다. 그는 세 시즌에 걸쳐 잠결에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르고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헌신적인 ‘더 베어’의 셰프들에게 미친 폭군처럼 군다. 사태는 잠시 나아졌다 곧 이전보다 더 나빠진다. 하지만 어쩐지 그는 일로부터 휴식을 취하거나 혹은 일을 그만두는 결단을 고려하는 대신에 마치 결정적 자멸의 순간을 기다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일 속으로 더 깊이 잠수하기를 택한다. 만약 그걸 주체적인 의미에서 ‘택했다’고 간주할 수 있다면 말이다.

<우린폭망했다>

<더 베어>는 이처럼 유달리 높은 야심(‘미슐랭 별 세개 따기’) 때문에 자신을 필요 이상으로 혹사시키는 젊고 재능 있는 일중독자 카미가 어떻게 계속해서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나쁜’ 선택만 하는지를 보여주는 프롤레타리아트적 정신병리의 드라마다. 나는 여기서 ‘프롤레타리아트적’이라는 단어를 일종의 노예적인 상태, 주어진 선택지를 억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수동적 상태를 가리키기 위한 비유로 사용했다. 한편으로 이런 상태는 <미안해요, 리키>(켄 로치, 2019)와 같은 비판적인 리얼리즘 영화에서 자주 발견된다. 이 영화에서 택배 노동자인 주인공은 동네 좀도둑들에게 진탕 맞아 여기저기 붓고 부러진 피투성이의 몸을 이끌고, 분실 택배를 변상할 돈을 벌기 위해 눈물 바람으로 그를 말리는 가족들을 물리치고 새벽 노동을 나선다. 그는 어쩌면 그를 막아서는 아들의 말처럼 이번에야말로 일하다 ‘죽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남은 다른 선택(‘대안’)이 없다고 믿는다. <풀타임>(에리크 그라벨, 2021) 역시 파리 교외에서 두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이자 경력 단절 여성인 호텔 노동자를 주인공 삼아 말 그대로 숨이 턱턱 막히는 일주일을 다루는, 한 블로거에 따르면 이른바 일상 스릴러 영화다. 매일 넋을 쏙 빼놓는 미친 아수라장 같은 길고 긴 출퇴근 시간을 묵묵히 견뎌온 그는 ‘더 나은 삶’을 위해 이직에 도전하고 결국 성공하지만, 이는 어쩌면 그의 출퇴근 시간을 더 연장시킬 결정일지도 모른다.

이와 같은 현실 고발(!) 영화들이 현재를 ‘더 나은 삶’이라는 미래를 위한 ‘담보’로 그린다면, 마찬가지로 내가 지금부터 창업 실패 장르라고 명명할 일군의 드라마들 역시 현재를 무한한 가능성으로 개방될 미래를 위한 ‘투자’로 다룬다. 양자 모두는 그들이 꿈꿔온 미래 시나리오를 위해 현재의 가능한 ‘다른’ 선택지들을 희생해왔으므로 결과적으로 그들은 막다른 길(Impasse)이라는 졸아든 삶의 유일한 선택지와 맞닥뜨리게 된다. <더 베어>와 비슷한 시기 공개된 <드롭아웃>은 희대의 실리콘 밸리 사기꾼으로 불리는 엘리자베스 홈스 사건을 재구성한 드라마로, 어떻게 그가 일련의 말도 안되는 허황된 거짓말을 화폐 삼아 그토록 거대한 사업체로 키울 수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문화예술계와 연관된 셀러브리티들에게 신분을 속이고 금전을 갈취한 이민자 출신의 애나 소로킨 사건을 배경으로 한 <애나 만들기>(2016), 대규모 음악 축제에서 최악의 사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FYRE: 꿈의 축제에서 악몽의 사기극으로>(2019),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과거 유니콘 스타트업의 상징 위워크의 두 대표가 품었던 공동체에 대한 순진한 꿈과 희망이 추락하는 과정을 그린 <우린폭망했다>(2022)처럼, <드롭아웃> 역시 창업 실패 장르에 속한다. 다만 <드롭아웃>은 앞선 드라마들과 달리 자신만만한 야심가 엘리자베스 홈스가 어떻게 자신의 거짓말로부터 ‘탈출’하지 못하는지를 사이코 드라마적으로 묘사한다. 여성 차별과 폭력의 누적된 경험 때문인지, 아니면 유달리 ‘예민한’ 성격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눈앞에서 자신의 인생이 망가지는 걸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방치한다. 공황과 불안 속에서도 그는 마치 자멸을 가속하려는 듯한 확신에 찬 거짓말을 멈추지 않는다.

<드롭아웃>

아마도 자신의 일로부터 ‘탈출’하기 어려운 건 <더 베어>의 카미(와 우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본주의 혹은 자본주의 속 주체 양식에 내포된 부정성을 자원 삼는, 이른바 ‘가속주의’라고 알려진 좌파적 입장을 따르는 몇몇 급진적인(혹은 이단적인) 평자들은 노동하는 주체의 일견 이해하기 어려운 과잉 노동, 즉 자기 학대에는 향락(enjoyment)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죽음을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는 현실 원칙 너머의 향락은 (마크 피셔에 따르면) 펑크 밴드 섹스피스톨즈의 메시지인 ‘미래 없음’(“No Future”)이 보여주는 증오와 분노, 좌절과 실패의 자리를 표시하기도 한다. <더 베어>의 카미는 분명 스스로를 망가뜨리고 있다. 하지만 그를 망가뜨리는 바로 그 열정의 총량 자체는 ‘다른’ 방향으로 몸통 전체를 틀 가능성을 품고 있기도 하다. 최근 공개된 시즌3의 최종화에 근접해, 드라마는 지옥 같은 주방에서 “어서요!”(Push!)를 연발하며 못난 ‘남자’처럼 주변 셰프들에게 강압적으로 소리를 질러대는 카미의 얼굴 위로 그의 잃어버린 ‘좋은’ 시절과 관계, 상상할 수 있는 ‘나쁜’ 미래의 장면들이 빠른 속도로 정신없이 교차되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는 사수의 강도 높은 ‘훈육’을 온몸으로 소화하며 “인생이 없어졌고” 동시에 “뛰어난 셰프”, 즉 자기 착취적일 중독자이자 끔찍한 보스가 되었다. <더 베어>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나는 부디 카미가 일을 통해 반복해서 마주하는 고통의 끝에 ‘막다른 길’이라는 선택지만을 남겨두지 않기를, 이런 이상한 세기에 일과 분열 관계를 맺고 있는 우리 전체를 대표해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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