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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열정이 꽃피운 연기, 배우 변희봉 (1942. 6. 8 ~ 2023. 9. 18)
임수연 2023-09-22

배우 변희봉이 9월18일 별세했다. 향년 81살. 유족에 따르면 고인은 완치 판정을 받았던 췌장암이 재발해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많은 영화인들이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인의 빈소를 찾아 고인을 추모했다.

변희봉은 1965년 MBC 성우 공채 2기로 데뷔했다. 배우로서 처음 주목받은 계기는 <조선왕조 오백년–설중매>. 조선 초기 문제적 인물이었던 유자광을 안방 시청자들에게 인상적으로 각인시킨 그는 “이 손 안에 있소이다” 라는 명대사를 탄생시키며 그해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인기상까지 받았다. 봉준호 감독은 변희봉이 MBC의 공무원처럼 무수한 작품에 얼굴을 비추던 시절부터 그의 열렬한 팬이었다. 첫 장편영화 <플란다스의 개>를 포함해 봉준호 감독은 무려 네 작품을 변희봉과 함께했고, <살인의 추억> <괴물> <옥자> 속 이름을 ‘희봉’이라 지을 만큼 각별한 존경심을 품었다. 봉준호 감독과의 협업 이후 충무로는 변희봉이 수십년간 연기 활동을 하며 농축한 영화적인 에너지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매서운 공격성과 온화한 부정이 공존하는 그의 얼굴은 <화산고> <선생 김봉두> <주먹이 운다> <더 게임> 등 장르를 불문하고 영화에 절묘한 레이어를 더해주는 기둥이었고, 동시에 변희봉은 그간 자신의 주 무대였던 드라마판 역시 등지지 않고 역할의 크기와 캐릭터의 선악을 구분하지 않은 왕성한 활동을 이어갔다. 2017년 <옥자>가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을 때 고인은 75살에 레드 카펫을 밟는 심정을 “70도로 기운 고목에 꽃이 핀 기분”이라 전했다.

197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변희봉과 함께 작업한 영화인들은 한결같이 그가 집요함과 열정, 섬세한 분석력을 두루 갖춘 연기자였다고 기억한다. 작은 조연이라도 하루 종일 캐릭터 생각만 하며 표정과 대사 연습을 하던 기질은 그가 노장이 된 이후에도 여전했고, <주먹이 운다>를 위해 권투를 배우고 <괴물> 때 강도 높은 와이어 촬영을 주저하지 않았다. 때때로 노인의 지혜는 자칫 세월이 자연스럽게 가져다준 직관과 습관으로 오인되곤 한다. 변희봉은 연습 및 리허설에도 최대치의 에너지를 쏟아내는 성실함이 무뎌지지 않고 40년 넘게 반복됐을 때 가능한 수확물을 체화한 배우다. 변희봉의 재발견은 봉준호, 류승완 등 새로운 감독들이 발굴되며 충무로가 비약적으로 성장했던 2000년대와 맞물리면서 한국영화계의 단단한 버팀목이 됐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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