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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액션, 대사 그리고 욕망 - 오승욱 감독의 <리볼버>를 만나다
조현나 2024-08-08

오승욱 감독의 신작이 공개됐다. 배우 전도연이 오승욱 감독의 세계에 다시 들어서며 <무뢰한>의 영광이 반복될 수 있을지에 관한 예측이 난무했다. 오버랩되는 지점은 있다. <무뢰한>의 혜경이 끝까지 사랑을 놓지 않았던 것처럼 <리볼버>의 수영도 수년의 유예기간을 지나 자기 몫을 되찾겠다는 다짐을 실현하려 한다. 그러나 이번엔 주인공의 감정을 쌓는 대신 여러 인간 군상이 각자의 욕망을 표출하는 방식을 차용했다. 오승욱 감독이 “전도연 배우의 새로운 얼굴”을 발견했다고 공표한 것이 납득이 가는 시도다. 디테일을 짚지 않더라도 <킬리만자로> <무뢰한>과 <리볼버>가 다른 궤적을 그리는 작품인 것은 확실하다.

수영이 출소한 날의 풍경은 고적하기만 하다. 죗값을 대신 치르면 상응하는 대가를 주겠다는 자들은 자취를 감췄고, ‘정 마담’으로 통하는 윤선(임지연)만이 수영을 반긴다. 한때 경찰이었던 수영은 동료이자 옛 연인 석용(이정재)을 비롯한 이들과 비리를 저지르며 부를 쌓아왔다. 투자회사 이스턴 프로미스가의 앤디(지창욱)가 지은 죄를 뒤집어쓰기 전까지, 원하던 집을 구해 안정적으로 삶을 꾸려가려던 찰나였다. 출소 뒤 수영은 약속된 보수를 받아내기 위해 사건과 관련된 이들의 자취를 좇는다. 그런 수영의 손에는 전 상사 기현(정재영)이 건넨 리볼버가 들려 있다.

<킬리만자로> <무뢰한> <리볼버>로 이어지는 오승욱 세계관의 형사 계보가 있다. 이들은 조금씩 비슷한 인상을 주는데 특히 <킬리만자로>의 경찰 해식(박신양)과 <무뢰한>의 형사 재곤(김남길)이 그렇다. 이를테면 두 사람은 두개의 신분으로 움직인다. 쌍둥이 동생 해철(박신양)의 죽음의 전말을 알기 위해 해식은 동생 행세를 한다. 재곤은 자신을 영준이라 소개하며 클럽 마담 혜경(전도연)에게 접근한 뒤, 용의자인 혜경의 애인에 관한 실마리를 얻어내려 한다. 형사로서 진실을 파헤치기 위한 접근이었지만 상황을 파악하고, 상대와의 감정이 깊어지면서 둘은 갈등한다. 두 세계에 발을 걸친 중간자로서 언젠간 맞닥뜨릴 게 자명했던 순간이기도 하다.

수영은 둘과 다른 양상을 보인다. 우선 타인과의 관계부터 살펴보자. 형사와 마담이라는 직업적 특성 때문에 수영과 윤선은 종종 재곤과 혜경에 비견된다. 그러나 재곤과 혜경이 멜로의 작법으로 설명 가능한 사이라면 수영과 윤선은 이해관계로 엮여 있다. 따지자면 주인공과 조력자 역할에 가깝다. 갈수록 짙어지는 이들 사이의 동료애는 <킬리만자로> <무뢰한>의 경우처럼 갈등을 초래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수영이 목적지로 향하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그렇다면 수영이 지향하는 바는 무엇인가. 스스로 언급했듯 수영은 “약속된 아파트와 돈”을 받고 싶어 하고 이를 위해 관련자들을 찾아간다. 속세를 떠났던 주인공이 복수의 칼을 갈고 돌아와 상대를 찾아간다는 설정. 액션 무협 장르에서 곧잘 다뤄지는 플롯이다. 그러나 수영의 목표는 피의 숙청이 아니다. 정당한 대가만 받을 수 있다면 오히려 불필요한 희생을 치르지 않으려는 의지가 드러난다. 화려한 액션은 고사하고 총을 쥐고도 쉽게 총구를 겨누지 않는, 주저하는 손길에 수영의 속내가 비친다.

<킬리만자로>의 해식은 동생의 죽음이라는 과거에, <무뢰한>의 재곤은 혜경이라는 현재에 천착한다. 그러나 <리볼버>의 수영은 과거와 작별하고 싶어 한다. 출소하자마자 수영이 한 일은 수감 전 입었던 옷을 환복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새 갑옷인 양 그 옷을 마지막까지 착용한다. 도식적인 연출이지만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수영의 지향점은 비리 경찰이던 과거도 그 시절의 인연을 찾아 나서는 현재도 아닌, 도래하지 않은 자신의 새로운 미래다. 예상컨대 수영이 아파트와 돈을 손에 넣길 원하는 건 그것을 토대로 제대로 된 새 삶을 시작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폭력과 살인으로부터 최대한 멀어져야 한다. 죄를 짓지 않겠다는 신념을 쥐고, 그런 자신을 증명해내겠다는 마음과 함께 수영은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오승욱 감독은 <리볼버>를 두고 ‘대화의 영화’라고 말한다. 그만큼 전작들, 특히 <무뢰한>과 다르게 인물의 말을 빌려 전하는 정보값이 상당하다. 들여다보면 그 내용은 대체로 인물 자신의 욕망과 관련될 때가 많다. 정 마담, 앤디와 같은 수영의 주변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바라는 바를 명확히 가리키는 그 말들이 오히려 ‘그게 전부일까?’라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수영이 그러했듯이 행동에 저변의 의도가 내비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자기 이익만 중요하다는 듯 굴던 정 마담이 의외의 희생을 감내하며 수영을 돕고, 앤디의 방황에도 나름의 원인이 있던 것처럼 말이다.

<리볼버>의 굴곡은 수영을 중심으로 여러 욕망이 얽히고설킬 때 두드러진다. 그리고 그 굴곡의 상당수가 말로서 설명되는데, 이는 ‘대화의 영화’인 <리볼버>의 매력이자 아쉬운 지점이다. 단순히 액션이 더 가미되어야 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친절한 설명은 직관적인 상황 파악을 돕는 한편 갈등의 굴곡을 평이하게 만들고 외부 시선이 끼어들 여지를 좁힌다. 인물간의 대화가 <리볼버>에서 더 긴밀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이번에도 중요한 건 발화되지 않은 것들이었다. 언어화된 욕망 아래 인물들의 복수심, 신념, 죄의식이 내비치는 순간들. 스크린 속의 인물들을 더 궁금하게 만든 요소는 절제된 표현 사이로 보이는 이면의 것이다.

그럼에도 흥미로운 것은 변주다. <리볼버>가 오승욱 감독 전작의 일부 요소를 떠올리게 만들지만, 그 요소들의 구성이 다르다. 위성처럼 동생과 사랑하는 이의 영향권에 놓였던 여타 캐릭터들과 다르게 수영은 오직 자신만을 위해 나아간다. 교도소를 나선 이후로 수영은 한곳에 정착한 적이 없다. 마침내 목표를 이뤄냈을 때, 수영의 발걸음은 어디로 향할 것인가. 예견된 끝에서 다시 시작될 그의 욕망이 궁금하다.

모두가 모여든 화종사의 길

<리볼버>의 클라이맥스는 화종사, 그리고 화종사로 향하는 산길 장면이다. 오승욱 감독은 과거 자신이 <킬리만자로> 시나리오를 쓰며 머물던 절을 떠올리며 화종사 신을 집필했다. 그러나 화종사 신의 배경이 됐던 실제 절은 30년의 세월이 지나며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파쇄석이 깔린 땅 위로 인물들이 교차하며 지나가는 신이 중요했기 때문에 절 근처에 걸리는 지점이 없어야 했고”(오승욱 감독) 때문에 <리볼버> 제작진은 절과 일주문 등 각도별로 로케이션을 다르게 섭외해 화종사 신을 완성했다는 후문이다. 한편 화종사로 향하는 산길에서 수영은 윤선, 앤디와 앤디 수하들을 비롯한 여러 사람을 마주한다. 박민정 PD는 “수영은 공격할 생각이 없는데 다른 인물들이 끊임없이 그를 궁지로 몰아가려 안간힘을 쓴다”며 복수를 비롯한 각자의 욕망이 표출되는 장면이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리허설과 촬영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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