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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희진의 공부' 정희진 편집장, "앞으로 반드시 다루고 싶은 주제는.."
김소미 2023-02-23

국방부 양성평등위원회 위원이기도한 그의 책장엔 여성학 서적만큼 군사 관련 서적들도 많다 .

- 덤불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가는 칼처럼 날카로운 글과 달리 선생의 말은 복잡한 사유의 과정을 따라 마구 진동하는 화살 같습니다.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점에서도 그렇고요. (웃음) 글과 말이 스타일이 너무도 달라 당황해하는 반응에는 이제 익숙한 편인가요?

= 저의 말하기에 ‘점핑’이 많아서 좋다는 사람도 있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가끔은 그게 비하로 이어질 때가 있어요. 가령 도올 김용옥의 말하기를 두고는 전혀 횡설수설한다고 하지 않는 사람이 제 말하기에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할 때 생기는 약간의 분노? (웃음)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독 좋아하는 중산층 여성다운 우아한 말하기 방식이란 게 있잖아요? 정치인 나경원은 전형적으로 그런 여성성에 기댄 말을 하지요.

- <정희진의 공부> 2월호에서 그동안 스스로의 목소리에 대해 품었던 의심과 검열, 그로부터 해방되는 과정을 들려주셨어요. 여기에 호응하는 청취자 댓글이 많습니다. <SNL 코리아> 캐릭터로 화제가 된 20대 여성 인턴 ‘주 기자’에 대한 상반된 반응도 떠오릅니다. 동세대의 화법을 절묘하게 따라 했다는 찬사와 사회 초년생 여성을 향한 혐오를 감지하고 상처받은 목소리들이 뒤섞였어요.

= 주 기자 캐릭터는 모르지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네요. 여성주의 이론에서 전통적으로 목소리와 화법은 중요한 주제죠. 공적 발화 혹은 남성 중심 사회의 말하기 방식들이 정해져 있으니 여성은 명예 남성처럼 말하거나, 어머니처럼 말하거나, 반대로 아이처럼 애교를 떠는 경우들이 있지요. 그러니까 여성의 말하기가 애초에 없었던 거예요. 지방 출신이 서울에 올라와 자기 말을 억압해야 하는 것과도 비슷하지요. 그건 계급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중산층식 정제된 언어에 대한 강박을 버려야 해요. 논리적인 비약, 횡설수설, 불안감은 모두 안정의 반대말이죠. 안정적이기만 하면 새로운 말이 나오기 어렵습니다. 형식이 내용을 규정하기 때문에 기득권의 언어로만 말해서는 절대 새로운 이야기가 안 나오죠. 민생, 자유를 외치는 정치인들의 안정된 목소리가 공허한 건 그래서입니다. 아픔이 있는 사람의 소리는 달라요. 세월호 유가족들이 울부짖을 때 그들의 목소리는 갈라지고 떨려요. 훌륭한 예는 <아이 엠 낫 유어 니그로>의 제임스 볼드윈이죠. 그는 엄청나게 화가 나 있고 분노하지만 그 흥분된 말하기로 흑인 정체성 정치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힘 있게 설득합니다.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에 나오는 여성의 말하기와 <바이스>의 정치인들의 대화는 또 얼마나 상반됩니까. 흥분하지 않고 천천히 말할수록 권위 있고 지적인 말하기라는 가정, 그게 곧 이기는 대화라는 생각이 사회 전반에 공유되기 때문이겠지요.

- “한편 나의 푼수기는 지식인 여성으로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본능이 무의식적으로 작동한 산물일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스쳐 지나가듯 말씀한 대목도 서늘했습니다.

= 굉장히 복잡한 게 있죠. 저는 정치적이고 권력 지향적인 사람이기도 합니다. 다만 그 지향이 돈과 권력같이 세속적인 것이 아니었을 뿐입니다. 세금도 제때 못 내는 인간이지만 언어로 승부를 보고 싶은 열망은 대단했어요. 옛날에는 이런 여성들이 자신이 지향하는 권력을 잡을 수 있었어요. 그런데 신자유주의에 와서는 그게 안됩니다.

- 팟캐스트에서 책을 소개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어떤 이유인가요?

= 저는 개인적으로 출판사에서 책을 뿌리는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보는 쪽입니다. 공들여 책을 쓰고 나면 그들이 내 자식 같기에 아무렇게나 돌아다니는 걸 보면 내 몸의 일부가 훼손되는 느낌이 들어요. 책은 필요한 사람이 사고, 필요한 사람이 읽어야 해요. 그래서 저는 다른 사람의 책도 기증받지 않는 저만의 작은 사회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어쩌다 제 주소가 퍼져서 사람들이 책을 보내기 시작하는데 솔직히 조금 지쳤어요. 게다가 성격상 일단 책을 받았으면 그것에 대한 인사를 반드시 보냅니다. 그것도 실은 일이지요. 그다음엔 책들이 짐이 되고요. 아마도 일종의 인플루언서로서 책을 읽고 알려주길 바라기 때문일 텐데 책에 관해선 영화 보듯 잡식하지 않고 무엇을 읽을지에 대해 상당히 까다로운 편이에요. 필요를 명확히 하고 어떤 주제에 대한 글을 쓸지 정해지면 거기에 맞는 책을 찾아서 읽습니다. 저한테 책은 취미의 영역이 아닌 거죠. 그러니 남한테 잘 권하지도 않고요.

- 2G 폰을 개통하긴 했지만 여전히 메일로만 주로 연락을 주고받으시죠?

= 출판사에 원고 보내기 전에도 교정지를 출력해서 빨간 펜으로 그어가며 작업하고 우체국에 가요. 그게 가장 확실하고, 마음도 놓여서죠. 얼마 전 <여자를 모욕하는 걸작들>이란 책에서 이상의 <날개>에 관해 썼는데, 담당 편집자를 격려하는 차원에서 맛있는 초콜릿 하나를 사서 우편으로 같이 부쳤죠. 그게 제가 글 쓰고 일을 처리하는 방식입니다. 한 출판사하고만 17년을 일했는데(<교양인>), 그 17년 동안 식사 한번 한 적 없어요. 딱 두번 만났는데, 모두 차 한잔. (웃음)

- 메일로 자신의 사연을 보내는 일반 독자들과는 어떻게 소통하나요?

= 독자 메일을 정말 많이 받아요. 내 입으로 말해서 민망하지만 100% 꽤 친절하게 답장합니다. 상담에서부터 안내, 여성단체 소개, 사회봉사 연결, 학생들에겐 커리큘럼 제안까지. (웃음) 그게 시간 낭비인가요? 다른 SNS 일절 안 하는 것에 비해서는 전 괜찮다고 생각해요. 긴 메일을 보내오는 사람들 모두가 절박합니다. 저 역시 아픈 사람으로서 그 절박함에 공감해요. 그 누구한테도 말할 수 없는 것을 병 속의 편지에 담아 바닷가에 띄워보내듯이, 어떤 편지는 절절해서 차마 다 읽을 수가 없습니다. 또 어떤 편지는 스크롤을 내려도 내려도 안 끝나요. 써주신 분량의 최소 3분의 2 정도는 되도록 답장을 적죠. 저한텐 그게 그렇게까지 힘든 일은 아녜요. 간단한 친절을 통해 우리는 연결되고, 저한텐 그게 가장 큰 공부지요.

- 팟캐스트 댓글창이 온라인 공론장의 작은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똑같이 현실 정치를 논하고 있지만 포털 사이트의 댓글창과 <정희진의 공부>의 댓글창은 완전히 다른 행성 같습니다.

= 그게 기자님과 배상명 PD의 바람이죠. 그리고 자기만의 플랫폼에서 도취적으로 쓰는 것보다는 서로 댓글을 주고받는 게 훨씬 좋지 않을까요? 브로드캐스팅(broad casting)이 아니고 느슨한 공동체로서의 <정희진의 공부>가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댓글로 활발히 이야기하지만 소모적인 논쟁으로 맞붙지 않는. 그러려면 멤버십이 필요하고 유료로 하되 4900원으로 가격을 낮춘 거지요. 그 값어치 이상을 하려고 노력하고요. 다만 팟캐스트가 돈을 버는 건 광고인데 그렇게는 안 하고 싶습니다.

- <정희진의 공부> 편집장으로 활동하는 동안 병행할 연구의 주제는 무엇인가요?

= 제 박사 논문 <반미문학을 통해 본 식민지 남성성의 형성>은 우리 사회에 워낙 남성성에 대한 연구가 없기 때문에 쓴 것입니다. 한국 남성의 젠더 의식이 여성들과의 관계가 아니라 외세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피해자화하는 과정 중에 형성되었다는 것. 제겐 중요한 관점입니다. 이 논문을 보강하고 마무리하려고 해요. 그리고 군 위안부 문제에 관해 더 제대로 작업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지요.

- 책, 영화, 그외 여러 매체들, 그리고 월마다 바뀌는 주제들에 다학제적 접근을 아우르는 <정희진의 공부>는 선생의 영화 취향처럼 종잡기 힘듭니다. ‘융합과 횡단’ 속에서 앞으로 반드시 다루고 넘어가고 싶은 주제가 있습니까?

= 사회 운동과 민심의 부패를 폭로하고 싶습니다. 저같이 내향적인 인간이 이런 팟캐스트를 하는 건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지 사실 이것 자체를 온전히 즐긴다고 말하기는 어렵지요. 절실하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 책을 쓰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조금만 주의와 비용을 기울여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은데 그렇지 못한 것이 가슴 아파요. 저는 그런 시민인 거죠. 하고 싶은데 못하는, 그래서 많이 내려놓게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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